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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키디데스의 함정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는 급부상한 신흥 강대국이 기존의 세력 판도를 흔들면 결국 양측의 무력충돌로 이어지게 된다는 뜻이다.아테네 출신의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가 역사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처음 언급했다. 기원전 5세기 맹주였던 스파르타는 급격히 성장한 아테네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됐고, 결국 양 국가는 지중해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게 됐다. 투키디데스는 이같은 전쟁의 원인이 아테네의 부상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여기에서 유래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미국 하버드대 벨퍼 국제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2017년에 낸 저서 ‘불가피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서로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부터다. 앨리슨은 지난 500년간 지구에서 발생한 투키디데스 함정은 16차례였고, 이 중 12차례가 전면전으로 이어졌다고 집계했다. 경제적으로는 2014년 이미 미국보다 몸집이 커진 중국의 도전, 헤게모니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그리고 두 거대국가를 이끌고 있는 시진핑과 도널드 트럼프, 둘 모두 ‘위대한 국가’를 외치며 충돌하고 있어 17번째 전면전 가능성이 ‘심각(grim)’해졌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야망을 축소하거나 아니면 미국이 중국에 1등 앞자리를 내주고 2등 뒷자리에 만족하겠다고 물러서지 않는 한 무역분쟁, 사이버공격, 해상에서의 충돌 등은 곧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최근에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조치를 취한 것 역시 한일판 미니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경제제재에 나선 일본이 괘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본이 이렇게 견제구를 던지고 나올만큼 우리 국력도 많이 커졌다고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도 갖게된다. 다만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나라들의 끝이 패망이었다는 해묵은 교훈을 생각해 한시빨리 한일 관계를 복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03

메멘토모리

장규열 한동대 교수큰 별이 졌다. 한동대학교 초대총장이었던 김영길 박사가 돌아가셨다. 불꽃같이 걸어온 발자취를 뒤로 하고, 수많은 제자들과 동지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면서 이 땅에서의 소중하고 값진 삶을 마감하였다. 수다한 고난과 역경을 지치지 않는 믿음과 소망으로 뛰어넘으면서, 대학을 세우고 제자를 길러내었다. 대학이 지역과 나라,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든든한 자리를 잡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나라의 대학교육이 보다 높은 지표를 향하도록 그 길을 닦아 놓았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제자들을 향하여 ‘배워서 남주라’고 때마다 강조하였다. 가르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임을 몸으로 보여 주었으며, 배우는 일이 ‘Why not change the world?’를 지향하도록 북돋웠다.그를 보내는 자리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제자들과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그가 바꾸어 내라고 가르쳤던 그 세상에서 오늘도 땀흘려 일하다가, 그가 떠나셨다는 소식에는 세상이 무너져 내린 마음이 되어 모여 들었다. 그가 가르친 대로, 나 하나 잘 살기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병들고 힘든 세상을 바꾸고 구하기 위하여 살아낼 것을 다짐하면서 스승을 보내드렸다. 생각을 같이 하였던 동지들과 교수들은 대학을 열면서 함께 하였던 다짐을 새롭게 하면서 그를 보내드렸다. 황량한 벌판에 학교를 세우면서 바르게 가르쳐 세상을 바꾸리라는 그 날의 각오를 그를 보내면서 다시 세웠다. 또 하나의 대학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대학’을 일으킨다는 그 처음 생각을 그의 영정을 마주하며 일깨우고 있었다.높은 뜻을 세우고 실천하였을 뿐 아니라, 그는 더할 나위없이 따뜻한 스승이었다. 시험 때면, 몰래 도서관을 돌며 학생들의 힘든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어려운 학생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들어주며 손을 붙들고 기도하여 주었다. 학생들과 만나는 일을 가장 즐기는 총장이었으며 학생들의 하루하루가 늘 안타까운 선생이었다. 병든 세상을 향한 관심이 깊었던 만큼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함도 한 가득이었다. 누구보다 우수한 과학자였지만 마음에는 역사와 사회 걱정을 담고 살았다. 지역과 끊임없이 함께 호흡하고자 하였으며 세계의 맥박도 놓치지 않았다. 유엔과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글로벌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 경쟁에 몰두해 있는 대학들 간에도 협력과 연합을 강조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대학교육을 꿈꾸기도 하였다.‘메멘토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생각은 누구나 죽을 운명임을 명심하고 살아야 함을 이야기했을 터.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지, 무엇을 뒤로 하고 사라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인생을 꽉 채워 산 사람은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신 어른 만큼 평생을 꾹꾹 채우며 살아낼 수 있을까. 당신은 오늘을 충분히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저 생각과 함께 오늘을 채우며 살아가라는 지혜를 담은 ‘카르페디엠(Carpe Diem).’ 이 순간을 잡아라, 즉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인 바,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을 묶으면 죽음이 찾아올 것임을 잊지 말고 오늘을 채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아닌가. 작가 오그만디노(Og Mandino)는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라’고 하였다. 즉, 최선을 던지며 일하되 마음을 다하여 살아낼 것을 권한 게 아닌가. 한동대는 복받은 학교다. 저렇듯 뛰어난 지도자가 이끌었으며 그 뜻을 또 선명히 남기었으니, 앞으로도 무궁한 가능성을 담고 있을 터이다. 남기신 의미를 교육에 담아 세상을 바꾸어 내는 모두가 되길 기대해본다.

2019-07-03

무엇을 버릴 것인가?

2011년 일본 센다이. 유루이 마이 씨는 낡은 집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들에 파묻혀 살고 있습니다. 회사 일이 바쁜 그녀 역시 자기 방조차 정리할 여유 없이 정신없이 사는 중입니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낡은 집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물건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며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합니다. 무너져버린 집에서 손전등과 비상식량을 찾으려 해도 물건이 너무 많아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경험을 하지요. 집 밖으로 몸을 피해 빠져나오는데 그 순간 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그녀는 결심하지요. “이런 집에서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 엄선해 집에 두기로 합니다.“최종 목표는 트렁크 하나에 다 담을 수 있는 정도의 물건만 남기고 사는 것이에요.”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대지진의 경험 이후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다’ 4단 만화 시리즈를 연재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편과 어머니, 두 살배기 아들,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지내는 마이 씨의 집은 책 제목처럼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실에는 테이블 하나 의자 네 개. 수납공간 밖으로는 일체 물건이 보이지 않는 주방, 밥솥과 전자레인지, 냄비 3개, 프라이팬 2개, 12개의 식기와 컵이 전부입니다. 욕실에는 비누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삶의 본질을 제대로 누리고 찾기 위해 물건을 버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뺄셈의 미학을 누리는 삶입니다. 덧셈만이 삶의 지름길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과잉 소비 조장 풍조에 속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일절 소유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소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은 반가운 현상입니다.삶의 뺄셈에 있어 세계 챔피언은 세속의 삶을 모두 버리고 숲으로 들어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아닐까요?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가르치는 일에 잠시 종사하기도 했습니다만, 물욕과 탐심으로 치닫던 미국 초기 자본주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 그는 숲속에 오두막 한 채를 짓고 단순한 삶을 시작합니다. 1845년. 그가 숲으로 들어가면서 남긴 말입니다. “삶이란 너무도 소중한 것. 나는 삶을 깊게 살아보고 싶었고 삶의 정수를 끝까지 마시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 버리기 위해 강인하고도 엄격하게 살고 싶었습니다.”먹구름 너머 눈부신 삶을 만나기 위해서는 깃털처럼 가벼워야 힙니다. 아름다운 인생 소풍을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3

섬과 바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열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에도 나처럼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자는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논어 ‘공야장’에 나오는 말이다. 평생 ‘학인(學人)’을 자처한 공구(孔丘)는 스스로를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 배워서 알게 된 자로 규정한다. 그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명언을 남길 수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매일 쏟아지는 신간(新刊)을 읽고 싶은 마음에 죽음이 두렵다는 소회를 피력한 적도 있다.지난주 ‘무등공부방’에서 광주의 향토사 전문가 김정호 선생의 강연이 있었다. 60년 가까이 전남과 광주의 인문지리와 역사, 인물을 두루 섭렵한 선생의 앎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광산 성씨 본관 이야기’가 주제였으나, 종횡으로 달리는 이야기의 향연은 특정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혈연과 지연, 학연에 내재한 뿌리 깊은 공동체성에 대한 견해는 인상적이었다. 그러하되 섬과 바다에 대한 소략한 말씀이 가슴에 닿았다.선생이 내세우는 명제는 간명하다. “한국의 미래자원은 바다와 섬이다!” 그 말씀을 듣자니 익숙한 구절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島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다. 여기서 ‘도서’라는 말이 낯설다. ‘도’는 섬, ‘서’는 작은 섬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한반도와 그에 딸린 크고 작은 섬이 우리나라 영토라는 얘기다. 해양영토 바다가 빠져있다.선생에 따르면, 대한민국 육지영토 면적의 8배에 이르는 바다가 한반도에 부속돼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바다와 섬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는 3천358개의 섬이 있는데, 유인도가 482개, 무인도가 2천876개에 이른다. 섬과 바다를 개발하는 것이 ‘국토균형발전’의 첫걸음이라고 선생은 목소리를 높인다.1952년에 ‘낙도중흥법’을 제정한 일본은 모든 섬을 육지의 지자체와 결합시켰다고 한다.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을 동경(東京)과 결합하여 섬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70년 가까이 실행해온 일본. 우리는 1980년대에 비로소 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나, 일본을 따라잡기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정부주도로 섬이란 잡지를 간행하고, 해마다 5만여 섬 주민이 동경 한복판을 시위한다니 그럴 법하지 않은가?!우리나라의 모든 것은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런 까닭에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요상한 분류마저 생겨났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이런 표현이 적절함에도 ‘수도권’이란 말을 반드시 발화(發話)한다. 그렇다보니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어져 있다.이런 현상은 ‘비수도권’에서 되풀이된다. 광역시권역과 여타 지역으로 나뉘는 것이다. 대구나 광주, 부산과 대전을 중심으로 사건과 사고, 일기예보가 나오고 난 다음에야 여타지역이 거명된다. 그러기에 육지가 아닌 바다와 섬 이야기는 ‘딴나라’ 이야기처럼 아득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문화와 예술이 흐르고, 추억과 역사가 있다. 섬과 바다는 ‘그 섬에 가고 싶다’ 따위의 가벼운 오락과 유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근대를 열어젖힌 유럽제국의 출발은 바다였다. 작은 돛단배를 타고 그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었고, 급기야 육상제국 청나라와 러시아를 능가하는 세계제국을 성립시켰다. 가뜩이나 넘쳐나는 사람들로 아우성치는 지구촌의 미래는 바다와 섬에 있을 듯하다. 해수욕장 개장시점에 잠시 섬과 바다를 생각해본다.

