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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해설이 있는 클래식 최정호의 힐링음악과 함께하다

오래전, 포항 효자아트홀에서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클래식’ 공연을 보며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렵게만 느껴져 클래식이란 장르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도 금난새 지휘자가 독특한 화법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곡을 해설 한 후 시작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포항에서도 고전음악 클래식을 곡 해설과 더불어 지휘자와 연주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오케스트라, 피아노, 첼로 등의 연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포항미르치과 신관 10층 미르아트센터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90분 동안 최정호의 금요음악감상회가 열린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알고 싶어 하는 포항시민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지난 금요일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 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로망스 2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플룻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2악장 안단티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 라르고’ ‘라단조 협주곡 작품 974 2악장 아다지오’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등을 즐겼다.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제목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돈 후안’은 17세기 스페인의 신부 출신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인물이다. 같은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그 많은 여인을 사랑으로 대했다면 돈 후안은 당시 비도덕적인 사회분위기에 걸맞게 그 많은 여성을 농락대상으로 삼는다. 항변하러 온 능욕당한 한 여인의 아버지마저 살해한 돈 후안은 그의 무덤 앞을 지나다 만난 석상을 집으로 초대한다. 초대된 석상은 죽음의 전령으로 난봉꾼 돈 후안의 사악함이 신의 처벌을 받는다. 1888년 슈트라우스는 독일 작가가 쓴 ‘돈 후안’의 장편 시를 읽고 감명 받아 교향시를 작곡한다. 교향시의 대가인 그가 25세 때 작곡한 첫 교향시다. 교향시는 문학, 철학, 미술, 자연 등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다. 안드리스 넬슨스의 지휘아래 ‘돈 후안’의 난잡함이 신에게 처벌받는 순간을 거대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20분간 묘사된다. 음악가들은 진정 천재다. 어떻게 시를 오선지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눈을 감고, 죽어가는 그를 상상하며 듣는다. 전율이 인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곡들도 곡 해설과 지휘자,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취한 후 플롯과 하프, 피아노, 첼로 등의 연주를 듣는다. 듣는 맛이 다르다. 팝송 DJ가 꿈이었던 어린 최정호는 중학교 때 차비를 아껴 열정적으로 LP판을 모으면서 클래식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고등학생 때는 오페라에 눈 뜨며 마니아가 된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 후 포항시립합창단 단원을 거쳐 현재는 포항시립교향악단 사무장으로 재직 중이다. 포항MBC 라디오의 ‘즐거운 오후2시’ 프로그램에 매주 토요일 출연하여 재즈, 팝, 영화음악 등을 16년간 다루었고, 극동방송에서는 매일 저녁 클래식 음악 DJ를 했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 해설과 각종 음악회·도서관·소공연장·복지회관 등에서 인문학 강의도 많이 하는 그는 클래식음악 해설에도 열정적이다. 지역마다 클래식음악 동호회는 많지만 해설이 있는 동호회는 흔치않다. 클래식이나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최정호의 해설이 있는 금요음악감상회’에서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전음악을 즐기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참 좋을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2-20

따라 쓰며 곱씹는 글맛 필사의 매력 속으로

요즘 필사(筆寫) 열기가 뜨겁다. 필사를 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책 속의 인상 깊은 문장을 정성스레 옮겨 적는 데서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게 그 이유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손으로 따라 쓰며 곱씹는 재미에 독서하는 깊은 맛도 더해진다. 그 인기에 서점가는 필사 관련 노트 책을 따로 두는 공간을 마련할 정도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관련 책이 10위 안에 드는 건 당연하다. 온라인에서의 SNS 인증샷을 시작으로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필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관련 모임이 여럿이다. 필사 노트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건 자연스런 모습이다. 때아닌 필사 열풍이다. 필사책은 시집이나 소설, 에세이 등 기존의 정형화된 것에서부터 셰익스피어, 니체, 소펜하우어의 문장, 한강 작가의 필사 노트와 비상계엄으로 인한 2030 세대의 헌법 필사가 그 분위기를 뜨겁게 데웠다. 헌법 필사책은 지난달 1,036% 증가했고 품귀현상까지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필사 열풍을 따라 드라마 대본, 가수의 노랫말까지 다양한 필사책이 출판되고 있다. 평소에 아침마다 좋아하는 시를 필사한다는 직장인 A(34)씨는 “시를 필사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도 필사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따라 쓰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사의 의미도 새롭게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필사는 문해력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 숏폼에 익숙해진 MZ세대는 긴 글을 읽거나 낯선 어휘를 마주하면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은 어휘력과 문해력에 관한 책에 관심도가 높은데 그만큼 언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자신들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뤼튼이나 챗GPT, 얼마 전에 우리들을 놀라게 한 딥시크 등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글쓰기 감각은 점점 더 무뎌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MZ세대가 주목한 게 바로 필사다. 키보드 대신에 손으로 써 내려가는 과정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기억과 인지력 상승은 물론 진정한 의미의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초등고학년 자녀를 둔 40대 학부모 B씨도 “아이들과 최근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필사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필사하니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들 글씨 연습하기도 좋다. AI 시대 문해력과 독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데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필사는 아날로그적 행위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차분히 정돈하고 몰입감을 주는 활동이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옮겨 적으며 천천히 느끼는 글맛은 느리다. 그 느림이 정신적 위안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필사는 자기 계발과 동시에 힐링을 주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활동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로 필사를 공유함으로써 교류의 즐거움도 느낀다. 필사 모임으로도 이어지며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필사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깊이 음미하고 감동적인 문장을 자신의 손 글씨로 다시 느끼는 과정에서 창작에 대한 열망도 생긴다. 필사가 단순히 따라 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만의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올해도 손으로 따라 쓰는 필사의 열풍은 쭉 이어질 것 같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18

유홍준 교수가 들려주는 겸재 정선

얼마 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유홍준 교수 강의를 들었다. 인터넷으로 좌석 예매를 하자 5분 만에 매진이었다. 그의 유명세로 인한 티켓 파워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시간에 맞춰 원화홀에 가니 책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줄이 길었다. 아, 우리 집 책꽂이에 가득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화인 열전’이 안타까운 순간이다. 최근에 사서 읽은 그의 사적인 이야기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도 재밌었다. 그 책을 들고 저 줄에 섰다가 자필 사인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늦은 후회를 했다.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늘 그렇듯 강의는 재밌었다. 강의 장소가 경주라 ‘신라’의 뜻이 무엇일까로 시작해 경주 사람 중에도 모르는 이가 있는 명활산성을 말할 때 역시 여러 역사 지식을 섭렵하였구나 싶었다. 강의를 들으며 옛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은 밝아졌다. 여러 화가 이름이 나왔지만 김홍도와 정선의 그림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 그림이나 글씨는 나이가 들어 그릴수록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젊어서 그린 것과 비교해 보여주니 객석에서 탄성이 동시에 나왔다. 단발령에 올라서서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그린 36세의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아름답고도 웅장한 풍경을 화폭 안에 담아냈다. 72세 노년의 정선이 무르익은 필치로 그린 금강산의 풍경은 덜어낼 것을 다 덜어내고 몸에 힘까지 다 빼고 편안해진 금강산이라 보는 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구달바별’의 작품은 21세기에 정선이 금강내산을 다시 그린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LED가 화선지가 되고, 컴퓨터그래픽(CG)이 붓끝이 됐다. 생명력 넘치는 웅장한 금강산의 모습을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연출했다. 작품은 온통 반짝이는 자개로 표현한 금강산의 풍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어 CG로 만들어진 실제에 가까운 금강산 절경이 나타나 화면을 통해서나마 금강산의 ‘진경’을 엿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45세 되던 1720년에는 하양 현감으로 나가 6년간이나 재직하며 부근의 충청도 일대와 영남 일대의 명승들을 두루 유람하고 사생하며 구학첩과 영남첩을 그리며 진경산수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58세 되던 1733년에는 청하 현감으로 나가 내연산삼용추등 영남과 관동 일대까지 두루 사생하며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76세 되던 1751년 윤5월 하순에는 거의 한 달이나 지속되던 장맛비가 그치며 개이기 시작하는 인왕산의 생생한 모습을 묵직하고 깊은 쇄찰법으로 과감하게 쓸어내려 인왕제색도를 완성함으로써 겸재 진경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작을 창조하였다. 강의를 듣고 일행과 함께 경주문화관1918 전시를 관람했다. 자료화면에 나왔던 그림을 손으로 만져가며 느꼈다. 또 명활산성의 위치를 모른다는 회원이 있어서 보러 갔다. 진평왕릉에 주차하고 명활산성까지 걷는 선덕여왕길도 알려주었다. 그때 경주의 아름다운 능선 너머로 해가 졌다. 붉어지는 노을에 우리는 명화를 보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좋은 강의 덕분에 자연을 보는 눈도 더 밝아졌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5분 만에 매진되었던 객석에 빈자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책임감 있는 시민이 더 좋은 강의와 전시를 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 고장 청하에서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니 더 반가운 일이다. 포항 월포 용산 등산로에 겸재 정선길이 있다. 몇 해 전 그 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이정표를 발견하고 반가워 사진을 찍었더랬다. 강의를 듣고 그 길에 다시 섰다. 그런데 정선길 이정표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에 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걸까?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까지 생각해 그렸던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용산을 서성이게 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18

