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로 서랍을 정리하다 여권이 만료된 것을 알았다. 새로 발급을 받기로 했다.
집안일을 미루고 사진을 찍고 구청으로 갔다. 점심시간이라 4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구청 안 카페에서 음료수 한잔을 시키고 휴대폰을 열었다.
어디선가 한국인이 유독 여행을 좋아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아 검색을 해 보았다. 한국은 대도시 중심의 생활, 빠른 정보소비, 업무의 고강도, 경쟁의 압박 등으로 새로운 자극을 찾는 경향이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확실히 다른 세계’를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경험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해진 루틴을 따라 사는 것을 나는 선호한다. 모르는 길보단 아는 길을 가는 것이 좋고 해오던 방법을 사용하며 사는 것에서 안정을 느낀다. 자주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마음을 열고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어색해서 만남이 쉽지 않다. 그래도 가끔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 여행을 생각한다.
내게 여행은 두 마음을 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낯섦이 주는 두려움과 설레임. 출발하기 전 갈 곳의 자료를 통해 볼 곳과 먹을 것을 찾아보면서 설레임을 느낀다. 새로운 장소를 거닐며 만날 뜻밖의 풍경과 나와 같은 듯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 상상만으로도 설레임은 증폭된다.
낯섦 속에서 시작된 설레임은 여행을 하면서 때로 두려움으로 그 얼굴을 바꾼다. 모르는 길을 여러 번 묻거나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과정은 불안함을 키우며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무능을 느끼게도 한다. 가끔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도 한다.
지인들과 처음 패키지로 해외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었다. 유난히 더운 날이었고 국경일이라 광장엔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룹 별로 자유롭게 구경하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갔는데 너무 더웠다. 가이드가 다른 쪽 그늘에서 만나자고 해서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픈 다리를 쉴 겸 한 걸음 정도 앞에 앉았다. 약속된 시간에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일행이 없었다. 우리를 두고 가 버린 것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갔다. 가이드 뒤를 병아리처럼 쫓아만 다녀 숙소 이름을 기억하지도 적어놓지도 않았었다. 여권도 가이드가 다 가지고 있었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미아가 된 것이다. 지금이야 폰이 있으니 어떻게라도 연락이 되었겠지만 그 당시는 휴대폰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두 친구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반은 울며 발을 동동 구르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가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우리 셋은 무작정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거의 한 시간쯤 뒤 가이드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저쪽에서 달려왔다. 당연히 있는 줄 알고 인원 점검을 안 했다며 사과를 했다.
그 날 가이드가 일찍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두고두고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 날 이후 여행 시에는 여권을 복사해두고 숙소 이름과 전화번호 영사관이나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적어두게 되었다.
미아가 되었던 여행의 두려움은 초조해하기만 할 뿐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했다. 모든 것이 익숙했던 평상시의 삶에서는 몰랐던 모습이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낯섦 가운데에서 생동감을 얻는다. 설레임과 두려움은 여행이 진행되면서 설레임이 커지기도 하고 두려움이 커지기도 하면서 소중했던 시간으로 추억으로 내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다.
결국 여행은 그런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나를 발견하며 지경을 넓혀가는 일인 것 같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새로움을 익혀가는 일. 나와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일. 그것이 내가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고 싶은 의미인 것 같다.
일주일 후 여권을 찾기로 하고 나서는 길에 보이는 봄꽃들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화려한 유혹의 계절이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