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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사회문화대학, 창립 35주년을 맞아

대구사회문화대학(학장 이종환)이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1990년 ‘효목독서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대학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배움의 등불을 밝혀왔다. 당시 화랑공원이 ‘효목공원’으로 불리던 시절, 도서관을 거점으로 한 작은 배움터는 이제 지역을 대표하는 평생교육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1997년 3월, 사단법인 대구사회문화복지원 부설로 정식 개교한 대구사회문화대학은 ‘실버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년의 삶을 배움과 문화로 풍요롭게 물들이는 터전이 되었다. 35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며, 배움의 길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열리는 정규 강좌다. 음악 수업을 시작으로 저명 인사들의 특강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무려 2480여 회의 강연이 열렸으며, 약 1600여 명의 강사가 초청됐다. 인문과 사회, 과학과 예술, 정치와 법률은 물론 첨단과학과 명리학까지-다양한 주제는 삶의 지혜와 교양을 넓히는 자양분이 되었다. 특강에 나선 한 분 한 분은 우리 근현대사의 증인이자 살아 있는 역사였다. 또한 학생 스스로 인생 체험담을 나누는 무대도 마련되어, 배움은 곧 삶의 공유이자 공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학문은 강의실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매년 봄·가을이면 대구와 경북의 명소를 찾아가는 현장 실습이 진행됐다. 현장을 걸으며 배우는 수업은 단순한 답사를 넘어, 고향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애향심의 토대가 되었다. 다가오는 2025년,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 대구사회문화대학은 배움의 자리를 넘어, 인생 후반기를 풍요롭게 살아갈 지혜의 터전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 교육과 복지,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아우르는 실버대학의 역할을 누구보다 앞서 실천해온 것이다. 대학은 ‘무학년·무시험·수시모집’의 원칙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문을 지향한다. 매주 화·금요일 오전 9시 40분부터 이어지는 수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나누고 공감하는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이종환 학장은 “송승달 이사장을 비롯해 정종재, 박석돈, 심상철, 이옥분, 이종환, 김홍석, 박중곤 박사 등 수많은 이사진과 교수진이 정성과 열정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신장훈 학생회장, 김동진 이사, 추연식 감사, 백태현 감사, 그리고 정운돌 행정실장 등이 소임을 다해 주어 대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하고 있다” 고 했다. 또한 대학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교지 ‘문화대학’은 올해로 제26호를 맞는다. 창간 이후 거의 매년 발간을 이어온 교지는 학생들의 글과 연구, 체험담을 담아낸 기록집이자 세월을 건너온 또 하나의 역사책이다. 대구사회문화대학의 35년은 단순한 세월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노년의 삶이 배움과 함께할 때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대학은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0-12

대구수필가협회 창립 20주년 기념 세미나

대구수필가협회(회장 서정길)는 지난달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하는 문학세미나를 가졌다. 협회는 매년 시민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인문학 세미나를 개최해 왔으나 올해는 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의 특별한 세미나를 준비했다. 이날 세미나는 문학적 통찰과 미적 감성이 어우러지는 미학을 주제로 했다. 대구수필가협회는 문학단체 단일분과로서는 대구시인협회와 쌍벽을 이룰만큼 3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소통은 물론 시민 정서함양에도 앞장 서 왔다. 이날 행사에 앞서 서정길 회장은 “이번 세미나가 아름다운 가치와 새로운 영감, 창작의 동력이 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주제 강연에 나선 화가이자 시인인 김의규 작가는 ‘문학과 미학의 다리를 건너’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는 “문학으로써 예술을 알겠다면 예술보다는 문학에 머물기 쉽다. 예술로써 문학을 아는 것이라면 문학보다는 예술에 머물기 쉽다”며 그럼에도 문학은 분명히 예술 영역에 있다고 역설했다. 또 “예술은 생명과 삶의 생생한 증거이며 기록된 존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구가 ‘교육의 수도’라고 불리듯 ‘문학의 수도’이기도 하다. 이를 입증할 만한 것으로 대구문인협회 작가 수가 1200여 명을 상회한다. 이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다. 이뿐만 아니라 시, 아동문학, 소설, 수필 등 문학의 모든 장르에서 타 시도를 압도할 정도로 주요 작가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수필 분야는 2015년 9월 홍억선 수필가에 의해 장르별 문학관을 전국 처음으로 만들었다. 대구시 중구 명륜로에 있는 ‘한국수필문학관’이 그것이다. 이곳에는 10주년 사업 등 자료발굴을 통해 수필 관련 자료 4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국 문예지 창간호 400여 권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문단의 정체성이며 대구인의 긍지이자 자랑이라 할 것이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10-12

서미숙 수필가의 ‘종점기행’ 북토크

안동에서 활동하는 수필가이자 여행작가 서미숙이 최근 대구시 중구 ‘북랜드 문화공간 라온’에서 ‘종점 기행’ 북토크를 열었다. ‘안동 시내버스 종점 기행’은 저자가 4년간 안동의 24개 종점 마을을, 시내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가 기록한 작품이다. 그 속에 담긴 지역의 문화와 사라져가는 풍경을 수필과 사진으로 포착했다. 안동 시내버스 종점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구수한 안동 토박이말로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각별하다. 이 책은 독자에게 두 가지 길을 제안한다. 책을 읽고 종점 기행에 나서도 좋고, 책장을 넘기며 와유(臥遊)하듯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종점 기행’은 한 지역의 기록을 넘어,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과 여행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이번 북토크는 북랜드 라온 문학 TV 주관으로 마련되었다. 평론가 신상조의 진행으로 ▲저자의 집필 배경과 현장 취재담 ▲책 속 주요 작품 낭독 ▲독자와의 질의응답 ▲사인회 순으로 이어졌다. 종점 사진 슬라이드를 감상하면서 현장감 있는 저자 이야기와 독자 낭독을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안동 사투리 느낌을 제대로 살린 서정오 동화작가, 권순이 수필가, 김경숙씨, 남은숙씨가 책 속 이야기 낭독에 참여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장호병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은종일 수필과 지성 원장, 서정오 동화작가, 번남댁 종손, 지리산문학관 김윤숭 관장, 정만진 소설가, 김용락 시인, 문장작가회 회원, 수필과 지성 동인, SNS 통한 신청자 등 독자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장호병 교수 축사와 신상조 평론가의 재치 있는 진행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져 분위기가 훈훈했다. 독자 최윤정씨는 “책 한 권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을 줄 몰랐다”라고 했다. ‘수필과 지성’ 동인 윤흥용씨는 “'종점 기행' 책을 내기까지의 여정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가 막차를 타는 그 수많은 시간의 흔적이 오롯이 책 속에 담겨 있어서 고개가 숙여졌다. 오랜만에 글의 힘이 느껴졌던 시간이었고 내 마음속 한쪽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글 샘이 솟아나는 기분을 느낀 시간이었다"라고 했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10-12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지난 10월 1일과 2일, 방종현 수필가를 초청해 ‘평전 풍운아 김삿갓’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열었다. 이날 방종현 강사는 김삿갓의 해학적인 시와 함께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풀어내며, 그가 평생 삿갓을 쓰게 된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또한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구조와 양반 신분제의 변화를 알기 쉽게 해석했다. 방 강사는 “조선시대에는 3대에 걸쳐 벼슬을 하거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양반 자격이 상실되었다”며, “이 때문에 가문마다 글을 가르치는 독선생을 두었고, 김삿갓은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강의 중 하모니카 연주와 시조창, 노래를 곁들이며 특유의 재담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강의에 몰입한 수강생들은 함께 노래하고 손뼉을 치며 ‘풍류’를 즐겼다. 수요대학 이재희 학생회장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 강사의 이야기는 1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목요대학 김화순 학생회장은 “방 강사의 강의는 스토리텔링이 살아 있고, 하모니카 연주와 시조창이 어우러져 시청각이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 강의였다”며 “시니어대학의 새로운 아이콘”이라고 극찬했다. 한편,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인문학 강의를, 3시부터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종식 학감은 “옛 가요부터 현대가요까지 배우며 친목을 도모하고, 매번 다른 주제로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시니어아카데미 입학은 수시로 가능하며, 문의는 ☎ 010-8568-9528로 하면 된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5-10-09

