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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학교진로교육에 대한 제언

조현명 시인TV 인기드라마로 교육문제를 다룬 ‘스카이 캐슬’을 통해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이 출세주의, 학력간판주의가 뿌리 깊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온 ‘논문 1저자 등재’에 관한 논란도 다 그런 바탕에 있다. 이런 바탕에서 학교 진로교육은 방향을 잃고 표류해 가고 있다.먼저 진학 지도에 비해 진로 지도와 상담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진로교육에 있어서도 학생의 적성과 내면적인 성숙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성적과 진학, 취업가능성 위주로 다루고 있다. 현재 적용하고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은 더욱 심각하다.고교 1학년 2학기면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2, 3학년에 배울 과목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에 의해 학생들이 대부분 진로를 확정했다고 보는듯하다. 잘못되었다. 기초공사가 안 된 바탕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일이다.학생선택형 교육과정이 마치 진로교육을 위한 것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 반대이다. 선택형교육은 이미 실패로 보고된 바 있다. 그런 실패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듯하고 국민들에게도 치적을 드러내고 홍보하기 좋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정책이다. 시범학교들은 늘 자화자찬의 결과논문을 보고한다. 이것은 교직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결과이다. 안 될 정책들이 계속 현장에 적용되면서 기형적인 교육이 만들어져가고 있다. 그중 자유학기제와 진로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이 1순위로 손꼽힐 만하다.사실상 학교진로교육은 결국에는 학생 자신과 학부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정신이 남아있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선호하고 일부 직업은 천하게 여겨 기피하는 풍토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학부모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한 번 하겠다고 시작한 정책을 쉽게 포기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무용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의식까지 바꾸면서 가야겠다는 발상은 계란의 바위치기로 보인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가라’는 금융시장의 격언이 있다. 교육에 시장논리를 적용하기란 문제있어 보이지만 학부모들의 의식과 풍토 그리고 움직임은 시장의 흐름을 닮았다. 그동안 교육당국이 사교육시장을 잡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스펙 만들기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로 간단히 학교진로교육에 대해 제언하려 한다. 첫째, 진로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본교육의 바탕 위에 진로교육을 도입하자. 그러므로 자유학기제와 고등학교 진로선택형 교육과정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행사 위주가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학교의 모든 교육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에 대한 체계화가 필요하고 담임교사가 진로교사가 되는 학교진로교육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차라리 담임교사라는 명칭보다 진로교사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2019-09-23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그레고르는 꿈꾸던 구원, 즉 변신에 이르는데 결과는 해충이라는 반전으로 작품은 시작합니다. 가족조차 받아주지 않는 완전히 고립된 존재. 카프카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통해 그려냈습니다.카프카의 글은 생전 몇 작품이 출판되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친구 막스브로트에게 본인의 사후 모든 작품들을 태워 없애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리던 카프카는 40대 초반에 생을 마칩니다.문학을 통해 구원에 이르고 싶은 그의 열망은 여러 장애물에도 꿋꿋이 펜을 놓지 않게 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항상 깨어 끊임없이 원고지와 씨름했습니다.우리를 일상에서 건져 줄 미지의 양식(unknown food)은 무엇인가요? 더듬거리며 늘 그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슴 고동치는 꿈은 무엇입니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혈관이 꿈틀거리며 근육이 팽팽해지는 그 무엇. 떠올리는 순간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의 눈빛을 반짝이게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릅니다. 꿈은 잘 짜진 계획이 아닙니다. 견적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기획’이요 ‘플랜’일뿐, 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꿈은 탐욕으로 비롯한 야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레미제라블을 유산으로 남긴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진보’라고 불러보라. 진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내일’이라고 불러보라. ‘내일’은 억제할 수 없게 자신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바로 오늘부터 한다.”억제할 수 없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꼬박 지새운 카프카의 열정. 그가 작품을 쓴 지 벌써 100년의 세월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카프카의 생명력 넘치는 문장들 때문에 전율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3

