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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400년 전의 눈으로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통영 세병관이다. 수차례 와보았던 장소이고, 그때마다 설명을 들었던 터라 필자는 교감 자격 연수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쪽 귀는 문화관광해설사 방향으로 열어 놓았다. 설명의 앞부분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귀의 일부만 놔두고 마음을 거두고 다른 일을 했다.시원하게 불어오는 통영 바닷바람이 잔뜩 힘이 들어간 눈을 달래어 줬다. 이젠 힘을 빼고 살아도 된다는 바람의 속삭임에 눈꺼풀은 속절없이 내려왔다. 간간이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어쩌면 이순신은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영웅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나라가 아직도 일본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실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의 끝에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겹쳐서 일어났다.“이제부터는 등을 편하게 기대시고 왜 세병관을 이곳에 지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세병관이 처음 지어질 때는 당연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없었겠지요. 400년 전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구즉생(久卽生)이라는 말을 소개드리면서 저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나라 발전을 위해 큰 교육을 하시는 교감 선생님이 되세요. 장마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통영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400년 전의 눈’이라는 말에 필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해설사의 말이 수십 년 동안 필자를 답답하게 구속하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 등을 단번에 날려줬다. 필자의 눈 앞 있던 복잡한 현대 건물들이 하나둘 지워졌다. 그러면서 400년 전 이순신께서 내려다보신 통영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시원해졌다. 최근 며칠 동안 무겁기만 하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세병관(洗兵館)의 뜻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병관! 평화를 지키기는 가장 큰 힘은 상대보다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늘 노력하는 것이라는 이순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지만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려움을 떨쳐낸 이순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이순신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스스로에게 말문이 막혀버린 필자는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주역에 나온다는 궁즉변(窮卽變 궁하면 변하고) 변즉통(變卽通 변하면 통하고) 통즉구(通卽久 통하면 오래가고) 구즉생(久卽生 오래가면 살아남는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말의 핵심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을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이 자연이다. 그래서 자연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자연 파괴라는 대참사에도 끄덕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위로하고 지켜주고 있다.뉴스는 5호 태풍이 온다고 야단이었다. 뉴스의 선동에 인간들은 한 술 더 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자연은 달랐다. 자연은 겸손한 자세로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병관은 분명 자연의 모습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필자는 세병관의 너른 품을 좀처럼 떠날 수가 없었다.우리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 정치인들의 탓하기, 옆 나라의 막무가내 떼쓰기, 그리고 교육! 다른 것들은 몰라도 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세병관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교육은 변화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딸아이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빠 내 친구 이번 여름 방학에 학원 다섯 개나 다닌다.” 우리는 언제 아이들의 눈으로 교육을, 그리고 방학을 볼 수 있을까? 지워졌던 현대식 건물들이 더 어지럽게 세병관 앞을 흐렸다.

2019-07-24

무궁화 사랑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도 부른다. 신라시대 효공왕 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는데, 이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밖에도 우리의 옛 문헌에는 근원(槿原) 혹은 근역(槿域)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나 이는 ‘무궁화 땅’이라는 의미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무궁화 땅에 살고 있음을 알린 표현들이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오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란 말은 법령 어느 곳에도 없다. 애국가나 태극기와 같이 나라의 상징인 표상물이면서 법령에 명기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국민 다수가 국화로 여겨왔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도 “무궁화는 구한국시대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무궁화가 국화로 본격 인정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국화가 자주 사용되면서다.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가 등장하고, 독립투사들이 무궁화를 우리나라와 일체화하는 글을 많이 남기면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무궁화 꽃은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이라 한다. 단결성과 협동심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내와 끈기로도 표현한다. 꽃 말도 ‘일편단심’이다. 변하지 않는 민족의 마음과 통한다고 한다.한 때 국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는 무궁화 꽃으로 애국심을 가르쳤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학교와 직장 곳곳에는 무궁화 꽃을 심어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켰다. 나라 꽃 하나로 애국심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쯤 곳곳에 활짝 피어 있어야 할 무궁화 꽃이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다고 한다. 애국정신이 그만큼 희미해진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23

