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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현실적 남녀평등

간혹 이슬람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사람을 본다. 하긴 이슬람 원리주의자 탈레반은 이슬람 경전 코란을 근거로 여자를 악의 근본으로 보고 철저하게 배척하고 유린하고 있다. 여성은 철저히 남성에 복속된 존재다. 강제 결혼을 당할 수 있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되면 죽임을 당하고, 외간 남자와 말이라도 섞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훑어보다 보면 이게 이슬람 문화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은 다 있다는 이야기이다.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회고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성을 고깃덩이로 취급한다고 폭로했다. 이게 21세기 미국 대통령이란 작자의 여성관이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 내가 클 때만 해도 여자의 웃음소리가 집 밖을 나가면 안 되고 가게 첫 손님이 여자이면 재수가 없다고 했고 안경 쓴 여자는 더더욱 재수 옴 붙는다고 했었다. 안경 쓴 여자가 택시 첫 손님이었을 때 승차 거부는 물론이고 그날 사고 난다고 운행을 안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요즘은 당연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MBC 뉴스 진행을 맡은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출연했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화제가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이게 현실이다. 불교에서 비구와 비구니의 차이는 엄청나다. 비구는 250계(戒)만 받으면 되지만 비구니는 348계(戒)를 받아야 한다. 원칙주의자인 성철 스님도 이런 게 상당히 못마땅했든지 많은 부분을 개선 시켰고 보완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음을 본다. 가톨릭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고 프란치스코 가톨릭 266대 교황은 대놓고 말했다. 수녀는 사제가 아니기에 가톨릭 교단에서 아무 발언권이 없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불교에서 보살(여자)의 역할이 없으면 불교는 없다. 마찬가지로 가톨릭에서도 자매들이 없으면 성당 문 닫아야 한다. 종교에서 여성 파워가 막강하다고 아니할 수 없는데 변화의 조짐은 더디기만 하다. 답답했던지 나라에서도‘양성평등기본법’이란 것을 만들었다.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양성평등의 사회를 실현하라는 강행 규정이다. 분명 외견으로는 불평등이 여전히 지금까지도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나만 그렇게 느끼며 살고 있나? “아직 여자들이 불평등을 당한다고?” 정년퇴직하고 세끼 밥이나 축내는 삼식이란 놀림을 받지 않으려고 요리 배우는 지인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주위에 남성이 대접받는다는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기상청에서 날씨 예보할 때 기온에 덧붙여 체감온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리 기온이 높거나 낮아도 체감온도에 의해 사람이 느끼는 감응은 다르게 마련이다. 분명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직 남존여비의 사상이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체감온도는 그 반대이다. 누가 양성 불평등을 논하고 있는지 알고 싶고 직접 체감하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22

주사 이모

골프장에 가면 호칭은 단 하나다. 모두가 “사장님”이다. 진짜 사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손사래를 쳐도 “사장님 나이스 샷”은 멈추지 않는다. 호칭은 사실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다. 반복되면 어색함은 사라지고, 결국 말은 의미를 잃는다. 골프장에서 사장님이 넘쳐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칭이 존중의 표현이기보다 서비스의 윤활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듣는 쪽도, 부르는 쪽도 그 허구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사 이모’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낯설었다. ‘주사 아줌마’도 있을 수 있고, ‘주사 도우미’도 가능할 텐데, 왜 하필 이모일까. 더 묻게 된다. 고모는 왜 안 되는가. 외삼촌은 왜 상상조차 되지 않는가. 호칭 하나에 이렇게 많은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동시에 불편함을 남긴다. 이모라는 호칭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동네 병원에서도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무난한 말이 되었다. 이름 대신 불리고, 직함 대신 쓰이며, 개인은 자연스럽게 지워진다. 친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친근함은 대체로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부르는 쪽은 편하고, 불리는 쪽은 선택권이 없다. 과거 드라마 속 가사도우미는 “청주댁”, “안성댁”으로 불렸다. 본래 ‘댁’은 존칭이었지만, 어느 순간 출신과 신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고, 급기야 비하의 언어로 굳어졌다. 지역과 혈연을 담던 말이 노동과 종속을 표시하는 기호로 변한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계층을 정리하고, 한 번 굳어진 호칭은 좀처럼 위로 이동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모라는 말조차 부담스러워졌는지, 재벌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가사노동자를 “실장님”이라 부른다. 반면 골프장에서는 모두 사장님이고, 글 쓰는 세계에서는 모두 선생님이다. 미술계에서는 작가라 부른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모’라는 호칭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모는 특정한 장소, 특정한 계층에만 허용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호칭 하나로 공간의 위계가 구분되는 셈이다. 백화점에서 이모라는 호칭이 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곳에서는 “저기요”면 충분하다. 아가씨도 아니고, 이모는 더더욱 아니다. 호칭을 지우는 대신, 서비스 공간의 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모라는 말이 그만큼 낮은 위치로 고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는 평생 이모라는 호칭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는 외동이었고, 아버지 쪽에는 고모만 있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도 이모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십쯤 되어 보이면 무조건 아가씨라 부른다. 그 말에 불쾌해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불편함은 말보다 맥락에서 생긴다. 내게 이모는 친족 호칭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모는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손쉬운 말이 되었다. 친근함이라는 포장을 두른 채, 개인을 지우고 역할만 남기는 언어가 된 것이다. 만약 주사를 놓는 사람이 남자였다면 우리는 뭐라고 불렀을까. ‘주사 외삼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요즘 꽤나 심심하긴 한 모양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15

