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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꼬리’ 물지 마세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매너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아졌다. 줄을 서서 차례대로 탑승하는 건 물론, 승강장이 아닌 곳에서 버스를 세워달라고 억지 부리는 이들도 거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자가 되는 경우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사람의 성격은 운전할 때 모습으로 판단하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평소엔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종종 거칠고 무질서한 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꼬리물기’란 낯설지 않은 단어가 있다. 출퇴근 시간 막히는 도로에 차량이 가득하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통과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제 차만 진입시켜 다음 신호에 진입하려는 차량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자신만 편하자고 다수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 없는 짓이다. 꼬리물기는 운전자들 사이에서 다툼을 부른다. 욕설과 함께 심하면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걸 볼 때도 있다. 출근길 스트레스를 부르는 급작스런 클랙슨 소리도 야기하는 게 꼬리물기. 그럼에도 근절되지 않는 나쁜 운전습관이다. 최근 서울 경찰은 출근길에서 꼬리물기 집중 단속을 벌였다. 단 1시간 만에 200명이 넘는 운전자가 적발됐다고 한다. “너무 바빴다”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만 잡는가”라는 변명과 불만이 쏟아진 현장은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운전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꼬리물기 관행이 비단 서울에만 있겠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경북을 포함한 전국 도로 어느 곳에도 얌체 운전자는 존재한다. 꼬리물기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을 낮추고,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강화된 단속이 필요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06

해와 달의 길-장기 일출암(日出岩)

산다는 거, 가만히 응시하면 그래, 주관은 없어, 객관의 일직선을 증명하는 것 장기천을 걸으며 느꼈네 그 끝과 시작에 일출암이 있네 그냥 바위지만 큰 법당이네 달이 지고 해가 뜨는 순간을 의무적으로 지탱하고 있네 지나치는 길이라 눈여겨 보지 못할 변방이라 해도 차라리 그곳이 구룡포의 배꼽 가만히 바라보면 삶이 무력하고 고달파도, 바다를 바라보는 것 선험(先驗)이 그런 것이라고 넌지시 옆구리를 파고 든다 가치를 모르는 삶이 너무 많기에 하찮은 존재들이 오히려 나를 구축한다 나로서는 그리 생각하면 안 되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대충 잘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라고 일출암은 지적한다. ….. 일출암을 기준으로 해와 달의 길을 되짚어본다. 장기천은 그 좁은 수량에 감당하지 못할 역할을 거뜬히 수행하는데, 의미는 부여함으로 가치를 획득한다. 늘 갈숲 바람이 적당하다. 일출암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고고해서 스스로 빛난다. 육당 최남선이 동해십경의 하나로 명명한 것은 탁월한 식견의 결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인생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 되어야 한다. 한때 불려지고 마는 유행가가 되면 안 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1-05

감천마을, 읽다

부산을 찾았다. 부산문인협회가 주관한 시화전에 전국의 문인협회에서 작품을 보내고 참석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경주문협에서 보낸 시화가 전시실 입구에 걸려있었다. 늘 보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다가온 부산 문협사람들의 감성에 마음 또한 달달해졌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시화전 공간은 가득 찼고 식순이 끝났다. 부산문협이 계획한 부산투어가 시작되었다. 오년 전 소문으로 찾았던 감천마을이 스케줄에 있어서 변화를 볼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마음이 들떴다. 감천 문화 마을의 동남쪽에는 천마산이 있고, 북동쪽에는 아미산과 연결되는 아미 고개가 있다고 한다. 아미 고개를 지나면 화장골로 유명했던 아미동 골짜기로 이어진다는 설명을 들었다. 남쪽에는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구덕산이 솟아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지형이 그렇듯 산을 배경으로 도시가 형성되는데 감천마을은 어찌보면 산을 개간해 산의 아래에서 위로 아니면 위에서 아래로 마을이 수평과 수직을 이룬 큰 마을이다. 감천 문화 마을은 산기슭을 따라 밀집한 슬라브의 작은 집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다. 2009년 예술 창작 단체인 ‘아트팩토리인다 대포’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마을 곳곳에 조형물 10여 점을 설치하였다. 그들이 참여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마을 곳곳에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인해 미관 개선 사업이 이루어졌으며 ‘부산의 마추픽추’로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를 닮은 마을, 또는 성냥갑 같은 집들이 레고를 쌓은 것 같다하여 ‘레고 마을’이라고도 불리고 있다니 사람의 힘이,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에 선정돼 문화 예술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고 여러 곳이 새로운 색으로 의미를 둔 계획이 변화를 주었다. 마을의 빈집을 예술 창작실 혹은 갤러리로 개조하거나 북카페, 식당, 민박집 등으로 만들고, 마을 공터와 옥상을 생태 정원으로 바꾸는 등 주민 생활환경 개선 사업이 추진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도 기존의 동네 사람들이 살고 있어 편의시설과 일상이 이루어진다. 낯선 사람들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는 일도 있을 것이고 이익을 추구하며 그것이 번잡한 일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련만 찾아온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기웃거린다. 들어가 만지고 사기도 한다. 지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집 아래 집이 있고 또 그 아래 집이 있는 달동네라고 불리던 곳이지만 현재 보이는 대부분의 공간은 판매소가 되었다. 무엇인지를 꺼내놓고 상업을 시작한 곳이 살림살이만 하는 집들에 비해 무지 많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눈길에 붙잡힌 곳은 사람들로 붐빈다. 색색의 건물과 지붕이 사람과 무관하게 커다란 도화지에 유채색을 입힌 화려한 인상을 주는 공간이 언제부터인가 기존의 사람들을 살리는 공간이 되었다. 감천마을은 1950년대 6·25 전쟁 피난민과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산비탈에 집단으로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태극도 마을’로 불렸으나 2009년과 2010년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와 같은 공공 미술 사업을 통해 현재와 같은 ‘감천 문화마을’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집들과 미로 같은 골목길이 특징이며, 작은 소품 하나에도 색다르게 인식하게 되는 사람들로 인해 사람이 범람하는 공간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사람의 물결 속에서 함께 섞여 앞으로 나아갔다. 오년은 사람과 배경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어린 왕자 캐릭터가 귀엽다. 그곁에서 인증 샷을 찍기 위해 즐비하게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본다. 한 장의 추억사진을 찍는 포토 존이 되었고 지붕은 컬러로 덧칠되어 있고 곳곳이 간식거리로 가득하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온 곳이라고 적힌 작은 가게가 보이고 외국인이 좋아할 음식들이 가득하다. 구 할이 외국인이다. 넘실되는 이방인 속에 나도 이방인처럼 걸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사람이고 사람이 만든 새로운 공간이 또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단체 사진을 몇 컷 찍고 돌아서 나오며 그곳에 꽃이 피어 있듯이 낡은 건물들이 덧칠을 하고 다시 사람 사는 공간이 되어 우뚝 솟아 있었다. 추억 사진 한 장이 웃는다. /배문경 수필가

2025-11-05

공존인가 공멸인가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상호확증파괴), GPU(Graphics Processing Unit·그래픽처리장치), AV(Auronomous Vehicles·자율주행자동차).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이들 셋은 오늘 인류가 서 있는 좌표를 가리킨다. 상호확증파괴는 냉전이 자칫 서로 확실히 멸망시킬 수 있음을 뜻했고, 그래픽처리장치는 인공지능 혁명의 심장을 움직이는 반도체를 지칭하며, 자율주행은 인공지능이 물리적 이동 세계에 스스로 개입하는 첫 신호다. 셋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 문명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행하고 움직이는 기계’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 AI의 시대가 열렸다. NVIDIA 창립자 젠슨황은 최근 ‘대한민국이 AI시대를 열어갈 나라’라고 치켜세웠다. 그 시선에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한국은 초고속 네트워크와 반도체 인프라, 그리고 교육열이 결합된 기술기반 성장생태계를 갖고 있다. 둘째, AI를 둘러싼 사회적 흥미와 논쟁, 관심 수준과 유발 동기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과학과 기술뿐 아니라 철학과 윤리의 언어로 AI를 적극적으로 논하는 토양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AI 사용자’를 넘어 ‘AI문명의 설계자’로 여긴다는 의미다. 기술의 지평은 늘 그림자를 동반한다. 계산하고 사고하는 속도는 인간의 능력을 수천수만 배 앞지르겠지만, 빠름이 곧 출중한 지혜와 궁극의 효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I는 논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냉정하다. 효율의 논리는 인간의 감정과 공감적 배려를 배제한다. 전쟁터에서 효율은 곧 ‘선제 공격’의 합리성이다. 냉전의 상호확증파괴가 핵무기 억제를 통한 공포의 균형을 유지했다면, AI시대의 MAD는 알고리즘이 서로를 감시하며 자동보복할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전 세계 군사 강국들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방어시스템을 실전배치 중이다. 레이더 감지, 목표식별, 요격경로 계산까지 대부분이 자율적 루틴으로 돌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와 판단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입력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곧 존재 이유인 AI에게 ‘멈춤’이라는 개념은 없다. 두 AI 체계들이 서로를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반응한다면, 인간의 의도나 공존의지와는 무관한 ‘기계 간 상호확증파괴’로 번질 수 밖에 없다. 기술은 ‘결정의 속도’를 다툰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신호등의 오작동을 0.01초만 늦게 인식해도 참사가 벌어지듯, AI의 순간적 오판은 핵 버튼보다 빠르게 인류의 안전망을 무너뜨릴 터이다. AI의 자율성은 편리함의 상징이지만, 자율이 윤리성을 대체하고 나면 모두는 ‘공포의 균형’ 속으로 빠져든다. 젠슨황이 기대한 ‘AI 여명의 국가’라는 표현은 한국이 기술적 능력뿐 아니라 인류적 성찰의 책임과 윤리성을 함께 짊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AI는 현대인간이 만든 거울이다. 거울 속에 탐욕과 경쟁을 투사하면, AI는 냉정한 방식으로 이들을 증폭시킬 것이다. 공존과 평화의 알고리즘을 심는다면, AI는 인류의 새로운 동반자가 되지 않겠나. 인류는 이미 MAD의 공포를 이겨낸 기억이 있다.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윤리의 진화를 장착해야 한다. 인류는 AI가 공멸이 아닌 공존을 가져오도록 기대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1-05

‘선 넘지 말기’

