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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이와 함께 찾아간 경주 황룡사역사문화관

얼마 전부터 아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지난번 내린 반가운 눈은 잠깐의 기쁨과 추운 날씨를 남겨뒀다. 날씨를 핑계 삼아 집 안에만 있자니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잠시 차를 달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며가며 늘 보던 건물인데 방문은 처음이다. 주차장과 건물과의 거리가 생각보다 있었다. 차가운 바람 탓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아이는 산책도 할 수 있어 약간 거리가 있는 게 좋다 했다. 가는 길 왼쪽엔 발굴된 유적들이 철망 같은 구조물 속에 넣어져 시대별로 놓여있다. 안내데스크에서 경주시민임을 인증하고 관람이 시작되었다. 안내데스크에서 왼편으로 틀자 거대한 탑이 보였다. 황룡사 9층목탑 모형이 건물 2층까지 닿아있다. 실제 탑의 1/10크기의 모형으로 약 8m에 총 4만2000개의 목부재와 8만5000장의 동기와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건물 안에 이렇게 멋진 탑이 있다는 게 신기한 듯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며 살폈다. 황룡사 역사실은 황룡사 창건 설화, 신라 천년의 역사 기록, 황룡사 칠백년의 역사 기록, 황룡사 발굴 역사스페셜 코너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니터 속 영상과 함께 관람 가능하다. 고건축실엔 황룡사 9층목탑 찰주본기 모형이 놓여있다. 본래 5장의 금동판과 뚜껑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뚜껑 없이 경첩으로 이어진 금동판을 펼쳐 놓은 모습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부터 중수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특별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 외에 출토유물들도 함께 전시 중인데 실물은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소장중이며 이곳에는 레플리카(모조품)를 놓아두었다. 작고 귀여운 금강역사상을 뒤로 하는 사이 아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터치화면을 열심히 누르고 있었다. 모니터를 터치하면 황룡사를 지을 당시 건축 자재를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게 되어있다. 와당, 수막새, 암막새, 연목와, 부연와, 귀면와 등 평소 ‘기와’란 단어 하나로 치부하던 존재가 제 이름을 찾는 순간이었다. 자재에 이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건축사, 동아시아의 고건축사도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한편엔 황룡사 9층 목탑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난간에서 영상을 통해 신라 왕경을 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벽 너머엔 황룡사 관련 배경을 골라 인물 사진을 찍으면 메일로 보내지는 장치가 놓여있었다. 관람 중 아이의 반응이 가장 좋은 곳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얼마 되지 않아 영상 상영이 시작되었다고 안내를 해줬다. 1층에 위치한 3D영상관에선 정해진 시간에 따라 화랑 월랑의 꿈과 호국의 염원 황룡사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은 4월부터 10월까지는 평일 기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주말은 한 시간 연장된 오후 7시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평일과 주말 모두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1-16

푸른 뱀의 해에 맞은 첫눈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물론 설을 지나야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온전히 열리는 것이지만. 기온이 가장 낮아지는 소한이 지났고 마지막 절기인 대한을 앞두고 있다.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언저리에 이르며 추위는 절정에 달했다. 12·3 비상계엄사태와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지난달엔 역사의 페이지에 길게 기록될 엄청난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다사다난하다’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길 없이 추운 날씨만큼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많은 이들이 놀랐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걸 목도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는 바뀌었고 시민들은 고요히 해돋이를 맞이했으며 달력의 첫째 장을 펼쳤다. 새해를 맞아 안동시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미래도시 안동을 향한 비전을 제시했다. 바이오 백신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헴프 규제자유특구 기간 연장으로 천연물 소재 산업 기반 구축사업에 전력을 다해 투자와 일자리가 넘치는 친환경 기업도시로의 도약을 꿈꾼다. 새해 설계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사계절 축제의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해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어 주요 관광지와 안동호 권역에 체류형 인프라를 조성하는 등 세계인이 모여드는 문화·관광·스포츠 도시 조성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안동은 한 단계 성장하는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외 24시간 돌봄서비스 지원, 안동형일자리사업 추진 등 저출생 극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고령자 및 교통약자, 교통 소외지역에 대한 지원 확대와 지역 농민이 우대받는 미래 지향 농업도시 조성을 위한 사업 조성에 힘쓸 예정이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사회의 형성은 향후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다. 소한 다음 날. 안동에 새해 첫눈이 내렸다. 많은 양이 내렸지만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졌다. 지난해의 힘들고 고된 여정이 새하얀 눈처럼 녹아 없어지길 기원해 본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1-16

그래도 아이들이 희망이다

2025년은 푸른 뱀의 해다. 뱀은 갱생과 치유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뱀의 해에 우리 사회도 지난 시간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로워져야 할 이유는 다분하다. 그 새로운 시작을 말하자면 방금 세상에 나온 아기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만큼 희망을 안겨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새해 인사를 전하는 TV 속에서도 세 명의 아기가 어둠을 뚫으며 굵고 시원한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아이의 출생은 기쁘고 반가운 일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출생률의 위기가 고령화와 지역 소멸로 이어진다는 거다. 이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가의 위기로까지 이어지는 지금. 한 줄기 빛처럼 오르고 있는 출생아 수는 모두에게 희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 동안 연속으로 출생아 수가 2만명이 넘었다. 10월의 출생아 수는 2만1398명을 기록했다. 이는 2015년 이후, 내려가기만 하던 출생아 수가 9년 만에 오른 것이라 하니 2024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고 있다. 경북에서도 저출생 극복이 도정의 화두 중 하나다. 인구감소 위기가 다른 지자체보다 심한 지역이다 보니 저출산 전쟁이라는 강력한 말로 그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올해는 만남 주선, 행복 출산, 완전 돌봄, 안심 주거, 일과 생활의 균형, 양성평등의 6개 정책을 제시하며 임신 전 건강부터 출산 후의 산모와 신생아 지원까지 모든 과정을 ‘ALL CARE’하는 지역 맞춤형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난임부부 지원 정책 등 건강한 출산 환경 조성과 도민 행복을 돕는다. 경북의 합계출산율을 보면 지난해 1/4분기 0.93명, 2/4분기 0.85명, 3/4분기 0.91명으로 2023년 0.86명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다둥이 가족은 그야말로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경북은 다둥이 가족이 440가구가 있다. 지난해 여름,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는 한 다둥이 가정에 2024년도 첫 출생아이기도 하면서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 지역 사회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축하와 함께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5남매 가족은 포항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이를 통해 포항시에서는 다둥이 가족을 홍보대사로 정한 것에 대해 자녀 양육의 경험과 다자녀 가구의 행복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결혼과 출산, 육아와 관련된 잘못된 사회 문화를 개선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또 결혼(임신·출산·육아)에 대한 편향적이고 왜곡된 가치관이 있는데 미혼인들에게도 잘 전달되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된다고도 했다. 5남매 부모는 “출산을 통한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의 기쁨, 육아를 통한 보람, 자녀의 성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남들은 모르는 양육의 기쁨을 전했다.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또 다른 다둥이 가정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자라서도 육아는 쉽지 않다. 하지만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으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아이들이 서로 보고 배우기도 하고 자라면서 부모의 말을 알아듣고 같이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어서 많이 기쁘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1-14

목욕탕의 추억

백희나 작가는 나무꾼과 선녀의 그 선녀님이 동네마다 한 개 정도 있을법한 장수탕에서 아직 살고 있다는 설정의 그림책을 그렸다. 탕 속에서 장난치기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명절 앞두고 묵은 때를 밀어 본 기억을 가진 어른들의 사랑을 받아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그림책에 나오는 장수탕같이 정겨운 목욕탕이 경주시 감포읍에도 있다. 무려 100년 된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골목 안쪽에 있어서 주차장이 없어서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조금 걸어야 나온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해국길이다. 담벼락에, 계단에 환하게 해국이 피었다. 최근 전국에 벽화마을이 곳곳에 생겨났다. 마을 특징을 잘 살려 그림으로 표현해 관광객을 부른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비바람에 흐려지고 탈색돼 처음의 뜻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찾는 발길이 끊긴다. 오늘 찾아간 감포 해국길의 꽃은 한 달 전에 새 꽃이 피었다. 적산가옥이 구룡포처럼 아직도 남아있는 골목길마다 새로운 벽화가 가득하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보존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뜻이 고귀하다. 해국 계단은 그림이 예뻐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얼마 전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촬영지였다. 계단 중간에 작은 카페가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 가족이 운영하는 칼국수 집이었다. 해국꽃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던 곳이 드라마에 나오니 더 반가웠다. 감포항과 골목길 곳곳이 장면마다 등장했었다. 해국 계단 옆으로 난 꽃길을 따라가다 뻥튀기 가게가 보였다. 주인아저씨가 기계를 돌리다 말고 길을 묻는 우리에게 ‘카페 1925’가 바로 저기라고 알려주었다. 큰 화분에 꽃이 가득한 그림이 사진을 찍게 만드는 골목 안쪽에 자리한 카페다. 정문 유리에 목욕탕을 알리는 온천 표시가 보인다. 이곳은 실제로 1925년부터 70년간 목욕탕이었다가 30년은 문을 닫은 채 허물어져 가던 건물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고 천장만 고쳤다. 마을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힘을 합쳐 동네를 되살렸다. 조용하던 골목에 주말마다 관광객의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서면 중간에 작은 방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과 왼쪽으로 다 들어갈 수 있다. 아마 예전에는 남탕 여탕으로 들어가던 모습 그대로이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대표메뉴들이 싱크대 상부장에 붙어있다. 감포 바다에 동동 뜬 부표 같은 느낌을 살린 ‘부표라떼’, 경주 산내의 미숫가루로 만든 ‘18곡 쉐이크’, 솔향이 솔솔 나는 청량함 가득한 스파클링 음료 ‘송대말의 오후’, 경주 동해안의 일출을 닮은 ‘고아라의 아침’ 같은 특별한 메뉴가 돋보인다. 경주의 예쁜 풍경을 담은 사진들, 1925감포 카페와 관련된 굿즈들도 팔고 있어 구경할 맛이 난다. 옛날 목욕탕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채 최소한의 개조만 진행한 카페여서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이다. 인위적으로 레트로 감성을 재현한 게 아닌, 진짜 레트로. 대중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이 떠오르는 ‘탕’과 벽, 타일부터 바닥까지, 그리고 목욕탕 사물함까지, 옛날 목욕탕에 와있는 느낌이다. 때밀이 쿠션에 주문하면 홈이 파여진 락커 키를 손에 쥐여준다. ‘즐겁고 상쾌한 목욕 시간을! 아모레, 은방울’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카페다. 사물함 한 칸에 놓인 로션 브랜딩 네임 ‘QueNam’, 한쪽 구석에는 방명록을 남길 수 있다. 이 공간 또한 옛날 수동타자기가 놓여있어서 아늑한 분위기다. 500원을 넣으면 옛날 오락기로 게임을 해볼 수 있도록 오락기 두 개가 놓였고, 아날로그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주변 콘센트와 머리 건조기, 물 절약을 호소하는 안내문까지 오래된 추억을 소환한다. 목욕탕 카페는 매주 수요일은 휴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1-14

