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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국물 속 똬리 튼 면에 층층이 쌓아 어우러진 고명들

등록일 2026-02-23 15:55 게재일 2026-02-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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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밥 헌터스 트로트와 어울리는 경주 불국사 밀면

겨울에 몸 녹이며 속 먼저 달래는 육수는 비빔면에 살짝 부어 섞으면 더 잘 비벼져
작은 촛불 위에 올린 구멍 뜷린 그릇은 ‘석쇠불고기’ 식지 않게 한 기발한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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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밀면 전경. 

가수 에픽하이의 노래 ‘트로트’ 가사를 아는가? “부산에선 여자가 심장을 찢고 난 떠났다 걸었다 대구 대전 찍고 끝내 서울시 밤이면 밤마다 술을 퍼붓지 네온밤도 어둡지 갈 곳이 없어 난 힘이 없어 홀로 남은 개리형처럼 길이 없어 여기 멈춰 한 곡을 뽑아 밤이면 밤마다 마이크의 목을 졸라 힙합 댄스 락 발라드도 좋지만 슬플 땐 what?” 록 페스티벌 가서 내내 서서 함께 팔을 흔들며 따라 불러도 후렴구만 되뇌일 뿐 가사를 다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운전 중 라디오에서 ‘홀로 남은 개리형처럼 길이 없어’라는 구절에 ‘캬아~’ 기가 막힌 가사에 무릎을 쳤다.
 그러고선 인터넷에 가사를 검색해 찬찬히 읽었다. 어머나 내가 아는 트로트 제목이 다 들어 있었다. 네 박자, 땡벌, 동반자, 사랑은 얄미운 나빈가 봐, 갈대, 잡초, 밤이면 밤마다, 어느 한 곡 놓칠 수 없다는 듯 잘 버무려서 말아놓은 ‘트로트’ 한 곡, 절묘한 가사가 감동적이었다. 그 후 포항 MBC 라디오에 몇 번이나 들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들을 때마다 그룹 ‘리쌍’의 길과 헤어진 개리 형처럼 길이 없다는 라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딱 떨어지게 두 가지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불국사 밀면’이 떠올랐다. 불국사 앞까지 에픽하이 노래를 들으며 고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문숙씨와 북카페에서 봉사를 끝내자마자 경주로 달려갔다. 오후 1시가 넘으니 배가 많이 고팠다. 기다리는 줄이 길면 어쩌나 했는데 금요일이라 가게 안이 꽉 찼지만,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자리마다 구멍이 뚫린 그릇에 작은 촛불이 놓였다. 분위기 띄우려고 켜 논 게 아니라 그 위에 곧 고기가 올려질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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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초밀면과 석쇠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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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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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불국사 밀면이 처음인 문숙씨라 메뉴는 내가 정했다. 지난 방문 때와 달리 자리마다 키오스크가 생겼다. 시원한 국물인 땡초 밀면, 비빔밀면, 손만두 추가! 시킨 지 5분쯤 지나자 바로 면이 나왔다. 배고픔이 절정이라 오래 기다리면 힘든데 금방 나오는 게 이 집 장점이다. 석쇠불고기 한 접시 촛불 위에 올려 준다. 먹는 내내 자글자글 식지 말라고 작은 불을 밝혔다. 시원한 국물에 똬리를 튼 면, 그 위에 무, 그 위에 오이, 그 위에 달걀이 엎드렸고 노란 달걀지단을 이불처럼 덮었다. 에픽하이 ‘트로트’ 가사에 트로트 제목이 올려지듯. 
 면을 자르다 문득 잠깐만요, 육수를 잊고 있었다. 얼른 달려가 컵을 두 개 꺼내서 육수를 받아왔다. 주문을 넣고 기다리며 애피타이저로 뜨거운 육수로 겨울엔 몸을 녹이며 속을 먼저 달랜다. 무한 리필이니 더 좋다. 비빔면에 살짝 부어 면을 섞으면 더 잘 비벼진다. 벽에 메뉴가 실제크기 사진으로 붙어 있고 그 옆에 밀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순서대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1. 가위질을 되도록 적게 해주세요.(우린 한 번만 했다.) 2. 식초와 겨자를 적당히 넣어 드세요. 식초는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고, 겨자는 배탈을 막아주며 맛을 더해 줍니다.(우리는 기본이 좋아 식초도 겨자도 함께 내온 양념장도 넣지 않고 먹었다.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다.) 3. 달걀을 먼저 드세요. 단백질이 위벽을 감싸주어 매운 양념으로 인한 속쓰림을 방지합니다.(사실 내 입맛에는 그리 맵지 않았다. 땡초 밀면도 조금 더 맵길 바랐다.)
 

면의 양이 다른 집보다 많아서 곱빼기는 안 시켜도 충분했다. 거기에 만두까지 시켰더니 배가 터질 것 같다. 이 집을 처음 방문했던 때 문 앞에 붙여진 안내문에 한참 웃었더랬다. ‘비 오는 날 쉽니다.’ 아침에 비 오다 오후에 그치면 영업하나? 영업하다 오후에 비 오기 시작하면 문 닫나? 지금은 네이버에 검색하고 오면 되니 문제 되지 않는다. 평일엔 낮 장사만 하고, 주말엔 오후 6시50분 라스트 오더다. 경북 경주시 불국장터길 29 불국사밀면 0507-1444-6161.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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