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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소함의 미학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몇 년 전, 학위 논문을 심사할 때의 일이다. 한 장씩 읽어가다가 어느 한 모퉁이에서 나도 모르게 눈이 멈췄는데, 그 이유는 바로 명명백백한 표절의 흔적 때문이었다. 방대한 자료를 훑다보니 출처 밝히는 것을 깜빡했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감사해야 할 학생의 지도교수가, 오히려 투덜대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슨, 그 부분은 전체 중 지극히 소소한 부분이라 아무도 모르는데, 괜히 문제를 삼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박사 논문도 아닌 석사 논문에서 뭐 그리 소소한 것까지 따지느냐는 원망의 눈빛마저 보내는 바람에 적잖이 당혹해 했던 기억이 있다.옛말에 ‘필작어세(必作於細)’라는 말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 63장에 나오는 말로,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사소한 것이라고 가벼이 여기게 되면 뒤에 큰 화를 당하기 십상이다. 한비자가 ‘천 길 제방도 땅강아지나 개미의 작은 구멍으로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고대광실도 아궁이 틈에서 나온 작은 불씨 때문에 타버린다’고 한 것이나, 공자가 일찍이 ‘군자는 광대함에도 도달하고 작고 정미한 것에도 진력하여 높고 밝음을 끝까지 추구하며 중용을 도로 삼는다.’고 한 것은 모두 ‘사소함’의 중요성을 설파한 말들이다.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쓴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는 ‘1:29:300의 법칙’이 나온다. 이는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통계적 법칙으로, 핵심은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국 반캬오 저수지 붕괴 사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2차 의료 감염 사건 등도 모두 인근 댐들의 저수량을 감안하지 않은 설계, 기술자들의 안전규칙 위반, 수술 전 올바른 방법으로 손 닦기 같은 사소함을 무시한 결과이다. 물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거나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보면, 작은 것에 집착하다 큰 것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100%의 실패를 막는 것은 1%의 실수, 곧 사소함이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이러한 디테일, 사소함에 강하다. 이 ‘사소함’은 단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하찮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큰 것을 보기 위한 첫 걸음이자 주변을 배려하는 ‘세심함’을 내포한 말이다.그런데 세상에는 내게는 자그마한 일이, 상대에게는 큰일이자 상처이고 평생의 아픔이 되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시던 소주병을 베란다 밖으로 무심코 던진 게 길 가던 행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목숨을 앗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재미로 놀리고 때린 일이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세상이다. 오래 전 사탕 한 개를 훔친 아이, 겨우 사탕 한 개쯤이야 하고 눈감아 준 것이 수십 년 후 은행털이범이 된 경우도 많이 본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 이 모든 것은 초기의 사소함을 크게 생각지 않은 탓들이다.사소함을 차츰 무시하다보면, 나중엔 큰일을 사소함으로 여기는 대범함이 생기기도 한다. 힘겹게 번 돈으로 도와주었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뭐 큰 금액도 아니고, 그런 사소한 것쯤이야, 친구끼리’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등 임용 출제 기간에 개인 사유로 무단이탈해 놓고선 오히려 사소한 일이라며 문제없다고 발뺌하는 교육계 인사들…. 이들에게는 도덕적 양심이 없다. 따뜻한 심장이 없다. 모든 게 ‘사소한’ 까닭이다.내게의 ‘사소함’이 남들에게 ‘큰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사소함’이 될 수 없다. ‘사소함’은 ‘나’가 아닌 ‘남’을 위한 배려이다. 그래서 ‘필작어세(必作於細)’에 담긴 사소함의 미학‘은 바로 다름 아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인 것이다.

2019-02-24

아홉 장 히든카드가 승리의 비결

교차로에서 음주 운전자가 7중 추돌 사고를 냅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친 동생을 마중하러 왔던 오빠는 활활 타오르는 조수석의 동생을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대학 4학년 동생은 전신 55% 3도 화상을 입습니다. “곧 사망할 수 있으니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누세요.” 의사의 말이 귓전을 때립니다.폐에 가득 찬 유독 가스를 빼기 위해 튜브를 박은 채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입니다. 화상 입은 다리는 피부가 다 사라지고 생닭처럼 흐늘흐늘한 근육과 노란 지방덩어리, 흰색 뼈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듭니다. 잘 알려진 이지선씨 화상 이야기입니다. 이지선씨는 “왜 하필 나인가요?”부르짖으며 자신의 운명에 대한 원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날 문득 “하필이면 나? 그렇다면, 나 대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다쳤어야 하니?” 깨달음이 밀려옵니다. 나는 다치면 안되고 다른 사람은 다쳐도 괜찮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마음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하루 한 가지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매일 한 가지 엄마와 감사거리를 찾는 연습을 합니다. 화상을 입지 않은 두 발에 시선이 머물지요. “찾았어요. 엄마. 불에 타지 않은 두 발, 씻을 수 있는 두 발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책을 쓰자! 나보다 더 큰 절망과 고통을 당해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그 누군가에게 내 상황은 새로운 힘을 줄 수도 있을지 몰라.”찰스 스윈돌 박사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내게 벌어진 일이 10%라고 하면 그 일에 대한 내 반응이 나머지 90%를 결정한다.” 인생이란 10장의 카드가 주어지는 게임이고 1장은 이미 드러난 패, 나머지 9장은 히든카드입니다. 어떤 순서로 카드를 내미는가에 따라 승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지요.힐링 캠프에 출연했던 지선씨는 말합니다. “오늘 TV로 제 흉한 모습을 보신 분들이,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저렇게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도 대단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뭐지? 멀쩡한 몸을 갖고 건강한데 더 잘 살아야지, 감사해야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와 비교해 감사가 나온다면, 미모의 여자 MC분과 비교하면 당장 불행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거죠. 비교하지 않고 진짜 내 모습으로부터 우러난 감사였으면 좋겠어요.”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요.”/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24

