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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행찬가

노병철수필가 다리 떨리는 나이엔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니 가슴 떨릴 때 길을 나서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 명당 찾지 말고 살아서 좋은 곳을 다녀라.’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집사람이 먼저 집을 비우기 시작한다. 젊었을 땐 허락을 받는 척이라도 하더니 지금은 현지에서 문자 한 통으로 끝낸다. 어디 있으니 그리 알아라. 언제 들어갈지는 모른다는 내용이다. 집구석 엉망으로 돌아간다고 욕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난 이게 더 좋다. 나도 언제든지 여행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피차 서로 구속하면서 살 나이는 지났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중국과 수교도 되기 전에 여행을 갔다. 북경반점을 보고 짜장면집이 되게 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반점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국해서 중국을 다 아는 체했다. 총무를 비서장이라고 하고 사장을 총경리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중국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중국 여자들이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밥 먹기 위해 반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반찬부터 먹고 밥 먹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된 것도 여행을 통해서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의 크기를 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사는 우물이란 공간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기에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본 끝없는 평야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름벌레에게는 얼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란 것을 설명할 수 없듯이 말이다. 글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한다. 경험이 부족하면 사고가 틀에 매이게 되고 연산하는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태라 했던 말만 계속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수필 작가이자 교수이고 외국물도 먹은 박사로 평생 교단에서 존경받고 살다가 퇴직 후 나름 자신의 지식을 통한 수준 있는 작품을 내놓으려 하다 식겁하고 자중하는 분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는 설득력 있는 글, 읽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전문 지식이 그것을 막는다고 한다. 장자 추수 편에 보면 시골 훈장에게는 진정한 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나온다. 자신이 배운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다고 했던가. 평생 한 우물을 팠다고 전문가 소리는 들을 지은 정 밖으로 나가면 개구리라는 소리를 피하지 못하게 되는 원리렷다. 여행을 통한 폭 넓은 경험만이 좋은 글을 내어놓을 수 있다고 스스로 체득한 것을 알려준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마사지라는 것을 거의 강제로 받는다. 그리고 장사치 앞에 앉아 물건 사기를 강요받는다. 싸게 여행 가려면 패키지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옵션을 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돈을 각출해 낸다. 이런 것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기 싫다는 사람을 봤다. 먹는 것이 입에 맞지 않고 향신료 때문이라면 어찌 말은 된다고 하지만, 가기 싫다는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국 여행이 싫으면 국내 여행도 괜찮지 않은가. 여행을 구차한 핑계를 대면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다가 일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올해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2025-02-20

정치가 깨어나야 한다

노병철 수필가 시국이 참으로 어수선하다. 연일 방송엔 계엄 이야기로 도배를 한다. TV 속에 나오는 대통령의 그 뻔뻔함을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자기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투다. 여기에 야당 대표인 이재명은 그럼 아주 착한 사람인가. 까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도긴개긴이란 말이다.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들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 즉, 두꺼운 얼굴(面厚)과 시커먼 속마음(心黑)을 갖춰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얼굴이 얇아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맑아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자는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결코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가볍게 여기며, 사과하는 법이 없다. 품위와 인격은 일찌감치 개한테 줘버리고 이 길을 택한 자들이다. 그들이 체득한 생존술은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이며 그 권력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다. 그들에겐 정치공학은 딱 한 가지이다. 이기면 모든 것이 미화되어 ‘절세의 군주’가 되고, 패하면 모든 것이 폄훼돼 ‘만고의 역적’이 된다는 것을 머리에 새기고 있다. 이번 계엄도 성공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위기의 대한민국이 계엄이 살린 것이 된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 이해하고 넘어갈 보편타당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온갖 거짓 뉴스를 남발하는 유튜버들이 하루 52시간 근무도 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번다고 한다. 먹방으로 한 달에 1억 이상을 번다니, 명문대 졸업 후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잘리지 않으려 애쓰며 버는 돈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에스키모족이나 마사이족처럼 경제력이 낮아도 행복도가 높다며,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하지 않고도 세금을 쓰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정치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듯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이를 바로잡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마오쩌둥은 죽기 직전의 병석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절대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노년층, 중년층, 청년층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권력 핵심부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이미 세대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정치라고 간파한 것이다. 이 추운 날에 태극기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선 노인들과 응원봉을 들고 춤을 추면서 거리에 함께하는 젊은이들을 봉합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 정치를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라고 치켜세우는데 이건 그런 이념적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갈등이 여전하고 종교가 정치화되고 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선을 넘었고 심지어 이젠 젠더 갈등 또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치 영역이다. 국민 간에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 정치가 빨리 개입되어야 할 시점인데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올 줄 모른다.

