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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스코의 기업정신과 조선화인열전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보가 진작부터 있기는 하였으나 장맛비는 예상보다 일찍 시작되었고, 포스코갤러리를 향하여 형산대교를 건너 갈 즈음에는 운전이 불편할 정도로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그래도 마음은 조선의 명작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도 정겹게 느껴졌다.포스코 창립 51주년을 기념하여 서울 포스코미술관에서 고미술특별전을 열었는데, 창립 반세기를 지나 미래 백년기업을 향한 재도약의 원년을 기념하고자 마련한 것이다.기업시민을 표방한 포스코의 어젠다와 청렴과 여민(與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조선의 선비정신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기획의 축으로 심혈을 기울인 전시였다.이 특별전에 출품된 80여점의 작품 중 백미 45점이 ‘조선화인열전’ 이란 타이틀로 재구성되어 포항에서 전시된다.포항의 시 승격 7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포스코갤러리에서 포항시민을 위하여 전시를 마련하였으니, 조선시대의 진품명작을 우리고장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경북에서는 처음 열리는 귀한 전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빗속을 달려 개막식에 참석한 것이다.우리역사에서 미술문화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조선후기의 대가 겸재, 현재, 관아재 등 삼재와 단원, 혜원, 오원의 삼원, 그리고 추사, 호생관, 석파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진품명작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이 포스코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실현되었다.지방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 전시의 성사를 위하여 포스코갤러리 담당자들이 소장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였고, 효과적인 전시를 위하여 벽면을 보강, 재구성하였음은 물론 보안을 위한 CCTV 20개를 추가로 설치하였고, 인력을 보강하여 휴일에도 경비원을 배치하기로 하였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가입하는 보험료만도 엄청난 수준이다.이 작품들은 주로 개인소장인데, 소장자들은 임대료보다는 포스코의 기업정신과 공신력, 그리고 담당자들의 정성에 동의하여 흔쾌히 임대에 응했다고 한다.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 감동은 애초의 큰 기대보다도 훨씬 더 컸다.중심에 자리 잡은 추사의 ‘연호사만물지종’이라 쓴 작품은 추사체 특유의 힘과 창의적 구성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걸작이었으며, 중국그림의 임·모에서 벗어나 조선의 그림을 창시한 겸재의 ‘계산서옥도’ 진품이 발길을 오래 붙잡았고, 당대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불리던 강세황의 담백한 ‘산수’와 ‘포도’그림은 만나기 어려운 귀한 작품이었다.석파의 예술성 넘치는 편액 ‘취은산방’은 대원군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분방한 예인이었음을 웅변해주었고, 다산의 놀라운 작품은 당대의 대학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명필이었음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어 작품 하나하나마다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다.추사의 걸작 ‘부작란’을 연상케 하는 아들 상우에게 시범을 보인 난(蘭) ‘시우란(示佑蘭)’이 중국 특별전에 출품되어 볼 수 없게 된 아쉬움도 이 전시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 요소가 되었다.이 전시는 7월 30일까지 이어지며, 이 기간 동안 ‘옛 그림 이야기’ 등의 내용으로 시민강좌도 개최할 예정이라 하니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민 모두가 감상하여 ‘법고창신’하는 문화시민의 소양을 갖추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2019-06-27