몇 년째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 제법 있다. 처음 유튜브에 눈 떴을 때는 지식과 역사 채널을 골라 봤다. 너무 현학적이거나 편파적이고 흥미 본위의 채널이 성향상 맞지 않아 두어 채널만 남기고 빠져나왔다. 대신 어쩌다 보게 되면서 하나둘 늘어난 것이 국제결혼 가족들의 일상 채널이었다. 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이 결혼하여 미국 텍사스의 삶을 보여 주는 ‘올리버쌤’은 구독자가 226만이나 되는 참 건강한 채널이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나 제도, 교육방식 등을 비교하기도 한다. 두 딸을 키우면서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는 부부는 종종 한국에 와서 처가식구들과 한달살이를 한다. 그들은 강아지도 진돗개를 키운다. ‘소피아패밀리’는 그리스 여성과 한국 남성이 결혼하여 한국에서 사람 사는 냄새 풍기며 알콩달콩 사는 일상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한국 남편은 커다란 웃음소리가 정겹고, 아름다운 아내는 제법 한국식 농담을 받아넘긴다. 딸 하나에 두 아들이 있는데, 최근 넷째 아이를 가져 구독자들에게서 애국자로 칭송받고 있다. ‘한국 사는 따냐’는 우크라이나 여성이 착한 남편, 너그럽고 이해심 많고 유복한 시댁 식구들의 지지로 아들 하나 낳아 키우며, 신나는 한국살이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처음 구독 시작했을 때는 채 5만이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40만 가까이 구독자가 늘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쌍둥이 언니가 종종 실감나는 전쟁 상황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지금은 갓 돌 지난 아들 키우는 재미와 우크라이나에서 온 친정엄마와 대부의 먹방 영상이 많다. 몇 개월 전부터 구독 시작한 ‘태국박서방 TV’는 태국 부인과 결혼한 한국 남성의 태국살이 채널이다. 처음 접했을 땐 3만 정도였던 구독자가 그새 10만이 넘어 실버버튼을 받더니 지금은 15만이 훌쩍 넘었다. 태국의 시골에 살면서 허름했던 처갓집을 새로 짓고 가전제품을 하나씩 들여주는 영상이 몇 달 계속되는 사이에 폭발적으로 구독자가 많이 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인근의 초등학교에 에어컨을 기증하고 설치하여 주는 영상을 보내주더니, 지난주에는 이웃과 함께 김장을 하고 수육을 삶아 나누어 먹으며 훈훈하고 따뜻한 한국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다. 일상 유튜브 채널이라도 민낯의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진 않는다. 컨셉을 정해 편집을 거쳐 정제되어 나온 콘텐츠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상 이면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어 신뢰가 간다. 그러므로 부담없이, 미소지으며 보게 되는 것이다. 문득 ‘선 넘지 말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선 넘지 말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지키는 것으로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상대가 불편해하는 행동은 자제하는 매우 이성적이되 이상적인 태도이자 특히 부부와 같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욱 요구되는 태도가 되겠다. 국제 커플들은 문화와 언어 차이 덕분에 오히려 ‘선 넘지 말기’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들 부부와 그 주변의 가족들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1-05

몸의 구조가 무너지면 몸 전체가 아프다

사람의 몸은 뼈와 근육이 단순히 연결된 형태가 아니라 정교하게 짜인 균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균형은 마치 건물의 기둥과 같아서 어느 한쪽이라도 기울면 다른 부위까지 영향을 주며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허리가 틀어지면 어깨가 뻣뻣해지고 골반이 기울면 무릎이 아프며 목의 긴장이 심해지면 두통이나 어지럼 불면이 따라온다. 결국 통증이란 아픈 곳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 구조의 불균형이 만든 결과물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한다. 컴퓨터, 스마트폰, 운전 등의 구부정한 자세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생활패턴은 근육의 균형을 깨뜨리고 특정 근육은 계속 긴장된 채로 굳어버리며 반대로 다른 근육은 점점 약해져 제 기능을 잃는다. 시간이 지나면 뼈의 정렬이 틀어지고 관절은 비정상적인 압력을 받아 근막이 서로 끌어당겨 몸이 틀어지고 전신의 통증이 시작된다. 특히 목·어깨·허리·골반은 몸의 중심축으로 이 네 부위가 무너지면 나머지 근육들이 보상작용을 하며 몸 전체가 뒤틀린다. 통증의 원인은 약해진 근육과 과도하게 긴장된 근육이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허리 근육이 강해서가 아니라 복부나 엉덩이 근육이 약해 허리만 혼자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허리를 아무리 마사지하거나 약을 먹어도 구조가 바르지 않으면 근본적인 회복은 어렵다. 몸을 바로 세우려면 단순히 근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근육의 길이와 긴장도를 함께 조절하는 운동과 스트레칭이 병행되어야 한다. 근육이 뭉치면 기혈이 통하지 못하고 통하지 않으면 통증이 생긴다. 침 치료나 약침 추나치료는 바로 이 막힌 길을 뚫어 기혈 순환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매선요법은 근막층에 특수실을 넣어 약해진 근육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의 긴장과 구조를 보강해준다. 초음파 가이딩 약침은 손상된 조직 부위에 정확히 약침을 주입하여 염증을 가라앉히고 회복과 재생을 촉진한다. 이런 치료들은 단순히 통증 완화에 그치지 않고 몸의 구조적 회복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몸의 구조가 바로 서면 통증은 저절로 줄어든다. 하지만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의 습관 교정이 필수적이다. 의자에 앉을 때 허리를 곧게 세우고 스마트폰은 눈높이에 맞추며 30분 이상 같은 자세로 있지 않는다.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어깨, 허리, 골반을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혈류가 개선된다. 근육 강화 운동은 주 2~3회 꾸준히 특히 복부·허리·엉덩이의 코어 근육을 중심으로 하면 몸의 안정성이 크게 향상된다. 이와 함께 충분한 수면과 안정된 호흡도 중요하다. 몸의 구조가 틀어지면 자율신경 역시 불안정해지고 그 결과 피로, 불면, 불안, 소화장애 등이 따라온다. 통증을 줄이는 것은 곧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과도 같다. 한방치료는 근육·혈류·신경의 흐름을 함께 조절하기 때문에 구조적 안정과 심리적 안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결국 통증은 단순히 근육이 아픈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보내는 구조의 경고음이다. 구조를 바로 세우면 통증은 줄어들고 기혈이 순환되고 몸은 본래의 리듬과 에너지를 되찾는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1-05

‘영일만대로, 이제 고속국도로 격상돼야 할 시점이 됐다‘

오는 11월 7일 포항~영덕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포항의 교통 지도가 새롭게 그려진다. 부산·울산·대구 등 남부 산업벨트의 교통망이 포항을 거쳐 영덕, 강릉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동해안을 따라 U자형으로 연결되는 구조인 국가 도로망도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영일만대교다. 하지만 이 사업은 현재 노선조차 확정치 못해 언제 완공될지도 불투명하다. 그때까지는 영일만대교의 역할을 ‘영일만대로’가 해야 한다. 포항 동해면에서 영일만항까지 가로지르는 이 도로는 울산과 부산·영덕 방향으로 가거나 대구 방향으로 진출입할 때 이용해야 해 U자형 도로 체계에서는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금까지 고속도로 수준의 차량 흐름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영일만대로의 관리 체계와 시설 수준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직 일반국지도와 시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영덕~포항 간 고속도로 개통 이후 영일만대로에는 교통량과 물류 수요의 폭증이 예상되나 과연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벌써부터 나온다. 교통분야 전문가들은 이제 영일만대로는 ‘고속국도’로 승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더 이상 논의가 아닌 실행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고속도로 처럼 사용되면서도 관리체계는 시·도 수준에 묶어 놓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포항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영일만대로의 고속국도 승격을 정부에 꾸준히 요청하며 협의했음에도 아직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런 관계로 교통안전, 도로 포장, 조명, 방음벽, 제설 등 유지관리 전반에서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영일만대로의 모순은 이원화된 관리 체계에서도 드러난다. 이 도로는 동해면에서 흥해읍 소티재까지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관리청이, 소티재에서 영일만항 구간은 포항시가 각각 관리하고 있다. 도로 하나에 두 기관이 걸쳐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예산 배정부터 공사 발주, 시설물 교체에 이르기까지 행정 절차는 복잡하고 민원 처리 속도는 느리다. 실제로 일부 구간의 도로 포장 불균형과 방음벽 미설치는 ‘관리청 간의 협의 부재’라는 이유로 수년째 방치돼 있다. 도로가 하나의 체계로 운영되지 않은 결과는 책임 불분명과도 연결되고 이용자들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단일 관리기관을 통한 통합 운영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일만대로가 한국도로공사에서 관리하는 고속국도로 전환돼 통합관리 될 경우 예산확보 등이 원활해져 교통 체계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유지보수 기준은 고속도로 수준으로 상향되고, 사고 대응은 물론 도로정보 서비스 등이 통합되면서 대시민 서비스 개선이 예상된다. 나아가 도심과 항만, 공단을 잇는 물류 흐름이 빨라져 포항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다. 또 영일만항을 기점으로 해상 물류와 육상 운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포항이 환동해 물류 중심지로의 기능과 역할을 더 다질 수도 있다. 포항은 포항~영덕 간 고속도로 개통이라는 환경 변화가 생긴 만큼 교통체계를 다시 다듬을 때가 됐다. 특히 일반국지도인 영일만대로의 고속국도 승격은 매우 시급하다. 영일만대교의 역할을 영일만대로가 할 것이기 때문에 논리도 충분하다. 포항시와 지역 국회의원, 지방의회가 한목소리로 영일만대로의 고속국도 승격과 관리 일원화를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 정부도 이 사안이 단순히 지방도로의 국도 승격 문제가 아니라 환동해 경제권 확장과 국토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인프라 구축 문제로 봐야 한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1-05