2019-07-03

삶의 질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한 재벌가 사람들의 ‘갑질’ 논란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듯이 그렇게 엄청난 부를 가졌으면 마냥 여유롭고 자적(自適)하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사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분노조절장애라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남들에게 패악질을 해대는 모습을 TV화면으로 보면서 자못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불만과 분노의 화신이 되게 하였는지.재벌회장 집안이면 많은 사람들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볼 만큼 경제적 풍요나 사회적 지위가 최상류층이다. 그런데 그것이 삶의 질이나 만족도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어서 세간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일으켰다. 재물도 지위도 아니라면 무엇이 만족도 높은 양질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가.삶의 질을 말할 때는 흔히들 물질적 조건을 우선으로 꼽는다. 헐벗고 굶주리는 삶이라면 질을 따질 여유조차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삶의 질에 비례하는 조건도 아니고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넘치도록 많이 가졌음에도 만족을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소박한 것으로도 만족한 사람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사회적 지위나 명예도 삶의 질을 결정하는 조건으로 들 수 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만족감이 덜한 것이 보통의 인심이다. 그래서 돈을 주고 사서라도 지위와 명성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도 물질적 부와 마찬가지로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높은 지위나 만인이 환호하는 스타덤에 오른 사람도 우울증에 걸리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이다.결국 자존감의 문제인 것 같다. 부의 축적이나 지위나 명예를 얻으려는 것도 자존감을 높이려는 수단이 아닐까.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을 줄인 말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재물과 지위, 명예가 자존감을 높여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곧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재벌이나 고관대작들 모두가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경쟁에 이겨서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는 자부심을 가질지언정 자존감을 높일 수는 없다. 진정한 자존감이란 나누고 배품에서 오기 때문이다. 많은 재물이나 높은 지위는 그만큼 나누고 베풀었을 때 비로소 가치와 보람을 갖는 것이다. 오로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재물과 남에게 군림하기 위한 지위는 손가락질이나 받기 마련이지 자존감을 높여 주지 않는다. 재물과 지위를 내세워 갑질이나 일삼는 자들을 누가 존중하겠는가. 남에게 존중 받지 못하는 자존감은 자만심일 뿐이다.앞의 그 재벌가 가족은 자존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인 것 같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남에게 지탄받을 짓을 한다는 건 자신을 천대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것에 걸맞게 아랫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베풀고 살았더라면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을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보람과 자존감도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남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을 때 느끼는 뿌듯한 존재감이야말로 자존감의 바탕이 되는 것이므로.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가 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인문학적 교양의 바탕이 되는 지성과 감성의 향상을 위한 공부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것은 또한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2019-07-03

꽃다발처럼 향기롭고 보자기처럼 풍성하다 입 안 가득, 그 천가지의 맛

상추쌈을 좋아한다. 돼지 불고기 얹은 상추쌈, 마늘, 된장과 더불어 먹는 고등어구이 상추쌈, 맨밥에 강된장만 얹은 상추쌈도 좋다. 세상의 모든 상추쌈을 좋아한다.상추쌈은 슬프다. 아린다. 쓰라리다. ‘경북매일’ 2015년 6월 8일 기사다. 제목은 ‘6월의 울림, 명예로운 보훈을 기대하며(필자 이칠구 전 포항시의회 의장)’다.“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고 이우근 학도병.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편지를 다시 쓰지 못했다.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 전사한 학도병의 상의 윗주머니에 남아 있었던, 부치지 못한 편지. 책으로 소개되었고, 영화 ‘포화 속으로’의 소재가 되었다.궁금했다. 별 것 아닌 상추쌈. 전쟁터 학도병의 마지막 편지에서 콕 집어 이야기했다. 왜 수많은 음식을 두고 하필이면 상추쌈일까? 의문을 풀 수 없었다.“그까짓 상추쌈”이라고 가볍게 내칠 것은 아니다. 상추는 ‘싸서’ 먹는다. ‘넣어서’ 먹지 않는다.‘싸서’는 열린 문화다. 넓게 펼친 상추 위에 무엇이든 얹는다. 돼지고기, 고등어, 마늘, 쪽파, 된장, 강된장, 고추장, 된장찌개…. 쇠고기를 얹어도 되고, 닭볶음을 얹어도 된다. 모양도 양도 정해지지 않았다. ‘열려 있는 상추’에 아무것을 얹더라도 탓하는 이는 없다. 상추쌈은 한식을 제대로 보여준다.석학 이어령 선생의 ‘보자기 인문학’을 소개하는 서평의 한 부분이다. 긴 내용을 인용한다. 제목은 ‘보자기로 쌀 것인가, 가방에 넣을 것인가!’이다.“(전략) 일상의 소재들 가운데 ‘보자기’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점을 읽어냈다. (중략) 전통문화 속의 보자기를 무엇이든 감쌀 수 있는 융통성 있고 포용적인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시킨 것이다./저자는 어린 시절 책보로 사용하던 보자기와 네모난 책가방을, 또 한복과 양복을 비교한다. 전자는 물체(사람)를 ‘싸는’ 반면, 후자는 미리 모양이 잡혀 있어 물체(사람)를 ‘넣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략) 한국인은 ‘싸는’ 민족으로 ‘보자기형’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인데, 저자는 이런 특성이 현대의 양극적 사고 체계와 사회 시스템을 극복할 문화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중략) 아이를 요람과 같은 상자가 아니라 포대기로 감싸 업어주는 한국의 보자기 형 문화를 통해 싸고 통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시 역시 획이 나뉜 계획도시가 아닌, 모든 것을 감싸는 도시가 미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모든 정형성을 넘어서 융통성을 주어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때 비로소 미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후략)”상추쌈은 보자기 문화다. 베트남, 중국 등의 춘권(춘취안, 春卷)이 우리 상추쌈과 비슷하지 않으냐고 묻는 이도 있다. 그렇지는 않다. 춘권은, 얇은 피에 여러 채소를 넣고 싸서 먹는다. 땅콩가루 등이 들어간 소스도 정형화되어 있다. 내용물을 선택할 수 있는 상추쌈의 유연성을 흉내내지 못한다.한국인의 상추쌈은 삼겹살 구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상추를 홑겹으로 먹는 이도 있고, 반드시 두 장을 겹치는 이도 있다. 들깻잎, 쪽파, 마늘, 쑥갓 등은 필수 식재료지만 선택사항이다. 3명이 앉으면 3종류의 상추쌈이, 4명이 모이면 4종류의 상추쌈이 있다. 정형화된 춘권은 상추쌈의 다양함을 따르지 못한다.남자든 여자든 상추쌈을 만나면 자연스레 입을 가능한 한 크게, 한껏 벌린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상추쌈 먹는 법을 따로 배웠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시대에만 그렇게 먹는다고? 그렇지도 않다.옥담 이응희(1579∼1651년)는 왕족 출신으로 경기도 안산 수리산 기슭에서 서민으로 살았다. 옥담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시도 많이 남겼다. ‘옥담사집_만물편_어물류’ 중 밴댕이[蘇魚, 소어]에 대한 내용 중 상추쌈, 보리밥이 등장한다.“(전략) 밴댕이가 어시장에 가득 나와/은빛 모습이 촌락에 깔렸네/상추쌈으로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좋아라 (후략)”밴댕이, 상추쌈, 보리밥의 세 박자가 잘 맞는다. 오늘날 상추쌈에 고등어구이 얹는 걸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옥담이 살았던 17세기 초반에 이미 보리밥, 밴댕이를 얹는 상추쌈이 흔했다.갈암 이현일(1627∼1704년)은 조선 후기 거유(巨儒)다. 퇴계 학통을 이었다. 외조부는 경당 장흥효, 아버지는 석계 이시명이다. ‘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이 어머니다. 상추에 대해서 시를 남겼다. 제목부터 ‘상추쌈 먹는 걸 희롱하는 글’이다. 근엄한 유학자가 한낱 상추쌈을 소재로 시를 남겼다.“(전략) 푸른 광주리를 통째로 삼켜 뱃속에 넣고 싶지만, 목구멍은 밴댕이 구운 걸 좋아한다네. 더불어 먹을 좋은 장이 없음은 한스럽지만(후략)”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평생 세 번의 유배 생활을 겪는다. 첫 번째가 짧았던 서산 해미의 유배, 세 번째가 전남 강진으로 떠났던 17년간의 유배다. 두 번째는, 1801년 신유사옥으로 시작된 포항 구룡포(영일현 장기)의 220일간 유배다. 이때 다산은 여러 편의 시를 남겼고, 그중 하나가 ‘다산시문집 제4권_시(詩)_장기농가(長鬐農歌) 10장(章)’이다.“(전략) 일찍 자는 첨지를 발로 차 일으키며/풍로에 불 지피고 물레도 고치라네/상추[萵葉]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고추장[椒醬]에 파 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금년에는 넙치[比目]마저 구하기가 어려운데/잡는 족족 말려서 관가에다 바친다네 (후략)”‘첨지’는 벼슬을 하든 않든, 남편을 부르는 ‘애칭’이라고 적었다. 당시에도 상추쌈과 보리밥, 고추장, 파 뿌리 등을 더불어 먹었다.‘넙치[比目, 비목)’는 광어인지 가자미인지 불분명하다. 눈이 한쪽에 붙어 있는 생선들은 모두 ‘비목’이라고 했다. 광어, 가자미를, 옥담 이응희처럼, ‘밴댕이+상추쌈’의 형태로 먹었는지도 불분명하다.조선 말기 양명학자 경재 이건승(1858∼1924)도 상추쌈을 이야기한다.“상춧잎은 손바닥 같고, 된 고추장은 엿과 비슷하네. 여기에 현미밥 쌈을 싸 급하게 열 몇 쌈을 삼키니, 이미 그릇이 다 비었네. 이것은 입을 속이는 법. 부른 배를 만지고 누웠으니,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라고 했다.‘입을 속인다’는 표현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채소로 입을 속여 맛있다고 여긴다’라는 뜻이다. 점잖은 유학자가 현미밥 상추쌈을 ‘열 몇 쌈’이나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정겹다.옥담과 갈암, 다산, 경재 사이에는 약 300년쯤의 시차가 있다. 긴 세월 동안 상추쌈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상추쌈이 우리 고유의 것은 아니다. 상추도 우리 고유의 품종은 아니다. 외래종이다.조선 말기, 운양 김윤식(1835∼1922)은 ‘운양집’에서 “중국에서는 4월에 상추로 밥을 싸 먹는 것을 타채포(打菜包)라고 한다. 우리나라 풍속에도 상추쌈을 싸 먹는 일이 있다”고 했다.우리 고유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다양하게 상추쌈을 먹지 않는다. 먹는 이가 재료를 선택하고, 모든 재료를 섞어서 싸 먹는 상추쌈은 이제 우리만의 음식, 한식이 되었다.상추는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한반도에 전해진 상추는 고구려 시대 빛을 발한다.한치윤(1765∼1814)의 ‘해동역사’에 상추의 역사가 등장한다.“고려국의 사신이 오면 수(隋)나라 사람들이 채소의 종자를 구하면서 대가를 몹시 후하게 주었다. 그래서 이름을 천금채(千金菜)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추다. 살펴보건대, 와거(萵苣)는 지금 속명이 ‘부로’이다.”한치윤은 청나라 문신 고사기(高士奇, 1645∼1704년)가 쓴 ‘천록지여(天祿識餘)’를 인용하여 상추를 설명한다. 수나라와 거래를 한 나라는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다. ‘와거’는 상추의 옛 이름이다. 민간에서는 ‘부로’ 혹은 ‘부루’라 불렀다. ‘부루’라는 이름은 지금도 사용한다.송나라 팽승(彭乘, 985∼1049년)은 ‘묵객휘서(墨客揮犀)’에서 “와채(萵菜)는 와국(萵國)에서 왔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라고 했다. ‘상추 와(萵)’는 ‘높을 고(高)’와 비슷하다. ‘와국’은 없다. 북송 때 사람인 도곡(?∼970)이 쓴 ‘청이록(淸異錄)’에는 상추를 두고, “고국(高國)으로부터 왔다”고 분명히 적었다. ‘와국’은 ‘고국’이고 바로 고구려다.‘이우근 학도병의 상추쌈’은 우연이 아니다. 상추, 상추쌈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상추, 상추쌈의 뿌리는 깊고 넓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7-03

