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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오랑 세오녀는 누구인가?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연오랑의 ‘잃어버린 신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이런 문제의식을 미술적으로 해석한 작품이 작년 9월 서울 삼청동 ‘바라캇 서울’에서 전시돼 주목을 받았다. 영국 출신 작가 셰자드 다우드가 연오랑의 신발을 ‘잃어버린 난민의 소지품’으로 여기고,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 지내는 장면을 아소르스(Azores) 제도의 비현실적인 일몰의 순간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현시대의 긴급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셰자드 다우드는 서울 큐레이터가 제안한 연오설화에서 영감을 얻어 천 위의 페인팅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된 관심사이자 지구촌의 과제를 외국의 고대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화한 것이다.설화는 다양하게 해석되거나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실제로 연오설화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 둘째 모종의 사실이 은유와 상징으로 포장돼 있다고 보는 견해, 셋째 은유와 상징에 방점을 두는 견해다.첫째 견해의 대표적인 연구자는 이영희다. 이영희는 연오랑 세오녀를 우리나라 금속 제조 기술을 상징하는 실존 인물로 본다.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제철 공정의 불이 꺼진 것이고, 일월이 예전같이 돌아왔다는 것은 제철 공정이 재개됐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둘째 견해, 곧 ‘비판적 신빙론’은 이문기를 꼽을 수 있다. 이문기는 “연오설화는 한반도를 떠나 일본열도의 어느 곳에 정착한 이주민 세력이 지배자로 군림했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성립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영일지역의 선주 토착세력이 새로 이동해 온 이주세력에게 밀려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하여 지배자로 성장한 사실이 투영된 설화일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셋째 견해는 고운기가 대표적이다. 연오설화를 정치적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고,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얘기도 일식, 월식 같은 자연 현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고운기의 주장이다. 그는 일관이 이른 ‘일월지정(日月之精)에서 ‘정’을 ‘정령(精靈)’으로 번역한다. 즉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정령이며, 연오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자 의인화라는 해석이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고, 사회도 그러하다는 것을 일연이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다.짧은 이야기 한 편을 놓고 해석에 이렇게 큰 편차가 있다. 신라 건국 초기의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13세기 후반에 일연이 편찬하고, 21세기에 우리가 풀이하고 있으니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연오설화는 지역의 정체성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동시에 초기 신라인의 심성과 세계관을 읽을 수 있고,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이다. 그동안 연오설화를 놓고 학문적 연구는 물론, 문학, 음악, 무용, 연극, 창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작업이 있었고, 앞으로 더 다채로운 시도가 이뤄질 것이다. 이 작업이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려면 보편적인 울림이 있어야 한다.연오설화는 단순히 한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넘어 현시대의 세계적 이슈와도 연결될 수 있는 메타포를 안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연오설화의 지역적 가치를 충분히 감안하되, 넓고 깊은 보편적 지평 속에서 해석해야 더 창의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무대에서 연오설화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나저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 근사한 이야기의 작가는 누구인지, 연오랑과 세오녀는 누구인지 자못 궁금하다.

2019-03-10

“온종일 흙만 팔지라도 역사를 찾는다는 자부심 가집니다”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아는 게 없어 할 말이 없고, 누군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 했던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천년의 잠에 빠졌던 월성의 속살을 가장 깊숙이에서 온종일 어루더듬는 사람들의 말이 어눌할지언정 어찌 헐후할까? 월성의 주인은 알에서 태어난 조상을 가진 왕족들이었지만, 월성을 만든 사람은 흙투성이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범한 백성들이었을 것이다.처음에는 1970년대 황룡사지 발굴 때부터 40여 년간 일해 온 경주 문화재 발굴조사의 ‘산증인’ 최태환 씨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태환 씨의 인터뷰가 여의치 않아, 경주문화재연구소 최향선 학예사의 도움으로 권세규 작업반장을 소개받았다.권세규 씨는 사설 기관을 통해 이루어진 작업을 포함해 10여 년을 경주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일해 왔고,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반원이자 작업반장으로 일한 베테랑이다. 겨울철 작업 중단으로 휴가 중인 권세규(74) 씨를 성건동 자택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현재 월성 발굴 조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반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한 조에 약 20명 정도입니다. 월성 전체로 보면 7개 조, 약 140명 정도 됩니다. 날씨에 따라 너무 춥거나 더운 두세 달을 제외하고는 1년 동안 이 인원들이 출근합니다. 건강 문제라든가 집안 형편이라든가 개인적인 사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근하는 편입니다.- 작업반의 성별과 연령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연령별로는 작업반원 중 최고령자가 80세이고 최연소자가 50대 중후반입니다. 고령자들은 경력이 10년에서 2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고, 보통은 60대에서 70대가 가장 많습니다. 다들 연령대가 높은 편인데, 정년이 따로 없다가 올해부터 만75세 정년 규정이 생겼습니다. 성별로는 총 작업반원 140명 7개 조 가운데 여성이 1개 조 약 20명인데, 주로 물체질(water-sieving, water-floatation)을 맡고 있습니다. 물체질 조는 발굴 후 남은 흙을 체질해서 씨앗이나 토우 등을 낱낱이 건져내는 일을 합니다. 나머지 6개 조는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부도 서너 쌍 있습니다.- 월성 작업반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조사하는 지구별로 구성됩니다. 성벽, 해자, 왕궁 건물지 등 3개 현장에서 각각 조별로 작업합니다. 지금까지 성벽에 2개조, 해자에 3개조, 왕궁 건물지에 2개조가 작업해 왔는데, 현재는 해자 쪽에 일이 많아져서 왕궁 건물지 담당 1개조를 그리로 보냈습니다. 각 조는 작업반장 1명과 조원 19명가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업 현장을 총괄하는 학예사가 1조에 1인 또는 2조에 1인이 결합되어 있고, 연구원은 학예사 1인당 3~4인이 함께합니다. 연구원들은 작업반원들과 함께 호미질을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역할이나 구역으로 작업반이 나뉘어져 있다면 각 분반의 일과를 알려 주세요.△조별로 맡은 구역의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합니다. 하루 일과는 유구 보호를 위해 덮어두었던 ‘갑빠’를 여는 일에서 시작해 각자 맡은 지구에서 발굴조사를 돕습니다. 마무리는 역시 ‘갑빠’를 닫는 일로 끝이 납니다. 일과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12시에서 1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작업 중간에 10분에서 20분 정도 휴식 시간이 있습니다.- 월성 발굴 작업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해자를 발굴 조사할 때 목간과 작은 토우, 씨앗 등을 건져냈던 일이 기억납니다. 해자의 펄을 걷어내는 작업이 꽤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펄을 모두 물체질 해서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었던 작은 유물들을 빠짐없이 찾아냈다는 것이 보람 있었습니다.2010년 이집트 유적 발굴을 이끌고 있는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피라미드는 비참한 강제노동으로 노예들이 채찍질을 당하며 만든 게 아니라 자유로운 노동자 약 1만 명이 날마다 버펄로 21마리와 양 23마리를 식량으로 제공받으며 만들었다고 주장했다.하와스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왕의 무덤 주변에 노동자들의 무덤이 자리했을 뿐더러, 노동자의 무덤 벽에 자신들을 ‘쿠푸 왕의 친구’라고 쓴 낙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란다.덧붙여 발랄한 일설에 의하면 노동자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자원한 이유가 물질적 보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험하고 고된 노동일지언정 ‘의미’와 ‘재미’마저 없다고 치부하는 건 또 다른 오만일지 모른다.만약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작업반원으로 일해보고 싶었다. 발굴 작업마저 중단시킨 추위와 꽁꽁 얼어붙은 땅이 야속했다.- 만약 제가 경력 없는 초보자로서 월성 발굴 작업에 참여한다면, 작업반장님은 어떤 일을 맡기시겠습니까?△흙 나르는 것을 시키겠지요.(웃음) 초보자는 현장에서 파낸 흙을 나르는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경력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기보다 원하면 같은 작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흙 나르는 작업자는 5명당 1명 정도로 배정되니까 1개 조에 3~4명 정도 필요하지요. 그 외 호미질 하는 작업반원들이 다수입니다.- 월성 작업반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젊은 사람들은 하지 않으려는 일인데 왜 그러시는지…(웃음) 보통 1년 계약직으로 결원이 생길 때마다 충원됩니다. 작업반원의 조건이라면 우선은 맡은 일을 해낼 만큼 건강해야겠지요. 2014년에 발굴조사를 시작할 때는 1945년생 이하라는 나이 조건이 있었습니다. 역할이나 경력에 무관하게 임금은 동일하게 받습니다.권세규 씨는 1945년생, 해방둥이다. 기림사와 감은사지가 있는 경주시 양북면에서 태어나 7세에 부모님을 잃고 형제들에 의지해 어렵게 성장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한 후에는 아내와 함께 성건동에서 40여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1995년 위암 수술을 받았고, 투병을 위해 식당을 접고 쉬던 중 건강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일거리를 찾다가 사설 발굴 조사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경주 시내는 개인 주택을 건축하거나 도로를 확장할 때 발굴조사가 필수라, 입찰을 통해 사설 업체에서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한다.) 6~7년 동안 사설 발굴조사에 참여하다가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어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작업반원들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게 되었다.-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가 시작될 때부터 작업에 참여하셨다면 월성의 초기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겠네요. 발굴조사의 시작은 어땠습니까?△ 초기에는 잡풀이 무성한 언덕이었지요. 발굴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일단 포클레인 같은 장비를 사용해서 가능한 지역을 파냅니다. 그 외에 유구에 탈이 날 수 있는 부분은 삽과 곡괭이, 그리고 호미와 꽃삽으로 작업합니다. 조원 15~16명이 모두 달라붙어 그 일을 하지요. 저의 경우 2014년 12월부터 2015년 말까지 왕궁 건물지에서 일했고, 2016년 초부터 2017년 말까지 해자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초부터 지금까지 왕궁 건물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초기 1년은 최태환 반장 밑에서 일했고, 해자 지역으로 이동할 때 작업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설로 다른 지역 발굴에도 참여하셨다니, 월성 지역의 특이점이 있나요?△ 다른 곳과 달리 좀 더 시간적인 투자를 많이 해서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현장 관리도 철저하게 하는 편입니다. 여기는 사적(史蹟)이라 춥다고 해도 절대 현장에서 불을 피우지 못합니다. 또 연구자(학예사·연구원)들과 함께 일하니까 무작정 파고 진행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뭔가 나오거나 의문점이 생기면 바로 작업을 멈추었다가 해결하고 진행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벽에서 유골이 나왔던 때처럼, 특이하거나 귀중한 게 나오면 작업반원들은 일을 중단하고 물러서고 대신 연구원들이 작업을 합니다.- 발굴조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되는군요. 작업반장님이 직접 찾은 유물들은 어떤 게 있나요?△ 사실 왕궁 건물지는 유물이 편(片)으로 나오지 완품은 드뭅니다. 주로 기와의 막새나 귀면 같은 것들인데, 완전한 건 없고 금가고 깨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건물지의 경우 뭔가 좋은 보물 같은 것을 찾는다기보다 삶터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더딘 작업을 하루 종일 하다 보면 좀 지루하기도 하실 텐데…. 그래도 작업에 어떤 ‘재미’를 느끼는 분들도 있나요?△ 물론 하루 종일 성과 없이 흙만 팔 수도 있습니다. 앉은 방석을 깔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땅을 팝니다. 가끔은 지루해서 옆 사람과 잡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뭘 찾는다고 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찾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일하지요. 재미까지는 모르겠지만, 작업반원 중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이자 취미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 년 전 왕성이었던 월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해 보셨나요? 상상해 보셨다면 어떤 모습이었을 것 같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왕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었으니 대단한 건물들이 가득하지 않았을까요?- 문화재 발굴 작업의 현장에서 일하며 느끼는 감정은 어떠십니까? 자부심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저 역시 경주 사람입니다. 물론 밥벌이로 하는 일이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땅에서 선조들의 흔적과 역사를 찾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2019-03-10

‘역(逆)색깔론’ 망령

안재휘논설위원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관련 영상 중에서 소름 끼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호텔 방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김정은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고 저만큼 입구 쪽에 떨어져서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쩔쩔매고 서 있는 북한 고위참모들의 모습이었다. ‘북미회담 결렬 직후’라고 소개된 영상은 지구촌에서 가장 혹독한 독재 군주의 나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컷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역사의 기원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주들은 왕권신수설에 기초하여 권력분산 자체를 신성 모독이라고 규정했다. 계몽주의자들은 ‘법의 지배’ 아래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상을 피력했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준 이 사상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로 진화됐다.평등한 참정권 등 여러 가지 기본요소가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권력에 의해 명시적으로 억압되고 제한되는 나라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에 우리는 잠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일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다. 최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국회에 제출한 일명 ‘한국판 홀로코스트 방지법(반 5.18 방지법)’은 결코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개정안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비방 또는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과격한 극우 세력의 망발이나 시대착오적 ‘색깔론’ 횡포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설익은 의혹을 단정적으로 내놓는 무례한 발언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주장이나 행동이 옳지 않다면 그 비논리와 불합리를 비판받을 공간을 허용해주면 된다. 입을 틀어막거나 잡아 가둘 생각부터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반민주적이다.1975년 3월 25일부터 1988년 12월 30일까지 대한민국 형법 제104조의2에 범죄로 규정되었던 국가모독죄(國家冒瀆罪)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로, 외환유치죄·간첩죄 등과 함께 있었던 이 법률은 여소야대가 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12월 국회에서 삭제됐다. ‘국가모독죄’가 이슈가 된 계기는 시인 양성우의 ‘노예수첩 필화사건’이다. ‘겨울공화국’이라는 반골 시 한 편 때문에 교직을 잃은 그는 1977년 6월 발간된 일본 잡지에 유신을 비판하는 시를 실었다가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0월 이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민주주의의 진짜 반대개념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전체주의·군국주의·독재라는 정의에 동의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지구상에 창궐했던 많은 나라가 독재정권으로 변질했다가 사라진 것은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제아무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어도 그 체제나 행태 어디에도 ‘민주주의’는 없다.인물이나 사건에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존재한다면 그 체제의 민주주의는 하자가 있는 것이다. ‘5.18’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마저 원천봉쇄하려는 움직임은 자제돼야 한다. 지금은 ‘평화’라는 명분이 만들어낼 지도 모를 또 다른 ‘재갈’을 걱정해야 할 때다. 양성우가 시 ‘겨울공화국’에서 묘사하듯이,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 기울이며/뼈 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나 머슴이나 허수아비로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저 서슬 퍼런 ‘역(逆)색깔론’ 망령부터 하루빨리 물리쳐야 한다.

