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기업 미래, 인재육성이 결정한다

기업의 건강한 체질과 미래 경쟁력을 향한 인재육성은 단순히 교육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고, 사람의 사고·역량·행동을 바꾸는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제조기업에서는 설비나 기술만으로 한계가 있어, 혁신 성패는 ‘사람이 얼마나 바뀌느냐’에 달려 있다. 글로벌 기업경쟁력을 선도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우리는 일하러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러 간다’라는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입사를 하면, 개인의 성장 비전을 직속 상사가 수립하고, 현장 ‘문제를 보는 눈’과 ‘문제 발굴력’을 길러주고, ‘더 나은 일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활동 성과는 인사와 연계하여 동기부여 한다. 기업에서 인재육성의 의미는, 첫째, 변화 대응 능력 확보다. 시장, 기술, 고객 요구는 계속 변하고, 인재육성은 직원이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주도하게 만드는 과정에 있다. ‘현재 일 잘 하는 사람보다 진화하는 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기업 미래를 가름하게 된다. 둘째, 문제 해결형 조직 전환이다. 지시 중심이 아니라 현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조직이다. 문제 발견 능력, 데이터 기반 분석 능력, 개선 실행 능력, 협업 능력 등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조직문화 변화 수단이다. 교육은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도전 문화, 학습 문화, 개선 문화, 소통 문화를 만드는 도구이다. 기업의 인재육성은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조직체질개선 활동’이기 때문이다. 혁신 인재 육성의 성패는 경영진의 의지와 참여에 있다. 혁신 인재육성 실패의 대부분은 경영층 관심 부족 때문이다. 성공 기업의 특징을 보면, 솔선 활동 등 CEO의 직접 참여, 교육과 혁신 성과를 승진과 연계한다. 또한, 현장 중심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강의실에서 끝나면 효과는 없다. 현장 문제 해결형으로 교육하고, 개선 과정에서 코칭과 피드백으로 실행에 직접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 모든 교육을 동일하게 하면 실패한다. 경영층은 전략·혁신 리더십, 중간관리자는 실행·코칭 능력, 현장직은 개선 활동 능력 등으로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일관성을 가지고 최소 3~5년 이상 필요하다. 단기 교육으로 끝나면 지식만 남고, 장기 교육은 일하는 사고와 행동을 바꿔 개선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교육과 실행의 결과는 부서 지표와 연계하는 운영시스템이 중요하다. 가령, 설비 장애 문제를 발굴해서 개선하면, 공장 지표 ‘설비장애율’이 줄어들고 생산성을 높이게 된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P사는 개선 활동중심 교육과 실행 속의 현장에 강한 인재 양성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일반 직원 ‘즉실천’, 핵심 인재 ‘개선리더’, 중간 관리자, 코칭과 변화 관리의 조력자(Facilitator· FT), 컨설턴트 양성 과정이 있다. 이를 통해, 공정 개선, 안전 역량을 갖추어 지속 가능 경영을 만들어 간다. 결국, 기업 경쟁력은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서 나온다. 성공하는 기업은 교육을 비용이 아닌 미래 투자로 바라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2-10

6년의 여명

수줍게 건네준 노란 봉투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 위를 조심스럽게 지키고 있는 사과 모양의 캐릭터 스티커는 아이의 취향과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고 귀여운 인장이 오늘따라 유독 묵직한 작별의 무게로 다가온다. 6년이라는 시간, 한 아이의 유년이 저물고 청소년기라는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기까지 우리는 이 좁은 방에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해 왔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아이는 낯선 세상을 경계하는 어린 짐승처럼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스승과 제자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지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어느덧 서로의 사소한 일상과 깊숙한 사생활의 편린까지 공유하는 해후로 변모해 갔다. 아이는 성적표의 숫자로 고민했고 그 숫자보다 더 치열했던 사춘기의 고민을 내어 놓았다.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고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 기대어 위로받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훈습(薰習)되어 갔다. 향기가 옷에 배어들 듯, 아이의 싱그러운 에너지는 나의 무채색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나의 신중한 언어들은 아이의 거친 감정들을 다듬어주는 정원이 되었다.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와 이토록 순수하게 마음을 겹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축복이었다. 때로는 작은 초콜릿 하나로, 때로는 아이의 어머니가 구운 정성스러운 빵으로, 작은 소품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 시간들은 단순한 물질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편이라는 이심전심의 의식 같은 거였다.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좀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갔다. 현실적 이별을 앞두고 내 손에 이 편지를 쥐어주었다. 6년의 세월을 종이 한 장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터다. 하지만 봉투를 열기 전에 전해오는 아이의 감정은 우리가 함께 건너온 시간이 값지고 소중했음을 증명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영혼의 문턱을 함께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숭고했다. 나도 아이를 위해 손글씨로 편지를 적었다. 지난 6년, 아이의 키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내 마음의 부피도 함께 커졌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작은 선물과 함께 나의 진심을 담은 문장들을 봉투에 담았다. 수필의 행간마다 아이의 이름을 새기듯, 그동안 갈피에 숨겨두었던 문장과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많은 길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건넸다.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이 조금 따뜻하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각박한 세상의 파고를 견뎌낼 수 있는 작고 단단한 방패를 만들었기를 기대했다. 마지막 수업이 마쳐야 할 시계의 숫자가 바뀌며 우리는 책을 덮었다. 방문을 나서는 아이를 불러 세워 가만히 안아 주었다. 여리던 어깨가 어느덧 듬직해졌다. 나는 이 아이의 청소년기라는 거대한 숲을 함께 산책했음을 깨달았다. “잘 지내, 언제든 전화하고, 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울지 말고’라고 말했지만 정작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은 건 나였다. 아이 앞에서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나왔다. 다시 가다듬고 아이를 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아이의 잔상을 바라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긴 시간을 공유한 우리가 나눌 수 있었던 정직한 인사였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밀물처럼 떠나가는 이 학습 공간에서 왜 유독 이 아이에게 나의 마음은 정박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아이가 나에게 내비친 영혼의 투명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전달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일상에서 굽은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의 고독을 어루만지고 인간적인 온기를 수혈받았던 평등한 교감이 있었기에 이 아이의 부재가 그토록 아쉬웠음을 확신했다. 이제 아이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가 나눈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들은 아이의 마음 속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아이와 내가 교환했던 이 편지는 안녕의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삶에 심어둔 다정한 씨앗이 어디서든 꽃 피울 것임을 약속하는 쉼표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아이가 남기고 간 노란 봉투만이 윤슬처럼 남아있다. 돌아보면 6년은 시험의 터널이나 막막한 사춘기의 방황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서로의 앞날을 비추어주던 여명의 시간이었다. 물리적 동행은 이제 멈췄지만 우리의 여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찬란한 아침을 향해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또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김경아 작가

2026-02-10

피의 평원과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태동 ②서유럽 문화권으로 흡수

13세기 중반, 헝가리는 몽골의 침략에 노출되면서, 크로아티아 영주들은 기세를 올렸다. 반대로 억압이 가중된 계층도 있었다. 봉건왕조 압제가 농민을 괴롭혔고, 설상가상 전염병이 돌면서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자 농민항쟁을 불러왔다. 교회 개혁을 약속했던 프라하 카를대학 학장 얀 후스가 오히려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화형을 당하고 만다. 권력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으려는 봉건영주 반들의 승리였다. 교회가 부패하면서 수도원은 물론 수사들까지 탐욕에 물들자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취급했던 보고밀교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설상가상, ‘검은새의 들녘’ 코소보에서 승리한 오스만트루크제국은 비잔티움제국을 점령하면서 파죽지세로 서진을 이어갔다. 1463년 보스니아 점령에 이어 세르비아 마지막 수도 스메데레보를 차지하고 크로아티아를 넘보았다. 헝가리와 함께 힘을 합친 크로아티아의 귀족들은 요새를 만들어 최후의 방어막을 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으나, 오스만제국은 마을을 약탈하는 등 주변을 공격하면서 이들의 힘을 소진시켰다. 1493년부터 대치상태로 수십 년간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크로아티아는 그야말로 황폐해져갔다. 주민이 떠난 자리엔 잡풀만 무성하게 자랐고, 일부 수비병력 역시 의욕을 상실했다. 결국 미르코 데렌친을 중심으로 한 크로아티아방위군은 ‘피의 평원’, 즉 크르바브스코평원(지금의 우드비나Udbina) 전투에서 8천 여 오스만제국의 기병들에 의해 도륙 당한다. 훗날 세르비아에 코소보 ‘검은 새의 들녘’이 있다면, 크로아티아 사람들 가슴에 ‘피의 평원’이 대크로아티아 민족주의로 살아나 가슴을 쿵쿵 두드리게 된 것이다. 뒤이어 1526년 8월 29일 헝가리 러요시 2세가 오스만제국 쉴레이만 대제와 ‘모하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헝가리 왕조 대가 끊어지자 러요시 2세의 여동생(신성로마제국으로 시집간)을 빌미로 신성로마제국황제이자 합스부르크왕가 카를 5세에게 흡수된다. 이는 헝가리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위협을 합스부르크왕가 우산 속에 몸을 숨기며 살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크로아티아 역시 합스부르크왕가에 편입되면서 카를 5세의 동생인 페르디난드 1세가 헝가리 왕과 크로아티아 왕으로 추대된다. 헝가리가 합스부르크제국에 들어가면서 크로아티아도 따라들어 갈 수밖에 없었지만, 세르비아나 보스니아처럼 오스만트루크제국 하에서 암울한 세기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을 법하다. 이로써 합스부르크왕가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보헤미아, 북이탈리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내륙까지 지배하면서 거대제국을 형성했다. 이때부터 서방정벌을 이어가던 오스만트루크제국과 본격적인 양대 산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발칸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대각선 그으면, 위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 아래는 오스만트루크제국에 편입이 되면서 앞서 거듭 언급한 것처럼 20세기 폭력의 경계가 그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크로아티아는 점차 합스부르크왕가 아래에 놓이게 되고, 가톨릭문화권에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크로아티아 땅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왕가는 오스만트루크제국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지금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사이에 최전방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때 이슬람제국을 피해 북쪽으로 이동한 세르비아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남슬라브민족정착촌’을 형성하면서 국경 수비대를 만들어 실전에 배치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일거리를 찾아 방황하던 중이라 몸 바쳐 충성을 다했다. 오스트리아제국이 오스만트루크와의 잦은 충돌 속에 세르비아인은 최전선에서 인간방어벽이 되어주었다. 또한 헝가리 봉건 영주에게 반기를 드는 토착세력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이들 세르비아인들을 ‘하이두끄(Hajduk)’라고 불렀는데 이를 직역하면 ‘산적’, 좋은 말로는 ‘의적’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합스부르크제국은 세르비아 용병들이 승리를 거두면 토지로 보상해 주었다.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 영주 반들이 토지를 빼앗을까 오스트리아에 충성해야 했다. 이 일로 인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 국경에 몰려 살게 된 것이다. 중간 방어선은 18세기까지 이어지면서 대략 10만 여명의 군인들이 주둔했던 적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에 가톨릭 열기가 급격히 퍼지면서 정교회 세르비아인에 대해 반감이 고조됐고, 정교도 세르비아인을 개종키 위한 정책을 폈다. 따라서 세르비아 용병들 지위가 하락하고, 숫자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도 세르비아인은 낙후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훗날 이들의 후손들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대부분 크로아티아 괴뢰정부 우스타샤에게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2-10

