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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은 어디 갔나

등록일 2025-09-18 15:34 게재일 2025-09-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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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 수필가

우장춘 기념관에 다녀왔다. 담당 공무원 아가씨가 점심 먹다가 나왔는지 연신 입맛을 다시며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많이 짚어 준다.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우장춘이란 분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낸 과학자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 알 필요도 없고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씨가 있고 없고는 내 생에 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에게 문을 열어준 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이었다. 우리 때는 민비로 배웠는데 요즘은 명성황후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미신에 미쳐서 나라 꼴을 망친 누구와 비슷하지만 그래도 당시에 국모라 더는 말을 하지 않겠다. 더욱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분이라 욕되게 할 이유는 없다만 너무 추켜세우는 것도 마뜩잖다.

대형 사고를 친 우범선은 조선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일본으로 망명해서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들을 낳는다. 그의 장남이 우장춘이다. 우범선은 우장춘 여섯 살 때 고영근 의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우리 민족은 뒤끝이 강한 민족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장춘도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이 있다. 하지만 그는 속죄할 마음이 있었던지 돌연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둔 채로 한국에 온다. 그는 한국에서 무, 배추를 비롯해 씨 없는 수박을 보급한 공로로 죽기 전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대접받으려고 한국에 왔는가.” 그가 통곡하면서 남긴 말이다. 일본인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정부는 그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는 울부짖으며 한국 정부의 처사를 원망했다고 한다. 왜 안 보냈는지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가 필요했으리라 짐작된다. 일본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불효도 불효지만 처자식과 완전 생이별을 시키고 만다. 나라에서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 그 씨 없는 수박은 왜 안 보이는 것일까? 씨 없는 수박은 껍데기가 두껍고 공동(空洞)이 드문드문 생기며, 당도가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어 상품화되지 못하고 만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고 떠벌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쓸데없이 부풀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장춘 박사가 한국 농업 발전에 수박 말고도 상당한 일조를 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족 반역자의 아들이지만 나름대로 속죄의 길을 걸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수박 말고 다른 부분으로 주목받았으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고려 충렬왕 때 나라를 배반하고 원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삼별초를 멸망시켰던 홍다구(洪茶丘)가 가져온 과실이라 하여 고려말이나 조선 초의 선비사회에서는 수박 먹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그런 상품화 되지도 못한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고 난리 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요즘 일본과의 관계가 나름 순조로운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완전 일본인이 된 우장춘의 여섯 자녀는 일본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라지고 없는 씨 없는 수박보다 그들을 찾아보는 것이 도리인 듯한데 자못 궁금하다. 오지랖인가?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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