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장맛비

두 주 동안 서울 가까운 곳에 가 갇혀 있었다. 시험문제를 내는 일이었는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건물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건물 중앙의 창으로 보이는 뜰에도 출입할 수 없는 ‘감금’은, 몸 아픈 사람의 ‘휴양’에는 더 없이 좋은 약이었다. 아침이 오면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문제를 내다 보면 금방 점심 때가 되고 오후는 조금 더 길게 느껴졌지만 아무 나갈 일도 없고 연락올 데도 없는 두 주일이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던가! 바깥 소식은 오로지 텔레비전으로만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일방통행식 수신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보고 듣고 생각만 하면 되니 말이다.텔레비전 뉴스는 세상의 소식을 먼데 일처럼 실어다 주었다.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다. 정두언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데, 경찰은 휴대폰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 번에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날 때도 휴대폰이 없어졌다 나타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황병승 시인도 자신의 집에서 세상 떠난지 근 보름만에 발견되었다고 했다. 지난 ‘미투’ 열풍 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데, 그때부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했다. 나는 ‘미래파’라는 ‘소동’ 가까운 ‘유파’에 ‘전혀’ 냉담한 편이었다. 그의 죽음은 지난해 그를 후원해 주던 비평가의 타계와 함께 이 ‘유파’의 ‘치세’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듯했다.세상에서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벨기에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더위로 무슨 조치가 내려졌다고도 하고 서울에서도 관측 이래 최고였다나 하는 무더위 소식이 이어졌다. 갇혀 있기는 해도 문제를 ‘뽑아내기’ 위해서 실내 온도만큼은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당국’의 배려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옛날에는 겨울이 좋고 더운 여름이 싫었는데, 지금은 겨울도, 여름도 다 좋아진 나 자신의 삶을 생각했다. 체온이 내려가고 심장이 느리게 뛰고 사람들을 만나는 활기보다 홀로 주어진 시간이 반가운 나이.갇혀서는 술도 마실 일 없으니, 지난 오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막걸리로 오염된 몸의 독소도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드디어 술을 끊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출소’해서 나가면 새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몸이 덜 시달리게 하니 잠도 규칙적으로 잘 수 있기는 하지만 이미 두세번은 깨다자다 해야 하는 체질,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검은 창밖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비내리는 소리 듣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시에서 창은 이중창일 때가 많고 그나마 허공에 뜬 아파트에서 날것 그대로의 빗소리란 쉽게 듣기 어렵다.‘비가 내리는군.’그러고 보니, 장마전선이 북상해서 며칠 동안 수도권 일대에 비가 계속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았다. 며칠 전에는 태풍으로 제주도 무슨 오름인가에는 사상 초유 천 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고도.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날들, 새벽의 장맛비는 내 몸속에 남아있는 소년 시절을 되살아나게 했다. 참 비가 좋은, 비가 오면 몸이 흠뻑 젖도록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한 바퀴 돌아오고서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었다. 새벽에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하나하나 세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번에 출소하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을./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08