봉화 산골마을의 ‘60대 소녀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지는 게 아니라, ‘여자 셋이 모이니 즐거운 산골살이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세 여자는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18세 소녀들처럼 맥락 없는 대화가 웃음을 빵빵 터뜨리고, 함께 하는 일마다 즐겁게 노년의 삶을 연습하고 있다. 60대 세 친구가 오지 산골에 들어온 지 10년이다. 경기도 안산시 한동네에서 살면서 친구가 되고, 10여 년 전 “우리 시골 가서 함께 살까?” 말이 나오기 무섭게 세 여자는 봉화 산골 감동골에 땅을 공동구매해 각자 집을 짓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내의 의견에 동의해 함께 들어온 부부도 있고, 도시에서 몇 년을 떨어져 지내다 은퇴 후 함께 한 부부도 있다. 지금은 남편들도 모두 합류해 여섯 명이 모여 전원생활 중이다. 도시의 삶은 빠르게 흘러간다. 바쁜 일상에서 ‘인생 2막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안산시에서부터 함께 지낸 친구들. 윗집은 박향자(62)씨, 중간집은 이해수(61)씨, 아랫집은 이은빈(60)씨 집이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아 살고 싶은 욕구는 많은 사람에게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아내들이 앞장서고 남편들이 따라주었다. 보통은 남편이 가고자 해도 아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시골로 가지 않으려 한다. 면 소재지에서 산골 풍경 속으로 15km를 들어가 또랑또랑 물소리 청명한 개천을 지나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거슬러 올라간다. 드문드문 외딴 산골집이 보이고 과수원을 지나면 푸른 숲이 드리워진 양지바른 문수산 자락 500고지 산골에 세 부부가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 여자의 카톡이 울린다. “커피 마시러 우리 집으로 와”,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칼국수나 먹자”. 내 집 네 집 없이 정답게 살아온지도 10년이 되었다. 방에 누우면 밤하늘에 달과 별이 보이는 이곳에서 친구끼리 마음껏 웃고 떠들며 놀이처럼 고추를 따고, 사과 과수원을 경작해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간다. 농사일이 힘들지만 함께이기에 신나고, 가끔은 여행도 한다. 여가생활로 지역 전통문화 마당놀이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온전한 자유와 여유를 즐기는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세 친구 중 해수씨와 은빈씨는 몇 년 전 사돈이 되었다. 자녀들이 방문하면 풋고추에 상추 뜯고 장작불에 고기 구워 세 가족이 함께 어울린다. 격의 없는 부모들이 친구이니 자녀들끼리도 남매처럼 어울리다 인연을 맺었다. 해수씨 따님과 은빈씨 아들이 결혼해 벌써 손주까지 본 할머니들이 되었다. 향자씨 남편 학근씨는 자연에서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배웠고, 자연을 보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니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도시의 소음과 혼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움을 갖게 해준 아내 향자씨가 고맙다고 했다. ‘60대 소녀’라고 자처하는 산골 세 친구는 고요한 산자락이 흰 눈으로 뒤덮인 요즘 같은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까먹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도 늘 웃음을 달고 살아간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1-14

지구환경 지킴이 ‘이끼’

이끼. 가장 단순하고 미세한 이 작은 식물이 만들어 내는 놀라운 환경적 기여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 최초의 육상 식물이다. 지구의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구상의 산소의 약 30% 이상을 생성하며 인간과 같은 고등 동물의 존재를 가능케 한다. 자기 몸무게의 5~20배 정도의 물을 저장해 식물들이 뿌리 내릴 수 있게 도와주고 지렁이와 같은 작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습도, 보온,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등 엄마의 품처럼 숲을 지켜주는 생태계의 터전을 만들어 준다. 이끼(Moss)의 꽃말은 ‘어머니 사랑’이다. 광합성 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이끼는 헛뿌리로 물관이 없으며 꽃과 열매, 씨도 없어 포자로 번식한다. 필요한 영양분은 잎과 줄기를 통해 흡수하며 빨아들인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탁월해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인다. 공기 중의 질소를 다른 식물과 유기체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주변 식물의 성장을 촉진 시킨다. 서늘하거나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하며 어떠한 생태계에서도 미세한 틈새를 찾아 생존할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몸속 수분 중 98%까지 잃더라도 물이 공급되면 다시 깨어난다. 뛰어난 정화능력은 공기청정효과를 지닌다. 대기 중의 수증기와 영양분을 힘껏 빨아들일 때 대기 중의 오염물질도 함께 걸러준다. 이끼가 포획한 공기오염 물질은 양이온 교환에 의해 이끼의 영양분이 된다. 실내 정원에 이끼를 사용하거나 화분 위에 얹으면 실내 습도 조절에 도움이 되며, 공원 산책길 양 옆으로 이끼를 깔면 땅에서 올라오는 열과 공기 중의 열을 낮추어 준다. 이끼는 그 지역 환경의 구성요소나 상태를 나타내는 환경지표식물이다. 대기오염과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 조금 늦게 자라거나 성장을 멈추며 서서히 말라죽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린다. 챗GPT는 이끼를 환경정화에 최적, 공기정화, 수질정화, 이산화탄소 흡수, 의학적 효능으로 항균 및 향염 효과, 약용활용, 토양보호, 서식지 제공, 생태계 유지 및 복원, 산업적 활용, 건축 및 인테리어 정원 및 조경, 교육 및 연구, 초·중학교 등에서 생태계의 중요성을 가르칠 때 활용, 자연과 인간의 삶에 큰 기여, 연구와 보전이 중요한 분야라고 답한다. 이끼의 뛰어난 정화 능력을 알게 되면서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목표로 한 기후 위기 대응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이끼산업의 성장과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23년 6월 8일에 한국이끼산업협회가 창립되었다. 포항시 탄소중립지원센터에서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탄소중립 리빙랩(Living Lab)활동에서 ‘이끼를 활용한 탄소흡수 테라리움 제작’ 등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 센터와 활동을 함께하는 이끼농장을 찾았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에 위치한 이끼농장의 이상열 대표는 재선충으로 인해 소나무가 사라진 산야에 이끼포자를 뿌려 관리한다면 대체 나무가 자라는 동안 이끼가 나무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포항시에 잘 조성된 40여 개의 공원에 이끼타워, 이끼터널, 이끼정원 같은 시민의 건강을 위한 조경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이끼가 많은 서늘하고 습한 계곡에 들어서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 진다. 그들이 뿜어 낸 풍부한 산소는 피부도 맑아지게 한다. 새해에는 이끼 테라리움으로 집안의 습도 조절과 함께 공기를 맑게 정화해보면 어떨까? /박귀상 시민기자

2025-01-09

내 몸이 악기가 되는 시간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2024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대구 공연이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서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총 5일간 진행되었다.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은 오후 3시와 6시에 공연이 펼쳐졌다. ‘난타’는 사물놀이 리듬과 코미디, 재미있는 스토리를 결합하여 대사 없이 진행되는 공연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이번 공연은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의 1100석의 큰 규모를 관객들로 가득 메워 ‘난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자막에는 관객들에게 마음껏 웃고 떠들고 박수를 치며 함께 즐겨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공연은 맛있는 냄새와 함께 결혼식에 필요한 요리를 신나는 리듬으로 만들어내는 요리사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공연 중 결혼하는 신랑감과 신붓감을 얻기 위해 직접 객석으로 내려와 신랑, 신부를 초청해서 결혼식을 진행했다. 주인공 신랑, 신부가 된 이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때마다 객석의 관객들은 응원과 웃음을 보내주었다. 또, 관객들의 손과 발이 악기가 되어 함께 무대를 채울 수 있도록 박자를 알려주고 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이 시간 잘 따라 하지 못하는 관객을 재미있게 질책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공연 중 가장 힘든 작업으로 보이는 만두를 빚어 찜틀에 넣고 쌓는 작업에는 도움을 줄 4명의 관객을 무대로 불렀다. 이때 객석에 있는 관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객석은 좌우로 무대의 4명의 관객은 둘둘로 나누어 이들을 청팀과 백팀으로 구분해 주었다. 그리고 출연진들은 모두 퇴장하고 관객들이 서로 응원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관객들이 창작하는 공연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이 시간에는 무대에 올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빠르게 해내서 이겨보려는 꼬마 신사의 노력 덕분에 객석에는 유쾌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이처럼‘20 24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공연은 단순한 관람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함께 공연의 일원이 되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다. 모든 관객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진심을 담은 박수와 환호로 출연진들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냈다. 이번 공연을 통해 ‘난타’가 전 세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들과의 특별한 만남을 이어갈 것을 기대하게 하였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5-01-09

마음의 허기를 사랑으로 채우는 한 해가 되자

사람 몸의 한계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허기 아닐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숙명지어진 생명은 일생의 업이 먹는 것을 해결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먹기 위해서 살고 먹기 위해서 일한다. 뭔가 그럴듯하고 고차원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사는 이유가 먹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먹지 못하면 죽고 마는 이 진리는 어떤 생명체도 피해갈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세상을 누빈다. “요즘에 흔치 않은 조우였다 / 골목의 쓰레기장 더미를 뒤적이던 쥐가 인기척에 / 얼른 몸을 숨긴다 // 서러운 게 허기만이 아닐 게다 // 꽃처럼 피어있는 가로등 그늘에 / 그는 자신의 몸집만큼 어둠을 파고 그 속에 웅크리고 / 삶이란 슬프고 헛된 것이라며 / 꼼짝 않고 있다 // 먼 곳에서 누군가 허기에 울고 있다 // 벗어날 수 없는 허기가 / 자꾸 눈에 밟힌다”- 채만희 시 ‘허기’ 전문 골목길에서 쓰레기를 뒤적이는 쥐,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달아나는 쥐. 그가 숨어있을 깊은 어둠을 생각한다. 환한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늘 숨어있다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몸. 그 작은 생명의 서러움을 가늠해본다. 먹을 것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서러움 이상으로 어둡고 차가운 곳에 숨어 살아야 하는 서러움이 클 것이다. 더럽다고 푸대접 받고 죽임을 당하는 존재의 서러움이야 어찌 허기만의 문제일 것인가. 현대인도 허기에 허덕인다. 먹을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은 몸의 허기는 면한 지 오래되었지만 문제는 마음의 허기이다. 몸의 허기가 해결되어도 끊임없이 먹을 것에 집착한다. 마음의 허기가 몸의 허기인 줄 착각해서 먹으면 해결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만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먹을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난다.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한 허기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달고 화려한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허기는 다른 허기를 낳고 마음이 공허해서 모두가 마음병을 앓는다. 우리는 다시 마음의 양식을 찾아야 하리라. 적게 먹어도 적게 가져도 풍요로웠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야 한다. 먼 곳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를 달래주어야 한다. 새해에는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마음을 갖자.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삶은 감사할 일로 가득하다. 따뜻한 집과 풍성한 먹거리로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2025년이 되자. 앞만 보고 달리느라 허기져 헤매이지 말고 차분히 내가 누리는 것들에서 감사와 사랑을 느끼는 한 해가 되자. /엄다경 시민기자

