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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개기

등록일 2026-03-29 16:02 게재일 2026-03-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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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시조시인

친한 친구의 이야기이다. 수건을 걷어 소파 위에 두었다. 털어서 널지 않은 수건이 삐뚤삐뚤하다. 아내는 각을 잡아 빨래를 널거나 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또 꺼내 쓸 것이고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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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개기.

남편은 평시에 수건을 탁탁 털고 비틀린 부분을 펴 각을 잡아 갠다. 어느 날부터 아내가 빨래를 걷어와 개려고 하면 남편은 그냥 두라고 이야기하며 본인이 한다. 어설프게 개어놓은 수건이 있으면 가져다 다시 접는다. 아내는 잔소리를 하려다가 참는다. 수건에서 슬그머니 겉옷으로 속옷으로. 이제 모든 옷을 개는 것은 남편 몫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슬쩍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행복하냐고. 남편은 당신이 항복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친구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아직도 남편이 왜 그런 답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오는 내내 그 두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과 항복은 획수 하나의 차이지만 의미는 상당히 다른 말이다. 행복은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반면 항복은 패배를 인정하고 적이나 상대편의 힘 아래 자신을 두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한 행복하냐고 묻기도 잘 한다. 행복에는 늘 쟁취나 비교라는 단어가 뒤따르는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소유하고 더 건강하고 높은 학업 성취나 지위를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학교를 들어가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 주변 사람보다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살며 안온한 삶을 즐기는 것. 그것이 행복의 잣대였다. 
항복은 굴복과 복종의 의미도 있지만 소유의 해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포기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건 또 수용과 내려놓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움켜쥐고 높아지려고만 하는 내 안의 나 앞에서 항복하기 위해서는 내려놓음은 필수적인 단계이다. 나의 불완전함을 알고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작게 피어나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삶의 여러 어려움 앞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려놓음을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우리들 속에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함께 앞서고 싶다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이에서도 우리는 배려나 양보보다는 나를 앞세우곤 한다. 아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더 이기려고 하고 상처를 주며 나를 각인시키려 한다. 그렇게 쟁취하면 행복한 듯이 말이다. 혹시라도 양보하면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이 느끼기도 한다.

친구는 빨래를 널 때도 탁탁 털어 널지 않는다고 했다. 그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남편이 각을 잡아 수건이나 옷을 개는 모습이 처음엔 시간 낭비처럼 보이기도 했단다. 남자가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단다.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잔소리하기 보단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남편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만약 그런 문제로 서로 작은 신경전을 벌였다면 그건 무척 피곤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소소한 것에서 내려놓음이 시작되었을 때 비로소 작은 싹을 틔우는 것 같다. 가까운 사이에서 자기주장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주장만 하는 것은 상처가 되어 상대의 마음에 쌓이게 된다. 그것이 굴복이나 복종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때론 한 발 물러나는 것이 삶에선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굴복이 아닌 나를 내려놓음으로 시작되는 내 안의 작은 항복은 옆의 사람과 타협이나 협상을 할 기회를 주게 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다.

하루를 행복함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의 작은 항복들이 쌓여야 한다. 그렇게 항복이 쌓여갈 때 행복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남편의 빨래 개는 모습이 이제는 때로 귀엽게 여겨진다는 친구의 얼굴 위로 떠올랐던 미소가 생각난다. 당신은 오늘 행복합니까 항복입니까.

/전영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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