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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큐피드의 화살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시집을 안 가고 개기는 딸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나서 한 번씩 쏘아붙인다. 어릴 땐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좀 컸다고 이젠 말대꾸를 자주 한다. 말로선 못 이겨 눈만 흘기고는 머리를 돌리고 만다. 첫째는 안 그런데 둘째 놈은 제 아비 속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강사가 부모와 자식 세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금촉 화살과 은촉 화살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은촉이 아니라 납촉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납촉이 맞았다. 하지만 납촉보다는 은촉이 더 이해도를 쉽게 만드는 요인이 있고 납이든 은이든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문학적 표현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납인데 왜 은이라고 했느냐며 따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여지없는 꼰대 기질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에로스라고 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만 큐피드라고 하면 ‘화살’을 바로 생각할 것이다. 큐피드의 그리스 말이 에로스다. 동양 신화는 마치 무당 굿하는 이야기처럼 여기고 서양 전설을 이렇게 이름까지 헷갈리면서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튼 큐피드 화살은 단 하나였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어 사랑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면서 화살이 사랑의 아이콘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의 귀재들인 작가가 나타나 재미있게 만들어 버린다. 그가 바로 유명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이다. 그가 쓴 ‘변신 이야기’에서 큐피드가 두 종류의 화살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금촉으로 사람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하나는 납촉으로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아폴론에게 금촉을, 다프네에게는 납촉을 쏘아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미치도록 빠지지만, 다프네는 오히려 도망치게 되고, 결국 다프네는 월계수(로렐)로 변해 아폴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 명작품이 나온 것이다. 빛나는 금을 ‘불타는 욕망·신성한 매력’의 이미지를 주고 납은 무겁고 둔탁한 성질로 인해 ‘냉각· 무관심· 거부’의 효과를 줌으로써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 후 화살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 납이 아니라 은(銀)이 등장하고 철(鐵)까지 나오게 된다. 작가들이 이 재미있는 사랑의 작동 방식을 그냥 두지 않았고, 고대·르네상스 이후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이 강사는 이것을 부모와 말 안 듣는 자식 간의 관계를 금촉과 은촉이라는 화살 이야기를 가져와 설명한 것이다. 당연히 강의를 듣는 이들은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고 강의의 목적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연애·욕망을 제어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로 은촉의 화살을 맞은 것이고 자식들은 금촉 화살을 맞아 ‘불타는 청춘의 사랑’ 운운하며 무모하게 자신을 불태우려 한다. 아마도 둘째 놈은 금촉 화살을 잘못 맞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아무리 말려도 지지리 말을 안 듣는 걸 보면. 근데 멍청한 큐피드가 나에게도 금촉을 쏜 거 아냐? 왜 자꾸 미운 자식에게 미련을 두는 거지? /노병철 수필가

2025-10-16

바뀌어야 할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코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을 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노인네 말이다. 마치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10-01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개만 보면 질색하는 사람이 있다. 개 몰고 나오는 사람에게 과한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이런 사람은 십중팔구가 개에게 물린 쓰라린 경험이 있어 그 공포감이 작은 개만 봐도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이건 제대로 물려 본 사람은 안다. 이걸 개 주인은 이렇게 귀여운 개가 무슨 죄가 있냐며 항변하는데 남의 집 개한테 얼굴 한번 물려서 살가죽이 뜯겨나가 보면 왜 그러는지를 알 것이다. 개만 보면 이상하게 과격한 언사를 내뱉은 사람을 보고 나도 처음에는 과민반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원인을 알고는 무조건 이해하게 됐다. 물린 트라우마가 얼마나 한 사람 인생에 악영향을 주는지 분명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큰딸이 등산하다가 인근 농가 닭에게 쪼여 얼굴에 큰 상처가 난 적이 있다. 119에 실려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았고 그 공포로 인해 며칠을 앓아야 했다. 그 뒤로는 새만 보면 무서워한다. 그 농가에 가서 항의했더니 닭 주인 영감은 난 모른다는 식으로 능청스럽게 대하기에 오랫동안 애를 먹였다. 모르면 알도록 해줘야 앞으로 조심하겠다 싶어서다. 사과부터 하고 닭을 앞으로 단속을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왜 닭이 있는 곳으로 왔냐는 억지 주장만 되풀이했었다. 40년도 훨씬 넘은 대구 ‘초원의집’ 화재 사고로 25명의 젊은 친구들이 목숨을 달리했다. 당시 근처에 있다 달려가 좁은 문에서 깔려 죽은 애들을 봤다. 그 뒤 그 트라우마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소방관이 구조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평생 괴롭게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40년 전에 소방관도 알고 있던 일을 40년 지난 지금에도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꼭 필요한 소방 물품조차 지원이 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사서 사용한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최근 이야기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한 소방관이 신고를 받고 창문을 깨고 들어간 현장에서 목을 매고 죽은 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모습이 각인되어 두고두고 괴롭혔다는 증언이 나온다. 그만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조현병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태원 참사 구조활동 후 그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으로 자살한 소방관의 이야기가 화재다. 소방청의 지원을 받아 9번, 개인적으로 3번, 총 12차례의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란 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보완 조치이다. 그런데 이게 실효성 있게 다가가려면 인원 보충과 장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보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치료 시스템을 정비해서 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야 할 부분이다. 소방관이 검사받은 지 세 달이 지났는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편안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은 한지, 언제쯤 이루어지는 건지 묻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25

