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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떨어진 금성인

등록일 2025-12-04 15:06 게재일 2025-12-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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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 수필가

‘깻잎논쟁’이란 말이 있다. 남의 부인이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떨어지는 것을 본 남자가 깻잎을 떼주다가 자기 부인에게 된통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게 방송을 타자마자 패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렇게 논쟁이 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깻잎이 안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면 좀 도와주는 것이 뭐 어떤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하게 된다. 사실 주위에 물어보니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벌어졌고, 남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당한 적이 많다는 것이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다가도 낭패 보고 술자리에서 한 잔 따라주다가도 잔소리 들은 적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을 자제하게 된다.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소유욕 혹은 독점욕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나름 고상한 체면 때문인지 대답을 잘하지를 않는다. 단지 그러한 행동을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서 말한다. 그냥 애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그런 친절한 서비스는 나만 받을 자격이 있고 나 이외에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튄다는 말은 애써 자제한다. 요즘 유행하는 ‘천박한’ 언어이기에 사용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었다간 일이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그냥 늘 하던 식으로 내가 또 뭘 잘못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는다. 남자 인생이 뭐 별거가 있나.

이런 것을 서로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는 화성인 금성인으로 구분한다든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해서 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MBTI에 가져다 붙여,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성격상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논란에 휩싸인 라캉의 한 책에서 그 정답을 찾곤 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언어 체계로 수렴되지 않고, 부부가 ‘서로 통하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리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한국 남자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가 여자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정도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이성적 판단으로 몇 가지 포즈를 더 요청하면서까지 성의를 베풀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집사람이 말을 안 한다. 분명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깻잎을 떼어준 적도 없고 생선 살을 발라준 적도 없기에 집에 올 때까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남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없다. 사진 찍어준 것도 죄가 되나? 나이가 들어도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한참이나 이어질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 때문에 누구라도 붙잡고 이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다. 

“AI, 너는 아느냐? 저 여자가 왜 저렇게 삐졌는지를?”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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