상복(喪服) 입은 상주시

용인시가 SK하이닉스 유치로 환영 분위기로 들떠 있을 무렵 경북 상주시 공무원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여직원은 검은색 계통의 복장으로 근무하는 모습이 언론에 비쳐졌다. 상주시 공무원이 마치 초상집을 연상케 하는 상복차림으로 근무해야 했던 사정은 다름 아닌 줄어든 인구에 있었다.한때 26만 명을 웃돌았던 상주시 인구가 이달 초 10만 명 선이 무너졌다. 농촌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막상 10만 명 선이 붕괴되자 상주시가 받은 충격은 꽤나 컸다.그동안 학자금 지원 등 인구 늘리기에 온갖 행정력을 쏟아 부었지만 인구 증가는 불가항력이었다. 설마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남에 따라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시소멸의 위기감도 실감 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넥타이 차림으로 각오를 다져보지만 농촌 현실이 얼마나 뒤따라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상주시는 경주와 더불어 웅도 경상도를 대표하는 고을이다. 조선시대 200여 년 동안 경상감영이 자리한 곳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했고 과거부터 수륙교통의 요충지였다. 학문과 문화를 숭상하는 선비의 고장이자 충열의 고장이다. 경상도라는 이름도 경주의 ‘경’자와 상주의 ‘상’자에서 따왔다고 할 정도로 위세당당한 지역이다.경북도내에는 상주시와 같이 딱한 사정에 놓인 도시는 수두룩하다. 영천과 영주도 인구 10만 명 선에 오락가락 한다. 인구문제에 관한 뾰족한 대책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게 지방도시다.SK하이닉스 유치로 신이 난 경기도 용인시는 1970년대 초반 만 해도 인구 10만이 안 되는 작은 도농혼합 도시였다. 1995년 시로 승격되고 22년 만에 인구 100만 도시로 성장했다. 수도권 집중화 정책의 수혜 도시다.경기도에는 인구 100만이 넘는 밀리언 시티가 수원, 고양, 용인 등 3군데나 있다. 성남과 부천시도 곧 합류하겠다고 한다. 경북과는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는 인구의 절반과 경제의 80%가 몰렸다고 한다. 상주시 공무원이 상복 차림으로 근무한 이유를 알 만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2-24

칼날 위의 ‘한국당’

안재휘논설위원김진태 의원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지만원 씨가 ‘편견’ 굿판을 벌이고, 이종명·김순례 의원이 덩달아 춤을 춘 ‘5·18 망언’ 소동 후폭풍이 자유한국당을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가고 있다. ‘5·18 망언’ 사태는 경제정책실패와 북한 비핵화 지지부진의 여파, 당정 인사들의 잇따른 구설수 늪에서 버둥거리던 청와대와 민주당, 그리고 진보세력 모두에게 반격의 핵폭탄을 제공한 망동이다.봄 날씨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주말 청계광장이 사람들로 넘쳐났다. 5·18 비상시국회의와 5·18역사왜곡처벌 광주운동본부가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 왜곡·모독·망언 3인 국회의원 퇴출! 5·18 학살 역사 왜곡 처벌법 제정! 자유한국당 해체! 범국민대회’라는 외우기도 힘든 긴 이름의 행사에 광주에서만 1천500여명 시민들이 상경했단다.참여시민단체가 550여 개라고 발표된 이 날 집회에는 여야 4당 소속 국회의원 20여 명과 이용섭 광주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도 참석했다. 집회에서는 ‘지만원 구속’‘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퇴출’ ‘5·18 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5·18 진상조사위 출범 협조’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인근 지역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보수성향의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5·18 가짜 유공자를 공개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주장하며 5·18 망언규탄 시위대에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이 날의 태극기집회가 자아내는 보편적 공명은 미미했다.그런데, 일방적 군중심리의 여파로 추진되는 이른바 ‘5·18 망언 처벌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개정안은 5·18을 비방·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7년 이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안 발의에 동참한 국회의원은 모두 166명에 이른다니 심각한 일이다.입법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독일과 프랑스 등의 경우들을 사례로 든다. 독일은 1985년 형법 제130조 3항에 ‘홀로코스트 부인’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았다. 형법 86조에 나치 상징 깃발과 슬로건을 사용할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엄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도 1990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나치학살 부인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5·18 망언 처벌법’이라는 이름의 개정안은 이렇게 허투루 다룰 법안이 결코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야만의 칼로 악용될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현령비현령이거나 견강부회의 궤변기술을 동원해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시킬 여지가 다분하다. 갖가지 편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난도질했던 뼈아픈 정치사를 아직 무시해서는 안 된다.문제는 지리멸렬의 뻘밭에서 도무지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형편이다. 27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한국당을 살려낼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 않다. 국민의 가슴이 뭉클하도록 ‘혁신과 부활’의 기적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상처를 후벼 파는 드잡이판이 되어버린 전당대회를 놓고 대다수 여론은 또다시 비관 일변도다. ‘싹수가 노란’ 간판 내리고 각자 흩어져 각자도생이나 모색하라는 주문이 줄을 잇는다.자유한국당이 칼날 위에 서 있다. 한 발만 더 삐끗하면 산산조각이다. 도로친박당, 도로수구꼴통당으로 돌아가 낡은 필름이나 돌릴 시대착오적인 광풍 속에 갇힐 것이라는 낙망이 난무한다. 나라와 당의 ‘미래’를 겨루는 희망의 설계도가 넘쳐나기를 바랐던 많은 이들을 모조리 절망의 섬에 가두고 있다. ‘폐업만이 답’이라는 충고를 반박할 여지란 추호도 없게 만든 보수 야당의 행태에 가슴을 친다. 운명의 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2019-02-24