벌써 20년 ‘봉화를 찾는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IMF 직후 명퇴자를 중심으로 붐을 이뤘던 귀농, 귀촌이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귀농 열풍이 일었던 2006년 무렵 봉찾사(봉화를 찾는 사람들 약칭) 카페가 생기고 1만 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가입해 활동했다. 하루 700~800명이 방문했고, 정기모임과 비정규모임 등을 운영하여 봉화 귀농귀촌 플랫폼 역할을 했다. 현지인과 귀농인, 예비귀농인 함께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잡이 역할과 버팀목으로 함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생계형 귀농인,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귀촌인, 고향을 찾는 사람들, 은퇴 후 노후를 전원에서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정을 나누는 장으로 벌써 20년이 됐다. 봉찾사 카페는 SNS 발달로 지금은 5천여 명의 회원과 하루 200여 명의 방문으로 예전 같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다. 초창기 50~60대에 봉화로 귀농귀촌한 이들이 현재는 60대부터 80대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봉화는 숲속 도시로 산간지대에 전원주택을 지어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기존에 형성된 마을과 조금씩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부부가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면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고, 병원은 어떻게 다녀야 하며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흔히들 나이 들면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약 83세다. 평균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6년을 더 산다고 한다. 실지 농촌 마을에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많다. 올해같이 눈이 많이 오는 해는 집 앞에 눈을 치우고, 병원에 가야 한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군 보건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과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 자칫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 2023년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인이데 비해 건강수명은 73.1세라고 한다. 10여 년 가까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들의 귀농 정책은 쏟아져 나오고, 은퇴자를 유입하기 위해 전원주택지 분양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마음 놓고 노후를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누가 찾아오겠는가? 나이 들어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머무르기보다는 살아온 환경에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단순한 거주 지원을 넘어 익숙하게 살아온 곳에서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통합재가 서비스, 재택 의료서비스 등을 살펴봐야 할 시기가 됐다. 봉화도 지방 소멸을 걱정하며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을 살리기 위해 지역의 특화산업을 육성해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청년 귀농 정책도 필요하지만, 노인들이 행복하게 살며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도 중요하지 않을까. 끝까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건강한 정주 환경과 복지 기반이 조속히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2-18

비우고 내려놓은 수행자 선시 같은 절제미를 탐구한 시

“그렇다/다 다/아닌 것이 없다/없는 것 또한 없다/그러니 다다//가지려고도/찾으려고도/그 자리에 다 있다/잠을 자고 잠을 깨고는/연속이다//그치지 않고 있는/그 소리를/보고 들음이어라//” 위의 시는 권대자 시인의 한영 동시집 ‘양들의 수업’에 수록된 ‘다 다’이다. 이 시 ‘다 다’의 ‘다’는 한 음절의 퍽 흥미로운 낱말이다. 부사로서 ‘남김없이, 모조리, 몽땅, 전부. 모두, 마카’ 등의 의미로, 시적 화자는 첫 어절 “그렇다”의 무한 긍정으로 시작하여 ‘다’ 그려내었다. 우주 안의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공이요, 공이 물질이니….”(‘반야심경’ 일부 해설)라는 불법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상과 철학은 “기가 만물을 작동시키며, 그 만물이 사람의 감흥을 자아낸다.(氣之動物 物之感)”고 한 당(唐)의 비평가 종영의 ‘시품’‘상품서’에 보인 품평이 바로 그렇게 겹쳐지는 기쁨을 즐기게 된다. 한 마디로 권대자 시인의 동시는 실천궁행의 선시(禪詩) 변용이다. 형식은 동시답게 쉬운 듯 친근하게 다가서지만 내용은 아는 만큼 보이게 한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삶의 수행 곧 불심에서 비롯된 철학으로 보인다. 그의 티 없이 맑은 동심은 비우고 내려놓은 수행자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02-16

사진은 예술이다

나는 피사체를 보는 순간 셔터를 누르며, 스스로 행복에 빠진다. 이유는 카메라에 담긴 영상의 막연한 기대감과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에서 현재 디지털카메라로 기종이 바뀌어도 작품활동을 한 지 40여 년이 흘렀다. 계획되지 않은 자연과 사물을 촬영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예술이면서도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고, 순간의 감동 속에 사실성과 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사진예술이라 하겠다. 세상 인정이 마구 변하는 이때 그래도 한 가닥 변치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잡아 두려는 심사 때문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세상사를 소중히 기록해 간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사진은 다양한 표현 양식을 발전시켜 왔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사진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기록성이다. 사진은 예술의 한 장르이기 이전에 삶의 한 단면을 담는 중요한 도구로서의 시작이 됐으며, 오늘날에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이 예술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그 삶의 단면에 담긴 사실성과 진실성에 담긴 아우라(aura·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삶의 한순간을 영원히 지속 보존케 하며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며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 작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은 쉽게 빨리 변해간다.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그리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행복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오래 변치 않고 지속되어 가기를 바란다. 사진은 내가 아는 한 이러한 내 열망을 가장 잘 담아내는 매체이다. 나는 사진을 통하여 무상한 삶과 덧없는 세상의 찰나들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영원하고자 하는 내 삶의 열망을 실현한다. 따라서 내가 숨 쉬는 한 나는 사진작업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벌써 40년의 세월 동안 카메라와 함께하고 있다. 매번 길을 나설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이런 결과는 사진작가로의 희망인 ‘대구시사진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사진대전 추천작가’ ‘대한민국 현대 미술대전 초대작가’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 ‘국제교류전’ 출품 등 숱한 기록을 남기게 했다. 나는 사진작가로 진입하려는 초보 작가들에게 나의 견해를 들려주어 사진예술에 푹 빠져 보는 계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대구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사진동아리 팀들을 찾아 연혁을 독자들에게 전하도록 하고, 사진촬영 기법들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02-16

포항시립 포은흥해도서관에서 여유를 즐기다

봄날 같던 겨울이 입춘을 만나더니 외려 기온이 뚝 떨어진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깨진다’ 등의 속담이 옛 어른들의 경험치에서 얻어진 것처럼 올해 입춘은 유난히 더 추운 듯하다. 입춘이 지나고 겨우내 내리지 않던 눈까지 내리는 날, 따끈한 커피 한잔 챙겨들고 포항시립 포은흥해도서관으로 향한다. 뚜껑이 있는 텀블러의 음료는 반입 가능하다. 설 명절에 내려온 아들이 연휴동안 공부할 곳을 찾아다니다 포은흥해도서관을 만난다. 연휴동안 도서관들이 모두 휴관일 때, 3월 중 개관을 앞둔 신축 도서관으로 임시개관 운영 중이었다. 지난 1월 22일 임시개관 이후 누구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가능하다. 아직 정식 개관전인 도서관을 4층까지 둘러보는 동안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실내 분위기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해 둘러보는 내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예고 없이 터진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이용객이 많다. 넓은 도서관임에도 빈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지열발전소 건립과정에서 발생한 ‘촉발지진’의 발원지는 흥해읍이었다. 그만큼 지진 피해가 컸던 흥해 지역을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하고 피해지역 재건을 위한 ‘흥해 특별 재생사업’이 추진되었다. 그 일환으로 마산사거리에 위치한 지진 당시 전파된 대성아파트 부지에 복합 문화공간인 포은흥해도서관과 나란히 재난트라우마센터 및 북구보건소를 통합 건립한다. 흥해읍 마산사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흥해 특별 재생 사업으로 추진된 또 하나의 흥해복합커뮤니티센터는 흥해소방서(119안전센터) 맞은편에 있다. 수영, 탁구, 요가, 배드민턴, 헬스 등 잘 갖춰진 실내 체육시설은 저렴한 강습료로 시설 이용이 부담스럽지 않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던 주민이 “일일 3000원으로 우현동까지 가지 않고 수영을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한다. 65세 이상은 월 1만5000원으로 수영을 즐길 수 있어 “우리 동네에 실내수영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거들던 어르신의 발걸음이 활기 차 보인다. 그러나 흥해전통시장 식당가 상인은 이런 신축건물들이 사뭇 못마땅하다. 이미 2007년에 개관한 흥해종합복지문화센터 만으로도 지역민의 문화 활동에 부족함이 없는데다 커뮤니티센터 부지 거주민과 지역에서 나름 큰 주거단지였던 대성아파트 거주민들이, 기대했던 주상복합아파트가 아닌 공공시설이 들어서며 많은 이들이 흥해읍을 떠나 타동(他洞)으로 이사를 갔다. 지역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읍민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조금은 불편해진 시선으로 포은흥해도서관을 다시 찬찬히 둘러본다. 비치된 책장들이 아직은 많이 비어있지만 읽을 책은 충분하다. 음악자료실에는 추억 속 명곡을 LP판으로도 즐길 수 있다. 예쁜 의자들과 책상이 있는, 카페보다 더 아름답고 아늑하게 꾸며진 그 곳은 앙증맞은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층을 잇는 쉼터 공간에서 책 한 권으로 사색도 즐기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청장년들이 빈틈없이 앉아 공부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지역민의 눈에 곱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이용객이 타지 사람이 많아서 일까? 흥해읍 마산사거리에 훤칠하게 들어선 재난트라우마센터·북구보건소가 지진으로 힘들었던 지역민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도움이 되고, 카페 같은 도서관은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힐링 공간이 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2-13

앞선 이들의 노고 덕에 풍요로운 오늘이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시댁 형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설에는 차례를 지내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한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그저 잘 계시려니 했는데 몸이 아파서 무척 고생하셨단다. 마음이 짠했다. 윗 동서이지만 나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엄마 같은 형님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막내 동서를 한번도 야단치지 않고 늘 이쁘게 봐주는 고마운 형님이다. 다섯 형제의 둘째 며느리지만 첫째 아주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 제사며 각종 집안일은 항상 형님이 다 맡아서 해왔었다. 어릴 때부터 고생이라면 진력이 나게 해온 형님은 늦은 나이까지 일을 놓지 못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은 연약한 여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물류센터에서 판매장으로 물건을 배송하는 일이었다. 형님은 체구도 작고 마른 몸이라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에는 취약했다. 거기다 장 수술을 크게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 함에도 새벽 4시면 일을 나가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계속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형님을 모델로 쓴 시이다.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줄이 있네 / 얽히고설킨 푸른 거미줄 / 그녀의 다리에 언제부터 거미가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네 / 어미의 헌 자궁을 발길질할 때부터인지 / 여덟 달 만에 세상에 나와 / 버둥거리며 울 때부터인지 / 기집애가 배워서 뭐 하냐며 / 아궁이에 던져진 교과서가 불타던 때부터인지 // 그녀의 다리에는 거미 한 마리 사네 /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 남의집살이할 때 / 아마도 거미는 그녀의 슬픔처럼 집을 짓기 시작했으리 / 가난한 남편 만나 식당 종업원으로 돌아칠 때 / 그 다리에서 푸른 핏줄 뽑아내어 / 한 줄 한 줄 지었으리 // 중늙은이가 된 그녀가 / 물류센터에서 온갖 상자를 나를 때 / 다리에 지어진 그 집 푸르게 울었네 / 뒤엉킨 슬픔들이 이무기처럼 울었네”- 엄다경 시 ‘하지정맥류’ 작은 몸으로 무거운 물건을 오래 나르다 보니 형님 다리에는 시퍼런 하지정맥류로 가득했다. 그걸 보며 마음이 아파서 썼던 시이다. 이번에는 더는 버티지 못한 무릎이 완전히 고장이 난 모양이다. 양 무릎을 다 수술하고 회복하느라 고생 고생한 소식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그동안 못 배운 죄로 몸 무너지는 줄 모르고 죽자 살자 일만 하고 산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울먹이는 가여운 분. 내 아픔 아무도 모르더라며 이제 내 몸 아끼면서 나만 생각하고 살겠다고 하소연한다. 형님을 보면 한 세대 차이인데 우리 윗세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지난했는지가 보인다. 여자라고 못 배우고 순종하는 삶만 살아야 했던 가슴에 한이 가득한 분들. 어쩔 도리 없는 시대의 슬픔에 마음 먹먹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넘치는 시대, 지금을 사는 젊은 층은 윗세대 어른들의 이런 희생과 노고를 얼마나 알까 싶다. 변화하는 시대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의 삶이 이렇게 여유 있고 풍요로운 데에는 한 시절을 온몸으로 밀고 살아 내어온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공부하는 내게 자신은 못 배운 게 한이라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엄마처럼 늘 응원해주던 고마운 형님. 곧 영양제라도 사 들고 가서 맛있는 밥 한번 대접해야겠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2-13

