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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몽당연필의 추억

등록일 2026-02-25 16:13 게재일 2026-02-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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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몽당연필.

3월 새 학기가 되면 문구점은 말 그대로 ‘인사태’가 났다.

안동 시내 한복판, 전설처럼 불리던 문구점 ‘삼방사’가 있었다. 1973년에 문을 열어 2000년까지 불을 밝힌 곳. 매대에는 과목별 공책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연필꽂이에는 각종 연필이 빼곡했다. 새 학기를 앞둔 아이들은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반년을 함께할 책 커버를 고르고, 자물쇠 달린 다이어리를 만지작거리며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연필, 볼펜, 공책, 삼각자, 콤파스, 지우개 등 학용품을 구입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 학기를 맞이했다.

법상동 안동여고 들어가기 전 ‘몽블랑’도 삼방사 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은 표구사로 바뀌었지만 당시 생일선물은 무조건 몽블랑에서 구입했다. 새 학기 준비물부터 아기자기한 소품과 각종 팬시 문구, 카드, 인형, 스노우볼이나 오르골같은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모두 몽블랑에서 해결이 됐다.

하지만 이제 새 학기에 문구를 고르는 풍경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대다. 연필을 깎는 수고 대신 샤프나 볼펜을 쓰고, 공책 대신 전자기기에 필기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연필을 깎기 위해 책상 옆 휴지통을 끌어오던 풍경은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 속 새 학기는 언제나 연필로 시작했다. 갓 깎은 나무의 향, 사각사각 필기하던 소리, 필통 안에서 서로 부딪히던 연필의 마른 울림, 그리고 손가락 길이만큼 남은 몽당연필까지.

볼펜은 잉크가 떨어지면 끝이었다. 스프링이 빠지거나 고장이 나면 미련 없이 버렸다. 그러나 연필은 달랐다. 짧아질수록 소중히 다뤘다. 끝내는 모나미 볼펜 깍지에 끼워 길이를 늘려가며 썼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땐 제법 진지한 ‘생명 연장술’이었다.

연필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 잘못 그은 선도, 비뚤어진 글씨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 내내 연필은 받아쓰기 공책 위에서, 수학 문제집 여백에서, 시험지 위에서 그 쓸모를 이어갔다.

몽당연필은 성장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처음에는 반듯하고 길었던 몸이 점점 짧아지고, 깎을수록 심은 가늘어진다. 누군가는 장난스럽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연필은 흑연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저 알뜰하게 쓰였다. 다 쓰면 새것으로 바꾸면 그만인 요즘엔 몽당연필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건은 점점 더 빠르게 소모될 뿐이다.

아낌없이 다 써버린 몽당연필의 기억은 곧 학창 시절의 기억이다. 틀려도 다시 지우고 고쳐 쓸 수 있었던 연필은 그 시절 교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추억의 학용품이다. 그리고 시간을 끝까지 써 내려간 우리의 흔적이다.

아낌없이 그 쓰임새를 다한 물건은 아름답다. 연필은 우리 곁에서 조용히 짧아지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라왔다.

/백소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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