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사회

현재 머무르는 것이 시간을 완성하는 것

시를 기다리는 일은 연인을 기다리는 일과 비슷하다. 모든 마음은 그에게 가 있지만 보고 싶을 때마다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각자 세상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해내어야 해서 연인만을 쳐다보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해도 늘 연인 쪽으로 쏠리는 마음을 어찌하랴. 시도 이와 같다. 시인은 시가 오기를 기다리며 다른 일을 접고 기다려 보지만 쉽게 써지지 않는 것이 또 시이다. 그럴 때 시인은 그냥 논다고 한다. 논다는 생각도 없이 논다고 한다. 노는 일, 놀이를 완성하는 일이 결국 시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시 안 써지면 / 그냥 논다 / 논다는 걱정도 없이 / 논다 / 놀이를 완성해야지 / 무엇보다도 하는 짓을 / 완성해야지 소나기가 / 자기를 완성하고 / 퇴비가 자기를 완성하고 / 허기(虛飢)가 자기를 완성하고 / 피가 자기를 완성하고 / 연애가 자기를 완성하고 / 잡지가 자기를 완성하고 / 밥이 자기를 완성하듯이 // 죽음의 태(胎) 속에 / 시작하는 번개처럼” (정현종 시 ‘시를 기다리며’) 언젠가 빚 갚는 법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빚에 시달려 고민하는 남자에게 신이 나타나 빚을 갚는 법에 대한 조언으로 아침 조깅을 하라고 시킨다. 남자는 의아해하며 빚 갚는 것과 조깅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져 묻자 신이 웃으며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다고 조깅을 통해 활력을 되찾으면 하는 일이 잘 될 것이고 일이 잘되면 다른 일 또한 잘 되게 마련이라고 말해준다. 시를 쓰는 일 또한 같은 맥락이기에 시인은 내가 노는 일을 완성하는 것이 모든 사물이 자신을 완성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던 시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마련인 것이 시인의 천성이다. 세상 모든 사물들이 스스로를 완성해 가듯이 내 하는 짓을 완성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으면 내 놀이 속으로 시가 번개처럼 찾아 올 것이다. 그러니 부디 마음을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보내 깜깜 헤매게 하지 말고 지금을 완성하시라. 지금을 붙잡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성껏 하는 것이 시간을 완성하는 법이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05

30대의 눈으로 다시 본 뮤지컬 ‘빨래’

지난 11월 2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뮤지컬 ‘빨래’ 공연을 보았다. 뮤지컬 ‘빨래’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는 나영을 중심으로 서울살이의 힘든 일상을 담은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영은 두 번의 연애 실패와 여러 번의 이직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 옥탑방으로 이사 오게 된다. 이사 온 동네에서 나영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웃들을 만나게 된다. 조용할 날 없는 옆집 아줌마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주인집 아줌마, 건넛집 몽골 출신 이주 노동자 솔롱고까지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지낸다. 새로운 동네가 낯설고 어색한 나영은 좀처럼 이웃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그들을 이해하게 된 나영은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과 소통한다. 어느 날 나영이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옆집 아줌마와 주인아줌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와 위안을 받고 그들과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솔롱고와 마음이 맞은 나영은 그와 결혼하여 함께 살게 된다. 시민기자는 20살 때, 뮤지컬 ‘빨래’를 처음 보았다. 그 당시 뮤지컬 ‘빨래’에서는 나영의 직장 이야기, 솔롱고와 그의 친구의 어려운 타국 생활과 임금 체불 등의 직장 내 갈등 이야기, 이웃 사람들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기보다는 나영과 솔롱고의 심리를 더 깊게 다루었다. 때문에 나영과 솔롱고의 결혼까지의 러브스토리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보았던 뮤지컬 ‘빨래’는 나영과 솔롱고의 러브스토리보다 힘든 서울살이를 등장인물 각자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때문에 좀 더 현실감 있고 나영이라는 캐릭터가 생동감 있어 보이고 극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솔롱고와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가까워지고 나영이 솔롱고에게 느끼는 심리적 변화도 급작스러워 결혼까지 이어진 그들의 관계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회 경험이 없었던 20살 때의 시민기자는 나영의 서울살이의 힘듦과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고단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가난한 20대의 이야기라 생각했고, 나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다시 본 뮤지컬 ‘빨래’는 고향을 떠나 홀로 외롭고 고된 서울 생활을 하는 나영의 모습, 직장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나영의 모습, 직장을 잃어버린 나영의 모습과 그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이웃 사람들의 모습까지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 어쩌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마음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쩌면 마주하기 힘들고 외면하고 싶을지 모르는 우리네 삶을 다룬 이야기라 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운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저 외면하고 피하기 바빴던 일상을 직접 마주하므로써 내 마음을 이해하고 내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영을 통해 위안을 얻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05

12월에 떠나기 좋은 겨울 봉화 기차여행

첫눈은 누구나 기다리게 마련이다. 기다린 첫눈은 꼬박 이틀을 넘어 내려 수북하게 쌓였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설원은 첫사랑만큼이나 달달한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 설경을 달리는 기차여행은 낭만과 추억을 담아보는 겨울 여행 중 최고다. 협곡의 아름다운 설경을 배경으로 달리는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시속 30㎞ 느리게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눈 내린 협곡의 절경이 아름답다. 열차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풍경 감상에 최적화된 대형 창문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설경과 잘 어울리는 계곡을 끼고 앉은 산골집이 정겹고, 황량한 겨울의 삭막함과 부드러움과 포근함이 함께 공존한다. 순백의 비경에 등이 굽고 휘어진 소나무, 여기저기 삐죽삐죽 드러나 보이는 기암괴석들의 자태가 절경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분천역에서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을 지나 철암역에 이르는 27.7㎞ 구간이다. 12월 찬바람이 쌀쌀하게 목덜미를 파고들고 코끝이 맵싸한 날씨에 난로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객차에서 정겹게 다가오는 산골 풍경을 보는 건 겨울 낭만의 백미다. 한 해의 마지막. 낭만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느릿느릿 달리는 기차를 타고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천역과 아담하게 자리 잡은 산타마을로 가보자. 역사 앞과 마을은 계절과 관계없이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썰매를 끄는 루돌프, 선물을 나누어 주기 위해 굴뚝을 올라가는 익살스러운 산타할아버지, 느리게 가는 우체국, 곳곳에 설치된 포토존이 있다. 분천 산타마을은 산골 오지에 산타를 활용해 꾸며진 이색 관광지로 마을 전체에 걸쳐 빨간색으로 단장된 지붕과 대형 트리, 산타 슬라이드 등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전국 유일의 산타 테마마을인 분천 산타마을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12월 추천 이색테마 여행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반려문화행사도 예정돼 있다. 분천역에서 강줄기 따라 이어진 철길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고 터널을 통과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역사를 가진 양원역이 나온다. 양원역의 탄생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기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곳은 기차가 아니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손수 곡괭이로 돌을 고르고, 벽돌을 올려 세 평 남짓한 국내 최초 민자역사 간이역을 만들었다.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장소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친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양원역은 때 묻지 않은 오지 풍경이다. 산골 오지의 겨울은 시간이 멈춰버린 고즈넉함에 잠들어 있고 철길과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릴 듯하다. 협곡 사이로 좁은 하늘이 보이는 세평 하늘, 세평 땅. 승부역은 자연의 웅장함과 기암괴석의 계곡으로 숨겨놓은 절경이다. 눈이 내리는 겨울의 승부역은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는 작은 겨울왕국이다. 자연에서 여유와 힐링을 맛보는 겨울 기차여행으로 일 년의 마지막 12월의 추억을 만들어 보시기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03

‘우울증 예방’ 공익형 노인 일자리,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때

노인 천만 시대, 초고령(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초과) 사회를 앞두고 노년층의 건강한 노후를 위한 일자리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노년층의 일자리는 단순히 경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뿐 아니라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노년층에서는 사회적 고립과 단절, 외로움으로 인해 공허함과 우울증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노년에는 경제적인 것보다 어쩌면 사회활동에 대한 결핍이 더 큰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사회적 고립은 노인들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일자리를 통한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최근 아주대 병원이 수원시와 노인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함께 노인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자리를 가진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우울증 점수가 낮게 나타났다. 이중 공익형 일자리(0.97)에서의 우울증 예방 효과는 일반 일자리(0.54)에 비해 1.8배 더 높게 나타나 공익형 일자리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익형 일자리는 민간형과 사회 서비스형과는 다르게 주로 지역 사회나 공공기관에서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공공과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통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지역 공공 시설인 도서관, 복지관 등의 청결 유지, 공원 및 도로 관리, 어린이 및 청소년 교육 보조 등이 있다. 크게 신체적인 부담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형식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고령자들에게도 적합하고 하루에 3~4시간 정도의 적당한 수준의 활동량이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신체활동은 노화 과정뿐만 아니리 심혈관 질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도 자연스레 갖게 되는데 일자리를 통한 동료 및 지역 사회와의 지속적인 교류는 건강한 노년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소속감을 느끼고 외로움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자존감 향상도 느낄 수 있어 정신적인 건강에 많은 장점이 있다. 포항시민 A(76)씨는 “5년 전부터 어린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하고 있는데 나의 건강을 새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급여는 적지만 게으를 수가 없고 사회에 도움이 된다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좋고 활력도 생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익형 일자리는 경제적 안정과 여가와 취미생활, 사회활동 참여는 물론이고 노년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양한 역할의 의미가 있음에도 아직까지는 경제적인 교환 활동을 위한 ‘돈을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든 노동’이라는 개념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공익형 일자리를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의 시선이 있다. 시민들은 지역 사회 환경 개선 사업에 활동 중인 공익형 참여 노인들이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세금 낭비다’, ‘일다운 일을 시켜라’ 등의 부정적인 시선을 말하곤 한다. 공익형 일자리는 일자리라는 개념보다 사회활동을 하기 위한 복지 프로그램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노인들이 퇴직 후에 얻을 마땅한 일자리가 많지 않고 비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 또한 없이 쉽사리 사회적 고립으로 되기 쉽다. 노년의 건강한 삶을 위해 노인 일자리가 이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쏟아지는 은퇴자들로 초고령화 사회로 가는 지금, 공익형 노인 일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때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03