보스포루스 노을 아래서 형제의 나라를 다시 보다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을 위협하는 강력한 패권 국가였다. 2200년을 이어온 로마제국을 무너뜨렸던 그 위엄의 흔적을 따라 떠난 여정, 그 길 위에서 한국과의 의외의 우정,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남긴 찬란한 흔적을 마주한다. 튀르키예는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천혜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아시아 대륙 97% 유럽 대륙 3%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교차하는 독특한 문명적 색채를 지닌 그들은 흥미롭게도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그들이 유독 한국에 더 친근감을 보이는 것에는 오랜 역사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와 돌궐(오늘날 튀르키예의 기원 민족)은 동맹관계를 맺고 당나라와 맞서 싸운다. 연개소문 장군이 돌궐 공주와 혼인하면서 양국의 유대는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 1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며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는 명칭을 현실로 만든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이 관계는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당시 조별리그 튀르키예 vs 브라질 전에서 한국인 주심의 오심으로 튀르키예 선수가 퇴장 당하자 그들은 격분한다. 그들의 분노는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공포에 떨게 할 정도였다. 3,4위전에서 또 다시 만난 한국 vs 튀르키예. 그들은 오심에 대한 앙갚음을 제대로 하리라 벼르며 경기장을 들어서다 무려 5만개의 튀르키예 국기를 흔드는 한국 응원단과 마주한다. 경기에 앞서 그들의 국가가 울릴 때 태극기보다 더 큰 월성기(月星旗)까지 펼쳐지니 그들은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는다. ‘터키는 1000명의 용사를 잃었지만 5000만의 한국인을 얻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날 흔들렸던 대형 튀르키예 국기는 지금, 앙카라 국립박물관에 소중하게 보관 전시되어 있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의 전통시장에 들어서면 값비싼 양탄자와 유리공예품, 향신료 등 5000여 개가 넘는 미로 같은 상점들에서 화려한 상업문화를 실감한다. 아디야만 넴루트산 정상에 자리한 고대 콤마게네 왕국의 돌자갈 무덤 위를 붉게 채우던 아름다운 일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외심을 안긴다.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인 카파도피아의 버섯바위와 파묵칼레의 석회온천 등 히에라폴리스의 고대유적은 잦은 지진으로 많이 훼손되었음에도 그 흔적만으로 찬란한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로마제국시대 만들어진 1800년 된 다리를 여전히 온전히 사용하고, 537년에 건설되었다는 성소피아 성당의 광대함은 짧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다만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며 새로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은, 400여 년간 오스만 제국의 정궁이었던 톱카스 궁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함과 화려함의 사치가 극에 달해 제국의 마지막을 암시한다. 황제의 접견실 천정 돔에 드리워진 750개의 전등이 달린 4.5톤의 샹들리에가 눈을 압도한다. 사치와 권력의 상징이던 궁전의 호화로움이 한 제국의 영화가 어떻게 쇠락으로 향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한국인을 반겨주던 튀르키예 사람들.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보며 ‘역사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나간 자리 위에 쌓인 시간의 흔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제국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형제의 나라로 이어진 우정이 한데 어우러진 그곳에서 인간의 욕망과 시간의 무게를 동시에 느낀다. 훈훈함이 더했던, 오래 기억될 여행이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09

10월, 다양한 축제 즐기러 봉화로 오세요

가을은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10월의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춥지도 덥지도 않아 홀가분한 옷차림으로 훌쩍 떠나기 좋은 시기다. 들길 질러 산길 돌며 물길 따라가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가을여행은 깨끗하고 수려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봉화가 제격이다. 골마다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청량한 소나무 숲에서는 송이가 익어간다. 송이 향이 퍼지는 가을 산자락과 볼을 붉히며 익어가는 사과밭, 자생하는 꽃들과 전통문화의 축제가 봉화의 가을을 보여준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10월 2일부터 10일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인 ‘2025년 백두대간 봉자페스티벌’이 열린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우리 산야에서 자라는 다양한 자생꽃을 볼 수 있고, 각종 가을꽃들이 백두대간수목원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10월 12일 백두대간수목원 일원에서는 2025년 외씨버선길 11구간 중 춘양목 솔향길에서 ‘봉화 함께 걷기’ 행사가 개최된다. 로컬 푸드, 버스킹 공연, 호랑이 관람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는 제29회 봉화송이축제와 제42회 청량문화제가 동시에 열린다. ‘송이 향에 반하고 한약우 맛에 빠지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송이축제는 전국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 천년의 솔 향을 간직한 봉화송이와 다섯 가지 한약재를 사료에 배합해 키운 한약우를 맛볼 수 있다. 이몽룡 선발대회, 오색 비빔밥 퍼포먼스, 풍류 한마당, 도전 골든벨, 씨름왕 선발대회 등이 열리고, 개막식엔 이수연, 정다경, 최재명 등의 가수가 함께 한다. 제42회 청량문화제에서는 전국 한시백일장, 제27회 경북도민 민속장기대회와 봉화의 고유전통문화인 삼계 줄다리기 재연행사와 봉화 보부상 마당놀이가 펼쳐진다. 10월 18일엔 제5회 봉화보부상 한마당축제가 보부상위령제와 함께 열린다. 80여 년 이어온 애전 보부상 위령제와 울진 봉화지역 장시를 담당했던 봉화상무사의 보존 및 전승을 위한 공연이 지역민과 함께 하는 축제다. 봉화는 1000m 이상의 산이 13개나 있다. 소백산과 태백산이 기둥이 돼 백두대간 32km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천혜의 자연과 남한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청량산의 가을 단풍은 기암괴석의 열두 봉우리가 조화를 이뤄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퇴계 이황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청량산의 빼어난 경관을 시문으로 남겼다. 단풍철이 되면 불쑥불쑥 솟은 바위 봉우리가 가을 단풍과 잘 어우러진다. 청량산의 청량사와 응진전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선 고요한 가을 속 낭만과 만날 수 있다. 청량산 자소봉과 장인봉 봉우리를 연결하는 하늘다리 아래로 펼쳐지는 경관 역시 절경이다. 매년 가을이면 가보고 싶어지는 곳 태백산 백천계곡 단풍축제는 10월 하순쯤에 열린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10월. 선선한 바람과 깊은 숲에서 나오는 송이 향,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봉화의 가을축제 현장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09

송도 바다와 함께 달리다

마라톤에 참가했다. 지난 9월 28일 송도에서 열린 ‘2025 포항2차전지 전국마라톤대회’였다. 일주일 전부터는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완주할 수 있을까 괜히 신경도 쓰였다. 함께 참가하는 둘째 아이도 그런 모양이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로 이날 있을 마라톤이 살짝 걱정되었다. 6월에 있었던 ‘2025 포항 철강마라톤 대회’ 접수를 놓쳐 아쉬웠는데 혹시 날씨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걱정은 기우였다. 흐린 날씨였지만 밀려드는 차들과 공영 주차장은 이미 대형버스와 자동차로 꽉 차 있었고 도로 옆으로 줄 선 차들 사이로 경찰의 교통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라톤 참가자들은 준비한 기념품 티셔츠를 입고 차 사이로 오가며 빈 도로를 가득가득 채웠다. 7000명의 사람들은 인파를 이루었고 바다의 흐린 색과 반대로 참가자들이 입은 주황색의 티셔츠가 가을 운동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분위기를 돋우었다. 자연스레 그 분위기에 아이와 함께 섞였다. 참가자들은 어린아이와 함께 참가한 가족들,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한 학생들, 마라톤 동호회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온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마라톤 시작을 기다리며 송도 여신상 앞에서 모여 오늘의 마라톤 코스를 이야기하거나 조금 뛰어보기도 했다. 부산에서 온 동호회 사람들은 원을 만들며 마라톤 시작하기 전 몸을 푸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송도의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다 주황색 물결의 마라톤 참가자들의 와글와글한 풍경을 구경하느라 모두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오전 9시가 되자 먼저 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했다. 축포와 드론과 함께였다. 이어서 10km가 10분 뒤에 출발하고 5km가 마지막 순서였다. 시민기자도 아이와 함께 5km 출발선에 섰다. 5km는 송도 여신상에서 출발해 수협 앞에서 유턴, 포항 운하 육교를 돌아 나오는 코스였다. 다른 코스보다 송도 바다와 함께하는 코스여서 기분 좋게 출발했다. 출발 소리가 들리자 뛰기 시작했는데 5km는 그냥 걸어도 한 시간 안에 도착하는 거리니 애쓰지 말라는 아나운서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1km쯤 달리니 벌써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세 분이 보였다. 대단하다 싶어 함께 뛰면서 응원했다. 뛰지 않고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젊은 엄마, 아이를 응원하며 같이 속도를 맞추는 아빠, 이야기하며 걷거나 뛰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4km가 다가오자 조금 힘들었다. 조금씩 걷는 듯 뛰었다. 그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음료대를 만나 물을 마시고 포항 운하 육교를 지나니 보라색의 결승점이 보였다. 다시 힘이 났다. 아이와 따로 기록을 만들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먼저 결승점에 골인했다. 시간은 38분이었다. 뒤에 도착한 아이는 43분이었다. 무언가 시원한 게 몸속을 흘렀다. 달리는 동안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이라 마라톤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 생각했는데 5km를 뛰어보니 10km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완주 메달을 받은 아이도 처음에 걱정과는 달리 눈을 반짝반짝한다. 송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완주 메달을 받고 기쁜 건 10km를 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불볕더위가 물러가니 남녀노소 달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독서는 물론이고 운동과 친해지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09

