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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부사 하나 맛보실래요?

등록일 2025-12-09 15:50 게재일 2025-12-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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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럽게 열린 부사.

늦가을에 접어들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사과는 붉게 튼 아이볼처럼 발그레 익어갔다. 근심어린 모친의 표정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여름내 매끄럽기만 하던 열매의 바닥도 거칠어져 간다. 

 

부사는 일본어로 후지로 일본에서 들여온 사과 품종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별도의 한자 표기 없이 히라가나로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지산의 한자를 따와 부사라고 표기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 때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국내로 도입되었다. 가장 크고 가장 맛있는 사과라는 이유였다.

 

부사는 광택 나는 붉은 껍질에 단단한 과육을 가졌으며 과즙이 풍부하다. 위는 붉고 아래쪽이 살짝 노르스름하며 거친 것이 가장 맛있다는 게 30년 넘은 과수원집 딸의 소견이다. 과수원을 하기 전엔 주변에서 나눠주는 사과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맛 같은 걸 크게 따지지 않았다. 

 

다들 농사를 짓다 보니 저마다 흠과가 나오면 서로 나눠 먹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주기도 했는데 큰 구멍에서부터 작은 구멍까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벌레가 먹은 과일이 가장 맛있다는 말처럼 썩은 부위가 클수록 더 맛있었다. 그러다 과수원집 딸이 되고부터는 입맛이 무척 까다로워졌다. 아쉬움이 줄어들면 느낄 수 있는 행복도 그만큼 줄어드는 법이다. 

 

어린 청춘의 나무에서부터 과수원이 생겨나고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까지 고루고루 결실을 맺어줬다. 올 한해도 참으로 애썼다. 이상 기온탓에 예년에 비하면 갈수록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사과는 더위에 취약하기 때문에 여름이 길어진다는 것은 위험신호다. 이래서야 얼마 후엔 망고를 기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사는 1년 내내 농부의 땀과 바람으로 키워지는 과일이다. 한 계절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다른 농사는 한 계절 정도 쉬어갈 때도 있지만 수확철이 추운 늦가을과 겨울이라 그마저도 쉴 틈이 없다. 

 

봄철엔 이상 저온현상으로 꽃이 못 피거나 혹은 얼어버렸고 여름이 되자 폭우 폭염 등 이상 기후 현상으로 낙과가 늘어났다. 겨우 여름이 지나나 했더니 달력으로는 가을이 훌쩍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찬바람이 불어야 익어가는 부사 입장에선 낭패다. 

 

부사는 찬바람이 세어질수록 과육은 더 단단해지며 아삭한 식감이 더해진다. 열매들은 얼어붙지 않기 위해 힘껏 당도를 올려댄다. 그렇기에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되면 단맛은 더 깊어진다. 부사의 당도와 저장성이 뛰어난 이유다. 

 

올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말벌들이었다. 가장 맛있고 가장 좋은 것을 노린다. 포유류에 비해 작은 몸체임에도 불구하고 먹어대는 양이 상당하다. 결국 포획틀이라는 처방이 내려졌고 대략 이주 간 이른 단맛을 실컷 즐긴 말벌들은 자취를 감췄다. 또 다른 포식자가 넘어오기 전에 서둘러 수확에 들어가야 하기에 농부의 손은 바빠진다. 

 

온 계절을 가득 담아낸 부사의 향기는 유달리 진하다. 한 입씩 베어 물때마다 새콤달콤함에 기분도 밝아진다. 2025년도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부사처럼 하루하루가 더 단단해진 한해였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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