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창문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밖에서 안을 거의 들여다볼 수 없다. 한 집만 그런가 하고 길을 가며 살펴보니 영업을 하는 곳 빼고는 대부분 집이 그렇다. 하얀색 커튼이다. 궁금했다. 자신을 잘 드러내길 원하지 않고 민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흰 커튼은 안과 밖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은 차단하지만 빛은 통과시키면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닫힌 커튼을 보면서 여행 내내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같은 아파트에 비슷한 또래들이 많이 있어서 엄마들끼리도 친해졌다. 육아와 공부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으니 초반엔 아주 좋았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나면 모여서 차를 마시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그러다보니 집안 사정을 세세히 물어보는 엄마가 생겼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해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말했으니 너도 다 말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 엄마들에게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모든 것을 열어 보여주고 나누며 함께 하는 것이었다. 처음의 가까움은 날이 가면서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부담이 되어 갔다.
얼마 후 사정이 생겨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결심한 것이 지나치게 엄마들이랑 가깝게 지내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살아왔지만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는 몇 안 된다. 이 친구들과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기간을 함께 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상대의 일을 알고자 하지 않는 무덤덤함이 그 가운데에는 있었던 것 같다.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캐묻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오랜 우정의 근간이 아니었을까. 속상한 일이 있어 이야기하면 들어는 주었지만 내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끈이었던 것 같다. 물론 가끔은 너무 무심한 것 같아서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덤덤함이 긴 시간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관계는 자주 만나고 많이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 가운데 친밀감이 쌓이면 우리는 밀접한 관계,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상대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이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라 생각해 자녀 문제라든가, 가족 관계, 심지어는 재정적인 상태까지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아침 이른 시간, 또는 밤늦은 시간에도 서슴없이 전화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한다. 관계라는 것이 무조건 다 보여준다고 더 친밀감이 쌓이는 것은 아니고 과도한 개입과 공유는 피로를 불러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반면 지나친 거리감은 잘못하면 단절을 불러올 수 있다. 겉으로만 관계가 형성되어 깊은 나눔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 두기와 적절한 절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대마도의 흰 커튼은 그런 의미에서 관계의 얇은 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과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인 것 같다. 커튼은 벽처럼 단단함으로 무장된 모습이 아닌 바람에 흔들리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완전한 차단도 아니고 온전히 열어둠도 아닌 적당한 닫힘과 절제가 관계의 기본값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잘 알고 싶고 더 나누며 함께 하고 싶은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다. 특히 문제가 생기면 개입하고 싶고 충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지만 서로의 관계를 위해 절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지켜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를 늘 고민하게 된다. 대마도를 갔다 오면서 인간관계에서 나도 흰 커튼 하나쯤 갖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흰 커튼은 관계의 완전한 단절이 아닌 관계의 유연한 경계라는 여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