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종이에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쓰기’만 하면 마법처럼 절로 꿈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꿈을 써 보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방향을 볼 수 있고,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지요.당연히 꿈을 이룰 확률 또한 높아집니다.1944년 어느 비 내리는 오후, 열일곱 살 소년 존 고다드는 식탁에 앉아 노란색 종이 위에 ‘내 인생 목표’라는 제목을 쓰고 하나하나 써 내려가 모두 127가지를 적었습니다.‘탐험할 강’, ‘원시 문화 답사’, ‘등반할 산’, ‘배워야 할 것들’, ‘사진 촬영’, ‘바닷속 탐험’, ‘여행할 장소’, ‘수영해 볼 장소’, ‘해낼 일’ 등으로 그 꿈의 목록은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이후 존 고다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47세가 되던 1972년 ‘라이프’ 지에 그의 기사가 등장합니다.제목은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이었지요. 첫 꿈을 기록한 지 64년이 흐른 2008년에는 127가지의 목표 중 109가지를 이루었습니다.존 고다드가 그런 목표를 세운 계기가 있습니다.할머니와 숙모가 나누던 대화 중에 “이것을 내가 젊었을 때 했더라면…”이라는 푸념을 두 사람이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나는 커서 무엇을 했더라면… 이라는 후회는 말아야지!” 소년 존 고다드는 결심했고 끝내 지켜냈습니다.존은 60세 되던 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며 끊임없이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127개 항목을 모두 다 이루려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그는 목표 세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별을 품고 있습니다. 미루지 말고 즉각 목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세요.”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20-01-01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여곡절 끝에 9에서 0으로 넘어왔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이 끊이지 않았던 2019년! 누군가가 제대로 “아홉수”에 걸렸다고 했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아홉수”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을 보면 대한민국은 아홉수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 아홉수에서 아홉은 9를 의미한다. 그럼 9는 어떤 의미와 기운을 가졌기에 이 나라가 이다지도 어려울까? 9라는 숫자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지금의 시국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설명이 있어 인용한다.“숫자 9는 분열, 성장하게 하는 양수의 마지막 변화 단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달이 차면 기울듯이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반대되는 기운이 올 차례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생기게 되는데 현자들은 이 시점에 세상에 큰 변국이 닥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이 나라에는 큰 변국(變局)이 닥쳤다. 혼란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기고만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들의 눈에 국민의 힘듦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런 정치인들이 국민 운운(云云)하니 분통이 터진다.벌써부터 목 좋은 곳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철새 정치인들의 대형 선거 홍보물이 내걸렸다. 여태까지 어디에서 무엇 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인(棄人)도 아마 이런 기인(奇人)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당선을 위해 네거리에서 기계처럼 손 흔들며 영혼 없는 인사를 할 그들의 역겨운 모습을 생각하니 새해 기분이 다 날아 가버렸다.분명 달력은 9에서 0으로 넘어 왔다. 그런데 어찌 이 나라는 아홉수 덫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까? 