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공식 석상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나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빛났다.
속으로 혀를 찼다. 경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더욱이 그 안의 작은 동네에서 평생을 보낸 것을 남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로 삶을 살다가 ‘큰 바위 얼굴’로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 자체를 자랑거리로 삼는다면 문제가 좀 다르다. 그 자랑에 담긴 배타적 우월의식에서는 썩은 냄새가 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공자가 그토록 경멸하며 ‘덕의 적’(德之賊也)이라고 한 ‘향원’(鄕愿)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올해 70의 나이를 맞았다. 제대로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실패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또 역마살이 뻗쳐 평생 이리저리 옮겨가며 살았다. 그런 중에 허리가 휘청거리면서도 세 아이가 딸린 가족을 힘들게 부양해 왔다는 점은 좀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의 세 나라에서 장기체제를 하며 연구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약간은 자랑스러워한다. 또 끊임없이 외국어를 손에서 떠나가지 않게 노력해 왔다. 수십 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저녁 두 차례 미국의 공영방송인 NPR을 꼭 시청한다. 이런 수행적 공부를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2019년에 소위 ‘조국 사태’가 터졌다. 나는 당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커다란 역화가 나와 내 가족을 덮쳐왔다. 소위 ‘문빠’라고 하는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혔다. 아내는 이를 견디다 못해 공황장애로 덜컥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공격 중에서 지금도 선연히 떠오르는 어떤 모습이 있다.
그는 지방에서 변호사를 하는 이였다. 그는 우리나라 사법에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제도를 열심히 들여보았다. 이에 관한 번역서도 하나 낸 것으로 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페이스북 댓글난을 통해 장문으로 나를 심하게 모욕하였다. 그러고선 나를 차단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 글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는 채 그 모욕을 일방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못된 성미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헌법학자로서 ‘사법개혁’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수다한 논문을 쓰고 책도 저술하였다. 내 입장에서 말하건대, 배심제도 하나를 도입한다고 해서 한국 사법제도의 폐해가 모두 수습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심오하고 본질적인 문제가 그 안에 숨어있다. 지금 여권(與圈)에서 추진하는 소위 ‘사법개혁’안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변호사나 처음에 언급한 지역 유지(有志)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이다. 자신이 보는 좁은 세계가 전부인 양 멋대로 뻐기고 남을 업신여기며 또 별 근거 없이 남을 못살게 굴기도 한다. 이러한 공공의 적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은 것 같다.
/신평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