동묘 스토리 헌팅

청계천. 물들면 안 되겠다고 염려하면서도 다시 간다. 동묘시장은 이효석 소설 ‘도시와 유령’의 배경 공간, 그의 창작의 ‘시작점’은 동반자 작가였다. 나도 이 동묘를 소설적으로 ‘소유’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지 오래, 하지만 쓰고 싶은 것과 능력은 별개의 것. ‘스토리 헌팅’은 쉽지 않다. 어슬렁거리기, 떠돌아다니기, 힐끗거리기는 쉽지만은 않다. 뭔가 목적이 있어야 좋다. 동묘 헌팅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얻은 좋은 소재가 하나 있다. ‘윙컷’(wing cut)이라는 것. 앵무새 날개를 잘라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날개를 자른다기보다 깃털을 잘라주는 것이다. 청계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고사가 얽힌 영도다리(永渡橋) 옆으로 조류 시장이 있고, 여기 앵무새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회색앵무(african grey parrot), 에메랄드 빛으로 예쁘기는 사랑앵무, 화려하기는 오색앵무, 스킨십 좋아하기는 코뉴어 앵무···. 슬프게도 윙컷을 당한 앵무는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까? 나의 이야기 속에서 베카는 자신이 날개 잘린 앵무새 같다고 생각한다. 베카는 어쩌면 코뉴어 앵무를 닮은 것도 같다. 사람 옷에 파고드는 친화력 만점에, 애교 있고, 아, 장난기가 가득하다. 누워서 발을 흔들기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고, 공도 굴릴 줄 알고, 호기심도 많다. 이 베카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동묘 사람, 내력 있는 사람, 앵무에 홀린 사람을 만나도록 할까, 노점에서 휴대폰 파는 사람? 베카는 동묘 골목의 빈티지 가게에서 미국 서부의 ‘러그하우스’에서 들어온 옷가지들을 판다. 베일(bale)이라는 옷 묶음이 있고, 이걸 풀어놓는 걸 ‘깐다’고 한다. 탈북해서 이곳에 온 춘희가 어떻게 베카가 되고, 또 어떻게 ‘루스(ROOS)’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의 하나, 그러고도 베카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아, 루스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 요즘엔 ‘실물’을 잘못 옮기면 문제되기 일쑤다. 이 베카는 어디 살아야 하나 할 때 보이는 건물, 세창빌딩, 그 안에 세 평짜리 쪽방이 있고, 좁은 데 비해 남쪽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고, 그 3층 쪽방에서 계단을 내려와 코너를 돌 때 ‘키노 커피’ 맛있는 집이 있고, 그 건너편에 열쇠 집이 있다. 인생의 과제를 풀어야 하는 베카는 열쇠집 아저씨를 좋아한다. 뭐든 그의 손에 들어가면 없는 열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베카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이 한국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 베카, 춘희는 어떻게 미국으로 가버릴 수 있나? 가뜩이나 이주민을 쫓아내는 이 판국에? 윙컷 당한 것 같은 인생의 해결점을 선사해야 한다. 빛과,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는 자유와, 영원히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글쎄, 베카는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 떠나지 않고도 그는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있을까? 나는 베카의 눈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분석해 보고 싶다, 아니, 살갗의 실감으로 느껴 보고 싶다. 지금 이 세계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 같다. 이것은 너무 ‘하이퍼’한 감각인 것일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2-09

침묵이라는 말

침묵은 들리지 않는 말이다. ‘침묵은 금’이라는 그럴싸한 경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언제나 의심받아 왔다. 대화 중 침묵은 단순한 소리 없음이 아니다. 침묵이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 이해되는 순간, 침묵 속에는 질적으로 다른 두가 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독백적 침묵’과 ‘대화적 침묵’이 그것이다. 독백적 침묵은 상대의 말에 대한 회피, 무관심, 무책임의 태도이고, 대화적 침묵은 상대의 말에 대한 경청, 숙고, 책임의 태도이다. 독백적 침묵은 대화를 단절하는 침묵이다. 이 침묵은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미 결론을 내린 주체가 더 이상 응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 나타난다. 겉으로 보면 말이 없지만, 실제로는 내면에서 독백이 멈추지 않는다. 상대의 말은 이미 무효화 되었고, 응답은 예정에 없다. 이 침묵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말 없는 선언이다. 더 들을 것도, 더 바뀔 것도 없다는 확신 위에서 유지되는 무거운 고요함이다. 이러한 침묵은 숙고의 시간이 아니라, 배제의 기술이다. 질문 앞에서 답을 말하지 않으며, 호소 앞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방패로만 사용한다, 단순히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응답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독백적 침묵은 대화의 거부이며, 언어의 윤리를 포기한 상태이다. 대화적 침묵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이 침묵은 말의 실패가 아니라, 말의 책임을 자각한 결과이다. 아직 충분히 듣지 않았음을, 아직 응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나의 말이 상대방에 의하여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선언이다. 대화적 침묵은 열려 있는 상태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더 듣기 위해, 더 숙고하기 위해, 그리고 내 말이 불러올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선택된 침묵이다. 소위 ‘대화주의’의 창시자 바흐친(Mikhail Bakthin·러시아 철학자·1895-1975)은 “하나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종결시키지 않으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최소한 두 개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말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는 인식 속에서 생겨난 절제의 기술임을 통찰한 것이다. 거울 없이는 그 잘난 콧잔등 하나 몰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말은 언제나 타자의 응답을 전제로 할 때 의미를 갖게 된다. 타자의 응답을 전제하지 않은 말이 의미를 잃듯 침묵이란 말 또한 마찬가지다. 대화란 어떤 주제에 대한 결론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이다. 나의 침묵이 상대의 응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응답을 상상하지 않는 침묵은 대화를 파괴한다. 사적 대화 중에서, 공적 담론의 장에서 끝까지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말하지 않을까. 금과 돌이 쉽게 구분되듯 침묵의 정체 또한 쉽사리 들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침묵을 금으로 만들지 돌로 만들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공봉학 변호사

2026-02-09

공짜에 길들여지면

입춘 다음날, 볼 일로 시내버스를 탔다. 지난해 6월,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어르신 통합 무임교통카드’를 받았다. 7월부터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사용처가 ‘시내 마을버스(포항), 시내버스(경주, 영덕)’이다. 세 지역의 시내버스요금이 공짜다. 해당 지자체가 세금으로 대신 낸다는 증표다. 카드 받고 한 달쯤 된 날 퇴근 무렵, 갑자기 비가 왔다. 사무실에 보관하던 우산을 쓰자고 맘먹을 때, 무임교통카드가 떠올랐다. ‘맞아. 오늘 그 카드를 써보자’라고 생각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난생처음 무임 교통카드를 쓴다. 앞사람처럼 카드를 단말기에 댔으나 반응이 없다. 기사가 ‘더 아래에 카드를 대라’하여 따랐다. 승차 성공이다. 다음 순간, 처음 듣는 “사랑합니다!”라는 전자 음성 멘트가 울렸다. 그때, 미안함, 고마움, 이질감 같은 느낌들이 뒤섞이며 미묘하고도 좀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유임 승차처럼 “감사합니다!”가 낫다는 생각도 났다. 어떤 자식이 “나는 부모께 이렇게 효도를 합니다.”하고 떠드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내도 처음 무임카드승차 때 나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포항시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금 정부의 ‘민생지원금’보다는 훨씬 낫다. 혜택이 필요한 이에게 가는 비율이 더 높을 테니까. 문재인 정부 첫해. 추석 때 고향길 고속도로 출구에서 요금을 내려는데, ‘정부 지원으로 안 받는다’라는 근무자의 말에 황당했었다. 돈 몇천 원에 자존심을 빼앗긴 것 같았으니까. 더욱이, 모든 차량의 통행료 공짜는 자유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전체주의적 발상 같은 생각도 들었었다. 한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다. 네이버 AI는 “자유민주주의는 권력분립·법치·시민권·표현의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 시장경제는 사유재산·경제활동의 자유·사적 이익 추구를 바탕으로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시장경제는 완전 자유로운 시장은 없고, 대부분 사회적 시장경제를 유지한다.”라고 풀었다. 그렇다면, 전 국민 공짜 복지지원은 우리나라 국가 정체성에 반(反)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2022년 월간조선과의 대담에서, “지난 5년 동안 이루어진 전체주의화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전체주의로 상당히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지금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심각하죠.”라고 말했다. 근거로 이천 시골에 37년을 살면서 ‘집단화 덜 된 동네인데도 동원이 많다’라며, 이틀에 한 번 정도 공짜 공동 식사나 행사를 하는 것 같다 했다. ‘관에서 자유로운 민간 부분이 적다’라고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화, 전체주의화를 개탄했다.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했다. 정치가 던져 주는 공짜에 국민이 맛 들이고 길들여지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자유가 없는 나라는 경쟁력이 떨어져 국민은 가난의 나락으로 구를 위험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체주의적 공짜 보편복지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귀환해야만 한다. 일자리가 최대 복지이자 자유민주주의 사회안전장치이므로···. /강길수 수필가

2026-02-09

상속세 탓에 한국 떠난다?

국가가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에게 부과해 거둬들이는 세금을 ‘상속세’라 한다. 이 세금은 나라마다 세율이 다르고, 일부 국가의 경우엔 상속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에게 동산과 부동산을 물려받은 이들이 “상속세가 너무 많다. 세율이 너무 높다”며 불평해온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많은 재산을 상속 받은 사람에게 많은 상속세를 부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한계가 없는 것이라 상속세를 ‘억울한 세금’이라 느끼는 이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의 백만장자 2400명이 상속세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이는 즉각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상속’과 ‘상속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서민들의 박탈감은 컸다. 사회적 보호와 배려 아래 재산을 축적해놓고 사회적 약속이라 할 세금은 회피하려 하는 일부 부자의 행태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다. 이 발표가 나온 후 국세청이 “백만장자들의 탈한국이 가속화되는 원인을 상속세 제도와 결부시켜 국민께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지속되는 형국. 9일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까지 나서 한국 고액 자산가 해외 유출 관련 보도자료의 작성과 검증, 배포 과정에 대한 감사 착수를 알렸고, 이번 논란을 촉발한 대한상공회의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의 축적은 개인적 역량에 더해 안정적인 사회제도와 타자의 도움 속에서 이뤄진다는 게 보편적 상식이다. 이 상식을 인정한다면 책임을 방기하고 세금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09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 영일민속박물관

