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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딸아, 너는 꽃길만 걸어라

딸의 결혼 얘기가 오가자 기쁘기 보다는 걱정이 많아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곧 결혼이라는 세계에 들어서야 할 딸의 걸음이 어쩐지 나는 측은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일은 가장 큰 축복이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길을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딸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고단함이 걱정되고 걱정되는 모양이다. “사춘기 육남매들 말썽 피울 적이면 엄마는 말했다// 열 살까지는 부모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어서는 다 니들 책임이라고// 책임을 다해 살았다// 고 믿는 나도 그때의 엄마가 되어 사춘기 딸에게 말했다// 열 살까지는 내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라고// 스무 살 스무 살까지만 하고 엄마처럼 살았다// 보청기를 달고 전화로도 기차화통이신/ 여든다섯의 엄마는 여태껏 책임을 초과해/ 쉰셋의 늙은 딸 아침을 알람 중이시다 일어났냐/ 목소리가 왜 그러냐 아프냐 고단하냐 귀찮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따순 아침밥 먹고 나간 자식들/ 안 삐뚤어진다 파김치 시어진다 다녀가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두 딸이 스무 살 스무 살만 되면/ 희망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정끝별 시 ‘삼대 2’ 우리 때만 해도 모든 여자들의 목표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였다. 엄마들은 자신의 이름도 잊고 나이도 잊고 그저 애들 뒷바라지와 남편 치다꺼리로 평생을 살았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고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자식 잘되는게 삶의 기쁨과 보람이었던 엄마들. 그 엄마의 고단한 삶만은 물려받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의 여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그런 엄마가 되어 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양수가 먼저 터져 입원해서 진통이 오길 밤새 기다렸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버스 끊긴 시골이라 달려오지는 못 하고 밤새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다음날 병원에 왔을 때는 입술이 퉁퉁 부르터 있었다. 난 맏딸도 아닌 넷째딸이고 엄마에겐 다섯 번째 손주였는데도 말이다. 그리 애면글면 하는 성격이니 일곱 자식 걱정에 애간장이 다 녹아 쉰 일곱 그 한창 나이에 그리도 급히 훌쩍 가버리셨나 보다. 시인의 팔순 어머니도 아직 책임을 초과해 전화기에 대고 저리 기차화통이라시는데. 시인은 두 딸이 스무 살만 되면 누구도 희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할걸 알기에 저리도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된다고 계율처럼 되뇌이지만 숙명처럼 엄마들은 또 책임을 초과하고 있다. 딸이 스무 살의 곱절이 지나도 엄마들의 질긴 자식 걱정은 아무래도 끊이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31

아트포항, 말라티아에서 K-문화 민화를 알리다

민화(民畵)는 말 그대로 ‘민초의 그림’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민화는 신석기시대 암벽화의 동물그림, 고구려 벽화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장생도(長生圖), 백제 산수문전의 산수도 등등이 한국 민화의 연원을 밝히고 있다. ‘서민들의 정감이 표현된 대중적인 그림’으로 정의되는 민화는 일상생활과 직결된다. 복을 빌며 나쁜 기운을 쫓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기를 바라는 밝고 화려한 색감으로 고된 민초의 삶을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아트포항운영위원회(위원장 장미화)가 주관하는 한국-튀르키예 국제미술교류전이 올해로 3년째다. 지난 2년은 이스탄불에서 화려하게 전시를 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2월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말라티아(Malatya)에서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의미를 담아 대중들의 꿈과 희망, 안위를 바라는 ‘한국 민화’를 주된 작품으로 전시했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포항국제아트페어 2024’는 지난 8월 ‘조화의 즐거움’을 주제로 서울을 시작하여 9월은 포항, 10월은 11일~16일 말라티아 문화예술센터에서 한국 정서가 담뿍 담긴 포항 작가들의 현대·전통 민화 작품과 다수의 서양화를 전시하며 성황리에 마무리 했다. 튀르키예에는 지진 피해가 심했던 말라티아와 이스켄데룬 두 지역에 지진 피해 이재민을 돕기 위한 520여동의 임시 컨테이너 주택이 한국인들에 의해 ‘한국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어 있다. 아트포항은 전시장에서 가까운 말라티아 한국마을 문화센터에서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들의 트라우마에 도움이 되는 미술심리치료 수업도 하며 현지 이재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정옥 작가의 현대 민화 ‘약속의 땅’이 신념이 강한 현지 젊은이의 종교적 오해로 인해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민화의 속성이 종교와 무관하며 현세적인 염원을 주제로 한 한국 선조들의 추상화라고 할 수 있고 대중미술로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안위를 바라는 데 있다는 통역으로 오히려 더 좋은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또한 아트포항운영위는 전시 개막식 때 참석하기로 예정 했으나 갑자기 악화된 건강으로 참석하지 못한 한국전쟁 참전용사(96세)를 한-튀 교류협회와 함께 찾아뵙고 진심을 담아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말라티야 Sami Er 시장은 한국 최초의 민간교류 전시라고 반가워하며 고맙고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K-문화를 알리는 데 자신감을 얻은 장미화 위원장은 다음 전시 작품으로 한국의 정겨운 모습을 담은 어반스케치를 계획하고 있다. 포항의 아름다운 모습과 한국 정서가 담뿍 담긴 우리 지역 작가의 어반스케치 작품으로 한류의 흐름에 동행할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2012년 ‘강남스타일’의 대히트를 기점으로, 외부 문화에 관심이 적은 영미·서구문화권에서도 한류 열풍이 일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 방탄소년단 등 많은 K-POP 그룹이 그 열풍에 불을 지폈다. 지금은, K-문화는 물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까지 영향이 미친다. 중국이 한국을 통째 자기네 문화로 엮고 싶어 하는 것을 역으로 보면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전시회 마지막 날인 10월 16일, 말라티아에 규모 5.9의 지진이 또다시 일어났다. 더는 이재민이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아트포항이 준비했던 포항작가들의 민화 작품과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이 그들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31

식물주민등록증을 낭독하다

'문화 소통과 공감'에서 낭독회가 열렸다. 10월에 사진에세이를 출간한 김주영 작가의 출판기념회다. 낭독 사랑방을 운영하는 권양우 낭송가는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김주영 작가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학인으로 소개했다. 수필에 입문한 후 사진에 빠져 공부하며 이젠 사진작가로의 입지를 굳혔다. 다음 달 11월 6일부터 열리는 ‘2024 국제여성사진페스티벌: 상상임신_테크니아(Pseudocyesis Technia)’에 식물의 꿈을 주제로 한 ‘Leaf Flowers’의 작품으로 사진전에도 참여한다. 김 작가는 그동안 여러 장소에서 사진전에 참여해 작품으로 관객과 만났다. 그러다 사진으로 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책으로 내게 되었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식물을 바라보는 마음, 자연을 대하는 마음, 그 비인간 생명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의 변화가 자연도 지키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첫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이번 책은 그런 작은 소망을 담아서 준비했다고 낭독회에 참석한 지인들에게 소감을 전했다. 그간 작가의 작업이 인정받아 이번 책은 포항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책을 낼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 또한 전했다. 함께 자리한 이들이 김주영 작가의 에세이를 나누어 낭독했다. 낭독하니 책 안에 잠자던 작가의 이야기가 밤기운을 덧입고 살아서 공간을 채웠다. 낭독의 힘이다. 묵독이 주가 되는 디지털 시대에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몸이 읽는 행위다. 낭독이란 목소리를 통과해온 문자가 살아서 형체를 갖추는 일이다. 그 옛날, 처음은 소리 내어 읽었다. 띄어쓰기 없이 쓰인 고대 그리스 문장은 소리 내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어는 묵독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어린 왕자 포항 사투리 버전인 애린 왕자를 경상도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오래 산 친구들이 묵독했을 때 이해하지 못 해 어렵다고 해서, 녹음해서 들려주니 그제야 웃으며 재미있다고 했다. 소리 내어 읽어야 그 뜻이 전달되었다. 낭독의 효과다. 김주영 작가는 사진에세이 ‘식물주민등록증’을 쓰기 위해 기청산식물원을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올해는 유난히 기온 차가 심해 예전에 기청산 식물원에서 찍었던 꽃들이 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서식지를 옮겨온 식물들은 급격히 변하는 날씨에 잘 있을까 궁금해서 식물원을 찾아가서 봄부터 여름까지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본 식물에서 받은 느낌이 식기 전에 글을 쓰고, 또 찾아가 보기를 반복하다 계절이 지났다. 1부 식물의 안부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가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것이 작업의 원천이 되어 식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하면서 계속 사진 작업을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2부 식물에게 배우는 시간, 작가는 이팝꽃이 군락으로 핀 흥해 향교산 발치에서 자랐다. 이팝꽃을 떠올리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함께 떠올라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작가다. 3부 나무의 안부는 사람이 떠난 재개발 지역에 주인을 잃고도 삶을 멈추지 않은 식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손길이 보인다. 햇살을 향해 덩굴손을 뻗고, 낡은 대문을 감싸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 나도 살고 너도 살았던 그곳에 여전히 삶을 지속하는 나무, 그들은 떠날 이유가 없다고 작가는 셔터를 누른다. 낭독으로 사진을 읽는다. 작가의 따뜻한 기운이 읽는 이에게로 듣는 이에게로 옮아간다. 낭독에 빠진다. 묵독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힘을 준다. 권양우의 낭독 사랑방이 한 달에 한 번 저녁에 문화와 소통 공감에서 열린다. 낭독으로 문학을 공유하는 모임이니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해 공감하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9