한반도 호랑이 형상론과 포항 호미곶

포항관광 1번지, 호미곶의 호미(虎尾)는 ‘호랑이 꼬리’라는 뜻으로 한반도 지도가 호랑이 형상이며,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한반도 지도의 형상과 관련된 논의가 시작된 것은 구한말 한일강제병합을 앞둔 시기이다. 일제는 국권 침탈을 앞두고 한반도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는데,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0년대 초, 한반도의 지형을 연구하여 한반도가 토끼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토끼 형상론은 우리 민족의 나약함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일제의 식민정책과 어울리며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토끼 모양이라 할 경우 지금의 호미곶은 ‘토끼 꼬리’가 되고 만다. 한반도가 호랑이를 닮았다는 호랑이 형상론은 육당 최남선이 토끼 형상론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한 것이다. 1908년 11월, 최남선이 만든 ‘소년’지 창간호에 등장하는 삽화가 바로 한반도 호랑이 지도인데, 최남선은 ;대한의 외위형체(外圍形體)'란 글을 통해 “맹호가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하여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호랑이 형상론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 등 한반도 지도가 다양한 형태의 호랑이 모습으로 그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포항 사람들이 지금의 호미곶 일대를 한반도 지도상 ‘호랑이 꼬리’와 연관 짓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근역강산맹호기상도’와 관계가 깊다. 이 그림을 보면 지금의 호미곶 부근에서 시작된 호랑이의 꼬리가 남해안을 휘감은 뒤 끝부분이 서해안에 닿아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포항 지역민들은 이곳이 ‘토끼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고려대 소장)는 외견상 꼬리가 시작되는 영일만 일대가 밋밋하게 처리되었고, 꼬리의 끝부분이 서해안 변산반도에 위치함으로써 호미곶이 ‘호랑이의 꼬리’라는 이미지가 약해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호랑이의 꼬리가 호미곶에서 시작되고, 끝 부분도 호미곶에 놓이는 모양의 지도라야 ‘호랑이 꼬리’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길 것 같았다. 이런 고민을 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실행에 옮긴 사람이 바로 서상은 전 영일군수였다. 호미곶이 고향인 서상은은 1988년에 성기열 화백에게 호랑이 꼬리 끝부분이 장기갑(지금의 호미곶)에 오도록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서상은의 주문대로 성기열은 ‘근역강산맹호기상도’라는 제목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 그림 두 점을 그렸다. 서상은은 이 그림을 받아 한 점은 장기갑등대박물관(현 국립등대박물관)에, 다른 한 점은 대보면사무소(현 호미곶면행정복지센터)에 기증했다. 이 두 그림은 꼬리가 호미곶에서 출발하여 남해안을 휘감고, 전라도로 올라와서는 다시 경상도 쪽으로 꺾여 끝부분이 호미곶에 놓이는, 그러기에 꼬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갖게 됨으로써 호미곶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 그림을 앞세워 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포항시에서는 성기열 화백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 중 등대박물관 소장 그림을 호미곶 관광지를 홍보하는 자료로 활용해 왔다. 2000년대 들어 호미곶광장 바다 쪽에 세워진 한반도 호랑이 형상 조형물, 호미곶광장 가로등 장식, 새천년기념관 내의 ‘호미곶 지명 유래’ 설명판, 호미곶 관광 안내 리플릿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들어와 서상은은 호미곶이 우리 뇌리 속에 박혀 있는 ‘토끼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사업을 전개했는데, 나무가 없는 호미곶에 나무를 심자는 호미수(虎尾樹) 운동, 호미예술제 개최, 호미곶 지명석 건립 등이 그 핵심이다. 서상은의 이러한 노력은 20년 만에 결실을 맺어 2002년에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장기곶등대가 호미곶등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명 변경의 마지막 퍼즐인 ‘대보면→호미곶면’은 2010년에 이루어졌다. 호미(虎尾)라는 지명은 호미곶 가까이에 위치한 범 모양의 산등성이인 ‘범디미’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말이다. ‘범디미’가 ‘호미등’으로 바뀐 데는 한말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민족의식과 관련이 깊다. 즉 20세기에 들어와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형상론’ 영향을 받아 지역민들에게 이곳이 ‘호랑이 꼬리’부분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그러면서 기존의 지명인 범디미를 한자식으로 표기하여 호미등(虎尾嶝)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호미곶은 호미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20세기 초 일본의 한반도 침탈이 본격화될 무렵, 한반도 지도 모양이 토끼 형상이냐 호랑이 형상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100년이 지난 21세기에 와서야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우리의 뇌리 속에서 한반도는 호랑이 형상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고,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虎尾)로 각인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지금 호미곶은 포항 12경의 제1경(호미곶 일출)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포항의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11-04

관계의 결을 돌아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이 있다. 그것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만들어진다. 어떤 관계의 결은 매끄럽고 단단하게 이어지지만 어떤 결은 쉽게 틀어지고 거칠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결의 질감을 세심히 느끼며 살아왔다. 마음의 거리를 재고 온도를 가늠하며 서로의 결이 상하지 않도록 손끝으로 어루만지듯 관계를 다듬어왔다. 나에게 관계란 늘 섬세한 조율의 예술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섬세한 균형이 무너졌다. 내가 서로를 알게 한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각각과 다른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왔고 우리 세 사람의 관계가 유연하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중 한 사람이 나와 의논 없이 다른 한 사람에게 과도한 선물을 건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듯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잠식되었다. 마치 조용히 흘러가던 물 위에 돌멩이가 던져진 듯 파문이 일어났고 그 진동은 결국 나의 마음에까지 닿았다. 나는 언제나 ‘관계의 균형’을 지키는 사람이라 자부했다. 주어야 할 만큼 주고 감사를 표현해야 할 만큼 하며 감정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규율이 통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돌출된 행동과 미성숙한 흐름이 관계의 결을 어긋나게 만들었고 나는 그 틈을 매만지려 애쓰다가 점점 지쳐갔다. 마치 세 사람의 관계를 억지로 맞추려는 장인처럼 나는 관계의 결 사이를 계속 문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다듬어도 이미 나버린 미세한 금은 메우기가 어려웠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조율자’의 위치보다는 나의 기준을 자꾸 흐리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만의 잣대가 있는데도 상대의 방식을 맞춰주려 했다. 무게가 기울면 내가 더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하면 관계가 원만해질 줄 알았지만 그것은 조율이 아니라 나의 기준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 흔들림은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욕구로 자꾸 흘러갔다. 관계는 늘 주고받음의 균형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는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상황이 어긋나지 않게, 모든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나는 자 자신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감정의 결은 뒤로 밀려나고 타인의 기준이 나를 차지했다.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쌓여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라기보다는 나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피로였다. 관계의 온도를 맞춘다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체온을 가지 존재이고 그 온도를 완전히 같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온도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채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단순한 진리를 최근에야 되새기게 된다. 가까워질수록 명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리가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경계라는 것을. 이제 나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맞출까’보다 ‘어디까지 지킬까’를 먼저 생각해본다. 관계의 평온을 위해 무리하게 마음을 맞추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호의나 방식이 내 기준과 다르다면 그것을 불편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흔한 말이긴 하지만 다름으로 인정하려 한다. 관계의 진정한 성숙은 조율이 아니라 기준을 지키며 타인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밀착된 관계는 숨통을 죄고 너무 멀어진 관계는 온기를 잃는다. 그 중간 어딘가 결이 맞되 엇갈리지 않는 그 지점을 찾는 일, 그것이 성숙한 관계의 기술일 것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인간관계는 난로 같은 거리가 가장 알맞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거리를 두는 용기가 이 가을, 나에게는 필요해 보인다. 삶은 여전히 관계의 결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결들을 억지로 다듬지 않는다. 어긋난 결은 어긋난 대로 두고 그 틈새에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허락한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나다워진다. 관계의 피로는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내 결을 다시 세워가는 일이 남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 전, 관계의 결을 다시 배워야 하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1-04

대세르비아주의 전사 블랙핸드

19세기 말,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는 콜걸 출신과 결혼하면서, 이제 왕비의 친인척까지 왕궁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를 보고만 있을 세르비아인들이 아니었다. 1903년 청년 장교와 군인 120여 명이 왕궁으로 몰려가 왕비와 그 일족들은 물론 왕까지 잡아 죽이고 말았다. 왕 알렉산다르와 왕비 드라가를 5층 건물 창문 밖으로 던져 살해한 후, 오브레노비치 왕가 일가친척을 도륙했다. 이로서 오브레노비치 왕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열세 살 철없던 시절에 왕위에 올랐던 알렉산다르는 어머니의 간섭과 늙은 아내의 철없는 행동으로 서둘러 지옥행 마차를 타고 만 것이다. 뜻밖에 세르비아 국민이 환호하면서 어떤 시각에서 보면 군부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상황이 벌어졌다. 밀로시 왕가 몰락은 블랙조지, 즉 카라조르지예 가문의 등장을 뜻했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블랙조지의 손자이자, 카라조르지예 셋째 아들 페타르 카라조르지예(재임 1903~1918)다. 그는 프랑스에서 긴 세월 망명생활을 하였으며, 1870년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농민항쟁 때 참여해 산전수전을 겪기도 했다. 세르비아인 가슴에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추앙받고 있던 그였지만, 60세 가까이 돼서야 세르비아 땅으로 돌아와 45년 만에 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1, 2차 발칸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영토 확장에 이어, 대세르비아주의가 기지개를 펼 수 있는 판을 깔았다. 20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두 차례 발칸전쟁으로 세르비아 국토가 넓어지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는다. 급하게 삼킨 음식이 탈나는 법, 입헌국주국 민간정치기구가 급조되면서 급진당이 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그 중 지도자로 급부상한 인물이 니콜라스 파시치다. 훗날 세르비아 현대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대세르비아주의를 주입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세르비아인 가슴을 요동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블랙조지 가문을 중심으로 세르비아가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며, 당시 발칸반도에 대세로 급부상하던 유고슬라비즘에서 대세르비아주의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블랙조지가문이란 기실 오스만터키제국에 투쟁할 당시 농민군 지도자가 세르비아 왕족으로 순식간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는 것은 오랜 세월 억압된 삶을 살았던 민족의 가문과 인력부재라는 슬픈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왕위에 오른 페타르는 이미 늙어버렸다. 페타르 1세와는 반대로 쿠데타의 주역 군인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거듭났다. 왕궁으로 난입한 군부 중 지도자격인 인물이 드라구틴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이었다. 그는 1901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기습점령 한 것에 대해 불만이었다. 대세르비아주의 완성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빠트리고는 완성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닫힌 민족주의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차곡차곡 실행에 옮겼다. 민병대를 조직해 무기를 쥐어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파견했다. 주요 목표는 오스트리아 고위관료 암살과 테러였다. 충성을 다하는 예하 장교들을 포섭해 정부 위에 군림하는 군부조직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군부에 의해 들어선 민간정부의 힘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오스트리아에 굴욕적인 행태인 정부를 향한 세르비아인 불만이 증폭했다. 드디어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은 세르비아에 조직적 폭력군단 ‘블랙 핸드(Black Hand)’를 창시한다. 우리나라말로 직역하면 ‘검은손’이며, 한자로는 ‘흑수단(黑手團)’이다. 즉 대세르비아주의를 지상과제로 내건 군부 내 극우민족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세르비아인이 살아가는 모든 땅은 통일.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이 둘을 합치면 ‘세르비아인들이 살아가는 그 어떤 땅이라도 죽음을 불사하고 손아귀에 넣어라’란 뜻이다. 블랙핸드 ‘크루나 루카!(Crna Ruka)’의 살기 띤 구호가 세르비아인 가슴에 요동쳤다. 세르비아인 국가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내 땅에서 우리끼리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에 누가 반대를 할까만, 다른 나라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세르비아인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며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혁명적 행동을 강행하되 자신들을 반대하는 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으로 간주하며 제거 대상이 되었다. ‘개인의 욕심은 버려라, 어긴 자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 등 행동강령도 만들었다. 군인뿐만이 아니라 정치인, 변호사, 외교관을 비롯해 민간인까지 가세해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국민을 대상으로 대세르비아주의를 설파했고, 당위성에 거품을 물었다. 더구나 디미트리예비치가 군부 내 정보를 총괄하는 보안대장으로 영전하면서 날개를 단다. 밀수를 동원한 자금조달로 요인 암살이 본격화되고, 세르비아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으로 거듭 태어났다. 신문까지 발간하면서 세르비아민족주의가 백주대낮에 공개된다. 무엇이든 처음은 미미한 법, 세계가 전운에 휩싸이게 되는 판이 깔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1-04

