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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붓끝으로 영남의 기개를 깨운다'

등록일 2026-04-12 15:32 게재일 2026-04-1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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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의 율산 이홍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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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산 리홍재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퍼포먼스 타묵(打墨)의 개척자다.

대구 봉산동 문화거리. 영남의 서단 ‘도심명산장(道心名山藏)’에서 율산(栗山) 리홍재(李洪宰) 선생을 만났다.

변함없는 생활 한복에 긴 머플러 두른 정장 차림이다. 영남의 산세를 닮은 획, 율산 선생의 글씨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기운’이다. 그가 긋는 획은 때로는 영남의 가파른 산맥처럼 단단하고, 때로 굽이치는 낙동강 줄기처럼 유연하다. 세간에서 그의 글씨를 ‘율산체’라 칭송하는 이유는 그만큼 독보적인 조형미와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자신의 서체를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설명한다. 글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율산이 추구하는 예술의 정점이다. 그의 대작에서 볼 수 있는 파격적인 공간 구성과 대담한 필치는 전통 서예의 틀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을 보인다.

율산 선생의 예술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원칙이다. “전통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며 그 안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법을 지키되 법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서예가가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선생은 매일 새벽 수천 번의 획을 그으며 기본을 다진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탄생한 그의 행초서(行草書)는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며 영남 서예만의 묵직하고도 파격적인 힘을 대변한다.

팔공산 취락지구 중심가에 세운 ‘대동방 서예술문화관(大東房 書藝術文化館)'에 들어서면 분위기부터가 압도된다. 육십 년 내공이 쌓인 율산의 먹물 예술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벽면 계단에 80폭 병풍이 대동방 문화관의 수문장처럼 보였다. 이천여 평을 가득 채운 대작(大作)들은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는 영남 유림의 곧은 절개와 타협하지 않는 선비정신이야말로 자신의 서예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내공이 단단한, 진실함이 묻어난다.

그는 퍼포먼스 타묵(打墨)의 개척자다. “예술은 창작이어야 하며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만의 예술적 일화가 있다. 1999년 KBS 방송에서 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16mm 큰 붓을 사용했는데 첫 번째 글자에서 붓이 나가지 않았어요. 제자가 “선생님 술 한잔하세요!” 소주 한 컵을 물 마시듯 들이키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붓에 힘이 붙어 일필 휘하 성공리에 마쳤다는 것이다. 마음이 굽어 있으면 필획이 흔들리고, 정신이 흐트러지면 글이 탁해짐으로 그래서 서예는 마음을 닦는 기본이라고 한다.

선생은 최근 디지털 문명에 밀려 서예가 소외되는 현실에서도 역설적으로 서예의 가치가 더 빛날 것이라고 했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담아내는 서예야말로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장(藏)이라는 것이다.

율산의 계보는 영남 서예의 거목인 석재 서병오와 죽농 서동균의 제자 죽헌(竹軒) 현해봉으로 이어지는 영남 서예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서예가들이 영남 서예를 ‘투박하다’라고 평할 때마다, 선생은 오히려 “그 투박함이 바로 꾸밈없는 기개며 생명력”이라고 일러 준다. 자신의 호(號) 율산처럼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알차고 부드러운 영남 서예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서예가다. /유무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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