피재현 시인과 가을밤에 만나는 시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이 왔다. 그리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이 지났다. 올해는 유독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한다. 어쩌면 제대로 된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올지도 모르니 이 가을을 마음껏 즐겨두는 것이 좋겠다. 가을의 정취를 노란 은행, 붉은 단풍으로만 즐기란 법이 없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서인지 올가을은 더욱 문학의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안동시 원도심 동문동에 자리한 안동시립웅부도서관에는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가만가만히 모여 시(詩)를 노래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안동시립웅부도서관 2024년 하반기 문화교실 ‘피재현 시인의 시 창작 교실’의 수강생들이다. 지난 9월 12명의 수강생을 선착순으로 모집해 10월 11일 첫 강의를 시작해 총 10강으로 진행된다. 강사 피재현 시인은 1999년 등단해 시집으로 ‘우는 시간’(2016), ‘원더우먼 윤채선’(2020)이 있다. ‘원더우먼 윤채선’으로 제10회 백신애창작기금에 선정됐으며 현재 시집작은도서관 포엠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 내용은, 한국 현대시의 이해와 함께 어떻게 쓰고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한 디테일한 서술 방식과 표현 방법을 통해 시 창작의 실제에 이르는 알찬 구성으로 준비되어 있다. 시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쓰기에 도전한 수강생들은 각기 저마다의 내력이 있다. 2년 연이어 수강신청을 했다는 권해숙 씨는 피재현 시인의 시 창작 교실이 개강되기만 기다렸다고 한다. “작년 강의를 듣고 정말 반했어요. 평소 제가 궁금했던 것을 해소하게 돼서 기뻤거든요. 표현력이나 시적 감성이 풍부해져서 뿌듯합니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자기만의 알을 깨고 못 나왔는데 수업을 거듭 들으면서 평소 알고 싶은 분야를 배우게 돼서 행복해요. 학창시절에 대부분 문학소녀의 감수성은 가지고 있잖아요. 직장생활이며 일상에 치여 바쁘게 지내다가 요즘 평생학습 시대에 이런 강의가 있어서 참 좋아요.” 시 창작교실 수강 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좀 거창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감이 생겼고 자기 성찰을 통해 성장을 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 내 자신이 참 많이 밝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수강생 김희준 씨는 소설 작품을 드라마로 제작했던 KBS의 ‘TV문학관’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을 정도로 문학에 진심이다. 시와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관심이 크다. 직장을 다니다 크게 다쳐 몸과 마음이 아팠던 시기에 시를 만났다. 작년에 수강 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힘을 얻었고 올해 역시 강의를 기다렸다고 한다. “시와의 만남이 숙명이에요.” 깊어가는 가을밤, 한때는 안동의 제일 번화가였지만 이제는 구도심이 되어버린 오래된 도서관에 불빛이 어룽거린다. 그곳에 일상의 기쁨과 슬픔, 인생을 이야기하고 시와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9

평생직장은 옛말, 요즘 ‘2030 세대’의 삶을 대하는 달라진 태도

요즘 2030 세대들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의 기성세대가 평생직장이라는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을 해왔다면 이들은 아주 달라진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간다. 즉,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이 실현되는 장소로써의 직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스트레스와 개인 생활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이런 2030들의 가치관은 덩달아 회사의 조기 퇴사율을 높이고 있다. 회사에서는 이들의 퇴사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조직 내부의 업무 흐름에 방해되고 팀의 안정성과 협업에 있어서 능력이 저하될 수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며 2024년 5월, 2030 세대의 첫 직장 재직 기간은 평균 1년 7개월, 65.7%로 나타났다. 어렵게 취업한 직장을 2년도 채 다니지 않고 그만둔 셈이다. 이들도 당연히 장기근속을 하고 싶어 하지만 높은 이직률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맞는 조직문화와 일을 찾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이들을 안정적인 직장만을 원하지 않는다. 경력을 쌓기보다는 자신과 맞는 곳으로 떠나는 게 합리적이고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시간을 지불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게 이들의 가치관이다. 워라밸과 함께 이들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는 ‘1인 기업’이다. 젊은 세대에서는 작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러다 번 아웃을 겪기도 하는데 요가로 심신의 안정을 위해 요가와 명상, 취미 활동이 하나의 해결책이 된다. 자신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일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알기에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필수전략이 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목표를 가지고 과감히 퇴사를 결정하는 2030 세대들을 위해 젊은 인재가 필요한 기업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기업은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회사 문화와 조직 내 환경을 개선하여 워라밸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업무 외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유연한 근무, 재택근무 옵션, 휴가 및 휴식을 지원하여 소통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음은 직업에 대한 다양한 경로와 선택을 제공한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직업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경력 개발과 이직 기회를 제공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의 직무 적합성을 평가하고 적절한 역량 개발을 지원한다. 기업에서는 채용 단계부터 신중한 면접과 적합성 평가를 통해 실제 업무와 지원자의 적성을 정확하게 연결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심층 인터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조기 퇴사는 무엇보다 기업이 이들의 변화된 요구에 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일본의 예를 보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 부서나 동료와 어려움을 겪으면 상사를 직접 고를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회사를 떠나는 2030 세대에게는 직장생활이 자신의 꿈과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들의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소통하며 더 나은 회사 문화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9

군중심리(群衆心理)

가을이 깊어가는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은 고요히 내리는 가을비를 즐기고 있다. ‘군중심리’의 사전적 정의는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자제력을 잃고 쉽사리 흥분하거나 다른 사람의 언동에 따라 움직이는 일시적이고 특수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에서는 피험자들이 명백히 틀린 답마저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며 선택한다. 특정 제품이 인기를 끌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제품을 더 선호하게 되고, 정치적 토론에서는 비슷한 의견을 가지면 동조를 넘어 집단 극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필자가 정확한 검증 없이 이규보의 ‘와이로’를 우리말이라고 믿었던 것도 결국 군중심리의 일원이다. 이규보 문집에 실렸다는 구성 탄탄한 우화가 있다. 까마귀와 꾀꼬리의 노래 대결에 심판은 백로. 꾀꼬리가 더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까마귀는 열심히 개구리를 잡아서 백로에게 바친다. 당연히 승리는 까마귀 몫이고 여기에서 ‘뇌물’을 뜻하는 와이로(蛙利鷺)가 생겨난다. 개구리 와(蛙), 이로울 리(利), 백로 로(鷺)로 이루어진 ‘와이로’는 단순 우화에 실존인물인 고려의 문신 이규보가 등장하며 사실적인 이야기로 바뀌어 사람들의 믿음에 확신을 준다. 급기야 뇌물을 뜻하는 일본말 와이로(わいろ)의 어원이 우리말 와이로(蛙利鷺)였나? 하는 의심을 넘어 우리말이라 단정 짓는다. 신분차별과 매관매직이 극심했던 고려시대. 어릴 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이규보(李奎報)는 번번이 과거에 낙방을 하자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책만 읽는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라는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을 써서 대문에 붙여 둔다. 당시 임금이었던 명종이 미복을 하고 민심을 살피던 중, 깊은 산중 민가 대문에 적힌 이 글이 너무 궁금하여 주인을 만나 ‘와이로(蛙利鷺)’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에 임금은 임시과거 정보를 흘리고는 궁궐로 돌아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한다. 임시과거 시제는 ‘유아무와 인생지한’이었고 장원급제한 이규보는 고려의 유명한 학자가 된다. 이야기 구성이 우화와 더불어 많은 사람이 믿을 만큼 탄탄하다. 필자도 일본어 와이로(わいろ)가 우리 옛글 구결(口訣)과 닮았다는 생각에 와이로(蛙利鷺)가 우리말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우리말 사전 어디에도 ‘와이로(蛙利鷺)’는 검색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본어인 ‘와이로’ 대신 우리말 ‘뇌물’을 쓰도록 권장한다. 알고 보면, 사전만 찾아봐도 허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16년 10월 24일로 돌아가 보자. 한 언론사에서 태블릿PC를 운운하며 최순실에 대한 단독 뉴스를 띄운다. 뇌물에 분노하며 순식간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누구도 정확한 정황 보도를 기다릴 생각을 않은 채 뒤따르는 온갖 루머까지 집어삼키며 군중의 몸집은 커져간다. 촛불집회와 중학생까지 동참한 시국선언은 거침없이 탄핵으로 이어지고, 몸집 키운 군중은 원하는 걸 얻은 뒤에야 흩어진다. 군중심리로 뭉쳐진 군중은 무서울 게 없다. 권력다툼은 동서고금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함께한다. 인간광우병, 사드 사태, 태극기부대 등등도 군중심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맹자는 인간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했다. 나라가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가을, 꽃망울 터트리고 싶어 아우성인 국화를 보며 부디 군중의 심리가 나라의 평안함에 힘이 실리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4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10월 연휴를 맞아 여행을 다녀왔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처음 함께하는 해외여행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출발 전부터 공항 주차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인솔하시는 분과 소통이 잘 안 된 면이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잠깐 헤매었지만 금방 주차하여 출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까지 호통을 치며 혼을 낼 때는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 야단을 맞았다고 해서 고대하던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치솟는 섭섭한 마음을 누르면서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둥실거리는 맑은 가을날이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눈 앞에 두고 마음을 괴로움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 즐겨 듣던 명상의 말을 떠올렸다. 말이란 사실 소리의 울림일 뿐인데 상대방의 말에 내가 분별을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과 견해라는 것이 있으니 상대방이 못 마땅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상대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를 읽는다.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緣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조용미 시 ‘가을밤’) 매운 생마늘이 꿀에 잠겨 두 해가 지나니 형과 질이 바뀐 마늘꿀절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부대낌이면 외골수 같이 톡 쏘아대는 성질도 한풀 죽어 유순해지는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동그란 유리병 안에서 참아내야 하는 인내 또한 만만치 않았으리라. 아무리 뾰족하게 들이대어도 같이 쏘아대지 않고 그저 묵묵히 품어주는 꿀의 시간이 그렇게 마늘꿀절임을 만들었으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토록 무던한 절임이 되는 건 참으로 어렵지 않을까. 서로 섞여 살다보면 마늘도 꿀도 아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마늘과 꿀이 아닌 것도 아니다. 서로 인연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형과 질마저 버릴 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을 연하고 오래 묵어가다보면 어느 날 묘한 맛으로 변해버린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줄 한 숟가락 꿀절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부디 잊지 말기를. 누구나 나는 달콤한 꿀인줄 알고 살지만 돌아보면 매운 내 톡톡 쏘아대는 마늘이 바로 나였음을.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4