신으로 상징되는 자연·운명 앞에 가장 귀한 ‘목숨’을 바치다

공포이기도 하고 미개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에나 가끔 등장하는 인신공양 혹은 인신공희(human sacrifice·人身供犧) 의식은 현대인들에게는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야만이다.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두고 보면 인권은 물론이거니와 합리적 이성조차 근대에 이르러 증기기관차처럼 ‘발명’된 개념이다. 수렵시대와 유목시대를 지나 농경시대까지도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페니키아에서는 몰렉 신에게, 마야에서는 우신(雨神)에게, 아즈텍에서는 태양신에게 제의를 올리며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야훼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입다는 끝내 자기의 딸을 번제로 바친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에서는 목공이 죽자 177명의 신하를 순장시켰고, 진시황이 죽자 아들 호혜는 비빈과 궁녀, 무덤을 만드는 데 동원된 장인과 기술자들까지 모두 생매장시켰다.하지만 고대인들이 현대인에 비해 ‘특별히’ 잔인무도해서 생사람을 잡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신공희는 풍작을 기원하거나, 천재지변을 당해 신의 노여움을 풀거나, 전쟁의 승리를 소원하거나(혹은 패배를 반성하거나), 통치자의 위엄을 보이거나, 죽은 자의 넋을 달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은 ‘신’으로 상징되는 자연과 운명 앞에서 그들이 바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다만 자신을 둘러싼 어둠 앞에서 턱없이 무력했고, 그래서 어리석은 맹목이었을 뿐이다.2017년 5월 16일,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발굴현장에서 2015년 3월부터 진행 중인 정밀발굴조사의 중간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바야흐로 보물창고이자 비밀의 창고가 열린 셈이다. 그때 새롭게 밝혀지거나 최초로 확인된 수많은 출토물 중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성벽을 본격적으로 쌓기 직전인 기저부 성토층에서 출토된 2구의 인골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동 기획한 특별전시 도록 ‘신라 왕궁 월성’에 실린 ‘성벽 밑에 잠들어 있었던 사람들’ 사진을 들여다본다. 나란히 누운 둘의 머리는 북동쪽을 향해 있다. 한 구는 정면을 향해 팔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누워있는 앙신직지(仰身直肢)의 자세이고, 다른 한 구는 몸을 약간 틀어 반대편 인골을 바라보는 자세다. 두 인골 모두 성인이고 외상(外傷)의 흔적 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형태였다고 한다.발치에는 흙으로 만든 항아리 3개와 손잡이가 달린 컵이 놓여 있고, 머리 주변에 남은 나무껍질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하니 5세기 전후에 묻힌 것으로 확인되었다. 키 166㎝의 인골은 골반과 후두돌기의 모양으로 미루어 남성임이 분명했다. 159㎝ 크기의 인골은 성별이 불분명한데, 인골의 골반에서 채취한 콜라겐으로 체질인류학 DNA 검사를 진행하면 건강상태와 질병, 식생활과 유전적 특성 등이 밝혀질 것이라고 한다.(2019년 1월 4일 확인한 바, 연구 결과 한 구는 50대 남성이고 다른 한 구는 50대 여성의 인골임이 밝혀졌다고 한다.)신라인들은 왜 성벽 아래 사람을 묻었을까? 기자들의 질문에 경주문화재연구소 박윤정 학예실장은 “별도의 매장시설이 없어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고, 이인숙 학예사는 “인골이 매우 가지런한 형태로 발견되어 산 사람을 묻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답했다.다시 도록 속의 앙상한 뼈를 들여다본다. 그들은 자연사하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저항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그들을 죽여 월성의 기초공사가 끝나고 성벽을 쌓아올리기 직전에 시신으로 묻었다. 1500년을 뛰어넘어 해골로 발견된 신라인들은 바로 ‘인주(人柱) 설화’로만 전해오던 풍습의 고고학적 증거인 것이다.경술 개경의 도성 사람들 사이에 유언비어가 돌았는데, 왕이 민가의 어린 아이 수십 명을 잡아다가 새로 짓는 궁궐의 주춧돌 아래에 묻는다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경악하여 아이를 안고 도망쳐 숨는 자들도 있었다. 악소(惡小)들은 그 틈을 타서 재빠르게 도둑질을 자행하였다.‘고려사’ 충혜왕4년(1343)의 기사는 이른바 ‘인주(人柱) 설화’에 대한 기록이다. 인주, 말 그대로 사람을 물속이나 흙 속에 파묻어 ‘사람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거대한 토목공사인 성 쌓기, 둑 쌓기, 다리 놓기 등을 할 때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거나 주춧돌 아래 묻으면 제방이나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신석기시대 산동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해대(海岱)는 동방문명이 이루어진 핵심 지역인데, 치평 교장포 유적의 건물과 성벽에 어린아이 혹은 성인을 건물의 기초를 다지는 공사의 희생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배진영.2009) 기원전 1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존재했던 중국의 최초 왕조 상(은)나라는 순장을 비롯한 인신공양의 풍습이 만연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수도의 은허 궁전 토단에서 수십 구에 이르는 인신 제사의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일본에서도 성과 제방과 다리를 건설하는 난공사 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히토바시라(人柱)’의 풍습이 에도시대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고대의 토목사업은 전쟁만큼이나 중대한 나랏일이었다. 