2025-01-09

장생포항의 문화창고

어린왕자는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어쨌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석양을 본다고 했다. 어느 날엔 의자를 44번이나 옮기며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노을은 사람을 위로하기에 좋은 소재다. 그래서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을 자주 찾는다. 오늘 찾아간 곳은 고래가 넘실대던 장생포항이다. 울산 장생포초등학교 맞은편, 외벽에 거대한 고래가 헤엄친다. 1층 로비에는 어린왕자를 등에 태운 고래가 엎드려서 손님들이 인증샷을 찍도록 마련했다. 뒤로 태화강의 수로가 고래처럼 구불거리며 흐른다. 곧 바다와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강물이 속도를 조절한다. 도착한 시간이 4시쯤이라 일몰까지는 한 시간여 남았다. 1층에 푸드코트인 ‘어울림마당’이 자리 잡았다. 창가에 앉으면 정박한 선박들과 눈높이가 나란해 크루즈를 탄 것처럼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김밥과 돈가스뿐 아니라 숙성 카레, 해산물 덮밥, 코다리 밀면 등 특별식도 있다. 입점한 업체 3곳 모두 점심 식사 시간인 오후 2~3시까지만 영업하니 참고하는 게 좋겠다. 2층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1962년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울산공업센터 특정공업지구 기공식’이 장생포문화창고 인근에서 열렸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꾸민 기념관이다. 로비에 놓인 ‘한국공업입국출발지 기념비’는 1992년 기공식 30주년을 기념해 현장에 세운 것을 장생포문화창고 개관 후 옮겨왔다. 3층 미디어아트 전시관에선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상시로 볼 수 있다. 3월까지는 고갱의 작품이 살아서 움직인다. 좋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적어 전시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으로 올 때까지 우리뿐이었다. 그래서 그림이 바뀔 때마다 그림 속 소녀들과 손을 잡아보고, 그림 속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전시장이 온통 우리 것이다. 4층엔 인근의 5개 대학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빛의 마당에서는 작은 불빛이 모여 개나리가 핀 듯, 바다 위에 반영된 별빛인 듯 황홀했다. 물론 여기도 오롯이 우리만 즐겼다. 장생포문화창고는 수산물 가공 및 냉동 창고로 쓰이던 ‘세창냉동’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렸다. ‘제19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 문화관광분야 최우수상 수상’했고 로컬100에도 선정되었다. 2022년 개관 후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상설공연을 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음악 아카데미 등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한다. 장생포문화창고라는 이름도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최종 선택된 것이며 “장생포의 지역명에 새로운 문화의 보물창고라는 뜻을 더했다”고 한다. 공유 작업실과 공연 연습실로 쓰는 5층을 지나 6층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바다가 펼쳐진다. ‘사유의 바다’로 불리는 북카페 ‘지관서가(止觀書架) 장생포’다. 지관서가라는 이름엔 ‘내 안의 소리를 멈추는 곳, 나와 세상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이란 뜻이 담겨 있다. ‘인문과 예술과 산업의 이질적인 사상과 관점들이 서로 만나고 대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탄생하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라는 소개 글처럼 책을 통해 지혜를 더하고 독서와 낭독 모임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여기에 매달 수준 높은 인문학 강연을 이어오며 복합문화공간으로 뿌리를 내렸다. 카페라떼 한 잔을 받아 들고 공장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운을 남기려 애쓰며 하루를 마감하는 햇살의 그림자가 태화강 위에 드러눕는다. 물결과 함께 일렁이는 새들은 저녁을 준비하느라 잠수하기를 반복한다. 그 태화강을 천천히 배 한 척이 거슬러 오른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1-07

2025년 올해 당신의 독서계획은 어떤가요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놀라고 혼란스러웠던 지난 연말을 뒤로하고 새해를 맞은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고 신년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 중에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독서’가 아닌가 한다. 지난해 포항에서는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통해 독서가 한층 더 시민들에게 가깝게 자리 잡았다. 물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인가. 새해를 맞는 지인들의 독서계획에는 ‘올해는 고전 책을 다시 읽겠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병렬독서를 하겠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독서 시간을 갖겠다’, ‘독서 모임에 꾸준히 나가겠다’ 등 조금 더 독서와 깊어지기를 바라며 각자가 가진 계획들을 전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계획에는 그만큼의 실천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를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면 좋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동안, 점심시간에 잠깐, 출퇴근길에 오디오북을 듣는 등으로 실천할 수 있다. 이렇게 독서를 생활 속에서 시나브로 이어지게 하면 그 효과가 크고 꾸준히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독서 실천을 이어 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읽고 나서 적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은 후 중요하게 느껴지는 내용을 기록해 두면 기억뿐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배운 내용을 정리하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고 생활 속에서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도 떠오르게 된다. 책을 읽은 후 글로 적는 건 내가 배운 내용을 나의 말로 표현해 봄으로써 더 깊은 이해가 생기게 된다.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만의 독서 노트를 만들고 다시 읽음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되새기고 있다. 이런 습관들은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독서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독서할 때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면 책방 수북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 단편소설 100편 읽기 챌린지’처럼 2주에 10권 읽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단편 한 권씩 읽고 독서기록장으로 남기는 일정을 만든다. 목표가 세워지면 독서가 더 체계화될 뿐 아니라 효과는 커지게 되고 눈에도 선명하게 보인다. 마지막으로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분야의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는 거다. 문학책과 더불어 경제학, 철학, 심리학, 역사 등의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덤이다. 이렇게 하려면 혼자 읽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게 좋다. 책 읽기가 좋아 주말이면 근처 작은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는 시민 A씨(51)는 “그냥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는 큰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생각을 적었다. 다 읽은 후는 짧게라도 독서 후기를 기록으로 남겨 능동적인 책 읽기를 하니 다시 보는 문장들이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강 작가와 함께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개그맨 출신 작가이자 고명환은 교통사고 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그 해답을 찾으려 닥치는 대로 20년간 3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말했다. 2025년 당신의 독서, 실천할 수 있는 독서계획 어떤가요. /허명화 시민기자

2025-01-07

그림 그리는 의사들 만나러 가볼까요?

‘화가가 된 의사 3인전’. 세 가지 색을 가진 화가 3인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치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숙 작가는 경북대학교 의과대 및 대학원 의학박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명예교수다. 최근에 있었던 네 번째 개인전을 포함해 열정적으로 작업 중이며 경북창작미술협회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이 좋았던 그녀는 자유로움을 좋아하며 규격을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 놀듯이 즐겁게 작업하기를 원한다. 작품에서도 자유롭고 구애받지 않는 표현방식이 눈에 띈다. 평소 습지 산책을 즐기는데 그곳에서 느끼는 바람이 좋다는 이 작가. 바람, 소리, 그 안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생명들. 앞으로 습지를 주제로 한 비구상 작품을 계획 중이다. 먼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선배 화가이자 동료인 아들은 그림엔 등수가 없다며 계속 그리라 응원해주고 있다. 멋진 아들과의 미술관 데이트는 이 작가의 즐거움이다. 박정선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해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보건안전학과 석좌교수다. 또한 한국의사미술회 정회원이기도 하다. 다양한 단체전 참여와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최근엔 박정선 과슈 그림 전시회로 개인전도 가졌다. 디지털 프린트로 출력된 작품들로 자연 풍경들 위로 힘있게 그어진 선들의 특징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이 좋았고 미술시간이 기다려졌다 박 작가. 아버지께서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고 고궁으로 야외 스케치를 나가면 언니와 함께 따라나서 같이 그렸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반대로 취미로만 그렸는데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미술반으로도 활동했고 선생님께서도 미대를 권유하셨지만 딸에게도 그림은 취미로 하길 원하셨고 의과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2014년 60살 이후부터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미술아카데미와 아틀리에를 통해 다양한 기법들을 익혔다. 과슈 전문 아틀리에가 문을 닫고 나서는 아이패드를 이용한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이렇듯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박 작가의 소망이다. 끝으로 두 사람의 연결고리이자 이번 전시를 준비한 김정란 작가. 이화여대 의과대 졸업 후 동국대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하다 정년을 마치고 명예교수 신분이다. 다른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그림이 좋았다. 아버지께서 정해준 진로 계획에 따라 의과대를 진학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접을 수 없었다. 학교 앞 미술학원에서 틈틈이 미술을 즐겼고 교수로 재직 중이던 시절에도 틈틈이 그림을 익혔다. 그리고 열정은 퇴직 후 더욱 뜨겁게 발산되어 지금은 개인전 10회에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경북미술협회, 경주수채화협회에 소속되어 중견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세 작가가 전시회를 열고 있는 갤러리 란의 대표이기도 하다. 갤러리를 열고 지금껏 무료관람으로 전시장을 운영 중인 김 작가는 언제나 밝은 미소로 관람객을 맞는다. 뜨거운 삼원색 매력으로 가득 찬 세 작가의 전시는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오는 24일까지 경주 황리단길 내 갤러리 란에서 진행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1-07

