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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안전거리

등록일 2026-02-25 16:12 게재일 2026-02-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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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배려의 태도가 중요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얼마 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문자를 남겼지만, 답장이 없었다. 다음 날 다시 건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의도적으로 내 전화를 피하고 있다는 느낌. “전화를 안 받는 모양이네요. 무슨 일인지?”라고 다시 문자를 보냈으나 며칠째 침묵뿐이었다.

그녀는 늦깎이 공부를 하며 알게 된 후배이자 연배가 비슷해 각별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지난해 학회장으로 활동할 만큼 매사 열심이었고, 집도 가까워 운동과 식사를 함께 하던 사이였다. 전화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며칠 전 동행했던 다른 후배에게 물었지만, 별다른 오해는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만나서 문제를 풀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4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은행원 시절, 두 살 위 선배들과 친구처럼 지냈었다. 업무와 사생활을 공유하며 살뜰히 챙겨주던 한 선배가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싸늘하게 변했다. “후배가 건방지게 선배를 우습게 안다”라며 소리를 지르던 그 눈빛.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물만 흘렸다. 그때 알았다. 상황에 따라 친분을 단칼에 베이어버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사람 사귀는 일에 신중해졌고, 마음 한구석엔 늘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4년이나 가깝게 지낸 이 친구만큼은 제발 그 시절의 동료와 다르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음 날 모임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 그녀를 만났다. 왜 전화를 피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외면했다. “너무 믿었던 사람이라 배신감이 커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해가 있다면 직접 물어야지, 연락조차 끊는 일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타일렀다. 차분히 대화를 나누어 보니 나의 사소한 행동이 그녀에게는 큰 오해로 번져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몇 마디 말을 나누자 며칠간의 냉전이 무색하게 매듭이 풀렸다.

그날은 학생회 출범식이 있었다.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동문 선후배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후배가 대들고 선배가 격앙되는 소란이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에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뒤풀이 장소에서도 그들은 서로의 입장만 변명하기 급급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각자의 불만만 부풀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갈등은 대개 쌍방의 고집에서 비롯된다. 곁에서 보면 뻔히 보이는 잘못도 당사자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좋을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 굴다가도, 틀어지면 전화와 문자를 차단해 사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한때의 친분이 무색하게 후배들 앞에서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관계에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한 발짝 물러서서 상황을 들여다보고, 원망은 빨리 흘려보내며 좋았던 기억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숨지 말고 질문하여 해결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삼세번’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실수와 원망을 개선할 여지를 서로에게 허락할 때, 비로소 관계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맞이할 수 있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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