점집 대목 시즌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붉은 말의 해’라면서 새해의 염원을 담고 있다. 붉은 말은 설날 이후에나 오는 것을 알면서도 설날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일단 먼저 즐기자는 마음이 강한 모양이다. 주작(붉은 참새)을 가리키는 남쪽 방위의 색이라 붉은 말이라고 하는지, 천간이 ‘병(丙)’이어서 화(火)에 속하기 때문에 붉은색이라고 하는지, 찾아보지 않고 쉽게 설명해 주는 이가 없다. 쉽게 설명이 되지도 않겠지만 그걸 꼭 들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청색이라면 청색’ ‘붉은색이라면 붉은색’인가 하고 고개만 끄덕여 준다. 천간과 지지에 의해 ‘붉은 말띠의 해’라고 하니 그런가 하고 이해하지만, 천간과 지지는 음력 기준이라 아직 좀 기다려야 한다. 해가 바뀌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집이 대목을 탄다. 종교를 가지고 안 가지고 별반 차이가 없다. 교회 다니면서도 점집 찾고 절에 불공드린다고 부지런히 법당을 드나들면서도 버젓이 점집을 찾는다. 이런 상황이니 신부님이나 목사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찾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꾸짖으면 되지만 신도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림을 사는 절의 궁색한 사정으로는 스님이 명리를 공부해 대충이라도 신자의 마음을 달래주지 않을 수 없다. 옥황상제나 용왕을 모시거나 관우 장군을 모시는 무당들도 버거운데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명리학이니 뭐니 해서 사주팔자로 사람들을 현혹하니 주지 스님 머리가 자못 복잡하다. 사기 치는 집단들, 무당이나 점쟁이들은 사람의 아픈 구석을 집요하게 후벼파거나 자식이나 건강을 빌미로 협박한다. 병으로 죽거나 자식이 잘못된다는데 ‘이깟 돈이 뭔 대수냐’라는 생각에 한순간 자신의 지조를 무너뜨리고 만다. 무당의 특징이 과거는 잘 맞추는데,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귀신을 통한 영매도 귀신이 알려주는 과거는 족집게처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귀신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선 대충 어벙벙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제대로 된다면 달셋방에 대나무 꼽아놓고 손님 기다리는 무당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에 관한 궁금증 때문에 과거를 잘 맞춘다는 무당을 찾아 구렁이 알 같은 돈을 아낌없이 주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답답한 일이다. 국정을 점쟁이들 손에 맡겨 운영하려 했던 대통령도 있었는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있다. 한 심포지엄에서 패널로 나온 출중하시고 고명하신 선생님들의 발표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역사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였다. 요지는 언제부터 우리는 어려운 역경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헤쳐 낸 과거 몇몇 선배들의 희생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것으로 결론 내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그래서 향후 10년 뒤를 전망해 주십시오.” 미래에 대한 대안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개선 방안이라도 내놓았으면 좋으련만 패널분들은 흘러간 과거 노래만 하고 있었다. 용한 무당도 모르는 미래를 이야기하라는 나도 미친놈이지만. /노병철 수필가

2026-01-08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어릴 때 짜장면 한 그릇이면 다 통했다. 졸업식, 입학식, 그리고 생일 때 짜장면 이상은 사치였다. 탕수육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다. 우동 아니면 짜장면이었고 아버지는 가끔 짬뽕을 잡수시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짬뽕은 어른들이 드시는 음식으로 안다. 짜장면이 1970년에는 한 그릇에 100원 정도였으나 최근엔 7000원 선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동네 중국집에선 5000원 정도 받는 곳도 있긴 하더라만, 50년 동안 50배나 가격이 뛰었다. 요즘 식당 밥값이 장난이 아니다. 1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중국집이나 분식집 말고 없을 정도이다. 학창 시절 데이트할 땐 돈 1만원만 있으면 둘이 극장가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셔도 집에 갈 버스비는 남았다. 지금 애들은 도대체 얼마를 들고 나가야 데이트를 할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 남자애들이 부담이 상당할 것 같다. 둘이 짜장면만 먹을 수는 없을 테고 분위기 한번 잡을라치면 두당 3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차 한 잔 마시면 거의 10만원 돈이다. 요즘은 그래도 ‘카드’라는 것이 있어 돈 떨어져 집에까지 뛰는 사태는 없어 다행이다. 제주 유명호텔 짬뽕 한 그릇이 6만2000원이다.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먹으면 20~30만원이 짬뽕값으로 나간다. 메뉴 제목이 ‘전복 한우 차돌박이 짬뽕’이라는데 우리 동네 중국집에선 문어까지 넣은 고급 짬뽕이라도 2만 원을 넘지 않는다. 비싼 호텔 짬뽕이 대중적인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짬뽕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단다. 인생 짬뽕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짬뽕 가격에 질려버린다면 파인다이닝 식당엔 근처에도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몇몇 생소한 단어가 옆을 스친다. ‘파인다이닝’ ‘오마카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 그냥 서민으로 한세상 그렇고 그렇게 산다고 보면 된다. 재혼을 준비하는 돌싱들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재혼 목적 교제 중, 어떤 말을 자주 들으면 재혼 의지가 꺾이느냐”라는 질문에 남성 대부분이 ‘파인다이닝’을 골랐다고 한다. 데이트비를 거의 지불하지 않는 여성이 맨날 고급 식당을 요구하면 ‘나를 호구로 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여자는 정이 뚝 떨어진단다. ‘파인다이닝’이란 ‘좋은’, ‘질이 높은’이라는 뜻의 ‘fine’과 ‘식사’를 뜻하는 ‘dining’의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비싼 식사, 고급 식사를 뜻하는 일반적인 어휘라고 보면 된다. 이름난 셰프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식사 금액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다. 시그니처 메뉴를 제공하고 받는 금액이 일인당 수십만 원이라고 한다. 수억대의 자금을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테이블과 의자 또한 최고급이다. 화장실에는 고급 향수가 비치되고, 고급 브랜드들의 식기가 제공된다. 보험 신청하고 받은 그런 허접한 그릇에 밥 먹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서글퍼진다. 인생이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제주도는 비행기 값이 없어서 못 가고 동네 중국집에서 뜨끈한 짬뽕 국물로 속을 달래야겠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01