2025-02-13

독한 사람들

노병철 수필가 새해가 밝아오면 늘 하는 소리가 있었다. ‘금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우습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띈다. 정부는 더 강력한 경고문을 담뱃갑에 박아 넣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로 담배를 끊게 만들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이지만, 정부에서는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담배 판매금지를 못 하게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해롭다’는 문구만 남발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담배회사와 담배 농가의 붕괴를 포함한 담배 산업의 소멸,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세입 감소와 사회적 비용을 아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국민건강을 담보로 세수를 챙길 것인가. 그래도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한 건 사실이다. 담배를 시내버스에서도 피웠고 고속버스 안에서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의자 뒤에 재떨이가 있었다. 특히 영화 보면서도 담배를 피웠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간에 필름을 한번 갈아 끼울 때는 너도나도 피워대는 통에 극장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온갖 발암성 물질이 있다고 해도 담배는 숙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남성’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깐. 챨스 브른슨이 담배를 피우면서 악당을 죽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 입에 물고 포커 돌릴 때 우린 화장실 뒤에서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가며 폼을 잡곤 했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담배를 끊은 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쉽지는 않았다. ‘금연 주식회사’라는 책을 읽어보면 금연을 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벌칙을 주는데 집사람을 잡아다가 전기고문하고 그래도 피우면 마침내 죽여 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자의 고통은 지옥의 고통으로 묘사되고 사실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매 순간 담배의 유혹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혹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힘든 일을 마친 후에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의 추억을 더듬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과감하게 결단내야 한다. 사실 보건복지부 공무원도 아니고 금연 프로그램 종사자도 아니다. 금연을 홍보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그렇게 착한 인성을 가진 인간도 아니다. 술 마시고 마늘로 싼 돼지고기 쌈을 안주로 먹고 담배까지 한 대 피운 사람이 친하다고 내 귀에 대고 속삭일 땐 정말 못 견디겠다. 솔직히 흡연으로 인한 일반적 건강론은 내 알 바 아니다, 단지 그 역겨운 냄새에서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담배 냄새는 너무 지독하다. 이젠 진짜 담배를 끊어야 할 때이다. 옛날엔 담배 끊은 사람보고 ‘독한 인간’이란 말을 했다. 그만큼 담배 끊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 어려운 금연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찬사와 시기가 함축된 말이 ‘독한’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독한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언제까지 역한 냄새 풍기는 독한 인간으로 살 것인가. 을사년 새해는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한번 금연을 결심해 보자.

2025-02-06

국민은 지금 배가 고프다

노병철수필가 국가 정책은 다수의 국민이 이해하고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국가의 폐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세계화’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활동하고 선진국이라는 나라만 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그런 세계화의 노력이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대중 정부의 정책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햇볕 정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퍼주기 정책’이라고도 말한다.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하면서 북한에 대한 포용적인 접근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증진하고자 했으나 북측의 기만에 놀아났다는 질책만 듣게 된다. IMF 때 급한 나머지 좋은 기업 마구잡이로 팔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이명박 정부의 개발 우선 정책은 지방 균형발전 같은 것은 뒤로 미루고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경제 정책을 극대화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지방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말았고 4대강 사업으로 경제는 운하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해외 자원 개발한답시고 브로커에게 속아 그네들에게 넘어간 국가 세금이 거의 천문학적 숫자로 밝혀졌다. 국민의 세금은 대통령의 주머닛돈이 절대 아닐 텐데 이해가 가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이 벌어졌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는 공무원조차 그 실체를 잘 몰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나중 탄핵받고 그 실체가 최순실에 의한 창조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당시 대구시는 ‘창조 사과’를 도시 브랜드로 정하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만큼 ‘창조경제’라는 것에 대한 감조차 잡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영국의 경영 전략가 존 호킨스에 의해 정립된 경제용어를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 유학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워런 버핏의 경제론을 많이 따라 그동안 유지해 왔던 재벌 부양정책에서 가져다주는 낙수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급속한 인건비 상승은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였고 집값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 어설픈 정부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기본 정책 기조를 어디에다 두고 있을지 찾아봐도 무엇하나 제대로 나오는 것이 없다. 초반에는 규제 완화와 민간 주도 성장을 핵심 경제 정책으로 들고나왔다. 이명박 시절 정책을 갖다 쓴 느낌이 들 정도였으나 사회정책에서 그 유명한 ‘공정’이란 말이 등장한다. 나중 명태균 보고서로 정책 회의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최순실같이 일개 사인에 의한 정책 장난이었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경제 정책은 명확성이 중요하다. 정책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못하면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무원들도 올바른 정책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관치 금융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권력욕에 국민경제는 내팽개치고 좌우 논쟁으로 혼란만 야기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고 싶다.