사업의 성패가 국운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였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려면 우선 많은 노동력을 조달할 수 있는 집권력과 막대한 지출을 감당할 만큼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쓰이는 측량과 토목 기술 또한 중요했다. ‘삼국시대 고고학개론1’에 실린 논문 ‘토목기술과 도성조영’(권오영)에는 ‘튼튼하고 단단한 성곽을 쌓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애쓴’ 고대인들의 분투가 고스란하다.장비와 제반 조건이 열악한 상태에서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위험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토질을 개량하고,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는 돌과 흙을 최소화하는 각을 찾고, 경사 진 지형을 이용하거나 주변에서 흙을 캐와 덩어리를 쌓는다. 이때 식물의 잎과 줄기 등을 층층이 까는 부엽공법으로 미끄러움을 줄여 구조물의 붕괴에 대비하고 비와 눈에 의한 누수현상을 막는다.월성의 성벽 또한 점성이 서로 다른 흙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재료와 다양한 축조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성벽의 최상부에는 사람 머리 크기만 한 돌이 4~5단 가량 무질서하게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월성의 특징 중 하나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토록 필사적으로 성벽을 쌓은 것은, 왕성이야말로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보존하는 최후의 방어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시 최고의 기술력과 막대한 인력과 물적 자원을 총동원했음에도 홍수가 나서 무너졌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유례이사금7년(290) 등에 나온다. 따라서 문헌의 기록과 더불어 C지구에서 다량 출토된 연호명 기와로 미루어 월성 성벽이 여러 차례 수리와 보수를 거쳤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럼에도 쌓으면 무너진다. 무너지면 다시 쌓는다. 이처럼 도저한 불가항력 앞에서 고대인들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통해 이루려 한다. 토지의 신이든 물과 바람의 신이든 어떤 신령에게든 희생 제물을 바쳐 애써 쌓아올린 성벽과 다리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간절한 만큼 치열했고, 처절한 만큼 끔찍한 사람 기둥의 설화가 월성 성벽 발굴을 통해 국내 최초로 확인되었다.사람이 사람의 값어치를 어떻게 매기는가, 말하자면 ‘사람 값’이 그 사회의 성숙도와 문화 수준의 척도다. 502년 지증왕은 왕이 죽으면 남녀 각각 다섯 명씩을 함께 묻는 순장 풍습을 국법으로 금한다.(그러니까 최소 6명 이상의 순장자가 확인된 황남대총은 지증왕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들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527)하기 전에 생명에 대한 아버지의 자각이 있었다. 진평왕 때(600)는 수나라 유학파 원광법사가 세속오계 중 ‘살생유택’을 설파하고, 비슷한 때 백제에서도 법왕이 일체의 살생을 금해 새들을 풀어주고 고기잡이 도구를 불사르게 한다.공식적인 인신공희는 사라졌다. 하지만 애당초 인신공희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지 않고 대부분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우물에서는 동물 뼈와 함께 8~9세쯤 되는 어린아이의 전신 유골이 나왔는데 그 인골이 제의용인지 여부는 아직 논란중이다. 월성을 방어하는 시설인 해자에서 출토된 인골은 지금까지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인해 묻힌 사람으로 보고되어 왔지만 인주 설화가 확인된 이상 새로운 접근도 필요해 보인다.‘고려사’에 이어 ‘고려사절요’ 희종6년(1210)에도 최충헌이 대저택을 지으며 “몰래 남녀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오색으로 옷을 입히고 저택 네 귀퉁이에 매장하여 토목의 기운을 물리친다고 한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도 성종25년(1494) 군(君)과 옹주가 집을 지으며 주춧돌 밑에 어린아이를 묻었다는 거짓말을 유포한 자를 체포하라는 명이 내렸고, 사관이 덧붙이길 소문이 퍼지자 경기·충청·황해도의 사람들이 아이를 안고 산에 올라가 피하느라 마을이 텅 비는 데 이르렀다고 하였다.물론 후대의 인주 설화 대부분은 유언비어로 밝혀졌다. 부자와 권력가들의 탐욕과 전횡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낭설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이 엄하다고 죄가 없을까? 어두운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의 비밀은 계속된다.1500년을 훌쩍 뛰어넘어 인골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본 두 사람,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인신공희의 제물은 주로 이민족이거나 노예이거나 죄인이었다. 때로는 ‘순결한’ 처녀와 어린아이이기도 했다. 드물게는 순교자 이차돈과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의 주인공처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인골에서 추출한 DNA 검사를 통해 우리는 어떤 비밀을 알게 될까? ‘사람 기둥’이 되어야 했던 두 사람의 정체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밝혀질까? 죽어 성벽 아래 묻힐 때 그들의 마음이 원한이었을지 희생정신이었을지 아니면 얼떨떨함이나 황망함일지 알 수 있을까?한 쌍의 백골 앞에 넋을 놓고 있노라니, 문득 터널과 댐과 고속도로 인근에 외로이 서 있는 위령비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무심히 비문을 읽다가 ‘순직자’이거나 ‘산업전사’인 그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음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누군가의 삶이 희생된 자리에 누군가의 삶터가 지어지는 이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니, 인간의 역사란 참으로 슬프고도 잔인하다.

