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경제에디터의 관점
지난 2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서 나타난 메시지는 정치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미국의 운영방식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관세로 재정을 확보하고, 에너지로 물가를 통제하며, 국경과 안보로 질서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경제정책이 다시 보호무역과 에너지 우위, 강경안보를 축으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변화가 미국 내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미국 변수’ 속에서 산업과 통상전략을 재정립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스탠스는 정면 대응도, 무조건적인 편승도 아닌 현실적 균형 전략이다. 최우선 과제는 관세의 일상화에 대비한 산업정책의 재설계다. 트럼프식 통상정책은 관세를 무역 수단만이 아닌 협상력과 안보 도구로 활용하는 데 있다. 이는 기업별 대응만이 아닌 정부 차원의 체계적 전략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업종별 원산지 기준과 공정구조, 미국 내 생산 및 조달 임계점을 종합 정리해 ‘규정 준수형 공급망’을 설계해야 한다. 특히 철강과 소재산업이 밀집한 대구·경북지역은 고급재 중심 구조 전환과 친환경 공정 경쟁력 확보가 관세 충격을 완화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비용을 복지나 정치 논쟁이 아닌 산업경쟁력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다. 미국이 저렴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문제는 가격 조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전력망 투자, 분산형 전원 확대, 장기전력구매계약(PPA) 활성화, 원전·재생에너지·가스의 현실적 조합을 포함한 ‘산업전력 로드맵’이 시급하다. 전력비용의 불확실성은 철강·화학·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의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며, 이는 곧 지역 산업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 과제는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시장을 다변화하는 통상 전략이다. 미국 중심 공급망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매출과 조달 구조까지 단일 시장에 의존한다면 정책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고 만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미국 규칙에 맞추더라도 시장을 다극화하는 ‘안보와 수익의 분리 전략’으로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결국 정부가 시급히 준비해야 할 정책은 세 가지다. 첫째, 업종별 관세 대응 산업 지도. 둘째, 전력망·요금·에너지 믹스를 포함한 산업 전력 로드맵. 셋째, 한국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 구간을 정리한 협상 카드 목록이다. 규칙이 바뀌는 시대에는 선언보다 설계가 중요하다. 전력과 산업, 공급망의 체력을 키우고 협상 가능한 카드를 확보하는 것 —이것이 관세·에너지·안보의 시대를 견딜 한국 경제정책의 현실적 좌표다.
미국은 다시 레버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방향이 아니라 준비의 수준이다. 그리고 당연히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의 지도자들도 이를 염두에 둔 정책 방향을 치밀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지금 선거를 준비하는 예비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