간절함의 끝은 어디에…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막 깎아놓은 풀냄새가 좋다. 먼 곳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늙은 부모처럼 국보 제 112호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오늘도 기다림에 젖어 있다. 장중함의 눈빛이 하도 외롭고 쓸쓸하여 한참 동안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본다.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고 짓기 시작한 감은사는 신문왕 2년(682년)에야 완성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동해에 해중릉을 만든 후, 절의 금당 밑으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물길을 낸 충과 효가 배어 있는 절이다.천천히 서탑을 돌며 까마득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신라를 생각한다. 긴 회랑으로 둘러진 감은사, 13.4m의 장대한 동서 삼층석탑은 최초의 쌍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 가장 크다. 폐사지를 지키는 퇴락의 그림자는 마르지도 않고 두 탑은 해탈이라도 한 듯 초연하다.창건 당시 감은사 앞까지 이어지던 바다는 천년의 세월 속에서 자꾸만 물러나 앉고 감은사도 사라졌다. 길 잃은 문무왕의 애타는 넋이 떠돌았을 동해를 뒤로 한 채 두 탑의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었다. 저녁 연기처럼 흩어지는 옛 왕조의 기억과 낙서 자국이 눈물로 번져간 상처들, 수많은 시인의 찬란한 시구(詩句)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절터를 지킨다.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바람이라도 불면 울창한 대숲에서 만파식적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데 늙은 느티나무의 투병하는 소리만 애처롭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차들과 술렁거리며 오는 계절의 풍경에 익숙해진 삼층석탑은 또 다시 천년의 기다림을 반복이라도 할 듯 말이 없다.천년 세월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그의 눈빛에 비해 나의 기도는 조촐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잠시 머물다 훈장 같은 말씀 한 마디 던져 주고 떠난다. 바람을 잠재우고 물결이 되어 뒤척였을 수많은 날들의 기다림은 모두 헌사가 되어 그를 위무한다.묵직해진 마음을 끌고 솔숲에 앉아 문무대왕릉을 바라본다. 햇살 아래 연거푸 일어섰다 쓰러지는 파도들, 여름날의 빈집을 기웃거리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을이 들어서는데, 꽹과리 소리에 춤을 추며 무아의 경지에 빠져 접신 중인 무녀가 보인다. 이 곳 저 곳, 솔밭이 온통 굿판이다. 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위치에서 신탁을 받을 영매자를 위해 조심스럽고 미안한 구경꾼이 된다.문무대왕릉을 향해 정성스럽게 예를 올리는 무녀의 손에 들린 붉은 깃발은 언젠가 네팔 여행 중에 보았던 룽다와 타르초를 떠올리게 했다. 소음과 공해로 정신없이 어수선하던 카트만두의 오래된 사원에서, 안나푸르나를 보기 위해 오르던 전망대 근처에서도, 오색 깃발들은 경전을 읽듯 바람 앞에서 사정없이 울어댔다. 많이 펄럭일수록 신에게 그들의 기도가 더 간절히 전해진다고 믿는 이색적인 풍경 앞에서 신의 부름 앞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가난한 영혼을 보았다.더위를 업고 답을 기다리는 동해의 붉은 깃발, 환생을 꿈꾸는 미이라처럼 젊은 여인의 몸을 감싼 채 자갈밭을 구르던 흰 천의 오열, 모래사장에 수없이 꽂혀 타다만 향의 잔해들, 갈매기와 까마귀의 번들거리는 군무, 굿당이 되어버린 솔밭을 수중릉은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문무왕의 호국정신이 서려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절터만 남은 감은사지, 그래서 갈 곳 잃은 천년의 정신이 끝내 신탁으로 양도되기라도 한 것일까. 온갖 염원이 대왕암을 향해 끓어오른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이 이곳으로 뛰어들어 동해는 깊고 푸른지 모른다. 간절함을 이기는 능력은 없다 했던가. 그들의 곡진한 의식을 있게 한 그 간절함은 도대체 무엇일까.까마귀 떼들이 버려진 젯밥에 몰려들어 배를 채우고는 유유히 날아간다. 윤이 나는 깃털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일 뿐, 그들에게 간절함은 없다. 파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갈매기 무리 속에도 이제 조나단 리빙스턴의 후예는 없다. 높이 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더 이상 높이 날 명분마저 사라졌는지 모른다. 풍요 속에 가려진 나른하고 권태로운 눈빛들, 꽹과리 소리는 접신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들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조낭희 수필가서너 시간을 솔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삶은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하다.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절박한 몸짓들이 때 아닌 폭설 되어 내 안에 쌓인다. 지척에 보이는 대왕암은 꼼짝도 않는데 숨 가쁜 염원들은 하혈하듯 동해로 흘러들고 바다는 답신하듯 파도를 만들어 보낸다.도시가 갑갑하면 찾아오던 바다에서 오늘은 교만의 옷을 벗는다. 삶의 완성도는 슬픔과 기쁨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조하는 것. 새살이 돋아 그들의 영혼이 좀 더 말랑말랑해지길 바라며 가을 햇살 같은 기도 한 줌 보낸다.어찌하랴. 가장 영험해 보이는 신을 찾아 간절히 두 손 모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차안과 피안 사이를 정처 없이 오가며 때때로 난처해지기도 하는 것을.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저리도 평온한데….

