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 보면 질색하는 사람이 있다. 개 몰고 나오는 사람에게 과한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이런 사람은 십중팔구가 개에게 물린 쓰라린 경험이 있어 그 공포감이 작은 개만 봐도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이건 제대로 물려 본 사람은 안다. 이걸 개 주인은 이렇게 귀여운 개가 무슨 죄가 있냐며 항변하는데 남의 집 개한테 얼굴 한번 물려서 살가죽이 뜯겨나가 보면 왜 그러는지를 알 것이다. 개만 보면 이상하게 과격한 언사를 내뱉은 사람을 보고 나도 처음에는 과민반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원인을 알고는 무조건 이해하게 됐다. 물린 트라우마가 얼마나 한 사람 인생에 악영향을 주는지 분명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큰딸이 등산하다가 인근 농가 닭에게 쪼여 얼굴에 큰 상처가 난 적이 있다. 119에 실려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았고 그 공포로 인해 며칠을 앓아야 했다. 그 뒤로는 새만 보면 무서워한다. 그 농가에 가서 항의했더니 닭 주인 영감은 난 모른다는 식으로 능청스럽게 대하기에 오랫동안 애를 먹였다. 모르면 알도록 해줘야 앞으로 조심하겠다 싶어서다. 사과부터 하고 닭을 앞으로 단속을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왜 닭이 있는 곳으로 왔냐는 억지 주장만 되풀이했었다.
40년도 훨씬 넘은 대구 ‘초원의집’ 화재 사고로 25명의 젊은 친구들이 목숨을 달리했다. 당시 근처에 있다 달려가 좁은 문에서 깔려 죽은 애들을 봤다. 그 뒤 그 트라우마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소방관이 구조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평생 괴롭게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40년 전에 소방관도 알고 있던 일을 40년 지난 지금에도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꼭 필요한 소방 물품조차 지원이 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사서 사용한다는 뉴스를 들은 것도 최근 이야기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한 소방관이 신고를 받고 창문을 깨고 들어간 현장에서 목을 매고 죽은 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모습이 각인되어 두고두고 괴롭혔다는 증언이 나온다. 그만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조현병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태원 참사 구조활동 후 그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으로 자살한 소방관의 이야기가 화재다. 소방청의 지원을 받아 9번, 개인적으로 3번, 총 12차례의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란 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보완 조치이다. 그런데 이게 실효성 있게 다가가려면 인원 보충과 장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보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치료 시스템을 정비해서 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야 할 부분이다. 소방관이 검사받은 지 세 달이 지났는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편안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은 한지, 언제쯤 이루어지는 건지 묻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