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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쓰기혁명

장규열 한동대 교수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암흑시대를 건너오고 있었던 유럽인들에게 아직도 문맹률이 95%에 달하였다. 성경을 비롯한 글로 적힌 문건들은 교회와 권력자들에게만 허용되었을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 글을 대할 필요조차 없었을 터이다. 인쇄술은 이후 르네상스 이성의 시대와 계몽의 새벽을 밝힌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성경이 누구에게나 주어졌으며 종교개혁을 통하여 신의 말씀을 직접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되었다. 데카르트가 인간이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했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였다. 읽을 수 있어 알게 되었고 더 알게 되므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생각을 이어 가면서 문명이 눈부신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지구상에 문맹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쓸 줄도 안다는 것이 아닌가. 모두 읽지만 모두 쓰지는 않는다. 왜 그랬을까. 까닭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매체 즉 미디어가 사용할 수는 있되 주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자, PD, 작가, 감독 등 생각과 이야기, 의견과 생각을 글로 적고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역량이 출중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훈련과 교육, 노력과 경쟁의 산업적 구도와 제약이 있었다. 아무나 기자가 될 수 없고 누구나 언론사 또는 제작사를 경영할 수 없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많지 않은 전문인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로 대리되었다.세상이 다시 바뀌었다. 디지털의 습격은 상상을 넘는다. 가시적으로 늘어난 정보의 양이 우선 놀랍다. 온라인에 없는 게 없고 모든 게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더 이상 공부와 노력이 필요없어 보인다. 읽을 줄 알지만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읽지도 않는데 쓸 필요는 이제 정말로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 온라인의 바다를 채우고 있기에 저렇게 콘텐츠들이 있을 터이다. 그게 누굴까. 이전의 전문인들 뿐 아니라 이제는 누구나 적을 수 있다. 전할 수 있고 퍼뜨릴 수 있다. 남의 글을 퍼 올리는 게 가능할 뿐 아니라 나의 글을 바로 올릴 수 있다. 세상이 바뀐 또 하나의 대목은 바로 여기가 아닌가. 대신 만족하던 ‘언론의 자유’를 넘어 스스로 충족하는 ‘표현의 자유’가 가능해 졌다. 이를 나는 충분히 사용하고 있는가.위험은 있다. 글쓰기 훈련이 아직 모자라는가도 싶고 무엇부터 적어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하다. 혹 지켜야 하는 무엇이 없는가도 궁금하고 아무나 쓰는 일이 적절한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가짜뉴스의 위험은 이미 보이고, 시민언론의 가능성이 펼쳐지고는 있다. 15세기 인쇄술이 많은 사람을 긴장하게 했듯이, 21세기 디지털문명은 소통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다. 그 시절 더 많이 알게 된 용기있는 사람들이 개혁의 시대를 확장했듯이,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 이야기와 담론의 단초를 드러내어야 한다.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적어내길 기다리는 일은, 빛의 속도로 변화해 가는 오늘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설프고 어색한 표현과 문장들도 거듭 두드리며 시도하노라면 다듬어 지고 나아질 터이다.인쇄술이 읽기혁명을 가져왔다면 디지털은 쓰기혁명을 당겨주었다. 더 많이 읽는 일이 가능해 졌지만 내 손으로 쓰고 다듬어 세상을 직접 상대하며 소통하는 창문이 넓게 열렸다. 세상과 어떤 글로 나누며 소통할 것인지 오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남이 만들어 주는 문명을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이제는 당신이 콘텐츠로 주도하는 세상을 열어주시라. 기회는 당신 손에 있으니.

2019-05-01

꽃눈 솎기

송귀연수필가봄의 잉여를 솎아낸다.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새순들이 해바라기하듯 가지 끝에 앉아 있다. 장갑 낀 손에 지긋이 힘을 준다. 겨우내 혹한을 견뎌낸 여린 생명들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위로 향한 꽃눈들은 햇볕에 과다 노출되어 제대로 된 결실이 어렵기 때문에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 채 피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내지르는 단말마가 애처롭다. 하지만 가을의 알찬 수확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다.귀농은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어진 남편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처음엔 작은 텃밭을 꿈꾸었지만 뜻하지 않게 지인으로부터 과수원을 소개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과수원 모퉁이에 작은 컨테이너를 앉히고 집에서 자동차로 사십 여분의 거리를 오가길 몇 달간 반복하였다. 결국 일손이 자주가야 하는 과수의 특성상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서둘러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했다. 편리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있던 몸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몸살이 나는가 하면 갑자기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했다. 도회생활에 대한 일종의 금단현상이었다.꽃눈솎기는 꽃이 필 때 영양분 소모를 줄이는 한편, 초기생육을 좋게 하여 결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욕심을 내어 필요이상의 꽃눈을 놔두면 전체적으로 나무는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꽃눈 한 개 솎아낼 때마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대신 아파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욕심을 버리는 연습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꽃눈솎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금을 추출할 때 연금술사들은 여러 차례 불순물을 버리고 걸러내는 제련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낸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그 가치가 낮아져버린다. 도자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채취한 흙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더러운 물질은 걸러서 버리고 가라앉은 깨끗한 흙을 분리 숙성시킨다. 숙성된 흙을 물과 반죽하는데 꼬막밀기로 흙속의 공기를 제거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여과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가 전부인 쓸쓸하고 황량한 그림을 그렸다. 여백이 더 많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꽉 차있다는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남편과 나의 관계도 일련의 제련과정을 거쳤다. 성격이 급한 남편과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내가 흰머리 희끗한 세월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린 서로 자신의 것은 내려놓지 않고 상대가 변하기를 고집했었다. 멀리 한곳을 보지 못한 채 마주보며 서로의 단점을 먼저 헤집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편안한 관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보면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의 출세며 아이들의 성공이며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올가미처럼 나를 옭아맸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는지 깨닫는 하루하루다. 창가에 날아와 아침을 깨우는 새 소리며 뒤란을 지나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며 맞은 편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의 뒷모습은 도회생활을 버리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았다.다시 꽃눈솎기를 계속한다. 도톰한 꽃눈들이 발아래 눕는다. 남아있는 것들은 버려지는 것들로 인하여 소중하고 버려지는 것들은 남아있는 것들로 인하여 아름답다. 꽃눈 하나씩 솎을 때마다 내 안의 부질없는 것들도 함께 솎아낸다. 욕심과 집착과 원망과 두려움들. 삶을 완성하는 건 소유가 아니라 무소유일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다. 내 몸의 가지에도 푸른 수액이 듣는다.

