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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을 다하는 삶이기를

찾아오는 제자가 많은 한 여교사의 이야기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선생과 함께한 동아리 활동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 스승을 찾는다. 나의 학교생활도 23년이 흘렀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스쳐 간 제자도 많지만, 나를 기억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몸으로 부딪치며 함께한 여교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마음을 움직인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방법에서 직접 체험하는 형태로 문화와 교육에 대한 인식의 틀이 바뀌고 있다. 몸으로 체득하는 활동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때문이다. 경제 여건이 크게 개선된 지금 상황에서 보면 당연한 변화이다. 몸에 체득한 것은 신체의 기억으로 남으며,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스승과 가까이 지내며 체험한 시간이 길면 마음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생산성과 실적이 사람을 평가하는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느 면에서는 인간다움보다는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관점에 따라 더 좋게 평가받기도 한다. 어쩌면 일의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시하는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속에서도 나를 바로 세우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삶은 단순하게 보면 하고, 하지 않는 것의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결과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질이 결정된다. 지금은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 또한 현재의 선택에 의존한다. 인생의 가치도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나는 오늘도 보다 나은 선택을 찾아 하루를 보낸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의 갈림길에서 서성인다. 돌아보면 선택은 신념과 철학의 소산이 아니라 단순히 살아가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획일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남과 다른 무엇을 해야 하지만, 온전한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내 삶의 주인으로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으나, 원하지 않는 그 무엇을 강요받는다. 우리는 타협하고 순종하며 이 사회에 길든다. 사람들의 불행은 대개 자신을 잃는 데 있다.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않고,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서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공장에서 생산된 공산품처럼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상품화된 가공식품을 섭취하는 것처럼,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똑같다. 자신이 주인이 된 행동이 줄어든다. 상품화된 삶의 모습이 싫다. 같은 모습을 한 삶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인생은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성장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삶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주변부 사람처럼 혼자 서성이는 나를 본다. 복잡함과 고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꾸 한 발을 빼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항상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반성한다. 매끼 식사를 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일한다. 인생에 변화를 줄 한 줄의 글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멋진 풍경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더욱 원만한 세상살이를 위하여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소중한 이와 시간을 가진다.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더욱 의미 있는 생활을 찾는다. 도로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잡초가 묵묵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철이 지나 앙상한 줄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에서 구도자의 그 무엇을 느낀다. 자신의 길을 떠난 씨앗은 다시 자리를 잡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숙연함을 느낀다. 햇빛만 계속되는 인생은 행복할까?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된다면 사막처럼 삭막한 삶이 되리라. 선택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 궂은 날과 밝은 날의 조화가 중요하다. 행복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일상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한다. 사람과 만남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따스함을 함께 하고자 나는 다시 마음을 다진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싶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웃고 살아도 부족한데 찡그리고 사는 날이 더 많은 게 우리 삶이다. 최고가 아니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남은 삶을 살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6-06-03

초접전 대구시장 선거, 투표율이 승부 가른다

지방선거 본투표가 3일 실시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이 대구로 향하고 있다. 역대 지방선거 때마다 으레껏 보수후보가 우세했던 대구에서 이번에는 선거일까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박빙 판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시장을 배출하기 위해 총공세를 폈고, 국민의힘은 보수 텃밭을 지키기 위해 당력을 집중시켜 왔다. 판세는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아웃(5월 28일)’ 직전까지 대혼전 상태였다. 중앙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휴대전화(가상번호) 면접 조사 방식으로 지난 26~27일 대구 유권자 8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구시장 후보 지지도는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39%,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가 42%로 오차범위(±3.5%포인트) 내에서 접전을 벌였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같은 기간(26~27일) 대구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휴대전화 가상 번호 이용) 방식으로 대구시장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김부겸 후보가 40%, 추경호 후보 41%를 기록했다. 코리아리서치가 열흘 전에 실시한 조사와 비교해 보면 김 후보는 3% 포인트 하락했지만, 추 후보는 4% 포인트 상승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두 기관의 조사 모두 블랙아웃 직전 실시됐다. 이제 김 후보와 추 후보 양측 모두 지지층 결집과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썼다. 당 지도부는 물론 전·현직 대통령까지 두 후보 지원에 나서면서, 격한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이번 선거의 핫이슈가 된 대구·경북(TK) 통합신공항 예정부지(군위군 소보면)를 시찰한 후, 들녘에서 주민들과 모내기 체험을 하기도 했다. 김 후보 캠프에서는 “이 대통령이 신공항 예정지를 찾은 것은, ‘조기 착공’이 정부·여당·후보의 공동 의지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은 고향인 안동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5월 19~20일)에 참석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회담 하루 전날인 18일 안동을 찾아 전통시장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구 칠성시장에서 추 후보 유세 지원을 한 후, 일주일 지난 31일에도 서문시장과 수성못에서 추 후보와 같이 동행하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에도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았었다. 그의 추 후보 지원이 대구시장 선거 판세에 어느 정도 파괴력을 보일지에 대해 정치권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까지 대구시장 선거전에 등판한 것은 선거가 그만큼 대혼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김 후보는 유권자를 향해 “투표를 통해 시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그런 선거를 하셔야 한다”고 했고, 추 후보는 “오만한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보수의 심장인 대구 자긍심을 지키는 데 시민 모두가 나서달라”고 했다. 두 사람의 승패는 오늘 누가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많이 나오게 하느냐에 달렸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6-02

민주주의 꽃, 선거

영국의 명예혁명은 영국 의회 민주주의를 출발시킨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이다. 당시 절대권력인 왕정은 신의 이름을 빌려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했으나 명예혁명 후 이른바 왕권신수설이 붕괴된다. 이 때 제정된 권리장전은 국왕도 법 아래 있으며 의회와 국민이 동등한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헌법적 원칙을 세운다. 역사가들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기초가 이때 마련됐다고 평가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1항에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선거란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나랏일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일이다. 대의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 질서를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치열했던 선거운동이 끝나고 오늘은 투표 날이다. 대구는 178명을 뽑는 95개 선거구에 324명이 출마해 1.8대 1의 경쟁을 보였고, 경북은 208개 선거구에서 372명을 선출하는데 691명이 등록해 1.9대 1의 경쟁을 보였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끝나 출마자들은 오늘 실시되는 선거 결과에 모든 신경을 쏟게 된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란 말이 출마자들에게 실감 나게 들리는 시간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조조를 막바지 궁지에 몰아넣고도 끝내 목숨을 뺏지 못한 것을 하늘의 뜻이라 했다. 하늘의 뜻이 선거 결과에는 어떻게 나올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6-02

6·3 지방선거 결과의 예측

오늘 드디어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지방선거 역시 나라의 중요한 행사로서 여기에서 분출되는 민심의 향배는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을 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지난 1월만 하더라도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 큰 이론이 없었다.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경북 한 곳만 제외하고서는 민주당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기는 고공행진이었고, 주식은 활황의 날개를 타고 올랐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내부 분쟁으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민주당의 정청래 대표는 “전국을 파란 바람으로 물들여 승리하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4, 5월을 거치며 판세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눈에 ‘공소취소특검법안’을 필두로 한 여권의 독주 현상이 차차 부각되었다. 반면에 지긋지긋한 국민의힘 내분은 선거가 다가오며 진정세로 접어들어 더 이상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오만한 권력에는 반드시 철퇴를 내린다. 비근한 예로는, 2017년의 소위 ‘조국사태’ 이후 ‘내로남불’의 문재인 정권이 몰락했고, 그보다 조금 전에 허구한 날 친박논쟁으로 소모한 박근혜 정권에 국민이 차갑게 돌아섰다. 가히 우리 현대의 역사적 전통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우리 국민은 오만해진 권력을 절대로 그대로 놔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전장터인 서울의 판세가 선거일이 가까워져 올수록 이상하게 민주당 측에 유리하게 바뀌어 갔다. 그리고 서울이 하나의 진원지가 되어 파동이 전국으로 퍼졌다. 서울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원래 오세훈 시장은 한동훈 전 대표 그리고 배현진 의원과 함을 합쳐 국민의힘 내에 도당(徒黨)을 만들었다. 이 도당은 줄기차게 국민의힘 집행부를 내부 공격했다. 이러면서 경북 한 곳 이외에는 여권이 압도적으로 석권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지며 그 도당의 공격이 약해지는 사이 야권의 힘이 좀 회복되었는데, 그 사이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그 도당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을 무시하고 서울시의 공천을 전횡했다는 말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이는 한국의 정치사에서 아주 보기 드문, 어쩌면 전무후무한 일일지 모른다. 실제로 서울시 비례대표의 선거공보를 보면, 뜬금없이 배현진 의원이 이번 서울 지방선거의 주인공인 양 전신사진으로 한 면을 완전히 차지하며 부각되었다. 이로써 그나 도당이 공천을 좌지우지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성치 않은 몸으로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하였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어느 정도 자신의 몫을 하였다. 이런 면들을 종합한다면, 야당으로서는 서울의 실패가 너무나 뼈아플 것이나 대구, 경북을 비롯한 영남의 상당 지역과 충청권의 일부를 야당이 가져가지 않을까 본다. 장기간에 걸친 몇 겹의 ‘내란특검’이나 각종의 일방적인 입법을 통해 야당을 박살 내고 치른 이번 선거의 결과가 이와 같이 된다면 이는 어쩌면 야당의 판정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평 변호사·(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2026-06-02

겸손과 배움

세상은 흔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천재라 부른다. 남들이 수년 동안 익혀야 할 것을 짧은 시간에 터득하고,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진정으로 오래 빛나는 사람들은 단순히 재능만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배우기를 즐겼고, 성과를 이루고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가수 김태연 역시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가창력과 감성표현으로 ‘천재’, 심지어 ‘기인(奇人)’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은 자신을 완성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여전히 배우고 싶어 한다는 자세이다. 사실 사람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자만에 빠지기 쉽다. 실력을 인정받고 주변의 칭찬이 늘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배움을 멈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이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그러나 성장의 시계는 바로 그 순간부터 멈추기 시작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성과가 클수록 더욱 겸손해졌다. 축구 손흥민 선수는 득점왕, 월드 스타가 된 후에도 꾸준한 훈련과 자기관리, 승리는 늘 동료의 공으로 돌리는 겸손함이 있었다.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은 90세가 넘어서도 매일 독서와 학습을 지속하고 있다. 그들은 성공의 요인을 재능보다 학습과 노력에서 찾았다. 기업 혁신도 마찬가지다. 제조 현장에서 품질이 좋아지고 실적이 개선되면 자칫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안일함이 생긴다. 하지만 세계 최고 기업들은 오히려 좋은 성과가 나올 때 더 많이 배우고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한다. 오늘의 성공 방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이것이 지속 성장의 비결이다. 성공의 공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배움→ 도전→ 노력→ 성과→ 겸손→ 배움’이 선순환이 계속될 때 개인도 조직도 발전한다. 성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고,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성장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노자는 ‘강과 바다가 모든 물의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결국 큰 바다를 이루듯, 겸손한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인다. 반면,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워 더 이상 아무것도 담지 못한다. 오늘날 변화의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어제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재능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부족하다. 여기에 배우려는 자세와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나는 아직 배워야 하고, 할 일이 많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천재를 넘어서는 힘은 재능이 아니라 평생 배우려는 자세와 겸손함 속에 있다. 그것이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조직 혁신과 인생 경영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6-02

이스파한에서 만난 꼬마 숙녀는 무사할까?