애매한 밥값 이야기

이걸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예절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밥값 내는 행위를 시건방지게 생각했고 설사 남자가 돈이 없어 여자가 내야 할 때도 탁자 밑으로 돈을 건네주어 남자가 내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우린 이런 행위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연장자에게 얻어먹는 것은 당연했고 후배가 밥값을 낸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래서 선배 대접 제대로 받으려면 밥값 정도는 항상 챙겨 다녀야 했다. 이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란 게 놀랍다. 얼마 전만 해도 남자라는 ‘거들먹’이 몸에 남아 밥값 정도는 내가 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건만, 세상은 변했고 나도 변했다. 이젠 여자가 밥값을 내는 행위에 익숙해져서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 대구 수필가이신 김상립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과 식사 자리에서 밥값을 거의 전담하셨다. 너무 얻어먹는 것이 죄송스러워 몰래 몇 번 내기도 했지만, 선생은 결코 신발 끈 맨다고 우물쭈물하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자리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항상 도리를 다하고 사셨기에 거리낌이 없었고 당신 속에 있는 말씀을 다 하셨다. 결코 구질구질하게 눈치를 보며 주위 지탄을 우려해 주례사만 읊는 법이 없었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반해 언제부터인지 선생처럼 되어보려고 따라 하다가 집구석 거덜 날뻔했다. 아무나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요즘은 연로하신 분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린 인간이 밥값을 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용돈 받아 쓰시는 분에게 밥값을 전가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이래저래 애매한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우리말 뿌리 찾기 ‘어원사전’을 내신 국어학계의 거목 고(故)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를 알만한 분들은 다 안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어원을 제대로 오랫동안 연구해 찾아낸 분이다. 작고하신 지 몇 년 후에 제자들에 의해 책이 마무리되어 출간되었다. 북한이 고향이었던 이기문 교수는 소문난 ‘평양냉면 마니아’였다. 그래서 후배들이나 제자들을 데리고 냉면집을 자주 찾았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학문적 업적보다는 교수님은 절대 후배나 제자들이 식사비를 못 내게 했다는 것을 더 기억하고 있어 웃음이 난다. 제자들이 이제는 연로하신 교수님을 대접하려 하면 교수님은 ‘아무리 제자가 돈을 벌어도 스승이 사는 법’이라며 크게 화를 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단다. 이름을 남기려면 제자를 잘 키워야 하고 제아무리 살아생전 출중한 업적이 있어도 그 업적을 인정해 줄 후학들이 없으면 사후 얼마 되지 않아 이름 석 자는 사장되고 만다는 것이 현실이다. 혼자 똑똑한 척 잘난 척하며 우쭐대면서 거들먹거리는 인생을 살아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다 헛짓거리라는 말이다. 밥을 사고 안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생으로서 스승으로서의 인격이 보이면 후학들이 추앙하게 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일 때는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만 날리고 있다가 사후 그 어떠한 기억도 지워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라는 말이다. 학식과 덕망도 갖춰야 하고 지갑도 두둑해야 하니,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노병철 수필가

2025-12-18

전문가다운 이야기를 듣고싶다

어떤 대담 프로에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얼핏 알겠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잘 이해할 수 없다. 뭔가 번지르르한 단어와 외래어나 외국어를 섞어 이야기하는 통에 말하는 바를 평범한 사람이 주워 담기엔 역부족이다. 더 웃기는 것은 대담하는 장소에서 대담은 하지 않고 자기가 준비해 온 것만 줄곧 읽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마치 한 개인에 불과한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비판이나 비난, 불평만 하는 것은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고 대다수의 바보들은 그렇게 한다’라는 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대안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요즘 방송에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관 학과 교수나 그쪽 계통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소위 ‘전문가’라고 치고 섭외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도저히 전문가 같지 않은 분이 나와서 자기 주관대로 말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런 사람을 전문가라 부르기는 무리가 따른다. 마치 뚱뚱한 사람이 다 미식가가 아닌데 그런 사람만 끌어모아 맛 탐방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전문가라고 하는 것은 그 분야에 능통함은 물론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단어가 아닌가? 사실 종편을 보면 심하게 꽉 막힌 사람들이 전문가입네 하고 나와서 온갖 말을 다 쏟아내고 있다. 사실 검증이나 제대로 거친 이야기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상관없다. 그냥 특정인의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다. 사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마련이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가늠하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래서 더 많고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서 더 정확한 판단과 예측이 가능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견해를 검증받고자 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요즘 ‘농업’이란 교과 과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만, 옛날 농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작물들의 파종 시기를 한 시간 내내 강의하시다가 마지막 한마디로 종료한다. ‘책대로 하지 말고 집에 할아버지가 씨뿌리라면 그때가 씨뿌리는 시기’라고. 연습생 시절을 거치지 않고 목청만 좋다고 다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많이 먹어보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음식 전문가가 될 수가 없다. 선수 시절이 없는 감독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진리다. 그냥 책만 보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람은 적어도 정보 수집과 분석함에 있어서의 편견 없이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가치중립적으로 이해한 후 그 경험적 정보를 바탕으로 일반화하기에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마치 귀신에게 홀려 설득당하는 기분까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가 드물다. 그러니 몸에 와닿지 않아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선택은 내 몫이 되고 만다. 이걸 흔히 전문 용어로 ‘제자리 곰뱅이’라고 하던가? /노병철 수필가

2025-12-11

덜 떨어진 금성인

‘깻잎논쟁’이란 말이 있다. 남의 부인이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떨어지는 것을 본 남자가 깻잎을 떼주다가 자기 부인에게 된통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게 방송을 타자마자 패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렇게 논쟁이 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깻잎이 안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면 좀 도와주는 것이 뭐 어떤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하게 된다. 사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벌어졌고, 남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다가도 낭패 보고 술자리에서 한 잔 따라주다가도 잔소리 들은 적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을 자제하게 된다.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소유욕 혹은 독점욕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나름 고상한 체면 때문인지 대답을 잘하지를 않는다. 단지 그러한 행동을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서 말한다. 그냥 애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그런 친절한 서비스는 나만 받을 자격이 있고 나 이외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튄다는 말은 애써 자제한다. 요즘 유행하는 ‘천박한’ 언어이기에 사용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었다간 일이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그냥 늘 하던 식으로 내가 또 뭘 잘못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는다. 남자 인생이 뭐 별거가 있나. 이런 것을 서로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는 화성인 금성인으로 구분한다든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해서 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MBTI에 가져다 붙여,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성격상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논란에 휩싸인 라캉의 한 책에서 그 정답을 찾곤 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언어 체계로 수렴되지 않고, 부부가 ‘서로 통하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한국 남자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가 여자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정도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이성적 판단으로 몇 가지 포즈를 더 요청하면서까지 성의를 베풀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집사람이 말을 안 한다. 분명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깻잎을 떼어준 적도 없고 생선 살을 발라준 적도 없기에 집에 올 때까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남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없다. 사진 찍어준 것도 죄가 되나? 나이가 들어도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한참이나 이어질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 때문에 누구라도 붙잡고 이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다. “AI, 너는 아느냐? 저 여자가 왜 저렇게 삐졌는지를?” /노병철 수필가

