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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하고싶지만··· 경북 청년들, ‘못 하는’ 현실에 갇혔다”

김진홍 기자
등록일 2025-10-23 05:46 게재일 2025-10-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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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주거 불안이 결혼 지연의 핵심 원인··· ‘자립–관계–정착’ 지원체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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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연구원에서 경북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한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결혼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클립아트 코리아 제공 

경북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한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결혼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경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경북 청년은 왜 결혼을 유예하는가?’ 보고서(CEO Briefing 제733호)에 따르면, 미혼 청년 절반 이상이 결혼 의향을 갖고 있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여건 때문에 현실적 제약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 청년 절반 “결혼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불안정’

경북저출생정책평가센터가 지난 7월 실시한 도민 설문에서 미혼 청년의 51.3%가 “결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25~29세에서는 남녀 모두 60% 이상으로 높았으나, 30대 초반으로 갈수록 감소했다(여성 45.8%, 남성 56.4%).

결혼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소득 불안정’(29.6%)이었다. 안정된 수입이 없으면 결혼 자체를 고려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와 함께 주거비 부담(18.1%), 신혼주택 마련(15.8%), 결혼 비용(14.0%) 등도 주요 장벽으로 꼽혔다. 결국 “결혼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는 구조적 제약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 기성세대와 다른 ‘불안정의 시대’

연구책임을 맡은 이정민 부연구위원은 “청년 세대의 삶은 불안정과 재도전의 연속”이라고 진단했다.
4월부터 9월까지 경북의 20~30대 미혼 청년 18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 이들은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하며 기존의 ‘직선형 생애 경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생애 경로는 ‘전통적 이행형(얼리버드형·리셋형)’과 ‘탈표준화 경로형(유목형·경로차단형)’으로 구분됐다. 전통형은 시행착오 끝에 안정으로 수렴하지만, 탈표준형은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반복적인 단절을 경험하거나 사회문화적 제약에 의해 기회 자체가 차단된다.

이정민 부연구위원은 “청년의 결혼 지연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안정의 반영”이라며 “결혼과 일자리가 맞물린 현실을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가족의 기대·통제가 만든 심리적 장벽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은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니다. 가족의 기대와 통제, 희생 구조 속에서 자율성을 억압받는 청년들도 많았다. 일부는 결혼을 “개인의 독립이 침해되는 관계”로 인식하며, 자기결정권과 정서적 회복을 돕는 심리상담·자립훈련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연구원은 “청년이 가족으로부터 심리·공간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독립주거와 가족소통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성별 인식의 간극··· “남성은 책임, 여성은 부담”

남성과 여성의 결혼 인식은 뚜렷하게 달랐다. 남성 청년은 결혼을 “경제적 안정이 전제된 사회적 성숙의 단계”로 인식했다. 반면 여성 청년은 결혼을 “경력단절과 돌봄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로 받아들였다. 결혼을 통해 안정감을 얻기보다, 불균형한 삶을 걱정하는 경향이 크다.

이로 인해 결혼은 ‘공동의 성장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부담’으로 인식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 ‘결혼장려’ 아닌 ‘생애이행 지원’으로 전환해야

보고서는 단순한 결혼 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자립–관계–정착’의 3단계 청년 생애이행 지원체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자립 단계에서는 청년이 지역 내에서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진로·취업·주거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단기 유입형 사업보다 ‘첫출발 패키지’, ‘갭이어(Gap Year)’ 제도 등 장기 정착형 지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관계 단계에서는 단순한 ‘만남 주선’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과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 온(ON) 커넥트’ 같은 생활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자발적 관계 형성을 돕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정착 단계는 결혼 이후에도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 복귀 적응주간’, ‘첫 육아휴직 사용자 인센티브’ 등 일·가정 양립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 ‘신혼부부 리모델링 지원’ 등 주거 안정 대책과 생활 인프라 확충을 결합해 정주 여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청년의 결혼 문제는 단순한 인식 변화가 아닌, 지역 내 정주 기반과 고용 안정성의 문제”라며
“청년이 경북에 뿌리내릴 수 있는 구조적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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