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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호날두식 수면법

옛 속담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활동하는 시간의 3분의 1을 잠으로 소비된다. 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긴 시간을 잠으로 채워야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수면과 신체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수면이 신체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수면학회는 성인의 경우,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7~9시간 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6시간 미만 수면자는 심근경색, 뇌졸중, 심부전증 위험이 높아지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치매 위험까지 높인다고 한다. 인간은 잠을 충분히 잠으로써 낮에 활동하며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고 어린이들의 성장을 돕고 뇌에 축적된 노폐물을 청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충분한 수면을 바탕으로 한 최상의 컨디션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잠을 자며 휴식할 수 있는 수면캡슐이나 수면공간을 사무실에 마련했다고 한다. 불혹의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와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전설의 축구선수 호날두의 최고 건강비법으로 다상수면(多相睡眠)이 화제다. 분할수면이라고도 부르는 이 수면은 90분씩 짧게 나누어 하루에 5번 정도 잠을 자는 방식이다. 규칙적 생활을 하는 직장인과 일반인이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또 이 방법이 일반수면법보다 낫다는 의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고 한다. 몸 관리의 끝판왕이란 별명처럼 호날두의 건강은 수면보다 그의 끊임없는 체력 관리의 결과물 아닐까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25

‘강변여과수’

지난 12월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구 상수도의 핵심 취수 대안으로 ‘강변여과수’와 ‘복류수’ 활용안이 제안되었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 해평취수장 공동 활용이나 안동댐 원수 확보를 둘러싸고 지속된 지자체 간의 극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물은 생명줄이자 지자체 간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그간 합의의 길은 매우 험난했다. 이제 시민들은 이 대안이 과연 우리 가족이 마실 물의 수질과 수량을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지, 그리고 조속히 대구의 새로운 취수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강변여과수’는 하천 인근의 모래와 자갈층인 대수층을 통해 하천수가 자연적으로 여과된 물을 채수하는 방식이다. 강물이 수 미터에서 수백 미터에 이르는 지층을 통과하는 동안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정화 과정을 거치며 탁도와 병원성 미생물, 유기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제거된다. 이 방식은 사고 발생 시 오염 물질의 도달을 늦추는 완충 능력이 탁월하고 연중 일정한 수온을 유지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 취수 시 주변 농경지의 지하수위 저하나 환원 상태의 대수층에서 철과 망간이 용출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대구 취수원으로서의 도입 가능성을 타당성 있게 검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질적 불확실성과 환경적 영향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변여과수’는 독일 라인강이나 미국 루이빌 등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며, 국내에서도 창원과 김해시가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수질 개선과 정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대구에 이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타당성만큼이나 ‘유역 공동체 상생’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강변여과수’가 만능 해결책이 아니기에, 대구 상류 지역인 경상북도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원수인 낙동강 본류 수질이 개선되어야 여과수의 안전성도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류 산업단지의 폐수 관리 강화와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 등 경북의 선제적 환경 정책이 병행되어야만 대구와 경북이 함께 맑은 물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취수 지역 주민들의 지하수 고갈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시범 플랜트를 통한 충분한 사전 검증과 투명한 데이터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낙동강 ‘강변여과수’ 도입은 대구 시민에게는 안전한 식수를, 취수 지역 주민에게는 상생 발전을 제공하는 ‘유역 공동체 모델’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특별법’과 ‘상생 발전 기금 조성’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지자체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우리는 2026년 예정된 시범 사업부터 철저한 기술적 보완과 정밀 조사를 거쳐 도입 가능성을 확고히 검증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상호 신뢰 속에 낙동강 본류 수질 개선에 힘을 모으고 ‘강변여과수’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낙동강은 마침내 갈등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2-25

검사에 이상 없다는 말이 왜 환자를 더 아프게 만들까

검사를 다 해봤는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안도하기보다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분명히 아프고 불편한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통증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증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원인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의료 검사는 매우 정교하다. MRI, CT, X-ray는 뼈와 디스크, 인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찾아내는 데 탁월하다. 디스크가 튀어나왔는지 골절이나 종양이 있는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의 모든 원인이 구조적인 이상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검사상 정상 판정을 받았음에도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한다. 이런 경우 통증의 원인은 구조가 아니라 기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신경이 미세하게 압박을 받고 있거나 근육과 근막이 비정상적으로 긴장되어 있거나 혈류 순환이 떨어져 조직 회복이 지연된 상태일 수 있다.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져 통증 신호가 과도하게 증폭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들은 환자에게는 분명히 느껴지지만 일반적인 영상 검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만성 통증 환자에게서 이런 양상이 흔하다. 처음에는 가벼운 통증이었지만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이 반복되면서 통증이 고착화된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근육은 긴장된 상태로 굳어가며 몸은 통증을 하나의 패턴으로 기억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검사에 이상이 없어도 통증은 계속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몸 전체의 흐름과 균형의 문제로 본다. 통증 부위 하나만이 아니라 그 부위로 이어지는 신경과 근육, 혈류, 자율신경의 조절 상태를 함께 살핀다. 통증은 결과이지 항상 원인 그 자체는 아니다. 어깨 통증이 반드시 어깨 관절만의 문제는 아니고 허리 통증 역시 허리뼈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초음파로 살펴보면 MRI에서는 보이지 않던 미세 염증이나 신경 주변 압박 근육층 사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은 작고 미묘해 놓치기 쉽지만 통증과는 매우 밀접하다. 약을 먹고 쉬면 잠시 나아지는 듯해도 기능 이상이 남아 있으면 다시 아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율신경의 역할도 중요한데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몸은 회복 모드로 전환되지 못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통증은 더 쉽게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검사에서는 정상인데 통증이 계속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 상태를 함께 가지고 있다. 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말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단지 구조적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몸은 구조물의 집합이 아니라 신경과 혈류 긴장과 이완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통증은 다른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같은 부위가 계속 아픈지 왜 쉬어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지를 차분히 풀어봐야 한다. 통증은 결코 상상이 아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에 실재하는 통증까지 지워질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는 문제는 없는 문제가 아니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25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

동지가 다가온다. 해가 가장 짧아지는 날, 어둠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순간을 앞두고 나는 엄마의 팥죽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팥죽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었지만 중년을 지나오면서 왜 팥죽이 유독 그리워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시절 겨울은 엄마가 새벽부터 불 앞에 서 있던 등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팥이 끓는 냄비에서는 김보다 먼저 오래된 평온이 부엌을 채웠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더 이상 예전처럼 오래 서 있을 힘이 없고 팥을 불리고 삶아 체에 거르는 반복의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팥이 타지 않게 저어 주었던 아버지의 손길조차 부재했다. 부재는 때로 가장 정확한 요청이 되었다. 여전히 팥죽은 먹고 싶었기에 마침내 혼자서 팥죽을 해보기로 했다. 기억을 따라 하는 요리는 늘 실패를 동반하지만, 실패마저도 한 시절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팥을 씻는 일부터 오래 걸렸다. 검붉은 콩알 하나하나가 제 몸의 먼지를 놓지 않으려는 듯 물 위에서 굴렀다. 몇 번이고 헹구며 깨달았다. 엄마의 팥죽에는 맛보다 시간이 먼저 들어 있었다는 것을. 팥은 오랜 시간을 삶아야 물러졌다. 엄마가 말하던 ‘기다림의 맛’이 이런 것일까 이해가 되었다. 팥은 붉은색으로 재앙을 막는 상징이었다. 동짓날 조상들이 팥죽을 먹는 풍습은 잡귀를 물리치고 새해의 기운을 맞이하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러한 상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팥죽은 주술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해마다 반복하던 어떤 기억의 몸짓, 믿음 대신 사랑을 남기는 행위에 가까웠다.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내기 삼킨 것은 재앙을 막는 붉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견뎌온 방식이었다. 새알은 이름처럼 새해의 알, 탄생의 은유다. 지역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먹는 수만큼 알을 세기도 했다. 나는 나이를 세지 않았다. 다만 하나하나 지나온 겨울과 건너갈 겨울을 포개어 넣었다. 엄마의 손에서 태어났을 알들을 대신해 서툰 내 손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 질서는 능숙하지 못했다. 동일한 모양으로 들어갔던 알들은 익는 속도도 제각각이었고 어느새 일그러져 있었다. 그 불균형이야말로 나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고르게 익지 않았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가라앉았으며 또 어떤 기억은 끝내 형태를 잃지 않았다. 팥죽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던 새알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엄마가 매년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은 액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힘겹고 흩어졌던 시간을 한데 모아 한 그릇으로 건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팥물에 간을 맞추는 순간, 소금을 넣을지 설탕을 넣을지 망설여졌다. 단맛은 이 음식에 익숙한 타협처럼 느껴졌고 소금은 어딘가 고집스럽고 불친절한 선택처럼 보였다. 엄마의 팥죽을 떠올려보니 달지도 않았고 무미하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소금을 집어 들었다. 단맛으로 덮지 않고 팥이 가진 고유한 깊이를 남기고 싶었다. 삶을 지나치게 달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선언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처음 해보는 일은 늘 과해진다. 나는 그릇에 나누어 담아 이웃들에게 건넸다. 겨울 저녁의 문 앞에서 팥죽은 인사말이 되었고 안부는 숟가락보다 먼저 오갔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경계를 낮추는 일이었다. 팥죽이 잡귀를 막는다면 나눔은 고립을 막았다. 나눔을 끝내고 팥죽을 다시 데웠다. 혼자 먹는 그릇 앞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더 이상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어갈 수 없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며 엄마를 기억해 낼 수 있으니 괜찮다. 기억은 반복될 때가 아니라 변주될 때 살아남는다. 올해의 팥죽은 엄마의 것과 닮지 않았지만 엄마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동지가 지났다. 해가 길어졌다.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팥죽은 그렇게 나의 겨울을 통과시키는 한 그릇의 문학이 되었다. 어떤 음식은 배를 채우지 않고도 사람을 살게 한다는 따뜻한 문장과 말로 하지 못한 엄마의 온기를 품은 문장이 되었다. /김경아 작가