지난 수요일 오랜만에 영일민속박물관을 찾았다. 늘 지나치곤 했지만 요즘 박물관의 높아진 인기를 생각하며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아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해서 겸사겸사였다. 문으로 향하니 입구에서는 이제 막 관람을 마친 어린이집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같은 관람객들을 먼저 맞이하는 건 수령이 600여 년이나 된 회화나무다. 보통 시골 동네 입구에서 자주 보던 나무지만 수질 정화에 도움을 받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그러했듯 앞으로도 든든하게 이곳을 지켜 주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민속박물관은 우리의 예전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면에서 보이는 제남헌은 흥해군의 동헌으로 쓰였던 곳이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 문 앞에 놓인 절구 세 개를 놓아 먼저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예전에 어렸을 때 본 것이기도 해서 반갑기도 하다. 몇 년 전에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절구에서 사진 찍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맷돌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믹서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제남헌이 있는 곳은 일상에서 실제로 쓰인 농기구나 어구류를 전시해 놓았다. 전시된 물건들을 보니 지금도 쓰이고 있는 물건들이 있어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낫과 톱, 대패, 송곳, 지게 등이 그러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지금도 쓰이는 물건을 보면서 예전의 농촌이나 어촌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유산이 양반들이 쓰던 화려한 것들이라고 한다면 민속박물관에 모인 물건들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거라 더 친근감이 생긴다. 예전 TV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자신이 사용하던 농기구를 모아서 집 한 켠에 전시를 해두고 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구경하게 했는데 멋져 보였다. 언제라도 버릴 물건을 찾으려 애쓰지만, 추억이 있는 물건을 어딘가에 저장해둔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어 보였다. 두 번째 전시실은 생활용구들과 관혼상제와 관련된 것들을 전시해 놓았다. 예전의 부엌과 서당, 예전의 돈, 자수품과 안경집, 다양한 떡살 무늬도 보였고 담배쌈지도 오락기구 중에는 마작도 볼 수 있다. 서당의 모습과 여성들이 어떻게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전시는 흥해군수가 재판과 형벌을 집행한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곤장과 주리 틀리는 현장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세 개의 전시실을 거치고 나오면 야외 전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제남헌 왼쪽에는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있고 초가와 말을 이용해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도 전시되어 있다. 그중 초가를 둘러보는 게 제일 기대가 되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닭이 없어 아쉬웠다. 초가에서는 탈곡기기와 가지런하게 정돈된 장독대가 있다. 영일민속박물관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예전 생활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도록 보존과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는 학교 숙제를 위해 찾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좋은 장소다. 흥해환승센터와 접해 있어 찾기도 어렵지 않다. 오며 가며 가볍게 버스를 기다리다가 잠깐 들르기도 좋다. 환승센터 옆에 주차할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고 관람료도 무료다. 넓지 않아서 1시간 정도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2-09

철강을 다시 세우는 것이 포항을 다시 세우는 길입니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었다. 영일만의 바닷바람과 제철소의 열기가 만나 ‘영일만 기적’을 만들었고, 그 기적은 곧 포항 시민의 일자리와 삶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지금 포항의 심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중국의 저가 공세, 탄소중립 규제 강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철강 산업은 전례 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철강의 위기는 특정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포항의 위기이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제조업 기반의 위기다. 포항이 재도약하려면 답은 분명하다. 철강 산업 재건이 제2의 영일만 기적의 시작이다. 철강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협력업체의 생존이고, 하도급 노동자의 생계이며, 골목상권의 매출이고, 도시 전체의 체온이다. 제철소 가동이 주저앉으면 지역 중소기업과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철강을 살리는 일은 ‘특정 산업 지원’이 아니라 ‘도시 생존 전략’이다. 첫째, 철강 산업 고도화는 더 늦출 수 없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고부가와 친환경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수강 분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비중은 12% 수준이지만, 일본은 17%, 독일은 38%에 달한다. 경쟁력 격차를 줄이려면 고부가 특수강 핵심 기술 연구개발(R&D)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전기강판 등 경쟁력 유지 품목에 대한 선제 투자도 필요하다. 수출 공급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금리 우대, 보증 한도 확대 등 금융지원 역시 확대되어야 한다. 철강을 버티는 산업에서 다시 뛰는 산업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철강 재건의 가장 시급한 해법은 산업용 전기요금 개혁이다. 철강은 전기 집약형 산업이다. 전기요금이 곧 원가이며, 원가가 곧 경쟁력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요 경쟁국보다 높은 구조에서 수출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기요금 문제를 외면한 채 철강 재건을 말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가 된다. 분산 에너지 특화 지역 규모 발전소 건설, 해상 풍력 발전단지 조기 완공, ‘K-스틸법’에 근거 한 우대요금제와 고정요금제 도입을 병행해야 한다. 전기요금 결정권의 지방정부 이양, 지역 차등 요금의 즉시 실행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값싼 에너지가 있는 곳에 기업이 모인다. 에너지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지방의 내일도 없다. 셋째, 포항은 철강 생산도시를 넘어 철강 수요 모델 창출 도시로 확장해야 한다. 만들기만 하는 도시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공공사업에 강재 사용 기준을 명시하고, 기술개발 제품이 실제 납품 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테스트베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공공주택 강구조 모듈러 시범단지를 만들고, 모듈러 건축 기업을 유치·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도 있다. 공원과 버스 쉼터 등 공공시설에도 저탄소·고내식 강재 적용 모델을 개발·보급해야 한다. 철강 소재 기반의 2차 경공업 유치로 산업 사슬을 포항 안에서 완성하는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과 행정의 협업을 총괄하는 시장 직속 ‘철강 산업 지원 전담 부서’ 설치와 같은 실행 체계가 꼭 필요하다. 포항은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를 관리하는 도시에 머물 것인지, 다음 성장을 준비하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철강을 다시 세우는 것이 포항을 다시 세우는 길이다. 포항이 다시 뛰어야 대한민국이 다시 뛴다. 제2의 영일만 기적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에서 시작된다. /박용선 경북도의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2-09

불안한 핵무기 협정

1947년 핵물리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지구종말시계는 인류가 핵의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계다.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미핵과학교육재단 회보 표지에 매번 게재되는 이 시계는 맨 처음 밤 12시 7분 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7번 수정됐다고 한다. 핵 위협이 커지면 앞당겨지고 핵 위협이 줄어들면 시간은 다시 뒤로 늦춰진다. 핵 전쟁의 가능성은 수도 없이 제기됐지만 실제 상호간에 핵을 사용한 전쟁은 역사상 한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면서도 인류 모두가 가장 죄악시하면서 공포스러워하는 전쟁이 바로 핵 전쟁이다. 한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구촌 인구는 모두 사망하고 살아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구 종말을 의미한다. 전 세계 핵탄두의 90%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핵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 감축조약(뉴스타트·New START)이 지난 2월 5일 종료됐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미·러 간 핵 군축 체제가 일시에 사라지면서 세계는 핵무기 보유국 간 군비경쟁 과열이 일어날까 우려하는 상황이다. 뉴스타 조약에 의하면 미국과 러시아는 실전배치 핵탄두는 1550기 이하로, 운반체는 700기 이하로 제한하고 핵시설을 주기적으로 상호 시찰토록 약속했다. 두 나라 간의 조약은 반세기 동안 인류를 핵무기로부터 지켜주는 사실상 안전핀 역할을 했다. 추가 연장은 상호 간 입장이 달라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지구촌 인류가 핵무기 앞에 통제 불능의 상태로 노출된 상황이 사실상 도래한 꼴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은 과연 불가능 한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2-08

그림으로 보는 조선 풍속도

지난 연말 ‘청도 인문학’ 종강하는 자리에서 어느 수강생이 툴툴거린다. 방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12월 하순에 종강해서 2월 하순에 개강하는 것이니, 두 달 남짓한 기간이 방학이다. 이것은 여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한겨울과 한여름의 휴식은 필요하다지만, 그 기간이 유독 길게 여겨지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필시 열렬한 수강생 아닐까?! 잠시 생각을 고른 나는 방학 중에 두 번 정도 인문학 특강을 함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반색하며 ‘청도 인문학’ 수강생이 아닌 일반 군민들에게도 청강의 기회를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듣고 보니 아주 생산적인 발상이다. 그리하여 청도 도서관장과 과장, 그리고 실무자와 협의한 끝에 1월 20일과 2월 3일 오전에 도서관 강당에서 특강이 이뤄졌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동서양 그림에 얽힌 이야기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선지 그림과 관련한 서책을 조금 읽은 편에 속한다. 한겨울에 열리는 인문학 강연 주제로 지나치게 무겁지 않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림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혜원 신윤복과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의 글과 그림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로 한다. 1970년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 전신첩’에 실린 30점 풍속화 가운데 8점을 준비한다. 언젠가 큰아들 덕분에 읽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긴 제목의 서책에서 나는 신윤복의 그림에 담긴 조선 후기의 풍속과 만났다. 아주 평이하고 곡진한 글월로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독자들에게 날로 어지러워지는 조선 하대(下代)의 풍정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월하정인’이 눈길을 잡아맨다. 한여름 달밤에 두 남녀가 양반댁 담장 앞에서 은밀하게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그림이다. 문제는 야삼경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의 형상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닌 기묘한 모습의 달이 하계에서 희롱하는 남녀의 통정(通情)을 굽어보는 것이다. 저 달의 본령은 뭔가,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처음 ‘월하정인’을 보았던 당시 나는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원근법(遠近法)도 없고, 정체 모를 달은 떠 있고, 한문이 보란 듯 찍혀 있는 생소한 그림. 1793년 8월 21일 한양에서 일어난 부분월식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란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낯이 화끈거린 기억이 새롭다. 원근법이 금과옥조도 아니고, 그림과 화제(畫題)가 어울리는 전통 역시 나의 무지를 확인해준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고는 하나, 혜원이 활동했던 시기의 조선은 그야말로 무너져가는 나라였다. 일반 백성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지만, 풍족한 양반들의 법도는 나날이 어지러워진 세월이었다. 자유분방한 혜원은 그런 양반들과 기생들의 한바탕 풍류를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18세기 후반의 조선 생활상을 곡진하게 그려낸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담대한 구도, 적나라한 시선을 감추지 아니하는 정직한 화가의 시선을 유지한 혜원 신윤복. 그의 화첩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을 준다. 제한된 시공간과 인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넌지시 귀띔하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8