씨 없는 수박은 어디 갔나

우장춘 기념관에 다녀왔다. 담당 공무원 아가씨가 점심 먹다가 나왔는지 연신 입맛을 다시며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많이 짚어 준다.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우장춘이란 분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낸 과학자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 알 필요도 없고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씨가 있고 없고는 내 생에 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에게 문을 열어준 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이었다. 우리 때는 민비로 배웠는데 요즘은 명성황후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미신에 미쳐서 나라 꼴을 망친 누구와 비슷하지만 그래도 당시에 국모라 더는 말을 하지 않겠다. 더욱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분이라 욕되게 할 이유는 없다만 너무 추켜세우는 것도 마뜩잖다. 대형 사고를 친 우범선은 조선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일본으로 망명해서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들을 낳는다. 그의 장남이 우장춘이다. 우범선은 우장춘 여섯 살 때 고영근 의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우리 민족은 뒤끝이 강한 민족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장춘도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이 있다. 하지만 그는 속죄할 마음이 있었던지 돌연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둔 채로 한국에 온다. 그는 한국에서 무, 배추를 비롯해 씨 없는 수박을 보급한 공로로 죽기 전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대접받으려고 한국에 왔는가.” 그가 통곡하면서 남긴 말이다. 일본인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정부는 그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는 울부짖으며 한국 정부의 처사를 원망했다고 한다. 왜 안 보냈는지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가 필요했으리라 짐작된다. 일본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불효도 불효지만 처자식과 완전 생이별을 시키고 만다. 나라에서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 그 씨 없는 수박은 왜 안 보이는 것일까? 씨 없는 수박은 껍데기가 두껍고 공동(空洞)이 드문드문 생기며, 당도가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어 상품화되지 못하고 만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고 떠벌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쓸데없이 부풀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장춘 박사가 한국 농업 발전에 수박 말고도 상당한 일조를 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족 반역자의 아들이지만 나름대로 속죄의 길을 걸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수박 말고 다른 부분으로 주목받았으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고려 충렬왕 때 나라를 배반하고 원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삼별초를 멸망시켰던 홍다구(洪茶丘)가 가져온 과실이라 하여 고려말이나 조선 초의 선비사회에서는 수박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그런 상품화 되지도 못한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고 난리 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요즘 일본과의 관계가 나름 순조로운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완전 일본인이 된 우장춘의 여섯 자녀는 일본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라지고 없는 씨 없는 수박보다 그들을 찾아보는 것이 도리인 듯한데 자못 궁금하다. 오지랖인가? /노병철 수필가

2025-09-18

정리 일순위

또 새벽에 잠을 깼다. 최근에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소변이 마려운 것도 아니고 더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밤에 잠 깨는 것을 이해를 못 하고 불면증이 무슨 병인지 모를 정도로 밤에 누가 안아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자는 인간이 새벽에 잠을 깬다는 것이 노인들의 잠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땐 책을 읽거나 OTT에서 영화 한 편을 보다 보면 이내 잠이 다시 몰려와 잠이 들곤 했는데, 책을 보니 눈이 자꾸 충혈되는 것 같고 영화를 보다 잠이 들면 아침까지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 늘 잔소리 대상이 되는지라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밖에 나가서 조용한 새벽 운동을 해 볼까도 생각해 보고 고양이가 흩어놓은 모래 정리나 할까 생각하다 괜히 자는 사람에게 피해가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갑자기 뭔가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한순간에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지른다. 언제부터인지 한번은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도 나지 않고 꼭 지금 바로 해야 하는 급한 일도 아니라 차일피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미뤘는데 이 기회에 하기로 했다. 그 일은 다름이 아니라 휴대폰 안에 저장되어있는 오래된 전화번호 정리이다. 확인하니 놀랄 정도다. 거의 3000건의 전화번호가 비좁은 전화기 안에 쑤셔박혀 있었다. 이 정도로 내가 대인관계가 넓었나 싶을 정도로 놀랄 정도다. 하나 하나 지우기 시작했다. 011로 시작하는 번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지웠다. 심지어 016도 나왔다. 이런 전화번호는 이미 잊혀진 사람이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거래가 끊어진 업체 사장들도 다 지워버렸다. 운동하면서 만난 친구들 전화도 지웠다.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는데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시엔 참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 친분을 쌓아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소원해져 연락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어렴풋 기억이 나는 사람도 있고 얼굴조차 잊혀진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름만으로는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도 다 지워버렸다. 직장도 단체도 적혀있지 않고 이름만 표기되어 있다는 것은 그래도 알만한 사람이었을 텐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여자일 땐 더 궁금하다. 쭉 연락을 주고 받다가 몇 년간 소식은 없지만 나름 당시에는 친분이 있었던 사람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지웠다. 생각나면 연락이 오겠지 싶어서다. 연락이 오면 휴대폰을 잊어버렸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해 본다. 갑자기 알람 소리가 울린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해서 장장 4시간 동안 휴대폰 번호 지우기를 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지울 전화번호가 남았다. 전화번호가 1천7백 개까지 떨어졌다. 약 1500명의 사람이 나와 단절이 된 것이다. 내 삶에 한 부분을 같이 한 사람이었건만 이제 연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제 그분들 카톡에 뜬금없이 내 생일이 뜨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지조차 별로 궁금하지 않을 사람들을 내 손으로 풀어주었다. 다음엔 그동안 찍어서 보관만 하는 사진 정리를 할 차례이다. 이건 전화번호 지우는 것보다 더 머리 아플 듯하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11

공직사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니 공직 사회가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일 회의 때 대통령의 지적을 받는다. 핑계를 대다가 혼이 나기도 한다. 그냥 대충 굴러가다가 제대로 임자 만난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 놀고먹었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어느새 힘들어 공무원 못 하겠다면서 퇴직하는 젊은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말 그럴까? 괜한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코로나 시절을 떠올린다. 전 국민의 대부분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져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라 한 커피점 사장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닫고 있던 가게 문을 열었다. 중소기업은 직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무원 월급은 제날짜에 꼬박꼬박 나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월급은 국민 세금으로 지급되기에 조금은 빈정 상한다. 그런 공무원이 월급이 작아서 혹은 업무가 과다해서 일을 그만둔단다. 이해가 참으로 가지 않는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말은 공무원들 일하는 태도를 보고 자주 사용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도 마찬가지다. 일을 만들면 번거롭기만 해서 시키는 일만 하는 척하면 된다. 절대 잘할 필요도 없고 괜히 잘난 척 앞서 나갈 이유도 없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일만 늘어날 뿐이지 금전적 보상이라든지 이런 건 없다. 때 되면 진급만 제대로 시켜주면 큰 불만도 없다. 그럭저럭 지내다가 동장(洞長)하다 동에서 마련한 전별금 두둑이 챙기고 정년퇴직하면 된다. 그래서 또 하나 이름이 붙었다. ‘철밥통’이란 말이다. 공무원들 비하하는 말인데 이게 공무원들조차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죽도록 일해서 벌어먹는 소상공인이나 일반 소규모 공장에 다니는 파리 목숨인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는 복지혜택을 누리기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쉽사리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된 공무원인데 쉽게 포기하겠는가. 거의 고시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곳이 아닌가. 그런데 공무원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부 고참 공무원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 업무행태가 젊은 세대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해 보려고 하지만 주위 벽이 너무 높아 좌절한다. 그런 기득권을 가진 이들 때문에 젊은 공무원들이 빠져나가지 않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요즘 인사권을 쥐고 흔들어 그나마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게 요즘 분위기라지만 그래도 선출직 입에선 관료주의 때문에 일이 안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행시주육(行尸走肉)이라는 말이 있다. 걸어 다니는 시체와 뛰어다니는 살덩어리라는 뜻이다. 배움이 천박해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디서 이런 대접은 받지 않고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살고픈 게 우리네 인생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무원 월급은 나온다. 국회의원 월급도 나온다. 판사 검사 월급도 딱딱 챙기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산다. 우리는 이들 월급 주려고 오늘도 뼈 빠지게 열심히 일한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04