이팝꽃 향기는 이바비 막걸리를 남기고

‘흥해라이팝’의 막걸리를 넣은 전통 술떡 만들기 체험을 했다. 볼에 미리 섞어둔 가루류와 견과류, 콩배기를 넣은 뒤 따뜻하게 데운 물과 이바비 막걸리를 넣고 고무 주걱으로 고루 섞는다. 섞으면서 반죽의 농도를 확인한다. 한 주걱 떠서 흘렸을 때 끊기지 않고 흘러내리면 적당하다. 실온에 약 20분간 그대로 둔다. 그러고는 은박컵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약 80% 넣어준다. 그릇에 빈 곳이 없도록 탁탁 두드려 준 뒤 적당량의 견과류와 콩배기 등으로 장식한다. 물이 팔팔 끓어 김 나는 솥에 찜기를 놓고 뚜껑을 닫은 뒤 약 30분간 찐다. 보릿가루의 비율을 많이 높여서 맛이 진하고 순도 높은 이바비 막걸리 향이 언듯 나서 더 맛나다. 식은 후에는 포슬포슬하면서 쫀득한 식감이라 며칠 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보리떡 하나와 우유 한 잔이면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거뜬하다. 이바비 막걸리는 특별하다. 흥해의 이팝쌀만 넣어 화학 첨가물 없이 전통 방식 그대로 빚었다. 흥해에서 자란 이팝쌀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 품질이 우수하여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 고장에 큰 양조장이 3개나 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마을기업인 ‘흥해라이팝’이 이팝쌀을 백 번 씻어 자연의 맛을 살리려 애썼다. 이바비 막걸리는 한 달간 저온 숙성해 깊은 맛이 난다. 새콤달콤하면서 끝맛이 깔끔해 먹은 다음 날 숙취가 없다. 양조가정에서 원재료 누룩과 소량의 물만 사용하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첨가 청량한 지역 술이다. 쌀 자체의 수분과 누룩으로 발효시키니 그 과정에서 은은한 꽃향기와 과일향까지 베어난다. 프리미엄 맛을 추구하는 정희정 대표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막걸리가 ‘2024년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대구, 경북에서는 올해 유일한 수상 제품이다. 고도 탁주 부문에서 우수상(aT 사장상)을 받은 이바비는 희석하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 원주(알코올 함량 17%)로 차별화된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며, 와인잔에 얼음 희석해서 마시거나 탄산수 희석해서 드시길 추천한다. 자체 단맛으로 사이다나 과일청은 비추다. 흥해는 이팝꽃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5월, 향교산에 이팝꽃이 뽀얗게 얹히면 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마다 함박눈이 소복 쌓인듯하고, 늘어진 가지를 눈높이에서 마주하면 수북하던 이밥이 여러 개의 국수 가락으로 갈라져 흔들린다. 이래저래 보릿고개를 넘던 조상님들이 올려다보며 침을 꼴깍 삼킬만하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잘 있어 주었다고 2020년 12월에 ‘포항 흥해 향교 이팝나무 군락’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561호(식물-군락)로 지정됐다. 옥성리 흥해 향교와 임허사 주변에 있는 군락지는 향교 건립을 기념해 심은 이팝나무의 씨가 떨어져 번식해 조성됐다. 예로부터 흰쌀밥 모양인 이팝꽃이 많고 적음에 따라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등 선조들의 문화와 연관성도 높아 민속·문화적으로도 가치가 크다는 평가도 받는다. 십여 일 흥해 읍내 가로수부터 산까지 하얗게 이팝꽃이 뒤덮는 5월, 논마다 모내기할 철이다. 이팝꽃의 향기를 담은 이팝쌀로 빚은 이바비 막걸리에서 꽃 향이 은은한 이유가 분명하다. 정희정 대표는 이 막걸리를 넣은 증편도 만들 계획이다. 보리떡이 익는 사이에도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또, 마을기업을 시작하는 이들의 강의 요청도 줄을 잇는다. 자신이 힘들게 배운 사업이지만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나누는 마음이 여유롭다. 보리떡과 증편은 직접 흥해에 와서 체험도 가능하고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이바비 막걸리가 흥해의 어깨를 들썩거리도록 흥하게 하는 날이 코앞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2-03

이화우 화백의 한국화 ‘설악의 서정(抒情)’

가벼운 복장으로 집 가까이 호텔영일대 주변을 산책하다 무심히 생각난 듯 갤러리 웰로 향한다.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호텔영일대 갤러리 웰은 포항예술진흥원에서 공모를 통해 일 년간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가 순차적으로 예약되어 있다. 어느 날 불쑥 찾아가도 언제든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에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세상에는 재주 넘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 테마는 ‘설악의 서정(抒情)’이다. 그런데 그 느낌의 강도가 예전과 좀 다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며 그림들을 둘러본다. 이 그림들 뭐지? 정말 그림 맞아?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럼에도 사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설악산 사계 모습을 ‘화선지 위에 먹’으로 은은하게 표현했다는 게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다. 작가의 혼이 깃든 듯하다. 아니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전시장 공간이 빈틈없이 가득 채워진 듯하다. 묵향으로 채워진 설악산의 사계를 어느새 몰입해서 향유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무(無), 즉 공(空·해탈)으로 이끄는 예술예찬론이 이런 몰입의 두근거림을 두고 한 말인가. 이화우 화백은 포항에서 개인전은 처음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로 서예를 시작했고 서예에 웬만큼 빠져있을 때 우연히 진성수 화백의 진경산수화에 심취하게 된다. 25년 전이다. 직접 그를 찾아가 16년 동안 포항에서 대구를 오가며 먹의 농담(濃淡)과 선을 표현하는 기법을 사사 받는다. 어느 순간, 그는 베끼기에 열중했던 자신의 그림들을 과감히 불태우고, ‘화선지 위에 먹’으로 극사실화 기법을 연구한다. 3년 동안은 작품 없이 극사실화를 위한 먹의 농담만을 연구한 후 다시 그리기 시작한지 8년째다. 이번 전시를 위해 4년을 준비했다. 그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적어도 두 달이 소요된다. 한 번의 실수에도 그림을 버려야하므로 정신집중은 기본이다. 화선지 위에 먹물의 세밀한 농담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색을 입힌다. 흰색 물감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햇빛에 반짝이는 가늘고 디테일한 윤슬의 흰 선마저 화선지의 ‘여백’이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 두는 것이다. 화선지에 은은히 젖어든 먹물이 빚어 낸 그림은 우리 전통문화의 정서와 기운, 그리고 채움과 비움이 적절히 서려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안온함을 준다. 북송의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보고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畵中有詩 詩中有畵)”라 평했다. 이화우 화백은 화중유시(畵中有詩)를 꿈꾼다.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따지면 운전이나 음식도 경지에 이르면 예술이 된다. 그러나 예술은 그것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에게서 생명력을 얻어 생동한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향유해 줄 사람이 없다면 생명을 잃게 된다. 예술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작품전시나 미술관에 가는 것은 특별한 느낌으로 일상적이지 않다. 앞으로의 바람을 묻는 시민기자에게 이화우 화백은 “건강하게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전시의 홍수 속에서 보는 순간 절로 탄성이 나오는 작품은 흔치않다. 다음 전시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며 향유 객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으로 그의 전시장에 생동감이 넘쳐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8

가을 ‘동리길’을 걷는 즐거움

거대한 육교 계단 앞에 서자 아이는 신이 났다. 경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육교인데다 높이가 꽤 높다. 그도 그럴 것이 한동안 그 아래로 기차들이 지나다녔다. 계단을 올라서자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경주역이 저만치 아래로 보인다. 기차들이 오고 갔던 철도는 여기저기 어긋나 실제 지난 시간보다 더 오래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길고양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크게 경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다가오지도 않는다. 아이는 눈을 마주쳐보려고도 대화도 시도해보는 듯 했지만 큰 성과 없이 돌아섰다. 샛노랗게 물든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였다. 마치 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같다. 저 나무 아래로 내려가면 마을이 나타난다. 한때 철도 관사가 모여있던 마을이다. 얼마 전 종강을 한 수업 덕에 한 계절 동안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으로 들락거렸다. 바쁘게 오가면서도 틈틈이 보아뒀다. 언젠가 아이와 산책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 마을이 이렇게 변했노라고. 황촌마을활력소 주변엔 이미 유명세를 탄 카페도 등장했다. 오전 11시에 나온다는 식빵이 늦은 오후까지 남아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쇼케이스를 살폈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 식빵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마을 산책에 나섰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골목.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조성된 작은 화단들. 골목을 걸으며 화단에 심겨준 작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꽃과 함께 자라는 풋성귀들. 똑 떨어지게 정돈된 세련미 나는 정원보다 사람 냄새 나는 그 풍경이 참 좋다. 황촌마을 활력소를 기준으로 우측엔 동리길, 좌측엔 목월길이 조성되어있다. 길을 찾기 전 아이에게 주의할 부분을 일러줬다. 이곳은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거나 방해가 되어선 안된다. 다행히 길을 걷는 내내 그 약속을 잊지 않았다. 동리길로 들어서자 커다란 감나무 가지가 담장 밖으로 나와 있다. 수북이 열린 감들 사이 탐스럽게 붉은 홍시는 이미 날 손님이 맛을 보고 갔다. 관상용일까. 아니면 저대로 매달아둔 채 익힐 셈인가. 엄마의 궁금증과 달리 아이는 벽 여기저기 써있는 시들에 빠져있다. 모두 읽으면서 갈 거야. 그렇게 선전포고를 한 꼬맹이는 시 감상보다는 자기가 아는 시가 혹여 있을까 찾는데 더 급급해 보였다. 그러다 동리길의 끝자락에 쓰여 있던 ‘고향’이란 시에 눈이 갔다. ‘이렇게 옛날도 있은 것처럼 백년이 또 지나도 이대로 있을까/십 년 지나 고향에 돌아오니 골목의 저녁노을 그대로 있네.’ 이곳과 참 어울리는 시란 생각이 들었다. 벽화가 끝나는 길에서 조금 더 걸어가자 막다른 길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목월길을 찾아나섰다. 동리길이 밝고 화사한 분위기였다면 목월길은 은은하며 차분한 느낌이다. 목월길의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아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송아지’ 시 옆으로 귀여운 얼룩송아지가 그려져 있다.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이며 노래로도 나와 있는 시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마지막 코스는 마을 활력소 내에 전시장이다. 이곳에선 종종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번엔 자수작가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최근 뜨개질과 바느질에 관심 있는 아들은 자수작품에 꽤 흥미를 보였다. 이른 시간에 찾았더라면 웅장하게 서있는 급수탑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곳곳에 생겨난 예쁜 까페들도 둘러봤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적절한 산책은 매우 만족스럽게 마무리 되었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8

‘당신은 누군가에게 등불입니다’

