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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앤디 워홀의 구두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적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는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예술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이다. 동일인물의 색감을 달리 하거나 캠벨 스프 캔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소재로 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앤디 워홀은“나는 상업 미술가로 출발했고 비즈니스 아티스트로 끝맺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전시회를 보다보니 광고와 앨범 표지 영화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구두를 뱀으로 표현한 광고 앞에 멈춰 섰다. 전율이 느껴졌다. 미혹, 매혹, 유혹이라는 단어가 깊이 마음에 들어왔다. 예쁘고 높은 하이힐을 신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게 구두는 이제 절대적으로 발이 편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이제는 신을 수 없는 하이힐을 신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구두를 보며 뱀을 떠올린 발상이 놀라웠다. 문득 아들의 미술학원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학부모 초청 수업시간이었다. 원장님이 아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중 한 아이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아있다. 바다 속을 그렸는데 바탕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원장님은 무척 잘 그린 것이라 했다. 왜 저 그림을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당연히 바다는 파란색 계열을 써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원장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 왜 빨간색으로 바다를 칠했느냐고. 다섯 살인 아이는 물고기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피를 흘려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구태의연한 생각을 뛰어넘는 신선한 발상이라며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시 집에서 아이들이 생각지 못한 그림을 그리면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왜 그렇게 했는지를 꼭 먼저 물어보라고 당부했다. 고정된 생각은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며. 아기 상어라는 동요를 즐겨 듣는 손녀에게는 정해진 색이 있다. 아빠는 파랑, 엄마는 분홍, 자기는 노랑, 할머니는 주황이다. 아기 상어에 나오는 색이 아이의 머리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색종이로 무엇을 만들던, 색칠 공부나 그림을 그리던 파랑은 아빠색인 것이다. 다른 색은 절대 아빠를 대신할 수가 없다. 이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는 손녀가 이미 색에 대해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어떻게 그것을 깨뜨리고 다양성을 가지고 가게 할 수 있을지가 은근히 고민이다. 한 가지로 굳어버린 생각이나 이미지는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생각을 다르게 한다는 것, 관점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글쓰기에서 비틀어 생각하기, 새롭게 생각하기 입장 바꿔 생각하기 등을 시도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또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삶에 있어서 발상의 전환은 무척 필요한 일이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어 변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동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의 틀을 계속 깨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친구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사유를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전적으로 친구의 생각과 노력에 동의하면서 우리는 틀에 갇히지 말자고 서로를 응원했다. 글을 쓰는 일도 무한하고 다양한 생각 속에서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요즘 더 깊이 느끼고 있다. 앤디 워홀의 구두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그의 유연하고 독특한 생각과 예술을 향한 그의 치열함을 배우고 싶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의 전시회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를 나서는 발걸음이 자꾸 뒤로 돌아가고 있는 듯 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4-12

국회의원이 대통령 방탄경호원인가

생수병에 소주를 채우는 의원들이 답답했다. 한심한 의원들의 언행이 언짢다 못해 참담했다. 지난 9일 수원 지검 앞. 민주당 의원들이 편의점에서 소주 4병과 생수 3병을 샀다. 카메라 앞에서 소주를 생수통에 바꿔 넣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고는, 진술을 조작해 기소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걸로 무엇이 입증됐다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국회 ‘윤석열 정권 조작 기소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조작 기소 국조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다. 이들은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연어회로 파티를 열어주고,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의 주범이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진술하게 회유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뭐 하는 건가. 국회의원이 그렇게 한가한가. 이란 전쟁으로 세계가 위기다.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됐다. 우리가 완전히 의존하는 미국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주역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유무역과 관련한 기존 합의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유럽 동맹들을 손보겠다고 위협했다. 한국을 콕 집어 표적으로 삼았다. 그는 지난 6일 북한이 핵탄두를 45개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넘어, 악마의 무기라는 ‘집속탄’까지 실험했다고 위협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머리를 숙였는데도, 북한은 겨우 외교부 국장을 내세워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 섞인 해몽”이라고 모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이 대통령은 양측으로부터 모두 무시당하고 있다. 한국 주가가 이 정부 들어 크게 폭등했다. 그런다고 안심할 수 있나.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다. 조그만 자극에도 요동친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증거다. 관리를 잘하면 더없이 좋은 자산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폭락할 위험도 안고 있다. 국민의 대표들이 생수통에 소주 채우기나 보여줄 한가한 때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권익을 챙겨야 할 대변자다. 사리사욕, 당리당략을 도모해도, 최소한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지금 그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나. 아니면 권력자의 방탄막이 되려고 기를 쓰나.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를 요구하는 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안팎으로 비판받았지만 자제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마저 “이상한 모임”, “미친 짓”이라고 질타했겠나. 그런데도 당내에 ‘조작기소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국회에도 국회 국정조사특위까지 만들었다. 굳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경호조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무리를 지어 대통령 경호를 지상 과제로 내세운다. 그걸 무슨 훈장이나 완장, 깃발처럼 휘두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88년 제정 당시부터 있던 조항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치만큼 부패 위험이 큰 집단이 없다. 견제도 쉽지 않다. 국회 다수당이 면죄부를 남발하면 정치 부패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지금 민주당의 행태가 그런 우려를 증명한다. 민주당은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한 박상용 검사를 직무 배제하고, 탄핵 소추하겠다고 위협한다. 이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들을 공소 취소해 원천 무효로 만들겠다고 한다. 정권을 쥔 민주당 의원들이 증인들을 일일이 만나 ‘회유’ 진술을 종용한다면, 그들이 비난한 대로, 연어회로 진술을 유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장영수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치가 사법을 좌우한다는 것은 법과 정의가 사라진 무법천지가 초래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문제가 있다면 정상적인 법 절차로 해소하는 게 옳다. 이들이야말로 정상적인 법 절차로는 이 대통령이 혐의를 벗기 힘들다고 믿는 게 아닌가. 민생은 뒷전이다. 과잉 충성으로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보신을 꾀한다. 부당하게 개입할수록, 이 대통령의 혐의만 굳혀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4-12

‘탄탄의 풍경소리’ 孤峯頂上을 향한 깨달은 구름 한 점

어릴 때는 참 무료했다. 시간이 꼭 멈추어 선 듯, 술도 마셔야 하는데, 담배도 피우고 이성도 만나야겠는데, 너무도 세월이 슬로우로 흐르더란 말씀이다. 그때 시간을 죽이려 오락실을 드나들거나 학교 뒷동산에 숨어들어 발랑까진 조숙한 몇몇 까까머리 친구 녀석들과 담배도 피우고 야한 외국 칼라사진도 주고받으며 세월을 낚거나 그 일도 정 따분하여 지면 즐겨 읽던 책이 있었으니, 남로당 좌익 아버지의 원죄를 짊어지고 평생토록 연좌제의 낙인을 끌어안고 살다가 세상 떠난 김성동 선생의 『만다라』란 장편소설과 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번역한 『대망(大望)』이라는 이름의 소설책 이었다. 훗날 세월이 한 참을 흐른 후에 보니, 참으로 내 ‘인생의 바이블’이기도 했고 ‘인생의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고도 하겠다. 만다라는 지금 읽어도 어려운 불교용어와 대망은 수십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두 서사적 특징, 그것이 내 인생의 방황과 맞물려 많은 통찰을 하게끔 한 이유는 ‘불교적 깨달음과, 야마오카 소하치가 그려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기다림의 달인’으로 미화한 부분에 충분히 매료 된 이유에서였다고 하겠다. 이만 각설하고, 얼추 30년도 더 된 에피소드지만, 난 그때 속리산 법주사에서 중물(치문)을 들이고 있었다. 장판때(강원)좀 묻히라는 스승의 당부를 받들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법주사 큰방에서 살 때, 무작정 지루한 시간을 죽여야 하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하던 차에, 참 크게 매료된 큰 인물이 있었다. 불교사의 마지막 전설적인 큰 스님 ’월탄대화상(月誕大和尙)‘이신데, 꼭 속리산 청동 미륵대불처럼 법당(풍체)도 장대하시고 한국 근, 현대불교사에 있어 미륵불처럼 장엄히 우뚝서신 어른스님의 산중토굴인 ’미륭당‘을 드나들거나 큰 스님 주석처(駐錫處)인 청주 무심천변 용화사(龍華寺)에 머물 때, 만나진 인연이 각생, 각운 두 형제 스님이다. 월탄화상의 문하(門下) 여러 스님 중에 많은 스님들과도 그 인연의 깊이가 깊다고 하겠지만, 그중 가장 인간미 넘치는 각생스님과는 유독 많은 추억이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 서로의 의지처가 되어 주기도 하고 여행도 함께하며 궁색한 처지에는 엽전도 나누어 쓰며 더불어 어울렁 더울렁 살았는데, 지금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심도인(無心道人)이었던 각생스님은 세속의 미련이 깊지 않아서인지, 그리 명이 길지 못해 갓 회갑을 넘기고는 운명을 달리했다. 그 때 각생스님을 그리며 내가 쓴 몇 자의 글이 있는데, 아마도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형님, 속리산 시절이 마냥 그립습니다. 공양간에서 삼색 나물에 참기름, 고추장 넣고 맛나게 비벼 먹은 점심공양은 지금도 가끔 군침을 돌게 합니다. 올해 초 음지에 서러운 듯 나 홀로 핀 선홍빛 진달래가 채 지기도 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실속 없이 분망하기만 했던 못나고 무정한 아우를 찾아오셨을 때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놀아드리지도 못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가시니 이제야 가슴을 치며 후회가 막급할 뿐 입니다. 운제산의 초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낙엽이 한 올도 없이 우리네 인생처럼 헐벗어 있습니다. 깊은 밤이 되었지만 밖에는 바람 소리만 을씨년스럽고, 고즈넉한 산중 깊은 암자에선 저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생 형님! 얼추 30년 성상이 다 되어가는 형님과의 지난 세월을, 그 수많은 추억을, 이제 가슴에 묻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사시기도 시간에 법당에서 촛불이 춤을 추며 타들어 가고 잠시 눈을 감고 무상계를 한편 독송해 보았습니다. 수일 전 2시간 남짓 다비 후 남은 형님의 한 줌 유골을 보며 허망하고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뜨며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 모습도 저러하지 않겠는가 하는 무상의 가르침이 내내 교훈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 훌륭한 명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죽음이 늘 멀리에 있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살다가 오늘 죽음을 생각한 하루는 삶을 생각하는 하루보다 더 값진 하루였습니다. 각생 형님! 죽은 자를 기리는 제삿날은 또 누군가의 생일날이듯, 살고 죽는 것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이들이 떠날 때면 다시는 살아서는 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가슴 아픈 영원한 이별에 이 중생은 통한의 눈물이 흐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벌거벗고 와서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벌거벗은 채로 훌쩍 고독사(孤獨死)로 가신 각생 형님! 다음 생에는 눈 깜짝할 사이 번갯불에 콩 볶아 내는 그런 짧은 세월을 사는 허망한 인생살이는 이제 그만두시어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이나, 오랜 세월 산다는 나무로 태어나서 천 년 만 년 세월을 굳게 우뚝 서 견디어요. 다음 생에는 골골 아프지도 말고 백 년도 못사는 인생 노릇보다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천년쯤만 살아보자구요. 속리의 천년 세월 묵묵히 지켜보는 정이품송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살길을 걸어봅시다. 아우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삶이란 덧없는 집착에서 벗어나 여여하게 남은 인생 세찬 삶의 여정을 굳굳하게 잘 걸어서 다 마치고 난 뒤에 저승에서 다시 형님을 뵈올 때는 우리 스승님의 간곡하신 당부로 미처 마시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곡차나 실컷 배가 터지도록 마실 텝니다. 天堂佛刹 천당불찰 隨念往生 수념왕생 快活快活 쾌활쾌활 이제 천당이나 부처님 계신 곳에 마음대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쁘고 기쁜 일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각생스님 영전에 받치는 나의 마지막 조사였다. 속가에서는 피를 나눈 형제의 인연으로 각운은 각생의 아우였으나, 한 은사스님의 문하에서 출가하여 각운은 다시 각생의 사형이 되었다. 그러한 각운스님과도 함께한 기억에 가물가물 하지만, 용화사에서 몇날 며칠을 밥도 먹고 곡차도 한 잔하며 더불어 살던 그때의 각운스님은 사판(事判)이기도 했지만, 늘 이판(理判)을 꿈꾸던 수좌(首座)이기도 하여서 수북이 쌓인 불전(佛錢)을 손금이 다 닳도록 세다가도 “이놈의 노릇은 그만두어야지”하며 늘 좌복에 대한 미련을 지니고 살던 이였다. 좌복이란 단순히 방석이 아니라, 이를테면 ‘단두대’이기도 하다. ‘나’라는 아상(我相)이 죽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삶(깨우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은사스님이 주신 깨달을 각(覺)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명을 밝히려는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이며 제 몸에 불을 지피는 자기와의 고독한 투쟁이다. 좌복 위에 앉은 수좌의 등줄기는 늘 서릿발 같이 곧두서야 하며, 그 기세는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노리듯 절박해야 하며, “한 생각 일어나지 않으면 온 우주가 멸하고, 한 생각 깨어있으면 만물이 거기서 살아난다.” 이것이 눈 푸른 수좌가 시시때때로 품고 지키는 자리(座)의 무게라 하겠다. 어린 시절에 아궁이 연탄 불꽃 위에서 얻은 육신의 흉터를 평생 지니고 사는 각운은 채워 질수 없는 아픔과 결핍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절 60년 대 쯤에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끼니보다 더 깊었던 마음의 허기를 늘 품고 있었으니, 그‘유년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어쩌면 눈 푸른 납자(衲子)각운은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늘 치열했다. 온기의 발원지에서 얻은 잔인한 큰 상처, 발가락이 몇 개 잘려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몸뚱이에 새겼지만, 그 뜨거웠던 통증이 훗날 수행자의 길에서 마주한 그 ‘번뇌의 불길’과 어쩌면 그리 닮아 있었다. -파격(破格)을 보이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각운(覺雲)’은 깨달음조차 집착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극치를 말한다. 구름이 청산(靑山)을 감싸 안고 있지만 청산을 속박하지 않고, 청산을 떠날 때 백운은 미련을 두지 않는다. 진정한 도인이란 깨달았다는 생각조차 버린 사람이다. 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되듯, 깨달음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참된 구름이 아니다. 백운은 떠돌아도 자취가 없고 지니어서 집착하는 바 없이 행운유수(行雲流水), 구름에 달 가듯이 흐르는 물처럼, 인연 따라 사라지고 인연 다하면 그저 소멸할 뿐, 그 어디에서도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증명하는 삶이다. 각운은 수십 안거를 나며 이제야 말길이 끊어진 격외선(格外禪)도리를 넘어선듯하다. 그의 내공에서는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와 있는 듯, 이제 계란으로 바위를 쳐 그 바위를 깨려는 몸부림을 감행하려 한다. 문: 무엇이 수좌의 본분입니까? 답: 서쪽 산에 해 지니, 동쪽 계곡에 달이 뜨는구나. 이 문답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천진난만함, 그대로가 곧 깨달음의 현현(顯現)이며 낙처(落處)가 분명하다 하겠다. 그 수행이 깊은 수행자는 진리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존재 자체로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당당하고 여여(如如)할 뿐. 이제 각운에게 서슬 퍼런 칼 한 자루, ‘취모검(吹毛劍)’이 쥐어져 있으니 그 칼의 용도가 자못 궁금하다. 구참이 된 각운스님이 청산이 되려하는지, 백운이 되려하는지, 이제 더 좀 두고 볼일이다. 그 갈증의 끝이 과연 어드메인가? 萬里靑天 一點紅日 만리청천 일점홍일 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 하처야진애 만 리 푸른 하늘에 붉은 해 하나 솟아오르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와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