1985년부터 줄서서 먹던 곳···포항 토박이 식당으로 어엿한 중년

학창 시절, 친구와 만나려면 장소는 무조건 경북서림이었다. ‘시내서 보자’라고 말하는 그 시내는 포항우체국을 중심으로, 밑으로 역전까지였고 위로는 육거리까지를 말했다. 늘 사람들의 발길로 붐비는 곳이었고, 시민극장을 비롯한 영화관이 밤식빵에 밤처럼 중간중간 박혀있었다. 지금은 카페라고 하지만 그때는 다방과 구분 지어 커피숍이라고 불렀다. 투투쓰리, 르네상스, 핑크펄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아련해지는 추억의 장소가 즐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멀스멀 자취를 감추더니 지금은 포항 토박이 몇몇 형님 누님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1969년에 태어났다는 시민제과점과 만두 맛집 명승원, 운동회마다 단체로 배달시켜 먹던 초원통닭의 삼계탕은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시내의 터줏대감이다. 그중에 1985년부터 사람들을 줄 세우게 만들었던 조방낙지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조방낙지의 조방은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약자라고 한다. 낙지전골이 부산 범일동의 그 회사 앞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예전에는 줄 서서 먹던 곳이라고, 주인장이 볶아주면서 옛날에는 상견례를 이곳에서 하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40년 동안이나 포항의 토박이 식당으로서 어엿한 중년이 되었다. 공자가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불혹이라 했다. 낙지볶음이 끓고 있는데 지인의 문자가 와서 답장으로 조방낙지라고 사진을 보냈더니, 와우! 아직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주어 반갑다고 했다. 이처럼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추억이 한두 방울 묻어 있는 식당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누런 차림표 위에 그 옛날 간판을 흑백 사진으로 남겨놨다. 메뉴를 알려주는 글씨도 궁서체로 아주 진지하다. 볶음과 전골 두 가지뿐이다. 2인분 주문하면서 새우도 맛보고 싶다고 했더니, 반반 섞어 가능하다고 했다. 먼저 기본 반찬이 차려졌다. 할아버지 밥상에 놓였을 것 같은 종지보다 조금 큰 모양의 반찬 그릇에 오뎅볶음, 감자샐러드, 미역줄기볶음, 젓갈, 무말랭이 김치, 김치, 특히 대접에 담긴 물김치가 시원해서 매운 낙지볶음 한술에 곁들여 속을 달래라는 뜻인 듯했다. 다시마에 비빈 밥을 싸서 쿰쿰한 젓갈에 찍어 먹는 게 별미였다. 우동과 당면 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우리는 당면을 사리로 넣었더니 간이 잘 배 입에 착 감겼다. 밥은 기본으로 대접에 나와서 비벼 먹는 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었다. 맛이 예전 그대로인지 단맛이 덜했다. 최근 집 주변 유명 체인의 음식은 간이 달고 짜다. 포항을 떠나 서울에 오래 살아온 친구들이 고향에 내려와 함께 식사할 때면 무심코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 짜고 맵기만 할 뿐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가면 실망할 뿐이라고 자주 말한다. 그럴 때마다 평생 경상도를 떠나본 적 없는 나로서는 언짢다. 그 말은 내가 이탈리아 여행 가서 현지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아 못 먹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세월이란 양념이 친구들 입맛을 변화시킨 것이 분명하다. 전골을 국자로 떠서 비벼 먹었다. 조방낙지는 달지 않아 반가웠다. 시대에 맞춰 맛이 바뀌었다면 오히려 서운할 뻔했다. 밑반찬도 골고루 먹으며 가끔 물김치 한 모금으로 소화제를 대신했다. 식당에 손님들은 이전부터 찾아온 단골로 보인다. 기둥에 포장하면 가격이 2000원 저렴하다. 이것도 매력적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둑해졌다. 썰렁하던 중앙상가에 조명이 들어와 그나마 아늑했다. 실개천에 물도 졸졸 흘렀다. 시내를 살리려고 행사를 하고, 벼룩시장도 열린다. 조방낙지보다 한 골목 위에 공영주차타워도 있어 주차도 수월하다. 사라지기는 쉬워도 되살아나긴 어려운 추억이 시내에 있다. 포항시 북구 중앙상가 6길 10, 전화 (054)242-1467.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30

사진가 강병두가 들려주는 ‘활 이야기’

‘활쏘기’는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이다. 씨름, 택견도 이에 해당한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활쏘기’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집, 당대 풍속화에서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무예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활쏘기’는 ‘국궁’으로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활’ 또는 ‘그 활을 쏘는 기술’을 일컫는다. 바른 자세로 정신을 집중해 과녁에 활을 쏘는 이 고요하고도 비범한 스포츠는, 전국 약 400개의 활터에서 오늘도 습사(활쏘기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안동시 상아동에 자리한 안동시 궁도장 ‘영락정’에 아침 안개를 뚫고 가 ‘자만이 없기를 바라며 남의 허물을 보지 않기를 기원’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이 있다. 그리그 그 경험을 담아 에세이집 ‘사진가 강병두의 활 이야기’를 펴낸 이가 있으니, 바로 사진가 강병두 씨다. 대구 출신 강병두 씨는 오래전 안동에 정착해 안동의 문화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런 그가 국궁을 시작했을 때 그저 잠깐의 취미생활이겠거니 여긴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명궁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5단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강병두는 사진가이자 영락정 접장으로 불린다. 접장이란 다섯 개의 화살을 과녁에 명중시키는 ‘몰기’ 과정을 통과한 사수를 일컫는다. 입문 전에 그는, 국궁은 한량이나 어르신들 혹은 돈 많은 사람들의 유흥거리겠거니 생각한 적도 있다. 마음속으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으나 그런 편견이 있던 차에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의외로 젊은 사람도 많고 심신이 건강해지는 운동에는 국궁만 한 게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2018년 입문해 코로나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험을 틈틈이 기록한 것을 책으로 내놨다. “무형의 자아를 찾아가는 분야라 사실 늘 재미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고통이 따르고 고비를 넘어 새로운 방법을 찾다 보면 어느덧 변화된 자신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걸 인지할 때 기쁨과 즐거움,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더라구요.” 1부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부 ‘활을 배운다, 인생을 배운다’, 3부 ‘과녘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로 구성해 활쏘기에 임하는 자세와 철학 등을 담아냈다. 평소 그의 모습처럼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구성한 활쏘기 입문서, 활쏘기 에세이집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 요즘 가장 화제인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간을 채집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는 시간을 채집하고 찰나를 채집해 사진과 활쏘기라는 결과물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활도 사진도 실은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응시하는 일이다. 그 응시를 멈추지 않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만의 행보가 기대된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30

다시 만난 한국 근현대미술, 4인의 거장들

중간고사를 마친 아이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4인의 거장들’ 전시를 다시 보기로 했다. 예매된 표가 두 장이 남아 있기도 했고 시험을 마친 아이의 오후 시간이 괜찮기도 해서였다. 지난 7월 더위를 피해 관람한 후, 두 번째 만남이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전시를 막 시작했을 때의 북적거림이 없어서 좋았다. 차분한 관람이 되겠다 싶었다. 입구에선 마침 도슨트의 전시 해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굳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됐지만 도슨트 앞에는 서너 명의 관람객들만 서 있는지라 조용한 미술관 분위기에 잔잔한 설명을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그 앞에 반짝이는 눈빛을 보탰다. 작품을 전시한 이유와 화가들의 이름 터널을 지나니 작은 방처럼 꾸민 눕는 소파 위에선 4인의 거장들에 대한 소개가 영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신 분들부터 차례로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화가는 이중섭이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많이 표현한 화가는 독특하게 은지화를 남겼다. 지금은 은지화 600여 점 중 반이 사라지고 그중 3점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 전시되어 있다. 은지화가 모마에 전시될 때 화가가 돌아가셨다 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편지화를 지나니 넓은 공간의 박수근이 기다리고 있다. 서민의 삶을 그린 화가. 박수근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도슨트가 소개한다. 화강암의 재질이 먼저 떠오르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세 가지가 없다. 사람의 얼굴 표정이 없고 배경이 없고 젊은 남성이 없다. 화가는 탁본과 프로타주 기법을 즐겨 썼고 석불과 석탑에서도 영감을 얻고자 경주도 많이 방문했다고 적혀있다.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의 표지로 쓰인 ‘수하(樹下)’도 볼 수 있었다. 김환기의 작품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사진 촬영 불가다. 그래서인지 관리자들도 민감하게 관람객을 살피는 듯했다. 작품들은 ‘환기 블루’라는 이름처럼 파란색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파란색은 화가의 고향인 신안 앞바다의 색이라 하니 서양에서 파란색을 우울과 연상시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파란색이 좋다는 아이도 서양에서 우울과 연결했다는 게 별로라고 말한다. 이제 파란색이라면 김환기의 파란색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몇 년 전, 홍콩의 경매에서 우리나라 미술품 최고가인 132억 원에 ‘우주’가 낙찰된 것부터 상위 10개의 작품 중 9개가 김환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부인인 김향안, 달항아리, 점화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마지막은 장욱진의 작품을 보았다. 장욱진의 작품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화가를 생각하면 나무와 새가 먼저 떠오르는데 부인과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된 걸 보니 순수한 아이의 동심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에도 천진난만한 동심이 들어있는 건가 생각해 본다. 아이 같은 따뜻한 그림이지만 아이가 그린 것 같지는 않은 화가의 그림 속에 단순함이 느껴졌다. 아이와 다시 둘러본 4인의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음에도 다르게 표현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에 한 번 더 새긴 시간이었다. 경주예술의 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열리는 ‘4인의 거장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긴 추석 연휴에 뭘 할지 정하지 않았다면 ‘4인의 거장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아직 관람전이라면 어서 만나기를 바라고 두 번째 관람이어도 좋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30

