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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연이 만들어준 행복, 가족과 함께한 울진 여행

지난 주말 엄마가 계속 타고 싶어했던 울진죽변스카이레일을 타기 위해 경북 울진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동선은 죽변스카이레일에서 시작해 성류굴을 거쳐 국립해양과학관으로 이어졌다. 첫 목적지는 울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죽변스카이레일이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날씨가 많이 추울거라 예상하고 단단히 준비해갔지만, 다행히 춥지도 않고 쨍쨍하게 날씨가 좋았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스카이레일에 몸을 실었다. 죽변스카이레일은 죽변승차장에서 출발해 하트해변 정차장을 지나 봉수항 정차장에서 방향을 바꿔 돌아오는 코스로 운영된다. 레일 위를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울진의 해안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하트해변은 이름 그대로 하트 모양을 닮은 해안이라 연인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근남면에 위치한 성류굴이다. 울진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인 성류굴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낸 종유석과 석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석회암 동굴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난 종유석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굴 안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자연이 만든 조각 전시장을 천천히 관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장에서 자라 내려온 종유석과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순,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 만든 석주들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곳곳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성류굴의 매력은 단순히 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동하다 보면 통로가 갑자기 좁아지거나, 몸을 낮추고 오리걸음으로 지나가야 하는 구간도 등장한다.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작은 모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동굴 탐험이라는 말이 어울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동굴 관람을 마치고 차로 돌아와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데에는 성류굴 안내지가 도움이 되었다. 안내지에는 울진을 대표하는 여행 코스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중 ‘국립해양과학관’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바닷속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국립해양과학관은 ‘미래동물: 대멸종 너머의 생명’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명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를 주제로 한 영상도 상영 중이어서, 해양 주권과 역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 전망대로 향했다. 이곳에는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하는 ‘바닷속’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실제 바다가 그대로 펼쳐지는 구조다. 이날은 파도가 심해 시야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과 유리벽 주위에 붙어 있는 불가사리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유리창 앞에 모여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수족관이 아닌, 실제 바다를 그대로 마주한다는 점이 흥미를 더했다. 울진에서 보낸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스카이레일에서 내려다본 바다, 성류굴에서 만난 자연의 시간, 그리고 국립해양과학관에서 상상해 본 미래의 바다까지.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자연과 사람, 그리고 가족이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었다. 울진은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 다시 방문하고 싶은 지역이 되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1-01

가을 냉이, 그 뜻밖의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냉이 찜이 식탁 위에 올랐다. 12월 아침의 매서운 공기를 뚫고 전해지는 그 구수하고 향긋한 내음, 입안에 한 술 머금는 순간 흙이 품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하다. 올해 우리 과수원에는 빨간 사과 대신 초록빛의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가을 내내 사과나무 사이사이 지천으로 널린 냉이가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냉이를 캐느라 11월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봄이면 바구니를 들고 들판을 누비던 시간이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3월 10일이 노동절이던 젊은 날, 우리는 시부모님과 아이들 손을 맞잡고 들로 나갔다. 팔공산 수태골 자락과 군위 제2석굴암 언저리의 논밭을 누비며 들꽃처럼 웃던 아이들의 모습, 봄볕에 반짝이며 웃음소리 가득 담던 어머님과 무뚝뚝한 아버님의 미소까지, 그 풍경들은 아직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밖으로 나가 들녘을 마주하면, 어른·아이 모두 하하 호호 크게 웃으며 한마음이 되었다. 땅을 밟고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캐던 그 순간순간이 우리 가족에게 축제였다. 해마다 봄이면 쑥이며 냉이며 달래를 캐서 가족의 밥상에 올리는 일이 연례행사였다. 친정엄마가 “봄나물은 보약”이라며 우리에게 매년 먹이던 것처럼, 나도 봄이면 들로 나가 나물을 캐고 정성으로 다듬고, 들깻가루와 콩가루로 풍미를 더 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 자연의 보약 밥상을 한 해도 거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3월 25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생활 터전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것을 정리하는 사이 봄날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렸다. 봄을 그렇게 보내 버린 아쉬움 때문일까. 올가을 사과밭은 온통 냉이밭이 되었다. 한 해의 가족 건강을 책임지던 봄나물이 가을의 선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과수원을 둘러보던 남편은 싱글벙글 콧노래를 불렀다. 그날부터 11월은 냉이 캐기의 연속이었다. 낮엔 사과밭에서 농부가 삽으로 냉이를 캐고 아내는 옆에서 흙을 털었다. 저녁엔 밤늦도록 거실에서 고단하게 나물을 다듬었다. 손끝이 새카맣게 물들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딸에게 주고, 이웃의 새댁도 주고, 대구의 지인들에게 함께 나누리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냉이를 가장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손이 고단해도 무침과 국을 끓이겠다며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으로 손질하셨다. 냉동실에 가득 쟁여 둔 냉이 봉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남들이 보면 보잘것없는 들나물일지라도 나에게는 자연과 가족을 잇는 소중한 삶의 산물이다. 나는 천상 농부의 아내인 모양이다. 들에서 나는 나물을 사랑한다. 고기반찬이 없어도 살 수 있을 듯하다. 봄날의 연두와 가을의 황금빛 들녘, 싱싱한 무청과 배춧잎의 푸른빛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특히, 추위 속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초록빛 냉이는 그 어느 것보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올봄 만날 수 없었던 그 작은 행복이 가을에 다시 왔다. 얼려두었던 냉이 한 봉지를 꺼낸다. 멸치 육수를 곱게 우려내고, 냉이에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다. 채 썬 무와 냉이를 냄비에 담고 자작하게 육수를 부어 끓인다. 냄비 옆을 떠나지 않고 불을 살핀다. 잠깐 한눈을 팔면 물이 넘친다. 김이 오르면 뚜껑을 열고 육수를 조금 더 부어 정성을 보탠다. 그렇게 구수하고 향긋한 냉이 찜이 완성된다. 자연이 차려준 소박한 밥상 앞에서 농부도 그의 아내도 행복한 아침을 온전히 누린다. 산불이 훑고 간 자리에 다시 돋아난 저 초록빛 생명, 가을 냉이가 건네는 이 뜻밖의 위로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내년의 봄을 꿈꿀 기운을 얻는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1-01

몸살엔 ‘갈비탕’···맑고 깊은 전통한식 보양국물

몸이 으슬으슬 소리를 낸다. 겨울이라고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더니 감기 몸살이 시작되었다. 이럴 때는 뜨거운 국물을 먹고 땀을 쫘악 흘려줘야 한다. 여러 국물 요리가 있지만 즐겨 먹는 음식은 갈비탕이다. 화담면옥으로 전화를 걸었다. 집 주소를 부르기도 전에 ㅇㅇ하이츠죠? 하며 반가이 맞는다. 갈비탕과 닭볶음탕 보내 드릴까 묻는다. 단골이라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물어오니 함께 웃었다. 오늘은 직접 가게에 방문했다. 가게 앞이 너른 주차장이라 차를 대기 편한데 점심도 저녁도 아닌 오후 4시라 우리뿐이다. 오후 햇살이 덜 비치는 자리에 앉아 늘 먹던 갈비탕과 닭볶음탕을 시켰다. 전화번호는 기억하지만, 우리 가족의 얼굴은 모를 것 같아 자주 시키던 ㅇㅇ하이츠이에요 하니까,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주문이 잘 못 가서 늦었는데 화도 안 내서 너무 감사했다며 주방에 있는 주인장에게 우리 이야기를 전하러 달려갔다. 우리 아파트 근처에 이름이 비슷한 단지가 또 있다. 그래서 가끔 우리 갈비탕이 그곳으로, 또 그 집 짜장면이 우리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른다. 그날은 닭볶음탕이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혹시 하고 전화하니 다른 곳에 가져다 놓았다고 했다. 다 식었으니 새로 가져오겠다는 걸 그냥 주세요 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식었으면 데워 먹어도 될 일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직원분이 실수였는데 가볍게 넘어가 줘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서비스로 내왔다. 몸이 안 좋아 뜨끈한 탕으로 덥히려고 갔다가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갈비탕에 관한 기록은 1890년대의 궁중 연회 상차림에 보이나, 갈비는 그보다 먼저 고려시대 말부터 먹은 것으로 추측한다. 쇠갈비를 5∼6㎝로 토막 내서 맹물에 넣고 뼈에 붙은 고기가 떨어질 정도로 연하게 흐물흐물해지도록 푹 곤다. 이것을 곰국과 같은 방법으로 조미하여 간장으로 끓이는 경우가 있고, 그대로 국물과 함께 떠서 파 다진 것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는다. 모든 뼈의 성분이 함께 우러나서 국물이 맑으면서도 맑은장국과는 달리 색다른 별미가 있다. 맑은장국이란 간장으로 간을 해 국물이 맑다. 옛 기록에 보면 ‘가리탕’이라고도 부른다. ‘가리탕’은 한 번 삶은 고기를 건져 내고 삶은 국물을 바쳐서 그 국물에 양념하여 맑게 끓인 탕이다. ‘맑은장국’은 고기를 기름에 볶아 끓인 탕으로, 국물 맛을 시원하게 만들기 위하여 무를 넣는다. 며칠 전 증조부 제사에 오르는 국을 이렇게 맑게 끓였다.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애느타리버섯 데치고 숙주나물도 한번 데쳐서 고기와 무가 끓어 넘칠 때 섞었다. 마지막에 대파를 넣으면 완성이라 갈비탕처럼 맑아 시원하다. 화담면옥의 또 다른 별미는 닭볶음탕이다. 메뉴에는 ‘닭도리탕’이라 적혔다. 도리가 일본어로 ‘새’를 이르니 닭을 두 번 연속해서 부르는 것 같아 볶음 탕으로 해야 옳다. 이름은 그렇게 적어도 맛은 일품이다. 양도 그득해서 둘이 먹다가 남은 걸 포장해 와야 했다. 집에서 주문하면 다음 날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으면 또 새로운 맛이다. 가성비 짱이라 단골이 되었다. 보통 면옥이란 이름의 가게는 냉면 맛집이다. 화담면옥도 갈비탕 베이스에 냉면이라면 믿고 먹어도 될 것이다. 실내가 넓어서 단체 손님들이 즐겨 찾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를 위해 놀이방도 있다. 미리 예약하고 가면 음식이 금방 나온다. 갈비탕을 먹고 나면 원두커피가 할인되니 더 좋다. 물론 카운터에 믹스 커피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브레이크타임이 없어서 점저도 가능한 집이다. 포항시 북구 장량로 115, (054)253-3400.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30