2025-12-23

장동혁의 ‘尹어게인 人事’···극우의 길 가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제1야당 대표로선 헌정사상 첫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주자로 나섰지만, 당내 반응은 차가웠다. 그가 토론을 시작하자 여당 의원들은 단체로 의석을 떠났고, 국민의힘 의원들마저 20여 명만 자리를 지켰다. 장 대표의 이러한 당내 입지는 그가 최근 단행한 인사 탓이 크다. 그가 취임한 후 발탁한 사람은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과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김민수 국민소통특위 위원장이다. 이들 세 사람은 ‘윤석열 어게인(again)’ 스피커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비상계엄에 찬성하고 친한(한동훈)계 공격의 전면에 나서 당내 갈등을 주도하고 있다. 이호선 위원장은 지난달 한동훈 전 대표 일가와 관련된 당원게시판 사건 조사에 착수했으며, 지난 16일에는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친한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이란 중징계를 당 윤리위에 요청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나오자 그는 “들이받는 소도 임자도, 돌로 쳐 죽일 것”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이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온 인물이다. 최근 임명된 장예찬 부원장도 대표적인 친윤계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부산 수영)을 받았지만, 과거 있었던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자 한 전 대표를 집중적으로 비난해왔다. 지난 15일에는 한 전 대표를 겨냥해 “당내 오래된 고름 같은 문제”라고 했다. 얼마 전 국민의힘 국민소통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민수 최고위원은 초강경 ‘윤어게인’ 인사다. 그는 지난 8·22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후 장 대표와 함께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도 했다. 장 대표의 이러한 인사에 대해 한 전 대표는 “윤 어게인 세력이 당 정체성을 더럽히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대표의 ‘윤 어게인 노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장 출신인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이 노선으로는 선거 못 치른다는 말이 곧 나올 것”이라고 했고, 여상원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은 “정당에서 말(언로)을 막으면 히틀러 중심으로 똘똘 뭉친 나치당처럼 된다”고 했다. 당내 최다선(6선)인 주호영(대구 수성갑) 국회 부의장은 “‘윤 어게인 냄새’가 나는 그런 방식은 맞지 않다”고 평가했다. 현재 장 대표의 강경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이 상태로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당 40%, 국민의힘 26%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우세했지만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양당(민주당 30%, 국민의힘 33%)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 중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최근 비대위 전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장 대표가 발탁한 ‘국민의힘 스피커’들이 거침없는 극우 목소리를 내면서 당 내분이 임계점을 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23

일본의 핵무장론

현재 세계에서 핵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중국, 소련,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을 손꼽을 수 있으나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 이후 국제적 안보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핵보유국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핵무장론이 나온 배경도 트럼프 외교 정책의 영향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일본, 독일, 폴란드, 한국 등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등장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총리 관저의 안보정책 담당 간부가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밝힌데 이어 일본의 방위상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선택 사항을 배제하지 않고 논의한다”고 말해 일본의 핵 무장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능력 등 핵무기를 6개월 내 만들 수 있는 능력의 나라로 알려지면서 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또 일본 수상 다카이치의 발언으로 중국과 심각한 갈등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핵무기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일본의 핵무장론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유일한 핵무기 피해국가다. 범국민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자국 안보를 위해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 시대적 이치다. 문제는 한국의 입장이다. 중국, 북한, 일본 등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가정할 때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하다. 만약 핵 경쟁력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면 한국의 안보는 치명적 위험에 빠질 게 뻔한 것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5-12-23

“단순하고 천천히”

알람 소리에 깬다. 그러나 눈을 뜨지도 않고 몸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누운 채로 양손을 양쪽 귓속에 넣어 위아래로 당긴다. 뒷목에서 어깨까지 훑듯이 마시지 한 후 발끝 마주치기 30번. 이명 치료에 좋다는 운동이다. 그렇게 하면 몇 분 후 눈이 떠진다.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제일 먼저 물을 마신다. 공복에 마시면 좋다는 게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들기름도 먹어 보고, 미지근한 음양수도 마시다가 최근엔 거기에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라고 해서 아예 정수기 옆에 작은 소금통을 가져다 놓았다. 이조차도 자주 잊으니 아직 몸에 배려면 멀었다. 두유기에 콩을 계량해 넣어 버튼을 누르면 32분 후에 두유가 만들어질 거다. 그 사이 다시 방으로 가서 TV를 켜기도 한다. 아니면 냉장고에서 몇 가지 채소를 꺼내 씻고 썰고, 빵 한 조각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아침 식사 준비는 거의 다 된 셈이다. 그즈음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한다고 예고를 한 후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나는 남편을 부른다. 은퇴하고 4년 정도 지나니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들은 이렇게 어느 정도 정돈이 된 듯한 루틴이다. 4년 전, 은퇴 후의 삶을 꽤나 거창하게 계획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었고, 메모해 두고 실행하려고 애썼다. 주위에도 알리고 칼럼까지도 썼다. 스스로의 다짐을 공표하여 실천력을 높이려는 얄팍한 의도였겠다. 가끔씩 메모를 체크해 보기도 하는데, 실천한 것도 많고, 변경한 것도 있고, 추가한 것도 있으나 포기한 것도 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니 스스로 변명하고 위안하며 토닥인다. 인생이 목표를 정하고 아등바등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성취도 좋고 만족감도 짜릿하긴 하다. 그러나 거창하지도 별스럽지도 않은 매일의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것, 매일매일의 아침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순간의 평온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일본의 93세 할머니의 하루를 손자가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이불 털고 점심 만들어 먹고 밭에서 일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또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잠자리에 드는 기노에 할머니의 하루는 마치 할머니 자신을 위한 경건한 의례 같았다. 할머니의 일상에서 감명을 받은 건 자신의 삶에 대한 최고의 예의라는 인상 때문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쓴 좌우명이 생각난다. “여전히 나답게 살자.” 아마도 ‘나다운 나’에 집중하는 한 해를 살아보자고 한 다짐이었다. 매사에 열심히 살며 충실하자는 의미였을 텐데, 이제 일 년 지나 되돌아보니 글쎄다 싶다. 어떤 제안도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도 즉흥적인 약속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겹친 일정을 조정하고 헤쳐 나가면서 야릇한 쾌감마저 느꼈다. 성취도 있었으나 그러다 보니 몸에 부쳤는지 난치성 이명을 얻게 되었다. 얻은 만큼 잃었다. ‘여전히 나답게’ 살았을진 몰라도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음을 깊이 뉘우친다. “단순하고 천천히.” 내년을 위한 새로운 좌우명으로 정했다. 그렇게 일 년을 살아보자. 나의 일상을 바지런한 기노에 할머니처럼 충만하게 꽉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23

조직문화와 관계 원리

조직 문화 혁신의 본질은 ‘제도‘가 아니라 ‘관계의 균형‘이다. 수많은 기업이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규정부터 고치고, 평가제도를 손보고, 회의 방식을 바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왜일까? 조직문화는 제도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방식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기업 대부분은 50:50의 조직 문화로 운영된다. 회사는 급여를 지급하고, 직원은 상응한 일을 한다. 정해진 만큼만 책임진다. 이는 공정성과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하지만, “제 역할이 아닙니다. 규정에 없는데요“ 등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50:50의 문화는 조직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지, 조직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아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에는 60:40의 온도가 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 항상 조금 더 내어주는 관계가 존재한다. 리더가 먼저 책임지고, 조직이 신뢰하며, 말 한마디에 배려가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60:40의 문화이고, 손해가 아니라 신뢰에 대한 선투자다. 사람은 계산보다 태도에 반응한다. 그래서 60:40의 조직에는 말이 적어도 사람이 남는다. 가령, 콩 하나를 두 조각으로 쪼개면 어느 한쪽이 작을 수 있다. 이때 내가 40, 상대가 60이 될 때 내 주위로 사람이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60:40을 적용하면 성실한 사람만 지치고, 모든 관계를 50:50으로 관리하면 조직은 냉각된다. 성숙한 조직문화는 50:50 원칙, 60:40 태도의 원리가 존재한다. 원칙과 평가는 공정하게, 소통·기회·존중은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제조업 조직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제조 현장은 말보다 관계의 체감 온도가 중요하다. 불합리한 지시는 규정이 아니라 신뢰 부족에서 반발이 나오고, 개선 제안은 제도가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나온다. 현장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현장의 관계 공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S사는 연초부터 긍정조직 문화를 조성하고자 ‘조직문화 개선‘ TFT를 구성하고, 제도 개선, 본사 스텝 전원이 솔선활동에 참여하는 등 많은 시도를 해왔다. 교대실, 휴게실, 운전실에 ‘디지털 S뉴스’로 회사 소식을 실시간 전하고,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직책보임자 1인 1 프로젝트 수행으로 성과도 있었지만, 긍정 조직 현장의 온도는 미미했고 변화된 제도만 남았다. 조직 문화 혁신은 슬로건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오늘 회의에서 누가 먼저 책임을 졌는가, 문제 발생 시 누구를 보호했는가, 성과보다 태도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등의 선택이 쌓여 조직문화가 된다. 조직 문화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 ‘운영방식’이다. 50:50은 조직을 공정하게 유지하고, 60:40은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공정함으로 조직을 지키고, 배려로 조직을 성장시킨다. 어디서 공정해야 하고, 어떤 때 내어줄 것인가를 리더가 분명히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조직 문화의 시작이고, 공정과 배려의 균형 있는 조직문화가 좋은 기업문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23