2019-03-10

그레이트 스모그

영국은 1년 중 절반이 비가 올 정도로 날씨 변덕이 심한 곳이다. 특히 영국의 짙은 안개는 런던포그라는 애칭이 따를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때로는 낭만적인 영국의 모습으로 ‘런던 포그’가 소개되지만 영국 안개의 이면에는 우울한 이야기도 많다.대표적인 것이 1952년 일어난 런던 스모그 사건이다. 그해 12월 4일 런던에는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날이 이어졌다. 습도도 80%가 넘었다. 당시 영국의 가정과 공장은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 석탄을 대량 소모하면서 발생한 연기는 정제되지 않은 채 런던의 대기 권으로 마구잡이 쏟아져 나왔다. 연기는 짙은 안개와 합쳐져 스모그를 형성했고, 연기 속의 아황산가스는 황산안개로 변하여 런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된다.스모그 발생 3주 만에 4천여 명의 시민이 폐질환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같은 증상의 환자가 발생해 8천 명이 넘는 사람이 추가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끔직 했던 이 사건을 두고 ‘그레이트 스모그’라 부르고 있다.런던은 오래 전부터 스모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도시다. 13세기 무렵에는 석탄을 연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매연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매연 저감을 위한 위생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873년부터 스모그의 영향으로 사망자가 증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쨌거나 영국의 ‘그레이트 스모그 사건’은 전 세계가 스모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다. 2천927기의 석탄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그 규모는 미국의 4배에 달한다. 중국이 또다시 464개의 석탄발전소를 증설하겠다고 한다.미세먼지 문제로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 중국의 석탄발전소 증설 소식은 또한번 한국 사람의 가슴을 짓누른다. 중국이 증설 예정인 석탄발전소의 상당수가 한국 서해안에 면한 중국 동부여서 한국이 아무리 미세먼지를 줄여 봐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날 묘책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19-03-10

포항스틸러스, 시민구단으로 거듭나야

나영조 편집국 부국장“포항스틸러스는 시민구단이 아니다”스틸러스 경기가 열리는 포항스틸야드를 자주 찾는 열성팬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지가 꽤 됐다. 축구인이기도 한 필자가 지나가는 소리로 흘려듣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스틸러스 구단의 현실을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1에는 포항스틸러스 등 모두 12개팀이 참가하고 있다. 스틸러스는 오랫동안 명문구단으로 평가받아 왔다. 언제부터인가 성적도 그렇지만 구단 운영행태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급기야 포항시민들이 포항스틸러스를 외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스틸야드를 찾은 관중 수가 2016년 14만5천937명, 2017년 15만9천100명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4만668명으로 줄었다. “그럴수도 있지”라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포항구단을 아끼는 한 축구인은 “포스코 저들만의 잔치에 들러리를 서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말에서 내막을 엿볼 수 있다.“포항스틸러스는 시민구단이 아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전의 포항스틸러스는 완벽한 시민구단이었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눈물도 포항시민들과 함께 한 것으로 기억된다. 포스코 출신 사장과 시민대표 단장이 포항시민들과 한마음이 돼 명문구단을 탄생시켰다.지금의 포항스틸러스는 분명 포스코 기업구단이다. 포항시민들이 왜 스틸러스를 외면하는지, 스틸러스가 시민들을 어떻게 무시하는지 세세하게 늘어놓기는 그렇지만 구단 운영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팬들의 가장 큰 불만이 최근 떨어진 성적보다도 팬들을 외면하는 구단운영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따가운 지적은 ‘축구를 모르는 축구단 책임자’란 소리다.포항스틸러스가 기업축구단을 계속 고집한다면 포항시민들이 애정을 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기업이익만 고려해 구단을 운영한다면 창단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포항스틸러스의 존재 이유는 포항시민들과 함께 함에 있다. 시민들에게 활력과 희망을 안겨주는 에너지원이 돼야 한다. 기업윤리면에서 봐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되고, 사회 환원의 기본을 실행해야 한다. 유소년 축구단 지원도 점차 줄여오다가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 지역민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친목을 도모한지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권위의식에 젖어있는 스틸러스의 나홀로 행보는 팀의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2013년 이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이 없다. 올 시즌 개막전 패배도 불통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포항스틸러스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구단 책임자들의 축구관이 문제라고 지역의 체육원로들은 지적한다. 포스코에서 간부로 잘 지내다가 보은으로 받은 스틸러스 대표, 단장이 문제라는 소리다. 이 자리를 폼 좀 잡고 거쳐가는 자리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포항인의 자긍심을 고취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인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포츠를 통해 포항시민 화합을 이끌어 내고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낮은 자세로 헌신해야 한다.근원을 캐고 들어가면 포스코 부사장 출신 사장이 부임한 이후부터 스틸러스는 기업축구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역화합이라는 구호만 외쳤지 시민은 안중에 없는 포스코축구단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구단의 전력 쇠퇴와 시민들의 외면이었다. 현 집행부를 두고 ‘평상시 조기축구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축구인들이 수군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구단운영과 관련한 책임의 다른 한 축은 포항시에도 있다. 네임스폰서로 구단에 연 9억 원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면 구단이 시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민들을 무시하는 팀에 거액의 예산만 지원하고 관중석 메운다고 인원 동원하고, 입장권을 배당하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구단의 사장이나 단장 자리에는 시민들의 대표성이 있는 사람을 앉혀, 진정 시민을 위하고 포항을 사랑하는 시민구단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포항시의 역할로 보인다. 스틸러스에겐 성적도 지역화합도 모두가 중요하다. 포항스틸러스 구단의 환골탈태를 기대해본다.

2019-03-07

나는 숲(林)으로 간다

김순희수필가영양군은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해발 고도가 경상북도에서 가장 높은 분지이며 일월산을 품고 있어 산이 높고 물이 맑다. 감천, 석보 등 고인돌과 고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신라에 흡수된 뒤에는 읍호를 고은(古隱)이라 하였다가 말기에 영양(英陽)이라 하였다.일월산 자락 한쪽 끝에 자리한 두들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굽은 길이다. 들고나기 힘든 곳이라 육지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굽은 길을 조금 펴기 위해 뚫은 청기터널을 지나자 골뱅이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골뱅이처럼 구불거려서일까 골뱅이가 많이 나서일까 마음으로 짚다보니 두둘길에 접어들었다.두들이란 언덕 위라는 뜻으로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영양의 마을 이름답다. 가로등마다 붉은 고추와 귀여운 벌이 심벌로 매달려 여기가 그 유명한 ‘영양고추’의 고장이라고 외치고 있다.겨울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동네에 인적이 드물었다. 우편집배원이 작은 차에 택배상자를 싣고 고택의 주인을 부른다. 두런거리는 소리를 따라 근처 비닐하우스로 오른다. 우리도 따라 가니 배달을 끝내고 내려오며 비닐하우스에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 가보라 했다. 그 곳에는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 고추 꼭지를 따고 있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모두 낼모레 80이라며 웃는다. 이 마을에서 젊은 축이라며 아직 일을 해서 용돈 버는 것을 자랑하셨다. 혼자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 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영양의 林으로 갔다.장계향이 이시명과 함께 영양에 터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마을 둘레에 도토리나무를 심은 일이었다. 영양은 깊은 골짜기라 논보다는 두들이 대부분이다. 도토리나무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 두들에서 들을 내려다보며 풍년이면 열매를 적게 열고 흉년이 들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아마도 곤궁한 이들의 생계를 걱정하여 그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장계향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해에는 마을 앞에 큰 솥을 걸어두고 도토리 죽을 쒀서 굶는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오늘날에도 영양이라는 숲의 중심에는 장계향이라는 큰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다. 그는 83세까지 장수하며 73세에 ‘음식디미방’이라는 최초 한글 조리서를 완성했다. 그가 심은 나무는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다 기억하고 있다. 도토리가 익어서 떨어지는 가을이면 동네 노인들에게 도토리 수확을 맡겨 수매를 해 음식디미방 프로그램에 사용한다. 다른 곳의 음식 차림과 큰 차이점이 소부상과 정부인상의 전채 요리로 도토리죽이 먼저 나온다는 점이다. 장계향의 뜻과 향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보기 좋았다.소소음(蕭蕭吟)- 창 밖에서 소록소록 비내리는 소리(窓外雨蕭蕭), 소록소록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러라(蕭蕭聲自然,) 내 지금 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我聞自然聲), 내 마음도 또한 자연으로 가는구나(我心亦自然). 장계향이 13살에 썼다는 시처럼 영양을 찾아간 날에도 소록소록 비가 내렸다.비를 머금은 도토리나무 아래에 섰다. 나무 아래에 드는 것이 쉴 휴(休)이다. 천상병 시인은 삶을 소풍이라 했다. 김밥과 킨 사이다 한 병만 들고 큰 나무 아래로 간 소풍날은 어찌나 즐거운지 날이 빨리 저물었다. 골 깊은 두들마을의 저녁도 빨리 찾아왔다.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은 이웃과 함께 가는 소풍이라는 것을 영양의 숲이 알려주었다.