이런 걸 보면 역사는 발전한다는 논리는 오류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최근 들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단언컨대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정(正)으로 나아간 만큼 딱 그만큼 반(反)으로 후퇴해 합(合)은 결국 제자리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반복될 뿐이다. (중략) 역사의 주체가 달라지지 않았으니 역사가 발전할 까닭이 없다.(….)”필자의 저 깊은 내면에는 위의 말을 부정하는 소리들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내면의 절규를 덮어버렸다. 2019년의 사람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는데 2020년의 나라 모습이 바뀔까? 역사가 반복된다면 우리의 2020년 모습은 어떨까? 언제나 그랬듯이 선거 이후에는 더 극심한 혼돈이 있었다. 희망을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픈 신년 벽두다.비록 구태의연한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아직 아홉수에 갇혀 있지만, 교육과 국민이 9를 밀어내고 0의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0은 시작점을 나타낸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국민들이 희망 안에서 희망의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더 큰 희망 만들어갈 그런 시작점이 될 2020년, 대한민국, 교육을 바란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21세기 스무 번째 새해가 떠올랐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동해로 달려 나간다. 지체와 서행을 반복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맹렬 기사들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새해일출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길이 아무리 멀고 고단해도 그들의 바람을 꺾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소망과 꿈이 있다는 얘기다.싫든 좋든 2020년은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에 올랐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며, 길은 다시 다른 길과 이어지며 확장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배우고, 드넓은 자연과 세상의 풍경에 깊이 감복한다. 우리나라가 좁다고들 하는데, 그들에게 매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는 이 나라 산천을 얼마나 다녀보았는가. 자동차나 열차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서 걸어본 곳이 얼마나 되는가?!”걷는다는 것은 속도의 욕망을 극복하고 사유와 인식과 정서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빨리 달릴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한다. 그저 달릴 뿐이다. 그것은 행선지를 향한 유일목표, 즉 도달에만 집중하는 행위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 질주의 행렬은 우울하거나 초라하다. 걷는다함은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며, 느림에서 비롯하는 새김질과 반성과 성찰이 덤으로 보태진다.얼마 전에 친구 하나는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것이 꿈이라 했다. 나는 즉시 다른 생각을 전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길을 함께 걸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도 다시 이동하여 순례길 초입까지 가야 한다. 아주 멀리 있는 타국의 길보다는 산천경개(山川景槪) 수려한 한반도 남단을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에 젖거나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요즘에는 지자체 곳곳에서 경쟁하듯 길을 제공하고 있기에 발품 파는 일도 어렵지 않다. 부담 없는 일정 짜서 걷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멈춘 곳에서 다시 출발하면 그만 아닌가.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이런 길 저런 길, 굽은 길 곧은 길, 언덕길과 산길, 오르막과 내리막,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길, 농촌과 산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운이 좋으면 ‘길’의 잠파노와 젤소미나처럼 아픈 사랑을 했던 동반자의 구수한 이야기도 함께할 것이다. 문제는 당장 실천하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혹은 특정기념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은 성사를 늦출 뿐이다. 