*이 기사는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되고 있는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2011년 봄. 17일간 이란을 여행했다. 튀르키예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이란 북부에 도착했고, 거기서부터 쭉 아래로 내려가며 수도인 테헤란과 푸른 지붕의 모스크가 아름다운 이스파한, 영화 ‘300’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의 암벽 무덤이 지척에 있는 쉬라즈 등을 버스와 기차를 타고 떠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역시 비즈니스가 아닌 여행을 위해 이란을 찾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2주 넘는 기간 동안 내가 만난 한국인이 하나도 없었을 정도. 아니, 동양인 자체가 드물었다. 겨우 중국 여성 여행자 한 명을 만나 함께 점심 한 끼를 먹었던 게 생각난다. 당연지사 외로웠다. 그럼에도 이란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전엔 보지 못했던 이색적인 풍광과 건축물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요리한 양고기에 곁들인 사프란 섞은 밥도 나쁘지 않았다. 어디서건 배고픔은 음식을 가리지 않게 만든다. 석양을 배경으로 검은색 차도르를 걸친 여성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모스크를 빠져나오는 모습은 초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거대한 산 아래 황무지에 붉게 핀 양귀비꽃은 재론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이란 최고의 고대 유적지에서 만난 페르세폴리스의 열주(列柱)는 유럽의 어떤 석조건물보다 미려하고 웅장했으며, 중세 시대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이 낙타를 묶어두고 하룻밤 묵어가던 카라반 사라이(karavan sarai) 옥상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던 밤은 낭만적이었다. 기자는 보지 않고 넘어갔던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의 인기가 높았던 탓인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드라마 주인공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던 이들도 있었다. “북한에서 왔냐? 남한에서 온 거냐?”라는 질문은 하루에 서너 번씩 들었다. 그 당시 이란엔 북한 군사고문단이 와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매혹적인 이슬람 건축물과 쓸쓸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막 풍경, 거기에 더해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 이란은 그렇게 가슴과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무슬림들은 그게 누구이건 자신의 곁으로 온 사람을 ‘귀한 손님’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관공서 벽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슬림은 형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알다시피 이란 국민의 절대다수는 시아파 무슬림이다. 나는 무슬림이 아님에도 이란 사람들에게 형제와 유사한 대접을 여러 번 받았다. 개인적 체험을 보편화시키기엔 어려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란을 여행하며 겪은 기자의 경험만을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이란 사람들의 순수함과 이타심은 별스러운 데가 있다. 이란은 외국인이 묵어갈 수 있는 숙소가 한정적이다. 거리엔 당연지사 한국어가 한 글자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영어로 쓴 간판도 거의 없다. 길을 잃고 테헤란 지하철역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성이는 나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까지 숙소 앞까지 안내해 준 ‘알리’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 남성의 친절함을 잊지 못한다. 출근까지 미루며 어려움에 처한 여행자를 돕는 태도. 알리와 악수를 하며 이란 사람들이 말하는 ‘형제애’가 어떤 것이란 걸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스파한 이맘광장에서 만난 푸른 옷의 여자 아기.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그 꼬마의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도 15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선연하다.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 삼촌들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한 기자를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던 귀여운 아기.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뻐서 아기 엄마의 허락을 받고 사진까지 찍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했다. 전쟁이 시작된 초기. 초등학교에 폭탄이 떨어져 200여 명에 가까운 이란 아이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TV 화면을 통해 보며 이스파한의 그 아기를 떠올렸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란 도시 곳곳에 쏟아질 미군의 포탄엔 눈이 달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쟁과는 무관한 아이들을 피해 가지 못한다. 실제로도 개전 이후 지금까지 적지 않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비극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인간에게 공포를 준다. 기자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 밤엔 이런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테헤란의 착한 노동자 알리와 지금은 훌쩍 자랐을 이스파한의 꼬마 숙녀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무사하기를. 꼭 그러하기를.”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6-02

사랑의 내력(內歷)

지난 연휴, 타지에서 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의 집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견디며 일구어낸 독립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제 몫의 삶을 당당히 살아내고 있는 어엿한 사회인이건만 부모의 눈이란 참으로 기이하고도 무력한 돋보기 같았다. 장성한 아들의 어깨 뒤로 여전히 품 안에서 뉘어 키우던 아이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손에서 걸레가 떠날 줄을 몰랐다. 방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이불을 걷어 올려 세탁기를 돌렸다. 다가올 여름을 대비해 에어컨 필터를 뜯어내고 선풍기를 분해해 찌든 때를 닦았다. 또 아들이 안내한 카페도 가고 소문난 식당 앞에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의 가장 깊은 서랍에 남은 것은 맛있는 음식보다도 아들의 공간을 쓸고 닦던 그 수고로운 행위 자체였다. 문득 지나온 시간의 궤적이 겹쳐지며 묘한 기시감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젊은 날 친정엄마 역시 내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그러했다. 엄마는 딸이 차려주는 대접의 자리에 공주처럼 고상하게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싱크대 앞에 붙어 서서 밀린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뒤져 밑반찬을 뚝딱 만들고, 집안의 구석진 먼지를 찾아내 청소하기 바빴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못내 싫었다. 자식의 집에 와서만큼은 그저 편하게 쉬다 가기를, 대접받는 손님으로서의 여유를 누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왜 엄마는 자식 앞만 서면 무조건적인 노동의 주체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까. 왜 당신의 존재를 낮추어 자식의 일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려 하실까. 그것이 젊은 날의 내가 품었던 철없는 의문이자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건너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아이가 자라 다시 나만의 우주를 독립해 나간 지금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고 있는 엄마의 습성을 바라보며 비로소 그 지극한 마음의 내력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계보의 이어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세계를 조건 없이 품어 안는 방식을 배우는 영성(靈性)의 과정에 가깝다. 부모의 눈에 자식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가거나 완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이 그를 두고 대리님, 과장님 혹은 한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라 부르며 무게를 지울 때, 오직 부모만이 그 무거운 갑옷 속에 감춰진 부드럽고 유약한 살결을 알아챈다. 아무리 높이 자란 나무라 할지라도 뿌리는 여전히 대지의 깊은 품을 필요로 하듯, 자식이 이룬 삶의 거처는 부모에게 언제나 보살핌과 안쓰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수필가 피천득은 인연을 말했으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오직 아래로만 흐르는 내리사랑의 물리 법칙을 따른다. 자식의 집을 청소하는 행위는 단순한 가사 노동의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거친 전장에서 상처받고 돌아왔을 자식의 고단함을 닦아내 주는 치유의 의식(儀式)이자, 네가 없는 시간에도 너의 안녕을 바라겠다는 무언의 기원이다. 칠이 벗겨진 선풍기 날개를 닦아내고 필터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속에는 자식의 일상에 조금의 막힘도 없기를, 그가 들이마시는 공기 하나조차 맑고 청정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생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누렸다. 그러나 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스스로 부모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가 누렸던 그 모든 안락함 뒤에는 누군가의 굽은 등과 튼 손마디,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지워내며 자식의 길을 밝혀준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우리는 청소포를 들고 자식의 방을 닦아내던 부모의 뒷모습을 닮아 가며, 비로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깊고 사유 깊은 사랑의 온도를 배워가는 것이다. 아들의 방은 깨끗해졌고, 내 마음의 해묵은 먼지 또한 말끔히 씻겨 내려간 참으로 푸르고 개운한 봄날이었다. /김경아 작가

2026-06-02

같은 주제, 다른 음악 – 바리에이션의 매력

음악 전공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연주해 보는 매력적인 형식이 있다. 바로 ‘변주곡’이다. 변주곡은 피아노 문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작곡 기법 가운데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형식이다. 바리에이션(Variation)은 말 그대로 ‘변주(變奏)’를 뜻한다. 라틴어 ‘바리아티오(Variatio)’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리듬, 화성, 음형, 조성, 분위기 등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기법이다. 파헬벨의 ‘캐논’을 바탕으로 한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을 떠올리면 쉽다. 반복되는 저음 진행 위에 상성부가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되며 전개된다. 이처럼 중심 악상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하고, 이를 질서 있게 배열한 악곡을 우리는 변주곡이라 부른다. 변주곡의 긴 역사 속에는 각 시대의 음악적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오래된 예로는 서양음악사에서 14세기 말 작자 미상의 ‘파리의 풍차’가 거론된다. 16세기 들어 변주곡은 하나의 일반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이는 건반음악의 발전과 맞물려 있었다. 초기에는 에스파냐와 영국의 류트음악과 건반음악 속에서 발견되었으나, 이후에는 독립된 악곡 혹은 악장의 형태로 발전하며 하나의 음악 형식으로 확립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변주곡은 기법적으로 정점을 맞이했고, 바흐 만년의 작품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서며 변주곡은 구조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핵심 형식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변주곡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각 변주마다 주제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기본 화성을 유지한 채 리듬이나 반주 형태에 변화를 주는 비교적 단순한 ‘음형 변주’가 주로 사용되었다. 베토벤에 이르러 변주곡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베토벤은 각 변주마다 조성, 박자, 빠르기를 과감하게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주제에 없던 새로운 선율을 더해 각 변주를 하나의 독립된 악곡처럼 만드는 ‘성격 변주’를 선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낭만주의로 이어져 바리에이션을 보다 자유롭고 극적인 감정 표현의 도구로 변화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변주곡은 더욱 자유로운 형태로 확장된다. 전통적인 주제와 변주의 틀을 유지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일부 작곡가들은 조성의 해체와 현대적 화성, 새로운 리듬 언어를 활용해 변주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해석했다. 때로는 원래 주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하거나 재구성하기도 하며, 변주곡은 더 이상 단순한 장식이나 형식적 기법이 아니라 음악적 실험과 창작 정신을 담아내는 장르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여러 시대를 거쳐 발전해 온 피아노 문헌 속에는 수많은 명곡들이 존재한다. 전공생들에게 특히 익숙한 작품으로는 모차르트의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작은 별 변주곡')’, 슈만의 ‘아베그 변주곡’,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을 들 수 있다. 전공생들은 이러한 변주곡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적 균형 감각을 터득하게 된다. 어떤 변주에서는 투명한 음색과 절제된 프레이징이 필요한 반면, 또 다른 변주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극적인 다이내믹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가 수많은 가능성으로 확장되는 순간, 변주곡은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음악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6-06-02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작가