수국, 변심하다

김순희 수필가이윽고 노란색이다. 베란다로 나가니 아침 햇살이 수국의 뺨을 어루만진다. 꽃은 평생 동안 한 색깔을 고집하는데, 필 때부터 지기까지 수국은 햇살과 숱한 밀어를 주고받으며 색깔을 바꾸었다.삼촌은 수국을 즐겨 그렸다. 거실 벽은 늘 삼촌의 화랑이었고 요즘에는 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다. 내가 감탄하자 삼촌은 일 년 전에 그렸지만, 아쉽게도 실패한 작품이라고 했다. 아니 화사하게 벙싯거리는 수국이 화면 가득 피어있어서 보는 내가 다 환해지는데 왜 실패작이냐고 물었다. 말 수가 많지 않은 삼촌은 작품의 제목은 ‘변심’이라며 그동안 그림 속에서 일어난 일을 조곤조곤 들려주었다.수국이 한창인 여름에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 먼저 꽃송이를 그릴 부분에 마스킹 고무액을 칠하는데, 그래야 물감색이 종이에 곱게 먹는다. 그 해 여름이 어찌나 뜨겁던지 잠시 그림을 손에서 놓은 사이에 마스킹 액이 굳었다. 늦어도 한 달 안에 벗겨내야 하는데,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수국의 꽃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했다. 벽에 걸린 지 6개월이 지나자 수국은 살아있는 것처럼 절정의 보랏빛에서 꽃이 질 때처럼 노랗게 변해가더란다. 마치 그림 제목에 맞추려는 듯.쪽지를 수십 개 접어 소복이 뭉쳐놓은듯한 봉오리, 나는 쪽지에 곱게 접힌 비밀을 하나씩 펴 보고 싶어졌다. 거기에는 ‘풀’이 아니라 ‘나무’라고 불리는 이유와 수국의 내력이 꽃들의 알파벳으로 적혀있는 것 같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래서 더 궁금한 꽃들만의 정서가 ‘내 속마음을 읽어보라’며 나를 애타게 할지 모른다. 그런 이끌림에 나는 시장에 나가 참하게 보이는 수국 한 그루를 데려왔다.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보다 먼저 베란다로 나가 안부를 살피게 되고, 밤새 오종종 붙어 자다가 햇빛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한 치씩 커갈 때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식물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땅의 소리에 오래 귀 기울이느라 수국은 아직 풀에 가깝다. 흙의 양분을 한 모금이라도 더 찾으려고 뿌리를 잘게 뻗는다. 발끝에서부터 색을 흠뻑 빨아올려 연둣빛 꽃을 부풀린다. 좁쌀 알갱이 같은 모습으로 입을 앙다문 채 한 달을 버틴다. 연륜을 쌓고 생각이 깊어지면 풀도 나이테를 품을 수 있다고 믿기에 수국은 피어나기를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우리도 무르익는 것처럼 말이다.창밖에 여름 기운이 완연해지자 수국이 속내를 토해냈다. 연두 알갱이에서 어린 고양이의 귀 같은 꽃잎을 내밀었다. 수줍은듯 하나를 펴는가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퐁퐁’ 소리가 났다. 네 귀를 다 열었나싶던 날부터 연둣빛 꽃잎 끝이 파리해졌다. 끝에서부터 시작한 푸름이 서서히 스며들어 봉오리 전체에 번졌다. 곧 푸른 꽃불이 인다. 꽃불을 진화하려는 듯 보슬비가 더해지자, 이 때 비로소 수국은 촉촉해지며 진정한 수국이 된다.한 계절 마주하며 수국을 알았다. 수국은 빛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토양이 중성이면 백색 꽃이 피고, 산성이면 청색 꽃이 피고,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이 핀다. 흰 꽃의 수국에 백반을 녹인 물을 뿌려주면 청색으로 변하고, 잿물이나 석회를 뿌려주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는 식물학자의 말이지만, 오래도록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수국의 표정과 내면을 이해한다면 실험 결과만으로 그 이유를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어느새 나도 나이테가 겹겹이다. 연둣빛 나이 십대에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하지만 갈맷빛 더욱 짙어가는 요즘에는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러 수목원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설익은 나이에는 변심이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자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나타내고 싶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변심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눈이 무르익는 과정이다.

2019-07-03

너의 목소리가 들려 - 희곡 읽기에 대해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읽을 땐 배우들의 목소리를 상상적으로 떠올려 보면 좋다. 내가 연출가가 되어서 이 장면은 이렇게 연출하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훨씬 재미있다. 얼마 전엔 사람들과 모여서 이런 희곡 읽기를 했다. 사람들과 같이 책을 읽는 일은 참 좋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많은 희곡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몰리에르의 ‘상상병 환자’이다.‘상상병 환자’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희곡을 번역한 정연복 선생님이 우리의 책 읽기를 풍문으로 듣고 우리의 독서 모임에 참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번역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번 번역을 쫘악 해놓고 당신이 직접 소리 내어 대사를 읽어봤더니 도저히 공연이 불가능한 번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독성은 물론 발성까지 고려해서 싹 뜯어고쳤다고 한다. 참 훌륭한 번역가란 생각을 했다.전문가네 합시고, 이 작품의 원제가 ‘Le Malade imaginaire’이니까 제목은 ‘상상으로 앓는 환자’라고 번역해야 옳아! 라고 말하는, ‘내가 옳아병’에 걸린 전문가들도 많다. 그런데 정연복 선생님은 원제가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많이 알려준 제목을 선택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상상으로 앓는 환자’가 아무리 정확한 번역이라고 하더라도 ‘상상병 환자’보다 주인공의 의미가 더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그런 가치관도 좋았고, 번역은 유려했다.‘상상병 환자’는 1600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은 아르강이다.아르강은 아무 병도 없지만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아르강의 주치의는 아르강의 그런 상상을 부추겨 비싼 약을 먹여 돈을 번다.이러한 아르강은 아내가 죽고 재혼하였는데, 두 번째 아내의 이름은 벨린느다. 벨린느도 의사처럼 사악해서 아르강이 죽으면 모든 유산을 자신이 독차지 하기 위해 아르강의 두 딸을 수녀로 만들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프랑스 상속법에 따르면, 자식이 죽거나 수녀가 되면, 남편이 죽은 후 유산을 딸들에게 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아르강의 두 딸은 모두 착한 데 첫째 딸인 안젤리끄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아르강은 자신의 주치의의 아들인 또마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야 주치의로부터 무료처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또마는 의사가 될 예정이지만, 아주 멍청한 인물로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말하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다. 몰리에르가 의사를 유독 사악하게 그린 이유는 몰리에르가 의사를 혐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시대의 프랑스의 의사들은 충분히 혐오를 받을 만한 짓을 했다. 실제로 모든 병의 원인이 치아라고 여겨 태양왕 루이 14세의 주치의는 루이의 이를 전부 뽑아버리도 했다. 또 의사들은 목욕이 해롭다는 이야기를 퍼트려 사람들은 목욕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프랑스 향수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고 한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등장인물 두 명이 더 남았다. 한 명은 아주 똑똑한 하녀인 뜨와네뜨이고 다른 한명은 아르강의 친동생인 베랄드다. 이들은 아르강이 계획한 멍청한 짓을 슬기롭게 막아낸다. 아르강의 멍청한 계획이란 안젤리끄를 또마와 결혼시키고, 벨린느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서를 작성하려는 것이다. 뜨와네뜨와 베랄드는 아르강에게 죽은 척을 해보라고 한다. 그러자 벨린느는 아르강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그의 유산을 모두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었다 보기 좋게 아르강에게 들킨다. 하지만 안젤리끄는 아르강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는데 이를 통해 아르강은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안젤리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이 연극은 전형적인 희극으로 실제로 연극을 보면 재밌는 부분이 정말 많다. 정연복 선생님은 아주 재미난 해석을 해주셨는데, ‘상상병 환자’에서 일을 꾸미고 계획하는 사람은 아르강의 똑똑한 동생 베랄드 혹은 매우 명민한 하녀 뚜아네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했다. 정연복 선생님은 어쩌면 이 모든 해프닝의 중심에 아르강이 있고, 아르강이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계획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치의나 벨린느가 자신을 기만하고 자신의 돈을 축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아내 벨린느의 시커먼 속을 이미 모두 알고 있으면서 눈감아 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르강은 벨린느의 악행과 악덕은 물론 안젤리끄의 선량함과 뚜아네뜨의 충성심까지 모두 뒤죽박죽으로 섞는 ‘한바탕 소동’이 되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뒤죽박죽된 상태 이것이 삶의 진실이라는 것을 아르강이 선포하는 것이다.‘오이디푸스 왕’은 함께 책을 읽은 분들의 통찰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A는 희곡이 처음이라고,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그 독법이 치명적이었다. A는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자, 오이디푸스! 그러나 그런 오이디푸스와 달리 치부를 끝끝내 거부하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B는 공감대장이었다. 모든 작품에 자신의 주위 분들을 대입해서 읽는 아주 독특한 독법을 보여주었다.이를 테면 오이디푸스를 읽으면 남편이 생각난다고 했다. 왜냐하면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혼자 알고, 혼자 고통스러워하면 되는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고 또 자신의 고통까지 공유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A의 남편 역시 자신이 힘들면 혼자 이겨내지 못하고 꼭 주위 사람들이 자신이 힘든 걸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맨날 몸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상상병 환자인 ‘아르강’은 또 A의 시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그리고 무척 많은 비밀을 간직한, 목소리가 마치 성우 같았던 C도 있다. C는 ‘인간 본성에 대해서’(에드워드 윌슨)을 언급하면서 ‘벌의 행동의 가짓수가 인간의 범주에서 얼마 되지 않듯이 인간 행동의 가짓수도 더 큰 능력을 가진 자가 볼 땐 벌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오이디푸스 고통이라는 것도 자기 인식이 감당해야 할 정도의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는….’나는 책 읽기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한 것이 없다. 그냥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런 사람도 필요하니까 말이다.델리스파이스라는 가수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외에 다른 가사는 없고 이 말만 주구장창 반복한다.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은 이 무한히 반복되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말에서 ‘나’의 애절함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짜증 가득한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가수가 무엇을 의도하고 이 노래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이든 창작자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를 찾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작품은 창작자가 아무리 열심히 책을 써도 그것을 읽는 독자가 없으면, 창작자가 작품을 쓰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듣는 것과 말하는 것. 나는 이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함께 독서 토론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 들어주는 일일 것이다.왜냐하면 세상에는 좋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이고, 정말 문제는 그 좋은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9-07-03

베이비부머의 위력

출생률이 다른 시기에 비해 현저히 상승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을 베이비부머라 한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6·25전쟁 이후인 1955년생부터 1963년생 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나라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다. 그들은 막강한 인구수로 국가 성장의 기둥이자 동시대 사회를 주도한 세력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미국의 베이비부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이후부터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이며 미국 전체 인구의 26%를 차지한다. 그들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세대라 평한다.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며 사회 및 문화운동에 앞장 선 사람들이다. 히피문화와 록 음악이 그들을 대표하고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반전운동에도 앞장 선 사람들이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라 부르며 1947년부터 1949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을 일컫는다.한국 베이비부머 세대도 이제 대거 은퇴 길로 접어들었다. 올해만해도 연간 80만 명이 넘는 사람이 60세 정년을 맞는다고 한다. 일하는 인력이 줄어들고 복지비용은 증가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인구는 총인구의 14%다. 인구수로 700만 명을 상회한다. 막강한 인구로 우리사회와 경제에 미친 영향력도 매우 컸다. 그들에게는 가난이란 기억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겪어야 했던 피폐한 삶을 아직 기억하는 세대다. 1958년생이 초등학생일 때는 콩나물 교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실이 꽉 차 오전반 오후반으로 쪼개어 수업을 받았다. 부모를 마지막으로 모시는 세대이면서 자식에게 부양받기를 포기한 세대다. 그러면서 자신의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세대다. 부포족, 낀 세대라 부른다. 베이비부머의 대거 은퇴가 귀농 귀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17년 51만 명에 달했던 귀농 귀촌인구가 지난해부터 50만 명대가 무너지는 등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귀농 인구가 줄어든 것도 베이비부머의 이동과 유관하다는 분석이다. 올 초 한국의 베이비부머 은퇴로 60세 정년 연장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의 베이비부머의 위력이다. 당분간 그들의 영향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02

가치 있는 삶의 공통분모는?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재산을 잘 쓸 줄 알아야 진정한 부자다. 부자가 되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다는 의미였다.”시어도어 젤딘은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위대하게 만드는 28가지 질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인생의 발견’에서 “돈이 인간을 선한 삶으로 이끌어주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크세노폰의 말을 인용한다.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현 시대에 어떻게 돈을 의미 있게 쓰는지를 보여준 두 분이 있다. 세계 1위 참치기업을 만든 김재철 동원그룹 전회장과 파주출판도시를 만든 이기웅 열화당 대표가 그들이다.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첫 원양어선을 이끈 김재철 전회장은 독서가 생활화된 분으로 유명하다. 1961년 1월 25일 그의 일기는 이렇게 쓰여졌다. “선원들은 갑판 위에 차양막을 쳐놓고 바둑, 장기에 열중이다. 나는 출항 이래 독서에 취미를 붙여 일본에서 구입한 책들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으로 그는 “사업을 체계화하거나 체계적으로 사고하고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창업 10주년이 되던 1979년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인재육성을 실천해 온 그는 ‘라이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할아버지께서 지은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의 이름을 따서 1971년 출판사를 설립했다. 책은 ‘영혼의 지도’라고 생각하며 출판인으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실천해 왔다. 미술, 사진, 전통문화 등 문화예술 관련 출판을 하며 대중의 입맛에 맞는 시장성에 코드를 맞추기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다운 책’을 만드는 일에 주력하였다. 출판사옆에 책박물관을 만들고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고서와 양서를 공유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 “열화당은 전인적 인간상에 주목하는 인문주의적 예술출판”의 외길을 걸어왔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또한 ‘선량한 책, 값어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판인들의 환경 개선이 필요는 생각을 갖고 파주출판도시 계획을 추진하였다. ‘세계 유일의 책문화도시’를 표방할 만큼 매년 파주북페스티벌이 열리고, 독특하고 멋진 출판사 건물들 사이로 자연 풍경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은 지상에 사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젤딘은 ‘인생의 발견’에서 어떤 개인을 ‘평균적인 인간’과 구별해주는 것은 고유한 경험과 미세한 태도의 차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삶의 본질이자 그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재철, 이기웅 두 분은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난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며 성장했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파주출판단지로 떠났던 ‘숙명라이프아카데미’ 여름캠프 덕분에 두 분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지난 주는 ‘서울국제도서전 2019’이 열렸다. 매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로 개최되고 있는 큰 행사로 어느새 25회가 되었다. ‘다가올 책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게 될 책 너머의 세계’를 주제로 올해는 41개국, 431개 출판사가 참여하였다. 대규모 도서축제가 된 이유가 국내외 출판사들이 만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자리인 점도 있겠지만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와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결국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 다가오는 여름, 책과 함께 당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되길 기대한다.