현재의 수인이 되어 자기만의 성채에 둘러싸인 채 안주하지 않는다면, 2020년에 우리는 장정에 오를 수 있다.돌궐을 건국한 돈유곡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정주(定住)와 멈춤은 부패와 타락의 전주곡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길을 향한 장정을 시작할 때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국 사람은 탁월하다. 한국인의 우수함은 역설적으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발견한다. 땅은 좁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 나라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도 외국에서 뿌리를 내린 이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남들의 인정을 받는다. 시작은 물론 안에서 했겠지만, 밖에서 나래를 펼친 이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였다. 물이 좁아서 그럴까, 넓은 물을 겪게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 생각이 자유로와지고 시선이 더 먼 곳에 가 닿는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기보다 나 자신을 갈고닦아 성숙하려 애쓰게 된다. 발을 딛고 선 곳만 바뀌면 사람이 달라지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아들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아빠를 따라 억지로 국내에서 보낸 5년 여 동안 학교는 그를 포기하였다. 아니 본인도 자신을 놓아버렸다.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었다. 선생님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매일 받았던 미국 학교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늘 틀렸고 항상 잘못했으며 지적만 한가득 받아오는 게 학교생활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들려주는 응원의 목소리마저 가짜처럼 들렸으니까. 힘들고 지치며 재미없고 외로웠지만 달리 방법도 보이지 않아 그냥 그렇게 견딘 몇 년이었다. 그러다 혼자라도 미국으로 돌아가 볼까 생각하였다. 한번 해보겠노라고 아빠엄마를 설득하여 아들은 돌아갔다. 아들이 달라졌다! 안 되는 게 없었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놀기만 좋아해서 그런 걸 즐긴다고 핀잔을 들었던 연극활동으로 뮤지컬 주연을 겹겹이 도맡았다. 무엇을 해도 칭찬으로 가득했으며, 좀 실수를 해도 금방 수정하면 오히려 상을 받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분에 넘치게 졸업식에서는 대표연설을 하였다. 제목은 ‘우리는 모두 다르다.’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 방에서 차린 카페는 수많은 친구들의 수다방이 되었다. 학교는 오히려 문제의 소지를 없애주며 격려해 주었다. 꿈을 키우켜 학교를 대도시로 옮겼다. 처음 뉴욕에 도착하였을 적에 ‘디즈니 스토어’ 임시점원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디즈니 뉴욕’ 정직원으로 회사가 만드는 뮤지컬을 전국에 마케팅한다. 스스로도 ‘꿈 속을 걷고 있다’면서, 애써 지핀 이 불씨를 더 키워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던진단다. 아들의 긴 이야기를 짧게 적어 보았지만, 적어도 그가 겪은 미국과 한국은 참으로 다르다. 같은 사람 알렉스가 어쩌면 그렇게 다른 모습이었을까.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오늘 그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로부터 가능성을 찾고 내일을 보아야 한다. 그는 ‘오늘의 최선’이 아닌가. 거기서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교가 있고 부모가 있으며 선생이 있다. 가능성의 가닥이 꼭 학과목이어야 할 까닭은 또 어디에 있는가. 공부만 잘 하여 문제만 일으키는 어른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보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며 폭넓게 담게 하자. 호연지기, 2020년에는 ‘글로벌 호연지기’를 심기로 하자. 알렉스, 파이팅!