힘들었다면 극히 힘든 학기다. 일력을 보니 벌써 5월 들어 다섯 번째 주다. 한두 주 후면 한 학기를 마친다. 그 힘든 중에 학생들과 수업이 있었다. 제일 ‘쉽고’ 보람된 시간. 이렇게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21세기 동시대 작가들로 공부를 한 학기였다. 1990년대 중후반의 은희경·공지영·신경숙부터 동시대 작가들인 최진영·최은영·예소연의 작품들 이야기, 김봉곤·박상영 같은 퀴어 작가들과 자전적 소설ㆍ‘오토 픽션’ 이야기, 1990년대부터 ‘실험적’ 소설의 길을 개척해 간 장정일의 문학 세계, 재난과 참사가 잇달았던 2000년대의 증언적 이야기들, 윤고은·한강처럼 국제적인 문학상 수상한 작가들의 대표작들, 한 시대를 풍미한 김영하·김연수에, 수십 년째 문단을 지키고 있는 황석영 소설들···. 현재적인 이야기는 쉽지만은 않다. 문학사의 문맥 속에서 이야기하려고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퀴어 소설 이야기는 이광수 소설 ‘윤광호’('청춘' 13, 1918년 4월)와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유학 와 공부한 가브리엘 실비안의 사력을 기울인 논문을 다시 읽기도 해야 한다. 여성 작가 이야기는 나혜석·김일엽·김명순 같은 여성 ‘혁명가’들의 전통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즘을 고작해야 30년 안팎의 전통밖에 지니지 못한 경향으로 착각하게 할 수 없다. 이럭저럭 어렵게 끌어가던 수업. 이제 학생들 발표로 이어진다. 발표 주제들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첫 시간부터 학생들은 ‘반란’이다. 영화감독 윤가은론, 이름 ‘생소한’ 작가 정영수론,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의 ‘판타지 작가’ 이영도론을 들고 나온다. 첫 시간부터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학생들은 출판사나 문단 메커니즘이 ‘조성’하는 문학·작가의 관념에 염증을 내고 있다. 발표가 기약된 정세랑, 정유정, 장강명, 손아람의 이름들도 어딘지 모르게 문단 메커니즘의 통제력 범위를 넘어선 듯한 인상이다. 이양지·유미리 같은 ‘재일’ 작가와 김유경·도명학 같은 탈북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가 작지 않다. 문득 드는 생각. 역시 미래 세대는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기성 세대와 특히 권력은 자신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랫세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젊은 세대는 이 환상에 ‘혼구멍’을 낸다. 그네들은 정치적 이상과 이념에 대해서만 반란 중인 게 아니다. 문화와 문명,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력을 주장한다. 언제든 새로운 길을 추구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의 해석이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학기였다. 돌이켜 보니 새옹지마, 나빠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시대와 정치, 권력과 메커니즘이 야만적이라 생각했다.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있던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조차 없지는 않았다. 학생들, 젊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작가들 이름을 이렇게 새롭게 의식하게 됨도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이제 완연한 5월을 지나 어느덧 6월이다. 지난 25일에는 이효석 작가를 만나러 평창에 다녀왔다. 그의 기일이었다. 새로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또 생각한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6-01

사거리 절 잔치

절은, 자신을 내려놓거나, 대상을 존경하거나, 신을 섬길 때나. 감사의 표시를 할 때 보통 행하여진다. 수양, 존경, 신앙, 감사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고귀한 행위이다. 절에 대한 4가지 앙꼬를 떠올리면, 절은 아무 곳에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구걸을 위하여 절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몇 년에 단 한 차례. ‘선거철 절’이 그것이다. 이런 귀한 절이 선거철이 되면 마냥 넘친다. 평소에는 절을 받는 자들이 이때는 절을 하는 자들이 된다. 그들은 나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한 표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내가 가진 ‘한 표라는 대단한 권력’ 앞에 잠시 무릎을 꿇는 것이다. 받고 싶지 않은 절이지만, 그것도 나를 향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들은 나를 통하여 자신을 수양할 이유도 없고, 나를 존경할 턱도 없고, 나를 신처럼 경배할 리는 더욱 없다. 감사의 절은 내가 그들에게 한 표를 던져주었을 때 사후에 받는 것이므로, 표를 던지기 전이라 감사의 절을 받을 수도 없다. 설혹 절하는 그들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더라도, 선거판이 끝나면 그들의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절을 받은 사후의 대가는 특이하다. 당선된 자들은 임기 내내 절을 돌려 받아 수십 배로 회수한다. 남는 장사다. 낙선된 자들은 다음 절판이 벌어질 때까지 자신이게 표를 주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으로 원망의 세월을 보낸다. 괜히 찜찜하다. 사실 나는 그들의 절을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다. 받을 마음이 없다. 아니 받기도 싫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은 그들의 절의 각도, 절의 횟수, 눈물의 양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 문제 해결 능력, 도덕적 책임, 공적 기록이다. 평소에는 ‘내가 옳고, 내가 최고요, 내가 적임자’라고 외치는 그들이, 선거철만 되면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읍소한다. 말투도 ‘내’에서 ‘저’로 바뀐다. 그들의 절은 자신을 내려놓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더욱 올려놓기 위함이다.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조차도 한 표를 준다면 부처님 저리 가라다. 절의 방향은 아래인데, 그들의 마음은 위를 향한다. ‘한 표라는 신’을 경배하는 그들이 벌이는 사거리 신전은 수행자들로 넘쳐난다. 그들의 가사 장삼은 붉은색, 파란색, 하얀색 등등으로 형형색색이다. 교차로 신호의 색깔이 바뀌면 그들의 절의 방향도 달라진다. 언제 이러한 일사불란한 예의와 존경의 파티가 있었던가! 참으로 대단한 수행도량이다. 공자님께서 이 광경을 보면 ‘참으로 예가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하실 일이다. 공자님의 지고지선인 인의 결정판 극기복례의 생활 현장이다. 설날 세배를 드리던 순간의 절, 자신을 내려놓기 위하여 구슬땀을 흘리는 절, 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몸을 낮추는 절은 신호등이 지휘하는 사거리 판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가짜 수행자들에게서 절 한번 받았다고 나의 소중한 권한을 허투루 행사할 일이야 없겠지만, 인공지능이 인류를 이끌고 갈 이 시대에 벌어지는 사거리 광경은 참으로 가관이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도 모르고···. /공봉학 변호사

2026-06-01

여행할 수 없는 나라들

한국 여권이 가진 파워는 대단하다. 따로 비자를 준비할 필요 없이 여행이 가능한 국가가 180여 개. 이는 미국과 일본 여권을 뛰어넘는 방문 가능국 숫자다. 한국 여권보다 ‘힘이 센’ 건 싱가포르 여권 하나밖에 없다. 그러니, 한국 여권의 국제적 파워는 세계 2위. 영국 국제교류 전문기관은 ‘헨리 여권지수’ 발표를 통해 이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여권은 물론 싱가포르 여권을 소지한 사람도 갈 수 없는 나라가 있다. 이른바 ‘여행 금지 국가’다. 한국 외교부는 여행자가 갈 수 없는 나라를 ‘여행 경보 4단계(여행 금지)’로 지정해 그곳 방문을 법적으로 막고 있다. 단순한 권고가 아닌 강제력을 가졌기에 어기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 지금 한국인에게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리비아, 우크라이나, 수단, 아이티, 말리, 이란 등이다. 이들은 모두 테러의 위협이 상존하거나, 납치의 위험성이 높거나, 전쟁 등으로 여행자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특히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은 2007년 8월부터 현재까지 여행 금지 국가로 장기간 지정돼 있다. 반정부 무장세력에 의한 외국인 납치, 정부의 치안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넓은 지역, 해적의 약탈, 탈레반 등 극단주의자의 테러 위협이 위의 세 나라를 여행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여행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편협한 시야를 넓히는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 지구 위 모든 곳에서 앞서 언급한 위험 요소가 제거돼, 어디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6-01

일본 나라현과 경북 안동

일본의 나라현은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이다. 710년부터 794년까지 일본의 수도로 존재했던 곳. 고대 일본의 정치와 문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곳으로 일본의 고대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당나라 불교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와 사찰이 많고,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고분은 이곳이 역사도시임을 느끼게 한다. 호류지(법륭사)는 일본 아스카시대 사찰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명하다. 일본 최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유구한 역사의 호류지와 이곳의 소장 유물은 일본인의 자부심으로 통할 정도로 문화적 가치가 높다. 특히 호류지 금당에 안치된 백제관음상은 동양의 비너스로 칭찬받을 만큼 빼어나다. 백제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학자들은 백제인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왕실에 선물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을 한다. 또 이곳 금당벽화는 고구려 시대 승려 담징이 호류지에 머물 때 그렸을 것이란 설이 전해지나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1500년 전 나라와 고대 한반도 국가 간에는 각종 교류가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역사적으로 주목이 된다. 나라에는 1880년 만들어진 시립공원인 나라공원의 사슴 방목이 유명하다. 국가천연기념물인 꽃사슴 1000여 마리가 공원 등지를 돌아다니며 관광객을 맞이한다. 한해 1300만명의 관광객이 나라를 다녀간다고 한다. 한일 정상회담으로 안동이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정상회담 후 눈에 띄게 관광객이 늘어나 경북도는 나라현과의 관광·산업교류 확대를 통해 안동을 국제적 유명 관광지로 키울 생각이라 한다. 물실호기(勿失好機)라 했다.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31

자연은 왜 자유로운가?!