2025-12-04

사람 사귀기가 쉽나

사진을 배울 때다. 선생님이 질문했다.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첫 번째 비법은 무엇인가?”라고 묻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빛에 따라 조리개를 잘 조절해야 한다.” “조금의 흔들림도 주의해야 한다.” 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답을 질러본다. 선생님은 웃으며 “렌즈를 먼저 닦는다.”라는 답을 한다. 그 순간 수강생들의 반응은 헛웃음이었다. 뭔가 잔뜩 기대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사진 찍을 때마다 렌즈부터 닦는 습관이 들었다. 그 어떤 스킬도 그다음이었다.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병원 자주 가서 건강 체크를 하는 것도 중요하고 고급 영양제 달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동무가 있는 것이란다. 시시껄렁한 야담을 늘어놓아도 전혀 거리낌 없는 친구가 주변에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 지수는 높아져 가고 이에 편성해 장수 인자가 몸에 자리 잡게 된다는 이론이다. 아주 손쉽고 간단한 방법이 정답으로 다가올 때 살짝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주위에 아는 사람이 하나둘 나의 곁을 떠날 땐 분명 자신에게 큰 문제점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 데 늘 상대방 탓을 한다. 우린 보인다. 그들이 왜 떠나는지를. 사실 이 사람의 인간성을 볼 땐 우리도 별로 다가서고 싶지는 않지만, 모임 속 일원이라 이야기 정도는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는 모른다. 자기는 착한데 떠나가는 남들은 전부 나쁜 인간들로 치부해 버린다. 나를 찾는 이가 없으면 남에게 베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친구를 만드는 데도 노력과 희생도 필요하며 절대 이기적으로 굴어서는 친구를 만들 수 없고 나 좋을 때만 연락해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허구한 날 얻어먹는 인간에겐 사주기가 싫다. 모임 회비는 늘 늦게 내면서 챙기는 것은 일등으로 챙기려 들고 남 찬조 안 한다고 뒷말하고 다니면 좋아할 사람 없다. 이기적인 티가 팍팍 나는데 남들은 모른 줄 안다. 염치를 모르고 사는 전형적인 인간형이다. 혼자서만 똑똑하다. 세상 아는 척은 혼자 한다. “저 인간은 주는 것 없이 미워.” 이 말은 절대 본인은 들을 수 없다. 마치 자신의 입에서 나는 심한 구취를 본인만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알듯이 죽을 때까지 안 보고 살 자신이 있지 않은 한, 대놓고 말하기는 많이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난 천성이 혼자 있는 것이 좋아.” 이런 말을 하면서 혼자서 여행가고, 홀로 영화 보면서 고상 떠는 한 지인이 있었다. 그도 생일날 혼자 밥 먹으니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더란다. 사람이 살면서 주는 것 없이 미운 인간형으로 낙인찍혀 사는 것만큼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내 가족부터 먼저 챙기는 것이다.” 가족이 제일 먼저 안다. 내 가족 간에 대화 없이 산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쓸데없는 유튜브만 쳐다보지 말고 가족과 지인에게 전화 돌릴 때다. “지금 뭐해? 같이 밥이나 먹을까?” /노병철 수필가

2025-11-20

내 생각이 너무 고루한가?

세종대왕께서 날 밤을 새우면서까지 만든 한글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언론에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외국어이다. 외래어면 말도 안 한다. 자기가 좀 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말도 아닌 듯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생활 속에 아주 익숙해진 말투다. 하지만 방송은 조금 정화되었으면 싶은데 듣는 사람 기분을 거슬리게 만든다. “관객”을 계속 “갤러리”라 말하는데도 사회자는 그 어떤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이게 요즘 말하는 세련되고 글로벌한 어투인가? “찌개다시 많이 나오는 식당가자.” “찌개다시? 스끼다시가 아니고?” “너무 유식한 척하지 말고 대충 알아들어라.” 복잡한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우리는 따지고 드는 사람을 기피하고 대충 뜻만 통하면 넘어가는 이상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나름 남들에게 유식하게 보이고는 싶고, 그래서 한마디 한 것이 지적질로 돌아오면 기분은 나쁠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고 말하는 것과 머리를 거치지 않고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품격에 차이는 난다고 보면 된다. 일본에 가서 “찌개다시”라고하면 알까? “스끼다시”도 모른다. 마치 중국에 가서 짜장면 찾기다. 그리고 “츠키다시”라고 하는 일본 말은 메인 음식에 곁들인 아주 소량의 기본 음식이다. 이런 오토시나 츠키다시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30개의 반찬을 깔아버리는 한식과 경쟁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손님 접대는 푸짐해야 하고 음식은 남아야 대접 잘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문화라 제비 눈물처럼 찔끔 나오는 전채요리로는 경쟁이 안 됐다. 살아남기 위해선 당연히 변화해야 했고, 그 결과 마치 코스요리처럼 푸짐하게 한 상을 받는 느낌이 들게 만든 것이다. 이제 일식집에 스끼다시가 시원찮으면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나와야 할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시미 요리와 함께 튀김이나 해산물이 한상 가득 깔려야 한다. 우동이나 김말이(마키), 초밥 같은 것도 곁들여서 말이다. “오늘 추천 요리는 뭔가요?” 손님이 요리를 주방장, 아니 요즘말로 “셰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을 ‘오마카세’라고 한다. 이런 용어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용어 자체가 많이 거북하게 다가온다. 젊은 친구들은 이런 일식 문화에 자주 접하는지 내가 잘 모르는가 싶어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돈 내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들으면서 한 번씩 고개만 끄덕여 준다. 들으면서 내가 꼭 이걸 알아야 하나 싶다. 일식집만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식당의 다반상(多飯床) 문화도 변해 전통 반상은 어디 허름한 한식집이나 공사장 함바집 수준으로 전락했고 요즘 잘나가는 한식집은 36반찬을 깐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젊은이들이 낭비라면서 우리네 한식 문화를 보여주기 식의 낙후된 식문화로 깎아버린다. 정말 그럴까? 36반찬을 혼자 먹을 순 없다. 다함께 밥 먹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자랑스러운 우리 밥상 문화임을 알았으면 싶다. 미소 된장국에 감탄하지 말고, 구수한 한국 된장의 참맛을 느끼면서 우리네 식문화에 좀 더 관심 가지는 젊은이를 보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5-11-13