2019-07-02

새로운 변화와 도전! 봉화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다

엄태항 봉화군수봉화퍼스트는 봉화발전의 기본바탕으로 모든 군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역자본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고 지역경제를 선순환시켜 군민이 풍요로운 봉화를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봉화군은 봉화퍼스트 조기 확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제 지역에 차츰차츰 스며들고 있다.특히, 재래시장 시장애 불금축제는 봉화퍼스트 정책의 가장 성공적이자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군민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매주 금요일이면 많은 군민과 인근 지역 방문객들이 전통시장에 모여들고 있어, 지역 상경기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또한, 봉화지역상품권 50억원이 곧 발행될 예정에 있어,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이 된다. 이외에도 봉화군은 봉화퍼스트가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군 전체 직원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지역경제를 뒷받침한다는 방침이다.정부는 탈 석탄, 탈 원전을 표방하며 신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 중에 있다. 초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이농현상 심화 등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농촌에 가장 적합한 사업이 재생에너지, 즉 태양광사업일 것이다. 봉화군 또한 군민 직접 참여형 분양형 태양광발전사업을 추진해 군민 340세대 34MW 발전사업 허가를 완료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 결과 에너지 전환포럼에서 지방자치 부문 에너지 전환상을 수상하며 봉화군 재생에너지 사업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렸다. 이외에도 유휴 국공유지를 활용한 협동조합형 태양광발전사업을 추진하여 공공자원을 지역주민의 소득으로 연결되도록 할 계획에 있으며 축사, 버섯재배사 등과 연계한 영농복합형 태양광발전사업도 사전 행정절차를 준비 중에 있어 토지영농과 더불어 1+1의 소득창출을 유도한다. 또한, 일반산업단지의 개념을 재생에너지에 도입하여 태양광 산업단지(계획입지형) 구축을 위해 중앙에 수차례 건의하는 등 타 지자체보다 훨씬 앞선 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아울러 농업인 경영 안정자금은 지역 농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렵을 통해 조례 제정 등 하반기 지급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세계 최장 현수교인 모험의 다리 조성사업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 중에 있고, 루지체험장 조성사업은 부지매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MTB코스와 트레킹길 조성도 용역 중에 있어 청량산 주변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5년 연속 우수축제인 봉화은어축제는 야간 중심 축제로 새 단장해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고, 분천 산타마을은 매년 관광객이 증가하며 겨울철 대표 관광지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국립백두간수목원 주변개발 또한 애당리 일원에 리조트, 캠핑장 기반구축을 위한 기본구상 용역을 추진하여 수목원 시너지 효과를 높인다. 아울러, 국립백두대간수목원~분천 산타마을~청량산 등 지역주요 명소 관광벨트화와 안동, 영주를 연계한 광역 관광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레저시설, 노인전문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된 전원형 친환경 실버타운 유치를 위해 우수사례 벤치마킹과 기본구상 등 사전 건립계획을 토대로 민자 유치활동에 본격 나섰다.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 군 전체 경로당에 공기청정기 설치를 완료하였으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 대한 실버카 배치도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야, 춘양, 석포면에 공립형 지역아동센터와 농어촌 놀이터를 건립해 안심 보육환경을 조성하고, 어린이집 공립화와 청소년센터 리모델링 국비 신청, 국립청소년산림생태체험센터 착공, 그리고 봉화군 가족센터 건립 추진 등 미래의 꿈나무들에 대한 지원에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또한, 여성 역량강화 등 사회참여 확대와 장애인들의 돌봄 기능 확충은 물론 200여 세대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교육과 일자리 지원 등 전 계층을 아우르는 선진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신구시장 연결 스윙교가 완공을 눈앞에 두며 시장 이용과 축제 등 다방면 활용에 기대가 되고 있고,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내성천 경관타워 조성사업은 내년 연말 완공을 목표로 사전절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내성지구 신도시 조성사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봉화읍 원 도심의 모습을 새롭게 할 대규모 사업들 역시 경북도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공모 신청 등 준비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농식품부 주관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도 봉화읍을 대상으로 추진할 예정에 있어 도시재생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필자는 지난해 대구·경북 최초 4선 군수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10여년간 봉화를 이끌면서 많은 성과를 내며 지역발전을 견인해 왔다. 현재 봉화군은 도전, 변화, 혁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유치, 은어축제 창안, 하늘다리 조성, 군 청사 이전 등 지역발전의 튼튼한 기반을 구축했다. 침체되어 있던 지역의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모든 군민이 다함께 잘사는 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봉화발전의 백년대계를 다시 바로잡아 누구나 살고 싶고, 찾아오고 싶은 전원생활 대표도시 봉화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19-07-02

개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지난 칼럼에서 개와의 올바른 산책을 이야기 했는데,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오래 전에 알려진 이론 이야기이지 요즘에도 적용되느냐는 의견, 우리 개는 그렇지 않은데 문제가 있느냐는 분도 계시고, 내용은 괜찮은데 표현이 강해서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전문 훈련사의 의견까지 매우 다양했다.사실 개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현재까지 개와 관련한 여러 연구의 결과에서 알 수 있는 확실한 하나의 결론은 개들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변동성이 있다는 것인데, 각각의 개들이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연구들을 통해 알려진 일관된 결론이다.사실 개의 행동에 대해서 모든 개, 대부분의 개, 또는 많은 개들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거나 개와 늑대가 어떤 점이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명확히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예전 연구실에 출근하던 로트와일러(일반적으로 용맹한 품종으로 인식된다)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덩치를 가지고 있는데, 장애인을 비롯한 어린이들과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로트와일러 품종에 알려진 공격성(히틀러의 경비견으로 활약한 개도 있었던 품종이다)을 아는 이들은 가까이 오기를 무서워했지만 연구실 사람들에게 애교도 보이고 착한 행동을 하는 개였다.옆구리를 건드리며 공격신호를 주면 특유의 공격성을 나타내도록 훈련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별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평소에 그 개는 매우 사랑스러웠다. 이처럼 개에 대하여서는 정설이 없다. 어떤 품종이 어떠하다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어려운 점이 매우 많아서 일반화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객관적 사실들이 주관적 해석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한다.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가 다른 개와는 전혀 다르고, 세상에 하나뿐인 개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개 주인은 대부분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개에 대해 실제 아는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 맞는 말이다. “말 못하는 존재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들이 무슨말을 하는지 아는채 하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매트마지니의 이야기에 동의한다.궁극적으로는 개와 사람사이에 형성되는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에 개에 대해 더윽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개에 대해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개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과학적인 많은 연구들을 살펴보면 개가 생각하고 느낄 줄 안다는 것이 밝혀져 있는데 개가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는 동물이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사람들은 문제행동을 보이는 자신의 개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고 빠른 해결을 원하지만 각각의 개마다 해결을 위한 답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즉각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다.개와 관련해서는 일반적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각각의 개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최근 특정 전문훈련사들의 연봉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이동훈개의 문제행동을 해결하려면 내 개가 평소에 무엇을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개의 행동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반려동물 주인들이 반려동물 행동에 대한 이해가 커져갈 때 궁극적으로 동물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고, 그에 따라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반려동물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여러 사실들을 이야기로 써보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반려동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이고, 반려동물들이 살아갈 곳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반려동물의 형질을 선택하는 책임있는 브리딩 관행도 정착해야 할 것이다. 개의 삶에서 사람은 전부이고 모든 것이지만, 사람의 삶에서 사실 개는 일부분일 뿐이다.이 때문에 사람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하다. 개가 사람에게 가질 수 밖에 없는 의존성을 생각할 때 개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개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각각의 개가 다르고 일반적 개 상식을 말하기 어렵지만 개를 공부해야할 이유다. 개들은 우리를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7-02

스타트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조류를 각국 정부나 기업들이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태어나 성장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무려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이라 부르는데, 미국의 우버, 에어비엔비, 에버노트, 중국의 샤오미, 디디추싱 그리고 우리나라의 쿠팡, 야놀자 등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비록 우리나라도 유니콘 기업들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이처럼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사례는 아직까지는 미국 등 선진국이 중심이다. 이러한 현상은 창업 아이디어가 부족한 때문일까 아니면 벤처캐피탈, 엔젤투자와 같은 창업자금 지원체계가 부족한 때문일까. 아니면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법적 제도적인 규제 등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뛰어난 정보통신기술(ICT)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만큼 적어도 정보통신기술의 인프라가 스타트업의 성장 저해 요인은 아닐 것이다. 스타트업이 창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사업화하여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그래서 최근 정부는 물론 대기업들도 사내벤처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 스타트업을 둘러싼 여건만큼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실제 이미 많은 유니콘 기업이 탄생한 것만 보더라도 스타트업의 성장 환경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처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스타트업 성장이 쉽지 않은 요인은 좀 더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성장프로세스에서 나타나는 자금조달과 집행, 시장조사방법론, 마케팅전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스타트업이나 벤처가 모험이라고 한다.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세대와 자라난 환경이 다른 청년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을 출범시켰지만 정부나 대기업의 의사결정과정 내지는 의사결정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비즈니스모델에 이상적인 자금투입 시점, 시장조사, 마케팅 모든 부분에서 어쩌면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경험상 성공했던 종전까지의 자금지원방식, 시장조사방법론, 마케팅기법을 적용하는 관성이 최대의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스타트업은 종전까지 없었던 아이디어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고자하는 기업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사업화에는 당연히 자금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이들은 기존의 시장에서 벗어나거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출하는 등 이른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의 고위관료나 대기업의 자금담당임원 내지는 지원조직의 부서장은 정통적인 과거 산업이나 과거 대기업의 성장과정에서의 경험과 지식에 뛰어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지원체계도 종전방식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결국 성공여부는 과거의 지식과 경험과 전혀 무관하게 아이디어의 사업화에 가장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장분석,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마케팅기법 등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부나 대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포항도 스타트업지원에 열심인 도시다. 하지만 지역내 스타트업이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자금지원 그 이상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그 어떠한 방법과 경험이라도 스타트업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방법일수도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고 최적이라 여겼던 지원방식조차 스타트업을 구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07-02

자유학년(기)제의 덫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안녕하세요. 먼저 접수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지난 주 토요일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년 전입학 전형을 위한 설명회가 열렸다. 작년까지는 120명이 넘는 전국 각지의 학부모께서 학생들의 행복 교육을 찾아 학교로 오셨다.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안 하늘은 매년 좋은 날씨를 내려주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장마가 늦어지면서 2014년 설명회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200㎜를 예보했다.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기원했지만, 하늘은 새벽부터 세찬 빗줄기를 쏟아부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설명회 시작 시간인 2시가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약해졌고, 급기야 2시를 전후해서는 잠시 비가 그쳤다는 것이다. 날씨 때문인지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설명회장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12시 전후로 운동장에 차들이 많이 찼던 예전과 달리 1시 30분이 지나도 열 대 안팎의 차들만이 운동장에 점처럼 서 있었다.그래도 산자연중학교 교사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 희망에 대한 답을 하늘이 먼저 주었다. 1시 30분이 지나면서 비가 잦아들었고, 그것을 신호로 차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접수를 위한 줄이 서고, 선생님들도 바빠졌다. 다과를 준비해 둔 식당이 가득 찼고, 이곳저곳에서 상담이 진행되었다. 접수대에서 참석자 현황이라고 적힌 쪽지가 왔다. 93명이라는 숫자와 함께 학년별 참석자 현황이 적혀 있었다. 메모를 읽는 와중에도 차들이 계속 들어왔다.시작을 앞두고 접수대로 가서 집계 현황을 파악했다. 필자는 접수된 주소를 보고 많이 놀랐다. 서울, 인천, 경기, 부산까지는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보던 지역인데, 이번에는 광주, 익산과 같은 전라도 지역의 주소가 보였기 때문이다. 억수 같은 장맛비를 헤치고 오셨을 그 분들의 정성과 간절함을 생각하며 필자는 스스로 각오(覺悟)를 새롭게 하였다.말이 학교 설명회지 산자연중학교 학교 설명회는 전국에서 오신 학부모님들과 함께 ‘희망 교육’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그래서 필자는 산자연중학교에 대한 정보보다는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는 교육 이야기를 더 많이 준비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현 교육에 대한 반성과 사과로 시작한다. 필자는 참회(慙悔)의 마음으로 “근대 교육을 재판합니다”라는 외국 영상을 제일 먼저 튼다. 아래 내용은 영상 내용 중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상략) 시대에 역행하는 교실에서 자신의 재능은 발견하지도 못한 채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더 이상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학교를 법정에 세워 기소합니다. 창의성을 죽이고, 개성을 죽였으며, 지적으로 학대해왔습니다. 학교는 오래 전에 세워진 기관이며, 이제 시대에 뒤떨어져 있습니다 (하략)”동영상을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식과 한숨 소리에 필자는 다시 죄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영상의 내용이 틀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맛대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들을 없애려는 교육감들, 아니면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하면서 대안학교 학생들은 빼고 있는 교육부 장관이라도 나서서 동영상의 내용이 잘못 되었다고 반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이 나라 교육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위증(僞證)은 못할 것이다.1시간 30분가량의 설명회 시간은 필자에겐 새로운 다짐의 시간이 된다. 설명회가 끝나면 학부모님들과 개별 면담을 한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중학교 재학생 학부모님들의 참석률이 높았다. 그 분들의 하나같은 얘기는 자유학기(년)제에 대한 성토(聲討)였다. 물론 모든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달콤한 자유학기(년)제 이후에 더 살벌해지는 학교 이야기를 교육 당국은 꼭 들어야 할 것이다.