백혈병 소아암 환아를 위한 사랑의 콘서트가 11월 20일 대구백화점(프라자) 프라임 홀에서 열렸다. 대구시낭송진흥회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시읽는문화대구지회 사단법인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대구경북지회가 주최하는 행사다. 대구시낭송진흥회는 시를 사랑하는 회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시 낭송으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아픔과 상처도 꽃으로 피워낸다. 2020년 9월 창립 후 현재까지 매월 넷째 주 목요일에 시 낭송회를 개최한다. 회원들 간의 친목도모는 물론 시 낭송을 기본으로 하는 봉사 및 버스킹 등 다양한 행사의 재능 기부를 통하여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사회 공헌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시낭송진흥회는 시 낭송의 대중화로 시심 가득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한다. 공연 전, 대구수성도서관 어울림 홀에서 몇 번의 연습이 있었다. 조금씩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을 느끼며 환아들을 만날 무대에 들떴다. 공연 당일, 아침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서둘러 평소보다 짜릿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앉았다. 소아암 환아를 위한 시낭송이기에 힘과 희망을 심어 주는 무대여야 한다. 무대 의상과 콘서트 내용을 최대한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연출했다. 이번 행사는‘당신은 누군가에게 등불입니다’, ‘시를 읽으면 상처도 꽃이 된다.’ 는 시 읽는 문화의 슬로건에 가장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어야했다. 여는 시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으로 많은 이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시작되었다. 시낭송을 비롯하여 시극, 테너, 부부 연극, 어린이 단막극 등이 펼쳐졌다. 어린이 낭송, 환우의 자작시에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닫는 시로 정연복의 ‘어린이를 위한 기도’에 아쉬움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촛불 밝혀 다 함께 마음을 담아 ‘사랑으로’ 불렀다. 1막에서 4막까지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컸다. 심정숙 회장님 이하 많은 시낭송진흥회 회원들의 노력 끝에 한국 백혈병 소아암 환아를 위한 시 낭송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입장권 판매 및 후원금 현황은 예상보다 컸다. 시낭송진흥회 회원 일동과 각 기관 단체 및 후원자들의 모금 액수는 1000만원을 넘었다. 공연은 약 두 시간. 객석이 부족해서 서서 보는 분도 많았다. 어린이와 청소년, 중장년층, 시니어까지 다양했다. 시낭송에 관심 없을 때에는 이러한 무대가 있는지도 몰랐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스크린에 영상과 음악이 흘렀다. 대기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소아암 환아들과 케어 하는 가족들께 부디 이 콘서트가 작은 위안과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힘을 얻어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이웃들이 사회의 따뜻한 온정과 감동을 함께 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낮에는 본업에 충실하며, 취미로 배우는 시낭송이다. 시의 장르가 다양해서 배울수록 어렵다. 시 낭송으로 인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며 치유와 위로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길 바란다. 나는 오늘의 멋진 무대에 함께 한 내게 참 잘했다 위안한다. /김영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8

천년숲 황톳길로 맨발 산책해요

몇 해 전부터 이어진 맨발 걷기 열풍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백세시대 다양한 운동이 있다지만 맨발 걷기는 남녀노소 접근성이 높은 운동이고 일상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생활 운동이다. 한창 붐을 일으킨 올레길이나 둘레길처럼 전국적으로 맨발 길을 따로 조성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학교 운동장, 공원, 해변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맨발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심지어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생겨나 2024년 2월 기준 대구지부, 울산지부 등 총 4개 지부와 91개 지회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안동에도 맨발 걷기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경북도청 앞 천년숲 황톳길이다.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에 위치한 소나무 둘레길이 있는 천년숲에는 황톳길 맨발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신발보관함과 세족장이 있어 산책로를 맨발로 걸은 후 깨끗하게 발을 씻고 나올 수 있다. 추운 날씨에 맨발 걷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양말을 신고 발바닥 쪽에만 구멍을 내어 걷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예부터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했다. 천년숲 맨발 산책로에는 ‘신발을 벗고 발바닥에 자극이 가도록 걸으면 쌓인 피로가 줄어들고 뭉친 근육도 부드럽게 이완돼 건강에 효과적’이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 운동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숲길에서 느긋하게 산책하듯 힐링하며 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세족장 옆에는 수령 290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어 그 아래서 늦가을의 운치도 느낄 수 있다. 천년숲은 산림청이 발표한 2023년 녹색도시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대한민국 최우수 도시숲으로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녹색문화공간이다. 경북도청 신도시 주민들의 쉼터이자 지역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맨발 걷기는 혈액 순환, 면역력 강화, 불면증 해소, 스트레스 개선 등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 현대인이 맨발로 땅을 밟을 일이 거의 없으니 이러한 ‘접지’가 땅의 기운, 자연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연 친화적 운동이 아닐까 싶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천년숲을 찾아 황톳길 맨발 걷기 산책로를 함께 걸어보길 권해본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6

이상기후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

지난여름은 모두가 ‘역대급 더위’를 외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더위는 11월 중순까지 이어져 낮 기온이 20도 안팎을 오르내렸고 그 덕에 여름에 없던 모기까지 기승을 부리며 때 늦은 모기와의 전쟁을 치렀다. 더위를 물리고 기다렸던 풍요와 단풍의 계절인 가을은 한 달 늦은 11월에서야 그 정취를 맛보았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의 가을은 때아닌 봄꽃도 피게 만들어 불시개화를 경험하게 했다. 사람들은 옷장에 잠든 겨울옷을 언제 꺼내야 할지도 고민이다. 이처럼 날씨는 우리 생활의 기본요소인데 계절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기온 상승은 단순히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폭염과 폭우, 태풍 등의 과격한 이상기후를 겪고 있는 지금, 기후의 변화는 건강을 비롯하여 경제와 사회 등의 여러 가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건강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기후는 불안, 긴장, 걱정 상태를 넘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몸은 심장과 혈관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신체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특히 환절기에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면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도 급증한다. 특히, 기후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움과 불면, 호흡 곤란, 근육통이 나타나 다양한 자율신경실조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도 겪게 되어 불안을 더 심화한다. 달갑지 않은 기후 변화는 이제 환경문제인 동시에 개인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올봄에는 사과와 배 가격이 지난해의 두 배로 치솟았다. 지독한 폭염은 9월에도 더위가 이어져 햄버거 가게는 토마토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강원도 고랭지의 배추는 폭염에 녹아내려 소비자들은 농산물 공급 불안 사례를 겪었다. 커피와 올리브유 등도 마찬가지였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가격도 올라 초콜릿이 들어간 제품도 덩달아 오를 예정이다. 카카오 생산지의 폭우, 가뭄, 감염병이 겹치며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불확실성을 가지는 경제는 기후 변화로 인한 농작물의 생산량 감소로 인해 먹거리 물가를 오르게 하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 시대’라는 신조어를 등장하게 만들었다. 이건 계절마다 제철 음식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색해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상기후가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사는 대구와 경북의 농작물에도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농작물의 생산은 개화 지연, 생육 부진, 곰팡이병 발생 등으로 생산량 감소로 인한 피해 농가들은 이상기후에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고 있는 것과 같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대구기상청에서 발간한 대구·경북 24개 시·군의 기후 경향을 분석한 ‘대구·경북 최근 10년(2014~2023) 기후 정보집’에 따르면 연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펄펄 끓는 대구와 경북이 되고 있고 폭염일수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중 포항은 7월의 절반(17일) 이상이 열대야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 폭염주의보 발령도 더 잦았다. 또 여름철 강수량은 감소한 데 비해 가을과 겨울의 강수량은 증가했고 강수일수는 평년 97.5에서 1.4일 감소한 96.1일이었다. 기후의 변화는 우리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고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간다. 올가을 온화한 날씨가 이어졌는데 겨울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6

그림이 있는 풍경

보문단지에서 천북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자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눈부신 가을색에 환호성을 지르던 일행이 갓길에 차를 세워보라고 했다. 이건 찍어야 한다며.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를 본 적 없었다. 하늘에 반원을 정확하게 그린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띠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옷자락을 여미던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햇살처럼 무지개가 자동차를 갓길에 세우게 했다. 비상깜빡이를 켠 채로 천천히 달리던 우리가 갓길을 만나자 차를 세웠고, 우리 차 앞에 중형차가 서더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내려 하늘을 향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조금 후, 탱크로리에서 운전기사가 내려 풍경 사진을 찍었다. 빠른 속력으로 달리던 사람들의 발길을 무지개가 멈춰 서게 만든다. 그 풍경까지 아름다워 그림 같다.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들 한다. 종교화, 역사화, 인물화의 시대를 넘어서 풍경화가 유행하던 시절, 귀족의 거실에 걸린 풍경화를 많은 사람이 동경하게 된다. 이때부터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림 같은 무지개를 보다가 며칠 전 찾아가서 본 그림이 떠올랐다. 지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내왔다. 나눔미술은행에서 포항명도학교에 소장 중인 그림 16점을 무상으로 대여해 준 것이다. 올 10월에 신청해서 11월에 대여가 되어 1년 동안 학교 곳곳에 전시할 거란 소식이었다. 멀리 미술관까지 다니러 가서 구경할 작품이 집 가까이 왔다니 한걸음에 달려갔다. 포항명도학교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우현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이다.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으로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 전공과를 두고 있다. 근처를 지나면서 교문을 들어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업이 끝나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오후 3시에 갔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제일 먼저 급식소 벽에 걸린 작품을 보았다. 오른쪽 밑에 네임텍이 붙었다. 작품명, 작가 이름, 큐알코드(큐알코드를 찍으면 작품 설명이 있는 사이트에 접속이 가능하다.) 등이 적혔다. 강지만 작가의 ‘글라이더’라는 제목이었다. 새와 글라이더에 탄 친구들이 함께 하늘을 누비는 작품이다. 미술관에서 직접 방문해 작품이 어느 공간 어느 위치에 놓이면 좋을지 살피고, 튼튼한 틀까지 만들어 꼼꼼하게 부착했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나눔미술은행은 전국 곳곳에서 누구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을 무상으로 대여·전시하는 예술 나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노인복지시설, 특수교육시설, 전국문화기반시설 등 전국 10개소에 미술은행 소장품 161점을 지원했고, 2024년에는 총 12개(지난해 대비 2개소 추가)의 기관에 미술은행 소장품을 확대 지원한다. 교장실 앞에 붙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뒷짐을 지고 푸른 바다를 바라다보는 모습이다. 저 그림이 식당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함께 웃었다. 계단이 아닌 오르막길을 따라 2층으로 오르는 복도에 그림 두 점, 또 복도 휴게실에 집시의 시간이라는 작품 앞에서 그림 속에 머물렀을 주인공의 시간을 보며 우리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림을 핑계로 학교 건물 곳곳에 아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곳을 소개해 주셨다. 도서관, 과학실, 체험실, 그러다 미술실 앞에 가장 많은 그림을 전시했구나 싶었다. 건물을 오가며 그림 앞에서 환하게 웃을 아이들을 상상하니 그림 같았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6