2019-03-07

제주의 밤하늘과 고흐와 너와 나

△제주의 밤하늘제주의 밤하늘은 장막과도 같아서 바람이 불면 별빛과 함께 흔들린다. 바람이 셀 때는 별빛이 한 뼘씩 흔들려 밤하늘이 검은 장막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확신하게 된다. 나는 둥근 의자에 누워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은 바람에 쓸리듯 조금씩 조금씩 오른쪽으로 흐른다. 나는 간만에 찾아온 느긋한 휴가를 이 의자에서 모두 탕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한용운은 어떤 시에서 밤을 ‘올 없는 검은 비단’이라고 했는데(“이별은 미의 창조”), 그의 이런 시를 읽으며 질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을사늑약 이후의 조선을 어둠이라고 인식했던 사람이고, 그 어둠에 대항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밤을 ‘올 없는 검은 비단’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단순히 밤에 대한 수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올’이란 비단의 끝을 이르는 말일 것인데, 검은 비단에 끝이 없다면 검은 비단을 걷어낼 방법은 없다. 그런 밤에 항거할 수 있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고흐와 사이프러스 나무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1889.7)에는 바람과 별 사이로 바람이 흐른다. 별은 바람보다 더 깊은 곳에서도, 바람보다 더 얕은 곳에서도 빛나지만, 그 사이를 떠도는 바람은 별이 빛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바람이 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왼쪽에서 저렇게 크게 불어온 바람인 데도 어쩐지 사이프러스를 흔들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다.고흐는 말년에 사이프러스를 자주 그렸다. 1888년 고갱과의 공동생활을 하던 고흐는 돌연 귀를 자르는 발작을 일으킨다. 이후 정신병 발작으로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던 고흐는 1889년 동생 테오에게 “나는 사이프러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창조해 낼 것 같기도 하구나.”라고 썼다. 고흐는 실제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하여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두 여인과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등과 같은 제목의 작품을 수 점 그렸다.사이프러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데 굳이 비슷한 나무를 찾자면, 식물학적으로는 측백나무에 가까우며, 잎은 향나무에, 전체적인 모양은 노간주나무를 닮았다고 한다. 사이프러스는 지중해와 같이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데,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로는 미국의 낙우송, 일본의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있다. 하지만 고흐의 사이프러스는 가지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로 솟구치는 나무다.고흐는 이 나무를 ‘뾰족탑’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고흐의 그림에서 이 나무는 교회의 첨탑보다 높고, 하늘보다 높다. 고흐의 사이프러스는 그가 그린 거의 모든 그림에서 화폭을 뚫고 자란다.고흐가 이 나무에 집착한 이유는 어쩌면 해바라기처럼 하늘을 향해 자라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향해 정열을 불태우는 해바라기처럼 사이프러스 역시 하늘을 향해 불타듯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흐에게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해도, 달도, 별도 저렇게 둥근 빛을 회오리처럼 뿜어대는 저 하늘은 고흐에게 무엇이었을까.△나무들그러고 보니 하늘은 어디에든 있고, 하늘 아래 어디에서든 나무는 자란다. 사계리에서 서귀포의 유명한 빵집을 찾아가는 동안 빨간 열매를 단 저 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나무는 무슨 나무지? 응, 먼나무! 저 나무는 뭔 나문데 저렇게 예뻐? 그래서 먼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썰’이고. 나무껍질이나 가지가 먹처럼 검다고 해서 ‘먹낭’이라 불리다가 ‘먼나무’가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들을 만한 유래긴 하지만 글쎄?‘낭’이야 나무라는 뜻의 제주도의 방언이니 ‘먹나무’가 ‘먼나무’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먹’이 ‘먼’으로 바뀐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니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감탕나무과인 이 나무의 껍질이나 잎을 보고 검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먼나무가 무슨 일로 먼나무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 나무는 제주도 곳곳에서 자라며 꽃은 5~6월에 피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붉은 열매가 맺힌다.지난 주엔 학생들과 함께 공원에서 숲 학교를 열었다. 전문가를 초빙해서 공원에 있는 나무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1시간 가량 수업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본 나무의 종류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참누릅나무, 자귀나무, 은행나무, 자작나무, 계수나무, 스트로브 잣나무, 소나무, 칠엽수(마로니에), 신나무, 산딸나무, 물푸레, 능수버들, 감나무, 잣나무, 양버즘나무, 아카시아, 박태귀나무, 백당나무, 화살나무, 회양목, 측백나무 등등.이렇게나 많은 나무들이 있다. 이름을 알기 전까지 나무는 그저 나무였으나 그 개별적 이름을 알고부터 나무는 통칭되지 않고 개별화된다. 그리하여 자작나무의 검은 수피나 화살나무의 날개와도 같은 수피를 보고 나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눈에서 소나무 잎의 개수가 두 개인지 세 개인지에 따라 토종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으며, 계수나무의 열매 껍질을 보고 암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렇게 나무를 감각하게 된다.이러한 것 역시 랑시에르가 말하는 ‘감성의 분할’이라고 부르는 정치의 일종일 것이다. 이름을 알기 전엔 그냥 ‘몸짓’이었다고, 이름을 안 이후에는 ‘나에게로 와서’ 나의 ‘꽃’이 되는 것처럼(김춘수, “꽃”), 정치란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그러한 알아챔과 알아채임이며, 이를 우리의 몸으로 감각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정치인이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혹은 여론도 미치지 못한 것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이런 것들이 모두 ‘감성의 분할’과 궤를 같이한다.△그녀와 나와 열무이렇게 한가로운 여행은 처음이다. 여행을 할 때면 갈 곳이 많았다. 여기도 저기도 가야 했는데 이번 여행은 모든 것이 느긋했다. 렌터카 빌려 밥을 먹은 것이 오후 네 시께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망설이다 애월 해안 도로를 따라 달렸고, 숙소로 가기 전 ‘최마담네 빵다방’이라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보다도 빵보다도 좋았던 건 그곳에서 기르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진돗개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가방을 풀고 근처 ‘춘미향’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했다. 돌아와서는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고 잠들었다.다음 날에는 늦게 일어나 숙소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올라와서 쉬었다가 오후에는 송악산엘 들렀다가 국수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서귀포시에 있는 ‘시스터즈’라는 빵집에서 크로와상을 몇 종류 샀다. 다섯 시에 숙소로 돌아와서 음악을 듣고, 늦은 저녁을 먹고,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봤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라는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길을 잃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고,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잃은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까지 읽었다. 이런 책은 내가 쓰고 싶은 책이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책을 읽으며 사온 빵과 귤을 먹었다. 빵과 귤은 그녀가 키우는 열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가 열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는데 열무만 없다고 하자, 그녀가 웃다가 말고, 올해로 열여섯 살인 열무가 죽어 정말 그런 상황이 오면 얼마나 슬플까라고 했다. 나는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자, 라고 했고, 그녀는 그래야지, 라고 말하며 나도 죽을 텐데. 라고 덤덤하게 덧붙였다.죽음과 가까운 그녀의 말이 뼈를 때렸다. 정말 그녀가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길을 잃은 것처럼 살겠지. 여행의 끝자락에서 슬펐다. 그녀가 오래도록 살아 나와 함께 이 삶을 헤쳐나가길 바랐다.

2019-03-07

하노이의 밤

하노이의 마지막 날, 며칠째 계속되던 흐린 날씨도 가셨다. 하루는 겨울인데도 꽤나 무덥더니 다시 한국의 초가을 날씨로 돌아왔다.길가의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에 우리가 들른 것은 밤, 아홉시 반은 되었다. 피곤은 한데, 내일 아침이면 일행들은 하롱베이로 떠나고 나는 이 나라로 돌아와야 했다. 벌써 일주일 넘게 체류하고 있어 적당히 지쳤지만 타향에서 만난 친구들을 이 좋은 밤에 그냥 외면할 수 없다.플라스틱 탁자를 가운데 놓고 서로들 둘러앉았다. 나는 그중 작디작은 의자를 골라 납작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쌀국수 국물 같은 데다 쇠고기에 야채를 삶은 것은 아마도 깐(Canh). 전통 음식이었다. 낮에 찾던 하노이 보드카 대신 엘리게이터라는 술도 맛이 그럴듯했다. 고풍스러운 문묘의 전각들을 담장 너머로 바라보며 서로들 독주를 담은 작은 술잔을 기울였다. 깐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베트남 향초를 무서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십 년 사이에 내 혀는 이제 넉살이 붙었다.ㅡ여기 앉으니 정말 하노이에 온 것 같군.ㅡ그러게요.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입을 맞추었다.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후둑후둑 빗방울이 듣는가 했는데 어느새 퍼붓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우리쪽 탁자에는 서둘러 사각 파라솔을 쳐 준다. 잠깐 사이에 베트남 손님들은 어디론가 다들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 안에도 탁자들이 있었다.내 등으로는 파라솔에서 떨어져 내린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앏은 남방 속으로 물이 스며들었다.ㅡ하노이 술도 나쁘쟎네요.ㅡ맞아요.먼저 집에 벌써 일본 소주에 맥주까지 마셔 취기가 꽤나 오른 상태. 그런데 이상하다. 마실수록 술이 깬다.ㅡ다들 어디로 사라졌지?ㅡ집에들 가버렸나 봐요.ㅡ빠르네.빠르다. 비가 마구 퍼붓더니 어느새 딱 그치고 보름달까지 떴다. 그러고 보니 정월 대보름이 바싹 다가온 때다.달이 크기도 하다. 베트남은 깊은 겨울밤도 선선한 정도다. 이렇게 좁다랗게 모여 앉으니 더 친한 사람들 같은 기분도 난다.평소에 김소월 시인의 ‘산’을 즐겨 부르는 선배가 취중에도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소월은 어쩌자고 이렇게 처연한 시를 썼단 말인가. 목숨은 왜 스스로 끊었단 말이냐.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건만 차마 돌아가고 싶지 않다.인터넷으로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들은 소란스럽다 못해 어지럽기 그지없다. 재작년인가부터는 어느 곳 하나 기댈 곳, 마음 둘 곳이 없다.정든 생각도, 사람도 무서울 지경이면 삶은 막바지에 다다른 것. 타향을 떠도는 것도 나쁘지 않건만.이제 문 닫아야 한다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탁자며 의자를 걷어낸다. 빈 그릇을 잔뜩 쌓아놓고 설겆이를 하고 남정네는 대비로 바닥을 싹싹 비질을 해댄다.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 어지럽고 무섭더라도 고국이니까. 거기 나를 끌고 가는 도구들이 있으니까. 나는 결국 한반도 사람이니까./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3-07

억만장자

조선시대 영남지방에 내로라하는 부자 집안을 손꼽으면 경주 최씨 집안과 청송 심씨 집안을 들 수 있다. 모두 만석꾼으로 통하던 집안이다. 만석꾼이라 하면 곡식을 만섬 가량 거둘 논밭을 가진 부자라는 뜻이다.경주 최씨 집안은 300년간 12대를 이어간 부자로 알려져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최씨 집안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부자의 윤리를 실천한 집안이다.청송 심씨 집안은 부와 권세가 얼마나 컸던지 조선시대에 정승 13명과 왕비 3명, 부마 4명을 배출했다. 조선 8도 어딜 가도 심부자네 집 땅이 없는 데가 없었다 하여 조선판 ‘해가 지지 않는 집안’이라고 했다.그들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던 99칸의 송소고택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우리의 속담에 “물질 가는데 마음도 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이 풍족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게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투쟁은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지금도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불철주야 돈 벌기에 골몰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돈 버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대학에서는 부자학 개론이 인기를 모으기도 한다.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9년 세계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했다.미국의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작년에 이어 1위(1천31억 달러)를 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965억 달러)이 2위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69억 달러)이 65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81억 달러)이 181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15위 등으로 랭크됐다.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10억 달러(약 1조1천295억 원)이상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를 선정,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포보스 기준 억만장자는 올해 2천153명이다.한국도 40명이 포함돼 있다. 1조원이 넘는 억만장자 그들은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7

전(前) 대통령의 보석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뇌물·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 등의 중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보석으로 풀려나자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아마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보석을 통해 풀려난 사례가 처음인 데다 15년형이란 중형을 선고받은 피의자에게 보석결정이 내려진 것 자체도 이례적이기 때문일게다.전직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의식한 듯 재판부는 보석에 엄격한 조건을 붙여 허가했다.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은 변호인과 배우자, 직계 혈족들에게만 허용하고, 통신도 엄격히 제한했다. 사실상 ‘자택구금’상태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불구속 재판 원칙에 부합하는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는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자택 구금에 상당하는 엄격한 조건을 붙인 것”이라면서 “구속 만기가 다가오는 점에서 보석을 할 타당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며 “심리하지 못한 증인 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즉,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 인멸의 염려가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금 보석을 허가하면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항소심 판결 선고가 나올 때까지 이 전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어쨌든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이 허용되자 구속수감중인 박 전 대통령도 MB처럼 풀려날 수 없을까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결론은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현행법상 보석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 대한 구속집행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불법 공천 개입 사건으로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이 전 대통령처럼 보석 석방이 될 가능성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아직 항소심 판단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검찰은 지난 2018년 9월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기간 만료(10월 16일)를 앞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받은 70억 원과 최태원 SK 회장에게 89억 원을 요구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기 위해 추가 구속 영장을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은 오는 2019년 4월 16일이면 끝나지만 구속기간이 만료돼도 풀려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징역 형이 집행된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되려면 형집행정지나 사면이 확정돼야 한다. 다만 사면이나 형집행정지의 경우도 형이 확정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사면이나 형집행정지 대상에도 들지 않는다.이 전 대통령 이외에 구속된 전직 대통령은 세 명이다. 군사 쿠데타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997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 씨와, 같은 혐의로 17년형이 확정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전직 대통령 얘기를 하다보면 이 나라의 정치풍토가 부끄럽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4명 모두 쿠데타나 권력형 비리, 국정농단 등의 이유로 감방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수반이다. 그런 대통령들이 재임후 모두 감방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매번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심경은 마냥 참담하다.

2019-03-07

IST(과기대) 형제의 통합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인도 델리에 있는 인도공대(IIT) 델리 캠퍼스를 가본적이 있다. 시설은 한국대학에 못미치지만 엘리트 의식이 가득한 캠퍼스였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인도 학생들 사이에는 “MIT 붙고 IIT 떨어졌다”는 말이 공공연하다고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15%, IBM 엔지니어의 28%, NASA 직원의 35%, 미국의 의사 15%를 IIT 출신이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IIT는 인도의 독립 직후, 인도의 과학 발전을 위해 설립한 명문 국립 공과대학이다. 인도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네루 수상이 설립을 주도했다. 지금은 카라푸르, 뭄바이, 델리, 하이데라바드 등 16개 캠퍼스가 있는데 10개는 2004년 이후에 세워질 정도로 IIT의 인기는 급상승하고 있다. 인도 전체에서 30만명이 시험을 봐서 5천명 정도 선발한다고 하니 그 치열한 경쟁을 알만하다. 인도 대학 순위를 보면 어디서 조사하든 1위에서 20위 사이에 16개의 캠퍼스가 전부 들어간다. 전통적인 명문 델리 대학, 네루 대학, 그리고 인도과학연구원을 제외하고는 IIT 가 모두 장악하고 있다. IIT에 대한 인도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IIT출신자들의 졸업 후 행보를 보면 세계 유수의 IT기업에서 IIT 졸업생을 바로 채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IIT의 힘은 “1+1 은 2보다 더 크다”는 시너지 효과에 기인한다. 각 캠퍼스의 우열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통합관리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고 캠퍼스별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캠퍼스는 특성화를 앞세우지만 인재 유치를 위해 경쟁력에 힘을 기울인다. 한국에도 IIT 같은 정부의 특성화 공대가 여러개 있다. 최근 국공립 4개 과기원인 카이스트(대전)·지스트(광주)·유니스트(울산)·디지스트(대구)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다. 우선은 ‘공동 사무국’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이후 이사회를 통합해 ‘하나의 대학’으로 만드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4개 과기원을 운영하는 ‘공동 사무국’을 카이스트 캠퍼스에 세울 계획”이라며 “이르면 3월, 늦어도 올 상반기 사무국 문을 연다”고 했다.늦은감이 있지만 잘 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동안 4개 과기원은 연구시설 공유, 중복 연구 조정, 과기원별 중점 연구 분야 결정 등에 있어서 충분한 조율이 되지 못하였다. 비슷한 목적으로 세워진 과기원들이 여러 곳 생기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비슷한 연구가 중복되는 등의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과기원의 역할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인도의 IIT 같은 형태로 전환하여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캠퍼스별 특화를 꾀하면서도 캠퍼스간 경쟁은 지속되는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과기원은 카이스트(1971). 지스트(1995), 디지스트(2004, 학사는 2014), 유니스트(2009)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통칭 ‘IST (과기원) 형제’라고 부른다. 모두 ‘한국의 MIT’를 표방하며 개원했지만 학교별로 이사회가 다르고 정부 예산도 별도로 받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현재 검토 중인 방안은 4개 과학원을 통합해 ‘하나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디지스트는 ‘카이스트 대구경북캠퍼스’가 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대학 평가에서도 캠퍼스 별로 랭크가 되겠지만 통합적인 개념 때문에 4개 캠퍼스 모두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4개 캠퍼스가 통합된 KAIST와 사립 특성화 이공계 대학인 포스텍은 상호 협력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더 얻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IIT 계열이 아닌 인도과학연구원(IIS)이 IIT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1,2위를 다투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9-03-07