인상주의 음악의 거장과 그의 걸작을 감상하는 방법

클로드 아실 드뷔시는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그의 대표곡 ‘Clair de Lune’(달빛)은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의 춤곡에서 영감을 받아 1890년, 28세의 나이에 작곡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세 번째 곡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곡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밝은 달’을 뜻하는 ‘Clair’(광명)과 ‘Lune’(달)의 조합에서 비롯되었다.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음악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매료되는 이 작품은, 원래 폴 베를렌의 시 ‘달빛’에서 제목을 따온 ‘Promenade Sentimentale’(감성적 산책)이었으나 최종적으로 현재의 이름으로 확정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놀라운 조화를 이룬다. 고흐가 1889년 정신병원에서 창밖 풍경을 3일 만에 완성한 이 작품은 강렬한 붓터치로 고독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내며,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별빛은 드뷔시 곡의 은근한 슬픔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두 작품은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쓸쓸함”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드뷔시의 ‘Clair de Lune’을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 곡에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슬프고 쓸쓸한 구석이 있다. ‘Clair de Lune’이라는 제목과 곡조 역시 폴 베를렌의 시 ‘달빛’에서 영감을 받았다. 드뷔시는 후기 낭만파에서 인상파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활동하며 인상주의 음악의 시조가 되었다. 인상주의 음악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반발해 전통 화성을 배제하고 자유로운 기법과 형식으로 색채감 있는 모호함을 표현한다. 이는 마치 프랑스 미술을 귀로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흐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드뷔시의 ‘Clair de Lune’보다 1년 먼저 제작되었다. 인상주의 미술은 순간적 인상을 중시하며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다. 드뷔시는 후기 낭만 작곡가이자 초기 인상주의 음악의 거장으로, 두 예술가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공유한다. 그런 인상주의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으로 평가받는 곡으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있다. 이 곡은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으며, 인상주의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목신’은 그리스 신화의 목축신 판(파우누스)을 가리킨다. 드뷔시는 목신의 욕망과 꿈을 여름 오후의 열기가 떠도는 공기처럼 표현했으며, 전통적 기법을 넘어 온음음계와 5음계를 써 독창적 관현악법으로 색채감 있는 몽환적 분위기를 창출했다. 그는 음악을 오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표현해 청중에게 감각적·시적 경험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드뷔시가 말라르메의 시를 허락 없이 사용한 것에 대해 시인이 불만을 표시했으나, 음악을 직접 들은 후 드뷔시에게 찬사를 보냈다는 일화는 이 곡의 강렬하고 감동적인 매력을 잘 보여준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드뷔시의 혁신적인 음악 세계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드뷔시의 두 대표작과 고흐의 작품은 서로 다른 매체로 내면세계를 표현하며 상호작용해 깊은 감동을 준다. 이들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길 추천한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5-11-04

한국외교의 ‘성공무대’로 부상한 경주박물관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해외 정상이 이곳을 방문한 건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50년 만에 공식적으로 경주박물관을 찾은 한국 수반이 됐다. 경주박물관은 그야말로 ‘신라의 정수’를 간직한 곳이다. 박물관 입구 마당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비롯해 천마총 금관, 가야 기마인물형토기 등 국보만 15점에 이른다. 보물 43점을 포함해 소장 유물이 30만1087점이다. 관람객 수도 올 들어 지난해 전체(135만7552명)를 이미 넘어섰다. 박물관 내 ‘천년미소관’으로 이름 지어진 회담장은 APEC을 맞아 올해 새롭게 지어졌다. 이번에 이곳에서 한미·한중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려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은 TV를 통해 원목 느낌을 최대한 살린 천년미소관 내부를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천년미소관과 마주 한 자리에는 ‘신라역사관’이 있다. 이곳에선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는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특별전은 12월 14일까지 열리니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 국민도 교동 금관(5세기 전반)부터 황남대총 북분 금관(5세기 중반), 금관총 금관(5세기 후반), 서봉총·금령총·천마총 금관(이상 6세기 전반)까지 신라 금관 6점을 관람해보길 권한다. 경주박물관을 정상회의 장소로 추천한 분은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이 지사는 “경주박물관은 신라 유물뿐 아니라 당과 서역의 교류 유물까지 전시돼 있어 역사적 상징성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요국 정상 회담의 최적지로 판단한다”면서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미중 정상회담은 양 정상의 스케줄 때문에 김해공항에서 열리게 됐지만, 한미·한중 정상회담이 경주박물관에서 개최됨으로써 경북도는 신라천년의 문화를 세계에 홍보하겠다는 당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한미·한중 정상회담은 난항을 겪던 한미 관세협상과 미중 갈등 등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던 상황에서 열렸다. 하지만 한미정상회담에서는 극적으로 관세협상에 합의하면서 오래된 숙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다. 미국과의 ‘안보 패키지’ 합의 역시 곧 문서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미동맹이 제 궤도에 올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와 한한령 등으로 갈등을 겪었던 중국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도 우리 국민은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다행스럽게도 두 정상은 안정적으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데 공감대를 이뤄 그동안의 알력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으로선 경주박물관이 한미·한중 정상외교의 획기적인 성과를 이룬 장소로 남게 됐다. 한국의 국격과 문화, 외교 면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한·미·중 정상들의 협상 스토리까지 간직하게 된 경주박물관이 앞으로 국내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가 되길 기대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1-04

부끄러운 줄 알아야

국감이 끝나고 또다시 국감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지난달 13일부터 시작한 국감은 국민 기억엔 정쟁과 막말, 욕설로 얼룩진 국감이다. 행정부를 견제 감시하는 공적인 기능은 고사하고 싸움으로 일관한 모습들만 기억에 가득히 남았다. 여당을 견제해야 할 야당의 한방도 나오지 않았다. 과거 흔히 발표한 고발성 내용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증인 채택도 여당 입맛대로다. 도대체 국감장인지 나를 위한 정쟁의 장인지 분간키 어려운 장면만이 주권자인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심지어 딸의 결혼식을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치르게 하는 기상천외한 일까지 벌어졌으니 국민들은 아예 안중에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3불 3무의 국감이라 부른다. 정책, 예의, 스타 없는 3무와 불통, 불신, 불만으로 가득한 3불 국감이란 말이다. 20여 일 동안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국감장을 휘젓고 다니며 요란을 떨었지만 과거 흔하게 등장했던 국감 스타 하나 만들지 못했다. 시민단체는 22대 국감을 역대 최악이라 평가를 했다. 당연하다. 문제는 국감 무용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진정한 선비가 뭐냐는 제자의 물음에 답했다. “내 행동의 부끄러움을 알고 일을 맡았을 때 군주를 욕되지 않게 하면 진정한 선비”라고 했다. 선비란 지금의 지식인이다. 정치인 스스로가 지식인이라 자부하면 부끄러움부터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3대 국회에서 균형 있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국감 스타에 올랐다. 그를 기억한 국민은 15년 뒤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잘못한 것을 반성하며 부끄러움부터 배우는 정치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1-04

정중지와(井中之蛙)가 주는 의미

정중지와(井中之蛙)는 장자(莊子)의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물 속에 개구리는 바다를 말할 수 없다. 그는 자기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본 듯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물벽이 만든 작은 하늘만 보고 사는 존재다. 정중지와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조직이 혁신을 멈출 때 빠지는 공간, 시간, 지식의 세가지 함정을 보여준다. 첫째는 공간의 한계다. 개구리는 우물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본다. 그에게 하늘은 우물 입구만큼 작다. 우리의 조직도 다르지 않다. 한 공장, 한 부서, 한 시장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순간 변화의 신호가 보이지 않고 시야는 닫힌다. ‘이게 우리 방식이야’라는 말은 곧 우물의 벽이다. 외부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곧 우물의 벽이 된다. 혁신은 그 벽을 넘어 타인의 현장과 세계의 흐름을 직접 보는 데서 시작된다. 둘째는 시간의 한계다. 개구리는 우물 속 현재에 갇혀 산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의 경험 속 현재에 갇혀 있다. 과거를 되돌아볼 여유도, 미래를 내다볼 눈도 없다. ‘우리는 예전 방식이 통했으니 지금도 괜찮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 틀 속에서 멈춰 있는 사고를 상징한다. 하지만 혁신은 과거의 성공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AI시대인 지금, 변화의 속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새로운 시장과 사회에 한 발 늦으면 멈춤이 있을 뿐이고, 정체는 곧 퇴보한다. 셋째는 지식의 한계다. 개구리가 본 하늘이 전부라 믿듯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충분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내 지식의 경계 밖에서 움직인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개념, 새로운 사고를 배우려는 자세가 없다면 개인과 조직의 지식은 곧 낡은 벽돌이 된다. 일부 지식, 기술, 혹은 관점을 절대화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경쟁 사회에서 멀어져 퇴보한다. 더 넓은 지식과 관점을 배우려 하지 않는 인지적 폐쇄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멈춤이 있을 뿐이다. 정중지와(井中之蛙)는 ‘좁은 시야’를 뜻하지 않는다. ‘공간의 갇힘, 시간의 멈춤, 지식의 닫힘’이라는 한계를 상징한다. 공간(시야의 한계), 시간(변화의 한계), 지식(사고의 한계)이 결합된 닫힌 세계관의 상징이다. 이 세 가지 벽을 넘을 때 조직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개구리만이 하늘의 넓음을 알 듯, 세상의 변화 속으로 들어간 조직만이 진정한 혁신을 이룬다. 우물 밖으로 뛰어 오른 개구리가 되려면, 문제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왜?’ 보다 ‘어떻게 개선할까?’ 중심의 학습문화가 중요하다. 실패의 문화를 장려하고, 실험을 시스템화 하며, PAC(Problem Analysis Cycle), Lean 등 개선 도구로 실행중심의 도전문화가 필요하다. 부서, 고객, 협력사, 기술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구조, ‘전체 가치흐름(VSM)’의 사고 전환과 연결문화가 되어야 한다. 정중지와는 공간, 시간, 지식을 멈추게 하는 우물벽이다.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우물의 벽을 허물고, 밖의 넓은 하늘을 보아야 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1-04