바뀔 때가 된 장례문화

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늙은이 말이다. 마치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8

벌써 처서란다

입추가 지나도 더위가 가시지 않더니만 때늦은 장마라면서 연일 비를 퍼붓는다. 동남아 여행 때나 듣던 우기(雨期)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구 온난화라고 떠들어 댄 지 수십 년은 된듯하고 수도권 농장에서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하니 이젠 별반 놀랄 일도 아니다. 곧 지리산 열대 밀림을 보게 될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느낌이다. 새벽에 선풍기도 끈다는 처서가 곧 온다. 조금 있으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겠구나 싶다.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 캐럴도 울려 퍼지겠지. 국방부 시계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인네 많은 복지관 시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處暑)의 뜻은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처서 이후엔 풀이 자라지 않기에 추석 성묘를 대비해 벌초를 가야 한다. 시간 없다고 처서 전에 벌초하는 사람을 본다. 성묘 때 절할 자리도 없이 풀이 자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햇볕이 강하면 돌아서면 풀이 엄청나게 자라는데 괜히 생고생할 필요가 없다. 날을 잡아도 알고 잡아야지 무턱대고 빈 시간에 맞추다 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집안에서 제법 어른 축에 속한다 싶으면 주위에 귀를 열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옛날 속담도 주워 담아 ‘어른다움’을 가져야지 식솔들이 말을 듣는다. 이런 말 한마디가 권위를 부른다.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입 냄새 풀풀 풍기며,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 봤자 나중에 채신머리없는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뿐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이상한 유튜브만 보다가 젊은이들에게 타박이나 받지말고 시대를 역행하지 않고 순행하는 멋진 삶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집안 양반 피가 그래도 몸속에 조금이라도 흐른다면 처서가 오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책 정리이다. 음건(陰乾)이나 포쇄 (曝曬) 같이 어려운 용어까지는 몰라도 습기 먹어 냄새날법한 책을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 정리를 하긴 해야 한다. 더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돈도 못 벌어오면서 책만 쌓아놓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기 전에 뭔 조치를 해야 할 판이다. 눈치 줄 때 알아서 기어야 한다. 아침에 새마을 금고에 갔다가 이사장에게서 젊디젊은 전무가 중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전날까지 멀쩡했는데 기가 막힐 일이다. 업무를 보다 갑자기 쓰러졌고 119 불러 조치를 했음에도 몸이 엉망이 되었단다. 아직 찬 바람 부는 날씨는 아닌데 중풍이 웬 말인가. 요즘 다리에 쥐도 자꾸 나고 뒷골도 당기는 게 중풍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살짝 긴장된다. 쉼 없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몸도 같이 상하고 있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지는 가을맞이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1

잔인한 복수의 칼날

두 개의 잔혹한 이야기가 들렸다. 육십 대 초반의 한 남자는 자기 생일날 며느리와 손주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이혼한 아내가 너무 미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하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내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죽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다. 아내가 그렇게 미웠으면 그냥 아내에게 총을 쏘면 될 일인데 왜 자식에게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눈앞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어린 손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인가. 이런 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객기를 부리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재기를 위해 처가의 돈을 많이 빌렸다. 하지만 계속된 사업 실패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장인의 돈 독촉은 연일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이 남자는 모든 사업자 명의를 자신의 아내에게 다 돌려버리고 모든 빚을 그쪽을 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아내가 자는 방문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밤이 새도록 남편의 시체를 방문에 걸어 놓고 잔 셈이 되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내는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는 남편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꽤 되었지만, 아내는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독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장인을 향한 보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으로 끔찍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최근 이야기 두 개를 뽑았을 뿐이지 비견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분명히 이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 사회에 부모라는 개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가족이란 개념은 전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를 든 두 남자는 지네 부모에게 증오의 표출 방법으로 아주 잔혹하게 남을 짓밟는 것만 배웠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치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옳고 남이 다 잘못했다는 지극히 이기적 사상관으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자기 잘못은 도외시 한 체 남에게 상처받는 것을 못 참고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자격지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대충 넘어갈 성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존경받는 어른이 없어진 지 오래다. 어른이 없어지니 전부 어른 행세를 한다. 나이가 조금 먹었다 싶으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아무 날이나 걸림이 없다. 이러니 젊은이들조차 예의는 사라지고 몰염치만 남았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종교 성직자들은 정치 놀이에 여념이 없고 납골당이나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정신 건강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랑으로 남을 보듬어주는 정(情)이 없어졌다. 남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악다구니처럼 살아가는 군상들이다 보니 남에 의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은 사라지고 복수의 칼날만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느낌이라 갈수록 세상살이가 피곤해진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07