2026-04-10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인식되는 교사직은 시대흐름에 따라 다소 변동은 있으나 대체로 희망 직업으로서는 인기가 높은 편에 속한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매년 조사하는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교사는 십수 년째 선두그룹을 지키고 있다. 2023년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은 교사를 운동선수, 의사 다음으로 세 번째 희망 직업으로 꼽았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의사, 연구원, 운동선수 등을 제치고 교사를 1위로 꼽았다. 과거 기준으로 하면 교사 직업은 보수 면에서 회사원과 큰 차이가 없는 데다 사회적 예우도 나쁘지 않아 오랫동안 학생이나 학부모의 희망직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교사들의 이직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교육기반이 자칫 흔들릴까 봐 걱정된다는 교육계의 목소리가 있다. 국회교육위원회 소속 김대식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6704명이던 전체 중도퇴직 교원 수가 2024년에는 7988명으로 1200여 명이 늘었다. 특히 저연차 교원 중심으로 중도 퇴직이 늘고 있고,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으로 분석이 된다고 한다. 교사 이직이 늘어난 이유는 다양하다. 대기업 등 민간기업과 비교해 연봉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데 대한 박탈감을 꼽는 사람도 있다. 또 교권침해로 인한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라 한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대한 교사들의 심리적 부담을 퇴직 이유로 꼽는다는 것이다. 과중한 행정업무도 다른 이유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존경받으면서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무너진 것이 교사를 교단 밖으로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4-09

벌거벗은 임금님의 교훈

‘벌거벗은 임금님’, 누구에게나 친숙한 안데르센의 동화다. 권력의 위선을 이보다 더 쉽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우화는 드물다. 임금의 허영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허구적 상상력에 매료되고 마침내 벌거벗은 채 행진을 감행한다. 모두가 임금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권력 앞에서 사람은 진실보다 먼저 안위를 택한다. 위선과 침묵은 그렇게 새로운 질서가 된다. 마침내 한 아이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임금님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그 한마디는 권력 앞에 길들여진 침묵을 깨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오늘날 국제정치에도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군사행동에 나서고, 그 여파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누군가는 생명을 잃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시민들조차 유가와 환율, 금융시장의 동요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전쟁은 총성이 닿는 곳을 넘어, 평범한 일상과 오랜 기간 형성해 온 국제질서까지 함께 허문다. 그런데도 세계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사라지고, 외교적 차원의 공식 논평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힘센 국가의 일방적 폭력을 잘못이라 부르지 못한다. 냉혹한 국제 질서에서 국가의 힘은 곧 명분이 되고, 침묵은 생존 전략이 된다. 물론 국제정치는 냉엄하다. 국가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 특히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모든 사안을 도덕적 언어로만 재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안보와 외교, 경제가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 있는 자의 행동에는 관대하고, 약한 자의 저항에는 엄격한 국제질서는 정의롭지 못하다. 원칙이 국력에 따라 달라지고, 도덕이 진영에 따라 변한다면, 그 세계는 오래 버틸 수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사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권력은 늘 화려한 언어와 장엄한 명분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사람들은 거기에 압도되고, 침묵은 신중함으로 포장되며, 비겁은 현실주의라는 합리적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 장식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 분명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임에도 전 세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진을 바라보는 군중들처럼 숨죽이며 다음 행보를 지켜본다. 지금 우리에게는 잘못된 전쟁 앞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동맹이라는 이유로 판단까지 위탁하지 않는 이성, 힘 앞에서도 원칙을 접지 않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벌거벗은 임금의 행렬은 늘 성대하다. 주변은 간신들의 아첨과 박수로 가득하고, 침묵은 충성으로 오인된다. 그러나 그 행렬을 멈추는 것은 대포도, 군대도 아니다. 단 하나의 진실한 외침이다. 지금 전 세계가 기다리는 말도 결국 그것일지 모른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4-09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

이제 물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가도 금세 가뭄이 이어지고, 도시에는 사람이 몰리고 산업은 더 많은 물을 요구한다. 대구·경북도 이런 복합 위기 한가운데 있다. 예전처럼 댐을 더 짓고 관로를 더 놓는 방식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건설비는 커지고, 입지는 줄고, 환경 갈등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 정책의 중심은 “어디서 더 가져올까”에서 “지금 가진 물을 어떻게 덜 새게 하고, 더 똑똑하게 쓰고, 다시 쓸까”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물 수요관리의 출발점이다.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은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하다. 새 물을 찾기 전에, 우리 손안의 물부터 제대로 관리하자는 계획이다. 크게 보면 세 축으로 이뤄진다. 첫째, 물이 생산·공급되는 단계에서 누수를 줄이고 유수율을 높이는 일이다. 둘째, 한 번 쓴 물을 다시 활용하는 재이용 단계다. 셋째, 가정과 건물, 공장 같은 최종 사용 단계에서 절수 설비와 효율적 소비를 늘리는 일이다. 강점은 분명하다. 댐 하나를 새로 짓지 않아도 물·예산·탄소를 함께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제5단계(2026~2030)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은 이런 관점을 더 체계화해 지역별 목표관리와 데이터 기반 행정, 주민 수용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ESG형 거버넌스로 나아가고 있다. // 해외와 국내 사례도 방향을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도시 물관리계획을 5년마다 세우며, 수요관리와 가뭄 대응, 재이용수 활용을 함께 다룬다. 일본 도쿄는 1982년 15%였던 누수율을 장기적인 관 교체와 기술 투자로 3.2% 수준까지 낮췄다. 국내에서도 노후 상수관로 정비를 마친 지자체들은 평균 누수율을 10.8%포인트 낮추는 성과를 냈다. 이런 흐름은 대구·경북에 더 절실하다. 2023년 기준 대구의 유수율은 93.8%, 누수율은 1.9%로 비교적 우수하지만, 경북은 유수율 74.6%, 누수율 20.5%로 격차가 크다. 즉, 대구는 공공시설·대형건물 중심의 절수, 스마트 관망, 가뭄 단계별 수요절감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처럼 맑은 물은 더 이상 무한한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경제적 비용과 고도의 기술력, 그리고 이웃 지자체 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 확보해 내는 가장 값비싸고 희소한 사회적 공공재다. 대구·경북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물을 얼마나 더 끌어오느냐보다, 지금 있는 물을 얼마나 오래 버티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제도 분명하다. 노후 관로 정비, 재이용수 인식 개선, 데이터 기반 관리, 지역 간 협력 체계가 더 촘촘해져야 한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물 수요관리 종합계획’은 절약 캠페인이 아니라 도시와 산업, 농촌을 함께 지키는 생존 전략이다. 새 물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흘려보내던 물 그냥 지나치던 습관, 손보지 않던 시스템 안에 있다. 대구는 도시형 효율 관리의 모범을 만들고, 경북은 광역 물 안보 전략을 세운다면, 이 계획은 단순한 행정 문서를 넘어 대구·경북의 미래를 떠받치는 필수 행동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4-09