사라진 문명에서 배우는 웰니스의 지혜

어제, 나는 마추픽추의 가파른 돌계단을 묵묵히 올랐다.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 짙은 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대 도시의 흔적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발 2400미터, 태양의 신전에서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은 숨 막힐 듯 고요하고 장엄했다. 잉카인들이 이곳을 ‘신의 집’이라 칭송하며 신성시했던 이유를 가슴 깊이 이해하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질문이 있었다. “왜 그토록 찬란하고 위대했던 문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한때 지구에는 잉카, 마야, 아스텍과 같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문명들이 존재했다. 철기 문명의 도움 없이도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어 농사를 지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시대를 구현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했던 제국은 이제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그 몰락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단순한 탐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구조적인 균열 때문이었을까? 잉카 사회의 근간은 ‘아이유(Ayllu)’라는 독특한 형태의 공동체였다. 혈연과 깊은 신뢰로 굳게 묶인 그들은 사적인 이익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도왔다. 그들은 땅을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숭배하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했다. 마야인들은 정교한 천문 관측을 통해 별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 리듬에 맞춰 농사를 지었으며, 천상의 질서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세계관 중심에는 언제나 ‘조화(調和)’라는 핵심 가치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조화는 문명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성공의 함정’이었다. 잉카는 뛰어난 군사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안데스 산맥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은 점차 소수 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되고 공동체의 정신은 점차 약화되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마야 문명 역시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을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복잡하고 화려한 제례 의식과 과도한 토목 공사는 사회 전체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끊임없는 전쟁과 환경 파괴는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했고, 결국 외부의 침략은 이러한 내부의 균열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제국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공 편향(Success Bias)’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지나치게 도취된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맹신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갇혀 새로운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는 외부의 강력한 적에 의해 강제로 패망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오만과 경직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어떤 문명보다 훨씬 강력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손 안의 작은 기기 하나로 전 세계와 소통하고,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며, 유전자 기술은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주 탐사는 인류의 지평을 넓혀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지고 있다. 심각한 환경 오염,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 질환 등, 눈부신 기술 발전의 뒤편에는 어둡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눈부신 기술 발전만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인간 내면의 균형을 잃고 자연과의 조화를 파괴한다면, 아무리 위대한 문명이라도 결국에는 쇠퇴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웰니스는 단순한 신체적 건강 이상의 훨씬 더 깊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몸과 마음,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잉카인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갔던 이유, 마야인들이 천체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 조화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잉카의 현자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 말을 건넨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너희는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너희 문명의 중심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너희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웰니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다. 그것은 멈춤의 지혜, 성찰의 여백, 그리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맹목적인 경쟁과 끝없는 효율성 추구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린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적인 몰락은 우리에게 과거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과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가 속한 문명을 깊이 성찰하고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멸망이 아닌 성숙으로, 붕괴가 아닌 지속적인 성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2-23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무섭다

‘세상에 안 오르는 건 월급 뿐’이란 샐러리맨의 하소연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를 반영하고 있다. 점심 한 끼가 1만원을 넘어선 건 이미 오래전이고, 저녁에 동료 서너 명이 삼겹살이라도 구워 술자리를 가지려면 최하 10만원은 필요하다. 이제는 한국인이 숭늉처럼 마시게 된 커피 값도 갈수록 만만치가 않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한계점 없이 올라갔다. 특히 18~24세 젊은이들과 25~39세 직장인이 그 상승을 견인했다. 국제커피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405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미국인(400잔)의 커피 소비량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한국인이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좋은 향과 고급스런 맛을 강조하는 고가의 커피도 한국에선 잘 팔린다. 그러나, 그건 일부 호사가들의 경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만 개에 육박한다는 커피전문점 가운데 비교적 가격이 낮은 곳을 찾아다니곤 한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 나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앞으론 커피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돈을 주고 사도록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컵 가격은 100~200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오염을 막겠다는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저가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대략 1500~2000원쯤임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커피 값 상승률은 10%가 넘는다. 이래저래 마음 편히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부담되는 세상이 온 것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22

권력의 폭주를 멈추게 하려면

집행권력(정부)과 입법권력(국회)이 폭주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집권세력의 ‘권력도취병’이 재발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이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집단 퇴정한 검사들에 대해 감찰을 지시하고, 정부는 ‘내란 청산’을 명분으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핸드폰 조사를 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위헌 소지와 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내란을 빙자하여 ‘정의를 독점하는 정치’로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나는 정의, 너는 불의’라는 권력의 독선은 ‘정의를 수호하는 정치’가 아니라 ‘힘으로 정의를 포장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정부여당이 사법부까지 장악하기 위해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삼권분립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있으니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장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괴물이 되며, 괴물이 된 권력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이러한 권력의 폭주를 누가,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당의 역할이다. 정부여당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야당에게 있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은 극우 팬덤들에 휘둘리고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 지지율은 지난 6개월 동안 20%대(민주당은 40%대)에 멈추어 있으며, 장외투쟁으로 여론에 호소해보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반성하고 혁신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국민과 함께해야 권력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한편 언론의 역할과 책임 또한 무겁다.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보수 또는 진보 정권에 관계없이 정론직필(正論直筆)해야 한다. 언론이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지지 또는 비판한다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겠는가? 보수정권이 잘못하면 보수언론도 비판하고, 진보정권이 잘못하면 진보언론도 비판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상식이 아닌가?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지지 또는 비판하는 ‘정파적 해바라기 언론’은 결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국론의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이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주권자는 시위·청원·캠페인 등 조직화된 압력으로 권력의 폭주를 저지할 수 있으며, 선거를 통해서 권력 자체를 교체할 수도 있다. 아무리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시민의 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주권자는 진영논리에 빠지거나 편파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깨어 있는 시민’이란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다. 전 정권의 계엄을 거부했던 것처럼,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도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정의롭고 공정한 주권자의 이성적 판단만이 권력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2-22

강자 VS 약자

불어 ‘르상티망’의 사전적 의미는,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나 아등바등한들 늘 제자리 걸음하기도 벅찬 삶의 허무함에 대한 억압적 감정이다.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르상티망은, 질투나 시기심, 원한 감정 또는 분노다. 강하다는 것은 도달하고 싶은 것이면서,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강자와 약자 사이를 방황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다. 강자는 스스로를 증명한다. 그는 비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힘을 세계로 흘려보낸다. 그 힘은, ‘폭력적일 필요도 없고, 지배적일 필요도 없다.’ 창조하고, 책임지고, 감당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강함이다. 그러나 강함이 드러나는 순간 세계는 조용히 갈라진다. 약자는 증명할 꺼리가 없다. 그는 타인과 비교하며, 변명하며, 자신이 가진 원한 감정을 세계로 흘려보낸다. 겉으로는 강자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정의를, 공정을, 평등을 말한다. 창조하지도, 책임지지도, 감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약함이 드러나는 순간 강자는 조용히 지배당한다. 약자는 강자를 직접적으로 쓰러뜨릴 힘이 없다. 그래서 강함 자체를 문제 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약자에게 강함은, 위험한 것, 부도덕한 것이다. 약자의 르상티망은 격렬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며,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칼을 갈 일이 없다. 르상티망은, 찌르지 않아도 깊이 스며든다. 경쟁을 악으로, 탁월함을 의심의 대상으로 바꾼다. 약자는 묻는다. “왜 저 사람은 저 자리에 있는가?”라고. 때로는 정당한 이 질문에 르상티망이 개입되면 질문의 의미는 강자에 대한 단죄로 바뀐다. 약자는, 강자를, 아니 강함을 약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약자 스스로 강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약자가 원하는 것은 ‘아무도 강하지 않은 세계’다. 이곳에서는 비교할 필요도 없고,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약자의 르상티망 속에서 강자는 서서히 지쳐간다. 이것이 약자가 강자를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강자의 힘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강함의 의미를 소진시킨다. 약자가 결국은 승리한다. 그러나, 승리의 축배를 들어도 약자는 행복하지 않다. 여전히 약자이기 때문이다. 르상티망은 단순한 원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지’다. 르상티망에 공격당한 강자는 끊임없이 사과해야 한다. 이유 없이 미안해야 한다. ‘왜 더 가졌는지’ ‘왜 더 빨리 갔는지’ ‘왜 더 잘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 끝나면 또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 르상티망은 교묘하다. 언제나 선한 얼굴을 한다. 그러나 그 선함에는 기쁨, 웃음, 여유, 삶을 긍정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약자들이 무너뜨리고 싶은 강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폭력적이지도 않고 지배하지도 않지만, 그토록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강함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강자의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돈 한 푼 없었고, 아무런 지배를 하지 않았던 부처와 예수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부처가 약자라면, 그가 강자에 대한 원한 감정이 있었을까. 예수가 약자라면, 그에겐 아무런 창조하는 힘도,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을까. 그대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5-12-22

