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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봄의 전령’ 복수초는 어떤 꽃일까

복수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福)‘과 ‘수(壽)’를 뜻하는 한자를 사용하여 ‘행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풀’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 봄, 설날 즈음에 꽃이 피어 희망과 새 출발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아주 먼 옛날 한 청년이 눈 속에서 작은 노란 꽃을 발견하고 마을에 가져왔는데 이후 그 집안이 번창하고 행복해졌다는 이야기에서 ‘행복을 부르는 꽃’이라는 의미가 생겼다고 한다. 왜 복수화(花)가 아니고 복수초(草)인지는 알 수 없다. 티베트 산악지방에는 ‘노드바’라 하는 희귀 약초가 있다. 이 약초는 히말라야 산속 만년설 밑의 바위틈에서 돋아나 꽃을 피우는데 꽃이 필 무렵이면 식물 자체에서 뜨거운 열이 뿜어져 나와 주변의 눈을 몽땅 녹여버린다고 한다. ‘난로 식물’이라고나 할 이 풀은 각종 질환에 좋아 티베트 라마승들이 매우 귀하게 여긴다는 얘기가 있다. ‘노드바’와 닮은 식물이 우리나라의 ‘복수초’다. 복수초는 노드바처럼 이른 봄철 눈이 녹기 전에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주변의 눈을 식물 자체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여버린다. 정말 멋진 생명의 신비다. 항온동물도 눈 속에서라면 체온을 빼앗길 판인데 말이다. 복수초는 우리나라 각처의 숲속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 생육환경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습기가 약간 있는 곳이다. 산행을 하다 복수초를 만나면 그 환경이 나뭇잎 많은 습기 가득한 양지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열매는 6~7월경에 별사탕처럼 울퉁불퉁하게 달린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3종류 ‘복수초’, ‘개복수초’ 그리고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가 있다. 연약한 꽃잎으로 피어나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복수초는 우리 산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우리 고장은 가산산성에 가면 큰 군락지가 있다. 꽃 보기를 좋아한다면 봄을 맞아 가산산성으로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5-03-16

세계 여성의 날을 생각하며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날이다. 여성 안전, 경제적 평등, 일·가정 양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여성 권익신장을 위해 전 세계가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의 날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정치적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일으킨다.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가 펄펄 나는 최악의 환경에서 작업을 강요당했다. 1만명이 넘는 여성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난 시위로 190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날이 선포된다. 1910년 독일의 여성 노동운동가인 클라라 체트킨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세계여성의 날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의 날을 제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엔이 공식적으로 여성의 날을 선포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1975년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가졌으나 일본의 탄압으로 제대로 된 행사를 하지 못했다. 해방 후 1985년 양성평등법이 개정되면서 정부는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정하고 정부공식 기념일로 삼았다. 한국에서 여성의 날이 제정된 것은 이제 약 40년이다. 미국과 유럽의 100년 이상의 역사와 비교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다. 여성의 날 제정 역사적 배경에서 보았듯이 여성의 권익은 투쟁과 희생에서 얻어진 결과다. 우리나라는 짧은 역사만큼 아직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많은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 지수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성차별과 가정 및 돌봄 노동에서의 불균형은 주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성인지 예산과 같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성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권리를 증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이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 행동과 참여, 연대와 지지, 정책적 지원과 같은 요소들이 결합 되어야만 세계 여성의 날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대구시민 헌법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오상태 교수는 최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야제로 ‘꽃의 실존적 의미’라는 주제와 김춘수 시인의 꽃과 연계하여 강의를 해주었다. 김춘추 시인의 ‘꽃’은 철학적이고 중심적이며 실존주의 작품이다. 언어는 존재의 본질이며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비로소 실존이 된다고 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참가자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긴 강의를 해준 오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3-16

몸과 마음의 건강지킴이 ‘대구도시농업포럼’

도시농업이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무렵이다. 지금은 꽤 많은 도시민들이 도시농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원래 도시농업은 도시의 옥상이나 골목길, 텃밭 등 자투리 땅을 활용해 여가 또는 체험적 농사로 시작하는 농업을 말한다. 생계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농업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도시민들이 작은 공간에 조금씩 식물 등을 재배하면서 도시의 생태계 선순환 구조 회복에 도움을 주면서 지자체마다 도시농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지자체가 조례 제정을 통해 도시농업네트워크 결성을 돕고 농업지도사를 육성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도시농업을 이야기하면 쿠바의 하바나 농업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쿠바 봉쇄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던 하바나 시민들이 도시 빈 공간마다 작물을 재배하면서 지금은 도시농업의 성지로 불릴만큼 하바나 도시농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도시농업은 아직은 초보수준이다.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도 가능하다. 우리지역에서도 도시농업 활동을 벌이는 단체가 있다. 사단법인 대구도시농업포럼(회장 서신교)은 지난달 대구 라운제나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도시농업 사업의 활성화에 더욱 매진키로 결의했다. 도시농업 지도사 모임인 이 단체는 지난해는 대구 달서구 도원동의 텃밭을 위탁 운영해 의뢰자로부터 칭찬을 받은 바 있다. 올해는 수성구와 업무협약을 맺어 텃밭운영을 활성화하기로 사업을 확정했다. 특히 지난해 많은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화분 분갈이 서비스를 올해도 꾸준히 벌여가기로 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03-16

씁쓸한 중고 서적 판매의 경험

이사를 위하여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외벌이로 애 셋을 키우며 다른 것은 아끼고 아껴도 읽고 싶은 책만은 사고자 노력했었다. 어릴 때부터 책이 빼곡하게 벽을 채우고 있는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 책값도 만만치는 않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몇 번을 벼르고 벼르다 책을 사곤 했었다. 그렇게 모은 책들은 내겐 보석보다 큰 자산이었다. 그런 책들을 정리하려니 피붙이를 보내는 것 같은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줄 수 있다면 누군가 내 책을 아끼며 읽어줄 사람에게 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인터넷 서점의 중고 서적 팔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골에 사니 중고 서점 매장을 직접 방문하여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서다. 책 제목으로 판매가 가능한 책인지 검색했다. 최근 발행된 책이 아니면 매입가가 너무 낮았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들은 매입 불가 책들도 많았다. 판매가 십분의 일 정도의 금액밖에 안 되는 매입가를 보며 살 때는 두근두근 마음 설레며 산 내 소중한 책들을 이렇게 보내야 하나 속상했지만 이사 가는 곳에 다 들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팔기 접수를 했다. 박스에 차곡차곡 책을 담으며 누군가 이 책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주기를 기원했다. 며칠 후 인터넷 서점 정산 내역을 보니 밑줄이 5쪽 이상 처져 있거나 접은 자국이 있는 책들은 매입 불가이고 표지가 살짝만 바래도 매입 불가로 되어 있었다. 여러 권의 책이 폐기 처분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너무너무 속상했다. 다시 되돌려 받으려면 택배비를 부담해야 된다고 하기에 매입 불가 책은 폐기 신청을 선택했었다. 그동안 중고 서적을 많이 구입해 보았기 때문에 이 정도 상태로 폐기 처분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었다. 책을 아끼며 보았고 보관 상태도 아주 좋았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중고로 매입했던 책들은 내 책보다 훨씬 더 관리 상태가 안 좋아도 최상의 등급 가격으로 구입을 했었는데 어쩐지 속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 책은 나의 손을 떠났고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냥 가지고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처음 중고로 책을 판매해 봐서 몰라서 그랬구나 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랬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책은 귀한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이라도 소중히 다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책이 쏟아지니 사람들은 책 귀한 줄을 모른다. 중고 서적 판매를 하며 내가 아끼던 책이 누군가에게로 가서 그의 삶을 윤택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책이라도 좋은 주인을 만나 그의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기를 바라본다. 씁쓸한 중고 책 팔기의 경험이었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3-13

봄의 산야에서 느끼는 생동감은 삶의 보약

봄이다. 흔히들 봄을 두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 말한다. 그렇다. 겨우내 포근한 대지의 품속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한껏 챙긴 기운들이 따뜻한 봄이 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지 위로 오르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나간다. 지금은 칼로리 따져가며 섭취하는 것이 봄나물이지만 보릿고개가 있던 아픈 시절에는 산야마저 헐벗어 자연이 주는 이마저도 배불리 먹기 힘들었다. 나라가 힘들었던 그 시절, 대지의 기운을 담은 여린 풀들로 그나마 굶주림을 달래며 질긴 생명 줄을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봄나물은 보약이다. 그러나 봄기운 충만한 여린 새싹 중에는 독초도 많다. 야생초들이 꽃이 피우기 전 여린 잎과 뿌리만으로는 산나물과 독초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봄철 여린 산나물을 채취할 때는 충분한 사전 지식이 꼭 필요하다. 자칫 잘못 채취해 먹으면 구토, 복통, 장염을 일으켜 심하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봄철 보약 곰취, 원추리, 산마늘(명이나물), 천궁잎, 쑥 등의 여린 산나물들과 닮은 독초들이 있다. 곰취와 생김이 비슷한 동의나물은 독초이다. 여로는 원추리를, 박새는 산마늘을, 미치광이풀은 천궁잎을, 산괴불주머니는 쑥을 닮은 독초들이다. 봄철 보약으로 즐겨먹는 두릅이나 원추리, 고사리 등도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식물 고유의 독성을 미량 함유하고 있어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치는 과정을 거치며 이들 독을 다스린 후 먹는다. 두릅은 사포닌, 비타민A, 비타민C, 칼슘, 섬유질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하지만 식중독을 유발하는 독성이 있어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친 후 먹는다. 원추리는 단백질, 칼륨,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항산화 작용을 하여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고 노화를 방지한다. 피로회복 소화불량에도 효과적이며 부종을 막아주고 피를 맑게 해주어 특히 여성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가슴 두근거림 완화, 숙면, 변비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독성이 있으며 이는 자랄수록 강해진다. 어린 순만 섭취하되 반드시 충분히 익혀서 먹는다. 사시사철 즐기는 고사리는 4, 5월에 채취한다. 칼륨 성분이 많아 나트륨 배출에 도움을 주며 상처회복, 염증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면서 칼로리가 낮아 영양 과잉시대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말리는 과정에서 비타민·엽산 등의 영양분을 더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궐(蕨, 고사리)을 음력 3월 임금에게 진상하는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구황식물(救荒植物)로 가치가 높다. 그러나 풀을 뜯던 소가 고사리가 입에 들어가면 놀라 뱉어버린다. 티아미나아제와 타킬로사이드라는 독성 때문이다. 잎이 피면 독성이 더욱 강해진다. 이들 독성은 수용성으로 물에 잘 녹고 불에 약한데다 알칼리에 약한 화합물이라 다행히 끓는 소금물에 삶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독성이 제거된다. 봄나물을 대변하는 냉이와 달래는 냉이 샐러드와 달래비빔밥 등 데치지 않고 생으로 즐기기도 한다. 원나라 학자 왕여무가 증보·편집한 ‘산거사요(山居四要)’에서 ‘몸이 한가한 것은 마음이 한가한 것만 못하고, 약으로 보(補)하는 것은 음식으로 보(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한다. 봄철 산야에서 대지를 뚫고 용트림하는 온갖 여린 싹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친 삶이 충전되는 느낌이다. 제철 음식이라는 개념이 많이 희박해진 요즘이지만 그래도 제철 음식이 보약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3-13