글이 주는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자

어느 시인의 글을 읽다 마음이 찡해졌다. 가난한 소년 시절 아궁이에 군불을 땔 때 열기로 데워진 무릎을 가만히 안고 있는 동안 어떤 느낌이 찾아왔다고 했다. 무어라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느낌,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느낌. 무언가 아른아른하면서도 따듯한 느낌. 어른이 된 후 힘든 세상과 맞부딪쳐야 할 때면 그때의 그 느낌이 서늘해진 가슴에 다시 온기를 준다고 했다. 그 느낌에 공감하는 건 어린 날 나도 똑같은 체험을 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을 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 다 보여주는 화면이 아닌 글을 통해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닐까. 글을 읽으면 작가의 체험에 동화되어 잊고 있었던 사물의 본질을 일깨우게 된다. 더 나아가 인간만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정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현대사회는 이제 영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거의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다. 어느 곳을 가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멀어지면 불안감을 느낀다. 특히 자극적인 짧은 영상에 노출된 사람들은 지그시 긴 영상을 보는 것조차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긴 문장의 글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 문제다. 지금 40~50대가 자랄 때만 해도 과잉행동장애는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ADHD가 흔한 증상이 되었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과잉 자극에 노출되었다는 결과이리라. 학생들의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말도 자주 언급된다. 글을 통해 좀 더 천천히 세상을 보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할 듯하다. 단순히 글자를 아는 것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 말고의 글 읽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화면 속의 가상 세계에서만 살지 말고 내 눈 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을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사진 찍고 영상 찍기에 바쁘다. 그렇기에 생생한 세상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을 놓치고 만다. 조금만 주의 깊게 바라보면 참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있다. 그건 꼭 대단하고 벅찬 것만이 아니다. 무심코 내다본 창밖 저녁놀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부풀었던 꽃망울이 밤사이 활짝 피었을 때, 굳은 땅에 연초록 새싹들이 오밀조밀 앙증스럽게 돋아날 때 바로 그런 때이다.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신이 곳곳에 숨겨둔 위로의 손길을 발견하는 때가. 마치 엄동설한 십 리 산길을 걸어온 내 언 발을 꼭꼭 주물러 주던 엄마의 따뜻한 손길 같은 위로이다. 새해에는 짧은 글이라도 그 감동을 글로 쓰고 글을 읽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독서하는 일을 목표로 삼아도 좋겠다. 자극적인 영상에서 잠시 벗어나 글이 가지는 위로와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끼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12-30

이동 노동자들도 따뜻한 겨울 되기를

겨울이 본색을 드러냈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도리와 장갑, 모자로 온몸을 꽁꽁 감쌌다. 어둠이 내린 도로 위의 자동차 불빛도 추위에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차들 사이로 배달 오토바이, 택배 차량이 눈에 들어온다. 차들 사이를 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추운 날씨에 괜히 마음이 쓰일 때가 있다. 며칠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본 도로 위의 환경미화원도 마찬가지다. 도시와 시민의 일상을 빛내주는 이들의 일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 길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지 궁금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택배차들이 드나든다.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하다 보면 문 앞마다 택배 상자들이 한두 개쯤 놓여 있는 걸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문 앞에 쌓인 상자를 볼 때면 우리의 일상이 택배나 배달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택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은 아니다. 배달 음식도 거의 즐기지 않으니 배달시킬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어쩌다 피자나 치킨을 시킬 때가 있다. 주문하고 문 앞까지 배달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그럴 때면 시민기자가 거주하는 동네 골목과 아파트를 누비는 택배 아저씨를 떠올렸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십 년은 훨씬 넘게 한 지역을 담당하고 계신 것 같다. 다른 택배 아저씨는 몇 번 바뀌어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보통의 키에 마른 몸인데 나이가 있어서인지 특별한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일하는 분이다. 택배사의 파업이 있을 때도 이분의 택배만큼은 멈춤이 없었다. 그래서 주문한 물건이 아저씨의 택배차에 실리기를 바랐다. 날씨가 덥거나 추워져도 혼자서 일하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부인과 함께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택배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선 여러 번 상이라도 주고 싶었다. 거리의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가는 길에 늘 마주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청소도구함을 옆에 두고 일을 하고 계시면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 늘 열심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쉬는 주말이면 뭔가 더 지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다음날 청소 아주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말갛게 세수한 얼굴처럼 엘리베이터 안은 깨끗해졌다. 아주머니의 노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처럼 시민들의 일상을 소리 없이 이어주는 건 비단 택배나 배달 오토바이, 환경미화원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도시의 길 위에선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고 있다. 대리기사, 주차요원도 누군가를 위해 길 위에 ‘서’ 있다. 이들에겐 길이라는 바깥이 자신들이 삶을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들을 위해 최근 포항에서도 ‘이동 노동자 쉼터’를 만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난 5월에 영일대해수욕장에 만든 간이 이동 노동자 쉼터를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폭염과 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세 곳 (상대동, 오천, 장량)이 더 생겼다. 포항시 관계자는 “아직 초창기라 이용률이 높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길 위에 선 이들에게 잠시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이동 노동자 쉼터. 이들에게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마음까지도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12-30

겨울철 별미 과메기 택배시켜 먹으면 어떨까

예로부터 동해에서는 청어잡이가 활발해, 겨우내 청어가 많이 잡혔다. 청어가 너무 많이 잡혀서 다 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말렸다. 마침 겨울이라 얼었다 녹았다 하며 꾸덕꾸덕해진 청어의 껍질을 벗기고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그때는 청어의 눈을 솔가지에 꿰어서 말렸는데. 이를 관목(貫目)이라 했다. 관목의 ‘목’을 포항지방에서는 방언으로 ‘메기’라고 하기 때문에 ‘관메기’라고 하다가 ‘ㄴ’이 탈락되어 과메기가 됐다고 한다. 지금은 청어보다 꽁치를 많이 사용하는데 청어는 두꺼워 말리기에도 더 기술이 필요한 때문이다. 꽁치는 냉수성 어종이라 바닷물 온도가 15도 가량인 곳을 찾아다니며 사는데, 꽁치는 계절에 따라 지방 함량이 다른다. 여름에는 10%, 가을에는 20%, 겨울에는 5% 정도가 된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지방 함량이 가장 높아지는데 이때 과메기는 지방이 많아 제맛이 난다. 왜 동해안 과메기가 맛이 좋을까? 과메기는 꼬들꼬들하게 건조해 줘야 최상의 맛을 낸다. 바람, 온도, 바닷물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포항지방의 바닷바람은 백두대간을 넘어온 북서풍으로 습기가 적당하여 맛을 내는데는 최상이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겉마르게 되고 비린 맛이 나며, 온도가 너무 높으면 지방과 수분이 너무 빠져 나갈 수 있다. 기온은 영하 4도에서 영상 10도가 최적이다. 꽁치의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고 난 뒤 자체에 염분이 스며들게 바닷물에 3회 정도 세척 하는 것이 최적의 염도다. 과메기를 맛있게 먹으려면 뼈를 발라내고 껍질을 벗긴 과메기에 초고추장이나 된장을 뭍혀 생미역, 마늘 편, 실파, 풋고추, 등을 김이나 배추에 싸서 먹으면 된다. 포항지방에서는 묵은김치의 고추가루를 빨아내고 싸서 먹기도 한다. 과메기를 많이 먹으면 어린이는 성장에 좋고, 성인은 피부 미용에도 좋다. DHA와 오메가 지방산의 양이 본래의 재료보다 증가한 때문이다. 또,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의 비율이 이상적이고 아스파라긴산이 있어 숙취 해소에도 좋다. 과메기는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피부미용, 노화 방지, 빈혈에도 효과적이다. 연말과 새해에 집콕 하면서 택배를 신청하면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인데 나라 경제도 생각하면서 오늘은 과메기 한번 시키면 어떨까? /안영선 시민기자

2025-12-28

올해의 사자성어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생각하며 한해를 되돌아 본다

교수신문은 지난 8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의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선정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양일모 서울대 교수는 “지난 연말 계엄령이 선포됐고 올 봄에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했다. 결국 정권이 교체됐고 계엄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으로 여야는 내내 치열하게 대결했다”며 “세상을 농락하던 고위급 인사들이 어느덧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교수회는 2위로 천명미상(天命靡常)을 뽑았다. ‘하늘의 뜻은 일정하지 않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세상과 민심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으면 천명이 옮겨간다는 의미다. 3위는 추지약무(趨之若鶩)이다. ‘오리 떼처럼 우르르 몰려 다닌다’는 의미의 추지약무는 사실 검증보단 감정적 반응이 앞서며 국론이 출렁이는 불안정성 심화의 세태를 꼬집었다. 4위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교수들은 이 사자성어를 통해 정치권에서 비롯된 사회적 가치와 이념에 대한 관점의 분열로 의견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5위는 강약약강(强弱弱强)이 선정됐다. 힘의 격차가 이전보다 더 벌어져 불평등이 심화하는 구조적 문제를 언급했다. ‘변동불거’는 주역(周易) 해설서인 계사전에 나오는 구절로 변화의 불확실성과 유동성,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강조한다. 다만 변화가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계절의 변화, 경제의 호·불황처럼 단순한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되는 반복과 순환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차면 기울고 비우면 채워지는 자연의 도리에 따라 세상도 변화한다. 인간은 이런 변화 속 이치를 상기하며 적응해야 한다고 주역에선 이른다. 2024년에는‘도량발호’(跳梁跋扈)가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도량발호는 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곳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짓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날뛰는 모습을 뜻하는 고어”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는데 20여 년 간 뽑힌 올해 사자성어 중 희망적인 건 하나도 없다. 2026년을 보내고 마칠 때 올해의 사자성어가 희망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국민 모두가 힘 모아 내년에는 희망적인 사자성어가 선정되기를 기대해 보면서 한해를 마무리해 보자. /안영선 시민기자