2019-05-01

예술 작품에 대해

언젠가 황현산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시간이 있었다. (황현산 선생은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다. 1945년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의 교수로 재직했다. 선생은 언뜻 배우 신구를 닮은 듯한 평안한 인상을 지녔고 말소리도 그윽하다. 학자로도 평론가로도 손색이 없다. 선생은 이 시대의 문장가로 그의 글을 읽으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몸속에 각인되는 느낌이다. 그의 책 ‘밤이 선생이다’를 추천한다.)그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글을 읽다보면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 이를 테면 ‘악착스럽다’, ‘해찰’, ‘몸피’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생소한 낱말을 쓰는지 듣고 싶습니다.” 선생의 정확한 워딩이 생각나진 않지만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글은 전장터와 같습니다. 이 전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평론가들과 구별되는 저만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다른 평론가와 구별되는 저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특색 있는 어휘를 사용합니다.”언어는 그 사람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시정잡배의 언어가 있고, 그윽한 사람의 그윽한 언어가 있다.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언어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때로 언어가 우리의 정신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승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얼마나 신중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우리의 ‘그랑’을 소환하는 것이 좋겠다. 까뮈의 ‘페스트’에 등장했던 그 그랑 말이다.“말 탄 여인은 어떻게 됐어요?” 타루가 자주 물어보았다. 그러면 그랑은 한결같이 “달리고 있죠. 달리고 있어요.”라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느 날 저녁, 그랑은 말 탄 여인에 대해 ‘우아한’이라는 형용사를 완전히 포기하고 앞으로는 ‘날씬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더 구체적이거든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한 번은 이 두 명의 청중에게 다음과 같이 수정한 첫 문장을 읽어주었다. “5월 어느 화창한 아침에, 날씬한 여인 한 명이 근사한 밤색 암말을 타고 불로뉴 숲의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어때요?” 그랑이 말했다. “그 여인이 더 잘 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5월의’ 라고 하면 문장의 속도가 좀 늘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고는 ‘근사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에 무척 고심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단어로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없엇다. 그래서 자기가 상상한 멋진 암말을 사진 찍듯 단번에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찾고 있었다. ‘살이 오른’도 어울리지 않았다.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약간 경멸적인 의미가 느껴졌다. ‘윤기가 도는’에 마음에 끌린 적도 있지만 리듬이 적당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검은 밤색 암말’이라는 표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검은색은 은근히 우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그랑은 “모자를 벗으시오.”라는 말을 듣기 위해 매일 매일 글을 쓴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문장에 머물러 있다. ‘우아한’을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날씬한’으로 바꾸고 ‘5월의’가 문장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는 이유로 ‘5월’로 바꾼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고, 바꾸고 나면 다시 그 단어에 균열이 생긴다. 그랑이 ‘근사한 밤색 암말’을 ‘검은 밤색 암말’로 바꾸고 의기양양해 하지만 리외가 바로 반론을 펼친다.“그건 안 돼요.” 리외가 말했다.“왜요?”“‘밤색’이라는 단어는 말의 품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가르키니까요.”“어떤 색요?”“글쎄요, 어쨌든 검은색은 아니죠!”그랑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감사합니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이 계서서 다행이에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선생님도 아시겠죠.”그랑은 완벽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 이 일에 매달려오고 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공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끝없이 고치고 고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문장에 닿는 것은 요원하다. 그랑이 생각하는 완전한 문장이란 말을 타고 사뿐히 달릴 때 ‘달그락 달그락’하는 말발굽소리와 그 속도, 그리고 문장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이미지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면 그 뒤로 이어지는 글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그랑은 생각한다.그랑의 바람은 언제나 좌절되지만 그랑은 끝없이 새롭게 시작한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들을 다 대입해보기라도 할 듯이 말이다. 완전히 딱 맞는 단어를 찾아 문장을 완성하는 일, 이것이 작가의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작가는 끝없이 쓰고 끝없이 고치길 반복한다. 그때 작가는 작가로서 성공하게 된다.앤절라 더크워스는 그릿이라는 책을 통해 성공의 공식을 소개하고 있다. 수천, 수만 명의 성공한 사람을 만나 그들을 인터뷰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수년에 걸쳐 수없이 많은 공식과 수없이 많은 그래프를 그려낸 후 그녀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성공=재능×노력×노력흔히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아마 작가가 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글 좀 쓴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남보다 나은 재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재능을 믿고 이 재능에 만족하는 글을 쓴 사람은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글 좀 쓰는 친구로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을 한 친구는 글 쓰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을 것이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다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노력을 퍼부으면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루게 된다. 이것을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말한다.그럼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게 노력해서 일가를 이룬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없다. 작가가 쓴 글은 실용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 않고, 심지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주인을 따라 나온 개와도 같다. 황현산은 이러한 작품 혹은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아이와 어머니가 품은) 목표는 마음속에 움터 오르는 온갖 생각을 다스리고 우리를 향해 노동하며 걸어온다. 그러나 개는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을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며, 길을 멀리 벗어났다가 돌아오기도 하며, 이 겨울 풍경 속에서 해찰한다. 개는 지금 노동하는 주인들의 휴식이다. 망치로 두더지의 머리를 때리듯이 주인들이 억눌러버리거나 한쪽에 제쳐놓은 생각들을, 아니, 그 생각들보다 더 아래에 깔려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생각들을, 그래서 생각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생각들을 개는 주인들을 대신하여 생각하며, 이 겨울의 스산한 들판을 회색 꿈의 자리로 만든다. 그리고 또 거기서 비껴 선다.”해찰이란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라는 뜻이다. 예술이란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헤적거림, 쓸모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2019-05-01

