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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말씀은 아닌데

등록일 2026-02-05 17:27 게재일 2026-02-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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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 수필가

서원과 절의 공통점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친 현대인이 힐링할 곳을 찾는다면 절이나 사원 쪽으로 가면 거의 틀림없다. 내가 여행지를 정할 때 유독 그쪽으로 택하는 이유이다. 서원에 가면 육십이 훌쩍 넘은 듯한 중년 단체 방문객들이 열심히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본다. 주위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다. 그저 사진이나 찍으면서 희희낙락이다. 마루에 신발 벗고 올라가지 않고 걸터앉아 해설사 이야기 듣는 중년들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이다. 마루에 걸터앉는 것은 예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인이 도산 서원에 다녀왔다기에 물었다. 마당 앞에 큰 나무 두 그루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도동 서원에 갔다 온 분에게 물어도 서원 앞쪽 큰 은행나무 이야기만 한다. 4변(籩) 4두(豆)나 축(畜)과 생(牲)의 이야기는 머리만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 그냥 입을 다문다. 서원에서 조상들이 던지는 말이 한가지가 아닌데 안타깝다.

한 2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중문과 전공인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교의 도(道)는 윗사람에서 유리하고 아랫사람에게 불리하며, 윗사람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것 같으며, 아랫사람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 같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난리가 날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유학자분들의 저항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세상은 그때부터 변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당시 젊은 사십 대가 지금 육십 대이다. 그 속에 내가 속해있다. 요즘 서원 같은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배우곤 한다. 젊을 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 나이 먹은 탓일까. 문제는 공부하면 할수록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유교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우물안에 개구리란 말뜻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본 갓 쓴 선비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부모들이 자식에게 과한 기대치를 내걸며 부담시킬 것을 염려해서 교육은 주로 조부모가 맡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제사도 과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가정 형편에 맞게 올렸으며, 평소 먹던 반찬을 그대로 올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남자들이 직접 음식을 하고 제사상을 차렸으며 그 집안 후손이 아닌 며느리들은 원래 시가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 알고 있었고 변질된 듯하다.

언제부터 강한 남존여비의 사상이 우리 몸에 스며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첫 손님이 여자이면 재수 없다는 말을 듣고 컸다. 어릴 때 남자들은 상에서 밥을 먹었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었다. 요즘도 장례식장에 가 보면 딸만 있는 집은 사위가 상주이다. 여자는 상주도 될 수 없다는 전통이 이어져 온다. 안경 쓴 여자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화제가 됐다는 말을 듣고 픽 웃음이 나온다.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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