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인들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자인가? 말로는 민주주의를 역설하지만 정치행태가 비민주적이면 ‘표리부동한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처지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필수다.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내로남불’이 습관화되어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하는 정치인들의 성찰과 반성이 절실한 까닭이다.
정치인들은 왜 역지사지에 인색한가?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비판적 성찰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능력의 유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보수 또는 진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절대화하면 타협은 불가능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비판적 성찰 능력이 있어야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지사지의 객관적 인식’으로 상생(相生)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아전인수의 자기중심적 독선’으로 상극(相剋)의 길을 갈 것인가는 정치인의 성찰능력 여하에 달려 있다.
이러한 성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치인의 ‘권력에 대한 인식’이다. ‘수단으로서의 권력’과 ‘목적으로서의 권력’은 전혀 다르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투쟁이 일상화된다. 반면에 권력이 국리민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면 역지사지의 정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자신의 ‘신념’이 자칫 ‘독선’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정치인의 소명은 ‘개인의 신념윤리’보다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가 더욱 중요하고, ‘선한 동기’보다는 ‘좋은 결과’의 산출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의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누구나 역지사지를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정치인은 믿음을 줄 수 없고, 신뢰를 잃은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 평소에 아전인수를 일삼던 정치인이 갑자기 역지사지를 하겠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민주정치에서는 ‘쾌도난마(快刀亂麻)’식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원주의 가치관에 입각한 대화와 타협, 관용과 절제의 정신이 역지사지 정치의 토대를 구축한다.
역지사지의 정치를 위해서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승자는 패자에게, 다수는 소수에게, 여당은 야당에게 먼저 손을 내밀 때 협치가 시작될 수 있다. 강자가 약자에게 양보할 의사가 없거나 약자에게만 역지사지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가 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강자가 힘으로 포장한 ‘선택적 정의’는 약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역지사지이고, 역지사지의 정치는 인간의 한계와 권력의 속성을 반영한 ‘민주주의 가치관의 내면화’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은 정말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자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