국가와 국민

민주주의 국가의 성립에 대한 근거로 흔히들 사회계약설을 든다. 사회계약설은,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의 합의(계약)에서 나온다는 이론으로, 개인들이 자연 상태의 불안정함을 벗어나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약속(계약)하여 국가를 만들고, 이 계약을 통해 형성된 국가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사상이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이 주창한 이론으로, 핵심은 국가를 개인의 자연권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국가의 형태와 흥망성쇠는 그 시대를 사는 개개인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전제군주 국가의 백성은 통치자의 자비에 의존하며 자유와 인권을 제한받는 삶을 살았고, 식민지 백성은 주권을 상실한 채 민족적 정체성의 위협과 억압, 경제적 착취 등의 고통을 받았다. 후진국 국민은 빈곤과 불안정한 정치, 낮은 사회 인프라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반면에 선진국 국민은 잘 갖춰진 사회 안전망,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의료 혜택, 그리고 법치주의 속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된다. 21세기의 국가는 과거의 단순한 통치 체제를 넘어 글로벌 경쟁 시대의 주체이자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경의 의미는 약화되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소프트 파워‘와 ‘안전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백성‘이 아니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주권자이며, 투표와 정치 참여를 통해 국가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능동적인 주체다. 국가는 국민의 봉사자로서, 국민의 의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괄목할 만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다. 지구상에 완전무결한 이상국가는 없을진대, 온갖 우여곡절과 끊임없는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 80년사는 눈부신 성장의 역사였다. 하지만 통탄스럽게도 그런 역사를 폄훼하고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이 지금 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6·25전쟁 이래 국가 체제가 이토록 위태로운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의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한 좌파세력들에 의해 법치가 무너지고, 반공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다. 건국 이전부터 끊임없이 준동하고 암약해온 불순분자들과 그들과 결탁한 정치세력과 사회단체, 또한 그들에 의해 좌경화된 국민들이 합세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위기감이나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국민들이 과반수인 실정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없이는 지금의 사태를 수습하고 국가 동력을 회복할 전망이 어두워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의 불씨라면, 상당수 젊은이들이 각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봄의 새싹처럼 밀치고 올라오는 이 새로운 기운이 불의한 세력을 평정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2-22

이분법과 양비론

오늘은 24절기의 22번째인 동짓날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에서 동짓날은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여름의 정점인 하지(夏至)와 비교하면 대략 5시간 정도 낮의 길이가 짧은 날이 동지(冬至)다. 어둠을 꺼리는 만큼 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생의 약동을 꿈꾸기 시작한다. 밤이 가장 깊은 시각은 동시에 동트는 새벽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새삼 이분법을 돌이키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생의 여러 모습이다. 한여름 소나기 지나간 자리에 찬연하게 빛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삶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천변만화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인생의 고빗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과 사연이 자리한다. 그러하되 우리는 명쾌하고도 특정한 시각으로 인간과 세상을 재단한다. 이분법은 우리가 의지하는 매우 친근한 관점이자 행동 방침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처럼 단순하고도 강력한 분별과 차이가 이분법의 고갱이다. 예를 든 대상 가운데 전자는 우리의 영원한 벗이자 우방이며, 후자는 원수이자 악마로 화한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충돌, 대립과 갈등, 불화와 반목(反目)이 발원한다. 양자택일의 관점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분법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중간지대를 포기하기에 포용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야’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찔러 맹인(盲人)으로 만들어버리고 시칠리아를 탈출한다. 폴리페모스처럼 하나의 눈으로만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분법과 달리 양비론(兩非論)은 제3의 시선을 전제한다. 양비론은 너희 둘 다 틀렸다는 관점에 기초한다. 양비론자들은 자기네의 관점만이 옳다는 전제 아래 이분법에 기초한 자들을 비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의 관점이 변증법적인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 한, 양비론도 사태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다. 회색의 중립지대에서 그들은 지적인 유희에 탐닉한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내란 정국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이 상호 충돌하면서 여론 매체가 들끓는다. 여론을 추동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대고 있으며, 일부 현학적인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포장만 그럴듯한 양비론을 제시한다. 양자를 넘어서는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안의 출발점은 역사 인식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의 근저에 지나간 날들의 오류와 실패가 자리해야 한다. 성공과 승리가 아니라, 실패와 패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위인전의 쓸모는 위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이 겪은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출구 모색과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강렬한 의지의 발현에 있다. 동지는 음기(陰氣)가 절정에 이르는 날이지만, 양기(陽氣)가 소생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선인들은 동짓날을 ‘일양(一陽)이 생겨나는 날’이라 보았다. 장쾌한 시각에 기초하여 이분법과 양비론을 넘어서는 위대한 통합과 전진을 염원하는 동짓날 아침이 환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2

동지팥죽

오늘은 동짓날이다. 1년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날로 양력으로 대개 12월 22일이 해당된다. 이 날은 세시풍속으로 가정마다 팥죽을 끓여 먹는다. 우리의 선조들은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작은 설로 여길 정도로 동짓날을 의미 있는 날로 대접을 했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도 했다. 팥죽 속에 찹쌀로 만든 새알을 넣고 나이만큼 새알을 먹는 풍속이 있다. 팥을 고아 팥죽을 만들고는 가장 먼저 동네 사당을 찾아간다. 사당에서 동지고사를 지낸 다음, 집안의 각방과 장독대 헛간 등 곳곳에 팥죽을 놓아둔다. 팥죽이 식으면 가족들이 모여 죽을 먹는데, 팥의 붉은 색이 악귀를 쫓아내는데 효능이 있다고 믿은 탓이다. 새해에도 농사가 잘되고 가족들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의례기도 하다.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를 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불렀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비유해 “동지섣달의 해는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또 우리 속담에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는 말이 있다. 동지가 지나면 온 세상이 새해를 맞을 준비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우리의 선조는 자연의 변화를 경험으로 관측하고 동지 이후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올 한해도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지혜를 생각하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12-21

메타세쿼이아 숲의 정수, 익산 아가페 정원

우리나라 국민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민간정원은 어디일까. 공신력을 인정받은 국가기관 산림청이 선정해 발표한 곳 중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결정의 언저리에는 대국민 온라인 선호도 조사와 전문가의 현장심사를 통해서 선정되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북 익산에 있는 아가페 정원은 색다른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통영 동백커피식물원, 정읍 들꽃마당, 제주 생각하는 정원, 울주 온실리움, 구례 천개의 향나무숲정원 등과 함께 선정되었다. 고흥 쑥섬, 해남 문가든, 괴산 트리하우스, 제주 생각하는 정원 등도 포함된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 중의 한 군데이기도 하다. 참고로 ‘민간정원’은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정성을 다해 가꿔온 정원을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개방하는 정원이다. 전국에 150여 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아가페 정원의 소유자는 천주교재단이다. 1970년 고(故)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수목 정원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2021년 3월에는 늘 푸른 숲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휴식과 정서함양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민간정원으로 등록하였다. 수선화, 튤립, 목련, 양귀비 등 아름다운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 찾는 이의 마음을 은혜로움으로 만들어 버리는 장소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1970년이라면 무척이나 척박했던 시절이다. 거처도 보호자도 없던 노인 30여 명을 모아 무료 양로원을 세웠으나 문제는 운영비였다. 기부금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려워 고민 끝에 생각해 내었던 게 지금의 정원이다. 정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를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호미와 삽을 들고 흙을 일구었다. 나무들이 자라는 만큼 자부심도 양로원도 조금씩 커나갔고 그 기간이 무려 50년에 달했다. 쌓였던 세월의 연수만큼이나 나무의 수종도 점점 늘어나 지금은 17종 1416주다. 아가페 정원의 산책로는 1670m에 달한다. 계절마다 펼쳐지는 꽃과 나무의 향연을 고스란히 두 눈으로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평안한 길이다. 정원 곳곳에 스며 있는 메타세쿼이아, 공작단풍, 섬잣나무, 잣나무, 향나무, 백일홍 등 수많은 수종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봄의 목련을 시작으로 영산홍과 튤립, 수선화가 축제를 열고, 가을의 초입에는 꽃무릇과 맨드라미가 붉은 기운의 물결을 일으키고 공작단풍이 화려함의 극치를 장식한다. 아가페 정원의 초입은 좌우에 두 개의 대리석이 있고 붉은 벽돌담이 이어지는 형식이다. 좌측 대리석에는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정양원”이란 글자가 눈으로 들어오면서 전방에는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게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서 우측의 향나무 사이로 진입로가 연결되는 데 화장실과 정원의 휴게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방문객들은 진입로를 따라 조용히 걸으면 되는데, 첫 번째 맞이하는 숲이 향나무 숲이다. 향나무 아래에는 8월과 9월에는 맥문동이 피어나고, 10월에는 맨드라미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조금 느리게 걷는 것도 괜찮아”라는 흰 팻말이 시선을 끈다. 산책로는 좌측으로 꺾이면서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들이 나타나고 길은 아기자기하게 연결이 된다. 조금은 너른듯한 공터가 나타나면서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라 적힌 팻말이 지시하는 지점에, 마치 병풍을 친듯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하늘을 반 정도 가리면서 서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아가페 정원의 정수다. 정원의 설립 초기에 심어두었던 500여 그루가 어느새 높이 40m에 이르는 장대한 나무로 성장해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 서면, 지나간 세월에 녹아들었을 수많은 어르신의 피와 땀들이 오롯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여 괜히 가슴이 짠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일렁이며 소리를 내면서 격하게 흔들린다. 그들의 마지막이 영원한 안식으로 구원받았음을 증명하는 날갯짓이리라. 마음마저 정화되는 듯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어본다. 더는 표현하기 어려운 벅참의 연속이다. 수런수런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히고, 정갈하면서도 정적인 느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영원히 진한 여운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아가페 정원의 중심은 유럽식 정원의 전형이라는 영국식 포멀가든(Formal Garden)이다. 정교하게 대칭을 이루는 화단에 고전적 조형물, 대리석 분수, 그리고 계절마다 바뀌는 색색의 꽃들이 그것을 대변한다. 어느 누군가는 고요한 품격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람을 위한 사랑의 공간이라는 말이 저절로 가슴에 와닿는다. 사계절 내내 언제 찾아도 좋은 민간정원이다. 봄에는 유채와 데이지, 여름에는 루드베키아와 라벤더, 가을에는 상사화와 공작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정원을 온통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곳이다. 아가페 정원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인 황등석산과 12분 거리의 미륵사지를 연계할 것을 권한다. 황등석산은 한 세기 동안 돌을 캐던 거대한 채석장이, 요즘 들어 MZ세대들이 일부러 찾아드는 힙한 ‘감성 핫플’로 재탄생한 곳이다. 지난 10월 25일에 일부분이 개장되었는데 약 1개월여 만에 약 2만 명을 돌파하며 전북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예전 이곳에서 채굴되었던 황등석은 국회의사당, 대법원, 청와대 영빈관의 13m 기둥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터다.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아가페 정원의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이며 정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주말 및 공휴일 방문 시에는 방문 2주 전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주말의 예약전화는 (063)843-7294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12-21