정말 모르고 있나

요즘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의 카톡 프로필을 보면 전부 손주 사진으로 도배를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니 보고 또 보는 것을 넘어 돈 만 원을 주고서라도 손주 자랑을 하고 싶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우리가 손주만을 바라보면서 그저 “귀엽다”라는 마음으로 한정되어 있고 젊은 부모들의 육아 전쟁은 실로 엄청나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은 갑갑하다. 그래서 함부로 결혼하라느니, 애를 낳으라는 말을 못 한다. 언제까지 이런 현상을 두고만 볼 것인지 엉뚱한 정쟁만 늘어놓는 정치권만 맥 놓고 바라만 본다. ‘위대한 고전’이란 말이 있다. 여기저기에서 많이 인용되어 실제로는 읽지 않았음에도 마치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나, 정말 읽은 것으로 착각하는 책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책이 맬서스의 ‘인구론’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같은 책들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세상 사람들이 말하길 “누구나 그 내용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읽은 이는 거의 없는 위대한 고전”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나오는 단 하나의 문장은 정말 또렷이 기억한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서로 죽이거나, 병들어 죽게 된다는 이론이다. 즉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맬서스의 인구문제 제기는 식량이 부족하기 전에 인구 조절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그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정치적 해결방안조차 필요 없고 구호의 손길조차 끊어 하층민들이 죽거나 살거나 그냥 내버려 두라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 많이 낳는 게 효(孝)라는 농경 사회 인식이 팽배했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자, 그동안 미뤄졌던 결혼과 출산이 한꺼번에 일어나 연간 약 80만~100만 명이 태어난다. 소위 말하는 ‘ 베이비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58년 개띠가 약 90만 명 태어나기도 했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에 깜짝 놀란 정부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인용하면서 인구 억제 정책을 부랴부랴 내놓기 시작한다. 인구론을 교과서에까지 언급하면서 인구를 줄이고자 많은 정책을 쏟아 놓았다. 당시 정부는 인구폭증을 막기 위한 ‘가족 계획’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적게 낳아 훌륭히 기르자”, “둘도 많다”라는 포스터 구호를 우린 기억한다. 적극적인 피임 교육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갖다 부었다. 인구 증가로 인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이 정책 입안자 머리에 팽배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지금은 인구 절벽이니 하면서 외국에선 한국이란 나라가 곧 없어질 것이라 예언할 정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맬서스의 이론처럼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서로 죽이거나, 병들어 죽게 되어 인구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뒤늦게 부랴부랴 저출산 억제 및 출산 장려 정책을 펴고 있지만 막대한 세금만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아기 울음소리는 자꾸 사라지고 노인네 기침 소리만 들린다. 정부는 우리 젊은이들이 애를 낳지 않는 이유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노병철 수필가

2025-10-30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

나의 이상한 증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뭘 버리지를 못한다.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적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집구석마다 쟁여놓은 물건이 산더미라 늘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은 몇 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늘 처박혀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버리려고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가도 다시 끄집어내기를 반복한다. 이건 분명 ‘병’이다. 의학 쪽에서 말하는 강박장애가 아닌가 싶다. 강박장애는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하는 정신질환이다. 입에 늘 청결제를 가지고 헹구면서 손을 자주 씻는 것과 냄새가 날까 싶어 옷을 자주 빨아 입는 것을 결벽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친구들에게 제발 담배 좀 끊고 냄새나는 옷 좀 입고 다니지 말라고 되려 역정을 내고 있지만, 이 또한 오염 강박증의 한 증세일지도 모르겠다. 집사람은 뭔가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확인 강박증이 있다. 냄비를 태워 먹고 약속을 몇 번 ‘빵구’를 내더니 늘 확인한다. 하지만 병이 워낙 독한지라 늘 사고는 친다. 부모님 제사까지 잊어버린다. “난 저런 인간들과 같이하기가 너무 싫다.”라며 혼자 고고한 척하는 완벽주의자 친구가 있다. 정말 반듯한 생활을 하는 친구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례를 들춰 봐도 그 친구의 논리가 맞다. 그렇게 살아야만 제대로 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정떨어질 때가 있고 재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친구도 강박 증세가 있다고 본다. 완벽주의자로 포장된 인간의 대부분이 강박적 성격이 있거나 강박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학적 견해도 있으니 말이다. 땅이 무너질까 두렵다는 생각,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분명 환자다. 남의 호의나 선의를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는 사람 또한 환자이다. 늘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험담하는 것을 자기 주장의 정당화로 억지 강변하는 사람도 분명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것을 먹으면 뭐가 나빠지고 저것을 복용하면 이것이 좋지 않다는 식의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병원을 수십 군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병은 소문내야 한다.”라는 이상 한 논리로 말할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너무 오래 살아 자식에게 짐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된다. “그 나라는 지금 전쟁 중인데 잘못 가다간 큰일 난다.” 이 정도 수준이면 그래도 이유가 확실하니 들어 줄 만은 하다. 하지만, 해외여행 가자는데 그 나라는 잘못하면 강도가 많아 물건 빼앗기고 살해당한다고 가지 싫어하고 어떤 나라는 납치된다고 싫어하고 또 어떤 나라는 물이 좋지 않아 안 간다고 할 땐 말문이 막힌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반대하는 친구가 이번엔 같이 가는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여행을 반대한다. 같이 어울리기 정말 힘든 사람을 가만히 보면 전부 강박 환자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만 눈에 보이는 나도 강박 환자임이 분명하다. /노병철 수필가

