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記’에 나오는 불효의 3가지 조건을 보면 첫째, 혼인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것. 둘째,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것. 셋째, 무조건 부모의 의지를 쫓아 부모가 옳지 못한 데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날 무조건 선물이나 안긴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인다. 선물도 네가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와라. 고르기가 귀찮고 힘들면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되겠니? 내가 그 돈으로 알아서 잘 사용을 할게.
어찌 되었든 ‘효’라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고 빨리 시집가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효가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대를 잇는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다. 그래서 첫 번째는 ‘혼인하지 않는다.’ 는 말에 방점을 찍어 불효로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뿌린 부좃돈에 눈이 멀어 결혼을 재촉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너희 결혼식 때 들어오는 부좃돈은 다 부모 돈이고, 부모 장례식 때 들어오는 돈은 너희들 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쓸데없이 좋은 날 침 바르는 행위를 삼가기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을 잘 봐라. 그 옛날에도 자식들이 부모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그만두고 빈둥빈둥하는 꼴을 싫어했다는 방증이리라. 네 놈들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병간호 받기 싫다. 그냥 내가 아프면 예쁜 간병인 구해다 붙여주면 된다. 너희는 열심히 일해서 간병인 인건비만 보태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이다. 특히 유념할 것은 내가 병실에 누웠다고 네 엄마보고 나의 병간호를 하라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마지막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 아비의 간절한 망부가(望婦歌)로 알면 되겠다. 그래도 그런 짓을 한다면 이건 불효 중의 불효라고 알면 되고 돈 아낀다고 얼굴 안 보고 간병인 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조건이 많이 헷갈릴 것이다. 요즘 덜떨어진 노인네들은 ‘충’의 개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데 충(忠)의 개념이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고 맹자라는 분이 분명히 정의하였다. 그래서 군신이 없는 지금엔 ‘민주’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국민이 ‘충’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정자들이 지네들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주 편하게 하려고 나라를 위한 충성이라는 핑계로 교묘히 활용하고 있고 일부 어리석은 백성은 그것을 추종하는 꼴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효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무조건 ‘부모 말’이라고 해서 따라선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물레 다방 김 마담에게 빠져 술이나 퍼먹고 도박을 일삼고 있으면 말려야지 아비의 권위를 위한답시고 그냥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수천 년 전에 말이 어떻게 오늘에도 이렇게 잘 들어맞게 쓰였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마치 ‘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그녀가 산에 간 이유가 바로 죽은 자기애가 그린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시에 엉망진창이었던 퍼즐이 맞춰지면서 나도 몰래 감탄사가 터져 나오면서 일종의 환희심까지 생긴다. “아빠, 결론이 뭐고?” “그냥 돈으로 달라는 거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