일본의 제재 뒤에 숨은 것 있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가 단순히 아베의 반한 감정이라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일본의 전략적인 계산이 숨어 있다면 한국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일각에서는 아베가 반한감정을 자극하여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는 술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베는 일본 내에서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기업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혁신의 발판, 즉 르네상스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반한 감정을 자극하여 극우세력을 결집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런 식의 보복은 일본 반도체 부품업체들에게도 타격을 준다. ‘경제 동물’이라고까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계산적인, 그리고 용의주도한 일본이 이런 대응을 한다는 것이 매우 낯선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무역 제재 뒤에 뭔가 숨은 것이 있지 않을까?일본의 최대 고민은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다. 일본경제가 현재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차에 수입관세가 부과되면 일본경제는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일본 내 자동차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종업원 규모가 83만명 정도로 알려지지만 자동차 수리, 보수, 마케팅, 금융까지 포함하면 500만명이 넘는다.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엔저에 따른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시정하기 위한 강제 엔고 조치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를 특히 키웠던 것이 자동차였으므로 그 후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일본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훨씬 더 큰 전자산업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IT의 주도권을 한국에 뺏긴 상황에서 자동차 관세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일본은 자동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을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내도록 하려는 것일까? 반도체 소재나 장비의 경우 세계적으로 독과점적인 것이 여럿 있고, 그 가운데 일본이 주도하는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제재 품목에 포함됐던 감광액(photo resist)이 공급되지 않으면 차세대 노광장비(EUV)를 쓰기 어려워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준비하던 비메모리 분야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소재 가운데 일본업체가 독점하는 것들도 있다.만일 일본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하면 당장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러지가 메모리 부문에서 반사이익을 받고, 또 인텔과 같은 미국의 비메모리 업체들이 삼성전자 같은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과거 마이크론은 일본의 엘피다를 인수했었다. 그러나 마이크론 내 일본 지분은 없다. 즉 일본이 전략적으로 삼성전자 대신 마이크론을 밀어준다면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이런 생각이 “트럼프와 합의된 것인지, 아니면 아베가 알아서 기어보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일본의 무역제재가 왜 하필이면 G20회담 직후에 나왔을까? 물론 단순한 아베의 반한 감정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물론 여기에는 일본 소재 업체들의 희생도 따른다. 반도체 부품의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처럼 독과점 지위에 있으므로 납품선을 돌리기가 어렵다.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의 소재 및 장비 구입을 원하지만 트럼프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마이크론이 설비를 충분히 확장할 때까지 일본 기업들도 기다리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정부 말을 잘 듣는다. 일본 정부가 “일본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하자”고 설득하면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돌입하며 먹이가 줄어드는 가운데 힘이 약한 나라로 피해가 넘어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성장기에는 모두가 너그럽지만 이제는 누가 하나 사라져 주면 나머지가 행복해지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2019-07-23

개 세 달 버릇 15년 간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가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개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된 삶을 살게 된다. 산책할 때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심하게 목줄을 당겨지게 될 것이고, 손님이 왔을 때 짖거나 공격하려 들테니 개 집에 가두어 두게 될 것이다. 식사 때 식탁에 오르려는 개들은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묶여 있게 될 것이다. 개는 15년 정도가 평균 수명이다. 이 시간동안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행동방법을 교육받아야 한다.낯선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의 개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경계심이나 수줍음을 보이지 않고 당신의 곁에서 얌전히 잘 있어야 한다. 당신과 같이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다가와 개를 만졌을 때 당신의 개는 경계심이나 수줍음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개들이 많이 가는 장소인 동물병원이나 애견미용실, 애견 카페를 갔을 때 당신의 개는 어떠한가? 수의사의 진찰행동에 잘 응할 수 있는가? 애견미용사에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는가? 애견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처음보는 개들에게 약간의 관심정도가 아니라 다가가서 거친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당신의 개는 당신이 가자는 곳으로 가고, 앉아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과 공공장소에서 얌전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앉아있고, 엎드려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부르면 개는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에게 달려올 수 있어야 하고, 처음 보는 물체를 가진 사람들을 보더라도 당황하거나 짖거나 공격하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개는 어린이들 주변에서도 안전해야 하고, 이웃들이 보기에 안심할 수 있어야 하고, 주인과 있을 때 행복함을 주면서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 당신의 개는 어떤가? 이런 조건을 만족하고 있는가?우선 강아지를 데려와서 함께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프로이트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며 유아기부터 성장기별로 성격형성에 관련된 주요한 단계를 설명한 바 있다. 개들도 태어나서 시기별로 특징을 알아야 하고 단계별로 교육을 위해 중요한 시기가 있다. 따라서 엄마 개가 강아지를 어떻게 교육시키는지를 아는 것이 엄마개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겠다. 엄마 개는 강아지가 생후 5주가 되면 바른 행동을 가르친다. 젖을 먹는 시기에 엄마 개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강아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엄마 개는 으르렁거리거나 짖고, 물기도 하여 강아지를 가르친다. 강아지들은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으면 엄마 개를 살피기 시작한다.이 시기에 엄마 개는 강아지에게 리더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강아지는 성장 후 보호자의 질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생후 7주 정도가 되면 강아지는 감각기능이 발달하여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집으로 가기 적당한데, 그 전에 엄마 개와 헤어지게 되면 향후 사람 보호자를 만났을 때 과잉집착, 공격성, 불안, 지속적인 짖음을 보일 수 있다.강아지가 12주가 넘도록 엄마 개나 형제 개들과 같이 생활한 경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져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강아지의 사회화 능력이 지나치게 단순해져서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인데 이런 강아지는 사람가족에게 신경을 안 쓰게 되므로 가정에서 길들이는 교육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개는 생후 7주에서 12주 사이에 보호자가 되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개들과의 만남을 통한 사회화 과정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강아지가 어린이들과 접촉을 많이 못했다면 성장해 어린이와 함께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시기의 정신적 충격이 있는 사건이나 나쁜 경험, 특히 공포감을 느끼는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강아지를 만져주거나 안심시키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괜찮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데, 차라리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으로 주의를 돌려 겁먹은 행동이 사라지게 하는 편이 더 낫다. 강아지 시절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경험이 되어 훗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반려견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기억하라. 생후 7주에서 12주 사이는 강아지가 보호자를 잘 따를 때이므로 생애동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환경을 겪게 해주고 특별히 좋은 경험과 다양한 대상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장(마사과 교수)