대구시민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올해도 어김없이 숲은 일어서고 있다. 초록과 연두(軟豆)로 무장한 신록의 나무들이 팽팽하게 봉기하는 4월과 5월의 숲.이영도 시인은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은 같은 꽃사태”로 절창(絶唱)‘진달래’를 시작한다. 4월 혁명으로 산화해간 이 나라 청춘들의 붉은 피와 산야에 하염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대비한다. 오랜 세월 응어리진 한이 일순 터지듯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의 개화를 선연히 드러내는 것이다.해마다 봄은 그렇게 온다. 시인이 진달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초록 초록한 색으로 산마루를 치달려 오르며 일어서는 숲을 예찬한다. 그것은 분명 지난 겨울 추위와 눈보라와 설한풍(雪寒風)을 이겨낸 자들의 장려(壯麗)한 저항의 결실일 터다. 이즈음 이 나라 산천을 돌아보는 것은 자연이 베푼 위대한 축복을 확인하는 일이다. 살아있음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는 환희의 순간이 바야흐로 우리 곁에 있다.다정다감한 김영랑 시인은 울안의 모란으로 봄날의 서정을 그려냈으되, 눈 들어 먼 산 바라보면 거기 또 다른 봄의 일어섬이 있다. 혹자는 봄날에 꽃을 보며 찬탄하지만, 나는 일어서는 숲과 봉기하는 산야에 경탄한다. 거역할 수 없는 뭇 생명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침묵의 환호는 얼마나 깊고 웅장하며 창대한가?! 사계의 운항법칙에 순응하는 초목의 생동은 해마다 인간세의 번다함과 유한함을 깨우치곤 한다.2017년부터 시작된 ‘대구시민대학’이 올해로 세 해를 맞았다. 불초한 나도 인문학 강연 한 자락에 이름 올린다. 4월 25일 한반도를 노려보는 대륙과 해양세력이라는 제목으로 대구 시민들을 만났다. 대구시청별관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200여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순(耳順) 고비를 넘긴 분들이 다수였으나, 간간이 젊은 축들도 강연에 몰입하여 아연 흥미로운 이야기 마당이 펼쳐진다. 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사념.처절하게 실패한 역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무능한 왕과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행악질로 사그라지던 나라의 명운을 건져낸 임란의 의병들이 무명의 백성이었음을 밝힌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황태극 앞에 온몸과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인조의 참혹한 몰골과 ‘환향녀(還鄕女)’와 ‘호로자식(胡虜子息)’을 말한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왕조의 붕괴는 필연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21세기 우리도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병자호란을 다룬 ‘최종병기 활’(2011)은 가공인물 ‘남이’를 등장시켜 747만 관객을 동원한다. 조선 신궁으로 이름을 떨치던 남이가 ‘육량시(六兩矢)’로 무장한 청의 명궁 쥬신타를 혼내주는 허무맹랑한 영화. 반면에 김훈 작가의 소설원작에 기초한 ‘남한산성’(2017)은 385만 관객을 불러 모은다. 우울하고 참람(僭濫)한 실패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완미(頑迷)하고 썰렁한 객석.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논어, 위정편)라고 갈파했다. 말을 바꾸면 이쯤 되리라. “실패한 것을 실패했다고 하고, 성공한 것을 성공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다” 실패를 외면하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패배를 인정하고 그것의 원인과 과정 및 결과까지 통렬하게 성찰해야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시민들에게 나는 힘주어 말하고자 했다. 우리는 미-중-일-러 사이에 낀 새우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최소 돌고래다. 우리만 우리의 힘과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우리 국민이 하나 되어 만들어온 결과다.대구시민대학 강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이참에 시민대학을 개설한 대구시에 재삼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자 한다.