연탄이 있는 겨울풍경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겨울이면 언제나 생각나는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한 구절이다.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골목길, 월동준비를 한 어느 집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제는 추억의 물건이 되었지만 부담스런 난방비에 혹은 널찍한 아궁이가 있는 시골 마을에는 아직도 연탄을 때는 곳이 있다. 목탄빛 온몸을 불살라 하얀 재가 되어 우리네 안방을 덥혀주던 연탄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난방용품이었다. 도시가스와 기름보일러가 들어서기 전까지 석탄산업이 활발한 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연탄보일러를 이용했다. 그 시절 서민들의 생활용품이었던 셈이다. 개량한옥에 살았던 어린 시절, 마당 한켠 광은 연탄 창고였다. 늦은 밤 내복에 카디건 하나 걸치고 연탄을 갈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위아래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면 간밤 아버지가 마셨던 금복주 소주병에 얻어맞거나 연탄집게나 식칼 등허리로 갈라서 떼어졌던 연탄. 불을 꺼트린 옆집 아주머니가 빌리러 오기도 하고 여의치 않을 때면 동네 슈퍼에서 연탄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번개탄을 사오기도 했다. 돈이 없는 자취방 학생들이 더러 몇 장 훔쳐가도 모른 척 해주었던 그 시절, 없이 살아도 인심만은 넉넉했었다. 골목길 전봇대 아래에는 연탄재 쓰레기가 한가득 있었고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연탄재에 위에 쌓였던 새하얀 눈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긴 겨울을 날 연탄을 광 가득 재워둘 때면 그렇게 뿌듯해할 수 없었다. 김장독에 가득 채워둔 김장김치처럼 한겨울 내내 야금야금 써도 될 정도로 넉넉하게 채워두곤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괴로운 계절이 아닐 수 없다. 매년 봉사단체에서 사랑의 연탄나눔을 하는 것도 대도시 쪽방촌이며 후미진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연탄을 소비하고 여전히 도시가스요금과 기름 가격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연탄 갈러 나갔던 어머니가 마당 김칫독에서 꺼내온 동치미의 알싸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긴 겨울 아랫목을 덥혀주던 연탄은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따뜻했던 그 시절 추억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1-02

새해를 맞아 배움의 의미를 새겨보다

그래도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어지러운 정쟁(政爭) 속에서 무안 항공기 참사까지 더하니 마음은 더 시리다. 걱정꺼리 넘쳐나는 민초들 삶에 불쑥 끼어든 나라 걱정. 밤잠 설치며 속수무책 당하는 것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이어간다. 어수선함 속에서도 수시 합격의 기쁜 소식이 들려오고, 새해와 함께 시작된 정시모집이 본격적인 대학 입시 시즌임을 알린다. 인생의 한 문턱이 되는 입시전쟁 앞에 선 수험생들은 내일을 희망하며 가슴을 졸인다. 배움에 뜻이 있다면 수능 성적 없이도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34만~37만원대의 저렴한 등록금으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만 있으면 누구라도 차별 없이 학문적 기회를 제공받는다. 2024년 11월부터 시작한 신·편입 모집은 1월 3일까지다.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라고도 불린다. 1972년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립 4년제 원격대학으로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83만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현 재학생 9만명의 분포도는 2~30대 45%, 4~50대 45%, 50대 이후가 10%이다. 16년간 동결된 저렴한 등록금만큼이나 장학제도도 잘 되어있다. 국가장학금 외에도 방송대만의 별도 장학혜택으로 70세 넘은 고령자 장학금, 24세 이하 젊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학생회 임원에게 주는 장학금 등으로 작년기준 200억을 지출하며 교육복지,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대학이다. 방송대를 알고 삶이 바뀌었다는 78세 최말자씨. 그녀가 18세였던 1964년 성폭행에 저항하다 ‘혀 절단 사건’이 일어난다. 아직 여성 인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기, 정당방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외려 중상해죄로 가해자가 되어 중형을 선고 받는다. 이후 순탄치 않은 삶을 힘겹게 이어가던 그녀가 63세 되던 해 방송대를 알게 된다.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하면서 ‘여성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성·사랑·사회’ 강의를 들으며 묻어둔 과거가 떠올라 그 한(恨)을 글로 썼더니 ‘이걸 어떻게 여태까지 참고 살았냐?’며 학우들이 그녀를 안고 통곡을 한다. 위안과 용기를 얻은 그녀는 부당한 판결에 대한 확신으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한다. 사건이 있고 60년만이다. 앞으로 있을 재심 과정에서 무죄를 입증 받아 전과자로 살았던 억울함을 풀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방송대에서 공부를 하며 그녀는 평생 한을 풀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배움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성환 방송대 총장의 교육철학은 ‘모든 이에게 기회를 주는 교육’이다. 교육 시스템은 개개인의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제공되는 배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방송대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졸업은 결코 쉽지 않다. 시공간(時空間)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 13개의 지역대학과 26개의 시·군 학습관을 두고 있으며 포항시학습관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학에서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쳐나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줘야 할 어른들은 수험생들만큼이나 가슴 졸이며 국회를 쳐다본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자주 거론되는 ‘탄핵’‘만장일치’에 대한 의미를 깊이 곱씹어보면서 배움의 의미도 함께 새겨본다. 무안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1-02

소소하고 소중한

국립경주박물관은 언제 찾아가도 볼거리가 많다. 특히 특별전시관은 이름 그대로 특별한 무언가를 마련해서 관람객에게 선물처럼 안겨준다. 2024년 12월 10일부터 오는 3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여느 전시와는 전시 방법부터 다르다. 국립경주박물관 열두 명의 큐레이터가 수장고에서 찾아낸 문화유산을 각자의 색다른 시선으로 접근했다. 자칫하면 잃어버릴 이야기를 할머니가 벽장에서 꺼내 들려주듯 전시한 프로젝트이다. 기존의 박물관 전시는 대부분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지만 이번 전시는 기획하고 준비하는 큐레이터의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 수많은 문화유산 중 하나에 시선이 머물고, 이를 연구하고 관찰하는 사이에 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큐레이터의 마음이 갔던 과정을 ‘선정 이유, 작품해설, 관람 포인트’로 구성한 글에 담았다. 관람객은 1번부터 12번까지 동선을 따라 전시품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열두 가지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으면 된다. 박물관 경력 34년의 관장부터 박물관 입사 3년 막내 학예사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수장고에서 찾아낸 문화유산을 각자의 시각으로 소개한다. 하나의 전시지만 열두 개의 전시를 관람하는 좋은 기회다.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문화유산 44건 144점을 선보인다. 대표적으로 신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동물 모양 벼루는 늘 보던 우리네 벼루와는 색깔부터 거칠한 느낌까지 달랐다. 경주 황용동 절터에서 새롭게 조사된 사자상과 짐승 얼굴 무늬 꾸미개, 고대 국제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금관총 중층 유리구슬은 아직도 그 빛이 영롱했다. 1,500년 전 신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토우 장식 항아리 사이사이 조그만 사람의 형상은 귀여웠다. 신라 귀족의 바둑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바둑돌은 깎았다기보다 냇돌이나 강돌 중에 손톱만 한 것들로 흰색과 검은색이 뚜렷한 돌을 골라 모은 듯했다. 기계로 다듬은 현재의 바둑돌보다 작고 앙증맞았다. 바둑을 둘 때마다 돌 사이로 물이 지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실물로는 접하기 어려운 금관총·천마총 직물도 영상까지 더해 짜임새를 알려준다. 가장 인상 깊은 유물은 경주박물관에서는 보기 드문 조선시대 목조관음보살상이었다. 경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조선 전기에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CT 촬영을 통해 각각의 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못으로 고정했다는 것을 밝혔다. 옷고름의 선이나 팔에 낀 장식의 선명한 색이 아주 힙하다. 머리에 쓴 관은 삼산관이라 하기에는 너무 화려해 자꾸만 눈길이 갔다. 월지에서 나온 불상의 오른손은 작지만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상석으로 알려졌던 통일신라시대의 향로석, 경주 소현리에서 새로 조사된 십이지상, 경주 지역의 나무 빗을 보며 달력 뒷면에 참빗으로 이를 잡던 이야기로 한바탕 웃었다. 영천 해선리 유적 청동기시대 석기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전시는 ‘자세히 보니, 놀랍다’, ‘처음 보니, 설레다’, ‘다르게 보니, 새롭다’ 총 3부로 구성했다. 관람객은 순서에 따라 큐레이터의 설명을 읽고, 전시 유물을 들여다보고, 전시장에 커다란 화면에서 열두 명의 큐레이터의 조곤조곤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도 좋다. 나오는 길에 후기를 남기도록 따로 마련한 벽에 가장 마음에 들어온 전시를 추천해 보자. 돌아 나오는 길에 굿즈를 모아둔 코너에 들어가 문화재 그림이 가득한 보드게임이 있어 기념품으로 샀다. 겨울바람이 매서운 날씨에 박물관 관람은 경주를 더 자세히 보는 방법이다. 소소하다고 하나 소소하지 않고 소중한 유물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1-02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동지’

지난 21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였다. 태양력을 따르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겨울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지닌다. 24절기 중 춘분·하지·추분·동지 네 절기는 다른 절기와 달리 천문학적 의미를 함께 가진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태양이 지구의 적도에서 남반구 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지는 시점을 동지점(冬至點)이라 한다. 태양이 이 동지점에 이르는 시간이 2024년은 12월 21일 18시 20분 33초였다. 해마다 다소의 차이를 보이는 이 시간에 당하는 날이 ‘동짓날’이다. 보통 동지는 12월 22일 또는 23일에 발생하지만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으로 올 2월이 하루가 추가되어 29일이었으므로 천문학적으로 태양이 동지점에 이르는 시간도 평년보다 하루 앞당겨진 21일이 된다. 애동지가 보통 윤달 든 해에 들듯이 윤년 든 해의 동지는 21일이 된다. 동지는 반드시 음력 11월에 들므로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도 한다. 초순에 들면 애동지(애冬至, 아기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한다. 올해 동지는 음력 11월 21일에 들므로 노동지다. 태양이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낮은 짧고 밤이 길어진다. 그러나 정점에 이른 동지를 기점으로 짧아지던 낮이 점차 길어지며 음(陰)의 기운이 가라앉고 양(陽)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로운 기운이 시작되는 동지를 작은설이라 부르며 서당의 시작을 동짓날부터 하기도 했다. 동지는 우리 선조들이 중히 여겨 온 절기 중 하나다. 이 날은 집집마다 새알심을 빚어 팥죽을 쑨다. 팥죽의 붉은색은 태양과 양기를 상징하며 어둠을 물리친다. 새알심은 달을, 흰 쌀은 별을 나타내어 우주의 조화를 팥죽에 담는다. 동지 팥죽은 단순 음식이 아니다. 팥은 예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태양이 동지점에 이르는 시간이 되면 팥죽을 집안 구석구석에 뿌려 액운을 쫓고 팥죽을 먹으며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었다. 음의 기운이 사그라지고 양의 기운이 스멀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농사를 준비하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삼는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놓아 나쁜 기운을 쫓는 벽사(8F9F邪)의 풍습은 선조들의 지혜와 소망이 담긴 우리 문화이다. 달라진 세상, 동짓날 팥죽이 생각나 포항시 남구 대송면 장동2리에 위치한 아담하고 소박한 장화사를 찾는다. 공양주들이 공양 간에서 분주히 팥죽을 쑤고 있다. 법당 들러 동지기도를 올리고 절을 찾은 신도들과 함께 새알심 듬뿍 든 팥죽을 나눠 먹으며 연세 지긋하신 어른께 옛날 동지 때는 어떻게 하셨냐고 물으니 “그때는 집집이 팥죽 쒀가 집안 구석구석 뿌리며 액운도 쫓고 가족들 무사태평을 빌고 그랬제. 요즘이사 누가 집에서 쑤나?” 하시더니 뜬금없이 나라 걱정을 하신다. 동지기도 올릴 때, 가족들 건강을 빌면서 모진 세월 보내고 맞이한 이 좋은 세상을 자식도 손자도 아무 탈 없이 세세토록 누리게 해 달라고도 빌었다고 하신다. 맛있는 팥죽을 드시면서도 뒤숭숭한 나라 걱정으로 우리는 살만큼 살았다는 어르신의 걱정 섞인 한숨이 맘을 짠하게 한다. 지구에서 멀어진 태양은 열기 없는 겨울 햇살을 거실 깊숙이까지 밀어 넣는다. 이제 동지가 지났으니 열기 더해가는 밝은 햇살로 가족 평안과 더불어 나라 구석구석의 어둠을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이 온 나라에 감돌기를 그 어르신과 한 마음으로 염원해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26