2025-12-28

사문진 나루터와 대구의 콩팥 달성습지를 다녀오다

20일 오전 10시에 사문진 나룻터에 일행들이 모였다. 달성습지 올레길과 방부제로 만든 나무테크 길을 걸으면서 낙동강 상류 쪽으로 도보로 달성습지 생태학습관을 다녀오기로 했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 생성된 생태 자연 달성습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에 있다. ‘달성습지 생태학습관’은 2019년 9월 개관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대구 생태관광의 1번지로 자리를 잡았다. 일반 관람객은 물론 유치원생, 초중고·대학생까지 단체로 찾아와 생태교육을 배우고 있다. 달성습지의 대표 깃대종은 ‘맹꽁이와 흑두루미’다. 생태관 입구의 포토존에 기념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맹꽁이는 2011년쯤 이곳이 국내 최대의 서식처이자 산란지임이 밝혀지면서 유명해졌다. 맹꽁이 축제가 열리면서부터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생물 다양성 축제”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달성습지의 생태모니터링 결과, 동식물을 통틀어 전체 56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식물류로 297개 분류군이다. 그 뒤를 이어 조류, 어류, 곤충을 포함한 동물류 순으로 생물 다양성이 확인됐다고 한다. 흑두루미는 1970-80년대에 몇백 마리씩 날아와 쉬어가던 중간 기착지였으나 공단이 들어서고 인간의 개입이 늘면서 점차 그 수가 줄었다. 현재는 대부분 순천만 쪽으로 쉼터가 옮겨졌다고 한다. 옛 명성을 회복을 위해 지금은 다시 달성습지를 찾아오라는 염원을 가지고 쉼터와 먹이활동을 유도하고 습지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생태관 외관은 날개를 펼친 흑두루미 형태로 조성했다. 생태관을 중심으로 낙동강 방향으로 테크길로 조성한 생태로를 걷다 보면 배를 타지 않고도 마치 배를 타고 가는 듯한 느낌으로 화원동산과 사문나루에 이르게 된다. 이동 중에는낙동강변 하식애(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절벽)의 대표 수종인 모감주와 회양목이 자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각종 철새들과 강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낙동강 생태로 끝에 도달하면 화원동산을 만난다. 그곳에는 삼국시대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무덤군이 몇 군데 남아있다. 불로동 고분군과 고령의 가야 고분군과 같은 소규모 고분군이다. 신라시대 35대 경덕왕이 아홉 번을 다녀갔다는 구라리의 무지개샘의 전설 이야기도 이곳에서 들었다. 사문나루터는 조선시대 배 300척이 오가며 곡식, 소금을 비롯해서 문물이 유입되던 장소다. 1900년 3월 선교사가 들여온 최초의 피아노에 관한 스토리는 ‘귀신통 납시오’라는 창작 뮤지컬로 제작되었고, 이를 인연으로 매년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도 달성에서 열린다. 유네스코가 지정 음악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일들이다. 생태관 오른쪽 방향에는 갈대 억새의 명소인 대명유수지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아 주변에 광장주차장을 별도 조성했다. 일행은 사문나루터에서 1만2000원(휴일 요금)을 내고 ‘달성호 유람선’을 탔다. 이 배는 낙동강의 여덟 개 보 중 길이가 가장 긴 강정고령보까지 오간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절경과 산과 물의 조화를 사진 한 장에 담았다. 비슬산의 기운과 낙동강의 풍경 속에 역사와 자연생태, 문화가 어우러진 생태관광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28

[시민기자 단상] 크리스마스 유감

매년 12월이 되면 거리나 공원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고 연말 분위기를 띄운다. 크리스마스가 우리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연말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교회나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하고 이 땅에 평화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반인이 더 신나고 마음이 들뜨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앞 다투어 공원마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나 불빛 장식물을 설치하고 있다. 물론 주민 복지와 연말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주민이 원하는 문화행사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좀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도 있다. 물론 연말을 맞이하여 독거노인이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나눔 행사를 유도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대구시 만촌동 어느 대형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성탄절 축하 예배에서 특별 헌금을 전액 사회에 기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기자는 성탄절이 본래의 가치가 많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지을 수 없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거리나 백화점 등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곳에 나가보았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텅 비어 있다. 땡그랑 땡그랑 울려보지만 동전 하나라도 넣는 손길을 보기 힘들다.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차갑게 외면당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천 원짜리 한 장 넣을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어느 독지가가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외투를 사서 보내주었는데 그걸 되팔아서 외투보다 더 급한 식사를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가.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야 할 때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크리스마스가 먹고 마시며 즐기는 행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갈수록 크리스마스 트리가 대형화하고 거리 구석구석 넘쳐나고 있다. 성탄절이 무엇인가. 이 땅에 사랑과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는 날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도 겉으로 보이는 찬란한 트리 불빛 아래 사진이나 찍고 끝나서야 되겠는가.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눈 한번 지그시 감고 지나서야 되겠는가. 이럴 때 일수록 구제는 더 필요하다. 엄동설한에 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때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금년도 모금 계획을 발표하고 내년 1월까지 불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냉혹하게 자선냄비를 뿌리치지 말고 누구나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2-28

한국화가 정혜숙을 만나다

비단과 한지의 결을 따라 모란이 피어난다. 선덕여왕의 이야기 속 꽃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귀와 평화를 주는 현대의 모란으로 재탄생 시킨 정혜숙 화백. 정성으로 피워낸 붉고 푸른 에너지가 당신의 삶을 환하게 비추길 바란다는 화가의 작품 속에선 그녀의 열정이 가득하다. 그녀를 만난 건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4층에서 열린 지아트마켓에서였다. 모란을 주테마로 작업 중인 작가답게 벽면들이 모란으로 가득하다. 정 화백의 모란들은 화려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붉은 모란에서부터 오묘한 색을 띄는 모란까지 모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중 검은 배경에 빛이 나는 듯한 꽃잎을 가진 모란 그림이 있어 작가에게 기법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보통 종이나 비단에 물과 색을 올리는 반면 이 그림은 색을 가진 종이의 물을 빼냄으로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자신만의 방법을 연구 중이라며 바탕 색지에 따라 다른 색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묘한 느낌에 빠져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모란들 사이 눈에 띄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붓놀림으로 그려진 듯 하지만 현장 느낌이 물씬 나는 탑그림이다. 깜깜한 밤 크고 둥근 달 아래 탑이 놓여있다. 달빛이 탑과 댓잎을 감싸듯 비추고 있다. 각각의 다른 존재는 이질감 없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다. 원래 하나의 생명이었던 것처럼. 김시습의 마음을 담은 듯 용장사지 3층 석탑은 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그림 속에 존재한다. 어느 정도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그림을 시작한 계기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림을 시작한 건 마흔 즈음이었다. 삶이 어둡게만 느껴지고 다음날 아침 눈뜨기조차 괴로웠던 시기였다. 그런 마음을 마냥 덮어두고 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삶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그리고 만난 스승이 고 정담 조필제 선생이다. 조필제 선생은 생전 지역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와 인품으로 후배들에게 존경받던 분이다. 또한 제1회 신라미술대전 대통령상 수상자이며 모란 그림 전문가다. 여담이지만 대통령상은 1회를 시작이며 마지막으로 없어져 조 선생은 유일한 대통령상 시상자이기도 하다. 시민기자도 선생께서 생전 건강하실 때 우연히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인심 좋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늘 웃고 계셨다. 도인 같던 스승에게 매일 같이 사는 게 힘들다며 넋두리했다. 그때마다 10년만 더 견뎌보라 하셨다. 50즈음엔 반드시 세상이 달라져 있을거라 단단히 말씀하셨다. 마치 예언이 이루어진 것처럼 50즈음 마음도 삶도 달라졌다. 그러다 조필제 선생께서 작고하셨고 존경하고 의지하던 스승의 죽음은 정 화백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쉬엄쉬엄 취미처럼 하던 그림을 전문적으로 해야겠다 마음먹었고 허만욱 교수를 만나 대학원 2년 동안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더 단단해져갔다. 지금도 기일이 되면 옛 스승을 찾는다. 마치 스승이 앞에서 듣고 있듯 그간의 달라진 작품 결과물들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안부도 전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먼저 현재 경주 선도동에서 운영 중인 일우갤러리는 전문적 갤러리의 모습보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유공간으로 유지하길 원한다. 그리고 작업에서는 큰 욕심 없이 모란을 잘 그리고 싶다 했다. 돈보다 곧은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로 남는 게 그녀의 꿈이다. 화사하면서 강렬한 모란을 닮은 정 화백의 맑은 꿈을 응원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12-25

송년회 풍경이 말해주는 달라진 술 문화

12월이 되니 어김없이 송년 모임이 이어진다. 직장 회식은 물론 각종 동호회와 소모임까지 총회, 송년회, 망년회를 들먹이며 다사다난했던 을사년 한해를 마무리 하는 분위기다.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부어라 마셔라’ 가 당연시되던 술 문화 어디가고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진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방송대 총 동문 송년회. 많은 인원이 함께할 수 있는 널찍한 횟집 식당에서 맛있는 회를 앞에 두고 건배사가 이어진다. 동문회장의 건배사에 맞춰 들어 올린 저마다의 잔에는 소주도 있고 맥주도 있고 음료와 물도 있다. 이미 술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에 익숙한 듯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권하는 사람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없다. 포항영상문화포럼 송년파티는 또 다른 풍경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와인 잔을 들고 가볍게 건배한다. 붉은 와인 잔이 맑게 부딪히는 소리를 배경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대화가 이어진다. 취하기 위한 술자리가 아니라 분위기를 나누는 시간이 중심이 된다. 송년모임에 술이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는다. 기성세대들에게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이자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였다.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권하는 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고 즐기기보다 취하기 위해 마셨다. 식사보다 술이 우선이었고 폭음으로 2, 3차는 기본이었다. 잔이 비워지기 전에 다시 채워지는 술자리는 늘 시끄럽고 분주했다. 술을 거절하는 행동은 무례함으로 여겨졌고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사회성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건강이 무참히 학대받던 시대의 단면이다. 그러나 이제 술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달라졌다. 마시지 않는 선택 또한 존중받고, 술을 마셔야 친해진다는 공식은 힘을 잃었다. 더불어 ‘술 마셔서 그랬다’는 변명도 더 이상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술은 이제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존재가 된다. 취함보다는 맛과 향, 다음날 컨디션을 중시하는 문화로 옮겨가며 ‘음주 강요’는 외려 문제행동으로 인식된다. 코로나 이후 회식 자체가 줄어들며 술자리는 저녁식사나 카페모임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늘었다. 이는 단순한 음주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상명하복과 연장자 중심에서 벗어나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면서 더 이상 술을 통한 통제나 강요가 정당화 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술을 덜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음주 관련 사고와 폭력, 범죄가 줄어들고 사회적 비용까지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밤 10시만 넘어도 골목식당들은 불이 꺼지고 빛을 잃은 거리는 한산해진다. 손님이 없으니 택시도 귀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야간 택시조차 취객보다는 카페 손님을 선호한다. 얼마 전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가진 지인이 택시를 잡지 못해 결국 집까지 운동 삼아 걸었노라 허허롭게 웃던 그 모습은 달라진 밤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건강과 직장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술 문화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선택적으로 마시는 문화가 이미 뿌리를 내렸고 세대가 바뀔수록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술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자리, 송년회 풍경이 말해주듯, 음주문화의 변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12-25