오류를 바로잡을 의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편함을 느낀다. 머리로는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오랫동안 믿어 온 지식일수록 더 그렇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의 믿음을 지키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단정해 놓은 것을 이해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논쟁이 싫다면 그냥 똥이라 부르고 넘어가는 것이 마음 편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자신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씁쓸함도 적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충남 공주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을 처단한 뒤 인천 형무소에서 탈옥한 김구가 승려로 변장해 이곳에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다. 절에는 그가 심었다는 향나무와 ‘법명은 원종’이라는 안내문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김구가 머물렀던 곳은 대광명전 앞의 백범당이 아니라 마곡사 인근 암자인 백련암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많은 방문객은 백범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곳이 은신처였다고 믿는다. 한번 굳어진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 사례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된다.”라는 시구는 흔히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 시는 조선 후기 문신 이양연의 ‘야설’이라는 작품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일부 사찰과 안내문에는 여전히 서산대사의 시로 소개되어 있다. 익숙한 이름이 더 권위 있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내용을 반복하는 일은 역사 이해를 흐리게 만든다. 문학사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진다. 한국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작가가 허균이라는 통설 역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의 친구 이식의 문집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만, 해당 자료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더구나 허균이 남긴 다른 한글 작품이 없고 작품 속 시대 상황이 그의 생애와 맞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무명의 작가가 허균의 명성을 빌려 작품을 발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허균의 작품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발견되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문적 논쟁은 계속되지만, 대중의 인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여부보다 익숙함이 더 큰 힘을 갖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가 어느 정도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틀린 것을 바로잡기보다 그대로 두는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과 역사라는 것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에서 발전된다. 작은 오류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 없이 쌓인 정보는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물론 일상의 삶에서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따져가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틀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태도는 필요하다. 사소해 보이는 것도 정확하게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쌓일 때 우리의 역사와 문화도 조금 더 또렷해질 것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4-09

보경사 사명대사 진영에 그려진 수염

규모가 큰 사찰에 가면 조사당(祖師堂)이나 진영각(眞影閣)이 있고, 거기엔 고승들의 진영(眞影)이 봉안돼 있다. 진영이란 글자 그대로 ‘참모습’이란 뜻으로 흔히 초상화 또는 영정이라고도 한다. 포항 보경사의 경우 이름은 다르지만 원진각(圓眞閣)이 그런 역할을 한다. 원진각은 본래 고려말에 보경사 주지를 지내면서 보경사를 크게 일으킨 원진국사(圓眞國師)를 기리기 위해 지었으나 후에 보경사를 창건한 지명법사(智明法師)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함께 모시면서 진영각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에 진영이 가장 많이 봉안된 고승은 아마 임진왜란 때 승병장(僧兵長)으로 크게 활약한 사명대사(四溟大師)일 것이다. 사명대사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김천 직지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금강산 건봉사에서 승병을 일으켜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공을 세웠고, 해인사에서 입적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표충사, 직지사, 건봉사, 해인사는 물론 통도사, 월정사, 동화사, 범어사, 보경사 등 사명대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전국 20여 개의 사찰에서 그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건봉사와 표충사에는 동상까지 세워두었다. 보경사 원진각에는 창건주인 지명법사(智明法師)와 중창주인 원진국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진영 15점이 봉안돼 있다. 여기에는 수염이 텁수룩한 모습의 사명대사도 있어 눈길을 끈다. 다른 열네 분의 고승들은 수염이 없는데, 사명대사만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사명대사가 보경사에 주석한 일은 없지만, 보경사 오층석탑의 조성기인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1588)를 지은 인연으로 해서 대사의 진영을 모시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경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유명 사찰에 봉안된 사명대사의 진영은 한결같이 수염이 텁수룩한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동상도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수염 기른 승려’를 상상하기 어렵기에 참배객의 입장에서는 의아스럽다. 사명대사의 진영 중 가장 이른 시기인 임진왜란 직후에 그려진 것으로 짐작되는 동화사 진영에도 사명대사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 실제로 수염을 길렀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삭발은 수행의 필수 과정이기에 승려들은 출가할 때 당연히 머리를 깎는다. 삭발은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며, 승려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도 출가하여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따라 하는 것 자체가 본받으려는 의미가 있다. 수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떤 연유로 사명대사의 진영은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표현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사명대사는 실제로 수염을 길렀다. 스승인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수염 기른 사명을 보고는 머리는 깎았으면서 왜 수염은 그냥 두었느냐고 묻자, 머리를 깎은 것은 속세를 떠났다는 뜻이고, 수염을 기른 것은 대장부의 기개를 나타낸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후 전후 협상을 위한 사신으로 임명되어 일본에 건너갔다가 쓴 ‘대마도객관(對馬島客館)’이란 시에 자신의 수염 이야기가 나온다. 病扃賓館痛生牙 坐筭平生百不嘉 削髮作僧長在路 留鬚效世且無家 (후략) 위의 시 4행 留鬚效世且無家(수염 길러 세속을 배웠으나 집이 없다네)에 수염을 길렀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로 보아 사명대사가 수염을 기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김정중(金正中)의 ‘기유록(奇遊錄)’(1792)에는 사명대사 진영에 그려진 수염을 보고 쓴 기록이 전하는데, “서산영당(西山影堂)에 이르니, 당은 모두 두 채로 벽에 두 초상을 걸었는데, 하나는 서산(西山)이고 하나는 송운(宋雲), 곧 서산의 고제(高弟)인 사명당(泗溟堂)이다. 머리는 깎았으나 수염은 몇 치나 되니(仍到西山影堂, 堂凡二楹, 壁掛二綃像, 一則西山, 一則松雲, 是西山之高弟泗溟堂也, 祝髮而髥表數寸)”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때에도 사명대사 진영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 ‘임진록(壬辰錄)’에는 임진왜란 후 사신으로 임명된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수염 이야기다. “왜인들은 사명대사를 구리로 만든 집에 모셨다. 그리고는 문을 잠그고 사면에 숯을 쌓고 불을 피웠다. 사명당이 그 간계를 알고 사면 벽에 ‘서리 상(霜)’ 자를 써 붙이고, 방석 밑에는 ‘얼음 빙(氷)’ 자를 써놓고 팔만대장경을 외니 방 안이 빙고(氷庫) 같았다. 이튿날 아침, 왜인들이 사명대사가 죽었겠거니 하면서 문을 열어 보니 사명대사의 눈썹에는 서리가 맺혀 있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사명대사는 놀라는 왜인들을 보고 “왜국이 남방이라 덥다 하더니 어찌 이러하게 차냐?” 하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전규태 주해 ‘홍길동전·전우치전·임진록’ 참조) 이처럼 사명대사는 실제로 수염을 길렀다. 전국 여러 곳의 사찰에 걸려 있는 초상화와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의 수염은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길렀다기보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끄는 장수가 되면서 ‘이미지 관리’의 필요에 의해 길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기에 사명대사 진영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기개가 서려 있는 장수의 이미지가 묻어난다. 동화사 진영에는 아예 화제(畫題)를 사명당대사(四溟堂大師)가 아닌 사명당대장(四溟堂大將)이라 적었을 정도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6-04-09

포스코 직고용 확대가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

포스코가 협력사 직원 7000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숫자만 보면 고용 정책의 변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의 본질은 수치적인 채용 확대가 아니다. 철강 생산 방식과 지역경제 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체질 전환’에 가깝다. 철강 산업은 오랫동안 원·하청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돼 왔다. 대규모 설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특성상 다양한 협력업체와의 분업 체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험의 외주화’와 생산 책임의 분산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늘 따라붙었다. 이번 결정은 이 틀을 혁신하겠다는 선언이다. 포스코가 직접 고용을 택한 것은 안전을 비용이 아닌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생산과 안전을 하나의 체계로 묶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특히 탈탄소와 고부가 철강으로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점에서, 현장 통제력과 공정 연계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 이 변화는 포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던진다. 포항은 여전히 제철소 중심의 단일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에서는 포스코의 고용과 임금이 곧 지역 소비와 직결된다. 협력사 인력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고용 안정성과 소득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소비 여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단기적인 소비 증가만으로 이번 결정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미 이들은 지역에서 일하고 소비해 온 인력이다. 숫자 자체가 지역경제를 단숨에 끌어올릴 정도는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변화는 ‘사람의 이동’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는 사람은 떠난다. 특히 청년층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반대로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람을 붙잡는다. 포스코의 이번 결정은 고용자의 지위 변경 차원이 아닌 포항에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주는 장치다. 이는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지역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해법 중 하나다. 물론 부담도 있다. 협력업체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산업 생태계는 재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부 업체는 역할 축소나 구조 조정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산업이 변하지 않으면 지역도 버티기 어렵다. 지금의 선택은 ‘불편한 변화’를 감수하고라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국 이번 조치는 포스코가 정부 방침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다. 원하청 구조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현장 안전관리체계를 혁신함으로써 통합 관리와 책임 경영으로 나아가는 노사상생모델 구축의 신호탄이다. 철강 산업은 지금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탈탄소, 보호무역, 공급 과잉이라는 삼중 압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포스코의 7000명 직고용은 그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이 선택이 일회성에 그칠지, 아니면 포항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이제 실행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결정이 한 기업의 고용 정책에 그치지 않고 포항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4-08

미국과 이란, 종전의 길 찾기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폭격, 이에 저항해 이란이 중동 내 미국의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1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세계 각지로 원유를 공급해온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봉쇄조치로 막히면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유가는 폭등하고, 주가는 널뛰기를 지속하고, 석유화학물질로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필수품 공급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인 것. 전쟁은 먼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실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란 전쟁’ 이전보다 30% 가까이 오른 주유소 기름값은 가계를 주름지게 했고, 쓰레기봉투를 사재기하는 보기 드문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서민들의 걱정도 갈수록 커졌다. 천만다행으로 8일 오전 외신을 통해 반길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이 앞으로 2주간 휴전할 것에 합의했다고 한다. 7일 밤까지만 해도 미군이 이란 내 각종 시설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예고하고 있었던 터라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번 휴전 협상에는 파키스탄이 중재자 역할을 하며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시간 2주 연장을 제의한 파키스탄의 의견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적이고 안전한 개방’을 휴전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간 이란은 대외적으론 미국에 대한 결사항전을 선언하면서도 파키스탄의 2주 휴전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왔다. 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돌이킬 수 없이 피해가 커질 게 분명하니까. 이 기간 동안 두 나라가 적극적 협상을 통해 휴전이 종전(終戰)으로 가는 평화의 길을 찾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08