13월의 월급이란 연말정산시 매달 급여를 받을 때 소득에서 원천징수했던 세액을 연간 단위로 정산한 뒤 세금을 많이 냈다면 차액을 환급받고, 적게 냈으면 추가로 징수하는 금액을 일컫는 말이다. 이달 15일부터 시작되는 연말정산은 지난 해와 많이 달라졌다.우선 올해부터 산후조리원 비용이 200만원까지 의료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됐고, 급여 총액이 7천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지난해 7월 1일 이후 박물관·미술관 입장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했을 경우 30%를 소득 공제받게 된다.기부금액의 30%가 산출세액에서 공제되는 고액기부금 기준금액도 2천만원 초과에서 1천만원 초과로 낮아졌다. 또 집이 없거나 1개 주택만 보유한 세대주 근로자는 금융기관 등에 상환하는 주택저당차입금 이자를 소득공제 받는데, 올해부터 공제 대상 주택의 기준시가 요건이 4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됐다.월세액 공제 혜택은 지난해까지 국민주택 규모의 집을 임차한 경우에만 적용됐으나, 올해는 집이 기준시가 3억원 이하면 공제받을 수 있다. 생산직 근로자 야간근로수당 비과세 기준도 월정액 급여 190만원 이하에서 210만원 이하로 확대됐다.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총급여의 25%를 초과해서 쓴 경우만 해당되고, 의료비는 급여의 3%를 초과해야 공제 대상이 된다. 신용카드 결제 시 추가공제와 중복공제가 가능하다.대중교통 요금, 전통시장 이용액, 도서·공연비 등을 카드로 결제할 경우 각각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또 의료비, 취학 전 아동 학원비, 교복 구입비는 중복으로 소득공제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13월의 월급’으로 불리지만 자칫하면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공제요건을 꼼꼼이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지난 1년간, 연재에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지면을 허락한 경북매일신문과 취재 과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첫 칼럼에서 “왜 경북의 음식인가?”를 이야기했다. 경북은, 흔히, “음식이 없는 곳, 음식 맛이 없는 곳”으로 못 박는다. 그렇지는 않다. ‘맛’의 기준이 다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경북 음식은 맛으로 만나는 음식이 아니다. 출발부터 다르다. 경북의 음식은 맛이 아니라 ‘법도(法道)’다.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첫 칼럼에서 인용한, 탁청정 김유(1481~1552년)의 ‘수운잡방(需雲雜方)’이 법도에 맞는 음식의 예다. 탁청정은 조선 초기의 문사(文士)다. 벼슬도 구하지 않고 전원생활을 추구했다. 일생을 손님맞이에 힘썼다. ‘수운잡방’은 여러 가지 음식 만드는 법을 기술한 책이다. 남성인 유학자가 왜 음식에 관한 책을 기술했을까? 음식이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주요 도구이기 때문이다. 탁청정은 손님맞이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장(醬), 지(漬), 초(酢) 술[酒, 주]에 대해서 정리했다.유교적 관점이다.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에 필수적인 도구다. 남자인 유학자가 음식 관련 책을 기술한 이유다.오늘날 경북은 100년 전, 경상좌도와 대부분 겹친다. 갑오경장 이전에는 전국 팔도를 좌와 우로 나누었다. 한양에서 바로 보기에 낙동강 왼쪽은 경상좌도, 오른쪽은 경상우도다. 경북은 대부분 경상좌도 지역이었다.경상좌도는 유교의 중심지다.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포은 정몽주(영일만, 영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영주)은 좌도의 유학자였다. 포은과 삼봉의 스승 목은 이색(영덕), 야은 길재(구미 선산), 도은 이숭인(성주)도 좌도와 연관이 있는 유학자였다.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안동)도 좌도의 유학자였다. 경상우도가 ‘남명 조식의 나라’라면, 경상좌도는 ‘퇴계의 나라’였다. 1670년 무렵, 정부인 장계향이 기술한 ‘음식디미방’이 나왔다. 장계향의 친정아버지 경당 장흥효(안동), 남편 석계 이시명(영해, 영덕), 아들 갈암 이현일(영해)은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조선 말기 상주에서 ‘시의전서’가 발견되었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시의전서’ 등 음식 관련 책이 모두 ‘음식 맛없는’ 경북에서 나왔다. ‘법도’를 지키는 ‘퇴계의 나라’였기 때문이다.경북은 ‘곰탕의 나라’다. 영천에 가면 ‘포항 할매곰탕’이 있고, 포항에는 ‘안동할매곰탕’과 ‘장기식당’이 유명하다. 경북의 웬만한 중소도시, 시골 골목에는 곰탕집이 있다. 시장통에는 30년, 50년을 넘긴 곰탕집이 흔하다. 설렁탕 집은 귀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귀한 곰탕집은 널리고 널렸다. 소머리곰탕이 있는가 하면, 경북 북부에는 사골곰탕도 흔하다.서울에는 설렁탕 집은 많으나 곰탕집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설렁탕 노포도 마찬가지. 메뉴에서 ‘곰탕’을 찾기는 어렵다. 왜 곰탕이 경북 지방에만 흔할까? 곰탕이 ‘봉제사접빈객’의 으뜸 음식이기 때문이다. 곰탕은 대갱(大羹)이다. 대갱은 모든 음식의 기준이다. 대갱은 고기 곤 국물이다. 으뜸이고 기준이니 조미도 하지 않는다. “매실과 소금 양념도 하지 않은 국물”이 대갱이다.국물 음식이지만 굳이 국물로 가르지 않는다. 제사상에 밥과 국이 있는데 반드시 곰탕을 올리는 이유다. 양깃살(양짓살)에 다시마, 무를 넣고 푹 곤다. 