시조창의 곡조

가로수며 산자락에는 잎새들이 아직 청청하기만 한데, 벌써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함으로 정말 가을이 실종된 듯하다. 갈수록 뚝 떨어지는 기온에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해 단풍은 고사하고 잎새들은 파리한 행색으로 팔랑거리다가 그냥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이 아니더라도 들녘의 국화는 이미 군데군데 피어 있으니, 기후의 변화는 이처럼 자연의 현상이나 생태마저 바뀌게 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시조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처럼 계절의 변화나 산수, 강호 등의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예찬하거나 심경을 토로한 시조를 읊어왔다. 이른바 강호가도(江湖歌道)라 일컬어지는 시조는 조선시대 문학에서 유랑과 자연, 인간의 정서를 주제로 하는 음풍농월(吟風弄月) 성격의 시적 표현방식이라 할 수 있다. 즉, 강과 호수 같은 한적한 자연환경 속에서의 삶과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하는 시조로 자연 풍경과 속세를 떠난 은둔의 삶을 이상화하며, 인간의 감정을 자연과 결부시키거나 조화시켜 표현하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복잡한 현실이나 시끄러운 세상일을 잊어버리고 산속이나 물가에 거처하면서 밤낮으로 자연에 마음을 팔고, 때로는 맑은 시냇가에서 짐짓 어부인 체하며 하루를 보내는 한가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가 벗을 만나면 술병을 열어 놓고 시를 읊어 밤이 깊어 가는 것도 모르게 태평시대의 여유로움으로 풍류를 즐겼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읊고 지어진 시에 장단을 붙이고 가락을 더해 소리 내 읊조리면 그 감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오래 갔으리라. 어쩌면 그러한 연유에서 시조창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시조창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時調)시에 운율을 올려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문학과 전통소리인 창(唱)이 어우러져 독특한 가락과 창법으로 선조들의 풍류와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격조 있는 문화유산이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시조창은 민족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삶의 여백이 배어 있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돋보여 가곡·가사와 함께 우리의 전통국악인 노래로서의 정악(正樂), 정가(正歌)에 속한다. 즉 시조창은 시조시의 아름다움을 창법에 따라 고저장단으로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어서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전통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조창의 역사성과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보존과 발전을 위해 각 지역마다 전국 시조창 경연대회를 열어 장려하고 지원하고 있다. 시조 한 편 외워서 발표하기도 힘든데 시조창을 배우고 연습하여 경연대회까지 출전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발성법을 익히고 애써 시조창을 즐겨 부르는 이유는 시조창 특유의 창법과 흐름, 음조 등의 매력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흥겨운 듯 차분하게 장단을 맞춰 목소리를 풀면서 가냘프고 구슬픈 음조로 끊어질 듯 이어지다가 폭포수처럼 힘차게 용솟음치는가 하면 절제와 여운으로 마무리되는 시조 창법에서, 마치 삶의 애환과 고비를 지나온 듯한 스릴과 긴장감, 안도의 희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1-04

재벌도 좋아하는 한국 치킨

“기름에 튀기면 구두도 맛있어진다”는 농담이 있다. 실제로 구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식재료는 끓는 기름에 넣어 일정 시간 튀겨내면 어느 것 할 것 없이 맛있다. 채소와 육류가 다 그렇다. 하지만, 기름에 튀긴 음식이 건강에 좋을 가능성은 낮다. 식재료가 높은 온도에서 튀겨질 때 칼로리가 대폭 상승하고, 트랜스지방이 높아져 심혈관 계통의 질환 위험성이 생긴다는 건 의학계가 이미 검증을 마친 사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려 노력하는 이들은 가능하면 튀긴 음식을 멀리하려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푸드 가운데 하나가 ‘한국식 치킨’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고 하지만, 치킨은 결국 기름에 튀긴 닭. 건강식품이라 부르기엔 어색하다. 그래서일까? 한 음식평론가는 “부자들은 치킨을 먹지 않는다. 치킨은 서민과 노동자의 음식”이라 말한 바 있다.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래 그럴 거야”라며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치킨을 안주로 소맥을 마시며 회동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시끌벅적 알려졌다. 셋 모두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세상이 알아주는 부자다. 그럼에도 기름에 튀긴 닭을 손에 들고 맛있게 먹었다. 세 사람이 방문했던 특정 치킨업체는 밀려드는 손님과 폭증하는 주문 탓에 임시 휴업을 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재벌들까지 매혹한 한국 치킨의 매력은 대체 뭘까? 얼마나 맛있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한 이들은 또 치킨집을 찾을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04

억울한 일, 억울한 사람

만해 한용운 쓰신 작품 가운데 장편소설 ‘박명’이 있다. 조선일보에 1938년 5월 18일부터 1939년 3월 12일까지 연재했다. ‘박명’이라 함은 팔자가 기구하다, 복이 적다, 요절할 운명이다 같은 뜻을 갖는다. 이광수 소설 ‘재생’의 주인공 이름과 이 소설 주인공 이름이 같다. 순영이다. 저 강원도 인제 가평 사람이다. 어려서 어머니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고생하며 큰다. 은인을 만난 줄 알았더니 서울 사람 송 씨는 기생도 아니 만들고 인천 색주가에 순영을 팔아넘긴다. 옛날식 주인공이어서 순영은 아름답고 지순한 여성이다. 색주가라 해도 함부로 처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순영은 ‘꽃샘’에 걸렸다고들 한다. 이름하여 매독이다. 손바닥에 엿이 묻었다고들 한다. 손님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낸다는 것이다. 이 둘이면 벌써 순영은 사람 행세를 할 수 없다. 이 인천 색주가는 세상의 축도다. 세상은 사람들 모여 사는 곳이다. 옛날 어렸을 적에는 이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진 줄로만 알았다. 이것을 가리켜 ‘내 맘 같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가며 그렇지 않은 줄 알게 되니, 이것을 가리켜 ‘내 맘 같지 않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일들이 많다. 세상은 또 서로 돕고 수긍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살아보면 그렇지 않은 일이 많다. 그래서 너나없이 좋은 세상 만들자는 염원을 갖지만 정작 그것이 내 일이 되고 보면 어떻게든 자기 이익과 목숨을 위해 사생결단이라도 낸다. 살아야 하기에, 더 낫게 살려고, 편을 짓고 일을 도모하다 못해 없는 일까지 지어내는 일도 많다. 옛날부터 소설에 그렇게 억울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도 현실의 일로 깨닫지 못하고 내 일 아니라 생각을 했건만 리얼리즘을 믿으면서도 정작 소설이 현실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었다. 여럿이 작당을 해서 있는 일을 없다 하고 없는 일을 있다 하는 일이 그렇게도 많다. 자신들이 옳다고 여겨서 그러기도 하지만 옳지 않은 줄 알고 느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을 벌인다. 그런 때에야말로 그네들의 수법은 교묘하거나 그악스럽고 악착스럽게 된다. 소설에서 순영은 억울하게도 누명을 쓴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순영의 생김새며 마음씀이 먼저 있던 이들의 시샘을 산 것이었다. 말은 지어내기도 쉽고, 여러 사람이 다 그렇다 하면 꼼짝없이 몰리고 마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함이 딱 그럴 것이다. 순영은 끝내 억울함을 안고 차라리 죽어버리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순영을 살려 그 억울함은 풀지만 또 다른 시련에 휘말리도록 한다. 어째서 만해는 이렇듯 순영으로 하여금 박명(薄命)한 삶을 살게 한 것일까? 먼 이후의 일들도 미리 짚어본 것일까?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일을 놓고 한쪽으로 몰아간다. 그런 ‘흉책’은 분명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도 살았다. 더 무서운 일들도 있었겠다. 그렇게 위안을 삼으려 해도 세상이 지금 끔찍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도 버팅키고 살아가야 하겠다. 우리 모두.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1-03

앵무살수

‘칼 끝에 피를 묻힌 자 장강의 하류를 건너지 마라’ 한국 무협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는 김성진 작가의 무협만화 ‘앵무살수’의 첫 문장이다. 만화에서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의 직업은 장강 하류의 뱃사공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에게는 평범한 노 젓기 일 이외에 다른 일이 하나 더 있다. 중원에서 온갖 패악질을 다 저지르고 어디론가 숨어드는 중범죄자를 단죄하는 일이다. 법망을 피해 살아가는 이들을 색출하여 직접 형을 집행하는 만화 속 이야기다. 도주하는 범죄자를 태운 나룻배가 포구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만화는 시작된다. 나룻배가 장강의 중간에 도착할 때,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사뿐히 주인공의 어깨 위에 앉는다. 쪽지를 입에 문 앵무의 깃털이 장강의 물결에 빛난다. 누군가 내린 명령과 금액이 적힌 쪽지를 주인공이 펼친다. 사형! 그리고 엽전 열 닷 냥. 배가 멈추고, 칼이 춤을 춘다. 칼끝에 묻은 피를 유유히 흐르는 장강의 물결에 씻고, 검의 고수는 뱃머리를 돌린다. 이날의 나룻배는 장강의 저편으로 갈 일이 없다. 작년 6월경 포항문화재단 초청으로 육거리 꿈틀로 청포도 다방에서 ‘앵무살수’를 패러디하여 ‘제2회 인문학 강좌’를 한 적이 있다. 10년 넘게 침촌인문학당 사띠스쿨 원장을 하면서 나름 터득한 사유 여행의 한 꼭지로 열어보았다. ‘낭만자객', ‘지성의 몰락’, ‘붓다의 칼, 예수의 창’, ‘생각 죽이기’, '저 세상에 관심을 두지 마라’ 순서로 다섯 강좌를 성황리에 마쳤다. 주제는 ‘관념 죽이기’였다. 제1회는 칼릴지브란 선생의 예언자를 중심으로 ‘사랑의 타작마당’이라는 주제로 하였었다. 사랑의 개념을 타작하여 껍질을 벗겨보자는 것도 결국은 관념(개념, 생각, 편견 등) 죽이기였다. 두 번에 걸친 강좌는 겉만 달랐지 속은 같았다. 만화 ‘앵무살수’ 속 장강 하류 나룻터 풍경을 관념 죽이기의 소재로 써보았다. 예언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관념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단죄의 칼부림에 비유하여 보았다. 주인공이 사는 조그만 집, 나루터, 나룻배, 악당, 칼, 앵무새, 주인공, 처형, 그리고 칼 씻음. 이 모두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 개념, 생각들의 환·망·공·상을 제거하는 것과 연결하여 강의하였다. 우리가 극복하여야 할 관념이 만화 속 악당들과 같은 존재라면,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관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다’라고 짚었다. 관념이란, 때론 삶의 에너지로, 때론 죽음의 에너지로 쓰이는 검의 양날이다. 우리는 생각 때문에 살고, 생각 때문에 죽는다. 악당이란 탈을 쓴 관념이 가끔 우리를 괴롭힐 때,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가. 어떤 기술을 쓸 건지, 어떤 무기를 휘두를 쓸 건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취미활동, 운동, 예술 감상. 지인과 잡담 정도의 무기로 족할까. 만화 속 주인공은 검술의 최고수였다. 만화 속 주인공만큼 고수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명상’이라는 무기가 있다. 나름 든든한···. 우리는 알고 있다. 삶 속에는 건강, 돈, 명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음을. /공봉학 변호사