밤하늘 빛내는 하회선유줄불놀이

“10월에 줄불놀이 보러 안동에 가자!” 유튜브를 통해 안동하회마을의 아름다운 축제 하회선유줄불놀이를 접한 남자친구는 몇 달 전부터 10월에 열릴 선유줄불놀이 축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줄불놀이? 쥐불놀이가 아니고?” 처음 듣는 줄불놀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했고 낯설었다. 선유줄불놀이는 조선시대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음력 7월 16일에 양반들이 즐기던 놀이로 하회마을의 독창적인 문화이다. 당시 양반들이 시를 짓고 음주와 불꽃까지 즐기던 놀이로 나룻배에 주안상을 준비하여 선비들과 기녀들이 시흥을 돋우는 것에서 선유(船遊)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녀들이 흥을 돋우며 술 시중을 드는 동안 선비들은 글제를 두고 서로 시를 지었고, 완성된 시를 기녀가 읊조렸다. 이때 시를 짓지 못한 선비는 벌주를 마셨다. 줄불놀이에는 ‘줄불’, ‘낙화’, ‘달걀불’ 세 가지의 불꽃놀이가 있다. 줄불은 부용대 정상까지 강물을 가로지르도록 새끼줄을 이어 숯가루 봉지에 불을 붙여 불꽃이 아름답게 타들어 가도록 하는 놀이다. 타들어 가는 새끼줄을 잡아당기면 강물 위로 차르르 불꽃이 흩날리는데, 이것이 마치 꽃가루가 휘날리는 것처럼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낙화는 솟갑단에 불을 붙여 부용대 정상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놀이다. 조선시대 줄불놀이를 즐기던 선비들은 자신의 시가 완성되면 “낙화야!”하고 부용대를 향해 소리 지르고, 부용대 정상에서 솟갑단에 불을 붙이며 기다기던 사람이 그것을 절벽 아래로 던졌다. 솟갑단은 커다란 불덩이가 되어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몇 차례 바위에 부딪히며 불꽃을 튀게 되는데,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밝아져 천천히 불꽃을 피우는 줄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달걀불은 달걀껍데기에 들기름을 붓고 심지를 말아 넣어 불을 붙여 짚으로 만든 따뱅이 위에 올려 강물에 띄워 보내는 놀이로 잔잔한 강물 위에 비치는 모습이 선비들이 짓는 아름다운 시 한 수를 떠올리게 한다. 시민기자가 방문했던 10월 5일 하회선유줄불축제는 1만여 명이 방문하여 축제를 즐겼고, 안동탈춤페스티벌과 같은 날 열려 탈춤페스티벌을 즐기고 건너와 줄불놀이까지 즐기러 온 방문객들이 많았다. 선유줄불놀이를 감상하기 위해 안동에 도착한 우리는 안동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간고등어를 먹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주차장이 만차라 다른 곳에 차를 세워두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매표소까지 안전하게 갔다. 입장료는 1인당 5000원이지만 대구 시민은 80% 할인을 적용받아 1000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할인되는 지역이 많으니 주소가 확인되는 신분증을 챙겨가서 할인 혜택을 챙겨 받으면 좋겠다. 입장료를 지불하면 셔틀버스도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맛있는 간식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혹여나 아픈 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의료 부스와 안동의 주요 행사인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기록된 안내책도 무료로 배포하였다. 행사 시작 약 4시간 전에 입장하였지만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는 방문객들로 강가가 가득 찼었다. 오후 7시부터 8시까지 식전 공연에는 아름다운 우리 노래와 악기 연주, 탈놀이 등으로 방문객들이 기다리는 동안의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줄불놀이가 시작되자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고, 간절한 염원을 담아 “낙화야!” 큰 소리로 외치는 낙화 퍼포먼스도 몇 차례 진행되었다. 강물을 둥둥 떠다니는 달걀불은 복잡한 일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잔잔하게 어루만졌다. 다가오는 11월 2일에는 올해의 마지막 하회선유줄불놀이 행사가 열리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함께 앉을 돗자리와 추위를 대비한 따뜻한 옷과 담요를 준비하여 아름다운 줄불을 감상하며 몸과 마음이 따뜻한 연말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4

그림을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 ‘낙관’

긴 그림을 보았다. 벽의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 끝까지 길게 두루마리를 펼쳐 놓아 마치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을 보는 듯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동영상으로 남기려 빠르게 걸으며 찍어도 끝까지 가니 30초가 넘었다.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길이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중국 장안에서 촉(지금의 쓰촨)으로 가는 험난한 길을 담았다고 한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 사이사이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산꼭대기 마을과 아랫마을을 도드래로 연결해 물자를 실어 나르는 모습을 세필(細筆)로 그렸다. 이인문은 스승 심사정의 ‘촉잔도권’에서 영향받아 ‘강산무진도’를 그렸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와 계곡, 기암절벽은 묘사가 닮았지만, 차이도 뚜렷하다. 인적이 드문 ‘촉잔도권’과 달리 ‘강산무진도’ 곳곳엔 농경·수산·해운 등에서 바쁘게 일하는 인물 360여 명을 그렸다.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걷던 걸음을 되돌려 다시 걷길 반복했다. 처음 볼 때와 달리 특이한 모양의 낙관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섬의 지도 같다가 다시 보니 꿈틀거리는 애벌레 같기도 했다. 그 옆에 동그란 도장이 또 찍혔다. 두루마리 처음에서 그림이 시작하는 곳까지에 찍은 것이 여덟 개였다. 이렇게 시작하는 첫머리에 찍는 것을 머리 두(頭) 자를 써서 두인이라 부른단다. 동행한 지인이 불경을 공부하는 분이라 서예에 관심이 많아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낙관은 알고 있었지만, 종류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다. 두인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시작을 알리는 방법으로 사용한다는데 주로 작품의 위쪽에 넣어 주고 아호인과 성명인은 작품을 끝낸다는 의미로 주로 아래쪽에 넣어 준다. 두인은 반달형, 타원형 종모양, 호리병 모양 등 매우 다양하다. 내용도 다양하여 서재명이나 연호 성 등을 넣기도 한다. 두인을 찍을 시에는 공간의 넓이나 내용을 고려하여 사용한다.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를 줄인 것이다. 서화에 서명·압인하고 완성의 뜻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하게는 시구(詩句), 연월(年月), 간지(干支), 쓴 장소, 서사(書寫)의 이유, 증여할 상대방의 성호(性號)를 써넣어 서명·압인할 경우도 있다. 현재는 다만 호만 쓰는 일이 많고, 도장 하나를 눌러서 대신한다. 중국회화에서는 원 이전은 거의 낙관하지 않았으며, 이따금 낙관할 때는 화면을 손상하지 않도록 돌 틈새 등에 숨겨 썼다. 이것을 은낙관이라고 한다. 얼마 전 다녀온 문봉선의 경주 그림 전시에서도 낙관을 그림 속에 숨겨두어 흘려보면 보이지 않기도 했었다. 나무, 돌, 금속, 동물의 이빨 같은 재료에 그린이가 직접 새겼지만, 전문가에게 따로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고무인이나 스티커를 붙이기도 한다. 낙관을 한다는 것은 작가 스스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후세에 이 낙관을 통해 이 작품이 진품이었는지, 위작이었는지를 밝히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인장을 찍을 때는 보통 두 개를 찍는데, 같은 형태를 피하여 하나는 주문(朱文), 하나는 백문(白文)으로 하는 것이 좋다. 낙관 글씨는 작품 글씨보다 작아야 하며, 낙관 글씨의 위치는 보통 왼쪽 윗부분이 기준이 된다. 한문 작품의 경우 한글 낙관은 격에 맞지 않는다. 신윤복은 ‘가슴속은 언제나 사시사철 봄이구나’라는 글귀를 타원형으로 새겨 미인도의 트레머리 가까이 찍었다. 모델을 향한 화가의 진심을 전하는 연서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 도장을 새기듯 옛 선비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후 낙관을 찍었나 보다. 낙관을 자세히 보는 것은 그림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2

“호기심 있으면 늙은 게 아니다” 지금은 ‘액티브 시니어’시대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노년의 삶이란 은퇴하면 대부분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를 보며 휴식하는 여가를 보낼 거라는 인식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그들에 비해 여가는 물론이고 높은 학력을 가졌으며 미래 지향적이고 계획적인 노후 설계, 자아실현의 기회, 여유와 여러 취미, 은퇴 후에도 활발한 사회활동 참여 등 소비에 있어서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해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 데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55세에서 69세의 시니어가 여가 활동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자녀 양육을 마치고 여행, 운동, 문화생활을 위해 시간적 경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나이답게 살아가기보다는 ‘나답게’사는 삶을 추구한다. 여가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미 생활을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새로운 취미를 갖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이를 즐기는 편이다. 은퇴 후, 시니어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사회적 고립 문제도 취미 생활로 인해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또 젊은 세대와의 어울림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만들어 주고 있다. 포항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올해 평생교육원 글쓰기 과정에 입문한 정 모(68)씨는 “나이가 들었어도 호기심이 있으면 늙은 게 아니다. 늦은 나이에 독서와 글쓰기에 눈을 떴다. 나이들수록 사회적 만남이 줄어드는데 이런 배움과 어울림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도 시니어들의 여가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가입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모임 커뮤니케이션 앱인 시놀(시니어 놀이터)과 만남 주선 앱인 시럽(시니어 러브)이 생겨나고 시놀에서는 이들을 위한 여행상품까지 출시하고 있다. 앞으로 액티브 시니어의 여행 수요는 다양화와 고급화를 통해 만족도가 높으면 증가할 것으로 보여진다. 소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당당한 소비 주체가 됨으로써 시장에서도 액티브 시니어와 관련한 서비스나 다양한 상품들이 쏙쏙 나오고 있다. 특히 패션과 외식, 문화, 식품, 운동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다. 패션은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기보다는 캐주얼과 개성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에 관심이 높은데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운동에도 자신을 위한 거침없는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운동이란 젊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송에서 시니어들이 당당히 운동하는 모습을 많이 비추어진 영향도 있지만 한 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50대 이상 시니어들의 운동에 관련한 지출이 빠르게 증가했고 지금은 25~39세에 비해 전체 금액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 자식에게 의지하던 실버세대와는 다르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2025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노인’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하고 있다. 앞으로 증가하는 액티브 시니어들. 과거에 비해 젊은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분명 다채롭고 분화되고 있다. 건강, 시간, 재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들의 자아실현을 위한 더 많은 배움의 장소와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2

‘충신·열녀 고장’ 봉화 유록마을로 초대합니다

봉화군엔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유록마을이 있다. 유록마을 입구엔 청렴의 길, 마을 길 중앙에는 충열의 길이 있고, 마을 안길로는 천문의 길이 있다. 여길 걸으며 천문과학기기와 조선시대 자료를 체험하고, 나만의 별자리 그리기 등을 해볼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 유록마을. 특히 ‘별별 이야기 투어’ 등의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호응도가 높다. 천문학 강의와 별 관측 행사, 절기 음식 만들기 체험, 절기별 유래 알아보기, 풍속행사 등도 인기다. 24절기 교육 및 절기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는 유록마을에서는 지난 10일 한과 종류를 손쉽게 만드는 체험을 진행했다. 지역민과 관광객이 10~30명 단위로 진행하는 행사인데, 이날은 30여 명이 모여 절기에 대한 강의와 절기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유록마을의 유록은 아기사슴이라는 뜻이고 조선 시대 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괴담 배상열(1760~1789)이 천문기구 혼천외 천문기구를 제작하고 전체현상을 관측하기 좋은 장소에 직방당 이라는 연못을 만들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마을이다. 잘 정비된 마을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다. 조선시대 문신 배삼익(1534~1588)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참여해 전사한 배인길(1571~1592)의 충렬과 부인 월성 이씨를 기리는 정려문이 이 마을에 있다. 배인길은 노부모와 부인을 둔 몸이었지만 “전장에 나가서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다. 사나이가 나라를 위해 마땅히 죽을 것이니 이별함을 부인은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의병을 일으켜 예천 용궁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월성 이씨는 손가락을 깨물어 명주에다 “군신의 의가 중하니 부부의 은혜는 가볍다”는 혈서를 남기고 순절했다. 마을 초입 우측에는 천문학자 배상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녹동리사’라는 서원과 천문을 관찰하던 연못 직방당이 있고, 천문 관측기구인 해시계와 선기옥형, 천문자료인 서계쇄록, 기삼백해, 기해제도 등 천문과학 자료가 남아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35호인 ‘혼천의’는 조선시대 천문관측 기구로 일명 선거옥형이라고도 하고, 혼천의와 함께 사용한 해시계도 전하고 있다. 540년의 역사를 품은 유록마을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충신과 열녀가 대대로 이어지고, 학문과 전통을 이어받아 천문과학을 연구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마을을 가꾸기 위해 ‘아기사슴 별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된 ‘아기사슴 별별 이야기’ 프로그램 참여 신청은 유록마을 배기면 추진위원장(010-7277-8789)에게 하면 된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22