2019-02-24

하노이에서 보는 북미 회담

배용재 변호사지금 베트남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베트남은 이번 기회를 국위를 선양하고, 북미와 동시에 관계를 개선하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앞서 미국과의 직항로까지 개설돼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내친 김에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공적 자금의 유입까지 기대한다. 현재 베트남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라 있다. 현지 매스컴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고, 국민들의 환영분위기 또한 잔칫집이나 다름없다.이곳 한국인 사회의 열기도 마찬가지다. 전쟁 대치상태에서 벗어나 평화해빙무대로, 공존번영의 세계로 나아간다는데 반대할 한국인들은 없을 것이기에 북미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제 베트남에서 북한으로 사업장을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흥분하는 광경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민족끼리 잘 살게 되는 세상이 온다하는데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서로 윈윈(win-win)하면서 통일로 성큼 나아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터다.북한의 잠재적 가치는 베트남에서도 관심거리다. 10대 광물 잔존가가 3천200조원(2016년 기준, 광물자원공사)에 달한다는 등 뉴스마다 화제 집중이다. 하노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경제인들도 북한은 숙련도는 높으나 비용은 낮은 노동력에다 같은 문화와 언어 등 남한 경제인들이 바라는 요소들이 많아 세계 어떤 곳보다 매력으로 꼽는다. 베트남 한인사회 입장에선 당연히 북미회담 결과를 주시할 수밖에 없고, 북한개방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하노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필자 역시 이번 북미회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오길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무언가 모를 불안감도 엄습함이 사실이다. 하노이에서 만나는 지식인들로부터 북미회담 물밑 소식들을 접할 때가 꽤 있다. 이들도 북미회담이 겉은 화려하나 한국인들이 바라는 수준까진 아닐 것이라고들 전한다. 테드 크루즈와 로버트 메넨데스 같은 미국 상원 중진들의 ‘유엔 또는 미국의 대북제재 위반 경고’ 메시지를 비롯 펠로시 하원의장의 ‘비핵화가 아닌 무장해제’ 충고, 미국 정보기관이나 군대간부(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 사령관)들의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 가능성 예견 등을 예로 들면서 한국인들은 이런 때일수록 더 냉정해져야 한다는 충고까지 곁들이기도 한다.지금 베트남에 있는 한국기업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쏟는 것이 대북제재 위반으로 만에 하나, 미국으로부터 1차 보이콧 또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베트남에 나와 있는 경제인들은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대규모 공장이 있기에 그동안 이 부분을 더욱 조심해 왔다. 이번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관련 기업인들은 대북제재 위반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필자는 이번 하노이 북미회담에서는 비핵화(핵무기의 완전폐기)가 아니라 핵동결(핵무기를 보유하되 추가 실험금지, 단계적 핵사찰)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까지 북한의 전례를 보면, 단계적 핵사찰은 약속하지 아니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간만 끌면 그만이다. 남은 것은 북한의 핵무기이다. 그 부담은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오로지 한국의 몫이다.한국의 명운이 타인들의 손에 놓여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우리 국가 지도자들은 당파를 떠나서 그 당사자들에게 우리의 입장을 올바르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 자유와 행복, 번영의 보장이다. 나머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하노이 미딩경기장에서 베트남-북한 친선 축구경기가 있었고, 한국인들이 함께 모여 경기를 지켜봤다. 박항서 감독이 취임한 이래 일군 성과물로, 덕분에 한국이 베트남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때였다. 결과는 1:1 무승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당시 쌍방의 멋진 경기는 지금도 자주 베트남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번 북미회담도 수 싸움에 양측의 기력이 총동원될 것이다. 그 사이에 한국이 끼여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와는 달리, 한국인들이 쌍수로 환영하는 반가운 결과가 나오길 기대 또 기대한다.◇배용재씨는 하노이에서 법률법인 대표로 일하고 있다. 포항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했으며 대구지검 검사와 영덕지청장을 역임했다.