일상 파고드는 ‘AI’ 그 활용에 대한 고민

생성형 AI가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2년 전 출시된 챗 GPT를 보면 기술에 친숙한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대학생들까지 이젠 “챗 GPT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말한다. 대학생들은 과제와 시험, 논문 작성에서 챗 GPT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이제는 회사의 업무나 면접에서도 AI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10대 청소년들도 친구랑 다툼이 생겼을 때 그 해결 방안을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이 AI를 통해 상담한다. 또 레스토랑이나 기차표를 예매하는 등의 개인 비서로써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점점 범위를 넓혀 의료, 교육, 문화 예술 등 우리 일상에서의 활용도가 커지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인 AI. 올해 새로 출시된 GPT는 스스로 결정해 수행하면서 인간의 감정까지 파악하고 이전의 대화 내용도 기억해 개인 맞춤 조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10대 소년이 챗봇과 감정적 교류를 한 후 목숨을 끊는 일과 영국에서 AI의 부추김에 암살 공격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인간 생활의 모든 걸 장악할 거라고 여겨지기도 했던 인공지능이지만 인간과의 상호 작용에 대한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잘못된 정보에도 AI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건 지양해야 하고 앞으로 어디까지 활용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 한 대학교에서는 이 생성형 AI 활용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무조건 거부하지 않기, 정보를 선별하고 진실을 확인하는 것에 책임감 갖기, 활용 여부를 과제 제출 시 명확히 밝힌다는 등의 내용의 윤리 강령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AI의 활용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지는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배제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AI와 함께하는 일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잘 받아들이고 활용하기 위한 방향이 필요하다. 우선, AI가 사람에 대해 완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강화하고 복잡한 일을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력자로서 활용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일에 있어서 완전 자동화에 대한 기대를 벗어나 사람이 개입해서 감독을 하고 사람과 AI가 실용적인 파트너십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AI 알고리즘의 활용으로 초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면 회사는 맥락에 맞는 초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게 되고 단순한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AI 리터러시에 대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최근 2025년에 도입될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뜨거운 감자였다. 대구 경북에서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직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상황에서 아이들과의 휴대폰 전쟁을 떠올리며 반대했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처럼 아이들의 AI에 대한 역량 강화가 중요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 부모가 함께 AI에 대한 흥미와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AI는 성장과 함께 또 다른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AI 시대가 되면서 데이터 센터의 의존도가 커졌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동안 인공지능으로 인한 공정성이나 윤리성에 대한 문제보다 더 고려 되고 있다. 2025년에도 계속되는 AI. 우리는 환경과 윤리, 철학 등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생각하며 이를 활용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한 때라 여겨진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26

한국업사이클센터서 열린 ‘어울림페스티벌’

지난 11월 9일과 10일, 주말 이틀 동안 대구시 서구 국채보상로 243에 위치한 한국업사이클센터에서 ‘어울림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센터의 설립 취지에 맞춰 업사이클 제품을 직접 보고 만들어 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행사장은 업사이클센터 앞 주차장을 활용하였고, 버려지는 폐자월으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제품들을 탄생시키는 6가지 체험존이 마련되었다. 싸개단추 머리끈 만들기, 폐한복으로 보자기 그립톡 만들기, 폐조화 키링 만들기, 버려지는 생화 왁스타블렛(캔들 방향제) 만들기, 종이비누 민들기, 병뚜껑으로 소이왁스캔들 만들기를 각 부스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폐자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업사이클링에 대한 개념을 습득하고 환경문제와 환경보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환경교육의 장이 되기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가족 단위 참여자들이 많이 보였다. 모든 체험은 체험료 없이 무료로 진행되어 오가는 시민들이 망설임 없이 접근하고 부담 없이 체험 할 수 있었다. 행사는 주차장 외에도 한국업 사이클센터 건물 안에서도 진행되었다. 1층에는 업사이클 제품들을 전시, 판매하였고, 행사 기간에 맞춰 바자회도 함께 진행되어, 옷, 신발, 가방, 인형, 학용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주인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2층 전시실에는 자신에게 맞는 색깔을 찾아주는 퍼스널컬러 진단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고, 맞춤 컬러 진단 뿐만아니라 업사이클 제품을 색깔별로 전시 판매하여 참여자들에게 맞는 스타일을 제공해주었다. 이처럼 많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문자나 카카오톡, 홍보지 등으로 홍보되지 않아 행사를 미리 알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드물었고, 체험에 필요한 재료들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아 재료 소진 이후 방문한 참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체험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한국업사이클센터는 가정법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6년에 완공하였다. 센터에는 다양한 업사이클 업체들이 입주해 업사이클 제품들과 체험 프로그램을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한다. 한국업사이클센터에서는 이번 행사 외에도 시기별로 진행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 있다. 한국업사이클센터 인스타그램(kup__official)을 통해 행사 정보를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26

한강의 노벨문학상: 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며

한강 작가의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표지.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있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한 노벨상이다. 그 영예로운 상을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이 받았다. 문학 부문이며 노벨 문학상으로는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이다.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유언으로 명시한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분야에 노벨상이 주어지며 시상 순서도 유언에서 명시한 순서를 따른다.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에 시상한다. 노벨 시상식이 지난 10일 오후 4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무대 한가운데 알프레드 노벨의 동상이 자리하고 노벨상 수상자 11명은 객석 맨 앞줄에 스웨덴 왕족과 함께 일렬로 앉았다. 이들이 앉은 빨간 의자는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특별대우로 스웨덴 왕가에서 마련한 ‘왕족용 발코니석 의자’이다. 수상자 소개 연설은 각 분야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가 하며 문학 부문은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스웨덴어로 한강을 소개했다. 그는 “한강의 글에서는 흰과 빨강, 두 색(色)이 만납니다.”로 연설을 시작하며 ‘말보다 강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 색에 비유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럽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며 두 색은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소개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스톡홀름 시청사(Stadhus)로 옮겨진 연회장에서 수상자의 ‘특별감사연설’이 이어졌다. 그녀의 영어 연설은 특유의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실려 1300여명의 시선을 집중 시킨다. 폭우가 쏟아져 내리던 여덟 살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고 시작한 그녀는, 마치 문학이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며 “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라는 말로 감사연설을 마무리한다. 이는 노벨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실제 영어 원고 마무리 글이었던 ‘저는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 함께 서서요.’와 다르다. 작가의 신중한 애드리브로 마무리 된 연설은 현재 한국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었을 거라는 기사를 읽는다. 2016년 ‘채식주의자’가 영국 부커상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때 서점으로 달려간다. 단숨에 읽으리라는 마음과 달리 읽는 내내 글이 주는 충격으로 책을 몇 번이고 덮으며 심호흡을 한다. 경기도의 어느 학교에서 유해 도서로 분류해 폐기했다는 기사를 보며 충분히 공감도 한다. 노벨문학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재조명 되고 있지만 청소년이 읽고 받아들이기에 그녀의 작품세계는 노벨 시상식에서 소개했듯이 고통, 피, 칼로 깊게 벤 상처로,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으로 삶을 대변하고 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로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 소식을 들은 그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기쁜 마음으로 고향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열려고 했을 때,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지금 이 상황에 축하 잔치를 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그녀는 만류했다. 노벨문학상은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한강의 감사연설 마지막 구절을 되뇌어본다.“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 감사합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9

‘깨짐의 미학, 그 과거로 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봤을 땐 세밀한 그림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붓 터치 안쪽으로 균열이 보였다. 극사실주의 작품 속엔 잘게 조각난 수만개의 달걀 껍질들이 형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장을 채운 그림들은 대부분 큰 호수의 작품들이었다. 으스러지기 쉬운 달걀 껍질들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붙여넣고 그 위에 물감을 올리는 지난한 시간이 저절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시간이 균열로 변한 문화재들과 재료의 궁합이 더 없이 어울린다. 전시장 한켠에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책상과 재료를 마련해 두었다.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달에서 선보였던 박성표 작가의 개인전 ‘깨짐의 미학, 그 과거로 부터….’이야기다. 보통 깨어짐은 파괴, 상실을 상징한다. 하지만 작가는 달리 보았다. 깨어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며 나아갈 수 있다고. 그는 모든 물질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며 과거의 깨짐(해체)과 사라짐(소멸)이 현재의 시간 속에 응축된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선택한 재료가 달걀 껍질이었다. 시골집 마당에서 키우던 닭들은 주기적으로 알을 생산해냈다. 가끔 수거시간을 잊게 되면 어미 품안에서 부화된 병아리들이 새로 태어났다. 평소와 다름없던 하루였지만 남겨진 껍질들이 달리 보이던 날이었다. 새로운 오브제의 발견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캔버스에 붙여봤다. 깨어진 껍질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응축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을 통해 투박하지만 첫 작품이 완성되었다. 가슴 속에서 새로운 개체가 깨어남을 느꼈다. 박 작가 역시 여느 화가들처럼 그림이 좋아 선택한 길이지만 현실에 견주어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온몸이 녹아내릴 듯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살면서 어디 좋은 날만 있던가. 바깥 변화에 들썩이지 않고 예민하고 작은 조각들을 습관처럼 붙여나갔다. 그리고 유화물감을 이용한 극사실적 표현으로 조각들을 하나의 생명체로 응축시켜 나갔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들을 모아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러한 방식은 높이 오르기보다 지치지 않고 멀리, 넓게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그의 작업관에 더 없이 어울린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깨어짐과 응축 시리즈를 좀 더 넓은 주제로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특히 과학분야를 미술사적 영역으로 가져와서 그 시각적 선명함을 완성해 볼 생각이다.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지 그 너머에 대한 고찰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고 밝힌 박성표 작가. 그의 넓은 세상을 기대해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9