아버지가 없어진다

이율곡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라고 코흘리개 애들도 안다. 우리나라 최고 고액의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니깐 그 위세는 대단하다. 하지만 이원수라는 아버지는 어디 가도 찾을 수 없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인물이어서 그런가? 조선은 분명 유교 문화의 시대이다. 그래서 조선은 부계 중심의 사회로 형성되어 있다. 자식 제사는 없어도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는 당시 풍습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영향이 이어져 온다. 제사를 합치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 중심으로 제사를 합치지 할머니나 어머니 기일에 맞춰 합치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도 반론하지 않는다. 마치 외손자보다 친손자가 더 끌린 듯 부계의 전통은 우리 몸 깊숙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유교의 대가인 이율곡 집안은 달랐다.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중심의 사회이었음에도 아버지 이원수의 존재감은 간데없다. 심지어 아버지가 계모 권 씨와 재혼하자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율곡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려다가 환속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그 영향인가? 불교는 이상하게도 어머니 중심의 효를 강조한다. 모계를 중심으로 효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부모은중경에,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후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었던 양주동 박사가 부모은중경 내용을 보고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만든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전부 어머니 찬양가이다. 불교에는 오역죄(五逆罪)라는 다섯 가지 아주 큰 죄가 있다. 오역죄를 범하면 저승에서 가장 지독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 묘사된 이 지옥의 고통 받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형벌이다. 다섯 가지 죄 중 맨 처음 나오는 것이 어머니를 해한 인간이 나온다. 아버지는 두 번째이다. 어머니가 더 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증명이 되고 있다. 그들이 애들을 키울 때 머리를 때리지 않고 대신 귀싸대기를 때릴 정도로 머리를 중하게 여겨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유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한 민족이다. 부모에게 물을 가져가야 할 때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간다. 어머니에게 물을 먼저 가져가도 바로 아버지에게 물을 건네기에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고 그 권위는 자라면서 체득되고 있다. 그 결과물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아버지의 위치가 너무 비참하다. 평생 돈 벌어 먹이고 입혔건만, 돈 안 벌어 오니 대접이 영 신통찮다. ‘부모’란 단어가 ‘모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상한 징후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딸이 제 엄마만 데리고 외국 여행 간단다. 나만 고양이랑 집을 지켜야 한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31

부조금

장례 행사가 끝난 뒤 망자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도록 지내는 제사를 우리는 우제(虞祭)라고 하며 세 번 지내기에 삼우제라 한다. 그래서 우린 “삼우, 삼우”하는 것이다. 간혹 어떤 이는 ‘삼오’라고 말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다. 똑같이 헷갈리는 것이 ‘부조(扶助)’이다. 이것을 ‘부주’라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부조”라고 고쳐주면 ‘알아서 들어라.’ 라는 핀잔만 돌아오기에 요즘은 그냥 알아서 듣는 편이다. 장례식장에 꽃을 보낸다면서 조화를 화환으로 이야기해도 그러려니 한다. 과거에는 봉투에 한문으로 부의(賻儀)라고 써달라고 부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인쇄된 봉투가 비치되어 있고, 축의금과 조의금 구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려 부고장이나 청첩장에 ‘성의 보내는 곳’으로 입금하면 끝이다. 세상 살면서 유효기간이 없는 것이 딱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부조 명단과 액수이다. 이건 끝까지 간다. 완전히 ‘기부 앤 테이크’이다. 부조금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큰 재벌이거나 고관대작들이나 호기에서 하는 행위이고 대형할인점 할인쿠폰 지갑에 쟁기고 사는 서민은 그런 짓을 잘 하지 않는다. 문제는 부조가 다 빚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한 만큼 남도 하게 되고 내가 하지 않으면 남도 하지 않는다. 역으로 말하면 내가 부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을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했는데 상대방은 하지 않고 있으면 둘의 관계는 아주 묘해진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만큼 돈독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배신감마저 생기게 된다. 갑을 관계에 있는 거래 관계에선 큰일 치고 난 뒤 거래 끊어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래서 비록 갚아야 할 빚임에도 부조를 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이 생각보다 뒤끝이 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물론 생뚱맞게 단체 문자 톡에 뜨는 부고장이나 청첩장은 예외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라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문상을 가겠는가. 부고장은 이해가 간다만은 청첩은 또 다르다. 단체톡에 청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청첩(請牒), 즉 손님으로 와서 축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야 가는 것이다. 자식들 결혼 시키는 나이이자 부모님 돌아가시는 나이엔 많이 바빠진다. 한 달에 부조금으로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정년퇴직에 별반 돈벌이가 없는 이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몇 푼이라도 벌지 않고 놀러 다니기엔 상당한 지출 액수가 한동안 계속될 조짐이 있어 사람 구실하고 살기 위해선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무조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형님, 들어온 부조금을 형제자매간에 어떻게 배분했습니까?” 이젠 부조금 배분문제 말이 많은 모양이다. 갚아야 할 빚이기에 누구 앞으로 들어온 건지 배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어떤 집안에선 남는 돈 전부를 집안 돈으로 묶어 공동경비로 했단다. “난 그냥 남는 것 전부 어머니 다 드렸어.” 배분하는 게 이상하게 추잡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땐 장남이란 게 마음이 편하다. 따라준 동생들과 제수씨들에겐 고마울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24

복날이 뭐지?