골목길

1970년 초 나에게 동네 골목길은 지금 축구장의 절반 크기였다. 또래 아이들과의 모든 놀이가 거기에서 이루어진 기억으로 가득하다. 반골 축구, 자치기, 마리, 구슬치기, 연탄 던지기 심지어 야구까지 안되는게 없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보다도 동네 골목길에서 어울린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얼마 전 옛 생각에 동네 골목길을 찾았다. 어른 두 명이 지나가면 꽉 차 보이는 이 좁은 길을···. 그때는 그렇게 작은 몸이었던가. 이제는 보기 힘든 흙투성이 골목길에서 친구, 동생 그리고 형들과 함께 밤늦도록 누비던 그 길에서 나는 우리 동네 어른들과 집마다 키우던 강아지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그때의 부모님 모습이 그리워진다. 차 몇 대 다니지 않는 70년대의 2차선 도로는 한참을 걸어야 건너는 대로였다. 그 길 건너 골목길 한쪽 편 우리 집 마당 작은 꽃밭의 한가운데 풍성히 그리고 담벼락에 잔뜩 기울어 뾰족이 담 밖을 내다보는 검붉은 장미와 조금조금 경계 지어진 꽃밭 돌 틈 사이로 소담소담 올라온 노랑 빨강 채송화가 한창일 때의 향기로운 기억의 냄새가 나를 감싸며 옅은 미소를 배어나오게 한다. 길지 않는 좁다란 골목길에서의 추억들이 지금보다도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으로 남아있다니 행복했던가 보다. 옛 모습과 비슷이 남아있는 큰길 건너 첫 번째 모퉁이 돌아 세 번째 집 그리고 딱딱한 회백색 시멘트 깔려진 그때와 다른 골목길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공간에 오롯이 남아있는 골목길은 여전하다. 골목길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었다. 그곳은 삶이 이루어지는 가장 낮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자,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생활의 무대였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놀이터이자 교실이었고, 어른들에게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계획되거나 설계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관계와 이야기를 품을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문화의 핵심은 ‘우연한 만남’에 있다. 약속하지 않아도 마주치고, 의도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쌓인 관계가 동네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규칙을 만들고, 다툼을 해결하며 사회를 배웠다. 경쟁보다 어울림이 먼저였고, 효율보다 관계가 우선이었다. 골목은 삶의 속도를 여유롭게 늦추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골목은 점점 사라지거나 기능을 잃었다. 흙길은 시멘트로 덮였고, 놀이는 위험과 소음으로 규정되었다. 골목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실내와 조그마한 화면 속으로 옮겨갔고, 이웃과의 관계는 점점 느슨해졌다.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편리함이었지만, 그만큼의 공백도 함께였다. 이제 다시 골목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다. 골목은 지역 문화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이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의 골목은 변했을지라도, 기억 속 골목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기억은 한 개인의 추억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싶은지를 이야기한다. 골목길 문화는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감각이자 특별한 공간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2-08

날뛰는 시처럼, 말 달리는

책만 한 함선은 없다 우리를 먼 땅으로 데려다주는 시 한 편처럼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 여행은 가장 가난한 자도 통행세 없이 갈 수 있도다 얼마나 검소한 마차인가 인간 영혼을 실어 나르는 이 전차여. There is no Frigate like a Book To take us Lands away, Nor any Coursers like a Page Of prancing Poetry ╾ This Travel may the poorest take Without offence of Toll ╾ How frugal is the Chariot That bears the Human soul. ―Emily Dickinson, ‘There Is No Frigat Like a Book’ 전문 (ALLIE ESIRI, A POEM FOR EVERY DAY OF THE YEAR) 1455년 2월 23일은 구텐베르크 성경의 첫 인쇄일로 여겨진다. 대량 생산된 최초의 책으로 약 180부가 인쇄되었다. 따라서 이날은 책의 탄생일이다. 인쇄기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세상을 바꾼 날이기도 하다. 스스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 그것은 중세 성직자의 왜곡으로부터 본질을 회복하는 혁명의 서막이었다. 미국의 위대한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책과 문학을 기리며 이 짧은 시를 썼다. 비록 그녀 생전에는 단 일곱 편의 시밖에 발표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책은 우리를, 우리의 영혼을 먼 세계로 실어 나르는 함선이라고 했다. 이 기세를 몰아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는 한 소년을 향해 좀 더 먼 곳으로 말을 달려보자. 곧 초현실주의 스페인의 국민 시인으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를 만날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고 종종 꿈결 같은 이미지를 탐구한다. 스페인 내전 초기에 정치적 견해 차이로 암살을 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반지로 만들어 그가 내 침묵을 새끼손가락에 끼게 하리라.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포로가 된 목소리는 멀리서 귀뚜라미 옷을 입었다. “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king of the cricktes had it.)/ I do not want itn for speaking with; I Will make a ring of it/ so that he may wear my silence/ on his little finger/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captive voice, far away, put on a cricket’s clothes. (‘The Little Mute Boy, Federico Garcia Lorca, translated by w.s. Merwin’)”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혹은 우리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비극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로르카에게 있어서는 침묵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마저 중요했을 것이다. 먼 데 시인 아니어도 가까운 동네 프리미엄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시인 김수영이 순경을 보자마자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라며 절을 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문제는 시인이 술이 깬 다음 날 불안했다고 하는 고백에 있다.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불신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때 느끼는 공포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혁명은 가르시아 로르카와 김수영을 경유해 이곳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어떤 권력의 장이든 다르지 않다. 최근 항일운동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박열’에서 하네코 후미코의 마지막 변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이 대사는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우리가 나눈 모든 것들이 우리를 증명한다”라고 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암투하는 비본질이 본질을 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희정 시인

2026-02-08

환각 현상의 메커니즘 - 믿되 확인하라

인공지능(AI)의 환각 현상 즉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과 관련된 실험 결과를 발표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MIT 그리고 보스턴 컬설팅 그룹(BCG)이 함께 진행한 연구 내용이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 소속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신사업 제안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실험 결과였다. 실험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그룹과 AI를 사용하는 그룹, 그리고 AI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교육을 받은 그룹 등 세 그룹으로 나뉘어 수행되었다. 결과를 살펴보면, 창의적 아이디어 과제에서는 AI를활용한 그룹들의 성과가 40% 높게 나타나 AI 활용의 효용성을 확인했지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략을 도출하는 과제에서는 AI를 사용한 컨설턴트그룹의 정답률이 오히려 19%포인트나 떨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 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AI가 언급한 ‘그럴듯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AI는 잘못된 재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너무나 유려하고 논리적인 보고서를 썼고, 엘리트 컨설턴트들조차 그 완벽해 보이는 문장에 속아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AI의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다. 마치 사람이 환각을 보듯, AI가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성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AI가 거짓말을 할 때 전혀 망설임이 없고, 오히려 전문가조차 속을 만큼 자신감 있게 답한다는 점이다. △환각 현상(Hallucination)의 유형 환각 현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사실 왜곡형으로서 존재하는 정보를 틀리게 전달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례 :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했고, 훈민정음을 1443년 반포했다. 여기서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했다”는 맞지만, “훈민정음을 1443년 반포했다(실제 1446년)”고 하면 틀린 것이다. 둘째는 정보 날조 형이다. 즉, 없는 정보를 만드는 경우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통계를 진짜처럼 꾸며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맥락 오류형이다. 정보는 맞지만, 맥락이 틀린 경우다. 사례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맞지만, 수상은 광전효과로 받은 것이었다.” △왜 AI는 자신감 있게 거짓말하는가? 환각 현상의 원인은 AI의 작동 방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Chat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사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다음에 올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기계라는 말을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확률 기반 토큰 예측의 함정으로 인하여 AI에게 “세종대왕은 무엇을 만들었나?”라고 물으면, 다른 여러 가지 발명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 데이터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훈민정음’을 선택한다. 문제는 AI가 이것이 ‘진실’이라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통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결된 단어이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를 ‘패턴 매칭’이라 한다. AI는 특정 질문에 대하여 “~일지 모른다”라고 답하기보다, 부족한 정보를 비슷하고, 그럴듯한 정보를 채워 넣고, “아마도” 같은 표현보다는 학습된 단정적인 표현에 근거하여 거짓말을 아주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이다. 실제 피해 사례들을 살펴보자. “판사님, AI가 진짜라고 했습니다.” 환각 현상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알아보자. 30년 경력의 베테랑 법조인을 무너뜨린 사건을 그 예이다. 2023년 6월 미국 뉴욕 연방지방법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스티븐 슈워츠라는 변호사는 아비앙카 항공을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며 ChatGPT를 활용했다. 그는 AI에게 사건과 비슷한 “항공 사건 판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AI는 ‘바르기스 vs. 중국 남방항공’, ‘샤브리안 vs. 이집트 항공’ 등 그럴듯한 사건 판례 6건을 제시했다. 문제는 판례들이 모두 가짜였다는 점이다. 슈워츠 변호사도 의심을 안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AI에게 질문했다. 당시 대화 내용 중 AI의 확신에 찬 거짓말은 충격적이다. 변호사: “이 판례들(바르기스 사건)이 진짜 존재하는 거야?” ChatGPT: “네, 그렇습니다. 웨스트로(법률 DB) 및 렉시스넥시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변호사: “다른 판례들도 가짜가 아니지?” ChatGPT: “물론입니다. 제가 제공한 판례들은 실제 존재하며, 주요 법률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AI의 너무나 확신에 찬 대답(“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에 변호사는 의심을 거두고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상대측 변호사와 판사가 아무리 찾아도 해당 판례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이 AI의 창작 소설임이 밝혀졌다. 슈워츠 변호사는 AI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벌금(5000달러)을 물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렇기에, 우린 환각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줄이는 프롬프트 활용의 구체적 예시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당분간 환각을 완벽하게 막을 순 없지만, 질문을 정교하게 다듬으면 거짓말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지난주 배운 프롬프트 기법들을 활용해 환각 현상을 없애는 질문을 만들어보자. ▲첫 번째 질문 전략 : 불확실한 표현을 못 하도록 하라. AI는 스스로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억지로 답을 만들어내려는 성향을 억제해야 한다. [나쁜 질문] “조선시대 15세기 화폐 개혁의 성공 요인을 알려줘.” [AI의 환각 답변] “1450년 세종은 ‘조선통보’ 사용을 의무화하며 성공적인~” (사실 여부가 섞여 있어 구분이 어려움) [좋은 질문] “조선시대 15세기 화폐 개혁에 대하여 설명해 줘. 단, 역사적 사료로 확실히 검증된 내용만 포함하고, 불확실하거나 이견이 있는 부분은 반드시 ‘학계의 이견이 있음’ 또는 ‘확인이 필요함’이라고 명시해 줘.” [개선된 답변] “조선 초 화폐 개혁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실물 경제와의 괴리로 인해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이견 있음). 태종 때 저화(楮貨), 세종 때 조선통보가 발행되었으나~” (신중하고 객관적인 서술) ▲두 번째 전략 : 출처(Source)를 확실하게 언급하도록 요구하라. 출처를 요구하면 AI는 답변 생성 과정에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한 번 더 검증하게 된다. [나쁜 질문] “2024년 한국 이커머스(e-commerce) 시장 시장 점유율 순위 알려줘.” [AI의 환각 답변] “1위 A사 40%, 2위 B사 35%~” (학습된 데이터나 임의의 추정치를 섞어서 답함) [좋은 질문] “2024년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을 알려주되, 공신력 있는 기관(통계청, 공정위, 주요 연구(Research)센터)의 발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해 줘. 각 수치 옆에 [출처: 기관명, 연도]를 표기하고, 정확한 최신 데이터가 없다면 ‘최신 데이터 없음’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줘.” [개선된 답변] “정확한 2024년 확정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2023년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A사와 B사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전략 : 단계별 검증(Chain of Verification)을 유도하라. 한 번에 결론을 내라고 하면 AI는 성급해진다. 사고의 과정을 나누면 거짓말할 확률이 줄어든다. [나쁜 질문] “이 계약서 독소조항 찾아줘.” [AI의 환각 답변] “제5조 2항은 불공정합니다.” (근거 없이 무작정 지적하거나, 멀쩡한 조항을 트집 잡음) [좋은 질문] “너는 전문 법률 검토 AI야. 이 계약서를 제시하는 단계에 따라 분석해 줘. 1 단계: 계약서의 모든 조항을 요약한다. 2 단계: 현행 상법 및 표준계약서와 비교하여, 계약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다. 3 단계: 2단계에서 찾은 내용이 왜 위험한지 법적 근거와 함께 설명한다. 근거가 불확실하면 제외한다.“ [개선된 답변] “단계별로 분석하겠습니다. 1단계 요약~ , 2단계 불리한 조항 발견: 제10조 ‘계약 해지 시 즉시 전액 배상’ 문구는~ , 3단계 법적 근거: 이는 약관 규제법상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 부과’에 해당할 소지가 있습니다~“ ▲응답 검증 및 확인 방법, 이중 확인을 생활화 하자. AI의 답은 ‘초안(Draft)’일 뿐, 결코 ‘최종안(Final)’이 아니다. 다음 3단계 검증을 습관화해야 한다. ·원문 대조(Source Check) : 숫자가 나오면 무조건 의심하라. 통계청, 국가법령정보센터, 다트(DART) 등 원천 데이터가 있는 사이트에 접속해 인공지능(AI)이 말한 숫자가 맞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교차 검증(Cross Check) : 하나의 AI만 믿지 말라. 예를 들면, ChatGPT 에게 물어본 내용을 Gemini나 Claude 등에게 똑같이 물어보라. 세 AI의 답변이 일치한다면 신뢰할 수 있지만, 서로 딴소리를 한다면 셋 다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 확인(Expert Check): 스티븐 슈워츠 변호사의 사례를 잊지 말자. 법률, 의료, 세무, 안전 설계 등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의 답변을 참고만 하고, 반드시 인간 전문가의 최종 검토를 거쳐야 한다. ▲믿되 반드시 확인하라. BCG의 유능한 컨설턴트도, 30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 슈워츠도 AI의 ‘자신감 있는 거짓말’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는 AI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언어의 확률’을 계산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AI는 진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말을 잘하는 기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용운 계명대 교수·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2026-02-08

