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글 생성 기술이 곧 좋은 기사 아냐 독자의 무의식 중에 따르는 ‘신뢰’ 필구 AI 보편화에도 다루지 못하는 영역 존재 진짜 뉴스는 인간 언론인과 편집자의 몫
2023년 11월, 미국의 유서 깊은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큰 위기를 맞았다. ‘Drew Ortiz’라는 이름으로 배구공 추천 기사를 쓴 기자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기자의 프로필 사진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합성 이미지였고, 기사 본문 역시 AI가 작성한 것으로 의심됐다. 발행사는 외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70년 역사의 매체가 쌓아온 신뢰는 단번에 흔들렸다.
같은 해 초 미국의 IT매체 CNET은 AI로 작성한 금융 설명 기사 다수에서 사실 오류가 잇따라 발견돼 대규모 정정 공지를 내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MSN은 캐나다 오타와 여행 가이드 기사에서 관광객에게 현지 푸드뱅크 방문을 추천하는 황당한 결과물을 게재한 뒤 황급히 삭제하기도 했다. 미국 지역 신문 체인 가넷(Gannett)은 고교 스포츠 기사를 AI로 자동 생성하는 실험을 진행하다 오류가 잇따르자 사업 자체를 중단했다.
이 사건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쓴다는 것이 이미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신호이며, 동시에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다시 꺼내 놓은 사건이다. 글을 빠르게 생성하는 기술이 곧 좋은 기사를 만드는 기술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독자가 신문을 펼치며 무의식 중에 신뢰하는 그 ‘한 줄’의 뒤에 누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함께 따라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6 콘텐츠 산업 전망’에서 미디어 산업의 AI 활용이 이미 임계점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시급한 질문이라는 의미다.
■AI 기자는 이미 일하고 있다
AI 자동 기사 작성은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이다. 미국 AP통신은 2014년부터 자동 기사 생성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 분기 실적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도입 전 인간 기자가 다루던 기업은 분기당 약 300개에 불과했지만, AI 도입 이후에는 약 4400개 기업의 실적이 자동으로 기사화되고 있다. 14배가 넘는 확장이다. 이는 단순한 효율 향상이 아니라 그동안 보도되지 못하던 중소형 상장사 정보가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보도에 ‘헬리오그래프(Heliograf)’라는 자동 기사 작성 도구를 활용했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퀘이크봇(Quakebot)’은 지진 감지 데이터를 받아 수 초 안에 속보 초안을 작성한다. 블룸버그는 ‘블룸버그GPT’라는 500억 매개변수 규모의 금융 특화 AI 모델을 자체 개발해 운영 중이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인용된 취재원의 성별 비율을 자동으로 추적해 보도의 균형성을 점검하는 봇까지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25년 2월 ‘에코(Echo)’라는 사내 AI 도구를 도입하고 편집국 직원을 위한 AI 활용 가이드 라인을 공식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용 범위의 명확한 구분이다. 검색엔진 최적화 제목 생성, 기사 요약, 편집 제안, 인터뷰 질문 브레인스토밍에는 AI 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반면, 기사 초안 작성이나 주요 수정, 유료 구독 사이트 우회, AI 생성 이미지의 게재는 금지했다. 효율은 받아들이되 저널리즘의 본질은 인간이 지킨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한국 언론사들의 실험
국내 언론사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사 기사 5만 건을 학습시킨 자체 AI 어시스턴트로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I 도움을 받아 작성된 기사 말미에는 “조선일보와 미디어DX가 공동 개발한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기사”라는 표기를 명시한다. 동아일보는 자체 소규모 언어모델(sLLM)로 자사 콘텐츠에만 답하는 챗봇 ‘애스크비즈(AskBiz)’를 구축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영남일보는 AI 이미지 생성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시각 자료 제작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지역 언론도 변화의 흐름에서 결코 비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 외에도 기자 개인 차원의 AI 활용은 이미 일상이 됐다. 네이버 클로바노트 같은 음성 인식 서비스로 인터뷰를 즉시 텍스트화하고, 정부 발표 자료나 통계청 자료를 AI에 입력해 핵심 요지를 추출한 뒤 기사의 뼈대를 잡는 식이다. 이는 기자의 노동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줄어든 시간을 더 깊은 취재와 검증에 투입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신문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 효율의 이면, 신뢰의 균열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AI 자동 기사 작성에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다. AI는 그럴듯한 거짓을 자신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 낸다. 푸드뱅크를 관광 명소로 추천한 MSN 기사가 대표적이다. AI는 ‘오타와 가볼 만한 곳’ 데이터를 학습했을 뿐, 푸드뱅크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인간적 맥락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더 위험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인용’이다. 본 연재 15주 차 법률 AI 편에서도 살펴봤듯, AI는 실제로 한 적 없는 발언을 누군가의 입에 그럴듯하게 붙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논문과 판례를 인용한다. 기자가 이를 그대로 옮긴다면 기사는 곧 허위 정보의 출구가 되고 만다.