2025-11-03

타지 않는 불

온 산에 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다. 고향 가는 길, 포항-대구 고속도로 기계면 지역을 지날 때 만난 산의 모습이다. 남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산이 온통 안 타는 불길로 검붉다. 타지 않는 불이라면 주위에 옮겨붙지나 말아야지, 날이 갈수록 소리소문없이 더 빠르게 온 산으로 번져 간다. 삶에 어이없는 일이 많지만, 조상 대대로 귀히 여기던 소나무들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으니 대체 무슨 까닭일까. 수십 년은 자랐을 저 커다란 낙락장송들이 아주 작은 미생물의 감염에 맥도 못 추고, 저렇게 많이 타지 않고도 말라 죽어간다. 바로 소나무 재선충(材線蟲· Bursaphelenchus xylophilus)이 벌인 검붉은 날벼락이다. 날벼락 현장을 억지로 보는 내 가슴이 찌릿찌릿 저리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재선충은 크기 1mm 내외의 실 같은 선충으로서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몸 안에 산다. 매개충이 소나무 새순을 갉아 먹을 때 충의 상처를 통하여 나무에 침입한다. 무단 침입한 재선충은 빠르게 증식하며 수분과 영양분의 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죽인다. 온전한 치료 약이 없어 감염되면 소나무는 100% 고사(枯死)하고 만다. 지독한 소나무 에이즈다.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되는 소나무류는 소나무, 해송, 잣나무, 섬잣나무다. 최근의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1988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정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최초 발생했다. 아마 수입 목재에 숙주나 충이 붙어 들어 왔으리라. 2025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 현황은 전국 154개 시·군·구에서 149만 그루가 감염되었다. 전국적인 엄청난 피해다. 출퇴근 때 지나다니는 S 초등학교 후문 쪽 녹지에는 25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그중 올 10월 28일 현재 소나무 에이즈로 말라죽은 것은 7그루, 28%다. 인터넷 지도 로드뷰로 이 녹지를 보면, 24년 11월에는 단 1그루(4%)만 재선충에 감염되었었다. 1년 만에 6그루, 24%가 더 감염된 것이다. 이곳의 소나무 재선충감염변화를 피해 통계 자료로 쓰기는 어려워도, 감염속도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 한 사례가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대처해야 할 문제는 ‘고사목의 처리’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로 ‘방제’는 너무 어렵게 보이기 때문이다. 고사목처리의 가장 좋은 방법은 목재, 에너지원 등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측면에서도 소나무가 살아있을 때는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흡수하지만, 고사하여 썩어가면서 흡수했던 가스를 내놓을 테니까 그렇다. 해마다 극심해지는 산불의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게 소나무 송진이라는 주장이 많다. 우리도 이젠, 일본처럼 재선충의 전면적 방제보다 꼭 보존해야 할 소나무와 숲을 선별하여 관리하는 선택과 집중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재선충 방제와 오염 소나무의 반출금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도, 불가피한 ‘기후변화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는 법’으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온 산에 번지는 타지 않는 불을 없애기 위하여···. /강길수 수필가

2025-11-03

포항, 인재유출 막을 기술 생태계 구축 시급

국내 이공계 인재의 해외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는 한국은행 분석은 포항·경북 동해안 산업지대에 중요한 함의를 남긴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보고서(이공계 인력의 해외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방향)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의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며, 20~30대 청년층에서는 70%에 달한다. 단기 이직 수요가 아니라 기술인력의 구조적 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문제는 포항의 현실과 직결된다. 포항은 포스텍, RIST, 포항가속기연구소, 포스코그룹 연구조직 등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인재의 ‘양성과 유입’에는 성공했지만, ‘정착과 순환’은 여전히 미완이다.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 대기업 연구소나 해외 대학·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수년 간 고착됐다. 이른바 “포스텍에서 키우고, 수도권·해외가 가져가는 구조”다. 핵심 원인이 연봉 문제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해외 이직의 주요 배경은 연구환경, 경력경로, 글로벌 네트워크, 장기 성장 가능성 등 비금전적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시 말해, ‘어디에서 얼마나 벌 것이냐’보다 ‘어디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가 인재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포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장비를 갖추고도 인재 유출을 막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비는 있지만 산업·창업·연구 트랙을 연결하는 생태계 사다리가 약하다는 것이다. 지방 대도시권 공통의 문제도 여기서 드러난다. 연구자는 있지만, 연구자를 계속 머물게 할 직업 생태계가 없다. 기술 창업 생태계는 아직 얕고, 고급 R&D 전담 기업 수는 제한적이며, 가족 단위 정주 환경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 인재는 ‘사람이 많은 곳’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많은 곳’을 향한다. 이제 포항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먼저, 연구소–대기업–기술기업–창업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R&D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석·박사 연구자들이 포항에서 연구→산업→창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력 사다리를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포항·울산·경주를 ‘동해안 기술경제권’으로 통합해 단일 도시 단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끝으로 자녀교육·문화·주거 등 정주 환경 개선은 연구 인재 정책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포항은 이미 세계적 대학, 세계적 기업, 세계적 연구장비를 갖춘 도시다. 부족한 것은 사람을 머물게 하는 연결 구조와 삶의 조건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포항은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도시인가.” 앞으로의 포항 경쟁력은 제철의 도시에서 과학기술 도시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 전환점이 지금 눈앞에 놓여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1-03

권력에 취한 관행, 그게 내로남불이다

지난 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열렸다.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경주에서 가장 조명을 받은 건 역시 이 사태를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김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세전쟁을 휴전했다. 한국에 대한 관세도 합의했다.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없던 문제를 만든 협상이니,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렇지만 힘이 좌우하는 국제 관계에서 더 이상 요구하기도 어렵다. 할 만큼은 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궁화대훈장과 천마총 신라 왕관 모조품을 선물 받고, “그 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만족감을 보였다. 왕관도,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도 흡족했던 것 같다. 미국의 언론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아부했다고 조롱했지만, 광인을 흉내 내는 트럼프의 횡포를 막으려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APEC이 열린 경주는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다. 고려와 조선 500년. 최대의 제국으로 이름을 떨친 로마도 500년이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도 이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라를 유지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신라는 여섯 부족의 연합체로 출발했다. 나중에 단일 왕조가 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부족 간의 협력, 협치와 공동체 정신이 깔려 있다. 안정적인 권력체제와 유연한 외교가 힘이 됐다. 아집과 독단이 심한 군주가 등장해 국정을 흩트리고, 권력투쟁으로 자멸한 나라들과 대비된다. 권력을 쥐면 그 권력이 천년만년 갈 것으로 착각한다.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고려 무신들은 그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죽고 죽였다. 정중부는 정변 동지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9년 만에 경대승에게 살해당했다. 경대승은 4년 만에 병사했다. 이의민이 정권을 독점했지만, 그 역시 최충헌에 게 살해당했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탐욕이 더 무섭다. 필자가 청와대 취재를 담당할 때 한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창밖의 벚꽃을 가리키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권좌에 앉아서도 그 이후의 일을 걱정했다. 그런데 대개는 그 끝이 없는 줄 안다. 권불십년(權不十 年)이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인들 그것이 삼일 천하로 끝날 줄 알았겠는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도 임기를 늘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권좌에 있는 사람들은 그 권력의 끝이 없다고 착각한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서울의 민심이 흔들렸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이 32%로 민주당 31%보다 높다. 미디어 토마토가 서울시장 가상대결을 조사한 결과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주당 박주민·박홍근· 서영교·전현희 의원과의 일 대 일 대결에서 모두 이겼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다. 영호남에서는 큰 이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선거다. 가장 큰 전장이 수도권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가 승패를 가른다. 비상계엄이라는 패착으로 정권을 넘겨준 뒤 여론은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흐름을 바꾸는 건 민주당이다. 선거는 상대방 실수에 좌우된다. 민주당이 굴러온 복을 발로 차고 있다. 과욕이 참사를 빚고 있다. 국회에서 일당 독재가 뭔지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자의 여유도 관용도 없다. 지독히 ‘못된 말’만 찾아내 쏟아낸다. 당 대표가 앞장섰다. 집권당은 국정의 책임자다.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도 있다. 이념에 매달리다 망쳐도 자기 책임이다. 그런데 이념도 아니다. 내 편은 무조건 옳다는 사이비 진보를 ‘노무현 정신’이라고 한다. 서민이 서울 아파트 사는 걸 철저히 막았다. 그 정책을 입안한 경제 관료, 정치인들은 이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 피감기관이 벌벌 떠는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결혼식을 해놓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 그들이 맞서 싸운 과거 정부의 부패도 당사자들에게는 ‘관행’이었다. 민란을 일으킨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도 당시에는 만연한 ‘관행’이었다. 그래도 과거에는 부끄러운 줄은 알았다. 무엇을 위한 싸운 건지 잊어버렸다. 권력에 취했다. 그게 내로남불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02

유기 접시 산 날

모처럼 긴 연휴였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서울로 향했다. 연로한 부모님을 뵙고 그간 만나지 못한 친구들,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사동이나 청계천을 가고 싶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하루 인사동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집 앞에서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주로 지하철로만 다니던 길을 버스 타고 가니 풍경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길 가 오래 된 가게의 눅진하게 쌓인 시간의 흔적들이 눈길을 끌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대로인 길 가의 종묘상들, 음식점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대도시에서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건물과 가게를 보는 일이 즐거웠다. 마치 어린 시절 보물찾기에서 작은 보물 하나를 찾아낸 것처럼. 옆에서 말을 붙이는 동생의 물음에 건성으로 답하며 내 눈은 바깥의 모습을 담기 바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총총히 머릿속에 되돌아와 박히면서 나는 버스 속에서 세월을 하나씩 거슬러 가고 있었다. 길옆으로 낙산공원의 성벽이 보였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인기몰이 중인 애니메이션의 배경 중 한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한다. 낯선 말과 낯선 복장의 여성들이 버스 정류장을 배경으로 한껏 행복한 웃음을 폰에 순간 포착하고 있다. 여러 명의 다른 외국인들도 보인다. 저들의 기억 속에 오늘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버스는 어느덧 종로3가였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인사동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한적했던 길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한국어에 섞여 들리는 여러 언어가 이곳이 외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거리임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몇 년 전만 하여도 인사동에 오면 실망을 하고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 한국적인 물건을 전시, 판매하는 곳도 있었지만 조잡한 외국의 물건을 가져다놓고 파는 노점들이 종종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랜 만에 보는 인사동은 그야말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독특하면서도 한국적인 냄새가 가득 나는 물건들이 좁은 골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조그마한 부스들이 모인 곳에서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찾아냈다. 놋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접시와 숟가락, 포크였다. 한 외국 어린이가 물고기 접시를 붙잡고 엄마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접시를 구입하였다. 온 김에 삼청동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길을 건너니 악기 소리가 우리를 부른다. 두 명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맞은 편에는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색소폰 소리가 부슬부슬내리는 빗줄기를 타고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빗속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채롭다. 저절로 리듬에 흔들리는 몸을 추스른다. 삶의 자그마한 여유가 쉼을 가져다주는 시간이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거세지고 있어 카페를 찾아 들어가기로 했다. 특색을 가진 음식점, 문구점, 옷가게 등이 보였다. 개성을 내보이는 가게들을 보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고 즐거움이었다. 한동안은 내국인이나 외국인들이 즐겨 찾던 삼청동 거리도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끔씩 임대를 붙여 놓은 가게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예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K-POP이 세계를 흔들고 뒤이어 한류라는 이름으로 문화가 수출되고 있다. 그 흐름을 타고 관광객의 수효가 늘어나는 때에 인사동이나 삼청동은 고유한 우리의 문화를 보여줄 많은 장점을 가진 곳이라 생각되었다. 한국적인 특색을 가졌지만 현대화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과 음식들. 비싼 임대료에 밀려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이 보고 들은 일도 내 기억의 한 페이지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많은 것을 보고 담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경복궁 옆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서로의 자태를 돌아보는 외국인들 사이로 연휴의 마지막 자락이 가랑비와 함께 접히고 있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1-02