졸업식 날 비가 안 오는 이유

1979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페어(PEAR)연구소에서는 사람의 의식이 물질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를 시작합니다. 연구는 프린스턴 대학의 로저 넬슨(Roger Nelson) 박사의 호기심에서 비롯합니다.로저 넬슨 박사는 대학 졸업식날만 되면 흐렸던 날씨도 이상하게 갑자기 맑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런 현상에 호기심을 품고 넬슨 박사는 최근 30년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의 졸업식 당일과 전날, 졸업식 다음 날의 날씨 통계치를 조사합니다.30년 동안 프린스턴 대학의 졸업식 당일에 대학과 인접한 6개 타 도시의 강우 확률은 33%였습니다. 하지만 지역의 중심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 교정에 비가 내린 경우는 28%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더 이상한 것은 졸업식 전날에는 비가 왔더라도 졸업식 당일에는 돌연 비가 그친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한 예로 1962년에는 졸업식을 마치자 마자 그 순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지요. 연구소가 내린 결론은 수천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날씨가 좋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소망을 품으면 실제로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우리가 행하고 표현하는 감사나 긍정의 언어들은 실제로 파동(wave)이고 에너지(energy)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린스턴 대학 PEAR연구소의 해석입니다.80세가 넘은 한 소설가는 닭에게 실험을 했습니다. 이유는 어느 날부터 닭들이 알을 잘 낳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금순이라고 이름 붙인 닭에게 매일 “감사해요. 금순씨” 이렇게 말합니다. 진심을 담아 미소를 머금은 채 말입니다. 그러자 금세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루 건너 알을 낳던 금순씨가 매일 알을 낳기 시작한 겁니다. 오순이라 이름 붙인 닭은 3일에 하나 낳던 것이 점점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소설가는 말합니다. “예쁜 이름을 붙인 닭들이 더 큰 알을 낳아요!”2100년 전, 로마의 키케로는 프린스턴 대학교 실험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미덕 중 최고이며 다른 모든 미덕의 뿌리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이롭습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감사. 내 마음이 스치는 곳마다 감사. 손길이 닿는 곳마다 따스한 감사. 오늘 하루는 감사라는 에너지로 충만한 멋진 날로 만들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7

21세기 대중과 지식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이분법은 단순하되 힘이 세다. 나와 너, 친구와 적, 이익과 손해로 극명하게 갈리는 이항대립은 선택장애를 일소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낮과 밤의 주기적인 교체에 기초하여 광명과 암흑, 선과 악,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를 창안한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가 배화교(拜火敎)를 창시한다. 배화교에서 구원은 선신과 악신의 대결로 실현된다.1만2천년 후에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 앙그라 마이뉴가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선신이 승리한다. 아후라 마즈다를 따르는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태어나고, 악신의 추종자는 버림받는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훗날 성서에서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대결로 변신한다. 이분법이 종교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이분법은 선택지를 둘로 제한함으로써 양자택일의 난제(難題)를 전제한다. 양극단의 충돌과 대결이 발생하면 하나뿐인 출구 때문에 극한의 대립과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점에서 제3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놓는 변증법이 매력적이다. 테제를 설정하고, 그것에 반하는 안티테제를 충돌시켜 양자를 지양(止揚)하는 진테제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세계를 이렇게 이해하면 세상 모든 것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것으로 다가온다.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민중주의(民衆主義) 내지 민중사관이 추동해왔다. 특정한 개인이나 엘리트집단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사회발전과 변화를 주도한다는 이념지향이 민중주의 내지 민중사관이다. 1987년 6월 항쟁에 등장한 넥타이부대가 본보기다.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에게 인도된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모여든 30, 40대 회사원들이 주축이 된 넥타이부대. 그들이 6.29를 이끌어낸 장본인일 것이다.그들이 출현하기 전에 숱한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타도하려는 열망으로 경찰력과 맞선 넥타이부대의 위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과 30년 전에 일어난 극적이며 감동적인 현장을 추억하는 이가 아직도 적잖을 것이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들은 그런 무명(無名)의 다수를 ‘민중’으로 규정한다.요즘에는 민중이라는 표현이 흔치 않다.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인 지향으로 굳어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 민중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이념이나 정파에 얽매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대중(mass)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대중은 특별한 형체를 가지지 않은, 특정(特定)하기 곤란한 다수의 사람을 의미한다. 21세기 대중은 20세기의 대중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의무보다 권리를, 역사의식보다 편의주의를, 영원보다 지금과 여기를 추구한다. 목전의 욕망과 목표에 충실하지만, 각자에게 부여된 책임과 공동체 의식은 희박하다. 독서와 사색에 인색하되 물질적 쾌락추구에 몰두한다. 문명의 발생과 진화원리에 무지하고 둔감하지만, 문명이 가져다준 결과물에 환호작약한다. 21세기 대중에게 스마트폰을 제거해보라. 곧바로 폭동이 발생할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문제는 21세기 한국의 대중이 지식인의 세계에 자유자재로 틈입(闖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를 자임하는 판검사와 정치인 같은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대중의 길을 걸으면서 여타 지식인 집단과 스스로 격절(隔絶)되고 있다. 격절이 일상화하면서 분야별, 부문별로 단절과 간극(間隙)이 생겨나고, 그 빈자리를 대중이 점령하는 형국이다.지식인이 대중을 추종하고, 대중이 지식인을 조종하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대중추수주의와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일군의 어리석은 대중 정치인들의 뼈아픈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2019-06-26