‘초현실주의 100년의 환상: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특별전’을 가다

1924년 지구 건너편에선 초현실주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가 경주예술의전당 4층 갤러리해에서 열리고 있다. 2024년 한수원 아트페스티벌 ‘초현실주의 100년의 환상: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특별전’이다. 이 전시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현실주의 작품 약 100점과 함께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긴 콧수염의 사내 살바도르 달리, 오묘한 빛의 집 풍경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호안미로 등 익숙한 이름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 가능하다. 이들뿐만 아니라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초현실주의는 꿈이나 상상을 표현한 예술이다.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언급했던 이론적인 부분은 접어두고 오직 감상에 집중하기로 하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초현실주의자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채식주의자가 고깃집 앞에서 웃고 있는 소나 돼지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작품은 막스 에른스트다. 막스 에른스트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지라도 그가 발전시킨 기법은 전 국민 중 꽤 많은 비율로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바로 ‘프로타주’ 기법으로 문지르기다. 어릴 적 동전을 공책이나 교과서 아래에 두고 연필심으로 열심히 문지른 기억이 날 것이다. 막스 에른스트는 그냥 문지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재질의 느낌을 살려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고 보통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되어 혼만 났다는 극명한 차이가 있지만. 막스 에른스트의 상상들을 뒤로하고 자주와 보라의 경계에 놓인 벽 위로 마그리트의 인물사진이 등장했다.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찍힌 사진을 함께 동행했던 아이는 전시물들 중 가장 좋아했다.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실물 사진을 볼 수 있는 점도 이번 전시 중 만족한 부분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가기 전 기대했던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생생한 색으로 펼쳐낸 유화작품이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그 중 막스 에른스트의 삶의 기쁨이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초록의 수풀 속 곱게 핀 꽃들 사이로 숨어있는 위협적인 존재들. 날카로운 이는 금방이라도 평화로운 풍경을 물어 뜯어버릴 듯하다. 작품명에서 보이듯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풍자적으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평범하게 살기엔 지나치게 풍부한 감정을 가진 작가들이 전쟁을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이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인물이라 평한 호안 미로. 허기가 만들어내는 환각 상태에 이르기 위해 말린 무화과 몇 조각을 먹으며 버텼다니 작품을 보는 내내 묘하게 허기가 느껴졌다. 잡아당기고 싶은 꼬리를 가진 의자 작품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나오는데 살바도르 달리가 남긴 말이 적혀있다. “레스토랑에서 구운 바닷가재를 주문하면, 왜 구운 전화기를 내오는 일이 단 한 번도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이 이 전시의 요점이 아닌가 싶다. 전시는 2024년 12월 24일부터 2025년 5월 11일까지 진행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전시설명 프로그램은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에 진행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13

안동시 전용 서체 ‘이육사체’ 보실래요?

서울남산체, 여주도자체, 평창평화체, 창원단감아삭체, 정선아리랑체, 아산이순신체, 빛고을광주체…. 모두 각 지자체가 만들어 배포한 전용 서체다. 서체의 이름만 들어도 지자체의 정체성과 상징성이 담겨있어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지역을 홍보하는 긍정적 효과 때문인지 최근엔 지자체별로 앞다투어 전용 서체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안동시도 안동시를 대표하는 전용 서체가 있다. 지역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캐릭터 ‘엄마까투리’와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 ‘월영교’를 모티브로 한 ‘엄마까투리체’와 ‘월영교체’가 바로 그것이다. 안동을 알리고 시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제작한 안동서체는 안동시청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영상, 인쇄, 인터넷, 모바일 등의 다양한 매체에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며 특별한 허가 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안동시의 전용 서체는 총 3개가 있는데 귀여운 캐릭터와 어울리는 둥글고 아기자기한 엄마까투리체와 월영교 다리 중간에 자리한 월영정 기와지붕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담은 월영체 그리고 바로 이육사체가 있다. 모든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시인의 친필 원본을 분석하고 구현하여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실제 활용이 가능한 디지털 글꼴로 개발한 것이다. 지난 2019년 GS칼텍스에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의 필적을 개발해 독립서체 백범 김구, 안중근, 윤동주, 윤봉길, 한용운체를 무료 배포한 바 있다. 안동시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이육사의 친필을 많은 사람들이 활용해 그 문학성과 숭고한 정신을 알리는 주목할 만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시원스레 뻗어 나간 획과 정갈한 동그라미, 섬세하고 분명한 자음과 모음의 조화로 ‘이육사체’의 아름다움이 더 널리 알려지고 쓰이길 기대해 본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2-11

‘조선명화전’

2월에 토론할 책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할 때 어느 정도 거리에서 보아야 하는지, 서양화와 달리 한국화는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왼쪽 아래로 시선을 옮기라고 알려준다. 오래전 이 책을 읽은 뒤부터 미술관에 가면 그림 크기 대각선의 1.5배 정도 거리에서 먼저 보고, 다시 가까이에 가서 붓의 터치나 세세한 표현을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에 또 멀찍이 떨어져서 자세히 느끼려 했다. 한국의 미를 읽을 줄 어찌 알고, 경주문화재단에서 우리를 위해 획기적인 전시를 준비해주었다. 이런 우연을 경험할 때마다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시다가 옛다 하고 좋은 복주머니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감사하게도 경주문화관1918(구 경주역 건물을 전시관으로 꾸몄다.)에서 ‘경주에서 만나는 조선’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가 토론하는 책에 나오는 그림이 대부분 있었다. 진품이 아닌 레플리카전이지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70여 점의 명화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레플리카를 통해 조선 회화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다. 이번 전시는 포스코의 Pos ART 기술로 강판 위에 제작했다. 작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예술을 느낀다. 작품 표면의 질감을 손으로 만져보니 감동이 달랐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그림 옆에 설명해놔서 손으로 글과 그림을 볼 수 있게 했다. 레플리카는 고전 명화들을 현대기술로 복원한 고품격 복제품이다. 원작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며 섬세한 디테일과 색감을 충실히 재현해 원작에 가까운 감동을 제공한다. 맨 앞에서 우리를 맞는 그림은 강산무진도다. 책에서 알려준 한국화 감상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으며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폭 8m에 달하는 웅장한 산수화인데 실물은 보존상태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전시했다는데, 이번 레플리카전에서는 전폭을 완벽히 재현하여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9월에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촉잔도권’을 걸어가며 감상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영상으로 찍으려니 감탄이 나왔다. 그림 속의 탑은 경주의 탑의 형태와는 달라 중국의 탑인가, 자세히 만지며 보다 보니 높은 바위산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스마트폰에 하듯 손으로 확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정선의 박연폭포는 추상화 같다. 폭포가 시작하는 곳과 물이 떨어지는 곳에 검은 바위를 툭 찍고 물줄기는 한 번에 힘차게 쏴아 쏟아져서 귀가 먹먹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과감한 생략이 현대 추상화를 압도한다. 신윤복의 미인도와 연당의 여인을 만나고, 화장실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에도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관동팔경 중 북한에 있어서 가보지 못하는 총석정과 강원도 여행길에 들르는 망양휴게소같은 망양정이 김홍도의 눈을 통과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강세황의 ‘매란국죽’, 신사임당의 ‘초충도’, 이암의 ‘모견도’ 등속의 작품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붙어있으니 관람자를 배려한 전시다. 손으로 만져보는 그림으로 제일 좋은 작품은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수염 한 올 한 올 강렬한 눈빛까지 더듬어서 자세히 느꼈다. 김정희의 ‘세한도’ 앞에서는 그림 속 하얀 겨울을 느끼려 더 천천히 걸었다. 김홍도 ‘풍속화’의 틀리게 그린 그림을 숨은 그림 찾듯 자세히 보는 것도 재미라고 알려준 오주석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전시장 끝에는 색칠놀이하는 가족들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 중이다. 우리는 1918카페에서 대추차와 팥물을 듬뿍 뿌린 찐빵을 먹으며 그림 이야기를 나눴다. 굿즈로 경주가 그려진 화투를 사서 나오니 곧 봄이 오려는지 날이 풀리고 있었다. 전시는 이달 23일까지며 토요일에는 오후 2시, 4시 도슨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11