우리의 영웅, 안중근을 만나다

지난 9월 28일 토요일 계명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영웅’을 보았다. 결말을 알고 보는 뮤지컬은 어떨까?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보를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는,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보았다. 하지만 뻔한 이야기라 해서 기대가 없거나 흥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갔을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안중근 의사, 그가 걸어온 고난과 역경의 길을 2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담아내기엔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웃고 우는 그의 발자취들을 쉴 틈 없이 담아냈다. 주인공 안중근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많은 동료의 이야기도 그저 지나치지 않고 소중하게 담아냈다. 그 때문에 뮤지컬을 보고 나서 안중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발걸음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뮤지컬은 영화와 달리 눈앞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어 인물 한 명 한 명의 행동에 집중해서 보게 되어 더 생동감 있고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때문에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 현장에 함께 있는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뮤지컬이 비극이라 안중근 의사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도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극 중에서라도 조금 덜 고통스럽고 덜 힘들기를 바랄 뿐이었다. 교수형을 앞두고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보낸 수의와 ‘당당히 죽으라,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는 그녀의 말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조차 헤아리기 힘든데, 그런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 보내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나 그녀는 의연한 태도로 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과 자기 뜻을 전했다. 뮤지컬 ‘영웅’에서는 조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녀도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국채보상 의연금을 기부하였고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임시정부경제후원회의 활동도 함께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만주 뤼순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10년 3월 25일 오전 10시 그는 교수형을 받았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죽은 뒤 그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다시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정확한 매장 위치를 알 수 없어 그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도 조국의 땅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뮤지컬 마지막 장면인 안중근 의사의 교수형 이후에 화면으로 관객들에게 알리며 막을 내렸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뮤지컬을 즐긴 관객들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켜낸 나라에서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기념촬영을 하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귀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중근 의사, 그는 아직까지 고국의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영원히 고국에 있는 우리 마음 속에 그의 모든 것이 남아있을 것이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17

새 앨범 ‘왔다’ 낸 경주 활동 가수 정훈

‘하늘호’는 경주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다. 통기타 어쿠스틱 팀으로 ‘어떤 말도 노래도’, ‘경주로망스’ 등 디지털 싱글앨범을 발표하며 다양한 무대에서 팬들과 만나고 있다. 경주 내 다양한 행사는 물론 좋은 일도 꾸준히 하고 있는 선량한 사람들. 그 중 이번에 새 앨범을 발표 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훈을 만나보았다. 그의 작업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큰 대로변 2층 큰 글자로 적힌 간판이 보였다. 심한 길치인 시민기자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능숙한 무대 매너의 정훈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날이기도 했다. 첫 질문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관광경영학도였던 그는 음악이 좋아서 취미로 공연을 하다 직업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2006년부터 황성공원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어려운 이웃돕기 자선공연을 시작했다. 모금함에 담긴 공연의 수익금은 전액 어려운 학생들 교복지원사업에 사용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레 하늘호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팀도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다. 공연을 자주하다 보니 대부분의 희로애락이 공연에서 발생된다.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의 반응과 스스로의 만족도가 높은 날은 기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날은 힘이 빠진다. 그는 공연뿐 아니라 곡 작업도 열심인데 경주에 관한 곡도 제법 된다. 경주의 유명 관광지들이 ‘낭만경주’ 등 여러 곡에서 등장한다. 다음으로 새 앨범 ‘왔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왔다’는 긴 여정 끝에 도달한 사랑과 행복을 노래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듣자마자 세미 트로트 형태의 멜로디가 귀에 안착되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매력이 있다. 작사·작곡에는 ‘레몬트리’가 참여하였으며, 편곡은 ‘레몬트리’와 ‘박제민’이 협업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정훈은 이번 앨범에서 어쿠스틱과 포크 음악을 주로 선보였던 이전과 달리, 세미 트로트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다. ‘왔다’란 제목엔 그러한 변화 및 결심이 담겨있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계속 다양한 변화를 주고 싶다고 했다. 기존의 곡들이 버스킹에 잘 어울렸다면 이번 곡은 행사에 잘 어울릴만한 흥이 나는 곡이다. 대중가수로 활동하다 보니 최근 트로트의 유행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정훈은 이번 앨범에 대해 짧은 인생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도 더 폭넓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포부 또한 밝혔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17

‘아름다운 한글’을 쓰고 있는 우리는 진정 축복받은 사람들

한글날이 있는 시월이 오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어김없이 들먹여지고 소장자인 배익기씨가 여전히 1000억 원을 요구하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뉴스를 올해도 접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다행히 귀히 보존된 간송본이 있어 국보 제70호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현재 안동본(간송본), 상주본 두 판본만이 유일하다. 1940년 기적적으로 안동본이 발견되면서 어떠한 소리도 표기가 가능한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게 되고 훈민정음 해례본에 표기된 반포일을 근거로 설왕설래하던 한글날이 이견 없이 10월 9일로 지정된다. 세종대왕 탄신일 1397년 4월 10일과 훈민정음 반포일 1446년 9월 상순(1~10일)은 당시 사용하던 음력일로 이를 세계 표준 역법인 그레고리력(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5일과 10월 9일이 된다. 지금껏 ‘스승의 날’이었던 탄신일에 2025년부터는‘국가기념일’로 새롭게 지정된 ‘세종대왕 나신 날’이 대신한다. 겨레의 스승으로서 한글창제와 과학기술, 문화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그 업적을 기리고자하는 의미가 더해진다. ‘한글’과 ‘한국어’는 다르다. 한국어는 수천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해 온 우리의 고유 언어이고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약 500년 전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이다. 우리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우리말 표기 수단으로 중국어 표기 수단인 한자를 차용해 썼다. 어려운 한자를 차용해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한글은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 애민사상이 바탕이 된 한글 창제는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다.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큰애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게 아니라 집현전 학자들이 다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칭찬은 세종대왕이 다 받고 있다고 잘못됐다고 그랬어요.” 당시 큰애 담임은 젊고 패기 넘치던 전교조 선생이었다. 그날, 잘못된 정보를 들고 온 초등학생 아들과 마주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글’은 일부 신하의 극심한 반대도 아랑곳 않고 세종대왕이 혼자서 집요하게 만드신 글이다. 젊고 천재적이었던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그저 많은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들은 세종대왕이 만들어 놓은 언문을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지를 연구하며 언문 참고서를 만드는 역할도 했다. 입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로서 어떠한 말과 소리도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은 이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해도 넘치지 않는다. 지난 한글날 경축식을 중계하던 KBS 공영방송에서 노래가사 자막으로 ‘기역 니은 디귿 리을’을 ‘기억 니은 디읃 리을’로 잘못 표기한 채 송출하는가 하면 더불어민주당은 한글날 홍보물 포스터에 ‘훈민정음’을 ‘ㅎ·ㄴ민정음’이라 표기했다. 공공연히 우리글이 홀대당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외국어와 외래어, 신조어, 축약어가 너무 난무하다보니 소통에도 장애가 있어 ‘세종대왕 나신 날’을 기리며 우리글 한글을 더 아끼고 사랑하여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올해 노벨문학상이 대한민국 문학작품으로 선정되면서 대한민국 문학사의 영광이자 한국어와 한글까지도 전 세계에 위상을 더 높이게 되었다. 아름다운 한글을 쓰고 있는 우리는 진정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17

안동 중앙신시장 오일장으로 오이소

안동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안동 중앙신시장은 안동시 중앙에 자리한 경북북부지역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1946년 7월 상설시장 허가를 받아 개설된 이래 안동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시장이다. 안동시민들에겐 ‘신시장’으로 더 많이 불리기도 한다. 매달 끝자리 2일, 7일에 열리는 오일장과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떡, 건어물, 채소, 과일, 반찬 등을 취급하며 안동특산품인 안동간고등어와 안동문어를 판매한다. 명절이면 장보기와 제수용품 구입에 북적이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으며 장날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지난달 추석 연휴에도 장터 가득 퍼지는 부침개 냄새와 흥정 소리, 온누리상품권 환급 이벤트 행사로 시민들의 발걸음을 몰리게 했다. 언제나 북적이는 공간이라 사람살이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런 신시장에 지난 3월 27일부터 매번 장날, 푸른약국에서 안동민속한우 앞 도로까지 농산물 직거래장터가 개설됐다. 기존 중앙사거리에서 안동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다 좌회전해 박무영내과에서 중앙시장길 태평양약국까지 갈 수 있던 길을 오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차량 통행 제한을 한 것이다. 인도 앞 도로에 전을 펴놓고 손님들의 발길을 잡는데, 제철을 맞은 채소부터 각종 과일과 수산물, 당일 아침에 만든 빵과 도너츠, 꽈배기, 비닝봉지에 팽팽하게 담은 다슬기 그리고 양말과 마스크, 소품까지 다양한 품목이 즐비하다. 농산물을 거래하는 노상 매대 앞에는 품명과 원산지, 가격이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이른 아침부터 거래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좀 더 신선하고 좋은 농산물 구입을 위해서는 이른 시간에 발품을 파는 것이 좋다. 차량 통행을 제한한 널찍한 도로에서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굴리며 여유 있게 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종 먹을거리로 발걸음을 붙잡고 특유의 활기로 시선을 잡는 안동 중앙신시장 직거래장터. 전통시장의 흥겨움을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이들 오이소.” /백소애 시민기자