달력을 보니 초복이 코앞이다. ‘복따름’을 해야 이 더운 날씨를 어떻게 해서든지 버티지 싶어 삼계탕집에 전화를 돌렸으나 이미 허탕이다. 어지간한 집은 예약조차 받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니 더운 날씨에 더 더운 듯하다. 불난 집 앞에서 부채질한다더니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가 ‘복따름’이 아니라 ‘복달임’이라고 단어를 수정해 준다. 대충 알아먹으면 될 것을 지적질이다. 닭 한 마리도 못 먹어 헤매는 사람보고 부아를 돋운다. 시청에 가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에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그중에는 개고기 먹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칠성시장 개 판매 장소를 없애 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 경동시장의 개 도살장이 없어지고 국내 3대 개 시장 중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과 부산 구포시장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대구 칠성시장의 개 시장을 폐쇄해 달라는 것이었다. 복날쯤에 어김없이 나오는 ‘개고기’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보신탕, 보양탕이라 부르는 개고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 중 하나였으나 시대가 개고기 먹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니 방법이 없다. 이젠 법으로 못 먹게 되다 보니 강짜 부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복날에 복달임을 위해 가족이나 이웃이 모여 노는 것은 ‘복놀이’라 한 것을 보면 가족 친지들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더위를 이겨보자는 뜻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어른들 여름에 기력이 빠질까 싶어 챙기는 의미로 여름 들어갈 때 한 번, 중간에 한 번 그리고 여름 끝날 때쯤 마지막으로 건강을 챙겨드리는 마음에서 복놀이를 한다. 이게 우리가 복날을 챙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복은 어른들 여름 나시라고 영양가 있는 음식 챙겨드리는 날로 배웠고 여태 그렇게 해왔다. 애들 외숙모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복날 일이 터졌다. 집사람이 갓 시집온 처남댁에게 초복 날 장인어른 안 챙긴다고 나무란 것이다. 찾아뵙지도 못하면 전화라도 해서 안부를 여쭙는 것은 상식이건만, 그냥 넘기는 바람에 장녀인 집사람이 열이 뻗혔다. “우리 집에선 초복 행사 같은 건 없어예.” 아마 처남댁 집에선 초복이란 행사 자체가 없었던 모양이다. 모르면 처남이라도 언질을 줘야 하건만 똑같았다. 갑자기 팔에 소름이 돋아 딸들에게 시집가서 초복 행사 가볍게 여기다가 아비 어미 욕 먹이지도 말라고 ‘단디’ 교육했다. 이제 삼십여 년이 흘러 장인어른도 돌아가셨고 애들도 삼십 대에 접어들어 각자 결혼해 생활이 바쁜 것 같다.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는 시간도 거의 없는지라 밥상머리 교육인지 뭔지도 해 본 적이 까맣다. 문득 시대가 형식적인 절차나 예절 방식 같은 것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편한 세상에 살면서 피곤하게 절차 따지는 것이 우습게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모든 게 대충 대충이다.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전화 한통으로 안부만 물어줘도 될 일인데 이조차 허례허식으로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다. 괜히 복날에 복잡한 식당 찾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집에서 수박이나 시원하게 한 통 잡아야겠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17

새 정부의 참신한 교육정책을 기대한다

참으로 어수선한 교육 정책이 벌어졌었다. 제대로 점검이나 하고 시행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육정책과 방향이 주목받는다. 이미 선거 전에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8대 공약을 발표했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교원의 정치활동 보장, 교사 면책 강화, 디지털교과서 삭제, AI 교육특구 지정 등 전 정부에서 하지 못한 교육 정책을 발표한 터라 과연 공약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중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정말 가능한 일인지 계속 눈여겨보게 된다. 충북대, 충남대 등 지역의 거점국립대학(지거국) 9곳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으로 상향하고 지거국을 중심으로 한 대학 통합과 구조조정 등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또 서울대를 한국대로 명칭을 바꾸고 새로 생기는 서울대를 한국대 2, 한국대 3 등으로 개명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서울대가 10개쯤 있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마치 의사 수 2000명 늘이겠다는 정책처럼 말이다. 의사 수가 적다는 사실은 공감을 했지만 2000명이나 되는 숫자를 한꺼번에 늘려 잡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릿수였다. 그래서 서울대 10개도 현실성이 과연 있을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교원의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고의 중대 과실이 아닌 경우 교육활동을 행한 교원에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한다. 교사지위법도 개정해 교원의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교육감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먼저 지도록 하며 교원의 위법 또는 고의 중과실의 경우 교직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교원의 교육 활동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 시 무조건 검찰에 송치되는 것이 아니고 경찰 수사 후 정당한 교육 활동으로 판단되면 검찰에 송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교원의 정치활동도 전면 허용될 전망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교단에서 교사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이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리박스쿨‘도 결국 그런 행태가 아닌가 말이다. 방과 후라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가장 문제화되어 논란이 되었던 AI(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도 학교 현장에서 사라질 판이다. 89억원을 투자해서 채택률 98%로 전국 최고라 자랑하는 대구가 실제 활용률을 보면 초등기준으로 11%란다. 돈을 거의 갖다버린 수준이다. 예산 낭비도 이런 무자비한 예산 낭비가 없다. 현장 교사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소리 내어 외쳤건만 ‘웃대가리’는 왜 이를 외면하고 밀어붙였을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정책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거늘 아직도 정치권에선 이익 단체의 고성에 휘둘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에 진보, 보수가 없다. 정치성을 띤 교육자가 이 나라 정신을 말아 먹은 예는 여러 군데에서 우린 보아왔다. 백년대계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기대해 본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10

최고의 효심

‘禮記’에 나오는 불효의 3가지 조건을 보면 첫째, 혼인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것. 둘째,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것. 셋째, 무조건 부모의 의지를 쫓아 부모가 옳지 못한 데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날 무조건 선물이나 안긴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인다. 선물도 네가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와라. 고르기가 귀찮고 힘들면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되겠니? 내가 그 돈으로 알아서 잘 사용을 할게. 어찌 되었든 ‘효’라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고 빨리 시집가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효가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대를 잇는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다. 그래서 첫 번째는 ‘혼인하지 않는다.’ 는 말에 방점을 찍어 불효로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뿌린 부좃돈에 눈이 멀어 결혼을 재촉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너희 결혼식 때 들어오는 부좃돈은 다 부모 돈이고, 부모 장례식 때 들어오는 돈은 너희들 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쓸데없이 좋은 날 침 바르는 행위를 삼가기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을 잘 봐라. 그 옛날에도 자식들이 부모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그만두고 빈둥빈둥하는 꼴을 싫어했다는 방증이리라. 네 놈들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병간호 받기 싫다. 그냥 내가 아프면 예쁜 간병인 구해다 붙여주면 된다. 너희는 열심히 일해서 간병인 인건비만 보태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이다. 특히 유념할 것은 내가 병실에 누웠다고 네 엄마보고 나의 병간호를 하라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마지막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 아비의 간절한 망부가(望婦歌)로 알면 되겠다. 그래도 그런 짓을 한다면 이건 불효 중의 불효라고 알면 되고 돈 아낀다고 얼굴 안 보고 간병인 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조건이 많이 헷갈릴 것이다. 요즘 덜떨어진 노인네들은 ‘충’의 개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데 충(忠)의 개념이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고 맹자라는 분이 분명히 정의하였다. 그래서 군신이 없는 지금엔 ‘민주’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국민이 ‘충’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정자들이 지네들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주 편하게 하려고 나라를 위한 충성이라는 핑계로 교묘히 활용하고 있고 일부 어리석은 백성은 그것을 추종하는 꼴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효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무조건 ‘부모 말’이라고 해서 따라선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물레 다방 김 마담에게 빠져 술이나 퍼먹고 도박을 일삼고 있으면 말려야지 아비의 권위를 위한답시고 그냥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수천 년 전에 말이 어떻게 오늘에도 이렇게 잘 들어맞게 쓰였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마치 ‘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그녀가 산에 간 이유가 바로 죽은 자기애가 그린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시에 엉망진창이었던 퍼즐이 맞춰지면서 나도 몰래 감탄사가 터져 나오면서 일종의 환희심까지 생긴다. “아빠, 결론이 뭐고?” “그냥 돈으로 달라는 거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03