포스코 직고용, ‘결단의 크기’만큼 ‘실행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 7천여 명을 직고용하기로 결단했다. 오랜 갈등을 매듭짓고 지역사회와 산업 현장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고용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포항의 미래와 직결된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다만 큰 결단일수록 그 이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발표 자체만으로 모든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평가는 선언의 순간이 아니라, 그 결정 효과가 현장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안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직고용이 진정한 상생의 결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적잖다. 노사정이 전환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현실적 과제들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 직고용 전환의 대상과 기준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같은 현장에서 함께 땀 흘려온 이들 사이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희비가 엇갈린다면, 기대했던 상생은 또 다른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인력들에 대해서는 어떤 보호와 지원 방안이 뒤따를 것인지 분명한 설명과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기존 협력업체의 존립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 포스코와 함께 생산 현장을 지탱해 온 포항 산업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이번 조치가 오랜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경영 기반이 급격히 흔들려 또 다른 고용 불안이나 지역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협력업체가 앞으로 어떤 역할로 지역 산업과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도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직고용 이후의 처우와 근무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일도 중요하다. 고용 형태의 변화가 실질적인 책임감과 소속감으로 이어져야 하고, 기존 인력과 전환 인력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또 과도기적 상황에서 안전관리와 생산운영에 단 한 치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직고용의 핵심 취지 중 하나가 안전관리체계의 혁신에 있는 만큼, 그 성과 또한 현장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포항은 철강과 함께 성장해 왔다. 포스코의 변화는 곧 포항의 변화다. 수천 명의 고용 안정이 가져올 긍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이 결정이 지역 협력업체 생태계와 주변 상권 전반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더 고민하고 숙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번 포스코의 결정이 기업 내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포항 전체를 살찌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포항제철소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직고용 발표에 앞서 시민의 눈높이에서 우려되는 현실적 문제들을 포스코 측에 전달한 바 있다. ‘결단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전환 기준의 투명성, 제외 인력과 협력업체에 대한 대책, 조직 융화와 안전관리 방안,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폭넓게 검토해 달라’는 것이 의견의 요지였다. 이러한 의견 제시는 이번 결정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결단이 품고 있는 뜻이 큰 만큼 그 결실의 온기가 고스란히 포항 바닥 곳곳에 퍼졌으면 하는 차원이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선언이 클수록 실행은 정교해야 한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곧 포항의 경쟁력이다. 포스코의 이번 직고용 결단이 현장의 세밀한 목소리까지 담아내어 전환기의 불안과 충격을 최소화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안착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노사와 지역과의 진정한 상생이다. /국민의힘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

2026-04-08

부정적으로도 생각해 봅시다

참 아끼는 동생이 한 명 있다. 의리가 있고 언행이 솔직해서 여러모로 믿음이 가는 동생이다. 그런데 그에게 딱 하나 고쳐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바로 시간 약속의 문제다. 그는 항상 늦는다. 적게는 일이십 분, 많게는 한두 시간까지 늦어 주변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그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나와의 사적인 약속에 늦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해줄 수 있지만 그가 아주 중요한 약속에서 늦는 바람에 낭패를 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항상 갖고 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자신도 그런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는데,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충고하는 것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한 마디 했다. “넌 지나치게 긍정적이야.” 그가 나와 오후 두 시에 시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황이라고 상상해보자. 그의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로 30분을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가면 시청에 도착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는 그것을 한 시간 거리라고 생각하고 한 시에 집을 나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계산이다. 한 시간 만에 그가 도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순간이동을 해야 하고, 역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지하철이 도착해야 하며,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도착해서 문이 열려야 한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교통체증 같은 것도 절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고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변수는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고 때때로 최악도 일어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작은 일이 하나 생길 때마다 도착시간은 몇 분 씩 지연되고 그것들이 더해져 한 시간 두 시간을 늦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데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지금은 조금 덜 해진 것 같지만 온 세상이 ‘긍정’이라는 말에 미쳐있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모든 책들이, 당시 티비속에서 ‘긍정! 긍정!’을 외치던 어느 예능인처럼 다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유행이 다소 못마땅하게 느껴졌던 것은 내가 부정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색하지 않는 불만과 걱정이 많고, 세상 사람들과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긍정 일변도의 사고는 일종의 마취제다. 걱정과 불안은 확실히 삶을 괴롭게 하는 일이고,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확실히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마취제에는 어떠한 치유효과도 없다. 상황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저 긍정을 외치며 고통을 모면하려 하는 것은, 환부가 곪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치료하려고 하기보다는 마취제로 버티는 방식을 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통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라도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고, 아니면 애초에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다. 부정적인 사고는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한다. 문제를 인지하고 이것이 심화되었을 때 내가 겪게 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빠르게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부정적인 사고다. 행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미리 염려하여 그 가능성을 낮추는 것도, 아니면 그것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부정적인 사고다.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덕분에 나는 보다 원활하게 내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먼 지역에서 공연이 잡혔을 때 최악의 교통상황을 상상하고 여유롭게 출발하거나 전날 미리 현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잠을 자는 것, 혹시나 공연장에 갖추어져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장비를 미리 여분까지 넉넉하게 챙기는 것. 이런 것들이 나를 지켜준 횟수가 꽤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성향이 처음부터 내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긍정이 안일함이 되는 바람에 박살 나 본 경험이 내게도 몇 번 있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내게 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긍정과 부정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단어만 보면 ‘긍정’이 긍정적이고 부정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엇이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매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생의 태도가 부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동안 나를 지켜준 부정의 가치를 믿는다. 그에게도, 내게도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내는 지혜가 있길 바란다. /강백수(시인)

2026-04-08

영원 같은 잠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스포를 일부 포함하고 있음을 알린다. 최근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았다. 두 시간 반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인상적인 장면이 꽤나 많았지만,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잠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그레이스(인간)와 로키(외계인)의 첫 만남 후, 로키는 잘 자라는 그레이스의 인사에 자는 모습을 지켜봐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자는 모습을 지켜본다니, 인간의 관점에선 다소 소름 끼치고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레이스도 같은 이유로 로키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로키는 진지하게 덧붙인다. 잠들었을 때는 위협에 대비할 수 없으므로 서로 지켜봐 주는 거라고, 지켜봄으로써 지켜주는 거라고. 이들은 영화 내내 가까이에서 잠을 자며, 서로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고 또 지켜봐 준다. 그레이스의 지친 잠을 로키가 지켜주고 로키의 영원 같은 잠을 그레이스가 지켜준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잠’은 필수 요소이다. 포유류 중에 가장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바다표범도 하루 두 시간은 숙면을 취해야 한다. 물론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처럼 수면 시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생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에겐 길든 짧든 일정한 수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몸은 재정비에 돌입한다. 과학적으로 수면은 뇌와 신체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수면 중의 뇌는 깨어 있는 동안 쌓인 노폐물을 내보내고, 기억을 정리한다. 우리의 몸은 세포를 재생하고 면역 체계를 강화한다. 잠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상승하며 스트레스가 완화될 뿐만 아니라 각종 성인병과 질환을 예방해주는 효과까지 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토록 활발한 우리의 몸과 달리, 잠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정신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꿈을 꾸기도 하고,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져 그저 어둠밖에 없는 공간에 머물기도 한다. 의식은 사라지고 자아는 희미해진다. 잠이 우리의 의식을 꺼트리는 일이라면, 그 시간에 우리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인지, 어린 시절 대부분의 인간은 홀로 잠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부모는 아이가 잠든 모습을 지켜보고, 아이는 부모가 곁에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 옆에서 잠을 청하거나, 아프고 병든 이의 잠을 지켜준다. “잠든 모습을 지켜본다”는 로키의 말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의 잠을 지켜보며 살아온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로키는 그레이스를 구해주다 큰 부상을 입고 영원과도 같은 긴 잠에 빠진다. 로키의 잠자는 모습은 꼭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얼굴도 없기 때문에, 그레이스는 로키가 잠든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깨어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레이스는 묵묵히 잠든 로키의 곁을 지킨다. 연구하고 알아낸 것들에 대해 들려주면서 로키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레이스는 이제 로키가 부탁하지 않아도 로키의 잠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잠자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 그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당신이 건강하지 않아도, 기쁘지 않아도, 그 어떤 상태일지라도 함께하겠다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형태의 언어. 나의 무방비한 모습을 기꺼이 보여주고, 또 상대의 무방비한 모습을 기꺼이 지켜보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신뢰이자 다정한 행위. 그것이 바로 사랑 그 자체일 거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잠들고 또 잠에서 깬다. 몸이 서서히 이완되고 의식이 점차 흐려지다가 마침내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소리를 비롯한 감각이 차단되고 나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갈 것이다. 다행히 내게도 그 시간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그 사람의 잠을 지켜본다. 가장 무방비하고 연약한 순간을 지켜본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잠들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시간에 깨어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잠든 동안 나는 지독한 불안과 고독감에 휩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가장 약한 모습을 지켜보려면 반대로 나는 가장 강해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외롭지 않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영원에 가까운 잠일지라도. /양수빈(소설가)

2026-04-08

호르무즈의 파도와 대한민국의 선택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한 번 물러섰다. 최후통첩의 시한을 앞두고 ‘2주간 폭격 중단’이라는 시간을 벌었고, 그 대가로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했다. 겉으로는 긴장완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군사적 압박과 협상의 교차 지점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술적 후퇴다. 문제는 그 파장이 한반도에까지 미친다는 데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는 병목이다. 이곳이 흔들리면 국제 유가가 출렁이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곧바로 충격을 받는다. 지금 상황은 단순한 중동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질서와 해상 통제권을 둘러싼 구조적 충돌이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의 선택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첫째는 동맹, 둘째는 시장, 셋째는 자율성이다. 세 축을 조정하는 것은 ‘국익’이라는 균형추다. 먼저 한미동맹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이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보조를 맞추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동맹의 작동원리는 자동 개입이 아니라 선택적 협력이어야 한다. 군사행동에 대한 직접적 참여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대신 정보·후방 지원 등 비전투적 기여로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동맹의 신뢰는 유지하되, 불필요한 전장 개입은 피해야 한다. 둘째는 에너지시장 대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적 수사보다 물리적 대비다. 비축유 확대와 수입선 다변화, 장기계약 재조정이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적 전환 없이는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경제는 같은 충격을 되풀이할 것이다. 에너지 안보는 이제 경제정책을 넘어 국가 생존전략의 일부가 되었다. 셋째는 외교적 자율성이다. 한국은 중동에서 적대 당사자가 아니다. 이 점은 오히려 자산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이란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을 열어두는 ‘이중 트랙’이 필요하다. 갈등의 한쪽에 깊이 묶이는 순간, 한국의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원칙의 문제다. 국제정치에서 도덕은 힘을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이 있지만, 힘만 좇는 외교는 결국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한국은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원칙은 감정적 수사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은 ‘줄타기’를 요구받고 있다. 이는 우유부단이 아니라 전략적 균형감각이다. 동맹을 지키되 종속되지 않고, 시장을 읽되 요동하지 않으며, 원칙을 말하되 무력하지 않는 진정성을 지켜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파도는 멀지만, 파장은 대한민국에 가까이 있다. 파장을 피할 것인가, 읽을 것인가. 국제사회의 역학 속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국익과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 행보가 정책의 방향을 혼돈스럽게도 하지만, 국격과 국익을 지키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이란, 사우디, UAE 등 중동지역 각국의 독특한 여건들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확인하여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관계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원유시장 수입선 다변화에 초점을 두면서 시장 환경에도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위기임에 분명하지만, 기회로 만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4-08