2019-02-21

老 기업가의 꿈

기부문화가 가장 잘 활성화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기부문화가 잘 발달하게 된 배경으로는 기부금 운영의 투명성과 세제 혜택, 사회적 분위기 등을 손꼽는다. 미국 비영리 기부단체에 기부된 돈만 약 462조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도 많은 돈이다.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진 웹스터가 발표한 소설의 제목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주디가 자신의 후원자 뒷모습 그림자를 보고 붙인 별명이다. 여기서 연유해 얼굴 없는 후원자를 우리는 키다리 아저씨라 부른다.대구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작년 12월 24일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대구공동모금회 직원을 찾아 1달에 1천만 원씩 12달 모은 돈을 전달했다. 2012년부터 누구인지 알리기를 거부하며 매년 그가 전달한 돈이 벌써 9억6천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의 기부 정성이 너무나 놀랍다. 기부를 하는 동기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기부를 통해 전달한 그들의 마음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하며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청청하게 한다. 기부가 숭고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기부의 참뜻을 잘 살려낸 표현이라 할 수 있다.어느 은퇴 소방관의 기부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자신과 같이 소방관의 길을 걸었던 아들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순직하자 그는 자신과 아들의 이름으로 모금회에 2억 원을 기부했다. 순직한 아들을 기리고 아들에게 보여준 우리 사회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 했다.기부는 받는 사람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도 희망의 빛이 된다. 90세의 어느 기업가가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에 500억 원을 쾌척했다고 한다. 세계 유수대학이 인공지능(AI) 개발에 열을 올리는데 서울대가 뒤처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라 했다. 모교에 대한 그의 애정이 유난히 돋보이는 선행이라 잔잔한 감동이 와 닿는다. 기부자의 뜻에 따라 공학도 후배들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국가로 끌어 올리는 성과를 냈으면 한다. 그것이 90세 노련한 기부자의 꿈을 이루는 일이다. 각박한 세상에 기부천사들이 주는 작은 감동은 우리 사회를 버티게 하는 힘이자 희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2-21

한국당의 딜레마, 태극기 부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2·27 전당대회가 ‘박근혜’‘탄핵’‘계파갈등’, ‘5·18’ 등 과거 이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태극기부대가 한국당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특히 대구·경북을 비롯해 두 차례 열린 합동연설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인 일명 ‘태극기 부대’가 수백여 명씩 몰려와 김진태 후보 지지와 함께 집단적인 야유와 고성으로 다른 후보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합동연설회장 밖에서 ‘아스팔트 국민 여론은 김진태·김순례’라고 소리높여 외쳐대 기대했던 컨벤션효과마저 날려버렸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한국당 입장에서 태극기부대를 마냥 비토하지도 못할 처지다. 우선 태극기부대에 대한 국민여론 조차 찬반양론으로 갈린다. 21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은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부대’와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0일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태극기 부대에 취해야 할 한국당의 입장’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단절해야 한다’는 응답이 57.9%로 집계됐다. ‘포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26.1%였고, 모름·무응답은 16.0%로 나타났다. 대구·경북(단절 36.9%·포용 43.8%)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과 연령에서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와 단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포용해야 한다는 여론보다 높았다. 정치성향별로는 중도층(단절 65.8%·포용 18.7%)과 무당층(단절 45.2%·포용 16.7%)에서 ‘단절해야 한다’는 응답이 더 많았고, 한국당 지지층(단절 13.5%·포용 64.8%)과 보수층(단절 32.3%·포용 52.7%)에서는 ‘포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태극기부대 포용여부는 탄핵으로 파면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여부를 따지는 ‘배박’ 논란과도 맞닿아있어 간단치 않다. 설령 태극기부대를 포용하려해도 기존 한국당 의원들의 입장이 곤란하다.탄핵 복당파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아있던 친박·비박의원들 역시 찬반입장을 분명히 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모양새다. 또 특정 계파의 ‘보스’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낡은 보스정치로 퇴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부담스럽다.또 태극기부대가 박 전 대통령 탄핵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정 여부가 전대 TV토론에서도 주요 논쟁 포인트가 되고 있다. 입당 이후 박 전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선 되도록 언급을 삼갔던 황 후보가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았다는 것이 입증된 바 없다”며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해 적지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탄핵후 구속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비록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상태지만 한국당의 정치지형에 끼치는 영향은 아직도 크다. ‘옥중정치’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국정농단과 탄핵의 책임 소재를 거론할 때마다 당내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간 계파 갈등이 불거질 정도다. 더구나 지난달 15일 입당 후 당 대표 출사표를 던진 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황교안 후보에게 따라붙은 게 ‘탄핵총리’‘배박’(背朴·박근혜를 배신했다) 이란 꼬리표란 점은 이번 전당대회가 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치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무엇보다 한국당의 전대에서 2020년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 전략 등 미래 담론은 부각되지 못한 채 ‘문재인 탄핵’과 같은 선동적인 구호만 난무하고 있는 데 대해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 입장에서는 축제가 돼야 할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다툼과 분열의 장으로 바꿔놓고 있는 태극기부대가 마냥 원망스러울 법 하다. 그렇다해도 그게 한국당이 뿌린 원죄에서 비롯됐으니 어찌하랴. 사소취대(捨小取大)의 정신으로 작은 이익은 버리고 큰 이익을 취할 밖에.

