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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독재

등록일 2020-01-02 20:23 게재일 2020-01-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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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다수의 독재’가 우리 국회를 점령했다는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다수의 독재’란 말은 지난 1993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빌 클린턴이 법무부의 시민권담당자로 지명했다가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지명철회했던 흑인 여성법학자인 라니 귀니에르가 강조했던 개념이다. 급진적 진보주의자로 자처한 귀니에르는 “다수에 의한 통치가 실제로는 공정하지도 않으며,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 뿐 더러 오히려 ‘다수의 독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제임스 메디슨 역시 51%가 강요하는 ‘다수의 독재’는 모두가 피를 흘리며 저항했던 왕정독재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혹자는 다수결의 원칙인 의회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다수의 독재란 말은 지나치다고 말한다.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측이 자신들의 뜻대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리다. 원칙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게 맞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다.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소수라고 해서 결코 무시돼선 안되는 이유다. 특히 국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거나 바꿀 때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과반수가 안되는 여당이 군소야당을 규합해 4+1협의체를 구성, 법안과 예산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조리 통과시킨 행위는 나머지 100여명이 넘는 선량을 지지한 국민의 뜻을 모조리 무시하는 짓이다. 다수결 원칙의 공정성에 대한 신념이 지나쳐 ‘승자독식’의 오만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면 ‘다수의 독재’란 비판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

특히 지난 연말 여야 4+1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없이 통과시킨 것은 다수의 독재가 불러온 최대 참사라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도 선거법은 총선이라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일이란 점에서 합의를 통해 바꿔왔기 때문이다. 이어 여야 4+1협의체가 공수처법까지 통과시키자 자유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것도 필연적인 수순이다. 야당으로서 국회 내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선언이자 여당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뜻일게다. 현실적으로 총사퇴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지만 합의정치는 실종되고 말았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에 대해 경북의 한 재선의원은 “여당은 야당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볼 뿐 대화나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젊고 유능한 스타급 정치인으로 평가받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이철희 의원은 최근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386세대 용퇴론을 넘어 정당개혁, 국회 개혁, 개헌 등 정치개혁을 통해 국민과 같이 가는 정치가 작동하도록 판갈이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수의 독재는 여야 모두에게 정치실종의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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