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한 증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뭘 버리지를 못한다.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적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집구석마다 쟁여놓은 물건이 산더미라 늘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은 몇 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늘 처박혀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버리려고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가도 다시 끄집어내기를 반복한다. 이건 분명 ‘병’이다. 의학 쪽에서 말하는 강박장애가 아닌가 싶다. 강박장애는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하는 정신질환이다.
입에 늘 청결제를 가지고 헹구면서 손을 자주 씻는 것과 냄새가 날까 싶어 옷을 자주 빨아 입는 것을 결벽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친구들에게 제발 담배 좀 끊고 냄새나는 옷 좀 입고 다니지 말라고 되려 역정을 내고 있지만, 이 또한 오염 강박증의 한 증세일지도 모르겠다. 집사람은 뭔가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확인 강박증이 있다. 냄비를 태워 먹고 약속을 몇 번 ‘빵구’를 내더니 늘 확인한다. 하지만 병이 워낙 독한지라 늘 사고는 친다. 부모님 제사까지 잊어버린다.
“난 저런 인간들과 같이하기가 너무 싫다.”라며 혼자 고고한 척하는 완벽주의자 친구가 있다. 정말 반듯한 생활을 하는 친구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례를 들춰 봐도 그 친구의 논리가 맞다. 그렇게 살아야만 제대로 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정떨어질 때가 있고 재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친구도 강박 증세가 있다고 본다. 완벽주의자로 포장된 인간의 대부분이 강박적 성격이 있거나 강박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학적 견해도 있으니 말이다.
땅이 무너질까 두렵다는 생각,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분명 환자다. 남의 호의나 선의를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는 사람 또한 환자이다. 늘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험담하는 것을 자기 주장의 정당화로 억지 강변하는 사람도 분명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것을 먹으면 뭐가 나빠지고 저것을 복용하면 이것이 좋지 않다는 식의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병원을 수십 군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병은 소문내야 한다.”라는 이상 한 논리로 말할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너무 오래 살아 자식에게 짐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된다.
“그 나라는 지금 전쟁 중인데 잘못 가다간 큰일 난다.” 이 정도 수준이면 그래도 이유가 확실하니 들어 줄 만은 하다. 하지만, 해외여행 가자는데 그 나라는 잘못하면 강도가 많아 물건 빼앗기고 살해당한다고 가지 싫어하고 어떤 나라는 납치된다고 싫어하고 또 어떤 나라는 물이 좋지 않아 안 간다고 할 땐 말문이 막힌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반대하는 친구가 이번엔 같이 가는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여행을 반대한다. 같이 어울리기 정말 힘든 사람을 가만히 보면 전부 강박 환자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만 눈에 보이는 나도 강박 환자임이 분명하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