작은 돌 하나에 거대한 산이 들어있다

주흘산은 문경의 길목을 지키는 산이다. 그 우뚝한 모습에는 다른 산들과는 다른 위엄이 느껴진다. 문경 사람이라면 주흘산의 당당한 기운에 가슴이 설레이며 자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작은 돌 하나와 높은 주흘산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노래한 시를 읽어본다. “금 간 돌 하나 영강 모래톱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 / 금 간 몸으로는 더 흐르지 못해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린 것일까 / 꽁꽁 언 몸으로 죽은 듯 있다 / 등덜미에 새겨진 수없는 잔금들이며 / 모서리가 다 닳아버린 둥그런 몸 / 부서지고 쪼개지며 부대껴온 그의 내력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 누군가 속삭인다 / 영강의 어머니는 조령천이요 / 조령천의 어머니는 주흘산이요 / 주흘산의 뼈는 암벽이요 / 암벽은 이따금 무너져 내린다고 / 아아, 이렇게 조용히 금이 간 채 낯선 모래톱에 엎드린 / 저 주흘산의 뼈를 어찌해야 하나” (황봉학 시 ‘돌을 읽다’) 문경을 가로지르는 영강변 모래톱의 돌 하나, 볼품없고 흔하디 흔한 돌이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돌이다. 하지만 시인은 걸음을 멈추고 돌을 들여다본다. 그때 시인과 사물과의 교감이 시작된다. 돌의 등에 잔금으로 새겨진 수많은 문장들. 부서지고 쪼개지고 부딪치며 돌이 새겨온 문장을 읽으며 돌이 흘러왔을 시간을 되짚어간다. 영강의 어머니인 조령천을 읽고 조령천의 어머니인 주흘산을 읽고 주흘산의 뼈대인 암벽까지 다다르면 우뚝하게 솟아 문경을 지키는 주흘산의 기운이 그대로 다 읽혀진다. 시인은 사물의 전생을 들여다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피리의 전생인 대나무를, 도자기의 전생인 흙을, 숯의 전생인 나무를 볼 줄 알아야 시가 나온다고 한다. 몸이 잘리고 구멍이 뚫려야 대나무가 피리가 되고, 수천 도의 뜨거운 불길을 견디어야 흙이 도자기가 되고, 제 몸을 아낌없이 불살라야만 나무가 숯이 됨을 그들의 전생을 보아야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강가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라도 멈추고 들여다보아야 그 안에 들어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찬찬히 받아적어야 시가 되는 것이다. 내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에는 그만의 역사와 우주가 다 들어있다. 작은 돌 하나에서 거대한 산을 읽어내는 자세를 배우자.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빠른 시간의 흐름이 연말이면 더욱 실감난다. 무엇으로 한 해를 채워왔나 반성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자신을 탓하지는 말자. 작은 돌멩이가 곧 거대한 산의 일부이듯이 소시민인 우리 또한 세계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자신을 아끼며 남은 2024년의 날들을 사랑으로 채우자.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9

한글 대중화의 개척자 ‘외솔’이 완성한 한글과 한옥도서관

한옥으로 지은 도서관이 있다고 해서 길을 나섰다. 감포의 한옥 등대도 특별했는데 도서관이 기와를 얹었다니 궁금했다. 이름도 ‘외솔’이라니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싶었다. 동행한 역사 교사인 남편이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의 호가 외솔이라면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입구에 우뚝 서서 두루마기를 걸치고 책을 펼쳐 든 동상이 학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귀가 외솔기념관 문 앞에 나붙었다. 세종대왕님을 만났을 때, 한글과 한옥을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실 거다. ‘한글’이란 말은 1913년부터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옥도서관을 보기에 앞서 한글이란 말을 만드신 어르신 외솔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은 언어학자 주시경의 수제자였다. 주시경 선생은 한글 표준화를 추진하였고, 세로쓰기였던 한글을 가로쓰기로 바꿨다.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개척자이자 선각자다. “나무가 자라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요, 그 나무를 가꾸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말을 다듬어서 바르게 말하고 적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뜻을 이어 최현배 선생은 풀어쓰던 한글을 모아쓰게 했다. 외솔은 조선어사전 편찬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상무위원,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 위원, 표준말 사정 위원을 거쳐 다른 학자들과 더불어 이론적 뒷받침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광복 후에는 한글학회 이사장으로서 미국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아 큰사전 6권을 완간했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앞두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갖은 고문을 버티며 함흥형무소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옥중에서도 한글 풀어쓰기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켜낸 우리 말글 보급에도 힘썼던 선생은 한글 기계화에도 앞장섰다. 한글 기계화를 위해 우리말에 쓰이는 글자와 낱말의 사용 빈도를 조사하여 타자기 자판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통계자료를 만들었다. 기념관을 돌며 해설사의 설명까지 곁들였더니 외솔 선생의 업적이 한눈에 보였다. 핸드폰에 한글을 편하게 적을 수 있는 것도 선생과 학자들이 애쓴 덕분이라니 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기념관을 나와 계단을 오르니 울산큰애기 동상 뒤에 선생의 생가가 보였다. 최현배 선생이 17세가 될 무렵까지 사신 곳이라고 한다. 외솔 선생 탄생 122주년을 맞아 2016년에 울산광역시는 최초의 한옥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선생이 보신다면 한옥이라 더 반가워할 것이다. 날씨가 쌀쌀했는데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방바닥이 따끈따끈하니 참 좋았다. 들어가자 여느 도서관과 다르게 좌식 나무 책상이 놓였고 바닥에 앉아 책을 보도록 했다. 조선시대 교육의 근원인 서원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전통 한옥도서관이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책 읽어주는 로봇 ‘루카’였다. 귀여운 로봇이 영유아 대상으로 전문 성우의 목소리로 실감 나는 효과음과 함께 책을 읽어준다고 하니 너무 멋지다. 감탄하며 책장을 살피는데, 사서가 한옥의 백미인 문살이 아름다운 미닫이문을 열었다. 따뜻한 실내와 달리 찬바람이 훅 들어오는 외솔채였다. 온돌이 아닌 마룻바닥이라 서늘했다. 하지만 양쪽으로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경치가 그저 그만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책을 들고 외솔채에 앉아 한나절 풍월을 읊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였다. 도서관에서 옛 선비들이 누리던 호사를 즐길 수 있는 울산 중구 사람들이 부러웠다. 도서관을 나오는 데, 꼬마 둘이 돌계단을 오른다. 공부하러 오느냐고 물으니 “아니요, 책 읽으러 왔어요.” 책이 공부가 아닌 놀거리라니, 외솔 선생이 흡족하게 웃으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7

봉화 청량사로 겨울 산행 어때요?

어느 계절이든 집을 나서면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 더딘 걸음으로 유유자적을 즐기기에 좋은 청량사 가는 길, 12월 초겨울 풍경으로 들어가 본다. 얼마 전만 해도 단풍과 행락객들로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했던 풍경은 사라지고 낙엽들이 애잔하게 뒹굴고 산사는 고즈넉함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뭇잎에 가려졌던 웅장한 청량산의 바위봉우리는 더욱 선명하고 웅장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겨울이 되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 청량산 열두 봉우리는 서로 경쟁하듯 기이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겨울 한낮의 산길은 정적만이 깊은데 희끗희끗한 기암괴석의 절묘하면서 웅장한 풍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광이다. 입석에서 청량사 선학정으로 내려오는 최단코스(2.3㎞)로 1시간 반 정도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어 인기 좋은 길이다. 그윽한 숲속 외진 길은 쓸쓸한 연말 12월의 낭만이 있어 좋고, 굽이돌아 오른 고갯마루는 먼 산 풍광의 아득함이 있어서 좋다. 입석에서 오르면 수십 년 된 굴참나무는 무성했던 잎을 남김없이 떨군 채 홀가분한 몸매를 드러내고 푸른빛을 잃지 않은 노송은 모진 세월 견디면서 휘어지고 더러는 뒤틀려 안타깝게 서 있다. 소나무마다 껍질을 벗기고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이는 일제 말기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 80년이 지난 지금도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청량사를 가기 전에 우측으로 오르면 600m 금탑봉 아래 응진전이 있고, 금탑봉 위쪽에 김생(신라 명필)이 10년 동안 서예를 연마한 김생굴과 김생폭포가 있다. 비교적 순탄한 산길이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기에 좋은 산길로 산천경개의 오묘한 조화를 음미하며 걷다 보면 청량사가 눈에 들어온다. 청량사 경내에 들어가기 전 우측으로 산꾼의 집과 청량정사가 있는데, 인근에 산꾼의 집이 있다. 김성기 시인이 오가는 길손들에게 무료 약차를 나누고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이다. 청량산 기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옛 이름은 연대사로 27개의 암자가 있었다. 청량사에는 공민왕의 친필로 쓴 유리보전 현판과 종이로 만든 지불이 있고, 약사여래좌상과 괘불이 남아 있다. 절집 아래쪽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안심당이라는 찻집이 있다. 청량산의 풍경과 일체가 되어 잠시 쉬어 가기 좋은 전통찻집으로 찻잔에 풍경소리를 녹이는 낭만도 가져볼 수 있다. 청량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계곡을 끼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목들과 우람한 바윗돌이 뒤엉켜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루할 틈 없이 내려오게 된다. 연말이 되면 일상의 고단함과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호젓한 바깥세상이 그리워진다. 고요하고 청량한 분위기, 청아한 풍경소리와 함께 연말연시 마음의 평온함을 청량사 가는 길에서 가져 보시기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7

급격한 기후변화 시대 예술 창작 활동에서 고민해야 할 것들은…

지금 우리는 급격한 기후 변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고 모든 분야에 연결되어 있으며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의 창작과 전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고 미술관에서는 어떤 고민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 까닭에 토요일 오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내일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시 연계프로그램을 찾았다. 기후변화, 예술 실천, 미래기획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 차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전시와 연계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난 토요일은 날씨와 기후변화의 이해와 대응에 이어 ‘기후변화 시대의 예술, 우리의 안녕을 미술관에서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학예연구사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기후변화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주제와 내용에 영향을 끼친다. 2003년에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전시된 설치미술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당시 전시에서는 수백 개의 전구로 거대한 인공 태양을 만들었고 무려 20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성과를 냈다. 작가는 유사 자연을 통해 실제 자연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보고자 했다. 또 실제 빙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테이트모던 미술관 광장과 유럽의 유명 관광지에서 자신의 설치 작품도 보였다. 당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놀라운 표정을 가졌는데 실제 빙하로 경각심과 기후변화를 일깨우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이런 설치 작품을 보며 느끼는 건 인공 태양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수백 개의 전구로 오히려 많은 탄소를 배출시켰으며 실제 빙하를 옮겨 왔어야만 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욕망과 테이트모던의 욕망도 함께 작용했을 거라 여겨지지만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어떤 것들을 환기시키고 보여주어야 하는지와 탄소배출이 정당한가라는 문제는 물음표가 생기게 한다. 이 작가의 유사 자연 작품은 계속 이어질 텐데 작가의 창작과 전시에 있어서도 기후변화를 고민하며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지를 작가들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기후변화는 예술의 활동과 생태계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공장이 많은 지역인 울산 태화강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동물과 식물, 인간이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작가들은 생태를 통해 그들만의 시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예술의 형식과 매체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버려지거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의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기후변화시대에 더 활용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재활용과 자연 소재의 활용, 환경 교육 등이 이런 변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미술관을 온라인으로 대체해야 하는 문제는 실제와 이미지는 다른 것이어서 온라인으로 대체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대중교통을 활용할 수 있는 미술관의 접근성도 기후변화 시대에 고려해 봐야 할 문제이다. 강연을 들은 한 관람객은 “기후변화가 중요하고 예술에도 분명히 영향을 끼치는 게 당연한 거지만 작가들에게 너무 환경에만 치우치게 하는 건 아닌가 한다”라는 질문에 학예연구사는 “기후변화로 인해 작가들은 생태와 환경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항상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친환경적으로 항상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시를 하는 미술관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건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7