둘째는 투명성의 문제다. 메릴랜드대 저널리즘 윤리 교수 톰 로젠스틸은 미디어 기업의 AI 활용 자체보다 그것을 숨기려는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진실을 다루는 직업이 자기 작동 방식을 비밀로 둔다면 그것은 이미 직업윤리의 균열이라는 의미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사태에서 독자가 분노한 것은 ‘AI를 썼다는 사실’보다 ‘존재하지 않는 기자의 사진과 약력까지 만들어 독자를 속였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저작권과 데이터 주권의 문제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말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자사 기사 수백만 건이 무단으로 AI 학습에 사용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미국 법원은 오픈AI 측이 낸 소송 기각 신청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고 본안 심리에 들어갔으며, 챗GPT의 사용자 대화 로그 보존 명령까지 내렸다. 국내에서도 KBS·MBC·SBS 지상파 3사가 2026년 2월 오픈AI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 중단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025년 1월에는 같은 3사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를 상대로 9만7000여 건의 기사 무단 학습을 주장하며 소송에 나선 바 있다. 단순한 저작권 분쟁이 아니라 한국 언론이 수십 년간 축적한 지식 자산을 글로벌 빅테크가 가져가도록 두지 않겠다는 데이터 주권의 선언인 셈이다.
■기계가 끝내 쓰지 못하는 기사
그렇다면 인간 기자의 자리는 어디에 남는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언론을 위한 생성형 인공지능 준칙’은 분명한 입장을 보인다. AI 활용이 보편화되더라도 뉴스 보도의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 언론인과 편집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직업 보호의 논리가 아니다.
저널리즘은 본질적으로 ‘판단의 직업’이다. 어떤 사실이 보도할 가치를 지니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 사건을 해석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 이 판단에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약자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AI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지만, 데이터가 빠뜨린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통계를 요약할 수는 있지만, 통계 뒤편의 한숨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AI는 어제까지의 패턴으로 오늘을 예측하지만, 진짜 뉴스란 종종 ‘어제까지의 패턴을 깨는 그 한 사람’에서 시작된다.
지역 언론에서 이 문제는 한층 절실하다. 포항제철소 한구석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의 이야기, 영덕 어촌의 사라져가는 갯바위 노인의 기억, 안동 종갓집 며느리의 침묵 같은 것을 AI는 결코 먼저 발견하지 못한다.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묻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것이 지역 언론이 단순한 ‘뉴스 공급자’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 보관소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문명의 진보를 ‘우리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할 수 있게 된 중요한 행위의 수가 늘어나는 일’이라 정의한 적이 있다. AI는 기자가 ‘생각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준다. 그러나 정작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일, 즉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어떤 침묵이 가장 큰 비명인지를 묻는 일은 오히려 더 무겁게 남는다. AI 시대의 저널리즘은 기계와 경쟁하는 일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그 자리로 인간이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사를 쓰는 기자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기사를 신뢰하고 어떤 기사를 의심할지 가려내는 독자의 안목 또한 함께 깊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가 썼는가’를 묻는 일이, ‘무엇이 쓰여 있는가’를 묻는 일만큼이나 중요해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