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얼었던 강물 조금씩 풀리며 잔잔한 물결 호수 같은 강과 멀리 보이는 산자락 마음 고요케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는 두물머리에 가만가만 봄이 스며든다. 겨우내 얼어있던 강물이 조금씩 풀리며 잔잔히 물결이 일고, 그 위로 부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 속에 이미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기척이 담겨 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확 트인 시야 너머로 봄바람을 한껏 실은 팔당호의 물결이 방문객을 맞는 이곳은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개의 강물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지명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이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두물머리’라 불러 왔다. 우리말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곳, 그곳에도 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두물머리 입구에는 ‘DUMULMEORI‘라는 영문 조형물이 서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으로 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 대신 두 눈에 담아 본다. 호수 같은 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 참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봄빛 머금은 바람과 잔잔히 흐르는 물결, 강으로 이어진 멀리 보이는 산자락. 마음이 절로 차분해진다.
두물머리의 또 다른 명물은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 불리는 노거수, 400여 년 된 느티나무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견뎌 온 세월이 가지마다 켜켜이 쌓여 있다. 사람들이 그 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고목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가만히 서서 합장을 한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줄기의 발원지는 각각 태백산과 금강산이다. 백두대간의 정기를 품고 시작된 두 물줄기는 서로 다른 풍경과 이야기를 담으며 수백 리를 흘러 이곳 두물머리에서 하나가 된다. 고요히 합쳐진 이들은 팔당호를 지나며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강물은 오랜 세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삶과 역사를 품은 채 오늘도 유유히 서해로 흘러간다.
인류의 역사는 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풍부한 물을 제공하는 큰 강과 비옥한 토지는 문명의 터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강을 우리민족의 역사를 품고 흐르는 ‘어머니의 젖줄’이라고 부른다.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강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흐르는 물을 인생과 학문에 비유했다. 그는 “흐르는 물은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원이 깊은 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며 바위를 만나면 돌아서 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운 뒤에야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역시 그 근원을 떠나 이 두물머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굽이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긴 여정에서 상처도 있었을 터이지만 이곳 두물머리에서 만난 두 강물은 그런 흔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끌어안으며 하나가 되어 다시 흐른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이 커지는 세계정세와 권력다툼의 소식들이 연일 이어진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는 소시민에게 그 소식들은 멀게 느껴지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하다.
봄빛이 따라 흐르는 두물머리의 강물은 오늘도 묵묵히 길을 이어간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강물이 만나 더 큰 강이 되듯, 우리 사회도 흐르는 강물처럼 서로 품으며 조금은 더 따뜻해지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