지역 뿌리 찾기와 보존의 중요성

사람과 지역, 기업 등은 시작의 중요성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성장 과정에 자존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1976년, 미국에 정착하게 된 흑인 노예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가는 영화 ‘Root’가 상영돼 전 세계의 심금을 울리며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처럼 자기 뿌리를 알고 보전하는 일이 현재에도 지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북의 3대 도시로 성장한 경산(慶山)도 깊은 뿌리, 그것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대 국가인 ‘압독국(押督國)’과 역사를 같이한다. 지금의 임당동과 옥곡동, 압량읍 신대리 일대에 임당동을 거점으로 국가 형성 이전 단계의 정치·사회집단인 강력한 읍락국가인 압독국이 지배했다. 757년(경덕왕 16) 행정 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며 압독군이 장산군(獐山郡)으로, 고려 태조 때인 940년 장산군(章山郡)으로, 1308년 충선왕의 이름인 ‘장(璋)’을 피하고자 고을 이름을 경산으로 개칭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산에는 압독국의 생활문화 공간을 보여주는 임당·조영동 고분군 등에 20기 봉분이 존재하며 15기의 봉분이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1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 유적, 토성, 소택지 등이 발굴돼 금동관과 금동 장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環頭大刀) 등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유물들에 당시 사람을 복원할 수 있는 인골 자료와 동물과 생선의 뼈, 어패류 등 2만 8000여 점의 유물로 한국 고대사회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다. 경산시는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우수한 유산을 정리해 시민과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임당유적전시관을 임당 고분군 인근에 지난 5월 개관했다. 고분 토층의 단면을 형상화해 고분군과 주변 자연환경을 이어주는 조화로운 건축물인 임당유적전시관은 타 전시관 달리 고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생활유적)과 죽음의 관념(무덤 유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유적전시관이다. 시는 임당유적전시관의 개관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상생 국가 유산 사업’ 선정으로 지역의 최대 역사 문화자산인 압독국 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문화유산을 단순한 관람 대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재구성해 지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였다. 임당유적전시관의 진정한 매력은 유물을 중심으로 연구·공개되고 이 유물을 사용한 옛사람의 연구(풍습, 생활)를 다른 유적과 유물의 사례를 통해 추론하던 것에서 국내 최대 인골 개체 수(359개체)와 가까운 시대가 아닌 1500여 전의 실제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의 인골 분석과 연구에 여러 학문의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지난 30일과 31일, 임당 유적전시관에서 ‘경산 임당 유적, 고고학에서 과학으로’를 주제로 개최된 국제 학술 세미나다. 임당 유적전시관 개관을 기념하기도 한 국제 학술 세미나에는 사람 뼈 연구와 전시에 있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의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폴 테일러 박사, DNA 분석과 고유전학의 선두 주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로드리고 바르케라 박사, 영국의 얼굴복원 대표 연구 기관인 리버풀 존무어스대 Face Lab의 제시카 리우 박사, 미국 UC데이비스대의 정현우 교수 등이 발표자로 참가해 압독국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했다. 폴 테일러 박사는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로 보존상태와 개체 수가 탁월하고 남녀노소, 계층이 다양하게 확인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가계의 뿌리를 잘 알고 그 후손들이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역사를 잘 알고 보존해 후손에게 넘기는 것은 더 중요하다. 경산시는 앞으로도 지역의 문화유산의 보존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이를 시민과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에 사는 우리에게 추억으로, 미래는 현재의 우리가 거는 기대라는 말처럼 경산 문화유산의 미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현일 경산시장

2025-11-02

공암풍벽(孔巖楓壁)

‘화양연화’(2000)로 우리 관객에게 친숙한 왕가위(王家衛) 감독은 ‘동사서독’(1995)에서 기막힌 대사를 남긴다. “나는 사막에 오래 살았지만, 사막을 보지 못했다.” 서독 구양봉이 지금까지 살던 객잔을 불태우고 그곳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사랑의 아픔과 정념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먼 길 떠나는 남자의 선 굵은 서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청도에 12년째 살고 있지만, 며칠 전에야 비로소 공암풍벽을 찾았다. 이른바 ‘청도 팔경’ 가운데 하나라는 공암풍벽을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미뤄둔 게 벌써 십여 년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그곳을 다녀온 일이 마음속에 흐뭇한 흔적을 남긴다. 공암풍벽은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 자리한 높이 30여 미터의 반월형(半月形) 절벽을 일컫는다. 청도 하면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과 ‘소싸움’ 그리고 ‘청도 반시’ 정도를 연상한다. 청도 곳곳에 거대한 크기로 새겨진 ‘새마을 운동 발상지’라는 푯말은 시대에 뒤지고 고색창연한 서글픈 느낌을 전한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구호를 써먹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시대를 앞서지는 못한다 해도 전체주의 시대의 유물을 아직도 들먹거림은 꽤 우울한 일이다. 나는 소싸움에 반대한다. 애초부터 순하고 선한 우리 소를 가지고 억지로 싸움질하도록 하는 게 뭐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인지 모르겠다. 전통적인 투우의 나라 에스파냐에서도 투우는 이제 한물간 시대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민간에서 소는 집안의 기둥이자, 아주 가깝고도 가족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그런 소를 싸움판에 내몰다니! 해마다 벌어지는 청도 반시 축제는 그야말로 2박 3일 동안 외지인들과 청도 군민들을 들썩이도록 한다. 쟁반을 닮았다고 하여 ‘반시(盤柿)’라 불리는 청도 감은 굵기도 하거니와 씨가 없고, 당도 또한 상당히 높다. 요즘에는 상업성이 많이 떨어지고, 군민들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수확 자체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한다. 위기의 대한민국 농어촌 풍경이다. 공암풍벽은 공암리에 있는 단풍나무 절벽을 의미한다. 봄에는 진달래를 필두로 온갖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운문천의 맑고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며,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절벽을 붉고 화사하게 장식하고, 겨울에는 송림의 푸르름이 웅혼한 기상을 웅변한다. 오늘날 공암풍벽은 1985년 운문댐 건설로 인해 상당 부분 수몰되어 있기로, 적잖은 아쉬움을 선사한다. 마을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연정(居然亭)으로 방향을 잡고 걷다 보면 어느새 가을 정취에 흠뻑 젖게 된다. 왕복 2.7km를 느릿하고 여유롭게 걸으면서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자아를 돌아봄은 적잖게 유쾌한 노릇이다. 반환점이라 써진 풍벽 끄트머리 그곳에서 대를 이어가며 살아온 70세 중반 남성을 만나 수몰민(水沒民)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불과 스무 사람 남짓 살고 있다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마을은 한 시대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퇴락해가는 인구소멸지역 주민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애수가 묻어있었다. 공암풍벽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에게 생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02

경주 명물 황남빵

경주 황남빵은 1994년에 경주시가 향토전통음식으로 지정했지만 그 이전부터 경주의 명물로 잘 알려진 빵이다. 단팥소를 넣어 만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팥빵이다. 처음부터 황남빵이라 부르지 않았다. 1939년 경주시 황남동에서 만들고 그 소문이 나면서 동네 이름을 따 황남빵으로 불렀다고 한다. 창업주는 지금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故) 최화영씨다. 3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86년 전통의 노포집 빵인 셈이다. 창업주인 최씨는 경주 최씨 집안 자손으로 조상 대대로 팥으로 떡을 빚어온 전통 풍속을 잘 알고 있어 이를 제빵에 적용해 보려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다. 팥은 우리 민족 전통음식 대표 재료의 하나다. 건강에 좋은 영영가 높은 식품이다. 단백질 함량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를 돕고 피로회복에도 좋다. 어느 제과점에 가든 단팥빵은 기본이다. 길거리서 파는 붕어빵도 팥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 동짓날 먹는 팥죽이나 팥을 넣어 만든 팥칼국수도 우리는 즐겨 먹는다. 특히 동짓날 먹는 팥죽은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영양을 보충하는 뜻도 있으나 다가올 새해의 액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팥에 대한 우리 민족의 유별난 사랑이다. APEC 행사가 치러진 경주에서 황남빵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CNN 인터뷰 중 “경주에 오시면 십중팔구는 이 빵을 드신다”고 소개한 것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맛있다”고 말한 빵이 황남빵인 것이 알려지면서 APEC 행사 기간 내내 경주 황남빵은 대박을 터뜨렸다. APEC 효과가 거창한 곳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황남빵에서 효과가 시작한 것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1-02