2019-07-23

이효석 정본 작업과 이상옥 선생님

△이효석 정본 작업이상옥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지난 2012년 5월께로 이효석 전집을 재출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이다. 전집을 처음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재출간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원문과 이본 등을 비교하고 교정하여 원문에 가장 가까운 정본(定本)을 출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검토한 내용을 가지고 매주 만나 토론하여 텍스트를 확정하는 이 지난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채정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 동료 두 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팀이 최종적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이상옥 선생님은 70대에 뵈었는데 이제 80대가 되었다. 그리고 20대의 풋풋했던 친구는 30대가 되었고, 나도 지금은 40대가 되었다.우리 팀은 연령층이 다양하고 성장 지역도 각양각색었다. 연령층과 성장지가 다르다는 것은 이 작업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을 닮아서 나이와 출신지를 갖는다. 30대에게 생소한 단어가 50대에겐 무척 익숙한 언어일 때가 있고, 서울 사람이 모르는 말을 강원도 사람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작업을 통해 이러한 낯섦과 낯익음의 격차를 줄이고, 한자나 영어, 아주 곤란할 때는 각주를 덧대어 말을 곧추세웠다. 때로는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오식과 비문을 바로잡았다.이 작업을 하면서 기억나는 건 ‘말결’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다. 두고 볼수록 예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결’은 ‘무늬’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겨를’(때, 사이, 짬)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무늬라고 했으나 기실은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고 해야 분명하다.) 무늬라는 뜻의 ‘결’과 사이라는 뜻의 ‘겨를’의 줄임말인 ‘결’은 음은 같지만 그 뜻은 현저히 다른데, 이를 동음이의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결’이 ‘잠’이나 ‘물’과 같은 명사와 결합하면, 동음이의어적 성격이 헐거워져 ‘무늬’와 ‘겨를’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된다. 예컨대 물결은 물의 무늬이면서 물의 흐름과 흐름의 사이이다. 잠결은 ‘잠을 자는 사이’이기도 하겠지만, 잠과 잠 아닌 것 사이의 일렁임이다. 그리고 말결은 말의 사이이자 말의 무늬다. 이렇게 보니 ‘무늬’와 ‘겨를’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사이’의 흐름, ‘사이’의 이어짐이 ‘무늬’이니 말이다.이효석 정본 작업은 이렇게 우리말을 더 풍성하게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가을께 ‘메밀꽃 필 무렵’의 4교를 끝냈는데 2년이 지나 다시 열어봤더니 여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아 몇 번의 작업을 더 거쳐야 했다. 그렇게 해서 2016년에 ‘이효석 전집’ 전 6권을 상재했다. 이 작업을 통해서 기존의 오류와 실수를 바로잡았다. 그 과정은 한글 프로그램의 ‘검토’와 ‘메모’ 기능을 활용하여 기록하였다. 품이 많이 들지만 그 빛은 미약할지 모른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일들과 꼭 필요한 일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니 이 일을 하게 되어 즐거웠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즐거울 것이고, 그리하여 오래도록 즐거울 것을 생각하니 벌써 뻐근하다. 갈비뼈 하나 쯤 떼어낸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이상옥 선생님이 작업을 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상옥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기왕이면 정본 전집을 출간하고 싶어 하셨고, 이효석문학재단 측에서 이러한 선생님의 뜻에 선뜻 동의해주었기에 이 일은 가능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정본 작업’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본 팀’이라고 불렀다. 매주 두세 번 정도 모여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상옥 선생님은 지각이나 결석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선생님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시는 동안에도 강의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이런 분이라면 으레 당신과 같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선생님은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나를 책망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이해해주셨다.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단지 참여만 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를 해오셨고, 원문의 어려운 한자는 물론 활자가 흐릿하여 어린 나조차 알아보기 힘든 글자까지를 읽어내셨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법이 없으셨고, 우리가 내놓는 의견을 귀담아 들으셨다. 선생님은 아침 10시부터 때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이 지난한 작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팀에 활기를 불어넣으셨다.정본 작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재단 측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으셨다. 심지어 전집에 편자나 감수라는 명목으로 당신의 이름을 올릴 법한데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다. 어떤 영광도, 명예도, 이익도 없이 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열정을 쏟으셨고,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셨다.선생님은, 나이로 치자면 우리보다 서른 살 이상 더 많으시고, 고작 박사학위를 막 받았거나 박사수료생인 우리와는 격이 다른 위치임에도 모든 팀원들을 동등하게 존중해주셨다. 선생님의 지식은 넓고 깊어 이야기는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마르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듣는 법을 잊지 않으셨고, 토론을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다. 심지어 나와는 정치적 견해도 달랐지만, 선생님은 설익은 내 말을 들어주셨고, 내 생각을 존중해주셨다. 지금도 그러하시다.나는 평생 이처럼 고고(高高)하며, 학학(鶴鶴)한 분을 뵌 적이 없다. 나는 원체 막돼먹어 누군가를 존경할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아왔다. 이상옥 선생님은 그런 내게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해주셨다. 이상옥 선생님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비단 나의 사견만은 아닐 것이다. 정본 출판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매년 서너 번의 모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우리 정본 팀 역시 이상옥 선생님의 성결에 감화된 듯하다.올해 5월, 우리 정본 팀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내내 비가 오긴 했지만, 덥지도 않아서 좋았다. 이 여행을 선생님은 일종의 시험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함께 여행을 오래 할 수 있는 ‘족속’인지 서로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아무래도 이 시험에 통과하게 된듯하다. 이제 오랫동안 함께 가고자 했었던 영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이상옥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고, 선생님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신 적도 없다. 선생님은 내게 그저 당신의 행동만으로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셨다. 이러한 선생님을 더 자주, 더 오래 뵐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2019-07-23