하곡(霞谷)마을 은행나무

샛노란 은행잎은 국화만큼이나 가을의 대명사다. 땅도 나무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은행나무 단풍은 아름다움에 기품을 더한다. ‘너무 보고 싶어서’ 가을이면 꼭 찾아가는 은행나무가 있다. 절정을 놓칠세라 주말마다 가기도 한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설렌다.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 마을입구를 지키는 이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300년으로 추정되었다. 서원이나 재실이 아닌 하곡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다. 굳이 노랗게 물들지 않아도 위엄 있는 웅장함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운치가 있어 가을이 아니어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종종 찾아간다. 올 가을 단풍도 변함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게 즐기는 맛이 있었는데 올해 부쩍 찾는 이가 많아진 듯하다. 황금빛 은행잎을 즐기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우리지역 주변에도 많이 있다. 하곡마을 외에도 덕동마을, 도리마을, 운곡서원, 통일전 거리, 용담정 가는 길 등등에서 늦어진 가을이 아직 진행 중이다. 운곡서원은 주차할 곳이 없어 돌아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인물로만 따지면 운곡서원 보다 하곡마을의 은행나무가 훨씬 잘생겼지만 터 잡은 곳의 기운이 인기도를 달리 한다. 바닥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든 하곡 은행나무 쉼터에 앉아 오후를 즐기시던 마을 어르신이 “내가 처음 시집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 잘생겼었지. 세월을 보내며 가지도 부러지고 하면서 지금은 외려 더 못나졌어.” 라고 하셨지만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을을 지키며 여린 인간을 품어주는 그 너른 품은 그대로인 듯하다. 은행나무는 천적이 없어 병충해에 강한데다 불에 잘 타지 않아 3000년을 두고 살아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1100살로 경기도 용문사에서 천수를 누리고 있다. 공자 나이 30에 ‘이립(而立)’이후 은행나무의 단 위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설이 있어 조선 중기 동지성균관사로 임명된 대사성 윤탁(尹倬)이 성균관 명륜당 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마주보게 심는다. 그는 이들을 ‘문행(文杏)’이라 부르며 배우는 자를 경계하여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후 지방의 향교와 서원들도 따라서 심기 시작한다. 그러나 행단(杏壇)의 나무가 살구나무라는 주장도 강하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행단변증설’에서 그 주장을 일축한 듯 했지만 여전히 은행나무와 살구나무는 시비(是非) 중이다. 그러나 명륜당 뜰에 은행나무가 심겨진 이후 보편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행단은 은행나무로 인지되며 유교를 상징한다. 논어를 펼치면 첫 문장이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 한가’라는 뜻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익숙해지면 가슴속이 충만해지고 그 가운데 절로 희열이 느껴진다. 배움으로 마음에 호연지기를 기르다보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 군자’가 되는 것이다. 하곡마을을 지키는 아름답고 위엄 있는 그 은행나무 그늘에 서면 웅장하도록 너른 그 품이 묵직한 침묵으로 행단 위에서의 공자 가르침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며칠 전 다녀온 가을빛 찬란하던 하곡의 은행나무가 벌써 그립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1

불화와 공필화

하나 둘 떨어지던 낙엽이 갤러리 앞을 소복히 채웠다. 경주시 진형동에 위치한 갤러리 미지는 어느덧 불국사의 문화이정표가 되었다. 늘 새롭게 전시가 꾸려지는 갤러리의 이번 순서는 부처님의 미소와 함께 오랜 시간을 쌓아 올린 민화들이다. 겨울, 봄, 여름 여러 계절을 치열하게 보낸 들판에서 농부가 자신의 수확물을 뽐내듯 오랜 시간 쌓아온 작업을 선보이는 이미정 작가. 계절의 변화와 함께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그림이 인생의 중심이 되어 작가라는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소회했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그간 다양한 단체전과 공모전 수상을 통해 그녀를 전문 작가로 만들어줬다. (사)불교미술 일섭문도회, 경주민화협회, 법여불화원 회원인 그녀는 현재 신라미술대전 추천작가이자 태건불화원 공필화반 강사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작가와 그림을 닮는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한층 미소가 부드러워진 그녀다. ‘불화와 공필화, 부처님께 공을 드리다’라는 주제에 맞게 내부엔 불화와 공필화들로 가득차 있다. 얕은 수가 아닌 진심을 담은 정성이 쌓여야 완성되는 공필화다. 메인작품인 ‘아미타여래도’는 크기와 섬세함에서 먼저 놀라게 된다. 중생들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시선은 깊은 속에 내려앉아 있던 마음마저 다 들킬 듯하다. 문양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있는 옷자락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켭켭이 쌓아온 시간이 오롯이 올려져 생명을 품은 참새들은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다. 세심한 붓끝에서 그림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묻어난다. 보드라운 털게를 둘러싼 섬세한 털들은 작가의 공과 인내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란도를 비롯 찔레꽃, 벚꽃 그림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여백의 미가 살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불필요한 배경이 없어 주제에 온전히 마음을 맡기고 느낄 수 있다. 작품마다 녹여든 정성 덕분인지 한 작품 한 작품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작품 감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그림은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림을 통해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림을 통해 벗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림을 통해 고난과 아픔을 치유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를 이끌어준 스승님께 감사를 전한 뒤 그림이라는 도반과 함께 흘러가며 많은 대중들에게도 영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버팀목처럼 한결같이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정진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는 이 작가. 그녀가 만들어낼 다음 우주가 기대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1

갱년기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가을이 깊어졌다. 산과 들에는 색을 바꾸는 잎들로 가득하다. 곧 잎들은 스스럼 없이 떨어져 내릴 것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계절을 보면서 여성들도 이렇게 생의 계절을 바꾸는 때가 있음을 떠올린다. ‘갱년기’라 이름하는 그 시기를 누구나 한번은 거쳐간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여성의 몸에도 사계절이 있고 갱년기는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 들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갱년기’시를 읽으며 갱년기를 공감한다. “더위의 한가운데를 보았습니다 // 키 큰 소나무들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 소나무마다 매달린 매미들이 있었습니다 /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 바싹 마른 화단에 원추리 꽃들이 시들고 있었습니다 / 꽃과 줄기 사이에 거미줄 한 채 걸려 있었습니다 / 그 아래, 줄지어 가는 개미떼들이 있었습니다 // 한 소나무의 둥치를 따라 눈으로만 쭈~욱 올라갔습니다 / 구름이 하늘을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 낮달이 농담처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무더위의 한가운데 / ’라고 누군가 속삭였습니다 // 더위를 먹어 병원 가는 길이었습니다”- 김미옥 시 ‘갱년기’ 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환절기의 한가운데를 어김없이 건너가야 한다. 시시때때로 열이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몰라하며 온몸이 화끈거리는 정체불명의 한 때를. 꽃 한 송이 피는 것에도 가슴이 콩닥이고 낙엽 한 장 날리는 것만 봐도 눈물이 고이던 여리여리한 소녀를 지나 여인이 되고 엄마가 되어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은 이제 지나갔다. 원추리 주홍빛처럼 곱기만 했던 얼굴에 하나 둘 주름이 잡히고 싱싱한 젊음을 다 바쳐 키워온 아이들은 매미처럼 훌훌 떠나가 버렸다. 아직은 내게 여름이 남은 것 같은데 자꾸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무엇을 잡으려 허둥대며 살아왔는지 손을 펴 물끄러미 보아도 희미해진 손금만이 낡아간다.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배롱꽃처럼 붉은 열정은 여전히 살아있는데 몸은 쓸쓸해져만 가는 갱년기에는 누구나 이렇게 독한 더위를 먹어 어지럼증을 앓는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다. 갱년기가 있어서 여자는 한 번 더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갱년기라고 했다. 갱년기의 갱은 한자로 다시 갱(更)자이다.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음의 성질에서 활동적이고 저돌적인 양의 성질로 전환되는 시기가 바로 갱년기라고 한다.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만 살아온 날들에서 비로소 진짜 내가 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비록 몸은 예전과 다르게 아픈 곳도 많아지고 감정 기복이 잦지만 그것도 다 과정인 것이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변화가 있으려면 그만큼 아픔이 따르고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고 자꾸만 마음이 허해지지만 가을이 절정이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무르익는다. 하늘은 또 얼마나 눈부신가. 가족을 위해 동동거리던 분주함에서 벗어나 이제 나의 삶에 집중하자. 열심히 살아온 보상으로 신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자.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랫말을 잊지 말자.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21

짬뽕용 고춧가루 이래도 되는 걸까?

얼큰하고 개운한 맛, 해산물과 채소, 고춧가루가 더해져 매콤한 짬뽕, 짜짱면과 함께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은 얼큰한 짬뽕이 생각나는 늦가을이다. 얼큰 매콤한 짬뽕 국물은 고춧가루가 맛과 향을 좌우한다. 그런데 짬뽕 국물을 만드는데 불량고추, 불순물이 들어간 고춧가루가 사용된다면 이를 알고는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경북 A시에는 전국 최대 건고추 거래 산지의 공판장이 있고 중도매인이 있다. 고추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공판장 인근에 제분 방앗간도 제법 큰 규모로 제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업소는 그냥 제분해서는 안 되는 병든 고추, 곰팡이에 오염된 고추, 희아리 고추 등으로 제분을 하고 있었다. 제분이 끝난 고춧가루는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상 고춧가루로 보인다. 짬뽕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는 김장용과 다르게 고운 입자로 제분을 해야 음식에 쉽게 섞여 부드럽고 맛있는 짬뽕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제분된 고춧가루는 10근씩 포장해 상인을 거쳐 중국집 등으로 들어갈 것이다. 고추는 탄저병, 바이러스, 무름병 등 때문에 농약을 자주 사용해 방제한다. 우리나라는 잔류 독성이 강해 인체에 해를 주는 농약 생산을 금지하고 있다. 비교적 안전한 농약이라 할 수 있지만 깨끗이 씻어 건조하고 꼭지를 따고 불순물과 병든 고추, 희아리 고추 등을 제거하고 제분을 해야 한다. 농약은 고추 꼭지 부분 등에 얼룩처럼 묻어 있는 때가 있어 꼭 세척을 하고 가루로 제분할 때까지 습기 등을 관리해야 한다. 농가에서는 건고추를 생산해 공판장에서 판매를 하거나, 소비자와 직거래 또는 상인들에게 직접 판매를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고추 농가를 방문해 고추를 매수하는 상인들은 병든 고추, 곰팡이 핀 고추, 희아리 고추를 매우 싼 가격에 수매해 간다고 한다. 폐기해야 할 불량고추를 싼값에 수매하는 상인들이 색소를 넣거나 기타 방법으로 제조 유통할 것으로 추정된다. 농가에서는 고추가 변질한 상태로 건조돼 흰빛, 주황빛을 띄거나 덜 익은 고추, 얼룩진 고추 등을 희아리 고추라고 부른다. 탄저균에 썩거나 고추 바이러스 병에 걸린 고추 등을 농가에서는 쓰레기 고추, 불량 고추라고 해서 폐기한다. 이런 고추로 제조해 유통하는 일이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고추시장 50% 이상을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다. 일부 요식업체에서는 값싼 중국산을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단속을 강화하고, 성분 분석이나 원산지 확인도 중요하지만, 고춧가루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의 점검과 단속이 절실히 요구된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9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글 읽기에 좋다는 가을밤, 올 한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있을까. 얼마 전 우리는 그동안 고대하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수상 작가와 그녀의 책에 뜨거운 관심을 보냈다. 출판 업계는 물론이고 책을 찾는 사람들로 서점가는 오랜만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여기저기 단톡방에서도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어떤 분은 몇 해 전 외국에 사는 지인에게 작가의 책을 주는 바람에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노벨 수상자가 배출된 기쁨에도 정작 한국인들의 독서량은 시나브로 줄어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의 독서실태 및 독서문화 진흥 정책 사례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월평균 6.6권인 반면 한국은 0.8권으로 나타나 최하위 수준임을 드러냈다. OECD 회원국 월평균 4.6권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중국(2.6권)보다도 낮은 독서량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독서 인구도 2021년에는 47.5%로 감소해 성인의 절반 이상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 대구와 경북 지역의 성인들도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구당 연평균 독서량이 5권으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적었다. 세종시는 9.9권으로 독서량 전국 최고였다. 최저의 독서량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문 닫는 서점가 소식은 슬프지만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책 읽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문맹률은 1% 안팎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문해력은 위기 상황이다. 영상과 인터넷에 밀려 ‘읽는 사회’에서 ‘보는 사회’로 바뀐 이유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서와 문해력의 상관관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인지 신경학자 메리언 울프는 “문해력의 저하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나라의 국민에게 비판적 사고, 자신에 대한 성찰, 다양성을 존중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 나라에는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살아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활자 형태를 읽고 사고하고 상상하는 것은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일인 까닭이다. 출퇴근을 하면서 매일 쏟아지는 정보를 읽고 있으며 스마트 폰 속 이야기들, 옥외광고, 메일, 사업계획서 등이 그렇다. 읽지 않는다는 건 내가 친구와 대화할 수 없다는 뜻이고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며 나아가서는 내가 타인과 국가로부터 도움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다시 말하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식 습득은 물론 상상력과 언어 능력 향상, 스트레스 해소, 자기 성장, 공감 능력 강화, 시간 관리 및 집중력 향상, 자아실현, 문화의 이해, 재미와 흥미 등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이유들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책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관점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더 나은 사람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갖는다. 바쁜 일상에 쫒겨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가는 지금, 포항 양덕에 있는 책방 수북에서 단편소설 100권 읽기에 도전 중인 포항시민 A씨는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글 쓰기에도 관심이 생기고 이런 기회가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9