상조가 미풍양속이 되려면

최근 여당 국회의원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자녀 결혼 초대장을 피감기관에게까지 보냈다고 한다.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SNS에 자초지종을 상세히 밝혔지만, 뒤이어 이미 받은 축의금을 보좌관에게 시켜서 반환하도록 지시하는 사진이 의회에서 찍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2023년 4월에도 이상호 강원 태백시장과 김성 전남 장흥군수가 직무관련자 100~200여 명에게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가 적힌 직계가족 부고장·청첩장을 보낸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 행동강령’ 이행 실태를 긴급 점검하여 밝힌 일이 있다. 이런 뉴스를 보노라니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대학원 동기가 지방대학에 교수로 부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지역 유지들의 경조사에 불려가는 일이라면서 초임 교수 월급이 빡빡한데 부담이 크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크고 작은 학회에서도 경조사 단체 안내문이 수시로 온다. 동창회나 동호회에서도 단체 문자로 오는 경조사 소식은 빠지지 않는다. 요즘 내가 신청해서 듣는 강의에서 수강생이 교수 자녀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청첩장을 먼저 청해서 놀란 일이 있다. 유전자에 상조 문화가 얼마나 뿌리박혀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래도 사적인 모임에서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무시할 수 있지만, 이권이나 권력이 개입된 인간관계에서는 그러기 어렵다. 본래 주고받는 상조 문화는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다만, 그 미풍양속이 생긴 배경에는 생활 공동체, 경제 공동체, 나아가 정서 공동체 역할까지 하는 농경 사회라는 조건이 있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으니 두레를 만들어 품앗이로 서로 돕고, 결혼이나 장례 같은 인륜지대사 역시 가족만으로는 치를 수 없으니 동네 사람들이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농경 사회 특성상 평생토록 일정 공간에서 같이 살면서 형편껏 내놓으니 까다로운 손익 계산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마드라는 말처럼 현대인은 떠돌아다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소속이 자주 바뀌니 주고받기가 보장되지 않고, 그러니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청구서 받는 기분이 든다. 상대가 상급자이거나 권력자라면 나의 의무만 있을 뿐 상대에게서 되돌려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소, 아유, 알리지 그랬어요? 하는 말은 다 빈말이라면서 괜히 알려서 나중에 빚 갚으러 다니지 말라시며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러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부모님의 뜻이 그러하니 부모님 장례는 물론, 딸들 결혼식에도 내 지인으로는 10명에게만 알렸다. 사회 관계에서 부조할 때도 받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 문형배 전 대법관이 ‘호의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호의’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이라고 하면서 호의를 악용하는 사람에게는 중단해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호의가 많을수록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호의의 정신을 장착하지 못하더라도 공과 사의 경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억지 춘향으로 하는 상조는 줄어들지 않을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02

이제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엔비디아산 인공지능 보드 한 개가 약 3000W의 전기를 사용한다. 우리 가정에서 쓰는 소비전력과 비슷하다. 인공지능은 하루 24시간을 학습한다. 그만큼 전기를 많이 쓴다. 인공지능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인공지능에 대한 수요만큼이나 전기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지금의 4배인 400기가와트(GW)까지 확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을 다시 원자력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페르미 아메리카를 설립하며, 세계 최대 규모 에너지 및 데이터센터를 목표로 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지금의 100GW에서 145GW로 늘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7월 영국 정부는 약 71조 원의 비용이 드는 대형 원자로 2기의 추진을 결정했다. 스웨덴은 소형 발전기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여러 기를 세우는 계획을 수립했다. 태국 정부는 국가 에너지 계획(2024∼2037년)에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포함하고, 필리핀도 2030년대 초반에 원전 가동을 계획한다. 우리나라는 두산 에너빌리티, 한전기술, 한전원자력연료 등에서 I-SMR 등 원자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AI 기반 예측 제어, 디지털 트윈 기술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SMR 수출을 위해 노력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 인공지능 시설 관련 전력 수요가 2024년 대비 2~3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치열한 인공지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소형모듈원전에 투자한다. 구글도 아마존도 오픈에이아이도 소형모듈원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외 많은 기업이 원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에너지원별 1kwh당 발전 원가는 원자력 54원, 액화천연가스 126원, 신재생에너지 264원이다. 또한 화석연료는 환경오염 문제, 태양광·풍력은 날씨에 크게 좌우되어 생산이 불안정하다. 원자력은 대용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탄소 배출도 적다. 원전은 사고 시 위험하고,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원자력은 안정적인 전기공급과 단가에서 매력적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기를 소모한다. 전기가 없으면 인공지능도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풍요도 미래도 없다. 세계 각국과 기업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원전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원전은 건설에도 많은 시간이 든다. 재빠른 대처만이 인공지능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원전은 가장 위험한 에너지이나 지어진 원전은 계속 잘 쓰되 추가로 원전을 건설하는 데는 반대한다. 그가 내건 AI 세계 3대 강국 실현이라는 1호 공약은 원전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로만 하는 공약이 아니라면 사용할 정확한 전기량을 계산하고 이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이념을 떠나 현실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원전인지 친환경인지를. 원전 없이 나라의 미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전기 없는 세상은 미래도 없다. /김규인 수필가

2025-11-02

경주박물관의 글로벌화

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한 것은 해방직후인 1945년 10월 7일이다. 광복과 함께 국립박물관이 결성되자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을 접수해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발한 것이다. 당시 최순봉 관장과 직원들은 일본인 직원으로부터 소장품과 시설 일체를 인수하게 된다. 이후 미군정의 협조를 얻어 부산과 대구에 살던 일본인 사업가가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도 회수하게 된다. 경주분관은 1946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고고학적 방법을 통한 고분 발굴에 나서게 되는데 그곳이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인 호우총과 은령총이다. 호우총서는 광개토대왕명 호우 이른바 청동그릇(보물 1878)이 발견됐고, 은령총에서는 금귀걸이 한 쌍과 귀금속 제품 등이 발굴됐다. 이후 박물관은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임시 이전하는 시련도 겪었지만 1975년 7월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짓고 새역사를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분관을 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경주박물관은 오랫동안 신라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으로 박물관을 운영해 왔다. 일찍 어린이 교육과정도 두었다. 그래서 신라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소문났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렸다. 경주박물관이 가진 신라 천년 고도의 역사적 상징성에 더해 APEC 외교 무대가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대 역사를 품어왔던 박물관에서 현대사의 의미가 가미된 이벤트가 일어난 것만으로 역사적 기록이다. 경주박물관에 대한 세계인의 이목이 모이면서 경주박물관은 이미 세계인의 박물관으로 격상됐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02

경주 APEC 이후에 남은 것: 유치의 성과보다 더 중요한 질문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도시 인프라와 지역 경제에 일정한 긍정 효과를 남겼다. 정상급 외교 무대가 지역에서 열렸다는 상징성, 관광 수요 확대, 글로벌 인지도 제고 등은 분명 지역 경제와 지방 MICE 산업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이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회의의 과정 전반을 돌아보면, 국제행사 운영 체계 전반에 관한 근본적 질문도 함께 남겼다. 이미 여러 외신은 행사 기간 중 교통·숙박·안내 체계, 의전 동선, 언론 대응 등 국제행사로서의 완결성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편향되거나 단편적인 평가가 아니라, 일부 외신 기사와 글로벌 기자단 커뮤니티에서 공통으로 제기된 사안이다. 즉, 행사 유치 자체는 성공했으나 운영의 디테일이 따라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특정 항목의 ‘실패’가 아닌 ‘체계적 점검 부재’에 대한 평가다. 여기에 더해, 국내에서는 행사 전후로 국정 기능이 흔들렸다는 논쟁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탄핵 논의와 권력 공백 문제를 둘러싼 지적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중앙정부 차원의 전략적 메시지 조율과 사후 정책적 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정권 교체, 탄핵 논의, 정치적 대립은 민주주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가 흔들린다고 해서 민간경제나 행정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대규모 국제행사는 정권의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 전 부문별 시스템의 종합 성능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누가 집권하든, 어떤 상황이 오든, 행정·의전·안전·숙박·교통·언론 대응·민간 협력 등이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만약 그 답이 “아직은 그렇지 않다”라면, 이번 경주 APEC이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유치의 성공’이 아니라 ‘취약 지점이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번 APEC은 거울이었다. 외교 인프라, 지역 MICE 역량, 중앙-지방-민간 협력 체계, 행사 프로토콜, 취재·언론 지원 시스템, 위기 관리 매뉴얼 등 대형 국제행사를 치르는 국가의 기본 체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계기였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국제행사를 어디에 유치할 것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 시스템은 언제든, 어떤 정치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우리는 국제행사를 ‘유치 목표’ 중심에서 ‘운영역량 강화’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가 일시적으로 멈추더라도, 행정·프로토콜·위기 대응·매뉴얼·민관 협력 체계는 흔들리지 않는 구조, 즉 국가 가버넌스의 내진 설계가 필요하다. 포항 등 국제컨벤션을 적극 추진하려는 지자체도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Post-APEC 시대의 우선 과제는 더 이상 유치 경쟁이 아니다. 정부·지자체·민간·지역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 국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경주 APEC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크고 값진 메시지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1-01

기록을 안 보고 내린 판결이라니

“변호사님, 판사님이 저희가 낸 서면을 안 보신 거 같은데요” 변론 기일에 법정을 나오며 의뢰인으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다. 준비서면에 적어 낸 것인데 판사가 이를 모른 채 묻는다거나, 이미 낸 증거인데 이에 대해 판사가 모르는 듯 보이면 당사자들이 묻곤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판사님들이 사건이 많으신데다 우리가 서면을 낸 지도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판사님들은 판결문 쓰시기 전엔 무조건 모든 서면과 증거를 꼼꼼히 보시니까 우린 그전까지 유리한 주장과 증거를 잘 내면 아무 문제 없다고 의뢰인을 다독이곤 한다. 이런 나의 판사를 위한 변론은 정말 그렇다. 재판 중엔 판사들이 기록과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 듯 보였던 사건도 나중에 판결문을 보면 최종 판단의 근거가 된 증거와 주장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판사들은 당사자가 낸 서면과 증거들, 변론전체의 취지를 정밀히 검토해서 판결하고 판결 이유를 구성한다는 것을 필자는 13년의 변호사 생활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의뢰인들이 이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판사는 기록 안 보고 판단한다면서요. 우리도 저 판사랑 잘 아는 전관 변호사나 연수원 동기를 선임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대법원 판사들도 기록 안 보고 판결하던데요’ 할 말이 없다. 더 이상은 변호사 입장에서도 판사님을 위해 변론을 펼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판사 중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대법원 판사들이 기록을 보지 않고 판결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만 전 국민이 보고 말았으므로. 지난 대선기간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기록이 인계된 지 이틀 만에 평결을 내렸다. 평결은 최종 판단을 끝내는 결정이다. 종이로는 트럭 한 대에 가득 실릴 양이라는 6만페이지가 넘는 기록이 온 지 이틀만에 최종 판단을 했다는 것은 기록을 안 보고 판단했음을 자인하는 꼴이었다. 심지어 민사소송법상 법률적 판단만 가능한 대법원이 사실심 판단이 의심되는 판단을 한 것이었고, 무려 항소심 법원의 무죄 판단을 유죄로 180도 뒤집는 내용의 판단이었다. 그런 중차대한 판단을 기록도 안 보고 이틀 만에 해버린 것이 잘못이라는 걸 대법원 스스로도 알긴 알았던 것일까. 처음엔 당당하게 “대법관들이 전자기록으로 다 보고 한 평결이다”라고 했던 천대엽 대법관은 최근 “대법관들이 기록을 다 봤다는 것은 나의 추정이었다”라고 말을 바꿨다. 얼마 전 국회 법사위에 나온 대법원장은 기록을 언제 보았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엔 입을 꾹 다물고,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갔다. 변호사 입장에선 꽤나 절망적이다. 판사가 기록을 안 보고 판단한다면 무엇을 믿고 재판을 받아야 하나.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라고 한 고 한기택 법관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아직 우리 법원엔 이렇게 “목숨 걸고 재판하는 법관”이 더 많을 것이라고 믿어보는 것이 지금의 유일한 희망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