라벤더책방

경주에서도 시골에 살았던 유년시절엔 버스로 20여분 나와야 시내에 갈 수 있었다. 버스가 2시간에 한 대 배차 되는 데다 별도 용돈이란게 없을 때여서 특별한 날이어야 외출이 가능했다. 3학년이 되고 피아노 학원을 혼자 다니게 되면서 버스 타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그 이후 명절이나 친척들의 방문으로 제법 큰 돈이 생기면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으로 갔다. 지금의 중앙시장 모퉁이에 있던 서점에선 책을 사면 사은품으로 껌종이만한 작은 만화책을 주곤 했는데 가끔 한 개씩 더 받는 날은 기분이 훨씬 좋았다. 어른이 되면 인심 좋은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익숙했던 서점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시간이 제법 흘렀을 때 이색적인 서점들이 경주에 생겨났다. 그중 비교적 최근에 생긴 라벤더 책방은 읍성 인근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서점이다. 바로 곁에 경주시 평생학습가족관이 있어 찾아가기 쉽다. 라벤더가 좋아 책방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현재 이수정, 정주영 두 부부가 운영중이다. 단아한 한옥으로 이뤄진 서점은 이름처럼 보랏빛을 가득 뿜고 있다. 내부엔 그림책을 비롯 다양한 책들이 공간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그림책 전문서점이지만 가족단위 고객들을 배려해 다양한 장르의 책도 함께 보유중이다. 노란 조명과 부드러운 질감의 초록색 의자는 책방 분위기를 한층 아늑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이수정 대표는 그림책이 좋아 서점을 열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스스로도 많은걸 배웠다며 그림책의 유용성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학교에서 재직하던 시절 그림책 교사동아리를 만들어 선후배간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가졌었다. 책 뿐만 아니라 그를 활용한 학습놀이 등을 서로 공유했던 시간이 참 좋았다고 소회했다. 그런 공간에 대한 소망도 서점을 여는데 한 몫 했다. 서점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책에 만족한 고객이 다시 방문해 추천을 요청 받으면 더 없이 행복하다는 그녀. 그림책 속엔 많은 인생들이 그려져 있다며 사람들과 그림책 속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그녀의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언젠가 좋은 사람들과 서점에서 북토크를 하는 것도 계획 중 하나다. 반짝이는 눈빛과 얼굴에서 가득 보이는 생기를 통해 그녀가 그림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림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사랑이 넘치는 그녀의 그림책이 기대된다. 그런 부인의 곁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 정주영씨. 한국수력원자력을 퇴직하고 현재는 갈등 조정 전문가로 활동하며 대학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의 돌쇠를 자처하며 대표인 이수정씨가 자리를 비울때면 서점을 든든히 지켜준다. 한결같이 따뜻한 미소와 이곳에선 익숙치 않은 부드러운 서울 말씨로 손님을 맞는다. 그리고 서점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인공 넷. 이곳엔 한없이 귀여운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춘배, 코코, 모네, 모찌로 단골들에겐 특별히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데 이는 이 서점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앞으로 20년 소소한 행복 속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서점으로 남고 싶다는 두 부부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3-13

그윽한 매화향에 취하다

기나긴 겨울도 그 끝이 보이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세상에 변화는 누구도 막지 못한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느닷없는 3월의 눈이 내리고 봄은 더디게 오나 싶은데 활짝 핀 매화가 봄소식을 전했다.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에 자리한 한국선비매화공원 매화분재원에는 300여 점의 다양한 매화 분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우스로 된 분재원 입구에는 세 그루의 백송이 자리했고 분재원에 들어서면 가득한 매화향이 방문객을 반긴다. 그 향기가 선비의 지조처럼 높고도 곱다. 분재원 입구에 ‘선비매화’ 분매의 특징과 감상법을 소개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분매를 감상하기 전 선비매화의 네 가지 특징과 귀한 모습을 미리 알고 감상하라는 배려다. 첫째가 가지가 드문 것이 귀하고 번잡한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절제’이며, 나무는 늙은 것이 귀하고 어린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경륜’이 둘째, 나무는 마른 것이 귀하고 살찐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검소’가 셋째, 꽃은 다소곳이 오므린 것이 귀하고 활짝 벌어진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겸손’이 그 마지막 특징이다. 각각의 매화나무에는 명패를 달아 고유번호와 함께 도홍주사, 노매, 정당매, 낙조매, 녹아도비매, 비원매, 월사매, 영인매, 금둔백, 원앙매, 분피궁분, 쌍벽수지, 와룡백, 춘풍후 등의 이름을 기입해 두었다.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고목 위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봄 내음을 그리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예로부터 선비정신을 상징하고 절개와 지조, 기개를 뜻하는 꽃이기도 하다. 영주시는 한국선비매화공원에 매화나무 200여 종 2000여 주를 식재해 노지 가득 매화를 선보인다고 한다. 봄꽃의 자태와 함께 희망을 설계할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봐도 좋을 듯하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3-11

통도사 홍매화를 보려면…

독도에 가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배가 뜨지 않거나 가까이 가서도 접안이 안 돼 발을 땅에 내리지 못하고 돌아온다. 꽃이 절정일 때 보는 것도 그렇다. 가까이 있으면 오늘 가서 못 보면 내일 보면 되지만, 먼 거리라 벼르고 별러 갔는데 아직 덜 폈거나 이미 지는 중일 때도 있다. 통도사 홍매화를 그렇게 몇 년을 벼르다 보러 갔다. 새벽 시간에 가서 우리만 조용히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눈 비비며 나선다고 나섰는데도 도착하니 해가 떠 있다. 역시나 매화나무에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아, 향이 참 좋다. 통도사는 주차장에서부터 걷는 길이 낭만적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산문부터 일주문까지 이어지며 드리워져 맨발 걷기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숲길 이름이 ‘무풍한송길’인데 비가 온 다음 날 이른 시간에 가면 안개에 싸인 길이 방문객을 포근히 감싼다.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대상)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훌륭한 풍경과 정취를 자랑한다. 길이는 약 1.6㎞여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솔바람에 취해 걷다 보면 홍매화 앞이다. 홍매화는 통도사 영각 앞에 섰다. ‘자장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370여 년 전 이곳을 이끌었던 승려들이 자장율사의 창건을 기념하는 의미로 심은 것이란다. 유난히 붉은 꽃잎을 건물 문살을 배경으로 당겨 찍었다. 장승업의 매화도를 흉내 냈다. 꽃잎이 팝콘처럼 퐁퐁 소리를 낼 것 같다. 좀 더 멀리서 매화나무 전체를 렌즈에 담았다. 곧게 뻗다가 가지는 자연스럽게 휘고, 옛 화가들의 병풍 속에 있던 그 자태 그대로다. 사람들이 매화 주변에 모여 떠날 줄을 모른다.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양산 통도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해 창건한 사찰이다. 이 절의 창건 유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고 예부터 승려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수계를 받는 곳으로 유명했다. 통도사는 경남 합천 해인사, 전남 순천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불린다. 통도사는 부처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불보사찰’, 해인사는 불법이 새겨진 팔만대장경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법보사찰’, 송광사는 승려들이 모여 수련하는 곳이라고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부른다. 금강계단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어서인지 대웅전 내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를 직접 모신다는 것이다. 창건의 정신적 근거이며 중심인 금강계단은 자장과 선덕여왕이 축조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이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이 사찰은 대웅전이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보물로 지정된 양산 통도사 청동은입사향완, 보물 양산 통도사 봉발탑이 있고, 보물전시관에는 병풍·경책(經冊)·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의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소속 암자로는 선원(禪院)인 극락암을 비롯하여 백운암·비로암 등 13개의 암자가 있다. 올해는 2월이 유난히 추웠다. 그래서인지 꽃소식이 많이 늦었다. 2년 전 사진첩을 뒤지니 2월 28일에 홍매화가 지는 중이었는데, 지금(2025년 3월 8일) 만개하지 않았다. 예년 생각에 2월 중순부터 멀리서 사진 찍으러 왔다가 아직 꽃문을 열지 않아 사진 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3월 중순이면 홍매 뒤에 따라오는 백매가 피었을 시기인데 말이다. 홍매화 향에 취해 경내를 거닐 수 있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 건가 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3-11

