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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화진지구, 또다시 ‘모래 붓기’···반복되는 단기 처방 논란

임창희 기자
등록일 2025-09-24 16:14 게재일 2025-09-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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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모니터링 근거로 구조물 없이 ‘양빈’만 추진 
영덕‧울진 모래 4만2484㎥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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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리 화진해수욕장 북쪽 끝 해안의 모래사장이 대거 파도에 휩쓸려 나가 휑한 모습을 드러냈다.

포항 북구 송라면 화진리 해안은 더 이상 예전의 백사장이 아니다. 모래사장은 눈에 띄게 줄었고, 겨울철이면 파도가 해안가 연립주택 앞까지 밀려든다. 일부 주민들은 건축물 턱밑까지 바닷물이 스며들면서 붕괴위험 불안까지 호소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조금씩 깎여 나가던 해안선은 최근 들어 빠르게 안쪽으로 후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태풍과 고파랑 증가, 연안 개발의 복합 작용을 원인으로 꼽는다. 침식이 가속화하면서 주민들은 바다와 맞닿은 일상의 위협을 체감하고 있다.

포항시는 해안선 복원과 침식 피해를 줄이기 위해 40억 원대 예산을 들여 화진지구 연안정비사업을 추진한다. 핵심은 모래를 외부에서 가져와 다시 쌓는 ‘양빈(養浜)’ 방식이다. 이번에 투입될 모래의 양은 총 4만2484㎥이다.

구조물 설치 대신 양빈만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해양수산부의 장기 모니터링 결과가 근거로 제시됐다. 수년간 화진지구 해역의 파랑, 조류, 퇴적물 이동 등을 조사한 결과 모래를 보강하는 것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됐다는 것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해수부 용역 결과를 토대로 구조물 없이 양빈만으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양빈용 모래의 조달 문제도 검토가 이뤄졌다. 포항시는 화진리 모래의 성분과 입도를 조사한 뒤 성질이 유사한 영덕과 울진 해역을 모래조달의 후보지로 선정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전혀 다른 성분의 모래를 가져오면 곧바로 쓸려나가거나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성분과 입도가 비슷한 모래를 신중히 조사해 확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는 “집 앞까지 파도가 들이치는데 더 미룰 수 없다”며 공사를 환영하고 있다. 반면 다른 주민들은 “예전에도 모래를 부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모두 쓸려갔다. 세금만 또 날리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강릉, 울진, 영덕 등 동해안 여러 지역에서 수십억 원이 투입된 양빈 사업이 시행됐지만, 대부분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정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를 중시하며 같은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안 침식은 기후변화와 해류, 난개발이 얽힌 복합 문제여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행정 실적 위주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된 처방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모래를 가져올 해안지역에서 향후 나타날 환경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영덕·울진에서 모래를 채취할 경우 해당 지역 해안과 해양 생태계에 미칠 파급효과를 충분히 검증해야 하나 현실은 그 수준까지 이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다른 연안에서는 모래 채취 이후 침식이 심화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환경단체는 “한 해안을 지키려다 다른 해안을 희생시키는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사후 관리의 부실 역시 문제로 꼽힌다.

대규모 예산을 들여 양빈 사업을 완료하더라도 10년 뒤 해안선 변화와 추가 조치 등을 점검하는 체계는 아직 미흡하다. 유지관리 예산이 별도로 확보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결국 몇 년 뒤 같은 사업을 반복하게 되는 사례도 다반사다. 

전문가들은 “사후 모니터링 제도가 없다면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해안림 복원, 습지 조성, 완충 녹지대 확보 등 자연 기반 해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위적 구조물이 아닌 자연 생태계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본과 유럽 일부에서는 해안림 복원을 통해 침식 방어 효과를 거뒀다.

포항 화진지구의 연안정비사업은 당장의 피해를 줄이는 응급 처방으로서는 의미가 있으나 장기 지속성, 환경 영향, 예산 효율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무엇보다 주민 의견과 전문가 검증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행정 절차 위주로 추진되는 방식이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사진/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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