귀했던 배추,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음식으로

‘금제옥회’보다 맛있는 배추서울 토박이 친구 눈이 동그래졌다. “뭐? 너희들은 배추도 전 부쳐 먹니?”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배추전이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생각이었다. 옹기종기 모였던 대여섯 명 중 누구도 ‘배추전’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먹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다. 배추전?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흔하면 홀대한다. 배추가 꼭 그러하다. 주변에서 쉽게 본다. 가격도 높지 않다.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조금만 가격이 오르면 ‘금배추’라고 부르며 야단이다. 농가에서 기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기르고 먹는다. 특용작물이라야 귀하게 여긴다. 배추는 어디서나, 누구나 기르고, 먹는다.한 포기를 가르면 열 장, 스무 장의 배추전을 부칠 수 있다. 흔하고 싸다. 치명적인 단점이다. 오랫동안 “배추전은 먹을 것 귀하던 경북 산골에서 궁여지책으로 먹었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제사를 모실 때 반드시 배추전이 상에 올랐던 것도 까맣게 잊었다. 하기야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음식이 가장 귀하다는 사실도, 미련하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알았으니.하찮은 배추를 선물로 주다?사가정 서거정(1420~1488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모셨고 숱한 문집, 시를 남겼다. 벼슬도 만만치 않았다. 형조판서, 좌찬성을 지냈다.서거정의 ‘사가시집_제40권’에 ‘배추 선물’이 나온다. 선물을 보낸 이는 생원(生員) 안유문이다. 사가정은 배추를 선물 받은 후, 이 시를 남겼다. 제목은 ‘안유문(安有文)이 배추를 보내 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이다.가을이 되면 배추(菘, 숭) 또한 좋고 말고/좋은 맛이 고량진미와 맞먹는걸/옥삼갱(玉糝羹)을 어찌 자랑할 것 있으랴/금제회도 괜히 맛볼 것 없다마다/국을 끓이면 참으로 입에 딱 맞고/안주로 먹으면 배도 채울 만하네/고기를 먹는 건 내 일이 아니라서/향기로운 채소를 잊을 수가 없다네시에 등장하는 ‘옥삼갱’은 소동파가 별미로 쳤던 토란국이다. 중국에도 감자, 고구마 등이 전래되기 전이다. 토란, 마 등으로 끓인 국을 최고로 쳤다. 옥삼갱이다. ‘금제회’ ‘금제옥회’는 귤 등을 썰어서 버무린 잘게 썬 회다. 국화잎으로 무쳐서 노란빛이 난다고도 한다. 잘 만진 생선회다. 별미로 치는 음식이었다. 배추가 이런 별미, 옥삼갱이나 금제옥회보다 낫다는 내용이다.사가정은 배추로 국을 끓이고 술안주로도 만들었다. 우리는 술안주, 밥반찬을 혼동하고 있다. 550년 전의 사가정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배춧국도 맛있고, 배추로 만든 안주도 좋고 배를 채울 만하다고 했다.사가정의 시절에는 배추를 귀하게 여겼다. 사가정과 이 시에 등장하는 안유문은 사돈지간이다. 사가정의 아들 충의위 서복경과 안유문의 맏딸이 혼인했다.가까운 사이지만 사가정은 높은 벼슬아치다. 사돈이자 고위직 벼슬아치에게 준 선물이 배추다. 그 배추를 받아들고 조선 전기 최고의 문인이 시를 남겼다. 배추는 귀한 선물이었다.배추는 ‘숭(菘)’이다. ‘숭’은 ‘숭채(菘菜)’의 줄임말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그의 시에서 ‘납조냉면숭저벽(拉條冷麪菘菹碧)’이라고 했다. ‘숭저(菘菹)’는 배추김치다.배추는 백채에서 비롯되었음이 정설이다. 백채(白菜)는 줄기 부분이 흰색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다산 정약용이 시에서 “배추김치가 푸르다(숭저벽, 菘菹碧)”고 한 것은 다산 시대의 배추가 지금의 배추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결구 배추는 속 고갱이가 노랗다. 줄기는 흰 부분이 많다. 당시의 배추는 비 결구 배추, 즉 얼갈이배추다. 흰 부분, 노란 부분도 있지만 적다. 결구 배추의 역사는 길지 않다. 불과 100년 정도다. 일제강점기에도 결구 배추, 반 결구 배추가 있었지만 널리 유행하지는 않았다. 한국전쟁 후 속이 꽉 찬, 노란색의 결구 배추가 널리 퍼졌다.배추는 ‘숭(菘)’ ‘백숭(白菘)’ ‘백채(白菜)’ ‘숭채(菘菜)’ 등으로 표기했다. 민간에서는 글자의 의미를 모른 채, 소리 나는 대로 ‘배초’라고 불렀다. ‘백채’ ‘배초’가 널리 퍼지니 ‘배초’를 한자 표기로 ‘배초(拜草)’로도 적었다. 다산 정약용은 “숭채는 방언으로 배초라고 하는데, 이것은 백채의 와전임을 (우리나라 사람들이)모른다”고 했다(다산시문집). ‘拜草(배초)’는 뜻이 없는 이두식 표현이다. 배추 이름은 ‘숭’ ‘숭채’와 백채, 두 가지로 진행되었다. 지금은 숭, 숭채는 사라지고 백채의 변형인 배추만 남은 셈이다.‘백채’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배추도 중국에서 전래 되었다. 중국에는 오래전부터, “‘이른 봄 부추, 늦가을 배추(早韭晩菘, 조구만숭)’가 가장 맛있다”는 표현이 있었다. 