독서와 음악 함께 즐기는 사랑방으로 가요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음악과 함께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최근 포은흥해도서관(포항시 흥해읍 흥해로 81번길 46)이 음악특화도서관을 내세우며 시민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7일은 2025년 첫 음악프로그램인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이 열리고 있었다. 수강 신청은 도서관에서의 음악 수업이라는 특별함 때문이었는지 순식간에 목표 인원인 12명이 마감되었다. 수업을 시작하는 강사의 첫마디도 “이런 멋진 공간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서 정말 좋다”였다. 수강인원에 맞추어진 오디오룸은 적은 인원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음악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진 듯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 탱고를 시작으로 한 음악 수업은 세계사와 곁들이니 화려한 춤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가르델과 피아졸라를 떠올리며 수강생들의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그에 대한 강사와 오고 가는 이야기는 정해진 수업 시간을 넘길 정도였다. 탱고가 춤에서 노래로 밴드로, 클래식에 영향도 받고 재즈에 영향을 주고 로큰롤이나 힙합으로 침체기를 맞은 변화의 역사를 한 눈으로 확인했다. 2시간의 수업을 마친 한 수강생은 “오늘 첫날이라 1시간 전부터 와서 음악 수업을 기다렸다. 오는 발걸음이 괜히 설렌다. 도서관이 정말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민기자도 수업을 마치고 음악특화도서관인 포은흥해도서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먼저 도서관은 북구보건소와 시립어린이집, 장난감도서관을 사이에 두고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1층에서부터 안내데스크 옆 어린이·유아자료실과 음악 강당이라는 화살표가 먼저 이용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서면 은은한 분위기가 음악과 어울리는 듯했다. 조용히 앉은 자리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이용자들 사이로 멀티음악자료실과 음악자료실답게 온전히 음악 관련한 자료들과 CD, 서가에 꽂힌 추억의 LP, DVD, 음악 악보집, 세 개의 프로그램실과 작곡실, 연주실, 오디오룸 등으로 채워졌다. 중학생 이상 이용이 가능한 멀티음악자료실 한켠에는 사서추천음반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조성진의 음반도 보였다. 옆의 스피커에서는 최근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흥해 농요도 낮게 흘러 나오고 있어서 특별함을 더했다. 반대쪽은 정기간행물 코너도 마련되어 잡지랑 신문도 볼 수 있게 했다. 마주하는 곳에는 카페 같은 예쁜 곳이 있어 시민들이 오며 가며 편하게 차 마시며 휴식을 즐기겠구나 싶었다. 3층은 일반자료실, 문학자료실, 작가실 등을 갖췄다. 봄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는 흥해 일대가 내려다보였다. 책을 펴고 자리에 앉으니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주차장은 넓고 쾌적했다. 빨간불과 초록불로 빈자리를 알려주는 시스템으로 이용자들을 배려했는데 대부분 만족해했다. 층별로 살펴본 도서관은 책을 통해 음악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며 자주 찾고 싶은, 또 하나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느껴졌다. 음악특화도서관인 포은흥해도서관은 아직 시범운영 중이다. 평일과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된다.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3-11

가야국의 역사와 문화 탐구하는 ‘가야연구원’

우리 지역에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접근과 지식을 늘리는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을 우리의 실생활에 지혜롭게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과 교훈을 역사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특히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역사 공부가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2022년 대구시로부터 사단법인 설립을 허가받은 가야연구원은 역사연구단체 중에서도 특별한 면모가 있다. 신라도 고려도 조선도 아닌 가야사를 연구하는 단체란 점에서 주목을 끌 만하다는 뜻이다. 김성문 원장은 “우리는 삼국 시대라 하면 신라, 고구려, 백제로 알고 있는데, 같은 시대 고대국가로 520년간 존속한 가야국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가야연구원은 우리 시대에 자칫 등한시해 잊혀질 가야를 찾아 연구, 답사, 발굴하는 단체”라고 말했다. 고대 시대 존재했던 가야국의 출발은 서기 42년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에서부터다. 처음 건국했을 때 가야국은 모두 여섯 나라다. 당시 강역도 신라보다 넓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를 증명할 역사적 사료와 고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라, 고구려, 백제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야연구원은 이런 가야사에 대한 고증자료 발굴이나 연구에 집중한다. 향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역사학 교수,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가야사가 우리 지역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가야국 지역을 방문 답사도 한다. 함창의 고녕가야, 성주 성산가야, 고령 대가야, 함안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는 이미 둘러보았다. 올해는 김해지역 가락국인 금관가야의 유적지를 답사할 계획이다. 또 연구원에서는 매년 학술대회도 개최한다. 이 방면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문교수를 두고 세미나를 개최하며 관심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회원가입도 가능하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가야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각급학교 학생과 일반인 대상의 문예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종석씨는 가야연구원 입회 동기가 ‘가야’라는 국가를 알고 싶었는데 실제로 모임에 참여해 보니 가야의 역사를 깊이 있게 알게 된 것이 보람됐다고 말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03-09

현대판 하마비(下馬碑)

“절도사 이하 개 하마(節度使以下皆下馬)”. 대구 감영공원에 서있는 하마비의 글이다. 병마절도사는 종2품인 관찰사가 겸무한다.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쯤 되는 직책이다. 수령은 군수와 현감쯤 되니 흔히들 고을 원님이라 부르는데 지금의 군수 또는 구청장쯤 되는 직책이다. 따라서 자기가 주재하는 관청에서는 자기보다 낮은 직급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벼슬을 빌미로 권위를 누리려는 알량한 심보다. 하마평(下馬評)이란 말도 하마비(下馬碑)에서 기인한 말이다. 주인이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가마를 메고 왔던 하인이나 말고삐를 잡고 왔던 말구종이나 마부들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온갖 잡담을 나누며 별의별 얘기를 다 한다. 그들 주인이 모두 고급 관리라 자연스레 승진이나 좌천 따위의 인사이동에 관계된 잡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에 연유하여 관직 이동이나 관직 임명 후보자의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하마평(下馬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작금에도 개각설이 나올 때마다 신문지상에 자천타천 오르내리는 인사이동 예측을 하마평이라 부른다. 조각(組閣)놀이라는 것도 있다. 역대 인물 가운데서 적임자를 뽑아 내각(內閣)과 나라의 요직을 구성하는 놀이를 말한다. 식자층들이 심심파적으로 하는 놀이로 스스로 임명권자가 되어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재밌는 놀이다. 조선시대 고불 맹사성 정승이나 청백리 정승 황희를 국무총리로 올리기도 하고 고구려의 재상인 을파소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율곡을 교육부 장관에, 신사임당을 여성부 장관으로 하는 등 지금 말로 하자면 시대를 초월해서 드림팀을 구성한다는 말이다. 위로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처리하는 과단성 있는 장관감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세월이 흘러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북한의 호전적인 행동 앞에 추호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김관진 장관이면 어떨까 생각된다. 지난 정부 때는 소위 햇볕 정책으로 쌀도 주고 비료도 주고 건설장비도 주면서 북한을 달랬다. 타성에 젖다 보니 시비를 걸어와도 응석으로 받아 주었다. 북이 도발해오면 지휘계통에 따라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대대장은 연대장에게 다시 사단장에게 그렇게 해서 최종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러자면 연평도 피격같이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본 뒤 명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김관진 장관이 전방을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북의 공격을 받으면 쏠까요, 말까요? 묻지도 말고 바로 응사해라”라고 지시했다. 보고는 나중에 해도 좋다고. 얼마나 자신에 찬 모습인가. 무한한 신뢰감이 간다. 북에도 따끔한 경종을 울린 셈이다. 힘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국민은 이런 장관의 말 한마디에 신뢰를 보낸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나라 사랑도 없어진다. 시대가 변했다. 관청마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 도와 드릴까요?’를 써 붙여 놓고 국민의 공복임을 자임한다. 세상은 변화한다 ‘누구나 들어오십시오’ 현대판 하마비 아닌가. /방종현 시민기자

2025-03-09

안동 영호루

안동에 역사적 흔적이라면 먼저 영호루(映湖樓)를 들추고 싶다. 예로부터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의 3대 루(樓)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영호루 한자를 두고 그대로 풀이하면 호수(湖)에 비친(映) 누각이다. 영호루는 영남의 명물로 소문은 났지만 잦은 유실과 복원으로 창건 연대가 명확하지 않다. 고려시대 향토 출신 김방경 장군이 원종 15년(1274년)에 일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호루에서 지은 시를 보아 고려 중기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순조 20년(1820년) 안동부사 김학순이 영호루를 중수하고 114년째 되던 1934년 때 일이다. 여름 장마가 시작한 무렵인 7월 23일 낙동강 대홍수가 안동읍내 전체를 휩쓸게 된다. 이때 영호루는 완전히 휩쓸려 떠내려가고 빈터에는 주춧돌과 돌기둥 몇 개만 남게 된다. 한참이 지난후 떠내려갔던 현판만을 겨우 수습하여 전해 오다가 1970년에 와서야 영호루 중건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영호루는 본래의 터가 아닌 안동시 정하동 나직한 산마루에 세워진다.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한식 누각으로 중건하였다. 영호루가 1970년 중건하기까지 숱한 유실을 당한 아픈 역사를 감안하여 아마도 아예 홍수 걱정이 없는 지금의 산언저리에 세우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이라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그 당시에는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도 대만족이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공간이 너무 협소하고 관광객들에게 내보이기는 너무 허술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들어 갈만큼 잘 사는 나라다. 옛날처럼 공사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하지 않나.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하듯 국가 유산을 복원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참에 영호루도 이제는 본래 모습인 목조 건물로 그럴듯하게 중건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제안을 해 본다. 낙동강변 옛 원래 자리가 마땅하겠지만 ‘영호루 유허비’가 세워진 곳도 다시 짓는 장소로 괜찮을 듯하다. 꼭히 옛날 자리가 아니라도 낙동강 가까이에 부지를 성토하여 복원하고 주변에는 미루나무를 빼곡하게 심게 된다면 옛날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민왕이 군사 훈련을 관람하고 사냥을 즐기면서 배를 타고 유람을 즐겼듯이 이곳에서 역사를 되돌아 보고 우리의 조상들이 즐겼던 풍류에 젖어 본다면 관광지로서 멋지지 않을까 한다. 1970년 당시 누각을 중건하고 강쪽에 걸어 놓은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다. 반대편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있다. 누각 안에는 40여 한시 편액이 걸려 있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03-09