내연산 산신 할무당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끔찍이도 산신을 섬겨 왔다.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서 시신을 매장하거나 묘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부터 지내는 풍습이 있다. 사찰 뒤편엔 으레 산신당이 있을 정도다. 산신 중에서도 문헌에 전하는 이름난 산신이 더러 있다. 삼국유사에는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한다. 또 제2대 남해왕의 부인 운제부인(雲帝夫人)은 운제산(雲梯山) 성모가 되었다고 한다. 성모는 신모(神母), 즉 여신을 말한다. 지리산 산신은 지리산 성모이다. 석상으로 새겨져 오랫동안 천왕봉을 지키고 있던 중 수난을 받아 조각난 채 흩어져 있다가 현재 경남 산청군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포항을 대표하는 산, 내연산에는 어떤 산신이 있는가? 바로 ‘할무당 할매’다. 물론 지리산 산신처럼 여신이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2리(산령전) 마을 뒷산 중턱에는 백계당(白啓堂)이라는 현판이 붙은 신당이 하나 있다. 바로 내연산 밑에서 오랫동안 내연산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온 송라면, 청하면 일대의 주민들이 신봉하는 산신인 할무당(姑母堂) 할매를 모시는 신당이다. 신당 안에는 조성 연대가 불분명한 석조 신상을 모셔 두었다. 얼굴이 경주 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을 조금 닮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이 삼화령 미륵불을 연상케 하는데, 신격으로서의 할무당 할매의 좌정담을 담은 신화가 있다. 옛날 보경사에 박씨 성을 가진 보살이 한 분 있었다. 가족도 없이 보경사에 들어와 주로 공양간에서 스님들의 공양 준비를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한 번씩 부처님께 호랑이 밥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해 눈이 조금 내린 겨울날 아침, 공양간에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방으로 가보았는데, 신발만 보이고, 방문이 열린 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덮인 마당엔 호랑이 발자국이 보였다. 사람들이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 가니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에서 할머니 옷가지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평소 할머니의 소원을 부처님이 들어주셨고, 산신인 호랑이가 업고 갔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사당을 지어 모셨다. 이 신당은 원래 현재의 신당 위치에서 위쪽으로 약 4km쯤 떨어진 내연산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 할무당재에 있었으나, 약 100년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때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상이 산기슭에 버려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할무당 할매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제자리에 모셔지게 되었다. 할무당 할매를 신봉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내연산에서 풀을 베거나 땔감을 얻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인근 14개 마을의 주민들이다. 이들 주민들은 일찍이 백계당숭봉계를 조직하여 할무당 할매를 모셔 왔다. 할무당 할매가 모셔진 백계당 앞에서 우마를 타고 지나가면 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든지, 조사리의 장모 씨는 환갑이 되도록 무자식이었는데 할매한테 공을 들인 후 60세가 넘어 자손을 봤다든지, 6·25 전쟁 때 격전지였지만 이 신당만은 폭격을 면했다든지, 1986년, 이곳에서 산판 사업을 하던 사람이 산판길을 뚫는다며 이 신당 앞에 있는 아름드리 노송 세 그루를 베어내고 길을 냈다가 신당 앞에서 차가 전복되어 현장에서 즉사했다든지 하는 영험담들은 할매에 대한 신앙심을 강하게 떠받치고 있다. 할무당 할매를 모시는 곳은 내연산에 위치한 백계당 신당을 중심으로 여러 곳이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 방향 약 500m 지점에 위치하는 첫달목이란 곳에도 신당이 하나 있다. 첫달목 신당은 바위 밑에 위패(姑母堂神之位)만 모셔져 있는 형태인데, 매년 사월초파일 새벽에 내연산 계곡 하류에 사는 주민 대표로 조직된 연산계에서 제사를 받든다. 그와는 별도로 또 중리(중산1리), 학산(중산2리), 덕곡(중산3리), 두곡(대전1리)에서는 동제당에 입향조 외에 할무당 할매 위패를 모셔 두고 마을제사 때 잔을 올리는 전통이 이어내리고 있다. 포항은 동해안에 위치한 지역의 특성상 그 동안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전하는 일월신(日月神) 연오랑·세오녀가 주목을 받아 왔다. 포항시에서는 이를 지역의 정체성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고, 상당한 성과도 냈다. 포항이 긴 해안선을 끼고 있는 임해지역이지만, 북서쪽엔 고봉준령들에 둘러싸인 산악지역도 넓게 분포돼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전통문화도 잘 전승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제 시야를 넓혀 내연산 산신 할무당에도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할무당은 포항의 정신문화사에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할무당 할매는 오랜 세월 동안 내연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온 신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재도 광범위한 지역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포항을 대표하는 산신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12-21

환단고기 논란을 보다가

지난 12일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받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다. ‘환단고기’는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역사서이고, ‘환빠’는 ‘환단고기’ 맹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때 대통령이 ‘환단고기’가 문헌이다,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비판의 소리가 크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환빠’라고 한 것만 봐도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다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인지하는지, 역사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이냐의 질문 과정 중 하나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단군 관련 이슈에 특별한 관심이 가는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1909년 나철이 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중광했는데 대종교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 한얼님이라고 하여 모두 믿는다. 중광(重光)은 한국에 단군과 천신을 모시는 전통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나철이 그것을 재건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종교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 아버지가 만주에서 사실 때 대종교 3대 도사교였던 윤세복이 이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몇 번 방문한 적도 있다. 대종교의 경전은 ‘삼일신고’와 ‘신사기’인데, 특이한 것은 대종교에서는 1917년에 발견된 ‘천부경’도 경전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삼일신고’는 온전히 수행에 관한 책이고 ‘신사기’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지만 ‘환단고기’처럼 실재 사실처럼 서술했다기보다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천부경’ 역시 수행과 관련이 깊다. 대종교가 ‘환단고기’를 수용하거나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극단적 민족주의 경향을 띠는 것과는 달리, 대종교에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관점은 수행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대종교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종교 신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은 일제 탄압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자결하였고, 2대 도사교 김교헌은 1919년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3대 도사교 후보였던 서일은 독립운동을 위해 도사교를 마다하고 대한정의단을 발족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많은 대종교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지향한 활동이 아니다. 대통령이 왜 ‘환단고기’와 ‘환빠’를 언급했는지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지금도 ‘환단고기’를 실제 역사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 제대로 대응해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 옳다. 다만, 엄밀한 역사학이라는 명분으로 고대에 대한 상상력까지 말살하지 않기를 바란다. ‘환단고기’는 수용하지 않더라도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 관련해서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21

어린이의 질문에, 포항이 답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아동센터에 다니는 ○○입니다.” 얼마 전 의회로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다. 포항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직접 쓴 편지였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또박또박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가끔 생각해보면 어른들은 참 좋지 않은 것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건강에 나쁘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욕하지 말라고 하면서 운전할 때 욕하는 어른들도 봐요. 어린이들이 보는 곳이든 안 보는 곳이든, 우리에게만 하지 말라고 하면 될까요?" 그리고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을 배웠다며, 도대체 누가 윗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규칙 같은 법도 있다는데, 어른들이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로 편지는 마무리돼 있었다. 어린이의 문제의식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건물임을 알면서도, 바로 아래층이나 주변에서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현실, 그로 인해 겪는 간접흡연의 고통을 또렷이 짚어냈다. 이 편지를 읽으며 ‘민원’이라는 말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떠올랐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어린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는 어른들이 정작 자신에게만은 지나치게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을 향해 단호하게 질문을 던지는 어린이들의 태도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포항시의 대부분 행정은 지역 현안과 개발, 예산 논의가 중심이고, 아동과 청소년의 생활환경을 세밀하게 살피는 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아동, 청소년들은 민원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자신의 불편을 제도로 연결할 통로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의정활동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편지를 받은 뒤 해당 지역아동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직접 찾아가 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여 년 동안 많은 민원인을 만났지만, 이렇게 정성스러운 민원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가장 어린 민원인들의 민원이라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안전한 공간에서 신나게 놀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라는 동네. 그것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기본 조건이다. 어린이들이 잘사는 동네는 결국 모두가 살기 좋은 동네가 되고, 그런 동네가 모여 포항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정활동 4년을 마무리해 가는 지금, 어린 민원인의 목소리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도시를 잘 만든다는 것은 거창한 개발계획 이전에, 가장 작은 시민의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 포항시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내준 나의 첫 어린이 민원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2-21

킥보드 사고, 킥보드 업체의 책임은?