2024-10-15

‘5도 2촌’을 즐기는 사람들

5도(都) 2촌(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칠 때 가끔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며 힐링을 하고 싶어진다. ‘빨리빨리’에 치인 도시인들에게 일상의 활력소를 불어넣는 시골 생활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다. 중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귀농과 귀촌이 아니어도 도시와 시골 생활을 함께하는 5도 2촌은 주중 5일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주말에는 한적한 농어촌 생활을 즐기고자 함이다. 최근에는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들에게도 그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도시를 완전히 떠나지 않으면서 자연에서의 여유와 편안함을 느끼는 생활이 매력적인 까닭이다. TV 방송에서도 자연의 삶을 동경하는 프로그램은 장수할 만큼 도시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또 내 주위를 살펴보면 5도 2촌을 하는 지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 모(42)씨는 금요일 저녁이면 가까운 영천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2019년부터 아이들과 함께한 시골 생활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처음에 집을 구하고 고칠 때 많은 정성을 쏟았기에 아파트보다 더 애정이 간다고 한다. 유아였던 두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생이 될 동안 꽤 오랜 시간의 시골 생활을 가족들이 만족해한다는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대부분 시골집에 와서는 밭에서 일을 하고 농작물들을 수확한다. 아이들은 지난여름 자신의 키 보다 높이 자란 옥수수 옆에 서 보기도 하고 블루베리와 자기 팔뚝만한 굵은 오이도 따며 그 싱싱한 맛도 느꼈다. 시골이라 도시보다 벌레도 많고 약간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얻을 것도 많다. 아이들은 밭에서 나는 농작물들을 보며 식물에 대해 자연스레 배우게 되고 농사를 지으면서 흙과 친해지고 채소와 친해지고 자연과 친구가 되는 걸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베란다에서 몇 개의 화분을 가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고 노래하고 흙 만지는 시골 감성을 오래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도시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시골 생활을 하는 5도 2촌은 다양해지는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일명 ‘러스틱 라이프’다. 시골과 생활이라는 뜻인데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 특유의 매력과 편안함을 즐기는 시골형 라이프 스타일이다. 삶의 질을 위해 도시 생활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러스틱 라이프는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청년층에게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최근 한 데이터 컨설팅 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성인 3000명 중 응답자의 30%가 “연휴나 휴가 때 해외여행보다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시골의 빈집을 찾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30대 직장인 A씨도 자신의 5도 2촌 생활에 대해 “금요일마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을 하면 몸이 바쁘고 피곤함과 불편함이 있지만 도시를 잠시 잊게 해주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제일 좋은 건 자연의 소리가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오래 이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4-10-15

‘2024 사진의숲 트리엔날레’

가을은 수확의 계절, 문화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가을밤 수필 낭독회가 열리고 독서 대전이 포항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렸고 열리는 중이다.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도 이 가을을 풍성하게 전시회를 준비했다. 포항 양덕에 자리한 갤러리 상생에서 초대전으로 ‘2024 사진의숲 트리엔날레’를 준비했다. ‘사진의숲’은 2017년부터 포항, 경주, 안강, 영덕, 울진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들이 모여서 사진예술에 대해 고민하며 트리엔날레 전시로 관객과 소통하는 모임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전시는 갤러리 상생 1층과 2층 전시장에서 진행된다. 참여작가로는 강철행 권기철 권영섭 김배근 김시태 김숙경 김주영 박영희 박성두 박태희 양순남 오연미 이한구이다. 1층 전시장은 사진예술의 대중적 접근성 확대를 위한 사진 마켓으로 꾸몄다. 작품의 구매 장벽을 허물고 사진예술에 대한 깊이와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인지 전시회 시작하고 며칠 만에 방문객들이 전시를 보고 그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현장에서 구매해 갔다. 빈자리에는 구매자가 사진에 대한 느낌과 사연을 적은 메모지를 붙여놓아 그 또한 전시의 일부분이 되었다. 김주영 작가의 사진을 사려고 했다가 완판이라는 소식에 축하의 말만 전했다. 1층 전시장이 허전해질수록 사진이 도착한 곳에서 더 빛날 것이다. 이번 사진 마켓이 사진예술을 소유하고, 가정에서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층 전시장은 ‘사진의숲’ 기획전시 ‘현현하는 존재’로 꾸려졌다. 입구에서부터 돌에 새겨진 불상이 발밑에서 시작해 기둥까지 이어졌다. 벽에 액자로만 전시되었던 사진이 이렇게 자유로운 형식을 입고 있어서 사진을 더 자세히 보게 만든다. 동서남북에서 부처님을 지키는 형상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오래된 탁본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여러 작가가 모여 ‘근원, 심연, 현상’의 원형질이 사유와 통찰을 통해 작가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사진을 보며 관찰할 수 있다. 고정된 실체는 없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생성과 소멸, 반복의 순환을 거듭하는 지금을 규정한다는 것, 그 자체가 모순이다. ‘사진의 숲’ 사진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을 ‘현현하는 존재’로 표상화했다. 입구 오른편은 바다를 찍은 사진들이다. 이한구 작가의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그 어떤 것’은 카메라 셔터가 ‘찰’하고 ‘칵’하는 그사이를 표현했다. 반대편 창가에서 바라보면 창에 비친 관람자 또한 작품이 된다. 박영희 작가의 ‘일마레’는 이탈리아어로 바다란 뜻이다. 영화 ‘시월애’가 떠올라 작가가 우리에게 과거에서 보낸 편지처럼 느껴졌다. 박태희 작가의 ‘흔적의 소멸’은 나무 액자가 아닌 인화지 상자에 사진을 넣어 바닥에 전시했다. 언젠가 시골 폐교에 갔을 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교실 바닥에 놓인 초점이 흔들린 운동회 사진이 생각났다. 인화지 상자에 동료 사진작가들의 이름이 써 있어 그 또한 전시회의 주제인가 싶어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했다. 식물의 안부를 묻는 김주영 작가의 사진을 보니, 전시장에 가며 들고 간 쑥부쟁이꽃 사진이 환하게 피어있어 더 반가웠다. 강철행 작가의 ‘진주의 상평상단’은 쓸쓸했고, 김숙경 작가의 ‘비나리’는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했다. 작가 각자의 시선이 달라, 보는 맛이 있었다. 전시 기간은 10월 5∼17일이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고,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이다. 입장료 무료이니 풍성하게 시월을 보내려면 가까운 곳으로 전시장을 방문하면 좋은 날씨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4-10-15

숲뷰 호수뷰의 북카페 ‘지관서가’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라 해서 울산 송정박상진호수공원을 찾았다. 산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몇 걸음 오르자 푸른 호수가 일행을 맞았다.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한 바퀴 휘돌아 볼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산책로 보수 공사로 12월까지 산책로 많은 부분 출입을 통제 중이다. 뷰 좋은 입구에 북카페가 섰다. ‘지관서가’, 2층에 화장실이 공원 방문객들이 이용 가능하다 해서 올라가니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호수 뒤로 단풍이 유명한 무룡산이 보이고, 아름다운 경치를 읽는지 펼친 책을 보는지 모를 사람들로 창가 자리는 이미 만원이다. 서가는 문서나 책 따위를 얹어 두거나 꽂아 두도록 만든 선반이라는 뜻인데, 그 뜻에 맞게 북카페 벽은 책이 가득하다. 도서관이라 해도 될 분위기다. 커피부터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해서 먹을 수 있지만 책만 읽어도 좋다고 했다. 서가 앞 벤치에 동상이 보였다. 누군가의 이름을 공원 이름으로 지었다니 어떤 분일까 궁금했다. 박상진 의사(1884~1921)는 울산 송정동에서 태어나 의병장 허위의 문하와 양정의숙에서 수학하고 1915년 광복회를 조직해 총사령에 추대됐다. 광복회는 국권 회복을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되찾은 나라에서는 공화제 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독립운동단체였다. 그러나 박 의사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1918년 일경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박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중구 학성공원에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남구 문화공원에 박상진 의사 동상이 있다. 지관서가(止觀書架)는 인문학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하고, SK가 재원을 제공하며,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공간을 제공해 탄생한 복합 인문·문화공간이다. 2021년 4월 울산대공원을 시작으로 장생포, 선암호수공원, 유니스트, 울산시립미술관, 박상진호수공원, 여주 여백서원 괴테마을에 지관서가를 열었다. ‘멈추어 바라봄’을 뜻하는 ‘지관止觀’은 지관서가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분주하게 달리던 몸과 마음을 잠시 멈추고 止, 나와 세상의 전체를 깊이 바라보는 觀은 인문학의 성찰을 통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변화시키려는 플라톤 아카데미의 근본 목표이기도 하다. (재)플라톤 아카데미는 우리가 성찰해야 할 핵심적인 주제들을 ‘인생의 테마’로 설정하고, 이를 깊이 있게 탐구해 왔다. 지관서가는 ‘인생의 테마’들을 ‘북 큐레이션’(book curation)의 주제로 삼는 것은 물론, 만남과 소통을 통해 함께 이를 나누려 한다. 이미 ‘관계’(울산대공원), ‘일’(장생포), ‘나이듦’(선암호수공원), ‘명상’(유니스트), ‘아름다움’(울산시립미술관), ‘영감’(박상진호수공원), ‘극복’(괴테마을)을 공간의 핵심 주제로 구현했고, 향후 가치, 몸, 쉼, 건강, 사랑과 같은 키워드들로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미 울산 내에서는 명소로 자리를 제대로 잡은 북카페 지관서가는 공간은 공공단체가 제공하지만 한 곳당 5억 원가량 투입되는 조성 비용은 SK 케미칼이 부담, 운영은 전적으로 공공단체에 맡겼다. 서울대 인문확산센터와 인문360이 도서 큐레이션과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으며, 건축사무소 리옹이 공간을 디자인했다. 휠체어나 유모차 역시 이용하기에 무리가 없는 구조로 만들었다. 평소 인문 정신에 관심이 많았던 SK케미칼이 고향과도 다름없는 울산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전국을 대상으로 100여 곳에 만들 것을 구상 중이다. 실제로 안동시와 수원에도 지관서가가 생길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10