스타들의 몰락이 주는 교훈

김학주한동대 교수‘채권왕’으로 불리던 빌 그로스가 은퇴하는 모습이다. 사실 5년 전부터 그의 성과는 빛을 잃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에게 돈을 맡기는 투자자를 찾기 어렵다.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을까? 그의 수익률을 보면 변동폭이 매우 심하다. 즉 그는 직관(insight)에 의존하며 확실한 베팅(betting)을 한다. 지난 30년간 채권가격이 상승세였으므로 잃을 때보다 얻을 때가 많았고, 그런 방향성 덕분에 수익률이 높았다.그런데 최근 10년간 채권가격은 올랐지만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금리를 포함한 거시경제 변수들이 정치인들의 의도에 의해 상식 밖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실패했고 빌 그로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가 2014년 핌코에서 야누스 캐피탈로 자리를 옮긴 후 투자수익률이 연 0.38%에 불과했다. 이렇게 정책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시장평균을 지향하는 인덱스에 만족하거나 기계를 동원해 단기 추세를 찾는데 열중했다.여기서 개인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째,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 시장상황 또는 거시경제를 예측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고집스럽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 투자대상 분석에 더욱 집중하라.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마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방이 불가능한 핵심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찾는 일이다. 그런 기업은 끝까지 생존하여 큰 시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좀 비싸게 사더라도 용서가 된다.둘째,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의심해보는 습관을 길러라.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진다. 이런 경우 주위에서 말릴 수 없고, 큰 실수로 이어지곤 한다. 빌 그로스도 다혈질이었고, 독선적이었다. 핌코 안에도 그의 생각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무시하여 위험에 노출됐다. 개인 투자자들도 자신의 판단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해 보는 습관, 그리고 그 판단을 시장에서 자신이 몇 번째로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한편 가치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워렌 버핏도 체면을 구겼다. 2015년 케챱으로 유명한 크래프트(Kraft) 지분을 26.7% 인수했다가 최근 주가 급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당시 크레프트 지분을 비싸게 샀고, 또 경영권 프레미엄까지 지불하여 투자수익률이 연 2%도 안되었다. 비싼 것을 싫어하는 그가 이런 조건을 참았던 이유는 경영권을 발휘하여 비용절감을 노렸기 때문이다. 즉 크래프트의 높은 브랜드 덕분에 수요와 가격은 안정되어 있으니 효율성만 개선시키면 안정 성장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그러나 이런 판단의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여기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자체 브랜드(PB)를 만들되 지역 맞춤형 제품으로 개발했고, 이런 맞춤형 상품이 크래프트 같은 기존 브랜드에 대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소비자를 설득하면서 기존 브랜드가 훼손됐다. 결국 협상력이 구조적으로 제조업에서 고객을 모을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로 넘어감을 이해해야 한다.둘째, 시중자금이 넘치는 환경에서는 가치주보다 성장주가 유리하다. 그 동안 돈이 많이 풀리며 성장주뿐 아니라 가치주에도 가격 거품을 만들었다. 즉 워렌 버펫도 그가 좋아하는 가치주를 비싸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성장주는 비싸 보여도 장래 희망이라는 핑계가 있지만 가치주는 아무리 쉽게 이해되고 불확실성이 없다 해도 비싼 것은 어색하다.셋째, 워렌 버핏처럼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에 사로 잡히게 된다. 오랜 기간 살면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의 패턴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많아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패턴에 변화가 생기는 시기에는 적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말을 앞세우기 보다 자신의 판단을 계속 의심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2019-03-07

단 하나의 창문으로도

한자 들을 청(聽)을 곰곰히 살펴보면 듣기의 중요한 원칙 몇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귀이(耳) 밑에 임금 왕(王)자가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열십(十)자와 눈 목(目)자, 그 아래 한 일(一) 마음 심(心)이 결합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지요. 잘 듣는다는 것은 임금의 말을 듣는 귀, 집중해서 귀 기울이는 완벽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라고 1차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른편 아래의 一과 心은 듣기의 궁극적 목적을 상기시켜줍니다. 대화의 목적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understand) 곧 한 마음(一心)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열 개의 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때, 텍스트 그 자체로 전하는 것이 7%에 불과하다고 심리학자 메라비안은 말합니다. 38%는 말의 느낌(para language)입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로 상대의 기분을 우리는 금방 파악합니다. 여/보/세/요/ 이 네 글자의 느낌이 38%의 의미를 전한다는 것이지요. 피곤하고 냉담한 ‘여보세요’도 있고, 밝고 환한 하이톤의 ‘여보세요’도 있는 법이니까요.나머지 55%는 비 언어적인 메시지입니다. 눈빛과 표정, 몸짓 등의 바디 랭귀지입니다. 열 개의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55%의 비 언어적 메시지입니다. 얼굴에는 80개의 근육이 있습니다. 크게 소리내 웃을 때 50개 근육이 움직입니다. 심리학자 폴 애크먼은 얼굴 근육 2개를 움직이면 300개 표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3개 근육으로는 4천 개, 5개 근육을 조합하면 1만 개 이상의 표정을 만드는 것이 우리 얼굴입니다. 대화 중 메시지의 진짜 내용은 상대방 눈빛과 표정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청은 눈으로 하는 것이지요.오늘 누구와 만날 예정인가요? 가까운 사람들의 ‘눈’을 봐주세요. 그 눈빛이 말하는 진심을 제대로 보아주세요. 그 말투에 묻어나는 외로움과 슬픔에 공감해 주세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눈빛과 표정과 미세한 떨림을 이해하려 애쓰는 그 노력만으로도 상대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근래에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이 우러날지 모릅니다.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햇빛이 드나드는 데는 창문 하나면 충분하다고 로망 로랭은 말했지요. 그대의 따스한 귀 기울임이 누군가에 단 하나의 창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7

생체인식기술

생체인식 기술(biometrics)은 개별적인 생체의 특성을 인식해서 보안시스템에 활용하는 기술을 말하며, 망막, 지문, 음성, 얼굴 등 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거나 범죄자를 가려내는 생체측정(인식)기술을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우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특히 금융서비스, 네트워크 보안,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많은 회사들이 이미 이 기술을 채택하고 있는 곳이 많다.생체인식시스템에는 지문인식, 홍채인식, 안면인식, 음성인식, 전자서명, 손등의 정맥인식 등의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중 홍채인식은 인간의 홍채가 사람마다 다른 점을 이용하는 보안시스템으로, 공항 등에서의 범죄자 검거를 홍채데이터베이스와 매치해 활용하는 시스템과 사무실출입관리 등에 이용되는 보안용 홍채인식 시스템으로 나뉜다. 홍채인식은 지문인식에 비해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렵고 개발비용이 높을 뿐 아니라 사용자가 불편해한다는 단점으로 인해 아직 대중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생체인식기술은 지문인식기술이다. 각 개인마다 특징적으로 갖고 있는 지문을 통해 사용자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지문인식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먼저 자신의 지문을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된 지문은 등록한 사람의 이름 혹은 다른 개인정보와 함께 저장된다. 이후 사용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면 전에 등록되어 있던 사용자의 지문과 비교를 함으로써 시스템이 인지해 그 사람을 인식한다. 지문인식기술이 적용된 기기는 가격이 저렴하며, 인식하는 속도가 빨라 많이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본인 확인을 위해 널리 쓰인다. 생체인식 기술이 가장 각광받는 곳은 바로 스마트폰 시장이다. 소유자 본인만이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다양한 생체인식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0일 공개한 갤럭시S10 제품군에 초음파(Ultrasonic) 기반 지문인식을 도입했다. 갤럭시노트7에서 홍채인식을 스마트폰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나 갤럭시S10에서는 지문인식으로 다시 돌아왔다. 생체인식 기술이 스마트폰과 IT에 도입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06

어린이교육, 내일을 연다

장규열한동대 교수3·1운동의 뜨거운 물결이 한차례 지난 후, 1920년대 초반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오히려 긴 안목에서 바르게 세워갈 길은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데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파(小波) 방정환. ‘어린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어린이의 윤리적, 경제적, 민족적 독립(해방)을 주창하였으며 어린이들을 위해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여야 하고 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적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는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권하며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나이지리아 속담에 ‘아이를 기르는 일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고 하였다. 온 가족과 이웃, 학교와 동네가 한결같은 성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비로소 바른 인격체 하나가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교육이라 할 때에, 교육은 그 대상이 어릴수록 더욱 힘들고 그 뜻이 훨씬 무겁다. 어린이교육 가운데에도 유치원교육과 영유아교육에 관심이 가는 까닭도 바로 그래서일 터이다. 로버트 풀검의 베스트셀러 어린이 교육 관련 책은 제목을 아예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고 붙였다.사람은 태어난 직후부터 정신과 정서의 발달이 시작되어 첫 3년 이내에 기초적인 뇌와 신경의 발달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며, 생애 첫 8년 안에 자의식과 자존감, 학습태도와 정서감각, 관계형성능력과 개인적 태도형성이 모두 완성된다고 한다. 유치원교육을 통하여 이후의 학습과 성장에 필요한 준비가 거의 다 이루어지며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와 소양이 모두 길러진다는 것이다. 향후 초중고등 교육에 임하기 전에 배움과 성장을 향한 열정의 강도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영유아교육과 어린이교육에 관하여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이들을 길러내는 일에 저 만큼의 신중함과 한결같음이 우리에게 존재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최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볼모로 어른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던 일은 사안의 내용과 그 시급함을 차치하고라도 좋지 않은 여론을 스스로 불러온 꼴이 되고 말았다. 단 하루의 혼란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긴긴 방학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심대한 혼란과 불안감을 안겼을 터이다. 아이들을 앞세우기만 하면 현실에 쫓기는 어른들의 심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었다. 그런 태도야말로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내려다 보는 구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어린이들의 내일과 나라의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의 첫 마음을 되새겨 어린이교육의 소중함을 다시 세워주기를 요청하고 싶다.철학자 칸트(I. Kant)는 ‘인간은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단계의 교육 가운데 가장 무거운 소명과 책임을 느껴야 할 영유아교육과 유치원교육에 관하여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하므로 보다 높은 기대를 걸어야 하고, 순결한 마음 밭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므로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를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 첫 걸음이 될 어린이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소명에 따라 헌신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이 오늘 힘내시기를 응원해 드린다. 어린이교육이 미래를 연다.