2019-05-01

학교급식법 개정법률(안)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포털사이트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검색하면 맨 처음으로 “포용국가-교육부-모든 아이는 우리 아이”라는 링크창이 나온다. 그걸 클릭하면 포용국가에 대한 여러 가지 홍보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는 사이트에 접속된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문구이다.이 글만 보면 분명 이상(理想)에 가까우리만큼 좋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적인 문구들을 보면서도 왜 감동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그리고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말을 보고 있으면 왜 계속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필자는 문장 구조에서 찾았다. 혁신이 수식하는 정확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물론 문법적으로야 알지만, 느낌상 그 범위가 포용인지, 아니면 국가인지, 그것도 아니면 포용국가인지 잘 모르겠다.그런데 그 범위가 어디든 “포용 국가”라는 말부터 낯선데, 거기다 “혁신적”이라는 강한 수식어까지 합쳐지면서 단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자리를 정치적 의미가 차지하면서 억지스러운 의미가 만들어졌다. 특히 혁신과 포용처럼 의미 충돌이 강한 단어들을 합쳤을 때에 오는 오류(誤謬)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다.포용(包容)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이다. 사전에서는 포용의 순화어로 감쌈과 덮어줌을 제시한다. 혁신(革新)이란 단어는 쓰이는 분야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의미는 “묵은 조직이나 제도·풍습·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 즉 “시대에 맞게 뜯어고쳐 새롭게 개혁하는 것”이다. 그럼 혁신적 포용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단어의 의미만 연결하여 재해석해보면 ‘뜯어고치면서 감싸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안에는 엄청난 의도(意圖)가 숨어 있다. 그 의도가 지금의 국회 사태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혁신, 즉 변화를 위해서는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진실하고, 절실하며, 또 객관적인가에 따라 변화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럼 지금 정부에서 말하는 혁신의 성공 여부는 어떨까? 어느 공당(公黨) 대표의 “20년 집권도 짧아, 할 수 있으면 더”라는 말을 보면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모든 국민들을 위함이라기보다는 현 정부의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지인이 한 말이 환청처럼 계속 들렸다. “정치인들이 저거 손해되는 짓 하는 거 봤나. 국민 위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특권과 반칙의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혁신적 포용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 중 일부이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혁신적 포용”이라는 말이 새로운 특권과 반칙, 그리고 오류와 모순을 낳고 있음을 대통령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그 모습을 지난 주 지겹도록 보아서 아는데, 자기 이익에 눈 먼 정치꾼들이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비록 무법천지 정치판이지만,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같은 교육 소수자를 위한 법률개정안도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런 법률안이 패스트트랙에 반영된다면 지금과 같은 볼썽사나운 동물국회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위 법률(안)의 개정사유이다.“‘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3에 따른 대안학교의 경우 교육감의 정식 설립인가를 받아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의 교육을 성실하게 담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급식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어 있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학교급식의 질 역시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이에 인가 대안학교까지 급식대상을 확대하여 교육의 보편성을 실현함과 동시에 안전하고 질 높은 학교급식을 보장함으로써 학생 건강권을 확보하려는 것임”

2019-05-01

단지 써 보는 것 만으로

교교한 달빛. 영롱한 별들의 움직임.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태양. 새로운 하루. 흐르는 강물처럼 하루 24시간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 삶을 태운 채 흘러갑니다. 그대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피터 드러커는 말합니다. “지식노동자들의 경우, 과업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육체노동자와 달리 머리로 일해야 하는 지식노동자는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목표 달성을 위해 효과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일입니다. 시간이야 말로 지식노동자가 결과를 얻기 위해 투입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지요.어느 기업의 회장은 자신이 시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사용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죠. 3분의 1은 회사 간부들과, 3분의 1은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데, 나머지 3분의 1은 지역사회 활동을 위해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시간 관리 컨설팅을 위해 막상 6주 동안 실제 사용 시간을 기록하게 한 뒤 비교해 보았습니다. 앞에서 본인이 확신에 차 말했던 세 가지 활동에는 시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회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하 직원을 독촉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피터 드러커는 조언합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당신이 쓰고 있는 시간을 철저히 기록해 보는 일로 시작하세요.”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1440분입니다. 초로 환산하면 8만6천400초.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진정한 삶으로 이루어가는 예술.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눈부신 5월에는 작은 노트 하나를 준비해 내가 매일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시간들의 통계를 한 번 작성해 보면 어떨까요? 단지 사용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시간 관리 습관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하니까요.류비셰프는 나이 스물 여섯에 시간통계 노트를 쓰기 시작한 후 급한 일과 해결해야 할 바쁜 일들로 해방되어 하루 10시간 푹 자기. 운동하고 충분한 휴식 취하기. 주 1회 이상 공연, 전시회 관람.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내어 대화하고 소통하기. 170권의 책 쓰기로 여유로움과 탁월한 성과.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습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 시간을 다스림으로 얻는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그대의 5월이시길 손모아 응원드립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5-01