2019-09-23

현실의 여백, 환상을 모험하는 경험

문학에 있어서 ‘환상’은 예로부터 중요한 주제였다. 사실, ‘환상’ 말고 달리 더 문학적인 주제가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란 ‘여기’, 현실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여백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비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이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매료되기 마련인 환상이야기 가운데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작품을 처음 열어보았을 때 경험했던 최초의 당혹감과 이어 찾아온 그 세계에 대한 매혹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세계는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구나가 그러했을 것처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에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1871)’로 이어지는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낸 앨리스적인 세계가 그토록 특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 중심이 되는 근대 세계와 표준시로 대표되는 일말의 여백도 존재하지 않는 동조화된 세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백의 사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따분한 역사공부를 하던 앨리스는 ‘늦었다’‘늦었다’고 외치는 조끼를 입은 토끼를 발견하고 그를 따라가다가 환상의 세계로 굴러 떨어진다. 우리의 정신은 조금의 실마리라도 눈앞에 나타나면 그 실마리를 따라 제멋대로의 상상의 세계로 떠나가 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따분한 공부를 하는 와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꿈’과 ‘거울’이라는 근대 세계의 두 가지 여백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에 굴러 떨어진 앨리스는 현실의 답답한 규칙성이 아니라 완전히 독자적이고 환상적인 규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모험한다.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세계를 여행하는 앨리스의 모험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새로운 환상적 세계의 규칙을 발견하는 인간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이 환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지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기괴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유사한 규칙을 가지고 단지 창조된 세계에서 일어난 기괴한 소재만으로 만들어진 환상 문학은 그것을 보는 인간에게 당혹감을 줄 수 없다.자신이 마주친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세계 속에서 앨리스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적도 없이 그저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그 세계를 경험한다. 세계의 규칙을 알 수 없으니 그 경험은 이성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입안에 넣어보지 않으면 대상을 알 수 없는 아기처럼. 앨리스는 실제로 먹어보지 않으면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말을 하는 기괴한 대상들과 만나 그들과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결국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진정한 환상의 이야기이자 낯선 세계에 던져진 아이가 세계의 규칙을 이해해나가는 경험에 대한 알레고리다. 어른이 된 사람은 결코 아이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 세계의 여백에서,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매혹되어 붙들린다. 아마 그것 없이는 문학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9-23

“잠+재력을 달라”는 학생들의 외침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잠재력은 1도 없으니 ‘잠’과 ‘재력’을 따로 달라.”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잠재력 개발을 강조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죽비와 같은 말이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한국에서 학생들은 건물주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이 교육의 목적일터인데 실상은 거리가 멀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선행학습으로 몰아치고,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학생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과연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한국의 ‘교육열’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드러난다. 학생들은 옆을 돌아볼 여지도 없이 주어진 트랙 안에서 전방 질주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들어오는 이도 학생들이다. 학원을 다니며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생기부용 수행평가와 봉사활동으로 주말조차 쉴 시간이 없다. 돈과 권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그도 아닌 경우 학생이 그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안한 ‘학원일요휴무제’도 지쳐가는 학생들에게 쉴 기회를 주자는 문제의식의 발로지만, 실제 학생들의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경쟁을 조장하는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시들어간다.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가 쓴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는 신뢰, 공감, 진솔함, 용기, 휘게(hygge)의 가치를 강조하는 덴마크 학교 현장을 보고한다. ‘트리브젤 테스트(trivsel test)’는 ‘좋은 삶’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시험으로 학교에도 적용된다. ‘식물’과 관련된 북유럽 고어인 ‘트리브젤’이 상징하듯, 인간을 기계가 아닌 식물과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 그들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는지, 학생들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사회, 정서적 발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성적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이유를 깨달으며 질문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보여주기식 교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아프리카 물소떼는 물가에 도착하려고 단체로 질주하다가 아비규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남보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욕심과 속도 경쟁이 결국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들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자는 교실 풍경이 낯설지 않다. 휴일에 놀 시간은 고사하고 휴식 시간조차 없이 대학입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는 형국이다. 남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아 자신의 보폭대로 나아가도록 하는 교육은 불가능한가? 학생들의 질문으로 생기가 넘치는 교실, 학생들이 각자의 잠재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교육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2019-09-23