2019-07-02

나를 덮고 있는 진흙에 대해 (2)

조사결과 역사의 비극이 스며 있는 불상인 것으로 밝혀집니다. 당시로부터 200년 전인 1765년, 태국과 인접 국가인 미얀마와 사이에 큰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태국은 참패를 당합니다. 미얀마 군대가 수도 방콕을 함락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지요. 당시 사찰에 황금 불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보물을 약탈당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이때 한 수행자가 묘안을 제시합니다.“불상에 진흙을 덧씌웁시다!” 황금 불상은 진흙 불상으로 감쪽같이 둔갑했고 예상대로 이 무겁고 평범한 진흙 불상은 약탈을 면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 참여했던 이들이 모두 학살당해 200년 세월을 원래부터 진흙 불상인 것처럼 흘러내려왔던 것으로 밝혀집니다.고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클래식(classic)은 라틴어 클라시쿠스가 어원입니다. 클라시쿠스에는 고전이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라틴어 클라시쿠스는 함대를 의미하는 클라시스의 형용사 형입니다. 로마시대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에 함대(艦隊)를 기부할 수 있는 거대한 부자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클라시쿠스입니다. 그저 돈만 많은 계급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품격과 부를 동시에 갖춘 명문가를 클라시쿠스라고 일컫습니다.미국의 천재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천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99.9%의 아이들은 부주의한 어른들 때문에 자신의 천재성을 순식간에 박탈당한다.”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5천500㎏의 황금으로 이뤄진 존재들입니다. 전쟁이나 비극, 부주의한 어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흙으로 뒤덮인 채 원래부터 그런 존재인 양 가짜 나에 속아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클라시쿠스의 DNA를 갖고 태어난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덮고 있는 진흙들, 우리 시야를 막고 있는 검은 흙덩어리들을 떼어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진흙을 털어내는 도구 역시 클래식이라는 점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위대한 작품들,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내 안의 위대한 거인 클라시쿠스를 깨우는 공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울림이 수십 년 세월 동안 우리를 덮고 있던 진흙을 털어낼 수 있는 진동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5천500㎏ 황금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며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아가는 인생이지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클라시쿠스를 깨우는 고전과의 만남. 지금과는 다른 5년 후를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2

한국의 ‘신성장 산업’은 잘 크고 있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마이너스 금리의 국채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 및 독일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에서 맴돌았는데 이제는 프랑스, 스웨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만큼 석유기반의 구경제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고, 그 안에서 미국의 ‘밥그릇 싸움’도 우리를 걱정스럽게 한다. 해법은 빨리 산업구조를 신성장 분야로 바꾸는 것인데 한국은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라서 안타깝다.먼저 내년부터는 파리기후협약이 발효되며 친환경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고, 2차전지 수요도 크게 늘어 날 전망이다. 그런데 한국의 2차전지 부품업체들은 최근 실적이 악화되었다. 그 이유는 중국 전지업체들과의 경쟁 때문이다.사실 중국정부는 현지 업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국업체들이 경쟁하기 유리한 환경이 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다른 결과가 나왔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줄였다는 사실은 “낮은 제품단가에 생존 가능한 업체들로 구조조정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중국의 2차전지 업체들의 가격경쟁력 배경을 보면 첫째, 모든 부품을 100% 중국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2차전지 핵심소재인 희귀금속의 경우 중국이 가장 풍부하니까 접근이 용이하다. 또 2차전지 제조 공정이 은근히 노동집약적이라서 중국이 인건비 경쟁력을 볼 수 있다. 둘째, 중국 정부의 도움이다. 그 동안 엄청난 보조금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해줬고, 해외업체들에게 기술상납을 종용하여 현지업체들이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셋째, 중국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신성장 산업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2011년경 중국 중심의 경제성장이 기대되며 건설중장비를 만드는 한국의 두산인프라코어가 각광받았었다. 그런데 중국의 싸니(SANY)가 두산을 능가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싸니로 입사한다는 설명을 듣고 두산인프라코어 주식을 모두 팔았던 기억이 난다.과거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들이 모두 1인당 GDP 3만불 이상의 국가들이었다. 오로지 한국만 2만불대에서 제대로 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어서 가격경쟁력을 주도하며 시장점유율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1인당 GDP가 1만불도 안 되는 중국이 침투하여 자리를 잡은 산업이라면 더 이상 볼 것 없지 않을까? 2차전지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내년부터 2차전지 수요가 늘어나겠지만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을 해법(solution)을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는 편이 옳아 보인다.한편 친환경과 더불어 신성장의 또 다른 축은 바이오 산업이다. 그러나 한국의 바이오는 ‘인보사’ 사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그 동안 너무 장밋빛으로만 접근하여 주가에도 거품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가장 높은 프레미엄을 받는 바이오 업체들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곳들이다. 만일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성과를 보이면 기존 치료법은 대체가 되는 셈이다. 즉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기존 바이오 업체들은 신약의 가치평가를 할 때 출시 이후 특허가 유지되는 10여년 시장을 독과점하는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나올 대체 치료법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새로운 치료법 가운데 이미 오랜 기간 연구된 것들도 있다. 즉 10여년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지금 세계 바이오 산업은 새로운 치료법에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바이오 업체 가운데는 이렇게 신기술을 주도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가가 할인되어야 하는데 한국 내 투자가능 바이오 기업들의 희소성 때문에 오히려 프레미엄을 받고 있는 바, 이것이 거품의 증거다.결국 한국의 신성장 산업은 중국에 치이고, 신기술에 대체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사회정의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신성장 관련 스타트업을 돌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2019-07-01

나를 덮고 있는 진흙에 대해 (1)

방콕 기차역인 후아 람퐁 주변은 개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야오와랏 거리에는 가로 10m, 세로 10m쯤 되는 조그마한 사찰이 있습니다. 주지 승려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사찰을 관통하는 도로가 뚫린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이곳에는 거대한 진흙 불상이 있습니다. 높이가 3.5m, 무게가 5t이 넘는 커다랗고 우아한 예술품입니다. 석굴암 본존 불상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옮길 수가 없어서 기중기를 동원합니다. 거대한 불상에 손상이 없도록 천으로 감싸고 그 위에 두터운 비닐로 포장한 후 나일론 끈으로 결박합니다. 지붕을 뜯어내고 크레인에서 내려온 고리에 불상을 걸어 올립니다. 조그만 충격에도 진흙 불상은 손상을 입을 수 있기에 작업은 세심하게 이뤄집니다.오랜 노력 끝에 트럭에 불상을 싣고 옮기는 데 성공하지요. 새로 이전해 안치할 곳에 불상을 옮겨 놓고 신축 사찰 지붕 공사를 완성할 예정입니다. 포장을 뜯는 순간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아악!”그토록 조심스레 운반했건만 불상 중심부에 거대한 틈이 발생했습니다. 머리부터 가슴 배꼽에 이르기까지 크랙이 쫘악, 회복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손상이 심합니다. 긴급 대책 회의가 열립니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달려와 검토합니다. 사다리를 설치하고 안면 쪽 손상 부위를 살피던 문화재 전문가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랜턴을 비추며 크랙 사이를 살펴볼수록 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갈라진 진흙 틈에서 무언가를 본 것입니다. “반짝!”신축 사찰은 폐쇄 명령이 떨어집니다. 불상은 거대한 암막으로 전체 모습을 가립니다. 아무도 이 작업을 볼 수 없도록 하라는 정부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수일 동안의 작업을 거친 후에 암막을 걷어냅니다. 허가를 받은 작업 담당자와 주지 승려, 정부의 문화재 담당관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황금 불상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57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황금 불상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순금 5천500㎏으로 판정합니다. 전 세계 황금 불상으로는 최대 크기, 지구에 존재하는 금덩어리로는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납니다. 약 1억9천6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천200억 원의 가치를 지닌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진상 조사를 시작하지요. 어떻게 이런 진귀한 보물이 진흙 불상인 채로 수백 년 동안 내려오게 되었는가? 모두가 궁금해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7-01

사이코패스 스마트와 미래를 함께할 수는 없다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어느 일요일 저녁, 우리 집에는 근처 사는 일가가 모여 휴일식사를 마친 후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단란함도 잠시, 예고 없이 찾아온 응급 상황에 온 집이 발칵 뒤집혔다. 뇌혈관 수술 이력이 있는 이종사촌이 좀 체한 것 같다며 부산을 떠는가 싶더니 갑자기 쓰러져버린 것이다. 구급차에는 이모를 대신해 직전 전조증세부터 계속 지켜본 내가 동승하기로 했다.평소 위기에 잘 무너지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나는 정신력을 총동원하여, 환자의 상태와 쓰러지기 전 상황, 처음 증세가 시작된 후 개략적인 시간, 환자의 병력과 수술 시기, 최근 담당의사 진료 시점까지 찬찬히 설명하며, 이동 중 구급요원들의 처치를 도왔다. 그러나 나의 ‘강철 멘탈’과 인내심은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응급실에서 보호자는 제 정신이 아니다. 접수를 하려는데, 환자의 주민번호는커녕 생년월일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스템이 그렇게 친절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졌다. 우여곡절 끝에 접수를 마치고 들어가자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는 나를 알아본 구급요원이 나를 사촌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환자는 응급실 내 깊숙이 자리한 ‘소생실’ 안에 누워 있었다. ‘소생’이라는 단어와 삽관까지 한 모습을 본 나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지만 응급실 의료진들의 질문공세는 계속됐다. 지금 되짚어보니 응급환자의 보호자는 처음 119에 전화할 때부터, 구급요원들, 응급실 접수 담당자, 그리고 응급실 내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기억하기도 끔찍한 그 상황을 곱씹으며 적어도 네다섯 차례 혹은 그 이상 설명을 되풀이해야 한다. 경황 중에도 나름 침착하게 같은 얘기를 네 번 다섯 번 반복해서 설명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던 내 인내심은 ‘쓰러진 시간이 정확히 몇 시 몇 분이냐’는 당직의사의 질문 앞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선생님, 가족이 쓰러져서 경황없는 마당에 어떻게 시분까지 정확히 기억하지요?”다행히 환자는 며칠 입원 후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가족들에게 그날의 일은 트라우마가 아닌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억됐다. 그제야 고군분투하는 의사선생 앞에서 입 밖으로 내지 않고 혼자 삼킨 내 그 다음 말이 떠올랐다. ‘집안에 무슨 블랙박스라도 설치해 뒀어야 하나요? 내가 무슨 인공지능 로봇도 아니고…’그러고 보니 스마트폰과 우리집 홈 스피커 속 인공지능 ‘그녀’들은 그 순간 뭘 하고 있었을까? 평소에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TV채널을 바꿔주겠다며 주인 비위를 맞추려하고, 간혹 가족들의 대화중에 자기를 부르는 줄 착각해 불쑥 나서 성가시기까지 한, ‘빅**’, ‘시*’, ‘지*’, ‘아*’라는 이름의 그녀들 말이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기대주 인공지능은 정작 주인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바로 그 순간에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작년 MIT에서 ‘사이코패스 인공지능’이 개발되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이름을 딴 ‘노먼’ 이야기다. 노먼은 잘못된 정보를 흡수한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태어난 실험적 존재였다. 인공지능에게 어두운 데이터만 가르쳤더니 심리검사에서 ‘죽음·살인’만 떠올리고 반사회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지켜보며 듣고 있었을 터인데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침묵을 지킨 인공지능 그녀들의 모습은 얼핏 그 사이코패스 인공지능을 연상케 한다.사이코패스 인공지능이 탄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인간다운 행동요령과 기술을 열심히 가르쳐 주어 미래를 함께해도 좋을만한 제대로 된 파트너로 키워내어야 한다. 1인 가구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지금, 어쩌면 그 인공지능이 쓰러진 환자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보호자가 되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9-07-01