날마다 마당에 나가 풀을 뽑는다. 사람들은 그런 풀을 잡초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불원초(不願草)라 부른다. 내가 ‘원하지 않은 풀’이란 의미다. 세상에 잡놈은 있어도, 잡초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풀은 지구 전역을 빼곡하게 덮고 있는, 지구상 최고 최후의 생명체다. 지독한 산불이 일어난 지역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최초의 전위(前衛)도 언제나 풀이다. 박주가리, 메꽃, 개망초, 닭의장풀 같은 불원초를 뽑다 보면 찾아오는 생각이 있다. 풀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뽑아도 풀은 곧바로 다시 돋아난다. 어떻게 저리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비어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 생긴다.(虛而不屈 動而愈出)” ('도덕경' 5장) 자연에 내재한 생명력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행하는 인위(人爲)에 대응하는 말이 무위(無爲)인데, 거기서 무위자연이란 말이 나왔다. 자연(自然)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스스로 그러하다’이다. 외부의 힘이 개입하여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그런 게 자연이다. 자연의 속성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다. 누가 시키거나 강제한 것이 아니라, 제가 본래 그런 것이 자연이다. 자유(自由)는 ‘스스로 말미암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강력한 인과율(因果律)이 작용한다. 사유와 인식의 결과 행해진 행동의 원인과 과정 및 최종적인 결과까지 책임지는 것이 자유다. 자유를 외치는 존재는 사태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저 홀로 감당(堪當)하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했으니, 결과도 내 몫이란 것이다. 무한대로 증식하고 번창하는 자연을 보노라면, 자연이야말로 유일하게 자유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왜 그런지 묻지도 않지만, 그 결과를 철두철미 끝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보라! 자연에서 무의미하게 탕진되거나 소모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당신 주변의 다채로운 자연의 활동을 살펴보면 이 말에 담긴 의미를 명명백백 통찰하리라! 지난 며칠 가물었기로 마당과 텃밭에 공들여 물을 준다. 100평 남짓한 공간에 매번 두 시간 정도 골고루 물을 준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물을 준대도 거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내가 정성을 다해 주는 물은 절대로 고르게 뿌려지지 않는다. 최적의 분배에 나는 언제나 실패하는 것이다. 스프링클러를 작동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그런 법이 없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대지에 내리는 강수(降水)는 모든 공간에 지극히 적절하게 배분된다. 자연의 힘이다. 강수는 대지로 흘러들거나, 지하수로 내려가거나, 일부는 증발하여 천공의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눈이 되어 순환한다. 인간이 불러온 잉여(剩餘)와 그것이 야기(惹起)한 부정적인 결과로 지구의 오염이 인류를 포함한 생명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대다. 푸른 행성 지구의 작은 공간에 의지하여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행악질이 극에 달한 시점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저로 말미암은 모든 행위의 결과와 조화롭게 공존한다. 자연은 그러므로 끝내 유유자적 자유롭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5-31

‘잘난 사람’보다 ‘잘 뛸 사람’이 필요하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채로운 지역 발전 공약을 발표하며 뜨거운 선거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논쟁에 앞서 우리 지역에서는 “현재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가 무엇이며, 미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성과 어젠다가 먼저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력과 능력을 갖춘 리더를 현안 해결의 ‘열쇠’로, 미래 성장동력 같은 비전을 ‘자물쇠’에 비유해 보자. 자물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공감대 없이 열쇠부터 먼저 깎아 놓고 그에 맞는 자물쇠를 찾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은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으로 자신감과 활기가 넘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 년 간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 첨단 산업의 앵커기업 부재, 인구 소멸, 도심 공동화 등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거 선도 도시의 성공한 모델을 따라가는 추격형 방식(Catch-up mode)에서 이제는 지역의 강점을 살린 선도형 모델(Trend-setter model)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한다. 글로벌 산업 지형과 지역 강점을 결합해 보면 포항은 전기차 제조의 ‘풀 패키지’를 갖춘 최적의 특화 지역이다. 첫째, 배터리 소재(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와 초고강도 강판(포스코) 등 압도적 공급망(SCM)이 집결해 있고 인근에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다. 둘째, 경북의 전력 자급률은 200% 이상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통해 산업용 전기를 수도권 대비 최대 10~15% 저렴하게 공급할 정책적 토대도 마련되어 있다. 셋째, 영일만항과 신공항의 ‘투-포트(Two-Port)’ 물류망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최적의 수출 거점이다. 포항 중심의 광역권을 ‘글로벌 모빌리티 파운드리(위탁생산) 특구’로 지정해 경제적 낙수효과를 확대하고 상생을 도모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에게 굳이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를 물어본다면 서류상의 ‘자격(Qualification)’보다 내면의 역량과 추진력을 포함하는 ‘자질(Competence & Attitude)’에 더 비중을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내일의 문제를 어제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째, 비전을 보는 방향성과 통찰력, 그리고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인지하고 미래 첨단 산업으로 고도화할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둘째, 규제를 혁파하고 투자를 이끄는 추진력과 과감한 행정 규제 완화의 결단력이다. 셋째, 오직 국비 확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외 대자본과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직접 유치할 수 있는 비즈니스 역량이다. 넷째, 인구유출 극복과 분야별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의 산·학·연·관 협력뿐만 아니라 인근 자치단체와도 유기적인 소통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향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적인 정책과 비전을 가진 인재라면 누구와도 협력하는 정치 철학이다. 한마디로 지역을 위해서 ‘잘난 사람보다 잘 뛸 사람’이 절실하다. /김준홍 위덕대 초빙교수·경영학과

2026-05-31

믿음

고대 인도의 베다 문헌에는 ‘소마(Soma)’라는 신비로운 음료가 등장한다. 그것이 마황이었는지, 광대버섯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정체가 아니다. 소마는 인간이 신의 세계와 접속할 수 있다고 믿었던 통로였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손에 잡히는 무언가에 기대어 왔고, 믿음은 그렇게 몸과 감각을 통해 작용해 왔다. 나는 가끔 인간에게 ‘믿으려는 본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희망을 붙잡으려는 이 습성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반복되어 왔다. 우리 사회만 보아도 그렇다. 제도 종교 너머에 무속과 민간신앙이 깊게 스며 있고, 서낭신·조왕신·삼신할매 같은 존재들은 여전히 삶의 구석구석에 살아 있다. 그것을 미신이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어색하다. 그 믿음들은 삶을 견디기 위한 오래된 방식에 가까웠고, 나약함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은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진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소마’를 다시 불러낸다. 그의 소마는 고통을 없애주는 약이지만, 동시에 사유를 멈추게 하는 약이다. 달콤한 평온은 매혹적이지만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실제로 환각 물질이 의식 확장의 가능성으로 주목받던 시절에도, 끝은 결국 중독과 붕괴였다. 믿음이든 물질이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순간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의존이 된다. 얼마 전 신문에서 마약 유통망의 핵심 인물이 검거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때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이제는 일상 가까이에 와 있었다. 불안을 잊게 해주고 고통을 눌러준다는 그 약속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인류가 오래전부터 반복해 온 소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의 제의도 비슷했을 것이다. 신에게 소마를 바치던 의식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불안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행위였을 테다. 믿음은 그렇게 삶의 균열을 메우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문제는 믿음이 사유를 대신할 때다. 현실을 직면하는 대신 어떤 확신이나 의식에 자신을 통째로 맡기는 순간, 우리는 선택할 힘을 잃는다. 그것은 마약을 닮았다. 잠시 위안을 주지만, 결국 삶의 주도권을 흐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믿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많은 순간 믿음은 인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다. 그 믿음이 삶을 대신하는가, 아니면 삶을 견디게 하는가.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빠른 위로를 찾는다. 그러나 사유를 건너뛴 위안은 오래가지 않고, 더 큰 공허로 되돌아온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장독대 위에 물 한 그릇을 올려두고 가족의 안녕을 빌던 할머니의 모습. 거기엔 자극도, 복잡한 교리도 없었다. 다만 가족과 이웃의 삶을 향한 조용하고 간절한 바람이 있을 뿐이었다. 믿음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을 지우는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일 것이다. 소마는 신과 인간을 잇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을 신에게 종속시키는 매개이기도 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면, 그 믿음이 우리를 더 깨어 있게 하는지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5-31

대마도의 흰 커튼을 보며

집의 창문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밖에서 안을 거의 들여다볼 수 없다. 한 집만 그런가 하고 길을 가며 살펴보니 영업을 하는 곳 빼고는 대부분 집이 그렇다. 하얀색 커튼이다. 궁금했다. 자신을 잘 드러내길 원하지 않고 민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흰 커튼은 안과 밖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은 차단하지만 빛은 통과시키면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닫힌 커튼을 보면서 여행 내내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같은 아파트에 비슷한 또래들이 많이 있어서 엄마들끼리도 친해졌다. 육아와 공부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으니 초반엔 아주 좋았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나면 모여서 차를 마시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그러다보니 집안 사정을 세세히 물어보는 엄마가 생겼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해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말했으니 너도 다 말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 엄마들에게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모든 것을 열어 보여주고 나누며 함께 하는 것이었다. 처음의 가까움은 날이 가면서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부담이 되어 갔다. 얼마 후 사정이 생겨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결심한 것이 지나치게 엄마들이랑 가깝게 지내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살아왔지만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는 몇 안 된다. 이 친구들과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기간을 함께 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상대의 일을 알고자 하지 않는 무덤덤함이 그 가운데에는 있었던 것 같다.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캐묻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오랜 우정의 근간이 아니었을까. 속상한 일이 있어 이야기하면 들어는 주었지만 내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끈이었던 것 같다. 물론 가끔은 너무 무심한 것 같아서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덤덤함이 긴 시간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관계는 자주 만나고 많이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 가운데 친밀감이 쌓이면 우리는 밀접한 관계,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상대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이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라 생각해 자녀 문제라든가, 가족 관계, 심지어는 재정적인 상태까지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아침 이른 시간, 또는 밤늦은 시간에도 서슴없이 전화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한다. 관계라는 것이 무조건 다 보여준다고 더 친밀감이 쌓이는 것은 아니고 과도한 개입과 공유는 피로를 불러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반면 지나친 거리감은 잘못하면 단절을 불러올 수 있다. 겉으로만 관계가 형성되어 깊은 나눔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 두기와 적절한 절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대마도의 흰 커튼은 그런 의미에서 관계의 얇은 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과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인 것 같다. 커튼은 벽처럼 단단함으로 무장된 모습이 아닌 바람에 흔들리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완전한 차단도 아니고 온전히 열어둠도 아닌 적당한 닫힘과 절제가 관계의 기본값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잘 알고 싶고 더 나누며 함께 하고 싶은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다. 특히 문제가 생기면 개입하고 싶고 충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지만 서로의 관계를 위해 절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지켜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를 늘 고민하게 된다. 대마도를 갔다 오면서 인간관계에서 나도 흰 커튼 하나쯤 갖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흰 커튼은 관계의 완전한 단절이 아닌 관계의 유연한 경계라는 여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5-31