오지의 비경과 만나는 봉화 갈산천 구곡길

빛바랜 풍경 속을 흐르는 강물도 하얀 얼음으로 쉬어가는 갈산천 구곡길은 다가올 봄을 품고 있다. 봉화에는 춘양 구곡과 갈산천 구곡 등이 있으며 갈산천 구곡은 원시림이 그대로 잘 보존된 곳이다. 일월산과 청량산, 미림산의 물줄기가 모여 협곡을 만들고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오지 계곡으로 굽이굽이 절경이고 산자락마다 떠나버린 화전민들의 쓰러진 집들이 향수로 다가온다. 갈산천 구곡길은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갈천정 정자에서 시작해 낙동강과 만나는 합강나루터까지의 10㎞ 계곡길로 9곡에서 7곡까지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으나, 6곡부터 1곡 합강나루터까지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옛 오솔길이다. 갈산천 구곡길 여행은 명호면 삼동리 황새마을에서 출발하거나 재산면 갈천정에서 시작하는 두 방법이 있다. 1곡 합강은 낙동강과 갈산천이 만나는 곳이다. 옛날에는 나루터였으나 지금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지 길이 됐다. 하얗게 얼어붙은 겨울 강은 군데군데 바위들만이 작은 섬처럼 솟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와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조용한 강변이다. 2곡 쉰담은 화전민이 떠나고 쓰러진 빈집이 여럿이다. 오랜 세월 다듬어진 바위 밑으로 만들어진 소와 계곡은 하얀 얼음골이다. 오지의 자연 속에 터를 잡고 살았던 선인들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쉰담은 돌담이 50개가 넘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3곡 토곡은 예전에 옹기를 굽던 토굴 가마가 있어 토곡이라 불렸다. 여기서 생산한 옹기는 합강나루터를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던 순수한 이 계곡은 이제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다. 호젓한 자연 속 조용함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4곡 골내골은 한때 17가구가 모여 살았고 식수로 이용하는 샘물이 차갑고 가뭄이나 한겨울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여 찬물내기라고 불린다. 기암괴석과 얼어붙은 물길이 절경이다. 5곡 화천은 강변을 따라 핀 진달래가 하천을 따라 강물 위에 어리며 꽃냄새가 난다하여 화천이라 불렀다. 통일신라 후기 마지막 태자가 천년사직을 고려에 넘겨주고 이곳을 지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6곡 무너무는 장마철에 물이 자주 넘어 물너머 동네라고도 불렸다. 7곡 새골은 바람이 적고 기후가 온화해 새들의 서식지로 알맞다. 8곡 선바위 언덕 위엔 우뚝 선 바위가 있다. 옛날에는 이 바위 위에 갓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9곡 갈천정은 병조판서, 대사간, 영흥부사를 지낸 갈천 김희주(1760~1830)가 1808년 갈산리 선영 아래 지은 정자가 있다. 김희주는 갈산천의 절경을 무이구곡과 비교하며 구곡을 선정해 기록을 남겼다. “정자 아래 개울물은 일월산 동쪽으로 흘러와서….”로 시작되는 글이다. 1826년 석수장이를 불러 9곡을 새겼는데 1곡부터 5곡까지는 큰아들 제공이 썼고, 6곡부터 9곡까지 둘째아들 재익이 썼다. 자연 깊숙한 곳에서 비와 바람과 물길에 풍화된 아름다운 산천 갈산천 구곡길은 삶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오지 길이다. 세상에 없는 특별함이 있고, 우리를 유혹하는 풍경이 있다. 동화의 한 장면처럼 아껴두고 기억하고 싶은 오지로의 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 아닐까? 갈산천 구곡길에서 때 묻지 않은 깨끗함과 깊은 산, 흙길을 터벅터벅 발품 팔아 걸으며 욕심 없는 풍경 속에 빠져보시길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3-06

남편의 집안일 참여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남편이랑 집안일과 육아 분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어느 모임에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30대 여성 A씨가 하소연하듯이 뱉어낸 말이다. 이처럼 결혼한 여성들에게 ‘남편과 집안일 함께 하기’는 익숙하고도 첨예한 화두이다. 최근에는 맞벌이 부부도 많아지고 있지만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집안일과 육아를 맡는 생활방식은 여전하다. 지금까지도 여성들이 일과 집안일까지 훨씬 더 많이 해내야 하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22년 통계청의 가사 분담 실태에 따르면 육아는 당연하고 요리,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주로 아내가 한다’는 비율이 54.5%로 나와 1위였다. 놀랍게도 집안일을 ‘모두 아내가 한다’가 21% 가까이 나와 그 뒤를 이었다. 결과로 보면 집안일을 ‘모두 아내가 하거나’, ‘주로 아내가 한다’는 비율이 75% 이상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집안일을 ‘모두 남편이 하거나’ ,‘남편이 주로 한다’는 비율은 3.8%로 매우 극소수임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요즘은 가정에서 예전보다 성평등이 이루어졌을 거라 기대했지만 가사 분담의 실태는 그렇지를 못하고 있다. 지금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매우 활발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 가사 분담이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라 느껴진다. 남편과 아내가 집안일을 ‘함께’ 한다는 인식은 건강한 가정생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아내가 전업주부로 있든, 경제활동을 하든 마찬가지다. 어쩌면 가정생활과 부부생활의 모든 것이 ‘집안일’에 달려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은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과학자들이 기혼여성을 상대로 6년 동안 2년마다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할수록 아내의 정신건강이 좋아진다는 결과를 냈다. 남편이 집안일을 한 시간 더 할 때마다 아내의 우울증 발생 확률이 12%나 감소한 걸로 나타났다. 남편의 집안일 참여에 불만족한 여성들은 정신건강 문제가 15% 더 발생하고 만족하는 여성들은 18% 더 적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 아니라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먼저 남편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남성들은 대개 여가 시간이 많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가 많은데 이런 시간이 권태와 외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때 집안일을 하는 건 몸을 움직이는 신체활동이 되어준다. 집안일을 함께 함으로써 부부 사이의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서로 존중하는 소통의 기회가 된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 형성되고 특히 아이를 돌보는 건 아이의 사회적 기술과 보호의 확대 등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집안일을 함께 함으로써 얻는 가족과의 유대감은 무엇보다 남편에게는 오래 사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바쁜 일상이지만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는 남편 김모(42)씨는 “평소에 저녁 설거지 정도는 알아서 하고 있다. 주말에도 아침 준비를 직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아내 정모 (41)씨의 대답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남편이 알아서 해주면 고맙다. 육아도 그렇고. 우리가 가족이라 느껴지고 함께 해나간다는 느낌이 많이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3-06

서울 ‘익선동’ 같은 핫플 포항에서도 가능할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을 떠나지만 코로나 이후는 국내에 있는 핫한 곳을 찾아 편안한 여행을 떠나는 이도 많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을 주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다양한 모습을 즐기기 위해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것도 국내 여행의 묘미다. 서울에 잠시 머무는 동안 종로에서 지인을 만나 닭한마리로 소문난 맛집을 찾았다. 점심시간으로는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번호표를 든 손님들이 줄을 선다. 오랜 식당가 느낌의 허름하고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환담을 나누며 기다리는 지루함 또한 즐긴다. 핫한 곳이라는 걸 증명하듯 외국인 여행객도 많이 보인다. 생각보다 순번이 빠르게 돌아 잔칫집 같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오찬을 즐긴 우리는 종로 주변을 가볍게 여행한다. 웅장함보다는 절제된 엄숙함과 위엄이 서린 종묘 정전과 더 넓은 월대를 바라보며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기운을 잠시 느낀 뒤 종묘 돌담길을 끼고 ‘서순라길’을 걷는다. 옛 정취와 이국적인 느낌이 조화로운 젊은 감성의 이색적인 카페와 공방이 돌담길과 마주하며 늘어서 있다. 옛 조선의 치안을 담당하던 순라군이 다니던 길이다. 어설프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익선동 한옥거리로 향한다. 두 사람이 비켜가기도 빠듯한 골목과 낮은 기와집이 한국의 정서를 품고 있다. 한옥과 현대적 감성이 결합된 공간은 오밀조밀 골목에 개성 넘치는 식당과 카페, 소품가게들로 정겹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다. 소금빵으로 유명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치즈를 직접 만든다는 카페에서 맛있는 치즈케이크도 산다. 소소한 즐거움이 인다. 익선동은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단지 중 하나로 1920년대부터 형성되어 판소리 여장 명창들을 비롯하여 많은 예술인이 살았다. 해방이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존하였고 한때 요정 관광으로 성행하다 쇠락한다. 20세기 후반 성소수자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던 이 곳은 서민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골목길과 작은 가게들이 형성된다.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젊은 창업자들과 예술인들이 한옥의 멋을 그대로 살리며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니 서울 도심 속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감성 공간으로 변신한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가 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기도 한다. 핫플레이스란 SNS나 뉴스에서 화제가 되어 많은 사람이 자주 찾는 곳으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말한다. 핫플레이스가 성공하는 핵심요소는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반영한 테마 공간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젊은 감성으로 지역특색을 살린 상점과 카페, 공방 등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서순라길과 익선동도 전통적인 분위기와 젊은 감성의 조화로움이 입소문을 타면서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는다. 포항 효자동 ‘효리단길’도 젊은 감성 카페와 음식점으로 나름 핫한 곳이라 불리지만 스토리텔링이 아쉽다. 효리단길도 ‘익선동(益善洞) 한옥거리’ 같은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효리단길 만의 색깔을 담은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려면 지역 아티스트와 청년창업가, 정책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포항에도 많은 여행객이 핫플레이스 감성을 찾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3-06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에 가다