사람과 쓰레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여름 휴가철이면 온 산천이 몸살을 앓는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마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사람들이 다녀간 곳마다 쓰레기 더미가 악취를 풍긴다. 모처럼 기대를 걸고 계곡이나 바닷가를 찾았다가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눈에 띄면 기분을 잡치게 마련이다.그런 쓰레기와 악취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터인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의외로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저들도 갈 때는 태연히 거기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심지어는 먹고 마시고 놀던 자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파렴치들도 적지가 않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어촌 사람들이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까지 치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행락철의 쓰레기문제는 해결방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가 가져온 것은 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자기가 먹고 마신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가서 평상시처럼 분리 배출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느 계곡 어느 바닷가에도 담배꽁초나 수박껍질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쉽고도 좋은 일을 사람들은 왜 한사코 마다하는 것일까.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길러진다고 한다. 젖먹이 아이를 늑대가 데려가서 키우면 늑대의 습성을 그대로 가진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교육을 받고 무엇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산천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인 것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남과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 그 사회성의 기본은 역지사지하는 마음, 즉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올바른 인성을 위한 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건전한 사회의 바탕이 되는 가장도 기본적인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삽으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도 있지만, 올바른 인성교육으로 절감되는 사회적 비용만 하더라도 실로 엄청난 것일 수 있다.남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악취를 풍기며 나의 기분을 잡쳤다면,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구나. 나라도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유치원생들에게 설명을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일인데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교육과 학습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그런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한다.남을 배려할 줄 아는 능력, 역지사지하는 공감능력은 올바른 인성의 기본이고 교육의 최종 목표라야 한다. 학문과 종교와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바로 그런 것일 때 그것이 인류에게 기여하는 바가 될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느냐 덕을 끼치느냐가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일진대 이해와 배려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학식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도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일 수가 없는 까닭이다.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선진국이 되고 국민들이 보다 성숙한 시민이 되려면 무엇보다 우선으로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하게 올바른 사회성을 기르는 학습을 시켜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학습하고 또 학습하여 뇌리에 각인하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 바로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이다. 제가 먹은 쓰레기를 되가져 가는 정도의 교양이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한낱 저급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2019-08-08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골치아픈 논의 중 하나다.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싶은 학과는 없기 때문인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잘 나가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기도 하다. 그건 대학정원의 결정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랜만에 교육부가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다. 교육부가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다소 듣기에 생소한 정책 발표를 하였다. 지금은 교육부가 전체 대학에 점수를 매겨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 국가 장학금 등 교육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대학의 정원조정을 압박하고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대학정원에 간섭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평가는 원하는 대학만 하고 평가 결과를 내놓을 때도 ‘일반 재정 지원 대학’만 선정하겠다고 했다. 다소 획기적이다. 아마도 이런 조치의 배경은 구조조정을 해봐야 학령인구 감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책변경이라기보다는 정책포기로 봐야 할 것이다.고된 과정을 통해 힘들게 평가해서 줄인 정원이 5년간 6만5천 명 정도인데 앞으로는 5년간 학령인구는 15만 명 가량 줄어든다는데 주목해 본다. 2000년 수능에 응시했던 학생은 89만 명이었다. 수능 시험일 일정 시간에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고, 전 국민이 수험생을 위해 숨을 죽이고, 모든 언론 매체가 수능 시험을 톱 뉴스로 다루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치열했다.그런데 금년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55만 명으로 예상된다. 2000년보다 35만 명 가량 줄어들었고 역대 최저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내년부터 만 18살 학령인구 숫자는 50만 명 밑으로 내려가고, 5년 뒤 2024년이 되면 37만 명이 된다고 한다. 2000년에 비하여 정확히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번 발표는 교육부가 구조조정을 하는 속도보다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공연히 고생만 하고 문제해결을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정책좌절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은채 대학을 규제하여 오던 교육부가 이젠 가만 내버려 두어도 대학은 고통 속에 스스로 규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손을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돈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지금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 대학은 고통을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8-08

황금을 가장 많이 캘 수 있는 곳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 노래 원곡은 어부 이야기가 아니라 광부와 딸 이야기입니다. “In a canyon, in a cavern, 골짜기와 동굴 안에서 Excavating for a mine 광산을 캐며 Lived a miner, forty niner, 살아가는 포티나이너와 And his daughter, Clementine. 그 딸 클레멘타인.”포티나이너는 금광을 찾아 1850년대 미국 서부로 몰려간 사람들, 금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금광을 통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드는 현상을 ‘골드러시’라고 하지요. 일부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금광을 찾는 데 실패합니다. 정작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금광에 달려든 사람이 아니라 몰려든 그들에게 온갖 생활용품을 팔던 사람들입니다.리바이 슈트라우스(Levi Strauss)는 천막 캔버스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았고 바로 그 청바지가 리바이스입니다.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골드러시’를 보면 먹을 것이 떨어지자 가죽으로 된 신발을 삶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골드러시에 휩쓸려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을 묘사한 장면이었지요.일리노이대 해부학 교수 할리 먼센은 인체를 화학 성분으로 분석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칼슘 2.25㎏, 인산염 500g, 칼륨 252g, 나트륨 168g, 마그네슘 28g, 그리고 소량의 철과 구리 성분으로 구성됐음을 밝혔습니다. 체중의 65%는 산소, 18%는 탄소, 10%는 수소, 나머지 3%는 질소로 돼 있다는 것도 입증했지요. 이 모든 인체 구성 물질의 값을 계산했을 때는 단돈 89%, 우리 돈 1천원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한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물질로 생명의 가치가 정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의 이마 안쪽에 있는 그 무엇. 체중의 0.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산소는 거의 20%를 소비하는 신체 기관. 두뇌 속에 과연 어떤 것이 채워져 있는 가로 한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법입니다.“황금은 땅에서 채굴된 것보다 인간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되었다”라고 나폴레옹 힐은 말합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주 무대가 샌프란시스코였고 그 지역에서 훗날 실리콘 밸리가 탄생했으니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8