2025-01-23

‘개소리에 대하여’

노병철수필가 ‘On Bullshit’라는 수필이 있다.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우리나라에선 ‘개소리에 대하여’로 번역되었다. Bullshit은 헛소리, 허튼소리로 점잖게 번역이 되는데 이 책은 조금 과격하게 ‘개소리’로 번역하고 있다. 이 책에 요지는 거짓말쟁이(liar)와 개소리쟁이(bullshitter)를 구분한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고 상대를 속이는 것이고 개소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소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말로 ‘아니면 말고’식이다. 종이신문과 몇 안 되는 공중파 방송에 의해 정보를 전달받던 시절에 우리는 참과 거짓을 언론에서 표현한 그대로를 믿었었다. “신문에 났어.”라는 이 한마디로 모든 논쟁은 종결됐다. 따라서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었고 불의에 항거하는 기개가 남달랐다. 그게 기자정신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결과물을 기사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타협이란 것이 없었다.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기자가 쓴 기사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권력의 감시자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 언론이 입법, 사법, 행정의 뒤를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은 변하고 언론도 변했다. 권력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쏟아내고 권력을 향한 용비어천가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언론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잘 예로 드는 것이 나폴레옹 이야기다. 유폐돼 있던 코르시카를 탈출해서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해 오는 상황에 따라 그를 지칭하는 단어가 식인귀, 괴물, 폭군에서 나중에는 ‘황제 보나파르트 폐하’라는 극존칭으로 변하는 아부 근성을 말한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주는 속칭 ‘빨아주는 기사’를 생성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거짓 기사에 놀아났다.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보가 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정보를 얻는 사람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정보는 메이저 언론만 가질 순 없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사건의 사진이 몇 분도 되지 않아 사진으로 전송되어 버리고 주요 메이저언론만 장악하면 국민의 생각도 바꿀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은 군사정권 종식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그 한 예가 이번 계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계엄군의 행동을 안방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건을 입맛에 맞게 덮으려야 덮을 수가 없게 됐다. 그럼에도 왜곡 보도는 여전하며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 선동과 날조,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사용한 기사 등 질이 낮거나 자극적인 기사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유튜브 같은 매체도 언론 역할을 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방송을 해댄다.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화면을 만들어 송출한다. 사람들의 관심도를 높여 돈을 벌기 위해 거짓 뉴스가 판을 친다. 이런 잘못된 기사나 방송에 현혹되어 자칫 어설픈 정치 논단까지 일삼게 되고 만다. 정말 주의할 일이다.

2025-01-16

노인과 음식

노병철 수필가 장염과 식중독은 비슷하다. 설사와 복통, 구토와 발열이다. 노로바이러스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건 식중독이 아니라 장염을 말한다고 알면 된다. 식중독은 오염된 음식에 의해 발생하기에 살모넬라, 대장균 같은 독한 녀석들 이름이 나온다. 장염이나 식중독 구분은 병원에 맡겨놓으면 되고 우선 중요한 것은 상한 음식이나 비위생적인 음식을 아깝다고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에겐 절대적인 말이다. 젊을 땐 어느 정도의 균을 퇴치할 능력이 몸에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줄어 조금만 이상해도 탈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식중독균은 끓여도 죽지 않는다. 끓였다고 안심하고 먹다간 큰일 난다. 옛날엔 다 먹었는데 괜찮다고 우기지 말고 제발 젊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하면 된다. “한겨울엔 괜찮다. 옛날엔 다 먹었다.” 이런 말씀을 하던 어머니가 식중독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만큼 오래된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건만 노친네 고집이 장난이 아니다. 버리기엔 아깝다고 먹은 음식 때문에 병원비만 수천 배 더 들어갔다. 돈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온 식구들이 병간호하랴 병문안하랴 난리였다. 자식들이 서울서 내려오고 부산서 올라오고. “엄마가 자식들이 보고 싶어 상한 음식을 억지로 먹었나 보다.”라고 동생들이 위안을 주지만 모시고 있는 우리 부부는 좌불안석이다. 어떻게 모셨으면 상한 음식을 엄마에게 드렸냐고 야단을 치는 것 같다. 특히 엄마를 모시고 있는 장남인 나는 집사람에게 더 죄인이 되고 만다. 집에서 엄마와의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제일 큰 문제가 위생 문제이다. 걸레 빨다가 음식 만지고 하는 통에 손녀들이 기겁한다. 청소도 하지 말고 음식도 하지 말라고 애원해도 들은 체 만 체이다. 냄비 태워 먹은 것이 열댓 개가 넘고 집안이 메케한 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을 정도다. 어머니 손맛은 자식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주면 주는 대로 먹었던 시절. 즉 아주 익숙한 맛이란 뜻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음식 솜씨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나 역시 집사람 음식 솜씨를 잘 모른다. 신혼 때는 정말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들이민다고 생각할 정도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엄마 손맛에 익숙한 나로선 엄마한테 가서 좀 배워오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 우리 애들은 지네 엄마 음식 솜씨를 환상적이라 극찬을 하지만, 거의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나로선 어쩌다 먹는 집밥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진짜 그정도로 맛있다면 흑백요리사에 나갔을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엄마의 손맛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익숙한 맛이란 이야기이지 결코 맛이 진짜 있거나, 위생과 결부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상위에 놓인 된장찌개에 온 식구들이 입에 빤 숟가락을 넣던 시절은 지났다. 이젠 앞접시가 일반화된 시대이다. ‘꼰대’. 권위적인 나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은 항상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노인이라고 영국 BBC방송은 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소개하면서 풀이한 내용이다. 노인들도 이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시대정신에 맞게 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2025-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