당신의 ‘N잡’ 은 무엇인가요

바야흐로 ‘N잡러’ 전성시대다. ‘N잡러’는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N잡러’의 증가는 고물가와 고환율 등으로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팍팍해져 직장에서 퇴근 후에도 부업까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층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장년층도 마찬가지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2024) 1분기에 부업을 한 경험이 있는 취업자는 55만명이라고 한다. 10명 중 3명은 15시간 이상 부업을 했고 직장 폐업이나 정리해고 등으로 비자발적인 실업자도 늘어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주 1~17시간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도 지난해에는 최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절반 이상이 스스로 ‘N잡러’라고 생각했다. N잡을 하는 이유로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안정적인 수입을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등이 많았다. 본업만으로 충분한 경제적 소득을 얻기 어려워 부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게 큰 이유인데 직장인들도 본업 외에 부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직장인들이 대부분 부업을 하는 분위기에서 본업에서의 수입과 배달일, 유튜브 등의 플랫폼 등의 부업을 병행해서 부수입을 함께 얻는다. 과거와는 달리 디지털 기술에 의한 플랫폼 일자리는 진입 장벽이 낮고 원하는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일주일에 10시간 미만의 짧은 시간을 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에 사는 직장인 A(34)씨는 “퇴근 후에는 배달일을 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N잡을 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회사에서 각종 수당도 많이 없어졌다. 월급만으로는 어려워 신혼일 때 여유자금 마련을 위해 더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N잡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를 보면 퇴직 연령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 일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한몫한다. 이는 사회초년생이나 임원진에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을 동시에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직장인이면서 유튜버나 무인점포를 창업하기도 하고, 외국어 강사이면서 요가 강사. 교사이면서 가수나 작가, 요리사가 되는 등 다양하다. 일은 고정적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유동적이고 다양해지고 있다. 경제적 안정이 N잡러 증가의 첫 번째였다면 또 다른 이유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다. 경직된 직장생활에서 자신이 하나의 부품처럼 일할 때면 회의감이 든다. 스스로 의미를 못 느껴서이기도 한데 조금 더 나다운 일을 찾아 부업을 한다. 그 시작이 자신의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한 주도적인 방법이 된다. 본업과 균형을 맞추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다.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론 본업에 충실한 것이 첫 번째다. 부업이 늘었다는 건 하나의 일자리로 가정을 꾸리기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또 모바일 관련 부업거리가 늘어나 이제는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가 쉬워졌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N잡러’ 열풍은 경제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트렌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11

경북매일신문 스마트시민기자단 ‘대구본사팀’ 발족

경북매일신문사는 스마트시민기자단을 경북에 이어 대구에서도 출범시켰다. 관련기사 12면  이번에 출범한 스마트 시민기자단 ‘대구본사팀’ 은 대구의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역 인사 12명이 참여했다. 앞으로 지역의 여론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알찬 소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구본사팀 시민기자들은 "서울 소식에 밀려 제대로 듣지 못한 내 고장 소식을 더 빨리 더 많이 전달하고 우리 고장의 정체성을 부각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각오를 피력했다.   대구본사팀 시민기자 발족으로 본지의 시민기자팀은 4개로 확대됐다. 앞서 2021년 12월 13일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기자 ‘알파팀’을 태동한 본지는 2022년 1월 20일에는 포항을 제외한 봉화, 안동, 울진, 경주 등의 경북 지역민 12명으로 짜여진 ‘베타팀’을 추가로 구성했다. 이어 2023년 11월 15일에는 도내 일원의 12명을 더 모집해 ‘감마팀’을 선보였다. 이들은 그동안 매주 1~2회 지면 제작에 참여해 왔다. 독자가 직접 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시민기자 시스템은  양방향 소통의 시대를 맞아 미디어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본지가 시민기자 운용을 확대하는 것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대구시민기자 발족을 계기로 본지는 지방자치시대에서 시민이 중심인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지역민이 앞장서 지역의 가치를 중시하고 지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그런 사회를 만들때 비로서 지방자치의 꽃이 만개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2-09

눈 내린 겨울, 축서사를 거닐다

그야말로 숨 가쁘게 내달리던 갑진년 청룡은 저녁노을 붉게 타는 축서사 석등을 비추며 떠나갔다. 새해 평온을 바라는 마음으로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 자락 축서사를 찾았다. 좁다란 들판을 지나고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작은 마을들이 겨울을 품고 있다. 산기슭 어귀에는 눈과 얼어붙은 계곡 사이로 또랑또랑 물소리 청아하고, 호젓한 산길에 눈이 내려 여유로운 분위기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과 일주문을 지나면 웅장한 축서사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어 불편함이 없다. 주차장 앞에 보탑성전 계단을 오르면 금강송으로 에워싸인 문수산(1206m) 자락이다. 날개를 펼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오층 사리탑과 대웅전이 잘 정돈된 전형적인 절집. 장엄한 산세와 대웅전의 화려한 단청, 자태도 근엄하고 엄숙하지만 눈이 내려 나지막이 엎드린 마음에 포근하고 정겹다. 겨울에 묻힌 듯 고즈넉한 대웅전 앞을 지키는 오층 사리탑은 정교하고 섬세하게 서있다. 대웅전 맞은편으로는 보탑성전과 법고, 범종이 자리했다. 축서사는 천년심산 고찰로 흔히들 영주 부석사의 모절, 또는 큰집이라고 이야기한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축서사를 먼저 짓고, 3년 후 부석사를 지어 그렇게 부른다. 축서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대사가 지었으며, 창건 설화에 의하면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 있는 지림사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축서사를 지었다고 한다. 눈이 내리는 날이라서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축서사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리 봐도 물리지 않는 경이로움이다. 봉화 8경중 축서사의 석양이 제7경일 정도로 황홀한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 산사는 쌀쌀한 추위로 삭막하지만, 소나무 숲으로부터 다가오는 공기는 더없이 부드러움이 있어 포근함을 준다. 낙락장송 금강송과 포근한 숲,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축서사는 7일간의 참선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을 운영하고 있다. 탁 트인 시야에 그림처럼 펼쳐진 높고 낮은 소백산맥 능선은 자연이 그린 경이로운 풍경이다.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과 몸이 편안해지고, 정지된 설원 속 비경은 넋을 빼앗아간다. 겨울은 기암괴석들이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금강송에 내려앉은 흰 눈은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낸다. 그 풍광의 멋과 정취에 절집과 사리탑이 어우러져 축서사의 겨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158호 고려의 석등 위로 살포시 하얀 눈이 내려앉았고 시원스런 풍광은 이리 봐도 비경이요, 저리 봐도 절경이다. 아담하고 정갈한 석등에서 바라다보는 축서사의 석양은 그야말로 으뜸이다. 삶의 여정을 잠시 내려놓고 호젓하게 겨울 산사의 풍경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축서사의 겨울 여행을 권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2-06

모두가 즐거웠던 설날 윷놀이

“명절엔 함께 모여 여행을 가자.” 최씨 삼형제의 대대적인 선언이 있었던 건 지난 설날이었다. 그리고 당해 추석을 끝으로 더 이상 전을 굽지 않게 되었다. 대신 명절엔 가족이 모두 모여 여행을 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경주에서 만나 놀기로 했다. 달라진 명절 분위기에 우리 가족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 첫 여행이 이번 설날에 이뤄졌다. 두 아주버님의 노력 끝에 보현산자연휴양림에서 가장 큰 16인실 예약에 성공했다. 시 가족 모두 12명이니 적당한 크기다. 1시간 거리 가까운 곳이지만 숙박은 처음이라 아이는 몹시 설렜다. 2층짜리 나무집은 꽤 근사했다. 마침 경주에서 보기 힘든 눈까지 내렸던 터라 멋진 설경까지 더해졌다.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와 눈사람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누군가는 눈짐승이라고 했다. 찬바람에 손과 얼굴이 얼얼해질 쯤 안으로 들어가 뜨끈한 어묵과 간식을 나눠먹었다. 해가 지자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고 각자 준비해온 재료들로 식탁이 채워졌다. 평소에 먹던 명절 음식은 하나도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곧장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윷놀이는 매년 설마다 해오던 연중행사다. 간단한 상품들, 이를테면 갑티슈나 세제류, 참치캔 등 실생활에 쓰이는 소액의 물품들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경쟁률은 여느 고가의 물품 못지않게 치열하다. 거기에 청소년들에게 맞는 상품은 없다는 항의로 용돈까지 상품으로 걸렸다. 덤으로 “꽝”까지 추가해 스릴감까지 얹었다. 이번엔 특별히 시어머니 권한으로 ‘하나마나’라는 규칙까지 새로 생겼다. 윷을 던져‘하나마나’란 글자가 적힌 패가 나오면 그 앞에 모를 했던 윷을 했던 모두 무효가 된다. 이때만 해도 그 규칙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모두 알지 못했다. 역대급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윷놀이가 이뤄졌다. 팀은 세 팀으로 가족 상관없이 나눠졌다. 삼형제와 시어머니팀, 며느리팀, 손자팀으로 구성되었다. 이기는 팀은 각자 뽑기를 해서 저마다 상품을 가져갔다. “꽝”이 존재했기에 이긴다고 끝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글자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분노했다. “하나마나”는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다. 모를 연속으로 두 번이나 던지고 여러 말들을 잡고 이쯤이면 이길 것이라 확실하던 순간 “하나마나”가 나왔다. “하나마나”는 마치 일부러 오류를 심어놓은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 게임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하나마나를 뽑으면 당사자팀을 제외하곤 모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사가 윷놀이판에 그대로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가도록 뽑지 못한 상품들이 반쯤 남아있었다. 다들 서서히 지쳐갔다. 평소보다 잠들 시간이 한참 지난 꼬맹이는 눈이 반쯤 풀려 비몽사몽 중이었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순서가 되면 벌떡 일어나 윷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 중 가장 성공률 높은 뽑기 성과를 보였다. 심야의 주택가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큰 웃음 속에서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윷놀이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날 단체 늦잠으로 이어졌다. 느지막이 일어난 가족들은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대형 카페로 향했다. 점심 대신 차와 빵으로 대체한 후 잠시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낯설었던 풍경이다. 아마 10년 뒤엔 또 다른 모습의 설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가족 모두가 행복한 설날이 되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2-06