미디어·저널리즘과 AI···자동 기사 작성의 윤리와 품질

2023년 11월, 미국의 유서 깊은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큰 위기를 맞았다. ‘Drew Ortiz’라는 이름으로 배구공 추천 기사를 쓴 기자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기자의 프로필 사진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합성 이미지였고, 기사 본문 역시 AI가 작성한 것으로 의심됐다. 발행사는 외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70년 역사의 매체가 쌓아온 신뢰는 단번에 흔들렸다. 같은 해 초 미국의 IT매체 CNET은 AI로 작성한 금융 설명 기사 다수에서 사실 오류가 잇따라 발견돼 대규모 정정 공지를 내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MSN은 캐나다 오타와 여행 가이드 기사에서 관광객에게 현지 푸드뱅크 방문을 추천하는 황당한 결과물을 게재한 뒤 황급히 삭제하기도 했다. 미국 지역 신문 체인 가넷(Gannett)은 고교 스포츠 기사를 AI로 자동 생성하는 실험을 진행하다 오류가 잇따르자 사업 자체를 중단했다. 이 사건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쓴다는 것이 이미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신호이며, 동시에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다시 꺼내 놓은 사건이다. 글을 빠르게 생성하는 기술이 곧 좋은 기사를 만드는 기술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독자가 신문을 펼치며 무의식 중에 신뢰하는 그 ‘한 줄’의 뒤에 누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함께 따라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6 콘텐츠 산업 전망’에서 미디어 산업의 AI 활용이 이미 임계점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시급한 질문이라는 의미다. ■AI 기자는 이미 일하고 있다 AI 자동 기사 작성은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이다. 미국 AP통신은 2014년부터 자동 기사 생성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 분기 실적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도입 전 인간 기자가 다루던 기업은 분기당 약 300개에 불과했지만, AI 도입 이후에는 약 4400개 기업의 실적이 자동으로 기사화되고 있다. 14배가 넘는 확장이다. 이는 단순한 효율 향상이 아니라 그동안 보도되지 못하던 중소형 상장사 정보가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보도에 ‘헬리오그래프(Heliograf)’라는 자동 기사 작성 도구를 활용했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퀘이크봇(Quakebot)’은 지진 감지 데이터를 받아 수 초 안에 속보 초안을 작성한다. 블룸버그는 ‘블룸버그GPT’라는 500억 매개변수 규모의 금융 특화 AI 모델을 자체 개발해 운영 중이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인용된 취재원의 성별 비율을 자동으로 추적해 보도의 균형성을 점검하는 봇까지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25년 2월 ‘에코(Echo)’라는 사내 AI 도구를 도입하고 편집국 직원을 위한 AI 활용 가이드 라인을 공식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용 범위의 명확한 구분이다. 검색엔진 최적화 제목 생성, 기사 요약, 편집 제안, 인터뷰 질문 브레인스토밍에는 AI 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반면, 기사 초안 작성이나 주요 수정, 유료 구독 사이트 우회, AI 생성 이미지의 게재는 금지했다. 효율은 받아들이되 저널리즘의 본질은 인간이 지킨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한국 언론사들의 실험 국내 언론사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사 기사 5만 건을 학습시킨 자체 AI 어시스턴트로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I 도움을 받아 작성된 기사 말미에는 “조선일보와 미디어DX가 공동 개발한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기사”라는 표기를 명시한다. 동아일보는 자체 소규모 언어모델(sLLM)로 자사 콘텐츠에만 답하는 챗봇 ‘애스크비즈(AskBiz)’를 구축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영남일보는 AI 이미지 생성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시각 자료 제작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지역 언론도 변화의 흐름에서 결코 비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 외에도 기자 개인 차원의 AI 활용은 이미 일상이 됐다. 네이버 클로바노트 같은 음성 인식 서비스로 인터뷰를 즉시 텍스트화하고, 정부 발표 자료나 통계청 자료를 AI에 입력해 핵심 요지를 추출한 뒤 기사의 뼈대를 잡는 식이다. 이는 기자의 노동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줄어든 시간을 더 깊은 취재와 검증에 투입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신문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 효율의 이면, 신뢰의 균열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AI 자동 기사 작성에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다. AI는 그럴듯한 거짓을 자신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 낸다. 푸드뱅크를 관광 명소로 추천한 MSN 기사가 대표적이다. AI는 ‘오타와 가볼 만한 곳’ 데이터를 학습했을 뿐, 푸드뱅크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인간적 맥락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더 위험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인용’이다. 본 연재 15주 차 법률 AI 편에서도 살펴봤듯, AI는 실제로 한 적 없는 발언을 누군가의 입에 그럴듯하게 붙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논문과 판례를 인용한다. 기자가 이를 그대로 옮긴다면 기사는 곧 허위 정보의 출구가 되고 만다. 둘째는 투명성의 문제다. 메릴랜드대 저널리즘 윤리 교수 톰 로젠스틸은 미디어 기업의 AI 활용 자체보다 그것을 숨기려는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진실을 다루는 직업이 자기 작동 방식을 비밀로 둔다면 그것은 이미 직업윤리의 균열이라는 의미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사태에서 독자가 분노한 것은 ‘AI를 썼다는 사실’보다 ‘존재하지 않는 기자의 사진과 약력까지 만들어 독자를 속였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저작권과 데이터 주권의 문제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말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자사 기사 수백만 건이 무단으로 AI 학습에 사용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미국 법원은 오픈AI 측이 낸 소송 기각 신청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고 본안 심리에 들어갔으며, 챗GPT의 사용자 대화 로그 보존 명령까지 내렸다. 국내에서도 KBS·MBC·SBS 지상파 3사가 2026년 2월 오픈AI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 중단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025년 1월에는 같은 3사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를 상대로 9만7000여 건의 기사 무단 학습을 주장하며 소송에 나선 바 있다. 단순한 저작권 분쟁이 아니라 한국 언론이 수십 년간 축적한 지식 자산을 글로벌 빅테크가 가져가도록 두지 않겠다는 데이터 주권의 선언인 셈이다. ■기계가 끝내 쓰지 못하는 기사 그렇다면 인간 기자의 자리는 어디에 남는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언론을 위한 생성형 인공지능 준칙’은 분명한 입장을 보인다. AI 활용이 보편화되더라도 뉴스 보도의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 언론인과 편집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직업 보호의 논리가 아니다. 저널리즘은 본질적으로 ‘판단의 직업’이다. 어떤 사실이 보도할 가치를 지니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 사건을 해석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 이 판단에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약자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AI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지만, 데이터가 빠뜨린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통계를 요약할 수는 있지만, 통계 뒤편의 한숨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AI는 어제까지의 패턴으로 오늘을 예측하지만, 진짜 뉴스란 종종 ‘어제까지의 패턴을 깨는 그 한 사람’에서 시작된다. 지역 언론에서 이 문제는 한층 절실하다. 포항제철소 한구석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의 이야기, 영덕 어촌의 사라져가는 갯바위 노인의 기억, 안동 종갓집 며느리의 침묵 같은 것을 AI는 결코 먼저 발견하지 못한다.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묻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것이 지역 언론이 단순한 ‘뉴스 공급자’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 보관소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문명의 진보를 ‘우리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할 수 있게 된 중요한 행위의 수가 늘어나는 일’이라 정의한 적이 있다. AI는 기자가 ‘생각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준다. 그러나 정작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일, 즉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어떤 침묵이 가장 큰 비명인지를 묻는 일은 오히려 더 무겁게 남는다. AI 시대의 저널리즘은 기계와 경쟁하는 일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그 자리로 인간이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사를 쓰는 기자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기사를 신뢰하고 어떤 기사를 의심할지 가려내는 독자의 안목 또한 함께 깊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가 썼는가’를 묻는 일이, ‘무엇이 쓰여 있는가’를 묻는 일만큼이나 중요해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5-31

잘 나가는 청주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 이용객의 가파른 상승세가 항공업계서는 화제다. 작년 청주국제공항의 한해 이용객은 466만 명이다. 2년 연속 4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대구국제공항보다 100만 명 이상 많은 승객들이 오간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국제공항은 2019년 이용객 466만 명을 정점으로 찍고, 지금까지 원상회복을 못하고 있다. 지방도시의 국제공항은 해외 관광객의 입국 통로도 되지만 지역경제와 산업의 활성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시대에 지방소재 국제공항 활성화는 도시의 미래 성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인구 160만 명의 충청북도에 소재한 청주국제공항이 인구 500만 명 거주하는 대구경북 소재 대구국제공항보다 더 많은 승객이 오간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정책의 잘못인지, 공항 입지의 불리함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항공업계는 청주공항이 대구공항보다 이용객이 앞선 이유로 배후지를 꼽는다. 영남권이라는 한계적인 배후지를 두고 있는 대구공항에 비해 청주공항은 대전, 세종, 충청권뿐 아니라 경기남부 및 서울 일부 수요까지 흡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천이나 김포보다 혼잡도가 덜하면서 저가항공 중심으로 운용되는 청주를 대안으로 선택한다는 분석이다. 최근 국토부는 지방공항 및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전국 8개의 공항버스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청주국제공항에 김천, 구미, 동대구를 직접 연결하는 공항버스 노선을 두기로 했다. 공항연결 직항버스가 없는 대구공항의 항공수요 이탈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TK 신공항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청주공항의 가파른 상승세는 대구국제공항의 위상을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28

합법적 함정수사

영화 ‘신세계’에서 경찰 잠입요원인 이자성은 경찰청 수사기획과 강 과장의 지시로 국내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다. 원래는 단기간 작전이었지만, 무려 8년 동안 조직원 생활을 하게 되면서 사실상 범죄조직의 핵심 인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잠입수사 기법은 실제 수사에서 사용되며 함정수사라고 한다. 함정수사의 위법성에 대해 우리 법원은 본래 범죄 의사가 없던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범행을 유도하거나 범죄 실행의 기회를 적극 제공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와, 이미 범의를 가진 범죄자에게 신분을 숨긴 채 접근해 범행 현장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방식의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를 나누어 전자는 위법한 수사로, 후자는 적법한 수사로 본다. 적법한 함정수사를 위장수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률에 의해 위장수사가 허용되기도 한다. 위장수사 방식이 처음 법률로 도입된 분야가 아동·청소년 성범죄 분야이다. 2021년 n번방·박사방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위장수사가 가능해졌다. 수사기관은 온라인상에서 신분을 숨긴 채 범죄 현장에 잠입하거나 피의자에게 접근해 증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한 경우 위장 신분을 위한 문서 작성과 거래 행위도 허용되었다. 이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2025년 6월부터는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도 위장수사가 가능해졌다. 이런 위장수사는 효과를 보고 있는 듯하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21년 9월부터 지난해까지 약 4년간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를 통해 총 2450명의 피의자가 검거되었고, 이 가운데 143명이 구속됐다. 검거자 수도 2022년 374명에서 지난해 924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온라인 기반 범죄의 특성상 일반적인 수사만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를 위장수사가 효과적으로 파고든 셈이다. 실제 사례를 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판매하던 피의자가 단체대화방에서 잠입 중이던 경찰관에게 합성 음란물을 전송했다가 검거되었고, 잠입한 경찰관에게 상품권을 받은 뒤 음란 영상 링크를 전달했다가 덜미를 잡힌 사례도 있었다. 지난 4월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마약수사에도 합법적으로 위장수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약 범죄 역시 SNS·텔레그램 등을 통해 비대면 점조직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어 기존 수사기법만으로는 공급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경찰은 위장수사의 법제화로 단순 투약자를 넘어 공급책과 유통망 핵심 조직까지 효과적으로 검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위장 신분을 통해 마약류 소지·매매·광고·수수·운반·수입을 할 수 있고, 신분을 숨기기 위한 위조 신분증과 위조등본 등을 작성·변경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위장수사는 언제나 남용의 위험성이 있다. 수사권의 남용은 위법한 수사를 초래하고, 위법한 수사는 또 하나의 범죄가 될 뿐이다. 영화처럼 위장 신분과 위조 문서까지 허용되는 강력한 수사방식이 법제화된 만큼 엄격한 통제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수사기관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5-28