선 넘은 요즘의 성(性)

나도향의 ‘뽕’이나 ‘물레방아’ 소설을 우리는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다. 인간들의 도덕의식 무너지고, 성 윤리가 없어지는 현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1925년에 발표된 글이니 그 당시 사람들의 성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00년이 흘렀다. 지금의 성 풍속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달라진 성 풍속도를 반영하는 수필 작품은 나온 게 있을까? 아직 중세 암흑시대의 문학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타 문학적 장르에 비해 수필의 영역에선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어 파격적인 수필을 읽을 수는 없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이에 오직 결혼에만 불을 밝힌 기집애들이 쓸 만한 남자들을 다 채갔다니까. 새벽 도서관에 한 번도 간 적도 없고, 독서는 패션 잡지 뒤적이는 걸로 대신하고, 자기 계발은 성형외과 드나드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여자애들이 남자들을 다 채갔다니까” 이게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전 드라마 대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그 많던 싱아(괜찮은 남자)는 누가 다 먹었단 말인가? 라면서 여자 주인공들이 치고받던 대화이다. 20년 전만 해도 여자들은 여전히 ‘내숭’을 떨어야 하고 ‘얌전한 척’해야 했고 어떻게 하면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년 후 연애의 낭만성과 고상함, 우아함은 이미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선을 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미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완전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의 현주소이다. 기존 연애에서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롯이 남녀의 심리와 육체를 가지고 게임을 벌이면서 서로를 탐하고 충돌하는 심리적 정치학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마치 그 옛날 ‘사랑과 전쟁’이라는 불륜 프로그램보다 더 진보한 폭로물이 여기저기서 방송되고 있음은 이미 안방에서 그런 정도의 남녀 관계물이 용인되는 시점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도덕적 사고방식을 아주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 결혼 이데올로기에서의 순결 의식과 배타적 소유욕, 청교도적 성 의식을 일순간에 비웃는다. 70년 전 피임방법이 개발되면서 혼전 성관계가 자유로워지고 섹스와 출산을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므로 해서 여자들의 성에 대한 개념은 급속히 바뀌고 만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여성들만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디에도 ‘책임’이란 의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롯이 쾌락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겪고 상상하는 사랑의 패턴이 완전히 뭉개지고 이런 고루하고 진부한 사랑은 신파적 사랑으로 치부되면서 케케묵은 사랑 레퍼토리만 쌓여 있는 내 머리에 혼란이 온다. 생각은 ‘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고 나가기엔 주위의 싸늘한 시선으로 인해 아직 상당히 춥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애들에게 어른으로서 해줄 말도 생각이 안 난다. 어지간해야 말이 통하지. /노병철 수필가

