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 지도가 급격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의 성장을 이끌었던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한 중화학 공업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에너지 주권’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라는 ‘전기 먹는 하마’가 산업의 주류가 된 지금, 우리는 정부가 직면할 가장 거대한 과제인 ‘에너지 거버넌스’의 재편을 목격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핵심 에너지 생산지는 원자력에너지 중심의 영남과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호남이다. 두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수도권 첨단산업에 공급되는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영남과 호남의 에너지 지정학적 가치를 이재명 정부가 추진할 계획인 ‘RE100 산업단지’ 전략과 관련하여 ESG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호남의 RE100 산단 유치 가능성과 전략적 가치
이재명 정부의 핵심 에너지 정책 기조는 ‘에너지 고속도로’와 ‘재생에너지 중심의 국가 대전환’에 있다. 이는 글로벌 ESG 공시 의무화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거대한 무역 장벽을 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그 핵심 전략이 되는 ‘RE100 산업단지’ 유치의 최적지는 단연 호남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호남은 일사량이 풍부한 전남의 태양광과 신안 앞바다의 대규모 해상풍력 건설에 집중한 결과 연료비가 제로(0)인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착한 에너지’를 넘어, 장기적으로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 되는 전략적 가치이다.
이재명 정부는 중앙집중형 전력망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는 ‘분산형 거버넌스’를 강화할 예정이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활용하여 만성적 전력계통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를 찾아 기업이 이동하는 ‘에너지 지방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간헐성(날씨에 따른 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 인프라 구축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것이 해결된다면 호남은 ‘RE100 전용 경제특구’로서 전 세계 AI데이터센터를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남과 호남의 미래 성장 가능성 분석
영남과 호남 지역의 대별 되는 에너지 지정학적 가치를 ESG의 관점에서 보면, 두 지역의 미래는 서로 보완적이며 전략적이다. ‘Green Electro State’ 호남권은 Environmental(환경)의 선구자로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청정에너지의 본산이다. 탄소 중립이 기업의 생존권이 된 시대에 호남권의 신재생 에너지는 국가적‘환경자산’이다. RE100 이행이 필수인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첨단 소재 기업들에게 호남은 대체 불가능한 입지다. 특히 희토류 및 희귀 금속 정련 산업처럼 오염 부하가 크고 전력 소모가 많은 공정을 저렴한 재생에너지로 감당해냄으로써, 환경 규제를 돌파하는 거점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해 ‘Base Electro State‘ 영남권은 원자력 발전이라는 강력한 ’기저 부하‘를 보유하고 있는 Governance(지배구조)의 안정성이 높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FAB은 24시간 중단 없는 고품질 전력이 필수다. 원자력은 외부의 자원 무기화 압박 속에서도 국가 산업의 심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강력한 안보 자산이자 국가 거버넌스의 수호신이다. 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영남은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 안정성을 보장한다.
◇‘일렉트로 코리아‘를 향한 대타협과 융합
2026년 현재, 우리는 중동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세계 에너지 흐름의 대동맥 호르무즈해협의 봉쇄와 쿠바의 대정전 사태를 목격하며 에너지 종속의 비극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석유에 기댄 ‘페트로 스테이트’의 시대는 끝났다. 과거의 전쟁이 총칼을 앞세운 무력 전쟁이라면 요즘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전쟁에 가깝다. 이제는 전기가 지배하는‘일렉트로 스테이트’로 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할 RE100 산단은 호남의‘청정성’과 영남의 ‘안정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그 운명이 달렸다. 또한,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의 혜택은 수도권 대기업이 독점하고, 환경훼손·전자파 위험·부동산 가치 하락 등 모든 피해는 지방이 떠안는 구조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국가적 에너지 체계의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호남의 햇빛과 바람으로 만든 전기가 AI의 두뇌를 돌리고, 영남의 원자력이 그 안정적 맥박을 유지하는 ‘에너지 믹스’의 대타협이 필요하다. 진정한 선진국은 자국민의 삶을 보호하고(Social),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며(Environmental), 타국의 결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독립적 전략(Governance)을 가진 나라다. AI시대에 최적의 ‘에너지 믹스’는 국토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위한 가장 근원적이고 강력한 수단이자 전략이다. 호남과 영남을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는 단순한 전력망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에너지 강국이자 진정한 선진국으로 밀어 올릴 생명선이 될 것이다. 결국, 에너지 주권을 확보한 ‘일렉트로 코리아’의 건설이 미래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이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