2025-10-23

큐피드의 화살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시집을 안 가고 개기는 딸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나서 한 번씩 쏘아붙인다. 어릴 땐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좀 컸다고 이젠 말대꾸를 자주 한다. 말로선 못 이겨 눈만 흘기고는 머리를 돌리고 만다. 첫째는 안 그런데 둘째 놈은 제 아비 속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강사가 부모와 자식 세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금촉 화살과 은촉 화살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은촉이 아니라 납촉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납촉이 맞았다. 하지만 납촉보다는 은촉이 더 이해도를 쉽게 만드는 요인이 있고 납이든 은이든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문학적 표현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납인데 왜 은이라고 했느냐며 따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여지없는 꼰대 기질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에로스라고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만 큐피드라고 하면 ‘화살’을 바로 생각할 것이다. 큐피드의 그리스 말이 에로스다. 동양 신화는 마치 무당 굿하는 이야기처럼 여기고 서양 전설을 이렇게 이름까지 헷갈리면서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튼 큐피드 화살은 단 하나였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어 사랑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면서 화살이 사랑의 아이콘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인 작가가 나타나 재미있게 만들어 버린다. 그가 바로 유명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이다. 그가 쓴 ‘변신 이야기’에서 큐피드가 두 종류의 화살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금촉으로 사람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하나는 납촉으로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아폴론에게 금촉을, 다프네에게는 납촉을 쏘아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미치도록 빠지지만, 다프네는 오히려 도망치게 되고, 결국 다프네는 월계수(로렐)로 변해 아폴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 명작품이 나온 것이다. 빛나는 금을 ‘불타는 욕망·신성한 매력’의 이미지를 주고 납은 무겁고 둔탁한 성질로 인해 ‘냉각· 무관심· 거부’의 효과를 줌으로써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 후 화살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 납이 아니라 은(銀)이 등장하고 철(鐵)까지 나오게 된다. 작가들이 이 재미있는 사랑의 작동 방식을 그냥 두지 않았고, 고대·르네상스 이후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이 강사는 이것을 부모와 말 안 듣는 자식 간의 관계를 금촉과 은촉이라는 화살 이야기를 가져와 설명한 것이다. 당연히 강의를 듣는 이들은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고 강의의 목적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연애·욕망을 제어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로 은촉의 화살을 맞은 것이고 자식들은 금촉 화살을 맞아 ‘불타는 청춘의 사랑’ 운운하며 무모하게 자신을 불태우려 한다. 아마도 둘째 놈은 금촉 화살을 잘못 맞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말려도 지지리 말을 안 듣는 걸 보면. 근데 멍청한 큐피드가 나에게도 금촉을 쏜 거 아냐? 왜 자꾸 미운 자식에게 미련을 두는 거지? /노병철 수필가

2025-10-16

바뀌어야 할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코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을 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노인네 말이다. 마치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10-01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개만 보면 질색하는 사람이 있다. 개 몰고 나오는 사람에게 과한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이런 사람은 십중팔구가 개에게 물린 쓰라린 경험이 있어 그 공포감이 작은 개만 봐도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이건 제대로 물려 본 사람은 안다. 이걸 개 주인은 이렇게 귀여운 개가 무슨 죄가 있냐며 항변하는데 남의 집 개한테 얼굴 한번 물려서 살가죽이 뜯겨나가 보면 왜 그러는지를 알 것이다. 개만 보면 이상하게 과격한 언사를 내뱉은 사람을 보고 나도 처음에는 과민반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원인을 알고는 무조건 이해하게 됐다. 물린 트라우마가 얼마나 한 사람 인생에 악영향을 주는지 분명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큰딸이 등산하다가 인근 농가 닭에게 쪼여 얼굴에 큰 상처가 난 적이 있다. 119에 실려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았고 그 공포로 인해 며칠을 앓아야 했다. 그 뒤로는 새만 보면 무서워한다. 그 농가에 가서 항의했더니 닭 주인 영감은 난 모른다는 식으로 능청스럽게 대하기에 오랫동안 애를 먹였다. 모르면 알도록 해줘야 앞으로 조심하겠다 싶어서다. 사과부터 하고 닭을 앞으로 단속을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왜 닭이 있는 곳으로 왔냐는 억지 주장만 되풀이했었다. 40년도 훨씬 넘은 대구 ‘초원의집’ 화재 사고로 25명의 젊은 친구들이 목숨을 달리했다. 당시 근처에 있다 달려가 좁은 문에서 깔려 죽은 애들을 봤다. 그 뒤 그 트라우마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소방관이 구조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평생 괴롭게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40년 전에 소방관도 알고 있던 일을 40년 지난 지금에도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꼭 필요한 소방 물품조차 지원이 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사서 사용한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최근 이야기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한 소방관이 신고를 받고 창문을 깨고 들어간 현장에서 목을 매고 죽은 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모습이 각인되어 두고두고 괴롭혔다는 증언이 나온다. 그만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조현병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태원 참사 구조활동 후 그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으로 자살한 소방관의 이야기가 화재다. 소방청의 지원을 받아 9번, 개인적으로 3번, 총 12차례의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란 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보완 조치이다. 그런데 이게 실효성 있게 다가가려면 인원 보충과 장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보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치료 시스템을 정비해서 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야 할 부분이다. 소방관이 검사받은 지 세 달이 지났는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편안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은 한지, 언제쯤 이루어지는 건지 묻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25