일기예보와 달리 다행히 맑은 날씨다. 그날은 경주평화연대와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주관으로 3·1절 기념 행사가 있었다. 행사 1부가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고헌 박상진 의사묘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이라 늦지 않게 출발했다. 큰길에서 농로로 접어들기 전 박상진 의사 묘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갈색계열 바탕의 표지판은 색이 바랜데다 오염되어 멀리서 글자를 알아보긴 어려웠다. 정비가 필요해보였다. 주차장에 도착해 올려다보니 오르막길에서 경주겨레하나 이남희 선생께서 길을 오르다 말고 기다리고 계셨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묘에 이르자 경주겨레하나 회원 및 경주평화연대회원들이 준비해온 제수 음식들을 부지런히 차리고 있었다. 날씨가 맑은 탓인지 여기저기 들려오는 새소리도 청아하다. 반짝 이뤄졌던 100주년 행사를 제외하고 찾는 이가 많지 않다는 안타까움과 별개로 세상 시끄러운 소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11시 반이 좀 넘어 천도교 경주교당에서 2부가 시작되었다. 만세삼창 및 한차례 의식을 갖고 태극기와 동학기를 든 사람들은 시가행진을 하며 3부 행사가 준비된 봉황대로 향했다. 만세 소리와 새하얀 두루마기들이 시선을 끈 덕에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함께 만세삼창을 하기도 하고 사진으로 담기 바쁜 모습이었다.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에 이르자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날 행사엔 천도교 경주와 용담교구 교인, 경주겨레하나 회원,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회원, 포항 동대해문화연구소 회원, 포항 일월문화원 회원 등이 참여했다. 독립군가영상이 준비된 화면으로 보여졌다. 이어진 홍범도 장군 유해 운송 장면은 다시 보아도 가슴이 저릿해진다. 김성대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상임이사로부터 손병희 선생 지시로 영남지역 천도교 지도자 세 분이 머물며 기도봉행 및 종교인대표 33인, 종교인들에 대한 일제의 삼엄한 감시, 그리고 당시 대구경북 독립운동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러 차례 만세운동을 위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지만 4월까지 경북을 비롯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져나갔다. 경주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현장인 장터가 위치했던 이곳엔 현재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표지석이 전부다. 당시 3·1 독립운동의 중요 장소였던 노동교회, 현 제일교회 및 천도교 경주교구도 가까이 위치해 있어 아쉬움이 더 크다. 상대적으로 신라시대의 유물들을 보여주는 전시관은 그 옆에서 큰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한 각 단체의 대표격인 김상조, 정미라, 이상령, 박내천, 김한 5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이어졌다. 이후 낭독이 끝나자 목암 서승암 선생의 주도로 현장에 있던 사람 모두가 참여해 만세 삼창이 이뤄졌다. 기념행사를 계기로 우리 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독려함과 함께 기념촬영을 끝으로 행사는 종료되었다. 돌아오는 길 행사장의 반대편에선 탄핵반대 집회가 준비 중이었다. 같은 태극기를 들어서 그런 탓일까. 집회를 준비 중이던 어르신 한 분이 참가자들에게 탄핵을 반대하지 않냐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참가자 중 한 분이 싱긋 웃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 당신의 생각에 반대한다고 말씀하셨다. 같은 태극기,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더는 흐리지 말라는 뜻인지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하늘은 더 없이 화창했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3-04

두곡숲에 울린 함성 “대한독립 만세!”

2025년 3월 1일, 106년 전 그날의 함성이 두곡숲에서 울려 퍼졌다. 두곡숲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1리 만세촌 입구에 있는 숲이다. 포항에서 전개 된 삼일만세운동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독립운동이다. 1919년 3월 11일, 여천장날, 여천장터(죽도시장 인근)에서 포항교회(포항제일교회의 전신)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이 운집하여 총독부의 경비가 삼엄하던 일본인 집단거주지 한 가운데에서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서를 벽에 붙이고 행진을 했다. 일본군경의 강압으로 해산되었지만 다음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세운동은 이어졌다. 3월 22일, 송라면 대전리 14인과 청하면 9인이 중심이 되어 청하장터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위협하며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동한 23인을 검거해갔다.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은 혹독한 고문으로 순국한 분들도 있고, 옥고를 치른 의사들은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한편 해외로 나가 독립군에 입대하여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분들도 있다. 대전리 사람들은 3월 27일, 다시 두곡숲에 모여 만세를 더 크게 외쳤다. 어린이들도 골목에서 만세놀이를 했다. 일제의 감시는 더욱더 살벌해졌고, 당시 80여 호를 이루었던 마을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떠나고 50여 호로 줄었다. 그날처럼 교회종소리가 고요히 울리자 태극기를 만들고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이익호 의사의 생가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흰색 두루막을 입고 태극기를 손에든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참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올해는 유난히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석해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제의 폭압에 맞서 빼앗긴 이 땅을 찾고자 한 그 선열들의 뜨겁고 간절했던 열망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풍부함은 선열들이 흘린 피와 목숨의 대가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는 일만큼 절망적이고 통탄할 일이 있을까. 겨우내 차갑고 메마른 덤불속에서 냉이가 연둣빛 새순을 돋우고, 매화 나뭇가지에도 발그스레한 꽃망울이 맺혔건만 사람의 마음속을 환하게 밝혀주는 진정한 봄날은 언제쯤 올까. 포항 삼일운동의 성지라 할 만한 이곳, 대전리 만세촌에서 시립합창단과 함께 애국가 4절을 부르고, 유족회원이 낭독하는 독립선언서를 들을 때 마다 숙연해진다. 빼앗긴 나라를 찾고 세계평화를 갈구했던 선열들이 106년 전 두곡 숲에서 목청껏 외쳤던 함성, 다시 외친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이순영 시민기자

2025-03-04

경주 파도소리길에 주상절리 꽃 피었다

파도소리길을 걸었다. 바다 옆에 살다 보니 파도 소리가 들려도 듣지 않았다. 읍천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하면서 걷는 이 길이 ‘파도소리길’이라니 파도가 보였다. 그리고 찰싹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 구간을 일컫는다. 데크로드, 정자, 벤치, 구름다리 등 해안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는 2012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읍천항에는 초성을 형상화한 조각이 부두 여러 곳에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하서항의 등대는 하트를 품은 자물쇠 모양으로 사람이 그 안에 서서 인증샷을 찍기에 좋아 일부러 찾는 이들이 많다. 우리도 사진을 찍는 사이 등대 주변에서 낚시하던 젊은이들이 월척을 잡아 올려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경주에서 시작해 포항, 영덕, 울진까지 바다를 끼고 해파랑길이 달려간다. 이 길을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경주는 파도소리길, 포항 바다계단길, 영덕 모래 돌 섬 길, 울진 돌물 어울림길이다. 곳곳에 주상절리와 돌출한 지층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파도소리길에는 부채꼴 주상절리부터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운 주상절리, 바로 솟은 주상절리 등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1㎞ 남짓의 짧은 해안에 모두 모여 있어 가히 ‘주상절리의 박물관’이라 불릴 만하다. 특히 둥글게 펼쳐진 형태의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계적인 규모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부채꼴 주상절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둥근 연못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둥글게 배열된 주상절리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부채꼴 형태의 주상절리는 둥근 구덩이에 고인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벽면이 둥글기 때문에 용암은 둥글게 고이게 되고, 차가운 벽면에 닿은 용암의 표면에서부터 육각형의 형태를 남기면서 금이 가게 된다. 둥근 벽면 쪽에서 식어서 갈라지기 시작한 틈은 용암이 계속 식어가면서 원의 중심부를 향해 계속 갈라진다. 한편 둥근 연못으로 용암을 흘려보낸 용암길에서 식은 용암의 흔적도 볼 수 있는데, 부채꼴 주상절리 오른편에 길게 누운 주상절리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누워 있는 주상절리들은 용암 수로 양 벽면에서부터 갈라져 들어왔기 때문에 누워 있는 형태의 기둥이 된다. 길옆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우뚝 솟아 있어 그리로 향했다. 4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달팽이처럼 빙글거리는 계단을 올랐다. 오를 때마다 경주 곳곳을 찍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솜씨가 뛰어나 상을 받은 사진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니 사방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렀다. 날씨가 좋아 바다 멀리까지 보였다. 해국같이 활짝 핀 부채꼴 주상절리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미디어아트 세 가지가 바다 풍경과 어우러져 볼만했다. 파도가 폭포가 되어 쏴아 쏟아지는가 하면, 꽃잎이 확 번지며 떠올랐다. 주상절리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형상화해 볼거리를 마련했다.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탐방 인원이 5인 이상 단체 해설 예약 가능하다. 4인 이하는 현장 안내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현장 안내센터는 △포항 호미곶·여남동 △경주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읍천항·골굴사 △영덕 해맞이공원 △울진 지질공원센터·덕구온천·평해 사구습지에 있고 탐방 희망 3일 전까지 신청 가능하다. 안내센터가 없는 지질명소의 해설을 원할 경우 동해안 지질공원 사무국에 별도 문의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Tel. 054-783-9195/geopark@knu.ac.kr) /김순희 시민기자