한반도 미래를 위한 한국 기독교의 소명은

박준섭 변호사필자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영국이 낳은 세계적 신학자 니콜라스 토마스 라이트의 ‘역사적 예수의 도전’이라는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책의 결론부에서 근·현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는데 이미 세속화된 세상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종교개혁시대에 루터와 캘빈 등 개신교도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새롭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근대세계를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데 기여했던 것처럼 자신은 앞으로 곧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세상에 기독교인이 다시 기여하기 위해 ‘1세기 기독교’로 돌아가 성경을 다시 읽는다고 했다.필자는 그때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이 오고 있다는 것과 기독교가 그것을 준비한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어처럼 돼 버렸고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문명사적 변화, 곧 근·현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들리는 시절이 됐다. 최근에 그는 바울신학을 다룬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두 권의 대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필자는 그가 1세기 기독교로 돌아가 새로 성경을 읽으면서 얻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을 무엇인지 알려고 기다려오던 중이었다. 그는 미래를 위한 바울의 의도들을 헬라어로 카탈라게, 즉 화해라는 단어로 제시했다. 그는 고린도후서 5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기독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고 서로, 그리고 피조세계와 화해하라고 하는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종교개혁 이후에 기독교는 인본주의와 협력과 경쟁을 하면서 근·현대를 만들어 왔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의 발견이었고 이를 근거로 주체인 자신들을 넘어 세계로 확장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서구는 계몽주의·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식민지 경쟁을 하다가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냉전의 대립 속에서 경쟁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민족과 종교갈등으로 여전히 세계는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세계는 이제 다가올 문명이 타자를 배제하면서 자기를 확장해 나가는 문명은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과연 한국기독교 교회는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대한민국과 세계에 어떤 기여를 하여야 할까? 한국 기독교는 먼저 어떠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화해의 정신으로 남한의 좌우대립, 진보·보수의 분열과 갈등을 멈추게 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나아가 반드시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성취해 냄으로써 다음 문명의 비전이 화해라는 것을 세계에 분명히 제시하는 선도국가가 돼야 한다.이는 한반도가 지난 세기에 식민지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험을 동시에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남한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대표되는 근대화를 이뤄낸 곳이다). 또 그 이념갈등으로 전쟁까지 하고 이념의 대립이 끝이 난 시대에 아직도 한반도 이념으로 분단돼 근대의 이상과 모순과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는 용광로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사건이 과거가 지나가고 새로운 미래가 도래했다는 하나의 문명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새로워진 기독교 정신으로 여기에 기여해야 한다.한기총의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기독교가 이 미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희망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 민족의 지도자들이 키워졌고 그들이 우리 근대를 만드는 중심축들이 됐다. 한국 기독교가 가진 모든 누추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배세대들이 그들 시대에 기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 한국 기독교가 더 위대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9-06-26

인간 관계의 지혜

아기의 해맑은 미소를 떠올려 보세요.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즐거운 감정을 느낄까요? 상대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기가 자라서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빛나게 할까 라는 기대감은 속으로 누구가 갖고 있겠지만, 당장에 이 아기가 어떤 행동으로 나를 만족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서로 행복한 거지요. 아기도 방긋 웃고 나도 웃으며 화답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욕심이 끼어들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수많은 비교와 기대가 매일 마음을 파고듭니다. 해맑은 미소와 행복감 대신 좌절과 비교를 맛보기 시작하지요.직장 생활에서도 정작 어려운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과 벌어지는 관계가 대부분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관계’는 어려운 것일까요? ‘기대감’ 때문입니다. 관계가 어려울 때는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주위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상대가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심리적 계약’을 맺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기대가 충족이 되지 못할 때 관계 가운데 실망감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더 이상 신선함도, 발전도 찾기 어렵습니다. 능력에 벗어나는 일을 장담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을 때 애매모호한 태도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은 지혜롭지 못합니다.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관계가 악화되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거나 내가 상대에게 실망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원인은 각자의 기대치에 서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대에게 내가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가장 위험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 상대방 행동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이는 곧 실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만 낮추면 어떨까요?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긍정적인 느낌을 받게 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득도의 경지에 이른 분들은 인간 관계에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겠지요. 우리도 이런 태도로 담담하게 살 수 있다면 작은 손길과 눈빛 하나에도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오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지혜는 아낌없이 베풀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26