키코(kiko) 분쟁조정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으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무려 732개 기업이 3조3천억원 상당의 피해를 보는 사태를 빚은 금융상품이다.당시 피해기업 상당수는 은행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3년에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은 인정하지 않는 대신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취임 직후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오는 9일, 늦으면 16일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재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이번 분쟁조정 대상은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업체로, 피해금액이 총 1천50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부분, 즉 불완전판매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키코 상품 판매를 불완전판매로 규정하고 피해액의 20∼30%를 배상하라는 권고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다만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이 큰 경우 배상비율이 50%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경우 은행들이 부담할 배상액은 300억∼450억원선이 된다.문제는 은행들이 권고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 손해배상에 대한 소멸시효(손해 발생일로부터 10년)가 완성된 상태여서 은행이 분쟁조정안을 거부하고, 피해기업들이 이후 소송을 걸어도 승산이 희박하기 때문이다.은행들은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처럼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업이 150곳(피해금액 2천억∼4천억원 추산)에 달해 전선이 확대될 경우 피해 규모가 조 단위로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선무당 사람잡는다’더니 어설픈 금융상품 한 번 잘못 판매한 것이 뼈아프다.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상품이나 경제정책은 파급효과가 큰 만큼 더욱 더 신중하게 수립·시행할 필요가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01

선비들의 여름나기

강희룡 서예가계절은 장마로 접어들었다. 장마가 끝나면 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열대 기후로 변하여 겨울은 짧고 여름은 길어지며 기온 또한 예전에는 30℃ 안팎이던 것이 이제는 40℃정도까지 오르내린다. 여름은 원래 덥다. 지난해 여름도 더웠고 100년 전 여름도 더웠다. 여름이 덥지 않으면 천재지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름에는 피서를 즐긴다.전통사회에서 더위를 이길 수 있는 피서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으나 특별히 계곡을 찾거나 벽오동 아래서 더위를 씻곤 했다. 이러한 자연을 이용한 방법 외에도 글이나 시를 통해 더위를 이기곤 했다. 대표적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문인인 정내교(1681~1759) 선생의 문집 완안집에 ‘수운정피서( 水雲亭避暑)’라는 시가 있다. 정내교가 수운정이라는 곳에 피서를 하며 지은 시이다. 그는 중인 출신이라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시의 재능은 당대에 최고로 인정받아 많은 이들이 그에게 시를 배우기도 하였다. 정조 때 대제학과 좌의정을 지낸 김종수와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며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도 그에게 시를 배웠다고 한다.시 내용은 이렇다. ‘붉은 해 중천이라 새들도 울지 않고/ 산인은 말을 타고 천천히 지나는데/ 골짜기 산속 길로 어느덧 접어드니/ 반갑게 솔바람에 물소리 들려오네.’ 이 시는 특별한 기교나 묘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한여름의 뜨거움과 산중의 시원함을 잘 전달하고 있다. 제1구의 ‘중천에 걸린 붉은 태양[赤日中天]’은 더운 이 여름날 생각만으로도 덥다. 얼마나 더운지 새들도 모두 자리를 피해 보이지 않는다. 제2구에서는 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피해 산길로 향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옮겨야 하겠지만 무더위로 인해 최대한 천천히[閑] 내딛고 있다. 배경은 어느 순간 깊은 산중으로 바뀌어있다.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숲 속에선 솔내음 가득 실은 솔바람[松風] 불어오고 길옆 계곡에선 물소리[間水] 들려온다. 제3구에서 지친 우리 몸의 감각을 집중시키다가, 제4구에서 더위를 식힐 솔바람과 물소리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또 한 예는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1713∼1791)의 표암유고(豹菴遺稿)에 실려 있는 ‘해암이 고맙게 보여준 석전의 그림에 차운하다.’라는 시다. ‘구름이 앞산을 가리더니 소나기 쏟아지고/ 바람이 초목에 불어와 기이한 향기 풍기네/ 북창에서 책상 대해 긴 여름날을 보내노니/ 청량한 이 기분 아낌없이 그대와 나누리라.’ 무더운 여름철 소나기가 지나가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집 주위의 풀이며 나무에 바람이 불어와 신록의 향기가 코끝에 스친다. 서늘한 북쪽 창문 아래서 책을 읽으며 긴 여름날을 보내노라니 이 청량한 기분을 혼자 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든다. 3구에서 북창은 도연명의 고사를 썼다. 도연명이 오뉴월에 북창 아래에 누워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즐길 때면 내가 복희씨 이전의 태고적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해 질 녘 바람과 저녁노을은 원래 주인이 없으니 이 청량한 기분을 그대와 나누는 것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한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강세황의 처남 유경종이 명나라의 유명한 화가인 심주(沈周)의 그림을 표암에게 보여주었는데 이 시는 그 그림에 있는 제화시의 운자를 따라 지은 작품이다.오늘날에도 다양한 피서법이 있다. 캠핑장을 이용하는 방법과 오수(午睡)체험, 차가운 물에 발을 씻는 탁족, 죽부인과 함께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는 체험도 유행이다. 여름 더위는 열매를 영글게 한다. 더위에 비록 몸은 시달려도 영혼 역시 더 단단히 여물 수 있다. 세종 때 일에 지치고 소진된 집현전 학자들에게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독서휴가를 주어 재충전하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기승을 부릴 올 여름 무더위를 우리도 독서삼매를 통해 자아를 찾아 영글게 하는 법을 피서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7-01

저, 반짝거렸던 취향의 상징에 기생해온 것들

얼마 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제 거의 극장에서 내려가 상영하는 곳을 찾기 쉽지 않지만, 아직 사람들의 입에서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 단지 한국에서 처음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가 던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나, 그것을 다루고 있는 방식이 의미 있었던 것이리라.이 영화에 대해서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던 관객에서부터 고개를 갸웃거렸거나 심지어 불편함을 느낀 관객까지 있었겠지만, 적어도 이 ‘기생충’은 한국 영화에서는 이제 몇몇 예술영화라는 장르 속에밖에 존재하지 않게 된 ‘상징’의 힘을 보여주었던 영화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서사가 주는 불편함이란 단지 그것의 약점 내지는 결여만은 아닐 것이다. 그 불편함은 바로 우리가 매혹되어 온 상징의 실체를 직시하게 될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인정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상태에서 비롯된다.사실, ‘기생충’이 드러내고 있는 ‘상징’의 세계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폭로된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로서의 ‘상징’은 현대 사회가 적어도 백 년 이상 계속해서 유지해왔던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념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계급적 취향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취향에 기생하여 형체를 유지해왔던 지식과 문화 담론이 갖고 있는 실체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상징’은 소설이나 영화의 언어적 층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 저변에 널려 있는 상품의 표면과 그 배후로부터 도래하여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을 이끄는 힘을 갖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본의 상징이 갖는 힘에 대해 얼마나 무기력한가. 저 반짝거리며 나의 눈길을 끄는 브랜드의 로고가 갖는 힘에,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외국어 단어 몇 자에, 너무나 확고해 보이는 취향이 갖는 힘에 마주하는 인간은 언제나 그것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 전혀 실체를 갖지 않는 예술이 차가운 자본의 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사실은 삶에 있어서 어떠한 유용성을 갖지 않는 지식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매혹적인 까닭은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영화 속에서 가난한 ‘기택’의 집은 아무런 실체를 갖지 않는 ‘상징’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경제 주체가 되지 못하는 ‘기택’이 가족들을 모아 놓고 전통을 내세우며, 가족의 가치를 말하는 대목이라든가, 수능에서 수도 없이 실패했던 아들 ‘기우’가 ‘교육’의 이상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 딸인 ‘기정’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해외 대학이나 미술가들의 이름은 모두 실체를 갖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힘을 갖는 상징이다. 허영과 기대감이 교차할 때, 실체 없는 상징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반면, 스타트업이 성공하여 벼락부자가 된 ‘동익’과 ‘연교’의 집은 상징이 결여된 실체로 가득 차 있다. 유명 건축가가 지었다는 집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집의 예술적 가치가 아니라 자본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바로 ‘동익’과 ‘연교’가 매혹된 상징과 그 상징의 연쇄로서의 구성된 세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연교’는 자신과 오래 인연을 맺어왔다는 과외선생 ‘민혁’으로부터 ‘기우’를 소개받고, 소개라는 인간의 관계에 의한 보증을 강조하지만 그러한 보증이나 신용 등은 ‘기우’ 등이 거창하게 늘어놓는 상징에는 무력하다. 하긴 누구라고 매혹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역사적으로 이야기해본다면, 자본의 힘을 가지고 귀족의 신분적 정통성을 누르고자 했던 부르주아 계급이 자기를 구별 짓기 위한 방편으로 구성한 계급적 취향이 바로 이러한 예술이나 지식의 상징에 대한 매혹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귀족 사회에도 이러한 취향은 없지 않았으되, 자본이라는 양적 기준이 신분이라는 질적 기준으로 옮겨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특수성이 바로 이처럼 상징에 취약한 문화적 경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나 지식, 예술에 대한 태도 등은 여전히 과시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자기 취향을 보여주는 상징 형식에 무기력한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동익’과 ‘연교’의 집은 바로 그러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오랜만에 자본주의의 문화적 상징을 읽어낼 수 있는 영화(물론 그 영화 자체도 하나의 상징이며, 그것을 읽어내는 것도 지식적 상징을 구축하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를 보면서 내가 떠올린 작가는 다름 아니라 미국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F. Fitzgerald·1896~1940)였다. 이 대목에서 다름 아니라 무려 백 년 전의 소설가의 소설을 떠올린 것에 대해 다소 의아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 영화 ‘기생충’과 스콧 피츠제럴드의 예를 들어 ‘위대한 개츠비’같은 작품은 분명 백 년의 시대적 차이를 걸쳐 두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예술적 전형을 공유하고 있다. 분명 앞선 시대 부르주아 자본주의계급의 천박한 문화를 비판했던 에두아르 마네(00C9douard Manet·1832~1883)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 문화적 상징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서 시작된 것이면서, 부르주아의 문화적 소비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 소비를 강화한다는 이중적 양식을 보여준다는 동일한 예술적 이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1920년대 초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닉 캐러웨이’는 예일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인물이고, 이제 주식과 채권을 공부하여 자본주의 경제로 편승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웃에 사는 ‘제이 개츠비’를 알게 되는데, 그는 엄청난 부자로 매일 파티를 열고 있으며, 아무도 그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개츠비’의 파티 속에서 미술작품이나 음악, 책을 매개로 한 지식 등은 모두 진지함이 아니라 ‘개츠비’라는 부르주아의 이상을 실현한 가장 완전무결한 취향을 가진 대상을 의심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된다. 파티에서 ‘개츠비’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진짜라고 놀라워하는 대목이나 ‘개츠비’의 재즈에 대한 취향을 보여주는 ‘블라디미르 토스토프’의 최신작을 연주하는 대목 역시 마찬가지이다.말하자면, ‘개츠비’는 기대와 의심, 그리고 취향과 감식안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자본주의적 상징이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상징에 매혹되어 그의 비밀스러운 삶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말하고, 어떤 이들은 그가 갖고 있는 엄청난 자본의 근원이 불법적인 밀수에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자 시도한다. 결국 이 ‘위대한 개츠비’의 서사는 바로 실체 없는 상징과 상징 없는 실체 사이에서 일어난 욕망과 다툼이 초래한 개츠비의 비극 위에 조립되어 있는 셈이었다.이 ‘위대한 개츠비’와 달리 영화 ‘기생충’에는 닉 캐러웨이 같은 ‘진실한 친구’ 혹은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는 관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의 서사에 대한 관점 내지는 미학의 차이이며, 사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존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마치 ‘개츠비’에게 집약되어 있던 자본주의적 취향과 자본력은 각각 나뉘어 그 사이의 물고 물림으로 표현된다. 사실 백 년 사이가 만들어낸 서사의 변화라고 한다면 약소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의식 속 어떤 부분은 결코 쉽게 변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이처럼 이 백 년의 시간을 걸쳐 연결된 소설과 영화 속에서 겉으로는 반짝반짝 거리는 상징의 세계는 사실 엄청나게 매혹적이지만, 또한 엄청나게 허약하다. 쉽게 균열을 일으킨다. 이는 ‘자의식’ 같은 것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오랫동안 가져왔던 버리기 어려운 삶의 습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냄새’로 표현한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개츠비가 남긴 수첩 속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계획표로 표현했던 것과 꽤 달라 보이지만 사실 같은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상품의 상징이 호명하는 취향에 매혹되면서도 살아나가는 절박감에 의해 균열과 파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 상징이라는 거미줄에 걸려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7-01