씨 없는 수박은 어디 갔나

우장춘 기념관에 다녀왔다. 담당 공무원 아가씨가 점심 먹다가 나왔는지 연신 입맛을 다시며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많이 짚어 준다.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우장춘이란 분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낸 과학자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 알 필요도 없고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씨가 있고 없고는 내 생에 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에게 문을 열어준 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이었다. 우리 때는 민비로 배웠는데 요즘은 명성황후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미신에 미쳐서 나라 꼴을 망친 누구와 비슷하지만 그래도 당시에 국모라 더는 말을 하지 않겠다. 더욱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분이라 욕되게 할 이유는 없다만 너무 추켜세우는 것도 마뜩잖다. 대형 사고를 친 우범선은 조선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일본으로 망명해서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들을 낳는다. 그의 장남이 우장춘이다. 우범선은 우장춘 여섯 살 때 고영근 의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우리 민족은 뒤끝이 강한 민족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장춘도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이 있다. 하지만 그는 속죄할 마음이 있었던지 돌연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둔 채로 한국에 온다. 그는 한국에서 무, 배추를 비롯해 씨 없는 수박을 보급한 공로로 죽기 전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대접받으려고 한국에 왔는가.” 그가 통곡하면서 남긴 말이다. 일본인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정부는 그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는 울부짖으며 한국 정부의 처사를 원망했다고 한다. 왜 안 보냈는지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가 필요했으리라 짐작된다. 일본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불효도 불효지만 처자식과 완전 생이별을 시키고 만다. 나라에서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 그 씨 없는 수박은 왜 안 보이는 것일까? 씨 없는 수박은 껍데기가 두껍고 공동(空洞)이 드문드문 생기며, 당도가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어 상품화되지 못하고 만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고 떠벌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쓸데없이 부풀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장춘 박사가 한국 농업 발전에 수박 말고도 상당한 일조를 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족 반역자의 아들이지만 나름대로 속죄의 길을 걸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수박 말고 다른 부분으로 주목받았으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고려 충렬왕 때 나라를 배반하고 원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삼별초를 멸망시켰던 홍다구(洪茶丘)가 가져온 과실이라 하여 고려말이나 조선 초의 선비사회에서는 수박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그런 상품화 되지도 못한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고 난리 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요즘 일본과의 관계가 나름 순조로운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완전 일본인이 된 우장춘의 여섯 자녀는 일본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라지고 없는 씨 없는 수박보다 그들을 찾아보는 것이 도리인 듯한데 자못 궁금하다. 오지랖인가? /노병철 수필가

2025-09-18

정리 일순위

또 새벽에 잠을 깼다. 최근에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소변이 마려운 것도 아니고 더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밤에 잠 깨는 것을 이해를 못 하고 불면증이 무슨 병인지 모를 정도로 밤에 누가 안아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자는 인간이 새벽에 잠을 깬다는 것이 노인들의 잠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땐 책을 읽거나 OTT에서 영화 한 편을 보다 보면 이내 잠이 다시 몰려와 잠이 들곤 했는데, 책을 보니 눈이 자꾸 충혈되는 것 같고 영화를 보다 잠이 들면 아침까지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 늘 잔소리 대상이 되는지라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밖에 나가서 조용한 새벽 운동을 해 볼까도 생각해 보고 고양이가 흩어놓은 모래 정리나 할까 생각하다 괜히 자는 사람에게 피해가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갑자기 뭔가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한순간에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지른다. 언제부터인지 한번은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도 나지 않고 꼭 지금 바로 해야 하는 급한 일도 아니라 차일피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미뤘는데 이 기회에 하기로 했다. 그 일은 다름이 아니라 휴대폰 안에 저장되어있는 오래된 전화번호 정리이다. 확인하니 놀랄 정도다. 거의 3000건의 전화번호가 비좁은 전화기 안에 쑤셔박혀 있었다. 이 정도로 내가 대인관계가 넓었나 싶을 정도로 놀랄 정도다. 하나 하나 지우기 시작했다. 011로 시작하는 번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지웠다. 심지어 016도 나왔다. 이런 전화번호는 이미 잊혀진 사람이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거래가 끊어진 업체 사장들도 다 지워버렸다. 운동하면서 만난 친구들 전화도 지웠다.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는데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시엔 참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 친분을 쌓아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소원해져 연락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어렴풋 기억이 나는 사람도 있고 얼굴조차 잊혀진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름만으로는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도 다 지워버렸다. 직장도 단체도 적혀있지 않고 이름만 표기되어 있다는 것은 그래도 알만한 사람이었을 텐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여자일 땐 더 궁금하다. 쭉 연락을 주고 받다가 몇 년간 소식은 없지만 나름 당시에는 친분이 있었던 사람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지웠다. 생각나면 연락이 오겠지 싶어서다. 연락이 오면 휴대폰을 잊어버렸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해 본다. 갑자기 알람 소리가 울린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해서 장장 4시간 동안 휴대폰 번호 지우기를 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지울 전화번호가 남았다. 전화번호가 1천7백 개까지 떨어졌다. 약 1500명의 사람이 나와 단절이 된 것이다. 내 삶에 한 부분을 같이 한 사람이었건만 이제 연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제 그분들 카톡에 뜬금없이 내 생일이 뜨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지조차 별로 궁금하지 않을 사람들을 내 손으로 풀어주었다. 다음엔 그동안 찍어서 보관만 하는 사진 정리를 할 차례이다. 이건 전화번호 지우는 것보다 더 머리 아플 듯하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11