얼음과 함께 따뜻해지는 시간, 안동암산얼음축제

2025 안동암산얼음축제가 지난 1월 18일부터 26일까지 9일간 안동시 남후면 암산유원지에서 열렸다. 설 명절의 긴 연휴가 시작되는 1월 25일, 암산얼음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족들과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안동’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간고등어와 안동찜닭으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블로그를 통해 찾아간 맛집은 맛있는 음식도 맛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월영교와 안동을 대표하는 하회탈, 아기자기한 식물들까지 더해져 눈까지 즐거웠다. 식사 후에는 월영교를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암산유원지로 향했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와 주말이 맞물려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다. 축제장 주변에 닭강정, 핫도그, 소떡소떡 등 출출함을 채워줄 다양한 간식들을 파는 부스가 있어 맛있는 냄새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얼음판에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은 물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얼음 썰매가 인기 있었다. 스케이트도 많은 방문객들이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얼음 낚시를 즐기기 위해 얼음 낚시장으로 갔지만, 최대 수용인원이 다 차서 1시간 가량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얼음 썰매를 즐기기 위해 3인용 얼음 썰매를 빌려 엄마와 동생, 시민기자까지 썰매를 탔다. 썰매가 생각보다 잘 나가지 않아 셋이서 서로 번갈아가며 앞에서 끌어주다가 결국 다 같이 타고 열심히 썰매 스틱으로 얼음판을 밀었다. 대여 시간은 총 2시간이었지만, 큰 얼음판을 두 바퀴를 돌아오니 더이상 놀 수 있는 체력이 없을 만큼 지쳐버린 우리는 1시간을 겨우 채우고 썰매를 반납했다. 지쳐버린 탓에 얼음 낚시를 하자는 약속도 잊은 채, 썰매 반납 때 받은 안동사랑상품권을 가지고 안동중앙신시장으로 향했다. 중앙신시장에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 생선 등이 예쁜 색감을 자랑하며 놓여있었고, 치킨과 족발, 떡볶이 같은 간식거리도 맛있는 냄새를 뿜어냈다. 우리는 배추전을 만들어 먹을 배추와 때깔 좋은 당근, 알록달록 오색빛깔 송편까지 샀다. 얼음 낚시의 아쉬움을 시장에서 달래고 대구로 돌아왔다. 이번 안동암산얼음축제는 시민기자에게 어린 시절 가족여행을 즐기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고, 올해의 추억을 한 페이지 써내려 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안동은 우리가 방문했던 명소 외에도 도산서원, 하회마을, 화회세계탈 박물관, 이육사 문학관 등의 가볼만한 곳이 많아 여행하기 좋은 도시이다.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안동 데이트를 떠나보길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5-02-06

퍼펙트 데이즈

긴 설 연휴 끝에 자리한 주말을 경주에서 보냈다. 촉촉하게 비가 내려 아침이지만 어둑하다. 덕분에 늦잠을 자고 설을 보내느라 바빴던 몸을 잠시 쉬었다. 아침이라 하기엔 늦은, 남이 해주는 돌솥 정식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러고 찾아간 경주문화예술회관은 주차장부터 조용해서 좋았다. 주말은 늘 복잡해서 힘들었는데 초현실주의 전시가 생소해서인지 관람객이 적어 그림 감상하기에 참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1920년대 파리에서 시작된 예술 및 문화 운동으로, 다다이즘에서 나아가 현실을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다. 다다는 아기가 옹알이할 때 내는 소리이고 아무 뜻이 없다. 비행기 전화기 같은 물건들이 생겨난 격변의 시대에 그 모든 발명품이 전쟁에 쓰이며 1천만 명 이상 살해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예술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래서 꿈과 상상 무의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해서 반쯤 잠든 상태 같은 식으로 표현하고, 보는 이는 예상하지 못한 그림을 통해 각자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 초현실주의를 이끈 막스 에른스트의 직업은 다양하다. 화가이자 시인이며 보석디자이너였고 사진가였다. 기록에 15가지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부인이 4명이었고 동거인이 넷이다. 아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현실에서 삶이 초현실적인 듯 말이다. 이번 전시는 막스 에른스트로 시작해 막스 에른스트로 끝을 냈다. 세 가지 섹션으로 나누었는데 처음도 막스 에른스트, 마지막 방은 그의 부인의 그림들로 채웠다. 첫 섹션의 손에 든 모자, 머리에 쓴 모자라는 작품은 피식 웃음이 났다. 마지막 방의 그의 마지막 부인 도로시아 태닝이 만든 의자에는 꼬리가 달렸다. 왜 꼬리를 달았냐는 질문에 그냥 천이 남아서였다니,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부부다.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초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말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영향을 받은 무의식의 세계, 혹은 꿈의 세계를 말한다. 미술가들은 주로 콜라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등의 방식을 사용해 의식의 검열 없이 이미지를 창출하려 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마법의 거울이란 제목의 그림을 그려놓고 거울 속에는 사람의 모습도 방안의 풍경도 아닌 ‘인간의 몸이다’라는 글을 적었다. 처음 그림을 볼 때 변기인가 했다가 제목을 보니 거울인가 했는데, 작가는 인간의 몸이라고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을 배치해서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의도였다면 적중했다. 전시회 포스터의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의 ‘불길한 날씨’이다. 이 그림이 초현실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서 뽑았다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또 어떤 재미난 일을 벌일까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전시장에 한쪽 벽을 채운 사진에서 달리를 찾아보라고 도슨트가 문제를 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달리는 없었다. 멋진 차림의 신사 숙녀 사이, 화면 중앙에 우주인 복장인지, 잠수복인지 애매한 모습의 한 사람, 심지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 달리가 있다. 그가 그린 그림만큼 독특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초현실 세계에서 빠져나와 경주의 오래된 골목 끝에 자리한 카페에서 진저라떼를 마셨다. 은은한 생강향과 위에 뿌려진 시나몬을 함께 마시니 온몸이 따뜻해졌다.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월정교의 야경을 보러 갔다. 비가 하루 종일 서성거렸지만 바람이 없어서 걷기에 좋은 밤이었다. 월정교의 불빛이 들어오고, 아래로 흐르는 물에 비친 월정교가 더 멋진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 오리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잔잔하고 완벽한 하루였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2-04

일상에서 시작하는 환경보호 실천

다 마신 우유갑으로 환경보호도 하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방법이 있다. 이런 게 바로 사람들이 하는 말로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아닐까 싶다. 먼저 빈 우유갑을 잘라서 물에 씻어 말린 후 차곡차곡 모은다. 모은 우유갑을 들고 거주지역 행정복지센터에 가면 무게당 그에 상응하는 생필품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휴지가 많은데 롤휴지를 받을 수도 있고 갑티슈를 받을 수도 있다.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으면 그만이었던 우유갑으로 자원 재활용도 하고 생필품도 생기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안동시 용상동 주민 김순자 씨는 몇 달간 가족들이 마신 우유갑 5㎏을 용상동 행정복지센터에 들고 왔다. 행정민원팀 최민석 씨의 안내로 저울에 무게를 달아본 후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1㎏당 1개씩 계산해 총 5개의 갑티슈를 받았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김 씨는 “매일 우유팩을 씻어 말리기 솔직히 번거로웠는데, 이렇게 휴지로 바꿔 가니 기분이 좋고 자원 재활용도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최민석 씨는 “알음알음 알려져 우유갑을 들고 오는 주민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자원 재활용에 관심이 높은 분위기를 전했다. 지자체에서 각 행정복지센터로 예산이 배분되는 만큼 예산이 소진되는 경우도 있으니 거주지 복지센터에 방문 전 전화 문의를 해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또 교환 물품과 양도 센터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보호와 자원순환경제 활성화는 일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쓰레기 분리배출을 철저히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안 쓰는 전기 플러그는 뽑아두기, 텀블러를 이용하고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가 있다. 그리고 다 마신 우유갑은 잘 씻어 말리고 모아서 행정복지센터에서 휴지와 교환하기. 생활 속 작은 실천이 환경보호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2-04

나만의 프라이빗한 영화관, 인디플러스 포항

비 오는 주말 오후, 포항 인디플러스 포항을 찾았다. 새해가 시작되고 아이들 방학을 맞아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며칠 전에는 설 명절의 소란함도 물러갔다. 그사이 새로운 달, 2월이 찾아왔다. 다시 조급해지는 마음을 조금 느린 호흡으로 여유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다. 이런 내게 힐링할 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지나는 길에 프라이빗한 영화관인 인디플러스 포항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상영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서 먼저 만났던 클레어 키건의 책을 동명의 영화로 만든 거다. 영화에서는 또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다. 영화 주인공이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이었던 킬리언 머피라니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한참 만에 찾은 인디플러스 포항은 1층에 들어서면 안내데스크뿐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공간과 전시 공간도 갖추고 있다. 영화 상영에만 그치지 않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실은 사진과 그림 등 각종 전시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발권도 함께 하고 있는데 영화 관람료가 3,500원으로 예전 그대로였다. 회원은 3,000원이다. 일반 멀티플랙스에서는 요즘 영화 관람료가 올라서 한 편 보기도 부담스러운 것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기도 하다. 거기다 10회를 관람하면 한 번은 무료 티켓을 제공한다. 일반 상영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 전단도 볼 수 있다. 각종 카탈로그와 포항 출신 작가들의 책도 전시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에는 한 개의 상영관과 휴게실이 나온다. 휴게실에 서니 육거리 시내 전경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여기서 가끔 영화 특전 포스트를 만날 수도 있다. 표를 확인하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상영관은 한 개였지만 260석 규모는 꽤 커 보였다. 한 시간 반의 영화는 제목처럼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비리와 부조리를 마주하는 내용이어서 눈은 주인공의 번뇌하는 모습과 그의 작은 용기를 따라갔다. 독서 모임에서 얘기하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관람하는 동안 일반 멀티플렉스에 적응된 몸이라 의자는 조금 불편했지만 조용한 영화관이라 음료와 팝콘 먹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관람 후에 다른 상영작들을 살펴보니 포항 출신 영화 감독인 허장의 ‘한 채’도 상영하고 있었다. 새해를 맞은 지난달 초에는 모교 학생들로 객석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잘 만날 수 없는 이런 영화들을 인디플러스 포항에서 만나다니 더 기분이 좋았다. 독립영화는 인디영화라고도 불리는데 우리가 만나는 일반적인 상업영화가 아닌 투자와 지원을 받지 않고 작가정신에 충실한 작품을 추구한다. 이런 영화들은 독립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인디플러스 포항은 지역의 유일한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8년째 그 이름을 달고 지역의 유일한 독립영화관으로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년 250일가량 독립영화가 상영되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디플러스에서는 다양한 활동들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시너지’라는 영화 동아리다. 시민들이 단편영화를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영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향상 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인디플러스 포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 인디플러스 포항 관계자는 “영화관에서는 어린이 등 참여 대상도 늘리려고 한다. 이를 잘 이용하는 방법은 회원가입을 하는 거다. 각종 정보도 알려드린다. 이 혜택을 받으면 좀 더 프라이빗하게 인디플러스 포항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2-04