달성공원

대구 달성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면서 보존 상태도 가장 좋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달구벌의 옛 성읍 중심지다. 신라시대 때 달구화(達句火) 혹은 달불성 등으로 불린 것은 달구벌에서 유래한 탓이다. 신라시대 경덕왕 때 달벌을 한자명으로 고치면서 대구(大丘)로 바뀌었다. 지금의 대구(大邱)는 조선시대 와서 사용된 명칭이다.1천800년 전 토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달성공원은 대구의 뿌리이자 본류라 할 수 있다. 고대 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의 생활 중심지며 터전이다. 달구벌이란 명칭이 지금까지 어어져 온 것만으로 대구의 정체성 등이 집약된 장소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고려 이후 달성 서씨가 대대로 살아 왔으며 조선 세종 때 서씨 문중이 이 땅을 국가에 헌납하였다.1905년 고종 때 공원으로 처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대구신사가 이곳에 들어섰으나 해방 후 곧 철거되었다. 1967년 대구시가 이곳에 새로운 공원조성 계획을 세워 만든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대구의 최초의 공원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시설이 낡아 젊은이들도부터는 비교적 큰 인기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대구의 본류답게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와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 달성공원의 가치성은 높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토성이란 의미와 함께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이 대구로 이전하면서 처음 자리를 잡았던 역사성도 간직한 곳이다. 대구읍성이 헐리면서 정문인 관풍루가 이곳으로 옮겨져 와 있다. 달성 서씨 유허비, 동학혁명의 최제우상, 일제시대 순종이 다녀간 비운의 길과 이야기, 키다리 문지기 아저씨, 동물원 등 숱한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곳이다.세계적 명성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중 두 명이 대구 출신이다. 뷔와 슈가가 바로 그들이다. 그 중 뷔의 고향이 대구 달성공원 인근 동네이며, 그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달성공원에서의 추억들을 SNS에 소개해 화제가 됐다. 최근 일본의 모 잡지는 ‘한국에 가면 꼭 봐야할 BTS성지 순례지’를 소개하면서 대구 달성공원과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해안 등 우리지역 두 곳을 포함시켰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감안한다면 달성공원 등이 관광지로서 대박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30

길 잃은 ‘황포돛배’

안재휘 논설위원지난 1992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가 내놓은 ‘W이론’은 반향이 대단했다. ‘W이론’은 한국인의 전통적 기질인 신바람과 흥을 산업현장과 우리 생활에서 불러일으켜 어려운 상황을 획기적으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교수의 저서 ‘생존의 W이론’에 나오는 ‘황포돛대 이론’은 어디로 가는 배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노만 젓고 있는 어리석은 행태를 통렬히 비판한다.집권 3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실정 행태가 심각하다. 거의 전 분야에 있어서 난정(亂政)이 확산하고 있다. 문 정권이 핵심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를 통한 안보 추구부터 여의치 않다. 북한과 미국 틈바구니에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한국외교는 한마디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미국은 미국대로 흔쾌한 모습이 아니고, 북한은 또 나름대로 서운한 표정이 역력하다. 문 대통령이 자처했던 조정자 역할에서 한계를 드러내면서 모종의 오해를 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군 철수’를 포함하는 김정은의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문 대통령이 미국과 우리 국민에게 ‘북한 비핵화’로 잘못 의역(?)한 업보로 읽힌다.정치 분야는 끊임없는 보복 논란으로 점철되고 있다. ‘적폐청산’의 탈을 쓴 조직적이고 악착같은 정치보복은 이 나라 정치력 진화의 발목을 잡는 참담한 족쇄다. 야당과 유례없는 소통을 통해 새로운 정치문화를 일궈가리라 기대했던 문 대통령의 정치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70%가 넘는 국민지지율에 만취해 적대 정치의 적폐만 산처럼 쌓아 놓았다.경제는 또 어떤가. 아무런 검증도 안 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희한한 경제정책을 들고나와 최저임금을 왕창 올리는 바람에 근근이 중산층의 꿈을 일궈가던 수많은 뒷골목 영세상인들을 거지로 만들었다. 아르바이트비 인상으로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만화에도 안 나올 얄궂은 논리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도 반성조차 없이 직진이다.이쯤 되면 야당이 떠야 맞다. 집권당이 연달아 죽을 쑤고 있는 동안 이 나라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한술 더 떠서 개죽을 쑤고 있다. 수십 년 독과점 지역주의의 뜨뜻한 청백전 정치의 관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듯한 자유한국당의 지리멸렬은 차라리 고질병이다. 서 푼어치 가치도 없어진 극우 꼴통의 논리로 제자리 땅따먹기나 하자는 치들의 악센트만 높아지고 있다.그리 멀리 갈 것도 없다. 섣부른 인적청산에 앞서 ‘가치논쟁’부터 시작하겠다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 시절의 밑그림을 다시 묻는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수구꼴통’·‘반평화 세력’·‘부패집단’·‘부자들만 편드는 정치인’·‘기득권 수호세력’·‘패거리 정치의 화신’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를 청산했는가.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황교안의 등장은 화려한 변수였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황교안의 안착은 90%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작용에 불과하다. 집권세력의 행태가 싫어서 욕하고 돌아서면 그래도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긴 했다. 그런데 잠시만 더 바라보면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여야를 불문하고 다들 부지런하다. 정부 여당은 포장만 그럴싸한 서툰 정책 속으로 애꿎은 국민만 숱하게 욱여넣어 울리고 있다. 혹시나 하고 돌아보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더 한심하다. ‘가치논쟁’은 결론을 냈는지 말았는지, 시대정신은 깨달았는지 말았는지 권력 연장에만 혈안이 된 구닥다리 정치꾼들의 욕심 사나운 궤변만 난무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노를 저어대고 있는,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이끄는 한심한 ‘황포돛배’ 위에서 대한민국 민초들은 지금 덧없이 표류 중이다.

2019-06-30

먹구름 너머 눈부신 세상을 만나려면

그 해가 반쯤 지나갔을 때, 페스트에 휩싸인 그 도시에 여러 날 동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오랑 시민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이 도시가 세워진 곳이 고원 위인지라 바람은 아무런 자연적 장애도 만나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거칠게 거리로 불어치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3부’.알제리 북부 항구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출몰합니다. 쥐들이 피를 토하며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도시는 페스트의 창궐로 폐쇄됩니다. 도시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 카뮈는 이들이 페스트를 겪으며 무기력해지는 참상을 그립니다. 고원 위로 불어와 도시를 관통하는 칼바람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듭니다. 페스트균이 바람을 타고 도심 한복판까지 파고들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지요. 날씨는 삶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맑고 햇볕 따스한 날은 왠지 넉넉하고 기분 좋고 습한 날씨에는 괜히 짜증 납니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날씨에 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면 오랑시 사람들은 죽음이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사회적 날씨(social weath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물리적 날씨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좁게는 가정으로부터 직장, 학교, 지역사회, 넓게는 국가, 민족, 인류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내가 속한 사회의 분위기가 끼치는 영향을 날씨에 빗댄 표현입니다. 폭우가 몰아쳐도 번개가 번쩍여도 비행기는 이륙을 강행합니다. 안전하게 이륙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먹구름을 뚫고 올라갈 수 있으면 그 위에 눈부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먹구름 아래는 천둥이 요란하고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 짙푸른 하늘,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지요.사회적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인 삶의 비결은 먹구름 위로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내면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힘을 엘리베이션 파워(Elevation Power)라고 합니다. Elevation에는 ‘위로 올라가다’라는 뜻 이외에도 ‘고결한’이란 뜻도 있습니다. 부단히 내면의 정원을 가꾸는 정성이 이런 고결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날씨는 변화무쌍하게 계속될 것입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반사적 삶이 아닌, 내면의 가치에 이끌려 살아가는 주도적 삶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먹구름 위 눈부신 삶은 내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목적지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19-06-30

아리,랑

김현욱 시인“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은 존재로 언제 어딜 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입니다. 완성된 곡이나 음계 없이도 노래를 아주 잘 합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푸른 눈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말이다. 헐버트는 1896년 2월,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에 문경아리랑을 서양음계로 처음 채보해 공개했다.아리랑은 출처도 기원도 어원도 불분명하지만, 남과 북을 통틀어 모두 60여 종 3천600수가 전한다. 그중에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3대 아리랑으로 친다. 정선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밀양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진도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후렴구가 반복된다.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대표 민요로 ‘아라리’라고도 불리며, 메나리조 가락의 애잔한 후렴구가 특징이다. 밀양아리랑은 경상남도 지방에서 전승되며 빠르고 경쾌한 세마치 장단이 특징이다. 진도아리랑은 전라남도 일원에서 불리며 육자배기 토리로 기교성이 뛰어나다. 이처럼 아리랑은 각 지역마다 장단과 구성음이 다르지만, 후렴구는 기억하기 쉽다. 아리랑은 두 줄 시에 두 줄 후렴만 붙이면 어떤 가사든 아리랑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리랑과 관련된 해프닝 하나. 대학 시절 국악 수업 중에 장구 치면서 정선아리랑을 부르는 실기평가가 있었다. 학점 F를 서슴없이 날리는 괴짜 국악 교수라 다들 긴장했는데 나 역시도 마른 침을 삼키며 장구채를 집어 들고 정선아리랑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어이없게도 밀양아리랑이었다. 교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매천야록’에 따르면 고종 때 궁궐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각 지역의 아리랑은 경복궁 중수 작업 동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부역하러 온 민초들이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아리랑을 불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나운규(1902∼1937)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했다. 1926년 단성사에서 첫 상영을 했는데,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항일정신과 민족의 애환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리랑’의 주제가로 쓰였던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자진아라리’의 곡조를 경기도식 ‘경토리’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서양 음악을 공부했던 김영환이 서양식 오음계로 아리랑의 곡조를 편곡했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불리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아리’는 과연 무슨 뜻일까? 성기완 시인이 한겨레 신문(2016년 5월 21일)에 발표한 아리랑의 ‘아리’ 해석 시도가 이채롭다. 성기완 시인은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알혼 섬, 몽골 초원, 백두대간 등지에 발견된 여러 문헌에서 ‘아리’의 기원을 찾았다. 광개토대왕릉비에 한강은 ‘아리수(阿利水)’라고 적혀 있다. ‘아리’는 ‘크다’는 뜻의 옛 우리말이라고 한다. 몽골어로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란다. 성기완 시인은 ‘아리땁다’, ‘아리다’, ‘아름다움’도 ‘아리’의 파생적 쓰임이라고 봤다. 아리랑의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럽고, 존재하고, 아름답고, 아프고(스리고), 알고, 깨닫고, 느낀다’라는 뜻을 지닌 실로 어마어마한 말이다. 오늘날 아리랑은 응원가부터 합창, 관현악 등으로 다양하게 연주되고 있다. 아리랑은 ‘아리’가 가진 넓고 깊은 뜻처럼 변화무쌍한 변주와 편곡이 가능한 열린 노래이다.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약 250만 명, 2028년에는 5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한다. 단일이 아닌 다문화 대한민국에서 ‘아리랑’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아우르고 달래줄까?