신승원 방언학연구소장 48년 방언 연구

방언학연구소 소장 신승원 박사를 만나기 위해 최근 그의 연구소를 찾았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신 소장이 평생 수집한 책과 자료들이 입구 현관부터 집안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본가에도 이와 비슷한 양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언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지만, 문학 서적, 군지·읍지·고지도, 한시 및 한문 서적, 미술품·서예 작품·골동품 등도 소장하고 있었다. 신 소장은 1977년부터 48년간 방언을 연구해왔으며, 앞으로의 꿈은 “한국 방언박물관을 설립해 전 세계에 한국 방언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방언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일반인에게 방언을 전파할 방법이 부족하다고 느껴 박물관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낸다”는 속담처럼, 방언 연구는 그 지역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라 시대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경상도 방언을 먼저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당시 중심 언어는 경주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통시방언학의 권위자인 오종갑 교수에게 박사 학위를 받으며 큰 영향을 입었다. 통시방언학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언어 변화, 즉 역사적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박물관 설립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무 연수도 이수했다. 현재까지 수집한 방언 어휘는 13만 5389단어에 달한다고 한다. 이 모든 단어는 기존의 방언연구자들이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다. 신 소장은 “사투리는 조상의 얼이 담긴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이라며 2016년 사투리가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향후 인간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도 열둔 셈이라 했다. ”판소리나 민속놀이처럼 사투리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K팝, K영화, K푸드가 세계를 이끄는 지금, 한국 방언 역시 글로벌 문화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09-28

한국전선문화관, ‘2025 전선에서Ⅱ’ 첫 무대 성황

전쟁의 기억은 때로 노래로 되살아난다. 한국전선문화관이 주관·기획한 ‘2025 전선에서Ⅱ’ 첫 무대인 전선의 노래가 지난 24일 오후 3시 대구시 향촌동 한국전선문화관 2층에서 열렸다. 방종현 달구벌 하모니아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하모니카 선율과 노래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달구벌 하모니아는 ‘전선의 노래’를 주제로 합주와 독주를 선보였고, 한대곤·김임백씨의 노래가 더해져 공연의 무게감을 높였다. 여기에 김윤숙·김명자·최윤화씨의 하모니카 연주가 흐르며 무대는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예술혼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관람객들은 “전쟁 시절의 노래가 그 시대의 기억을 소환했다”, “자유를 지켜낸 선열들의 희생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는 소감을 전했다. 공연장에는 하청호 대구문학관장, 허화열 서라벌정가단 단장, 권정태 전 한국사진가협회장, 신재천 영화감독, 문성희 죽순문학회 회장, 신승원 방언연구소장, 시인 손수여·고영애·전영귀, 수필가 김황태·정영태·유무근 등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와 문인, 시민 40여 명이 함께했다. 전선문화(戰線文化)란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피란 예술인들이 붓과 악기를 놓지 않고 이어온 문화예술 활동을 뜻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피란길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래하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예술은 전쟁보다 강했고, 그것은 대구라는 공간 안에서 활짝 꽃피었다. 이러한 유산을 기리고자 한국전선문화관은 2024년 3월, 대구 중구 북성로 옛 ‘대지바’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전쟁기 피란 예술인들의 기록과 작품을 수집·보존하며, 국내 유일의 전선문화 전문 문화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5 전선에서Ⅱ’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연속 프로그램이다. 전선문화를 단순히 기록에 두지 않고 오늘의 무대로 다시 불러내는 시도다. 이번 시리즈는 달구벌 하모니아의 하모니카 공연을 시작으로, 10월 22일 어쿠스틱 듀오 ‘오늘 하루’의 포크 공연 Antiwar, 11월 26일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의 시극·악극·시낭송 무대 구상과 이중섭으로 이어진다. 한국전선문화관 관계자는 “전선문화는 대구만의 독특한 문화자산이자 한국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라며 “그 기억을 오늘의 예술로 재해석해 지역 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밝히는 일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9-28

녹향 음악 감상실, 낭송과 클래식의 만남

대구문학관(관장 하청호)과 도심재생문화재단(대표 안상호)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문학 유유(悠悠)하게’가 녹향 음악 감상실에서 지난 25일 오후 3시에 열렸다. 프리마베라 낭송회와 클래식이 만나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시민에게 ‘심미적 위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행사였다. 낭송회와 클래식이 결합한 연회는 가을의 문턱에서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향연이었고, 예술이 삶을 재생시키는 힘을 지녔음을 증명했다. 하청호 대구문학관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자리에서, 박영선 글로벌 시낭송회장은 송수권 시인의 ‘여승’을, 이은정은 카루소 가사의 ‘번역 시’를, 정선영은 김남조 시인의 ‘태양의 각문’을, 이연희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이경숙은 ‘네루다의 시’를, 이은희는 나태주의 ‘내 안의 사람’을 각각 낭송했다. 각 시인은 저마다의 호흡으로 생명과 언어의 떨림을 시민 앞에 펼쳐 보였다. 낭송은 청중의 귀에만 머물지 않고, 가을 하늘을 닮은 정취와 함께 시민들의 가슴속에 스몄다. 고전과 현재를 잇는 녹향이 이날의 자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녹향 음악 감상실의 역사적 맥락이다. 1946년 향촌동 자택 지하에서 시작된 작은 공간이 오늘날까지 80여 년에 이르는 뿌리 깊은 문화적 흔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구가 음악과 문학의 숨결을 오롯이 품은 도시임을 증명한다. 파바로티의 생애와 음악적 공헌을 설명하며, 이해와 공감을 동시에 열어 준 이정춘 실장의 해설 또한 녹향의 예술 정신을 대변하는 순간이었다. 클래식 ‘네순도르마’, 여자의 마음을 낭송 사이사이에 감상하는 고요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시민이 원하는 음악을 신청해 들을 수 있다는 녹향의 운영 방식은, 음악을 단순히 ‘전시되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 점은 문화 향유의 민주성과 참여성을 동시에 보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하다. 예술은 삶을 치유한다는 말. “역사 깊은 장소에서 시와 클래식을 함께 들을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는 방청객의 소감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일상 속 소음에 갇힌 현대인에게 낭송과 음악은 내면에 심호흡을 가능케 하는 시간이었다. 또 다른 중년 신사가 느낀 매력 역시, 삶이 지칠수록 사람들은 ‘나만을 위한 음악’, ‘나만을 위한 언어’를 찾게 된다는 사실이다. 녹향은 바로 그런 갈증을 해소하는 공간이다. 다가올 가을의 길목에서 다음 달 29일 오후 3시 베토벤에 이어 11월 27일 오후 3시는 바흐가 시민을 기다린다. 단순히 세계적 거장의 음악을 듣는 자리를 넘어, 시와 함께 어우러지며 새로운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연회의 성취가 이후에도 지속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예술은 삶을 꾸며주는 사치가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낭송과 클래식이 함께한 녹향의 가을은 시민에게 ‘예술적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 바쁜 도심 속에서도 문화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고 시민의 영혼을 정화 시킨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예술의 장을 더욱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9-28

다양한 옷과 같은 스피치

‘스피치 시대’가 우리 앞에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력만 있으면 되겠지, 필기시험만 잘 치면 되겠지 하는 시대 의식은 본인 스스로 패배자로 인식되는 시대다. 본인의 능력을 나타내고 남에게 인식시키는 방법으로서 서로 서로 자격이 비슷한 요즈음 시대에 스피치가 단기간에 상대방에게 설득력과 재질을 보여주고 인정받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스피치도 이제 다양성을 갖추고 때와 장소에 맞게 해야만 상대방에게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다. 등산을 하려면 등산복을 입어야 하는 것과 같다. 기능성 등산복이 더 편리함을 주고 비록 값이 비싸지만 등산에 제일 효과가 좋고 편안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야유회를 갈 때 캐주얼을 입어야 주위 사람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고, 대화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직장 근무 시 같은 동료와 함께 회사 유니폼을 입고 근무함으로써 동지감과 의무감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턱시도와 예쁜 드레스를 입고하는 결혼식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갈 수 없는 것처럼 스피치의 원리도 같다고 보아야 한다. 웃어른과의 대화에서는 짧고 쉽게 예의바르게 표현하는 하는 것이 요점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당당하고 명쾌하게 발표해야 자신의 신분과 직책에 맞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유머와 정이 넘치는 대화를 한다면 친근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고, 인간적인 폭도 넓혀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을 상대방에게 극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이제 이렇게 스피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세분화, 전문화, 인격화되어 가는 시대다. 자기 자신의 인격과 목표에 맞는 세분화 전문화된 스피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재질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고 앞서 나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스피치는 나와 나의 스피치, 나와 타인의 스피치, 나와 소수의 스피치, 나와 다수의 스피치로 구분된다. 나와 나의 스피치는 독백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와 타인의 스피치는 대화, 상담 등 1:1의 대화법이며, 나와 소수의 스피치는 면접, 프리젠테이션, 회의 등이고, 나와 다수의 스피치는 연설, 강연 등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스피치를 의미한다. 이렇듯 옷도 그 상황에 맞게 사전에 준비를 하여 갖추어 입듯이, 스피치 또한 옷과 같이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옷을 갖추어 입는 것보다 더욱더 많은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본인 스스로 스피치에 대한 작은 철학을 세워 철저한 전문성으로 남과 대화할 수 있는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져야 한다. 스피치에서 이기는 자 다른 곳에서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09-28