절대의 바다로 흘러가기를

그런 문장이 나오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책에서 우연히 만난 문장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하창수 작가의 소설 ‘해방전’ 맨 끝에 나오는 문장도 그중 하나다. ‘바다가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야. 모든 걸 받아들인 바다는 그보다 더 큰 것이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마치 한계가 없는 듯 또 그저 밀려드는 물길들을 막지 않아.’ 이 말은 주인공 김지량이 제주도에 막 내렸을 때 어디선가 들려온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같은 책 다른 페이지의 이 문장과 같이 읽어야 의미가 완성된다. ‘상대성을 받아들이면 현실을 잘 인식할 수는 있죠. 거기에 맞춰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확실히 유리하고요. 하지만 자신의 진정, 정체, 본질과 괴리될 위험성은 오히려 더 높아지죠.’ 이 말은 또 다른 주인공 오오모리 소슈가 순임에게 한 말이다. 오오모리는 일본인이면서 조선 여성과 결혼하고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이다. 이 두 문장을 말한 사람은 다르지만 의미는 맞닿아있다. 오오모리는 상대적인 것에 주목하면 쉽게 성공할 것 같지만,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고, 제주도 항구에서 들은 말은 절대성이야말로 방향을 잃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모두 절대성의 가치와 영원함을 강조한 말이다. 절대의 가치는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상대적 유불리를 계산한 사람들보다 끝내 절대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독립운동도 그랬고, 민주주의도 그렇게 발전해왔다. 절대의 가치는 역사 속에서 꾸준히 시험받아 왔다. 당장 치러질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그렇다. 이미 법원에서 12·3 비상계엄을 내란이라고 판결했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부 정치세력은 그것을 끝내 분명히 인정하지 않거나 책임을 흐리려고 한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12·3이 내란이라는 것을 아직도 판단 유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고,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던 인사들, 계엄 사태를 옹호하거나 책임을 부정했던 인물들이 이번 선거에서 후보로 나섰다. 여러 관련 인사들이 국회의원 후보나 지자체장으로 공천된 것만으로도 혹시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돌이켜보면 소설 속 배경도 이와 닮아 있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35년째, 해방을 1년 앞두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었던 그때, 그래서 모두가 독립은 불가능하리라 체념하던 그때, 주인공들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에 휩쓸리면서도 그 강물이 언젠가는 영원한 절대의 바다로 흘러가리라고 믿고, 출신이 낮은 사람도, 적대국 사람도, 동성의 파트너도 모두 절대의 바다로 함께 향했다. 절대의 바다는 자신과 다른 물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끝내 그것을 품어 더 큰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보수의 언어로 진보를 말하려고 노력한다는 어느 지식인의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다. 이번 지방선거가 더 큰 바다로 흘러가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5-28

쉬어도 회복이 안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

주말 내내 푹 자고 누워서 쉬어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예전에는 하루 푹 쉬면 회복되던 몸이 이제는 쉬어도 무겁고 어깨는 굳어 있고 허리는 뻐근하며 머리까지 멍한 사람이 많다. 나이 탓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몸의 회복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 경우가 많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게 살지만 몸은 오히려 더 지치고 회복이 느리다. 이는 정신적 피로로 인해 자율신경이 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체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며 움직인다. 교감신경은 긴장과 활동, 집중을 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회복과 수면, 소화, 재생을 담당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스마트폰, 스트레스, 카페인,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해 하루 종일 교감신경이 과하게 활성화된 상태로 살아간다. 몸은 계속 긴장 상태이지만 몸은 가만히 누워 있으니 쉬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진짜 회복은 단순히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안전하다라고 느끼며 정신적 긴장이 풀어져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야 시작된다. 이런 사람들은 몸이 전체적으로 굳어 있다. 목과 어깨는 항상 긴장되어 있고 가슴은 굳어 호흡이 얕으며 골반과 고관절 움직임도 제한되어 있다. 특히 오래 앉아 있는 생활은 흉추와 골반을 굳게 만들고 혈액순환을 저하시킨다. 혈액순환이 떨어지면 산소와 영양 공급이 감소하고 노폐물 배출도 느려진다. 몸은 계속 회복이 덜 된 상태로 다음 날을 맞게 되고 피로가 누적된다. 만성 피로와 만성 통증이 같이 오는 이유다. 피곤한 사람일수록 목과 승모근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경우가 많고 허리나 엉덩이 주변의 근육 긴장도 심한 경우가 많다.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쉬는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몸의 회복 시스템 자체를 다시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은 부드럽게 해야 한다. 지나치게 강한 운동은 교감신경을 더 자극해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들 수 있다. 회복이 안 되는 사람에게는 가벼운 걷기 천천히 하는 하체 운동과 스트레칭, 호흡 운동 같은 것이 더 좋다. 하루 20~30분 정도 햇빛을 보며 걷는 것은 혈액순환 개선과 자율신경 안정에 도움이 된다. 고관절과 흉추를 풀어주는 스트레칭은 굳은 자세를 완화하고 호흡을 깊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식습관도 회복력에 큰 영향을 준다. 피곤하다고 단 음식이나 카페인으로 버티는 습관은 일시적으로 각성은 시키지만 결국 교감신경을 더 과하게 흥분시킨다. 늦은 밤 야식과 음주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몸의 회복 시간을 망가뜨린다.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분 섭취 과도한 카페인 감소만으로도 몸 상태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뇌를 계속 각성 상태로 만들고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 잠들기 전에는 밝은 화면과 자극적인 영상 시청을 줄여 이제 쉬는 시간이라고 뇌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몸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많이 쉬었다고 무조건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회복은 혈액순환, 호흡, 자율신경, 수면, 움직임이 모두 균형을 이루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더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회복하는 능력을 다시 되찾는 것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5-28

창공은 말이 없는데

우주는 얼마나 넓은 것일까. 막막한 하늘 위에 끝은 있을까. 무섭도록 깊고 먼 공간은 어디까지 펼쳐졌을까. 사람은 오래전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질문을 던져왔다. 과학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지만, 인간은 아직도 우주의 끝을 모른다. ‘끝’이라는 생각이 틀린 것이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밤하늘의 별들은 불빛만이 아니다. 수천 년, 수만 년 전에 출발한 빛들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오늘이 아니라 우주의 오래된 과거다. 밤하늘은 커다란 ‘우주의 역사책’이었다. 인간은 짧은 현재 속에서 살아가지만, 우주는 인간에게 끝없이 긴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별빛을 올려보면 마음이 낮아진다. 인간의 걱정과 욕망과 다툼이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얼마나 짧은 것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낮하늘은 어떤가. 밤하늘이 시간의 깊이를 보여 준다면, 푸른 창공은 공간의 드넓음을 드러낸다. 구름 사이로 펼쳐진 아득한 하늘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지만, 인간이 경험한 공간은 우주의 작디작은 먼지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떠올리면 먹먹함이 밀려온다. 인간은 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내 생각이 가장 옳다고 믿고, 나의 감정이 가장 절박하다고 여긴다. 하늘에서 내려보면 인간은 보이지도 않을 터에. 나라와 도시와 권력과 경쟁도 우주의 크기 속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미세한 흔들림에 불과할 터에. 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침묵 그 자체로 인간의 오만과 교만을 흔들어 놓는다. 지방선거의 계절을 지나면서 하늘을 떠올리게 된다. 거리에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지지자들은 흥분하고, 서로를 향한 비난은 거칠다. 누가 더 옳은지, 누가 더 자격이 있는지, 누가 도시를 책임질 사람인지를 두고 날카롭게 맞선다. 선거,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선택하는 과정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눈앞만 바라보는 게 아닐까. 고작 몇 년 권력을 두고, 잠시 사람들 앞에 서는 자리 앞에,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만큼 싸워야 하는지.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나 자신부터 돌아보게 된다. 내 생각을 외치느라 남의 마음을 보지 못했던 순간들, 내 주장에 몰두한 나머지 타인의 아픔에 눈감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세상에 미안하고 하늘에 부끄럽다. 인간은 이상한 존재다. 우주 앞에서는 티끌보다 작으면서, 자기 확신은 산처럼 거대하다. 잠시 맡을 권력을 영원한 것처럼 행동하고, 진영의 승리가 역사의 마지막 장인 듯 아우성이다. 우주의 공간 앞에서 보면 사람의 권력은 찰나일 것을. 인생이 길어야 백 년 남짓이고, 도시의 역사조차 우주의 앞에서는 한순간의 먼지다. 정치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더 겸손해지고, 더 따뜻해지고, 더 길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밤도 별빛은 말없이 우주를 건너온다. 세상의 소란과 분노와 욕망과 갈등을 아득히 내려다보면서. 우주는 침묵하는데, 인간만 시끄럽다. 때로 정치가 하늘을 올려다볼 필요가 있다. 내 생각만큼 남의 마음도 돌아보면서 진영의 승리만큼 공동체의 시간을 길게 바라보았으면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5-27