2025-03-04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소소하고 소중한’전

주말 늦은 오후 아이와 산책을 나섰다. SNS를 살펴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특별전이 눈에 들어와 급히 나섰다. 누군가에겐 벼르고 세운 여행지들이 경주사람들에겐 흔한 산책 코스가 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맞은 국립경주박물관은 여전히 붐볐다. ‘소소하고 소중한’이란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산책코스가 그렇듯 경주에서 어지간한 유물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풍문으로 듣기에 어른들은 곧잘 어린 시절 유물 파편으로 소꿉놀이를 했다고 했다. 그 정도로 흔한 것이 토기 파편들이다. 드라마 지나가는 행인 1보다 배역이 적은 그들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처음 만난 대상은 중층 유리구슬이었다. 유리 위에 금박을 입히고 다시 유리를 입히면 금구슬이 된다고 한다. 신기한 한편 탐날만큼 예뻤다. 그 다음은 금동손이다. 머리 잃은 불상, 손 잃은 불상은 자주 만났지만 홀로 남은 ‘손’은 낯설다. 만든이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작고 귀여운 손 안에서도 부처님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깨어진 항아리들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항아리마다 자신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항아리 주인들은 그들의 항아리가 이곳에 이렇게 놓여질거라 예상했을까. 원도심에 갈 때면 자주 찾는 중심상가 주차타워 부지에서 발견되었다는 동물 모양 벼루는 개구리를 닮았다. 어쩌면 휴대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벼루는 동일한 모양의 기념품이 있다면 바로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어지는 사자와 짐승 얼굴무늬 꾸미개도 마찬가지다. 두 마리의 사자는 씨익 웃는 모습이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귀여운 외형덕에 아이의 반응도 좋다. 바독돌 앞에는 오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기가 준비되어 있는데 사람들 대기가 많아 다음을 기약했다. 직물코너에선 요즘 뜨개질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특히 관심을 보였다.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남기는 메모에도 가장 관심이 있는 유물로 직물을 선택했다. 잠시후 드디어 만났다. 특별전으로 이끌었던 대상이었던 나무로 만든 빗이다. 하루를 계획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 모두 함께 하는 빗이다. 저 빗 주인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자신의 머리 혹은 가족의 머리를 빗기며 만들어갔을 일상들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모르는 이에겐 흔한 돌맹이에 불과했을지 모를 숫돌과 석기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끝으로 만난 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다. 조선 전기 작품으로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세상 빛이 반가워서일까. 은은한 미소와 여유로워 보이는 자세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또하나 이번 전시의 특별한 점은 각각의 유물을 담당한 큐레이터에 대한 소개다. 중간중간 재밌게 소개된 그들의 안내는 전시의 맛을 한껏 더해주었다. 옆에 없지만 함께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특별전 관람은 당연하고 소소한 것들이야말로 우리 일상을 채워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특별전은 오는 3월 9일까지 진행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27

꽃 피우기에 늦은 때란 없다

한동안 따스한 햇살에 몸이 녹아내리더니 또 꽃샘추위다. 창문이 덜컹덜컹 바람에 흔들리며 쉽게 봄이 오지 못함을 되새겨준다. 봄이 봄다워지기 위해 아직 몇 번의 몸살이 더 남았을까. 이월의 끄트머리에서 너무 성급히 봄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조금 변해 있다. 산책길에 발견한 버들개지 보송한 솜털에도 봄기운이 묻었다. 어떤 일이든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색을 바꾸고 땅을 녹이고 거죽을 뚫으며 봄은 오고 있다. “봄이 봄다워지기까지 / 언제고 한번은 이렇게 / 몸살을 하는가보다 /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꽃을 피울까마는 / 어디서 남몰래 꽃이 피고 있기에 / 뼈마디가 이렇게 저린 것이냐”- 정희성 시 ‘꽃샘’ 요즘 시대에는 꽃피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티비에서 91세 할머니를 보았다. 책을 읽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그 연세에도 마라톤을 하셨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열다섯 바퀴씩 도는 할머니의 열정은 젊은이의 열정 저리가라였다. 삼십 년을 마라톤을 해오신 할머니가 일 년에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만도 몇십 군데였다. 오로지 책을 읽고 배우는 기쁨을 위해 마라톤을 하는 할머니는 정말 대단했다.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하기에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 마라톤을 한다니 누가 이 할머니를 노인이라 할 것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힘든 마라톤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 그 열정은 원하는 것을 이루는데 나이는 아무런 걸림돌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 우리 모임에는 바리스타 할머니가 계신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실버 카페에서 일하신다. 검정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도 하셨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으신다. 할머니 바리스타의 커피는 뭔가 다르다. 젊은 사람이 뽑는 커피와는 다른 연륜과 내공이 담긴 커피라 더욱 그윽한 향을 내는 것 같다. 꽃 피우는 일은 그저 되지 않는다. 엄혹의 시기를 기다림과 인내로 건너와야 한다. 중년을 지나면 이미 꽃피우기는 늦었다며 이 나이에 뭘 하겠냐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데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꽁꽁 언 땅에 새싹이 돋고 마른 나뭇가지에 다시 꽃이 피듯이 누구에게나 꽃을 피울 수 있는 힘이 있다. 비록 꽃샘추위가 바람을 몰고 와 발목을 잡아도 포기하지 말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올봄에는 원하는 꽃 하나씩은 피워보자. 그 꽃으로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누군가는 커다란 용기를 얻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뜻을 버리지만 않으면 어느 나이에도 꽃은 핀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2-27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꽃샘추위의 시샘 속에서 졸업과 입학으로 축하 꽃다발이 분주히 오가는 시즌이다. 죽는 날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대변하듯 마무리와 동시에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유치원생이나 대학원생이나 다를 바 없다. 학생의 대다수가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도 예외 없이 졸업과 입학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2월 8일 흥해읍에 위치한 방송대 포항시학습관에서 포항총동문회 총회 및 48·49대 학생회장 이·취임식과 함께 49대 포항시학생회 출범식이 있었다.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슬로건으로 25년 한해를 맡게 된 49대 포항시학생회장은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인 이재민씨다. 3월 1일 포항시학생회 주관으로 같은 장소에서 2024년도 졸업식과 2025년도 신·편입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 포항 죽도시장에서 느끼는 그 생동감과 열정은 지역민의 학구열에 까지 영향이 미친다. 방송대 포항시학생회 소속 2024년도 졸업자 중 23명이 14개 학과에서 ‘성적 우수상’을 받는다. 학생회 출범 시기도 대구·경북 지역대학 총학생회(43대)보다 포항시학생회(49대)가 더 빠르다. 그러나 25년도 1학기 정시 인원이 203명으로, 신·편입 인원이 최대 700여명이었던 전성기 대비 절반수준으로 꾸준히 감소하면서 지난해까지 포항시학습관에서 이루어지던 출석수업이 2025학년부터는 대구 달서구 소재 대구·경북 지역대학으로 옮겨진다는 것이 학교 방침이다. 영덕, 울진, 경주, 영천 등 인근 지역 학생들까지 이용하던 포항시학습관을 두고 출석수업을 위해 장거리를 다녀야하는 학생들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학우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재민 학생회장은 포항시학습관에서 출석수업이 계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학교는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양질의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학생회는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 학교에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로써 기능한다. 학교와 학생회가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학문적 성취와 개인의 발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평생직장이 힘들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직장과 병행이 가능한 방송대에서 국가자격증을 취득한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유아교육과 정교사 자격증, 식품영양학과 국시 응시 자격증 등 교육학과에서 지정 이수과목을 이수하면 교육부장관이 발급하는 국가자격증인 ‘평생교육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학위보다 학습자체가 목적이라면 한 달 영어 학원비로 수준 높은 강의와 체계적인 수업이 있는 방송대 영어영문학과가 더 효율적이다. 배움의 의지는 삶에 생동감을 준다. 정국(政局)이 불안하니 국민이 깨어있어야 함을 더 실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글을 몰라 억울함을 당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구제함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글로 인해 문맹률이 아주 낮다. 이는 배움을 부추기며 방송대처럼 열려있는 곳에서 평생을 공부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된다. 호연지기로 채워진 자존감이 가슴에 충만해지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614D 不亦君子乎)’라는 공자 말이 무색해진다. 새로이 출범한 49대 방송대 포항시학생회가 열정 넘치는 학우들과 함께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밝고 생동감 넘치는 사회의 한 조각이 되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2-27

언제나 그 자리에 ‘안동 제비원 석불’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은 고려시대인 11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안동사람들에겐 ‘제비원 석불’ 혹은 ‘이천동 석불상’, ‘제비원 미륵’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오도산 남쪽 기슭 거대한 바위벽 전체 높이 12.38m, 너비 7.23m에 달하는 크기에 선으로 몸통을 새기고 2.4m 높이의 머리 부분을 조각하여 얹어 놓은 불상이다. 화강암 석벽 머리의 뒷부분은 평면의 자연석을 그대로 두고 앞면만 얼굴을 조각하였다. 얼굴은 자비로운 미소를 띤 모습이고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9AFB: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솟아 있다. 양손은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설법할 때 취하는 아홉 종류의 손 모양 중 하나인,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제비원 석불은 오랜 세월 지역민의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미륵불 어깨에 앉아 소풍 기념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도로가 닦이기 전 비포장도로에서 멀리 미륵을 배경으로 나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제비원 불상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옛날 석공 기술을 가진 어느 형제가 살았는데 조각 솜씨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최고의 조각가는 둘이 있을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불상을 먼저 만든 자는 살아남고 늦게 만든 자는 죽기로 약속하고 시합에 들어가게 된다. 동생은 열심히 돌을 갈아 다듬었으나 형은 빈둥빈둥 놀기만 하다 약속한 날이 임박하자 미륵의 머리만 조각하고 큰 바위에 얹어 불상을 완성했다고 한다. 부처의 몸체부터 만드느라 기간 내에 완성하지 못한 동생은 그만 죽고 말았고 형이 만든 불상이 지금껏 내려오는 제비원 석불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 ‘제비원 이야기’로도 각색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불상이 새겨진 암벽의 맞은편에 수직 암벽이 서 있어 두 암벽 사이에 석굴처럼 좁은 공간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 미륵전 불단이 있어 가정의 평화와 소원성취를 바라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비원 석불은 안동시 이천동 산2번지, 안동에서 영주 가는 국도에서 언제나 온화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을 지날 일이 있다면 잠시 들러 심신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것도 좋겠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2-25