신라 금관(金冠) 6점이 한자리에 모이다

찬란한 황금문화가 한 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대 고분에서 발굴된 금관은 총 7점. 이 가운데 6점은 신라, 1점은 대가야 금관이다. 금관(金冠)이란 말 그대로 황금으로 만든 관모를 의미한다. 전 세계 현전하는 금관의 절반 이상이 신라와 가야 등 한반도 고대 문화권에서 나왔다. 이는 한반도의 찬란했던 당시 금속공예와 장례문화를 대변한다. 신라 금관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1년 경주의 ‘금관총’이다. 이후 금령총(1924년), 서봉총(1926년), 천마총(1973), 황남대총북분(1973)에서 잇달아 발굴된다. 교동 금관은(1972년) 도굴로 출토되었다. 현재 황남대총북분, 금령총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서봉총 금관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순회 전시 중이다. 천마총, 금관총, 교동 금관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으며, 대가야 금관은 서울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라금관 특별전’이 함께 준비 중이다. 신라 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아 찬란했던 한민족의 고대 황금문화를 각국 정상들에게 선보인 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2층 상설전시장 내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일반인에게도 12월 14일까지 전시한다. 이 역사적 기회가 무려 무료관람이다. 1921년 금관총 발굴은 우연이었다. 일제강점기, 한 주막의 증축공사 도중 발견된 유물이 무려 4만여 점. 당시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본인에 의해 불과 나흘 만에 수습되었지만, 이 사건은 경주 일대 고분군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이후 일제는 조선총독부 고적조사과를 설치해 금령총과 서봉총을 잇달아 발굴한다. 해방이후인 1973년에 대규모 발굴조사가 이어졌다. ‘경주155호분’이라고 불리던 고분은, 금관과 함께 ‘천마도(天馬圖)’가 출토되면서 천마총(天馬塚)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같은 해 황남대총의 북분에서는 부인대(婦人帶)라는 명문이 새겨진 금제 허리띠가 금관과 함께 발견되면서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임을 알려준다. 흥미롭게도 남분, 즉 왕의 무덤에서는 금관대신 금동관이 나왔다. 이는 금관이 왕뿐 아니라 왕비와 왕실 일원에게도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교동 금관은 도굴꾼에 의해 경주시 교동 폐고분에서 도굴되었다가 국가에서 압수한 사례다. 6점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금관이지만 제작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금관들은 발굴 당시 피장자의 머리 위가 아니라 얼굴 전체를 덮는 형태로 발견된 점에 주목한 학자들도 있다. 2000년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이를 근거로 ’금관은 실제 착용 용도가 아니라 장례의례에 사용된 ‘데스마스크(Death Mask)’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금관을 단순히 권력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고대 신라인들의 사후 세계관과 장례문화를 탐구할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백제도 금관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다.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과 정신세계가 깃든 신라 금관은 그래서 더 귀중하다. 11월에 시작될 특별전시는 경주, 서울, 청주를 번거롭게 오가지 않고도 찬란한 신라금관 6점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다. 한민족(韓民族)의 자긍심이 한층 더 높아질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25

어린이의 시선으로 다시 삶을 바라보게 한 책 한 권 ‘창가의 토토’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계절, 따뜻한 햇살 아래 책 한 권을 펼치기 좋은 시기다.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잔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주인공 토토의 엉뚱하고 순수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책장을 펼쳤을 때, 주인공 토토의 행동은 낯설게 다가왔다. 수업 시간에 창밖만 바라보거나 길가 아저씨를 불러 세우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어린이라면 그럴 수 있지”, “그 나이에는 당연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며,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토토가 ‘문제아’로 낙인찍혀 쫓겨난 뒤 들어간 도모에 학원은 독자에게도 놀라움을 준다. 입학 첫날 네 시간 동안 토토의 이야기를 들어준 교장선생님, 원하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수업, 아이들의 마음을 존중하는 분위기는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토토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는 대목은 교육 현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실제로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공부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고 싶다’는 교사의 마음과 겹쳐지기도 한다. 물론 제도적 한계 속에서 모든 것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한 아이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여 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평생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책을 덮은 뒤에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원망하거나 감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더 귀 기울이고 싶다는 다짐 또한 남았다. ‘창가의 토토’는 단순한 성장담 그 이상으로서,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시선과 마음을 되살려낸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호기심과 자유로운 마음은 어른이 된 지금의 삶에도 충분히 의미 있는 깨달음을 준다.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가 작은 일상의 순간들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다시 한번 일깨운다.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스스로 마음속 ‘토토’를 만나고, 세상과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25

2025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공개회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습관적으로 훝어보던 SNS에 타음조사 공개회 신청 접수폼이 보였다. 막연히 좋을 것 같아서 아이의 이름과 함께 적어냈다. 얼마 뒤 문자가 도착했다. 당첨 문자다. 771명이란 숫자가 많게 느껴지기도 했던 터라 경쟁률이 치열하지 않았나 했다. 현장에 가서야 5:1이란 경쟁률을 뚫고 얻은 행운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공개회는 신종의 안전한 타음조사와 적절한 청음환경 조성을 위해 참석인원을 제한하여 운영했다. 내빈과 특별 초대 대상자를 제외한 총 771명을 신청을 통한 추첨으로 뽑았는데 이는 성덕대왕신종이 조성된 연도다. 타음조사는 1996년 이후 4번째며 올해부터는 5년마다 타음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종을 쳐서 음향과 진동을 측정한다. 그 중 맥놀이와 고유 주파수라는 두 가지 항목을 중점적으로 보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건강검진이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종소리가 주변 100리까지 퍼졌다고 기록되어있다. 타종은 모두 12회로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씨와 서울 보신각 5대 종지기 신철민씨가 맡았다. 1~4회는 1분 30초 간격, 5~12회는 1분 간격으로 진행되었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공간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커졌다 줄었다 다시 커지면서 스르르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서양의 종과는 다른 묵직한 깊이감이 느껴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건용 작곡자는 마음이 실리는 기분이라 소회했다. 타종 이전과 이후에는 이애주 한국전통춤회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새하얀 천자락이 까만 밤하늘 사이로 일렁이자 마치 비천상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행사는 24일 오후 7시에서 7시 45분까지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종료된 시간은 8시 10여 분이 지나서였다.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22년 만이다. 1993년 이전만 해도 경주시민들은 박물관에 모여 매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교통편이 불편했던 시민기자는 안타깝게도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 행사가 더 뜻깊다. 게다가 성덕대왕신종은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해마다 박물관에서는 각 학교에서 뽑혀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대회를 치렀다. 2시간에 한 대인 마을 버스를 타고 경주역 부근에 내리면 작은 걸음으로 다시 한참을 걸어 박물관에 도착했다. 크기도 크거니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성덕대왕신종은 2년 동안 목표물이 되었다. 비천상이 어린눈에도 예뻐 보여 열심히도 그렸었다. 그러다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물감이 그림을 뒤덮는 순간 사실주의 그림은 순식간에 추상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덕에 9살 봄까지 2년간 무관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경주역 앞에서 먹은 자장면은 언제나 맛있었다. 종 앞에 서면 세월이 한참 지나 아이가 그 당시 내 나이가 되어도 그날의 기억들이 생생하다. 행사가 끝나고 종 앞에서 기념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으나 많은 인파로 다음을 기약했다. 엄마와 아이 모두 첫 종소리다. 훗날 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오늘의 설레임과 근사했던 종소리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25