‘일렉트로 코리아’의 두 얼굴 호남의 햇빛과 영남의 원자력

대한민국 산업 지도가 급격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의 성장을 이끌었던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한 중화학 공업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에너지 주권’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라는 ‘전기 먹는 하마’가 산업의 주류가 된 지금, 우리는 정부가 직면할 가장 거대한 과제인 ‘에너지 거버넌스’의 재편을 목격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핵심 에너지 생산지는 원자력에너지 중심의 영남과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호남이다. 두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수도권 첨단산업에 공급되는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영남과 호남의 에너지 지정학적 가치를 이재명 정부가 추진할 계획인 ‘RE100 산업단지’ 전략과 관련하여 ESG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호남의 RE100 산단 유치 가능성과 전략적 가치 이재명 정부의 핵심 에너지 정책 기조는 ‘에너지 고속도로’와 ‘재생에너지 중심의 국가 대전환’에 있다. 이는 글로벌 ESG 공시 의무화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거대한 무역 장벽을 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그 핵심 전략이 되는 ‘RE100 산업단지’ 유치의 최적지는 단연 호남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호남은 일사량이 풍부한 전남의 태양광과 신안 앞바다의 대규모 해상풍력 건설에 집중한 결과 연료비가 제로(0)인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착한 에너지’를 넘어, 장기적으로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 되는 전략적 가치이다. 이재명 정부는 중앙집중형 전력망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는 ‘분산형 거버넌스’를 강화할 예정이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활용하여 만성적 전력계통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를 찾아 기업이 이동하는 ‘에너지 지방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간헐성(날씨에 따른 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 인프라 구축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것이 해결된다면 호남은 ‘RE100 전용 경제특구’로서 전 세계 AI데이터센터를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남과 호남의 미래 성장 가능성 분석 영남과 호남 지역의 대별 되는 에너지 지정학적 가치를 ESG의 관점에서 보면, 두 지역의 미래는 서로 보완적이며 전략적이다. ‘Green Electro State’ 호남권은 Environmental(환경)의 선구자로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청정에너지의 본산이다. 탄소 중립이 기업의 생존권이 된 시대에 호남권의 신재생 에너지는 국가적‘환경자산’이다. RE100 이행이 필수인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첨단 소재 기업들에게 호남은 대체 불가능한 입지다. 특히 희토류 및 희귀 금속 정련 산업처럼 오염 부하가 크고 전력 소모가 많은 공정을 저렴한 재생에너지로 감당해냄으로써, 환경 규제를 돌파하는 거점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해 ‘Base Electro State‘ 영남권은 원자력 발전이라는 강력한 ’기저 부하‘를 보유하고 있는 Governance(지배구조)의 안정성이 높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FAB은 24시간 중단 없는 고품질 전력이 필수다. 원자력은 외부의 자원 무기화 압박 속에서도 국가 산업의 심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강력한 안보 자산이자 국가 거버넌스의 수호신이다. 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영남은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 안정성을 보장한다. ◇‘일렉트로 코리아‘를 향한 대타협과 융합 2026년 현재, 우리는 중동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세계 에너지 흐름의 대동맥 호르무즈해협의 봉쇄와 쿠바의 대정전 사태를 목격하며 에너지 종속의 비극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석유에 기댄 ‘페트로 스테이트’의 시대는 끝났다. 과거의 전쟁이 총칼을 앞세운 무력 전쟁이라면 요즘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전쟁에 가깝다. 이제는 전기가 지배하는‘일렉트로 스테이트’로 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할 RE100 산단은 호남의‘청정성’과 영남의 ‘안정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그 운명이 달렸다. 또한,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의 혜택은 수도권 대기업이 독점하고, 환경훼손·전자파 위험·부동산 가치 하락 등 모든 피해는 지방이 떠안는 구조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국가적 에너지 체계의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호남의 햇빛과 바람으로 만든 전기가 AI의 두뇌를 돌리고, 영남의 원자력이 그 안정적 맥박을 유지하는 ‘에너지 믹스’의 대타협이 필요하다. 진정한 선진국은 자국민의 삶을 보호하고(Social),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며(Environmental), 타국의 결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독립적 전략(Governance)을 가진 나라다. AI시대에 최적의 ‘에너지 믹스’는 국토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위한 가장 근원적이고 강력한 수단이자 전략이다. 호남과 영남을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는 단순한 전력망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에너지 강국이자 진정한 선진국으로 밀어 올릴 생명선이 될 것이다. 결국, 에너지 주권을 확보한 ‘일렉트로 코리아’의 건설이 미래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이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5-27

비밀의 정원

석부작(石附作) 대가 이인기는 아티스트이다. 돌과 나무와 호흡한다 그렇게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대가라 함은 일단 40년 이상 한부분에 종사하여 세평에 상관없이 역사를 이룬 사람을 말하는데 출처도 근본도 없는 딴따라들이 아티스트라 하고 하물며 화장을 하고 머리 다듬는 새파란 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칭하며 찧고 까분다 딴따라가 나쁜 것이 아니다. 경박함이 문제다 근기의 수승함이 문제가 아니라 집념의 문제 혹은 단박에 깨칠 수도 있으니, 그의 정원에 가보라 시간이 켜켜이 녹아든 석부작들이 온전하게 산과 강으로 재현되어 있다 학대하지 않고 더불어, 그리고 실패하지 않을 생명을 쟁여 넣고 있다 육거리 근처 사람 살지 않는 집에 거짓말처럼 비밀의 정원, 그의 밀림이 있다 함축과 집약이 경이로움 혼이 깃들어 팔지도 않을 작품들 아무리 호사가라도 그가 부르는 가격에는 머뭇거린다, 거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경지는 돈으로 사지 못 한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절정의 감각은 결코 계산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을 하나 선물 받아서 책상 앞에서 째려보며 거래가 아니라서, 이 글을 쓴다 염치없음도 어떤 때는 살아가는 힘이 된다 염치를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 앞의 가난과 절박함이 그것이 남에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을 때, 세상이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돌과 나무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커가는 것을 배우는 사람, 그 이름 이인기지만, 세상의 인기(人氣)는 눈곱보다 없다. ……… 포항 북구 중앙로 298번길 17-4, 비좁고 낡은 철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현듯 펼쳐지는 신세계. 녹색 허파를 가진 작은 행성. 가치로는 아마 수백 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런 수치로는 그의 삶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돌이 돈이라 여기고 나무를 남이라 여기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는 짓이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본질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행위만 있을 뿐일지도. 나무가 자라는 긴 시간의 인내의 행위는 더더욱 필요할지도.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5-27

꽃잎이 흩날리는 밤

앞서 걸어가는 두 남자의 머리 위로 꽃잎이 흩어진다. 모처럼만에 집에 온 아들과 보문호수의 밤 벚꽃 길을 걷고 있다. 지금, 내 눈은 꽃보다 그들의 뒷모습에 더 간다. 아들이 아빠의 어깨를 툭 치며 장난을 건다. 한때 우리 집은 말이 없었다. 유교 집안에서 자란 남편은 늘 예의 바른 쪽에 서 있었다. 하는 일까지 도면을 보고 기계를 제작해서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정확히 읽어내고, 오차 없이 맞춰내는 일에 익숙했다. 반면 아들은 매번 핀잔을 들을 만큼, 먼 곳을 보는 아이였다. 머릿속은 늘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즐거워하곤 했다. 무엇을 물으면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화에 집중 좀 해라” 아들을 향한 남편의 말은 대개 그렇게 시작됐다. 남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까, 그 걱정은 점점 간섭이 되어갔다. 유치원도 가기 전부터, 숟가락 똑바로 놔라 젓가락질 바로 하라는 말로 시작하는 밥상머리였다. 궁금한 것이 많아 입이 잠시도 쉬지 않는 아이를 숟가락 소리만 오가는 시간에 가두었다. 여행길의 마지막은 언제나 아들의 눈물바람으로 끝났다. 어떤 이야기든, 끝은 늘 예상 밖이었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아빠의 꾸지람에 아들은 억울해 했다. 언제나 한 단계 더 너머의 답을 하는 그를 남편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긴 질문에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말의 온도가 다른 그들의 대화는 겉돌았다. 남편이 다가가면 아들은 그만큼 뒷걸음질 쳤다. 방문을 두드려야만 나오는 일이 늘어났다. 결이 다른 그들 사이에 낀 나는 점점 숨이 막혔다. 어느 날, 출근길의 나는 차를 돌려 시어머니 댁에 갔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입을 여는 순간, 그동안 눌러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어머니, 저 도저히 같이 못 살겠어요.”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데리고 온 자식도 아닌데 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느냐는 말을 울면서 쏟아냈다. 그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면서도 서로를 이해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대며 아들은 학교 앞으로 방을 얻어 독립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입대를 앞두고 거제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아직 차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밥을 먹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별다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시계는 어느새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딸과 나는 먼저 자리에 누웠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둘에게 맡겨졌다. 닫힌 문 너머로 낮게 이어지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던 것 같다. 그저 오랜만에 둘이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아빠가 자신의 손을 잡더니 눈물을 쏟더라고. “미안하다고 하시네.” 그 한마디를 꺼내는 아들의 표정이 담담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보지 않았기에 더 또렷하게 그려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술기운을 빌어 내 놓은 말, 힘겹게 내밀었을 손. 남편은 아들을 몰아세운 시간보다, 놓쳐버린 시간을 더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 앞에서 그동안 내 놓지 못했던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그 밤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들은 뒷말을 더 내놓지 않았다. 마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듯이 지난 일에 대한 어떤 말도 흘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둘 사이에는 조금씩 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직장인인 아들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며 아빠를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야 두 결이 엮어가는 시간을 보고 있다.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벚꽃 아래 두 남자가 웃으며 걸어간다. 내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자, 둘이 동시에 돌아본다. 그 순간, 아빠와 아들이 같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꽃잎이 가만히 그들 위로 내려앉는다. /윤명희 수필가

2026-05-27

사소한 설렘을 사는 일

딱히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집에 비슷한 건 이미 있었고, 없어도 당장 불편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꾸 눈이 갔다. 쇼핑앱을 몇 번이고 들어가 후기를 읽고, 색상을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구매 버튼을 눌렀다. 신기한 건 물건이 정말 필요해서라기보다, 사고 있는 그 순간이 왠지 기분을 조금 바꿔주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생각보다 자주 무언가를 사고 싶어했다. 심심할 때도 쇼핑앱을 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괜히 사고 싶은 물건이 늘어났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새로운 게 갖고 싶었고, 뭔가를 기다리는 기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실제로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할 만큼 설렜다. 현관 앞에 놓인 박스를 열 때면 아주 잠깐이지만 하루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꼭 필요할 것 같았던 물건도 며칠 지나면 금세 익숙해졌다. 새로 산 컵은 어느새 평소처럼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그렇게 갖고 싶었던 옷도 몇 번 입다 보면 특별함이 사라졌다. 그러면 또 다른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계속 새로운 걸 원하게 되는 걸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사고 싶었던 건 물건 자체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행복의 건축’에서 사람이 어떤 대상을 원하는 이유에는 단순한 기능 이상의 감정과 욕망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사람은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이 만들어줄 삶의 분위기와 감정을 함께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컵 하나를 사면서도 전보다 더 여유로운 아침을 상상했고, 새로운 옷을 고르며 조금 더 다른 하루를 기대했다. 물건을 사는 동시에 어떤 새로운 기분을 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은 소비가 너무 쉬워졌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 원하는 걸 바로 살 수 있고, SNS를 켜면 누군가는 계속 새로운 물건을 보여준다. 검색을 딱 한 번만 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서 좋아할 만한 제품을 끝없이 추천한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 새로운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소비는 점점 필요를 채우는 행위라기보다 기분을 환기시키는 방식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괜히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쇼핑앱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무언가를 산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새로운 물건 하나쯤 있으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지루하게 반복되던 문장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날은 물건보다도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떤 작은 방식으로라도 기분을 바꾸고 싶어진다. 책상 위에 새로운 조명을 올려두거나, 평소엔 사지 않던 향의 향초를 고르거나, 계절이 바뀔 때 괜히 새로운 옷을 사고 싶어지는 이유도 어쩌면 비슷할 것이다. 삶 전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아주 작은 분위기 하나쯤은 바꿔보고 싶은 마음. 소비는 종종 그런 사소한 변화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된다. 물론 대부분의 설렘은 생각보다 빨리 일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를 새로 꺼내 쓰는 일, 마음에 드는 컵에 커피를 따라 마시는 일, 새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일 같은 사소한 변화들은 생각보다 하루의 기분을 많이 바꿔놓는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창한 행복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별것 아닌 작은 기대와 사소한 즐거움들이 반복되면서 하루를 조금씩 견디게 만든다. 내일 도착할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기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를 사고 싶어지는 마음을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게 됐다. 물론 모든 소비가 합리적일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때때로 작은 소비를 통해 반복되는 하루에 새로운 기분을 더하며 살아간다. 별것 아닌 변화처럼 보여도 그런 사소한 설렘들은 일상에 작은 활력을 만들어준다. 결국 그런 작은 설렘과 기대들이 반복되며 각자의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윤여진(시인)