남제의 문혜태자(文惠太子, 458∼493년)가 주옹(5세기∼493년)에게 묻는다. “채식 중에 어떤 나물의 맛이 가장 좋더냐?” 주옹이 답한다. “초봄의 이른 부추 나물과 늦가을의 늦배추였습니다.(春初早韭 秋末晩菘, 춘초조구, 추말만숭)”이라고 했던 데서 시작된 표현이다.(南史, 남사_권34_周顒列傳, 주옹열전)한반도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배추가 자주 나타난다. 고려말부터 배추 이야기가 시작되니 배추 역시 몽골의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했을 때 전래한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앞선 배추’를 받아들인다.중종 28년(1533년) 2월6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내용은 중국과 밀무역을 했던 이들이 자수하면서 진술한 것이다. 범인은 사노(私奴) 오십근과 청로대(淸路隊) 유천년이다. 공범(?)이지만 신분은 전혀 다르다. 사노는 관청이 아닌 민간의 노비다. 청로대는 국왕 거동 시, 호종(扈從)하는 군인이다. 이들은 자신들도 속았다고 진술한다.“주범은 용산의 관노(官奴) 이산송이다. 우리는 그의 거짓말에 속아서 사기그릇을 싣고 중국으로 가서 쌀, 콩, 조 등과 더불어 배추 씨앗(白菜種, 백채종) 등을 밀무역했다. ‘제주도로 간다’라는 이산송의 말을 믿고 가보니 중국이었다”중국에서 사들인 밀무역 품목에 배추 씨앗이 있다. 16세기 중반에도 배추를 백채(白菜)라고 표현했다.한반도 김장, 김치의 역사는 배추의 진화 역사다. 100년 전에는 결구 배추가 없었다. 결구 배추는 품종 개량을 통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와 100년 전의 배추김치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배추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그나마, 중국 배추가 우리보다 나았다.장다리는 배추 혹은 무의 꽃이다. 장다리꽃이 피는 배추는 오늘날의 얼갈이배추 같은 것이다. 푸른빛이다. 속이 차지 않는 불 결구 배추다. 노랗게 속이 찬 결구 배추는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 쉽게 꽃이 피지 않는다. 중국 동북부 랴오둥(遼東, 요동)지방은 북경, 심양을 오가는 통로다. 랴오둥을 통하여 중국과 교류했던 조선의 관리, 문인들은 배추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주로 중국 배추가 좋다고 부러워하는 내용이다. 조공 무역 등 국가 간의 공식무역이 아니라 사신단, 역관 등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무역을 통해 배추 씨앗은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1832~1833년, 대 중국 사신단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김경선(1788~1853년)은 “(중국)배추는 한 포기에 수십 개의 잎사귀가 붙어 있어 우리나라 것보다 크기가 배는 되며, 살이 무척 연하다. 겨울에 지하실에 두었다가 먹으면 언제나 새로 뽑은 거와 같다”라고 적었다(연원직지). 재미있는 것은 ‘지하실’이다. 원문에는 “겨울에는 ‘지실’에 저장한다(冬月儲於地室, 동월저어지실)”라고 했다. 건물의 지하실보다는 땅을 파고 깊이 묻어두었다는 뜻이다. 50년 전에는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움’을 이용했다. 땅을 적절한 깊이로 파서 움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배추, 무 등을 보관했다. 김경선이 중국에 갔던 19세기 중반에는, 중국인들도 땅을 파고 움처럼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움으로 겨울철 채소를 보관하는 것은, 중국이 우리보다 빠르지 않았을까, 추정한다.배추는 오래전부터 환금작물 노릇도 했다.‘악학궤범’을 편찬했던 용재 성현(1439~1504년)의 ‘용재총화(1525년, 중종 20년 간행)’에서는 조선 초, 중기 채소 재배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중 ‘왕십리 배추’가 등장한다.“(전략) 무릇 채소와 과실은 알맞은 흙에 따라서 모두 심어야 그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동대문 밖 왕십리는 무, 순무, 배추 따위를 심고 있으며, 청파(靑坡), 노원(蘆原) 두 역(驛)은 토란이 잘 되고, 남산의 남쪽 이태원 사람들은 다료(茶蓼)를 잘 심어 홍아(紅芽)를 만들고, 경기 삭령(朔寧) 사람들은 파를 잘 심고,(후략)” (용재총화_제7권)비슷한 시기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 1530년 편찬)’에도 “왕십리평(往十里坪)은 흥인문 밖 5리쯤에 있는데, 거주하는 백성들이 무와 배추 등 채소를 심어 생활한다”라고 했다. 배추는 제법 짭짤한 환금작물이었다. 18세기의 실학자 유수원(1694~1755년)은 “왕십리에서 채소를 키우는 이들은 도성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채소를 판다. 시골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본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우서). 이미 ‘농산물 재배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맛칼럼니스트