두 영웅이 자리한 절벽…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안동 부용대에 오르는 길, 영하의 날씨지만 바람 한 줄기 없이 하늘은 구름 한 점 띄우지 않고 푸르러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우리 일행만 오르는 숲길엔 새소리만 들렸다. 화천서당 주차장에서 물 위에 뜬 연꽃 같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까지는 금방이다. 숨이 차기도 전에 도착한 우리 눈에 하회마을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탄성을 부르는 경치다. 기와집이 이마를 맞대고 머리를 잘 다듬은 초가가 가끔 섞인 동네, 하회탈춤 판이 벌어지는 유서 깊은 동네가 강을 휘감는다. 과거 이 마을에서는 담장을 만들 때 돌을 섞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을이 물에 가라앉지 않기를 바라는 풍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동네를 감싸는 소나무 숲은 만송정이다. 류성룡의 맏형 류운용이 동네에서 바라보이는 절벽의 살기운을 막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비바람도 막아주니 일석이조였다. 햇살에 윤슬이 강 위로 쏟아져 눈이 부시다. 배 한 척이 그림처럼 모래톱에 누웠다. 하회 건너편에 류성룡 선생은 탄홍 스님의 도움을 받아 옥연정사를 마련한 다음 이 집에 대한 기록을 ‘옥연서당기’로 남겼다. 선생은 호를 서애(西厓:서쪽 벼랑)로 짓고 마을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스스로 외로운 ‘고라니의 삶’을 살아가길 원해 강 건너 절벽 아래 지었다. 주차장에서 옥연정사로 향하자, 고양이가 길 안내를 맡는다. 앞서가다 야옹아 부르니 돌아와 우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또 앞장선다. 잘 따라오라는 소리같다. 마당에 들어서니 용트림하는 소나무가 비스듬히 하늘을 받치고 섰다. 서당채의 이름은 세심재(洗心齋)이다.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루 감록헌은 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 물 구비 바라보네’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마루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방 한 칸이 있으며 선생께서 서당으로 쓰신 곳이다.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遠樂齋)라 하였는데,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 방에 기거하며 징비록을 서술하셨다. 고양이를 따라 간죽문으로 나갔다. 이 길로 절벽의 좁은 길을 따라가면 겸암정사에 도달할 수 있는 층길이 있는데 지금은 일반인들이 다니기에 위험하여 폐쇄되었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화천서원 반대편 내리막길로 가면 나온다. 조심조심 내려가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강의 물결이 일품이다. 자꾸만 서서 바라보게 만든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데도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송사리가 노닐 것만 같고, 손을 뻗으면 물결이 만져질 것만 같다. 류성룡의 맏형인 겸암 류운룡이 건립한 정사 앞에는 나이 많은 나무가 우리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봄 마중하며 늠름하게 하늘을 우러렀다. ‘겸암(謙菴)’은 자신의 능력과 덕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스승인 퇴계 이황이 15세 문하생 류운룡의 학문적 재질과 성실한 자질에 감복하고 지어 준 것이다. 정면의 ‘겸암정(謙菴亭)’ 편액은 퇴계가 쓴 것이다. 얼마 전 일본 마쓰야마의 가류산장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었다. 함께 간 아들이 우리나라에 이보다 풍경 좋은 누각이 더 많아 감흥이 없다고 한 이유가 겸암정사를 두고 한 말 같다. 하지만 문이 잠겨 마루에 오르지는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오래된 건물을 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사람의 숨결을 쏘이고 발길이 오르내려야 한다. 경회루와 진주 촉석루의 마루도 사람이 오르자 벌레 먹는 일이 줄었다고 한다. 마루에 올라 류씨 형제의 시선으로 하회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여기 오는 사람 모두가 같을 것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25

요즘 대세 소비 트렌드, ‘아는 맛’이 뜨겁다

요즘 대세인 소비 트렌드는 레트로(복고) 감성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익숙한 ‘아는 맛’에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다. 레트로는 과거의 스타일, 디자인, 문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을 말하는데 패션에서부터 식품과 게임, 영화 등 일상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는 맛인 레트로 열풍은 최근의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인한 소비자들의 지갑 열기가 어려워진 영향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생활형편·경기 등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100.7에서 12월에는 88.4로 떨어졌다. 이 사이를 레트로 마케팅이 파고들었다. 아는 맛이 아날로그의 추억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성세대에게는 단순히 추억의 맛을 전할 뿐 아니라 젊은 세대와의 공감과 연결의 역할도 함으로써 그 매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MZ세대인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에서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레트로가 더 두드러진다. 이들은 디지털 세대이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아날로그 감성과 경험 등 옛날 것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 2030의 젊은이들은 지금은 휴대폰으로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옛날처럼 LP판을 통해 듣거나 그 시절 추억의 음식을 맛본다면 부모님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7080년대 TV 광고에서 인기를 끌었던 제품 등 당시의 디자인을 활용한 재출시, 필름 카메라, 굿즈들은 소비자들에게 여전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들은 SNS로 소통하고 그들의 레트로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소통과 공유의 문화가 되었다. 단순 제품 소비가 아닌 스토리와 출시 당시의 사회문화적 경험에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개봉이 이어지고 있는 영화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부터 극장 예매 사이트에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죽은 시인의 사회 등 반가운 영화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몇몇은 현재도 상영 중이다. 비긴어게인, 미드나잇인파리, 이터널 션샤인도 재개봉해 관객들을 맞았다. 오래된 영화가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는 것은 옛 영화를 다시 보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가치관으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서다. 20년 전 만들어진 영화가 현재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될 때 관객들에게 영화는 새롭게 다가온다. 재개봉 영화가 추억을 소환하는 건 당연하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감정과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고 관객들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소중한 추억을 나누는 기회가 된다. 영화관에서는 관객을 다시 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재개봉한 영화 ‘해리포터’를 본 시민 A(43)씨는 “해리포터 팬인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바쁜 아이들과 대화도 하고 덕분에 책도 구입했다. 재개봉 덕분에 예전에 놓쳐버린 명작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레트로에 사람들이 끌리는 이유는 예전의 감성이 느껴지면서 새롭게 재해석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존경과 미래에 대한 창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소통의 매개체도 된다. 전 세대와 공감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아는 맛’ 레트로가 앞으로도 사랑받아야 할 이유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25

3·1절을 맞으니 떠오르는 민족 저항시인 심훈

심훈 106주년 삼일절이 다음 주다. 새삼 심훈(沈熏)이 생각난다. 당진 출신인 그는 35년 짧은 생(1901~1936)을 마감했다. 시 ‘상록수’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계몽가이자 민족 저항시인이다. 특히 그는 일제에 넘어간 조국의 아픔을 여러 시를 통해 절규했다. 심훈은 열아홉 살이었던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한다. 이로 인해 체포돼 옥고를 치른 그는 연희전문 문과에 재학 중, 그날의 감격을 되살리기 위해 시를 쓴다. 그게 바로 ‘그날이 오면’이다. 광복된 조국의 그날을 열정적으로 그려낸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애국민족 저항시 중의 하나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3·1절에 광복의 그 우렁찬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아쉬움 없이 눈을 감겠다는 시인의 당찬 의지와 외침을 느껴봤으면 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시 ‘그날이 오면’ /손수여 시민기자

2025-02-23

노랫가사 개사하며 풍류 즐겨

풍류란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이나 또는 그러한 생활이나 태도를 말한다. 다른 말로 풍월이란 말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읊거나 노래한다는 뜻의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풍류놀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활동 중 하나로, 자연 속에서 예술과 여유를 즐기는 놀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바삐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는 자연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 한가하게 즐길 수가 잘 없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게 현대판 풍류놀이다. 풍류회에서 하는 풍류놀이는 우리 가요를 재해석해서 가사를 패러디해보는 일이다. 우리 가요 한곡을 선정하여 10명의 회원이 각자마다 개사를 하는데 주제가 다양하다. 자연 풍광을 주제로 하는 이, 효를 주제로 하는 이. 우정을 주제로 하기도 하고 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 월례회 날은 각자 개사한 가사를 대구생활문화센터 음악실을 대관하여 원곡 음원에 맞추어 발표를 한다. 각자는 가수가 되어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화감독인 신재천 회원은 댐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그리며 남정희 원곡의 새벽길을 패러디해서 ‘내 고향 합강’을 노래했다. “능금꽃 피는 고향 뛰어놀던 초동친구/ 지금은 타관객지에 무얼 하며 살아가나/ 봄이면 풍호정에 여인들의 화전놀이/ 여름엔 강변에서 천렵하며 놀던 추억/ 그 시절이 그립구나 나의 고향 합강아” 김윤숙 시인은 남인수 원곡 ‘울며 헤어진 부산항’을 ‘사랑 품은 팔공산’으로 바꾸었다. “정기 어린 팔공산에 흐르는 달빛/ 동화사 풍경소리 그윽하구나/ 갓바위에 새긴 사랑 별도 달도 빛나는 밤/ 언제나 그대와 함께라면 음~음~음~음~” 고영애 시인은 박경원 원곡 ‘만리포 사랑’을 개사했다. “은발은 휘날리고/ 주름 훈장 잡혀도 마음은 싱그러운/ 우리들이 가는 길 그리워 애가 타도 달을 보듯 별 보듯/ 노을 진 저녁하늘 붉게 붉게 물든다” 한대곤 회원은 신세영 원곡의 ‘전선야곡’을 ‘칠순 야곡’으로 가사를 지었다. “세월 흘러 일흔 줄에 자유의 몸이 되어/ 어디서나 언제라도 내 멋대로 살아간다./ 칠십여 년 한평생을 갈고닦은 내 인생/ 이제부터 마음 열고 나의 일을 하련다/ 아 아 즐겁게 살련다” 전영귀 시인은 배호 원곡 영시의 이별을 시절 안녕으로 했다. “단풍잎이 가을비에 젖어 우는 팔공로/ 계절 앞에 너와 나는 덧없이 슬펐다/ 찬란한 오색 빛도 지난 날의 한순간/ 아쉬움도 묻어두면 추억 갈피 시절아 안녕” 김임백 시인은 백난아 원곡 ‘아리랑 낭랑’을 ‘새해 소망’으로 지어보았다. “새해 여는 첫 길 위에 소망 꽃이 피어난다/ 어둠은 멀리 사라지고 찬란한 빛 손짓하네/ 이 길은 모두 함께 걷는 희망의 길/ 넘어져도 우리 꿈만은 빛을 잃지 않아요” 자신이 직접 만든 가사로 노래를 부르면 즐기다 보니 풍류회의 한마당은 어느덧 절정에 도달한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2-23