이젠 귀한 음식, 유슬짜장과 유니짜장 ‘청요릿집’을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잊어버린 단어가 있다. ‘청요릿[淸料理]집’ ‘유니짜장’ ‘유슬짜장’ 등이다. 이 단어를 기억한다면 50대 이상 나이다. 청요릿집은 중식당의 옛 이름. 청나라, 중국 음식을 파는 집이란 뜻이다.유니짜장[肉泥炸醬]은 고기 혹은 고기와 채소를 잘게 다져서 고명, 양념으로 쓴다. 고기는 돼지고기다. 유슬짜장[肉絲炸醬]은 고기, 채소를 길게 썰어 실처럼 만든 후 고명으로 쓴다. 이제 청요릿집, 유니짜장, 유슬짜장은 대부분 사라졌다. 화상(華商)이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 훨씬 많아졌다.◇ 짜장면은 한식인가, 중식인가?이제는 사라진 중식당이다. 2014년 문을 닫은 경북 경주 ‘산동반점’. 화교(華僑) 장충선 씨가 운영하던 화상노포. 장씨가 70세를 넘겼다. 나이가 들면 중식당의 웍(WOK, 중화요리용 팬)을 잡는 일이 힘들어진다. 조용히 50여 년의 역사를 접었다.이제 따님 장수화 씨가 서울 은평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한다. 몇 해 전 따님을 통해 이 집안의 청요릿집 역사를 들었다. 여느 중식당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짜장면은 한식인가, 중식인가?” 대부분 잠깐 망설이다가 “중식”이라고 답한다. 북경에는 한때 ‘한쳥짜장면[漢城炸醬, 한성작장]’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성은 서울이다. 서울 짜장면, 한국식 짜장면이란 뜻이다. 우리가 먹는 짜장면이다. 중국인들이 보기에 얼핏 보면 중국식 짜장면과 흡사한데 전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짜장면은 중식이라기보다 한식이다.짜장면의 짜장[炸醬, 작장]은 “장을 터뜨리면서 볶는다”는 뜻. 장은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에는 탄산가스가 있다. 장을 볶으면 작은 기포(氣泡)들이 생긴다. 기포는 장을 볶는 과정에서 생기고, 터진다. ‘터뜨리면서 볶는다’고 표현한다. 짜장면은 ‘볶은 중국 장(醬)을 얹은 국수 요리’다.‘중국식 장’은 첨면장(甛麵醬)이다. 첨면장은 우리의 된장과 닮았다. 콩, 혹은 콩과 밀, 콩과 다른 곡물들을 섞고 소금과 종국(種麴)을 넣어서 발효시킨다. ‘종국’은 ‘씨 누룩’ ‘누룩의 씨’다. 정제한 효모(酵母)다. 우리가 흔히 ‘춘장’이라고 부르는 ‘중국 된장’이 첨면장이다. 첨장(甛醬)이라고도 부른다.‘첨면장’의 ‘첨(甛)’은 ‘달 감(甘)’과 ‘혀 설(舌)’이 합쳐진 글자다. 혀에 달다는 뜻이다. ‘첨(甛)’은 한편으로는 낮잠을 뜻한다. 세상에 낮잠만큼 단 것도 없다. 첨면장은 “면을 맛있게(달게) 하는 장”이다.‘춘장’은 애매모호 하다. 첨장이 춘장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봄에 만든다고 춘장(春醬)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억지스럽다. 대부분 장이 봄에 만든다. 우리의 된장도 한겨울에 장을 담고, 봄에 장 가르기를 한다. 굳이 중국 첨면장만 봄에 만든다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파는 한자로 총(蔥)이다. 파를 찍어 먹는다고 ‘총장(蔥醬)’이고, 발음이 바뀌어 춘장이라 부른다는 주장이다. 정설도 다수설도 없다.중국 짜장면은 한국인의 된장찌개 비빔밥이다. 우리가 “된장찌개를 밥에 얹은 다음 쓱 쓱 비벼 먹듯이” 중국인들은 볶은 첨면장을 국수에 얹어서 비벼 먹는다.◇ 이제 원형 첨면장은 사라졌다흔히, “인천 ‘공화춘’에서 짜장면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는 않다. 인천시도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화춘’은 ‘짜장면을 메뉴로 내놓았던 집 중 하나’다. 짜장면을 처음 들여온 것도 아니고, 처음 메뉴로 내놓았던 것도 아니다. 중국 짜장면의 역사는 수천 년을 헤아린다.‘공화춘(共和春)’은 ‘공화국의 봄’이다. 공화국은 1911년 건국한 중화민국, 현재의 타이완이다.젊은 화상 우희광(于希光, 1886~1949년)은 ‘산동회관’을 경영하다가, 중화민국 건국과 더불어 이름을 ‘공화춘’으로 바꿨다. 1912년 무렵이다. 후손들이 운영하던 ‘공화춘’은 1983년 폐업했다. 현재의 ‘공화춘’은 원래 ‘공화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름만 남았고, 국내 대기업이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짜장면 마니아들은 인근의 ‘신승반점’을 ‘짜장면 원조집’으로 여긴다. ‘신승반점’의 주인 왕애주 씨는 우희광 씨의 외손녀다. 우희광 씨는 1남 5녀를 두었고 그중 막내딸 우란영 씨가 화교 왕입영 씨와 결혼, 1남 2녀를 낳았다. 그중 맏딸이 왕애주 씨. 왕입영·우란영 부부는 ‘공화춘’에서 일하다가, 1980년 독립, ‘신승반점’을 열었다.