12월, 문학의 온기로 채운 겨울문학제

한해의 결실을 매듭짓는 12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한국수필문학관 ‘2025 겨울문학제’는 한 해 문학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풍성한 자리로 열렸다. 문학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필자에게 이 행사는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난 12월 11일, 한국수필문학관 산하 수필창작아카데미, 대구에세이포럼, 수필알바트로스, 수필세계작가회 등 네 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동인지와 개인 수필집들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고, 그동안 갈고닦은 성취를 서로 축하하는 자리에는 100여 명의 문우가 모여 성황을 이뤘다. 1부는 공도현 작가의 사회로 문을 열었다. 홍억선 관장은 개회사에 이어서 새로 출간된 책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세심한 해설을 전했다. 제자들의 글을 자식 살피듯 세세히 짚어 주시는 관장의 말에 아직 읽지 못한 문장들이 머릿속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어 지난 한 해 각종 수상자가 소개되며 축하의 박수가 이어졌다.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을 받은 엄옥례 작가를 비롯해 아카데미 회원들의 대외 문학지 등단과 공모전 입상자들의 성과가 언급되었다. 필자 또한 청송 객주문학제에서의 작은 결실이 이름으로 불리는 수줍은 기쁨을 누렸다. 동료들의 성취에 아낌없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겨울바람을 녹일 만큼 뜨겁고 다정했다. 2부는 변미순 작가의 진행으로 수필세계 신인상과 문학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수필세계 신인상은 상반기 박인규·윤시오 작가와 하반기 박정애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문학상은 쉼 없이 작품 활동에 정진하며 수필집을 펴낸 조현태 작가가 받았다. 참석자들은 부러움과 함께 진심 어린 박수로 축하를 전했다. 이어진 축하 무대에서 조영애 문우가 선보인 수필 낭송은 이날의 백미였다. 목소리가 잠겼다고 수줍어하던 자칭 ‘백발의 소녀’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깊은 울림을 전하며 장내를 고요한 감동으로 물들였다. 3부 친교 시간에는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황무선 문우가 부르는 ‘소양강 처녀’가 흐르자 필자와 조영애 문우는 참지 못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 응원의 춤사위를 보탰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선배 작가들이 망설임 없이 노래와 춤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정적인 문인이라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진 무대였다. 객석에서도 들썩들썩 몸을 흔들었고, 오색 풍선과 환호로 가득했다. 글을 쓰는 열정만큼이나 삶을 즐기는 에너지 또한 남달랐다. 선후배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이었다. 흥겨운 무대가 끝나자 사진 촬영과 식사가 이어졌다. 작가들의 질서 정연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는 또 한 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글 잘 쓰는 이들은 마음 씀씀이도 따뜻한 것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뒷정리에 나섰다. 잔반 처리와 테이블 정리 등 소란했던 홀은 순식간에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러앉아 차를 나누며 관장님과 소회를 나누었다. 대명도서관에서 수필 수업을 하던 시절부터 2004년 ‘수필세계’ 창간, 2015년 전국 최초로 단일 문학 장르관인 ‘한국수필문학관’ 건립까지 관장의 집념은 숭고할 만큼 꾸준했다. 그 꾸준한 마음을 스펀지처럼 온전히 빨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가운 겨울 공기는 선명한 각오로 가슴 안에 파고들었다. 무심히 흘려보낸 한 해를 되돌아보며, 필자는 더는 망설이거나 갈등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새겼다. 쓰는 사람으로서 글쓰기의 길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손정희 시민기자

2025-12-25

“메밀묵 사려어~~”···'까묵까묵'한 그리움의 한 조각

메밀묵 사려어~~ 묵 먹을래? 친정에서 연락이 왔다. 힘들게 뭐 하러 묵을 쒔냐 했더니 친구분이 메밀묵을 쒀서 나눈 것을 내게 또 나누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양념장까지 만들어 완벽한 세트였다. 단단하고 간이 딱 맞아 겨울밤 훌륭한 간식이었다. 요즘에는 들리지 않지만, 어린 시절 겨울밤이면 “메밀묵 사려어~ 찹쌀떠억!” 골목길에 울리던 소리다. 하지만 부모님이 뛰어나가 사 오신 적이 없다. 묵은 만들어 먹는 것이지 사 먹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안동에서는 설에 메밀묵 많이 해 먹었다. 친구 인숙이네 할매는 시골 밭에 항상 메밀을 심으셨다. 그 밭을 집터로 샀다가 안 짓는 바람에 땅이 척박하니까 메밀을 심으셨다고. 놋 양푼에 한가득 만들어서 추운 설날에 식혜랑 메밀묵이랑 콩인지(강정)랑 항상 먹었다. 양념장에 참기름을 듬뿍 넣어서 묵 위에 한 숟갈 얹어서 숟가락으로 잘라서 먹었다. 그 메밀 향 가득한 맛! 그리고 그땐 멸칫국물이 어딨었나, 물에 김치 쫑쫑 썰어 넣고 백솥에 끓여서 마지막에 메밀묵 두껍게 채 썰어서 시원하게 먹던 그 묵사발도 아주 맛났다. 인숙이가 결혼하고 몇 해는 설에 가면 항상 싸주셔서 귀한 줄도 모르고 먹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주 사무치는 그리움의 한 조각이 되었단다. 고향 떠나 태안 살 때 동네에서 겨울이면 가끔 두부며 메밀묵 팔던 할머니가 계셔서 사 먹어 봤는데 기름을 한 숟갈 넣는다는데 그 향긋하고 깔끔한 메밀묵 맛이 아니더라며 묵 이야기에 엄마 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메밀묵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비율이 중요하다. 냄비에 메밀가루 1컵에 물 4컵을 넣어서 가루가 뭉치지 않게 잘 저어서 섞어준다. 물의 양이 많으면 묵이 물러지고 적으면 딱딱하고 푸석해진다. 파는 가루 중에 메밀 함량이 낮은 가루는 묵이 안 된다. 중불로 바닥에 눋지 않게 저어가면서 끓여준다. 다 끓였다고 바로 식혀버리는데 이게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겉만 굳고 속은 흐물거리게 된다.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꼭 거쳐야 쫀득하고 탱글탱글한 묵이 완성된다. 다 익은 메밀묵을 그릇에 부어서 냉장고에 넣어 2~3시간 식혀준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까다롭다면 맛집을 찾아가면 된다. 자명에 안동식으로 묵을 만들어 묵밥, 묵비빔밥, 묵한접시, 여기에 연잎밥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 가게 이름이 메밀꽃이라 정직하다. 토요일 오후 2시에 도착하니 조용했다. 혹시 브레이크타임인가 싶어 여쭈니 평일에는 오후 3시~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지만 주말엔 쉬는 시간이 따로 없고 손님이 오시면 대접한다고 했다. 묵밥+연잎밥 세트와 묵비빔밥을 주문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손님이 우리뿐이라 벽에 걸린 민화와 창가의 다육이 구경도 하고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한 사장님의 이야기도 엿들었다. 그러는 동안 작은 김치전 두 장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늦은 점심이라 맛있게 해치웠다. 묵밥은 따뜻한 국물이었고, 비빔밥은 정갈하게 새싹 등으로 꾸민 꽃밭 같았다. 함께 나온 공기밥은 노란색을 띠어 무엇을 넣어서 밥을 했냐고 물으니 치자 물이라고 했다. 묵을 먹다가 나중에 밥도 말아 먹었다. 연잎밥은 찰기가 돌아 든든했다. 반찬으로 삼색나물과 각종 장아찌까지 함께 먹으니, 입이 깔끔해져 끝까지 맛있었다. 묵 한 접시는 집에 돌아와 늦은 밤 간식으로 엄마 친구분 솜씨로 채웠다. 지난가을에 통도사 메밀밭에서 ‘산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얬었다.’라는 구절을 되뇌었었다. 오늘 밤 또 읊어 본다. 메밀꽃: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자명로 302, 전화 (054)277-5922.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23

의성 성냥공장에서 열린 김진우 기획전 ‘진화의 불씨’

