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할인권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리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소비 기회를 잃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언젠가’를 믿으며 현재를 유보하는 삶의 태도가 응축되어 있다. 이른바 석인성시(惜吝成屎), 惜(아낄 석), 吝(아낄 린), 成(이룰 성), 屎(똥 시), 즉 우리 같은 평범한 부류들이 흔히 하는 말로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이다. 아끼고 아끼다 결국 아무 쓸모 없게 된다는 자조적 표현은 더 이상 개인의 습관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말이 되었다.
돌아가신 부모의 유품에서 발견되는 새 옷들, 중요한 날을 위해 남겨둔 술이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상해버린 이야기들은 낯설지 않다. ‘좋은 날’은 늘 미래에 있었고, 그 미래는 끝내 현재로 오지 않았다. 근검 절약은 분명 미덕이다. 그러나 과도한 유보는 결국 삶 자체를 유예시키는 선택이 된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도 반복된다. 평생을 모은 재산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사례, 필요 이상으로 쌓아둔 물건들이 결국 쓰레기가 되는 현실은 ‘축적’에 대한 집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그 축적이 삶의 질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삶을 옥죄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보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의 불안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중복되고 과도하게 가입된 상품들은 정작 필요한 순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준비는 필요하지만, 준비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낭비로 변질되고 마는 것을 우린 자주 보게 된다.
일상의 작은 사례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적립해 둔 사진관 스티커가 정작 사진관이 사라지면서 무용지물이 되거나, 운전면허 갱신을 차일피일 미루다 기한을 넘겨 불필요한 벌금과 교육을 감수해야 하는 일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보다 더 크게 남는 것은 따로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나 친구에게 연락을 미루고, 함께할 시간을 아껴두다 끝내 충분히 나누지 못한 기억이다. 아껴둔 것은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소모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남는 건 후회뿐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아끼는 것’에 집착하는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결핍의 기억, 그리고 사회적으로 내면화된 절약의 윤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현재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면, 그 미덕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아낌과 사용, 준비와 향유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때 삶은 왜곡된다. 지금 필요한 것을 적절히 쓰고,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다.
‘아끼다 똥 된다’라는 속된 표현 속에는 의외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의미를 알면서도 반복한다는 데 있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아끼고 있으며, 그 대가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제는 주위를 돌아볼 때다. 우리가 아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아끼고 있는 것인지 그 가치를 새삼 논할 필요성을 느껴본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