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다면 극히 힘든 학기다. 일력을 보니 벌써 5월 들어 다섯 번째 주다. 한두 주 후면 한 학기를 마친다.
그 힘든 중에 학생들과 수업이 있었다. 제일 ‘쉽고’ 보람된 시간. 이렇게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21세기 동시대 작가들로 공부를 한 학기였다.
1990년대 중후반의 은희경·공지영·신경숙부터 동시대 작가들인 최진영·최은영·예소연의 작품들 이야기, 김봉곤·박상영 같은 퀴어 작가들과 자전적 소설ㆍ‘오토 픽션’ 이야기, 1990년대부터 ‘실험적’ 소설의 길을 개척해 간 장정일의 문학 세계, 재난과 참사가 잇달았던 2000년대의 증언적 이야기들, 윤고은·한강처럼 국제적인 문학상 수상한 작가들의 대표작들, 한 시대를 풍미한 김영하·김연수에, 수십 년째 문단을 지키고 있는 황석영 소설들···.
현재적인 이야기는 쉽지만은 않다. 문학사의 문맥 속에서 이야기하려고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퀴어 소설 이야기는 이광수 소설 ‘윤광호’('청춘' 13, 1918년 4월)와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유학 와 공부한 가브리엘 실비안의 사력을 기울인 논문을 다시 읽기도 해야 한다.
여성 작가 이야기는 나혜석·김일엽·김명순 같은 여성 ‘혁명가’들의 전통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즘을 고작해야 30년 안팎의 전통밖에 지니지 못한 경향으로 착각하게 할 수 없다.
이럭저럭 어렵게 끌어가던 수업. 이제 학생들 발표로 이어진다. 발표 주제들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첫 시간부터 학생들은 ‘반란’이다. 영화감독 윤가은론, 이름 ‘생소한’ 작가 정영수론,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의 ‘판타지 작가’ 이영도론을 들고 나온다.
첫 시간부터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학생들은 출판사나 문단 메커니즘이 ‘조성’하는 문학·작가의 관념에 염증을 내고 있다. 발표가 기약된 정세랑, 정유정, 장강명, 손아람의 이름들도 어딘지 모르게 문단 메커니즘의 통제력 범위를 넘어선 듯한 인상이다. 이양지·유미리 같은 ‘재일’ 작가와 김유경·도명학 같은 탈북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가 작지 않다.
문득 드는 생각. 역시 미래 세대는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기성 세대와 특히 권력은 자신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랫세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젊은 세대는 이 환상에 ‘혼구멍’을 낸다. 그네들은 정치적 이상과 이념에 대해서만 반란 중인 게 아니다. 문화와 문명,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력을 주장한다. 언제든 새로운 길을 추구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의 해석이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학기였다. 돌이켜 보니 새옹지마, 나빠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시대와 정치, 권력과 메커니즘이 야만적이라 생각했다.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있던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조차 없지는 않았다.
학생들, 젊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작가들 이름을 이렇게 새롭게 의식하게 됨도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이제 완연한 5월을 지나 어느덧 6월이다. 지난 25일에는 이효석 작가를 만나러 평창에 다녀왔다. 그의 기일이었다. 새로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또 생각한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