의성군 의성읍에는 한때 지역 경제를 떠받쳤던 성냥공장이 있다. 1954년 문을 연 ‘성광성냥공업사’다. 1970년대 전성기에는 하루 1만5000갑의 성냥을 생산하며 연 매출 6억 원 이상을 기록했고, 공장 직원만 162명에 달했다. 마을 인력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 단촌과 안동 일직까지 통근버스를 운행할 정도로, 성광성냥공업사는 의성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2013년 5월에 경상북도 산업유산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되었으나 성냥 산업 쇠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그해 11월 휴업을 하게 된다. 2013년 영업이 끝날 때까지 성광성냥공업사는 우리나라의 마지막 성냥 생산 공장이었다. 이후 고(故) 손진국 대표가 토지, 공장 건물 13개 동과 기계, 설비를 의성군에 기증하고 폐업하게 된다. 현재 이곳은 의성군이 부지를 매입해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을 추진 중이며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2025년 12월 현재 ‘산업의 기억이 고요히 잠든 공간’에서 불씨의 잔향을 발견한 김진우 작가의 전시 ‘진화의 불씨’가 열리고 있다. 성냥공장은 폐업 이후에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고 손진국 대표의 명패가 놓인 책상이 있고 폐공장엔 아직 성냥 머리를 얻지 못한 나뭇개비가 잔뜩 쌓여있고 각종 기계와 공구가 있다. 축목에 두약을 찍고 건조하던 ‘윤전기’는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냥 제조 기계로, 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모든 사물은 작품의 배경이 되고 함께 조화를 이룬다. 철, 스테인리스스틸, LED, 우레탄, 에나멜 등의 재료로 완성한 설치 작품은 상징성을 더한다. 사라진 산업의 흔적을 탐사하고 불씨의 진화를 시각화한 ‘의성탐사선’과 ‘성냥나무’가 그것이다. 드로잉과 설계도면은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성냥공장의 기계 부품인 볼트, 너트, 용수철과 빗자루, 망치, 낫, 톱, 드릴, 타커 등에 성냥개비에 두약을 입히듯 노랑 페인트를 입힌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너머로 까마귀 소리가 들리고 폐공장 전시장 안 프레스, 밀링, 공갑기 사이의 다양한 오브제는 명랑한 기운을 뿜어낸다. 이 작품 ‘진화의 불씨’는 작가가 많이 고민하고 마지막에 현장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시간이 퇴적된 공간에 예술의 두약이 입혀지니 낡고, 깊고 그윽한 멋이 난다. ‘안전제일’ 문구가 남아 있는 공장 벽면에는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지붕에는 18미터 높이의 ‘성냥나무’가 우뚝 서 있다. 성냥개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김진우 작가는 전시 설명을 통해 “공장 건축물의 흔적과 나무 형상이 만나 산업의 기호가 생명의 상징으로 재구성되었다”며 “불을 만들기 위해 잘려 나간 나무가 이제는 스스로 불씨를 품은 생명으로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설치미술가이자 엔지니어인 김진우 작가는 폐공장에서 온기와 미래, 생명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전시는 ‘The Spark of Evolution’ 즉, 진화(鎭火)가 아닌 진화(進化)의 의미를 뜻한다. 산불로 침체된 지역에 희망의 불씨를 점화한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계속된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12-23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학교의 아이들은 겨울방학을 기다리고 여러 단체에서는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며 시상식으로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다. 평생학습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종강을 맞아 작품 전시회를 열고 내년 학기를 계획하기도 한다. 지난 19일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인문학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맞아 모임에서는 강사님을 모시고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강사는 회원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글이라는 도구로 잠시 꺼내 보는 시간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만큼만, 쓰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글쓰기 주제는 열한 가지 중 자신에게 맞는 한 개를 골라서 쓰면 됐다. 강사의 말이 끝나자 회원들은 준비한 A4용지와 연필로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노트북 타자 소리 대신 오랜만에 듣는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가 조용한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날 함께한 여덟 명의 회원 중 한 사람도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집중하는 모습에 강사는 조용한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오십여 분의 시간이 지나자, 한 사람씩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회원들 앞에서 읽자니 살짝 부끄럽기도 했지만, 각자가 쏟아낸 이야기에 공감을 자아냈다. 십 대를 포함해 육십 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 회원들이 쓴 이야기는 한 걸음 더 서로를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시민기자 차례였다. 곧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 그간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에게 편지를 쓸 거라고 했다. 오십 대의 중년 여성 회원은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큰 영향력은 아버지였다고 한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럴 땐 하늘을 보며 마음속에서 불러보는 아버지에 대해 썼다. 남편으로서는 별로였지만 초등학교뿐인 학력에도 자식들에겐 더없이 다정했고 배움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셨다고 했다. 역사에 대해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육십 대 남성 회원은 자신이 왜 역사에 관심이 생겼는지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시절, 세상 재미있는 게 없었다. 그중 역사 수업에 흥미를 느껴 역사학과에 진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또 한 분의 여성 회원은 여러 나이대를 거치면서 이제는 삶이 잘 마무리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짧은 이야기를 했다. 사십 대 남성 회원은 자기관리 실패로 몸무게가 100kg 넘게 나간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나머지 가족들을 힘들게 한 게 미안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을 끄는 건 열다섯 살 중학생이었다.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지만 당당하게 자신이 쓴 이야기를 펼쳤다. 지금 나이에 다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삶의 의미에 대한 거였다. 어릴 때는 남이 해주는 선택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선택이 더 의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쫑긋하며 듣다가 이야기를 마치자 큰 박수를 보냈다. 글쓰기와 발표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두 시간을 꽉 채웠다. 회원들은 자신의 지난 이야기가 살짝 부끄럽기도 했지만, 글쓰기 시간을 경험한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강사는 “한 번의 글쓰기로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글쓰기는 바쁜 일상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고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도구다. 앞으로도 내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가 계속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12-23

수필사랑문학회, 제122차 수필산책

수필사랑문학회(회장 정근식)는 지난 20일 경주시 양남면 주상절리 일원에서 제122차 수필산책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회원 24명이 참여해 겨울 바다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주상절리의 장엄한 풍광을 감상하며 수필 창작의 소재를 발굴하고, 회원 간의 친목과 문학적 교감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수필산책은 격월로 진행되는 수필사랑문학회의 정기 프로그램으로, 자연과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문학으로 풀어내는 창작 중심의 활동이다. 이날 회원들은 동대구역에서 열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에 도착한 뒤 관광버스로 이동해 주상절리에 이르렀으며, 출렁다리를 건너 읍천항 산책로를 걸으며 작품과 문학에 대한 담소를 이어갔다. 행사를 이끈 정충양 수필가는 “수필사랑문학회가 매월 두 차례 이상 활발한 토론을 이어가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유적지와 관광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창작의 씨앗을 발굴하려는 노력에 있다”며 “이러한 현장 중심의 활동이 회원들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정근식 회장은 “수필사랑문학회는 앞으로도 수필산책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 행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회원 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수필문학의 저변 확대와 문학적 성장을 위해 힘써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2-21

대구 중구노인복지관, ‘2025 중구건강대학 졸업식’ 개최

중구노인복지관(관장 장윤영)은 지난 12일 중구노인복지관에서 ‘2025 중구건강대학 졸업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한 해 동안 배움에 매진한 60여 명의 어르신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지난 학기의 성과를 함께 돌아보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졸업식에는 재학생과 졸업생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인사말, 재학생들의 수기문 발표, 직접 제작한 영상 시청, 졸업장 및 우희삼 학생회장을 포함한 개근상 시상, 단체 사진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식전공연은 허정현 가수가 밝고 활기찬 가요로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며,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어 진행된 수기 발표에서는 정유자 씨와 정희락 씨가 지난 한 학기 동안의 배움과 성장 과정을 진솔하게 전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홍보부장 여기학씨가 제작한 활동 영상을 함께 시청하며, 학기 동안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2학기 커리큘럼과 연계해 제작된 문학집도 배부돼 참여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2학기에 중구건강 대학에 출강한 강사진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교수진으로 유명하다. 행정학박사이자 작가 김창규의 초고령사회 어찌할 것인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정우락 교수의 조선시대 선비들의 놀이와 풍류, 독서치료사 신지원의 책을 통한 마음 다스리기, JD 스토리 교육 문화연구소 이정도 대표, 낭독의 즐거움 (시낭송), 대구대 인문학연구원 배지연 연구교수의 권정생 ‘강아지 똥’을 통해 본 나에 대한 사랑, 이경식 작가의 내 인생의 일기(자서전 쓰기),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박상영 교수의 시조 한 편, 인생을 담다( 박인로와 조선의 시인들),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김성택 명예교수의 문학과 예술의 고향, 프로방스로 여행하기, 대구교대 윤리교육학과 장윤수 교수의 논어 평범과 일상을 강조한 고전, 라온인재양성 교육원장 강양수 웃음치료사의 웃음을 통한 마음 치유책과 마음 치유,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허정애 교수의 역경을 넘어선 삶,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중심으로, 고려대 인문대학 설중환 명예교수의 김시습의 ‘금오신화’와 마음의 평화 얻기 등이 있다. 중구노인복지관 관계자는 “2026년에도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한 노년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즐겁고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21

대구사진작가협회 연말 결산 대규모 사진축제 성료

대구사진작가협회 (지회장 이호규)는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2층 전시실에서 ‘제12회 대구사진페스티벌’과 ‘제16회 포트폴리오 특별기획전’, ‘제39회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 공모전’을 통합 전시하는 대규모 사진축제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는 사진예술의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국내외 사진작가 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구사진페스티벌’ 작품전에는 곽인숙, 권인순, 노재승, 박은주, 이경숙, 이재생, 이호경, 하의종 등 8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동시대의 감성과 사진의 예술성을 담아낸 작품을 선보였다. 초대전으로 일본 교토사진가회의 나카무라 세츠야 (일본 오사카대학 사진학과 졸업), 히라이 투요시 (주식회사 아텍 대표이사), 후쿠다 쇼이치 (교토사진가협회 창립회원), 코바야시 사다히로 (일본사진가협회 회원) 등 추천작가 4명의 작품 12점이 전시됐다. 국제 교류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제35대 대구시지회 임원 14명의 작품도 참여해 총 28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제16회 포트폴리오 특별기획전’에는 김정애, 김정현, 오덕환, 이원희, 이종우, 한향자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개별 작품을 넘어 작가의 작업 세계와 사진적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작품을 전시해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또 전국에서 64명이 참여한 ‘제39회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 공모전’의 입상작도 동시에 전시됐다.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금상 박은혜 (북치는 여인), △은상 권오호(여인의 한풀이), 이해용(촬영1), △동상 김계연(비누방울 놀이), 김홍숙(찰나), 최상호(무희의 시선) △가작 신호억(나도 기장이야), 유재희(우아하게), 이영애(10월의 선물), 임영필(가을여인), 장운록(포즈) △장려상 권순임( 각설이), 노은정(유혹), 박나윤(웃음으로 달리다, 우리가족), 이경미(흥겹게), 허봉희(천사처럼) △입선작 강경임(날아라 고무신) 외 47점 선정됐다. 이날 작품전에는 최미경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장,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정일균 문화복지위원회 의원, 이창환 대구예총 회장, 강정선 대구예총 수석부회장 등 지역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 축하를 했다. 대구사진작가협회 이호규 지회장은 “이번 통합 전시는 지역 사진예술의 현재를 시민과 나누고, 국내외 교류를 통해 사진문화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라며 “사진을 통해 시대와 인간, 지역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21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말꼬리 잡기