짜장면은 중국 서민들의 일상적인 음식이다. 제대로 형식을 차린 음식도 아니고 길거리 손수레, 작은 가게에서 내놓던 서민 음식이었다.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청나라 병사들이 한반도로 몰려들었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했다. 한반도와 가까운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중국인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1894년 청일전쟁. 청나라 병사들이 들어왔고 민간인들도 따라왔다. 대부분 산둥성과 가까운 인천을 통해 들어왔고 그중 일부가 한반도에 정착했다.1930년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한반도로 연결되는 중국 만주지역은 일본군인 천지였다. 인천-산둥반도의 뱃길이 편했다. 인천이 중국인들 조차지가 되고 인천에서 중식이 시작된 까닭이다.부두 노동자들, 서민 화교들은 길거리 수레, 작은 구멍가게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일제강점기, 인천에는 ‘중화루’ 등 ‘5대 청요릿집’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산동반점, 공화춘’이었다. 길거리 음식이 ‘공화춘’ 등 정식 가게로 들어왔다.일제강점기에 개항한 군산 언저리로 중국인들은 모여들었다. 한 사람이 건너와서 자리를 잡는다. 가족들이 통째로 들어온다. 친척, 지인도 불러들인다. 한국에 사는 화교, 한화(韓華)사회는 이렇게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한반도 여기저기로 옮겼다. 강원도 깊은 산골 탄광촌에도 50년을 넘긴 화상노포가 남은 이유다.경주에서 ‘산동반점’을 하던 장충선 씨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1940년대 언저리 한반도로 건너왔다. 대구에 중식당을 운영하는 형이 있었다. 형네 가게에서 중식 만드는 일을 돕다가 경주로 간다. “밀가루 부댓자루를 메고 대구에서 경주까지 걸어 갔다”. 아들 장충선 씨는 1938년생. 열 살 때까지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살았다. 한국전쟁 직전 장충선 씨는 아버지가 사는 한반도로 건너온다. 1960년대, 장충선 씨 부자는 경주에서 ‘산동반점’의 문을 열었다.◇ ‘미공법 480조’가 짜장면의 역사를 바꾸다짜장면 역사를 바꾼 것은 미국 법령 ‘미공법 480조(Public Law 480)’다. 한국전쟁이 끝났을 무렵, 미국은 밀을 대규모 잉여생산한다. 남아도는 밀을 일본, 한국 등에 거의 무상으로 원조한다.귀하던 밀가루가 흔해졌다. 주재료인 밀가루가 흔해지니 중식당은 호경기를 만났다. 미공법 480조에 의한 원조는 1965년까지 진행되었고, 그 이후에도 밀가루 값은 쉬 오르지 않았다. 짜장면 전성시대. 이 시기, 짜장면은 중식에서 한식으로 변화한다.1960년 언저리 오늘날의 춘장, ‘한국식 첨면장’이 개발된다. 콩, 곡물가루, 물, 소금으로 만들던 천연식품 첨면장은 수급이 불안정했다. 중식당 주변의 화교 가정이 ‘수제 첨면장’을 만들었다. 화교 상인은 이 첨면장을 모아서 식당으로 배달했다. 문제는 공급 물량 부족. 수요는 늘어나는데 수제 첨면장은 부족하다.공장에서 첨면장을 만들기로 한다. 콩, 밀가루 등을 비빈 후, 짧은 시간 발효시킨다. 오래 묵은 첨면장은 색깔이 검다. 짧은 시간 발효시키면 색깔은 누렇거나 붉은색이다. 황장(黃醬)이다. 1년 묵은 첨면장도 붉은 색깔이다. 식당 주인들은 오래 묵은, 검은색의 첨면장을 원한다. 캐러멜색소를 넣는 이유다. 원형 캐러멜색소는 설탕을 태운 것. 달고 윤기가 난다. 여기에 조미료를 넣는다.1960년대 이후 한국인들이 중식당 조리사, 혹은 주인이 된다. 화상들은 대부분 은퇴한다. 경주 ‘산동반점’ 장충선 씨도 마찬가지. 1960년대, 20대의 나이로 아버지와 식당을 열었던 그는 이제 일흔이 됐다. 은퇴한 이유다.많은 화상노포가 문을 닫는다. 첨면장은 화상노포들과 더불어 사라진다. 전북 익산의 ‘국빈반점’도 문을 닫았다. 주인 유비홍 씨는 화교 2세. 아버지는 금강 유역으로 한반도에 들어왔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유비홍 씨는 1960년대 아버지 가게였던 ‘국빈반점’을 물려받았다.‘원형 작장면’은 장을 볶아야 한다. 웍으로 장을 볶는 일이 힘드니 물과 전분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다. 여기에 당근, 양파, 감자 등을 넣는다. 한국식 짜장면, ‘한쳥짜장미엔’이다.누구나 자기만의 ‘짜장면 맛집’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 잡고 갔던 청요릿집 혹은 중식당이다. ‘추억’을 이기는 ‘맛’은 없다. 추억 속의 음식은 늘 최고의 음식이다. 짜장면 맛집의 순위를 따지기 힘든 이유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5-01

