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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커피 명가 “오래된 것은 향이 더 깊다”

등록일 2026-02-09 16:21 게재일 2026-02-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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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밥 헌터스 포항 아라비카

죽도시장 가까이 상가들 어깨 맛댄 거리
마른 넝쿨 잘 꾸며진 정원의 얌전한 양옥
1991년 카페 열 때 분위기 그대로 간직

갈색 진한 커피 향에 재즈가 흘러 나오면
우리를 기억 속의 그 시절로 다시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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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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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 사장님과 안주인. 

한 자리에서 몇십 년 음식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36년 동안 커피를 내려온 가게가 있다. 포항 죽도시장 가까이 상가들이 어깨를 맞댄 거리에 아담한 양옥 한 채가 얌전히 앉았다. 겨울이라 마른 넝쿨을 울타리에 얹고 ‘아라비카’라는 동그란 명찰을 마당 가에 세워놓지 않았다면 손끝이 매운 주인이 정원을 잘 꾸며 놓은 가정집으로 보일 뿐이다. 입구에 주차 공간이 두 대가 세워지니 꽉 차서, 바로 옆 사설 주차장에 세웠다. 찻집의 뒷모습이 보였다. 예전엔 다른 건물이 있어서 못 보았는데 외벽에 검은빛 돌을 촘촘히 박아 더 예스럽다. 마른 넝쿨이 벽에 붙어 겨울을 난다. 봄부터는 초록으로 변하겠지.

가게로 오르는 계단참에는 ‘미미’라는 이름의 삼색 고양이가 주인처럼 앉았다. 커피색의 털이 커피 향을 오래 맡아 물든 양, 아라비카와 잘 어울렸다. 입구에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이 말갛다. 사랑받는 길냥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무 한 그루가 손님을 맞는다. 커피나무였다. 카운터의 주인장 뒤로 1991년에 카페를 열었다고 명패가 달렸다. 함께 간 하원 선생님에게 비슷한 나이일 거 같다며 웃으신다. “하다 보니 좀 더 좋은 맛을 내려고 커피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원두도 직접 골라서 로스팅하는 법도 배우다 보니 지금껏 하고 있다”고 했다.

실내는 36년 전 처음 찾았을 때 그대로다. 살림집으로 지은 지 10년 된 건물에 유리창만 달아내 가게를 열었다. 그 후 벽지만 가끔 새로 할 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벽지도 다시 찾아온 손님이 생경해하지 않도록 비슷한 분위기로 한다는 말에 아,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카운터 옆 박스형 코너에는 커피를 드립 하는 남자 그림이 걸렸다. 주인장을 그린 그림 같다고 했더니 서울에 사는 여대생이 잡지에 인터뷰한 모습을 보고 커피로 그림을 그려 보내왔더란다.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걸어두고 본단다. 그러면서 ‘이 박스가 뭔지 아시죠?’라며 되묻는다. 자세히 보니 지역번호가 표시된 전국 지도가 붙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공중전화 박스였다. 머지않은 과거에 이곳에 줄을 서서 오지 않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8282라고 삐삐를 쳤었다. 공중전화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없애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어서 우리를 그 기억 속의 그날로 데려간다.

스피커에서 재즈가 흘러 오래된 건물 안으로 번진다. 갈색 진한 커피향기와 잘 어울렸다. 메뉴판을 가져와 펼치니 몇 쪽이나 될 만큼 다양한 커피와 티 종류라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고르느라 한참을 정독했다. 겨울 목감기를 극복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유기농진저피어티를, 오후라 카페인에 약한 하원 선생님은 디카페인드립으로 골랐다. 요즈음 대부분의 카페가 손님이 가서 주문하고, 진동벨이 울리면 자리까지 배달하는 것도 손님이며, 먹은 자리 정리까지 손님이 해야 하는 마당에, 이 집은 손님은 마냥 제자리에서 수다만 떨다보면 가져다준다. 연세 지긋한 안주인의 우아한 손놀림이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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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가져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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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안주인이 내려 준 커피 맛도 변함없다. 30대 하원 선생님은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디카페인 커피가 이렇게 맛있으니 커피 종류를 다 맛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힙한 집을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도 좋아할 거라기에 주변 맛집도 몇 곳 알려주었다. 명승원, 시민제과, 초원통닭···. 메뉴판에 주인장이 궁서체로 깨알같이 써서 따로 붙인 정성에 싱긋 웃음이 난다. 오래된 세월을 마셨다. 경북 포항시 북구 칠성로47번길 11, (054)248-0148.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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