컴퓨터는 세상과 통하는 나의 창이요 날마다 열리는 ‘희로애락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곳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전원을 켜는 일이다. 이메일 확인, 카페 출석 체크, 신문 헤드라인까지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주무르는 느낌!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세계 일주를 하는 셈이다. 요즘은 특히 내가 가입한 카페의 ‘말꼬리 잇기’ 코너에 푹 빠져 있다. 이 코너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말 달리기 경기장’이다. 누군가가 던진 말의 꼬리를 붙잡고 나는 말머리를 만들며 질주한다. 어찌 보면 말의 줄다리기요, 또 어찌 보면 말장난의 향연이다. 예를 들어 어부바-바이오-오렌지-지필묵-묵사발 식이다. 묵사발에서 ‘발로 차지 마!’라고 이어가는 회원도 있고, ‘발끝에 피어나는 봄’으로 시인처럼 쓰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말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는 신개념 놀이문화다. 회원들은 대부분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이 닉네임들이 또 기가 막히다. ‘물레방아’, ‘굼뜬 소’, ‘군자 향’, ‘수선화’, ‘바람의 언덕’, ‘등등. 이쯤 되면 카페라기보다 조선시대 시문(詩文)모임 느낌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말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회원 ‘대봉 군자 향’이 퀴즈를 하나 냈다. “달 밝은 밤에 대봉 군자 향이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 말고 갑자기 캄캄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선 모습을 여섯 글자로 묘사하시오!” 맞추면 상품이 있다고 하자 순간, 모두의 손가락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건 퀴즈인가, 수수께끼인가, 아니면 문학평론인가. 어떤 이는 ‘서울대 인문계 2025학년 수시 논술 문제 같다’고 하고, 다른 이는 정답 ! ‘달 어디로 갔노’ 하며 외친다. ‘달이 밝디 마는’, ‘와이리 어둡노’, ‘멍청한 군자 향’, ‘상품에 눈멀어’ 등등. 차라리 국립국어원에서 회수해 가야 할 해학의 향연이 펼쳐진다. ‘달 밝다’ 했다가 ‘캄캄하다’고 하니,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되지만, 이 코너에선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바보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 문제는 스님이 화두로 잡고 십 년은 정진해야 풀릴 문제”라고까지 했다. 출제자는 거기에 또 한마디 얹는다. “문제가 어려웠다면, 여러분 수준 탓이 아닐까요?” 그 말에 카페는 조용한 분노(?)와 유쾌한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분명 기분 나쁜 말인데도, 다들 웃고 넘어가는 걸 보니, 이곳 사람들은 참 너그럽다. 마침내, 한 회원이 ‘쓸데없는 사람’이라는 여섯 글자를 올렸다. 정답이었다. 순간, 카페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 정답은 철학적이면서도 해학적이고, 군자 향의 내면을 절묘하게 저격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답을 맞힌 회원의 닉네임은 ‘바람의 언덕’이었는데, 정답자는 일부러 ‘바람난 언덕’이라고 발표했다. 이쯤 되면 유머인지 모욕인지 헷갈리지만,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이곳은 그 어떤 말도 유희가 되는, 말의 자유국이다. 사실, 끝말잇기라는 게 시시콜콜한 말 따먹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언어 감각을 키우고, 발상의 전환을 배우며, 창의성을 기르는 훈련이다. 한마디로 ‘말장난’을 가장 진지하게 하는 곳이다. 어쩌면 작가 지망생, 시인, 개그맨의 전초기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이 창(窓)을 연다. 오늘은 또 어떤 말꼬리를 잡을까? 어느 회원이 ‘사이다’ 같은 말로 나를 웃게 만들까? 농담 따 먹기라 해도 좋다. 그 가운데서도 순 기능은 있으니까.

2025-12-21

땅속에 잠든 가락국의 시간을 찾아서

김해의 땅속에는 여전히 가락국의 오래된 시간이 숨 쉬고 있다. 구지봉에서 분성대, 봉황대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 신화와 역사가 잔향처럼 피어오르며 현재의 풍경과 포개진다.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 너머로, 오래전 사람들의 기운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다가온다. 구지봉은 6가야 시조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곳이다. 하늘에서 여섯 개의 알이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봉우리의 기운처럼 남아 있다. 정상 동편에는 남향으로 자리한 수로왕비릉이 펼쳐지고, 능선은 거북의 목처럼 서쪽으로 뻗어 ‘구지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복원된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남방식 고인돌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원전 4세기 추장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이 고인돌의 윗면에는 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진 ‘구지봉석’이 새겨져 있다. 맞은편 비석에는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라는 문구가 또렷해, 신화적 탄생의 무게를 전한다. 그 앞에 서니 오래된 시간의 여운이 조용히 마음속으로 번져왔다. 1976년 봉우리 중앙에 세워졌던 여섯 개의 알과 아홉 마리 돌거북 조형물은 지금 수로왕릉 연못가로 옮겨져 있다. 그런데 원래 위치에 두는 것이 역사성이 더 있을 것 같다. 육란의 석조상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 설화가 세월을 넘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분성대는 가락국의 또 다른 중심지다. 지금의 연화사가 자리한 이곳은 2008년 ‘김해객사 후원지’로 지정되었으며, 한때 중궁전이 있던 터로 알려져 있다. 허왕후가 가져온 파사석탑을 세우기 위해 호계사가 세워졌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지금은 궁궐의 흔적이 거의 사라져 ‘가락고도궁허’ 비만 외롭게 서 있다. 비석 뒷면에는 윤용구가 글을 짓고 김문배가 1928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앞에 서자, 사라진 궁궐의 자리는 오래된 빈터처럼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적막 앞에 서니, 태풍 사라호로 집터를 잃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잿빛 잔상처럼 떠올랐다. 역사와 개인의 기억이 한순간 겹친다. 봉황대는 회현리 패총과 함께 사적 제2호로 지정된 유적지다. 구릉을 오르니 김해 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이곳이 오랜 세월 주거지이자 대외 교류의 창구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의 발굴 조사에서는 도랑과 집터, 고상 가옥의 흔적이 드러나며, 이곳이 한때 교류와 생활이 뒤섞여 흐르던 터였음을 확인하게 했다. 외부 침입에 대비하면서도 무역 활동을 위한 저장과 집배송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봉황대는 허왕후를 맞이하기 위해 수로왕이 신귀간에 명해 머물게 했다는 승점의 자리로도 추정된다. 서편 기슭에 복원된 고상 가옥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요하게 재현하며, 유적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가락국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세월 속에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구지봉의 설화와 분성대의 궁궐, 봉황대의 삶의 터전은 여전히 땅 아래 깊은 호흡을 간직하고 있다. 그 위를 걷는 일은 오래된 시간과 오늘의 내가 마주하는 일이다. 과거는 멀리 있지 않았다. 땅의 기억 위에서 현재의 내가 다시 세워지는 순간이 김해의 시간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12-21

아홉문중이 세운 배산임수의 대구 이락(伊洛)서당

대구시 달서구 파호동에 위치한 이락서당은 한눈에 봐도 풍수지리상 딱 맞아 떨어지는 맞춤형 가옥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는 풍수지리의 근본이듯이 이락서당이 서있는 자리는 뒤로는 궁산(弓山)을 베고 앞으로는 금호강과 낙동강을 바라본다. 풍수(風水)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에서 볼 때 이곳은 명당임에 틀림없다. 서당 북쪽은 영귀대(詠歸臺)라는 푸른 절벽이 금호강을 안고 궁산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인데, 절경 중의 절경이다. 이락서당은 이름부터 특별하다. 이락(伊洛)은 금호강의 옛 이름 이수(伊水)와 낙동강의 옛 이름 낙강(洛江)을 딴 이름이다. 서당의 구조는 마루를 중심으로 동서 양 쪽에 방이 하나씩 배치된 형태이다. 동쪽 방은 모한당, 서쪽 방은 경미재라 이름을 붙였다. 모한은 한강 정구 선생을 존숭한다는 뜻이며 경미는 미락제 서사원 선생을 공경한 뜻이라 한다. 이락서당은 대구시민이면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구지하철 2호선 강창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족하다. 외지에서도 대구외곽고속도를 타면 서울, 부산 등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면 서당이 궁산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락서당은 낮에 봐도 고풍스런 모습이 아름답거니와 밤에 보는 야경은 옛 궁궐을 연상할만큼 아름답다. 조선시대에는 육지보다 강을 이용한 이동이 편리했던 점을 감안하면 발아래 금호강이 흐르고 육안으로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낙동강이 합수하니 이보다 더 교통이 편리한 곳이 또 있었을까 싶다. 이곳의 지명 또한 강창이니 그 시대에 세금으로 거둔 곡식들을 가득 실은 배들이 줄을 이어 서울로 떠나가는 광경을 이락서당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락서당은 조선 후기 1789년에 착공하여 이듬해 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대구, 칠곡, 성주의 향촌 아홉 문중에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과 향촌 사회의 교화를 위해 뜻을 모아 정구 선생과 서사원 선생이 활동하던 곳인 이 파산(파호동 옛이름)에 서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아홉 문중은 서재의 성주도씨, 덕산의 밀양 박씨, 묘골의 순천 박씨, 남산의 달성 서씨, 수성의 일직 손씨, 슬곡의 광산 이씨, 상지의 광주 이씨, 하당의 전의 이씨, 원대의 함안 조씨 등이다. 이락서당은 낮에는 새로 난 고속도로와 지하철 2호선과 유유히 흘러가는 금호강과 낙동강을 바라보며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휘황찬란한 밤 불빛에 휩싸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는 않을까. 서당은 노후화로 보존 및 안전을 위해 2010년에 중건하였는데 서당 건립에 참여한 아홉 문중이 설립 당시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락서당 규약’을 제정하여 현재까지도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향촌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락서당은 향토 문화유산으로도 가치가 높다하겠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2-21

구룡포 과메기, 겨울 해풍을 품은 자연의 맛

추워진 날씨, 그 찬기를 그대로 품어버린 과메기. 맛이 최고다. 이 별미는 동해 겨울바다의 햇살과 해풍 그리고 말리는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올해 꽁치가 예년에 비해 씨알이 굵다더니, 매년 타지 사는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과메기가 올해는 유난히 더 쫄깃하고 맛있단다. 야금야금 가격이 올라 여기저기 선심 쓰기에 많이 부담스러워졌지만 그래도 겨울 별미가 주는 행복을 택배에 실어 보낸다. 이제 과메기 하면 포항 구룡포가 연상될 만큼 겨울을 대표하는 지역 특산품이 된 지 오래다. 겨울 음식은 대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물이 대표한다. 뜨거운 불에서 갓 나온 따끈한 군고구마나 후루룩 마시는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 한 모금이 추위를 이기는데 최상이다. 그러나 겨울바다의 해풍을 그대로 품은 과메기도 뜨끈한 국물만큼이나 겨울 식탁을 행복하게 한다. 낮에는 햇살이, 밤에는 동해의 해풍이 번갈아 말리는 이 생선은 자연 숙성식품이다. 기온이 낮고 습도가 적은 겨울이라야 비린내 없이 쫀득한 식감이 제대로 살아난다. 자연의 온도와 바람이 생선 속 지방을 천천히 녹이고 다시 굳히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과메기 특유의 풍미가 깃든다. 구룡포 바다의 햇살과 해풍 그리고 적당한 시간의 건조과정이 조미 역할을 하며 비린 생선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있는 생선요리가 된다. 지금은 ‘꽁치 과메기’가 일반적이지만 애초 과메기는 청어였다. 1960~70년대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꽁치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두 생선은 지방 함량이 달라 건조시간에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겨울 해풍과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 맛이라는 점에서 과메기의 본질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겉은 살짝 마른 듯 꾸덕꾸덕하지만 속은 촉촉하게 살아 있어 씹을수록 고소한 기름이 배어 나오는 특유의 감칠맛에 물미역이나 돌김, 생마늘, 초고추장과 함께 먹으면 향이 부드럽게 잡혀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번 맛 들이면 겨울마다 찾게 되는 중독성이 있지만 자연 숙성에서 오는 특유의 생선 향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기도 하다. 과메기가 이제는 단순한 지역 명물에서 겨울을 상징하는 전국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냄새를 줄인 초보자용 과메기. 밀키트형 제품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데다 포장기술의 발전과 온라인 유통 확대로 인해 점점 더 계절의 보편적인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람과 햇살이 천천히 만들어 주는 자연의 맛이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지만 자연건조의 시간이 필요한, 느림으로 완성되는 풍미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 한 조각 속에는 겨울 바다의 공기. 포항의 해풍. 그리고 시간이 만든 깊이가 고스란히 담긴다. 과메기는 결국 겨울이라는 계절이 직접 빚어낸 가장 자연스러운 선물이다. 주문 전화를 하니 주문량이 너무 많아 순차적으로 보내다보니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답변이 온다. 냉동 꽁치를 해동시키고, 손질하고, 말리는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밀려드는 주문에 덕장 안 외국인 근로자들의 손길도 따라 바쁘다. 겨울 바다와 지역의 삶이 담긴 구룡포 과메기.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소문난 식당에서 대기하듯 별미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소한 즐거움이 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12-18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 즐거운 동기 모임