2019-03-06

경북매일과 시민기자제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경북매일이 흥미로운 알림장을 게재했다. 신문사가 ‘시민기자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자 그대로 신문의 독자가 신문기자가 되어달라는 취지다. 전통적인 종이신문은 신문제작자와 구독자를 엄밀하게 구별한다. 기자와 독자 사이에 기사 생산자와 수요자라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넘사벽’이 존재했다. 그런 강고하고 유구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무너뜨림으로써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것이 경북매일의 의지다.알림장에 따르면, 경북매일은 ‘시민참여 저널리즘’을 추구해왔다고 한다. 어느 일방의 주장이나 입장이 아니라, 독자의 견해를 적극 수용해왔다는 얘기다. 여기 더해 경북매일은 급변하는 언론지형을 직시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다양한 매체가 등장했고, 1인 미디어도 성장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맞는 말이다. 지난 2000년 2월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창간했고, 그 뒤를 이어 수많은 인터넷매체가 출현했다.요즘에는 ‘유투브’가 대세를 장악하면서 1인 ‘유투브’를 포함한 1인 미디어가 극성(極盛)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전제한 언론지형이 부지불식간에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상황변화의 중핵에는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이 자리한다.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각종지식과 정보를 손바닥 안에서 가능하도록 인도한 스마트폰. 게다가 사진과 동영상을 실시간 탑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제공하는 기술문명의 총아 스마트폰.인간의 대표적인 욕망에는 물욕, 권력욕, 명예욕이 있을 터. 전자의 두 가지 욕망은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문화 권력으로 표상되는 글쓰기를 통한 명예확보는 어렵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한국인은 대단히 역동적이며 강렬한 참여욕망의 소유자다. 구경꾼도 좋지만, 대상의 평가와 기준에서 단호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다. 1인 미디어나 참여 저널리즘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시민이 독자이자 동시에 기자가 된다면, 거기서 생겨나는 긍정적인 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 보면, 우선 그것은 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제고(提高)로 나타나리라 믿는다. ~카더라, 하는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기사의 기본 가운데 하나가 ‘육하원칙’이다. 기사에 반드시 들어가는 시공간과 사건주체, 인과율(因果律)이 글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고양(高揚)하지 않을 수 없다.글을 쓰면서 시민기자는 모자라고 넘치는 능력과 덕성을 확인하게 된다. 넘치는 것은 버리고, 모자라는 점은 보충함으로써 개인능력 신장과 명징한 자의식 및 세계인식을 얻게 될 것이다. 남들이 써왔던 기사를 비판적으로 독서함으로써 일방적인 수신자이자 소비자의 영역과 본분을 내던져 버림으로써 새로운 세계와 대면할 것이다. 지역과 사회를 넘어서 국가와 동아시아, 세계를 감촉하는 새로운 인식능력 확보! 이 얼마나 장쾌(壯快)한 변화인가?!경북매일은 시민들이 보내는 정치-사회-문화영역의 원고를 검증하여 채택된 글에는 원고료를 지불하고, 신문에 게재할 예정이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기다. 글로써 문명(文名)을 날리고, 고료도 챙기고! 신문사도 마찬가지 이익을 얻는다. 시민의 참여도를 높임으로써 기사가 다양해지고, 질적인 수준도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자연과학과 공학, 의학 같은 전문기사는 신문사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언론의 전문화에 일조할 것이다.경북매일이 희망하는 시민기자제가 정착하게 된다면 21세기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짜뉴스와 편 가르기, 지역감정과 불신풍조같은 전근대의 소산이 현저히 감소할 것이다. 시민기자제의 성공적인 안착에 기초한 경북매일의 욱일승천(旭日昇天)과 건승을 기원한다.

2019-03-06

고전 읽고 토론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고전 토론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굳어 있는 두뇌를 어렵게 도끼질을 해 가며 고전을 읽는 어른과는 사뭇 다른 천재적인 발상들을 척척 내 놓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중2 정도 되면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습니다. 학원 순례길에 나서는 거죠. 슬픈 작별을 경험합니다.미국 매릴랜드주에는 1696년 세워진 아담하지만 유서 깊은 세인트 존스 대학이 있습니다. 학생 수 600명 밖에 되지 않는 전형적인 리버럴 아츠 칼리지입니다. 대공황을 겪으며 존폐 위기에 놓일 때 혁신적인 고전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합니다. “고전 수업은 강의도 없고 시험도 없어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로 시작해서 루소, 로크, 헤겔, 마르크스 저작까지 4년 간 100권을 읽고 토론합니다. 수업 시간에 말하지 않는 학생들은 배울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세인트 존스를 졸업한 조한별 씨 이야기입니다. 이 학교 출신은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콜럼비아 등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생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주류 대학원에 진출합니다. 어린 시절 경험하는 고전 토론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길러주는지 알 수 있지요.외교부 산하 국제교육교류협회(IEEA)는 외교관 출신 이사장이 세운 단체입니다. 그는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시작으로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합니다. 협회가 선발한 청소년들이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면 명문 주립대에서 조건없이 입학을 허가한다는 협약을 맺습니다. 토플로 선발한 학생들보다 훨씬 정착률이 높고 인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순식간에 22개 명문 주립대로 이 제도가 확대되지요. 뉴욕주립대, 메인주립대, 유타주립대,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템플대학 등이 포함되어 있지요.지방은 유일하게 포항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세인트존스 대학처럼 고전 읽고 토론하며 글쓰는 배움의 방식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미 명문 주립대가 입학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겁니다. 고전으로 가득한 클래식북스에 다시금 아이들의 토론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어제 소개한 레이 커즈와일은 시각 장애인을 위해 독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용기있는 한 외교관은 아이들이 입시에서 벗어나 마음껏 책읽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상식을 깨는 협상력을 발휘했습니다. 지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가려 애쓰는 그대와 더불어 용기를 내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6

3월 학교 반성문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학교가 생동감을 찾았다. 겨우내 주인을 기다려 온 책걸상은 물론 교실이 주인을 만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긴 기다림 뒤의 재회는 늘 감동이라는 이야기를 생산한다. 그곳이 학교, 특히 기숙사 학교라면 그 감동의 깊이는 사뭇 다르다. 활짝 열린 교문마냥 활짝 열린 대지와 더 활짝 열린 자연의 싱그러움을 닮은 3월 학교 이야기는 그대로가 3월 수채화다.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그 마음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딱 3월 첫째 주 지금 학교 모습이 아닐까. 운동장 가득 샘솟기 시작한 야생화를 닮은 학생들의 모습, 겨울을 저 멀리 밀어 내고 만개한 산수유, 가지마다 꽃봉오리를 매단 나뭇가지들! 이들의 모습을 인간 언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언어가 짧은 필자는 “푸릇푸릇”밖에 떠오르지 않는다!올해도 자연을 닮은 푸릇푸릇한 학생들이 저마다의 교문을 열고 학교라는 큰 도화지에 들어섰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의 눈밭 같은 새 하얀 학교 도화지! 선입견과 고정관념, 어른들의 이기심 같은 모든 부정(不淨)들이 말끔히 사라진 그런 도화지! 저마다 큰 꿈을 가진 우리 학생들이 그 도화지에서 틀릴까봐 마음 졸이지 않고, 다른 아이들보다 못 할까 주눅들지도 않고 자신의 꿈과 희망과 행복을 마음껏 그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것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아니 이런 영화는 만들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만들어진다고 해도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 이유는 아직 어른 말을 배우지 않은 아이들을 제외한 우리가, 이 사회가, 이 정부가 너무도 타락했기 때문이다. 자기 말만 난무한 시대에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가 자기 말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3월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과연 자기밖에 모르는 이 사회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나 있을까?그래서 이 나라 교사에게 묻는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학창시절 선생님과 얼마나 다르십니까? 선생님의 작년 수업과 올해 수업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셨습니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꾸라고 말 해 주실 수 있습니까?”그리고 이 나라 부모에게 묻는다! “부모님께서는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십니까? 부모님께서는 자녀에게 희생과 배려와 양보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부모님께서는 자녀의 꿈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우십니까? 부모님께서는 점수와 숫자에 대해 또 얼마나 너그러우십니까? 부모님께서는 혹시 자녀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SKY 꿈을 꾸고 있지는 않으십니까?”이 질문들은 십년 이상 매년 필자가 필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된다. 분명 봄은 새 봄이다. 그런데 왜 필자는, 학교는, 사회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고, 새 교육감이 자리를 했는데, 과연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무엇이 달라졌는가?자유학기(년)제, 고교학점제, 과연 그 다음은 무엇인가? 시험을 위한 똑같은 수업, 줄 세우기식 시험, 맹목적인 명문대 진학! 이것 말고 이 나라 교육에서 이야기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1979년 3월 학교와 너무도 똑같은 2019년 3월 학교! 정말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하는가? 정말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필자는 오늘도 참회의 글을 쓸 수밖에 없다.“(전략) 제 눈높이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게 하소서/제 생각이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오만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제가 앞장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뻔뻔함의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후략)” (졸시 “교사의 기도” 중에서)

2019-03-06

세조 “미나리 관리 소홀은 곧 윗사람 업신여김”… ‘충성의 상징’ 미나리

오래 전, 미나리는 ‘각별’했다.2019년 봄, 청도 한재의 미나리는 어수선하다.조선왕조실록 세조 11년(1465년) 5월10일의 기사다. 제목은 ‘침장고(沈藏庫)와 사옹방(司饔房)의 관리를 추국케 하다’다. 미나리 때문에 왕의 부마와 친족, 고위 관리 여러 명이 벌을 받는다. 큰 사단이다. 550년 전, 각별했던 미나리 이야기다.“의금부에 전지하기를, ‘침장고의 관리가 바친 채소는 지극히 거칠고 나쁜데다 또 몸소 친히 바치지 않았으며, 사옹방의 관리와 환관들도 또한 검거하지 아니하여 모두 마땅하지 못하니, 추국하여 아뢰라’ 했다. 세자궁 앞에 미나리[芹]가 아름다워서 바치게 했는데, (나중엔) 억세고 나쁜 것이었다. (중략) ‘근래 침장고의 관리가 서리(胥吏)만 보내고 스스로 감독해 올리지 않아서 특히 사체(事體)를 잃었다’면서 (중략) 그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조짐이 있는 것이니, 그들을 국문해 아뢰어라.’(후략)”사단의 실마리는 세자궁에 심었던 미나리. 이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엔 세자궁의 미나리가 좋았다. 중간에 관리가 잘못되었다. 침장고는 채소, 곡물 등을 보관·관리한다.사옹방(사옹원)은 궁궐, 왕실의 식재료, 음식을 관리한다. 고위 관리가 미나리를 직접 챙기지 않고 하급 서리만 보냈다. ‘관리 소홀’이다. 결론이 엉뚱하다. 미나리로 시작해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튄다. 억지다.처벌도 대단했다. 사옹제조 청성위 심안의, 영가군 권경, 침장고 제조 이서 등이 승정원의 ‘책문’을 받았다. 승정원은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제조는, 궁궐의 기술직 부서를 관리하는 고문으로 고위직 문관들이 맡았다. 청성위는 세종대왕의 차녀 정안옹주의 남편이다. 세조와는 처남, 매부 사이. 영가군 권경도 명문세가 출신의 고위직이었다. 이서는 효령대군의 사위다. 세조와는 사촌지간 처남, 매부 관계다. 이 세 사람이 모두 ‘책문’을 받았다. 명예에 흠이 가는 일이다.그 아래 실무자들은 엄하게 당한다. 침장고 별좌(別坐) 오형, 권선은 장 70대, 김종직은 장 100대, 침장고 별좌 김회보, 사옹별좌 이중련, 조금 등은 파직, 환관 김눌은 군대에 끌려갔다. ‘별좌(別坐)’는 정, 종5품직이다. 낮은 벼슬이 아니다. 부서 실무책임자 급. 이들이 장을 맞거나 파직당했다. 환관(내시)은 바로 군대로 끌려갔다. 미나리 관리 소홀은 이토록 대단한 죄였다.◇ ‘미나리 궁전’ 근궁(芹宮)과 헌근록(獻芹錄)‘근훤(芹暄)’은 ‘미나리’(芹, 근)와 ‘따뜻한 햇볕’(暄, 훤)이다. 중국 고대 이야기다. “가난한 농부가 미나리 맛이 일품이라 생각해 토호에게 먹어보라고 권한 일과 춘추시대 송나라의 한 농부가 이른 봄 햇볕을 쬐면서 ‘이 좋은 햇빛을 임금께 드렸으면 한다’는 말에서 시작됐다(列子 楊朱, 열자 양주). 미나리는, 보잘 것 없는 물건을 윗사람에게 정성으로 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헌근(獻芹)’ 혹은 ‘헌근지성(獻芹至誠)’이다. ‘열자’는 전한(前漢)시대에 편집됐다. 기원전부터 중국엔 ‘헌근’ 이야기가 있었다.우리도 미나리를 오래 전부터 먹었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의 ‘계원필경’에도 등장하고 고려시대 ‘헌근지성’의 고사는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국왕에 대한 충성’을 설명할 때 ‘헌근’의 고사가 사용된다. 세조 시절 ‘미나리 사단’ 이유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세조는 어렵게(?) 왕이 됐다. ‘아버지(세종)-형(문종)-조카(단종)-세조’로 이어진 왕통이다. 조카를 귀양 보내고 왕권을 차지했다. 세자를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자궁 연못에서 자라고 있던 미나리다. 채소에 불과한 미나리지만 의미가 깊다. 미나리 관리 소홀이 곧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라고 강변한 것은 바로 ‘미나리=충성’이기 때문.미나리의 역사는 길고도 깊다. 대학 혹은 태학(太學)은 중국 최고의 교육기관. 대학, 태학의 학생들은 관리가 된다. 이들의 충성심으로 나라는 유지된다. 주(周)나라 때는 대학 담장을 따라 물길을 만들었다.반수(泮水)다. 대학은 ‘반궁(泮宮)’이라 불렀다. 반수엔 미나리를 심었다. 이런 대학 건물은 근궁(芹宮), 즉, ‘미나리를 심은 궁전’이다. 기원 전 479년에 편찬된 ‘시경’에는 “즐거워라. 반궁의 물가에서 미나리를 캐노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반궁에서 미나리 캐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헌근록(獻芹錄)’은 임금에게 올리는 글. 별 볼 것 없이 글이지만 올바른 국가 경영을 위해 임금에게 올린다는 의미다. 미암 유희춘은 ‘미암집’ 1576년(선조 9년) 1월의 내용에서 “다시 살펴보니, 임금께서 내린 것은 내가 경오년(1570년, 선조 3년)에 올렸던 ‘헌근록(獻芹錄)’이요, ‘유합’이 아니었다”고 했다.‘헌근록’과 ‘유합’은 모두 미암이 저술한 책 이름. ‘헌근록’은 국왕께 올린 “사소하고 미미한 글, 읽을 필요가 없는 중요치 않은 글”이라는 겸양의 의미를 담았다. 내용은 국왕 선조가 정사를 펼칠 때 필요한 것을 담은 것이었다. 선조의 경연(經筵) 스승이기도 했던 미암은 국가 경영 참고서인 ‘헌근록’을 선조에게 바쳤다.◇ 국가와 국가 사이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헌근’은 나라와 나라 사이 문서에서도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1479년) 6월 22일의 기록이다. 제목은 ‘유구 국왕(琉球 國王) 상덕(尙德)이 사신을 보내 서계를 올리다’다. 유구는 오늘날의 오키나와. 오키나와 국왕이 조선 조정에 편지와 함께 물건을 올렸다.“(전략) 삼가 드리는 토산물은 별폭(別幅)에 갖춥니다. (중략) 호초(胡椒) 1백근, 납자 50근, 울금(鬱金) 1백근, 백단향(白檀香) 50근, 향(香) 50근을 진정(進呈)하니, 삼가 바라건대 헌근(獻芹)의 정성으로 받아주시고 수납(收納)하여 주시면 다행스럽겠습니다.”이때 조선사람 9명이 표류하다가, 일부가 오키나와의 도움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오키나와 측에서는 후추 등 선물을 마련해 조선 조정을 방문, 조선 출신 표류인의 동정을 전하고 대가로 대장경 등을 요구한다. 편지 중에 ‘헌근지성’이 나타난다. ‘일본(규슈, 오키나와)-조선-중국 명나라’를 잇는 ‘조공’ 혹은 ‘조공무역’은 상업적인 거래였다. 국가 간의 무역이었지만 ‘헌근’ ‘헌근지성’이라는 글귀는 사용했다.세종 29년(1447년) 6월 20일의 기록에도 ‘헌근지성’이 나타난다. 한해 전인 1446년에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 일기주(一岐州, 이키시마)의 병부소보 원영(兵部少輔 源永)이 편지와 토산물을 전한다. 내용 중에, 원영 역시 한해 전에 상사(喪事)를 당해서 예의를 올리지 못했고, 지금에야 ‘경박한 물건을 올린다(헌근지성)’고 말한다.우리도 중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 늘 ‘헌근’ ‘헌근지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상거래지만 편지에는 ‘미미하고 볼품없는 물건을 바친다’는 겸양의 단어를 넣었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미나리는 궁중, 민간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종묘 제사에도 생 미나리[水芹生菜, 수근생채]를 사용했다. 생 미나리와 더불어 ‘근저(芹菹)’도 올렸다. 근저는 미나리 김치인데 미나리 초절임인지 미나리를 삭힌 김치인지는 정확치 않다. 드라마 ‘장희빈’으로 널리 알려진 숙종 조 인현왕후의 폐위를 두고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미나리는 ‘불쌍하게 쫓겨난’ 인현왕후를 가리키고 장다리는 성 씨가 장 씨인 장희빈을 가리킨다. 성종 19년(1488년) 중국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을 찾았던 동월(董越)은 ‘조선부’에서 “조선인은 왕도(한양)와 개성 민가 작은 연못에 미나리를 심었다”고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널리 미나리를 심고 먹었다.조선 중·후기에는 환금작물로 길렀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_제5권_다산화사(茶山花史)’에서 “금년에야 처음으로 미나리 심는 법을 배워/성 안에 가 채소 사는 돈이 들지 않는다네”라고 했다. ‘다산화사’는 다산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지은 시. 이때 ‘성 안’은 한양이 아니라 강진 언저리다.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던 19세기 초에는 시골에서도 미나리를 환금작물로 길렀다.사족. 최근 한재 미나리로 유명한 경북 청도 각남면에 다녀왔다. 분위기는 죄다 “싸고, 맛있고, 양이 많은 삼겹살을 미나리와 함께”였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후의 식탁에 삼겹살은 없어졌지만 군데군데 미나리는 남았다. 종묘의 제사에 사용하고, 성균관, 근궁에서 충성을 뽐내던 미나리다. 미나리 김치, 미나리강회, 초봄의 향을 전하던 미나리 솥밥도 보기 힘들다. ‘삼겹살과 미나리 구이 통일’이다. 상상력의 한계다. 우리는 맛, 양, 싼값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은유, 직유는 사라지고 ‘돌직구’만 남았다. 미나리는 풍년인데 미나리 음식 문화는 없다. 씁쓸하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3-06