붉은 하늘 현상

저녁 노을이 지면서 하늘이 붉어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대낮에 붉은 하늘이 펼쳐지는 기현상이 지구촌에 발생했다. 붉은 하늘현상은 최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잠비주 무아로잠비군의 여러 마을에서 발생했다. 사진과 영상을 보면 통상적인 노을처럼 하늘만 붉은 것이 아니라 주변 사물이 모두 붉게 보여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인도네시아 기상기후지질청(BMKG)은 주민들이 불안해하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붉은 하늘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BMKG에 따르면 잠비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373.9㎍/㎥으로 매우 나빴으며, 붉은 하늘은 미세먼지 입자 크기가 태양의 가시광선 파장과 비슷해‘미산란’(Mie scattering)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는 것. 미산란은 빛의 파장과 거의 같은 크기의 입자에 의한 빛의 산란을 뜻하며, 실제 자연에서 나타나는 ‘빛의 산란’의 대표적인 예다.구름을 형성하는 응집제 혹은 입자 역할을 하는 먼지, 꽃가루, 연기 및 미세한 물방울, 얼음 입자들도 미산란의 원인 물질이 된다. 미산란은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미(Gustav Mie)에 의하여 제시됐고, 1908년 그의 저명한 논문에서 콜로이드 금 입자를 이용한 색깔 효과(color effect)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산란 현상을 증명했다.인도네시아는 매년 건기가 되면 수익성이 높은 팜나무 등을 심으려고 천연림에 산불을 내는 데, 특히 식물 잔해가 퇴적된 이탄지에 불이 붙으면 유기물이 타면서 몇 달씩 연기를 뿜어내 미산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상이변이 인간에 의한 산불로 빚어졌다는 설명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온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23

‘9·19 평양 공동 선언 1주년 학술대회’ 참관기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18일 서울 앰베서더호텔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주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과거 재직시절 학술대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학술 대회에는 3개 세션으로 구성되어 국내 학자 뿐 아니라 미국의 학자, 언론인들이 대거 참석하였다.제 1세션은 ‘9·19 평양 공동 선언의 의의’라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미국은 사회과학원의 레온 사갈 등 4명이, 한국에서는 김갑식 통일연구실장 등 전문가 3명이 발표하였다. 사갈은 지난해 2018년 평양 공동 선언의 후속 합의서인 남북 군사 합의문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과거 남북의 상호 억지력 강화가 결국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 등 치명적인 군사적 충돌을 초래했음을 상기하였다. 그는 9·19 남북 군사적 합의문이 북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CBM)를 위한 ‘잠정적 협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제 2세션은 ‘9·19 평양 공동 선언이후 군사 합의와 교류 협력 분야의 성과와 과제’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미국 군축·비확산센터 선임국장인 알렉산드라 벨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협상 당사자들이 지켜야 할 자세와 원칙을 제시하였다. 벨은 ‘작은 승리를 추구 하라’‘소통을 확대하라’‘외부의 압력에 유의하라’는 협상 성공을 위한 가이드 라인를 제공하여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의 주장은 앞으로의 북미 및 남북 협상 참여자들에게 일종의 기술적인 팁을 제공한 셈이다.제 3세션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북한 당국은 미국과의 비핵 협상에서 언제나 확실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 협상이 결렬된 것도 이 대가나 보상에 대한 합의를 구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히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로버트 아인혼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완전한 비핵화의 시한과 방식은 뒤로 미루고 핵 동결 수준인 북미간의 잠정적 합의(interim agreement)를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의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인정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우리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점이 문제이다.여하튼 이러한 학술 대회는 과거의 고답적인 학술 행사와 다른 형식임이 분명하였다. 발표자들도 학자들만이 아닌 이 분야의 전문 언론인이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미국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선 비핵화와 차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방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방식’이 제시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북한이 하노이 이후 제시한 미국에 대한 ‘새로운 셈법’에 대한 반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학술 대회는 작년 9·19 선언 이후 교착된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을 예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통일부 장관 등 정책 결정자들이 참여하여 우리의 정책 결정에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2019-09-22