2019-02-21

삼세번 째 이주

강길수수필가입춘 지나고 세 번째 날이다. 산 너머 남촌의 꽃바람이 그리운 마음을 하늘도 아는 지, 따사한 날이다. 삼년 째 벼르던 주인공을 이주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설날, 고향에 다녀온 노곤(路困)이 다 가시지는 않았으나, 오전까지 쉬었으니 됐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주인공을 치우자는 아내의 주장에, 날씨를 구실삼아 미적거리며 내심 이주시키지 않으려 했었다. 그만한 연유가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필요한 도구를 챙겨들고 나서며, 아내에게 함께 가지고 했다. 피곤한지 내키지 않아 한다. 힘들어도, 마음먹은 김에 해야 한다고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파트 뒤 자그마한 텃밭이다. 지난 여름 강풍에 비스듬히 쓰러진 주인공을 바로 세우려, 아내가 담장너머 큰 향나무에 매단 끈을 풀었다. 가지 끝엔 아직도 주인공의 분신 몇 개가, 빨간 자태를 뽐내며 까치밥으로 제 몸을 내놓고 있다.주인공을 마주한다. 자신을 이주시키려는 내 속을 알 텐데도, 반갑게 맞는 것만 같다. 수십 년 된 옆 향나무만큼이나 키가 커지고, 밑동은 내 팔뚝만하다. 지난해는 앙증스런 토종대추가 많이도 열렸었다. 속말로 인사한다.“우리 주인공아, 잘 있었니? 미안하다! 나와 연 맺어 숱한 고생만 하고, 생사기로도 세 번씩이나 넘긴 너다. 오늘, 네 몸을 동강내어 세 번째로 이주시키려 한단다. 슬프고 아프더라도, 이해하고 참으며 받아주기 바란다. 그래야 네가 살고 또, 우리 차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톱으로 주인공의 몸, 첫가지 위를 자른다. 단단한 나무라 톱질이 더디다. 젊은 향내가 퍼진다. 한참 후, 줄기는 두 동강이 났다. 윗부분의 잔가지와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묶는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도 나왔다. 나머지 잔가지 정리를 그녀에게 맡기고,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한다. 뿌리가 드러나자, 깜짝 놀랐다. 두 번째 이주 때 보다 훨씬 큰 똬리를 틀고 있어서다. ‘내가 잊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핑 돌았다. 자태가 가부좌 한 사람의 아랫도리 같기도 하다.처음 만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 번째 직장의 어느 여름날, 화단 가장자리 콘크리트의 틈새에서 방긋방긋 웃는 연록아가를 만났다. 갓 돋아난 주인공, 토종대추나무새싹이다. 이태쯤 지났을까. 연록아가는 몸이 제법 굵어지고, 무릎위로 오를 만큼 자라나 새싹어린이가 되었다. 그냥 둘 수 없어, 집에 데려다 관상용으로 키우자고 결정했다. 그해 늦가을, 큰 플라스틱 화분에 새싹어린이를 첫 이주시켰다. 거처는 집 베란다다. 주인공에게는 고생 끝, 내게는 즐거움 시작이라 믿었다.다른 대추나무보다 일찍 잎 나고, 꽃 피고, 열매 맺었다. 줄기 수도 늘었다. 몇 해 지나자, 베란다에서 감당할 수 없이 커져 새싹소년이 되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내 반대를 무릅쓰고, 틈을 타 화분을 베란다 밑 코크리트 바닥으로 옮겼다. 나는 물주기 담당을 자청했다. 하지만 다음 두 여름동안 물주는 일을 게을리 해, 새싹소년은 세 번씩이나 생잎이 말라죽는 변을 당하고 말았다. 마음이 억새 잎에 베인 듯 아팠다. 물을 주자, 죽은 줄 알았던 새싹소년은 그때마다 눈부시게 되살아나 짜릿한 기쁨을 선물했다. 몸을 살리려 제 생명을 바친 푸른 잎들은,‘내가 죽어야 다른 이를 살린다!’는 근본메시지를 가슴에 아로새겨주었다. 언제부턴가, 몸이 튼튼해지며 청년이 되어갔다. 살펴보니 뿌리가 화분의 물 빠지는 구멍을 빠져나와, 콘크리트 틈새를 파고들어 땅에 깊이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일로, 주인공을 아파트 뒤 작은 밭으로 두 번째 이주를 시켰다. 그때 드러난 뿌리는, 화분을 몇 바퀴씩 휘돌아 똬리가 되어있었다. 삶의 처절함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있나보다.춘분 뒤 삼세번 째 날, 주인공 이주를 근교 양지바른 우리 밭두렁에 잘 마쳤다. 따져보니, 주인공의 삶이 공교롭게도 겨레를 닮아 삼세번과 연이 깊다. 부디 삼세번 째 이주로, 우리 주인공, 대추나무새싹청년이 영주(永住)하고 번성하기 빈다. 우리 집이 삼세번 째 이사로, 내 집을 마련했던 것처럼….