10년을 한결 같이···뚝배기에 담아 나오는 슴슴한 대왕갈비

10년 이상 한자리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왕갈비(포항시 북구 두호동)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비결이 궁금해서 가족과 함께 가 보았다. 갈비, 특히 돼지갈비 구이를 가족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라 기대가 됐다. 오후 2시 30분~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라 끝나는 시간에 도착했다. 손님들로 붐비기 전에 먹으며 주인장에게 맛의 비결도 물어볼 참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들어서며 바닥과 벽을 자세히 살폈다. 보통 고깃집은 기름때로 미끌거리기 때문이다. 밝은색 바닥이 깔끔해서 평소 관리가 깔끔한 것 같아 안심했다. 5인분을 주문하니, 밑반찬이 먼저 깔리고 양념갈비가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주인 내외가 젊은 시절엔 김치까지 모두 담가 사용했는데,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힘이 들어 김치만 국산을 사서 쓰고, 나머지 장아찌 종류는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다. 파김치와 깻잎김치까지 집 반찬처럼 깔끔한 상차림이었다. 고기 굽는 방법을 써서 테이블마다 두었다. 1. 고기를 하나씩 굽지 말고 넉넉히 올린다. 2. 자르지 말고 통째로 굽는다. 3. 자주 뒤집는다. 4. 화력이 세면 스위치를 끄고 중간 불에서 굽는다. 5. 구워진 고기는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가운데 새 고기를 올려 불판이 마르지 않게 한다. 써진 대로 차분히 구웠더니 타지 않고 적절히 맛있게 익었다. 요즘 귀한 상추에 고기를 얹고 파절이를 올려 쌈을 싸서 먹으니 달지도 짜지도 않아 우리 입맛에 맞았다. 양파절임을 추가하면서 고기의 단맛이 싫지 않는데 양념을 어떻게 하는지 여쭈니, 건강에 좋은 재료만 넣는데 비법은 비밀이라고 했다. 그사이 5인분이 순삭이라 3인분 더 추가했다. 돼지갈비는 갈비뼈에 고기가 붙어 나온 채 조리한 고기 요리이다. 한국에서는 갈비뼈 중 앞쪽(1~4번 또는 5번)을 ‘(돼지)갈비’ 또는 ‘쪽갈비’, 갈비뼈 중 앞쪽(갈비)을 제외한 나머지를 ‘등갈비’로 구분하여 부른다. 간혹 갈빗대가 없이 나오는 곳도 있는데, 대왕갈비는 모두 뼈와 함께 있어서 안심이었다. 대왕갈비의 가장 큰 장점은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적당하여 고기의 풍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념 또한 자극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맛이 느껴져, 특히 파김치와 함께 먹으면 조화를 이룬다. 갈빗집에서 밥과 냉면이 후식이다. 나이 들면서 마음에 드는 음식점의 기준이 밥이 맛있는 곳이 될 만큼 밥에 진심이다. 비빔냉면과 된장찌개와 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공깃밥 뚜껑을 열며 살짝 떨렸다. 고기 맛은 합격인데 밥이 부실하면 다시 방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윤기가 흐르는 맛있는 밥이라 기분이 좋았다. 돼지갈비의 기름기를 심심한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축구선수 이동국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단골이었고, 연예인 전현무의 방문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우리가 먹고 나올 때 손님이 가득 찼다. 영일대 해수욕장 근처라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였다. 30여 년 지켜온 명성을 50년 넘어서도 이어가길 바란다. 아쉬운 점이라면 주차장이 없었다. 가게 앞 도롯가에 세우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월~일요일 오전 11시 50분에 문을 열고, 오후 9시 10분 라스트 오더이다. 휴무일인지 전화해 보는 걸 추천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23

지금은 아빠들도 ‘육아휴직시대’

최근 출생아 수가 반등한 것처럼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주위를 보면 아침에 출근 대신 아기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보거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더운 여름날 아이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빠를 보는 건 낯설지 않다. 육아와 돌봄이라는 영역은 보통 엄마들의 역할로 여기고 있지만 이제는 아빠들도 책임을 함께 나누고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용보험에 가입된 일반 회사의 남성 근로자 육아휴직 사용률도 증가 추세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의 고용행정통계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1~6월) 육아 휴직급여 수급자 중 남성 비율은 36.4%로 나타났다. 지난해(31.6%)보다 훨씬 높아진 수치다. 상대적으로 육아휴직을 하기 쉬운 공무원들의 남성 육아휴직은 2024년 50%로 두 명 중 한 명이 사용했다. 2년 전, 육아휴직을 사용한 김정현(37)씨는 “육아휴직을 신청하겠다고 했을 때 크게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6개월 쓰고 나니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본다는 건 아빠로서 큰 보람이었다”고 했다. 경북과 포항에서도 중소기업의 남성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에 대해 장려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권장하는 분위기다. 한 예로 포항의 중소기업인 파인스에서 올해 남성 직원 4명이 육아휴직을 하고 1명은 단축 근무를 하게 했다.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면서 육아휴직에 큰 고민 없이 아빠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회사의 적극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이렇게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높아진 이유는 직장에서의 근로 시간 단축과 육아휴직수당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육아휴직을 망설이게 한 경제적인 부분도 지난해보다 지원 금액이 올라 육아휴직 시 최대 450만 원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육아휴직수당의 상한액이 올라가고 사후 지급금이 폐지된 이유도 컸다. 하지만 아직은 공무원들과 일반 회사 간의 차이는 있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택한다. 그들은 일과 회사보다는 가족의 행복한 삶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서다. 아이와 하루 종이 같이 있으면 아이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하고 잠을 못 자기도 하고 여러 가지 육아의 어려움이 있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신경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휴직하기 전에는 몰랐던 아내의 육아 고충과 서로의 역할에 대해 소통하고 아빠라는 진짜 정체성과 사랑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빠육아휴직자들은 사회적인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있다. 아직은 아이의 주 보호자를 엄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아이가 아파서 간 병원에서도 아빠가 있는데도 엄마는 같이 오지 않았냐는 시선을 느끼기도 하고 육아하는 아빠를 기특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현재 육아를 하고 있는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두고 자신의 커리어와 육아휴직 사이에 고민이 있었지만 소중한 지금을 선택했다. 그들은 “ ‘대신 일할 사람은 있지만 대신 할 아빠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지만 이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아내 혼자서 육아를 할 수 없다. 서로 부대끼면서 성장해야 가족이다“라고 말하며 아빠 육아휴직을 적극 추천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23

공원에서 만난 그림 같은 노부부

휴일 오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덥던 여름이 끝나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절기 처서가 지났다. 걷기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집을 나서는 발걸음마다 기분이 상쾌했다. 도심 속에도 여기저기 산책하기 좋은 초록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환자복을 입은 흰머리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그 곁에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가 무어라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바람은 초록나무 사이를 스치며 은은하게 불어왔다. 두 분은 오롯이 서로를 바라보며 오가는 얘기 속에 웃고 있었다.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내 발은 걷고 있지만 나의 눈길은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액자로 남았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도 인상 깊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저 스쳐 지나기에는 아쉬워, 조심스럽게 사진 두어 장을 몰래 찍었다. 부부는 인생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라는 사실이 두 분의 모습에서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 핸드폰에 사진을 담고도 그 눈길 떼지 못해, 일부러 그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용기를 내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 그 주변을 몇 바퀴나 더 돌았는지 모른다. 짧은 인사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인사를 받은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기운이 전해졌다. 나는 그날 공원에서 노부부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두 분은 앉았던 자리를 정리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앉아계신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그곳을 떠났다.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은 잔잔한 울림으로 가득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배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은 다르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삶의 훈훈한 교훈을 남겼다. 진정한 부부의 모습이란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함께 걷고, 함께 웃고, 서로를 지켜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우연히 만났던 두 분의 모습을 행여 또 볼까 싶어 나는 휴일이면 공원을 걷는다. /김영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23

50년 역사··· “족보는 책이 아니라 조상”

대구 중구 남산동 인쇄 골목 한가운데에는 50년 넘게 족보와 문집 제작에만 몰두해온 ‘대보사’가 자리하고 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책으로 가득찬 내부는 마치 도서관을 연상케 하며, 정갈히 정리된 족보와 문집에서 은은한 종이 향이 퍼져 나와 차분한 기운을 준다. 대보사의 역사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대표 고(故) 박노택 회장이 ‘서성인쇄사’를 세운 것이 출발점이다. 당시 대구 유지였던 이석기씨가 “내 점포를 빌려줄 테니 인쇄소를 해보라”라고 권유하며 물심양면 지원한 인연이 발판이 됐다. 이후 1981년 ‘대보사’로 상호를 변경하며, 족보와 문집을 위한 국내 최초의 청 타조 판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는 2대 박도규 대표(77)가 가업을 이끌고 있으며, 장남 박종찬 기획실장이 3대째 전통을 잇고 있다. 반세기 동안 대보사는 족보와 문집 출판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대보사가 지켜온 ‘족보’는 단순한 책이 아니다. 가문의 뿌리이자 조상의 발자취를 기록한 소중한 역사다. 예로부터 귀감(龜鑑)이라 불리며, 친족 간의 관계를 확인하고 가풍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대보사에서는 족보를 “책이 아니라 조상”이라 여기며, 완성된 족보를 ‘납품’이 아니라 ‘모셔간다’고 표현한다. 일반 인쇄물과 달리 운반비를 따로 받지 않고, 한 장 한 장을 조상으로 대하며 소중히 다룬다. 배부 또한 택배나 우편이 아닌, 문중에서 직접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심지어 족보에는 가격표조차 붙이지 않는다. 성경책처럼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거룩한 정신이 담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족보를 집안의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며 상에 올려놓고 절을 올리기도 했다. 핵가족화와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한때 봉건적 유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대보사 같은 곳이 있어 조상들의 지혜와 가문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반세기 동안 뿌리 찾는 이들의 곁을 지켜온 대보사. “족보는 곧 조상”이라는 신념은 오늘도 남산동 골목에서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1대 박노택 회장, 2대 박도규 대표, 3대 박종찬 실장까지 3대에 걸쳐 약 50년간 활동하며 대략 4500~5000종의 족보와 문집만을 제작해 왔다. 1999년 자동화 설비 도입, 2004년 자체 개발한 족보 전용 프로그램, 2008년부터 전자족보 발간, 이후 모바일·인터넷족보 서비스를 확대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박도규 대표는 포부를 이렇게 말했다. “대보사는 족보 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일익을 담당하며, 문집 등 전통 서적 발간에 더욱 전문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보사는 지금까지 50년의 노력을 통해 5000 여 문중의 족보와 다양한 문집을 제작한 축적된 노하우를 갖고 있어 시대에 부응하는 전자족보와 다양한 문집 등을 만드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9-21