딸깍 글쓰기를 넘어서는 방법

지난 4월 3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인 김영민 교수가 클로드와 첨삭 대결을 했다. 클로드에게 프롬프트를 준 사람도 김영민 교수다. 김영민 교수를 좋아하는 사람, 클로드와 사람의 대결을 보고 싶은 사람 13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첨삭은 바둑과는 달리 우열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이번 대결에서 첨삭 내용 중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팽팽하게 끝난 셈이다. 그만큼 텍스트 생성형 인공지능의 성능이 좋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픈AI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가 나온 것이 2022년 11월이니 이제 3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지금은 생활 곳곳에서 생성형 AI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생성형 AI는 텍스트, 이미지, 소리와 음악, 영상, 코드, 멀티모달 등 여러 기능으로 특화되어 수요자의 필요에 따라 생성형 AI를 선택할 수 있다.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그중에서 글쓰기 분야에서 사용하는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텍스트 생성형 인공지능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것들은 글이 필요한 모든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한때 대학생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과제를 제출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이제는 교수들이 나서서 이 툴을 어떻게 잘 이용할까를 가르치는 단계에 왔다. 실제로 ChatGPT가 써준 글을 처음 보면 얼마나 매끄러운지 감탄스럽다. 하지만 다시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여러 번 보면 그 이상함의 실체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글에서 인격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글쓰기 도움보다는 질문하는 정도로 몇 번 사용해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면 세상은 곧 이 한없이 매끄럽지만 매력은 없는 이런 글들로 도배될지도 모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초능력으로 딸깍 출판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딸깍 출판이란 프롬프트로 책을 만들어 빠르게 출간하는 것을 말한다. 대형 출판사의 연간 발행 권수가 200여 권이라는데, 작년 어느 출판사는 이런 식으로 9000권 이상의 AI 도서를 발행했다고 한다. 어느 출판인은 이 딸깍 출판을 세금 도둑이라고 맹비난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의무 납본하면 보상금을 주는데 이들은 이를 악용하여 책을 한두 권만 인쇄하고 보상금만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딸깍 출판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 비열한 글쓰기가 인간다움을 파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오늘 SNS 글쓰기 모임에 처음 참여했다. 자기소개도 없는 익명의 모임이었지만 어떻게 글을 쓸까, 어떤 책이 좋은가 하는 주제로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람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데, 오늘 우리는 관계 맺기의 정수를 체험한 셈이다. 제아무리 클로드가 첨삭을 잘해도 사람이 주는 프롬프트 없이는 한 줄도 글을 못 쓴다. 우리가 글쓰기 없이 한 순간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은 글쓰기의 핵심 기능인 자기성찰, 경험 공유, 관계 맺기 때문이다. 딸깍 글쓰기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4-08

날씨만 흐리면 아픈 이유가 기분 탓일까

비가 오기 전이면 몸이 먼저 안다. 날씨가 흐려지거나 비가 오기 직전이면 관절이 쑤시고 허리가 묵직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비 오기 전부터 아프다라고 이야기하는 환자들이 흔하다. 단순한 기분 탓이나 우연으로 넘기기 쉽지만 이 현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날씨와 통증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압이다. 비가 오기 전에는 대기압이 낮아지는데 이때 우리 몸에 가해지던 압력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조직이 팽창하려는 방향으로 변한다. 관절 안에는 관절액이 있고 주변에는 다양한 연부조직이 있는데 이 구조들이 미세하게 팽창하면서 신경을 자극하게 된다. 특히 이미 염증이 있거나 손상된 부위는 이런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날씨가 흐려지면 통증이 먼저 올라오는 것이다. 여기에 자율신경의 영향도 크다. 기압이 떨어지고 습도가 올라가는 환경에서는 우리 몸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흔들리기 쉽다. 혈관의 수축과 이완이 평소보다 불안정해지고 그로 인해 혈류가 떨어지거나 조직 내 노폐물 배출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몸이 전체적으로 둔해지고 무거워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때 근육은 더 긴장하고 통증을 느끼는 역치도 낮아진다. 그래서 같은 자극에도 더 아프게 느껴진다. 한의학적으로 이러한 상태는 몸에 차 있는 습(濕)이 외부의 습이랑 동기된 것으로 설명한다. 습은 무겁고 끈적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몸의 순환을 방해하고 통증을 지속시키는 특징이 있다. 비가 오기 전이나 장마철에 몸이 무겁고 찌뿌둥해지는 느낌은 바로 이 습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관절이나 근육에 이미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이 습이 더 쉽게 쌓이고 빠지지 않으면서 통증을 악화시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통증이 단순히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날씨는 하나의 방아쇠 역할을 할 뿐이고 실제 문제는 이미 몸 안에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근육의 긴장, 관절의 불균형, 신경의 과민 상태 등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 변화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지면 괜찮아지고 나빠지면 다시 아픈 패턴이 반복된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진통제로 버티는 것보다 몸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순환을 개선하며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통증이 반복되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서 치료하면 날씨 변화에 덜 흔들리는 상태로 만들어줄 수 있다. 평소에 비만 오면 아프던 사람이 치료 이후에는 요즘은 날씨가 바뀌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의 건조한 기후에 있으면 아픈게 좋아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동을 해서 땀을 자주 흘려주면 관절과 몸에 있는 습이 조금씩 제거 되기 때문에 땀을 흘리는 운동을 꾸준히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날씨가 나빠질 때마다 통증이 올라온다는 것은 이미 몸 어딘가에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를 단순히 참고 넘기기보다는 왜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지 이해하고 미리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접근하면 날씨에 휘둘리는 몸이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몸으로 바꿔 갈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4-08

꽃비는 내리는데

꽃비 오는 속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 부부가 되기로 언약한 인생의 시작이 꽃길이다. 저렇듯 모두가 축복하는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 걸음이 행복해 보인다. 이제 시작하는 그 걸음이 늘 꽃비 속을 거니는 일상이었음 좋겠다. 예식장 방문 후에 어머니에게도 꽃바람을 쐬어 주고 싶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여쭈니 H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H 할머니에게 결혼 부조금을 받기만 한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빚도 갚을 겸 안부가 궁금한 것이었다. 경산의 요양원으로 향했다. 대구를 넘어서 요양원 인근으로 가는 길옆 밭에는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논밭을 지나 언덕 위의 요양원으로 가는 길에 벚꽃이 터널을 이루었다. 그 길을 따라 굽이진 도로 끝에 요양원이 자리한다. “죽으려고 들어왔잖아.” 여기서는 죽어야 나가지, 죽기 전에는 못 나간다. 첫 마디가 가슴에 맺힌 한을 토해낸다. H 할머니와 우리는 어릴 적 한집에서 살았다. 6·25로 신랑을 잃고 아들 하나만을 믿고 살아왔다. 나이 90에 아직도 꼿꼿한 허리는 건강을 말해 주지만 자식을 생각함인지 여기 들어올 때는 기어서 다녔다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두 번씩이나 한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감쌀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이 슬픈 멜로디로 천천히 흐른다. 그 마음을 아는지 창밖에는 꽃비가 내린다. 유족 연금으로 병원비와 약간의 용돈만을 받는다고 한다. 벌이가 없는 자식이 연금을 떼어서 생활비로 쓰고 있으며, 입원 후 아이들이 이사하여서 집도 모른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집은 손녀의 결혼 자금으로 쓰이고 갈 곳 없는 할머니가 갈 곳은 요양원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현대판 고래장은 요양원 밖으로 어머니를 보내지 말라는 며느리의 요구를 철저하게 이행한다. 돈을 주는 사람의 목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못난 자본주의의 틀이다. 철저한 틀이 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벚꽃이 날리는 뜰에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만나지 못한 그동안의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벚꽃이 핀 뜰을,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만남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꽃잎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이제 곧 끝이 날 만남이 아니라 긴 만남을 축복하는 꽃비였으면 좋으련만. 돌아오는 길에 경산의 한의대학교 캠퍼스를 차로 돌았다. 벚꽃이 가득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활짝 핀 벚꽃에는 관심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잿빛이 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깝다. 눈물처럼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가 저리로 날린다. 어제도 사위에게 맞아 죽은 장모의 시신이 캐리어에 이삿짐처럼 담기어 신천을 떠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일터로만 내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은 모른 체 한다. 아버지로도 모자라 어머니마저도 돈을 벌게 만들고 아이들은 돌봄센터를 전전한다. 지친 잠결에 부모를 보고 소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쩌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일까. 삶은 과정이다. 부족한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닐까. 옆에 있는 이웃을 알고 친구를 만나고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 차를 나누며 좋아하는 걸 하고 살 때 우리는 더 많이 웃지 않을까. 혼자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보내기보다 친구와 공을 차는 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삶에 지쳐 사는 것이 힘들다고 여길 때라도 우리는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식장에도 요양원에도 꽃비는 내린다. 꽃비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다른 두 사람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나눈다. H 할머니를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 먹먹하다. 돌아오는 길에도 꽃비는 내리는데 따뜻하지 않음은 비가 가지는 속성 때문인가. /김규인 수필가