조롱 당하는 기상청

이시라 기획취재부“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가 지역에 많은 비와 함께 초속 25∼30m의 강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도된 뒤끝이라 어리둥절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물론 태풍 피해가 없었기에 다행스러웠지만 오락가락한 예보 때문에 많은 인력과 행정력이 낭비됐다는 측면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기상청은 제8호 태풍이 한반도에 근접해오던 초기인 지난 5일 “6일 밤 남해안에 상륙한 뒤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며 7일 오전 경북 안동 서쪽 약 90㎞ 육상을 거쳐 강원도 속초 부근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며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하지만,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6일 기상청은 태풍이 동해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초기의 전망과 달리 경북 안동 주변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하면서 소멸할 것으로 말을 바꿨다. 뭐가 뭔지 모르게 계속해서 바뀐 기상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작 태풍은 6일 오후 8시 20분께 부산으로 상륙하고 나서 열대저압부로 인해 세력이 약해지면서 40분 만에 소멸했다. 태풍이 온 사실을 느끼지 못한 지역민들은 이런 이유로 분통을 터뜨렸다. 기상청은 당초 경북 지역을 통과하며 강한 바람과 함께 최대 200㎜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태풍예보 시 바다 기온이 낮아 급속히 열대저기압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면피 사유’를 끼워넣은 것이 기상청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어쨌든 경북지역의 민관은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기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갖은 부산을 떨었다. 공무원 2천487여명이 밤샘 비상근무를 했다. 태풍과 같은 재난에 과잉대비를 한다 해도 무방비 상태로 맞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기상청이 통보문을 발표할 때마다 태풍의 상륙지가 수시로 바뀌고 시민들에게 혼란만 준다면 기관의 존재가치를 찾기도 어렵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태풍의 경로는 얼마 동안 제자리에 멈춰 있기도 하고 다양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 진로 파악이 어렵다. 더욱이 한반도와 같은 반도지형을 거쳐 가는 태풍의 진로 예보는 특히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기상청은 그동안 항상 슈퍼컴퓨터 타령을 해왔다. 지금과 같은 예보능력이라면 슈퍼컴이 아무리 많아도 책임 있는 기관이 되기는 글렀다는 비판을 어떻게 감당할지 의아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기상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예보’가 아니라 ‘중계’를 하고 있다는 따가운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기상 예보 하나로 수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기후 변화가 무쌍한 지금,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정확한 일기예보가 갈수록 요구되고 있다. 민간기상업체만도 못한 이번 태풍 예보를 보면서 많은 시민이 조롱해온 ‘구라청’이란 별명이 피부에 와 닿은 며칠이었다./sira115@kbmaeil.com