말없는 역사서 창녕의 제63호 비화고분

비화(非火)는 고대 가야지역으로 현재 경남 창녕이다. 낙동강 동쪽, 신라와 경계를 이루던 곳으로 5세기 이후에는 신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6세기 중엽쯤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보인다. 555년, 신라가 하주(下州)를 설치하면서 창녕의 옛 이름인 ‘비화’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설이 있다. 창녕박물관 인근, 사적 제514호로 지정된 교동·송현동 고분군. 그곳은 땅이 역사를 말하는 자리다. 그 가운데 도굴되지 않은 제63호 고분은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몇 해 전, 크레인을 동원해 무거운 덮개돌을 조심스레 들어 올릴 때, 침묵 속에서 시간을 깨우는 손길이 시작되었다. 석곽 내부에는 질서 있게 놓인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동관, 은반지, 허리띠, 그리고 붉은 칠의 흔적까지. 모든 것이 정제된 듯, 누군가의 마지막을 정성껏 준비했던 흔적이 선연했다. 고분의 구조는 피장자의 신분과 문화를 말없이 드러냈다. 머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안치된 시신. 그 곁에는 부장품 공간과 순장을 위한 공간이 함께 나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사람만 아니라 개의 순장 흔적이 함께 발견된 점이다. 고대의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단서였다. 그것은 공주의 무령왕릉에서도 보이는 동물 순장과 닿아 있다.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토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한때는 죽은 자를 지키는 존재로서 동물이 함께 묻히는 관습이 있었다. 묵묵히 지켜주던 존재, 생을 함께한 그들을 저세상에도 데려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63호 고분은 비화 지역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무덤 안에서는 남성의 상징인 큰 칼이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신구의 구성과 유골 분석 결과, 키 1m 55cm가량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남성 중심으로만 보아왔던 지배 구조에 대한 통념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점이었다. 무엇보다 그 고분은 유물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출토된 비화 지역 최초의 사례였기에, 학계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고대인의 삶과 죽음,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신념이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가야 유물이 도굴로 사라졌다. 그 상처 속에서 제63호 고분의 발굴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창녕박물관에는 금귀걸이, 금동뿔잔, 청동함 등 문화의 꽃을 피웠던 비화의 유물이 많다. 신라 토기에는 한자가 새겨진 것이 많으므로 신라와 교류했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井), 생(生), 대간(大干)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토기가 눈길을 끈다. 가야는 서기 42년에 건국된 깊은 시간을 품은 나라다. 그러나 그 역사가 묻혀 있다. 바른 가야사의 복원을 원한다면,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 시기를 아우르는 발굴과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고분은 말 없는 역사서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침묵 속에서도 오래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그것은 흙과 돌이 들려주는 진실이며, 우리가 반드시 되살려야 할 기억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09-21

‘배롱나무’

요즘 세상에 무려 100일 동안이나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배롱나무, 혹은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도 불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이 나무는 그 격언에다 “시끄럽다, 나는 예외다!” 하고 당당히 딴지를 거는 꽃이다. 이 배롱나무는 겉보기부터가 범상치 않다. 줄기가 매끈매끈하다 못해 반질반질하다. 그 덕에 ‘간지럼 나무’라는 별명이 생겼다. 누가 나무를 간질이면 잔가지가 파르르 떤단다. 사람만 간지럼 타는 줄 알았지, 나무까지 간지럼을 탄다니. 세상 참 넓고 신기한 일이다. 또 하나의 별명은 ‘원숭이 미끄럼 나무’다. 이쯤 되면 나무도 정체성 혼란에 빠질 지경이다. 꽃 피운다고 불리더니, 간질인다고 해서 또 다르게 불리고, 이젠 원숭이까지 등장하니 말이다. 배롱나무는 그 생김새도 이쁘지만, 이름부터 남다르다. 보통 나무들은 이름에 풀떼기(草) 하나 붙고 마는데, 얘는 풀 백일홍과 구분하기 위해 ‘목(木)’ 백일홍이라는 관직까지 달고 다닌다. 마치 “나는 일 년 초가 아니다 나무 백일홍이다!” 하고 선언하는 듯. 얼마나 자부심이 강한지 이름부터 꼿꼿하다. 게다가 이 나무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전설도 하나 딸려 있다. 옛날 어느 어촌 마을에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살았다. 이무기가 해마다 예쁜 처녀 하나씩 잡아가자, 동네 사람들 속이 타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가 점찍은 처녀를 짝사랑하던 청년이 “내가 대신 가겠소!” 하고 나섰다. 청년은 처녀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를 기다리다, 이무기와 격투에서 목을 두 개 베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무기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남은 한 개 목으로 눈물 콧물 쏙 빼며 도망쳤단다. 처녀는 청년에게 청혼했지만, 청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이무기 마지막 목까지 베고 오겠소!” 하고 바다로 떠났다. 그가 떠나면서 “이무기를 처치하면 배에 흰 깃발을,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겠소.” 그러고는 자신 만만하게 떠났는데, 100일 후 청년의 배가 돌아왔다. 멀리서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그만 가슴이 무너져내려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청년은 이무기를 처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무기의 피가 배에 튀어 깃발이 붉게 물들었을 뿐이었다. 해피엔딩 될 수도 있었던 사랑 이야기가 깃발 물감 잘못 선택한 바람에 비극으로 끝난 셈이다. 청년은 통곡하며 처녀의 무덤에 꽃을 심었고,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배롱나무란다. 그러고 보니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것도, 어쩌면 사랑의 기간제 계약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처녀가 매일매일 기다리던 그 100일의 시간. 그 사랑과 기다림이 나무가 되어 피어난 것이 배롱나무란다. 지금도 산사나 서원에 가면 이 배롱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스님들이 수양할 때, 선비들이 학문에 정진할 때, 배롱나무는 조용히 곁에 선다. 100일 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그 모습에 뜻이 담겨 있다. “수양도 백일은 해야 정신 좀 든다”는 자연의 충고인지도 모르겠다. 배롱나무는 충절과 지조의 상징으로, 선비 무덤 옆에 곧잘 심긴다. 요즘같이 싹 피었다가 싹 시들어버리는 SNS 사랑, 반짝 떴다 사라지는 유행 속에서 배롱나무는 말한다. "나는 아직도 백일을 기다린다.” 그 말 한마디가 왠지 묵직하다. 꽃보다 사람이 더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이 나무 하나만큼은 100일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으니 말이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9-21

‘문학의 향기’ 대구문인협회 200인 시화전

대구문인협회(회장 안윤하)는 지난 17일 성당못 서편 광장에서 ‘대구 대표문인 200인 시화전’ 개막식을 열고, 가을 정취 속에 문학의 향기를 시민들에게 선사했다. 이번 전시는 대구를 대표하는 문인 200명의 작품을 배너로 제작해 성당못 난간데크를 따라 설치했다. 시화 배너에는 작품과 함께 문인들의 얼굴 사진을 나란히 담아, 이름으로만 접하던 작가들의 면모를 시민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협회는 “작품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문학이 생활 속에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개막식에서 안윤하 회장은 “문학인의 노래는 철학의 노래이자, 글로 표현되는 예술적 노래”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대구의 예술적 정신을 시민 속에 펼쳐놓고자 한다”고 말했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은 가을 햇살이 비치는 성당못을 배경으로 시화 배너를 따라 걸으며 작품 속 정서를 감상했다. 한 시민은 “이름만 알던 문인의 얼굴을 보니 작품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며 “가을 산책길에 문학과 함께하니 특별한 여유를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시화전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대구 문학의 위상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지역 문단의 저력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행사를 총괄한 김형범 부회장은 “이번 전시회는 야외와 실내를 아우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야외 전시는 성당못(9월 14~20일)을 시작으로 송해공원(9월 21~10월 3일), 수성못(10월 3~16일)으로 이어진다. 이어 실내 전시는 범어아트웨이에서 9일간 개최된다”고 밝혔다. 협회 측은 이번 행사가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시민들이 시와 산문을 통해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문학의 위안과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대구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200인 시화전’은 문학의 대중화와 지역 예술의 저변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성당못과 송해공원, 수성못 등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는 문학을 거리로 끌어내 시민들의 곁으로 다가가게 한다는 점에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행사는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며, 가을 도심 속에 펼쳐지는 특별한 문학 축제로 대구 시민들에게 풍성한 문화적 감수성을 선사할 전망이다. /문성희 시민기자