아들이 킥보드 사고를 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이 녀석 매일 같이 킥보드를 타고 다녔던 모양이다. 내리막길 인도에서 속도 조절을 못해 정차해 있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차량 운행자는 처음엔 같은 아들 가진 엄마로서 이해한다며 수리비만 조금 받겠다고 했는데, 점점 요구하는 수리비가 늘어나더니 나중엔 차에 타고 있다가 놀랬다는 아들과 자신에 대한 위자료 조의 금원까지 요구했다. 자식 가진 게 죄라고 혹시나 모를 소년보호처분이라도 떨어지는 걸 막으려고 결국 요구하는 수백만 원의 돈을 다 주고 합의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아들을 한바탕 야단치고 나자 문득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는데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킥보드 업체들에 대한 울분이 생겼다. 학교 옆 길가에 잔뜩 서 있는 연두색 킥보드들. 탈 수 있게 해놓고 저렇게 유인한다면 아이들은 과연 그 유혹을 뿌리치기 쉬울까? 도로교통법상 킥보드는 개인형 이동장치(PM)로 16세 이상이면서 원동기 면허나 자동차 면허를 소지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킥보드는 운전면허 없이 탈 수 있다. 킥보드 대여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보니 면허를 등록하라는 안내 문구는 나오지만 필수 절차가 아니어서 면허 등록 없이도 운행이 가능했다. 아예 면허 인증 안내가 없는 킥보드 앱도 있다고 한다. 아들 사건 이후 킥보드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중학교 앞에 좌판을 깔고 헐값에 담배와 술을 팔면서 사 가더라도 실제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면 다 너희 잘못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면허 없이 킥보드를 마음껏 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킥보드 업체의 책임도 분명 아들과 그 보호자인 나의 잘못만큼은 법원이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물어준 배상금의 일부를 책임지라는 구상금 소송을 해보려 했으나 사는 게 바빠 어찌하다보니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그 이후 청소년들의 킥보드 사고는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등 PM에 대한 무면허 단속 건수는 2021년 7164건에서 지난해 3만5382건으로 3년 사이 5배 급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킥보드는 앱만 깔면 면허 없이 탈 수 있다. 거리엔 헬멧도 없이, 혹은 둘이 함께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흔하다. 지난 10월 18일 인천에서 무면허 중학생 2명이 몰던 전동킥보드가 어린 딸을 보호하려던 30대 엄마를 치었다. 엄마는 중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찾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은 무면허 운전 방조 혐의로 킥보드 대여업체 책임자와 업체를 불구속 입건했다. 킥보드 업체를 무면허 운전 방조죄로 입건한 첫 사례라고 한다. 첫 사례라는 것이 놀라웠다. 3년 전 그 때 내가 소송을 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킥보드 사용시 면허 입력을 필수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킥보드 업체에 대해선 무면허 운전과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범죄에 대한 방조범을 인정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며, 과태료와 영업정지 같은 강한 행정제제도 가해져야 한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18

치매머니가 사냥감

있어도 못쓰는 돈, 치매머니. 노년기에 치매가 찾아오면 인지능력이 떨어져 내 집도 내 돈도 내 것인 줄 모르는 상태에 이른다. 평생 벌어놓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쓸 수가 없다. 치매머니는 치매환자가 보유한 소득이나 자산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올해 처음으로 치매머니 규모를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과 부동산 등을 포함한 자산규모는 154조원이다. 이를 치매환자 수로 나누면 1인당 보유 치매머니가 2억원 정도 된다. 전체 규모는 GDP의 6.4%다. 인구 대비 자산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빨리 시작된 일본은 치매머니 규모가 2030년에 가면 수천조에 이를 거란 전망이 있다. 치매머니는 주인이 있어도 쓸 수가 없으니 돈이 순환되지 않아 경제에 장애가 된다. 당연히 경제에는 나쁘다. 또 사회적으로 치매머니를 노리는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게 되니 치매머니 관리가 사회의 큰 이슈 거리가 된다.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 치매환자가 늘고 있다. 그들이 보유한 치매머니도 증가하고, 그를 노린 범죄도 갈수록 는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치매환자의 재산을 노린 범죄의 다수가 환자를 돌보던 요양시설 종사자이거나 지인 등 가까운 사람한테서 일어난다고 한다. 치매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었다. 우리 사회가 치매문제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장수를 축복이라 부르기엔 치매문제가 우리들 코앞에 있다. 치매환자의 돈이 범죄의 사냥감이 되고 그를 보호할 사회적 안정망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면 장수시대를 찬양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18

0.93%의 생존 – 인문사회연구의 위축

0.93%에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 말이다. 0.93이라는 숫자는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에 할당된 비율을 의미한다. 현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을 만회하기 위해 2026년 35조3000억이라는 예산을 편성했고, 이는 전년 대비 19.9% 증가한 규모라 한다. 하지만 예산 상승의 대부분이 이공 분야를 중심으로 집중되다 보니, 인문사회의 비중은 오히려 1.2%에서 0.93%로 하락했다. 인문사회연구의 지원 방안과 필요에 대한 대학과 연구소, 교수와 연구자, 대학원생 등의 다각적인 검토와 토의,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이들 논의는 결국 전체 R&D 예산의 1% 내외 수준에서 이루어진 고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 해도 그저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석박사 과정을 거쳤을 뿐, 이 분야 연구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애초 돈을 목적으로 무언가를 모색했다면 인문계열 대학원에 진학할 리 있겠는가. 아마 대다수가 그럴 텐데, 문제는 공부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 여건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학원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보단 등록금 마련을 위해 3~4개 알바를 전전했단 기억이 더 선명하다. 또한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자들은 박사과정을 수료해도 학위논문을 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용되는데, 그동안의 생계와 공부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던 경험을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어떤가. 졸업한 거의 모든 박사들은 R&D 예산의 1%도 안되는 지원을 받기 위해 매달리지만 대체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사실 이런 경험 자체는 또래의 다른 분야나 직종의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을 것이다. 각박한 게 인문사회 연구자만 그러하겠나. 하지만 연구자로 살아남기 위해 연구는 연구대로 지속하면서도 생계는 생계대로 따로 챙겨야 하는 이 외줄타기의 삶에 대해 정부에 호소할 권리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사회인은 자기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자기의 일(=연구)로만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대로 연구자들은 자기의 일(=연구)에 열심히 매진하면 할수록 생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일=연구=노동’과 ‘생계=생활’의 철저한 분리가 연구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물론 노동과 생활의 이러한 분리가 문제인 이유 역시 자기의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는 위기에서만 비롯된다. 연구자의 생계를 책임져 달라는 게 아니라 공부를 계속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연구자가 연구에 매진케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책으로써 R&D 예산의 확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과연 인문사회 연구의 중요성이 한국 연구개발 분야의 1%도 되지 않을까? K-컬처 신드롬과 한강의 노벨문학상, AI리터러시와 기술윤리, 알고리즘 해석과 현대문명 비판 등이 어떠한 지적 배경 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겠나? 대체 왜 우리가 여전히 인문사회 분야 지식의 가치가 0.93%보단 높지 않겠냐고 사정해야 하나? 이 문제는 국가적 의제로 다시 살펴져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2-18

애매한 밥값 이야기

이걸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예절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밥값 내는 행위를 시건방지게 생각했고 설사 남자가 돈이 없어 여자가 내야 할 때도 탁자 밑으로 돈을 건네주어 남자가 내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우린 이런 행위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연장자에게 얻어먹는 것은 당연했고 후배가 밥값을 낸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래서 선배 대접 제대로 받으려면 밥값 정도는 항상 챙겨 다녀야 했다. 이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란 게 놀랍다. 얼마 전만 해도 남자라는 ‘거들먹’이 몸에 남아 밥값 정도는 내가 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건만, 세상은 변했고 나도 변했다. 이젠 여자가 밥값을 내는 행위에 익숙해져서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 대구 수필가이신 김상립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과 식사 자리에서 밥값을 거의 전담하셨다. 너무 얻어먹는 것이 죄송스러워 몰래 몇 번 내기도 했지만, 선생은 결코 신발 끈 맨다고 우물쭈물하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자리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항상 도리를 다하고 사셨기에 거리낌이 없었고 당신 속에 있는 말씀을 다 하셨다. 결코 구질구질하게 눈치를 보며 주위 지탄을 우려해 주례사만 읊는 법이 없었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반해 언제부터인지 선생처럼 되어보려고 따라 하다가 집구석 거덜 날뻔했다. 아무나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요즘은 연로하신 분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린 인간이 밥값을 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용돈 받아 쓰시는 분에게 밥값을 전가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이래저래 애매한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우리말 뿌리 찾기 ‘어원사전’을 내신 국어학계의 거목 고(故)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를 알만한 분들은 다 안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어원을 제대로 오랫동안 연구해 찾아낸 분이다. 작고하신 지 몇 년 후에 제자들에 의해 책이 마무리되어 출간되었다. 북한이 고향이었던 이기문 교수는 소문난 ‘평양냉면 마니아’였다. 그래서 후배들이나 제자들을 데리고 냉면집을 자주 찾았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학문적 업적보다는 교수님은 절대 후배나 제자들이 식사비를 못 내게 했다는 것을 더 기억하고 있어 웃음이 난다. 제자들이 이제는 연로하신 교수님을 대접하려 하면 교수님은 ‘아무리 제자가 돈을 벌어도 스승이 사는 법’이라며 크게 화를 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단다. 이름을 남기려면 제자를 잘 키워야 하고 제아무리 살아생전 출중한 업적이 있어도 그 업적을 인정해 줄 후학들이 없으면 사후 얼마 되지 않아 이름 석 자는 사장되고 만다는 것이 현실이다. 혼자 똑똑한 척 잘난 척하며 우쭐대면서 거들먹거리는 인생을 살아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다 헛짓거리라는 말이다. 밥을 사고 안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생으로서 스승으로서의 인격이 보이면 후학들이 추앙하게 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일 때는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만 날리고 있다가 사후 그 어떠한 기억도 지워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라는 말이다. 학식과 덕망도 갖춰야 하고 지갑도 두둑해야 하니,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노병철 수필가

