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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토지’ 20권과 함께 2년의 항해를 시작하며

등록일 2026-02-04 16:36 게재일 2026-02-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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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레따’의 ‘토지’ 전권읽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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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토지 전권읽기‘ 첫 모임, 자기 소개 후  참여 멤버들 인증샷.

2026년의 시작과 함께 내 책상 위에는 묵직한 존재감이 자리 잡았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전 20권. 누군가에게는 그저 거대한 전집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2년 동안 성실히 걸어가야 할 광활한 대지이자, 나를 시험할 기분 좋은 무게감이다. 장장 20개월에 걸친 ‘토지 전권읽기’라는 대항해의 닻을 올렸다.

이 여정의 시작은 우연히 멈춰선 SNS 이웃의 글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월도마’의 도마장인 안 선생이 동네 북카페에서 ‘토지’ 읽기 모임을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예전 살던 아파트의 주민이자 문학 강좌에서 만난 인연으로, 늘 나무의 결을 닮은 단단한 온기를 전해주던 분이었다. 그가 소개한 장소는 내가 사는 동네와 인접한 수성구 시지의 북카페 ‘레따’였다. ‘책과 커피, 자연 가까이에서 즐기는 여유를 더한 공간’이라는 소개말처럼, 천을산이 마주 보이는 그곳은 카페 운영자가 직접 독서 모임을 이끌며 문장의 향기를 나누는 밀도 높은 공간이었다. 가까운 곳에 이런 보석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그 대장정의 승객이 되기로 자처했다.

사실 ‘토지’는 나에게 미안함이 남은 숙제였다. 2022년, 토지 연구자로 마로니에북스 ‘토지’의 편집위원으로도 참여한 방송대 교수님의 추천으로 야심 차게 전집을 구매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완독’이라는 목표에 치여 너무 서둘러 읽었던 탓일까. 작품이 주는 깊은 울림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페이지를 넘기기에 급급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머릿속에 남은 기억마저 가물거린다. 그랬기에 이번 모임은 내게 남다른 사명감으로 다가왔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읽어보리라”라는 다짐과 함께, 나는 2년에 걸친 긴 여정의 닻을 올렸다.

마음은 앞섰지만, 몸은 게을렀다. 한 번 읽어봤다는 자만이 화근이었을까. 모임을 한 주 앞두고서야 부랴부랴 책을 펼쳤고, 예전처럼 또다시 날림으로 읽고 말았다. 다행히 등장인물과 도입부가 익숙해 수월하게 읽히긴 했으나, 내용을 요약하려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메모지에 적어 들고 북카페 ‘레따’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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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레따’ 입구. 

1월의 마지막 날, 카페는 오후 6시로 끝내고, 독서 모임 공간으로 변신한 ‘레따’에는 9명의 멤버들이 모였다. 읽은 도서의 출판사는 제각각이었지만 ‘토지’를 대하는 눈빛만큼은 모두 진지했다. 통영과 원주로 문학 기행을 떠날 계획을 나누며 이 모임이 단순한 읽기를 넘어 삶의 지평을 넓히는 여정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시간, 멤버들의 수준 높은 통찰은 기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이들이 박경리의 문장을 읽으며 느낀 소감들을 나누었다. 처음이라 조금 조심하면서도 각자의 시선을 부딪치며 지적인 불꽃을 일으켰다. 첫 모임에서 나눈 대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참여자들의 깊이 있는 식견에 자극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소박한 감상 속에서 뜻밖의 통찰을 얻기도 했다. 1시간이 찰나처럼 흘러갔다.

나에게는 방송대 졸업생들과 6년째 이어오고 있는 독서 모임이 있다. 어느덧 첫 마음과는 달리 단순한 친목 모임이 되어버린 그곳에, 나는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다. 이곳 ‘레따’의 고수들에게 토론의 묘미를 배워 우리 모임을 다시금 품격 있는 북클럽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꿈을 꿔본다.

2026년, 나의 독서 생활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출발선에 서 있다. 한 달에 한 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성실하게 대지의 숨결을 따라가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2년 뒤, ‘토지’의 마지막 장을 덮는 날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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