그뿐이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華而不侈, 화이불치] 음식이다.민간에 고기가 흔할 리 없다. 소머리(소대가리)를 삶는다. 고기를 발라 넣고, 뼈 곤 국물에 밥을 만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를 도축하고 나면 뼈가 남는다. 역시 곤다. 소, 돼지는 다리가 네 개다. 사골(四骨)이다. 사골을 곤 국물이 사골곰탕이다. 정육(精肉)이 귀하니 소 대가리와 다리뼈도 사용한다. 갈비뼈, 다른 잡뼈도 넣는다. 내용물은 설렁탕과 닮았으나 경북에서는 굳이 곰탕이다. 곧이 곧 대로의 곰탕은 아니되, 곰탕이다.경북 음식의 또 다른 키워드는 국수다. 곰탕집 못지않게 군데군데 국숫집이 있다. 큰길가, 동네 골목에도 있지만, 시장에서도 30년 이상의 국수 노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국숫집이 많을까? 역시 국수가 ‘봉제사접빈객’의 주요 도구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안동에서는 “국수 없는 제사 없다”고 말한다.대구 시내 시장통에는 ‘합천할매집’이 있고, 칠곡의 국숫집에서는 안동식 건진국시, 제물국시를 내놓는다. 국수 중에도 칼국숫집이 유난히 많다. 경북 만의 국수도 있다. 반드시 콩가루를 ‘쪼매’ 넣는다. 경주 ‘웃장’의 칼국수 미는 사람이나 안동의 건진국시, 제물국시 맛집들도 ‘콩가루 쪼매’에 대해서는 각각 말이 다르다. 수십 번을 물어봐도 아무도 “몇 퍼센트 넣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쪼매’다.‘쪼매’는 한식의 특질이다. 오랜 경험과 연습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레시피대로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쪼매’는 딥러닝(Deep Running)을 거친 AI(Artificial Intelligence)도 따르기 힘들다. 그날의 온도, 습도, 불의 강도와 가족들의 시시각각 바뀌는 식성까지 헤아려야 한다. 우리의 ‘엄마’ ‘할매’들은 이런 어려운, ‘콩가루 쪼매 넣은 칼국수’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쉽게 만들었다. “콩가루를 얼마나 넣느냐?”는 질문에 대한 명답이 있다. “여름철에는 ‘쪼매’ 더 넣고, 겨울에는 ‘쪼매’ 덜 넣니더”.구룡포, 장기 일대에도 재미있는 국수가 있다. ‘깔때기’ 혹은 ‘깔때기 국수’다. 미역국에 밀가루 음식을 넣어 먹는다. 수제비를 넣어서 먹었다는 이도 있고, 같은 지역임에도 새알심을 넣었다는 이도 있다. 요즘은 굵직한 칼국수 형태의 밀가루를 넣는다. 바닷가의 흔한 미역과 밀가루가 만난 경우다. 지금도 경북에서는 “난 하루 세끼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국수는 일상적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국수, 국수 맛을 기억하고 있다. ‘멸치 쪼매 부숴 넣고, 콩가루 쪼매 넣어서 해 먹었던 칼국수’는 경북 출신들의 ‘소울푸드’다.경북의 모든 음식이 봉제사접빈객의 음식은 아니다. 추어탕은 서민의 일상식이다. 추어탕은 중부식과 남부식으로 나눌 수 있다.중부식은 한양, 서울 방식이다. 국물을 별도로 마련한다. 국물은 소 내장이나 부속물을 우린 것이다. 고명, 육수 모두 화려하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사용한다. 붉고 맵다.경상도식 추어탕은 단순, 담백하다. 미꾸라지를 삶은 후, 곱게 간다. 곱게 간 미꾸라지 살로 추어탕을 끓인다. 된장 혹은 간장을 육수 대신 사용한다. 담백하다. 채소도 우거지, 시래기 등이다. 주로 배추 우거지를 곱게 쓴다. 여기에 산초가루를 더한다. 그뿐이다. 맑고 담백하다. 농경 지역 형태다. 청도 일대의 추어탕은 메기를 더했다. 추어탕에 메기를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다. 상주, 예천, 문경 등에는 논, 개울에서 직접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 추어전골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갱시기’는 퍽 재미있다. 갱식(羹食), 혹은 갱식(更食)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앞은 ‘국물 음식’이고, 뒤는 ‘다시 끓여 먹는다’는 뜻이다.“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시래기였다”고 떠들었다. 시래기와 갱시기. 나머지 2할은 갱시기였다. 소설가 성석제도 갱시기에 대해서 글을 썼다. 성석제는 고향이 상주 은척이다. ‘상업화’에는 실패했지만, 갱시기는 한식의 특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한식은 ‘탕반(湯飯)음식’이다. 갱시기도 간편한 국물 음식이다. 멸치, 김칫국물에 식은 밥을 더한다. 콩나물, 두부 등을 넣어도 좋다. 남은 음식은 다시 끓여도 된다. 인스턴트 음식이다.한식의 특질은 삭힘이다. 유럽인들이 우유, 고기를 삭힌 유장(乳醬)을 자랑하지만, 좁고 얕다. 한식은 콩 등을 삭힌 두장(豆醬)과 생선을 삭힌 어장(魚醬)을 동시에 사용한다. 겨울이면 포항을 비롯, 동해안 전 지역에서는 ‘밥식해(食醢)’를 먹는다. 가자미, 명태, 횟대, 오징어, 꼴뚜기 등 생선도 가리지 않는다. 액젓 젓갈과 물기 없는 젓갈까지, 다양하다.갱시기의 주재료는 김치다. 그중에서도 김장김치다. 양력 3월이면, 김장김치가 푹 익어 곰삭은 쿰쿰한 맛을 낸다. 갱시기는 삭힌 음식을 조리한 것이다. 갱시기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음식이다.한식은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경북 음식은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황광해 맛칼럼니스트끝