11월 마지막 주에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작년에 첫 모임을 연 이후 올해 두 번째 모임이다. 장소는 캠핑장과 함께 운영하는 펜션이었다. 모교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식사를 위한 각종 식자재와 조리도구들은 식당을 운영하는 회장이 도맡아서 준비했다. 바리바리 준비물을 싣고 회장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친구들도 하나 둘 달려왔다. 제주 친구가 보낸 새콤한 귤은 우리보다 먼저 펜션에 도착해 있었다. 고향을 지키며 사과 재배를 하는 친구 둘은 맛난 문경사과를 한 박스씩 들고 왔다. 포항 친구는 겨울 별미인 과메기를, 안동에서 온 친구는 안동식혜를 들고 왔다. 문경 봉천사에서 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친구는 배추와 김치, 참기름, 쌈장 등을 푸짐하게 싸 왔다. 펜션 마당에 바비큐 숯불이 피워지고 잘 숙성된 고기가 구워졌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와 생배추와 고들빼기김치 등으로 푸짐한 저녁상이 준비되었다. 오래전 꼬맹이 때의 추억들이 불려 와 정겨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그때 코흘리개 아이들은 먼 시간을 건너와 벌써 머리 희끗한 중년이었지만 마음은 해맑은 그때의 마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 식전 공연으로 해금 연주가 있었다. 해금이 내는 고요한 음률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음으로는 여성 동기들의 댄스 시간이었다. 의정부 친구가 준비해온 알록달록 가발과 재미있는 선글라스를 장착했다. 노래 ‘유난이다’에 맞춰 마구 막춤 퍼레이드를 벌였다. 다음으로 마종기 시 ‘우화의 강’ 시낭송 타임을 가졌다. 시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같은 고향 같은 학급에서 만나 6년을 함께 공부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인연을 생각했다. 이어서 즐거운 게임 시간이었다. 빙고 게임에 당첨되어 경품을 탄 친구는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게임도 하며 여러 가지 책임과 살아내는 무거움 따위는 다 던져버리고 어린 시절의 해맑음으로 돌아간 즐거운 시간이었다. 제주에 사는 친구가 늦은 시간에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문경까지 달려온 것은 어느 모임에도 없을 역대급 사건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천년고찰 대승사를 방문했다. 점심 식사는 고향에서 축산업을 하는 친구가 송어회를 샀다. 각종 채소를 채 썰어 신선한 송어회와 초고추장에 비벼 먹는 비빔 송어회는 문경의 유명한 맛이다. 바쁘고 숨차게 달리기만 하다가 잠시 여유를 가지고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겉모습은 이제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지만 마음은 순수했던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 그대로였다. 그 시절 때 묻지 않았던 동심이 가득했던 때로 되돌아가 마음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동기들 모두 몸 건강히 내년에도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동기 모임을 마쳤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12-18

비원뮤직홀이 지역 주민들에게 전한 클래식의 온기

도심 속 아담한 공연장 대구 비원뮤직홀에서 3주간 총 세 차례의 공연을 잇따라 관람하며 음악으로 일상을 가득 채웠다. 각 공연마다 다른 동반인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11월 22일 열린 ‘듀오 보체 시리즈 2 – 박소영 & 석정엽 듀오 리사이틀’은 소프라노 박소영과 테너 석정엽의 탄탄한 호흡과 연기력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혼자 찾은 공연이었지만, 두 성악가의 풍성한 울림이 홀을 가득 메워 외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앙코르는 원래 한 곡만 예정되었으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즉흥적으로 추가 곡을 선보여 관객들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11월 28일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콰르텟 아프로디테’ 콘서트를 찾았다. 창단 2년 차인 ‘아프로디테’는 팀명 선정 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남자들이 ‘아프로디테라면 우리 공연은 절대 안 갈 거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고수했다”는 말에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지휘자 김성진의 세심한 해설 덕분에 브람스와 슈만의 음악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고, 특히 마지막 곡인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은 네 연주자(바이올린 조혜우, 비올라 배은진, 첼로 홍승아, 피아노 이윤수)의 완벽한 호흡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남자친구는 “첼로의 매력에 새로 눈떴다”며 감탄을 전했다. 12월 6일은 엄마와 함께 ‘EZ클래식: 더 캔들라이트’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전부터 설치된 수많은 촛불이 관객들을 맞이했고,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는 관객들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으로 순간을 담았다. 진행을 맡은 EZ CLASSIC 권은지 대표는 “화려한 조명 대신 은은한 촛불이 빚어내는 특별한 분위기를 느껴보자”라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연주된 곡들은 대부분 대중에게 친숙한 클래식 명곡으로, 평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도 편안히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연말 정취를 물씬 풍기는 영화 ‘나 홀로 집에’ OST와 앙코르로 연주된 크리스마스 캐럴은 가족과 연인 단위 관객들에게 따뜻한 여운을 선사했다. 공연 후 엄마는 “연주자들이 짧은 시간 동안 20여 곡을 연주하느라 팔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됐다”며 웃음이 묻어난 소감을 전했다. 비원뮤직홀은 지역 주민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공연은 인터넷 예매로 관람했지만, 세 번째 공연에서는 예매에 실패해 당일 현장에서 대기하다가 취소표를 받아 관람했다. 예매 경쟁이 치열하지만 현장에서의 기회도 열려 있어 다양한 시민들이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됐다. 비원뮤직홀 홈페이지에서 공연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매주 다채로운 공연이 꾸준히 열리고 있으니 정보를 미리 살펴보고 관람해 보시길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5-12-18

문수봉을 오르고 문수봉에서 배부르다

내연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길은 보경사를 지나 오르는 문수봉까지다. 기념사진을 찍고 삼지봉까지 돌아 은폭포, 연산폭포, 관음폭포의 웅장한 물소리에 귀가 먹먹하게 내려오다 상생폭포에서 잠시 쉬다 보경사로 회귀한다. 이른 아침 김밥 한 줄 먹고 올라갔으니 대부분 사람이 식당으로 향한다. 보경사로 향하는 길 양쪽에 식당은 어느 집에 들어가도, 등산객은 실망하지 않는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쌓은 솜씨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등산 코스 중에 제일 먼저 만나는 ‘문수봉’을 간판으로 내세운 곳을 좋아한다.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늙은 호박이 반긴다. 달걀판을 방석 삼아 잘 익은 호박을 돌담처럼 쌓아 창가에, 방에, 야외테이블에도 호박이 올라앉았다. 호박 사이에 밍크 담요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고양이들 잠자리였다. 날이 추워지니 야외테이블 둘레에 비닐로 둘러놓은 탓에 바깥과 달리 따듯했다. 세 마리 고양이가 서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박 밑에 밥과 물그릇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문수봉가든은 유기견 유기묘를 보살피는 곳이라 소문이 난 곳이다. ‘어서 오세요’ 하며 마중 나온 사장님 손에 호박전 반죽이 묻었다. 더덕 정식 2인분을 시키고 방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미리 온 단체 손님이 있으니 좀 기다려야 한다고 미리 귀띔해 줘서 뜨듯한 방에 엉덩이 지지며 기다렸다. 단체 손님들의 박수 소리 웃음소리가 우리 방으로 넘어왔다. 5분 후, 손두부가 먼저 나왔다. 함께 싸 먹으라고 김치와 나물도 나란히 내려놓고 가위를 쥐여 준다. 손으로 찢어 먹어야 맛있는 김치지만 오늘은 귀차니즘으로 가위로 잘라 먹었다. 앞접시에 젓가락으로 두부를 스윽 잘라 담고 그 위에 김치를 얹어 먹으니 구수한 손두부의 맛이 최상이었다. 사이사이 나물로 리셋해 주다 보니 호박전이 나왔다. 호박전을 보면 스물여섯에 결혼해 주말마다 시댁에 다니러 갔을 때가 떠오른다. 처음 임무가 들에 나가시며 어머님이 큰 호박 한 덩이와 식칼, 그리고 귀퉁이가 닳은 놋숟가락 하나를 주시며 호박전을 구우라 했다. 할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되겠지 했던 철없는 며느리는 단단한 호박에 칼끝을 넣지도 못해 속상해 눈물이 앞섰다. 낮잠 자는 신랑을 불러 반으로 잘라 달라 하고서는 놋숟가락으로 단단한 호박을 긁으며 한 시간을 씨름해도 반도 못 긁었다. 또 눈물이 찔끔. 어찌어찌 찹쌀가루와 밀가루 넣고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하니 양이 ‘다라이’ 한가득이었다. 전기 프라이팬에 두어 시간 기름 냄새를 맡으며 구웠다. 농사일 바쁘신 시어머님은 그렇게 구워서 식힌 호박전을 차곡차곡 찬합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두어 장씩 새참으로 드셨다. 겨울에서 봄까지 안방 윗목에 자리 잡은 누런 호박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호박전을 구웠고, 나는 호박전이 싫어졌다. 특히 호박전은 남이 구운 게 제일 맛있다. 문수봉 사장님 솜씨가 그중 제일이다. 더덕 정식이 나오기 전에 우린 이미 배가 부르다. 그래도 주인공인 더덕구이와 함께 15첩 상이 차려져 입이 떡 벌어진다. 거기다 금방 구운 노릇한 가자미와 게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어서 먹으라고 보글보글 부추긴다. 평소 생선은 집에서 구우면 냄새가 나니 외식할 때 먹어야 제맛, 가자미 한 마리씩 앞으로 당겨 하모니카를 분다. 된장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할 수 있을 맛이다. 배가 불러 남겨도 걱정하지 마시라. 주인장이 미리 알고 싸가라고 일회용 비닐팩을 주신다. 도토리무침과 백숙도 맛있다. 백숙은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문수봉가든: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471, (054) 262 9982.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16

분천역 산타마을 축제 즐겨볼까요?