3·13 조합장 선거 혼탁·부정은 결국 조합 손실로

정안진경북부오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된다. 지난달 26일, 27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예천군에는 예천 농업조합 3명, 지보 농업조합 2명, 축산조합 2명, 산림조합 4명 등 총 11명의 후보자가 등록했다. 산림조합장 선거를 제외하고는 예천조합, 지보조합, 예천축협은 현직과 도전자들이 매번 동일 인물들로 타이틀 탈환을 위한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그러나 ‘조합장선거’하면 으레 ‘탈법·부정선거’를 떠올릴 정도로 불길하다.이번 선거의 정황도 심상치 않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과열경쟁 분위기다. 후보자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유언비어도 난무하고 있다.지역 모 후보자는 자기 집에 유권자들을 불러들여 선거운동을 한다. 또 모 후보자는 선거 운동기간에 사용할 돈 수 억원을 준비해 두었다는 등 근거도 없는 말들이 무성하다. 더욱이 인근 상주축협 조합장 출마예정자가 구속되고 조합원 100여명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어 유인비어는 더욱 힘이 실려 떠다닌다.‘돈 선거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말까지 들린다. ‘우선은 당선되고 보자’는 그릇된 인식이 여전한 탓이다.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말 현재 경북도내에서 각종 불법선거 혐의로 19건을 적발하고 136명이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상주, 봉화 등에서 금품을 제공한 3명은 구속 수사 중이다.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의 구성원이 그 대표자나 임원 등을 투표 등의 방법으로 가려 뽑는 행위로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는 공정한 규칙과 절차속에서 공명정대하게 치러져야 한다.조합장의 리더십, 경영능력에 조합의 운명이 걸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권자들은 참신하고 유능한 일꾼, 혜안을 갖춘 현명한 조합장이 선출되어야 한다.하지만 우리의 선거판은 이기기 위해 금품 살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당경쟁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교모하고 조직적으로 자행되며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올바른 일군을 가리는 일에 금품·향응 제공 등의 반칙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고 국민들 스스로 금품과 향응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올바른 선거문화를 만드는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정의로운 사회가 우리의 핵심적 가치로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예천/ajjung@kbmaeil.com

2019-03-05

시승격 70주년, 과거와 미래의 김천

김충섭김천시장1949년 8월 14일, 김천읍이 김천부로 승격했고, 그 다음날 8월 15일 시제(市制) 시행에 따라 시로 개칭된 김천시가 올해로 시승격 70주년을 맞이했다.여기서 잠시 김천의 역사를 설명하자면 김천은 삼한시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유역을 기반으로 감문국, 주조마국, 문무국, 배산국, 어모국 등의 소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중 감문국은 고대국가로의 도약을 꾀했으나 서기 231년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점령돼 신라의 역사 속으로 편입됐다. 그후 고려에 이르기까지 김천은 영남 내륙의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조선시대 감천 주변은 시장(市場)이 열리고 상업이 발달했다. 특히 낙동강을 통한 영남 내륙으로의 접근로인 감천(甘泉) 수로가 적극 활용되면서 감호동 감천 변에 전국 규모의 시장이 들어섰다. 또 김천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경계에 위치해 3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도로(道路)와 역(驛), 시장(市場)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역참제도의 정비와 함께 고려 전기에 세워진 김천역은 조선 초기 경상도 최대 규모의 도찰방역(道察訪驛)으로 발전해 22개의 속 역을 거느린 큰 역으로 성장했다. 김천역은 전국의 문물 집산지가 됐고 이것은 주변의 시장 번성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 김천장은 삼도장(三道場)으로 불리며 대구, 개성, 평양, 전주와 함께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번성했다.1905년 경부선, 1923년 경북선이 개통하면서 김천은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입지적 장점이 더욱 강화됐다. 해방 이후에도 교통요충지로 사람이 모여들었던 김천은 1949년 경북의 다른 도시들보다 빨리 시로 승격했지만, 이듬해 6·25전쟁으로 시가지의 90%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을 이겨 내고 농업경제 기반사회에서 김천은 영남의 중추도시로 발전해 1960년대 중반 인구 21만3천명의 큰 도시로 발전했다. 하지만 김천은 1970년대 중반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에 뒤처져 수십년 동안 침체와 정체된 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발전의 침체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김천 1차(1990)·2차(1993) 공단조성 등의 노력이 다방면으로 이뤄졌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이 도농복합시로 통합되고, 민선자치시대가 개막하면서 김천은 지역발전의 신기원을 맞이했다. 그리고 미래 100년 발전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투자기업 만족도 전국1위, 주민행복도 전국 5위로 평가받을 만큼 기업하기 좋은도시, 쾌적하고 살기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조경대상을 3번이나 수상한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도농복합도시로서 안락한 전원생활과 편리한 도시생활을 동시에 누리는 도시가 거듭났다.도민체육대회(2000), 전국체육대회(2006), 전국소년체육대회 및 전국장애인체육대회(2007)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전국 최고의 종합스포츠타운을 조성해 스포츠의 메카도시로 부상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지난해에는 대규모 대회 63개 대회를 개최하면서, 연인원 32만명 방문, 32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기도 했다.KTX 김천(구미)역 준공·개통, 일반산업단지-1단계·2단계, 부항댐, 혁신도시 등 지역발전을 이끌어갈 대형프로젝트 사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에 수도산자연휴양림, 부항댐오토캠핑장, 전국최장의 출렁다리, 짚와이어와 스카이워크, 친환경생태공원, 무흘구곡 경관가도, 김천물소리생태숲 등 관광인프라를 확충해 1박2일 체류형 관광도시를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삼애원 계분공장 이전, 양로주택건립 등 삼애원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고, 김천∼거제간 남부내륙철도 건설도 청신호가 켜졌다. 국도3호선(김천∼상주)과 국도4호선(김천∼칠곡) 확장, 양천∼농소∼율곡(혁신도시)∼어모 구간 국도대체우회도로 개통, 다수∼삼락간 도로개설 등 시가지 주요 간선도로망이 확충됐고, 시청삼거리∼혁신도시를 연결한는 신설도로도 추진중에 있다.시승격 70주년을 맞이한 김천시는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국토중심의 신성장 거점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김천시는 시승격 70주년을 맞아 김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담은 기념사업 추진으로 김천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회성에 그치는 거창한 기념사업들은 지양하고, 시민의 날, 시민체전 등 기존에 추진해 오던 행사를 70주년 기념에 맞게 새롭게 바꿔 추진할 계획이다. 시민 토크(talk), 학술 세미나, 정책 토론회 등을 개최해 시민과 화합을 도모하고, 드론축구대회 등 4차산업 혁명시대를 대비하는 미래지향적 사업도 추진한다. 청소년 공연페스티벌과 혁신도시 달빛기행, BOOK적 BOOK적 한마당 축제 등 작지만 내실 있는 문화예술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김천은 시승격 70주년과 민선7기 출범으로 그동안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행태들을 개선하기 위한 ‘Happy Together 김천’운동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시민의식 변화 프로젝트인 ‘Happy Together 김천’은 지역사회 전반에 걸친 친절·질서·청결 문화운동으로 과거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발상과 사고,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획일적이고 무사 안일한 행태와 잘못된 의식을 과감히 개선하는 것이다. 관주도의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체계적인 추진과정을 통해 전 시민이 동참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김천은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만들어가는 미래 지향적인 첨단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2019-03-05