혼밥

강길수 수필가“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잠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아내에게 대답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하다.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고,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짓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오늘부터 한 주에 두세 번 아침에 혼밥을 해야 된다는 것이 싫은 마음도 인다. 아내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경쾌하다.지난달, 웬일인지 아내가 처음으로 시니어클럽에 아침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아 선발될지 모르겠다고 걱정도 했다. 다행히, 걸어서 반시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의 등교시간 횡단보도 안전도우미로 선발되었다. 오랜만에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스스로 번다는 사실에, 그녀는 속으로 신이 난 모습이다. 좋은 기운이 향기처럼 퍼져 오는 것만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았다.올봄 작은며느리가 오랜 기간 애쓰고, 기도하고, 기다린 끝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았다. 온 가족에게 내려온 하늘의 은총이기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다. 이로써 우리 부부는, 곧 두 돌을 앞둔 큰며느리가 낳은 개구쟁이 손자까지 두 손주를 두게 되었다. 그러니 아내는 요즈음 더 기뻐 보인다. 자기가 번 돈으로, 손자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가 보다. 아내는 아침형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단다. 반면 나는 학교나 군대, 직장의 사정에 따라 아침형, 저녁형 사람으로 변모하며 살아왔다. 요즈음은 출근이 늦어 저녁형 사람으로 산다. 인터넷 서핑이나 글 관련 자료들을 찾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다. 늦는 날은 심야 두세 시경에 잘 때도 있다. 그러니 아내처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아침밥상을 식탁에 차려놓고 나서며, 아내는 내게 이것저것 어떻게 챙겨 먹으라고 당부한다. 주방 소리에 새벽마다 선잠을 자므로, 건성으로 대답한다. 습관이 되어 일어나는 시각은 거의 같다. 밥을 푸고, 국을 떠 혼밥을 시작한다. 아내가 추가로 챙겨 먹으라는 내용은 잊거나, 기억나도 개의치 않는다. 혼밥을 마치면 가능한 한 설거지를 하지만, 시간이 늦는 날은 싱크대에 그냥 둔다. 한 주간에 두세 번 혼밥을 하기에, 혼밥족(族)이나 혼밥러(er)라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것도 차려놓은 밥상을 먹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돌아보면, 내 혼밥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농번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떤 날은 어른들이 다 들에 가고 없다. 할 수 없이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혼자 먹었다. 바로 혼밥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타향살이는 자주 혼밥을 하게 했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는 자취를 했으니, 친구와 함께 한 기간을 빼면 모두가 혼밥을 한 기간이 된다. 이때는 혼밥뿐 아니라 혼국수, 혼수제비도 한 적이 있다.‘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다. 인간의 혼밥 역사는 원시시대부터라 싶다. 공동체 생활 속에도,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후 모든 세대에 혼밥은 있었을 테니,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데, 왜 근년에 와서 우리 사회는 혼밥, 혼밥족, 혼밥러(er), 프로혼밥러(professional혼밥er) 등 그 파생어들이 유행, 이슈화되며 새 문화 트렌드라고 법석을 떨까. 물론, 혼자 사는 세대가 늘어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언론 특히, 티브이 ‘먹방’의 영향이 커 보인다.약삭빠른 상혼(商魂)은 일본을 벤치마킹하여, 혼밥족을 모으고 나아가 더 양산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임은 오랜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란 뜻이다. 따라서 혼밥 문화가 남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자칫 국가사회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등 우리 사회 지도층은 이런 관점에서 혼밥 문화를 주시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내일 아침도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이, 내 혼밥을 기다릴 것이다.