2025-06-19

나의 장례식은 웃음이 많았으면 좋겠다

소대(燒臺)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니 막재가 있었나 보다. 절집에서 망자의 옷가지나 소지품을 태우는 장소를 ‘소대’라고 한다. 검은 옷을 입은 유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 모양이다. 슬퍼하는 이도 있고 서로 장난치며 웃는 이도 있다. 생전 어디선가 한번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어 법당에 차려진 망자의 영정 사진을 힐끗 쳐다봤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남자다. 영가단에 합장하여 예를 표했다. 요즘은 찾으래야 찾기 힘든 곳이 장의사 간판이다. 길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관을 잔뜩 쌓아놓은 가게가 보이곤 했다. 당시엔 집에서 장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객사하면 시체가 원혼이 붙은 채 구천을 떠돈다고 생각했고 악귀로 변해 사람들에게 해코지한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시신을 집으로 모시려고 애썼다. 병원에 있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모시게 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돌아가시기 전에 집으로 모셔가면 좋으련만 세상살이가 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숨을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땐 병원에서는 시신 입에다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물리고 열심히 공기를 손으로 주입하면서 집으로 모셨단다. 그러고는 마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신 줄 아셨나 봅니다.” 망자의 가족인들 이미 돌아가셨는지 알지만, 편하게 집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치부하고 장례 절차를 밟게 된다. 전화로 장의사 부르고 곧이어 염한다고 가족들은 시신 곁에 모여야 한다. 이때부터 집안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이 많았던 할머니셨고 많이 따랐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무서웠다. 아마 정을 떼고 가시려고 했나 보다.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은 거의 다 객사한다. 집에서 장례 치르는 집이 없다. 옛날엔 상을 당하면 상주는 삼일을 불식(不食)한다고 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상주에게 미음이나 죽 같은 것을 가져와서 먹이곤 했다. 요즘은 상주도 잘 먹고 잘 자고 샤워 시설까지 갖춘 방에서 잘 씻는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씻는 것은 고사하고 양치도 못 해 입에서 군내가 진동한 기억이 난다. 슬프다고 너나없이 술을 권하던지 정신은 해롱거렸고 속은 거북했다. 삼베옷에 살갗이 쓸려서 밤엔 따갑고 쓰라렸다. 지금은 삼베옷과 대나무가 사라졌다. 서양처럼 검은 양복 빼입고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을 상조회에서 와 조금도 불편함 없이 해 준다. 서세원 장례식장에서 개그맨 김정렬이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춤을 춘 것이 화제였다. 세상 구경 제대로 하는 기안84라는 친구는 마다가스카르라는 나라에서 기이한 장례문화를 소개한다. 다 같이 춤을 추는 축제 같은 장례문화였다. 지금까지 변화된 장례문화를 볼 때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장례문화가 지금보다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내 장례식에는 슬픔보다는 웃음이 더 많았으면 싶다. 그리고 제사상 차림 같은 것은 없이 그냥 하늘로 가고 싶다. 많이 먹으면 무거워 잘 날지 못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지막에도 웃고 싶을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6-12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우리는 송해 선생님을 참 부러워했다. 돌아가셨을 때 연세가 95세다. 우린 연세가 많은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돈을 버셨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말한다. 그 연세에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로울 지경이다. 정말 부러웠다. 이제는 대상이 바뀌었다. 그동안 송해 선생님 때문에 가려졌던 분들이 하나둘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시형 박사, 김동건 아나운서, 허영만 화백 등이 그분들이다. 게 중 맛있는 것을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니면서 섭렵하는 허명만 화백이 제일 부럽다. 돈 벌고 맛있는 것 먹고. 이제 겨우 육십이 넘어 정년퇴직한 햇병아리들이 세상 다 산 늙은이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낀다. 백세 시대에 아직 살날이 사십 년이 더 남았는데 얼마나 노후 준비를 충실히 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집 한 채 덜렁 남아 있고 국민연금에 목 빼고 살 지경이면 바로 재충전해서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왕년에 내가 누구라는 것을 상기하며 자존심 세우다간 시대에 뒤처지는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밥 세 끼를 제대로 다 먹고 사는 세대이자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세대, 손에 전화기 들고 다니는 첫 세대이고 주판 대신 전자계산기 두드리는 세대가 바로 지금 노인으로 분류되는 세대이다. 하루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급변하는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바로 ‘꼰대’ 소리 듣는다. 시대가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며느리나 딸이 애 낳으면 산후조리원비를 포함한 생산 축하 자금을 내놔야 한다. 그냥 대충 재래시장에 가서 산모용 미역 한 다발 사 들고 가는 시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애 결혼 시켰다고 방심하다가 주위에 돌아가는 꼴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산후조리원 동기끼리 자기 시부모가 뭘 해줬다는 것을 다 까발린다고 하지 않는가. 한참 떨어지는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시댁에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아들을 쥐잡듯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한숨만 나오고 이런 풍토를 확산시키는 요즘 잘나가는 부모들에게 한소리 질러주고 싶다. “제발 고마해라.” 딸을 시집보내고 이번엔 며느리를 맞이하는 지인이 있다. 사위 인사 올 땐 대충 밖에서 밥 먹고 들어오자는 딸 말만 믿고 대충했는데 며느리 될 애가 인사 온다고 하니 집안에 비상이 걸린단다. 제대로 며느리에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전화 받고 싶으면 대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착하고 순진하던 며느리가 차츰 애 낳고 살더니 주위에 듣는 소리가 있는지, 없는 시부모 괄시하는 게 눈에 보인단다. 하긴 몇백만 원씩 척척 내놓는 시부모가 있는가 하면 100만 원 가까이하는 애 유모차를 사주는 부모에게 더 정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며느리가 자기 생일상 안 차려 준다고 툴툴거리는 사람을 봤다. 아마 상다리 부러질 정도를 기대한 모양인데 물려받은 시골 뒷산이 몇십억 한다면 모를까 꿈은 빨리 깨는 것이 좋다. 효도라는 단어가 곧 사라진다. 이웃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사위가 차를 바꾼단다.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 거지? 그냥 바꾼 다음 말하면 안 되나? /노병철 수필가

2025-05-22

바닥 공사

관행(慣行)이란 말은 ‘오랜 기간 똑같이 하던 것들’이라는 의미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꿰맞추며 이상한 짓을 할 때 붙이는 용어이다. 여직원이 커피 타는 것은 관행이라는 말을 대놓고 한 적도 있다. 이런 여직원이 커피 타려고 회사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면 여태 그런 관행에 익숙했던 사람들 눈엔 그 여직원은 완전 ‘또라이’로 보인다. 세상은 변하고 ‘페미’라는 새로운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 그런 여직원이 있다면 여직원을 욕할까 아니면 커피 타라고 시킨 그 누구를 욕하게 될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관행이란 미명 하에 이상하고 어색한 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 바닥이 원래 이래.” 공무원 회의하는 데 한번 가본 적이 있다. 고위공무원이 들어오면 갑자기 다 일어난다. 나도 덩달아 영문도 모르고 일어났다. 아마 조직의 어른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판 구경을 가보면 기가 막힌다. 판사 들어오면 다 일어나야 한다. 여긴 일어나라고 말을 한다. 한번은 방청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판사가 나를 째려보더니 자기 앞에서 다리 꼬지 말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관행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난 죄인이 아니다. 왜 판사 앞에서 다리 모으고 두 손 가지런히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 듣고 싶다. 민주공화국에는 모든 권력자는 견제를 받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 바로 검사, 판사이다. 이들은 죄를 지어도 99% 기소를 당하지 않는다. 미국은 24시간 내 완전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판결문도 우리나라에선 겨우 0.3%밖에 밝히지 않는다. 이러니 판결이 판사 마음대로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 관행이다. 기자가 기사에 ‘핏짜, 커리’쓴다. 물론 허접한 잡지사 기자 나부랭이가 본배 없이 쓰는 것이다. 피자나 카레라고 글을 쓰면 밋밋해 보여서 그렇게 썼다고 항변할지는 모르지만, 외국어와 외래어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얼뜨기 기자이리라. 구제역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익산 춘포역이나 군위 화본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구제역은 입구(口), 발톱제(蹄), 돌림병역(疫)이다. 따라서 소나 돼지 등의 동물의 입이나 발굽에 생기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병을 가리켜 구제역이라고 쓰고 말한다. 가축들이 구제역에 걸리면 입의 점막이나 발톱 사이의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흘리다 죽게 되는데 이게 전염성이 강하다. 상당히 위험한 병이기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사람들이 쉽게 잘 알아듣지 못한다. ‘신병을 확보하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군대에서 신병(新兵)이 새로 들어왔나 싶었다. 하지만 그 신병이 아니다. 범인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신병(身柄)이란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도 못 봤다. 물으면 전부 얼버무린다. 자루 병(柄)자가 해석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왜일까? 물어보니 이 바닥 관행이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관행으로 치부하고 이런 짓을 묵인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묻고 싶다. 날 잡아 바닥공사 제대로 한번 해야 할 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5-15

