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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등록일 2026-02-24 16:30 게재일 2026-02-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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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작가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은 눈부시다. 그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저마다 영원한 품질과 고결한 신뢰를 약속하는 신전처럼 군림한다. 나는 그 신전의 보증서를 믿고 대가를 지불했다. 그것은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그 이름이 지닌 ‘책임’을 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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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벌어진 부츠.

최근 오래 아껴 신던 부츠의 밑창이 악어처럼 벌어졌다. 익숙한 로고가 박힌 매장을 찾았을 때, 직원의 반응은 정중했으나 단호했다. “저희는 밑창을 수선하지 않습니다. 바깥에 있는 일반 수선집으로 가져가 보세요.” 지난달 고장 난 노트북 서비스센터에서도 같은 문장을 마주했다. “여기서는 고치기가 어려우니 사설 수리점에 맡기시는 게 빠를 겁니다.”

내가 산 것은 브랜드의 가치가 아니었다. 단지 유효기간이 정해진 화려한 껍데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판매라는 축제에는 열광하지만 노후라는 쓸쓸한 뒤처리는 모르는 척하는 것같이 다가왔다. 제 몸에서 떨어진 파편 하나 품지 못하고 길 위의 이름 없는 수선공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기업의 시스템은 비겁했다. 신뢰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정작 수선이 필요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당혹한 마음과 함께 발길을 돌리며 시선은 이내 나에게 향했다. 타인의 무책임을 비판하던 날 선 화살이 거울 속의 나에게로 되돌아와 박힌다. 나는 과연 내 인생의 라벨들에 걸맞은 함량(含量)을 채우며 살고 있는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이들을 마주할 때 혹시 보증기간이 끝났다며 아이들의 마음을 세상 밖으로 떠밀지는 않았는지. ‘아내’라는 이름으로 곁에 머물면서 남편의 해어진 고독을 수선해주기보다 사설 매장의 서비스 같은 건조한 위로만 건네지는 않았는지. ‘작가’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문장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화려한 수사(修辭)라는 로고 뒤에 숨어 독자를 기만하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이름값이란 찬란한 신상품의 상태일 때가 아니라 닳고 해져 수선이 필요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이름은 부르는 이의 편의를 위한 기호가 아니라 불려지는 이가 감당해야 할 생의 무게여야 한다. 내게 맡겨진 인연들이 고장나고 삐걱거릴 때 “나는 몰라” 하며 외주를 주지 않는 것. 내 안에서 발생한 균열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기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이름’이라는 성채를 품위있게 지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백화점의 문을 나서며 발걸음이 무거웠다. 품에 안긴 부츠는 이제 세련된 패션의 상징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 외면당한 유물에 불과했다. 나는 화려함을 뒤로 하고 낡은 간판들이 있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브랜드’라는 이름이 약속했던 안락한 울타리는 사라지고 나의 해진 밑창을 받아줄 손길을 찾아 낯선 거리를 헤매는 유랑자가 되었다. 수선점들은 죄다 문이 닫혀 있고 스마트폰 지도가 가리키는 수선점들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다. 골목마다 들어선 화려한 카페가 나의 고장 난 하루를 비웃듯 유리창을 번득였다.

추운 겨울날 길 위에서 보낸 그 막막한 시간은 단순히 수선처를 찾는 물리적 고통을 넘어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름값’의 실체가 얼마나 휘발성 강한 것인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자본이 설계한 성벽 안에서는 귀빈이었으나 수선이 필요한 지점에서 결함을 드러낸 순간 나는 번거로운 이방인이 되어 차가운 거리를 배회했다. 막막한 배회는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나 또한 누군가 내게 기대어온 상처를 ‘시스템’이라는 핑계로 문밖으로 밀어내며 그를 차가운 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동네 어귀에서 만난 낡은 수선집에서 나는 화려한 보증서 대신 기름때 묻은 앞치마와 세월을 견딘 투박한 도구들을 만났다. 수선하는 어르신은 브랜드의 계보를 묻지 않고 밑창의 상처만 묵묵히 응시했다. 그의 손길에서 죽어가던 밑창이 다시 붙어갔다. 진정한 이름값은 화려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먼지 쌓인 작업대 위에서 완성되어갔다. 자본의 논리가 거부한 폐기 직전의 그것들을 살려내는 그들의 손길은 나에게도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복원의 책무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매끈한 로고보다 이름 없는 수선공의 거친 손마디에서 더 깊은 신뢰를 다시 배웠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화려한 보증서를 내미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키며 고쳐 쓸 수 있는 성실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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