물고기가 오는 걸 바라보다

7번 국도를 달리면 푸른 바다를 덤으로 선물 받는다. 포항에서 강구항까지 바다의 빛깔이 철이 철인지라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바다도 철썩철썩 글 읽는 소리를 들려준다. 듣기 좋은 그 소리를 벗 삼아 달려 영해면 괴시리에 닿았다. 그 옛날 목은 이색은 관어대에 올라 고래불에 모여드는 물고기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선비들은 모두 MBTI가 F 성향이었나 보다. 관어대(觀魚臺)는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상대산 정상에 있는 정자다. 지붕의 기와끼리 이마를 맞대는 괴시리 마을, 주말이라 그런지 조용하던 동네를 찾은 사람들로 수런거렸다. 거기서 두어 번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관어대가 있다. 오래된 팽나무 이정표가 입구에 선 길은 공사 중이라 옆으로 돌아들어 갔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영덕군에 들어서면 블루로드라고 또 하나의 이름이 붙는다. 그 코스 중에 관어대를 둘러보도록 해 놨다. 주차장에 간단한 설명을 읽고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단과 야자 매트와 황톳길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SNS에 초보자도 30분이면 오르는 가벼운 등산코스라고 적어서 그런 줄 알고 나섰는데, 가파른 길이라 숨이 차는 길이다. 교통약자를 위해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는 소문도 있다. 11월 중순이라 가을 옷차림으로 온 게 후회가 됐다. 여전히 낮 기온 20도가 넘어 땀 범벅이다. 조끼를 벗고,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렀다. 먼저 올랐던 지 하산하는 연인들의 하얀 반 팔 티셔츠가 오늘은 딱이었다. 운동 부족인 허벅지가 뻐근할 즈음, ‘아름다운전망대’(전망대 이름은 좀 더 낭만적으로 바꾸는 걸 추천)가 나타났다. 이름 그대로 산 아래로 영해평야, 동해로 흐르는 강, 강을 품어주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땀을 식히며 눈으로 풍경을 더듬었다. 관어대까지 마지막 남은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랐다. 그 끝에 울퉁불퉁한 바위가 길처럼 이어졌다. 어찌 이리 오르기 안성맞춤인 바위가 있나 했더니, 콘크리트로 바위를 똑 닮은 계단을 만들었다. 색칠까지 바위 그 자체다. 요런 생각은 누구의 의견이었을까? 만나면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혼자 흐뭇해하며 고개를 드니 몇 송이 구절초 사이로 관어대가 의젓하게 앉았다. 이색 ‘1328~1396’이 쓴 ‘관어대부’를 보면 “동해 석벽 밑에 임하여 노는 고기를 셀 만하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명칭의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뒤를 따라 올라온 동네 분이 어부들에게 고기떼가 오는지를 알려주던 곳이라고 자랑하셨다. 나팔을 불어 알렸을까, 목청껏 소리쳤을까, 북소리였을까 상상하며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올랐다. 명사십리 모래밭과 푸른 소나무 방풍림이 바다를 깜싼다. 어찌나 푸른지 거기에 고래가 헤엄치면 손에 잡힐 듯했다. 상대산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은 바위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백사장을 끼고 울진군 후포면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포항 호미곶이 보인다. 관어대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인사가 관어대를 방문하여 작품을 남겼다. 고려시대 관어대를 노래한 시는 안축이 쓴 ‘단양 북루의 시에 제하여 부치다 병서’를 시작으로 이색의 ‘신석보를 전송하며’, 이숭의 ‘관어대에 올라’ 등 영덕 지역에 부임하거나 유배를 온 인물이 남긴 작품이 많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부지’ 등의 읍지 및 지리지류의 누정 항목에 확인되나, 언제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관어대는 2015년 복원한 것으로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영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문화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되며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공간으로 의미가 크다. 원래의 관어대는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절벽에 있었다고 전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9

그녀의 첫 교장 발령지

세월이 흐른다. 아무리 긴 세월도 돌아보는 세월은 ‘하루반나절’ 느낌이다. 그 흐름 속에서 시절인연이 이어져 희로애락을 함께 쟁이며 힘들 때 마음 놓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오랜 인연도 생겨난다. 그녀가 그렇다. 졸졸 흐르는 냇가에 놓여 진 정겨운 징검다리 건너 듯, 한발 한발 인생길 다독이며 함께 걸어온 30년 지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특유의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진 “언니, 나 교장으로 발령 났어요….” 라는 말에 순간 뭉클함이 인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면서도 “축하한다” 말하려니 목이 잠긴다. 장학사가 되었다며, 교감으로 발령이 났다며 전화가 왔을 때 까지도 담담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 담뿍 담아 싱싱한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했더랬다. 열심히 살아 온 대가이리라. 있는 그대로를 즐길 줄 아는 그녀가 발령지 마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며 한번 다니러 오라 말했지만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놓고도 무엇이 그리 바빴던지 가지 못 할 일들이 번번히 생기며 ‘다음에’라고 미루었다. 그러나 이번엔 열일 제쳐놓고 가 본다. 더없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고파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로 향했다. 면 소재지를 둘러싼 앞산 자락에 아담하게 터 잡은 학교가 너무 정겨워 보인다. 교장실에 들어서다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책상에 가로놓인 명패를 보는 순간 괜스레 울컥한다. 교육자로서 살아 온 그동안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는 묵묵히 잘 살아왔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출산율 감소와 도시 인구 집중화 등 다양한 이유로 학생 수가 많이 줄어 전교생 숫자와 선생님 숫자가 엇비슷한 소담스런 분위기는 외려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첫 교장 발령지가 너무나 마음에 든단다. 점심시간 수돗가에서 나이 든 어르신이 양치하다말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70을 넘기신 어르신은 올해 입학한 1학년 학생이란다. 예고 없이 또 가슴이 뭉클 한다. 졸업생은 누구나 3년 동안 쓴 시를 모아 한권의 시집을 갖게 한다는 국어선생님의 열정이 만학도 어르신에게도 예외 없어 ‘학교’를 제목으로 시를 쓴다.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요/어렵기는 하여도 배움이 너무/행복하고/우리 반 친구들 너무 예뻐서/기분이 좋아.’ 노년에 찾아오는 외로움은 무섭다.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널리 알려지고도 이렇게 외롭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라고 말한 그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내재한다. 나이 잊고 중학생이 되신 어르신은 그 외로움을 너무 멋지게 다스리며 사시는 듯하다. 아니 외로움이 뭔지 모르실 듯하다. 오래된 교정과 달리 실내는 오밀조밀 새롭게 잘 꾸며져 있다. 복도를 지나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맑고 활기차다. 그녀만큼이나 학교에 있는 시간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시민기자도 그냥 행복하다. 그녀와의 인연으로 작지만 내실 있는 그 학교에 잠시 머물며, 사랑으로 다가가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느낀다. 교육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학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체감한다. 단풍 곱게 물든 가야산 자락에 숙소를 예약해 둔 그녀 덕분에 깊어가는 가을을 양껏 탐닉하며 잠시 소박한 행복을 누려본다. 부임하면서 심었다는 옅은 주황색 메리골드의 남실거리던 모습처럼 은은하게 스며들 교장선생님의 사랑이 소담스런 학교에 오래토록 충만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4

푸른 파도 넘실·시원한 바닷바람… 가을 감포해변 산책 어때요?