열두 달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은 차가운 겨울이다. 날씨가 추워져 몸을 움츠리기에 십상인 12월. 그러나 겨울에 접어들면서 더욱 활기를 띠는 곳이 있다. 봉화군 분천역 산타마을은 축제로 이어질 눈 내리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다시 정비하고, 색칠하고 손님맞이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겨울의 진객은 뭐니 뭐니 해도 하얗게 눈 내린 설경. 설경 속에 펼쳐질 분천역 산타마을 축제가 20일부터 2026년 2월 15일까지 58일간 열릴 예정이다. 동화 속 분천역 산타마을은 대표 겨울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봉화군 소천면 깊은 산골의 간이역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단장한 곳이다. 빨간색 지붕, 수백 개의 산타 조형물, 크리스마스 장식이 북유럽 못지않다. 경북도와 봉화군, 코레일의 협력사업으로 시작한 분천역 산타마을은 백두대간협곡열차로 명소가 되었고,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은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로 아이들에게는 꿈의 왕국으로, 어른들에게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감성의 겨울 나들이를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동심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연인과의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성된다. 분천역 산타마을은 각종 포토존과 놀이시설 등 마을 전체가 한겨울 감성과 콘텐츠가 어우러진다. 기본시설 외에도 새롭게 조성된 겨울왕국 산타 스튜디오, 테마형 관광지로 확장하기 위해 사계절 썰매장, 미니 기차, 슬라이드 등 다양한 체험형 시설들을 조성했다. 분천역 일대 산타 전망대와 친환경 숙박시설, 어린이 종합놀이 공간, 리틀 포레스트 봉뜨락 등도 조성해 새롭게 태어났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분천역에서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을 지나 철암역에 이르는 27.7㎞ 구간이다. 12월 찬바람이 쌀쌀하게 목덜미를 파고들고 코끝이 맵싸한 날씨에 난로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객차에서 정겹게 다가오는 산골 풍경을 보는 건 겨울 낭만의 백미다. 한 해의 마지막. 낭만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느릿느릿 달리는 기차를 타고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천역과 아담하게 자리 잡은 산타마을로 가보자. 역사 앞과 마을은 계절과 관계없이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백두대간 협곡의 풍경은 웅장하고 경이롭다. 자연이 빚어낸 걸작들이 인상적이다. 철길과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들릴 듯하다. 설경과 잘 어울리는 계곡을 끼고 앉은 산골 집이 정겹고, 황량한 겨울의 삭막함과 포근함이 함께 공존한다. 눈이 내리면 순백의 비경에 등이 굽고 휘어진 소나무, 여기저기 삐죽삐죽 드러나 보이는 기암괴석들의 자태가 절경이다. 오는 20일부터 58일간 펼쳐지는 분천역 산타마을 축제는 함께 웃으며 추억을 만들고, 가족과 연인들이 공유하고 나누는 겨울 축제다. 이번 겨울은 더욱 풍성하게 조성된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에서 순수한 동심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12-16

자원봉사자‧ 후원자 송년 감사의 날 행사 성료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관장 김진홍)은 지난 11일 복지관 대강당에서 200여명이 봉사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5 자원봉사자 ‧후원자 송년 감사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본 행사는 한 해 동안 복지관의 어르신 복지증진을 위해 봉사하고 후원해 준 지역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공헌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 참석한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은 “우리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오신 모든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인사를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 20년간 복지관을 위해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주신 28개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유공자 표창으로 달서구청장상, 달서구의회 의장상,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 관장상이 시상됐다. 또 달서구청에서는 복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 대표이사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극단 ‘늘해랑’의 초청공연을 관람한 참석자들은 한해를 되돌아보며 각종 소회를 나누며 송년의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김진홍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장은 “올 한 해 어르신 복지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복지관이 되겠다”라고 했다. 유병길 기자

2025-12-15

대구문인협회 병술년 개띠 모임 ‘몽돌회’ 문학 발표회

세월은 참 묘한 조각가다. 사람을 다듬는 도구는 고운 손길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그리고 생활의 부딪힘이다. 그렇게 깎이고 부딪히며 생긴 모서리들은 어느새 둥글어지고, 그 둥근 얼굴들이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따뜻한 온기가 피어난다. 대구문인협회 병술년 개띠 모임 ‘몽돌회’의 풍경은 바로 그 세월이 빚은 둥근 광채에서 비롯된다. 지난 10일, 대명동 물배기 한정식. 한 해를 매듭짓는 12월, 팔순을 맞은 문인들이 저마다 한 편의 시와 수필을 품고 한자리에 모였다. 오래된 벗들의 눈빛이 오가고 웃음이 번질 때마다 식당은 작은 문학관으로 변했다. 이날 열린 ‘팔순 기념 문학 발표회’는 단순한 연례 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세월을 확인하고 문학으로 다시 잇는 의식에 가까웠다. 몽돌회는 “팔순을 앞두고 한 번 더 둥글어지자”는 뜻으로 결성된 동갑내기 문인 모임이다. 이름 또한 상징적이다. 몽돌은 수천 번 파도에 부딪히며 모난 흔적을 지우고, 마침내 손바닥에 포근히 안기는 둥근 돌이 된다. 문인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각자의 풍파는 달랐지만, 세월이 남긴 결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2015년 결성된 몽돌회는 시인 11명과 수필가 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교수·의사·출판인·전직 교장과 군수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창립 멤버였던 고 박방희 시인의 별세로 현재는 15명이 활동 중이다. 한때는 날카롭게 빛나던 경력들이 이제는 오히려 둥근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표회는 시작부터 웃음이 넘쳤다. “나이보다 발음이 먼저 떨리면 어쩌나”라는 농담에 방 안 가득 웃음이 퍼졌지만, 작품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팔순이라는 숫자가 이들의 글맛을 흐리게 하지는 못했다. 첫 낭독은 전 청도군수 출신 황인동 시인이 맡았다. 자작시 ‘휙’에서 그는 “나와 노을 사이로 KTX가 휙 지나간다, 맞다 저놈이 세월이다”라고 읊었다. 짧은 문장은 오래도록 방 안에 머물며 모두의 마음에 같은 표정을 남겼다. 박창기 시인은 고인이 된 아내의 1주기를 맞아 쓴 ‘돌아가는 길’을 낭독했다. “더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 미워해달라”는 구절에서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문학이 상처를 어루만질 때 비로소 위로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 순간이었다. 이어 손동락 시인의 ‘무너진 사랑 탑’, 손진실 시인의 ‘백장미’, 김숙희 시인의 ‘세월 속에서’가 차례로 발표되며,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저마다의 온도로 청중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이종열 시인은 ‘문학으로 맺은 인연’을 통해 “어색했던 만남도 시로 꿰매다 보니 따뜻한 옷이 되었다”고 말해 공감을 얻었다. 유가형 시인은 칠곡 팔거천의 고요한 풍경을 시로 풀어냈고, 정재숙 시인의 ‘물방울 하나’는 섬세한 관찰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동민 수필가는 “수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곳곳에 웃음을 보탰다. 가장 큰 공감을 얻은 작품은 남명희 시인의 ‘몽돌회’였다. “세찬 파도에 모서리 잃어 둥글게 어우러진 몽돌 세상 풍파 넘어온 팔순 시인들 구순까지 동글동글 살다가 봄밤에 꽃지듯 떠나자” 낭송이 끝나자 “꽃 지기 전까지 회비는 정확히 내자”는 농담이 터져 웃음바다가 되었다. 몽돌회의 웃음은 언제나 젊었다. 몽돌회를 든든히 지탱하는 두 축은 황인동 시인과 방종현 수필가다. 사회와 연주, 분위기 메이킹까지 맡지 않는 역할이 없을 만큼 활약하며, 두 사람 모두 대구예술상 수상 경력을 지녀 모임의 예술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인연, 문학으로 이어진 인연, 팔순까지 글로 마음을 나누는 인연은 흔치 않다. 이날 확인된 진실은 분명했다. 문학은 삶을 둥글게 만드는 힘이며, 우정을 오래 지속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행사 말미,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둥글게 만들었으니, 구순 때는 더 빛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순 문인들이 맞잡은 손은 그렇게 구순의 문턱을 향해 또 하나의 약속을 건넸다. 한편, 이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허수연.허홍구·이은재 시인과 최진근·노덕경 수필가의 빈자리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2-15

[시민기자] 제39회 상화시인상, 안희연 시인에게

제39회 상화시인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영남일보 대강당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이번 시상식은 이상화기념사업회와 영남일보, 죽순문학회의 공동 주최·주관으로 열렸으며,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예술진흥회가 후원했다. 장두영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민족정신과 시 정신의 회복을 이끌어온 상화 시인의 뜻을 기리며, 시문학의 순수성과 저항 정신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상화 시인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 속에서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상실과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 민족시의 등불이다. 그의 시 세계는 슬픔과 의지, 절망과 저항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민족의 혼을 시로 승화시킨 저항의 미학 그 자체로 오늘도 읽히고 있다. 심사위원 오정국 시인은 심사평을 통해 “본심에서는 총 다섯 권의 시집을 두고 오랜 토론이 이어졌다”며 “현실과 꿈, 기억과 고통을 교차시키며 치유의 언어로 길어 올린 안희연 시인의 시집 『당근밭 걷기』가 슬픔을 사랑과 연대로 전환 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장두영 이사장이 안희연 시인에게 상패와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했다. 수상소감에서 안희연 시인은 “상화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빼앗긴 들 속에서도 봄을 되찾으려는 정신의 불씨를 느낀다” 며 “시의 이름으로 사랑의 들불을 일으킬 결심으로 다시금 찰흙 같은 언어를 빚겠다” 고 말했다. 그녀의 진중한 언어에는 시인으로서의 고독과 신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스며 있었다. 이어진 낭송 무대에서는 글로벌낭송가협회 박영선 회장이 수상작 대표 시 ‘당근밭 걷기’를 차분하고 울림 있는 낭송으로 선보였다. 이경숙 열린시 낭송가협회 회장은 이상화의 시를 낭송하며 상화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수함의 상화 시 노래, 김단희의 민요, 곽나연의 한국무용, 이은경 소프라노의 ‘금강산’, 신현욱 테너의 ‘오 나의 태양’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져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감동의 무대를 완성했다. 올해로 39회를 맞은 상화 시인상은 단순한 문학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시대를 살아내는 시인의 양심과 언어의 힘을 되새기며,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하는 문화적 제의(祭儀)이다. 이상화의 이름으로 다시 타오른 이번 시상식은, 문학이야말로 상처 입은 시대의 영혼을 치유하는 불빛임을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