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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에서 만난 만휴정(晩休亭)

등록일 2026-02-23 15:40 게재일 2026-02-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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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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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널리 알려진 만휴정의 외나무다리를 관람객이 걸어가고 있다.

설 연휴에 하루 나들이 할 곳을 찾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정하니 안동이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가보자고 했지만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집에 TV를 없앤 지 오래라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한참 후인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되면서 주인공 유진 초이와 고가 애신과 함께 배경이 되었던 만휴정(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이 뒤늦게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곳이 궁금했었다.

새로 난 포항-영덕 고속도로로 달렸다. 영덕을 지나가니 거기서부터 지난해 산불 피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바라본 산들은 도로 양쪽이 잿빛을 하고 있었고 영덕, 청송, 의성, 안동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산 바로 아래는 마을들이 있었다. 산불로 피해를 본 지인들은 없었지만 뉴스에서 본 산불을 떠올리며 화마를 피하려 했던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다. 방염포에 둘러싸여 화마를 견딘 만휴정의 모습도 생각났다. 이제 봄이라며 시나브로 들려오는 봄꽃 소식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 순간이기도 했다.

입구에서 먼저 마주한 건 넓은 주차장과 깔끔한 화장실이었다. 연휴라 주차된 차들과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주차장에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짧은 다리를 지나니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 앞은 만휴정 관람 안내와 함께 지난해 산불이 난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몇몇 관람객들은 화재 현장이 담긴 영상을 한참 집중해서 보기도 했다. 매표하시는 분이 아이들이 있는 걸 보고 두 장의 포토 카드를 건넨다. 카드에는 앞뒤로 산불 당시 방염포에 둘러싸인 만휴정과 원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낮은 오르막길을 오르니 길 오른쪽의 계곡은 얼음으로 덮여있다. 얼음이 녹으면 들리는 물소리를 상상하면서 걸으니, 곳곳에 ‘미스터 션샤인’의 명대사가 적힌 철제 장식들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그 대사가 적힌 곳이 바로 포토존이다.

만휴정이 있는 곳에 다다르니 외나무다리가 문 앞까지 이어져 있다. 외나무다리에서는 관람객들이 가던 길을 멈춰서서 아이를 안거나 반려견을 안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담장 안의 만휴정을 바라보니 꾸밈없고 정갈한 느낌으로 서 있다. 숲과 앞의 계곡물과 한 몸처럼 어울려 보인다. 폭포가 있다는 건 몰랐는데 얼음이 녹는 따뜻한 봄에는 초록과 물소리가 더해져 더 멋질 거라 여겨진다.

조선 전기 문인 보백당 김계행이 지은 만휴정은 주위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져 보이지만 독서와 사색으로 가만가만 늦은 휴식을 즐기는 정자라는 뜻과도 딱 맞는 풍경으로 보였다. ‘우리 가운데 보물은 없으나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라는 그가 남긴 말도 정자를 보는 순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산길이라 위험한 곳이 있어 무리하게 사진 찍지 말라는 안내문도 붙어있다.

넓지 않은 대문으로 들어섰다. 정자로 들어가니 두 개의 온돌방에도 화마를 견뎌낸 현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만휴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여러 곳에서 전해졌다.

만휴정을 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조만간 다가올 초록과 꽃들이 만발하고 폭포 소리가 깨어나는 봄이면 자연의 소리를 듣는 즐거움에 조금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화마를 이겨내고 당당히 서 있는 만휴정은 관람객들이 오가는 발길 속에 조용히 봄을 품고 있었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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