2019-08-07

항왜(抗倭)와 토왜(土倭)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일본의 조선침략이 잘못되었음을 확신하고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부하들을 이끌고 투항한다. 사야가처럼 일본의 무의미하고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조선에 투항해 일본에 맞서 싸운 왜인들을 ‘항왜’라 한다.반면에 조선인이되 왜군의 침략에 즈음하여 자발적으로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군과 대적한 자들을 일컬어 ‘순왜(順倭)’라 한다. 선조가 명나라 신종에게 요동태수 자리를 애걸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순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휘하의 신료들조차 순왜의 규모를 이실직고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니, 조선왕조의 피폐와 무능과 신하들의 타락과 분열상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22살 나이에 투항한 사야가는 왜군에 대적하기에 부족한 조선의 무기에 눈을 돌린다. 그는 충무공과 서찰을 교류하면서 조총제작과 화약제조에 관한 견해를 개진한다. 그를 기려 1798년에 간행한 ‘모하당문집’에서 일부 발췌한다.“소장은 비록 타국에서 온 천한 군인이오나 외람되게도 신민의 대열에 끼게 되었사오니 본국인의 심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문하신 조총과 화포와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비국(備局)으로부터 내린 공문에 의거 진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또 김계수를 보내라 하명하시니 곧 보내옵니다.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필코 적병을 전멸시키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사야가는 충무공에게 부하 김계수를 보내고, 조선의 무기체계 개선에 진력한다. 아울러 그는 경주와 울산 전투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선조에게 가선대부 직함과 사성(賜姓) 김해김씨를 제수받는다. 그가 곧 김충선이다. 김충선은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에도 65세 노구를 이끌고 출정하여 청나라의 2대 칸인 홍타이지와 맞서 싸우는 애국정신을 발휘한다.아베 총리가 도발한 경제전쟁으로 나라가 온통 소란스럽다. 총칼과 대포를 동원한 살육전은 아니지만, 경제전쟁도 전쟁이다. 단지 총성 없는 전쟁일 뿐. 이럴 때 특히 유의할 것이 내부의 분열과 그것을 획책하는 자들의 분탕질이다. 임진왜란에서 조선백성이 고통받은 까닭은 암군(暗君) 선조의 무능과 우심(尤甚)한 당쟁으로 왜적의 침략을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1세기 한일 경제전쟁에 임해 우리는 국론을 통일하고, 침착한 자세로 저들의 도발에 응전해야 한다. 적전분열이나 과도한 공포, 지나친 선전선동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더욱이 순왜 못지않은 현대의 ‘토착왜구’ 준동은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친일부역자를 가리키는 ‘토왜’는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로 구체화한다. 신문은 토왜를 “얼굴은 조선인이나, 창자는 왜놈”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로 부류로 나누었다.첫 번째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이고, 두 번째는 일본의 침략행위와 내정간섭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이다. 세 번째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회원, 네 번째가 토왜를 지지하고 애국자를 모함하는 가짜 소식을 퍼뜨리는 시정잡배다. 100년 전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토왜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정치인과 언론인, 자발적 부역자(附逆者)가 적잖다. 그자들이 정보강국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백기투항(白旗投降)을 주장하는 자들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협상의 후예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차 대전의 영웅 처칠이 남겼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볼 때다.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2019-08-07

