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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협 울돌목에서 성웅 이순신을 만나다

등록일 2026-01-01 15:54 게재일 2026-01-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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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한 나라 구하기 위해 지도 움켜쥔 채
끝없는 고뇌에 잠긴 이순신 뒷모습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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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 상. 밀물 시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게 기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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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 간만 차에 의해 때가 되면 모세의 기적처럼 ‘신비의 바닷길’을 열어주는 곳. 아무일 없다는 듯 옹기종기 고깃배들이 평화롭게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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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 위에 자리잡은 진도대교 야경. 쌍둥이처럼 놓여진, 해남과 진도를 잇는 대교로 인해 해남은 더 이상 땅끝마을이 아니며 진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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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 벽파정 오름 끝,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다.

울돌목에서 나라를 위해 고뇌하는 이순신을 만난다. 그의 손에는 예외 없이 들고 있는 익숙한 장검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도를 움켜쥔 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극도로 불리한 조건 앞에서 분노보다 책임을 먼저 떠안았던 장수. 끝없이 고뇌하는 그의 뒷모습은 4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묘하게 든든함을 준다.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적선(敵船)과 맞서야 했던 그의 시선은 바다를 두려워하지도 얕보지도 않는다.

포항에서 남해 끝 전남 진도군까지 다섯 시간을 달린다.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거리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를 본 후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에서 그와 마주하고 싶다는 일념이 먼 거리를 감내하게 한다.

울돌목은 변함없이 거친 조류에 바닷물이 뒤집히며 용트림을 한다. 직접 함선을 건조하고 군량미 조달과 부상병, 피난민까지 먹여 살리며 전투에 임했다는 이순신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동상으로 돌아와 당시 형용할 수 없이 급박했던 상황을 재현한다. 전율이 인다. 이순신의 기운이 감도는 진도군과 해남군을 둘러보기 위해 관광지도를 펼친다. 누구는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도를 움켜쥐었고 누구는 저 하나 삶의 무게를 덜고자 지도를 펼친다.

가까이 벽파정에 오르니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가 눈에 들어온다. 거북이 등에 우람히 올라선 비석은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다는 듯 우리 땅, 우리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다. 나란히 서서 바다를 보니 그냥 뭉클하다. 이어 찾아간 신비의 바닷길. 모세의 기적은 계절마다 나타나는 시간이 달라 겨울에는 보기가 힘들다며 4월 축제를 기약하라는 안내를 듣지만 섭섭지 않다. 바닷길이 열린다는 앞바다에 고깃배들이 장난감처럼 옹기종기 떠 있는 평화스러운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신비스럽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세방낙조로 향하는 길, 차창 너머로 언뜻 스친 팽목항. 이 바다에서 또 다른 잊지 못할 희생과 마주한다. 먹먹해져오는 가슴을 달래고자 잠시 들러 그들을 위해 묵념을 올린다. 날씨가 흐려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없었지만 아쉽지 않다. 해비치 카페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녹이며 바라 본 서해바다는 일몰 없이도 매우 아름답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과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에서 그들의 정신세계를 탐하고, 법정 스님 생가 터에서 스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나무의자에 잠시 앉아 마음의 짐 덜어내 본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겨울 햇살 먹은 배추와 파, 당근, 시금치들을 완도군 오일장에서 만난다. 남도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이미 재료에서 완성된 느낌이다. 차 트렁크가 넘치도록 장을 본다.

진도를 떠나기 전 다시 찾은 울돌목. 급히 흐르는 조류는 여전히 무섭게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순신의 고뇌하는 동상을 본다. 장검을 움켜쥐고 광화문을 늠름히 지키는 거대한 동상만큼이나 지도를 움켜쥐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작은 동상의 뒷모습에서도 위풍당당의 전율이 같은 무게로 흐른다. 남도의 바다는 그렇게 오늘도 역사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을사년 한 해가 저물고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삶 속에서 계속 숨 쉰다. 울돌목에서 만난 이순신의 고뇌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크고, 그리고 깊게 숨을 고르며 이순신 장군의 후손답게 당당히 새해를 향해 걸음 내딛는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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