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냉이 찜이 식탁 위에 올랐다. 12월 아침의 매서운 공기를 뚫고 전해지는 그 구수하고 향긋한 내음, 입안에 한 술 머금는 순간 흙이 품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하다.
올해 우리 과수원에는 빨간 사과 대신 초록빛의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가을 내내 사과나무 사이사이 지천으로 널린 냉이가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냉이를 캐느라 11월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봄이면 바구니를 들고 들판을 누비던 시간이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3월 10일이 노동절이던 젊은 날, 우리는 시부모님과 아이들 손을 맞잡고 들로 나갔다. 팔공산 수태골 자락과 군위 제2석굴암 언저리의 논밭을 누비며 들꽃처럼 웃던 아이들의 모습, 봄볕에 반짝이며 웃음소리 가득 담던 어머님과 무뚝뚝한 아버님의 미소까지, 그 풍경들은 아직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밖으로 나가 들녘을 마주하면, 어른·아이 모두 하하 호호 크게 웃으며 한마음이 되었다. 땅을 밟고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캐던 그 순간순간이 우리 가족에게 축제였다.
해마다 봄이면 쑥이며 냉이며 달래를 캐서 가족의 밥상에 올리는 일이 연례행사였다. 친정엄마가 “봄나물은 보약”이라며 우리에게 매년 먹이던 것처럼, 나도 봄이면 들로 나가 나물을 캐고 정성으로 다듬고, 들깻가루와 콩가루로 풍미를 더 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 자연의 보약 밥상을 한 해도 거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3월 25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생활 터전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것을 정리하는 사이 봄날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렸다.
봄을 그렇게 보내 버린 아쉬움 때문일까. 올가을 사과밭은 온통 냉이밭이 되었다. 한 해의 가족 건강을 책임지던 봄나물이 가을의 선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과수원을 둘러보던 남편은 싱글벙글 콧노래를 불렀다. 그날부터 11월은 냉이 캐기의 연속이었다. 낮엔 사과밭에서 농부가 삽으로 냉이를 캐고 아내는 옆에서 흙을 털었다. 저녁엔 밤늦도록 거실에서 고단하게 나물을 다듬었다. 손끝이 새카맣게 물들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딸에게 주고, 이웃의 새댁도 주고, 대구의 지인들에게 함께 나누리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냉이를 가장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손이 고단해도 무침과 국을 끓이겠다며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으로 손질하셨다.
냉동실에 가득 쟁여 둔 냉이 봉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남들이 보면 보잘것없는 들나물일지라도 나에게는 자연과 가족을 잇는 소중한 삶의 산물이다. 나는 천상 농부의 아내인 모양이다. 들에서 나는 나물을 사랑한다. 고기반찬이 없어도 살 수 있을 듯하다. 봄날의 연두와 가을의 황금빛 들녘, 싱싱한 무청과 배춧잎의 푸른빛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특히, 추위 속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초록빛 냉이는 그 어느 것보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올봄 만날 수 없었던 그 작은 행복이 가을에 다시 왔다.
얼려두었던 냉이 한 봉지를 꺼낸다. 멸치 육수를 곱게 우려내고, 냉이에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다. 채 썬 무와 냉이를 냄비에 담고 자작하게 육수를 부어 끓인다. 냄비 옆을 떠나지 않고 불을 살핀다. 잠깐 한눈을 팔면 물이 넘친다. 김이 오르면 뚜껑을 열고 육수를 조금 더 부어 정성을 보탠다. 그렇게 구수하고 향긋한 냉이 찜이 완성된다. 자연이 차려준 소박한 밥상 앞에서 농부도 그의 아내도 행복한 아침을 온전히 누린다. 산불이 훑고 간 자리에 다시 돋아난 저 초록빛 생명, 가을 냉이가 건네는 이 뜻밖의 위로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내년의 봄을 꿈꿀 기운을 얻는다.
/손정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