2025-12-18

국민이 지킨다

2025년이 열흘 남짓 남았다. 우리는 한 해를 ‘실패한 계엄’이 남긴 상처 입은 민심과 함께 보냈다. 총과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도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허약하다. 무너지지 않았을 뿐, 단단해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흔히 밖에서 들여온 제도쯤으로 여겨왔다. 교과서 속 개념이고, 헌법 조항이며,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이상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분명히 확인해 주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이식된 장치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일상의 자리에서 벽돌처럼 하나씩 쌓아올린 구조물이었다는 것을. 광장에서, 직장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론장에서 국민은 스스로 민주주의의 기둥이 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협한 쪽은 오히려 기득권 엘리트들이었다. 국가와 질서, 안보와 위기를 앞세우며 헌법의 근간을 주무르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언제나 거창했지만, 그 끝에는 권력의 연장이라는 낡은 목적이 놓여 있었다. 반면에 이들을 막아낸 것은 아무런 직함도, 무기도 없는 국민들이었다. 제복도 계급장도 없이, 다만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아득했던 길목마다, 악한들은 움켜쥔 자리에 남아 있었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전개를 방해하는 세력은 퇴장하지 않았다. 실패했을 뿐이다. 제도를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시민의 피로와 망각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방식으로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용히, 일상 속에서 마모된다. 그래서 새해에도 우리는 신경줄을 놓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완성 상태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잠시 방심하여 ‘설마’하는 사이에 균열은 벌어진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헌법상 문장은 조문으로 남을 때 가장 위태롭다. 살아있는 규범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 질문과 비판이 필요하다. 지켜냈다는 안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킨 다음에도 눈에 불을 밝히는 국민이어야 한다. 권력의 언어를 해독하고, 제도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며, 불의가 상식으로 둔갑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의에 기대어 작동하지 않는다. 경계와 참여, 기억과 행동 위에서만 호흡을 이어간다. 2026년을 앞두고 우리가 다시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지켜주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 ‘불편한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우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되돌리기 어려운 후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느 틈에 경제적 선진국으로 올라섰듯이,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 공동체가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것인지를 이제는 온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해를 넘기며 우리는 각오와 다짐을 새로이 하여 나라와 국민이 공동체적 생명력을 이어가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2-17

사전을 읽어보자

글을 쓰면서 제 자리에 들어설 어휘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쓴 글을 읽고 나면 그때야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기도 하고, 왜 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이땐 이런 단어를 썼어야지 자책하게 된다. 그러면서 심히 부족한 나의 어휘력을 깨닫는다. 남의 좋은 글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든다. 며칠 전 이문열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풍부한 어휘들이 적재적소에 놓여 만들어진 문장을 줄 쳐가면서 읽었다. 그래 이럴 때 이런 단어를 쓰니 참 맞침 맞은 표현이 되네. 읽은 문장을 다시 또 읽은 적이 수십 번은 되었다. 요즘은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쉽게 찾는 휴대폰이 있어 단어의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었다. 더구나 공부를 더 이상 안하게 되면서부터는 사용가능한 어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생각도 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궁리해낸 것이 큰사전을 꺼내 읽는 도전을 해볼까였다. 어디 있나 둘러보니 책장 꼭대기에 새우리말큰사전이 눈에 띄었다. 꺼내서 펼쳐보니 깨알 글씨에 상하 두 권 합해서 3856페이지다. 일단 먼지를 닦고 책상 위에 두었다. 예전엔 국어사전이 참 가까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할 때 부상으로 받은 사전은 항상 책상 위에 있었고 필요할 때 펼쳤던 기억이 있다. 숙제를 할 때도 사전을 펼쳤고, 심심할 때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 무심히 읽었다. 대학 때까지도 국어사전은 영어사전과 같이 늘 나의 책상 위에 있었다. 한참 지나서는 백과사전까지도 소장하자 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말 사전은 1911년 말모이원고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원고였으나 240자 원고지에 붓글씨로 쓰인 부분적인 원고만 전해진다. 1914년 주시경 사망 후 출간되지 못했으나, 현존 최종 원고는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2020년 보물 제208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은 1929년 편찬을 시작했으나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됐고 원고마저 없어졌다. 해방 후 1945년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에 압수되었던 사전 원고를 되찾으며 다시 추진되었다.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1권을 간행하였으며, 이후 1957년까지 10년에 걸친 한글 사전 편찬이 마무리되었다. 이 사전의 원고는 2020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기록유산이다. 이 파란만장 갖은 신고(辛苦)를 겪었던 조선어사전 원고와 말모이 원고를 합해 ‘근대한국어사전 원고’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어,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무국에 제출했다.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 등을 거쳐, 2027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UNESCO Executive Board)에서 최종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올해는 우리말 사전의 역사에 의미 있는 방점을 찍는 해이기도 하니, 커다란 사전의 첫 페이지를 펼쳐볼 만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부족한 어휘력을 채울 공부가 첫 번째 목적인데 나의 성실성을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17

손목에서 생기는 신경포착

손목은 작은 공간 안에 여러 힘줄과 신경이 지나가며 이 구조가 일상적인 사용이나 반복된 작업에 의해 쉽게 붓고 압박을 받게 된다. 이렇게 손목에서 신경이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터널 증후군과 가이온 터널 증후군이다. 모두 손저림과 통증을 일으키지만 눌리는 신경과 증상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감별이 중요하며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터널 증후군은 손목의 좁은 통로인 수근관 안에서 정중신경이 압박될 때 발생한다. 이 안에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굵은 힘줄이 지나가는데 반복된 손목 사용과 과로로 힘줄 주변이 부어오르면 수근관 내부 압력이 올라가며 정중신경이 눌린다. 엄지, 검지, 중지 쪽의 저림이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며 밤이나 새벽에 저림이 심해 잠을 깨기도 한다. 오래 방치되면 엄지 쪽 근육이 위축돼 단추 채우기나 집는 동작이 서툴어질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오래 쥐는 습관, 키보드 작업, 설거지나 요리처럼 손목을 반복적으로 쓰는 행동이 주요 원인이다. 가이온 터널 증후군은 손바닥 새끼손가락 쪽에서 척골신경이 눌릴 때 발생한다. 가이온 관은 수근관과는 위치와 구조가 다른 또 하나의 좁은 통로로 자전거 핸들을 오래 잡거나 손바닥에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지는 직업이나 운동 시 흔하게 발생한다. 저림은 약지와 새끼손가락 쪽에 집중되고 심해지면 손을 꽉 쥐는 힘이 약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손바닥 아래쪽 인대와 두꺼운 조직이 신경을 직접 누르는 형태라 압박이 해소되지 않으면 증상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처럼 신경 포착은 단순 압박이 아닌 손목의 반복적 스트레스, 조직 부종, 근육·인대 긴장 등이 누적되어 생기는 결과이다. 기혈 순환의 정체와 근육, 인대의 과긴장이 원인이라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 주면 신경 압박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는 편이다. 특히 초음파를 이용한 가이딩 치료는 정중신경과 척골신경의 실제 모양과 깊이를 보면서 시행되기 때문에 약침과 침 치료의 정확도를 높여 주변 부종을 줄이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준다. 혈액순환 저하를 개선시키면 압박이 빨리 개선되기 때문에 한약 복용이 효과적이며 경추와 어깨·팔꿈치까지 이어지는 상지 전체의 정렬을 바로잡으면 재발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처음에는 저리고 찌릿한 느낌 정도로 시작하지만 점차 감각이 무뎌지고 근력 약화로 이어지며 신경 전도 속도가 떨어지면 일상생활에 불편이 커진다. 저림이 밤에 심해지기 시작한 단계 그리고 손가락 감각이 예민하게 변하는 시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생활 관리도 빠질 수 없는데 손목을 구부린 채 스마트폰을 오래 들고 있는 습관, 힘을 주어 손바닥을 누르는 작업, 장시간의 타이핑은 모두 악화 요인이 된다. 손목 각도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도록 환경을 바꾸고 손바닥 압박이 많은 운동 시 보호 장비를 착용하며 온열 관리와 스트레칭을 병행하면 치료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손목에서 생기는 신경 포착은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환이다. 중요한 것은 초기에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경을 누르는 조직을 풀어주며 다시 눌리지 않도록 생활 패턴을 바로잡는 것이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손저림도 구조를 잘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가 더해지면 오래 앓을 필요가 없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17