2019-07-23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것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얼마 전 음식점에서 포항 12경이 인쇄된 종이 식판을 보았다. 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포항 12경을 선정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일부가 바뀐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2009년 포항시 승격 60주년 당시 선정했던 12경 가운데 몇 개가 금년 70주년을 계기로 교체된 것이다. 종전에 선정되었던 12경이나 이번에 선정된 12경 모두 선정될만한 곳이었다. 다만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번에 빠진 곳들의 경치에 하자가 생긴 것도 아니었을 텐데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자랑거리는 늘어났지만 12경을 고수하려는 숫자에 과도하게 얽매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항이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이러한 방식이 최선이었을 지는 의문이다.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거주지와 전혀 다른 경치나 문화, 유적을 보는 관광을 선호하였다. 예로부터 유명 경승지인 단양8경, 관동8경과 같은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해당 지역 지자체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은 10경, 12경을 선정하여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것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관광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취향이나 니즈를 무시한 채 관광지 공급자인 해당 지자체의 일방적인 정보 발신만으로는 해당 지역민은 물론이고 타 지역으로부터도 지속적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현대의 관광소비자들은 과거처럼 그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무한경쟁에 지친 직장인들 중에는 새로운 것을 배워 정신적인 힐링을 얻으려는 학습파, 그저 맛난 음식이 있으면 최고라며 전국을 누비는 식도락파, 각종 체험에 도전하는 행동파 등 관광의 대상이나 형태는 복잡하며 회사, 동아리, 동창회 등 관광주체나 싱글, 커플, 가족, 단체 등 관광인원단위도 매우 다채롭다.포항 12경에 집착하여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 굳이 숫자를 정한다면 탑10도 나쁘지 않다. 대신 포항은 이번 기회에 관광객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으면 한다. 포항에서 봐야할 곳을 포항 10경(景), 포항에서 배우고 느낄만한 곳을 포항 10학(學), 포항에서 직접 체험하며 즐길 거리를 포항 10락(樂)으로 선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이를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위해 먼저 세 분야에 대해 시범적인 예시를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시민들마다 마음속의 10경, 10학, 10락은 다를 것이지만 이는 얼마든지 포항시가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해 나가면 될 것이다.먼저 포항 10경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호미곶, 내연산의 12폭포, 죽장 하옥계곡, 운제산 오어사, 경상북도 수목원, 영일대와 포스코 야경, 덕동 문화마을 숲, 환호공원 주변, 4.3㎞의 철길숲과 불의정원, 한반도 최동단 땅끝마을인 구룡포 석병리를 꼽았다. 포항 10학에는 장기읍성과 유배문화체험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포항지구전적비, 영일 냉수리 신라비와 고분, 칠포리 암각화군, 연일 중명자연생태공원, 포스코 역사관, 포항가속기연구소,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꼽았다. 포항은 석기시대부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는 정치, 충의, 환경, 경제, 신화 등 다양한 학습이 가능한 곳이다. 포항 10락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산책, 포항운하 크루즈 탑승, 포항 꿈틀로에서 문화예술 체험, 영일신항만 방파제에서 바다낚시, 칠포 재즈페스티벌 감상, 포항국제불빛축제 구경,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관람, 흥해 북송리 소나무숲 걷기, 동해안 최대 죽도어시장 탐방, 구룡포 대게와 과메기 먹어보기는 어떨까. 의외로 포항은 자랑거리가 풍부하다.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2019-07-23