2019-02-21

본능으로서의 ‘구별 짓기’

△옷의 기능옷은 ‘구별 짓기’의 본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키톤(Chiton)’이라고 불리는 옷을 입었다. 옷이라고 했지만, 몸에 천을 두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그 정도의 천마저도 생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생산이 까다로운 모직물이나 비단은 고대사회에서는 더욱 생산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귀하고 비쌌다. 그러니 이런 옷은 한정된 일부 계층의 사람만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로마시대 원형경기장으로 가보자. 이곳에서는 검투시합이 벌어지곤 했다. 시합이라고 했지만 거의 살육에 가까웠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죄수에게 칼을 주고, 잘 훈련된 군인과 싸우게 했기 때문이다. 죄수는 대부분이 사형수였는데 소매치기, 좀도둑, 생계형 범죄자도 사형수가 되는 시대였다. 그러니 이들이 싸움을 잘 할 리 없었고, 전문적인 검투사와 싸워 이길 가능성도 매우 낮았다.검투시합을 보기 위해 원형경기장에 사람이 몰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층과 신분을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무릎까지 닿는 블라우스 형태의 ‘토니카(Tonica)’를 입었다. 그리고 로마의 시민만 토니카를 휘감는 ‘토가(Toga)’를 입을 수 있었다. 옷의 색과 천도 계층마다 달랐는데, 귀족은 린넨이나 흰 양털로 된 옷을, 그 중에서도 원로원 의원은 넓고 붉은 줄이 있는 토니카를 입었다. 기사 계급은 자주색 장식을 착용할 수 있었고, 평민이나 노예는 조잡하고 어두운 색의 옷을 입어야 했다. 신발도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귀족은 붉은색이나 주황색 샌들을 신었고 원로원 의원은 갈색 신발, 집정관은 흰색 구두를 신었다.△‘구별 짓기’의 진화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서로를 구별 지으려 하는 것일까? 옷을 통해 신분이나 계급을 구분하려 했던 흔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까운 예로 조선시대 사람은 모자(갓)의 크기나 모양으로 신분을 구분했다. ‘구별 짓기’의 방법으로 모자를 선택했던 이유는 눈에 가장 쉽게 띄기 때문이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구분의 방법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 되지만, 현대사회로 오면 그러한 구별은 보다 간접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구별 짓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학생들 사이에는 눈을 강조하는 스모키 메이크업(smokey makeup)이 유행하고, 여학생은 교복 치마의 길이는 물론 폭까지 줄인다. 남학생은 바짓단을 최대한 줄여서 입는다. 그 극단에 ‘7통 바지’가 있다. 바지통이 7인치, 17.8㎝밖에 되지 않아 발목이 드러나도 이런 바지를 선호한다.어른은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요즘 노래는 노래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누구나 어른이 되기 전 많이 들어본 것이다. 언제? 당신이 학생이었을 때, 당신을 학생이라고 부르던 어른들로부터 듣던 이야기다.세대 간에 격차가 있고, 그 세대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이 있고, 패션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취향’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한 사람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취향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에 의해 구분된다.”△아비투스과거에는 가문을 중심으로 사람을 구분했다면 오늘날은 문화와 취향에 따라 서로를 구분한다. 편의상 취향이라고 했으나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했다. 부르디외는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들의 계급과 계층을 구별하고 있다. 상류층 혹은 고급 취향의 사람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많은 부류일 것이다. 이와 달리 경제자본도 적고, 문화자본도 적은 부류는 하층민으로 분류될 것이다.그렇다면 보편적인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훌륭한 예술 작품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 보더라도 그 작품의 우수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세대와 계급과 계층 속에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힙합을 듣는 이에게 딱딱하고 웅장한 바흐나 베토벤과 같은 클래식이 귀에 찰리 없다.젊은이들은 자기가 듣는 음악을 이해해 주는 어른과 그렇지 않은 어른을 구분한다. 후자를 ‘꼰대’라 부를 것이다. “어떤 음악,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은 단순히 상대방의 취미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대답을 통해서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와 교육 환경, 나아가 계급이나 계층적 위상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회적 위상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당구가 취미인 사람과 승마가 취미인 사람의 경제적 수준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음악이 어떠세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음악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그렇게 묻는 사람이 어떤 계급이나 계층에 속해 있는지를 살피면 그 사람의 취향을 읽을 수 있고,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에 더 가깝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타인의 취향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고급하고 품격이 높은 문화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하나의 취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별 짓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그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역사는 옷이 민주화되는 쪽으로 전개된다. 어떤 것을 고급하다고 규정짓는 집단은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이었다. 귀족과 왕족이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가 분화되고 더욱 복잡한 단계로 발전해 나가면서 다양한 취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회가 성숙하게 발전하면서 취향을 고급한 것과 저급한 것으로 나누어 그것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를테면 바로크 시대와 로코코 시대는 화려한 의복을 자랑하는 시대였다. 현란한 레이스가 달려 있고, 치마는 풍성하며, 옷색깔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옷을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했고, 이를 통해 다시 명성을 쌓아갔다.

2019-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