흙을 두드리며 ‘격양가(擊壤歌)’ 부르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해 뜨면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네/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서 먹으니/ 임금이 나를 위해 해 주는 것이 무엇 있겠는가.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宰力於我何有裁)” 태평성대라 일컬어지는 요(堯)임금 때의 격양가이다. 노랫말 그대로,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물마시고 싶으면 우물 파서 마시고 배고프면 밭 갈아서 배 채우니 내가 살아가는 데 임금의 힘이 무어 필요하겠는가? 라는 말이다. 당(唐)나라를 다스리던 요임금이 미복을 한 채 민심을 살피러 나섰다가 백발노인이 흙을 치며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며 뿌듯해한다. 백성들이 임금의 존재를 잊은 채 걱정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덕치주의였던 그의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리하지 못한 자식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백성들에게서 찾은 효성 짙은 순(舜)에게 천하를 맡긴다. 이를 선양(禪讓)이라고 한다. 우(虞)나라를 다스리며 요임금에 이어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순임금도, 나라의 근심거리였던 황하의 치수를 잘 다스린 우(禹)임금에게 제위를 선양(禪讓)한다. 우임금도 하(夏)나라를 잘 다스린다. 하(夏)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걸(桀)왕과 은(殷)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주(紂)왕은 사치와 포악이 극에 달해 탕(湯)왕과 무(武)왕이 그들로부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이들을 처단하고 은(殷)과 주(周)나라를 세워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태평성세의 기본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안정이다. 공자와 맹자는, 요는 순에게 순은 우에게 임금 자리를 선양하고 탕과 무는 포악무도했던 걸과 주를 방벌(放伐)했다며 백성의 안위를 우선으로 태평성세를 추구했던 그들을 존경하며 칭송했다. 하지만 순자와 한비자는 순은 요를, 우는 순을 선양이 아닌 핍박으로 정권을 탈취했고, 탕과 무는 신하된 자로서 자신들의 왕이었던 걸과 주를 폭력으로 시해했다고 기록을 남긴다. 진실은 믿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된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모험가였다. 그는 유럽인들에게 영웅적인 모험가로서 추앙을 받고 미국은 콜럼버스 항해 관련 신화발굴과 재창조로 아메리카에 터 잡은 신생 독립국가의 건국 서사시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신대륙으로 발견 당한 원주민에게 있어서 콜럼버스는, 자연과 합일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들 삶의 터전에 무단으로 침입한 침략자였고 학살자였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기록된다. 많은 지식인이 요순시대를 꿈꾸며 사회주의를 쫓았지만 이권다툼의 인간 본능이 존재하는 한 실현 불가능한 이념이라는 걸 세월 보내며 알게 된다. 지금 세상은, 뉴스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든 켜기만 하면 온통 뒤숭숭한 정치 얘기들로 갑론을박이더니 종내는 불안과 위기감으로 정치에 관심 없던 소시민도 가정 사 제쳐두고 나라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다. 진정 나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어느 편에 서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뛰어가 피켓이라도 들고 힘을 실어야겠지만 당장 일상을 버리기가 또 쉽지 않다. 힘든 세월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 떠 놓고 간절히 빌었듯이 마음 깊은 곳에 정화수 떠 놓고 나라평안하기를 간곡히 빌고 또 빌어 본다. 흙을 두드리며 격양가 부르는 세상을 손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담아서.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2

캘리그라피 작가 권문경을 만나다

어느 날은 고고한 학이 되어 춤을 추다 어느 날은 더벅머리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나타나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어댄다. 그러다 최근엔 신라 공주님으로 신분 상승한 그녀. 무대 위 연기자뿐만 아니라 캘리그라피 분야에서도 빛을 내고 있는 권문경 작가를 제16회 고운서예전국휘호대전 시상식에서 만났다. 언제나처럼 화사한 미소다. 작년에 이어 고운서예전국휘호대전에서만 캘리그라피 부분 두 번째 특선 입상이다. 대학에서 국문학과를 전공한 그녀는 동아리에서 풍물을 배웠다. 그리고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져 많은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현재 경주문화유산활용 연구원 활용팀장으로 문화유산을 활용해 우리의 문화가치를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다. 지난 계절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남산이며 교촌이며 문화유산이 있는 곳곳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 덕에 해 좋고 공기 ‘따신’ 계절에 그녀를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찬 기운이 돌고 더는 공연이 어려운 겨울이 되어야 무대가 아닌 땅에서 권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공연을 전문으로 하던 권 작가가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붓펜으로 적고 또 적고 마음에 들 때까지 적다 보면 그 글귀는 어느덧 마음의 일부가 되었다. 적는다는 행위를 통해 좋은 말들이 쌓이고 쌓여갔다.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읽기가 더 좋아졌다. 처음에는 붓펜으로 작은 크기의 글쓰기를 반복하다 좀 더 깊은 작업을 하기 위해 붓과 먹을 배웠다. 화선지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하늘과 바다, 별 너머 세계까지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무한한 무대다. 그 무대를 붓으로 채워나간다. 마음속에 갇혀 있던 감정들은 붓을 타고 흘러나와 검정색 활자에 의미를 더하고 색을 입혔다. 반복해서 글을 쓰는 행위는 수련과도 닮아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마음에 드는 형태를 만나기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참을 쓰고 그리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내가 보였다. 그 과정 속에서 마음도 단단해졌다. 50대 나를 알기 가장 좋은 나이에 만난 멋진 동반자, 캘리그라피는 기쁨과 슬픔, 외로움 모두를 품어주었다. 또한 인생 후반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에도 적당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우선 지역사회에서 캘리그라퍼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 지금처럼 공모전을 통해 실력을 다져가며 빠른 시일 내 개인전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생활 속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활동도 함께 이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2

마음 가난한 세상에 시의 씨앗을 뿌려라

며칠 전 지인이 무심코 하는 말에 마음이 상했다. 자신이 주식으로 상당 금액의 손실을 본 것을 얘기하면서 나는 손에 잡아보지도 못했을 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닌데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아팠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라 이루어놓은 것 없이 세월만 가나 싶어 허허로운 마음에 찬바람이 쌩하니 지나갔다. 결혼하고 전업주부로 아이 셋을 키우고 살았으니 통장이 여유로울 리가 없었다. 공무원 남편의 월급을 아끼고 아끼면서 살아온 날들. 이제 오십 중반의 아줌마인 내게는 시인이라는 가난한 이름 하나만 남았다. 전에 어느 유명 가수에게 당신에게 노래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었다. 제법 알려지고 매니아층도 있는 그 가수는 자신에게 노래는 ‘젠장’이라고 했었다. 만족할 만큼 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노래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 되는 시를 끙끙대며 붙들고 있을 때면 그 가수의 ‘젠장’이라는 말이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쓰고 싶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 쓰는 일과 참 일맥상통 하는구나 싶어서이다.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은 것이고 / 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 그래서 나는 절로 웃음이 난다네 / 시시시(時視詩) 가득한 통장에 / 마이너스는 없다네 / 詩앗 뿌렸으니 세상에 보시하는 것이고 / 시 한섬 거두었으니 추수한 것 아닌가 / 그래서 나는 절로 웃음이 난다네 / 시시시 가득 찬 통장에 / 마이너스는 없다네 /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 시라는 씨앗 하나 남겨주었다네 / 그래서 시 통장에 / 시인이란 없다네” - 천양희 ‘시(詩) 통장’ 하지만 천양희 시인의 시를 읽고 깨닫는다. 가난한 나에게 통장이 있었구나. 시 통장이 있었구나. 미처 그걸 몰랐었다.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사유의 은행에 통장을 개설했었구나. 어설픈 시 한 편 쓰는 걸로 우주에 진 그 많은 빚도 갚고 든든히 의지할 자식처럼 저축까지 하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마치 까맣게 모르고 있던 상속 재산이라도 발견한 듯 마음이 들뜬다. 시 뿌리고 시 거두고 살며 은행에는 마이너스 없는 시 통장도 있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시시시(時視詩)’의 잔고가 가득 찬 종신토록 사용할 통장이 있으니 이제 쓸데없는 걱정은 거두고 살아야겠다. 세상이 내게 시 아닌 것 다 거두고 시의 씨앗만 남겼대도 내가 뿌린 씨앗이 어느 가슴에선가 발아하리라 생각하면 다른 즐거움 버리고 시에 발목 잡혀 사는 것도 그리 억울하지만은 않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2