‘다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경우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교양교육원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관련 담론과 연구는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단일 민족 신화와 동화주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은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고 있다.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은 공분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필자 역시 가해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과 폭력 영상을 접할 때, 오랜 기간 피해여성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하며 강력한 법적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 남편이 경찰에 긴급 체포되면서 했던 말(“평소에 말대꾸를 한다.”,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언어가 다르니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하니깐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였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에 대해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은 필자를 더 분노하게 하였다. 언론은 남편의 말을 ‘변명’으로 해석하고, 이에 관련하여 가해 남편을 비난하며 글로벌하게 한국 망신을 하고 있다는 등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필자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단지 폭력적인 특정 남성의 문제와 ‘변명’으로 축소하기보다, 한국 사회가 결혼이주여성을 포함하여 많은 소수자들이 겪는 인권유린, 공포, 가정폭력, 성차별, 인종차별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다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권력 기제를 간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그 가해 남편의 말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나름의 폭력적인 ‘논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을 피부색, 민족적·인종적 출신, 언어, 성, 종교 등의 이유로 구분 짓고 규정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고, 이러한 차이의 구성은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 안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된다.나는 타자를 어떻게 지각하고 동시에 나의 자아상은 어떠한가?가해 남편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동질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생각도 비슷하다고 간주하는 ‘우리’가 아닌 ‘그들’로 간주하고, 그 다름은 ‘자연스럽게’ 공격적 감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또한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놓고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한다는 발언에서 가정 폭력을 당연한 행동으로 착각하는 남편의 무지와 젠더의식의 결핍을 엿볼 수 있다.이주 사회에서 이주민에 대한 상(像)은 일상생활, 미디어, 정치, 교육 등의 영역에 따라 정형화되어 재현되고 있다.예를 들어 열악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을 시혜 대상으로 표상함으로써 경제적 지원과 온정적인 지원정책이 정당화되고 있다.이러한 주류 집단의 타자관은 이주민을 학습능력이 부족한 결핍의 존재로 규정하는 것에 기인한다. 이때 이주민은 온갖 다문화 정책의 효율적인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객체화’되고 있는 반면, 정책을 계획하는 다수사회의 구성원은 주체의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된다.이러한 타자화는 특히 결혼이주여성을 가부장제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불쌍한 피해자로 보거나 ‘돈을 받고 결혼을 선택한 못사는 나라 출신의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에서도 나타난다.한국 사회 내에 작용하는 법제도와 병행되는 관습적인 차별적 담론과 시선은 그들을 공식적인 국민으로서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이렇게 볼 때 한국 사회는 동질적인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자기동일적이지 못한 이질적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타자관을 지속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2019-07-23

퀀텀 리프(quantum leap)

대나무는 외떡잎식물, 즉 풀에 속하지만, 그토록 곧고 푸르고 높게 성장하는 데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보살펴도 대나무는 1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인내심을 갖고 2년 차 또 일편단심 정성껏 돌보지만, 결과는 무(無). 아무런 변화가 없고 싹조차 트지 않습니다. 또 한 해를 반복합니다. 3년 차. 드디어 결과가 보입니다. 30㎝ 죽순이 삐죽 땅 위로 솟아오르지만 거기서 스톱. 더 자라지 않습니다. 4년 한 해 동안 30㎝에서 끄떡하질 않습니다.이게 전부 다 인가, 초조하게 바라봅니다. 다시 1년을 기다리며 투자합니다. 5년째 되는 해. 대나무는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이른바 퀀텀 리프(quantum leap). 마디마다 생장점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1m씩 자랍니다. 이 시기의 대나무는 1시간에 소나무가 30년 걸려 자라는 길이만큼 쭉쭉 위로 솟구칩니다. 필름을 고속으로 돌려 보면 마치 화살을 쏘아 올리는 것과 같은 속도일 테지요.비밀은 뿌리에 있습니다. 4년 동안 대나무 뿌리는 지반을 움켜쥐듯 서로 얽히며 보이지 않는 흙 속 깊은 곳으로 뻗어 내려갑니다. 이 뿌리가 4년 기초를 닦았기에 하루 1m의 폭풍 성장, 퀀텀 리프가 가능한 5년 차를 맞이하는 겁니다.기본을 죽어라 파고 포기하지 않았던 손정웅씨가 아들 손흥민을 교육한 방법이 대나무의 성장과 꼭 닮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신뢰. 인내. 폭풍 성장. 마침내 손흥민은 대한민국 축구의 선봉장으로 우뚝 서지요. 2010년 이래 손정웅에게 아이들을 맡겼던 많은 학부모가 언제까지 기본기만 가르치고 있을 거냐고 따지고 항의하면서 등을 돌렸지만 손정웅은 고집을 꺾지 않고 아들 손흥민으로 자신의 방법이 옳았음을 증명해 냅니다.우리 교육을 돌아봅니다. 눈앞의 진로, 성적, 높은 자리를 추구하며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본기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기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교육이야말로 AI 시대에 흔들리지 않을 최고의 교육입니다. 교육의 기본은 ‘책’입니다. 손흥민이 ‘공’하나를 다루기 위해 8년을 투자한 것처럼, 진정한 배움의 길을 위해 ‘책’하나를 붙잡고 씨름하고 물고 뜯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퀀텀 리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먹구름 위 눈부신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본기를 충실하게 닦아야 합니다. 그대와 함께 일궈 나갈 울창한 대나무 숲을 상상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23