달걀 껍데기를 품은 방학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달걀 껍데기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필자를 포함해 2019년 중등 교감 자격 연수에 참가한 백 명이 넘는 연수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강사만 바라보았다. 강사는 연수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서로의 눈치가 몇 번 오가도 답이 없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래도 강사는 계속 반응만 살폈다.필자는 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기까지는 육체적 상처 정도로 생각했다. 주변의 반응도 필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답답해진 연수생들이 강사에게 답이 무엇인지를 직접 물어보았다. 강사는 계속해서 강의실의 분위기만 살폈다. 여기저기서 생각한 답을 말하는 목소리보다는 답답함에 짜증이 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달걀 껍데기에 상처 받은 사람은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계신 바로 여러분입니다.” 갑자기 강의실 분위기 싸늘해졌다. “여러분 말고도 있습니다. 집에서 아침밥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는데 거기에 아주 작은 달걀 껍데기가 같이 나왔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의실이 술렁이었다. 그냥 먹겠다는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반응을 지켜보던 강사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물론, 아침상을 차려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껍데기에 마음을 상하여 아침부터 험한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음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마음을 쓰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것부터 먼저 생각을 하고 표현합니다.”필자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만약 필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더라도 불쾌감은 들었을 것이고, 만약 그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분명 불쾌감을 말로 표현했을 것 같았다. 결국 필자가 달걀 껍데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던 것이다.강사의 설명에 많은 연수생들이 격한 공감의 표시를 보냈다.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패턴은 똑같았다. 얼음 한 조각에 상처 받는 사람, 물 한 모금에 상처 받는 사람 등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는 유형에 대해 강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비슷한 상황에 대한 자극이 이어지면서 연수생들의 연수 태도도 바뀌었다. 강사는 ‘자리바꿈’이라는 용어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였다. 마음의 상처는 결국 자리바꿈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결론에 필자는 많은 반성을 하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줄기차게 이야기 했지만, 정작 필자는 이 역지사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최근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 역시 자국 이익에만 눈멀어 자리바꿈을 하지 못한 일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며칠 째 계속 쏘아대는 북쪽 또한 이 자리바꿈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자리바꿈의 문제는 국내 교육계에도 있었다, 바로 자사고 폐지!강의 내내 강사의 접근방법이 필자에게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필자 또한 달걀 껍데기와 관련된 여러 상황을 겪었을 텐데 왜 사람의 태도는 보지 못했는지 강의를 듣는 내내 필자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필자의 생각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오래 생각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강사가 필자의 잘못된 사고방식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기 계시는 교감 선생님들은 교사, 학부모, 학생과 대화하실 때 ‘직책’으로 대화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이제 ‘나’ 라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해보세요.”교감 자격 연수를 마치면서 필자는 ‘달걀 껍데기’를 가슴에 품었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바꿈’이라는 가치가 필자의 마음에 꼭 부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2019-08-07

대오각성(大悟覺醒)

한 남자가 유서를 씁니다. 궁정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그는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왼쪽 귀에 고음이 들리지 않기 시작하지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칩니다. 증세는 점점 심해집니다.1802년 의사 권고로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6개월을 쉽니다. 도시를 떠났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유서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신이시여! 제게 단 하루만 온전히 깨끗한 귀를 허락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절대 안 된다고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이 유서를 쓰고 난 후 남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대오각성(大悟覺醒). 죽음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남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겠노라 다짐합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지요.윙윙거리는 굉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울려댑니다. 자기 귀에서 울리는 이 지독한 소음 때문에 세상 모든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로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결국, 완전한 귀머거리로 쓴 곡이 9번 합창 교향곡입니다. 프리드리히 실러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4악장의 장엄함. 이 4악장을 빛나게 하려고 1악장에서 3악장까지 빠른 전개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립니다.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한 상태로 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무대에 올라 지휘합니다. 현악 연주자들 활 놀림을 보며 곡 진행을 파악하려고 진땀을 흘립니다. 마지막 피날레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곡이 끝나는 지점을 파악 못 해 계속 손을 움직이지요.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거가 베토벤 옷자락을 잡아끌며 청중 쪽으로 몸을 돌리게 했고 열광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그제야 연주가 끝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쓴지 22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일입니다. 베토벤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어떤 분은 해마다 12월이면 유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신과 맺는 1년 동안의 인생 연장 계약서라고 표현하더군요. 대오각성, 이 네 글자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럭저럭 살아온 지금까지 내 인생이라는 판을 뒤흔드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도끼질 같은 충격,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아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유서를 썼던 베토벤 심정 말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대오각성이 없기 때문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7