2019-12-30
강희룡 서예가빛나는 문화와 풍요로운 경제력을 자랑했던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백성을 위한 모범적인 정치를 위해 ‘언론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라는 유훈을 남겼다. 왕이 간신의 아첨에만 빠져 있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으며 결국 망국으로 치닫는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게 되면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바른 말을 하겠는가.송 태조가 언로(言路)를 보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조선의 건국 주체들의 생각엔 언로의 보장은 그들의 이상에 매우 적합한 제도였고 언관(言官)제도의 강화를 위해 왕명과 정책에 직접 간쟁을 담당하는 언론기관을 창설했으니 삼사(三司)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료들은 이 삼사에서 관직생활하는 것을 영예로 여겼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는 잘못되는 정치 전반에 걸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따라서 이들의 힘이 강할 때는 왕권과 신권의 전제를 막았으나 이들의 힘이 약하거나 파벌에 의해 나눠질 때는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백관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주는 일 등을 맡는 기관은 송나라나 고려에서 어사대가 그 역할을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삼사 중 사헌부가 담당했다.이 사헌부는 고위직의 직무를 감찰하고 공직기강을 바로 잡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먼저 본인들 부서 내부에서도 규율이 매우 엄격했으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조정 신료들의 규율과 기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만큼 스스로의 행동과 위계질서가 일종의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여겼다. 왕에게 직언하며 고위관료들을 탄핵하고 견제하는 만큼, 왕이 파직 명령을 내리는 등 따위의 지위의 위태로움도 안고 있었다.이런 위험 속에서도 잘못된 정치에는 목숨을 걸고 임금께 상소를 올리며 자신의 주관을 펼치는 청렴한 관료들이다 보니 그 위엄은 사뭇 대단했으며 정승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지금 국회는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여야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며 팽팽한 공방전을 초래했다. 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등이다.결국 공수처는 입법 행정 사법을 초월하는 초헌법적 기구로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다.더구나 대법원장,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혐의를 인지단계에서부터 공수처에 통보토록 한 새 조항의 도입은 더 이상 견제할 기관도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을 깨부순 이 공수처의 입김에서 모든 기관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법부 역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사법권의 독립은 사라질 것이다. 헌법 1조 1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대한민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조현명 시인학기와 학년이 마무리되면서 선생님들은 전에 없던 노동에 시달린다.그것은 학생부 작성이라는 가중된 업무이다. “원래 선생님들의 업무가 아니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하기 싫을 정도로 격무가 되었다.웬만하면 이것 때문에 담임을 맡기 싫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예전 손으로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도 나름 어려움은 있었다. 흑색 볼펜으로 써야하고 오기나 잘못쓰기라도 하면 수정이 어려워 아예 다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 수는 지금에 비하면 몇 자 적은 것도 아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되는 수준은 아니었다.