죽창의 진실과 죽창가(竹槍歌)

강희룡 서예가며칠 전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그의 SNS에 ‘죽창가’를 언급했다. 이 메시지는 아마 한국을 압박하려고 부당한 무역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국론을 하나로 모으자고 하는 뜻일 것이다. 죽창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시 민초들의 삶의 배경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당시 구한말의 정치, 경제구조의 진실을 냉철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조선은 정조시대 후기로 이어오면서 60여 년간 세도정치로 국고는 텅 비고 모든 산업은 위축되었다. 백성들은 심한 기아에 시달렸으며 나라가 순식간에 빚더미가 되자 대원군은 세도정치의 폐해를 알고 고종의 비(妃)로 명문이면서도 몰락하여 일가가 없고 그 세력이 미미하며 부모가 일찍 죽어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민치록의 외동딸 민자영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이 왕비가 바로 민비이다. 민자영이 왕비가 되자 갑자기 없던 친척이 수없이 몰려들었고, 이들에게 같은 민씨라는 이유로 요직에 등용하거나 벼슬을 내렸다. 당시 기록에는 뇌물을 바치고 지방의 사또가 되어 가는 사람이 미처 남대문을 나가기도 전에 더 많은 뇌물을 바친 다른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황현의 ‘매천야록’에 고종은 뇌물을 좋아했으며, 대신들을 임명하고 일주일도 채 안되어 자리를 바꾸게 하는 등의 졸속행정으로 관리들이 공문서를 들고 갈 곳을 모르더라는 기록도 있다. 전국의 큰 고을이면 대부분 민씨들이 수령자리를 꿰찼고, 평양감사와 통제사는 민씨가 아니면 할 수 없게 됐다고 쓰고 있다. 고종과 민비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었고, 당시 뇌물 5만 냥으로 벼슬을 산 자가 바로 고부군수 조병갑이다. 탐관오리 중 으뜸이었던 조병갑은 만석보라는 대형 저수지를 축조하여 사용료를 부과하였고, 아버지의 공덕비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걷고 노역을 시키는 등 민초들을 괴롭혔다. 이 폭정에 견디지 못한 고부군 사람들은 전봉준 아버지인 전창혁을 대표로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매질뿐이었다. 곤장으로 인해 전창혁은 거의 죽은 상태로 돌아와 며칠 안 되어 죽고 말았으니 이에 분개한 아들 전봉준이 1894년 1월 동학농민들을 주축으로 봉기했다.전주성 함락으로 크게 놀란 조정은 청나라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자 1894년 5월 5일 아산만에 청군이 상륙한다. 하지만 무능한 고종과 대신들의 이런 잘못된 결정은 바로 다음 날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과 동일한 파병권을 갖는다’는 톈진조약을 명분으로 일본군이 전격적으로 제물포에 상륙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내부의 분란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역사적 사실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공주에서 벌어진 ‘우금치전투’에서 야포와 개틀링 기관총, 스나이더 소총 등 신식 무기로 무장한 조선관군과 일본군에 비해 2만여 동학군은 대부분 조총과 죽창으로 무장하고 전투를 했으니, 이건 전투가 아닌 제노사이드(학살)였던 셈이다. 농민군이 대패하고 1895년 3월 전봉준이 처형될 때까지 그렇게 1년 만에 동학농민전투는 막을 내렸다.여기서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할 것은 일본군이나 죽창이 아니라 상무정신이 없고 문약했던 관리들, 권력에 줄서서 백성의 고혈을 빠느라 정신이 없었던 당시 부패한 사회구조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이 무능한 집권세력을 향해 죽창을 든 것이다. 민정수석이 올린 죽창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라는 주사파 일원으로 스스로 전사라 칭하며 남조선 우익 200만은 학살해야 한다던 김남주가 작사했다. 민중해방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민비는 2000년대 ‘명성황후’라는 오페라에 의해 부패와 악질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조선의 국모’로 변해버렸다. 동학농민운동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정자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해석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2019-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