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현재에도 태어난다. 우리가 사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록이 쌓이고, 오래된 기억은 다시 해석된다.
문제는 그 과정이 언제나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역사라는 몸 위에는 권력과 시대의 의도가 옷처럼 덧입혀지고, 때로는 가면으로 굳어 진실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이러한 왜곡의 흔적을 가장 깊게 남긴 시기를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다. 일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역사부터 다시 짜 맞추려 했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운영된 조선사편수회는 그러한 의도의 집약체였다. 일왕의 명으로 구성된 그 조직은 한국사의 기둥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고, 약 400년의 역사를 통째로 삭제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고대 국가의 시원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일본서기”와 중국 사료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편집’이었다.
그 영향은 광범위했다. 조선총독부 산하 학자들은 한국 고대사의 틀을 재구성했고, 조선인 학자들 역시 그 학문 체계 안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마니시 류가 경성제국대학에서 강의하며 후대 국내 사학계에 남긴 흔적은 지금도 논쟁적이다. 역사라는 알몸은 그 시기 가장 두껍게 가려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려진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2022년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와 경상북도의회가 제기한 통일신라 북방 경계 재해석은 그 한 예다. 현재의 압록강(鴨綠江)과 다른 물줄기인 삼수변의 압록강(鴨淥江)을 주목함으로써, 통일신라의 실제 영역이 더 넓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학계 전체의 합의는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 제기임은 분명하다. 왜곡된 지도를 바로잡는 작업은 결국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서기의 지명을 국내 특정 지역에 대응시키며 논란이 되었을 때, 지역민과 시민단체가 봉정식 연기를 이끌어 낸 사건은 상징적이다. 정사에도 없는 지명을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결국 일본이 만든 지도로 우리 땅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제는 지역 공동체가 이러한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식민지 통치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인에게 일본의 혼을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에 걸맞게 수많은 고서를 불태우고 반출했다. 그럼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온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일본의 데라우치 문고에 지금도 우리의 고서가 다수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은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이유는 단순히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후손이 “당신들은 조상으로서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에 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실을 요구하며, 진실을 남길 책임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있다.
역사는 언젠가 모든 왜곡의 옷을 벗고 햇빛 아래 설 것이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이 순간에도 진실의 옷을 한 벌씩 지어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김성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