경주의 매력 중 하나를 꼽자면 1시간 내로 산이든 바다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가을 바다를 보러 가는 길은 옛길이 좋다. 가을볕을 온통 쏟아 부은 듯 단풍이 곱게 물든 산이 창 위로 비쳤다. 좀 더디게 걸려도 굳이 돌아가는 이유다. 예년보다 늦은 느낌이지만 가을을 느끼기엔 충분하리만치 보기 좋게 물들었다. 바다가 모습을 드러낼 쯤 말린 가자미들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부는대로 이쪽저쪽 흔들리며 얇은 몸이 더 얇아져 가고 있다. 빨간 양념에 물엿이 더해져 윤기가 반지르르한 가자미 한 점을 갓지은 밥에 올리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매콤짭짤한 맛에 고소함이 배어나온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때면 꼭 사들고 가는 것이 말린 가자미다. 이 근방에서만 잡힌다는 참가자미회는 경주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음식 중 하나다. 가자미에 정신이 팔린 사이 달 ‘감(甘)’자를 쓰는 감포항에 도착했다. 감포항은 경주 최대 어항으로 내년이면 개항 100주년을 맞는다. 감은사지 3층 석탑을 음각화한 등대 쪽엔 나들이 나온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항 근처엔 많은 강태공들이 자릴 잡고 있었다. 몇몇은 조금 위험해 보이는 위치에서도 개의치 않은 듯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점심을 먹지 않고 넘어온 터라 어묵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어슬렁어슬렁 낚시꾼들의 바구니들을 기웃거려보았다. 자잘한 고등어 정도는 제법 잡히는 모양이다. 예년엔 7월부터 숭어가 잡혔는데 올해는 구경도 못하고 있단다. 기후 탓일까? 한 무리의 비둘기떼가 방파제에 가득 올라앉아 있다. 바닷가에 갈매기가 아닌 비둘기라니. 회색 장화의 밀착력이 생각보다 좋은지 둥근 테트라포드 위에서 꽤 안정적으로 위치해 있었다. 예전부터 유난히 비둘기를 귀여워하던 아이는 비둘기들이 균형을 못잡고 바다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한가득이다. 숭어도 비둘기도 뒤로 한 채 바닷가로 쭉 이어진 데크를 걸었다. 날이 좋아 그런지 유난히도 반짝거리는 윤슬에 눈이 아플 정도다. 바닷바람을 한참 맞은 후 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민기자는 10여 년 전쯤 해국길 벽화 사업에 참여했었다. 야외 작업이라 차가운 바닷바람과 따가운 볕을 생으로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한 달 남짓 골목을 해국으로 채워나가는 동안 주민들은 많은 관심과 정을 내어주셨다. 오래된 가옥들, 좁은 골목길,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판자로 가려져 있던 목욕탕은 카페가 되어있다. 지금은 덧칠과 수정으로 많이 달라진 모습이지만 예전 그 기억이 좋아 감포에 가게 되면 해국길을 꼭 들르게 된다. 꼬맹이는 요즘은 보기 힘든 좁은 골목길을 신기해했다. 그리고 간간이 그대로 살아남은 엄마의 꽃 그림을 발견하게 되면 굉장히 뿌듯해했다. 자랑스런 엄마의 흔적들 앞에서 몇 차례 기념촬영을 마치고 가을 바다 산책은 마무리 되었다. 가을은 산도 바다도 모두 좋은 계절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4

신라 아름다움 담은 뮤지컬 ‘더 쇼! 신라하다’

지난 11월 2일 토요일, 신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경주에서 뮤지컬 ‘더 쇼! 신라하다’를 감상했다. ‘더 쇼! 신라하다’는 경주시에서 직접 제작한 창작 뮤지컬로 신라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처영이 신라시대로 시간 여행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담고 있다. 신라 시대로 가기 전 처영은 댄스팀 ‘홀드’의 리더로 세계대회를 앞두고 멤버들과 함께 연습 중에 있었다. 그러나 한 멤버의 실수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자 속상한 마음에 실수한 멤버와 다투게 된다. 이럴 바엔 혼자 춤을 추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낙담하고 있을 때, 거울 속에서 중년의 남성이 처영 앞에 나타난다. 남성은 처영을 데리고 거울 속 타임머신을 통해 함께 신라시대로 간다. 그곳에서 처영은 승만 공주를 만나 화랑도의 모습과 신라인들의 생활을 직접 보게 된다. 승만 공주는 처영에게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육신도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는 화랑의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처영은 이를 통해 팀과 하나 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신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 팀워크의 소중함을 깨달은 처영은 현실로 돌아와 홀드 팀과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고, 각 멤버의 재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내 모두가 하나 되어 춤을 추며 ‘홀드’는 최고의 팀이 되었다. 처영의 이야기는 역사를 단순한 지식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닌, 그것을 거울삼아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또한 처영과 팀원들이 꿈을 이루어가는 모습은 뮤지컬을 관람하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위해 도전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탄탄한 스토리뿐만아니라 화려한 무대 의상과 현실감 있는 무대장치도 자랑할 만한 공연이었다.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여러 역할을 소화했는데, 이때 의상에 변화를 주어 시대와 역할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여 관객에게 극을 몰입하도록 도왔다. 현대 의상과 신라 시대 의상을 분명히 구분해 시공간적 이동을 효과적으로 표현했고, 신라 시대의 신분에 따른 의상의 차이를 보여주어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히 살렸다. 한복은 춤사위를 통해 그 우아함이 한층 돋보여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무대를 빛냈던 또 다른 요소는 무대 뒤편의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처영이 신라시대로 넘어가는 장면에서는 영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실감 나게 살려주었고, 신라 궁궐과 벽화 등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하여 관객들이 신라 시대로 돌아간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작품 말미에는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담아냈다. 음악에 맞추어 관객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었고, 흥을 돋우기 위해 무대로 올라와 함께 공연을 즐기는 2명의 관객에게 다음 공연 표를 각각 2장씩 선물해 주는 이벤트도 진행되었다. 신라시대와 현대를 잇고, 관객과 함께 즐기는 뮤지컬 ‘더 쇼! 신라하다’는 지난 해에 이어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에서 공연되었다. 뮤지컬 말미에 배우들은 이 공연이 내년에도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홍보해달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티켓은 전석 5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터파크 및 티켓링크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내년에 공연이 다시 열리면, 소중한 사람과 함께 공연을 함께 즐기는 시간을 보내보기를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4

평화의 상징 ‘안동 평화의 소녀상’

안동 시내 중심가에는 웅부공원이 있다. 웅부공원은 조선시대 안동대도호부 자리에 조성한 안동 도심의 대표적인 근린공원이다. 2017년 경북에서 네 번째로 안동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던 때, 안동 시내 어느 곳에 건립이 되면 좋겠냐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신한은행 앞 문화의 거리, 탈춤공원 등의 장소가 논의됐지만 역사와 전통이 깃든 웅부공원에 그해 8월 15일 안동 평화의 소녀상은 세워졌다. 2017년 5월 안동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가 창립돼 건립비용 모금에 들어갔고 1800명 이상의 개인과 단체가 모금에 참여했다.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은 소녀상 기단부 동판에 새겼다. 제막 당일 많은 시민이 참석해 일제강점기의 아픈 과거를 되새기고 오래도록 후손들이 잊지 말자는 건립 취지에 뜻을 같이했다. 안동 평화의 소녀상은 높이 155cm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좌상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소녀가 막 일어나기 위해 한쪽 발뒤꿈치를 떼는 형상이다. 단발머리 소녀는 야무지고 강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한 손은 보퉁이를, 또 한 손은 치맛자락 꼭 쥐고 있다. 이는 다짐과 결단을 표현한 것이며, 보퉁이에는 과거의 기억과 아픔, 한(恨)을 묶어 봉인해 미래의 희망과 돌아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것이라 한다. 지역 작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돼 그 의미를 더한다. 안동 평화의 소녀상에는 계절마다 변화가 있다. 봄이면 화분이, 여름이면 부채가 놓여있고 가을이면 태극기가 걸려있고 겨울이면 털모자에 양말, 패딩까지 입혀진다. 아이들의 응원과 염원 담긴 종이학이 놓이기도 한다. 안동시민들의 쉼터에서 사계절 조용히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평화의 상징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지금도 지구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피 흘리며 스러져가고 있다. 어린 소녀들이 참혹하게 죽어갔고 생존한 소녀들은 평생을 고통속에 살아가야만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는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아직도 일본의 사과와 정부의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지금, 할머니들의 인권과 존엄이 회복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2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은

유례없는 저출산 시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명 미만이라는 상황을 두고 어느 학자는 몇 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라며 그 심각성을 말한다. 또 미디어 속에서는 혼자 사는 청년들의 모습을 자연스레 비추고 있어 결혼 시기를 점점 더 늦추고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의 2024년 2분기 인구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생아 수가 올랐지만 계속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출산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사이에서 청년들이 생각하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먼저 청년들의 혼인율을 보면 혼인율이 떨어지는 주원인은 고용불안정과 주거 불안정을 들 수 있다. 특히 청년의 경제적 부담과 일자리 문제는 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직장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책의 첫 번째는 ‘육아 휴직’임을 말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육아 휴직은 아직 어려운 단계이고 육아를 위한 환경이 대기업에 비해 출산부터 부담되는 열악한 상황임을 청년들은 말한다. 배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북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을 둔 A(38)씨는 “결혼한 지 9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하지만 남편이 배우자 육아 휴직서를 회사에 신청하니 출산 10일을 남겨두고 해고를 당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회사에서 육아 휴직을 당당하게 쓸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임신으로 인한 차별 문화도 일과 양립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를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기도 하는데 출산 후나 육아 휴직 후에도 단기적인 일자리가 아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일자리에서 다시 정규직으로의 복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현실이다. 아이를 낳아 잘 키우는 것과 함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청년들의 일과 생활 또한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직장에서의 육아 휴직을 고민하지 않고 쓸 수 있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청년들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생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일자리와 함께 경제적 부담 또한 마찬가지다. 지역의 중소기업과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에 대한 부분도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며 청년들은 지적했다. 일자리 문제는 주거와도 연결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함께 키운다’라는 육아 환경의 조성이다. 가족 간의 소통이 출산과 육아에 있어서도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가족 간에도 서로의 몰랐던 감정을 파악하고 화목한 가정이 육아에 있어서도 또 다른 행복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산모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편안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아이와 가족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동네로 어디에 가든 아이와 가족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지역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임에도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비롯한 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 상황도 육아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새마을 운동을 한 것처럼 지역 사회에서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육아로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함께하는 육아와 함께 안정적인 일자리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인데 현장에서의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2

포항 바다를 그린 시(詩)