잃어버린 고구려 개

역사속의 유목 기마민족은 농경민들이 악의적으로 묘사해 놓은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유목 기마민족들은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역에 눈을 뜨게 되었고 농경민들이 한달 걸려서 걸어갈 거리를 며칠만에 후딱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기동성이 좋으니 다른 문명과 접촉하는 것도 쉬웠다. 또한 개방적인 삶의 태도로 농경민에 비해 다양한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속도와 정보를 지배한 것도 모자라 발달된 문명의 혜택까지 먼저 누렸으니 유목민이 농경민을 압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역을 하는 물건을 지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는 것도 유목민의 필수조건이 되어갔다. 이렇게 해서 군사력을 갖추고 속도와 정보를 장악하여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는 넓은 의미의 유목민인 전사와 상인의 복합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에 있어 유목 기마민은 말과 함께 이동하며 초원의 패권을 두고 경쟁 또는 공생을 하는 일종의 정치 연합체이다. 유목 기마민족에게 속도와 정보를 의미하는 말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속도와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도 지배할 수 밖에 없는데,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넓은 의미의 유목민은 초원의 귀족이자 왕족이었고, 신성하게 여기는 개를 데리고 다닌 이들은 역사의 중심이기도 했다.고구려 사람들은 말을 타고 사냥하는 수렵도를 남겼고, 신라에서는 말을 신령하게 표현한 천마도까지 남겼는데 왜 조선 사람들은 말탄 모습의 그림 하나를 남기지 않았을까? 말을 타던 기억은 왜 지워야 했으며, 장사는 언제부터 천박한 직업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모든 유목 기마민족이 개를 신성시했는데 왜 개는 ‘사기(史記)’가 전해주는 전통인 개고기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조선시대 유학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는데 조선의 정치, 사회, 종교를 지배한 유학은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했고 사대 중화사상에 의해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되고 싶어 한 몸부림이었다는 주장이다.이동훈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고구려의 개를 신사를 지키는 신령한 상징동물로 여기면서도 왜 우리나라를 강점할 때 공권력을 투입해 우리나라 개를 때려서 잡고, 개가죽을 벗겨가고 개고기를 돈을 받고 팔고, 먹게 만들었을까? 우생학이라는 학문은 단순하게 인종적으로 흑인에 비해 백인이 잘났다는 점을 강조하여 식민지를 정당화했고, 히틀러는 우등민족이 열등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슬로건으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을 넘보면서 식민 지배를 위한 논리가 필요했다. 일제는 근대화에 성공한 자신들은 우수한 민족이고, 사회적으로 진화가 덜 된 조선은 미개하다고 주장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을 왜곡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더러움, 무지함, 비위생성, 복종성, 혐오스런 풍속 등의 이미지로 조선을 정의했고, 혐오스런 풍속에 일부 조선 백성들이 먹던 개고기가 포함된 것은 당연했다. 일제는 조선백성들 중 가난한 사람들이 숨어서 먹던 개고기에 주목했다. 그리고 재빨리 조선은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은 나라라고 규정해 버렸다. 이때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발행한 개고기 식용에 관한 책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라야마 지준 등이 조선의 풍속연구라는 이름으로 해놓은 것들이 지금까지도 아무런 비판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 당시 일본학자들과 일부 친일학자들은 연구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주성을 고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조선총독부의 주도하에 철저하게 억압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살짝 비틀어 왜곡하였다. 개고기를 우리의 전통으로 만들어버린 역사적 왜곡의 이유를 알게 되면 개고기 식용 논쟁들에 대해 숙연한 마음까지 들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 개 보존과 연구는 문화재청의 관리감독에 따라 각 견종을 보존하고 있는 지자체와 각 기관에서 독립적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한반도 개들에 영향을 준 고구려개의 원형탐색과 복원을 위한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 고유의 개에 대한 연구와 보존, 통섭적인 해석과 통합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참고문헌:‘BOKA 늑대의 왕국’(주정은 저)/이동훈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3-05

‘플라스틱 코리아’

중국의 플라스틱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는 중국이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내 수입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을 통해 플라스틱 공해를 고발한 영화다. 이 영화로 중국은 플라스틱 수입을 막았고 한국도 작년 재활용 플라스틱 처리문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버린 쓰레기가 재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거리낌 없이 소비한 우리 국민도 이 사건 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심각한 공해인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알려지는 계기가 된 영화라 할 수 있다.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이다. 유럽 플라스틱제조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이다. 조사대상 63개국 중 3위다. 벨기에가 1위(170㎏)며 대만이 2위(141㎏)다.플라스틱 제품은 내구성과 신축성이 좋은 데다 가볍다. 효용성이 높다는 이유로 여전히 우리 생활에는 땔 수없는 제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우리나라도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 푸드점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용량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플라스틱은 화학구조 자체가 잘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소각할 때 발생하는 환경 호르몬과 유해물질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지구상에서 한해 동안 생산되는 플라스틱이 3억t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상당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로 버려져 바다생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한다. 바다 속에 들어간 플라스틱이 분해돼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일본의 한 해안가에서 발견된 젖먹이 새끼 대왕고래의 위에서 다량의 플라스틱이 나왔던 것이 하나의 사례다. 플라스틱을 삼킨 바다고기를 사람이 다시 잡아먹는 먹이사슬의 구조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에 무더기로 방치된 플라스틱 쓰레기 산이 미국 CNN 방송에 소개됐다. ‘플라스틱 코리아’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난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5

3월은 희망을 품는 계절

윤희정 문화부장“고모, 나 목요일에 개학이야!” 며칠 전 고등학생이 된 조카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예쁜 곰돌이가 하트를 발산하며 360도 회전하며 춤추는 이모티콘과 함께였다. 봄이 제법 몸으로 체감되는 때다. 아직‘겨울바람의 꼬리’가 남아 있지만 오는 봄을 무엇으로도 막을 수는 없다. 봄 안에서 그 어떤 사회 경제적 어려움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우리의 일상적 삶 안에서 구동되는 자연의 원리, 희망의 싹이 튼다.봄은 겨우내 숨을 죽였던 생명 활동이 다시 시작되는 때다. 작은 야생초들이 땅 속에서 의연히 솟아오르고, 채소의 씨앗들은 뿌려지는 손길을 따라 헛기침 인기척을 하면서 올라오고, 나무들의 푸른 싹들도 줄기의 곳곳에서 보물찾기의 주인공처럼 뜸을 들이면서도 어느새 초록의 형체를 드러낸다. 누가 명하지 않아도,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올라오는 싹들, 우리의 희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많은 시인들이 봄을 밝음·탄생·생명·이상·기쁨 등의 긍정적이며 희망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작품 가운데서도 봄은 밝고 경쾌하거나 혹은 이상향을 대변하는 긍정과 희망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 일반적이다.희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미래, 당장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삶은 맹목적이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에 회자되는‘삼포 세대’란 여러 가지 이유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젊은이의 현실을 함축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인,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노년 세대 모두 꿈과 희망을 갖기 어려운 세상이다. 독일의 사상가인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다”라고 했다. 희망이 인간 고유의 원초적 생명력이라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블로흐의 ‘희망철학’의 출발은 근본적인 질문 3가지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시대를 살아왔고,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주의 쳇바퀴의 노예가 되기 위해 혼란, 불안 그리고 공포를 느끼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산업예비군으로 무장돼 있다. 이 시대의 노동자는 자본주의 하의 노동이라는 울타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유토피아를 꿈꾸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자는 개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희망을 찾는 작업은 개와 같은 삶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개는 자기 자신의 현존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비참하게 인식되고, 파악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의 귀에 익숙해진 청년실업, 저성장,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사회안전망,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정치 개혁 등 중대 현안들은 밝은 미래로 나아갈 앞길을 가로막은 장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월이다. ‘지역과 나라, 세계의’다채로운 동산에서 피어나고 있는 ‘희망의 싹’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다. 그 싹의 생명력이 우리 각자의 시선과 마음속에서 한순간이라도 희망으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뚜렷한 이유 한 가지만 있어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라고 하지 않았던가.“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란 유명한 싯귀가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얼어붙었던 흙속에서 새움이 트는 것을 보면, 인간세상에 절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닿게 된다. 처칠경의 유명한 연설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현실이 어렵다 해도 노인층이 겪어온 세월보다 더 어려운 역경이 있었겠는가? 못 먹어서 부황이 들고, 봄이 오면 얼굴에 허옇게 봄버섯 피는 소년시대를 거쳐온 어르신세대를 보면서 용기를 얻을 일이다. 세상에 극복 못할 역경은 없다.

2019-03-05

지역철강업계 부활의 프로세스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경제계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남북관계개선과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이를 계기로 한반도 동해안철도와 북한을 경유하는 한·러 간 가스파이프라인이 연결될 경우 미국의 수입규제나 조선 등 철강수요 부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핵문제와 유엔 등의 제재조치가 모두 해결되어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더라도 우리나라가 대북 투자나 대북경협을 독점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북 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프로젝트가 아닌 한 북한도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투자조건이나 협력방식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시화되고 있는 남북한 철도현대화사업과 한·러 가스파이프라인 건설만 하더라도 사업예산과 북한 측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저가의 중국산 철강자재를 배재하고 한국산 자재만을 고집하거나 미국과 러시아 업체가 동참하려 할 때 지속적인 한반도 평화를 고려한다면 무조건 한국의 배타적인 독점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국내외 정세변화에 일일이 실망할 필요도 과도한 기대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자재가 가격, 품질, 기술면에서 절대 우위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주력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포스코의 기본 강재를 2, 3단계 정도까지 절삭, 가공, 조립 등 중간재 형태로 생산, 판매하며 포항 지역경제를 성장시켰던 프로세스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중국을 비롯한 인도, 베트남 등 후발국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포항지역경제가 그동안 부진에 빠지게 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철강 산업을 사양 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근거는 바로 이와 같은 과거의 성장 프로세스만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철강은 ‘산업의 쌀’의 위치를 고수하겠지만 이 ‘쌀’을 씻어 단순하게 밥을 짓기만 하면 되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그렇다면 지역철강업계는 어떠한 프로세스로 부활할 수 있을까. 철강이라는 산업의 ‘쌀’을 ‘밥’이 아닌 그 이상으로 활용하도록 해주거나 직접 새로운 용도의 최종제품으로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쌀을 곱게 갈아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거나 녹차가루와 견과류 등을 혼합한 ‘철이 포함된 복합재료’로 재탄생시켜 ‘떡’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제품화할 수 있도록 재료의 복합화, 용도의 다양화, 사용의 편리성 등을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와 같이 생산 공정을 풀가동하는 성장단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쌀에 불순물이 들어있어도 물량이 부족할 때에는 그것으로 만족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자신과 무관한 외부여건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시간과 인력이 남을 때, 용돈벌이라도 하겠다는 은퇴한 숙련기술자가 남아돌 때 이 가용자원들을 활용하여 연구개발에 힘써 자사의 기술력 향상과 고부가가치 신제품개발, 품질경쟁력 강화 등 체질개선에 힘쓸 절호의 기회다.이와 같은 체질개선과 연구개발로 품질과 기술경쟁력을 갖추는데 투입된 비용은 지역 철강제품의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면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한 가격 덤핑문제에서는 자유를 얻게 되어 수출경쟁력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포항 경제와 지역 철강업계가 부활하려면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된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특수나 영일만대교 건설 등과 같은 단발적인 프로젝트를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인 식사가 아닌 디저트로 여겨야만 한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철강수요의 급증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기회를 놓칠 경우 지역철강업계는 정치적인 개발 사업과 가격경쟁에만 목숨을 거는 사양 산업으로 시계를 되돌리게 될 것이다.

2019-03-05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

김현욱시인구글(Google)은 2004년과 2005년에 1만 5천명의 직원을 뽑았다.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이라는 기발한 채용방식도 이때 사용되었다. 2004년 7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101번 고속도로에 이상한 광고판이 세워졌다. 그 광고판에는 회사 이름도, 홍보하는 제품도 없었다. 하얀 바탕에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First 10-digit prime found in consecutive digits of e}.com닷컴 앞에 필기체로 쓴 e는 오일러수를 뜻한다. 광고판을 해석하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10자리 소수를 찾아 닷컴 앞에 넣으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고속도로를 지나며 저 광고판을 보았지만, 대부분은 ‘저게 뭐야?’하고 그냥 지나쳤다. 물론 그중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일러수를 찾아보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정답을 찾을 수 없다면 잠깐 호기심이 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도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하지만, ‘도대체 저게 뭘까?’, ‘10자리 소수를 입력하면 뭐가 나올까?’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풀어보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광고판을 본 사람들 중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C++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7427466391’이라는 정답을 찾았을 것이다. 정답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한 사람은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좀 더 수준 높은 문제를 만난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 그 문제를 피할 리는 없다. 두 번째 문제까지 풀어 다음 페이지에 접속한 사람들은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글 채용사이트로 접속하여 간단한 이력서 제출만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구글에 취직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위 글은 정재승 박사의 책 ‘열두 발자국’ 서문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필자라면 어땠을까 자문해보니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문학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덤볐을지 모른다.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은 당시 실리콘밸리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은 얼마나 창의적이고 열정적일까? 창의적인 사람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무엇보다 정재승 박사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정리했다. 최근 미국 일간지 LA타임스는 하버드 합격보다 더 어려운 한국 공무원시험 열풍을 꼬집었다. 하버드 입학률이 4.59%인데, 한국 공무원 합격률은 2.4%에 불과하다. 3년 넘게 공시를 준비한 어느 공시생의 사연을 소개하며,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 열풍이 거세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중에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백태도 한국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꺾는데 일조했다. 공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그나마 공무원 시험이 공정하다는 인식도 크다. 구글처럼 창의적인 채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된다면 공시열풍은 옛말이 될 것이다. 0.98명이라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해결 비법도 여기에 있다. 참고로 세종시의 출산율은 1.57명이다.