첫 문장 쓰기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작가들은 집필을 마친 후 첫 문장을 수없이 다듬곤 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 중 가장 유명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카프카의 변신이 손꼽히곤 하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을 기억하는 분도 많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족은 모두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 인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지 못할 문장을 쓰는 것은 모든 작가의 꿈입니다. 그대는 어떤 문장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가요?카프카는 프라하에 살았던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도 독일인도, 체코인도 아닌 정체성 문제 때문에 늘 이방인으로 살았던 고독한 천재였지요. 카프카는 문학을 자기 삶의 구원으로 여겼습니다.글쟁이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유대인 장사꾼 아버지 압력에 짓눌려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영 보험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일과 문학 사이의 경계에서 갈등했지요. 오직 글을 쓸 때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카프카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오후 2시에 퇴근하면 여름에는 몰다우 강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매일 1.6㎞를 수영했습니다. 오후 4시 전에 잠을 청하고, 저녁 늦게 일어나 식사와 산책을 하고 밤 10시 무렵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변신’도 그런 삶의 방식으로 생산한 문장들입니다. 불과 며칠 동안 단숨에 써 내려간 걸작이지요.주인공 그레고르 잠자(Samsa)는 카프카(Kafka) 자신의 투영이라는 것을 이름을 통해 보여줍니다. 문학을 통한 구원에 도달하고픈 열망과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갈등과 충돌합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2

홍콩의 시위에서 바라본 우리나라는!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지난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 시대였다.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홍콩영화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오락물로 큰 인기를 누렸다. 60년대에서 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홍콩영화는 한국의 극장가에서 주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홍콩영화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위안거리였고, 만화경같은 존재였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되지 않았던 시절, 아니 해외여행 자유화가 있었다 해도 갈 돈이 없었던 시절, 이소룡, 성룡, 왕조현에서 주윤발, 장국영으로 이어지던 홍콩 영화는 당시 해외를 간접적이나마 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창구였다.그러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이루어지고 일국양제라는 타이틀 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체제가 공존하게 되었다.홍콩의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부여하고 홍콩은 자치권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러나 중국영향 하의 공산주의를 두려워한 수십만 명의 홍콩인들이 캐나다, 호주,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홍콩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쇠퇴하고 만다. 홍콩의 경제도 이전과 같이 활성화되지 못하였다.이러한 홍콩이 요즘 난리를 겪고 있다. 오늘날 홍콩의 시위를 바라보노라면 데자뷔(deja vu)를 느끼도록 한다.우리나라가 70년, 80년대 민주화투쟁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이다. 최근 홍콩의 시위는 홍콩범죄인 인도법이 발단이다. 이는 홍콩에서 범죄자를 중국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으로 홍콩에서 대만, 중국, 마카오 등 역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해당 국가에 신변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나 반체제 인사들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크므로 홍콩시민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심화되고, 홍콩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 홍콩시민들을 시위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홍콩은 과거 약 150여년간 식민통치이기는 하지만 영국령으로서 민주주의를 경험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15번이나 지났으니 홍콩인으로서의 민주화의 열망은 당연할런지도 모른다.우리에게 눈을 돌려보자. 진보와 보수의 갈등, 일본의 수출규제, 장관 인사청문회 등의 문제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도 시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결구도는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여’가 ‘야’가 되고 ‘야’가 다시 ‘여’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될 수 있는 나라. 누구는 평생 ‘여’만 하고, 누구는 평생 ‘야’만 하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정책으로 평가받고, 표심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좋은 나라인 게다.

2019-09-22

물러설 때

작년 9월 중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히딩크(73) 감독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중국축구협회는 “올림픽 예선 준비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았다. 이달 초 중국 올림픽 대표팀이 베트남에 0-2로 완패한 것도 경질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 거스 히딩크는 축구감독으로서 세계적 명장이다. 특히 한국 사람은 그의 성공적 신화를 잘 기억한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이룩하고 한국 사람에게 “꿈은 이뤄진다”는 희망 메시지를 안겨준 감독이다.한국팀 감독 이후에도 그는 첼시와 FA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등 유럽 명문구단 감독을 맡아 그의 축구 용병술을 마음껏 펼쳤다. 러시아 대표팀 감독에서 밀려난 뒤 내리막길을 걸었던 그에게 중국이 대표팀 감독을 제안한 것. 그는 중국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치른 12경기 중 단 4경기만 승리하는데 그쳤다. 한국에서와 같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데 대한 중국내 여론이 나빴다. 이유야 어쨌든 그의 경질을 두고 불명예 퇴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가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옛 명성을 회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령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인생에 있어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물러나라는 법 또한 없다. 진퇴(進退)를 잘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삶을 사는 지혜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히딩크는 선수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감독을 맡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세상은 그를 영웅시했다. 중국으로부터 불명예 퇴짜를 맞은 그도 물러설 때를 몰랐던 것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19-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