내게 포항 바다는 늘 수필이었다. 해안선이 어느 도시보다 길어서 구불구불할 이야기도 많은 곳, 영일만이 있어서 바다에서 해가 뜨는 것, 바다에 해넘이가 비치는 것도 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포항 바다를 소재로 시를 쓰는 작가가 있다. 김은수 작가는 이번 전시회는 포항을 소재로 추상화를 그렸다. 추상화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자연적,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점, 선, 형, 면, 색 등 순수 조형 요소만으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 개념은 구상화이다. 보통 부드러운/회화적 필치로 이루어진 것은 뜨거운 추상, 직선/기하학적으로 간단명료하게 구성된 것은 차가운 추상이라고 부른다. 앞의 예로는 칸딘스키가 있고, 뒤의 예로는 몬드리안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민화가 그 역할을 자처했다. 19~20세기 조선에 침략했던 일본, 프랑스에선 “조선의 추상미”라며 싼값에 대량으로 민화를 방출해갔다. 일본에는 야나기 무네요시란 사람이 그 가치를 보고 잔뜩 사 갔으며 민화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후 교토 일본 문예관을 세워서 전시 중이다. 작가는 자신이 그리는 추상화가 문학에서 시와 같다고 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수필이라면 자연을 선과 면 색으로 압축해서 표현했으니 시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다. 대표작 ‘Starry Starry Night’을 보았을 때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가 떠올랐다. 소용돌이치는 푸른색의 일렁거림에서 고흐가 그린 밤하늘이 느껴졌다. 작가는 포항이 고향이 아니지만 리스트 연구소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삶의 터를 옮겨왔다. 이젠 고향이나 다름없다는 포항의 바다가 작품의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포항은 바다가 늘 가까이 있다. 출근길에는 아침 햇살에 비친 바다의 윤슬을 마주하고, 불꽃축제 또한 바다를 배경으로 쏘아 올린다. 김은수 작가에게도 많은 영감을 던지게 되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작가를 가장 사랑한 한 사람을 말하라면 단연코 아버지라 말할 거라며 흐믓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서 세상 살면서 헛헛함 없이 안정감을 가지고 살 수 있었고, 처음 미대를 준비했을 때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대학 합격하니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분이 아버지셨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항상 작가의 보호자이며 작품활동에 영향을 준다고 전했다. 김은수 작가는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한다. 특히 나무가 많은 숲과 산을 좋아한다. 그림의 모티브가 되는 부분 또한 자연이 주는 감성과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데, 예를 들면 사랑, 진리, 현상, 감성, 시절의 느낌 등 말하고 싶은 것을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포항은 바다뿐만 아니라 산과 숲까지 있어서 김은수 작가에게 안성맞춤인 도시이다. 작가는 삶을, 그림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요소로 여행을 꼽았다. 매년 시간을 따로 내어 긴 여행을 떠나 작품의 영감을 받으려고 했다. 프랑스 파리의 모네의 정원을 거닐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 느낌을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한다. 이렇게 ‘물빛 편지’, ‘불꽃 자수 놓은 도시’, ‘NODE’ 등의 추상화가 그려졌다. 오는 11월 15일부터 28일까지 ‘LINE ART’라는 제목으로 상생갤러리에서 그림 전시회를 연다. 포항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번 전시가 네 번째이다. 전시를 찾는 관람객을 생각하며 오래 밤을 새우며 김은수 작가가 붓으로 그려낸 시가 포항의 가을을 풍성하게 채울 것이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12

10만 명 찾아온 김천 김밥축제

지난 10월 26일 토요일 ‘김밥천국’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천 사명대사공원 일원에서 김밥축제가 열렸다. 김밥축제는 10월 26일, 27일 주말 양일간 열렸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대회와 행사, 공연이 진행됐다. 26일 개막식에는 ‘김밥’ 노래의 주인공 자두가 오화평과 함께 공연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시민기자는 지난 김천 포도축제에서 김밥축제를 홍보하는 꼬달이(김밥축제 캐릭터)를 만나 김밥축제에 대해 알게 되어 김천을 방문했다. 김천에 도착해서 축제 셔틀버스가 오는 김천 종합스포츠타운에 주차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섰다. 길게 늘어선 줄은 김밥축제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 1시간 넘는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도 행사장까지 끝없이 줄지어 있는 차들로 인해 이동 시간만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걷는 속도보다 느린 버스를 타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버스에서 내려 행사장까지 걸어 들어갔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고 전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축제장이 가득했다. 중간중간에 외국인 관광객도 보였다. 축제장에 도착했으니, 김밥을 먹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주린 배를 붙잡고 김밥이 파는 부스로 이동했다. 하지만 어디에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김밥축제에서 김밥은 구경도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셔틀버스의 줄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꼬불꼬불 줄을 이루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방문객들은 길거리에 앉아 쉬기도 하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은 울상을 지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기다림 끝에 탑승한 버스에서 “이래서 이런 축제는 오면 안 되는 거야.”하는 불만 섞인 시민의 말소리도 들렸다. 이번 김밥축제는 김천시의 효과적인 홍보로 10만 명의 방문객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주변 식당도 함께 손님들로 바쁜 시간을 보냈고 외국인 방문객들의 발걸음도 이끌어내어 지역축제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많은 방문객과 이를 대처하는 손길의 부족으로 인해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 방문객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지난달 안동에서 열린 선유줄불놀이 축제에서는 셔틀버스가 통행하기 쉽도록 도로에 교통경찰 등 차량을 통제하는 많은 인원을 배치하여 효과적으로 교통을 통제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김밥축제도 많은 인원이 방문할 것을 대비해 교통을 통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축제의 주인공 김밥을 넉넉히 준비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첫 김밥축제의 문제점을 보완해 다음 김밥축제는 더 즐거운 축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07

세월은 물처럼 흐르지만 추억은 여전히 빛난다

쉰은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의 나이이다. 어릴 때는 쉰이 되면 세상의 이치쯤은 가볍게 알게 되고 신이 주는 심오한 뜻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쉰에 당도하고 보니 왠걸 갈수록 세상살이는 막막하고 알게 된다는 하늘의 뜻도 아리송할 뿐이다. 쉰 중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게 됐다.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어린 날을 떠올려본다. 우리 때는 국민학교였던 그 시절에서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훌쩍 갔다. 천진난만했던 아이들은 이제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았던 맑았던 시절. 그때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니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특히 시골 학교 아이들은 인원 수가 적다보니 초등 6년을 계속해서 한 반으로만 올라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억의 페이지에는 아이들의 특성과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때의 학교 정경도 마찬가지다. 교정의 나무에서 까맣게 익어가던 버찌 열매와 둥글었던 분수대, 오종종 화단에 모여 피던 채송화의 빨강색도 선명하다. 남자애들이 척척 잘도 건너가던 구름다리 철봉과 높았던 미끄럼틀은 이미 다 사라졌을 것이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련한 감상에 젖어 윤제림 시인의 쉰이라는 시를 꺼내 읽어본다. “하루는 꽃그늘 아래서/ 함께 울었지// 하루는 그늘도 없는 벚나무 밑에서/ 혼자 울었지// 며칠 울다 고개를 드니/ 내 나이 쉰이네// 어디 계신가…. 당신도/ 반백일 테지?”- 윤제림 시 ‘쉰’ 전문 이제 반백이 되었을 동창들을 떠올려 본다. 시간의 강물이 우리들 사이를 빠르게 흘러갔다. 반백의 나이에 조우할 모습이 사뭇 기대가 된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물결처럼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몇몇은 서둘러 멀리로 돌아가버린 친구도 있다고 들었다. 모두 단풍 곱게 물든 가을날처럼 원숙한 중년이 되었으리라 가만히 그려본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예보도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도 곧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이다. 친구들도 저물어가는 가을을 안타까워하며 나들이를 나갈지도 모르겠다. 꽃그늘 아래서 함께 울던 그대는 이 가을 어디에 계신가? 샛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눈빛이 쓸쓸해지고 있는가? 꽃피던 시절이야 차마 잊지 못했겠지. 하지만 그대들도 이제 반백일 테지?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07

스마트 폰 세상 살아가기

지금 우리는,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스마트 폰 하나에 지구의 온갖 소식이 담겨있는 글로벌 세상을 살아간다. 손가락 터치 한번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빨래방에서 세탁을 하면서 어디서든 세상을 공유한다. 스마트 폰 세상에서는 어떤 궁금증도 답을 얻을 수 있다. 인공지능 AI는 원하는 그림도 그려주고 논문도 써 주며 어려운 한시도 척척 해석해 준다. 이제는 스마트 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잘못된 정보도 많아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또 다른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기도 하다. 소셜미디어 ‘틱톡’ 개발사 바이트댄스 창업자 장미밍이 재산 493억 달러(47조)로 중국부자 1위에 올랐다. 글로벌 세상 속 영상콘텐츠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틱톡, 릴스, 숏폼, 숏츠 같은 소셜미디어의 짧고 자극적인 재미있는 영상은 한번 보기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스마트 폰의 중독 정도는 마약만큼이나 우려스럽다. 라떼를 들먹이는 기성세대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보면, 1교시 수업마침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뛰쳐나간다.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술래잡기 놀이기구 타기 등등으로 제한된 시간에 운동장이 좁다고 뛰어다니는 그 시간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운동장에 있는 흙조차 모든 것이 놀이기구다. 딸랑딸랑 수업시작 종이 울리면 아쉬움 가득 찬 눈망울로 와아~교실로 뛰어가던 아이들. 그리 오래지 않은 세월동안 세상은 완벽하게 바뀌어 이제는 운동장이 아닌 스마트 폰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더 달콤하고 더 재미있다. 꼰대로 취급되는 기성세대가 살았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세상을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와 태어나면서 기기와 함께 자란 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만의 독특한 행동 양식을 형성한다. 그러나 글로벌 세상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고 그 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VDT증후군을 보인다. VDT증후군이란 ‘영상 디스플레이 터미널 증후군(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으로 장시간 동안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며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MZ세대에게 많이 나타난다. 안구건조, 거북목, 목 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등의 증상을 보이는 스마트 폰 중독은 집중력을 흩트려 학생은 학업에 방해를 받는다. 신체적 활동도 줄어 성장기 건강에도 영향을 끼치며 과체중이나 비만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는 올해 9월부터 중학교 약 200곳에서 ‘교내 스마트 폰 사용금지’를 시행하며 내년 9월부터 모든 초·중학교에서 금지한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영국도 교내 사용금지령을 내렸고 잉글랜드 대부분의 학교도 이를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10월, 일부 국회의원에 의해 초·중·고등학생의 교내 스마트 폰 사용을 금지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연예·스포츠 기사에 댓글 난이 없어진다. 익명성을 앞세운 악성 댓글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젊은 부모들의 염려에 중독 방지 및 감시 기능을 탑재한 어린이 전용 키즈폰도 등장했다. 스마트 폰은 이제 공기와 같다. 마약처럼 무조건 없애고 못하게 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현명하게 잘 적응해 갈 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 부모는 물론 손자를 돌보는 기성세대의 몫인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07