저항권(抵抗權)으로 위장한 폭력

석종출 시민기자 2025년 1월 18일 저녁에서 19일 새벽 사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에 저항하는 일부 국민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방화를 시도한 사건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행동을 합리화 하려는 시도를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법률용어 사전에 의하면 ‘저항권’은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권력에 의하여 저항할 수 있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라고 하면서 실정법상으로 승인된 국민의 권리는 아니라고 해석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저항권을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있다. 대법원(1980년 5월 20일) 판결에는 저항권 이론을 재판의 근거, 규범으로 채용, 적용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나 헌법재판소(1997년 9월 25일)는 저항권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국민이 자기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라고 하는 긍정설이다. 헌법재판소의 저항권 행사요건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 또는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는 보충성의 요건이 적용되며,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회복이라는 소극적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라고 요건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경우에도 폭력적 행동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의 정당성을 말하면서 앞서 언급한 저항권을 주장하지만 폭력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한 상임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만약 헌법재판소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슬러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국민은 헌재를 두들겨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국민의 뜻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기에 이런 막말이 용인되는지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이러한 막말이 공공연한 것의 큰 원인은 국민의 뜻을 볼모로 하는 편향된 극단적 사고이며 선동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민주사회에서 폭력적 행동은 금기되어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가면 결국은 온세상이 장님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또 한나 아렌트는 “폭력은 결코 권력을 창출하지 못한다. 폭력은 권력의 도구일뿐 결국은 권력을 파괴한다”면서 “폭력이 진정한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는 “어둠은 어둠을 밀어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밀어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저항권으로 위장한 폭력을 용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석종출 시민기자

2025-02-23

“내방가사는 조선 여성의 삶을 담아낸 진솔한 기록”

내방가사란 조선시대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과 감정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일종의 문학 작품이다. 특히 영남지역 양반가에서 크게 유행했던 탓에 다른 곳보다 우리지역에서의 전승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2022년 11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지역 목록에 내방가사를 등재하면서 내방가사는 문학적 가치와 함께 역사적 가치까지 평가를 받게 된다. 이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대구와 경북에서 내방가사 전승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가 여럿 있어 화제다. 안동에서 활동하는 내방가사전승보존회(회장 이선자)는 이 분야의 대표적 단체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단체로는 내방가사문학회(회장 권숙희), 영남내방가사연구회(회장 장한규), 영남가사연구회(회장 이홍자) 등이 있다. 이들 단체들은 대구 용학도서관에서 매년 영남가사문학 어울마당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7회째 행사도 준비 중이다. 회원들은 행사를 통해 회원간 유대를 넓히고 한편으로는 내방가사 전승에도 힘을 쏟는다. 내방가사문학회 권숙희 회장은 “내방가사는 세계에서 유일한 여성집단 문학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특히 “내방가사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젠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내방가사 문학회는 주로 여성들 중심으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 유일의 여성집단 문화란 특징이 그런 흐름을 이끌어 왔다. 지금도 많은 여성 원생들이 내방가사 연구에 관심을 갖고 발굴과 풀이, 홍보활동에 나서고 있다. 권숙희 영남가사문학회장 권 회장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내방가사 내용에는 여성들의 고단함과 애환들이 많이 담겨져 있는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여성 개인의 단순한 기록으로만 보지 말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눌린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료로 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내방가사는 조선 말기부터 안동을 중심으로 주로 영남지역 양반가 여성들이 창작한 한글 문학이 많다. 초기에는 유교적 가치를 전파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으나 이후 개인적 고백, 사회 비판, 민족적 저항으로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했다. 형식적 특징으로 4음보를 기본으로 하며 한글을 익힌 여성이면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었다. 내방가사 문학회 회원인 유정자씨는 “내방가사 문학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좋다”며 “역사와 문학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단체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2-23

흥미로운 그림 보러 경주시청 2층으로 오세요

경주는 문화와 관광을 두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도시다. 그리고 그 명성에 맞게 무료로 진행되는 문화행사와 전시회가 자주 열린다. 경주예술의 전당 내 전시장을 비롯 지역 내 사설 갤러리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경주시청 2층 로비는 10여 년 전부터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시장실을 기준으로 양쪽 벽면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전시 공간이다. 매년 연초에 전시 공모를 통해 작가들을 선정한다. 대관료는 무료며 소액의 리플릿 제작비까지 지원되는 이유로 모집 공고가 뜨면 바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덕분에 시청을 방문하면 정기적으로 바뀌는 수준 높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엔 평면의 캔버스 속에서 공간 접기라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김정자 화백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따뜻한 느낌과 낭만이 함께 느껴지는 화면 속에서 인물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풍경은 면이 접혀짐으로 공간이 변화하는 특별함을 준다. 그녀는 화면 속에서 자연이나 대상물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재해석한다. 그 것들을 다양한 면으로 접고 공간을 확장해서 자연의 색을 변화시키고 조화롭고 신비한 조형미로 표현하여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공간여행을 시도한다. 이는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과 ‘공간 접기’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다면적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보다 열린 세계로의 확장을 모색함으로써 극적으로 소통을 통해 삶을 긍정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김 작가는 이 세계 속에서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작업을 한다. 이번 작업은 초원의 들판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핑크뮬리, 초록의 풀밭, 몽환적인 느낌의 보랏빛 풍경들이 딱딱한 공간을 부드러우며 낭만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끝으로 현대에 지친 사람들에게 가상의 공간여행으로 삶의 힐링과 도움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5년 1월 20일에서 3월 2일까지 경주시청 갤러리에서 열린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20

걷기가 주는 혜택에 빠져보자

이월도 중순을 넘어선다. 입춘이 지났지만 추위는 여전하다. 겨우내 추위 핑계로 아무 운동도 하지 않았더니 몸이 굳는 느낌이다. 곧 여행 일정도 잡혀 있어서 체력 보강도 할 겸 걷기를 시작했다. 집을 나와 조금은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아직 겨울이 묻은 바람이 마주 선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주택가를 지나 들판으로 접어든다. 조금만 걸으면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시골 사는 혜택이다. 늦추위 때문인지 길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찻길을 건너 숲길 가까이 다다랐다. 철길 옆 작은 찻집 외벽에 시화가 걸려 있다. 물끄러미 서서 읽어본다. 천천히 내게로 스며드는 시구, 산책길이 풍성해진다. 길가로 마른 풀 덩굴이 바람이 흔들린다. 쭉 펼쳐진 밭들을 보니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배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허형만 시 ‘겨울 들판을 거닐며’ 시인이 말하였듯 들판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뜻을 곰곰 되새기며 멈추지 않고 걷는다. 강가에 다다랐다. 문경의 영강 줄기이다. 체육공원과 이어진 강가에 서니 강물이 윤슬로 가득하다. 순간 짧은 탄성을 지르며 걸음을 멈춘다. 세상에 어떤 것이 저보다 아름다울까.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내 생애 몇 번이나 더 있을까’라는 어느 시인의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의 눈부신 반짝임이 거기 다 들어 있다.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갈대가 손을 내민다. 겨울을 맨손으로 지나와서 물기가 말랐다. 어디 먼데 다녀온 친구처럼 강바람이 반갑다 뺨을 만진다. 물 위로 오종종 물새들이 모여 있다. 가장자리에 얼음이 얼어 있어도 발 시리지 않은 모양이다. 부지런히 자맥질하는 몇 마리도 보인다. 작은 짐승도 제 먹을 것 찾아 여념 없음이 기특하다. 모자에 마스크로 무장한 노인 둘이 나란히 걷고 있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도 천천히 걷고, 털조끼를 입고 되똥되똥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도 걷는다. 걸으면서 아름드리 소나무도 황홀히 올려다보고 마른 물풀의 휘어진 허리에도 눈을 준다. 다시금 걷는 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차를 타고 휭 지나갔으면 보이지 않았을 많은 것들이 걸으면 볼 수 있다. 작가나 시인들은 그래서 걷기를 즐겼다. 걸으면서 자연과 소통하고 영감을 얻었다. 춥다고 웅크려 있던 마음에 저절로 드넓은 자연의 기운이 채워진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이제 묵은 겨울을 털어내고 모두 걷기를 시작해 보자. 바쁜 일상을 사느라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만날 수 있다. 걸음이 쌓일수록 풍성해지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봄도 성큼 더 다가올 것이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