가을을 기다리며

장규열 한동대 교수입추(立秋).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입추를 맞는다. 여름의 끄트머리는 몇 자락 무더위를 남기고 있겠지만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길은 없다. 뜨거운 날들을 지나면서 빚어진 일본과의 갈등은 모두의 생각을 무겁게 한다. 한낮의 더위는 몸을 지치게 하지만, 이웃이 던진 불씨는 마음을 힘들게 한다. 두 나라의 역사 가운데 오래 쌓여온 불화는 이번에는 해소할 것인지 한 자락 기대도 얹어 보지만, 불편함의 빌미만 한 차례 더하는 게 아닐까 걱정부터 생긴다. 남들은 혹 모른다 해도, 두 나라 백성들은 이 다툼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통상과 무역이 문제이지만, 속으로 멍든 까닭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탐심과 반목이 아닌가.전쟁이 시작되었다. 역사가 빌미인데 애꿎은 경제가 힘들 모양이지만, 따질 겨를도 없이 우리 기업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경제가 지향하는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에 제동이 가해진 터에, 새로운 출구와 해결책을 찾아서 온 나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모양이다. 나라 간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적 분업의 균형과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그에 차단과 교란을 초래한 일은 세계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의 선택이라 해도, 글로벌시장에서 일본은 무엇을 얻을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과 중국도 금융과 경제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어 한일 간의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도 모아지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기후만큼 답답한 실타래를 두 나라는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전쟁은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모아야 한다.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생각을 흩어놓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모으고 전략도 모으며 이기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한다.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역량과 지혜를 한점에 모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상대 앞에서 우리끼리 흩어지는 일은 우리를 얕잡아보게 할 치명적인 실책을 스스로 만들게 한다. 현명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여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여 정연한 논리와 협상의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힘들게 한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옛일에 사무쳐 감정으로 흐르지도 말아야 한다. 통상과 외교에서 승부수를 만들어야 하며, 스포츠나 문화로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글로벌환경도 염두에 두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는 오히려 점수를 올리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일본이 솔직해져야 한다. 경제가 문제인가 역사가 숙제인가. 한국경제를 욕보인 끝에 국제통상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무너진다면 일본이 얻을 실익은 무엇인가. 사라질 고객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온 것인가. 나라가 빚은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하게 태도를 밝히고 분명하게 실천하여야 한다. 식민지 국민을 힘들게 하였던 굴곡진 기억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국이 원한다면 수없이도 돌이키겠다는 독일의 마음도 다시 보아야 한다. 일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21세기에 적절한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전쟁을 다시 하겠다는 야욕이 실재한다면, 일본 국민은 이를 분명히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전쟁은 74년 전에 끝이 났지만,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누리고 있었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을 미묘한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은 이 기회에 분명히 벗어야 한다.한국과 일본은 글로벌환경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린관계를 다시 지어야 한다. 이념과 욕심을 앞세워, 성실하게 일하는 기업과 국민을 어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시원한 가을을 기다리듯이, 평화롭고 화합하는 한일관계를 기대해 본다. 갈 길이 멀다.

2019-08-07

환율전쟁

환율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자국의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평가절하·devaluation)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총성 없는 경제전쟁’이다.수출 증가와 자국 내 일자리 확보를 겨냥한 환율전쟁은 △1930년 대공황을 촉발한 1차 환율전쟁(1921~36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2차 환율전쟁(1967~87년) △2010년 이후 현재의 3차 환율전쟁 등 크게 세차례가 있었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내수 확대와 수출 증대를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했지만 곧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에 따라 수출 확대를 위해 자국의 통화를 약세로 유지. 수출제품의 해외 가격이 낮아짐으로써 매출 증가를 꾀했다. 따라서 환율전쟁은 일종의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라고 볼 수 있다.환율은 무역에서 큰 파급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면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붙이면 미국에서 중국 물건이 비싸지게 된다. 그러면 전에는 값싼 중국산을 살 수 있었던 미국인 소비자나 기업은 손해를 보지만 중국입장에서도 미국에서 제품을 팔기가 힘들어진다. 이때 중국 돈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이 중국 제품에 붙인 관세가 힘을 잃게된다. 즉, 어제까지 1달러로 6위안 어치밖에 못 샀는데 오늘부터 7위안어치를 살 수 있다면 관세를 1위안 붙인다고 해도 미국인 입장에서 어제랑 가격이 똑같기 때문이다.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환율전쟁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중국을‘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위안/달러 환율이 이른바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7위안선(포치·破七)을 돌파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긴밀한 관계인 두 강대국의 환율전쟁 파급효과만 생각해도 걱정이 한 짐인 데, 정부여당은 수출규제조치에 나선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니 이래저래 걱정만 늘어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