1950년대 시작된 봉화 애전 보부상 위령제

봉화 물야면 애전 보부상 임방이 있던 애전마을은 물야저수지로 인해 수몰되었고, 부모형제, 처자식도 없이 살다간 애전 보부상들을 위한 위령제가 8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매년 음력 9월 30일 지내오던 위령제를 보다 의미 있는 행사로 발전시키고, 보부상 문화를 보존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2023년부터 10월 셋째 주 토요일로 변경해 올해 4회째 행사를 진행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봉화 보부상 임방이 있었고 강원도 영월, 태백, 충북 단양과 인접 지역으로 박달령과 주실령을 넘나들었다. 경상도 울진과 봉화 내성장, 춘양장, 후평장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애전 보부상의 본부인 임방 옆에는 마방이 달린 제법 큰 규모의 주막과 후평장이 있었으며, 인근 지역으로 통하는 중심지역이었고, 사기를 만드는 사기점이 있었던 곳이다. 사기와 옹기는 원래 부상의 전관 상품인 관계로 제조부터 판매까지 애전 보부상들이 깊게 관여하였을 것이다. 애전 보부상들은 장가를 못간 홀아비들이 많았으며 기억자로 지어진 임방에서 함께 자고 함께 생활하였던 보부상들로 많은 애환을 간직한 채 살다간 사람들이다. 사고무친으로 부모·형제 처자식이 없이 살다가 토지를 마을에 남기고 사망했으니,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은공을 잊지 않고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기존에 비를 세워 제를 올렸으나 저수지가 생기고, 보부상 임방이 있던 마을은 수몰돼 새로 합동위령비를 세워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위령비에는 열한 사람의 이름이 있고 이름 대부분은 성과 지역명을 합친 이름을 사용하였다. 합동위령비를 세울 때 마을에 살았던 주민들의 기억에 의존해 밝혀진 이름이 열한 명이었고, 이름마저 올리지 못한 보부상들이 있지만 자료가 없어 11명만 합동위령비에 새겨져 있다. 소설가 김주영의 작품 ‘객주’에서 주인공 천봉삼이 마지막 정착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봉화 애전 보부상촌이다. 봉화 보부상의 흔적인 조령 성황사와 내성행상불망비가 울진 지역에 남아 전하고 있다. 이번 네 번째 맞는 보부상 한마당에는 군민과 관광객 500여 명이 함께했다. 민요가수 공연과 보부상 마당놀이, 보부상 퀴즈 경연대회가 열려 성황리에 마무리하였다. 봉화 보부상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보존 전승하고자 특화 마당놀이라는 전통문화예술로 발전해 가고 있다. 봉화 보부상을 잘 이해하고 알리기 위해 마련된 보부상 퀴즈경연은 0X 퀴즈와 순위 결정전 퀴즈로 봉화 보부상을 알리기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내륙 깊숙한 봉화 예전 보부상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 산길을 수없이 넘으며 삶을 살았고 끝내 사고무친으로 생을 마감한 보부상들의 애환이 깃든 봉화 오전 약수탕 일원에서 ‘위령제 및 봉화 보부상 한마당’을 봉화군 오전2리 주민회와 봉화 보부상 보존연구회가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 열고 있으니 한 번쯤 찾아보길 권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05

지방자치 30년, 지역민과 소통 부재가 아쉽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25년이면 30년이 된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로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 지방자치제도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가와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풀뿌리민주주의 원리로부터 나온 제도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느낀다. 한국리서치에서 지역혁신연구소와 전북대학교의 공공갈등팀과 함께 지난 9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에 대한 자부심, 애착이나 소속감, 정주의식은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더 높았다. 전반적으로 60% 이상으로 나와 지방자치의 운영이 중요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지역사회의 뉴스를 보거나 주변 사람들과 지역의 이슈를 이야기한다고 답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자체장이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나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의견도 71%를 차지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정치적 효능감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에서는 70% 가까이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주민들이 지역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단체장, 지방의원 등 주민대표들이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결과를 보였다. 주민 참여 기회와 참여역량이 모두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서비스 만족도 역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의 문제 발생 시 지역 공무원들이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며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태도도 적극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절반(64%)이 넘는다. 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지방자치는 지역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30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그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의 부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의 성공 조건은 주민과 소통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는 현장에 있고 절차와 과정이며 결과보다는 이를 충분히 이행했는지가 풀뿌리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거라서다.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경기도 광명시는 원탁 토론회로 주민 스스로 시정과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평가를 하고 있어 다른 시·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와 경북은 행정통합으로 가기 위한 진통을 하고 있다. 시·도민의 동의 없이 추진 중인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 없이 일방적인 행정통합은 결사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경북의 주민들은 “통합이 되면 모든 행정 기능이 대구로 흡수될 것이며 이에 대한 예산확보도 어려워진다. 무분별한 통합이 오히려 지역 균형발전을 방해가 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와 경북의 행정통합은 수도권 일극체제의 심화로 경제성장의 정체와 일자리, 인구의 감소로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하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의 필수 생존전략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자치 30년을 맞이하는 지금, 주민들의 지역 소속감과 정주의식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여덟 번의 선거를 거친 지방자치의 중요한 성과이다. 하지만 개선되어야 할 여러 과제들도 보이고 있다. 지역사회에 관심 많지만 주민 참여의 기회와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은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의 주민과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05

그림을 빚다

플레이스 씨에 들어섰다. 너른 정원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사내아이 둘이 기다렸다는 듯 뿌연 안개를 휘젓고 다닌다. 함께 그 속에 뒹굴고 싶어 우리도 그 속으로 들어가 그림이 된다. 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니 입구의 차규선 작가의 귀향 전시 포스터가 벽면 가득한 크기로 붙었다. GOING BACK HOME, 경주가 고향인 작가가 고향의 언덕을 그려 펼쳐놓은 화려한 귀향이다. 2001년, 서른셋의 차규선은 호암미술관에서 본 분청사기에 반해 그 제작기법과 이미지를 반영하여 흙을 고착 안료와 섞어 캔버스 표면에 바르고 백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전면을 칠한 후 물감이 굳기 전에 나무 주걱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풍경의 형상을 그리거나 긁어냈다. 분청 회화의 시작이었다. 그림 앞에 서니 자꾸만 그릇처럼 질감을 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가까이 가서 눈으로라도 만져보려 자세히 살폈다. 초코케이크 위에 생크림을 올려놓은 듯하다. 손으로 쓰윽 찍어 맛보고 싶다. 소나무 가득한 그림 속에서 작가의 고향 집이 있나 살핀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경주 남산 근처에서 살았다. 태어나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굽고 휘어진 소나무 숲에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거나 누워있기도 했다. 솔숲을 가로질러 학교로 걸어가기도 했다. 그림의 소재가 경주의 소나무가 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하면 소나무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그의 이런 생각이 작업실의 수백 장 삼릉의 소나무 사진을 보면 짐작이 간다. 전시회장 창가에 커다란 백자 항아리가 앉았다. 차규선 작가의 그림 속의 푹하게 내린 하얀 눈 색을 닮아 잘 어울렸다. 이번 전시에 차규선 작가의 아버지, 경주 가는 길 등 작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그림도 있다. 이 길은 어디쯤일까 상상하며 길 속으로 걸어가 본다. 길 그림 맞은편에는 불빛 아래에서 수런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곳에 특별히 환한 조명을 비춘 풍경은 프란시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방어군의 처형을 떠올리게 한다. 2019년부터 차규선의 풍경 작업은 꽃밭이다.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방에 들어서자 분홍빛이 지천이다. 돌산인 남산을 이른 봄에 올라 본 사람은 보았을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무리를. 작가의 마음속 오솔길을 오르던 관람객이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진달래색에 취해 본다. 그 옆에 산수유, 또 고개를 돌리면 매화 정원이다. 그 향에 취해 어린아이처럼 사뿐거리며 그림 속을 뛰어다녔다. 검은 바탕에 수선화가 그득한 그림 앞에서는 작가의 마음을 느끼려 다소곳해진다. 마지막 방은 꽃이 별처럼 박혔다. 작가의 과잉과 절제를 동시에 품은 그의 최신작이다. 꽃과 나무의 형상 대신 우주의 팽창 같다. 작가의 그림의 영역이 어디까지 퍼져갈지 기대된다. 방을 나오며 작가의 그림을 보는 관람객을 그린 그림을 본다. 작은 액자 속에 작은 사람이 내가 되는 순간이다. 경주 플레이스 씨는 지난 문봉선의 먹 바람 전시도 그렇고 이번 차규선 작가까지 경주를 그린 작가들을 찾아낸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는 이가 적다. 황리단길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커피값이나 비슷한 입장료가 아깝다는 이도 있다. 경주가 문화로 풍성하길 바라며 플레이스 씨를 공개한 주인장의 뜻을 경주 사람들조차 모른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차규선 작가의 작품 변천사를 담았고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보고회 성격도 띠는 이번 전시회는 오는 12월 15일까지 열리니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주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1-05

이달의 독립운동가, 최세윤을 아시나요?

국가보훈부가 2024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세 분(최세윤·정원집·김영백)을 선정했는데 그 중 한 분이 흥해 출신 최세윤 의병대장이다. 최세윤은 1867년 포항 흥해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까지 여러 경서를 익히고 통달했으며 특히 병서 읽기를 좋아하여 문무를 겸비하였다. 명성왕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강요되자 책만 읽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의기가 일어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안동의진으로 달려가 김도화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에 합세해서 아장의 임무를 맡았다. 예안의진의 향산 이만도 의병장과 더불어 군무를 의논하여 능력과 신임을 받았으나,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고 일제가 무력으로 의병을 강제해산 시키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지으며 학림학당에서 인근 고을의 자제를 모아 글을 가르치며 농수 최천익 선생의 유고를 수집하여 ‘농수선생문집’속집을 간행하여 때를 기다렸다. 일본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고종의 밀지를 받은 정환직이 아들 정용기와 함께 영천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였다. 의병전쟁은 전기·중기·후기로 나누는데 산남의진은 중기에 일어난 의병이다. 1907년 제1대 정용기 대장이 죽장 입암전투에서 전사하고, 제2대 정환직 대장도 체포되어 처형당한 후, 최세윤이 제3대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최세윤 의병대장이 활동할 당시, 일제는 헌병 6600명, 경찰 5000명으로 늘려 야만적인 살육 작전으로 의병을 초토화시켰다. 이에 맞서 최세윤은 결사적으로 항전했으나 1911년, 포항시 장기면 용동에서 피체되어 대구로 압송되었다. 대구지방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경성형무소(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나라의 희망이 없음을 한탄하여 아내가 넣어주는 사식마저 거절하고 단식투쟁 끝에 1916년 49세 일기로 순국하였다. 최세윤 의병대장 가족은 당대 최고의 가치관인 충(忠)·효(孝)·열(烈)을 이루었다. 최세윤은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다 순국하셨으니 ‘충’을 이루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아들 산두(1888~1912)는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형벌에도 아버지의 행방을 함구하다가 24세에 옥사하였다. 이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않은 ‘효’를 실현한 것이다.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윤영덕(1868~1917) 여사는 최세윤 의병대장의 부인인데, 남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어린아이를 업은 채 대구와 서대문형무소 주변에서 품팔이를 하여 사식을 올렸으나, 들여보낸 음식이 그대로 되돌아 나오자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뜻이 있음을 짐작하고, 명주옷을 미리 준비하여 남편이 순국하자 손수 염습한 주검을 포항 흥해까지 정성껏 모셔 와서 장례를 한 후,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위해 혼신을 다 하였으니 ‘열(烈)’을 이루었다고 회자 되고 있다. 최세윤은 부인 윤영덕 여사와 함께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사단법인 최세윤의병대장 기념사업회에서 2013년 의병대장의 일대기와 의병 활동을 중심으로 한 ‘산남의진 제3대 의병대장 최세윤’, 2021년 김일광 작가의 청소년 소설 ‘산남의진 의병장 최세윤’이 발행되었다. 매년 흥해읍에서 의병의 날을 기념하지만 포항시민과 흥해읍민들의 관심은 저조한 편이라 안타깝다. 수많은 의병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을까. 2024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최세윤, 그 정신은 길이 길이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이순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