숨쉬는 땅, 여유의 바다 울진, 삶의 휴식이 되다

전찬걸 울진군수‘육지속의 보물섬’으로 불리는 울진은 동해안의 가장 주목받는 휴식과 치유의 고장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해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오지로 여겨졌다. 지금이야 36번 국도가 직선화되고 , 인근 고속도로가 개통돼 울진 오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울진은 거리가 있는 듯하다.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관광 상품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눈을 돌리면, 오지라는 이미지를 가진 울진의 단점은,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아 순수하게 보존된 청정한 자연이 살아있다는 장점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또한 하루 일정으로 오고가기 만만치 않은 만큼 울진을 찾아오면 더 오래 머물다 갈 수 있지 않겠는가.그래서 울진은 살아있는 자연을 통한 휴식과 치유가 있는 도시를 향한 준비를 시작했다.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명품 금강송숲, 112㎞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각각의 매력을 가진 바다, 그리고 다양한 효능으로 입소문이 난 온천까지, 일명 삼욕(三浴)이라 불리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울진은 그야말로 기본기가 튼튼하게 다져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본기를 바탕에 두고 현대사회에 맞는 다양한 관광소프트웨어를 가미, 관광객들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맞춤형 힐링 명소로서의 특별함을 만들어갈 예정이다.먼저, 올해 6월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금강송면 소광리의 금강송에코리움은 울진 금강송을 주제로 한 체류형 산림휴양시설이다. 금강송테마전시관, 치유센터, 금강송산책길, 황토찜방, 유르트를 비롯해 하루 150여명의 숙식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에코리움은 숙식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펜션이나 콘도 등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통합 운영될 예정으로 가장 중요한 컨셉은 숲을 통한 쉼과 여유 그리고 치유이다. 얼마 전에 직원들이 미리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반응이 좋았다. 미세먼지와 탁한 공기, 바쁜 일상에 쫓기며 지낸 도시인들에게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휴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에코리움이 온전히 숲에 집중되어 있다면 백암온천 주변에 조성중인 숲 체험장, 치유의 숲은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숲에서 산림치유를 병행할 수 있는 이른바 숲과 온천의 콜라보 공간이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백암온천은 이미 입소문으로 온천의 효능이 잘 알려진 지역이다. 여기에 숲이 함께 한다면 몸과 마음의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낼 수 있는 1석2조의 공간이 되지 않겠는가.또 하나 울진의 변화를 위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해양치유에 관한 인프라 구축이다.해양치유는 이미 유럽에서는 활성화되어 있는 부분이다. 프로그램 색깔이나 방법에 따라 휴양형 이나 치유형 등으로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해양자원을 활용해서 건강과 휴양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울진군은 2017년 해양수산부로부터 해양치유 실용화사업 지자체 공모 사업에 선정된 이후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왔다. 치유관련 시설은 2022년까지 368억원 규모로 평해읍 월송리 일원에 조성할 계획이다. 치유센터, RD센터, 휴양 및 체험 시설 등을 조성할 예정이고 주변에 해양레저 시설인 요트학교, 해양레포츠센터 등을 활용해 가족 모두가 즐겁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구성해 해양 치유 1번지로 발돋움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사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관광 화두로 힐링을 표방해왔다. 그렇다면 울진에서의 힐링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울진에서의 휴식은 맞춤형이다. 사람에 따라 격렬하게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며 쉬기도 하고 아니면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울진의 휴식, 힐링은 그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가능하도록, 자신이 원하는 색깔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가려고 한다.여기에 한가지 더!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울진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것! 바로 친절이다.편안하게 쉬려고 떠나왔는데 찡그린 얼굴에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면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울진은 친절을 생활화 하고 미소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도록 범군민 친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고 있다.숲과 바다와 온천속이라는 자연 안에 만들어진 전문화된 치유 프로그램에 따뜻한 미소와 배려에서 느껴지는 친절문화가 더해진다면 울진의 경쟁력은 더욱 무궁무진해질 것이다.‘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 바로 내가 바라는, 울진이 앞으로 만들어갈 이미지이다.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울진의 매력으로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는 울진. 환경과 시설 인프라와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울진.울진을 여행하고 나면 일상의 무거운 고민, 힘들어진 마음은 내려놓고 건강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지금 삶이 고단하다면 잠시 쉬어가기를 바란다. 여기 울진에서.