2026-05-27

집 꾸미기

벚꽃이 한껏 만개한 올해 봄날 나는 새로운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측하지 못한 일로 첫 자취방에서 쫓겨나듯 나오고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첫 자취방은 작은 두 개의 베란다를 포함한 집 구조상 어려움이 있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새로 구한 집은 그와 달리 도화지 같아서 좋았다. 전체적으로 새하얗고, 모난 데 없이 네모난 형태였다.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색감이었다. 무슨 색에 무슨 색을 더하는 게 좋을지보단 무슨 색을 빼야 좋을지 생각했다. 언젠가 내 뜻대로 집을 꾸민다면 가능한 많은 색을 쓰지 않으리라. 늘 이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텅 빈 방의 벽지 색 그대로 하얀색이 메인이 되었으면 했다. 거기에 검은색을 살짝만 더하고 싶었다. 슬쩍 동네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저으며 나를 말렸다. 블랙 앤 화이트가 멀리서 보기엔 예뻐 보여도 가까이서 매일 보면 우울해지기 좋다, 흰색 가구가 청소하기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느냐, 금방 심심해질 것이다, 이런 말들과 함께. 나의 마음은 그래도 완고했다. 누구의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우울해진다고? 여기서 더 우울해질 수는 없어 괜찮아. 청소가 번거로워? 매일 청소하면 되는 거잖아.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되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망해도 직접 하나하나 해보고 망해야 했다. 그래야 후회를 해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본가에 살면서부터 나는 내가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을 알았다. 눈에 닿는 책상이나 선반에 무언가를 꽉 채워두는 것이 싫었다.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공간을 채워두기보다 벽에 시계 하나 걸어두지 않을 정도로 휑뎅그렁한 게 내 취향이었다. 삶의 여백을, 방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넉넉히 두고 싶었다. ‘오늘의 집’에서 원하는 가구를 하나하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청소기부터 침대 프레임, 매트리스, 소파, 테이블, 선반, 암막 커튼까지. 신중하게 사이즈를 재고 모양을 봤다. 그 모든 게 마음에 들더라도 원하는 색이 없을 경우엔 장바구니에 담지 않았다.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너무 비슷한 화이트로만 채우면 그건 또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소파는 화이트를 살짝 어지럽힌 듯한 아이보리로, 암막 커튼은 벽지를 크게 해치지 않는 베이지로. 난관은 의외로 그런 눈에 띄는 것들이 아니었다. 예쁜 쓰레기통을 샀지만 거기에 끼울 종량제 봉투가 주황색이어서 별로였다. 이때는 종량제 봉투 대란이 일어났던 때라 다른 색을 어떻게 구할 수도 없었다. 모두 비슷한 톤으로 맞췄더니 쓰레기통 틈으로 삐죽 튀어나온 주황이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방법을 모색했다. 적당한 크기의 반투명한 봉투를 사서 쓰레기통에 끼웠다. 쓰레기가 다 차면 그때 종량제 봉투에 담아 꾹꾹 눌러 버릴 셈이었다. 실행하고 보니 그건 제법 좋은 선택이었다. 방 안에서 나보다 더 존재감을 발휘하던 주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부족할 것 없이 채우고 나니 이번엔 조명이 문제였다. 형광등의 흰빛이 과하게 쨍하게 느껴졌다. 날씨와 기분과 상황에 따라 조명의 색과 밝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두 개의 장스탠드 조명과 한 개의 테이블 조명을 샀다. 형광등을 켤 일이 없도록. 세 개의 조명을 나란히 켜자 그제야 은은함이라는 것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가 마음에 든다. 거기 누워 오후의 한때를 멍하니 보내고 있다 보면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잠시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고요한 세상에 놓인 것 같고, 내일 어떤 일이 있어도 상관이 없는 상태가 된다. 나의 로망은 소파이건만 소파가 아니라 식탁을 둬야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제미나이와 챗지피티에게도 자문을 구해 보았는데 둘 다 자취방에는 소파보다 식탁을 두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충분히 큰 아파트 거실이면 모를까, 작디작은 내 거실에는 괜한 사치라는 것이었다. 침대가 있는데 소파가 왜 필요하냐고, 식탁이 없으면 밥 먹기 불편하다고도 했다. 거기서 또 오기가 발동했다. “작은 테이블이 있으니 밥은 바닥에 앉아서 먹으면 되잖아? 난 다른 건 몰라도 소파는 포기할 수 없어!” 소파에 눕는 것과 침대에 눕는 건 다르다. 침대는 수면이고 소파는 휴식이다. 식탁이 없어서 불편하지 않냐고 하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전혀. 내가 원하는 유유자적함은 오직 소파 위에서만 가능하다. 타인과 AI의 말 모두 듣지 않길 잘했다. 나의 로망은 내 안에 있을 뿐이다. 집 꾸미기는 원래 끝이 없는 것일까? 요즘엔 멀쩡히 움직이는 마우스도 가구에 맞춰 바꾸고 싶어진다. 분명 욕심이다. 마우스를 바꾸면 또 다른 물건도 바꾸고 싶어질 것이다. 어떻게 해도 이 집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래도 조금은, 조금만 더, 이 집이 나도 온전히 그리지 못했던 나의 이상향에 가까워지길 바라고 있다. /구현우(시인)

2026-05-27

12세 소년의 슬픈 일기장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가정에서 학대 받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아이가 죽거나 크게 다칠 경우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긴 하지만, 식구들만 생활하는 ‘닫힌 공간’인 집에서 발생하는 학대 행위는 그 특성상 숨겨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2023년 2월에도 열두 살 아이가 계모의 폭행과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채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이 된 것이다. 가해자인 계모는 음식을 방에 숨겨놓는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4년 이상 저항할 힘이 없는 아이를 학대했다. 선반 받침용 봉으로 때리고, 날카로운 컴퍼스로 찌르는 등 폭행의 강도는 높았다. 때론 장기간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2023년 2월 5일. 의자에 묶여 오랜 시간 구타당한 아이는 결국 사망했다. 그런 일을 겪을 당시 아이의 나이는 겨우 열 살 안팎. 아이의 고통과 절망을 떠올리면 상식을 가진 누구나 분노와 슬픔이 밀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학대를 일삼은 계모는 1심 재판에서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가 인정돼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다. “누가 봐도 살인이 분명한데 형량이 낮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친모는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결국 대법원은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며 원심을 파기환송 했다. 법원은 계모의 형량을 높여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학대가 거듭되던 기간. 아이는 일기를 썼다. ‘엄마는 나만 없으면 모든 게 된다고 하셨다. 나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12세 소년의 어둡고 비관적인 문장. 눈시울이 뜨거워질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27

1천명의 공감능력

울릉도를 오가는 크루즈선 뉴씨다 오펄호에서 생긴 일이다. 오펄호는 운항 중 긴급을 요하는 환자가 발생해 해경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상악화를 이유로 헬기가 출동할 수 없게 되자 포항에서 출항한 지 2시간이 지난 배를 출발지로 다시 회항키로 결정한다. 1000명이 넘는 승객에게는 생명이 위험한 환자를 위해 불가피한 회항이라는 설명을 하고 다시 2시간을 돌아가 환자를 무사히 병원에 입원시킨다. 덕분에 환자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오펄호는 당초 목표보다 4시간 늦게 울릉항에 도착했다. 놀라운 것은 1000명이 넘는 승객 중 단 한사람도 늦어진 입항에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명의 생명을 위해 1000명의 승객이 입은 시간적 손실과 불편을 모두가 감수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사회에는 잔잔한 감동의 얘기가 퍼져나갔다. 오펄호 선사 측은 예정보다 늦은 것에 대한 사과 뜻으로 승객에게 무료조찬을 제공했다. 선사 측은 회항에 따른 수천만 원의 기름값과 운항 지연에 따른 스케줄 차질 등의 손해도 감수했다. “사람 목숨이 먼저”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흔쾌히 회항에 동의하고 응원해 준 승객과 선사 측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공감능력은 타인의 감정,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능력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경쟁 중심 문화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공감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된다. 오펄호의 회항은 생명의 가치를 일깨움과 동시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을 새롭게 느끼게 한 모범사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26

대구시장 선거, ‘네거티브 유혹’ 경계를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14곳)의 사전 투표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구시장 선거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지난 2014년 11.49%에서 2018년 20.14%, 2022년 20.62%로 높아지는 추세여서, 초접전 상태인 대구시장 선거 당락은 사전선거에서 거의 결판날 수 있다. 2022년 지방선거의 대구지역 전체 투표율은 43.2%(전국은 50.9%)였다. 선거가 임박하면서 각 후보 캠프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은 ‘네거티브’전이다.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이 효과를 내면 선거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투표일이 카운트다운 되면서 대구시장 후보 캠프의 말도 거칠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TBC대구방송에서 열린 대구시장 후보 첫 TV토론회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는 TK신공항의 국가 주도 전환 방식, 대구경북 행정통합 무산의 책임 소재, 그리고 과거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김 후보)와 윤석열 정부 경제부총리(추 후보) 시절의 재정 운영 성과를 두고 토론회 내내 얼굴을 붉혀가며 난타전을 벌였다.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을 두고는 김 후보가 먼저 “초기 기부 대 양여 방식 설계로 금융 비용만 10조 이상 추가되어 민간 업자가 참여하지 않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결정한 것은 추 후보가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 위원장(기획재정부장관 당연직)으로 있을 때”라고 포문을 열자, 추 후보는 “군공항 이전을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결정한 것은 대구시다. 경제부총리 때 공항이전 금융비용을 다시 추산해 보니 대구시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재정 지원 근거 마련 및 예타 면제를 내가 주도해 성사시켰다”고 반박했다. TK 행정통합 무산 책임론과 관련해서도 김 후보가 “시도민과 경북 북부 주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고, 대구시의회의 반대도 주요 원인이었다”고 지적하자, 추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총회 및 시도의회는 찬성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정청래, 추미애)가 법사위 등에서 발목을 잡았다”고 반격했다. 대구시의 주요 현안에 대한 두 후보의 해법을 기대한 유권자들로선 이날 토론회가 상당히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두 후보가 잘 알겠지만, 기회가 많지 않은 TV토론회는 대구의 미래 비전을 둘러싼 정책이 주 의제가 돼야 하고, 그 의제에 대한 대안제시의 장이 돼야 한다. 주변 선거참모들이 부추긴다고 해서, TV토론회를 상대의 과거를 비방하는 진흙탕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후보 간 경쟁이 전례 없는 초접전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김 후보 측은 “대구에는 ‘샤이 김부겸’은 있지만 ‘샤이 보수’가 없다. 숨은 표는 우리 쪽이 좀 더 많을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하고, 추 후보 측은 “대구민심이 최근 추경호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 공격하는 선거전은 지지층 결집에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외연확장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각 후보 캠프는 명심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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