바다와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

동해선 열차길이 열렸다. 바다를 바라보며 강릉까지 달려가보자.기차여행을 떠났다. 포항에서 강릉까지 새로운 길이 놓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표를 예매했다. 동해를 친구삼아 달리는 새로운 선로다. 이른 아침 7시 48분에 포항에서 출발해 아침 11시 넘어 강릉에 도착하는 표를 샀다. 아주 작은 역까지 모두 서는 마치 어릴 적 타 보았던 비둘기호 느낌이다. 월포, 장사, 강구를 지나 일행 중 한 명은 영덕역에서 만났다. 영덕에 사는 언니는 살림꾼이라 손이 무겁게 가방을 들고 기차에 올랐다. 이른 아침 나섰을 우리를 위해 따뜻한 커피와 삶을 달걀을 내민다. 얼마나 손이 야무진지 두 개씩 따로 포장해 떨어진 자리에 앉은 지인들까지 쉽게 나눠 먹도록 배려했다. 들고 온 가방은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백설기, 사탕, 초콜릿, 따뜻한 차에 손 닦으라고 물휴지까지 없는 게 없다. 수십 년 전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완행열차를 타고 온종일 서울로 가며 돌봄을 받던 시절이 떠올라 뭉클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생소한 이름의 역도 보였다. 고래불, 기성, 매화, 심지어 흥부역도 있었다. 놀부역도 있으려나. 웃으며 창밖을 보니 강원도에 가까워질수록 기차는 바다 옆으로 다가섰다. 7번 국도가 드라이브하기 좋은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이유는 바다를 보며 달리기 때문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다. 그런 풍경이 포항에서 삼척까지는 저 멀리 보여 조금 안타까웠다. 정동진역이 역시 최고였다. 모래사장으로 바로 내려설 수 있는 역이어서 사람들로 가득했다. 레일바이크에 탄 사람들도 신나게 바닷길을 달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래시계 소나무까지 기차 안에서 다 보인다. 역사는 작은데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은 넘쳐나는 역이다. 대설주의보가 내려 강릉에서 눈싸움도 해야지 하며 강릉역을 빠져나왔지만, 눈은 먼 산에 하얗게 쌓였을 뿐 온화하다. 도착시간이 점심때라 맛집을 찾아갔다. 감자옹심이와 막국수를 시켰다. 늘 줄을 서는 집이 역에서 걸어 5분 거리여서 찾기 쉬웠다. 따뜻한 옹심이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차를 빌리지 않고 되도록 뚜벅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설 연휴라서인가 기찻길이 뚫려서인가 중앙시장은 사람들로 붐벼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정도였다. 구경을 10분 만에 포기하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근처 전집에서 감자전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시계를 보니 서둘러 다시 강릉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약에서 출발하는 AI버스를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예약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만 3년 운행한다는 무료 셔틀버스다. A코스, B코스, C코스까지 있어 강릉역에서 안목해변 등을 돌아오는 코스다. 인터넷 예약 필수다. 강릉역에서 나올 때 잘 살펴야 한다. 입구가 여러 곳이라 초행길인 우리는 어디서 타야 하는지 몰라 한참 헤맸다. 결국 오후 2시 승차 시간을 지나버렸다. 할 수 없이 허난설헌 생가터까지 택시를 탔다. 가면서 택시 기사님께 여쭈니, 택시 승강장 맞은편에 보라색으로 표시한 곳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고 자동차 혼자 자율주행이라 급정거 급출발할 때도 있어서 6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탑승이 어렵다고 한다. 곧 운행 코스도 변경된다고 하니 잘 알아보고 경험해보면 좋겠다. 강릉에서 여러 계획이 있었지만, 뚜벅이 여행이 쉽지만은 않아서 다음 일정은 취소하고 따뜻한 카페에서 저녁 먹을 때까지 ‘멍 때리기’로 했다. 다들 이런 시간도 좋다며 두런거리며 쉬었다. 부산에서 강원도를 가려면 자동차로 7번 국도를 달려가는 방법뿐이었는데 이젠 눈길 걱정 없이 기차로 데려다준다. 여행하기에 좋은 코스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1-30

이제는 사람 대신 키오스크의 시대

사람 대신 키오스크의 시대가 되고 있다. 키오스크(Kiosk)는 매장결제 무인 시스템으로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기기다. 마트와 음식점에서의 식사 주문과 계산은 물론이고 영화관, 공항, 병원, 은행, 등의 공공시설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고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얼마 전, 한 지인은 경기도에 있는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축의금 키오스크’라는 기계와 마주했다. 축의금을 받는 접수대가 아닌 기계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조금 낯설고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기계에 축의금을 내려니 어색함이 가득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평소에 키오스크를 접해온 터라 축의금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데는 많이 어렵지 않았다. 기계에서 신부 쪽을 터치해 축의금을 넣으니 식권이 나왔다. 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을 보고 인사를 하고 얼굴을 봐야 하는 곳에서 기계라니. 한껏 차려입은 마음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었을 거다. 키오스크는 사람이 사라진 버스터미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매표는 당연히 키오스크로 대체되었다. 환불과 취소도 기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종종 포항에서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갈 일이 있는 이모(53)씨는 “순천에서는 키오스크 4대만으로 매표를 하고 있다. 이제는 얼마 전까지 계시던 도우미도 없어진 것 같다. 아직 키오스크를 불편해하며 예매를 부탁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이분들은 취소와 환불은 더 어려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을 키오스크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빠르게 늘어났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대면이 아닌 비대면의 대표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이 때문에 무인 점포, 무인 계산대 등 무인화를 한 발 더 일찍 당기는 매개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동네 골목마다 늘어나고 있는 무인 편의점, 스터디 카페, 무인 카페, 문구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무인 스포츠시설까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포츠 시설에서는 스마트 기기와 AI로 혼자서도 체계적인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키오스크를 반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절약한다는 큰 이점이 있다. 또 한가지는 24시간 운영이 가능해 고객은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도 편리한 시간에 이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점주 입장에서는 매출을 높일 수 있어 좋다. 이토록 편리하기도 한 키오스크는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뿐 아니라 디지털이 익숙한 젊은 사람들에게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조금은 불편하다는 데에 뜻을 같이한다. 그건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이 아닐까. 결혼식에 갔던 지인도 축의금은 하객의 마음이 담긴 성의인데 사람이 있던 자리에 기계가 대신하니 ‘축하의 의미’가 조금 퇴색되는 것 같다. 내 가족 결혼식이라면 반대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바쁜 일상에 키오스크가 대신하니 좋긴 하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친척들이나 이웃과 함께 웃고 우는 곳에선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게 더 크기 때문일 거다. 붓펜으로 경조사 봉투에 마음을 담아 적어 내려가는 글을 쓰던 때가 떠올라서다. 곱창집을 자주 가는 한 직장인은 “요즘 기계가 대세이긴 하지만 즐겨 가는 곱창집이 이모님을 대신해 기계로 만들어져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키오스크도 로봇서빙도 그렇고 단골집인데 진정한 맛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1-30

달라진 설날 풍경

설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난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88올림픽 이전만 해도 해외여행 자체가 생소했다. 올해 설 연휴동안 보인 국제공항들의 북새통 모습만으로도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여실히 보인다. 설 연휴는 주말과 연휴 사이에 끼어있던 월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연휴 끝 금요일까지 연차를 쓰면 명절 연휴가 9일이었다. 넉넉해진 연휴기간동안 약 134만 여명이 차례 상을 접어두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설 명절의 변화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를 잃었던 당시, 우리의 고유명절 설날도 예외 없이 고초를 겪는다. 그들은 음력설을 ‘구정(舊正)’이라 비하하며 태양력에 따라 신정(新正)을 강요한다. 이렇게 시작된 양력 과세는 해방 후 전통명절인 설날이 되살아나면서 이중과세가 된다. 산업화시대가 열리며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세계화에 발맞춰 양력 과세를 살리고 음력설을 금한다. 그러나 오랜 전통을 버릴 수 없는 국민의 뜻에 따라 1989년 설날이 다시 되살아나며 양력 과세는 하루 휴일로 축소된다. 동요 작곡가 윤극영 선생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노래가 더없이 정겹던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뻥튀기 아저씨가 내지르는 ‘뻥’소리에 쌀, 깨, 옥수수 등을 챙긴 아이들이 몰려든다. 튀겨 온 튀밥에 집에서 고운 조청 버무려 만든 강정은 그야말로 환상의 맛. 떡 방앗간에서 갓 빼 온 가래떡을 엄마 몰래 훔쳐 먹을 땐 너무 맛있어 눈물까지 난다. 설날은 그렇게 아이들을 설레게 했다.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밤을 잘 보내야 한해가 순조롭다며 어른들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구전처럼 일러준다. 그믐밤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도 하고 도깨비가 훔쳐 갈까봐 신발을 방안에 들여놓게도 했다. 정말 눈썹이 하얗게 셀까봐 잠들지 않으려고 꾸덕꾸덕 마른 가래떡을 썰고 있는 바쁜 엄마를 거들며 버티다 버티다 잠이 들기도 했다. 얼른 입어보고 싶은 설빔을 안고 잤던 그 밤은 그렇게 내내 환하게 등불을 밝혀두었다. 설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설빔을 차려입고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공식적으로 한 살 더 먹었다는 의젓해진 마음으로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세뱃돈도 받고 덕담도 듣는다. 아이들은 들녘이나 얼음판 논 위에 모여 팽이치기, 자치기, 앉은뱅이 스케이트 타기 등의 놀이에 정월 초하루가 그저 신난다. 설빔과 맛있는 음식이 일상이 된 지금은 설 준비 내려놓고 해외로 국내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설 민속전통놀이도 체험놀이로 변모했다. 지역마다 설날의 전통 민속놀이인 투호, 공기놀이, 팽이치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을 지역민과 여행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행사장을 마련한다. 포항시도 송도 해수욕장,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영일대해수욕장,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등에서 다양한 K-민속전통놀이 행사가 있었다. 포항 흥해 전통시장의 한 상인은 “명절 대목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해외여행만큼이나 차례상차림 대행 서비스 이용이 당연시될 만큼, 변해가는 설날의 풍습이 익숙해지고 있다. 전통은 곧 뿌리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과 같다. 시류에 따라 고향에서든 여행지에서든 K-전통놀이 체험과 함께 우리 고유명절 설날을 되새기며 ‘명절증후군’이 사라진 행복한 설날을 보내는 것도 좋은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1-30