2026-04-08

철강의 미래, 용광로의 온도가 아닌 ‘도시의 지혜’에 달렸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충격이 다른 충격을 불러내는 연쇄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중동의 군사 충돌은 더 이상 먼 지역의 비극으로 머물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차질은 곧바로 국제유가를 밀어 올리고, 국제유가의 급등은 환율과 물류비, 원료비를 흔들며, 그 충격은 제조업 국가인 한국의 공장과 가계로 곧장 밀려온다. 최근 보도들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했고, 글로벌 공급 차질 우려도 커졌다. 전쟁은 언제나 먼저 약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 산업과 무역의 질서를 흔든다.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 와중에 미국은 또 하나의 파고를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일, 철강·알루미늄·구리 관련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식을 다시 손질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백악관 설명에 따르면 철강 코일처럼 금속 자체에 가까운 품목은 전가치 기준 50% 관세를 유지하고, 철강·알루미늄·구리가 상당 부분 들어간 파생제품은 전가치 기준 25% 관세를 적용하며, 금속 비중이 15% 이하인 제품은 해당 232조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겉으로만 보면 제도가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완제품까지 영향을 넓히며 미국 시장으로 연결된 공급망 전체에 부담을 얹는 조치다. 철강이 직접 수출되지 않아도 철강을 품은 제품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부담은 다른 형태로 되돌아온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철강산업의 어려움은 더 선명해진다.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오랜 부진 끝에 2026년 1분기 반등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철강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다. 미국의 보호무역이 만들어내는 통상 비용, 중동 불안이 자극하는 고환율과 원료비 상승, 그리고 갈수록 강해지는 탄소규제와 탈탄소 투자 부담이 한꺼번에 덮쳐 오고 있다. 산업은 회복을 말하는데, 비용은 회복을 허락하지 않는 형국이다. 오늘의 철강은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라, 통상과 환율과 탄소가 한 몸처럼 얽힌 복합 비용 경쟁의 산업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포스코홀딩스 윤창원 수소저탄소연구소장의 말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그는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에서는 탄소중립과 산업성장을 함께 이루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으며, 하나의 기업이나 하나의 국가만의 힘으로는 해법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진단은 단순한 기업 발언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를 드러내는 고백에 가깝다. 철강 탈탄소는 공장 안의 기술 혁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값싸고 안정적인 청정수소, 대규모 저탄소 전력, 송배전과 저장 인프라, 금융과 세제 지원, 시장 창출과 통상 대응이 함께 가야 한다. 기술 하나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과제라는 뜻이다. 그래서 포항에서 최근 이뤄진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최종 승인은 단순한 개발 승인이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3월 27일 포항국가산업단지 계획 변경안을 승인·고시했고, 이에 따라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인근 해역을 매립해 약 135만㎡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용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 개발기간도 2041년까지 연장됐다. 이것은 선언이 아니라 입지의 확보이고, 구호가 아니라 실행의 출발이다. 포스코의 탄소중립 전환이 더 이상 연구실과 발표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공간과 설비와 전력 수요의 문제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부지가 무엇을 상징하느냐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 고로처럼 석탄에 기대어 돌아가는 공정이 아니다. 수소와 전력이 핵심이며, 결국 에너지 체계와 제철 체계가 결합된 새로운 산업 질서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하이렉스 데모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이를 위해 2021년부터 인허가 절차를 밟아 왔다. 이는 곧 포항이 더 이상 ‘철을 만드는 도시’에만 머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포항은 수소를 조달하고, 전력을 연결하고, 환경 갈등을 조정하고, 지역 일자리와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도시여야 한다. 철강의 미래는 이제 용광로의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도시의 민주주의 수준과 사회적 조정 능력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환경 및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그것을 해결하는 민주주의적 과정은 더 이상 산업의 바깥에 있는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 자체가 산업경쟁력의 일부가 되었다. 주민의 우려를 무시한 채 속도만 높인 사업은 결국 더 큰 지연과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충분한 정보 공개와 토론, 검증과 보완, 신뢰 형성은 사업의 시간을 단축하고 불확실성을 줄인다. 포항의 수소환원제철 부지 역시 긴 행정절차와 환경 논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승인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바로 그런 불편을 견디는 능력이 앞으로의 산업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탈탄소 시대의 경쟁력은 속도만이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온다. 포항시민의 지혜가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을 말하는 목소리는 많다. 그러나 정작 그 대책을 세우기 위한 지역 차원의 숙의는 자주 늦어진다. 수소는 어디서 어떻게 들여올 것인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계통 전력은 어떤 조합으로 연결할 것인가. 해양환경 영향은 어떤 기준으로 감시하고 공개할 것인가.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중소 협력사는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철강 노동자의 전환 교육과 일자리 안전망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들이 언론과 의회와 시민사회, 기업과 행정의 공적 토론장에서 더 자주, 더 깊게 다뤄져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의 성공은 포스코만의 성공이 아니고, 포항만의 사업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 철강산업이 관세와 환율과 탄소의 삼중 압박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대다. 지금 포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전쟁과 통상 충격이 길어질수록 산업의 체질 전환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둘째, 수소환원제철을 지역의 자부심만이 아니라 구체적 정책과 인프라의 과제로 다뤄야 한다. 셋째, 환경과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넷째, 지역사회 전체가‘찬성’과‘반대’의 단순한 구호를 넘어,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의 설계 논의로 들어가야 한다. 전쟁의 바람은 멀리서 불어오지만, 그 바람이 흔드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식탁과 공장의 불빛이다. 미국의 관세는 워싱턴에서 발표되지만, 그 파장은 포항의 제철소와 협력업체와 항만과 지역경제에 닿는다. 탄소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포항은 더 늦기 전에 토론해야 하고, 설계해야 하며, 함께 결단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의 성공과 철강산업의 빠른 회복을 말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산업의 미래는 기술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시민의 지혜와 사회의 합의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4-08

(특별기고) 포스코의 결단, 포항 상생의 새로운 길을 열다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 7000여 명 규모의 직고용을 전격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고용 형태의 전환을 넘어, 포항 지역사회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갈등을 마무리하고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책임 있는 결단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의미는 15년 가까이 이어져 온 소모적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일단락지을 수 있는 분명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내협력사 문제는 지루한 법정 다툼과 현장의 반목을 낳으며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지역사회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어 왔다. 이제는 승패를 다투는 소송의 시간을 넘어,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사 질서를 세워야 할 때다.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책임 있게 정리함으로써, 이제 노사는 더 본질적인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소송에 쏟던 시간과 비용을 현장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 그리고 지역과의 동행에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수천 명에 달하는 근로자의 고용 안정은 개별 가정의 안정을 넘어 포항 지역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는 소비와 내수를 진작시켜 위축된 골목상권에 생기를 더하고, 포항의 산업 생태계를 한층 더 탄탄하게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이번 직고용은 제철소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근로자들의 헌신에 대한 합당한 예우이자,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중대한 발걸음이다. 대규모 중후장대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우선 가치다. 소속감과 책임성을 공유하고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는 통합적 운영 시스템은 현장의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 거세지는 통상 압박, 탄소중립 전환,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엄중한 시기일수록 내부의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미래 경쟁력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번 결정이 과거의 문제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철강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모범적인 상생 모델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곧 포항의 경쟁력이다. 포항 남구와 울릉군의 민생과 발전을 살피는 국회의원으로서, 상생의 새 길을 연 포스코의 결단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번 결정이 15년간 이어진 갈등을 딛고 안전과 책임, 신뢰를 바탕으로 포스코와 지역사회가 함께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열어가는 뜻깊은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민의힘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

2026-04-07

공황장애는 왜 생기고, 어떻게 회복되는가

진료실에서 공황장애 환자들이 자주 묻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증상은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움은 다시 증상을 증폭시킨다. 공황장애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 뇌와 삶의 맥락이 함께 작용한다. 인간의 뇌에는 위험을 감지하고 생존을 준비시키는 경보 체계가 있다. 위협을 느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이 긴장한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이 경보가 지나치게 예민해질 때다. 화재경보기처럼 실제 위험이 없어도 경보가 울리는 상태가 공황발작이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흔들리면 이 경보 체계는 쉽게 과민해진다. 그래서 공황장애는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불안 회로가 예민해진 기능적 질환이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여기서 완성되지 않는다. 몸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병을 깊게 만든다. 같은 심장 두근거림도 어떤 사람은 “긴장했구나”라고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석한다. 이 차이가 공황을 만든다. 이를 파국적 해석이라고 한다. 가슴 두근거림을 심장마비로, 숨가쁨을 질식으로, 어지러움을 뇌졸중으로 단정하는 순간 공포는 커진다. 공포가 커지면 교감신경은 더 올라가고, 몸의 증상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 증상을 다시 위험으로 해석한다. 이 반복이 공황장애의 핵심이다. 문제는 공황발작이 아니라, 그 이후의 해석이다. 여기에 스트레스와 피로가 겹치면 신경계는 더 예민해진다. 수면 부족, 과로, 관계의 긴장은 경보를 쉽게 울리게 만든다. 또한 회피가 악순환을 강화한다. 발작을 경험한 장소를 피하면 일시적으로는 안심이 되지만, 뇌는 그 회피를 통해 “그곳은 위험하다”고 학습한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빠르고 강하게 반응한다. 삶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공포의 영향력은 커진다. 그래서 치료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그 출발은 몸을 안정시키는 데 있다. 공황 상태에서는 신경계가 과도하게 흥분되어 있어 이성적 이해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몸이 안정되어야 생각을 다룰 수 있다. 약물치료는 과민해진 신경계를 안정시키고 경보의 민감도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춘다. 이는 증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울리는 경보를 정상 범위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몸이 안정되면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 해석을 바꾸는 치료다. 공황장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나는가’보다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점검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연습을 한다. 동시에 회피하던 상황을 다시 경험하면서 “괜찮다”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공황의 강도와 빈도는 줄어든다. 공황은 이해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결국 공황장애 치료는 몸의 반응을 낮추고 해석을 바꾸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공황장애는 더 이상 위태롭지 않다. 공황장애는 낯설고 강렬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병은 아니다. 공황장애는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을 때만 삶을 좁힌다. 이해하는 순간, 회복은 시작된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의학박사 …………………… 사공정규 33년 차 공황·불안 전문의이자 ‘힐링닥터’로 알려진 그는 증상 호전을 넘어 삶의 근본적 회복을 위한 치료에 주력한다. 동국대 의대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연구·교육에 힘썼고,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방문교수와 임상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6-04-07

우유니, 붉은 눈물과 하얀 희망의 노래

볼리비아의 우유니, 그곳은 시간을 붙잡아 두는 마법 같은 땅이었다. 며칠을 더 머물게 한 광활한 소금 사막은, 밤의 신비로움을 품기 위해 오후의 햇살 속으로 이끌었다. 전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신비로운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열차 무덤’이라 불리는, 잊혀진 시간의 잔해였다. 사막 한가운데, 뼈대만 남은 열차들이 침묵 속에 멈춰 서 있다. 한때 사람과 자원을 싣고 생명처럼 달렸을 철로는 이제 붉게 녹슨 채 바람의 노래에 흩날린다. 사람들은 우유니를 떠올릴 때, 발밑으로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하늘을 비추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을 먼저 상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눈부신 백색의 천국, 맑고 투명한 하늘을 먼저 그렸다. 하지만 우유니가 처음 제게 보여준 얼굴은, 그 찬란한 백색의 천국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저를 맞이한 것은 ‘열차 무덤’이라는 이름의 황량한 풍경이었다. 삶의 기세를 잃은 거대한 쇳덩이들이 사막 위에 버려져, 바람은 철골 사이를 스치며 낮고 긴 휘파람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가자, 철판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부식된 객차 안에는 더 이상 좌석도, 사람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은 단순한 포토존이 아니라, 시간이 버려진 자리, 욕망이 스쳐 지나간 빈터였다. 이 열차들은 19세기 말, 볼리비아 땅속 깊은 곳의 은과 주석을 더 빨리, 더 많이 실어 나르기 위해 태어났다. 제국과 자본은 철길을 깔고 이 땅의 풍요를 착취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광산의 빛이 사그라들고 경제적 가치가 희미해지자, 한때 그렇게 필요했던 열차들은 사막에 그대로 버려졌다. 필요할 때는 가져가고,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잔인한 역사의 반복이었다. 우유니의 붉은 녹은 단순한 부식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착취의 기억이었으며, 오래된 상처의 색처럼 보였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사진보다 더 깊은 질문을 남긴다. 열차 무덤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저는 그곳을 걸으며 ‘다크 투어리즘’을 떠올렸다. 비극과 상처의 현장을 마주함으로써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고개를 숙이게 하는 여행 말이다. 우유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앞서, 겸손함을 배우게 하고 눈부심보다 슬픔을 먼저 통과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하얀 세계가 펼쳐진다. 끝없는 소금 평원 위에서 하늘과 땅은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 된다. 발밑은 눈처럼 희고, 머리 위는 유리처럼 맑다. 여행자들의 웃음소리는 소금 위를 굴러가고, 세상은 마치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처럼 보인다. 그 순백의 풍경 앞에서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진다. 하지만 우유니의 하얀 빛은 단지 아름다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열차 무덤에서 시작된 붉은 눈물은 이제 리튬의 바다로 이어진다. 그 깊은 소금층 아래에는 전기차 시대의 핵심 자원인 리튬이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이를 ‘하얀 석유’라고 부른다. 과거 은과 주석이 이 땅의 운명을 흔들었다면, 오늘의 리튬은 볼리비아의 미래를 바꿀 또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붉은 녹이 상처의 기억이라면, 하얀 리튬은 새로운 가능성의 이름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은 자원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원이 많다고 해서 미래가 저절로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자원을 다루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런 불안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 것은 남이 가져가고, 우리에게는 상처만 남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역사가 남긴 깊은 상처에서 우러나오는 절규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차가운 계약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손님’처럼 와서 필요한 것만 챙겨 가는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자원을 사 가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교육을 돕고, 환경을 지키며, 안데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 관광객 또한 사진 몇 장만 남기고 떠나는 소비자가 아니라, 현지인의 삶을 경청하고, 작은 마을의 빵을 나누며,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정은 소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존중과 경청에서 자라난다. 우유니의 열차 무덤은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내일을 세우려는 한 나라의 조용한 의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이다. 녹슨 철로 위에도 꽃은 피어야 한다. 바로 그런 아픈 자리이기에 더욱 피어나야 한다. 상처를 기억하되 원망에만 머물지 않고, 그 기억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힘.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우유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짜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나는 다시 붉은 열차 너머로 펼쳐진 하얀 평원을 바라본다. 우유니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곳에서 과거의 그림자만을 보는가. 아니면 그 그림자를 딛고 함께 만들어 갈 눈부신 빛을 보는가.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4-07