‘윤 어게인’도 모자라 ‘도로 민정당’인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좌우에 세워놓고 민주자유당(민자당) 창당을 발표했다. 5공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두 야당의 ‘3당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민정당은 궁지에 몰렸다. 1985년 2·12 총선에서 참패했다. 야당까지 정보기관이 만들어준 1, 2, 3중대 체제가 무너진 건 물론이다. 제1당 프리미엄 덕분에 겨우 과반을 유지했다. 서울에서 민정당이 27.3%를 얻은 데 반해 신민당은 43.9%를 얻었다. 거센 민주화 요구에 몰려 1987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양 김 씨가 표를 쪼개면 민정당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해 대선에서 조직과 돈을 모두 동원한 노태우 후보가 36.64%로 당선했다. 그러나 국회는 달랐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민정당이 33.96%를 얻어 사상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만들어졌다. ‘5공비리조사특위’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등이 설치됐다.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불려 나온 뒤 백담사로 쫓겨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됐다. 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이 확정됐다. 김 대통령은 하나회를 숙청해 쿠데타 가능성을 봉쇄했다. 까마득한 과거사가 된 그 시절을 돌아본 것은 최근 국민의힘 정체성 때문이다. 신군부 주역이었던 전·노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자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친위쿠데타에 실패했다. 법 규정을 따질 것도 없다.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은 정치학의 기초만 배우면 안다. 히틀러나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경험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고 한다. ‘패군지장 불어병’(敗軍之將 不語兵). 패배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말라고 한다.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느니, 국회의 횡포 때문이라느니, 우매한 국민을 깨우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격하 운동을 벌였다. “정당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 불신을 초래한 체제”라며, ‘유신잔당’이라고 비판했다.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으로 정의의 사도 행세를 했다. 5공을 청산한 이후 보수 정당은 참회와 변신의 노력을 해왔다. 민주화 세력을 수혈하고,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었다. 천막당사의 고난도 견뎠다. 그런데 다시 전두환을 복권하자는 소리가 나오니 어리둥절하다. 경제민주화를 빼고, 반공을 넣는다는 말도 나온다.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중심에 모시자는 ‘윤 어게인’이 주류가 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물어 제명하고, 그 징계를 반대하면 같이 자리를 걸고 당원 투표를 해보자고 겁박했다. 윤 전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잘못됐다는 데는 장 대표도 동의했다. 해제 투표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갑자기 ‘윤 어게인’으로 치닫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정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소명을 잊으면 안 된다. 친위쿠데타를 했어도, 정권을 지키기 위해 탄핵하면 안 된다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YS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국민의힘 당사에서 YS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과거 군사정권 후예라고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더 이상 그곳에 걸어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 대표와 가까운 최고위원이 최근 영입한 한 유튜버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논의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반윤은 자리를 걸고 응징하면서, 극우 목소리에는 관대하다. 보수 정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은 5·18 묘지에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이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쳤다. 그런데 모든 걸 다시 되돌리자는 세력이 있다. 민정당의 34%로 돌아가자는 건가. 그보다 더 쪼그라들어도 당권만 쥐면 된다는 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2-08

[역사 에세이] 공신(功臣)인가 공신(空臣)인가, 임진왜란 원균을 둘러 싼 논쟁

임진왜란을 떠올릴 때 원균(元均)이라는 이름은 거의 반사적으로 ‘칠천량의 패장’ ‘무능한 장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기억된다. 반면 이순신은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너무도 익숙해, 그 이면을 의심하는 일 자체가 불경(不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조선 수군을 사실상 붕괴시킨 장수가 어째서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에 책봉되었을까.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원균의 모습이 전부일까. 통설에 원균의 1등 공신 책봉은 선조의 편향과 정치적 계산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다. 선조는 백성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이순신을 경계했고, 왕권을 보완할 균형추로 원균을 띄웠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논공행상 과정에서 원균을 1등으로 격상시키는 데 선조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설명이 끝날까. 당시엔 ‘공신도감’(功臣都監)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 심사에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전쟁 직후의 조정이 ‘허위(虛僞) 공’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역사학자 백승종의 연구는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선조실록’ ‘난중일기’, ‘징비록’, 각종 장계와 상소문을 치밀하게 대조하며, 원균이 단순한 무능한 장수가 아니라 왜란 초기 조선 수군을 지탱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1592년 왜군이 2000척의 함대를 이끌고 부산포에 상륙했을 때, 경상우수사 원균에게 주어진 전력은 고작 10여 척뿐이었다. 그는 진주와 호남을 잇는 해로(海路)를 사수하기 위해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이순신과의 연합함대가 구성되기까지 약 20일 동안, 원균은 거의 소모전에 가까운 전투를 이어갔다. 연합이 성사됐을 무렵 그의 가용 전력은 4척에 불과했다. 한산대첩은 이순신이 총지휘한 연합수군의 승리가 맞다. 하지만 원균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다. 경상우수사였던 원균은 전력 열세 속에서도 선봉에 나서 왜군을 자극하고 외해(外海)로 유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투 초반 교전을 담당해 본대가 진형(陣形)을 갖출 시간을 벌었고, 조정 기록에서도 그의 공은 공식적으로 언급된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칠천량(漆川梁) 해전이다. 이 전투는 원균을 ‘패장의 대명사’로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그러나 실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무리한 출전을 강요한 조정의 판단과 육전(陸戰) 논리를 해전(海戰)에 적용한 권율의 압박이 참사의 원인이었음이 드러난다. 피해 규모 역시 후대 기록에서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원균은 그저 조정의 명을 받고 출전했고, 전투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원균은 400년 동안 ‘절대악’의 자리에 고정되었을까. 정치적 당쟁의 소멸, 살아남은 자의 기록, 그리고 국가적 위기 속에서 요구된 ‘완벽한 충신 서사’가 겹쳐진 결과다. 이순신은 영웅으로 필요했고, 원균은 그 대척점으로 기능했다. 기억은 그렇게 단순화된다. 원균을 명장으로 예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 인물을 완전히 무능한 장수로, 다른 한 인물을 무결점의 성웅으로 만드는 방식이 과연 역사에 정직한가를 묻자는 것이다. 원균의 1등 공신 책봉은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기억이 어떻게 엇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는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통설(通說)을 잠시 의심해 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역사 읽기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2-07

AI에게도 헌법이 필요할까

인공지능에게도 헌법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감정도 의지도 없는 기계에게 헌법을 적용해야 하냐는 뜻이 아니다. AI를 통해 행사되는 권력과 판단에 대해 우리가 어떤 헌법적 기준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AI 기술이 일상과 사회 전반을 구성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요즘, 더욱 깊이 되새겨야 할 근본적 물음이 아닐까. 헌법의 본질은 국가와 같은 남용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 균형을 도모해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지키는 데 있었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의 힘이 가장 컸다면 오늘날에는 기업과 사인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헌법이 쓰였다. 그리고 이제는 AI와 로봇, 알고리즘의 판단이 또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AI는 미디어와 광고, 금융,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AI 시대엔 판사와 변호사, 의사가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이라고 하는 걸 보면 AI가 사법부의 대행이 되고 국민 보건소의 대행이 될 날도 머지않았나 보다. 하지만 AI의 판단이 제한과 검증 없이 그저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위협당할 위험도 커지게 된다. AI 기술의 발전이 그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약칭 ‘AI 기본법’)이 시행되었다. 세계 최초로 AI 전략, 산업 진흥, 규제를 하나의 법률로 통합한 기본법이라고 한다. AI 기본법의 주요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 AI 경쟁력 강화와 산업 진흥이다. 연구개발, 표준화, 데이터 인프라, 전문 인력 양성과 스타트업 지원 등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게 했다. 둘째, AI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고영향 인공지능(High-Impact AI)’과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나누어 정의하고, 이들 AI가 인간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투명성 확보 의무, 안전성 확보 의무, 영향 평가 의무 등을 부과했다. 이제 AI로 만든 결과물에는 워터마크 등 AI 생성이라는 표시를 해야 하고, 고영향 AI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위험 식별과 완화 조치, 사용자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AI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다. AI 기본법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AI 위원회를 명문화하고, AI 안전연구소 등 전문 기관을 설립해 정책과 안전기준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다. AI 진흥과 규제의 기본 골격이 될 AI 기본법이 제정된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그 규제 기준이 모호하고 개인정보 침해나 딥페이크 등 새로운 유형의 AI 범죄 피해에 대한 보호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계속해서 법을 수정하고 추가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이다. AI에게도 헌법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AI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헌법적 기준을 대입해 보아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보다 앞설 수 없음을 잊지 말자.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2-05