2019-06-26

미메시스와 바이오미메틱

△문학과 예술에서의 모방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과 예술의 핵심을 ‘미메시스’ 즉 모방으로 보았다. 철학자의 말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늘 모방하며 재현하고 있으니까.엘라 윌콕스(Ella Wheeler Wilcox ·1850~1919)의 시 ‘고독’은 “웃어라, 온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로 시작한다. 이 생소한 시인의 시는 영화 ‘올드 보이’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멋진 대사는 따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미메시스는 곧 따라하기다.당황스럽거나 놀랄만한 사건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그 경험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한다. 예컨대 버스에 두고 내린 지갑을 우여곡절 끝에 되찾았다면 친구에게 말하고 싶어한다. 어떡하다가 지갑을 버스에 두고 내렸는지,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마음이 어땠는지, 그것을 어떻게 찾았는지, 지갑을 찾아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인간은 삶의 한 부분을 압축하거나 확장하여 중요한 순간을 재현하려 한다. 이것이 이야기며, 이야기는 경험을 구성하고 배치함으로써 완성된다. 이야기는 삶을 미메시스한다.미메시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닮고자 하는 마음, 흉내내고 싶다는 생각은 유전자 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미메시스의 욕망이 예술로 이어진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면 음악이 되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색과 형태를 흉내 내면 그림이 되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하면 이야기가 된다.인간은 자연을 보면 따라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연을 흉내내려고 마음먹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재능이며 능력이다. 자연을 따라하지 않으면 결코 자연이 가진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이 응축되었다. 따라할 만한 것을 찾는 것, 그것을 실제로 따라해보는 것 역시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미메시스는 인류를 가장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최고의 원동력이다.△바이오미메틱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능력을 모방하려는 생각속에서 공학이 싹튼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바이오미메틱이 그것이다. 생명체를 모방하는 이 기술은 오래 전부터 행해져왔는데, 앞에서 말한 거미줄을 모방하는 것은 물론 비행기가 새의 날개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1907∼1990)은 엉겅퀴 열매를 모방하여 일명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크로(Velcro)를 만들었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벨벳’을 뜻하는 ‘벨루(velour)’와 ‘고리’를 뜻하는 ‘크로셰(crochet)’의 합성어다. 이런 벨크로는 단추나 지퍼를 대신하여 옷, 신발, 가방 등에 사용된다.벨크로는 쉽게 붙이고 뗄 수 있지만 접착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이보다 강한 접착력을 가지면서도 쉽게 떼는 것도 가능한 것이 있을까? 공학자들은 게코(Gecko) 도마뱀에 주목했다. 게코 도마뱀은 긴 발톱이나 갈고리가 없이도 나뭇가지나 천장에 안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놀라운 흡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코 도마뱀이 지닌 흡착력은 수십 킬로그램을 매달아도 될 정도다. 그렇게 강하게 붙을 수 있으며 또 쉽게 뗄 수도 있다. 그러니 게코 도마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게코 도마뱀이 어떤 접착 물질도 분비되지 않는데도 놀라운 접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밀은 발바닥에 있다. 발바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크기의 섬모 수십억 개가 촘촘하게 나 있다. 이렇게 미세한 나노구조의 물질은 주변의 물질과 전기적, 분자간의 인력으로 살짝 들러붙게 되는데 이것을 ‘반데르발스 힘(van der Waals force)’이라고 한다. 각각의 섬모에 작용하는 힘은 아주 작지만 그 수가 수십억 개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은 1c㎡당 약 1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흡착력만 뛰어나다면 뗄 수가 없으니 아무 쓸모가 없다.하지만 섬모는 결을 이루고 있어 그 결을 이용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뗄 수 있게 된다. 게코 도마뱀의 흡착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 역시 벽이나 천장을 스파이더맨처럼 땅위를 걷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한 시인은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을 보며 이런 시를 썼다.“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복효근) 전문시인이 토란잎에 영감을 받아 물방울처럼 둥근 리듬의 시를 쓰는 동안 공학자들은 토란이나 연잎에 어떻게 물방울이 궁글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스스로 물방울을 털어내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잎에 물이 묻으면 식물의 호흡기관인 기공이 닫혀 호흡을 할 수 없게 된다. 연잎은 표면에 무수한 나노 단위의 돌기들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 미세한 돌기들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면, 물방울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표면적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물방울은 동글동글해지고 연잎의 표면을 구를 뿐 그 좁은 돌기의 틈새로 파고들지 못한다. 자연은 이토록 치밀하며 이토록 정교하다. 나노 돌기를 이용하여 물의 흡수를 막는 방법을 사용하는 식물로는 벼의 잎사귀가 있고, 곤충으로는 모포 나비가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공학자들은 셀프 클리닝(Self-Cleaning) 기술을 탄생시켰다. 연잎과 같이 나노돌기를 만들어 주면 물에 젖지 않는다. 또 먼지나 세균 같은 것도 물방울처럼 나노 돌기에 떠 있는 상태가 되므로 표면이 오염되지 않는다. 비가 올 경우 물방울이 굴러내리며 먼지나 세균 등을 씻어내게 되므로 자동세척이 이뤄진다.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덮고 있는 흰 천이 몇 년이 지나도 더럽혀지지 않는 것은 이 셀프 클리닝 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을 우리가 입는 일상복에 사용하면 커피, 소스와 같이 다양한 액체에 의해 옷이 더럽혀 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자동차의 표면, 건물의 외벽이나 유리창에도 사용할 수 있다.미메시스는 문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메시스는 일종의 본능이며, 이것은 어쩌면 문학보다 공학이 먼저인지도 모른다.

