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그 무경계의 향기.
열다섯 해 전 우리 가족은 층과 층 사이에 갇힌 사각의 콘크리트 박스를 떠나 산자락으로 몸과 마음을 옮겼다. 흙 내음과 새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엘리베이터 버튼 대신 흙 마당 길을, 베란다 화분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땅을 얻었다. 그때는 ‘이사’라고 불렀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위로 쌓이던 삶이 옆으로 펼쳐지는 그런 일이었다. 막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백년 째 내려온 학성 이씨 종가 집 터를 고르고, 집부터 지었다. 집을 짓고, 담장을 치고, 나무와 꽃을 심는 순서였다. 정원은 내 손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서두를 일이 없었다. 담장을 치고 큰 돌들을 여기저기 던져 놓은 후, 군데군데 소나무를 몇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나서 가장 먼저 마당에 들인 꽃나무가 매화이다.
정원은 시간이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정원의 서사에는 거창함이란 없다.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면 그만인 일이다. 잡초를 뽑는 일조차도 즐거움이요, 운동이다. 그렇다! 정원은 반복의 기록이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성취와 속도의 문법이었다면, 산자락의 삶은 기다림과 느림의 문법이다. 꽃은, 명령으로 피지 않으며, 물을 준다고 곧바로 응답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나는 내 나름으로,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열다섯 해가 지나가는 동안 매화는 훨씬 단단해졌다. 줄기는 굵어졌고 가지는 단단해졌다. 해마다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고 향기를 드러내지만, 매년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어떤 해는 위로였고, 어떤 해는 설레임이었다. 올해는 향기가 유난하다. 뿌리 주변을 블록으로 덮어주어서 그런지 지난해보다 꽃이 더 풍성하고, 향기가 더 진하다. 늦은 밤, 달빛 아래서 집사람과 한참이나 이 녀석 근처에서 놀았다.
매화는 새해 정원의 첫소리이자, 그림이다. 향기가 소리가 되고, 향기가 그림이 된다.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피어나 봄을 재촉한다. 매화 향기는 소리보다 멀리 가는 노래이다.
성취의 표지가 아닌 견딤의 미학이다. 알 수 없는 깊이의 흙 내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향
기로 바꾸어 대지 위로 뿜어 올리다니!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피어나므로 경계가 없는 꽃이 매화이다. 겨울의 꽃도 아니고 봄의
꽃도 아닌 꽃. 겨울과 봄의 중간에서, 추위와 온기의 중간에서, 침묵과 향기의 중간에서,
바람과 고요의 중간에서 그렇게 피는 것이다. 안과 밖, 중심과 주변, 성공과 실패, 옳음
과 그름의 경계를 자신만의 향기로 지워버리는 꽃. 매화가 핀다 해도 겨울이 패배하지도,
봄이 승리하지도 않는다. 겨울이 봄을 초대하였음을 꽃과 향기로 알려주는 것이다.
옛 성현들은 매화를 군자의 절개로 여겨 추운 겨울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을 칭송했다. 퇴계 이황은 ‘매화는 천하의 으뜸’이라 말하며, 그 청빈한 기상에서 학문의 길을 보았고, 선비들은 매화 가지 하나에도 인격의 표상을 새겼다.
경계에서 피어나는 무경계의 꽃.
그대가 담을 넘고 마당을 가로질러 열린 창틈으로 스며들 때, 나는 커피를 내리지 않겠
습니다.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