‘영포티’의 과거

어느 시대에나 세대론은 제출된다. 특정 연령대를 단일 집단으로 묶어 사고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특정하는 명명이 요청될 때가 주로 그렇다. 대개의 세대론은 해당 시대의 청년 계층을 지시하기 위해 마련되곤 한다. 물론 세대론이 형성되는 맥락과 양상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령 1990년대의 ‘신세대’나 ‘X세대’는 해당 세대에 속한 청년 자신들이 이전 세대와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가 자임한 개념이었다. 반면 2000년대에 주로 호명된 ‘88만원 세대’는 세대 바깥에서 어른들에 의해 규정적으로 공표된 것이었다. 세대 명칭이 사회변화나 역사 발전의 반영이 아니라 무력(無力)의 실태나 조건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에 유행한 ‘삼포세대’나 ‘N포 세대’는 또 달라서, 이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는 물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겠다는 자조적 선언에 가까웠다. ‘3포’에서 ‘5포’로, ‘7포’에서 ‘N포’에 이르는 과정 모두는 사회가 특정 세대의 현실을 재단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비참을 전시하기 위해 동원한 유희적 언어 표출에 가까웠다. ‘헬조선’과 ‘수저론’이란 말이 함께 운위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영포티’는 어떠한가? ‘영포티’ 역시 세대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영포티’는 그 자신들에 의해 자임된 개념도 아니며 어른들에 의해 규정된 관념도 아니다. 아랫세대가 자기 윗세대를 멸시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꼰대’로 대표되는 (추상화된) 부모 세대 일반을 지칭하고 있지도 않다. 즉 시공간의 분리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오히려 사회의 지근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선배’ 정도 되는 이들에 대한 원망에 기초해 있는 세대 개념인 것이다. ‘젠지’에게 ‘영포티’는 학교(대학)에선 비교적 젊은 선생(교수)에 속하며 직장에선 ‘상사’이기도 하다. 이들 간에는 지식이나 교양 수준, 가치관, 역사의식, 문화적 취향과 기술 향유의 정도에서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작은 격차에 입각하여 ‘영포티’는 바로 아랫세대가 보기에는 사회적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기도 하다. 실력에 비해 소득·수입의 갭은 너무 크고, 상대적으로 그러한 지위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의식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영포티’에 대한 경멸에는 어른 같지도 않은 이들의 어른 행세라는 인식이 선재해 있다. ‘영포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포티’는 ‘N포’를 자임했던 세대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던 사회의 모순과 적극 대결하기보다는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화에 대한 모색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던 그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N포’에서 ‘영끌’로의 이행으로부터 젠지 세대의 원망이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다. ‘영포티’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겼나? 집단적 저항이 아니라 개별적 체념에 몰두했던 우리가 누굴 탓하겠나? ‘영포티’라면 우선 이 점에 천착해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2-05

공자님 말씀은 아닌데

서원과 절의 공통점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친 현대인이 힐링할 곳을 찾는다면 절이나 사원 쪽으로 가면 거의 틀림없다. 내가 여행지를 정할 때 유독 그쪽으로 택하는 이유이다. 서원에 가면 육십이 훌쩍 넘은 듯한 중년 단체 방문객들이 열심히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본다. 주위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다. 그저 사진이나 찍으면서 희희낙락이다. 마루에 신발 벗고 올라가지 않고 걸터앉아 해설사 이야기 듣는 중년들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이다. 마루에 걸터앉는 것은 예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인이 도산 서원에 다녀왔다기에 물었다. 마당 앞에 큰 나무 두 그루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도동 서원에 갔다 온 분에게 물어도 서원 앞쪽 큰 은행나무 이야기만 한다. 4변(籩) 4두(豆)나 축(畜)과 생(牲)의 이야기는 머리만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 그냥 입을 다문다. 서원에서 조상들이 던지는 말이 한가지가 아닌데 안타깝다. 한 2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중문과 전공인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교의 도(道)는 윗사람에서 유리하고 아랫사람에게 불리하며, 윗사람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것 같으며, 아랫사람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 같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난리가 날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유학자분들의 저항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세상은 그때부터 변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당시 젊은 사십 대가 지금 육십 대이다. 그 속에 내가 속해있다. 요즘 서원 같은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배우곤 한다. 젊을 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 나이 먹은 탓일까. 문제는 공부하면 할수록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유교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우물안에 개구리란 말뜻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본 갓 쓴 선비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부모들이 자식에게 과한 기대치를 내걸며 부담시킬 것을 염려해서 교육은 주로 조부모가 맡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제사도 과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가정 형편에 맞게 올렸으며, 평소 먹던 반찬을 그대로 올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남자들이 직접 음식을 하고 제사상을 차렸으며 그 집안 후손이 아닌 며느리들은 원래 시가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 알고 있었고 변질된 듯하다. 언제부터 강한 남존여비의 사상이 우리 몸에 스며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첫 손님이 여자이면 재수 없다는 말을 듣고 컸다. 어릴 때 남자들은 상에서 밥을 먹었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었다. 요즘도 장례식장에 가 보면 딸만 있는 집은 사위가 상주이다. 여자는 상주도 될 수 없다는 전통이 이어져 온다. 안경 쓴 여자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화제가 됐다는 말을 듣고 픽 웃음이 나온다. /노병철 수필가

2026-02-05

더 벌어진 양극화 사회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최대 난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양극화 문제다. 중간계층이 줄고 상·하위 계층에 쏠리면서 소득, 고용, 교육 등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이런 양극화 문제는 궁극적으로 빈부격차나 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 집단이 미국 소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국가 정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빠르게 진행됐다. IMF로 인한 실업과 고용불안이 만연하면서 고용없는 성장 속에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갈수록 깊어졌던 것이다. 최근 KB금융 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가 2011년 전 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1%도 안되는 이들 부자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이 국내 전체 금융자산의 60%나 된다고 하니 우리 경제의 양극화도 심상치가 않다.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기울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양극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주범이다. 서울로 인구와 산업이 쏠리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지방의 수십 배로 폭등했다. 서울과 지방간 양극화는 이제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최근 데이터처 발표에 의하면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은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 가치가 더 커졌고, 그로 말미암아 집 없는 청년층과의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장담했다.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 문제의 해법이 나올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05

‘니파 바이러스’ 공포

2019년 시작돼 몇 년 동안 한국을 포함 전 세계를 공황과 공포에 빠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급박하게 만들어낸 코로나19 백신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사람이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괴이한 사회 분위기가 오래 지속됐다. 학자들은 이를 ‘현대의 흑사병’이라 불렀다. 그런데, 최근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니파 바이러스’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은 니파 바이러스는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호흡기와 신경계에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해 뇌염을 발생시키는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최고 75%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감염되면 바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현재까지 니파 바이러스가 확인된 국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등이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과일박쥐의 서식지라는 것. 의료계는 이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고, 먹이가 되는 과일의 오염 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니파 바이러스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감염된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고, 손 소독을 자주 하는 정도의 예방법만이 알려진 상태.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질병은 인간에게 패닉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의학계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중국 춘절에 니파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에 관광이 주요 산업인 동남아 국가들에선 방역을 강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공포가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04

울릉도 소등어리 초지

울릉도 소등어리 초지 소등어리 초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삶이라는, 다이제스트의 팔만대장경을 보는 듯 그러나 아무도 읽지 못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파란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는데, 심성이 고약하나 정갈할 것 같은 주인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광대하면서 좁쌀 같은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그 배포는 썩 마음에 든다 나는 아직 집 한 채도 없는 가난뱅이지만 무색하게도 마누라 집에 얹혀 살고 있으니 최후로 가난하지 않다 소등어리 초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모두가 가난하면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광활한 공허에 머물 수 있음에 기쁨의 치를 떤다 축약본 팔만대장경을 내려다보며 오줌을 누면 울릉도가 온통 따스해진다 생각하며 이것이 나의 울릉도에 대한 욱여넣음과 쟁여놓음이니, 그러나 부디 헛발질이기를. *피터 모린의 말에서 빌렸다. .....................................................................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것이다. 사랑은 유기적인 것에 대한 공감이며, 부패의 운명을 가진 유기체의 감동적이고도 방종한 포옹이다. 사랑은 아무리 근엄한 사랑이라 해도 육체적이지 않은 일은 없고, 아무리 관능적인 사랑이라 해도 근엄하지 않은 일은 없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리고 한 시집의 제목을 생각한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소등어리 초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2-04

책방,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사람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렌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발소리인지.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눈을 반짝이며 앞을 본다. 기대와는 다르게 나를 그냥 지나쳐 간다. 기대는 어느새 실망으로 바뀌고 마음은 초조해진다. 벌써 몇 번째 자리를 옮겼는지 모른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다가 끝자리로 옮긴 지 오래다. 하루에도 수십 종류의 새 책이 들어온다. 새로 들어오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다가 팔리지 않으면 구석으로 밀려난다. 나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처세술책 앞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괜히 화가 난다. “마음을 키우는 나를 읽어야지 처세에만 신경을 쓰다니.” 딱하다는 듯 나무라지만 주위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나를 보니 자꾸 작아진다. 이제는 누구라도 와서 한 번이라도 만져주기를 바란다. 동화책과 처세술책은 가운데에서 보란 듯이 웃는다. 아이는 책장을 넘기며 책을 살핀다. 옆에 있는 책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긴다. 책을 보다가 크게 웃는다. 동화책 주변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도 책을 고른다. 옆의 처세술책 앞에는 사회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책을 살핀다. 책을 사려는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수필집은 독거노인이 된 지 오래다. 기다려도 찾는 이도 없다. 같은 처지의 천자문이 다독이면서 한마디를 건넨다. “나이가 들면 다 그래요. 힘이 없어 멀리 다닐 수도 없잖아요.” 말이 끝나자, 어색한 정적만 감돈다. “저벅저벅” 발소리만 들어도 시집은 기겁한다. 매일 출근하듯이 와서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 몸이 온통 불었다. 어제 부은 몸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다시 온다니 시집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오늘은 책장을 세게 잡아서 넘기는 바람에 몸이 아프다. 만질 때마다 몸을 움츠린다. 시집의 하소연을 듣고 동화책이 거든다. “말도 하지 마. 어린아이들이 오면 온종일 붙들려 시달려서 힘이 들어. 나를 읽고는 아무 곳에나 던져놓는 바람에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어.” 볼 때마다 그러는 바람에 몸뚱어리는 멍투성이에 노숙자가 될 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책장을 가볍게 넘긴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이며 책을 읽고 싱긋이 웃을 때는 얼마나 예쁜지. 나를 읽고 가슴 뿌듯한 표정을 지을 때는 큰일을 한 것 같아 어깨가 들썩거린다. 아이의 손때가 묻은 체취를 느낀다. 따뜻한 마음씨는 향기로 남고, 나는 다음날을 기다린다. 수필집은 혼기를 놓친 노처녀처럼 오늘도 팔리지 않아 초조해진다. 어떤 사람이 나를 살지 궁금했다. 그것도 이제는 시들하다. 여러 달을 바람 맞듯이 찾는 사람 없이 보내니 발만 동동 구른다.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 하는 데 그저 멍한 눈으로 본다. 언제 책장에서 밀려날지 몰라 몸이 흔들린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산다. 그래서인지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가끔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다. 아날로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책과 가깝다. 사람들은 책을 천천히 읽고 생각한다. 빠르기를 강조하는 디지털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책 읽기와는 거리가 멀다. “빨리”를 외치는 세상에서 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전에는 감동적인 문구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자신만의 느낌을 적는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현실은 자신을 찾는 그림자조차 찾지 못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오늘도 바람을 접지 않고 기다린다. 주인을 만난 처세술책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집은 침에 부풀린 몸을 말리기 바쁘고 동화책은 멍 자국에 약을 바르며 집을 찾기 바쁘고, 수필집은 오늘도 독거노인 신세가 된다. 팔려 간 처세술책에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내일도 새로운 처세술책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입을 닫는다. 읽고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날이 언제나 올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름만 깊어진다. 오늘은 외롭고 몸이 부풀고 멍이 들어도, 내일은 주인을 만나 하루를 나누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6-02-04