조선 대표 화가들 작품을 한 자리에서…

경주문화관 1918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다. ‘조선 명화전 · 경주에서 만나는 조선’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12월 17일부터 진행 중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전시는 복제품을 뜻하는 ‘레플리카’로 진행된다. 특이점은 포스코의 PosART기술로 강판 위에 겹겹이 쌓여 출력된 작품들은 촉각으로도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명화를 손으로 만진다는 것은 기존 미술관이나 전시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함께 동행한 아이는 눈보다 손이 더 바삐 움직였다. 전시장은 총 4개의 섹션과 특별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8미터라는 엄청난 크기의 ‘강산무진도’다. 기존엔 보존 상태 문제로 부분전시만 이뤄지다 이번에 레플리카로 전폭 모두 완벽히 재현해 감상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작품들은 모두 실제 사이즈로 구현되어 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의경, 산수화가 전시되고 있다. 사실적 표현에 중점을 두는 서양의 풍경화와 달리 예술가의 마음에서 나온 시선이 함께 동반되어 있다. 삶과 이상이 조화롭게 살아있는 풍경 사이 눈송이처럼 새하얀 매화가 가득 핀 서재에서 유유자적 책을 읽는 선비가 눈에 들어왔다. 온통 알람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내는 입장에서 ‘매화초옥도’ 속 선비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외에도 인왕제색도, 금강산도, 안타깝게도 아직 원본이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도 레플리카로 제작되어 전시 중이다. 다음은 초상화와 인물 풍속도들이 전시 중이다. 사실적이면서도 내면까지 잡아낸 인물화. 대중에게 익숙한 윤두서의 자화상이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김홍도의 익숙한 풍속화와 선이 고운 미인도를 지나자 미술시간에 외웠던 매, 난, 국, 죽으로 상징되는 사군자가 나타났다. 매서운 찬기운 속 꼿꼿이 서있는 나무 속에서 김정희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5만원권 지폐 속 그림으로도 잘 알려진 ‘월매도’가 보인다. 두 작품 모두 계절도 시절도 요즘과 어울리는 그림이다. 네 번째 섹션에 이르자 더없이 사랑스러운 강아지, 고양이와 털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호랑이가 나타났다. 아이는 예상대로 고양이 그림 앞에 놓인 포토존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섬세한 털 표현이 살아있는 동물들과 마주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작은 나비, 풀 한 포기 자연과 인간 구분 없이 소중히 생각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작품 감상이 끝나자 체험존이 기다리고 있다. 나만의 한국화 부채 만들기, 매난국죽 병풍만들기, 자개그림 만들기로 총 3가지 중 하나를 골라 체험할 수 있다. 아들은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등장하는 화조구자도를 골랐다. 강아지들의 귀여운 외형 덕분에 가장 인기라고 한다. 전시는 2024년 12월 17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열리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단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그리고 설 당일인 1월 29일은 휴관이다. 주말의 경우 1월, 2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4시엔 도슨트와 함께하는 감상도 가능하니 시간을 맞춰 노려볼만 하다. 경주시민뿐만 아니라 설 명절을 맞아 경주를 방문하는 귀향객 및 관광객 모두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전시로 추천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1-23

평생을 봉사하며 살아온 이경희 시인 시집 발행된다

불편한 몸으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아온 이경희 시인의 시집이 발행된다. 문경시 흥덕동에 거주하는 이경희 시인의 시집 발행이 준비 중이다. 문경이 고향인 이경희 시인은 선천성 1급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 휠체어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많은 봉사 활동을 하며 다른 이들의 귀감이 되어 왔다. 불편한 몸으로 23명의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돌보고 키워냈다. 그 사연이 알려져 KBS1 TV ‘사랑의 가족’에 출연하였고, 2022년에는 자랑스런 경북도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천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경희 시인은 그동안 아이들을 돌볼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이란 부업은 안 해본 것이 없다. 2000년 이후에는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 판매에 도전하였다. 실내를 앉아서 밀고 다녀야 하는 몸으로 물건을 포장하고 택배를 보내는 일들을 매일 해냈다. 또한 장애인 단체를 찾아다니며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남에게 의지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며 장애인 자립을 강조하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문학 동인이 그녀를 모델로 쓴 시를 읽어 본다. “사십 수 년을 앉아서 걸어온 / 쑥 한줌 뜯고 싶어 들판까지 택시를 대절했다는 / 선천성 하체 불구자인 /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 // 앉아서 음식 만들고 앉아서 가계부 쓰고 / 앉아서 시를 쓰고 앉아서 기도하는 그녀 / 하나님이 와도 앉아서 인사할 /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 // 얼마 전 구강암에 걸려 이빨이 다 물러앉고 / 광대뼈까지 함몰된 그녀 / 급기야 좌측 볼에 구멍이 난 그녀 / 얼굴에 구멍이 나도 참붕어처럼 동그랗고 검은 눈을 가진 그녀 / 목소리가 풍경처럼 뎅그렁거리는 /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 / 그런 그녀가 오늘 외출을 한다 / 휠체어를 타고 분홍연립을 나와 구급차에 오른다 // 이제 가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그녀가 / 밤새 어머니가 그리웠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 골목을 빠져 나가도 // 분홍연립은 분홍이고 / 분홍연립은 분홍 밖에 없다”- 박영석 시 ‘그녀는 분홍연립에 산다’ 이경희 시인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억척같이 살아왔다. 그러나 잦은 병마가 그녀를 괴롭혔고, 병원에서는 가망 없다며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경희 시인은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곤 했다.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작년에는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골반뼈와 오른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였다. 체형의 특성상 뼈가 약해 수술을 할 수도 없었고, 어긋난 뼈가 그대로 아물면서 신경을 건드려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결국 체력이 떨어져 사경을 헤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소식을 들은 동인들이 나서서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시집을 내주기로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꾸준히 써온 시를 아직 시집으로 묶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시를 모으고 교정을 하고 디자인을 정하고 시집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발행이 준비되는 동안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병세가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 이경희 시인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자신의 시가 담긴 시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1-23

추억으로 즐기는 붕어빵도 K-베이커리

포항 철길숲 공원을 걷다보면 살짝 언덕진 곳에 붕어빵 포장마차가 있다. 할머니 두 분이 공원길에 서서 ‘붕어~’라고 외치니 포장마차 주인이 하던 일 멈추고 얼른 붕어빵을 봉지에 담아 배달을 한다. 봉지를 받아들며, 먹고 싶은데 무릎이 아파 언덕을 오르내리기가 힘들다며 미안해하신다. 따끈따끈 갓 구운 붕어빵을 꺼내들고 추억을 먹는 것이라며 소담소담 이야기 나누시는 그 모습이 참 정겹다. 붕어빵도 오르는 물가에 동참하듯 어느새 3마리에 2000원이다. 1000원이면 하얀 봉투에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다섯 마리 담아주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오르는 물가에 붕어빵인들 견뎌내랴. 먹을거리가 흔치않던 시절, 붕어빵은 그야말로 최고의 국민 간식이었다. 붕어 모양 쇠틀에 밀가루 반죽과 달달한 단팥소를 넣어 구운 달콤바삭한 붕어빵은 포장마차에서 즐기는 길거리 간식으로 1930년대 일본의 도미빵이 한국으로 건너오며 도미보다 우리 문화에 더 익숙한 붕어로 변신한다. 1960년대 전후(戰後) 원조로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밀가루가 수입되면서 대중화 된다. 복고열풍이 일던 1990년대 들어 국화빵·문화빵·붕어빵 등 새로운 스타일의 풀빵들이 생겨나며 간편식으로 급성장한다. 최근엔 팥 외에도 슈크림 등 다양한 재료로 속을 채우며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킨다. 찾는 이에 비해 예전만큼 붕어빵 노점이 많지 않아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라도 말도 생겨났다. 한때는 붕어빵 장사로 자식들 공부도 시켰다는데 요즘은 노점 가게가 잘 보이지 않는다. 노점 가게 대부분이 불법이다 보니 신고가 잦아 자주 장소를 옮겨 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끊임없이 오르는 물가로 인해 이익 창출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온라인이나 마트에 냉동 붕어빵까지 출현하고 보니 장사가 더 어렵다. 무엇보다 붕어빵 장사를 오래하면 건강이 좋아지지 않는다. 늘 가스불과 함께하다보니 안구건조증, 화상으로 인한 기미 주근깨, 방아쇠수지증후군, 손목·주관절 터널증후군, 하지정맥류 그리고 폐까지 안 좋아진다. 그러나 지금 붕어빵은 K-베이커리로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도 영국 레스토랑에서도 미국 뉴욕에서도 만날 수 있다. 포장마차에서 즐기는 국민 간식 붕어빵이 K-베이커리라는 날개를 달고 세계로 나갈 때는 그 나라 문화에 맞게 변모한다. 프랑스에서는 디저트 카페에서, 영국은 레스토랑 후식으로, 미국 뉴욕은 자유여신상을 본 떠 여신 빵으로 변신해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유럽까지 날아가 K-베이커리로 사랑받고 있다. 우리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K-패션, K-푸드, K-뷰티, K-베이커리 등등으로 지금은 세계인의 트렌드를 따라 가기보다 새로운 트렌드를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다.‘오징어 게임’의 공기놀이가 세계인의 놀이가 되었듯 길거리 음식인 붕어빵도 세계인의 간식거리가 되어 있다. 붕어 틀을 끊임없이 뒤집고 돌리며 붕어빵을 구워내는 포장마차에는 추위를 녹여 줄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도 있다. 붕어빵과 어묵 국물을 마시며 포장마차 주인과 얘기 나누는 동안에도 손님이 끊임이 없다. 희한하게도 날씨가 추울수록 매출이 높단다. 맞아, 붕어빵은 추워야 제 맛이지. 따끈따끈한 봉지를 안고 가는 그들은 붕어빵이 아니라 추억을 안고 간다. 포항의 붕세권 철길숲 공원. 그 곳에 가면 붕어빵이 주는 아련한 추억을 만날 수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1-23

