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이가 어중간해서 자식 결혼이랑 부모상이랑 맞물려 있어 부좃돈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정년퇴직하면 제일 먼저 모임을 줄이라는 선배 말이 실감 난다. 시간 난다고 여기저기 머리 디밀다 보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서로 간에 안면 트고 이름 정도 알면서도 부조 안 하면 그것만큼 ‘뒷담화’ 대상이 되는 것도 없다. 모임을 안 하면 모를까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라면 몇 푼이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인간관계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일정조차 포기하고 참석해야만 했다. 그 친구도 우리 집 길흉사에 다 참석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상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조만 달랑 보내는 것은 인간의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기브 앤 테이크’ 라는 요즘 추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길흉사 치부책 보면서 상대가 얼마 했으면 10년이 지나도 같은 액수를 고집하는 이상한 부좃돈 문화에 치졸한 부조 행위에 대한 논란을 재현할 마음은 없다. 단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고 과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또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 집 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남동생들은 외지에 있으면서 한 번씩 문병하러 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막상 장례식장 상주는 동생이었다. 누나는 딸이었고 딸은 주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없고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 주어지게 된다. 딸만 있는 나로선 사위보다는 딸이 상주가 되어주었으면 싶은데, 조금 있으면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친구 누나는 상주 쪽에 서 있지 못하고 며느리와 함께 여자 상주 쪽에 그냥 들러리로 서 있다. 여자는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장례 의식 때문에 아들 그리고 맏사위가 상주 하게 되는 게 우리나라 전통 장례 풍습이다. 여자는 완전 찬밥 신세다. 세상이 다 변하고 있음에도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이상하게도 변할 기미가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영정사진만이라도 누나가 들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누나가 영정사진을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집안에도 꼰대 어른이 존재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말도 안 되는 음양이론을 갖다 붙여 여자가 나대는 것을 아주 금기하는 사상이 머리에 깊이 박힌 분 말이다. 여자는 음식이나 준비하고 조문객 접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주접을 떠는 늙은이 말이다. 마치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는 양 유식한 척하면 나이가 깡패라 괜한 말 듣기 싫고 분란을 원치 않으니 그대로 따르고 만다.
요즘은 상조 회사에서 나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진행한다. 상조 회사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만 상조 회사조차 집안 어른 한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 일단 모든 행사를 그분의 말에 따르라고 교육받는단다. 그래서 집안에 고집 센 늙은이 한 분 있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막강한 상조 회사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단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