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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의 깊은 감동 ‘어머니의 시간’

등록일 2025-12-11 15:21 게재일 2025-12-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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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세계물포럼기념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어머니의 시간’ 전시회.

“시어머니 팔촌 소개로 만나도 못하고/ 얼굴도 안 보고 결혼했지/ 결혼식날 처음 본 내 신랑/ 아들딸 육남매 낳아/ 재미있게 잘 살았네/ 알뜰살뜰 모아/ 아파트도 샀지/ 이런 저런 고생하다/ 돌아온 내 고향/ 뭐가 그리 급한지/ 인사도 못하고 떠난 그 사람/ 잘 가소 다시 만나요.” - 김이자(안동시 풍천면 기산리)씨의 시 ‘신랑’

 

“한글교실에서 키오스크 배워서/ 빵 사먹으러 갔다/ 햄버거랑 쥬스랑/ 아이스크림을 키오스크에서 주문했다/ 손주들이 우리 할머니/ 엠지라 하네···./ 엄지는 또 머꼬?” - 권경자(안동시 풍산읍 수곡리)씨의 시 ‘키오스크’

 

올겨울에도 안동시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 문해시화전 ‘어머니의 시간’이 열렸다. 세계물포럼기념센터에서 지난 2일부터 열린 시화전은 안동시 14개 읍면 308명의 어르신이 한 해 동안 갈고 닦은 활동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다. 

 

직접 쓴 삐뚤삐뚤한 글씨에는 정감이 묻어나고 내용에는 감동이 배어난다. 짧은 시 한 편에는 부모 세대를 봉양하고 자식 세대에 헌신한 노년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과 더불어 배움에 대한 기쁨이 담겼다.

 

시어머니 팔촌 소개로 얼굴도 못 보고 만나 결혼해 육 남매 키우고 이제야 살만하니 떠난 신랑을 그리워하고, 만주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안동으로 와 온갖 궂은일 하다 결혼해 칠 남매 키우고 층층시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사연, 키오스크를 배워 음료와 빵을 사 먹는 기쁨을 알게 되고, 사과밭에서 일하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급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경로당에 가고, 텃밭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보며 유난히 떫은 감을 좋아하던 엄마를 그리워하고, 뜨거운 산불에도 살아나 추석 제사에 쓰인 밤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고, 나이 구십에 공부를 시작해 자꾸 잊어먹기 일쑤지만 그래도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내용 등 모두 굽이굽이 깊은 사연과 서사를 풀어놓았다.

 

평생을 반추해 풀어놓은 젊은 날의 이야기부터 소소한 일상과 산불의 아픔까지, 한 편의 시에 응축한 어르신들의 삶은 그 자체로 기록이며 지역의 역사이다.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은 안동시와 한국수자원공사, 안동시 평생학습교육지도자협의회가 2014년부터 협약을 통해 읍면 지역 어르신들에게 한글 및 음악, 미술, 공예, 디지털 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맞춤형 평생학습 사업이다. 

 

이번 ‘어머니의 시간’ 시화전은 내년 1월 15일까지 안동댐에 있는 세계물포럼기념센터에서 열리고 이후 1월 16일부터 2월 23일까지 안동역에서 2차 전시를 열어 더 많은 시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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