도서관에서 만나는 경북의 작가들

경북 예천군 호명읍 도청대로에 자리한 경북도서관은 2018년 준공해 2019년에 개관한 경북의 지역 대표 도서관이다. 도민들의 독서 향유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양질의 자료를 확충해 제공하고 문화행사와 기획전시 등 각종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생활 속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연말에는 송년 특별 재즈공연이 개최됐고, 현재는 겨울방학을 맞아 독서교실이 열리고 있으며, 독서동아리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1층에는 열람실과 그림책나라, 동화나라, 어린이자료실 등이, 2층에는 디지털자료실과 문화교실, 기획전시실 등이, 3층에는 일반자료실과 스터디룸, 정기간행물실 등이, 4층에는 자유열람실과 북카페 등이 마련돼 있어 지역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특히 3층 정기간행물실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지역을 대표하는 도서관인 만큼 경북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한 코너 ‘도서관에서 만나는 경북의 작가들’이 마련되어 있다. 벽면에는 ‘당신 덕분에 지성으로 반짝이는 도시 경북을 만듭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경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얼굴 그림과 대표작을 함께 전시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인 이육사, 조지훈, 박목월, 이호우, 김종길, 김혜순, 안도현 등과 소설가 김동리, 백신애, 김주영, 이문열, 권여선, 성석제 등과 아동문학가 권정생까지 총 46명 작가의 작품 380여 권이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한국의 대표 문인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문인들까지 경북의 문학적 서사를 담아낸 공간을 도민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열람하고 읽는 공간이 아닌 지역민의 평생학습관이자 휴식처,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지역밀착형 문화공간이다. 도청 신도시에 방문할 계획이라면 경북도서관에 들러 경북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엿보는 좋은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1-21

알바 구하기 힘들어요

“방학 동안만 일하려는데 알바 구하기 힘들어요” 대학생들이 쏟아낸 말이다. 최근 고환율과 고물가 등으로 사람을 구하지 않거나 그 수를 줄이는 등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대학생 이 모(23)씨는 “방학 동안 주위의 친구들도 대부분 알바 할 계획이었다. 면접을 보고도 연락이 오지 않아 이번 방학은 알바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몇 군데 면접을 보고 겨우 설 명절 알바를 구했다”고 말했다. 겨울방학에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려고 했지만 알바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대학생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대생은 남학생에 비해 택배 일처럼 힘쓰는 일을 하기도 힘들어 알바 구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보통 카페나 음식점에서 알바를 구하는데 최근 채용인원이 줄었고 이동 거리도 멀지 않아야 하다 보니 알바 구하기가 한정적인 것 같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방학에 알바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올해가 알바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학생뿐 아니라 아이가 있어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주부들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만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려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주말에 일하던 곳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쉬고 있다. 여러 곳을 알아보고는 있지만 한 달째 못 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확실히 부족한 것 같다. 주부 장모(51)씨도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최근에 10년 넘게 일하던 곳을 그만두게 되었다. 며칠 전 집 가까이 있는 편의점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연락이 없다. 다른 곳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알바 구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포항 양덕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54)은 “작년보다 매출이 많이 줄었다. 점심시간에 손님보다 알바생이 더 많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이 아프지만 알바생을 줄이기로 했다. 바쁠 때만 포항시에서 운영하는 자투리시간거래소에서 사람을 구해 쓸 생각이다. 올해는 최저 시급도 올라서 내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알바나 단기 일자리는 1년 사이 반으로 줄었다. 통계청의 ‘온라인 채용모집 인원수’에 따르면 지난달은 1년 전과 비교해 51.5%로 나타나 반 이상이나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알바생들이 많이 찾는 한 구직 포털 사이트에서는 알바생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데 평균 2주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0명 중 7명은 일자리 구하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알바를 하는 이유는 학비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다음은 여행경비나 취업 준비 자금으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또 한곳에서 계속 일하기가 쉽지 않아 여러 가지 일을 하는 ‘N잡러’ 알바생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에 일을 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알바를 더 구했다. 일자리 구하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일자리는 있어도 나에게 맞는 알바를 찾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처럼 원하는 시간대와 이동 거리, 원하는 지역 등이 나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중 알바생들은 오전 시간대를 가장 선호했고 선호 지역은 ‘집 근처나 학교 근처’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나 직장인이나 대학가를 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1-21

향의 문화사 염원에서 취향으로

고향, 이라고 입술로 소리 내면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낙동강에 합류하기 바로 전에 자리한 내 고향은 강물 냄새가 늘 묻어났다. 천천히 흐르는 물 옆에 가면 고향같다. 어스름하게 해질 무렵에 아궁이에 불을 넣느라 산밑으로 깔리던 밥안개와 나무 타는 냄새, 그 또한 고향의 향이다. 고, 향. 그 말속에 향기가 들었다. 국립대구박물관 ‘향의 문화사’ 전시에 금동대향로 실물이 와있다기에 가 봤다. 포항은 박물관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가까운 경주와 대구에 박물관이 좋은 전시를 열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려주니 반갑기만 하다. 박물관 한쪽에 커피 향 가득한 카페가 있어서 먼저 들렀다. 연세 많으신 친정엄마 모시고 갔더니, 계피향 가득한 카푸치노를 사주셨다. 입안에 은근한 향을 품고 향의 이야기를 들으러 전시관으로 향했다. 1부 향의 기원을 찾아서, 2부 격식에서 취향으로, 3부 향으로 이어진 마음, 4부 향 문화의 정수, 백제 금동대향로까지 고대부터 현재까지 향의 모든 것을 부려놓았다. 특히 1992년 부여 왕릉에서 발견한 백제의 금동대향로가 제일 관심사였다. 동으로 만들고 금을 입힌 향로인데 발굴한 지 31년이 되었다. 보전이 잘 되었고,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함이 깃들었다. 가장 위에는 봉황이 나르고, 그 아래에는 능선과 봉우리 위에 동물과 사람들을 세공했다. 아래쪽도 엄청난데, 용이 향로의 몸체를 받치고 날아오르려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1월 9일까지 실물 전시하다가 지금은 복제본이다. 복제본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세계의 3대 향은 침향, 사향, 용연향이다. 이 향수의 원재료인 침향나무, 사향노루, 향유고래는 멸종위기다. 사람의 욕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시품 중에 제사상 옆에 ‘교의’와 ‘육각탁자’를 보고 친정엄마가 젊은 시절 보던 물건이라 하셨다. 박물관에 함께 오면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와 고향으로 공간이동 하는 기분이다. 복주머니와 노리개에 비상약을 담거나, 향을 넣었다고 한다. 향수를 뿌리는 것과 비슷한 역할이다. 갖고 싶은 어여쁜 노리개를 뒤로하고 두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자, 향기가 훅 끼쳤다. 전시 주제에 맞게 공간 가득 향을 채웠다. 기획자가 누구인지 아주 기발한 생각이라 칭찬하며 걸었다. 사람 몸집만 한 매향목과 완성도 높은 향완들을 보다가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까지 감상했다. 대구 박물관은 이 전시 외에도 구경할 게 넘쳐난다. 본관에 들어서면 큰 화면이 있는데 전시 관련 영상을 틀어준다. 발 모양이 그려진 곳에 사람이 서면 동작을 따라 하는 모션캡쳐 영상도 나왔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직접 체험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대구 경북에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한 관, 도산서원의 사계와 결혼 60주년 기념 잔치 ‘회혼례’를 재미난 미디어아트로 30분 간격으로 상영하니 다리도 쉴겸 보면 좋다. 그 옆 전시관엔 화려한 한복의 변천사가 펼쳐진다. 부모님이 결혼하실 그즈음의 한복도 있어서 어르신들이 보면 더 좋을 전시였다. 또한 국립대구박물관은 ‘2025 설맞이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27~28일, 30일에는 박물관 실내 문화사랑방 및 해솔관 로비에서 다양한 체험 활동이 펼쳐진다. 복을 불러들이는 의미를 지닌 복주머니 무드등 만들기와 나만의 팽이를 꾸미고 야외 마당에서 겨울철 전통놀이인 팽이치기를 해볼 수 있다. 1일 선착순 500명, 준비된 재료가 부족할 시 다른 체험으로 대체되거나 조기 종료될 수 있다. 행사는 무료이며 별도의 사전 예약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입구에 개관 30주년 사진전도 열린다. 볼거리가 풍성한 박물관이 우리 곁에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1-21

역사 속 을사년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천간 중 甲·乙이 배치된 방위는 동쪽이다. 동쪽의 색상이 청(靑)이라 지난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였고 다가온 을사년은 푸른 뱀의 해가 된다. 재미로 알아보면, ‘푸른 뱀’은 캐나다 펠리섬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몸길이가 2m로 ‘블루레이서(Blue Racer)’라고 불릴 만큼 시속 약 7km까지 움직인다. 1960년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그들의 보금자리에 불을 질러 지금은 100여 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올해는 유독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덕담이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에 놀라 쓸어내린 가슴에 무안국제공항의 여객기 사고까지 엎친 데 덮치며 너나없이 혼미한 정신으로 갑진년을 보낸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에 가슴 졸이며 새해를 맞이한다. 역사를 더듬어 보니 지난 을사년들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누구라도 ‘을사’라고 말하면 바늘귀에 실이 딸려 나오듯 ‘늑약(勒約)’을 생각한다.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절, 일본은 대국의 힘을 입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이완용, 권중현이 나라를 넘기며 을사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은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맺어진 치욕스런 사건으로 우리는 이를 늑약이라 말한다. 나라의 주권이 빼앗기며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한 1905년, 이 해도 을사년이었다. 식민지의 고통은 오롯이 백성들 몫이다. 육십갑자에 의해 다시 돌아온 을사년인 1965년. 한국은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자도입의 일환으로 이 협정에서 온전치 않은 배상과 차관 등으로 5억 달러를 받아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며 경제개발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을사년 2025년 지금 우리는, 애써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나온 을사년들을 돌아보니 그래도 우리는 그 아픔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루어왔다. 1845년 을사년, 조선중기 당시는 칠거지악이 존재하던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자신의 노력이나 자질과는 아무 상관없이 숙명적으로 지워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천민, 노비, 상민, 양반의 굴레는 대대손손 세습 되어 부모가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인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1905년 을사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계급사회는 자연적으로 무너졌지만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비참한 삶이 이어진다.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도 무색하게 다시 6·25 전쟁을 겪으며 모진 세월은 계속된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1965년 을사년, 피해자들의 반발을 뒤로 한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백성들의 한 서린 가슴 아픈 돈을 밑천삼아 ‘잘살아보자’는 이념 하나로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 선진화를 숨 가쁘게 이루며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한 오늘에 이르렀다. 이루기도 어려웠지만 지켜나가는 건 더 어렵다. 분위기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할 때 쓰는 형용사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을사년스럽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쉽게 타협되지 않을 것 같은 정쟁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의 지금 마음은 그야말로 을씨년스럽다. 60년 뒤 2085년 을사년을 살아 갈 후손들이 역사를 짚어볼 때, 2025년 을사년을 사는 우리들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갔노라 기록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