우리가 박물관을 가야 하는 이유

며칠 전, 중간고사를 마친 아이와 경주국립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그 인기를 실감하듯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외국인들과 연휴를 맞은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덕대왕신종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가족들 사이로 마침 녹음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는 박물관을 넘어 서라벌 경주를 온전히 감쌌다. 다음은 박물관의 중심인 신라역사관이다. 계단을 통해 올라온 우리에게 역사관은 4개의 전시실로 우리를 맞았다. 함께 간 아이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새로운 느낌이라며 반가워했다. 신라역사관은 신라의 성장과 전성기 그리고 신라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실에서 만난 토우 장식 항아리, 황금 보검과 유리잔, 임신서기석, 신라의 미소인 수막새, 금관 등을 보는 동안 우리는 ‘신라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스쳤다. 유물 중 임신서기석은 예상외로 작은 크기에 놀랐다. 비문의 내용은 그 시절 청소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내용의 서약서인데 아이가 역사책에도 나오는 거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라의 미소인 수막새 옆에서 아이는 미소를 따라 사진도 찍었다. 황금 보검과 유리잔은 신라가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영국으로 가 있어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이차돈의 순교비가 있는 신라미술관, 목간을 볼 수 있는 월지관, 특별 전시실 등 우리가 모르는 경주를 알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경주국립박물관이다. 이처럼 박물관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그 시대의 세밀한 역사를 보여주고 현재의 모습에서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과의 경계도 옅어지고 있다. 우리가 박물관을 바라볼 때 박물관은 세 가지의 큰 기능을 하고 있다. 수집과 보존, 전시의 기능, 교육의 기능이 그것이다. 박물관은 각 유물과 사료들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보존하고 연구한다. 그리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새롭게 알아내고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시간을 내어 우리가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전시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수집하고 보존하는 작품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희석되기 쉽다. 박물관에서는 자신들이 모은 각종 자료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기능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서의 교육의 기능은 관람객과 참여자들을 체험과 교육을 통해 각각의 박물관이 지켜오는 자료들의 가치를 전파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전문인력을 양성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연구가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예전과 비교해서 좀 더 폐쇄적이었던 박물관의 이런 기능들이 지금은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더욱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단순히 전시나 교육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화 활동의 시발점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레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전국을 다니며 한국사 강연을 하는 ‘큰별쌤’ 최태성 강사는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실린 확대된 유물 사진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박물관에 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10

가을은 힐링의 계절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청명한 하늘은 높고 풍부한 먹을거리는 말을 살찌운다. 선선한 바람과 황금 들녘은 풍요로움과 여유를 선사한다. 책을 읽기에도 좋은 독서의 계절. 그러나 책을 들고 있기에는 이 가을, 축제가 너무 많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비롯하여 부조장터 문화축제, 포항운하축제, 힐링필링포항철길숲 야행, 포은문화축제에 반려동물 문화축제까지 포항은 물론 전국 각 지역마다 무른 여름날 소나기 쏟아지듯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잠시 책을 내려놓은 사람들은 우리 지역 축제는 물론 타 지역 곳곳에서 열리는 ‘가을꽃 축제’를 놓칠세라 전국을 분주히 오간다. 포항이 가지는 철강도시라는 차가운 이미지에 용광로를 대신하는 다양한 문화예술이 스며들어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면 시민을 위한 문화콘텐츠가 무료이거나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하물며 쉽게 접할 수 없고 다시 보기 힘든 ‘백남준 특별전’도 2010년 포항시립미술관에 무료로 전시되었다. 효자 호텔영일대 갤러리웰에서도 1년 내내 상시 다양한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또한 무료다. 게다가 지금 10월은 축제의 달이다. 많은 가을 축제 틈새, 효자아트홀에서 ‘제24회 포항바다국제연극제’가 상연되고 있다. 개막작 ‘배비장전’을 시작으로 ‘내 웨딩케이크는 누가 먹어버렸나’ ‘손님(客)’ 그리고 폐막작으로 ‘의자는 잘못 없다’를 10월 2~11일까지 시차를 두고 4편의 연극이 공연된다. 3편의 연극을 꼬박꼬박 충실한 관객이 되어 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이제 폐막작 1편을 남겨두고 있다. ‘배비장전’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판소리를 조선 후기에 소설로 정리한 작품으로 원작이 가지는 지배계급의 위선을 현 정치인들의 이중인격적인 모습에 빗대어 해학적으로 풍자한다. ‘내 웨딩케이크는 누가 먹어버렸나’는 중년 부부와 노년 부부의 에피소드.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찰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한 이야기로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한다. ‘손님(客)’은 알베르 카뮈의 ‘오해’를 원작으로 한일합방 직전 조선의 인적 뜸한 어느 깊은 산중 강가 주막을 배경으로 각색해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라는 명제를 던진다. 연극 4편 모두 무료다.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무료인데도 관객이 많지 않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홍보 부족인가? 관심 부족인가?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곧 마음의 여유다. 가을만큼이나 삶에 풍요와 여유를 준다. 영원히 타오를 것 같던 ‘불의 공원’ 불이 매장된 가스 소진으로 어느 날 맥없이 꺼져버렸다. 자연은 순리를 따르고 인간은 이에 순응한다. 비록 불은 꺼졌지만 사람들 마음에 불의 공원이라는 정체성은 그대로 남아 철길숲 공원은 연일 이어지는 가을 축제로 분주히 아쉬움을 달랜다. 내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은 늘 걱정을 동반하고 그런 마음을 다스리고자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무대 위 배우들의 역설적인 해학과 웃음을 관객이 되어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질감을 벗어나 공감으로 다가오고 내 삶을 공유하며 ‘사는 건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에 위안과 함께 잠시나마 마음에 평안이 깃든다. 이 가을, 시간이 허락한다면 책을 잠시 내려놓고 가을 힐링 축제를 찾아서 양껏 즐겨보자.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10

봉화서 만난 이몽룡 실존인물 ‘성이성’

춘향이 사수 궐기대회 창극 ‘몽룡전’이 봉화송이축제 특설무대에 오른다. 송이축제와 연계 개최되는 청량문화제에서는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을 만날 수 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와 ‘이몽룡과 변학도의 대결 구도’ 퍼포먼스로 검무, 타악, 전통연희, 태권도, 마술 등을 엮은 공연이다. 성춘향과의 로맨스 주인공인 이몽룡의 실존 인물은 성이성이다. 성이성(1595~1664)은 남원 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머물면서 같은 또래 기생 춘향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아버지 성안의 발령으로 남원을 떠나면서 춘향과 헤어졌고, 이후 호남 암행어사로 남원을 찾는다.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 ‘춘향전’이다. 당시 성이성은 13세에서 17세까지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서 살았다. 춘향전을 쓴 산서 조경남은 성이성이 남원에 있을 때 공부를 가르치던 스승으로 만나게 된다. 성이성은 22살에 생원이 되었고 33세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고 어사화를 받게 된다. 이후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요직을 거쳤다. 1637년에 암행어사로 파견돼 호남 지방을 순찰했으며, 1639년, 1647년에도 암행어사로 등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성이성은 남원에 두 차례 방문한다. 1648년 담양 부사로 재직할 때는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관방제림이라는 숲이 조성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 성이성은 위민정치, 민본정치, 민생정치를 펼쳤고, 근검, 검소, 청빈한 공직자로 인정받았다.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는 성이성이 살았던 창녕 성씨 종택 계서당(중요민속자료 제171호)이 있다. 이 고택은 당초 초가집이었는데 이후 후손들이 힘을 합쳐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었다. 근처엔 90도로 기운 특이한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수령이 500여 년으로 추정되고,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유년 시절부터 성이성이 좋아했던 소나무로 ‘이몽룡 소나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남원골을 그리듯 서있다. 성이성은 53세 때 두 번째 호남 암행어사로 남원 광한루를 방문해 소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글을 남겼다. “광한루에 찾아가니 늙은 기생 여진과 늙은 서리 강경남이 마중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기생들을 모두 내보내고 시중드는 소동, 서리와 함께 눈 내리는 광한루 난간에 앉았다. 흰 눈이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소년 시절을 회상하고는 밤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사색의 계절 가을에 조선시대 로맨스를 찾아 추억을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봉화송이축제 기간에는 ‘몽룡전’ 창극 퍼포먼스가 4일 오후 4시와 7시 30분 두 차례 무대에 올려진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03

상대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

언젠가 영혼을 볼 줄 아는 분의 말을 유튜브를 통해서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화가 나서 분노에 들끓고 있을 때 그의 머리 위 영혼의 그릇에 담긴 붉은 피가 같이 들끓어 결국 그 사람의 영혼으로 쏟아져 내린다고 한다. 우리야 다른 차원을 볼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 그 말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화를 내고 분노하면 결국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그 피해가 돌아온다는 말에는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 일이 내 마음 같지 않고,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주어 섭섭한 일들이 숱하게 많다. 하지만 상대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려니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마음에 평화가 오게 된다. 상대를 이해하는 건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라는 말도 되새겨 본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란 마음으로 가을의 시작에서 시 한 편을 찬찬히 읽어본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 시 ‘오래된 기도’ 살아가면서 행하는 작은 행위들이 모두 기도하는 것이란 말이 참 귀하게 다가온다. 손을 모으고 가지런히 마음을 맑히는 시 한 편을 읽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기도이리라. 너무 굉장하게 너무 거창하게 기도하려고 애쓰지 말자. 종교의 여부에도 상관 없이 그저 삶의 순간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시인의 인도대로 물 한 잔을 마셔도 천천히 감사하며 마시고, 공중을 지나는 바람도 부드럽게 만져보며 대자연의 기운과 같이 호흡하고 소통하는 기도로 가득찬 아름다운 가을날이 되기길 소망한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03

사계절이 무너지고 있다

기상청 기후변화 상황지도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여름이 한 달 길어지고 겨울은 한 달 짧아질 전망이다. 2024년 현재, 기상청에서는 각계 전문가들과 한반도의 계절별 길이 전반에 대한 재설정을 검토하며 여름은 1개월가량 늘리고 가을은 1주, 겨울은 최소 2~3주 줄이는 방안 등으로 조정 논의 중이다.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하다. 봄은 3~5월, 여름은 6~8월, 가을은 9~11월, 겨울은 12~2월로 3개월 단위로 분류된다. 계절 분류 기준은 여름 시작 일을 ‘일 평균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로 본다. 같은 방식으로 봄은 기온 5도 이상일 때이고, 가을은 20도 미만, 겨울은 5도 미만이다. 이 계절 분류 고안은 이병설 전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명예교수가 1979년 발표 이후 약 45년간 큰 무리 없이 모든 행정과 산업 전반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태양력을 따르는 24절기는 계절에 따른 날씨 변화를 쉽게 체감하기 위해 조선시대 무렵부터 도입되었다. 당시 사용하고 있던 음력은 기후와 차이가 많아 농사를 짓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24절기가 보조적으로 사용된다. 15일 간격으로 구분되는 절기는 양력 2월 4일을 입춘으로 봄이 시작되어 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 여름은 입하·소만·망종·하지·소서·대서, 가을은 입추·처서·백로·추분·한로·상강 겨울은 입동·소설·대설·동지·소한 그리고 대한으로 겨울을 매듭짓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주는 심각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3개월 단위로 구분되었던 계절 길이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산업화로 인한 자본시장의 활성화는 인간들의 쓰고 버리는 행동을 부추기고, 그 속에서 과하게 배출된 탄소는 지구의 온도를 필요 이상으로 높인다. 지구온난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열대 지방의 열대 과일이 열리게 한다. 제주나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하던 열대과일이 이제는 충남·경기·강원 지역에서도 재배 가능하다. 충남 천안의 한 농장에서 재배하고 있는 바나나는 원산지인 동남아시아처럼 올 여름 높은 기온에 강한 햇볕이 더해 오히려 수확이 앞당겨질 정도이다. 우리지역 포항시 흥해읍 망천리에서도 바나나가 익어가고 있다. 지난 9월 23일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가을의 네 번째 절기인 추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낮 기온은 20도를 웃돈다. 도시개발 확장으로 열 보존율이 높은 산과 숲이 사라진 자리에 콘크리트 시가지가 넓어지며 기온이 올라가고, 문명의 이기로 에어컨 실외기를 통해 밖으로 쫓겨난 실내의 더운 공기도 기온을 높이는 데 한 몫 한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장마는 전통적인 장마와 전혀 다른 양상인 스콜과 비슷한 형태로 찾아왔다. 이미 우리나라도 2010년부터 기후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단시간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소나기, 한국형 스콜이 말해주고 있다. 추석이 지나고 기온이 떨어지나 싶더니 다시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지난여름의 폭염처럼 다가올 겨울의 매서운 한파 소식도 들린다. 독일 역사학자 로만 쾨스터(Roman Köster)는 신간 ‘쓰레기의 세계사’에서 “매일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만 에펠탑 100여 개의 무게”라고 했다. 자본시장이 바꿔놓은 기후는 결국 인간들이 감당해야 할 숙제이다. 이제는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03