2019-03-05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

때는 1976년. 시각 장애인들이 점자 책을 어렵게 읽는 모습을 보고 좀더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천재가 있습니다. 얼마를 고민하던 그가 뚝딱, 발명품을 내 놓습니다. 이름하여 Reading Machine(독서 기계)입니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작품이지요. 점자로 된 문서나 다른 사람이 녹음해준 테이프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던 시절, 이 기계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도 혼자서 손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PC도 없던 40년 전에 이런 제품을 개발하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한 시각 장애인이 독서 기계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옵니다. 160㎏, 가격 5만달러나 하는 거대한 장치를 즉석에서 체험해 본 후 구입하지요. 늘 독서에 목말라 있던 그에게 이 기계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밤새워 책에 빠져듭니다. 락 음악의 대부라 불리는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이야기입니다. 커즈와일과 스티비 원더는 이후 40년 우정을 이어가지요.어떤 책은 맛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를 시켜야 합니다. 책 중에는 가볍게 맛만 보고 넘어가도 될 것이 있고, 어떤 책은 단숨에 먹어 치울 수 있는 책도 있지만 고전의 경우는 꼭꼭 씹어서 잘 소화시켜야 하는 책도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이야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지요. 즐거움을 위해 읽는 독서와는 다른 비장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얼어붙기 쉬운지, 내 안의 인식체계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우리의 사고 방식은 늘 내가 편한대로 보고, 느끼고 결론 내리기 쉬운지를 인정해야 카프카의 독서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그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주인공 마르코 폴로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지옥 같은 세상을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옥 속에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지옥 아닌 것을 찾아내고 지속시키고 그것들이 자라갈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레이 커즈와일은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독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대를 포함 오늘 이 순간도 지옥 속에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어떤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따스한 마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5

음악의 궁극적 질문에 답하다-슈만의 사랑과 음악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결국 어디로 가는가? 예술에서는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예외 없이 해당되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는 신에 대한 물음과 인간의 탄생과 죽음으로 표현되었으며, 왜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에는 ‘사랑’이란 주제로 그려졌다.우리가 기억하는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열광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이며, 특히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불행해 질 것이 뻔한 운명임을 알면서도 마법처럼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사랑을 우리는 기억한다.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힘겨웠던 사랑과 몇 개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클라라 슈만(Clara Shumann·1819∼1896)’은 행복하게 태어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당시 최고의 피아노 교수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자신도 천재적인 피아노연주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1785∼1873)’는 딸 클라라의 천재성을 미리 알아보고 어린 나이의 클라라를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시켰던, 지난 회에 언급했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유사한 자식에 대한 기대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청년을 만난다. 바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이다. 클라라의 아버지였던 비크 교수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으며 재능이 뛰어났지만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무리한 연습을 하다 손가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슈만의 교양과 지성은 문학과 음악방면에서는 당대 최고였으며 쇼팽과 브람스를 음악계에 소개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등 인격도 넉넉한 사람이었으나 후에 우울증을 앓는 등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았으며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도 비관적이었다.비크 교수는 이들의 비극적인 미래를 예측했던 것일까? 1835년 둘은 사랑을 확인한 뒤에 비크 교수의 결혼 반대로 소송까지 휘말렸고 아버지였던 비크는 이들을 떼어 놓고자 4년 동안 클라라를 유학 보냈지만 결국 1840년 결혼에 성공했다. 슈만의 작품 중 뛰어난 걸작들이 결혼한 직후 많이 작곡되었다. 그래서 1840년을 슈만에게 있어서 ‘가곡의 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가곡집 ‘리더스크라이스’‘시인의 사랑’‘여인의 사랑과 생애’등 많은 명 가곡들이 있지만 특히 슈만이 결혼 선물로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연가곡집 ‘미르테의 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가곡 ‘미르테의 꽃’은 유명한 시인 26명의 시로 구성된 가곡집인데 그 중 뤼케르트의 시로 작곡된 ‘헌정(Widmung)’이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가사는 매우 아름다우며 요즘 결혼식장에서 축가로 써도 만족할 만하다. 가사 일부를 소개하자면,당신은 나의 휴식/당신은 마음의 평화/당신은 나에게 주어진 하늘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당신의 시선은 나를 환하게 합니다/당신은 나를 사랑스럽게 존중합니다.나의 선한 영혼을/보다 나은 나를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며 선율도 독일 가곡 특유의 함축성을 가지며 화려하진 않지만 내면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다. 후에 리스트는 이곡을 피아노 독주곡 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곡은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에게 모두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슈만이 태어나고 살던 시기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진보와 보수가 격렬히 대립하던 시기였으며 자유주의가 보급되어 시민계급의 자기 권리의 주장으로 나타나던 시기였다. 그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 국민주의와 개인주의였는데, 국민주의는 자국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예술작품을 선호했으며 개인주의는 예술가의 주관적인 개성과 경험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슈만의 예술가곡 뿐만이 아니라 당시 독일에서 작곡되었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비롯한 수많은 독일어 가곡들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성악곡뿐만 아니라 슈만은 기악곡에서도 걸작이 많이 있지만 필자는 결혼한 2년 후인 1842년에 작곡된 ‘피아노 4중주op.47’의 2악장을 권하고 싶다. 슈만의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tabile)’라고도 부르는 이곡은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안단테 칸타빌레에도 뒤지지 않으며 슈만의 작품 중 최고의 선율이라고 평가된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심정에 처했을 때 이 곡을 듣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이들이 결혼한 지 14년이 지난 1854년 운명은 비극이라는 날카로운 창을 이들에게 던진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결국 자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고 한다. 암세포는 젊은 신체를 가진 사람에게 더 빨리 전이된다고 한다. 슈만이 숭고하고 높은 교양을 지녔기에 그의 정신에 있던 어두운 그림자가 더 빨리 그를 잠식해 버린 것일까?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클라라를 슈만의 아내, 브람스의 정신적 연인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당시 시내의 선술집에 가면 리스트와 클라라 슈만을 놓고서 누가 더 우월한 연주자인지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통화권이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독일의 마르크 화폐에 클라라의 초상이 그려진 것을 봐도 클라라의 명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이러한 클라라의 남편이었던 슈만은 작곡자이자 평론가, 저술가로 입지가 있었지만 클라라가 연주 여행을 할 때는 매니저의 역할을 하며 동행하곤 하였다. 연주하는 클라라의 모습을 보며 젊은 시절, 원래 자신의 꿈이었던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부분에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슈만은 음악작품 외에도 브람스와 쇼팽이라는 음악가를 소개하여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특히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해 준 슈만에 대한 존경이 열렬하여 슈만이 1854년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 클라라와 함께 슈만을 돕기 위한 연주회를 개최하여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슈만이 3년 뒤 세상을 떠난 뒤에도 클라라와 그 가정의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경제적, 음악적으로 도움을 준다. 이 후 클라라와 함께 슈만의 작품을 연주하고 알리는 역할을 함으로서 슈만을 대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공헌이 있다.세상은 슈만이 떠난 후 브람스와 클라라와의 관계를 의심하곤 한다. 브람스가 별 이유도 없이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신으로 지낸 것이 의아하긴 하지만, 드라마적인 상상력에 브람스의 작품까지 창의적으로 엮어 다양한 상상을 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클라라가 한 번도 남편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며, 이때 이미 슈만에게서 클라라의 마음이 떠났다고들 말한다. 필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무너져 가고 있는 슈만을 클라라는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열렬히 사랑하고 존경하였던 시절의 슈만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브람스와 클라라는 음악의 동료이자, 슈만 작품의 알림이 역할을 충실히 하였을 뿐 둘의 관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 클라라는 40년을 더 살고 1896년 슈만의 곁으로 간다. 그리고 브람스는 그 이듬해에 눈을 감는다.클라라에게는 슈만과 함께 했던 시간보다 브람스와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던 셈이다. 글의 서두에 클라라는 행복하게 태어난 여인이라고 시작했었는데 어쩌면 슈만, 브람스와 같이 인생의 절반을 나누어 함께한 클라라는 음악적으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간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 할 수도 있겠다. 슈만은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낭만주의 음악을 실천한 인물이었으며 한 여인과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사람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Frei Aber Einsam(자유로우나 고독하다)’ 자유와 이성의 경계에서 음악에게 물음을 던진 외로운 지성이었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03-04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1937년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자란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해방 후 먹고 살 길을 찾아 귀국해 경북 청송군 현서에 정착합니다. 이때 동네 교회를 잠시 다닙니다. 거기서 소년은 눈빛이 살아있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납니다. 고달픈 삶에 선생님의 이야기는 생명이자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연도 잠시, 안동으로 옮겨 나무꾼, 고구마 장수, 날품팔이로 연명합니다.열 아홉 살 청년이 된 그는 폐결핵을 앓더니 이내 신장 결핵과 방광결핵으로 번져 온 몸이 망가집니다. 의사는 조심해 살면 2년 정도 더 살 수 있다 합니다.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가야 하지요. 안동 일직교회 토담 방 한 칸을 얻어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갑니다.뚫린 창호지 구멍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방에서 개굴거리고 생쥐들이 침입해 발가락을 깨무는 비천한 나날이지만 규칙적인 생활로 다행히 건강을 조금 회복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에 몇 줄 글을 씁니다. 어린 시절 맑은 눈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주일학교 선생님을 기억하지요. 아픈 몸을 달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 신춘문예에 응모합니다. 탈락 후 전달해 주는 심사평을 스승 삼아 자신의 글을 다듬습니다. 심사평이 결국 글쓰기 코칭이 된 것이지요.‘몽실 언니’, ‘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선생 이야기입니다. 그의 작품을 유심히 본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권정생의 글에 흠뻑 취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우리말 솜씨에 반해 권정생을 찾습니다. 서로 기억을 못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눈빛 맑고 빛나던 그 분입니다. 이오덕 선생이 바로 그 주일학교 선생이었지요. 이후 두 사람은 평생 동지가 되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이오덕을 만난 이후 권정생의 삶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예언은 보기 좋게 틀렸습니다. 70년을 동화와 함께 살아온 권정생은 90편의 작품을 남깁니다.2007년 장례식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명사들이 몰려오자 동네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가난한 종지기로만 알았던 권정생이 그렇게 유명한 동화작가인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연 1억원이 넘게 들어오는 인세와 10억원의 통장을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는 유언과 함께 70세 고단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의 이름 두 글자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정생(正生) 바른 삶입니다. 올바르고 정의로우며 향기로운 삶입니다. 권정생 선생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소크라테스와 많이 닮았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04

양화소록과 매화예찬

강희룡 서예가조선 초기 문신이자 서화의 삼절(三絶)로 추앙을 받던 강희안(417∼1464)은 꽃과 나무에 대한 재배법과 이용법을 설명한 책인 ‘청천양화소록(菁川養花小錄)’을 저술했다. 이 책의 내용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완상(玩賞)해온 꽃과 나무 몇 십 종을 들어 그 재배법과 이용법을 설명했으며, 또한 꽃과 나무의 품격과 그 의미와 상징성을 논하고 있다.원예나 골동품 수집 등 취미생활은 선비의 학문과 수양을 방해한다는 이른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전통 때문에 원래 유교사회에서 선비들의 꽃가꾸기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러나 강희안은 양화소록 후기에서 “화훼를 재배하는 것은 사람의 심지를 굳건히 하고 덕성을 기르기 위해서다”라며 완물상지를 반박하고 있다. 몰두하지 않고 취미생활을 조절하면 하등 문제가 없고 오히려 학문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그는 이른 봄꽃이 필 때 등불을 켜고 책상머리에 두면 벽에 비친 잎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즐길 수 있고 책을 읽는 동안 졸음을 없앨 수 있다며 체험적 난초 감상법을 들려준다. 또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이치를 탐구해 근원으로 들어가면 지식이 미치지 않음이 없다”면서 꽃을 기르는 것을 학문 연구 및 경륜의 한 방편으로 끌어올리고 있다.양화소록에는 ‘무릇 꽃을 재배하는 것은 오직 마음과 뜻을 굳건히 닦고 어질고 너그러운 성질을 기르는 데 있다.’라면서, 소나무는 굳은 의지를, 국화는 세상을 피해 조용히 사는 은일(隱逸), 매화는 높은 품격, 난초는 품격과 운치를 본받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양화소록을 보면 당시 한국인이 좋아했던 꽃들을 알 수 있는데 주로 매화, 석류화, 단계화(丹桂花), 백일홍, 동백같은 수목화요, 화초는 목단 국화, 연꽃, 창포정도에 불과했다. 당시 선비 층에서는 꽃과 나무에 그 상징적 의미에 따라 품계나 등수를 매겼다. 강희안은 매, 국, 연, 죽, 소나무는 1품, 모란은 2품, 월계, 영산홍, 석류, 벽오동은 3품으로 단풍은 4품, 장미는 5품, 목련은 7품에 들어 있다. 특히 매화는 화괴(花魁), 즉 꽃의 우두머리이며 선비의 꽃이다. 청아하면서 속기(俗氣)가 없고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선비의 삶이 가시밭길같이 춥고 배고파도 그 정신만은 저버리질 않는다. 때문에 추위가 한바탕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고서는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없다.고려중기 문인인 진화(1179~?)는 매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봄의 신이 뭇 꽃을 물들일 때/ 맨 먼저 매화에게 옅은 화장을 시켰지/ 옥결같은 뺨엔 옅은 봄을 머금고/ 흰 치마는 달빛에 서늘해라.’강희안의 할아버지인 강회백이 심은 정당매(政堂梅)의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 선조 통정공이 어려서 지리산 단속사에서 책을 읽었다. 그 때 절 마당 앞에 매화 한 그루를 심었다. 공이 과거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정당문학의 벼슬에 올라 지금까지도 그 매화를 정당매라고 부른다’라고 적고 있다. 6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단속사의 가람은 찾아볼 길 없지만 석탑과 초석만이 남아있는 단속사 터에는 양화소록이 전한 매화가 해마다 화사한 군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산청 3매 중에서 으뜸인 남명매가 있다. 칼 찬 선비였던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61세 때 산천재 앞뜰에 심은 것이다. 연분홍빛과 흰색 겹꽃이 황홀하다 못해 올곧은 남명정신이 물욕에 쪄든 현대인의 등짝을 때리는 듯하다. 이황(1501~1570) 선생은 매화 화분을 앞에 놓고 술벗을 하다 말년에 병들어 눕게 되자 매형(梅兄)에게 누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긴 후 눈을 감았다. 얄팍한 지식 한 장으로 세상에 출사해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드는 지금의 위정자들은 곳곳에 활짝 피어 있는 매화의 군자상(君子像)을 보며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