호미곶을 지키는 국립등대박물관

국립등대박물관으로 심부름갔다. 지인의 부탁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야 했다. 언젠가 공사 중이란 말을 소문으로 듣고 완성되면 와 봐야지 하다 오늘에야 당도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우리가 첫 방문객이었다. 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자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푸른 동해가 맞은편 창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달려가 창가에 놓아둔 벤치에 앉아 나또한 풍경이 되었다. 박물관이라기엔 너무 카페 같은 뷰였다. 한참을 ‘바다멍’을 때렸다. 그러다 위를 올려다보니 모빌처럼 메달린 네모난 상자에 또 다른 바다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멋진 디자인이다. 하얀 벽에 하얀 등대 모형을 만들어 붙였다. 오래 일하다 등대 본연의 임무는 끝내고 박물관이 된 호미곶 등대의 모습이다. 1907년 호미곶 앞바다에서 일본 배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해 1908년 세운 높이 26.4m의 팔각형 서구 양식의 등대다. 밑에서 중간까지 이어지는 곡선과 세 개의 창문의 어울림, 그리고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얗고 늘씬하게 솟은 몸체가 눈부신 자태를 뽐낸다 바로 옆에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등대의 역사가 펼쳐진다. 사라져가는 등대와 등대지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만주와 아시아 대륙을 향해 포효하며 도약하는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난주에는 우리나라 모든 곳에 폭설이 내리던 날, 호랑이 엉덩이 부분만 뜨듯하게 데워져 맑은 날씨여서 엉뜨 켰냐고 다들 SNS에 우스갯소리를 했다. 호랑이 꼬리 끝의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본디 대보면이었으나, 2010년 1월부터 호미곶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호미곶에 자리잡은,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이다. 세계 여러 곳의 등대 모형이 재밌어서 자세히 보니, 유리로 만든 등대도 있었다. 이름이 칠리치등대였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세계 여러 곳의 등대도 소개한 것을 보니 스페인 여행에서 본 것이 있어서 반가웠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처음 나타난 등대는 삼국사기에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이 설치한 망산도의 횃불이었다. 여러 체험 가능한 것 중에 모스부호도 눌러보고, 오징어 같은 바다 생물 색칠을 해서 영상으로 띄워볼 수도 있었다. 방문객들이 편하도록 수유실, 등대에 관한 책을 모아둔 곳, 무거운 짐 보관해 두고 편히 둘러보도록 보관함도 따로 마련해두었다. 영유아 바다 놀이터는 미리 예약하고 와서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그외에도 홈페이지에 미리 알아보고 방문하면 더 자세히 즐길 수 있다. 2층엔 5가지 테마로 전시장을 꾸몄다. 빛마을 소리마을 전파마을 에너지마을 항해마을. 직접 체험해 보며 즐기다 무인카페에서 차 한잔 사서 공짜로 보여주는 호미곶 바다풍경 보며 쉬어도 좋다. 어른이 쉴 동안 아이들은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도록 한 것은 센스 만점이다. 밖으로 나와 체험관으로 향했다. 책 모양의 아기자기한 등대 이야기, 직접 노를 저어보고, 에너지 자원에 대한 체험도 가능하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만져보고 느끼면 등대에 관한 지식이 몸에 쌓인다. 등대는 안전한 바닷길을 인도하며, 해상 교통을 책임지고 희망의 빛으로 채우며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해 왔다. 국립등대박물관은 이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등대를 포함한 항로표지 시설들이 산업기술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로 점차 사라져 감에 따라 항로표지 시설과 장비들을 영구히 보존 연구하기 위한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으로 1985년 2월에 개관했으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복합문화공간 운영으로 항로표지의 중요성과 역할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등대박물관은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 월요일과 명절은 휴관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0

소유보다는 경험, 일상으로 스며드는 구독 시대

바야흐로 구독경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구독경제는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소유보다는 경험에 가치를 두고 정기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에 필요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고 구독하는 방식인 구독경제가 지금의 다양해진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구독이라 하면 신문, 잡지나 유튜브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수없이 다양해진 구독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고 멜론으로 음악을 듣고 쿠팡 로켓와우로 쇼핑을 즐긴다. 여기에 식료품을 비롯하여 화장품, 여행과 스포츠, 건강, 주거 구독 서비스, 자동차 구독 서비스도 등장하고 얼마 전부터는 편의점에서도 고물가 속 구독 서비스에 품목도 늘리고 횟수도 늘렸다. 대기업들도 가전 구독 경쟁에 나서는 등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놀라운 성장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여겨지고 성인의 약 2/3가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 2025년에는 시장 규모가 1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독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저성장의 그늘 아래서 편리함과 개인맞춤형 서비스, 합리적인 비용, 다양함과 새로움, 소유의 부담 감소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비디오나 음원 스트리밍, 쇼핑 플랫폼 구독 서비스, 음식 및 생활 구독 서비스는 인기 있는 서비스이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경우는 최신 컨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고 비디오 스트리밍에는 소비자의 이력을 바탕으로 맞춤형 추천으로 즐길 수 있다. 비용면에서도 한꺼번에 제품을 구입하게 되는 소유 비용을 줄이게 되고 경험을 통해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구독 서비스의 매력 중 하나는 언제든지 구독을 취소할 수 있거나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관리나 저장 폐기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마음에 드는 컨텐츠가 늘어나면 구독을 계속할 수도 있고 필요 없어진다면 간편하게 취소도 가능하다. 또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구독 서비스의 경우 부모님이 좋아하는 영화나 자녀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구에 사는 A(34)씨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 가전을 마련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1000만원이 훌쩍 넘는 가전 구매가 부담이었는데 구독하니 큰돈을 들이지 않고 가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몇 년 뒤 교체하기도 쉽고 정기적으로 전문가가 제품을 관리해 준다는 점도 매력적이다”고 구독 서비스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제 불필요한 소유보다는 경험과 이용에 가치를 두고 구매가 아닌 원하는 상품을 필요한 만큼만 구독해 이용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며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구독 서비스의 무분별한 이용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구독 서비스, 이를 잘 이용하기 위한 불필요한 비용 지출에 대한 관리 등의 지혜도 필요하다. 먼저 정기적으로 나의 구독 목록을 점검하고 실제 이용 빈도를 체크하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는 과감히 해지한다. 여러 서비스의 중복되는 기능은 없는지 살펴보고 가장 효율적인 것만 남겨둔다. 무료 체험 기간을 잘 활용하면서 종료일을 반드시 메모를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유 플랜도 고려를 한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0

안동댐, 수몰 지역의 풍경과 사람

안동사진동호회의 제44회 사진전 ‘안동댐·50년 후의 풍경과 사람’이 열렸다. 안동시 태사길에 있는 포토갤러리 유안사랑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는 안동사진동호회가 올 한 해 수몰지역의 풍경과 사람을 기록한 작품 57점을 선보였다. 1976년 건설된 안동댐으로 고향을 잃은 수몰민은 54개 마을 3천여 가구 2만여 명에 달한다. 고향을 떠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고향 언저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아픈 서사와는 다르게 꽃은 피고 벼는 익고 풍경은 평화롭다. 그 사계절 풍경과 사람의 모습을 안동사진동호회 회원들의 카메라에 담아냈다. 예안면 기사리·도목리·부포리·주진리, 와룡면 가류리·절강리 등 변화된 수몰마을을 감상할 수 있다. 안동사진동호회 조인순 회장은 “안동댐은 굴곡 많은 수몰민의 삶이 깃들어 있는 상징적 장소”라며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마을과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1981년 창립한 안동사진동호회는 매년 한 가지 주제로 매월 출사를 하고 매년 전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향토문화의 변화를 공개하고 있다. 특히 ‘오늘의 농촌’, ‘댐에 남은 이야기’, ‘안동의 옛집’, ‘도청 이전지’와 지난해 ‘신들의 거처 서낭당’까지 지역의 사라져가는 문화를 밀도 있게 담아내 호평을 받고 있다. 또 1995년 안동시·군 통합원년의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집 ‘안동 1995’를 발간하고 2003년에는 안동의 대표적 전통마을인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의 사계절을 촬영하여 엮어낸 다큐사진집 ‘가일 2003’을 발간해 역사 자료로 남기기도 했다. “비 그치고 한달음박 뛰어가면/ 조그만 물도랑을 건너뛰어/ 낮은 초가의 우리집/ 마당 끝에는 닥나무 몇 포기가 자랐지/ 어머닌 그 시대의 따순 저녁을 지으시고/ 조밥덩어리도 우리들은/ 배부르게 살았다. 월곡면 미질동/ 눈감아도 손금 보듯 환한 골목길” 수몰로 이름을 잃은 마을 월곡면 미질 출신의 김윤한 시인의 시 ‘월곡 회상’ 중 일부이다. 회원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장 한 켠에 걸려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수몰의 아픔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15일까지 계속된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10

‘김장하기’는 소중한 우리문화

지난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었다. 기념일로 정해진 ‘11월 22일’이 가진 의미는 무, 배추, 젓갈, 마늘 등 하나하나(11)의 재료가 모여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김치가 되어 항산화, 항암, 비만, 노화방지, 면역 증강 등 22가지의 효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법정기념일에 음식이 주인공인 것은 김치가 유일하다.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20년 2월 김치산업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제정되었다. 김치는 문화다. ‘품앗이’로 겨울을 준비하는 김장의 최적기는 최저기온이 섭씨 0℃ 이하인 날이 지속되거나 하루 평균 기온이 4℃ 이하를 유지할 때이다. 대체로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까지가 된다. 10℃ 이하의 기온에서 자란 배추가 제일 맛있다. 소금으로 절인 배추에 각종 젓갈과 고추, 마늘 등 갖가지 양념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김치 담그기’의 행위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치의 날’이 담고 있는 의미와 서로 도움을 주는 김장의 품앗이 정은 세계인의 마음도 움직인다. 미국, 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의 지역에서 한인회를 중심으로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선포 했다. 이들이 다른 나라의 특정 음식문화를 자신들의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이유가 뭘까?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한 김장 품앗이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다문화 공동체의 융화는 주요한 과제로 세계 속 김치의 인기와 더불어 ‘품앗이’라는 한국 고유의 문화가 빛을 발한 것이다. 유네스코에서도 공동체 사회에서 품앗이로 김치를 담그는 행위가 인류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고 판단해 대한민국의 ‘김장문화’를 2013년 12월 5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김장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고려시대에 채소가공품을 저장하는 요물고(料物庫)가 있었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순무 담근 장아찌는 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김치 겨울 내내 반찬 되네.’라는 기록이 문헌에 보인다. 그리고 조선 후기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가정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에 고춧가루와 각종 젓갈류가 동시에 김치재료로 쓰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웃끼리 서로 일을 돕던 품앗이가 있던 조선시대에는 이집 저집 다니며 함께 김장을 했다. 조선 왕실에서도 왕세자빈이 동원될 정도로 정성을 쏟았던 김장은 1970년대까지도 마을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연중 큰 행사였다. 그러나 김장도 시류(時流)를 탄다. 여전히 식탁에 김치가 오르지만 요즘은 직접 담근 김치보다 다양한 맛으로 다가오는 시판 김치를 더 많이 선호한다. 김장을 하더라도 절임배추를 사거나 양념까지 준비된 김장 키트를 이용하여 지인들과 모여 즐거운 놀이처럼 김장을 하기도 한다. 올해는 ‘김장체험여행’이 인기다. 배추를 자르고 절이고 건지고 물 빼고, 갖은 재료가 들어간 양념을 만드는 번거롭고 힘든 과정은 체험장에 맡기고 체험비와 김치통만 준비해 가서 다른 체험자들과 함께 즐기며 할당된 절인배추에 양념만 버무려 담아온다. 이런저런 변화에도 여전히 가족이 모이거나 이웃과 품앗이로 김장을 하는 이들도 아직은 적지 않다. 어떤 식으로 변모해 가든 ‘함께하는 김장문화’는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