2019-06-26

스몸비족

스몸비족은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성한‘스몸비(smombie)’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이 말은 2015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가리킨다.스몸비족은 특히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을 빼앗긴 탓에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가 잦아 문제가 되고있다. 실제로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16년 보행 중 주의분산 보행사고로 접수된 사건은 모두 6천340건인데, 이 가운데 62%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걷다 차량과 충돌하는 등 휴대전화 사용 중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 중 사고뿐 아니라 뒷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길 한복판이나 지하철 환승통로 등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천천히 걷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겨울철에는 미끄러운 빙판길을 보지 못하고 넘어지는 등의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 연령이 낮아지며 ‘스몸비 키즈’까지 증가하고 있어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 3월 시 조례에 ‘모든 시민은 횡단보도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또한 곳곳에는 일명 ‘바닥 신호등’이 설치됐으며, 횡단보도에는 스마트폰 사용에 주의를 당부하는 표지판이 설치됐다. 서울시는 버스와 지하철에 공익광고를 게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해외에서도 스몸비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는 지난해 10월부터 도로를 건너는 보행자가 모바일기기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최초 적발 시 15~35달러,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75~99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에서는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전송할 경우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네덜란드와 독일 등에서는 바닥에도 신호등을 설치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아예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한 전용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26

당신의 자리

장규열 한동대 교수69년 전 오늘, 대한민국은 꺼져가는 호롱불이었다. 북의 기습남침이 개시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은 이렇게 방송하였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선에서도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서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 중이니,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거짓말이었다. 이를 듣고 안심한 피난민들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대통령과 각료들은 이미 서울 이남으로 피신한 후였던 데다, 한강 다리마저 폭격으로 끊어진 서울에는 시민들이 독 안의 쥐가 되어 이후 힘든 석 달을 지냈다고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자리를 그렇게 버려야 했을까?’떠올리고 싶지 않은 또 한 자락 기억이 있다. 사백도 훨씬 넘는 승객들을 태운 배가 기울어 침몰하고 있는 가운데, 속옷 바람으로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을 담았던 영상. 많은 승객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스러져 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하여 수다한 문제와 어려움이 제기되었지만, 필자를 가장 힘들게 한 질문에는 아직도 그 답을 듣지 못하였다. ‘선장은 자신의 위치를 그렇게 버려야 했는가?’ 선장에게는 ‘여객의 승선이 개시될 때부터 여객의 하선이 완료될 때까지 그 선박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재선의무가 있고, ‘급박한 위험이 닥치면 구조에 필요한 수단을 다하여야 한다’는 조치의무가 있다. 공직을 맡은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할 의무와 함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수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국회는 노는 중인가. 한껏 기대하며 표를 모아 국회로 보냈더니 우리를 대신하여 국사를 맡은 이들이 국회에 없다. 학생들에게 제 자리가 교실이며 회사원들에게 사무실이 제 자리이듯이 국회의원에게는 국회가 자신의 자리가 아닌가. 수다하게 많은 나라의 법과 제도, 그리고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들에 열심히 지혜를 모아서 만들고 풀어내라며 국민이 쉽지 않은 표심을 보태어 보내준 자리가 아닌가. 포항 지진과 속초 산불로 거처가 무너지고 생계가 위태롭다는데, 당신들은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자리를 그냥 저렇게 비워둘 심산인가. 경제가 어렵고 사회는 병이 깊은데 당신들은 고작 다음 공천에나 관심을 두고 오늘 나랏일은 뒷전이란 말인가. 투쟁을 하든 논의를 하든, 당신의 소중한 그 자리 국회로 돌아가 실력과 기량을 발휘해 주시라.사회학자이며 정치평론가인 스토크스 (DaShanne Stokes)는 ‘국민의 어려움을 돕지 않는 지도자는 국민이 퇴출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국회의원이 혹 권력에 취하여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책임을 방기한다면 국민에게는 당연히 당신을 물러가게 해야 할 또 다른 책임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레이건(Ronald Reagan)은 ‘(국회)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그들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국민이 어렵다.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돌아보아 주시라. 당신들이 마음쓰는 명분과 실리도 국민을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국민을 위하는 명분 말고 당신에게 더 어울리는 명분이 어디 있는가. 국민이 행복해지는 실리 외에 당신은 또 다른 어떤 실리를 꾀하는가.나라를 경영하는 대통령의 자리도, 여객선을 운항하는 선장의 자리도,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자리도 모두 있어야 할 오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섬길 때 빛이 나는 법이다. 나는 오늘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분명히 지키고 있는가. 내가 섬겨야 할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게 복무하는가. 내일을 향한 꿈도 오늘 꾸어야 하겠지만, ‘당신의 자리’에서 오늘 기울이는 섬김과 성취가 그 내일도 열어줄 터이다.