해오름대교, 연결 효과는 운영이 가른다

해오름대교는 개통 전부터 포항의 새로운 상징으로 기대를 모았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남북 연결축, 도시 동선을 바꿀 핵심 인프라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며칠간 현장을 오가며 느낀 점은 이 다리가 가진 가능성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변화는 분명하다. 정체만 아니라면 남단과 북단 사이 이동 시간은 과거보다 현저하게 줄어든다. 해안선을 돌아가던 동선이 단순해졌고, 일부 구간에서는 체감상 주행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반응도 들린다. 출퇴근과 일상 이동에서 남북 연결성이 개선됐다는 점은 이 교량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개통 직후의 관찰은 동시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저녁 6시 30분 무렵, 남단에서 교량에 진입해 북단 교차로를 통과하기까지 대략 10분이 걸렸다. 교량 전체 길이가 4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균 속도는 시속 2~3킬로미터 수준이다. 초기 혼잡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구조적인 요인을 떠올리게 하는 수치가 아닐까. 병목의 핵심은 북단 교차로에 있다. 좌회전이 금지되면서 차량들은 교차로를 지나 약 50미터 지점에서 유턴을 해야 한다. 유턴 차선의 대기 공간은 차량 다섯 대 정도에 불과하다. 오후 2시 40분, 러시아워가 아닌 시간에도 이미 포화 상태. 출퇴근 시간대에는 직진 차로까지 정체가 번질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퇴근 시간에는 그 영향이 교량 상판을 넘어 남단 오르막 구간까지 이어졌다. 정상부에 이르기도 전에 브레이크등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이는 교량 진입부보다 출구 쪽 처리 용량이 부족해 다리 전체가 일종의 ‘대기 공간’처럼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안전 측면에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북행 정상부에서는 하행 구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남행 하향부에서는 곡선이 이어져 전방 시야가 제한된다. 제한속도인 시속 50킬로미터로 주행하다 갑작스런 정체를 만나면 급제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황색 신호에서 가속과 급정거가 동시에 나타나는 장면도 관찰됐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해오름대교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구조적으로 남북을 직선으로 잇는 새로운 축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시 교통망에는 큰 변화다. 운영이 안정되고 병목이 해소된다면 출퇴근길과 생활 이동에서 실질적인 시간 절감 효과를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이 더 중요하다. 개통 초기에 출퇴근 시간대 교통량과 유턴 수요를 면밀히 관찰하고, 유턴 대기 공간을 늘이거나 시간대별 좌회전 허용 같은 탄력적 운영은 가능한지, 교량 위 정체를 미리 알릴 안내 시스템이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작은 조정 하나가 시민 체감도를 크게 바꾸고 사고 위험을 방지한다. 도시의 새 다리는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들의 하루하루에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기능하느냐가 진짜 기준이다. 해오름대교가 포항의 새로운 명물이 되기 위해서 지금 드러난 성과와 과제를 함께 직시하고 분석하여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완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2-04

요즘 곡학아세

지난 1월 28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통일교 청탁 금품 수수 혐의 등으로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했다고 기소된 김건희 씨가 1심에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15년 구형도 적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구형의 9분의 1인 1년 8개월이 선고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해야 할 영부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영리를 취한 것은 옳지 않다고 판결문에 쓴 것도 공분을 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은 김부식이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온조왕 15년(BC 4년) 기사에 새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는 유홍준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백제와 조선의 미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전통미를 설명할 때마다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사자성어를 나란히 놓은 것은 좀 어색하다. 누추함과 가까운 검소와 사치와 가까운 아름다움이 한 건물에 공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부식이 백제의 새 궁궐을 검소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고 한 것은 임금이 사는 궁궐만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궁궐이 검소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아름다움만 추구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개의 사자성어의 출전은 다르지만 모두 유학의 경서다. ‘검이불루’라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는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검소해야 한다’거나 ‘꾸밈이 본바탕보다 지나치면 겉치레가 심한 것이고, 본바탕이 꾸밈보다 지나치면 거친 것이다. 꾸밈과 본바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고 해서 본바탕만 강조하는 것을 경계했으니 ‘검이불루’와 통한다.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은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한 구절을 ‘중용’의 저자가 인용하면서 비단의 아름다움을 감추기 위해 홑옷을 덧입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홑옷의 재료도 아주 고급 천이라서 귀족만 입을 수 있고, 그 홑옷 때문에 안에 입은 비단옷 더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중용’의 저자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점이 있다. 그래도 그동안 겸양의 뜻으로 인용해왔다. 그런데 판사가 ‘권력자가 영리를 추구하면 안 된다’거나 ‘청탁과 결부된 선물로 자기를 치장하는 데 급급한 것은 문제’라면서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훈계하는 과정에서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인용한 것은 영부인에게 누추하지 않을 정도의 검소함을 요구하는 것이라 영부인의 지위에 전혀 맞지 않는다. 더 문제는 영부인이 사치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뇌물을 받은 것이 문제다. 뇌물을 받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어떤 인용이든 원문의 뜻에서 변형되는 것은 글의 숙명이다. 그러니 판사가 고전에서 사자성어를 재해석해서 인용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전혀 상황에 맞지 않게 사자성어를 맥락과 상관없이 단장취의하여 인용하는 것은 교묘한 곡학아세다. 그 판사가 아첨하고 싶었던 세상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2-04

살을 빼야 하는 진짜 이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소리는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정작 왜 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살이 찌면 몸만 커지는 게 아니라 몸의 숫자들이 하나둘씩 무너진다. 혈압과 혈당이 올라가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나빠진다. 이 변화들은 각각 따로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체중이 늘면 혈관 안을 흐르는 혈액이 늘어나고 심장은 더 큰 압력으로 혈액을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혈압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또 지방 조직이 늘어나면서 인슐린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지며 혈당이 쉽게 올라가는 몸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한다. 중성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함께 올라가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라는 병이 생긴다. 이 수치들이 약으로 조절된다고 해서 몸이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체중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수치만 누르고 있으면 몸은 불균형한 상태로 있다. 그러나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생각보다 빠르게 내려간다. 체중의 5~10%만 감량해도 혈압이 떨어지고 공복혈당이 낮아지며 중성지방 수치가 개선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살을 빼는 것은 단순한 미용이 아니라 치료가 되는 이유다. 그럼 다이어트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된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몸의 시스템이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랫동안 살이 쪄 있었으면 자율신경과 호르몬 균형이 깨져 있어 식욕 조절과 에너지 소비가 쉽지 않다. 한의학에서 다이어트 한약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이어트 한약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환 형태의 한약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체질과 상태에 맞춰 처방하는 맞춤 한약이다. 환 형태의 다이어트 한약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입맛을 떨어뜨리고 몸을 각성 상태로 만들어 소비 에너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교감신경을 적절히 항진시켜 먹는 양을 줄이고 활동성을 높여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식욕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다. 환만 복용하면 살이 빠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이 얕아지거나 생리 주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 이때는 맞춤 한약으로 처방하는 것이 좋다. 맞춤 한약은 환자의 체질, 현재의 자율신경 상태, 호르몬 균형 동반 증상을 함께 고려해 처방한다. 예를 들어 다낭성 난소증후군처럼 체중과 호르몬 불균형이 얽혀 있는 질환에서는 체중 감량이 증상 개선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무리한 방식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접근하면 살이 빠지면서 몸이 더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이어트는 숫자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는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일상생활이 덜 피로해진다. 살을 빼는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몸이 보내고 있는 경고 신호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 과정은 참거나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몸의 방향을 다시 맞추는 치료가 되어야 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2-04

“힘의 균형서 인류의 공존” UN이 바꾼 새 패러다임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이기적 욕망을 지닌 인간들의 관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UN(국제연합)이 설립되기 전까지의 국제질서는 철저하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원리에 의해 지배되었다. 19세기 빈 체제(Congress of Vienna)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국가 간의 평화는 강력한 국가들 사이의 군사적 균형이 유지될 때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비극 이후, 인류는 처음으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라는 집단 안보 체제를 고안했다. 하지만 국제연맹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연맹의 제안자였던 미국의 불참과 강대국의 탈퇴를 막을 강제력 부재, 그리고 의사결정의 ‘만장일치제’는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과 독일의 재무장을 방관하게 만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불참과 실질적인 힘의 부재는 곧 국제질서를 유지와 세계를 대표하는 기구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연맹은 명목상으로만 세계를 대표하는 유명무실한 기구나 다름 없었다. 결국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 같은 2차대전의 파국과 절망 속에서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통해 출범한 UN(United Nations)은 단순히 국제연맹의 연장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제법과 규범이 국가의 주권만큼이나 중요하다는‘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국제 평화를 유지하지 못한 국제연맹의 부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 속에 탄생한 UN은 국제협력을 증진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가 간 연합체이자 가장 많은 국가가 모이는 다자 회의 기구이다. UN 설립 이후 국제질서는 예전과 달리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앞선 국제연맹의 무기력함을 반면교사 삼아, UN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실질적인 군사적·경제적 제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이는 전쟁을 ‘국가의 권리’가 아닌 ‘국제법적 범죄’로 규정하는 질서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또한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국가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인권을 국제적인 감시와 보호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오늘날 중요시되는 ESG에서 ‘Social(사회)’ 영역의 근간이 되었다. UN은 신탁통치와 독립 지원을 통해 수많은 신생 독립국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지배에 놓였던 수많은 나라의 독립을 이끌어 내었고, UN 회원국의 참전을 통한 전쟁 억지와 평화 유지 등 과거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국제 정치를 193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주권 평등’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UN의 설립 이후 지구는 비로소 세력균형의 원리가 아닌 다자주의의 국제협약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질서가 시작되었지만 순조롭게만 항해한 것은 아니었다. UN체제 초기, 국제질서는 미·소 냉전이라는 거대 양극체제에 의해 한계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UN은 이 시기에도 유니세프(UNICEF), WHO 등 전문기구를 통해 질병, 빈곤, 교육 등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며 ‘기능주의적 협력’의 가치를 증명하였다.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에는 단순한 분쟁 중재를 넘어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인류의 생존 자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0년의 MDGs(새천년개발목표)를 거쳐 2015년 채택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는 국제질서의 중심축을 ‘국가 안보’에서 ‘인간 안보’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으로 옮겨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강조하는 ESG 경영이나 탄소중립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UN이 80여 년간 구축해 온 국제질서의 산물이다. 과거의 세계 질서가 “어떻게 전쟁을 막을 것인가”의 힘의 균형에 집중했다면, UN 이후의 질서는 “어떻게 함께 공존할 것인가”의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묻고 있는 새로운 문법이다. 이제 국제질서는 영토를 넓히는 힘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UN이라는 국제기구의 플랫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글로벌 난제 앞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다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UN은 완벽하지 않지만, 인류가 야만으로 돌아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규범의 닻’이 되어왔다.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규범의 닻’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납세자의 자금 지원을 끝내고 미국 우선순위보다 세계주의 의제를 우선하는 단체에 대한 관여를 끝내겠다”며 유엔 및 산하 기구에 대한 자금을 대폭 줄이고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해 들어 이달 초에는UN산하기관 31개를 비롯한 66개 국제기구의 탈퇴를 전격 선언했다. 미국의 유엔 지원금이 중단되면서 UN이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93개 회원국에 보낸 서한에서 “UN의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여러 사업 진행이 중단됐고 재정 붕괴 위험이 커졌다”며 “곧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법이 강대국에 의해 짓밟히고 국제협력이 약화되고 있다. 국제법 훼손과 국제협력의 붕괴, 다자기구들에 대한 공격의 트럼피즘에 의해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원리에 의한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에 뿌리를 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UN을 중심으로 인류 공존의 가치를 지켜내어야 한다. 지구상 모든 국가가 1945년 UN 설립의 초심으로 돌아가 포용적이고 파트너십을 통해 균형을 창출할 수 있는 다극화를 지향해야 한다. 지구와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공유된 책임과 가치에 기반한 강력한 다자간 국제기구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여러 나라와 인류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2-04