답답한 오월

오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한글날이나 개천절같이 그냥 행사가 많은 달이 아니라 어른과 애들을 챙겨야 하는 가정의 달이고 스승까지 챙겨야 하는 게 오월이다. 집사람 말로는 별로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니라는 결혼기념일까지 끼어있고 가족 생일까지 있으면 상당히 심각한 한 달이 되어버린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 어린이날 선물 일일이 챙기다가 한 달 내내 굶을 판이라는 오월이 왔다. 노년층만 이럴까? 요즘 나라 경제가 엉망이라고 난리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사는 부류는 공직자 같은 월급쟁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월급이라고 해야 몇 푼 되지 않아 한 달 살기가 바듯한 형편인데 이렇게 행사가 집중되어 버리면 답답해지게 된다. 건강한 경제구조라면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30~40대이다. 이 세대가 돈을 쓰는 나라가 잘사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 세대가 돈이 쪼들리면 나라 경제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다. 30~40대는 결혼을 했다면 대부분 빚이 많다. 혹 부모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재벌이 아닌 한 빚은 대부분 가지고 출발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금융권 전세자금 대출의 70%를 30~40대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애들 보육비도 장난이 아니다. 좀 더 큰애 교육비도 더 장난이 아니다. 여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간병비도 있다. 명이 길어져서 거의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 운 나쁘면 부모들도 여기에 합세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은 평균 10년 6개월간 병치레를 한다는 통계를 본다. 젊은 세대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러니 30~40대 가계의 ‘엥겔계수’는 20% 이상이고 애들 밑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이 30%란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 데 오월은 그들에게 잔인한 달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즘 어린이 데리고 놀러 갈 장소를 물색해 보면 어린이 놀이터가 동네마다 있는 철봉에 미끄럼틀 정도의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돈도 엄청 비싸다. 우리 때처럼 애들 데리고 촌에 내려가 천렵하거나 텐트 치고 해수욕하는 그런 상상을 한다면 정말 대단히 헛다리 짚는 것이다.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 정도는 가줘야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물값 또한 만만찮다. 애들 낳으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이유가 뭔지 몰라서 그러는지 위정자들은 연일 정권 욕심에 연일 바쁘다.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숨어있다. 젊은 층이 필요한 것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젊은 세대에게 대폭 집값을 내려줘서 금융 부담을 최소화하고 유치원도 늘리고 보육원도 늘려야 한다. 어른들 치매센터 늘리고 요양병원비 줄여주어 이런 잡다한 짐을 덜어줘야 한다. 취업 안 되고 일자리 없는 것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인간적 삶을 위한 복지 영역은 개인 문제가 더는 아니다. 비싼 장난감 선물비를 깎아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그네들의 능력 문제이다. 더 비싼 놀이터에 애들을 데리고 가고 비싼 음식 먹고 좋은 선물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외적인 문제는 정부가 좀 책임져주면 어떨까 싶다. 뭐든지 다 들어주는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논리에 아연실색하겠다. 언제까지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논리로 정책을 세울 것인가. 답답한 오월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5-08

관식이 타령

집안에 음기가 너무 세게 흐른다. 집안에 남자라곤 나 혼자이다. 첫애가 딸이라고 했을 땐 그래도 둘째는 아들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에 불과했다. 삼신할머니에게 그만큼 빌고 빌었건만 둘째도 달지 않고 나왔다. 딸 둘에서 멈췄다. 딸 셋이 되면 내가 집을 나갈 것 같아서다. 삼 형제를 두신 우리 아버지의 업적에 큰 누를 끼치고 말았다. 집안의 대가 끊어졌다. 여자들의 세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네들의 세상은 여태 내가 겪지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 안다고 하기엔 많이 역부족이다. 여자들의 심리는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 혹은 ‘본부장’이란 타이틀은 대체로 재벌가 아들이 걸치는 직책이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다. 아는 것도 많고 매너나 에티켓도 좋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구석은 다 갖춰져 있다. 이렇게 설정해 놓고 가난한 여자를 좋아하게 만들면 그 드라마는 대박이 난다.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의 구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 모든 여자는 가난한 여자가 되어 꿈속에서 헤매게 된다.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가 언제 적 이야기인가. 일제 강점기 때 조종환의 ‘장한몽’에 나오는 이야기 아니던가. 이런 이야기가 AI 시대에도 먹히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김중배의 다이아에 심순애는 이수일을 차버리지 않는가. 결국 돈 앞에는 사랑이고 뭐고 없다. 냉혹한 돈의 현실만 있을 뿐이다. 난 여태 돈 많은 남자 싫어하는 여자는 잘 보지 못했다. 우리 집 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졸지에 돈을 잘 벌어오지 못하는 나는 평생을 죄인처럼 눈치만 보면서 살았다. 오랫동안 실장이나 본부장에게 몰입되어 있던 여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이란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지고지순’이란 단어를 남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양관식. 거의 외계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현실 세계에선 극히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이다. 대부분 부상길, 아니 ‘학 씨 아저씨’란 인물이 현실 속 전형적인 한국 남성 모습이 아닐까 싶다. 졸지에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관식이 때문에 참 피곤하다. 오직 한 여자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는 모든 여자의 로망이 되었다. 덕분에 나 같이 여자가 많은 집에선 전부 양관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곁눈질로 나를 보면서 ‘학 씨 아저씨’보다 더 한 꼰대 인간 취급을 한다. 세상이 개벽했다. 여자들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이 정도로 변화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돈 없는 관식이가 돈 많은 본부장을 밀어내고 말았다. 걱정은 둘째 딸이다.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 관식이를 찾고 있다. 세상에 관식 같은 남자는 없다. 대부분이 학 씨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고 귀에 따까리가 앉도록 말했건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관식이 타령이 끝이 없다. 제발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 줬으면 싶은데, 그 드라마 한 편이 정신을 흐려놓았다. 그 전에 자기 남편감은 경제력이 우선이었다. 지금은 “돈 많은 양관식.” 이다. ‘히떡’ 자빠질 뻔했다. 이번 생애에 둘째 사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노병철 수필가

202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