2019-04-30

안내견(guide dog), 리트리버

세계 최초의 안내견은 독일 셰퍼트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의 90% 이상은 기질, 품성, 사람과의 친화성 등이 연구되고 검증된 리트리버이다.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센터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안내견 체험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느껴보고 안내견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를 체험하게 해준다. 체험자들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안내견에게 의지해 체험장의 여러 환경을 걸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눈을 가린 채 계단을 오르내리고 길 한가운데 놓여져 있는 장애물을 피해가는 것이 생각보다 두렵고 힘듦을 깨달을때에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도우미견, 즉 안내견의 고마움을 절감하게 된다.그런데 안내견이 어떻게 온갖 장애물을 피해가고 계단이나 도로의 경계턱에서 시각장애인을 멈춰 세우는지 생각 해 본적이 있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교육을 받는 기간 내내 안내견 훈련 전문가에 의해서 산책을 하고 도로에서의 경험을 쌓으며 교육장에서 훈련받은 관계로 보행속도가 정형화되어 있고 ‘걷다 멈추다’의 반복이 잘 교육되어 있다.도우미견은 선발된 이후부터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계단 앞에서는 멈추도록 훈련받았고 ‘가자’고 하면 계단을 오르도록 훈련 받았고, 걷는 앞에 어떤 형태의 장애물이 나타나든 일단 멈추고, ‘가자’고 하면 그것을 우회하도록 훈련받는다. 안내견에게 있어 이런 습관은 100% 유지돼야 한다. 단 한 번의 실수는 교육 후 함께 걷게 될 시각장애인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시각도우미견이 함께 걷는 사람이 계단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멈춰서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동안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반복 훈련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뿐이다. 안내견은 자신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다르게 여기지 않는데, 안내견은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자신과 익숙한 훈련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반복된 훈련을 통해 훈련사와 수년동안을 그래왔듯이 계단 앞에서 멈추고, 바닥에 있는 장애물 앞에서 멈추는 것이 가능하다. ‘어, 시각장애인이 걷는데 위험한 방해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서 위험사실을 확인하도록 정지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저 물체 앞에 가면 함께 걷고 있는 이 사람이 나에게 정지하도록 하겠지!’, ‘ 그 다음에는 나에게 옆으로 우회하라고 지시하겠지!’라고 반복 습관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이런 이유로 비장애인에게 안대를 씌우고 안내견과 걷게 하거나,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걷게 할 때 사람들은 안내견에게 의지해 걷고 있지만, 안내견은 하네스를 잡고 함께 걷고 있는 사람이 안대를 썼는지, 앞을 보는 것이 불편한지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자신을 교육시킨 핸들러와 동일하게 여긴다. 개의 입장에서 하네스를 잡은 사람은 자신을 교육시키고 리드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이처럼 시각도우미견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횡단보도를 건널 때나 버스를 탈 때, 도심의 인도를 걸을 때마다 하네스를 잡고 있는 사람에 의해 교육을 받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또 교육받아 온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과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교육의 연속성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각도우미견을 훈련시킨 핸들러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을 인계하면서 장애우가 자신처럼 도우미견을 대하고 행동과 움직임도 자신과 유사하게 따라하도록 조언한다.훈련사는 안내견에게 “너 배운대로 안전하게 잘 리드해라!‘ 하며 당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세요!“, “안내견이 이런 실수를 하게 되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라며 안내견를 데리고 다녀야할 시각장애인에게 개가 언제나 교육받는 상황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이다.즉, 교육시켜 온 훈련사가 하던 역할을 시각장애인이 하도록 인계해 주는 것이며 시각장애인은 도우미견이 은퇴할 때까지 실수없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핸들러의 역할을 이어 나가는 두 번째 핸들러가 되는 것이지 개가 똑똑해서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처럼 개가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개의 문제행동을 만든다. 개의 입장과 행동이유를 알게되면 오늘날 개 때문에 생기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4-30

대구의 랜드마크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대표적 상징물인 건물이나 문화재 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징물은 그 나라나 도시를 널리 홍보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그곳의 관광산업 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여신상, 런던의 타워 브릿지 등은 그 나라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시드니하면 오페라하우스를 연상하듯 이런 상징물들을 우리는 ‘랜드마크’라고 부른다. 랜드마크는 원래 여행가들이 어느 지역을 여행하면서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둔 것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건물이나 조형물 등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란 뜻으로 통한다. 한때는 63빌딩이 서울의 상징이 된 적도 있다. 지금은 제2 롯데타워가 그 이름을 대체하고 있다. 세계 5위 높이의 롯데타워는 대한민국 서울의 역동적인 현대 문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건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세계 10대 도시라 일컫는 서울만 해도 도시를 상징하는 이와 같은 건물과 문화재는 수두룩하다.고속 성장한 중국도 이젠 건축물만으로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24명의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며 머물렀던 자금성은 베이징의 대표적 상징이다. 세계 5대 궁의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상하이 푸둥 지구에 있는 동방타워 역시 건물의 높이나 웅장함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광저우 타워, 텐진의 영락교와 선전의 지왕빌딩 등도 한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만한 건축물들이다. 도시의 대표성만큼이나 관광자원으로서 홍보와 효과도 뛰어난 건물이라 할 수 있다.인구 250만 명이 살고 있는 대구는 어떤 상징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퍼뜩 떠오르는 상징물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구시가 시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고 한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 대구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늦은 걸음이라도 괜찮다. 100년 대구를 내다본 신념이 담긴 건축물로 탄생하였으면 하는 게 시민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