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화두는 AI다. AI가 사람의 언어를 흉내 내고, 예술을 만들고, 심지어 판단까지 대신하는 시대다. 편리함과 속도는 눈부시게 향상됐지만, 정작 ‘인간답게 산다’는 말의 의미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진보하는데, 우리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지난달 청도신화랑풍류마을과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열린 ‘제2회 세계정신문화올림픽 국제학술세미나’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 자리였다.
‘AI 이후의 인류, 정신혁명으로 길을 찾다’라는 주제 아래 학계·정계·종교계 주요 인사가 참여해 8편의 기조 강연과 119개의 세부 발표에 400여 명의 발표자와 토론자가 동원됐다.
올림픽이라면 육상·구기·체조 등 신체의 한계를 겨루는 무대를 떠올린다. 이 행사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정신’을 중심에 세운 대회다. 물질과 속도의 경쟁에 치우친 문명사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가치, 문화적 정체성을 올림픽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한 그 자체가 신선하다. 기술 이전에 그리고 기술을 넘어서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토론자로 참가한 나에게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삼국유사와 민족정기’를 주제로 한 발표와 토론에서 반만년 역사, 긴 시간의 서사를 어떻게 구성하고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연선사의 ‘삼국유사’와 ‘고려대장경’에서 실마리를 찾았던 것도 의미 있어 보였다.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연원을 단군왕검이 평양에 도읍하고 아사달로 옮긴 것을 요임금 시대와 등치(等値)해 민족사의 뿌리를 분명히 했다. 이것은 역사를 단순한 연대기 나열이 아니라 ‘정신의 계보’로 이해하려는 단초다. 오늘의 K-컬처의 바탕, 곧 정신적 토대가 무엇인지 묻고 그 근원을 통해 현재의 정체성과 미래의 방향성을 재정립한 토론이었다.
우리 정신사에는 외부의 도전과 왜곡도 끊이지 않았다. 중국의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 일본의 임진왜란과 식민 지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도 영유권 문제는 단지 영토나 과거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역사와 정통성, 민족의 자긍심과 주체성에 대한 우리의 시험대이다.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도 이 나라가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IT 5대 강국 등에 오른 것은 정신적 저력 때문이다.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기개, 이것이 곧 민족정기, 한국인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고통과 희망, 기억과 책임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 데이터는 역사를 저장할 수 있지만, 역사를 ‘살아 있는 정신’으로 이어가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K-컬처가 진정한 세계문화로의 자리매김은 화려한 콘텐츠의 수출을 넘어 그 속에 깃든 ‘정신적 품격’으로 승부해야 한다. 우리가 민족정기를 굳게 세우는 일은 지구촌 인류 모두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문화를 열어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정신을 선택해 살아갈 것인가, 그 결심 속에 이미 길은 놓여 있다.
/손수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