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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노동자들도 따뜻한 겨울 되기를

등록일 2025-12-30 16:30 게재일 2025-12-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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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해수욕장에 생긴 간이 이동 노동자 쉼터. 일주일에 3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겨울이 본색을 드러냈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도리와 장갑, 모자로 온몸을 꽁꽁 감쌌다. 어둠이 내린 도로 위의 자동차 불빛도 추위에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차들 사이로 배달 오토바이, 택배 차량이 눈에 들어온다. 차들 사이를 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추운 날씨에 괜히 마음이 쓰일 때가 있다.

며칠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본 도로 위의 환경미화원도 마찬가지다. 도시와 시민의 일상을 빛내주는 이들의 일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 길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지 궁금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택배차들이 드나든다.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하다 보면 문 앞마다 택배 상자들이 한두 개쯤 놓여 있는 걸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문 앞에 쌓인 상자를 볼 때면 우리의 일상이 택배나 배달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택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은 아니다. 배달 음식도 거의 즐기지 않으니 배달시킬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어쩌다 피자나 치킨을 시킬 때가 있다. 주문하고 문 앞까지 배달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그럴 때면 시민기자가 거주하는 동네 골목과 아파트를 누비는 택배 아저씨를 떠올렸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십 년은 훨씬 넘게 한 지역을 담당하고 계신 것 같다. 다른 택배 아저씨는 몇 번 바뀌어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보통의 키에 마른 몸인데 나이가 있어서인지 특별한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일하는 분이다. 택배사의 파업이 있을 때도 이분의 택배만큼은 멈춤이 없었다. 그래서 주문한 물건이 아저씨의 택배차에 실리기를 바랐다. 날씨가 덥거나 추워져도 혼자서 일하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부인과 함께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택배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선 여러 번 상이라도 주고 싶었다.

거리의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가는 길에 늘 마주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청소도구함을 옆에 두고 일을 하고 계시면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 늘 열심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쉬는 주말이면 뭔가 더 지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다음날 청소 아주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말갛게 세수한 얼굴처럼 엘리베이터 안은 깨끗해졌다. 아주머니의 노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처럼 시민들의 일상을 소리 없이 이어주는 건 비단 택배나 배달 오토바이, 환경미화원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도시의 길 위에선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고 있다. 대리기사, 주차요원도 누군가를 위해 길 위에 ‘서’ 있다.

이들에겐 길이라는 바깥이 자신들이 삶을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들을 위해 최근 포항에서도 ‘이동 노동자 쉼터’를 만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난 5월에 영일대해수욕장에 만든 간이 이동 노동자 쉼터를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폭염과 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세 곳 (상대동, 오천, 장량)이 더 생겼다.

포항시 관계자는 “아직 초창기라 이용률이 높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길 위에 선 이들에게 잠시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이동 노동자 쉼터. 이들에게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마음까지도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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