2019-06-30

북미 3차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노딜(no deal)회담으로 끝나버렸다. 트럼프보다는 김정은의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프로그램을, 김정은은 영변핵시설의 폐기만으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북미는 종래와 달리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책임전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양 정상은 언론을 통해 상대에 관한 호의적 입장을 표출하며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갔다.트럼프는 지난달 29일 G20정상회의에서 트위터를 통해 29~30일 방한 기간 중 방문하는 비무장지대(DMZ)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30일 비무장지대(DMZ)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트럼프는 이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쪽에서 김정은에게 워싱턴을 방문해달라고 말했다.물밑에선 북미 실무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3차 북미 회담이 성공하려면 북미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여야 한다. 그것이 3차 북미회담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은 기본적으로 비핵화에 관한 실무적 합의 없이 정상 간의 합의에 맡긴 회담이다. 북한의 다급한 제재해제 요구와 미국의 완전 비핵화 요구가 합의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만으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외의 소위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한 결과이다. 이 회담은 실무진의 합의 없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의 정상회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요구를 거부한 배경에는 미국 내 강경 보수층의 반대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김정은 역시 정상 간의 ‘통 큰 일괄 타결’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그러나 북미 간 3차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의 초미의 관심은 내년 대선 승리에 있다. 그는 공화당 내의 대북 강경 매파뿐 아니라 보수성향의 군산복합체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트럼프가 임기 중 완전하고 불가역의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면 대선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다. 이것이 트럼프가 3차 정상회담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북한 김정은 역시 북미 회담 재개를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김정은이 선포한 ‘경제 발전 노선’은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이 지속될수록 김정은은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제재라는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트럼프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향해 북의 완전한 비핵화만이 북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우리 정부는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북·중 회담에서 중국도 휴전 협정의 당사자로 핵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 나섰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모양새이며 북미 타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돌발 변수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확고한 안전부터 담보해주어야 한다. 이번 회담이 성사되면 북한이 주장하는 톱다운 방식보다는 실무회담 중심의 바텀업(bottom up)방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북미는 ‘북한의 비핵화 실질 조치→국제사회 제재 해제·남북 경제협력 활성화→동북아 공동번영’이라는 이정표에 합의하여야 한다. 북미회담의 합의는 여전히 어려운 과정이며 당사국의 인내가 요구된다. 북미 정상 회담이 성공하려면 양국의 신뢰부터 확실히 담보되어야 한다.

2019-06-30

‘기생충’의 상징물

내 봉준호 감독 첫 영화는‘괴물’이었다. 아니었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살인의 추억‘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향숙이 이뻤다.”가 재밌기는 했지만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가 썩 명료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더’는 어땠던가? 지인들 중에는 주인공의 연기 때문에 너무나 몰입했다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나는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모성애의 덫을 그린다고 보면 되지만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정곡을 찌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나친’ 그로테스크 때문일까?‘괴물’에서는 한강에 괴물을 살게 하는 원인 물질에 관한 서두 부분이 썩 마음에 편치 않았다. 미군 부대에서 어떤 용액을 한강으로 통하는 하수구에 흘려 넣는데, 이것이 괴물을 낳았다면, 미군이나 미국이 한반도를 주름잡는 ‘괴물’의 실체라는 의미일까? 아니, 그냥 유머로 넣은 것이다? 원인이야 어쨌듯 그 후가 중요한 것 아니냐? 상황 설정을 위한 고심책이었다?봉준호 감독의 알레고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점이 있다. 래디컬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한국 사회의 실체로부터 약간 비껴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으로 거장을 비판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황금종려상 ‘기생충’에서 기택의 아들 기우는 과외를 소개시켜 주는 친구로부터 수석 하나를 얻는다. 무거운 돌이다. 영화 앞부분에 엉뚱하게 수석이 나오니 이건 분명 알레고리나 상징으로 해석해야 할 물건이다. 나중에 수해가 나서 반지하방이 전부 물에 잠길 때 기택의 식구들은 저마다 자기한테 중요한 걸 하나씩 들고 나오는데, 기우는 다른 것 아니라 이 무거운 수석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수석은 어떤 의미일까. 탐스러운 돌인가? 아름다운 돌인가? 물에 잠긴 반지하방에서 기우는 이 수석을 들고 나와 그것으로 동익의 비밀 지하실에 숨어살던 사내와 그를 남편으로 여겨 살던 전직 가정부를 살해하려 한다. 그러면 자기 식구들의 ‘기생충’ 생활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일까?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왜 그러한 무모한 계획을 감행했던 것일까? 이 영화는 하루낮의 난장판 살해극이 벌어진 이후에도 엔딩이 내려지지 않는다. 기우는 어쩐 일인지 집행유예로 나오고 아버지 기택이 다시 동익 집의 지하실에 숨어 살며 아들을 향해 모스 부호를 띄우고 그것을 기우가 받아낸다. 살해극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현실성 전혀 없지만 그것을 탓할 여유는 없다. 또 알레고리, 상징 영화에서 무슨 현실성을 찾나? 좀더 그럴싸 했다면 더 좋아겠지만 말이다.그보다 결국 무슨 수단, 방법을 썼는지 돈을 벌어 그 집을 사 아버지와 해후하는 마지막 장면은 일종의 원한 감정, ‘르상티망’의 ‘완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기묘한 수석은 이 원한감정의 상징물의 위상을 확인하게 된다.나는 2018년 10월에 ‘한국의 물질주의에 관하여’라는 글을 쓰면서 물이 차오르는 반지하방의 책장에서 파스칼의 ‘서한집’한 권을 들고 나왔다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도 숨겨 놓은 금덩이를 가지고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대신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금욕적으로, 책 한 권을 들고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기생충’의 엔딩보다 이 시인의 장면이 더 좋다.한국의 예술은 지금 젊은 작가들의 소설도 거장들의 영화도 물질주의적 상상력에서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같다. 물론 이 말은 ‘기생충’의 성취를 부당히 낮춰 보겠다는 뜻은 아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6-27

기초연금제도 시행 5주년에 즈음하여

정경화 국민연금공단 포항지사장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17(pensions at a Glance 2017)’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5.7%로 2위 라트비아(26.5%)와 전체 OECD 회원국 평균 14% 수준을 상회하는 독보적인 1위이다.노인 자살률 또한 10만명당 54.8명으로 OECD 1위를 기록 중으로 급속한 노령화와 함께 노인문제 역시 심각해지고 있는 셈이다.지금의 어르신들은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던 시절 고도성장을 이끌며 젊음을 바쳤으나, 가족 부양과 자녀 교육 등으로 정작 자신의 노후에는 신경 쓰지 못한 세대이다. 핵가족화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와 시간·경제적으로 어려운 젊은 세대에 과거와 같은 부모 봉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안정된 노후보장을 위해 1988년부터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됐지만 제도가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아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국민연금을 받더라도 가입기간이 짧아 충분한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다행히 국가에서 2008년 1월부터 시행해 온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대폭 손질해 2014년 7월부터 기초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초연금제도 도입 당시 424만명이던 수급자는 지난해 연말 512만여명으로 크게 늘어났고, 지급금액도 2019년 4월부터 일반수급자는 최대 25만3천750원, 소득 하위 20%인 저소득수급자는 30만원으로 인상됐다.현재 국민연금공단에서는 기초연금제도에 대한 홍보와 신청을 안내하고 있다.만 65세가 도래한 어르신에 대한 서면과 전화 안내 및 모바일 안내를 신청했으나 탈락한 분에 대한 맞춤형 개별상담, 거동불편이나 생계 등으로 신청이 어려운 어르신들에 대한 찾아뵙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단전·단수 가구, 거주불명등록자 등 기초연금이 꼭 필요한 어르신을 발굴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기초연금 시행 5주년을 맞이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의 일원으로서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소득보장의 근간이 될 수 있도록 찾아가는 국민연금, 함께하는 국민연금으로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2019-06-27

망전필경(忘戰必傾)

영국은 우리의 현충일을 포피 데이(Poppy Day)라 부른다. 포피란 길고 가느다란 줄기 끝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개양귀비 꽃을 말한다. 개양귀비는 중국에서는 항우의 애첩 우미인의 무덤에서 피었다 하여 우미인초라 한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이 사라져간 플랜더스 벌판에 핀 개양귀비의 꽃에서 이름을 따와 기념일에 새겼다. 이 날은 모두가 꽃을 가슴에 달고 전쟁 영웅의 정신을 추모한다.나라마다 현충일을 정해 엄숙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는 것은 국민에게 나라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조선시대도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던 관서로 공훈부를 두었다. 시대에 따라 나라마다 공훈의 의미는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이 끝난 후 전사한 전몰장병 합동 추도식을 거행하다 1956년부터 국가 기념일을 지정했다. 이날만큼은 모두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호국정신을 추모하고 기리자는 뜻이다.예로부터 우리의 조상은 24절기 중 9번째 절기인 망종(芒種)일을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가장 좋은 날로 꼽았다. 좋은 날이라 하여 이때쯤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많았다. 망종은 음력 5월로, 양력으로는 대체로 6월 6일 무렵이다. 현충일이 제정된 것도 망종날을 기준으로 삼았다.호국보훈의 달인 6월도 다 지나간다. 이 달은 현충일과 6·25 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 등이 있은 달로 우리가 이런 일로 희생된 많은 이들의 호국정신을 깊이 새겨야 하는 달이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올 호국보훈의 달은 유난히 안보를 우려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해 국민의 걱정을 키웠다.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 논란이나 최근 일어난 북한 어선의 삼척항 접안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이런 것들이다.북한과 중국은 시진핑의 방북을 계기로 새로운 밀월시대를 선언했다. 안보 불안을 두고 논란을 벌일 만큼 우리의 처지가 여유롭지 않은 때다. 전쟁을 망각하면 나라가 위태롭다(忘戰必傾)는 말 되새겨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27

합종연횡, 비방(秘方)아니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합종연횡(合從連衡)은 중국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秦)과 군소국가인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의 6국 사이에 쓰였던 외교 전술이다. 합종과 연횡의 두 외교정책을 합한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귀곡자의 제자인 소진과 장의였다. 소진은 우선 연을 비롯한 5개국에 남북으로 합작해서 방위동맹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공존공영의 길이라는 ‘합종책’을 들고 나왔다. 소진은 ‘진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설득, 6국을 종적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공수동맹을 맺도록 했다. 이것을 합종이라 한다. 그는 육국의 군사동맹을 성공시킨 다음, 그 공로로 육국의 재상직을 한 몸에 겸하고, 자신은 육국의 왕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장 노릇을 하게됐다.위나라 장의는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나라와의 연합책만이 안전한 길이라고 강조하며, 6국을 돌며 연합을 설득,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장의의 책략이 소진의 합종책을 사실상 깨뜨린 셈이다. 이것을 연횡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은 합종을 깬 뒤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했으니 힘이 약한 국가가 강대국에 맞서려면 힘을 모으는 게 순리임을 보여준다.우리의 정치상황을 옛 춘추전국시대에 빗대보면 무척 흥미롭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여당이니 당시의 강대국인 진나라에 해당할 것이고,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이니 군소나라로서 합종책을 통해 나라를 보전하려는 연나라로 볼 수 있겠다, 그외 정당들은 이리저리 휩쓸리는 여러나라에 해당한다. 다만 지금 형국은 군소국들이 힘을 합쳐 강대국에 대항하는 합종의 형세가 아니라 강대국과 몇몇 군소국가간 연횡이 먼저 이뤄진 모양새다. 따라서 한국당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다른 소수정당과 손을 잡고 합종책을 성사시켜야 할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4당이 패스트트랙을 위해 먼저 연합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왕따시키면서 지금의 국회파행사태가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돌이켜보면 자유한국당은 지금도 얼마든지 국회에서 야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데, 자꾸만 장외로 치닫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삶을 살면서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인생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밖으로 건널목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멀리 보이는 언덕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떼들, 발전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줄지어 늘어선 옥수수밭과 밀밭, 평지와 계곡 등을 감상에 젖어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온통 쏠려있는 것은 바로 종착역이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역에 도착하기만 하면~” “내가 열여덟이 되기만 하면~” “은행에서 빌린 돈을 다 갚기만 하면~” 그리고 “직장에서 은퇴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난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거야!”라고 다짐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그런 장소는 없다. 삶은 매 순간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자유한국당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대통합만 되면~”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만 하면~” 그리고 “우리가 정권을 잡기만 하면 이 나라를 더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수 있어!”라고 외친다. 과연 그럴까. 누가 그말을 믿겠나. 오히려 현재 제1야당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쉽다. 파행국회를 접고, 국회안에서 국민의 뜻을 전해야 한다. 정부여당이 자기 환상에 빠져 독주하거나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도록 견제해야한다. 앞뒤 맞지않는 경제정책에는 새로운 대안을 내놓으며 권고하는 모습도 보고싶다. 그런 야당이 되길 바란다.정국구도를 바꾸는 합종연횡이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이 나라, 이 국민에게 비방이 될 수는 없다.

2019-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