그런데 지금은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도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의 특기사항에다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과 종합의견란으로 써야하는 항목이 늘어났다. 게다가 기록을 구체적으로 해야 대입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없는 글을 짜내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이런 변명을 하면 관리자나 교육청에서는 미리 관찰기록을 작성하고 누가기록을 바탕으로 쓰면 쉽지 않겠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누가기록을 놓고 보아도 막연할 때가 많다. 글쟁이인 내가 그런데 글쓰기에 능숙하지 못한 선생님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이 든다. 올해부터는 또 거짓으로 꾸며 쓴 내용이 있으면 징계하겠다고 엄포까지 공문으로 전달받은 상태이다. 이러고 보니 진퇴양난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탁과 성화에 좋은 글을 짜내어 없는 것도 좋게 꾸며내야 할 판인데 감사가 겁이 나서 함부로 거짓으로 꾸밀 수도 없고 적당히 에둘러 적다보면 구체적이기보다는 두루뭉수리하고 추상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생이든지 성실하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훌륭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멋진 학생이다.복사하기 붙여넣기를 하다 보니 문장이 같아지는 학생이 많아지면 그것도 지적사항이 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의 능력을 좋게 써주려고 하다 보니 교육과정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지적사항이다.해마다 같은 내용을 하는 동아리의 기록을 달리해야 하다 보니 순서나 행사들을 나누어 적기도 한다. 그러다가 같은 문장이 3년 반복되어 지적되기도 한다. 오타나 말도 안 되는 문장, 길게 늘어져서 읽기가 거북한 문장, 자율 활동에도 나오고 진로 활동에도 나오고 종합의견에도 나오는 똑같은 문장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것을 가지고 대학입학사정관들은 점수를 매긴다. 대입의 당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의 글 솜씨에 의해 학생들의 당락이 좌우된다니 그냥 글쓰기가 아니다. 신경을 바짝 써야하는 어려운 글쓰기이다. 이런 격무는 대한민국에서나 있는 일이다.그래서 몇 해 전 해외토픽에도 오르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가 학생부의 공정성을 위해 글자 수를 줄이고 항목도 줄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격무다.게다가 이것으로 학교 수업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격무이다. “누가 여기서 좀 구해주시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격무의 늪에 빠진 교사들을 다 외면하고 지나쳐 갈뿐이다.
서로 짝을 지어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서로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을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상대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탈무드를 해석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도록 요구합니다.한 시간의 탈무드 공부를 위해 2∼3시간 동안 본문을 연구해 옵니다.그리고 둘이 끝장 토론하듯 상대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거죠. 이런 방식의 질문과 토론을 매일 반복한다니 소름 돋습니다.왜 그들이 미국의 ‘법조계’를 장악하고 있는지, ‘언어’를 다루는 언론, 출판, 방송, 영화 등을 독점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소크라테스는 삶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훌륭한 삶을 누리기 위해 캐묻는 삶을 강조했고,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도달하도록 상대를 다그쳤습니다. 100명의 사람을 찾아가면 오직 한 가지 ‘진리’에 도달하도록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즉 100대 1의 원리입니다.유대인들의 접근 방식은 소크라테스와 반대입니다. 한 가지 정답을 캐내고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명이 모이면 100가지 다른 다양한 관점들을 꺼낼 수 있도록 자극하고 거세게 몰아붙이는 겁니다. 100대 100의 원리인 셈이지요. 유대인 랍비들이 제자들을 자극하는 가장 치욕적인 말이 있습니다. “마따호쉐프!”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얘야. 너는 왜 ‘네 생각’이 없느냐!”