바람 가슬가슬하여 걷기엔 더 없이 좋아

월송정으로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하늘은 한없이 멀어지고, 바람은 가슬가슬하여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였다. 각자 음식 한 가지씩 마련해 소나무 숲 정자에 둘러앉았다. 함께 간 지인 중에 가을에 생일인 주인공을 위해 노래도 불러주며 음식과 함께 정을 나누었다. 신라시대의 화랑들이 이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는 정자였다. 명승을 찾는 시인과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팔경에 속하는 곳으로 경치가 좋은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관동은 현재의 영동 지방의 특히 이름난 여덟 곳의 경승지를 말한다. 영동팔경이라고도 한다. ‘영동’에서 ‘영’(嶺)은 ‘대관령’을, 동은 동쪽에 있는 지방이라는 의미로 주로 강원도를 말한다. 1962년까지 강원도였던 경상북도 울진군이 포함되기도 한다. 북한의 총석정과 삼일포, 강원도에 자리한 곳은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이다. 울진에 망양정과 월송정 두 곳이 있어 경북의 자랑거리다. 주차장에서 월송정에 가려면 월송정 무장애 나눔길을 걸어서 들어가야 당도할 수 있는데, 이 길은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와 같은 보행 약자층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산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조성한 길이다. 줄여서 ‘월송나눔길’이라고 부른다. 데크로드, 보행매트, 황토포장으로 이루어진 600m의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로 솔향을 맡다 보면 중간쯤에서 월송정을 만나게 된다. 월송정 1층에서도 바다가 보이지만 2층 누마루에 올라서 보는 바다 풍경이 더 좋다. 짙은 옥빛 바다에서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돗자리를 가져와 마루에 깔고 누워서 쉬는 나들이객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11월 말까지 보수 중이라 누마루에 오르는 것은 겨울로 미뤄야 했다. 월송나눔길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소나무 그늘이라 걷기에 그저 그만이다. 파도 소리가 함께해 발걸음이 더 가볍다. 걷다 보니 갈대밭이 보였다. 평해습지였다. 평해사구습지 생태공원은 구산해수욕장, 월송정과 더불어 빼어난 해안선과 배후습지를 활용한 생태공원으로 동해안의 훼손되지 않은 해안사구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차별화된 생태공원이다. 습지와 울창한 송림을 따라 산책로와 벤치가 조성되어 있어 편안하고 즐거운 걷기 여행을 할 수 있다. 해안전망대, 기수역관찰대, 생태관찰대, 조류관찰대, 사구전망대, 광장, 쉼터 등의 시설을 갖춰 맨발로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자주 지나쳤다. 습지에서 되돌아 월성정 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걸었다. 소나무 사이로 울진의 가을 들녘이 누렇게 반짝였다. 동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논에서 거둔 쌀은 특별히 더 찰진 밥맛을 줄 것이다. 오후 한나절을 소나무 숲에서 보낸 우리의 낯빛이 환해졌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이 가을 자주 월송나눔길을 찾아올 것 같다며 함께 간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까운 후포 어시장에 들렀다. 살아서 펄떡이는 물고기를 바로 회를 떠서 먹을 수 있었다. 가을 소풍의 마무리로 안성맞춤 밥상이었다.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 동해안 파도 소리가 끝까지 따라왔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01

가을이 조금 더 익기 전에 산책 가요

하늘로 길게 치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늘어선 길. 계절이 좋을 땐 꽉 막힌 길이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겨우 맘을 내었을 땐 더운 여름이었다. 그러나 비지땀을 흘리며 숲길을 걷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날이 식으면 가봐야지 하며 가을만 기다렸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더뎠고 세찬 비를 앞세우고서야 드디어 찾아왔다. 경주 토박이인 필자에겐 경북천년숲정원은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으로 더 익숙하다. 아마 다른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구원으로 쓰이던 정원은 2023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경상북도 지방정원 1호이자 국가정원으로는 5번째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다. 3월에서 10월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동절기인 11월에서 2월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운영 종료 시간 최소 30분 전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 함께 동행한 아이와 입구에 서서 안내표지판을 먼저 읽어보았다. 쉬엄쉬엄 코스 40분, 정원 꿰뚫기 3시간. 친절하게 코스 안내가 되어있다. 유심히 읽어보던 아이는 그 둘 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다녔다. 숲을 즐기기에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아직 설익은 낙엽과 지난밤 내린 비로 길이 제법 미끄럽다. 핫스팟으로 유명한 곳은 인생사진을 남기기 위한 방문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산책하는 중간 중간 비로 인해 미끄러워 위험하니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주의 방송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정원엔 많은 갈림길이 있었고 아이는 매번 고민에 빠졌다. 종보존원을 지나 수변정원에 이르자 커다란 수양버드나무가 보였다. 어릴 땐 꽤 흔했던 나무였는데 내 삶의 터전이 바뀌어 보이지 않는 건지 수양버드나무 자생지가 줄어든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덩치 큰 자태를 보자니 반가웠다. 반바퀴를 돌 무렵 무궁화가 하얗게 피어있다. 더도 덜도 말고 교실마다 걸려있던 액자 속 그 모습인데 흰 꽃잎이 빛이라도 품은 듯 유독 환해 보인다. 무궁화 꽃 뒤로 단풍나무엔 조금 이른 단풍 몇 개가 찾아들었다. 몇 안 되는 단풍잎이 이렇게 반가울 일이었나 싶다. 조금 더 걷자 표지판에 징검다리가 적혀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꽤 걸어가도 징검다리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입구에 거의 다다를 쯤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울 숲. 그곳을 그리 불렀다. 맞은편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건너기 시작했다. 가운데쯤 이르자 데칼코마니처럼 양쪽으로 대칭된 나무들이 물 위에 비쳐보였다. 수초가 조금 적었더라면 더 맑은 거울을 볼 수 있었겠단 아쉬움이 남았지만 나무 사이 자리 잡은 구름까지 더해져 충분히 멋진 광경이었다. 가볍게 걸었음에도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기온이 내려갔다고는 하나 너무 이른 긴 옷에 더위가 느껴졌다. 가을이 조금 더 익은 날 다시 찾기를 기약하며 산책을 마쳤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01

요즘 유행은 다 여기에?… 일상으로 스며드는 편의점

편의점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1인 가구를 위한 간편식, 채소, 계란 등의 소포장 식재료와 반찬, 가성비 좋은 도시락, 주류 상품, 금융, 택배, 이제는 의류와 화장품, 소형 전자 제품, 명절 도시락이나 고급 명절 선물 세트까지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을 매일 들르는 게 일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추석 연휴에 고향에 가지 못한 대구에 사는 김 모(38)씨는 “일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명절 음식 생각이 간절한데 그럴 때는 편의점 추석 명절 도시락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명절 도시락을 이용해 보니 편하기도 하고 혼자서도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가까이 골목에 점포를 두고 있는 편의점은 말 그대로 단순한 상품을 판매하기보다 고객의 편의를 위한 24시간 잡화점이다. 편의점은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장에 있어서는 올해 상반기 산업자원부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별 매출 비중에 따르면 편의점(16.6%)은 대형마트(13.3%)의 매출을 넘어섰고 백화점(17.6%)과도 격차가 좁아서 머지않아 따라잡을 기세다. 이 수치는 백화점과는 다르게 편의점이 현재 600곳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편의점 트렌드를 살펴보면 MZ세대의 관심을 끌 만한 다양하고 독특한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쌀국수 같은 글로벌 제품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고금리와 고물가 시대에 손이 가는 초저가와 초대형 상품을 시의적절하게 내보이면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득템’이나 ‘2천 원의 행복’ 시리즈, 대용량의 ‘점보 라면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인플루언서들의 후기 영상 콘텐츠로 등장하기도 했다. 또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편의점을 통한 홈술 문화도 확대되었고 일명 어른 과자로 불리는 먹태깡이나 노가리 칩 등은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상품 판매와 생활의 편의를 함께하고 있는 편의점은 동네 주민들이 카페에 가기 애매한 시간대에 저렴하면서도 상품 종류가 많은 편의점을 찾기도 하고, 외출 시나 여행 갈 때도 갑작스레 티셔츠, 속옷, 스타킹, 양말 등이 필요한 순간 반가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편의점은 반값 택배로도 인기를 끌었다. 가격이 저렴하고 집 주소를 공개할 필요도 없으며 소용량 택배 위주라 중고 거래에도 적합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는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수면양말과 같은 방한용품이 잘 갖춰져 있고 붕어빵과 이제는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군고구마, 호빵 등을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다. 또 하나 시민의 안전에도 동행하고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은 ‘안심지킴이집’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데 여성과 아동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이들의 긴급 대피와 안전한 귀가를 지원하고 있다. 이제 밤에 뭔가 사야 할 것이 있을 때는 자연스레 가깝고 항상 열려 있는 편의점을 이용하게 된다. 먹거리뿐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편의점의 변신이 궁금하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01