거센 김부겸 바람···국힘 ‘경북자민련’되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 완주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기차는 떠났다”는 글을 남겼다. 전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공개적으로 권유한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하게 되면 대구시장 선거는 여·야·무소속 후보 4파전 구도가 된다. 대구지역 한 의원은 “정말 그렇게 되면 대구시장을 민주당에 갖다 바치는 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권은 현재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여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할 경우 김 후보 당선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1박 2일 일정으로 의성과 영덕을 찾은 데 이어 8일에는 대구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정 대표는 이날 김 후보에게 공천장을 주는 형식을 빌려 ‘중앙당의 전폭 지원’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당 프리미엄’이 없어도 김 후보는 대구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3선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19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가 4년 후(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다시 수성갑에 출마해 62.3%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후보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였다. 그 후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4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아깝게 낙선했다. 김 후보가 대구 현역 국회의원일 때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당시 대구지역 종합병원에는 입원할 병실이 없어 열이 펄펄 나는 코로나 환자 수천 명이 응급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경북도 말고는 대구 코로나 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김 후보는 코로나 대구 펜데믹 때인 2020년 2~3월에 민주당 ‘코로나19 대구경북 재난안전특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구경북을 봉쇄하라”,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며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을 때, 대구시민 편에 서 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김 후보였다. 당시 김 후보가 추경예산 1조394억원을 대구에 지원해준 것은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지난달 30일 대구시장 출마선언을 하면서 “대구가 코로나 19로 고통받을 때 제가 1조원이 넘는 지원금을 대구·경북에 갖다 주이 신문에도 나왔잖아요. 뭐라캤습니까. “지 돈 가왔나” 캤잖아요. 그것 때문에 내가 속이 뒤집어져 정치 치웠잖아예”라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한 김 후보를 대구시장 선거에 불러낸 주체는 국민의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구시장 후보 공천파동에다 당 지도부 리더십 실종까지 겹쳐 국민의힘이 무기력해지니까 민주당이 삼고초려하며 김 후보를 소환한 것이다. 만약 오늘이 선거일이면 선거가 3파전이 되든 4파전이 되든, 국민의힘은 ‘TK 자민련’이 아닌 ‘경북 자민련’으로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07

‘라이언 일병’ 다시 보기

1998년 제작해 큰 흥행을 본 미국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전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전쟁의 비인간성, 잔인한 폭력성, 죽음 앞에서의 동지애, 개인보다 국가 이익에 협조하는 군인정신, 전쟁의 막대한 비용 등 전쟁이 남기는 폐해를 통해 전쟁의 아픈 이면을 다룬 영화다. 특히 라이언 형제 4명 중 3명이 전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 라이언을 구하기로 결정한 미국 정부의 명령과 임무를 부여받는 8명의 병사가 겪는 갈등과 혼란 등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8명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를 되묻고 있다. 미국은 20년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없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전장에 남겨진 군인은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고국의 품으로 다시 데려온다는 미국의 의지”라 풀이했다. 며칠 전 이란군 미사일에 격추됐던 F-15에 탑승했다 실종된 미군 장교를 극적으로 구한 미국의 결정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다시 소환했다. 2000m가 넘는 이란 산등성에 고립된 1명의 장교를 구하기 위해 수백 명의 특수부대 병사들을 보내 고난도 작전을 수행한 미국의 결정이 흡사 영화 라이언 일병을 닮았다는 것이다. 미군 장교가 이란에 포로로 넘어갈 경우 미국이 처할 불리한 점이 고려됐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1명의 장교를 구하기 위해 엄밀한 작전을 펼친 것은 많은 이에게 감동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건 장병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국가의 존립 이유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07

전쟁과 에너지 위기 이후, 자립도시가 필요하다

요즘 주유소 앞 가격 전광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철렁한다. 일반 가정도, 골목의 자영업자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전쟁이 우리 밥상물가와 골목 상권까지 흔드는 일이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세계의 불안정한 연결망 위에 일상을 얹어 놓고 살고 있다. 팬데믹 기간 영국에서 그 불안함을 직접 마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대형마트에 갔는데 신선한 채소가 가득했어야 할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오직 말라비틀어진 콩깍지 한 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풍요롭고 견고해 보이던 시스템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연결이 곧 경쟁력이라고 믿어왔다. 값싼 에너지와 자유로운 물자 이동, 촘촘한 공급망은 번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팬데믹과 전쟁은 그 믿음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지금 우리는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공급망은 흔들리고, 에너지 가격은 치솟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이제 도시는 얼마나 빠르게 연결돼 있는가 보다, 연결이 흔들릴 때도 스스로 설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자립도시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도시는 외부와 단절된 자급자족 도시를 뜻하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흔들릴 때 지역의 삶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적어도 먹고, 저장하고, 돌보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은 지역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외부 충격이 와도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힘, 그리고 지역의 앞날을 남에게만 맡기지 않는 힘. 그 두 가지가 자립도시의 핵심이다. 자립도시는 단지 버티기 위한 장치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위기에 대비하려고 만든 구조가 시간이 지나면 그 지역의 운영 방식이 되고 생활의 리듬이 되어, 결국은 도시의 정체성이 된다. 식량의 주권도 마찬가지다. 단지 비상시를 위한 대비책만이 아니라, 한 지역의 생산 방식과 시장, 문화와 삶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자립은 살아남기 위한 준비이면서, 동시에 그 지역이 자기 색을 잃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립은 연결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자립 기반이 있을 때 외부와의 연결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스스로 설 수 없는 도시는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니게 된다. 반대로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가진 도시는 외부와 더 대등하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좋은 연결은 늘 버틸 힘 위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이런 구조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느껴지고 쓰여야 오래간다. 보이지도 않고 쓰이지도 않는 시스템은 금방 힘을 잃는다. 그래서 자립도시는 결국 공간과 건축, 시장과 거리, 공공시설 같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이제 도시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넓게 연결돼 있느냐가 아니다. 연결이 흔들릴 때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어떤 질서와 풍경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다. 앞으로 도시의 생존은 거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4-07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백마리 원숭이 효과

조직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과 작은 행동에서 갈린다. 기업은 전략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환경과 행동의 축적으로 움직인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백마리 원숭이 효과’ 개념이 이를 말해준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사소한 무질서가 방치될 때 더 큰 혼란과 범죄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뉴욕 지하철 범죄 소탕 원리’도 벽의 낙서와 바닥 쓰레기 등 나쁜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경찰을 투입해도 멈추지 않는다. 낙서를 지우고 바닥을 청소했더니 범죄가 사라졌다. 깨끗한 환경은 기본이 지켜진다는 의미이고,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조기업에서는 현장 바닥에 쌓인 불필요한 자재, 정리되지 않은 공구, 지켜지지 않는 작업 표준, 묵인되는 규정 위반 등 이것은 단순한 ‘작은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보내는 잘못된 신호다. 이 신호가 쌓이면 직원들의 행동 기준은 점점 낮아지고 결국 품질 저하, 안전사고,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거창한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Clean 마인드가 깨지거나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는 태도에 있다. 백마리 원숭이 효과는 변화의 확산 원리를 시사한다. 교토대학교 연구진이 남쪽 고지마섬 원숭이를 관찰한 결과, ‘한 어린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하고, 점점 개체 수가 늘어나 100마리에 도달하자 멀리 떨어진 북쪽 홋카이도 원숭이들도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한 개체의 행동이 주변으로 퍼지고,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집단 전체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변화는 지시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복과 확산을 통해 문화로 자리 잡는다. 기업에서 보면, 변화는 소수에서 시작, 한 사람의 개선 행동이 주변으로 확산하고 문화로 간다. 초기 점화 단계(0~10%)는 소수만 참여하고 대부분 관망한다. 확산 단계(10~30%)는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고 주변에서 따라 한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타임이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인 폭발 단계(40% 이상)에 이르면, 조직 전체에 빠르게 확산하고, ‘안 하면 이상한 조직’이 된다. 실패하는 조직의 공통점은 전사적으로 동시에 성공하려는 전략이 문제가 되고, 작은 위반을 묵인한다. 결국 변화는 확산되지 못하고 10% 수순에서 멈춘다. 성공하는 조직은 첫째, 환경부터 바꾼다. 정리정돈, 표준 준수, 기본을 철저히 한다. 둘째, 작은 성공을 만든다. 한 개 라인, 한 개 팀에서 확실한 성과를 만든다. 셋째, 확산을 설계한다. 성과를 보여주고,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작은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작은 성공을 반복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성공의 비밀이다. 변화는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성공과 환경 변화로 전염된다. 기업 혁신은 전략이나 시스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을 고치는 것, 작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그 작은 변화는 조직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 작은 무질서를 제거하면 조직은 무너지지 않고, 작은 행동을 확산시키면 조직은 스스로 바뀐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07