정현종 시인이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끝없는 시작’ 속에 있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으로 2019년을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밝아오는 2020년을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백석 시인언제든 시간이 지나도 반복되고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분명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금은 단순한 제도나 의무 같이 내게 주어져 그 이유를 물을 필요 없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남겨진 것들 말이다. 어릴 때,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들의 손에 끌려 참석했던 제사 의례가 그렇고, 온 가족이 모여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처럼, 한 해의 정해진 때에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예의 관념이 꼭 그런 것들이다.인간에게 있어 이렇게 반복되는 것들이 매번 다른 의미를 갖기 어려운 까닭은 반복되는 것들 사이에서 매번 의미를 챙기기보다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순 반복되는 일들을 행하기에 적절한 존재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하나하나의 일들에 의미를 담기보다는 기계화된 동작과 의식으로 반복되는 일들에 자기를 맞춰갈 수밖에 없다. 인간을 둘러싼 반복적인 의례들이 매번 새로운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인간이 그러한 노동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된 것일 터이다. 그러한 의례에 담긴 큰 뜻이나 취지를 다시 설명한다고 해서 사라진 마음이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반복되는 겉치레의 예의 속에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삶에 가끔씩 어떤 ‘마음’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어느 겨울밤, 누군가 밖에 온 것 같아 공연히 문을 열어보게 되는 것처럼. 혹은, 새벽녘 문득 울린 스마트폰 알림에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기억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연말 같은 시기가 되면 문득 찾아오는 그 마음은 이제는 관성화되어 버린 반복된 예의 관념의 근원을 깨닫게 한다. 그래, 그랬었지, 우리가 그것을 처음 행했던 것에는 바로 그런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먼저였고, 어떤 것이 나중이었는지 쉽게 잊어버린다.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겨울밤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백석을 떠올리고, 백석 시 몇 편을 읽곤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의례나 의무 같은 것은 분명 아니다. 유독 겨울밤이 되면 찾아오는 그런 어렴풋한 ‘마음’을 백석만큼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릇 시인이라면 자기 앞에 놓인 무표정한 반복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당연한 의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독 백석은 낯선 얼굴 너머에 들어앉아 있는 어떤 ‘마음’의 기원을 찾아낸다.백석에게 있어 그 ‘마음’은 사방으로 눈이 내려 주변이 먹먹함으로 가득한 때, 온 가족들이 모여 보내는 명절날의 분위기로부터 온다. 그것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반복되어 찾아오는 것이니, ‘원형’적인 것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니, 매번 반복되는 명절날이나 가족들이 모임이 먼저가 아니다. ‘마음’이 먼저다. 내 앞에 가득 사리워 오는 한 그릇의 국수 속에도, 어떤 날을 떠올리도록 푹푹 내리는 눈 속에도, 눈같이 하얀 달이 빛나는 밤에도 그 마음이 담겨 찾아오는 것이다. 마치 이제는 어떤 정신도 죽어버렸다고 생각되던 고도 자본주의시대에도 보들레르가 언어 속에서 맡았던 고대의 향기처럼. 백석의 시 속에는 어떤 오래되었지만, 그리 오래된 것만도 아닌 어떤 ‘마음’을 동반한 맛이 존재한다.물론, 깊은 겨울 밤 따뜻한 방안에서 차갑고 시큼한 귤을 까먹으며, 백석 시를 맛보는 재미가 어디 그런 어렵고 복잡한 생각의 재미뿐이겠는가. 지금은 귀에 선 이북 사투리를 읽는 재미라든가, 마치 코끝이나 혀끝에서 맴돌 듯 느껴지는 감각도,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를 읊으며, 데운 술을 한 잔 마시는 경험도 백석 시를 맛보는 겨울밤의 일부가 아닐 것인가./송민호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