대구서 만난 ‘간송 컬렉션’ K-아트의 힘을 보다

‘여세동보(與世同寶)’. ‘세상과 더불어 보물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보화각 머릿돌에 새겨진 글이다. 간송의 스승 오세창이 제자가 수집한 ‘한국의 보배를 국민과 함께 누리자’라는 의지로 썼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 전시 슬로건도 ‘與世同寶’다. 지형 그대로를 살리며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대구간송미술관 입구에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간송의 숭고한 신념을 대신하듯 11개의 아름드리 소나무 기둥이 굳건한 모습으로 당당히 서있다. 미술관의 광장에서 바라본 멋스런 소나무와 내려다보이던 대구 시가지의 모습도 더없이 아름답다. 무엇보다 설레는 것은 대구에서 간송 컬렉션의 진품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관’의 유일한 상설 전시공간으로 탄생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우리 것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간송의 문화보국(文化報國) 정신을 기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점이자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간송미술관’이 새롭게 출발했다. 개관을 기념하는 ‘여세동보(與世同寶) 국보·보물전’이 지난 9월 3일을 시작으로 12월 1일까지 열린다. 전시품들은 하나같이 귀중한 가치를 지닌, 교과서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보물들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 추사의 ‘대팽고회’, 심사정의 ‘촉잔도권’등 귀한 국보와 보물 97점을 한 자리에 전시해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전례 없던 것으로 이런 행운은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시실은 다섯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많은 관람객으로 전시실마다 길게 늘어선 줄은 짜증보다 진품을 만난다는 설렘이 주는 기다림으로 외려 즐겁다. 추사는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진수성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고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와 함께하는 것이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라는 작품을 남긴다. 이 작품의 진품을 보게 될 줄이야! 마치 추사를 만난 듯하다. 목숨 걸고 지켰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 글 한글이 최고 수준의 언어학적, 음성학적, 철학적인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극비리에 해례본을 소장하게 된 1940년 7월은 우리말이 말살되고 한글학자들이 탄압받던 일제강점기로 ‘한글은 한국 고유의 창살 문양에서 창제되었다’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설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 낸 것은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지켜 낸 것이다. 진품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청자삼감운학문매병’은 일본 상인이 소장하고 있던 도자기를 당시 서울의 기와집 20채 값에 해당하는 2만원에 구매했고 이후 그 상인이 산값의 두 배에 되팔기를 권했지만 간송은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오면 그것은 제값을 주고 사고 이 매병은 2만원에 다시 드리겠소”라며 정중히 거절한다. 간송에게 있어 보물이나 골동품은 재물의 가치를 따져 소유하는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 것을 지켜야한다는 신념으로 소장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었다. 전시 된 작품 하나하나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들이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은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서 우리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간송의 ‘숭고한 정신’이 아닐까 싶다. 돌아오는 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결코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9-26

아련한 옛 이야기 길섶마다 도란거리는 봉화 ‘닭실마을’로 가을 산책 어때요?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라고 한다. 청명한 하늘은 먼 풍광까지 즐길 수 있게 하고 오곡백과의 풍요로움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사색의 계절. 누렇게 고개 숙인 벼가 익어가는 들판 너머로 멋스러운 청암정과 중후한 자태의 고택과 돌담길이 보인다. 고향마을은 아니어도 호젓한 시골 풍경 속에서 옛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 계절. 가을에 더 아름답고 정겨운 여기는 봉화 닭실마을이다. 보물 2182호 청암정이 있고 석천계곡과 함께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다. 석천계곡에서 닭실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울창한 송림과 아름다운 너럭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가지런하게 익어가는 논 사잇길로 고향 냄새가 유혹한다. 유별나게 덥고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하늘이 높아진 가을 길 따라 ‘선비의 고을 봉화’ 그중에서도 닭실마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닭실마을은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 안동 내앞마을과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4대 길지로 꼽았다. 마을 앞뒤를 감싼 나지막한 구릉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으며, ‘닭실’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조선 전기의 관료이자 사림의 모범이었던 충재 권벌 선생이 1520년 이곳에 이주해온 후 안동 권씨 충정공파 후손들이 500여 년 동안 살아온 마을이다. 충재종택과 청암정, 석천정사, 삼계서원, 사설당, 송암정, 갱장각 등이 있으며 충재유물전시관에는 보물 482여 점을 포함해 고서, 고문서 등 5000여 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닭실마을은 한과로도 유명하다.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만들었던 한과가 상품화되어 명성을 얻고 있다. 48시간 반죽을 늘여 튀기고 조청을 발라 튀밥옷을 입혀 완성하기까진 꼬박 사흘이 걸린다. 영남의 최고 정자라고 평가받고 있는 청암정은 충재 권벌이 기묘사화로 낙향 후 1526년 지은 것이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진 청암정에 오르려면 외돌다리를 건너야 하며 연못 속에 섬처럼 거북바위가 있고 그 등에 정자가 올라앉아 있다. 아직은 이르지만, 단풍이 들면 정자의 운치를 더해주고 왕버들숲이 청암정을 수놓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청암정에서 석천정사로 가는 길에는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벼와 코스모스가 반긴다. 석천정 아래 물속에 책상처럼 돌출한 바위인 사자석, 사자석 오른쪽 암벽에 있는 청하굴은 옛날에 신선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천하동천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석천정 위쪽 비룡폭포는 바위 사이로 힘찬 물줄기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폭포 주위에는 수많은 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세월의 무게와 이야기를 품은 아름다운 닭실마을의 가을 산책은 멋과 맛이 어우러져 느긋한 여유로움이 있다. 아련한 옛이야기 길섶마다 도란거리고, 역사의 향기가 보이는 고향 같은 닭실마을 길을 여유롭게 걸어보길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9-26

우리, 사람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유랑을 멈출 수 없는 유목민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정착을 꿈꾸지만 정착하고 나면 또 떠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이다. 그래서 그대와 나 사이에는 초원이 필요하다. 양떼를 키우는 그대와 야크를 키우는 나는 늘 새로운 풀밭이 필요하고 함께 머무르기 힘든 존재들이다. 아무리 함께 지내는 부부라고 해도 각자의 풀밭이 필요한 법이다. 좀 멀찍히 떨어져 외면할 듯이 살아야 상대의 장점은 더 좋게 보이고 단점은 좀 작게 보이는 법이다.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상대를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사랑하고 아끼지만 상대를 위하여 풀밭을 마련하여 그리움을 품고 살자는 시를 읽어 본다.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니/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 ‘옮겨가는 초원’) 언젠가 영능력자 분이 쓴 글에 보면 처음 만나서 너무 좋다고 퍽 엎어지는 사람은 후에 자신을 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람을 만났을 때 첫눈에 홀딱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에 결핍이 있기 때문이고 상대가 그 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면 원수로 돌아선다고 한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각자 초원 하나씩을 두고 살자. 그의 천막이 보이는 지평선에 눈을 주다가 그가 짓는 저녁 연기에 마음 짠해지는 그리움을 잃어버리지 말자.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공간이 없이 나아가는 것. 내가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가 듣지 못한데도 어떠랴. 나에게서 나간 마음은 분명 그대에게 가닿을 것인데. 옮겨가는 초원 사이에서 우리 오늘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날이 되자.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9-26

풍월주 50찬을 탐하다

연둣빛이던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경주 현곡을 찾았다. 신라 화랑이 먹었다는 풍월주 50찬을 엿보러 가는 여행이다. 경주시는 지난 2022 로컬여행상품 공모전 시상식을 열었고, 라선재 대표가 제안한 풍월주의 50찬을 대상작으로 선정·시상했다. 신라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을까? 삼국유사에는 신라 30대 문무왕의 동생 차득공이 재상이 되어 안길이라는 친구가 찾아왔을 때 50가지의 찬을 차려 대접하였다고 내려오고 있다. 이 구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라선재의 ‘풍월주의 50찬’은 신라 음식 만들기 체험과 시식에 이어 신라시대 화랑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30분 타임의 연극을 관람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 사다함과 궁중음식 요리사 미소와의 사랑 이야기다. 미소는 전쟁터로 떠난 사다함을 애타게 기다리며 기록 속에 남아 있던 신라 음식 50가지를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사다함이 없는 틈을 타 미소의 처소를 찾은 진흥왕은 미소에게 사랑을 구하고, 그 유혹을 뿌리치다 미소는 칼에 맞아 쓰러진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다함은 쓰러진 미소에게서 평소 본인과 요리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진심과 사랑을 담아 마지막 50번째 음식인 상화병을 만들며 풍월주의 50찬을 완성한다는 스토리다. 풍월주의 50찬은 △1부 공연 풍월주 사다함과 궁중음식 요리사 미소와 사랑 이야기 △2부 생명의 꽃, 상화병 만들기 체험 △3부 식사로 구성했다. 식사는 돔배기 조림, 맥적, 대구껍질 요리 등 신라 음식 다이닝 순서로 운영된다. 풍월주의 50찬은 화랑과 신라 음식을 스토리텔링한 국내 최초 신라 음식 다이닝이다. 신라시대는 빨간 음식이 없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이라 신라시대 음식은 굉장히 순했을 것 같다. 그 당시에도 소금은 있었다. 굉장히 비싸서 함부로 쓸 수가 없어서 우금이라고 소‘우’자를 써서 그만큼 비싸단 뜻으로 쓰였다. 그래서 음식이 짜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추라기구이, 황자계구이, 꿩만두, 흰오리찜, 숭어회 등 50가지 요리를 보니 화랑의 식탁이 푸짐해 보였다. 우리는 마지막 50번째 찬인 상화병 만들기 체험을 했다. 준비된 반죽과 기름, 계란, 팥. 반죽을 저울에 올려 50g씩 소분 팥소를 넣고 오므려 둥글게 완성한 후 꽃 모양으로 만들어 달걀을 입혀 오븐에 구우면 완성이다. 물론 신라시대에는 가마솥에 넣어 쪘겠지만, 지금은 식감과 보관을 위해 오븐에 바싹 구웠다. 발효의 나라 신라, 신라인들은 술, 장, 해, 침채, 발효식품, 시, 포, 차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었는데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예에 옹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서 말과 수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고 기록했다. 이 시대에는 벼농사의 정착이 어느 정도 음식문화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국가의 형성과 함께 계층화된 신분제도가 식생활 자체를 귀족식과 서민식으로 분리되는 계층화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삼국의 음식문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식생활의 계층적 형태를 완성해 갔다. 이때는 또 농경의 발달과 쌀의 생산 및 외국과의 교류가 성행됨에 따라 한국 음식의 체제가 정착된 시대였다. 이렇게 정착된 음식문화는 일본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글에 “헛되게 밥만 먹으니 국에 맛을 조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 문헌에서 국에 관한 기록은 이것이 처음인듯하다. 신라인의 만찬은 주말에 체험할 수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