나의 30대는

최근 유튜브에서 에픽하이의 영상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한 콘텐츠였고, 에픽하이 멤버들이 질문을 던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형식이었다. 대화 도중 타블로는 게스트에게 “40대에서 30대를 돌아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는 말을 꺼냈다. 다소 의외라는 듯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는 곧이어 “그때는 정말 건강했고,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30대에 들어선지 2년이 흘렀다. 올해 32살인 나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나이를 말하거나 약 봉투에 내 나이 만 31세라는 숫자가 찍혀있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아주 어린 날, 내게 알파벳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이 34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숫자가 정말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되려면 34살쯤은 되어야 하는구나 생각했고, 선생님의 오른손목에 걸린 금시계나 반짝이는 높은 구두를 보며 어른의 삶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하고 몰래 동경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제 34살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30대가 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통장이 더 두둑할 줄 알았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아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고, 자차도 멋지게 끌면서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도 멋지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에 가까워서 생각보다 서른이란 별 볼 것이 없는 것 같다가도 실은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의 능력치에 한참 못미치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른이 의미 없거나 초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태껏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월세를 내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왔다.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 접시를 닦고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며 버텼던 시간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노력의 형태들은 아직도 내게 너무나 선명하고 소중하다. 30대에서 20대를 돌아보니 20대에는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직장도, 직무 경력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내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불안을 다루는 방법도 모두 다 서툴렀다. 그래서 하루 빨리 내가 더 성숙해져서 모든 것이 안정화되었음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담 40대가 되어서 30대를 돌아보면 어떨까? 나도 가수 타블로의 말처럼 40대가 되어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30대 초반인 나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훗날 40대가 되어 30대를 돌아볼 때 “그때 참 좋았지, 정말 씩씩했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주어진 30대라는 나이를 잘 살아내야만 한다. 확실히 20대에 비해서 나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달라졌다. 예전에는 의사표현이 분명하지 않아 타인에게 이끌려 다니기 일쑤였고, 악의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휘둘리거나 손해 보기 바빴다. 이제는 내 안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해져 사람을 대하는 일에 조금 더 익숙해졌고, 좋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된 것도 기쁘다. 지난 여름 함께 시를 쓰던 언니를 만났다. 언니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나와 10살 넘게 차이나는 언니는 지금 내 나이가 한참 반짝인다며, 어떤 도전이든 응원한다고 말했다. 언니가 건넨 다정한 말이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언니 말대로 늦은 것은 없다. 너무 늦은 애정도, 너무 늦은 후회도, 도전도, 열정도 너무 늦은 것은 없다. 동시에 30대에 무조건 이루어야 하는 목표도 행복이라는 강박도 없다. 법륜스님은 인생에는 해야 하는 게 없고 안 해야 되는 것도 따로 없다고 말한다. ‘뭘 해야 한다’ 이전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 있는지 알아차리는 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각 이후 선택만이 있을 뿐. 그러니 요즘은 조금 천천히 살아보려 한다. 불안해지면 억지로 앞서가려 하기보다 지금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완벽한 30대를 만들기보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30대를 살아내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모으면 언젠가 돌아본 내 30대가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조급함 대신 오늘의 속도를 믿어보려 한다. 크고 화려한 성취보다, 작지만 단단한 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윤여진(시인)

2026-02-04

그래도 아날로그...

여러모로 나는 참 느린 아이였다. 걸음걸이,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에 홀로 가득한 백지, 말하는 속도까지 참 느렸다.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아도 절대 뛰지 않았다고 하니 부모님은 정말이지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모든 면에 있어서 느렸다.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영화 등에 딱히 열광하지 않았다. 계속 열광하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 장난감의 열기가 제법 식었을 때 비교적 싸게 구매해서 놀곤 했다. 드라마도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다가 뒤늦게야 푹 빠져드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신념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단, 그냥 느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신문물과 낯선 사이다. SNS는 특히 내게는 너무 빠르다. 눈으로 단어 하나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조금 더 멈춰 있다고 싶은데, 계속 밀물이 밀려드는 것만 같다. 그렇게 세상 참 빠르다란 생각을 하면서 근처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이 집 가까이에 있는 게 좋다. 도시에 맛집들이 많아서 좋다. 맞다. 모순이다. 내가 느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그럼 뭘까. 아날로그가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걸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전자책(e-book)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싫어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크게 시도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책의 크기, 무겁거나 가벼운 책 각각의 무게, 새 책이나 헌책에 밴 특유의 냄새, 표지부터 만져지는 질감, 펼쳤을 때 양손에 들어오는 페이지의 감각. 공교롭게도 그런 것들을 빼놓고 나는 책을 잘 읽지 못한다. 지인이 쥐어준 리더기로 시집이나 소설집을 한 권은 읽어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리더기로 이북을 읽는 게 좋아지면 진짜 편할 것 같은데. 가방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도 어디에서나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몇 번쯤 더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커피잔 옆에 단정하게 책이 놓여 있는 게 좋다. 손끝으로 좋아하는 구절이 나오는 페이지 모서리를 접는 게 좋다. 그러다 잘못 접어서 접은 부분이 살짝 비뚤어지는 것도 좋고, 다시 접다가 접은 흔적이 두어 개 정도 남는 것도 좋다. 종종 느끼지만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사랑하기보단 책이 지닌 물성과 그 안의 텍스트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노래를 검색만 하면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한 곡에 몰입하는 힘이 조금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1절만 듣고도 음 내 취향이 아니군, 하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별로 수고를 들이지 않고 몇 단계의 검색만 거치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뭘까. 배고플 때 먹은 에이스 과자 하나가 고급 베이커리의 다쿠아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아직도 나는 어릴 때 침대 옆 탁상에 놓여 있던 커다란 검은 라디오 하나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근 10년간 그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잤다. 물론 심야 라디오를 켜고 자는 일이 많았지만, 내가 유독 아끼고 많이 들은 건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였다. 나는 중학생이 된 다음에도 아이돌, 연예인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를 자주 틀고 잤지만 특별히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다가 너무 심심해서 누나와 함께 휴게소에서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구매했을 뿐이었다. 하나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가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 하나는 신화의 ‘너의 결혼식’이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 두 앨범을 내내 들었다. 가사에 담긴 뜻은 전혀 몰랐다. 누나한테 “왜 아틀란티스야?”, “영화 ‘졸업’에서 생기는 일이 뭐야?”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누나도 잘은 모른다고 했다. 지금처럼 많은 곡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심심하거나 잠들기 전에 두 카세트테이프를 번갈아 틀곤 했다. A면과 B면을 계속 돌려가며 수록곡들의 음과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들었다. 그때 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화자가 되어 웃거나 울었다. 되감기를 하며 한 곡에 빠져 흥얼거리던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날로그적으로만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계속 곁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는 자주 아틀란티스 소녀와 너의 결혼식을 듣는다. 그 노래를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시절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2-04

유적지는 잉카의 삶을 노래한다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같이 아르마스 광장을 찾았다. 여행자의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 광장은 잉카와 스페인 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쿠스코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관광객들의 활기찬 이야기가 넘실대고, 해가 저물면 돌바닥 위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광장 주변에는 수많은 여행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뒤섞인 활발한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마추픽추행 교통편, 가격, 일정을 꼼꼼히 비교한다. 정보는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선택지는 다양하다. 하지만 여행은 정보만으로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던 중, 우연히 아르마스 광장 근처의 한인 민박을 소개받았다. 숙소 주인장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녀는 어쩌다 이 먼 타국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곳 사람들과 삶을 나누게 되었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잉카의 돌담처럼 견고하고, 안데스의 바람처럼 끈질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분명한 것은 마추픽추를 향한 여정에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도보다 정확한 것은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이었고, 검색보다 깊은 것은 그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광장에서 출발하여 12인승 밴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성스러운 계곡’과 ‘모라이’였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한 차에 함께 탔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삶의 궤적을 지닌 그들이었지만, 좁은 길 위에서 우리는 금세 하나가 되었다.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무엇보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리라. 밴이 안데스의 굽이진 산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는 동안,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모건 하우절의 저서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에서 언급했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서 끊임없이 자문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해답을 제시하는 듯했다. 잉카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강의 흐름을 존중하며, 산의 능선을 따라 건축물을 지었다. 이곳의 유적은 화려함보다는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웅변하고 있었다. 정교한 석축 기술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정복이 아닌 공존, 속도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 수백 년 전의 현명한 선택이 오늘날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마라스 염전을 지나 도착한 모라이(Moray)는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대한 원형 계단식 구조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잉카 시대의 첨단 농업 실험장이었다고 한다. 고도와 기온, 바람의 미묘한 차이를 층층이 계산하여 다양한 작물을 시험 재배했던 혁신적인 장소였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장면 앞에서 오랫동안 발길을 멈추었다. 이 놀라운 유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찰과 수많은 실험의 숭고한 결과물이었다. 인간은 시대를 초월하여, 결국 동일한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모라이의 거대한 원형 계단 앞에 서 있노라면, 종종 로마의 웅장한 원형 경기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닮은 점은 단지 원형이라는 형태뿐이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권력과 통제, 그리고 대중의 맹목적인 열광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모라이는 침묵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던 지혜로운 성찰의 공간이었다. 겉모습은 같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정반대였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유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메시지다. 문명은 과연 무엇을 위해 공간을 창조하는가? 이 묵직한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해 질 무렵 다시 쿠스코로 돌아온 나는, 익숙한 아르마스 광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침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출발점은, 이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부드러운 바람은 속삭이는 듯했다. 덧없이 사라지는 문명 속에서도, 삶의 지혜로운 방식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이제 나의 다음 여정은 신비로운 티티카카 호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성스러운 호수, 신화와 현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잉카 문명은 또 어떤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줄까? 다시 한번, 단순한 유적 ‘관람’이 아닌 깊은 사색을 즐기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찬 가슴으로, 다가올 여정을 간절히 기다린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