꼭두방재*

꼭두방재* 미물(微物)로 살다가 사람으로 살자 다짐한다 꼭두방재에 오르면 언덕에 올랐다가 산에서 내려온다** 포항에서 안동을 거쳐 서울로 가거나 개의치 않는다 다만 밥 먹고 똥 누며 어울려 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 오직 도달하지 못할 중도(中道)의 고갱이는 무엇일까, 의지와 신념과 기회와 능력을 몇 조각 구름으로 엿 바꿔 먹을 교조주의를 까부수는 낮달, 이마에 선연한 낮지도 않은 혹은 높지도 않은 꼭두방재에서, 비우고 내려감이 심히 어려움,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 국토의 가랑잎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경상북도 청송군과 포항시 죽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영화 ‘잉글리쉬 맨’의 원래 제목에서 빌림. … 그냥 거기에 갔다. 직선이나 혹은 효율적으로 길을 잘 만들어 버렸으니 찾아올 손님이 없다. 당연히 휴게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가끔은 외진 곳에서 마음을 돌아보고 가다듬어야 한다.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젠가 세상에서 외면당할 일만 남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2-17

알람브라 궁전, 시간의 문을 열고

햇살이 새뜻하다. 나는 알람브라 궁전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책을 펼치고 있다. 스페인 dosde 출판사에서 한국어로 출간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다. 매번 여행에서 돌아오면, 일상은 내게 익숙한 언어로 다시 말을 걸고 익숙한 길을 걷게 만든다. 그럴 때 여행지에서 구입했던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면 이국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책은 풍경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알람브라의 역사와 무데하르 양식의 문양이 사진과 언어로 피어나 있다. 책갈피에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다. 언제 끼워 넣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무척이나 반갑다. 바스러질 것처럼 얇고 마른 잎에서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초록으로 일렁이던 정원의 나무들이 다시 피어올라, 그때의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지난 해 겨울, 나는 알람브라 궁전을 거닐며 시간의 경계에 머물렀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는데 수많은 조형물을 마주할 때면, 과거 나스르 왕조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랍 왕들의 발소리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익숙함과 낯섦,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흔들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돌과 도자 타일에 새겨진 아랍어 문구, 아라베스크 문양과 기하학적 곡선을 바라보며 나는 거대한 역사책을 읽는 것 같았다. 세월을 직조한 겹겹의 시간 속에 사람의 손길과 기도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나는 벽에 손을 대보았다. 그 순간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남겼던 부탁이 떠올랐다. 그는 정복자에게 쫓겨 가면서도 알람브라 궁전만은 무너뜨리지 말라고 간청했다. 보아브딜 왕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간 뒤에도 아름다운 궁전을 잊지 못했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알람브라보다 못하지만 비슷한 궁전을 지어 그리움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사자의 안뜰’이었다. 회랑과 마찬가지로 궁전의 여러 방을 연결해 주는 네모난 마당에 사자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 분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흰 대리석 바닥 위로 흘렀다. 열두 마리의 사자상은 말없이 입을 다문 채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긴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학자들은 궁금해 했다. 열두 마리의 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 솔로몬 왕의 신전에 있던 철로 만든 황소, 일 년의 열두 달 혹은 열두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설까지 다양한 해석이 뒤따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술탄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무하마드 5세가 궁전을 건축한 시기에 사자 분수대도 같이 만들어졌기에, 사자들은 술탄의 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술탄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남았다. 사람은 유한의 존재이고 예술은 무한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회랑은 음영의 교향곡처럼 빛과 어둠을 조율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공간을 넘어 흐르던 시간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가 귓가에 울려오는 것 같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물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작곡가 타레가의 기타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책에는 군데군데 QR 코드가 있어, 스캔하면 영상이 펼쳐진다. 궁전 내부와 공예품의 영상을 보노라면, 아름다움에 다시 매혹된다. 기념품 가게에서 책을 샀던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힐지도 모를 여행의 감동을 되짚게 하는 선물로 이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책은 가슴속에 고이 접어온 여행지에서의 감탄과 설렘을 불러와 주었다. 여행의 기억은 연기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책 속 문장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햇살에 반짝이던 중정의 물소리가 종이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 나는 문장을 음미하며 회랑을 걷고 분수 앞에 멈추며 정원의 나무 그림자 안에 머물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은 시간의 문을 열고 내 안에서 깨어나리라. /정미영 수필가

2025-12-17

절벽으로 내몰린 한국 청년들

‘번아웃(burnout)’이란 삶이 주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낙담과 절망에 빠진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른바 ‘번아웃이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태가 된다. 당연지사 위험하다. 한국 청년 3명 가운데 1명이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조사가 최근 발표됐다. 젊은 세대가 절망과 낙담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한 진로(39.1%)’ 탓이었다. ‘과중한 업무’와 ‘일에 대한 낮은 보상’ 등도 주요한 이유였다. 밝은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2025년 말 우리나라 상황이 청년들을 번아웃에 빠뜨리고 있는 것. 사실 젊은층이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이전부터 지적돼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발간된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위에 언급한 문제를 수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9~34세 청년 자살률은 10만 명당 24.4명.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삶의 만족도 역시 하향하는 추세였다. 10점 만점에 6.7점으로 조사된 청년들 삶의 만족도 수치는 38개 OECD 회원국 가운데 31위. 학력이 낮을수록 삶의 만족도 역시 낮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청년 여성의 번아웃 경험률이 36.2%로 조사돼 청년 남성(28.6%)보다 대폭 높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체감하는 것에 보다 민감했기 때문일까? 갓 성인이 된 19세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청년들이 희망과 꿈보다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건 한국의 앞날이 어둡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17

감각 차단술의 함정

이상하게도 나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하고 반갑지도 않은 만남을 자주 겪는 편이었다. 대뜸 팔을 붙잡히거나,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을 마주치거나 사이비 종교인들이 순수한 의도인 척 설문조사를 부탁해 오거나 하는 유쾌하지 않은 만남의 연속. “그냥 무시하면 돼. 대꾸도 하지 말고 눈길도 주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최고야.” 한 친구는 해탈한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그게 잘 안되던데, 내가 말하자 친구는 그것도 기술이야, 연습해야지, 대꾸했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이상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을 차단하는 나만의 기술을 연마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건 아니었다. 그저 정면에서 살짝 아래로 시선을 내리깐 채 그곳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구멍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말을 걸어오는 낯선 목소리 따위가 아득히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 기술을 익힌 후로는 웬만한 사람들을 손쉽게 차단한 채 지나칠 수 있었다. 한 교육 업체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국가 지원 사업을 통해 온라인 강의를 개설하고 교육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낙오되는 수강생이 없도록 독려하여 강의를 무사히 마무리 짓도록 돕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다. 대부분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사무실에는 교육팀 직원들뿐이었으나, 예외로 오프라인 강의가 한 번 개설된 적이 있었다. “거기 좀 이상한 사람 있어요.” 어느 날 직원 한 분이 조심스레 말했다. “왜요?” 다른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웬 남자분인데, 목소리도 엄청 크고 강사님한테도 막 시비를 건다네요. 생긴 것도 영…”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무실이 있던 건물은 보안이 좋은 편이었고, 각 층을 지키는 보안 직원들까지 있었다. 그냥 목소리가 좀 괄괄하고 경우 없는 사람인가 보다, 짧게 생각하곤 넘겼다. 마주칠 일 없는 이상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내게 닥친 업무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로부터 며칠 후, 사무실 근처를 서성거리는 검은 인영을 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며칠 전 들었던 ‘이상한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목소리가 크고 강사에게도 시비를 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 생긴 것도 영… 그렇다는 사람. 사무실 앞을 기웃거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통화하는 척 핸드폰을 볼 옆에 갖다 댔다. 어, 여보세요? 낯부끄러운 연기도 펼쳤다. 그러자 남자는 나를 따라오며 소리를 질러댔다. 깜짝 놀란 나는 감각 차단술을 펼쳤다. 그는 이젠 내게 “야! 야!”라고 소리치며 손을 있는 힘껏 흔들었다. 안 보인다, 안 보여.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피해 무사히 카드키를 찍은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문밖을 내다보니,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붙박인 듯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그 이상한 사람 봤어요, 내가 직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려던 찰나,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중얼거리며 나간 그녀를 막을 새도 없었다. 나는 엉덩이만 들썩이며 그녀가 무사히 사무실 안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몇 분쯤 지났을까, 홀가분한 얼굴을 한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옆자리 직원분이 물었다. “수강생인데 오늘 처음 오는 거라 강의실을 못 찾고 있었대요.” 나는 놀라 되물었다. “그런데 왜 소리를 지르셨대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짧게 대답했다. “청각장애인 분이시더라고요. 손에 노트를 들고 계셨는데, 그거 봐달라고 그러신 거였어요.” 아아, 다들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업무를 이어갔다. 익숙한 타자 소리와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소리를 질렀던 것은 길을 묻기 위함이었고, 손을 흔들며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손에 든 노트를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문밖을 조심스레 건너다보았다. 그림자 하나 없이 고요하고 텅 빈 바깥만 보였다. 감각 차단술은 나의 위안이자 보호막이자 안전장치였다.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곤란한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낯선 이에게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다양한 이유로 많은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중에는 정말 무시가 최선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도움이 간절한 사람도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차단한 것이 정말 ‘이상한 무언가’였는지, 아니면 그저 내 주위를 돌고 있던 세상 그 자체였는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양수빈(소설가)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