공직사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니 공직 사회가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일 회의 때 대통령의 지적을 받는다. 핑계를 대다가 혼이 나기도 한다. 그냥 대충 굴러가다가 제대로 임자 만난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 놀고먹었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어느새 힘들어 공무원 못 하겠다면서 퇴직하는 젊은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말 그럴까? 괜한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코로나 시절을 떠올린다. 전 국민의 대부분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져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라 한 커피점 사장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닫고 있던 가게 문을 열었다. 중소기업은 직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무원 월급은 제날짜에 꼬박꼬박 나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월급은 국민 세금으로 지급되기에 조금은 빈정 상한다. 그런 공무원이 월급이 작아서 혹은 업무가 과다해서 일을 그만둔단다. 이해가 참으로 가지 않는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말은 공무원들 일하는 태도를 보고 자주 사용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도 마찬가지다. 일을 만들면 번거롭기만 해서 시키는 일만 하는 척하면 된다. 절대 잘할 필요도 없고 괜히 잘난 척 앞서 나갈 이유도 없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일만 늘어날 뿐이지 금전적 보상이라든지 이런 건 없다. 때 되면 진급만 제대로 시켜주면 큰 불만도 없다. 그럭저럭 지내다가 동장(洞長)하다 동에서 마련한 전별금 두둑이 챙기고 정년퇴직하면 된다. 그래서 또 하나 이름이 붙었다. ‘철밥통’이란 말이다. 공무원들 비하하는 말인데 이게 공무원들조차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죽도록 일해서 벌어먹는 소상공인이나 일반 소규모 공장에 다니는 파리 목숨인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는 복지혜택을 누리기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쉽사리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된 공무원인데 쉽게 포기하겠는가. 거의 고시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곳이 아닌가. 그런데 공무원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부 고참 공무원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 업무행태가 젊은 세대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해 보려고 하지만 주위 벽이 너무 높아 좌절한다. 그런 기득권을 가진 이들 때문에 젊은 공무원들이 빠져나가지 않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요즘 인사권을 쥐고 흔들어 그나마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게 요즘 분위기라지만 그래도 선출직 입에선 관료주의 때문에 일이 안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행시주육(行尸走肉)이라는 말이 있다. 걸어 다니는 시체와 뛰어다니는 살덩어리라는 뜻이다. 배움이 천박해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디서 이런 대접은 받지 않고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살고픈 게 우리네 인생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무원 월급은 나온다. 국회의원 월급도 나온다. 판사 검사 월급도 딱딱 챙기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산다. 우리는 이들 월급 주려고 오늘도 뼈 빠지게 열심히 일한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04

바뀔 때가 된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늙은이 말이다. 마치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8

벌써 처서란다

입추가 지나도 더위가 가시지 않더니만 때늦은 장마라면서 연일 비를 퍼붓는다. 동남아 여행 때나 듣던 우기(雨期)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구 온난화라고 떠들어 댄 지 수십 년은 된듯하고 수도권 농장에서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하니 이젠 별반 놀랄 일도 아니다. 곧 지리산 열대 밀림을 보게 될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느낌이다. 새벽에 선풍기도 끈다는 처서가 곧 온다. 조금 있으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겠구나 싶다.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 캐럴도 울려 퍼지겠지. 국방부 시계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인네 많은 복지관 시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處暑)의 뜻은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처서 이후엔 풀이 자라지 않기에 추석 성묘를 대비해 벌초를 가야 한다. 시간 없다고 처서 전에 벌초하는 사람을 본다. 성묘 때 절할 자리도 없이 풀이 자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햇볕이 강하면 돌아서면 풀이 엄청나게 자라는데 괜히 생고생할 필요가 없다. 날을 잡아도 알고 잡아야지 무턱대고 빈 시간에 맞추다 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집안에서 제법 어른 축에 속한다 싶으면 주위에 귀를 열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옛날 속담도 주워 담아 ‘어른다움’을 가져야지 식솔들이 말을 듣는다. 이런 말 한마디가 권위를 부른다.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입 냄새 풀풀 풍기며,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 봤자 나중에 채신머리없는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뿐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이상한 유튜브만 보다가 젊은이들에게 타박이나 받지말고 시대를 역행하지 않고 순행하는 멋진 삶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집안 양반 피가 그래도 몸속에 조금이라도 흐른다면 처서가 오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책 정리이다. 음건(陰乾)이나 포쇄 (曝曬) 같이 어려운 용어까지는 몰라도 습기 먹어 냄새날법한 책을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 정리를 하긴 해야 한다. 더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돈도 못 벌어오면서 책만 쌓아놓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기 전에 뭔 조치를 해야 할 판이다. 눈치 줄 때 알아서 기어야 한다. 아침에 새마을 금고에 갔다가 이사장에게서 젊디젊은 전무가 중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전날까지 멀쩡했는데 기가 막힐 일이다. 업무를 보다 갑자기 쓰러졌고 119 불러 조치를 했음에도 몸이 엉망이 되었단다. 아직 찬 바람 부는 날씨는 아닌데 중풍이 웬 말인가. 요즘 다리에 쥐도 자꾸 나고 뒷골도 당기는 게 중풍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살짝 긴장된다. 쉼 없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몸도 같이 상하고 있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지는 가을맞이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1

잔인한 복수의 칼날

두 개의 잔혹한 이야기가 들렸다. 육십 대 초반의 한 남자는 자기 생일날 며느리와 손주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이혼한 아내가 너무 미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하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내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죽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다. 아내가 그렇게 미웠으면 그냥 아내에게 총을 쏘면 될 일인데 왜 자식에게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눈앞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어린 손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인가. 이런 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객기를 부리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재기를 위해 처가의 돈을 많이 빌렸다. 하지만 계속된 사업 실패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장인의 돈 독촉은 연일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이 남자는 모든 사업자 명의를 자신의 아내에게 다 돌려버리고 모든 빚을 그쪽을 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아내가 자는 방문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밤이 새도록 남편의 시체를 방문에 걸어 놓고 잔 셈이 되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내는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는 남편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꽤 되었지만, 아내는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독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장인을 향한 보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으로 끔찍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최근 이야기 두 개를 뽑았을 뿐이지 비견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분명히 이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 사회에 부모라는 개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가족이란 개념은 전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를 든 두 남자는 지네 부모에게 증오의 표출 방법으로 아주 잔혹하게 남을 짓밟는 것만 배웠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치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옳고 남이 다 잘못했다는 지극히 이기적 사상관으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자기 잘못은 도외시 한 체 남에게 상처받는 것을 못 참고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자격지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대충 넘어갈 성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존경받는 어른이 없어진 지 오래다. 어른이 없어지니 전부 어른 행세를 한다. 나이가 조금 먹었다 싶으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아무 날이나 걸림이 없다. 이러니 젊은이들조차 예의는 사라지고 몰염치만 남았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종교 성직자들은 정치 놀이에 여념이 없고 납골당이나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정신 건강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랑으로 남을 보듬어주는 정(情)이 없어졌다. 남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악다구니처럼 살아가는 군상들이다 보니 남에 의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은 사라지고 복수의 칼날만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느낌이라 갈수록 세상살이가 피곤해진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