2025-09-21

봉화 간이역으로 떠나는 감성여행

도시 주변의 기차역을 제외하면 이제 대부분의 역은 옛날의 북적거렸던 때와 사뭇 다르게 변했다. 낮과 밤 구별 없이 번화했던 역 주변은 썰렁하고, 플랫폼마저 정겨움을 잃어가고 있다. 산골이나 오지로 갈수록 폐역이 되고 기차역의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 옛날에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던 친지와 가족을 배웅하던 플랫폼, 연인들이 기차를 보고 눈물 흘리던 애틋한 장면은 이제 영화에서도 감상하기 힘들어져 간다. 하지만, 사람은 떠났어도 간이역은 남아 추억 여행, 감성 여행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봉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3개의 기차역이 있으며 대부분 두메산골 역으로 감성과 사연의 깊이가 남다르다. 높은 하늘 아래 조용히 내려앉은 산의 능선, 고즈넉한 품성에 시원한 물줄기,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괴석, 자연이 그린 한 폭의 수채화 속을 천천히 달리는 기차는 추억으로 가는 여정이다. 영동선은 영주를 지나 문단역, 봉화역, 거촌역, 봉성역, 법전역, 춘양역, 녹동역, 임기역, 현동역, 분천역, 비동 임시역, 양원역, 승부역, 석포역으로 이어지고 태백 철암역을 지나 동해로 연결된다. 기차역은 옛 시절의 향수와 추억을 간직한 낭만의 장소다. 가난한 시절 시골 젊은 청년들은 무작정 도시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애환 서린 봉화 산간벽지 간이역들은 오래된 이야기들을 품은 체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추억여행도 그만이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한적한 간이역에서 역사와 기찻길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분천역은 자연과 동심을 자극하는 산타클로스를 1년 내내 즐길 수 있는 산타 마을로, 현동역은 시가 있는 역으로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로 변신한 임기역의 숲터마을은 화려했던 번영은 세월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마을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분천역에서 석포역까지 펼쳐지는 오지협곡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심오한 섭리를 지켜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고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진 양원역은 마을 주민이 직접 삽을 들고 만든 민자역이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승부역은 특히 겨울 눈꽃여행과 세평 하늘길로 세상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낙동강의 최상류에 있는 오지역으로 하늘도 세 평 땅도 세평이라는 시로 유명하다. 봉화역과 춘양역에서 만나는 전통시장은 용마루와 돌담 너머로 겹겹이 즐비한 고택들이 옛 모습 그대로라 정겹기 그지없다. 자연으로 남은 마음의 고향 봉화는 기차를 타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봉화 산골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그 속에 삶이 있었기에 더 따스하게 다가오는 간이역에서 여행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보자. 아련한 추억과 삶의 체취가 그리운 날, 봉화 산골 간이역에서 느림과 여유 가득한 추억여행을 떠나 감성 여정을 즐겨보면 어떨까.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18

포항제철중학교 학생들의 ‘KAI 에비에이션 캠프’ 체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은 어른들 몫이다.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며 성장하는가에 따라 한 아이의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는 곧 한 나라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가정과 학교, 기업과 국가가 교육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 속에 청소년을 위한 교육기부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기업이 있다. 대한민국 교육기부 1호 효시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2012년 경남 사천 본사에 국내 최초의 교육기부 체험 학습관인 KAI 에비에이션 센터를 개관,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항공기 개발, 생산 과정에 적용되는 기초과학 원리를 현행 교과 과정과 연계해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현장학습 프로그램인 ’KAI 에비에이션 캠프‘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교육기부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찾아가는 에비에이션 캠프‘를 시행하기도 하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9월 4일, 포항제철중학교 학생 39명은 김용환 선생님의 인솔 아래 1박 2일 일정으로 KAI 에비에이션 캠프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항공우주 세계를 직접보고 듣고 체험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김용환 교사는 “항공우주와 관련된 이론과 실재를 동시에 접할 수 있었던 뜻 깊은 기회였다”며 “현장 엔지니어들의 세심한 지도와 피드백 덕분에 학생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임예준 학생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전투기와 헬기제작 공장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비행 이론과 원리, 랜딩기어 구조, 비행 시뮬레이터 체험까지 하며 과학적 요소를 학습하고 체험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장연석 학생회장은 “전투기와 헬기 공장의 전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며 “바쁘게 돌아가는 작업라인이 아니라 도면을 보며 신중하게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에서 한 대의 항공기에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과학기술이 국방력과 연결되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참여한 모든 학생과 소감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뜻 깊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적 기업’의 교육 기부는 단순히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자원을 통해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사회 문제 해결의 기반을 다진다. 이렇게 사회에 필요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하는 과정 자체가 기업의 책임이자 사명인 것이다. 고전에서 말하듯,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제 자리를 지킬 때 가정도 나라도 평안하다. 건강한 사회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업이 교육을 지원하고, 교사가 길을 안내하며, 학생들이 도전하는 과정이 서로 맞물릴 때 사회는 한층 더 단단해진다. KAI가 마련한 교육캠프를 통해 포항제철중학교 학생들이 경험한 짧지만 깊은 여정은 그들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라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눈빛 속 설렘과 호기심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18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경주 여행

더위가 한풀 꺾인 9월, APEC 정상회의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경주로 주말 여행을 떠났다. 13일부터 14일까지, 예쁜 한옥 펜션을 예약했다. 문제는 출발 당일까지 펜션 예약 외에는 아무런 일정도 없었다는 것. 결국 대구에서 모인 선발대 5명은 간단히 장을 본 뒤, 경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야 “오늘 뭐 하고 놀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오늘 뭐 하고 놀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MBTI의 P 성향이 강한 네 명 사이에서 유일한 J 친구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미리 조사해 둔 야외 역사 테마 방탈출 게임! 역사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할 수 있는 1석 2조의 기회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목적지를 정한 우리는 기대감을 잔뜩 안고 경주로 출발했다.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펜션에 짐만 잠시 두고 나가려던 순간, 뜻밖의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바로 귀여운 고양이 9남매였다. 꼬물꼬물 달려와 애교를 부리는 통에 발걸음이 멈췄다. 잠시 고양이들과 놀며 사진도 많이 찍고 힐링 타임을 즐긴 뒤, 간단한 점심을 먹고 방탈출 게임을 즐기러 떠났다. 게임 키트를 받고 설명을 들은 뒤, 기념 사진을 찍고 방탈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에 사용되는 키트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카드와 보자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보자기는 문제를 다 풀면 그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빨리 풀고 싶다”는 기대감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일본에게 빼앗긴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경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경주의 전통시장인 성동시장부터 야경이 아름다운 경주읍성,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전을 봉안한 집경전, 유럽 양식으로 지어진 야마구치병원,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진 성덕여왕 신종이 있던 경주문화원, 2006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서경사, 경주 시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봉황대까지. 미션을 해결하고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특히, 어플과 연동된 카드를 활용하는 미션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드디어 봉황대에서 마지막 문제를 풀고, 보자기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열쇠를 찾았다. “대한독립만세!”라는 화면이 뜨자, 우리는 다 함께 만세를 외쳤다. 다시 펜션으로 돌아오니 후발대 2명이 도착해있었다. 야외 방 탈출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친구의 실수로 다 익은 목살이 숯불과 함께 쏟아져 한 점도 먹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고기는 잃었지만, 그 자리에 쌓인 건 진심 어린 대화와 웃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새벽 5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놀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황리단길로 향했다. 우리가 가려던 맛집은 대기가 길고 주차 공간도 꽉 차 있어서 근처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맛은 아쉬웠지만, 본격적인 관광을 앞두고 설렘이 더 컸다. 식사 후 황리단길을 걸으며 소품가게도 둘러보고, 경주를 대표하는 경주빵과 10원빵도 잊지 않고 사 먹었다. 이번 경주 여행은 경주의 역사와 현재, 일상과 특별함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경주는 천년의 고도라는 전통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세대가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 야외 방 탈출 게임은 현실 공간에서 가상 스토리의 주인공이 돼 미션을 해결하는 게임이다. 자연, 역사적 장소 등에서 진행되며, 관광지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며 즐기는 신개념 체험형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