2019-06-26

상산고의 눈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아이콘인 상산고 학부모 수백명은 전북교육청 앞 광장에서 며칠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 절차가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 등을 잃었다는 항의이다. 상산고는 대통령 공약인 자사고 폐지의 첫 희생양인 셈이다.전북교육청은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기 위해서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커트라인을 전국 시·도 교육청의 기준점수 70점보다 10점이 높은 80점을 제시하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예외로 인정하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의무를 평가 항목에 소급 적용하고 배점도 높여 부당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결국 80점 만점에 79.61점이라는 0.39점 차이로 상산고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공약 사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학교를 상대로 교육청이 소위 ‘작전’을 편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를 설립한 홍성대 이사장은 필자가 고교를 다닐 때부터 유명했던 ‘수학의 정석’저자이며 국내 최고의 수학 학습서로 지금도 각광받는 책이다. 홍 이사장은 여기서 벌어들인 수백억의 재산을 모두 상산고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 부담금도 최대한 줄이고 장학금을 확대하고 재단전입금을 늘려 모범적으로 자사고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모범적인 자사고에 대하여 재지정의 취소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홍 이사장은 획일성과 평등만을 강요해서 어떻게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인 다양한 인재를 기를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들도 ‘자사고 폐지’가 대통령 공약 사항인데다 100대 국정 과제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이번 사태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결정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경쟁이 있어야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경쟁 속에서 다양한 창조적 교육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종류의 고교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정부가 인정하고 과거에 자사고 제도를 만들었다. 고교의 다양성을 위해 만든 제도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스스로 폐지하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자사고는 과거 정부가 다양한 교육수요를 수용하겠다며 2010년 도입한 학교 모델로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발전시킨 것이다.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고교 정부 규정을 벗어난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고는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 운영되도록 되어 있다.정부와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의 명분은 ‘평등교육’이다. 그러나 ‘평등교육’의 정의는 올바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개인은 각각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한 능력에 맞는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회를 누구에게든 부여하는 것이 평등교육의 기본 정신일 것이다. 평등교육이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지 교육수준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수준은 각각의 수준과 다양한 능력에 맞게 제공돼야 한다. 상산고의 눈물은 정치적 논리로 휘청거리는 한국 중등교육의 눈물이다. 해방 후 지난 70여 년간 정치적 논리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은 “똑같은 제도하에서 졸업한 두 개의 세대는 없다”는 한국만의 이상한 교육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교육정책에 관한한 후진국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교육정책을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는다. 사립고, 공립고가 존재하고 특히 사립고들은 다양한 교육방식으로 경쟁하고 랭킹이 존재하며 우수한 학생들을 모으기 위한 자율적 경쟁을 한다. 중등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교육정책들이 정치적 논리로 자꾸 바뀌어서는 안된다. 지금 상산고의 눈물은 우리 자신의 눈물이다.

201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