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시민기자 단상) 내가 본받고 싶은 인물 류성룡 선생

등록일 2026-01-25 15:48 게재일 2026-01-26 12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김윤숙 시민기자

조선시대를 빛낸 수많은 인물 가운데, 내가 가장 본받고 싶은 인물은 류성룡(柳成龍) 선생이다. 그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명재상이자,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이끌며 우리 역사에 깊은 치적을 남긴 인물이다. 단순히 정치가이자 문신이 아니라,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올곧은 신념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켜낸 인물이다.

류성룡을 닮고 싶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지위나 명성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그의 인품과 삶의 태도, 그리고 시대를 넘어선 지혜와 용기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다. 역사 속에서 류성룡 선생은 단순히 높은 관직에 오른 인물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진정한 리더였다.

그의 삶과 업적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1566년 과거에 급제한 뒤, 수많은 요직을 거치며 조정의 신뢰를 얻었다. 붕당정치로 갈등이 깊어 가던 시기에도 그는 중재자의 길을 택해 정치의 균형과 화합을 모색했다.

이러한 품격 있는 절제와 포용의 지도력은 오늘날에도 본보기가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그는 이미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군비 확충과 인재 등용에 힘썼다. 이순신·권율·신충원 등 나라를 구한 명장들이 그의 천거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류성룡의 통찰과 선견지명이 얼마나 빛났는지를 보여준다. 전란 중에도 그는 혼란스러운 조정을 수습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고심하며, 진정한 ‘국가의 버팀목’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전쟁 후, 그는 정치적 시기와 모함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럼에도 원망보다 반성과 깨달음을 택했다. 고향 안동으로 돌아간 그는 ‘징비록’을 집필하며, 자신의 지나온 행보와 조선의 위기를 냉정히 기록했다. 지난 일을 징계하고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의 ‘징비(懲毖)’는 후세를 향한 그의 간절한 유산이었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훈이다. 권력의 중심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고, 위기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냉철한 판단력에 따뜻한 마음을 더한 그의 통솔력은 오늘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진정한 지도자는 권력보다 책임을, 명예보다 진심을 택한다는 사실을 류성룡 선생은 평생의 행보로 증명해 보였다.

기록은 개인의 변명이 아닌 국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준비하지 못한 나라의 책임, 분열된 정치의 폐해, 그리고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담담한 문장으로 전했다.

류성룡의 진정한 품격은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인재를 아끼되 독점하지 않고, 갈등을 조정하되 상대를 배척하지 않았다. 권위로 사람을 누르기보다 신뢰로 이끌었고, 냉철한 판단 위에 따뜻한 마음을 놓을 줄 알았다.

그의 지도력은 강함이 아니라 균형에서 나왔다. 오늘의 사회 역시 복합적인 위기와 분열 속에 놓여 있다. 이럴 때 류성룡의 삶은 하나의 기준이 된다. 위기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던 태도, 권력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록으로 경고를 남겼던 겸허함, 그리고 끝까지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던 자세. 그것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참 모습이 아닐까? 

/김윤숙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