목욕탕의 파수꾼과 이방인

아버지가 떠나신 뒤 집안의 공기는 줄곧 영하에 머물러 있었다. 상실의 무게는 중력보다 무거워 어머니의 어깨를 짓눌렀고 나는 그 적막한 냉기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를 이끌고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낡은 타일과 빛바랜 간판이 세월을 증명하는 그곳은 슬픔을 씻어내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를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목욕탕 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낯선 공기가 나를 덮쳤다. 그곳은 단순한 세척의 공간이 아니었다. 탕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여사님들’의 무리는 마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합창단처럼 견고한 결속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집요하고도 원초적이었다. 옷가지와 함께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벗어던진 그곳에서 뉴페이스인 나는 그저 해부되어야 할 하나의 피사체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시각적 검문’은 노골적이었고, 내가 샤워기를 틀고 자리를 잡는 모든 동선을 따라 그들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뒤를 쫓았다. 침입자가 된 듯한 불쾌감이 습한 공기와 섞여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탕 속에 몸을 담그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의 화살이 날아왔다.“누구네 집 딸이냐, 며느리냐?”“어디서 왔어? 몇째야?”그들에게 프라이버시는 수증기처럼 휘발된 개념이었다. 이름보다 관계를, 직업보다 근거지를 묻는 그들의 질문 세례 속에서 나는 알몸보다 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익숙한 듯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얹어주셨고, 그제야 나에 대한 감시는 호구조사라는 통과 의례로 변모했다. 어머니와의 목욕은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나에게 목욕은 ‘씻어내야 할 과업’이었으나, 그들에게 목욕은 ‘머물러야 할 일상’이었다. 그 여사님들은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초록빛 오이를 촘촘히 붙인 채, 마치 영겁의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수증기 속에서 아이스 커피를 시켜 마시며 어제의 일상과 오늘의 일과를 나누었다. 1분 1초를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며 언제나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의 관성으로 볼 때 그것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직선으로 달려가는 화살이었으나 그들의 시간은 탕 안의 물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일렁이며 고여 있었다. 그 정체된 시간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그들의 태평함이 지독하게 부러웠다. 마감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소진하던 나에게 오이 향기 속에 파묻혀 흘려보내는 두 시간은 사치스러운 평화처럼 느껴졌다. 축축한 수증기 사이로 비치는 그들의 느릿한 몸짓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눈동자들,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저토록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가’라는 날 선 질문은 이내 그들을 향한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치졸한 시선으로 변질되었다. 성취가 없는 삶은 무가치하다는 강박이 이곳의 안온한 정적을 불순한 게으름으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섞여 있다 보니, 문득 낯선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거창한 목적지 없이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손길에는 다정함이 배어 있었고, 탕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이 공간을 유대의 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치열한 ‘생산’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생의 여백’이라 비하했던 그 빈틈이야말로, 상처 입은 일상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공간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오만함 너머로 사람들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비판할 문제도, 평가할 문제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슬픔을 잊고 여사님들의 수다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면 그 고인 시간은 그 자체로 숭고한 치유의 시간이었으리라. 목욕탕을 나오자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등 뒤에 남겨진 오이 향기와 왁자지껄한 소음이 어머니와 나의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고 있었다. 각자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삶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시간을 죽이며 생을 살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김경아 작가

2026-04-07

군사력 ‘세계 5위’라는 착각

이재명 대통령은 “군사력 세계 5위인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의 국방비가 북한 GDP의 1.4배임을 강조했다.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었다고 하겠지만, 자칫 ‘핵무기의 절대성’을 경시(輕視)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인용 근거가 된 GFP(Global Firepower)의 평가는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군사력 순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은 군사력의 강점과 약점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만약 국민이 “재래식 군사력 5위의 한국이 핵무기를 가진 재래식 군사력 31위인 북한의 핵 공격을 받는다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재래식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핵무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핵은 절대무기이고 비대칭전력’이기 때문에 ‘핵에는 핵’만이 유일한 대응책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한미동맹에 의한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핵 위협에 대처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적 수준이고 자주국방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세계 5위의 재래식 군사력’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GFP가 발표한 군사력 순위는 20세기 기준으로 21세기 군사력을 평가했다는 약점이 있고, 핵과 같은 전략무기를 제외한 통계일 뿐만 아니라, 군사력의 상대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이러한 통계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중요한 전쟁에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전략은 성공하지만 ‘주관적 해석’에 의한 전략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자주국방이 “타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국의 안전과 영토, 주권을 지켜내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현재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 재래식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이지만,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가 우리에게는 없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해온다면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 없이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자주국방이라는 당위’와 ‘북핵 위협이라는 현실’ 사이에는 격차가 있고, 그 격차를 메꾸어주는 것이 바로 한미동맹이다. 현재의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 즉 자주국방이냐 한미동맹이냐의 논쟁은 어리석고 무의미하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핵개발을 포함한 자주국방 능력’을 제고해나가면서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단순한 참고자료에 불과한 GFP의 군사력 순위에 대한 과신이나 정치적 해석은 금물이다. 정치인들이 군사적 통계나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국가안보가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4-06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포항 주변 바닷가 길과 산속 길을 드라이브하는 취미가 생겼다. 주말 하루는 차를 몰고 바닷가로 산속으로 떠난다. 정원 마당 정리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집사람은 커피를 내리고, 나는 음악을 탐색한다. 덕성리 마을을 나서 곡강천 입구에 도달하기 전까지 약 5분의 시간에 우리는 그날의 드라이브 코스를 정한다. 바닷가로 갈 것인지, 산속으로 갈 것인지. 남쪽으로는 흥환, 구만, 대보, 구룡포, 양포, 감포, 전촌 쪽 바닷가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오천, 진전 고갯길 넘어 기림사길, 불국사, 보문단지 코스로 가기도 한다. 안계리 사골동 넘어 양동마을 쪽도 남쪽이라면 남쪽이다. 서쪽 산속 길은, 기계, 죽장, 두마 쪽, 기계, 죽장, 청송길 쪽, 유계리, 경북수목원, 상옥, 가사리, 입암길 쪽, 장사, 달산, 옥계, 부남 쪽이 주로 가는 길이다, 북쪽 바닷길은 강구에서 대진항으로 이어지는 블루로드 길이 단연 으뜸이다. 블루로드 길은 영덕에서 노물로 들어가는 길도 좋다. 가장 많이 다녀본 코스는 장사, 달산, 옥계, 가사리 코스이다. 절경이다. 옥계길을 가다 보면 중간에 계곡을 가로질러 하옥으로 가는 길이 있다. 넘어가는 고갯길 일부가 비포장길이 있기도 하고, 길이 험하여 집사람이 무서워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하옥을 가로질러 상옥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상옥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멋진 동네다. 상옥에서 나가는 길이 4곳이다. 가장 먼저 우측으로 청송 부남으로 가는 길이 있고, 좌측으로 청하 유계리로 넘어가는 길이 나온다. 거기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우측으로 가사리로 넘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이 가사천을 따라 죽장 입암리로 가는 길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상옥의 남쪽은 성법리를 지나 기북 오덕마을로 이어진다. 상옥에서 성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가을에 단풍이 절경이다. 봄날 곳곳이 벚꽃의 향연이다. 지금은 단연코 영천댐 ‘벚꽃 백리길’이다. 기계를 지나 죽장으로 가는 길에 정자리를 지나 자동리로 좌회전하여 쭉 가면 된다. 한때 자양댐으로 불린 영천댐 벚꽂 백리길은 대한민국 최고의 벚꽃 길이다. 벚꽃 시즌이면 매년 집사람과 2번 이상 가는 명소이다. 정자리에서 내려가는 길도 좋지만,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코스도 좋다. 임고에서 죽장으로 가다가 충효리에서 좌회전하여 보현산 천문대 쪽 별빛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이다. 오늘 당장 커피 한 통 챙겨서 출발해 보시길. 물론, 차 안의 음악 중, 우순실의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는 필수다. ‘돌아보지 말아요/ 멈춰 서지 말아요/ 지난날들일랑 기억하지 말아요/ 떠난 내 뒷모습 정말 보기 싫어/ 그저 조금만 더 울고 갈께요/쳐다보지 말아요 생각하지 말아요/이렇게 가슴이 타버릴 줄 몰랐죠/ 뒤돌아 간들 무슨 소용 있나요/그땐 정말 내가 바보였나 봐/ 이젠 내가 철이 든 거죠/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바람결에 띄울까 지쳐버린 마음을/ 어느 벚꽃이 흐드러진 날에’ 볼륨 UP!! /공봉학 변호사

2026-04-06

원픽족 되다

실시간 문자투표가 시작되었다. 마음이 급하다. 내 휴대폰으로 얼른 문자투표를 했다. 한 표라도 더 보태려고 아내 휴대폰으로도 문자를 보내려는데 안된다. 두 사람이 번갈아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져봐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문자를 잘 보내던 두 사람이 급한 김에 혼침했나 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메뉴를 찾아 문자투표를 성공시켰다. 이로써 우리 부부도 내 응원 가수에게 두 표를 보탰다. 낮에 옛 학교 동기 카톡에도 문자투표를 독려하는 영상을 올리고 투표 부탁을 해 두었다. 몇 주 전부터 대국민 응원 투표플랫폼에서 하루에 한 번씩 응원 투표도 했다. 그 결과, 내가 응원하는 가수는 최종 5위로 톱 7안에 들었다. 5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 ‘현역가왕3’ 결승 2차전 때의 이야기다. 내 응원 가수를 TV에서 처음 본 것은 ‘미스트롯2’에서 였다. 경연에서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해 열창하는 모습이 사람을 감동케 하는 데 매료되어 계속 시청했다. 그중 앳되고 아름다운 한 가수 K양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되바라지지 않아 보여서 유심히 보게 되었다. 게다가 성씨도 같으니, 막내딸이라도 보는 듯했다. 예술의 목적이 미학(美學)이란 관점에서 그녀는 더 돋보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자꾸 듣게 된다’라고 노래 영상의 어떤 댓글이 말하듯, 그녀의 노래는 예술성이 높아 보였다. 이 계기가 ‘현역가왕1’부터 ‘현역가왕3’까지 다 시청하게 했다. 특히, 이번에는 대국민 응원 투표와 실시간 문자투표까지 하게 되었다. 퍼뜩, “나도 젊은이들처럼 ’원픽족‘이 되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원픽’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영어의 원픽(One-Pick)이 우리말 신조어가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 가수 등 예술인(artist)에 대해 주로 써오다가 요즈음은 여러 분야로 확대, 일반화된 느낌이다. 원픽은 아직 포털 국어사전에도 없다. ‘원픽족’이 오픈 사전에 있을 뿐이다. “원픽족은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의 원픽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결정의 상황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뜻함”이라고 사전은 풀었다. 현대인은 선택의 파도 안에 산다. 수많은 대상 즉, 사람, 콘텐츠, 상품, 지식, 정보 등의 파도 속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응이 바로 ‘원픽’이 아닐까. 여러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르는 원픽. 남이 정한 것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질문, 비교, 분석, 고민하여 선택하는 원픽. 단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 기준을 따라 당당히 해내는 원픽. 원픽은 사람을 원픽족으로 이끈다. 어찌 보면, 많은 사회현상을 원픽이란 돋보기로 살펴볼 수 있겠다. 나라 망칠 원픽의 예를 본다면, 여‧야를 불문한 대부분 ‘의원 나리들’이다. 선거철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유권자 원픽을 한다. 한데, 배지를 달고나면 뭔가 두려운 듯, 선관위 원픽으로 태세전환 하니 말이다. ‘가요 경선 프로그램 원픽족’은 시종일관 자기 선택 가수를 지지, 성원한다. 이처럼 의원 나리들도, 변함없는 ‘국민 원픽족’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빈다. /강길수 수필가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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